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링 : 이미테이션 게임
앤드루 호지스 지음, 박정일 옮김 / 해나무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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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튜링의 전기를 쓴 앤드루 호지스가 전기에서는 다 쓰지 못한 내용을 다룬 책으로 위대한 철학자 튜링 이라는 원제처럼 튜링의 사상을 압축해서 쓴 책이다. 분량은 150쪽 내외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은 책이다. 앤드루 호지스의 전기는  <Alan Turing : The Anigma, 1983, 개정판 2014>으로 최근 출간된 <앨런 튜링의 이미테이션 게임, 2015>인데, 원서의 분량만 762쪽, 한국어판은 872쪽으로 방대하다고 알려져있다. 튜링의 인생 중 주로 학술적 업적을 위주로 간략하게 서술되어 있고, 튜링의 논문을 분석하는 형태의 서술로 이루어져 있는데, 내게는 전체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이 책을 온전하게 이해하려면, 당시 튜링이 영향을 주고 받은 뉴먼, 괴델,  알론조 처치, 비트겐슈타인 등의 사상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과 이해도 필요하다. 


오랫동안 튜링이 역사속에 숨어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스파이 의심을 받다가 결국 동성연애자로 범죄자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프로그램 가능한 최초의 컴퓨터라고 인정받는 콜로서스의 설계에 튜링이 관여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왔다는 점이기도 하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은) 독일의 또다른 암호기계 로렌츠를 해독한 콜로서스는 튜링의 기계 봄베가 해독한 독일의 애니그마와는 관계가 없었지만, 저자는 튜링이 실제로 콜로서스를 조작한 증거를 찾은 듯한 문구가 있다.  


하지만 튜링은 콜로서스의 목적을 입력input하였고 콜로서스의 승리를 직접 보았다는 점이다.(p76)


가뜩이나 어려운 내용에, 번역까지 기계가 번역한 것 같은 문장이 정확한 뜻을 전달해주지는 않지만, 아무튼 튜링의 애니그마 해독 머신 봄베가 콜로서스의 설계에 영향을 미쳤으며, 그로 인해 튜링이 현대 컴퓨터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 같다. 그렇다면 튜링의 생존 당시 독일에서도 영국과 미국에서도 오늘날의 컴퓨터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기계들이 많이 만들어졌는데, 튜링이 한 일은 무엇일까.


사실 중요한 건 아이디어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창조적인 생각을 튜링이 해냈다는 것. 그 생각으로부터 오늘날 인공지능이라 할 수 있는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근거는 튜링이 하나의 단일한 유형의 기계가 모든 임무들에 사용될 수 있다는 착상을 했다는 거다. 컴퓨터가 나오기 이전까지, 우리는 어떤 하드웨어이든 특수한 용도를 위해 만들어진 전용 기계들이란 것만 알았다. 그런데, 튜링이 설계한 기계는 지시사항을 데이터의 형태로 받아들여 계산을 포함한 어떤 지능적인 일도 처리할 수 있었다. 튜링은 그것을 보편 기계라고 했고, 그 아이디어는 1936년에 처음으로 제시되었다. 그런 착상은 1950년대까지도 '완강한 저항'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위대함은 인간 정신의 활동을 물리적인 기계로 모형화함으로써 생각을 기호 논리학의 세계 속으로 끌어들였다는 데 있다. 



1946년 튜링이 국립 물리학 보고서에서 설계한 계산기계 ACE(Automatic Computing Engine)은 처음부터 보편기계였고 따라서 당시 계산 위주였던 다른 기계들이 하는 '산수'는 하나의 적용일 뿐이었다. 이 설계서가 데이터 뿐만 아니라 지시사항들도 조작될 수 있는, 프로그래밍 이론을 개괄적으로 제시했기에 ACE는 독창적인 것이었다. 이 때 처리가능한 것들을 수학적인 범주 밖으로 끌어내서 연산의 범위를 극대화했는데, 체스의 예가 대표적이다. 기계는 체스 게임을 할 수 있는가.


