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수업 천양희 : 첫 물음 작가수업 1
천양희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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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이 소설이나 시를 쓰려면 1년에 500파운드 의 돈과 자물쇠를 채울 수 있는 방 하나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천양희  시인은 여기서 방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나는 시인들의 '돈'도 궁금하다. 시인들은 무얼 먹고 사는걸까. 시 만으로는 충분히 밥벌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굳이 밝히지 않아도 대략 예측하고 있지만, 시인은 말한다. 진정한 시는 고통을 최소 조건으로 삼는다는 말을 기억한다고. 어쩌면 경제적 풍요 역시 시인의 권태에 보탬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건지도, 안락을 추구하지 않는 자세의 삶이 시인을 규정하는 지도 모를 일이다. 


제목이 작가수업이라서, 요즘 유행하고 있는 인문학 강의의 문학 관련 수업의 내용인줄 알았다. 시인 천양희님의 산문집이다. 산문집인데, 이런 저런 잡문으로 구성된 게 아니라 오로지 시를 쓴다는 일에 대해 순수하게 시만을 위해 바쳐진 산문집이다. 


천양희 시인은 1965년 <해야 솟아라>를 쓴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는데, 당시 등단 매체로 신춘문예와 <현대문학> 밖에 없는 상황에서 3회 추천이 완료되어야 비로서 시인의 명패를 달고 등단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초등학교 4학년때 동시를 쓰기 시작해서 첫시 등단작< 정원 한 때> <아침> <화음>을 통해 등단한 이후 오십년을 시인으로 살았지만 지금도 원고지를 대하면 '원고지 사각형의 모서리가 절벽처럼 느껴져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쓸 때가 있(p21)'다고 한다. 시인 말라르메가 시인으로 살아가는 것의 고통을 백지의 공포 라고 했다는데, 이 책의 화두는 이처럼 '시를 쓴다는 것의 고통'이라고 말해도 크게 과장되지 않는다. 소재의 고갈, 표현의 고갈, 리듬의 고갈, 영감의 고갈을 염전의 소금 엉킴 현상에 비유하며 언어로 보석을 만들어 내며 언어에 봉사하는 것이 시인의 일이라고 말한다. 


슈베르트는 악상이 떠오를 때를 대비해서 안경을 끼고 잠을 잤고, 모짜르트는 당구를 치면서, 바흐는 정장을 입고, 로시니는 술에 취해 각각 작곡을 했다고 하는데, 시인은 영감을 불러오고 말을 다듬어 보석을 만들기 위해 어떤 습관을 가지고 있을까. 시인 천양희는 글을 쓸 때 그만의 특별한 환경을 갖추어야 한다고 한다. 특히 시를 쓸 때는 바깥을 차단하기 위해 전화 코드도 뽑고 음악도 틀지 않고 커튼도 내리고 문을 닫는단다.  문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정신을 집중시켜 바깥 세상과 단절 시킨다.  또한 글쓰기 전에는 반드시 손을 씻고 눈을 감은 뒤 잠시 쉬 모음을 한다고도 한다.  글쓰기에 특별한 전수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찢어버리는 기본 방법이 있을 뿐이라는 말은, 너무나도 진부해서 책임없어 보이는 답으로 읽히지만, 시인의 글은 덧붙일 게 없을 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더이상 제거할 게 없을 때 완성된다는 말이 시라는 것의 본질과 그것을 쓰는 사람의 본질적 마음 가짐을 일깨워준다. 


특히 저자가 좋아하는 조선시대 이건창의 창작법은, 시대를 초월하여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어쩐 표준적인 방법으로 리드한다.  


평범한 사실의 나열은 글이 아니다. 특징적인 점을 포착해 집중적으로 묘사해야만 성공한 작품이다. 이목구비를 그릴 게 아니라 그 눈썹과 뺨의 세밀함을 살려 그 사람의 가장 특징적인 면모를 드러내라(p56)


이런 말들은 사실 수십페이지에 달하는 이론적인 글쓰기법보다도 많은 걸 압축적으로 알려준다. 시 뿐만 아니라 소설, 산문, 하다못해 읽었다는 기록으로 남기는 자기만의 도서 리뷰 조차도, 책을 뒤적거리면서 내용을 압축해서 기록하려는 노력으로 쓴 글보다는, 책은 접어두고 인상깊었던 느낌, 특징만을 간결하게 적는 편이 더 많이 스스로에게 남는다는 것을 경험을 떠올리면, 이 한마디만 잘 요리조리 굴려서 써먹어도 글쓰기 수업 몇날 몇일 쫓아다닌 것 못지 않을 것이다. 


