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개정증보판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1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전 영화 헝거를 보았다. 아일랜드 단식투쟁에 관한 영화였다. 영화는 단식투쟁의 역사적 의의보다는 단식이 불러오는 죽음의 과정 그 자체에 집중했다. 굶어죽는 것은 생각하는 것만큼 평화롭지 않았다. 살이 찢기고 뼈가 부러지고 피가 튀는 폭력적 죽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말기암 환자의 비참한 모습과 닮았다. 몸속의 세포들의 활동에 동력이 되는 모든 양분이 소진되면 이제 더이상 기력을 잃은 세포들로 구성된 몸의 기관들이 기능을 잃는다. 조금씩 기력을 잃은 몸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죽음과의 경계를 끔찍한 모습으로 보여준다. 소화기관은 천공으로 내출혈을 일으키고, 궤양으로 가득한 피부는 썩어들어 가고, 뼈와 근육은 몸을 움직일만한 구동을 잃어 움직이지 못하며, 망가진 피부들은 이불이 피부를 건드릴 수도 없는 상태가 되고, 면역 체계가 완전히 무너지면 간, 신장, 허파, 심장, 뇌 등의 필수 기관됴 염증으로 차차 기능을 잃고 죽어간다. 그러한 고통은 신체에 남아 흐르는 당을 소비하는 최초의 72시간이 지난 후부터 발생하기 시작해, 죽을 때까지 점점 심해져간다. 이것이 굶어죽는 것의 실상이다. 다시 말하지만, 굶어 죽는 일은 단순히 그냥 배가 고픈 상태로 기운이 없는 상태로 고요히 죽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지구상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는 남아 돌아가는 먹거리가 없어서,  이렇게 끔찍한 상태로 내몰려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고통받고 있는 것일까? 현재 지구 인구의 6~7명당 1명 꼴인 10억명 이상이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영양실조와 그에 따른 불구 상태에 놓여져있다. 매일 지구상 3만 7천명이 기아로 죽어가고 있다. 10세 미만의 아동이 5초에 1명씩 굶어죽어가고 있고, 3분에 1명 꼴로 비타민 A 부족으로 실명한다. 아프리카의 상황은 더욱 열악해서 전체 인구의 36퍼센트가 기아에 노출되어 있다고 한다. 인류는 힘을 합쳐서 더 잘 사는 방향으로 나가려고 할까? 과거에 비해 기아는 조금씩 더 해결되어 가고 있는중일까? 천만의 말씀이시다. 기아로 인한 사망자는 더욱 늘어나고 있다(인구증가율에 따른 비율은 감소). 사라하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에서 1972년과 2010년 사이의 심각한 기아 상태의 숫자는 8천2백만명에서 2억 2백만명으로 급증했다. 전쟁 난민과 긴급 구호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WFP(World Food Programme)의 1년 예산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평균 60억달러에서 36억 달러로 줄었다.  책이 처음 출간된 1999년 이후 오늘날까지 기아에 시달리는 인구는 늘었다. 


왜, 무엇때문일까. 식량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엉터리 주장으로 밝혀진 멜서스의 이론이 옳았던 것일까. 실리콘밸리의 눈부신 과학 기술이 우리의 문화를 송두리채 흔들어 놓는 동안, 반대로 우리는 늘어나는 인구를 먹일 수 있을만큼의 식량증산에 실패한 것일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73억명의 지구의 인구는 정상적이라면 120억명을 먹여살릴 수 있을만큼의 농업생산량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식(主食) 가격은 최근 10년새 두 배 상승했다. 파키스탄에서 예방 캠페인을 통해 사라졌던 소아마비는 5년 만에 영양실조로 면역력 결핍 상태에 놓은 아이들을 강타해 수천명의 아이들을 불구로 만들었다. 만일 이렇게 지구상의 인구 1/7을 아사로 몰아가고 있는 기아가 식량 부족이 아닌 다른 원인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이유에서건 대량 학살이다. 그 대량학살은 주식을 대상으로 한 투기, 남반구 농경지 약탈, 농업 연료, 농업 덤핑 등으로 나타나는 무지막지한 금융자본의 횡포로 모아진다. 


