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신간에 카를로 로벨리의 신간이 떠서, 찾아보니 오래전에 읽었던 <모든 순간의 물리학>의 저자가 쓴 책이다. 작년에는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가 나와서, 슬슬 읽어볼까 생각중이었는데 빛의 속도로 또 새책이 나오는구나. 그렇지만 역설적이게도, 새 책의 제목은 반대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다. 세 개의 책 제목이 물리학 책 제목 치고는 시적이어서, 원제를 찾아보니 까막눈이다. 영문 제목이 원제에 충실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책 표지를 보고 영문 제목과 대충 대조를 해보면 <모든 순간의 물리학>은 Seven Brief Lessons on Physics 이고, <보이는 것은 실제가 아니다>와 <첫번째 과학자 아낙시만드로스>는 각각 The reality is not what it seems 와 The First Scientist: Anaximander and His Legacy 으로 한국제목 모두 원제에 충실해 보인다. 새 책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The order of time으로 모두 영문 오디오북 까지 검색된다. (Audible을 구독하고 싶지만, 듣는게 더뎌 별 메리트가 없을 듯). 영문 오디오북의 알라딘 판매 가격은 3만원대로 아마존 오더블 서비스를 1달에 15불 정도에 이용하면서 세 권을 들을 수 있는 것과 비교하면 여전히 비싸지만, 소장한다는 의미가 있을 듯하다. 이북을 이용하면서 기계음이라도 읽어주는 기능에 매료되어 영어원작의 번역본을 읽을 때 유튜브 찾아서 가끔 같이 듣곤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별도로 시간을 내서 정리를 해봐야겠다.
(아래 <모든 순간의 물리학> 리뷰는 재업임에도, 서재 인기글에 떠서, 무척 찔리는 마음에, 오디오북에 대한 오전 중 경험을 토대로 내용을 약간 추가한다.) 영문판 오디오북을 구매하면 새 책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데이비드 컴버배치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 오더블에서는 20불 가까이 되지만 구글 플레이에서는 1만4천원 선으로 나름 합리적 가격인 것 같다. 미리듣기 해봤는데, 데이비드 컴버배치의 절제있고 세련된 오만하고 기품있는 영국식 발음을 저음으로 깔고 시를 읽듯 나직하게 하지만 또박또박 읽어준다. 이 분의 책 자체가 물리학임에도 문장이 시적이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아 정말 탁월한 선택이라는 생각이다. 한글 책 읽으면서 영어 오디오북을 들으면 두 언어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모호성이 조금은 해소되는 느낌이고, 영어 공부도 된다.
아무튼 카를로 로베르의 책이 처음 국내에 소개되었을 때 좀 띄어주는 분위기여서 이 책을 읽기는 했는데 짧았던 것만 기억나고, 도통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출간 시기에 맞춰 내 리뷰를 찾아보니 2016년 초에 써 놓은 게 있다. 리뷰를 읽으면 대략 내용과 그 때 들었던 생각들이 기억이 나는 편인데... 별로 그렇지 않고 매우 새롭다. 새롭고 신기한 기억력이여. 어쨌든 대략 어떤 식으로 글을 쓰는 저자인지는 다시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재업한다.
(2016년 모든 순간의 물리학 리뷰 재업)
찰스 다윈이 종이 진화한다는 엄청난 아이디어를 최초로 적었을 때, '내가 생각하기에는...'으로 서문을 시작했다. 마이클 패러데이가 전기장이라는 혁명적 아이디어를 소개할 때에도 주저하는 말투를 썼다. 천재 아인슈타인이 광자를 증명했을 때도 '내가 보기에는' 으로 말문을 열었다.
"내가 보기에는 빛 에너지가 공간 속에 비연속적으로 분포한다고 가정할 경우, 형광물질이나 음극선 생산, 상자에서 나오는 전자기 방사선을 비롯해 빛의 방출 및 변화가 관련된 유사 현상들을 함께 관찰해야 이해하기가 더 용이할 것 같다. 여기서 나는 빛 에너지가 공간 내에 연속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간 속의 특정한 지점들에 위치하고 이동은 하지만 서로 분리되지 않으며 각각 하나의 개체로서 생산되고 흡수되는 일정한 수의 '에너지 양자'로 이루어진다는 가설을 염두에 두었다. (p31, 재인용)"
'이 간단명료한 몇 줄의 설명은 양자이론의 진정한 탄생의 서막을 알리는 것(p31)' 이다. 1900년 막스 플랑크가 처음 상상하고 측정했던 양자 역학의 핵심은 전기장의 에너지가 양자(quantum)과 같은 덩어리 형태로 분포되어 있다는 것이었고, 빛이 무리를 이루어 입자들이 모여 만들어진다는 것을 증명한 사람이 아인슈타인이었다. 1910년과 20년대를 지나면서 닐스 보어는 양자도약(quantum leap) 이론을 알아내어 발전시켰고, 하이젠베르크는 모든 물리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양자역학 기본 방정식을 쓰기 시작했다.
