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미국의 아주 작은 도시에서 잠시 살 기회가 있었었는데, 그곳은 집집마다 지하실이 있고, 그 지하실에는 여러가지 잡동사니와 세탁기/건조기를 두고 사용한다. 그래서 저녁 산책을 하다보면, 한국에서 밥냄새를 맡듯 열어둔 지하실 창문 위로, 혹은 후드를 통과해 퍼지는 여기 저기서 빨래 돌리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한 마디로 내가 기억하는 미국의 냄새는 대표적인 세재 냄새, 대표적인 섬유 유연제 냄새다. 한국에서 한 때 유해하다는 소동이 있던 다*니 냄새이기도 하다. 이 냄새가 문제가 되면서 우연히 인터넷에서, 우리나라가 개도국이었던 시절 한 때에는 부자집 애들한테 나는 냄새였다는 얘기를 읽을 수 있었다. 내 기억에도 어릴 때는 훨씬 더 코가 예민했고, 이런 저런 냄새들을 잘 맡았다. 하지만 그 때에 맡은 갖가지 냄새들은 삶의 계급을 분리하는 것들이라기 보다는 그저 다양한 이런 저런 삶의 냄새였다고 할 수 있다. 


어릴 때, 학교에 들어가기도 아주 한참 전의 어릴 때 냄새에 대한 기억이 하나 있다. 학교 선생님이었던 엄마를 따라 버스를 타고 아주 한참동안 어떤 시골에 있는 어떤 집에 갔는데, 집에서 냄새가 났다. 그 냄새는 흔히 시골에서 맡을 수 있는 외양간 냄새로 아직도 기억난다. 하지만 나는 처음 맡아보는 냄새였고, 그런 말을 하는 게 실례라는 사실을 몰랐을테고, 그래서 엄마에게 냄새난다고 말했는데, 그 때 엄마는 무섭게 눈을 호라리며 절대 그런 말 주인 앞에서 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 때의 기억이 엄마가 무섭게 화를 내서였는지 냄새가 강해서였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냄새라는 게 어떤 사회적 혹은 물질적 위치를 살그머니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눈치채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비슷한 기억이 남편에게도 있었다. 어린 시절을 잘 기억 못하는 그는, 초딩 1학년 때 짝꿍 여자애에게서 고등어 냄새가 나서 선생님에게 짝을 바꿔달라고 했다가 호되게 혼나고, 선생에게도 내내 미움을 받았다고 한다(내가 보기엔 그래도 쌌지). 가난의 냄새와 부자의 냄새로 무 자르듯 딱 잘라서 구분할 수는 없지만, 냄새들은 삶의 패턴을 반영한다. 왜냐하면 



" 코는 아주 예민해서 공기 중에 떠도는 냄새들을 금방 알아차리지.

300억 개의 공기 분자 속에 냄새 분자가 한 개만 있어도 냄새를 맡을 수 있어."






인도 파키스탄 계열의 인종이 많은 런던에 있을 때 일인데, 누가 왜 그런 말을 했고, 어떤 경위로 그런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카레 냄새가 난다고 했다. 어쩌면 TV 드라마에서였는지도 모르겠는데. 그들은 늘 카레 냄새를 달고 다닌다고 했다. 어딜가든 어떻게 입든, 무엇을 하든, 항상 카레 냄새가 따라다닌다는 거였다. 나는 움찔했다. 내게서 김치 냄새가 나지는 않을까. 사실 김치 담그기 힘들어서 잘 못먹기는 했지만 식생활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몸에서 다른 냄새가 날 거고, 그들이 느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미치기도 했다. 