굶주림에 가장 처참하게 노출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최빈국들 농민들이 3천년전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만을 기다리던 농업에서 단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한 채, 트랙터와 비료와 가축 종자 등의 도움 없이 오로지 인간의 노동력에만 의지한채 농사를 짓는 동안, 유럽연합과 OECD 국가들은 농민들에게 수출지원금을 지불하고 잉여농산물을 덤핑 가격으로 풀어놓음으로써, 그마저도 그렇게 어렵게 지은 농산물을 가져다가 팔 수 없게 만든다. 거대한 다국적 민간 기업 및 헤지펀드와 국가 펀드들은 앞다투어 이들 농민들의 경작지를 대대적으로 사들인다. 2010년 한 해동안만 4,100만 헥타르의 비옥한 농지가 이들 손에 넘어갔다. 이들 남아프리카 비옥한 토지에서 외국 투기자본에 의해 대량으로 매입된 토지에서 생산된 농작물들은 자국 시장에 독점 공급되거나 바이오디젤, 바이오에탄올등의 농업연료를 생산한다. 땅을 빼앗긴 농민들은 만성적 실업, 질병, 아동 성매매, 절망만이 남아있는 참혹한 도시의 빈민가로 내몰린다.


친환경이라고 알고 있는 바이오에탄올의 실체 역시 기아를 부추기는 대량학살자다. 바이오에탄올로 굴러가는 자동차의 50리터 연료탱크를 채우려면 어린이 한 명을 1년동안 배불리 먹일 수 있는 옥수수 358킬로그램을 태워야한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은행과 헤지펀드 등의 대규모 투기세력은 농업 원자재거래소로 몰려들어, 선물거래 등의 '합법적 수단'을 통해 천문학적 이득을 얻으며, 그 이득은 주식 가격 상승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스위스의 앙드레 S.A,  미국의 컨티넨털 그레인, 미국의 카길 인터네셔널, 프랑스의 루이 드레퓌스 등의 세계 거물급 곡물거래상들의 상업함대가 전세계 바다를 누비며 전세계 곡물의 매매가를 결정하는 화이트컬러 강도들이다.  전세계에서 수확되는 옥수수의 1/4이 부유한 나라의 소들이 먹고, 부유한 나라의 사람들은 과잉 영양이 만연된 질병으로 퍼질만큼 고기를 먹어치운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의 한 거대 시설에서 사육되는 소들이 먹는 옥수수의 양이 만성 기아로 허덕이는 잠비아 같은 나라의 연간 필요량보다 많다.  이것들이 먹을 것이 넘쳐나는 지구상에서 기아라는 이름의 대량학살이 종식되기는 커녕 더욱 심화되고 있는 이유다. 내전과 자국의 이익에 따라 유엔이나 '경찰국가'조차 방관하는 군부의 약탈 등 군부와 독재와 같은 정치적으로 취약한 나라에서 특히 기아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동안 이런 저런 매체를 통해 대략 감으로 알고 있었지만 책을 통해 구체적인 내용을 접하면서 약탈적 금융 자본의 세계화의 실체를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는 거대 자본의 성격과 약탈적 구조에서 부당한 혜택을 얻고 있는 선진국의 사람들이 이 불행을 함께 나누어가져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잘사는 서구인들의 머리속을 물들인 생각, 기아를 '자연이 고안해낸 지혜'로 여기는 끔찍한 생각이 나선다. 지금 중년의 나이에 있는 사람들이 어릴 때 학교에서 배운 이론중 가장 잘못된 것 중 하나가 멜서스의 인구론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멜서스는 그 엉터리 인구론에 따라 기아가 인류의 지속적 삶에 필수적 기능을 한다는 단순히 엉터리이기만 한 주장을 넘어, 타인의 고통을 발전이라는 시각으로 채색하는 위험한 이론을 퍼뜨린 인류사의 원흉이다.  기근으로 인구가 자연적으로 조절된다는 생각은 고매한 중산층들의 양심에서 가책을 제거하고 탐욕을 정당화한다. 기아를 자연적으로 지구의 과잉인구 조절의 수단으로 인식함으로써 이제 한쪽으로 치우친 자본의 부가 주는 아늑함을  그대로 즐길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가난과 기근을 부추기는 여러 요인들은 앞서 말한 탐욕적 거대 자본과 약탈적 세계화와 함께 각국의 개별적인 사회 구조적이고도 정치적인 원인들과 맞물려 있기에 기근이 심한 여러 지역들은 기근에 앞서 숱한 사연들을 품고 있다. 종교와 민족국제 정세를 뉴스로만 접해 간간히 전쟁과 학살, 자연재해 혹은 테러 등과 같이 단일 사건으로만 알고 있는 지역들이 가진 수십 수백년에 걸친 반목과 갈등의 역사적 이야기들은 세계와 기아 문제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소말리아, 르완다, 시에라리온 등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전쟁들에 얽혀있는 인종간의 갈등, 자원 전쟁, 국제적 금융그룹과 국제적 기업등의 외국세렵과의 결탁 등은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그에 따른 실향민과 난민의 발생에 평화로운 선진국들이 책임이 없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흔히 말하는 의식주 중 인간에게 가장 필수적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먹는 것이다. 너덜너덜한 거지꼴의 옷을 입더라도, 비가 새고 바람이 들어오는 허술한 집에서 여러 식구가 한방에 모여 자더라도, 먹을 것만 충분하다면 최소한 죽지는 않는다. 영양실조에 따른 장님이 되지도 않는다. 면역 결핍으로 인한 질병으로 배가 불룩해지고 걷지 못하는 병에 걸리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일은 모면할 수가 있다. 무슨 상황에 처하더라도 최소한의 생명 연장과 건강 유지에 필요한 영양이 공급된다면 말이다. 그 공급이 폭력적이고 탐욕적인 자본의 속성에 따른 한 쪽의 혜택에서 분배될 수 있는 것이라면 좋겠지만 이제 어쩔 수 없는 그 약탈적 자본의 재순환의 늪에 빠진 현대 사회에서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는 힘없는 독자 입장에서는 힘들어보이므로, 단순 원조가 되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기아에 빠진 사람들에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책이,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고 이를 통해 전세계 기아의 실상을 알리고,,  미래를 책임질 젊은이들에게 작은 변화들을 이끌어 낼 화력을 제공하고, 또 그 작은 힘들이 모이고 또 모여 그 희망의 불씨가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래본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상생 2016-04-18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기아대책기구도 있고 여러가지 단체가 많더군요
그런 단체를 통해서 기아와 생활이 힘든 사람들을 알았지만 이렇게 힘든줄 몰랐습니다.
특히 가진 자들의 횡포가 너무나 심각한 것 같습니다. 역시 세상의 멸망은 가진자들의 횡포때문에 벌어질 것 같습니다.
글을 실감나게 잘 쓰셔서 제 블로그에 퍼갔습니다.
원치 않으시면 연락주세요 http://blog.naver.com/karamos/
 