아인슈타인의 손을 떠난 양자 역학은 최초의 이론에서 너무 많이 벗어나 있었다. 이 과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을 설득하지 못했다. 간담회와 서신, 언론 기사 등을 통한 수년간의 대화 끝에 아인슈타인은 이 이론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 엄청난 기여를 했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몇 가지는 더 합리적인 설명이 필요하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고, 그 상태로 한 세기가 지나도록 같은 지점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그렇게 이론이 확신이 되지 못하고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도 양자역학 방정식은 일상에서 매우 유용하게 널리 사용되어 왔다. 이 이론의 핵심은 현실은 상호작용으로서만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오히려 이론에 대한 의문은 계속해서 증폭되고 있다. 현실의 본질에 깊이 침투한 이론인지, 혹은 우연히 맞아 떨어진 이론인지, 아직 완성하지 못한 퍼즐의 한조각인지, 혹은 우리가 아직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심오한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신호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것이 물리학계 지식의 중심에 놓여있는 역설적 상황이다. 20세기에 남겨진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은 서로 모순된다. 그럼에도 두 학문은 각 영역에서 동시에 수많은 학문의 바탕이 되어 왔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우주학과 천체물리학, 중력파와 블랙홀 연구를, 양자역학은 원자물리학과 핵물리학, 기초입자물리학, 응집물질물리학을 비롯한 수많은 학문의 바탕이 되었다. 한쪽에서는 모든 것이 연속적인 곡선 공간에서 설명되고, 다른쪽에서는 에너지 양자들이 불연속적으로 점프하는 평평한 공간에서 설명된다. 문제는 모순되는 이 두 이론이 모두 현실에서 놀라울 정도로 잘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이 두 이론의 모순을 해결해 보려는 연구 분야를 양자중력이라고 하는데, 이 학문의 목적은 세상에 대한 일관된 관점의 이론을 찾는 것이다. 이렇게, 모순된 두 개의 이론을 통합한 경우는 이 전에도 많았다. 뉴턴은 갈릴레오의 포물선과 케플러의 타원을 조합해 만유인력을 찾아냈고, 맥스웰은 전기이론과 자기 이론을 조합해 전자기 방정식을 찾았고, 아인슈타인은 전자기와 역학 사이의 심각한 모순을 해결하려다가 상대성 이론을 발견했다. 이탈리아의 과학자이며 이 책의 저자인 카를로 로벨라가 양자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을 결합하여 블랙홀의 본질을 새롭게 규명한 이론이 루프양자중력이다.
루프양자중력이론의 핵심은 공간은 연속적이지 않으며 무한하게 나누어지지도 않지만 아주 미세한 크기의 공간원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공간 양자들은 그 자체가 공간이기 때문에 공간 속에 있지 않으며 공간은 각각의 양자들을 통합하여 만들어진다. 루프 방정식은 빅뱅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주가 극도로 압축된 상황에 양자 이론을 적용하면 대폭발이 일어나며, 때문에 이 세상은 현재 이전의 우주에서 만들어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과거의 우주가 그 자체의 무게 때문에 압축돼 아주 작은 공간 속에 짓눌리다가 결국 재도약을 한 후 다시 확장하기 시작해, 현재 우리 주위에서 관찰되는 계숙 확장하는 우주가 된 것이라는 것인데, 이 재도약의 순간 우주가 호두껍질만한 공간 속에 압축되어 있을 때 공간과 시간이 모두 사라지고 세상이 수많은 가능성의 구름 속에 녹아 있는 양자중력의 왕국이 펼쳐지며, 양자 중력 방정식들이 설득력을 얻는다. 즉 현재의 우주는 그보다 한 단계 전의 도약에서, 공간도 없고 시간도 없는 중간단계를 통과하면서 탄생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설명한다.
열은 언제나 뜨거운 것에서 차가운 것으로 이동한다. 그러므로 과거와 미래의 차이는 열에서 발생한다. 볼츠만은 그 이유를 확률적으로 설명하는데, 뜨거운 물질의 원자가 빠른 속도로 움직이다가 차가운 원자에 부딪히면서 약간의 에너지를 전달할 가능성이 많고, 반대로 차가운 원자가 뜨거운 원자에게 에너지를 남겨줄 가능성은 적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볼츠만은 이 가능성을 열역학의 배경을 설명하려 했으나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1906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시간적 현상은 세상의 미세한 상호작용들이 하나의 체계 속에서 무수한 변수들의 평균을 통해서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공간이 하나 하나 떨어져있고, 시간이 존재하지 않으며 사물이 어떤 공간에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것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과학자들도 어려워하는 것들을 독자 입장에서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 복잡한 물리학 법칙 속에 있는 핵심 아이디어를 일반 독자들에게 해석하고 설명하는 방식은 일반 독자들의 평범한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므로, 대략 무슨 말인지에 알 것도 같다. 인간의 지식이 성장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존재와 우주의 극히 일부분을 알게 되었지만, 이러한 우주는 우리 사고의 공간 속에서만 존재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아마도 새로운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