기계가 지능을 보이게끔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징후들(indications)이 존재한다. 이러한 견지에서 기계는 아마도 아주 훌륭한 체스 게임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튜링 (p82)


튜링은 뇌가 학습하는 것처럼 기계가 학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러한 생각들의 근간은 어렵기는 하나 대충 적으면, 사고나 지능에 관련 있는 뇌의 유일한 특징은 기술의 이산 상태 기계 수준 안에 속하는 것인데 이것은 학습 또는 자기-조직화 능력을 포함한다는 뜻이다. 


이미테이션 게임의 원문을 보자. 


이 게임의 참가자는 남자(A) 여자(B) 질문자(C) 이렇게 세 사람인데 질문자는 남자일 수도 있고 여자일 수도 있다. 질문자는 다른 두 사람과 분리된 다른 방 안에 있다. 이 게임의 목적은 질문자가 다른 두 사람 중 누가 남자이고 누가 여자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 게임에서 기계가 A의 역할을 대신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까?' 


즉 컴퓨터는 한 여자를 흉내내는 한 남자의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이 이미테이션 게임의 요점은 만일 한 기계가 이 조건들 하에서 인간으로부터 구분될 수 없다면 우리는 기계에 인간 지능이 있다고 믿어야만 한다. 튜링은 '지능을 흉내내기'가 성공적으로 지능을 흉내낼 수 있다면 그것을 '지능'으로 부르기를 희망했다.


(1) 중국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알고리듬이 존재한다는 것.

(2) 이 알고리즘은 방에 있는 기계가 아니라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에 의해 생각없이 작업하면서 실행된다는 것. 

그리고 나서 중국어는 번역된다. 그러나 번역자 어느 누구도 중국어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를 지지고 있지 않다는 역설이 발생한다. ... 브레즐리 파크의 상황은 묘하게도 중국어 방과 유사하다. 왜나하면 비밀 유지를 이유로 사람들은 그 목적을 전혀 모른 채 암호 해독 알고리즘을 수행하기 위해 훈련받았기 때문이다. .. 즉, 아무 생각 없는 계산으로부터 현명한 판단이 출현하는 바로 이 광경은 1941년경에 튜링에게 기계 지능의 그림으로 나아가도록 영감을 불어넣었던 것이다. (114)

 

이러한 튜링의 사상은 '모든 기계를 상대로 동시에 승리를 거두는 일은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요컨대, 그렇게 되면 주어진 어떤 기게보다도 더 똑똑한 사람들이 존재하게 될 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되면 다시 그 사람보다 더 똑똑한 다른 기계들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이며, 이런 식으로 계속 나아갈 것이다'에서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다. 우리는 이제 체스와 인간과의 게임, 튜링 테스트에서 기어코 인간의 두뇌를 누른 기계 유진이 알고리즘의 형태로 나타난 것을 튜링의 예언처럼 묵도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는 50년 내에 약 10의 9승의 기억용량을 지니고 있고 그래서 평균적인 질문자가 5분동안 질문을 한 후에 옳게 맞출 확률이 70%가 넘지 않을 만큼 이미테이션 게임을 잘 할 수 있는 컴퓨터를 프로그래밍 하는 것이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그의 예언은 적중해서, 작년에 이 게임은 끝났다. 


