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일즈 보르코시건 : 마일즈의 유혹 마일즈 보르코시건 시리즈 5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 지음, 김창규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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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즈가 경험하는 세타간다 제국은 30 세기 미래의 기술이 만들어 낼 가상의 낯선 인류와 계급과 문화 제도, 완전히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한다. 원래 제목이 《세타간다》인데 이런 식의 고유명사가 독자들의 관심을 쉽게 끌지 못할 것을 우려했던 것인지 한국어판에서 《마일즈의 유혹》으로 바뀌었지만, 그래서 이러한 제목의 변경은 전체 내용을 편협하게 축소시키는 느낌이다. 이번 편에서 뿐만 아니라 어느 편에서건 남성 호르몬이 최대치에 오른 나이의 마일즈는 항상 매력적인 여성들에게서 유혹을 받고, 그 때문에 문제를 자초하기에, 이번 편이라고 해서 여성 문제에 관해 그리 특별하다고 보여지지도 않는다. 


시리즈의 전편들과 비교할 때 《마일즈의 유혹》의 다른 점은 전투씬이 없다는 거다. 전편에서 계속해서 언급했던 세타간다 제국에 외교 사절단으로 방문한 마일즈는 게놈을 통해 유전자의 선택 교배에 따라서만 후세가 결정되는 이 사회의 문화와 예절을 배우는 중이다. 사실 1편에서 이미 다루었지만, 항성계를 연결하는 웜홀 문제로 수백년(600년이었던 걸로 기억) 간 나홀로 항성계에서 고립 시대를 겪는 동안 보수적이고 남녀 차별적인 중세풍의 황제정과 보루라는 귀족 사회가 지배하는 문화를 갖는 바라야 행성도 21세기의 눈으로 볼 때 굉장히 이질적이다. 그러는 동안 전 우주에 걸쳐 가장 많은 항성계와 도약 웜홀의 지배권을 가진 세타 연합의 지배자는 독자인 21세기 지구인의 시각으로 볼 때 뿐만 아니라 바라야인의 시선에서도 신비롭고 이질적이면서 이해불가능하고 괴상한 점 투성이다. 


전투신이 빠진 이번 편에서 새로운 전투는 보이지 않는 어떤 계략과 마일즈와의 두뇌 게임이다.여기에 세타간다의 유전자 풀을 지배하는 은둔적 호트 여성과 우연히 엮인다. 우주선에 침입한 괴한을 처치하고 그가 가지고 있던 막대 모양의 정체 모를 물건을 손에 넣었는데 그게 호트족의 후세 유전자 정보를 보관하는 정보를 여는 유일한 열쇠다. 어쨌든 이 월등한 유전자 조작 인류인 호트 여성은 그들을 보자마자 저항의 여지를 주지 않고 열병처럼 확 빠져들게 하는 매력을 가졌는데 그에 따른 부작용 때문인지 혹은 다른 이유 때문인지 그들은 철저하게 폐쇄되어 있으며 자신들 외에는 절대로 외부에 자신을 노출하지 않는다. 하지만 열쇠를 가진 마일즈를 찾은 호트 리안은 열쇠를 돌려받기 위해 구형의 떠다니는 거품에 은폐한 자신의 모습을 마일즈에게 드러내고, 가뜩이나 남성 호르몬이 콸콸 쏟아지는 왕성한 나이의 마일즈는  이 거부할 수 없이 완벽한 아름다움을 유전적으로 구현한 여성에게 빠져버리고 만다. 


제국보안사에 근무하게 된 마일즈는 팔촌 형 이반과 함깨 세타간다의 황태후 장례식에 사절단의 자격으로 왔지만 신체적 약점에서 비롯된 뿌리깊은 열등감과 뛰어난 두뇌로 어떻게 해서든 인정욕구에 시달린다. 하지만 이번 편에서 그가 관여하게 된 사건은 그 목적이 스스로도 이해하기 어려울만큼 불분명하다. 이반의 훤칠한 키와 수려한 용모의 이반은 마일즈와 함께라면 더욱 두드러지지만 야망이 없고 상사에게 주목받고 싶지 않은 그가 마일즈와 한팀이 되는 것은 여러가지 위험한 일에 말려들고 협조하게 됨을 의미한다. 바보 이반과 키작은 마일즈를 보고 있노라면, 왕좌의 게임이 자꾸 생각난다. 누이를 사랑한 제이미 라니스터가 이반처럼 물러터지지지도 않고 마일저가 티리온처럼 노련하고 전략적인 인간인 건 아니지만(이 점은 아직 그가 청소년기라서라고 이해) 두 사람의 케미가 (원작이 쓰여진 시점에서 볼 때 크게 서로 영향을 받았을 것 같지는 않지만) 돋보인다.


괴한에게 빼앗은 물건이 세타간다 전체의 운명을 결정하는 주요한 물건이며 이것은 죽은 황태후가 정체된 세타간다의 부흥을 위해 계획한 거대한 작전의 음모임을 알고도 이를 일리안이나 상사에게 즉각 보고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과 이반 더 나아가서는, 일이 잘못되는 경우 애당초 괴한을 보냈던 목적인 상대쪽의 계략에 빠져 유전자 열쇠를 훔친 스파이로 침략의 빌미를 주게 되고 결국 바라야 행성 자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매우 민감하고 정치적인 사건임에도 자신의 힘으로 직접 처리해야 한다는 직감에 능수능란한 거짓말과 밥먹듯 하며 호투 귀족, 겜 귀족, 상사 등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직접 사건의 본질을 캐기 시작한다 


본격 탐정 쟝르로 보기엔 개연성이 살짝 갸우뚱하지만, 어쨌든 이야기의 흐름은 광대한 우주의 절반을 지배하고 있는 세타간다에서 바라야 제국을 희샹양 삼아 벌이는 권력 투쟁의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탐정 소설로 볼 수 있다. 