우리는 무엇으로 행복해지나 - 우리 시대 살아 있는 지성들이 발견한 행복
김형석 외 지음 / 프런티어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행복을 정의하고, 행복을 바라보는 학자들에게서 행복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쌤통의 심리학 -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은밀한 본성에 관하여
리처드 H. 스미스 지음, 이영아 옮김 / 현암사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의 동력. // 이번에 빨책에서 다룬 책 흥미로운데요. 빨책에서 다룬 책이라면 대체로 신뢰하는 편인데, 그 이유는 읽고 나서 더욱 공감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이 달에 읽고 꼭 싶은 책은 우선 다음 두 권이다. 두 저자 내가 읽어본 저자다. 모디아노는 <지평>과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읽었는데,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요리조리 추리하고 맞추는 재미로 한번 읽고, 막판의 그 엄청난 반전과 함께 의미들을 다시 새기느라 두 번 읽었다. 앉은 자리에서 두 번 읽게 되는 책들은 몇 안된다. 그 중 하나가 모디아노의 소설이다. <지평>은 훨씬 편하게 읽었지만 가슴으로 찍어내리는 어떤 기억과 슬픔을 꾹꾹 누르며 읽는 느낌이었다. 이 책도 읽고 싶다. 이탈로 칼비노는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읽고, 칼비노에 매료되어 책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이 책도 갖고 싶다. 그리고 읽고도 싶다. ^.^


1. 보이지 않는 도시들 - 패트릭 모디아노

2. 힘겨운 사랑 - 이탈로 칼비노















이렇게 딱 두 개만..하면 안되겠지? 하나 더.


3. 게리 쿠퍼여 안녕 - 로맹 가리 

출판사 책소개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많지 않다.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쓴 <자기 앞의 생>이 매스컴을 타면서, 필독서처럼 된 탓에 에밀 아자르를 치면 로맹가리가 나오지만, 로맹가리를 치면 에밀 아자르의 자기앞의 생이 안나온다. 라는 것은 내가 직접 찾아낸 정보. 안읽어본 저자도 많지만, 콩쿠르상을 두 번이나 받고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로맹 가리의 삶이 책을 부른다. 