튜링은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에 대해, 믿기에는 너무 무의미해서 논의할 가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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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 2015-03-12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영화 먼저 봤어요. 깊은 마음의 고민은 책이 훨씬 더 낫겠지만, 그래도 감동 받은 영화였어요. 책으로 보니 참 반갑네요

CREBBP 2015-03-12 15:11   좋아요 0 | URL
저도 영화로 먼저 봤는데 영화의 내용과는 좀 먼 듯한 책이에요. 영화가 너무 좋아서 튜링에 급관심이 생겨서요
 
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 - 이동진의 빨간책방 오프닝 에세이
허은실 글.사진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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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이 진행하는 빨간책방(이하 빨책) 팟캐스트의 오프닝은 공중파를 포함해서 내가 이제껏  들어본 어떤 다른 라디오 방송 중에서도 단연 마음을 붙잡는다.  최근에는 자주 못들었다. 백석평전 편을 마지막으로 청취한 지 한참이 지났지만 가끔은 오프닝이 땡길 때가 있다. 초창기 때의 얘기지만, 한 번은 오프닝이 너무 좋아서 옮겨 적어 친구들 보라구 SNS에 베껴 올려 놓기도 했다. 


이동진이 읽을 때는 얘기하듯 자근자근한 목소리로 읽기 때문에 문장을 에세이의 형태로 길게 이어붙였는데 책에는 시처럼 한 문장에서 군데 군데 줄바꿈이 되어 여백을 살렸다.  이렇게 여백이 생기니 이동진이 읽을 때와 느낌이 또 다른데, 개인적으로는 그냥 공백 없이 에세이식으로 쭉 붙여서 읽는 게 더 문장이 살아나는 것 같다. 시처럼 맑은 언어를 가졌지만 시와는 다른 전달력이 있다. 


하지만 누구나 익숙한 것을 좋아하는 법. 이동진이 편안한 목소리로 붙여 읽을 때처럼 그 목소리를 청각적으로 상상하며 천천히 읽으니 라디오를 들을 때의 감이 살아난다. 방송을 처음들을 땐 이동진이 직접 써 와서 말하는 건줄 알았다. 이동진도 평론가니 글을 잘 쓰기는 하겠지만 이렇게 감성적인 글을 잘 쓴다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초기에 이동진을 좋아하게 된 동기가 허은실 작가가 쓴 글을 이동진 진행자가 쓴글로 오해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이동진은 허은실에게 작은 빚을 진 것일 수도 있다. 듣다보니 자연스럽게 작가 소개도 하고 농담으로 글만 잘 쓴다고 핀잔도 주면서 작가가 완전히 뒤쪽에 숨어있는 다른 방송과는 달리 존재감을 나타냈는데. 어쩐지. 아니나 다를까 알고 보니 시인이었다.


아무튼 오프닝이 좋아 따로 책으로 묶어도 좋겠네 라고 생각했더니 또 이렇게 책으로 나왔다. 이동진과 김중혁 작가와의 수다는 사실 농담도 많고 해서 책으로 내려면 많이 걸러져야 하는데 또 거르다 보면 재미가 반감될 것도 염려가 되고 거르지 않고 그대로 책이 될 경우는 시덥지 않은 서로 띄워주기 같은 농담이나 잡담들이 문학적 대화의 흐름을 끊을 것도 같고 그래서 책으로는 안나올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7권의 문학작품을 엮어 책으로 먼저 냈고 허은실 작가의 오프닝 에세이집도 나왔다. 


내겐 소설가에 대한 약간의 편견 같은 게 있는데 시인 출신 소설가를 좋아한다는 거다. 같은 소설가라고 하더라도 데뷰를 시로 한 작가들은 뭘 써도 또랑또랑 맑은 언어가 마음을 건드린다. 세련된 문장 속에 빠지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 때 책읽는 기쁨을 느끼는 나로서는 시인이 잘 이해안되는 시를 썼을 때보다 시인의 언어가 시 아닌 소설이나 다른 글들을 썼을 때 더 편안하다.