단편 소설들을 읽고 토론하는 영어 클래스를 담당하던 교수가 한 학기 동안 육아 휴직을 내는 바람에 캐나다인 여성이 대신 한 학기를 맡았었는데, 이 사람은 영어를 가르치러 온 건지, 아니면 혼자 있기 심심하고 수다 떨 사람도 없어서 그냥 수다 떨러 온 건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자기 얘기만 하다 가는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이 했던 냄새에 대한 얘기 역시 한참동안 기억을 떠나지 않았다. 자기 옆사람(역시 외국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 로 시작해서. 오 누구나 다 자기 특유의 냄새가 있지 않나? 하더니.. 집집마다 특유의 냄새가 있다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낯선 곳에 들어가면 늘 특유의 냄새가 나고, 특히 집집마다 들어갈 때 특유한 냄새들이 있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고나 할까. 그 선생 왈, 자기 집에서 나는 그 특유의 냄새를 사람들이 다 몸에다 묻혀서 나오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서는 그 집안의 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그 날 집에 들어가서 문을 여니 과연 집에서 우리집 냄새가 났다. 유쾌하지도 불쾌하지도 않지만, 우리집 냄새다. 저 냄새가 나에게서도 나겠다는 거지? 내 남편에게서도, 내 자식에게서도? 그것은 오래된 집 가구들과 옷들과, 빨래 세제의 향들과 요리할 때 날아다니다가 어딘가 구석에 붙어 숨어 있는 각종 분자들과 몸에서 나온 여러가지 분자들의 유니크한 배합일 터다. 내가 그녀에게 불쾌했던 점은, 그가 서양백인으로서 한국에서 한국인과 결혼하여 살면서 느꼈을 그 이질적인 냄새들이다. 그녀가 시작한 옆자리 여성의 냄새는 물론 서양 백인의 냄새일 가능성이 높지만, 그토록 냄새에 예민한 그녀가 한국서 가장 많이 부딪혔을 냄새들은 단연코 한국인과 한국 공간에서 나는 냄새일 것이다. 그때 느꼈을지도 모를 어떤 감정, 혹은 어떤 감각. 이것이 나는 불쾌하다. 


그래서 나는 송강호가 마지막에 한 그 순간적인 행동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만일 어떤 관람객이 자신이 반지하에 살지 않아서 지하철에서 나는 냄새가 나지 않을 거라고 안심했다면, 그는 반지하에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이 냄새나지 않는다고 믿는 그 1%의 최상위 계급일 듯하다. 우리 모두는 고유의 냄새를 가진다. 그것을 어렴풋한 다양성으로 이해했던 나는, 엄마에게 된통 혼나고 냄새에 대한 감각을 함부로 표현하면 안된다는 커다란 교훈을 배웠지만, 여전히 나는 그 다양성을 믿고 싶다. 외국에 있던 그 1년동안, 한 때 개도국 시절 미국의 냄새, 부자의 냄새라 알려진 그 다*니 향에 진저리를 치며, 향 없는 세제를 찾아서 코스코까지 다녔던 나는 그 인위적 부의 위장의 냄새 역시 마찬가지로 싫다. 


기침이 끊이지를 않아 알러지 검사를 했더니, 꽃가루와 과일 등 아주 여러가지 항원들에 반응하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코 집먼지 진드기가 1위였다. 나는 조금씩 집안을 구석구석 청소하기 시작했다. 침구를 홀라당 벗겨 90도 물에 빨고 쨍쨍한 햇볕에 말리고, 솜은 햇볕에 말렸다가, 이불청소기로 빨아들이고 또 빨아들이고, 말려 빨은 껍데기에 남아 붙어있을지 모를 진드기 사체를 위해 다시 청소기로 빨아들이고..거실의 보이지 않는 구석의 먼지들도 가구와 일상용품들을 드러내며 청소했다. 먼지는 한도 끝도 없이 나온다. 저 먼지가 품고 있었을 냄새들...아직도 벽이며 천장이며 붙어있을 집안의 냄새들...아무리 빡빡 닦고 빨고 씻었다 한들, 단 한 개의 분자가 머리카락, 옷자락 어딘가에 붙어있다가 후루룩 떨어져 상대방의 코에 닿는 순간, 그의 어두운 일상의 배경은 까발려진다. 


미국의 냄새, 아시아의 냄새. 그런데 ... 그게 어때서? 알러지만 아니면, 불쾌하지만 않으면 괜찮지 않아?


물론 송강호의 가족에겐 괜찮지 않았다. 그 냄새가 가난의 냄새, 지하실의 냄새, 홍수가 나면 가장 먼저 오수가 가정을 덮치는 종류의 씻을 수 없는 가난의 냄새라는 걸 모두가 알고 맡을 수 있을 때, 그 냄새를 아무리 씻어도 절대로 절대로 지우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 그 냄새는 우리 사회의 냄새는 괜찮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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