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링 : 이미테이션 게임
앤드루 호지스 지음, 박정일 옮김 / 해나무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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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앨런 튜링의 전기를 쓴 앤드루 호지스가 전기에서는 다 쓰지 못한 내용을 다룬 책으로 위대한 철학자 튜링 이라는 원제처럼 튜링의 사상을 압축해서 쓴 책이다. 분량은 150쪽 내외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은 책이다. 앤드루 호지스의 전기는  <Alan Turing : The Anigma, 1983, 개정판 2014>으로 최근 출간된 <앨런 튜링의 이미테이션 게임, 2015>인데, 원서의 분량만 762쪽, 한국어판은 872쪽으로 방대하다고 알려져있다. 튜링의 인생 중 주로 학술적 업적을 위주로 간략하게 서술되어 있고, 튜링의 논문을 분석하는 형태의 서술로 이루어져 있는데, 내게는 전체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이 책을 온전하게 이해하려면, 당시 튜링이 영향을 주고 받은 뉴먼, 괴델,  알론조 처치, 비트겐슈타인 등의 사상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과 이해도 필요하다. 


오랫동안 튜링이 역사속에 숨어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스파이 의심을 받다가 결국 동성연애자로 범죄자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프로그램 가능한 최초의 컴퓨터라고 인정받는 콜로서스의 설계에 튜링이 관여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왔다는 점이기도 하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은) 독일의 또다른 암호기계 로렌츠를 해독한 콜로서스는 튜링의 기계 봄베가 해독한 독일의 애니그마와는 관계가 없었지만, 저자는 튜링이 실제로 콜로서스를 조작한 증거를 찾은 듯한 문구가 있다.  


하지만 튜링은 콜로서스의 목적을 입력input하였고 콜로서스의 승리를 직접 보았다는 점이다.(p76)


가뜩이나 어려운 내용에, 번역까지 기계가 번역한 것 같은 문장이 정확한 뜻을 전달해주지는 않지만, 아무튼 튜링의 애니그마 해독 머신 봄베가 콜로서스의 설계에 영향을 미쳤으며, 그로 인해 튜링이 현대 컴퓨터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 같다. 그렇다면 튜링의 생존 당시 독일에서도 영국과 미국에서도 오늘날의 컴퓨터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기계들이 많이 만들어졌는데, 튜링이 한 일은 무엇일까.


사실 중요한 건 아이디어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창조적인 생각을 튜링이 해냈다는 것. 그 생각으로부터 오늘날 인공지능이라 할 수 있는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근거는 튜링이 하나의 단일한 유형의 기계가 모든 임무들에 사용될 수 있다는 착상을 했다는 거다. 컴퓨터가 나오기 이전까지, 우리는 어떤 하드웨어이든 특수한 용도를 위해 만들어진 전용 기계들이란 것만 알았다. 그런데, 튜링이 설계한 기계는 지시사항을 데이터의 형태로 받아들여 계산을 포함한 어떤 지능적인 일도 처리할 수 있었다. 튜링은 그것을 보편 기계라고 했고, 그 아이디어는 1936년에 처음으로 제시되었다. 그런 착상은 1950년대까지도 '완강한 저항'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위대함은 인간 정신의 활동을 물리적인 기계로 모형화함으로써 생각을 기호 논리학의 세계 속으로 끌어들였다는 데 있다. 



1946년 튜링이 국립 물리학 보고서에서 설계한 계산기계 ACE(Automatic Computing Engine)은 처음부터 보편기계였고 따라서 당시 계산 위주였던 다른 기계들이 하는 '산수'는 하나의 적용일 뿐이었다. 이 설계서가 데이터 뿐만 아니라 지시사항들도 조작될 수 있는, 프로그래밍 이론을 개괄적으로 제시했기에 ACE는 독창적인 것이었다. 이 때 처리가능한 것들을 수학적인 범주 밖으로 끌어내서 연산의 범위를 극대화했는데, 체스의 예가 대표적이다. 기계는 체스 게임을 할 수 있는가.