마음이 기우는 쪽으로 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으로 버티던 어떤 사랑도 있었겠지요. 어째서 그때 마음은 위험과 불안, 혹은 상처 쪽으로만 기울어지려 했던 걸까요(P20)

나는 너에게 무엇이었을까? 이런 물음 하나를 쥐고 내내 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p244)


바짝 마른 모래처럼 서걱거리는 가슴에도 이런 문장을 읽으면 아련히 떠오르는 청춘이 있다. 공감이 형성되는 순간이다. 이유를 알 수 없던 방황, 가슴 한 구석에 웅크리던 불안. 청춘을 돌아볼 때 가끔은 그런 미성숙한 감정마저도 그리움으로 뭉개뭉개 피어 오를 공감되는 문장 하나를 발견하고 위안삼을 때가 있다. 딱 이런 문장이다. 


여름날의 빗소리에 대한 공감각적인 문장을 보자. 이 차고 냉랭한 겨울 사이로 뜨겁고 습기찬 한여름의 소낙비 내리던 풍경의 시각, 청각적 풍경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아 여름아. 너는 시간 저편 과거에 그렇게 머무는구나. 여름날 급작스레 쏟아지던 소낙비가 가져다준 작은 설레임, 그 작은 동요. 그것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리고 또 얼마나 잊고 살았던지를 일깨워주는 문장이다. 

그리고 최초의 빗방울이 두둑, 잎사귀에 닿는 찰나! 세상은 숨을 참는 것처럼 순간, 정지합니다. 여인들은 서둘러 빨래를 걷습니다. 소년들은 가방으로 머리를 가리며 뛰어가고, 소녀들의 목소리는 높아집니다. 소나기 내리는 여름날의 그 작은 소란과 동요를 당신도 좋아하시는지요 (P22)

당신과 나, 그 관계에 대한 문장은 담담하지만, 참으로 많은 걸 담고 있다. 어떤 음악은 멀쩡히 즐거운 기분으로 틀었다가 선율과 가사에 이입되어 갑자기 눈물 흘리게 되는 음악이 있는데, 어떤 문장은 또 음악처럼 다가와서 마음을 건드리고 눈물샘을 자극하는 것들이 있다. 가령 '흔적'이라는 단어가 주는 쓸쓸함이 이런 문장을 만나면 그렇게 된다. 아래 문장이 SNS에 베꼈던 문장이다. 다시 만나니 다시 반갑고, 다시 쓸쓸해지고, 다시 마음이 젖는다. 


방금 누군가 내 앞에 앉았다가 일어났습니다. 그가 앉았던 소파가 움푹 들어가 있네요. 다른 무엇이 아니라 그 자국 때문에 울어본 일이 있다면 당신은 그를 사랑한 것입니다. 이별을 실감하게 하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흔적이 있기 때문이지요.(p78)

비는 감정 전도율이 높아서 함께 빗소리를 듣는 순간엔 침묵조차 친밀해집니다. 당신과 나 사이에 빗소리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적, 있으신가요?(p23)

격주 돌아오는 그녀의 오프닝 쓰기 작업은 시인인 작가에게 어떤 것이었을까? 내 추측이지만, 처음 시작할 때부터 이동진이 제작 스폰서인 위즈덤하우스의 외압 없이 독립적인 컨텐츠를 제공하기로 했던 만큼, 오프닝 쓰기 자체가 어떤 금전적인 목적이나, 방송회사 직원으로의 역할로  쓴 글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늘 반짝반짝 어떤 영감이 샘솟듯 솟아나 반짝이는 문장들을 한도 끝도 없이 생성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청취자가 그렇게도 많이 늘어나는 것을 알게 되어 부담감도 생기게 되었으니까,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고달픔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고뇌의 흔적은 고스란히 어떤 주제에 관련된 지식적 탐구라는결과로 나타나기도 한다.가령 예를 들어, 작가는 언어, 특히 단어의 글자 모양, 발음, 뜻, 어원 같은 것들을 자주 탐구한다. 여름은 열다 열리다란 동사의 명사형 어미가 붙은 거로 열매 맺는 시기라는 뜻이라고 한다(p85) 언어는 탐구에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어루만지는 듯한 느낌으로 동거동락한다.