결국 이 호트귀족의 열쇠 도난 사건을 이해하려면 세타간다의 독특한 지배체계와 문화, 관습, 제도를 이해해야만 가능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상식적으로는 벌어질 수 없는 사건이다. 그 때문에 이 세계관을 묘사하는 텍스트가 많아져 다른 편에 비해 속도와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우주를 지배하고 있는 가장 강력한 행성의 두뇌가 결국은 유전자 조작 기술을 이용한 신인류로의 변화, 그에 따른 21세기에는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확고한 승계 방식의 카스트 계급 형성, 전통적 부부 및 가족 제도의 소멸과 새로운 대체 가족의 대두에서 비롯된 가능성있는 미래임에 동의하게 된다. 


여러 항성계의 많은 세타 행성들을 지배하는 자는 호트 귀족의 황제로 황제와 황태후 호트귀족과 그 배우자의 역할은 상호 보완적이지만 독립작이기도 하다. 호트와 호트 부인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부부라고 생각하는 수준의 친밀감과 사랑을 기반으로 형성된 가족이 아니라 유전자를 공유하는 공식적인 배우자일 뿐이다. 그 이유는 세타라는 사회 자체가 유전자 조작을 통해 번성허고 유지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생물학적으로 유전자가 섞이는 게 아니라 호트의 메인 게놈 속에 선택적으로 유전자를 자르기와 붙여넣기로 후세를 선택 배양하는 것이다. 이 일의 책임과 권한이 황태후에게 있고 황제는 그것을 손대지 못한다.



호트 계급 여성들은 완벽하게 은둔하고 있어서 아무도 그들을 본 사람이 없다. 그들이 공적인 행사에 나올 깨는 둥둥 떠다니는 의자에 타고 안이 들여다 보이지 않는 거품 속에 모습을 감추고 다닌다. 아랍의 부르카를 연상할 수 있는데, 그들과 달리 이러한 은둔이 이 사회에서는 특별한 계급으로서의 특권이다. 공적 파티에서조차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들을 무시하는 것이 그들의 사회에서는 예의에 해당한다. 


먼 미래에는 현재에 비윤리적이라고 금지한 많은 것들이 여러 우회로와 느슨한 구멍을 통해 빠져 나가고 결국 지금은 질병예방과 장애의 표식을 찾는데 집중하고 있는 인간 유전자 조합 기술이 어떤 식으로든 큰 전기를 맞게 될 사건이 무한한 미래의 역사에 기다리지 않을 보장이 있을까. 소름끼치는 대목은 바로 이러한 유전자 기술에 의한 번식 방법이 ‘난수적인 자연 진화의 낭비를 피하고 그 대신 이성의 효율성을 추가’한다고 믿는 호트 귀족들의 가치관이다. 수백만년 진화의 결과를 크리스피 유전자 가위로 쌍둥쌍둥 자르고 붙이고 이어서 원하는 외모, 성격, 두뇌를 가진 인간을 창조해 내고 그 게놈은 바로 호트 귀족의 여성인 황태후가 독점한다는 게 이 사회에서 아주 소수의 호트족이 스스로를 가치있게 만들고 전우주를 지배하는 원리다. 그런데 어느날 황태후는 이러한 지배 질서의 전복을 꾀하고 일을 다 끝내기도 전에 죽은 것이다. 



세타간다와 바라야는 마치 일본과 우리나라처럼 침략과 약탈의 뿌리깊은 역사를 가진 탓에 심적으로는 엉숙이지만 약소국과 대형제국이라는 틀 때문에 그럭저럭 평화를 유지하고 교류하늠 상태다. 엄청나게 큰 규모로 한달여간 지속되는 장례식에서 마일즈가 경험하는 문화는 이질적이지만 호트 귀족은 뛰어난 마일즈가 과외 교습을 받아도 때때로 실수할만쿰 복잡하고 흥미롭다. 유전자 조작으로 결정된 소수의 지배자 계급인 그들은 하류 계급 역시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조작하고 조절한다. 자연 임신과 자연 분만으로 태어난 인간을 '생물'로 지칭하며 우리가 동물(?)한테 그러듯 생물취급한다. 우리가 생물인건 맞는데, 막상 선택된 게놈에 인공적으로 편입된 유전자들과의 결합으로 태어는 그들이 인간을 그렇게 부르는 건 뭔가 억울하다. 


하지만 그런 유전자조작 여인들의 완벽한 미는 마치 일생에 한 번 누구나 걸리는 질병처럼 치명적이다. 이상한 일에 휘말려 탐정행세를 하게 된 마일즈의 이번 편의 쓸데없는 모험과 호기심은 자신도 그 이유를 잘 설명하지 못한다. 다만 괴한의 습격때부터 상부에 보고했더라면 어쩌면 보기 좋게 모반자의 음모에 말려들어 세타간다와 바라야 사이에 전쟁 촉발의 빌미를 주었을 것이라는 마일즈의 확신 밖에. 결과적으로는 마일즈가 또 한번 바라야 제국을 구하는 일이 되었고, 과정적으로는 열등감과 인정욕구 혹은 공을 세워 승진하려는 속물적 욕구 혹은 치명적 유혹 때문인 듯한데.. 이렇게 과감하게 일을 끌고 나가면서도 심리적으로는 갈팡질팡하는 마일즈는 여전히 귀엽고 매력적인 작은 악마적 캐릭터다. 이제 스무살. 앞으로의 행보도 기대된다.



먼 미래에 어떤 과학이 현재의 숱한 한계들을 극복했을 때 도래할 수 전혀 새로운 사회를 제시했기에 나로서는 그 어떤 전투적 소설보다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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