정글만리 2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글만리1을 읽은 지 몇달 지났다. 대기 명단이 가장 긴 책이다. 문제는 끝까지 스토리의 진전이 없이 전개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1편은 재미있었다. 이 많은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엮여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까 기대했다. 사회, 문화, 정치 전반에 걸쳐, 새로운 경제 대국으로 떠오른 거대 중국에 대한 사실감 높은 문체로 주재원과 교포들이 이국 땅에서 살아가며 느끼는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했던 1편은 신선했다.  같은 톤의 2편. 똑같다. 그게 문제다. 이야기의 전개에 있어서 1편과 딱히 달라진 게 없다. 결국 3편에서도 이러다가 말겠군 하며 마지막 장을 덮었다. 

 

중국의 실상과 중국 내 한국 비지니스맨으로서의 사고와 행동을 전달해주는 종합상사 부장 전대광은 여전히 꽌시를 사이에 두고 국내 수출기업들과 중국 내 바이어들과 바이어들의 가족들을 분주하게 상대하며, 등장인물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역을 한다. 의료 사고로 곤경에 처해 있던 서하원은 전대광의 주선으로 중국 관료 샹신원이 추진하는 성형외과 프로젝트에 차출되어 중국에서 인정받고 바쁜 생활을 한다. 철강회사 직원인 김현곤은 일본인과의 경쟁에서 밀려 시안으로 좌천되지만, 야심 많은 꽌시의 힘으로 역전의 기회를 잡고, 이 소식을 전달하러 온 전대광에게 고대 도시 시안과 진시황의 왕릉 등 시안의 관광정보 뿐만 아니라,  오래된 유적들이 함부로 파헤치고 급속한 산업 발달로 인한 매연이 가득한 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부모의 반대를 이기고 중국 유학생이 된 송재형은 별 사건도 없이  정착해서 잘 사는 것으로 그려지고, 여자친구 리엔링과의 대화를 통해, 중국의 첩문화인 얼라이 문화를 전달하는 역과, 부모를 초대해 중국 짝퉁 시장을 가이드해주며, 중국의 짝퉁 문화를 전달하는 역을 맡았다. 철강 수입의 바이어인 거대 재벌의 젊은 회장 왕링링과 그녀의 최측근 앤디 박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중국의 대부호들의 비지니스 세계를 그린다.

 

모든 등장인물과 그 속의 사건들은 소설을 끌고가는 이야기의 구심력이 아니라, 작가가 전달하고 싶은 중국의 모습을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전달하는 전달자들이다. 그들의 대화는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일반화한 중국에 대한 이미지를 전달한다. 누가 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사건이 어떻게 연결되어 어떤 결과를 이끌었는지, 그런 종류의 소설적 요소는 여기서 전혀 중요하지가 않다. 배경 위에 사건이 얹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배경을 조목조목 디테일하게 그리기 위해서 듬성 듬성 별 의미도 없는 사건과 이야기를 아무렇게나 다리처럼 연결시켰다. 캐릭터도 마찬가지이다. 나쁜 사람도, 좋은 사람도 없다. 무언가를 고뇌하고, 무언가 다른 사람과 자신을 구분짓는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깊게 그 속으로 끌어들이는 인물이 없다. 그들의 대화는 우연히 동승한  비행기 옆좌석의 모르는 사람과도 할 수 있는 종류의 대화들이다.  

 

2편에서 전하는 중국은 대략 이렇다. 송재형의 현지 여자친구이자 산아제한의 결과로 외동딸 리옌링의 아버지는 개혁개방과 거센 산업화 물결 속에서 축재한 재산으로 얼라이들을 거느렸다. 리엔링의 아버지는 뿌리 깊은 아들 선호 사상을 버리지 못하고 아들들까지 낳아 호적에 올리고, 이를 알게 된 리엔링의 가어머니는 이혼 위기에 몰린다. 얼나이는 첩을 말한다. 이 소설을 보면 중국의 부자들과 관료들은 얼나이를 한둘 뿐이 아니라 수십명까지 거느린다. 꽌시 같은 부정 부패와 급속도로 진행된 자본주의 수혜자들의 부산물이다. 사실상의 일부다처제다. 산아제한 정책으로 얼라이들한테서 태어나는 상당수의 여자아이가 숨겨진다. 호적없는 유령 인간이 통계상으로는 1300여만명. 소문에는 1억에서 최대 4억까지도 본다. 또한 여기 저기에서 툭툭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지는 수많은 등장인물들 또한 작가의 시선으로 중국을 단순화 일반화한 전달자의 역할을 한다. 거대 짝퉁시장, 소수민족을 하나로 묶는 중국인들의 정체성. 중국인에 대한 자부심과 한족 우월의식, 제도만 바뀌었을 뿐 황제-신하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부패한 정권, 거대하고 파렴치한 짝퉁 시장과 그 시장을 공략하는 한국 사업가, 문란한 성관계. 가정 내에서 드세고 우월한 여성의 위치, 불나방처럼 돈을 쫓아 화류계를 이루는 대학생을 포함한 숱한 여성들... 작가는 그런 작은 디테일들을 적기 위해 필요에 따라 아무렇게나 1회성 조연들을 수도 없이 등장시켰다가 거두어갔다.