현실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현실을 추구한다 - 파울 첼란(p69)

누구에게나 권태가 찾아오듯, 시인에게도 변화가 없어 답답한 때가 있고, 이럴 때는 계절이 변화하면 옷을 바꾸어 입듯 생각을 바꿔어야 한다고 한다. 한 시인이 고유한 표현 양식을 가지느 것과 표현이 변화하지 않는 것은 다른 것이며 이렇게 세상과 자아의 단단한 껍질을 깨는 것으로부터 시의 길도 자유롭게 열린다는 것이다. 


시란 명로함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모호함에서 시작한다(p76) 따라서 시를 읽을 때는 시구 하나를 따지듯 읽지 말고 스치듯 읽어야 하며 자꾸 읽다보면 무엇인가 느껴질 것이므로 그 때 그냥 느끼면 된다고 시를 읽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무엇이든 자꾸 보면 좋아하게 되듯, 많이 읽고 느끼고 이해하게 되면 시가 좋아지고 시에 대한 안목이 생긴다는 것이다. 최근, 국악이 좋아졌는데, 이유를 살펴보니 가끔 라디에오서 국악 방송을 자주 접할 기회가 있어서였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 쉽게 납득이 된다.  한편 시가 너무 명료하면 다의성을 잃게 되지만, 모호성과 난해함은 다른 것이라고 말하면서, 작가는 요즘 시들을 너무 비슷비슷해서 마치 성형수술한 얼굴 같다는 견해를 밝힌다. 


명료하고 뚜렷한 걸 선호하는 나로서는 선뜻 시에 다가가기 어렵지만, 시인을 이해하고 시인의 시에 대한 애정을 들여다본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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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아이들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9
나지브 마흐푸즈 지음, 배혜경 옮김 / 민음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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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을 때, 발가볏겨진 자신에 대한 수치심보다 더욱 저주스러운 건 먹고 살기 위해 일해야 하는 것이었을 게다. 이름도 비슷한 아드함이 대저택에서 허허벌판 사막 한가운데로 쫓겨냈을 때 가장 직면한 문제는 역시 먹고 사는 일이었다.  아담이 어긴 금기라는 것은 겨우, 지천으로 널린 사과 하나를 따서 깨어물은 것 뿐이었다. 아드함이 어긴 금기 역시 언젠가 알게될 유언장의 내용을 미리 훔쳐본 것 뿐이었다. 너무 심한 벌이다. 그깟 사과 한 입 베어물었기로서니, 그깟 유언장의 내용을 살짝 보았기로서니.. 금은 보화를 훔쳐낸 것도 아니고 살인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제 아버지의 집에서 아버지의 대를 이어야 할 책임과 의무는 무시된 채, 황폐한 사막으로 쫓겨난 것이다.  


"먹고 살려고 일하는 건 가장 지독한 저주야" (p92)



지금의 잣대로 그들의 금기는 신화속에서건 소설속에서건 대수롭지 않았지만, 댓가는 한탄스럽고 저주스럽다. 먹고 살려고 일한다는 것, 아드함의 말처럼, 그리고 아담이 느꼈을 것처럼, 그것은 전 인류를 황폐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환경을 파괴하게 된 저주다. 더욱이, 이제껏 룰루랄라 먹고 마시고 사랑받고 노래부르던 아늑하고 아름다운 정원을 등지고 혹독한 사막, 쌀 한톨 제스스로 나지 않는 바깥으로 쫓겨나는 일은 태어날 때부터 경쟁사회에 내몰려 있는 오늘날 현실의 우리들보다 더욱 감당하기 어려운 재앙이었을 거다. 