어떤 단어는 꽈리처럼 종일 굴려보고 또 어떤 단어는 솜사탕처럼 뜯어 먹어봅니다. 책 속에서 만난 단어 하나가 마음에서 며칠을 돌아다닌 적 있으시지요.(p199)

7월이나 8월이라는 말은 어감부터 그렇습니다. 4월이나 10월처럼 시적이지도, 5월이나 6월처럼 부드럽지도 않죠. 치열한 일념, 팔팔 끓는 여름의 이미지가 어감에 그대로 실려 있습니다. 여름의 날씨를 표현하는 단어들도 대부분 그렇습니다. 태풍, 땡볕, 뙤약볕, 폭염, 폭서, 폭풍.... 보기만 해도 따끔거리는 저 거친 파열음들!(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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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트북 TEST BOOK - 나도 몰랐던 진짜 나를 찾아가는 심리 지도
미카엘 크로게루스 외 지음, 김세나 옮김 / 시공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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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광고로 가득한 두꺼운 여성 잡지책 보면 질문에 답하면서 성격 테스트하는 코너가 많았었는데, 지금은 많이 없어진 것 같다. 아마도 MBTI 테스트나 Five 성격 유형 테스트 같은 전문적인 테스트 방식들이 많아지고, 이를 테스트하는 기관이나 상담소들이 제 역할을 하면서 그런 엉터리같은 테스트가 시시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어쨌든 그런 테스트 코너가 있으면 친구들이랑 같이 해보고, 나는 이런 성격이니 너는 저런 성격이니 했었는데, 어느날 회사에 멘토링을 해주는 강사가 와서 한참동안 MBTI 테스트를 진행한 후, 이런 저런 유형으로 성격을 알아맞추고는 그림도 그리고 여러가지 도움이 되는 말들을 했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이런 저런 비슷한 테스트들을 접해봤는데, 이 책은 여러 종류의 테스트를 한 권에 모두 실어놓은 책이다. 회사에서야 자기계발 차원에서 인력을 좀 더 효율적이고 낭비 없이 하는 거겠지만, 개개인들도 이런 테스트 유형이 있으면 점치듯 해보고 답지를 보면 똑같다며 호들갑을 떨고 즐거워한다. 왜 그럴까.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성격이나 기질 같은 것들이 표준과 얼마나 다른지 표준에서 자신의 위치가 어느 정도 되는지를 끊임없이 알고 싶어 한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했기 때문에 그걸 찾아가는 과정일까. 그렇다면 매번 주기도문을 외울 때마다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고 외우면서 왜 이런 것들을 테스트하고 싶어하는 걸까.


이 책은 기질과 성격, 신체와 건강, 스킬과 커리어, 라이프스타일과 사회, 지식과 믿음에 대한 자신의 유형 등에 대한 각종 검사법을 총망라해서 64개의 테스트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예전에 로르샤흐 테스트라는 게 관심있어서 알아봤더니, 테스트 기관의 테스트 방법과 해석 방법이 노출되면 한 마디로 그 테스트 방법을 개발하고 서비스하고 있는 회사들 혹은 심리기관들의 부가가치가 떨어지므로 디테일은 공개되어 있지 않다고 들었는데, 혹시나 힌트가 있을까 해서 뒤져보니, 너무 많은 테스트 방법이 총망라되어 있는 관계로, 모든 테스트들이 매우 약식으로 이루어져있어서 심도있게, 그러니까 제대로 테스트하고, 그 해석을 책에서 기대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생각지도 않은 수많은 테스트 방법들에 궁금했던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의 특징은 앞에서 얘기한 분류대로 각종 테스트 방법을 소개하면서, 실제 테스트 문제와 해석방법을 제시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부하기 싫어서 인생을 다시 살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싫다고 할 것이지만, 책에서 제시하는 테스트들은 공부 얼마나 했나를 테스트하는 것이 아닌 인생을 해석해주는 테스트라고 할 수 있다.  책의 유용성은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있는 여러 종류의 테스트들의 유래와 그것들의 학술적인 근거, 어떤 부분에서 인정받고 있는지 비판받고 있는지를 알려주기 때문에, 그런 검사가 신뢰성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여기 소개된 64개의 테스트들은 대개는 심리학적으로 연구되고 학술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잡지책에 나와있는 점성술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어떤 면에서 유용하고 어떤 면에서 비판받고 있는지를 짦막하게 기술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신뢰도 판단에 도움이 된다.  