기계가 지능을 보이게끔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징후들(indications)이 존재한다. 이러한 견지에서 기계는 아마도 아주 훌륭한 체스 게임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튜링 (p82)


튜링은 뇌가 학습하는 것처럼 기계가 학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러한 생각들의 근간은 어렵기는 하나 대충 적으면, 사고나 지능에 관련 있는 뇌의 유일한 특징은 기술의 이산 상태 기계 수준 안에 속하는 것인데 이것은 학습 또는 자기-조직화 능력을 포함한다는 뜻이다. 


이미테이션 게임의 원문을 보자. 


이 게임의 참가자는 남자(A) 여자(B) 질문자(C) 이렇게 세 사람인데 질문자는 남자일 수도 있고 여자일 수도 있다. 질문자는 다른 두 사람과 분리된 다른 방 안에 있다. 이 게임의 목적은 질문자가 다른 두 사람 중 누가 남자이고 누가 여자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 게임에서 기계가 A의 역할을 대신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까?' 


즉 컴퓨터는 한 여자를 흉내내는 한 남자의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이 이미테이션 게임의 요점은 만일 한 기계가 이 조건들 하에서 인간으로부터 구분될 수 없다면 우리는 기계에 인간 지능이 있다고 믿어야만 한다. 튜링은 '지능을 흉내내기'가 성공적으로 지능을 흉내낼 수 있다면 그것을 '지능'으로 부르기를 희망했다.


(1) 중국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알고리듬이 존재한다는 것.

(2) 이 알고리즘은 방에 있는 기계가 아니라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에 의해 생각없이 작업하면서 실행된다는 것. 

그리고 나서 중국어는 번역된다. 그러나 번역자 어느 누구도 중국어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를 지지고 있지 않다는 역설이 발생한다. ... 브레즐리 파크의 상황은 묘하게도 중국어 방과 유사하다. 왜나하면 비밀 유지를 이유로 사람들은 그 목적을 전혀 모른 채 암호 해독 알고리즘을 수행하기 위해 훈련받았기 때문이다. .. 즉, 아무 생각 없는 계산으로부터 현명한 판단이 출현하는 바로 이 광경은 1941년경에 튜링에게 기계 지능의 그림으로 나아가도록 영감을 불어넣었던 것이다. (114)

 

이러한 튜링의 사상은 '모든 기계를 상대로 동시에 승리를 거두는 일은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요컨대, 그렇게 되면 주어진 어떤 기게보다도 더 똑똑한 사람들이 존재하게 될 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되면 다시 그 사람보다 더 똑똑한 다른 기계들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이며, 이런 식으로 계속 나아갈 것이다'에서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다. 우리는 이제 체스와 인간과의 게임, 튜링 테스트에서 기어코 인간의 두뇌를 누른 기계 유진이 알고리즘의 형태로 나타난 것을 튜링의 예언처럼 묵도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는 50년 내에 약 10의 9승의 기억용량을 지니고 있고 그래서 평균적인 질문자가 5분동안 질문을 한 후에 옳게 맞출 확률이 70%가 넘지 않을 만큼 이미테이션 게임을 잘 할 수 있는 컴퓨터를 프로그래밍 하는 것이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그의 예언은 적중해서, 작년에 이 게임은 끝났다. 


튜링은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에 대해, 믿기에는 너무 무의미해서 논의할 가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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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 2015-03-12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영화 먼저 봤어요. 깊은 마음의 고민은 책이 훨씬 더 낫겠지만, 그래도 감동 받은 영화였어요. 책으로 보니 참 반갑네요

CREBBP 2015-03-12 15:11   좋아요 0 | URL
저도 영화로 먼저 봤는데 영화의 내용과는 좀 먼 듯한 책이에요. 영화가 너무 좋아서 튜링에 급관심이 생겨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