 

먼 내륙의 서부도시 시안은 역대 17개 왕조 1200년 동안의 수도였다. 진시황의 무덤인 병마용에는 황토와 옥가루를 빚어 만든 실물크기의 6천여명의 병사와 400여 마리의 말과 100여대의 전차가 있다. 세계 8대 불가사의라는 이곳의 발굴지역은 진시황 무덤의 10퍼센트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함정이다. 전대광이 사업차 방문하는 곳은 시안 말고도 칭따오가 있다. 칭따오는 독일 점령의 흔적이 남아 독일풍이 짙게 배어 있는 중국의 동부 연안 도시로 상하이와 함께 장차 동북아와 태평양 시대를 열기 위한 중국의 2대 거점도시이다. 이 책은 칭따오와 시안 여행자를 위한 가이드북 역할도 한다. 대화 형식이라 읽기 편하고 시중의 형식적인 가이드북보다 생동감있고 유용할 듯하다.

 

치파오는 무릎위까지 치마가 터진 타이트한 중국 의상이다.  하양연화에서 장만옥이 조용하고 뇌쇄적 분위기를 발산하던 그 옷이다. 그 옷의 기원에 대해서도 자세히 나와있다. 시안 같은 도시에 가서 잠옷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놀라지 말아야 한다. 중국 사람들이 웃통벗고 다니는 건 많이 알려져 있겠지만 잠옷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온 중국 사람들이 비싼 잠옷을 신분과시용으로 외출복으로 입고 나선 엉뚱한 유행 바람이 몇년전부터 일어났다고 한다. 웃통벗지말기처럼 정부의 문명 10대 개조 중 하나였다.

 

이 책에 대한 기대감은 조정래 작가의 역사적 대하소설 태백산맥에서 받았던 기대치가 장기 베스트셀러라는 드문 현상과 맞물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한 방법으로서, 태백산맥은 대를 읽고 읽힐 불후의 명작이었다. 태백산맥을 워낙 어릴 때 읽어 지금과는 다른 느낌으로 읽었을 수도 있겠으나, 그 때 받았던 한 작가가 인간으로서 전하는 진정성 같은 것을 느낌으로 기억한다. 같은 사람이 쓴 소설이라고 잘 믿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중국 전반에 걸친 비지니스 가이드 북 정도라고 한다면 더 큰 가치가 될 듯하다.

 

때로, 소설이 이야기를 많이 담지 않고도 소설이 되기도 한다. 소설이 독자가 기대하는 이야기를 담지 않고, 소설의 테두리에서 실헐적이라든가 파격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려면 기존에는 시도하지 않았던 어떤 신선함이 독특함이 동반해야 될 것이다. 정글만리는 제목처럼 무궁무진한 기회의 땅 중국에서 사업하며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그 디테일은 깨알같고, 전지적 작가시점의 다양한 사람들의 눈으로 본 중국이란 나라의 모습은 제목처럼 정글같다. 그러나 이야기는 구심이 없고, 인물들은 개성이 없고, 책읽는 재미는 소설적 재미를 비껴가 있고, 인물이 만들어내는 대화와 말투는 생동감이 빠져있다. '엄마는 베이징에 왜 왔수?'. 송재형의 여자친구 리엔링이 엄마에게 하는 대화다. 노인정에서 드나드는 정겹고 오래된 모녀의 모습이지 싱그러운 여대생이 엄마에게 하는 말로는 읽히지 않는다. 책의 시간 배경은 바로 지금 현재인데, 말투는 대하소설 속 인물이 하는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