세상에 던져져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난 청년들의 끓어오름을 로맹 가리 특유의 거친 독설과 유머로 풀어낸 작품. 이 책은 1964년 미국에서 '스키광'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로맹 가리의 최고 성공작이 되었다. 그 후 68혁명 이듬해에 직접 프랑스어로 번역했고 '게리 쿠퍼여 안녕'으로 다시 발표했다. 한국어판은 로맹 가리가 보다 능통한 언어로 고쳐 쓴 '게리 쿠퍼여 안녕'을 토대로 했다.


이 소설의 배경은 1963년에서 1968년까지이며, 젊음이 불타올랐던 ‘68년 5월 혁명’을 암시한다. 프랑스에서 지독한 냉소로 악명을 떨쳤던 잡지 '하라키리'가 창간된 해는 1960년, 체 게바라가 처형된 뒤 마을 교회당에서 주민들에게 비참한 모습으로 전시된 해는 1963년, 미시마 유키오가 도쿄의 어느 연병장에서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며 할복을 자행한 해는 1970년이다. 이 책의 주인공 레니는 20세기 사회 전반을 지배한 냉소주의의 정점에서 탄생해서 당시 청년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 출판사 책소개글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맥거핀 2016-04-04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이번에는 꽤 유명한 작가들 책이 많이 출판되었군요. 칼비노, 모디아노, 로맹가리...저 게리 쿠퍼는 근데 그 영화배우 게리 쿠퍼겠죠? (..라는 참 쓰잘데기 없는 질문...)

CREBBP 2016-04-04 23:36   좋아요 0 | URL
그쵸 안읽어본 작가도 많지만 아는 작가의 책은 더 기대가 되더라구요.

에이바 2016-04-06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칼비노 책 나왔군요? 왜 본 기억이 없는지... 로맹가리 거 저도 봐 뒀는데 최종심사에서 탈락했어요 ㅎㅎ

CREBBP 2016-04-06 17:43   좋아요 0 | URL
요즘은 너무 두꺼운 건 좀 부담이 되더라구요. 로맹가리는 몇 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늘 못읽고 있어서 아무 생각없이 골랐어요.
 
[오에 겐자부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오에 겐자부로 - 사육 외 2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21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승애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에 겐자부르고가 자신의 작품 중에서 스스로 선택한 중단편 및 연작들이 초기 중기 후기로 나뉘어서 실려 있다. 오에를 이야기할 때, 재미있다는 표현은 아마도 초기 작품에 한정된 말이 아닐까 싶다. 적어도 국내 독자들에게는 그렇지 않을까 생각된다. 초기 작품들은 탱글탱글하고 편안한 문학적 테두리 안에서 전후 세대의 불안과 생존을 처절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려낸 작품들이 하나하나 모두 매력적으로 읽힌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관념적 개인의 독백들로 채워지는 작품은 중기 이후부터 쭉 후기까지 이어진다. 중기 작품들은 이것이 소설인지 일기장인지 혹은 작가의 인생에 있어서 어떤 특별한(혹은 별로 특별하지도 않은) 시간의 횡단면을 잘라서 앞뒤 문맥 없이 일상과 대화와 그 너머에 있는 상념의 면들을 펼쳐놓은 것인지 알 수 없다. 


특히 중기 작품들은 모두 작가가 국제적인 작가로서의 자신의 위치에서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졌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곳곳에서 드러나는데, 그 때문에 겐자부로의 문학은 겐자부르 자신, 즉, 자신의 삶, 기억, 의식, 사고, 가치관 등 개인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정신적인 활동과 동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다. 그렇기에 문학 작품 자체가 그의 삶이 되고, 그의 삶은 문학 작품 속에서 들이다볼 수 있다. 초기 작품들을 너무 재미있게 읽다가 갑자기 180도 태도를 바꾼 중기 이후의 소설들 읽는 일에 힘겹게 읽어나가는 동안 그의 작품을 어떤 문학적인 틀로 평가할 때 '사소설'이라는 범주의 경계를 드나든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게 무언가 궁금해졌다. 그것은 작가 개인의 체험을 사실 그대로 문학 작품으로 재현하는 일본 근대 소설의 한 장르라고 한다.(살림 지식 총서에서 <일본의 사소설>(안영희 지음) 이라는 나온 책에 대한 상세한 리뷰가 알라딘 서재에 첨부되어 있는데, 서구 자연주의 문학이 일본에 왜곡 도입된 한 형태라는 인식도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겐자부로의 중기 소설이 장르적으로 사소설로 분류되지는 않는 것 같으나,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사소설이 지향하는 요소의 일부는 충분히 가진다고 판단되는 이유가 몇가지 있다. 