인간이고 짐승이고 태어난 이상 밥벌이의 수렁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 먹고 싸는 일. 그것이 먼저고 그 다음에 다른 본성들이, 다른 고상한 취미들이 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생계를 꾸리는 모든 사람들은 밥을 벌어 먹기 위해 힘겹게 아침 잠을 깬다. 빈부 차이와 지배계급과 피지배 계급의 발생, 어쩌면 필연적으로 보이는 계급적 불평등과 폭력과 착취의 기원이 오늘날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수용하기 어려운 인간의 작은 욕망에 그 원죄를 뒤집어 씌우는 신화에 의지해 왔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오늘날 기준으로 가장 무거운 죄인 살인, 카인과 아벨을 상징하는 두 형제의 엇갈린 운명과 최초의 살인 역시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후맘에 대한 까드라의 질투에서 비롯된다. 그러면 애초 왜 하느님을 대변하는 자발라위는 에두 쌍둥이 아드함의 형제중 까드리 대신 후맘만을 선택했었던 걸까. 불평등은 태고적 신화와 함께 창조되었다. 그 숱한 피의 혁명들이 결국은 불평등을 바꾸지 못하고 무너졌듯,  그것은 운명처럼 존재했다.  태초, 대저택 시절부터 불평등은 존재했다. 그것이 자발라위의 뜻이고 우리 인류가 믿어 온 신의 뜻이다. 선택받은 자와 선택받지 못한 자가 태초부터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창조신이건 메시아건 그 어떤 선구자도 대를 이어 계속될 수 있는 영원한 평화와 영원한 평등과 영원한 자유를 줄 수는 없다는 것이 믿고 의지해온 태고적 신화에 화석처럼 박혀져 있고,  핍박과 억압에 항거하여 만들어낸 피의 쟁취는 반세기가 지나기도 전해 전염병처럼 휩쓸고 간 망각에 의해 다시 또 그자리에 그렇게 똑같이 억압과 지배라는 층위 내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 소설에서 아브라함을 상징하는 아드함의 자손들, 최초의 살인자 카인을 상징하는 까드리의 후예들이 대저택 주위에 마을을 이루며 대를 이어 살아가는 모습속에서 되돌아본다. 


자발라위는 아드함에게 모든 재산을 내어주고 대저택에 칩거한다. 자발라위의 자손들은 저택을 중심으로 마을을 이룬다. 자발라위의 부동산을 관리하는 관재인을 중심으로, 우리동네 사람들을 관리하고 통치한다는 명목으로, 구역을 나눠 폭력과 수탈을 업으로 살아가는 수장들이 생겨난다. 수장들끼리 싸워 수장의 수장이 생기고 수장의 수장은 다시 관재인과 협력하여 마을 사람들에게서 약탈한 재물을 나누어 가지며, 우리동네는 마약과 가난과 폭력이 만성화되고, 다만 아드함의 전설은 신화가되어 대를 이어 전해질 뿐이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자발라위 마을, '우리마을'엔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전설 속의 선지자들이 , 참혹한 우리마을 백성들의 삶이 대를 잇는다.  그리고, 수장과 관재인의 핍박에서  구원을 이끄는 선지자들이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성서와 코란 속에 등장하는 선지자와 닮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모세, 예수, 모하메드의 혁명적 구원의 일대기를 그대로 알레고리화한 선지자들이 나타나고, 그들을 구원해낸다. 하지만,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그들은 다시 또 똑같은 핍박된 상태로 내몰린다. 


노벨상을 수상한 이집트의 작가 나지브 마흐프즈는 1952년 나세르 혁명 이후 '사회와 나 사이에 간극이 생'겼을 때, 즉, 혁명이 길을 잃고 탄압과 고문, 투옥 등 많은 모순과 오류의 그늘이 드리워졌을 때, 혁명지도자들에게 선지자의 길 아니면 폭력배의 길 둘 중에 어떤 길을 선택하고 싶은지 몯기 위해 이 글을 썼다고 한다. 선지자의 이야기가 예술적 뼈대를 제공했지만 명백하게 이 책은 사회비판적인 성격을 띈다. 역사는 언제나 똑같이 되풀이된다. 언제나 굶주리고 헐벗고 핍박받고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는, 고통받는 대다수 어리석은 민중이 존재하고, 또 거대한 저택과 하렘을 지키며 폭력으로 마을을 다스리며 흡혈귀처럼 마을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는 소수의 지배층이 존재한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선지자들의 이야기를 노래에 담아 이야기하고 후세에 전하면서 유일한 희망으로 또다시 그들을 구해줄 구세주를 기다린다. 그들의 바람대로 마을 사람들을 압제의 사슬에서 구원할 선지자들이 각기 전략으로 나타나지만, 유효기간은 한 세대 뿐이다. 정의 사회 구현에 따른 피의 댓가는 망각의 저주속에 쉽게 잊혀질 뿐이다. 