테스트의 종류는 정성적 테스트와 정량적 테스트가 있는데, 아이큐나 스포츠 테스트 처럼 정확하게 양을 잴 수 있는 테스트가 정량적 테스트이고, MBTI처럼 임의로 정해놓은 어떤 그룹에 속해있는지를 알 수 있는 종류가 정성적 테스트이다. 이런 테스트들의 분류는 정상과 비정상, 평균 이상과 평균 이하를 가른다 .모든 테스트의 종류에 대해 알고 싶다면 한챕터 한챕터 읽어나가면서 하나씩 테스트해도 되지만, 특별히 관심있는 부분만 골라서 읽거나 테스트해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인간은 나를 계속 알고 싶어한다. 왜 우리는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알기를 원하는 걸까. 어떤 약점을 은폐하고 강점을 드러내고 싶은 은밀한 심리가 있을까. 어쨌든 나를 알아보기 위한 테스트로 앞서도 계속 언급했던 MBTI가  많이 쓰이고, 요즘은 MBTI 검사 자격을 갖추고 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상담하는 컨설턴트들도 많이 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성격 검사의 맹점은 모든 사람은 어느 한 쪽으로만 치우지지 않고 양면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데 성격 테스트에서는 이런 부분들이 많이 무시되어 오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 심리학에서 성격진단의 표준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은 빅 파이브 모델인데 이것 역시 너무 많은 질문으로 너무 적은 것을 테스트 한다는 비판을 받는다고 한다. 이런 테스트의 유형도 트렌드가 있는지, 예전에는 적성검사 혹은 심리 평가가 많았는데 이런 것들은 '숙청'됐고, 요즘은 기질이나 퍼포먼스 검사가 많이 사용된다고 한다. 


우리는 단지 행복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더 행복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이것은 달성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실제보다 더 행복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몽테스키외(p45)



스포츠 섹션에도 재미있었던 것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황새다리 테스트 같은 것은 한쪽 발바닥을 다른 다리의 무픞에 대고 얼마동안 균형을 잡고 테스트할 수 있는가를 간단하게 테스트하는 방법으로 나는 3초미만이고(뭐가 자랑이라고) 평균은 20초에서 30초 사이다. 읽기 테스트도 있는데, 예전에 학교다닐 때 했던 방법이긴 하지만 다시 해봐도 그 턱. 문장이 주어지고 1분동안 몇줄 읽은 후 몇줄 읽었나로 분당 워드수를 구하고 제대로 읽었는지 문제에 답해서 틀리면 점수가 깍이는 건데, 내경우 딱 평균이다. 나는 얼마나 창의적인가는 어떤 물체가 주어지고 그것의 용도가 아닌 다른 용도로 나열하라고 하거나 뭔지 모르는 그림의 일부를 보여주고 그림을 완성하라는 것 등으로 테스트한다. 나의 정치 성향은 어떠한가에 대한 테스트가 있었는데, 적당한 좌우로 좌파우파 상하로 자유파 보수파로 나뉘어진 그림에서 좌파에 극자유파로 내 정치성향이 드러났다. 나는 성차별적인가를 나타내는 한 테스트는 어떤 영화에 대해 그 영화에 이름이 나오는 여성이 한 명 넘는가, 영화 속 여성들끼리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가. 여성들이 남성들과 다른 무언가로 이야기를 나누는가 이 세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키지 않는다면 성차별적인 감독으로 분류했고, 페드로 알모도바르라는 감독이 10점 만점에 10점, 스티븐 스필버그의 경우 2점에 가까운 여성차별주의로 나타났다. 