중기 소설의 대부분이 나 라는 화자에 의해 쓰여있고, 그 나가 겐자부로 자신의 도플갱어라고 할 수 있는 또다른 자아, 혹은 그냥 작가 자신이라는 자연스러운 판단을 유보시킬 어떠한 모순도 발견하지 못한다. 고목에 대한 애착이나 익사에 대한 경험, 장애아들과 치르는 일상의 배열, 작가로서의 위치와 가치관 등이 모든 소설에서 등장하는 '나'에 어떤 동질성이 존재하는데, 이것들과 더불어, 동일한 인물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떠받쳐주는 같은 심성의 소유자로 전 작품의 화자에게 부여된 캐릭터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 불쑥 불쑥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인물들은 작품 속에서 화자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독백처럼 작품에 서사를 부여하는 자신의 이야기들, 혹은 자신의 생각들을 아주 길게 말을 하고, 화자는 그 말을 그저 독자들에게 전할 뿐이다. 게다가 그 등장인물들은 연작 소설 뿐만 아니라 다른 작품 소설 속에서도 기억이나 혹은 대화들 속에서 나타나는 경향을 보인다.  그 중에서 이오, 혹은 히카리로 부르는 실제 자신의 아들인 장애아는 중기의 거의 전작품에 걸쳐 계속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등장하고, 작품 속에서 어떤 지속적인 관계를 보여주는 것은 장애아를 둔 가족 내에서의 관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자기 자신의 실제 작품에 대한 언급과 집필 과정에 관련된 일 등도 끊임없이 환기되고, 그의 주요 관심사와 실제로 심도 있게 연구해온 특정 문학 작품과 문학가에 대한 문학적 내용도 중기 소설 내에 거의 아들과 같은 비중으로 함께 등장한다.  


그런 와중에서 초기 소설에 속하는 <공중괴물 아구이>와 중기 작품들을 함께 살펴본다면 겐자부로의 관념 속에서 뭔가 구체적인 실체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중기 작품 속에서 설명하는 이오는 진단명으로는 뇌분리증이라는 기형을 가지고 태어났고, 이로 인해 장애를 갖게 되는데, 이것은 자신의 아들 히카리의 실제 이야기이기도 하다.  반면 초기 작품에 속하는 <공중 괴물 아구이>에서는 뇌 기형을 가진 아이는 태어나자 마자 죽는다. 아기의 죽음은 의도된 것이었다. 작품의 화자인 학생은 환영을 본다는 D라는 남자의 외출을 돕기 위해 고용된 학생인데, 그가 결혼해서 낳은 아기는 실제  중기 작품 속에서 계속 등장하는 이오와 같은 상태로 머리에 커다란 혹을 달은 상태로 태어났고, 의사의 오진과 부부의 이기심으로 아기를 죽인 것인데, 그 이후, 캥거루 크기만한 아기가 공중에서 부유하다가 어깨에 내려 앉아 이야기를 하다가 간다는 것이다.  중기 작품들과는 다르고, 대학생때 쓰였던 초기의 현실적이면서도 어둡지만 사회적 이슈들을 담아내던 초기 작품들과도 다른 이 작품은 아름답고 몽환적이면서도 인간적 죄의식과 고뇌를 유려한 문체로 그리고 있다. 이후 중기 소설 <분노의 대기에 차가운 갓난아이가 솟아올라>에 등장하는 이오가 기형의 모습으로 막 태어났을 때의 상황이 구체적으로 그려지는데, 그 때 혹으로 생각해서 제거했던 하나의 머리가 또다른 하나의 뇌였다는 것이 후에, 수술을 집도했던 M 의사의 퇴직을 계기로 확인된다. 


그렇습니다. 나에게는 뇌가 두 개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입니다. 엄마, 나의 또 하나의 뇌, 어디로 간 것일까요? (p489)


이 부분은 명확하지 않지만, 아이는 두 개의 뇌로 인한 결손이었고, 그 쓸모없는 기능하지 않는 뇌 절제에 대한 댓가를 장애와 간질 같은 것으로 치르고 있었던 것인 모양이다. 초기 마지막 작품에 소개된 <공중괴물 아구이>는 장애아를 둔 부모의 죄책감을 작품속에 녹여낸 듯하다.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죽는 선택을 하는 대신 살아남아 계속 해서 아이에 대한 글을 썼던 이유 역시 이미 결손된 뇌로 인한 희생을 온몸으로 치르고 있는 아이에 대한 죄책감과 속죄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04-02 2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02 2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02 2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