마흐푸즈가 묻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대답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신도 늙는다. 이집트 신화에서, 창조주 아툼은 계속해서 늙어가고 있으며, 그가 완전히 늙어 기력이 다하면 세상이 끝난다(얼마 전 실천문화사의 <세계신화여행>, 신화의 이집트편에서 읽은 내용) . 대저택의 높은 담장 속에서 자발라위 역시 늙어간다. 그의 저택 근처에서 마을을 이루고 그를 떠나지 않는 그의 후손들은 이제나 저제나 그가 모습을 나타낼까 그를 찾고 그를 기다린다. 당신은 어디에 계신가요? 어떻게 지내시나요? 더는 존재하지 않으신 것처럼 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세요? 당신의 뜻을 저버린 자들이 당신의 집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습니다. 비록 이집트가 이슬람 국가이긴 하나, 수천년을 이어온 신화적 가치관이 소설에 투영된 것이 아닐까 했던 것처럼, 하느님으로 상징되는 자발라위는 소설 속에서 계속 늙어가며,  현대 과학의 상징으로 대표되는 아라파의 침입과 오랜 심복의 살해에 대한 충격으로 자발라위 역시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자리에 올라 그가 되어야 해. 아라파는 자발라위의 죽음 이후, 스스로 마법을 써서 자발라위가 되고, 자발라위의 언약을 지켜, 우리동네 사람들을 해방시키고자 했지만, 자발라위의 살인 혐의를 알아차린 관재인에게 마법의 비밀을 제공하는 댓가로, 결국 그들과 한패가 되어, 치욕스럽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사치와 안락함을 누리다가 도망치지만, 결국 수장들에게 쫓겨 죽음을 면치 못한다. 그러나 아라파가 남긴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그가 끝까지 지키고 간직하려 했던 마법의 레서피들이다. 마법의 레시피는 이제 우리동네 사람들의 마지막 희망이다.  이제 이 마법의 레서피, 과학은 우리동네 사람들의 종교이자 신화가 되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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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사회
알렉스 벤틀리 외 지음, 전제아 옮김 / 교보문고(단행본)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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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남들 먹는 것을 먹는다. 우리는 무엇을 입을까? 남들이 입는 것을 입는다. 우리는 무엇을 살까. 남들이 사는 것을 따라 산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간다. 서로를 모방한다. 나는 달라 나는 개성이 강해. 나는 누구도 따라하지 않아. 그런데 그것도 또 맞는 말이다. 현대사회는 소비와 행동에 대한 너무나 많은 선택들을 제공하기에 수 많은 선택지 사이에서 나도 모르게 선택하게 되는 수많은 것을 자신의 선택 취향에서 누락시켜 버리고, 누군가를 따라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망각한다. 


또, 우리는 어떤 말을 할까. 남들이 하는 말을 한다. 우리는 그게 맞춤법에 맞다고 해서 남들이 모르는 구어를 쓰지 않고, 매일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신조어들을 욕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따라한다. 내 아이에게만은 특별한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 그래서 좋은 이름을 고르지만 사실은 그것도 다른 누군가의 이름 중 시대와 기대에 가장 부합하는 다른 사람의 이름을 따라 짓는 거다. 개성 있는 사람들이 개성 있게 하는 것은 그 일상 중 매우 일부분일 뿐이다. 개성있게 옷을 입는 사람은 옷은 개성있게 입지만, 소비패턴과는 구별되는 언어의 사용이나 표정 몸짓 같은 것은 나도 모르게 남을 따라한다. 언어는 무의식적 모방의 한 부분이다. 


모방은 사람들이 항상 해온 일로, 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효과적이다.(p164). 200만년전 선조들이 만든 석기에도 분명한 양식이 존재했고, 7천년 전 중앙 유럽의 도공들도 도자기 디자인을 서로 베꼈다. 오스카 와일드는 "대다수 사람들의 삶이란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인용문이다"라고 말했다(p164). 모방은 안전하기도 하다. 


동물들도 모방을 한다. 물고기떼나 새떼에 어떤 민주적으로 선출하거나 혹은 힘과 지혜로 밀어붙인 리더가 있어서 항상 나를 따르라 하고 팀을 이끌어 날고 헤엄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서로의 상호작용에 의해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몰려다니는 것처럼. 사람들도 서로를 따라함으서 유리한 게 있다.  평균 지능의 사람들의집단 지성이 특출난 개인의 지성보다 나은 실험이 있다(p74) . 그것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기능을 가졌기 때문에 저마다 유용한 한가지씩을 합치면 특출한 개인보다 나아질 수 있다는 거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 생각하는데, 다양한 사람들의 평균치가 높아지지만, 잘못된 정보가 파급효과를 일으킬 수가 있다.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그저 모방하기만 하면, 집단 전체의 행동은 갈피를 잃는다. 예를 들어 비만, 흡연자, 애주가에게 그들의 습관에 대한 사회학습은 효과가 없다. 