내가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는가(예를 들어 흑인과 백인에 대한 편견 같은 것)를 테스트해주는 부분이 조금 성에 안차서 http://implicit.harvard.edu 에 들어가서 테스트해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편견이 절대로 없다고 생각했으면서도 내가 막상 테스트에서 보인 행동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달랐다. 이러한 테스트들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나와 테스트의 결과로서의 나를 비교해보고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인데. 물론 호기심에서 하는 것이지만 나를 이해한다는 것, 나를 이해하고 싶다는 것에 대한 우리들의 바람을 조금은 충족시켜주는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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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감각- 새가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팀 버케드 지음, 노승영 옮김, 커트리나 밴 그라우 그림 / 에이도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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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영화관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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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공부가 재미있어지는 순간 - 공부에 지친 청소년들을 위한 힐링 에세이
박성혁 지음 / 다산3.0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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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KBS 에서 조사한 재미있는 설문 결과가 있다.조사 내용은 진부한데, 결과가 재미있다.  아래 그림은 그 설문 결과를 토대로 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일을 연령별로 나타낸 표다.위에는 남자, 밑에는 여자. 이 결과가 말해주는 것은 대한민국의 인간은 거의 죽을 때까지 평생을 공부 좀 열심히 할 걸 하고 후회하며 산다는 거다. 남자는 50대까지 공부좀 할걸, 여자는 40대까지 공부좀할 걸 하고 공부를 더 열심히 하지 않은 걸 후회한다는 거다. 


맞다. 공부는 신분 상승의 계단이다. 좋은 학력은 그 사람의 인격마저 달라보이게 만든다. 그게 현실이다. 그러나, 그게 다일까? 돈, 명예, 사회적 위치 그런 물질적이고 사회적인 요구만이 공부의 목적일까?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그렇게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부모들도 그걸 안다. 다만 공부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가장 충격적인 방법으로 공부하기를 설득/위협하는 방법이 니가 거지가 될라고 그러냐고 하소연하는 거다.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들, 우리아들이 중학교때 나름 감동 먹었던 스터디코드에서조차도 공부를 안하면 후에 어떤 힘든 인생을 살게 될지를 정신이 번쩍 들도록 실례를 들어 얘기한다. 그러나 정말? 살아보면 공부가 다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 좀 더 잘하기를 원하니까 그렇게 협박하는 거다. 


흔하디 흔한 자기계발서를 나름대로 평가하는 기준이 몇 가지 있다. 가령 이런 책들은 매우 나쁜 책들이다. 1. 뻔하고 진부한 얘기들, 자신의 다른 많은 책에서, 혹은 다른 사람의 다른 많은 책에서  이미 수없이 많이 했던 얘기를 적당히 짜집기 해서 새 이름으로 내는 책들. 2. 자신의 성취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여 자신이 가진 능력이나 환경 같은 특수성에 대한 결과를 일반화시켜 모든 사람들에게 통할 것처럼 얘기하는 책들. 3. 진정성이 없이 자기 자랑을 늘어놓기 위해 책의 지면을 쓰는 책들(훌륭한 사람들의 생을 좀 더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을 객관적으로 냉철하게 바라보고 쓴 전기나, 평전 같은 걸 읽는 게 더 유익하다). 4. 얕은 지식을 이용해 이론을 왜곡 해석하고 독자의 눈을 속이는 책들 5. 무슨 종교처럼 주술적 행위를 하라고 늘어놓는 책들