모방에 의한 확산 모형은, 마케팅과 선거전에서는 꼭 필요한 전략이다. 특히 사회적 폭포 현상은 책에 정확하게 정의되어 있지는 않지만, 폭포처럼 쏟아지듯 한꺼번에 어떤 현상이나 유행이 급속도로 파급력을 가지고 전개되는 현상을 말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경우 OO녀나 아직도 나로서는 구경도 못산 허니버터칩 쿠키, 적은 개수의 상영관에서 개봉했다가 입소문을 타고 서서히 인기를 끌다가 갑자기 몇백만을 넘어버리는 영화들, 공중파를 앞지를 케이블 티브의 삼시세끼 같은 걸 들 수 있겠다.  이런 것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가지 모형들을 제시하는데, 사람이 자기 의견을 바꾸기 위해 주변 사람들의 압력이 어느 정도 필요한지를 나타내는 한계치라는 개념을 소개하고, 무엇이 한 사회를 폭포가 일어날 상태가 되게 하는지에 대한 연구들도 소개한다. 예측 불가능성에 대한 진화론적, 사회학적 설명이 결국 가장 납득가능하다는 아이러니에 도달한다.


스마트폰의 앱이 깔리는 과정을 보면, 앱이 희소할 때는 개별적으로 발견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앱의 인기가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갑자기 사회 학습의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되는데, 연구에 의하면 이러한 티핑포인트가 하루 55회라고 한다.사회적 수용현상의 또 다른 예로, 유행어를 생각해볼 수 있다. 유행어는 갑자기 생겨났다 사라지기도 하고, 오랜 세대에 걸쳐 살아남아 언어로서 기능하기도 한다. 영어로 된 책이라 LMAO(Laugh my ass off),  OMG 같은 말에서부터 16세기 프랜시스 베이컨이 한 말인지도 모르고 어린 친구들에게 유행한 Scientia potentia est(아는 것이 힘이다)도 있다. 새로운 사실은 학술 전문 용어도 이런 방식으로 퍼져서 유행하는 히스테리아, 마르크스주의자, 적절함 같은 단어는 사라지고, 미묘함(nuanced),경험에 근거한( evidence baased) 탄력성(resilience) 강건한(robust)등의 어휘가 1990년대 이후로 계속 인기를 끌고 있다.(p94).  



인류학자, 고고학자, 마케팅 관련 사상가 세사람이 만든 이 책은 모방이라는 주제로, 인간의 사회에 나타나는 사회적 확산 현상을 인류학, 진화학, 행동학 등의 많은 분야의 성취들을 나열하며 설명한다. 많은 내용을 다루지만, 지나치게 많은 이론들을 늘어놓는 수준에서 다루고 있어 지식이 산만하게 널려있는 듯한 느낌을 받고, 무엇을 주장하기 위해 이 책을 썼는지가 조금 모호했다.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내용은 앞선 책들에서 많이 언급한 사례들이 많고, 쉽게 쓴 학술논문의 선행 연구 리뷰 같은 느낌이, 보통 한권의 책에서 받는 일관성 있는 주제의식이나 감동을 이끌어내지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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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있다'라는 동사가 이토록 잔인한 말이 될 줄 누가 알았으랴.


텔레비전을 보는 내내 나는 가만있었다. 가만있지 않겠다고, 책임자들을 가만둘 수 없다고 다짐하는 성난 목소리들을 들으면서도 나는 그 자리에 붙박인 듯 가만있었다. 따져보니 이 땅에서 성인으로 산 지 삼십 년이 다 되었다. 가만두어서는 안 될 대상에 내가 포함되지 않을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가만있기로 했다. 마치 물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명령에 따르기라도 하듯 그렇게 가만가만 가라앉기로 했다.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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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의 맛 - 교정의 숙수가 알뜰살뜰 차려 낸 우리말 움직씨 밥상 한국어 품사 교양서 시리즈 1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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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매혹적인 우리말의 움직씨라니, 20년 묵묵히 교정에 정열을 바친 인생의 방점이 만들어낸 고혹적인 우리말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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