적어도 위의 내용에 해당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자기계발서 중 독보적이고, 또한 진정성이 있다. 저자는 공부의 목적에 대해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접근하는 것과는 다른 방법으로 접근한다. 거지가 되려고  공부를 그렇게 안하니 타입의 잔소리가 아니다. 무엇이 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생각하도록 만든다. 이 부분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아이를 어떻게 대했나를 생각해보니 언어 학대에 해당하지 않았을까 라는 나름의 성찰과 반성까지 하게 된다. 저자는 타고난 우등생이 아니었다. 자신은 잉여짓만 골라하고 중2때 초등학교 저학년의 내용도 이해하지 못하는 완전 포기자였으며, 어떻게 그런 생활에서 빠져나왔는지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피차 공부 안하는 학생 입장에서 서술한다. 


첫 장은 <늦었나, 늦지 않았나>로 시작한다. 늘 늦은 것 같다. 시골 깡촌에서 모든 시험은 답안지 번호만 졸졸 외워 동그라미 치면 100점을 맞을 수 있도록 문제까지 다 가르쳐주는데도 불구하고 그것도 안하고 학교를 다닌 망나니가 중3 다돼서 공부좀 할 까 한다면 그건 늦은걸까? 늦은거다. 당연히 늦은거다. 곱셈도 되지 않는데 미적분을 어떻게 할 건가. 알파벳만 달랑 알고 아는 단어라고는 아마도 스튜던트 정도 밖에는 없을 학생이 어떻게 고등학교 수업을 따라갈 수 있다는 건가. 늦었다. 아주 몹시 늦었기에, 아버지를 졸라 초등학교 문제집을 3학년때 정도부터 잔뜩 사서 껴안고 들어와 그 부분부터 공부한다.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영어, 한 문단에 10개씩 모르는 단어가 나오는 국어, 초3 것도 풀지 못하는 수학실력. 게다가 도와줄 사람도 없는 깡촌이라는 배경. 그 모든 것을 헤집고 나간 과정을 그대로 적었다. 그리고 그 때의 죽을 것 같은 마음도 함께.


공부의 목적은 그걸로 어떤 직업을 갖는 것이 아닌, 어떤 사람이 되는가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경쟁은 학급 내 라이벌과의 경쟁이 아닌 자신과의 경쟁이 진정한 경쟁이다. 나는 내가 제일 잘 안다. 그러므로 나의 한계는 내가 정해놓은 한계이다. 그 한계를 극복하는 것, 그것이 자신과의 경쟁이고, 그 경쟁을 통해서 이기는 것만이 진정으로 이기는 것이다. 심플하다. 그러나 이런 얘기들을 아이들에게 해주는 부모들은 별로 없다. 반에서 1등을 하는 아이의 부모는 전교 1등과 비교할 것이고 전교 1등을 하는 부모는 다시 전국권으로 확장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부모가 함께 읽어야 할 책이다. 


이렇게 어떤 편법이나 지나가면 없어질 자극적 호소 없이 우직하고 진실성 있는 목소리로 공부에 대한 멘토링이 이어진다. 그러니까 어떤 마음가짐이 공부할 마음을 생기게하느냐의 문제인데, 이런 책은 억지로라도 읽히면 아이들에게 자극이 될 뿐만 아니라 공부를 시키는 어른들과에게도 필요하고, 또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지내는 성인들에게도 되돌아볼 기회를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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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eze 2015-03-10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첫번째가 공부 좀 잘할걸인데요. 흑~~

CREBBP 2015-03-10 14:22   좋아요 0 | URL
전 다시 돌아가서 공부하라고 할까봐 그런 말 맷하겠어요.

Breeze 2015-03-10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다시 돌아가도 공부는 싫을것 같아요. 열심히 여행다니는 걸로 바꿀래요. ㅋ

CREBBP 2015-03-10 14:26   좋아요 0 | URL
저도 바로 그거. 다시 어릴 적으로 가고 싶다가도 공부해야 하지 싶어서 그냥 있기로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