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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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엔 어떻게 되었을까. 연일 신문과 방송을 타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끔찍하고 참혹한 사건들 말이다. 활자와 매체와 기억에서 사라지고 난 후, 아무일도 없었던 듯 우리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것처럼 끔찍한 사건들은 세상에서 사라진걸까. 피해자와 남겨진 가족들은 어떻게 되었얼까. 그들도 우리처럼 잊었을까. 사건이 불러온 죽음은 죽음을 맞이한 당사자에겐 끝이었겠지만.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은? 그가 보살펴야 했던 가족들은? 망각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오는걸까. 남겨진 사람들의 가장된 망각 뒤로 또다른 종류의 시작이 온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고통의 시작. 그렇게 삶은 어디에서건 무슨일이 생기건 계속된다. 죽기 전까지는. 


아버지가 죽은 후에 가족들이 살고 있다. 어떻게든 살고 있다. 계속된다. 남편이 죽은 후에 애자는 생을 포기했지만, 생은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어떻게든 숨이 쉬어진다. 계속된다. 소라, 나나, 애자. 공장 기계의 거대하게 맞물린 톱니 바퀴 사이로 빨려 들어간 사내의 가족이다.  위이이 하는 소음과 함께 꼼꼼하게 맞물린 톱니바퀴의 속도에 빨려 들어가고 덩어리조차 되지 못해 산산히 부서지고 질척하게 뭉그러진 남자의, 아니 남자였던 사람들을 사랑했던 가족이다. 영혼이 담겼던 신체는 흔적조차 모으기 어려운 조각이 되어 사라져 갔고, 그래도 사내의 가족은 계속해서 살아간다. 무지막지한 운명의 거친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끔찍한 기억들이 고스란히 상흔처럼 영혼을 할퀴고 있는 채로. 나름대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면서 세상의 한쪽 귀퉁이, 어떤 모서리, 패인 웅덩이처럼 고여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초점은 그 끔찍함이 불러온 공포와 상처에 있지 않다. 나나는 말한다. 계속해보겠습니다. 삶의 한 장이 넘겨질 때마다 침을 삼키듯 쉬었다가 다짐하듯 또박또박 나나는 말한다. 계속해보겠습니다. 나나의 이야기는 그렇게 계속된다. 끔찍한 흔적들만 남기고 사라진 아버지의 보상금을 할머니와 친척들이 차지해 갔어도. 남겨지고 망가져, 살아있어도 죽은 것 같은 엄마 애자가 더이상 두 자매를 돌보지 않았어도. 컴컴하고 곰팡내 나는 반지하 셋집의 가재도구도 없는 휑한 공간에 버려졌어도.... 그렇게 계속해서 '계속해보겠습니다'가 나누는 삶의 장들은 우리에게 아련하지만 따스한, 체념도 집념도 아닌 어떤 명제, 계속하고 계속하고 또 계속해보아서 터득하고 완성해간 삶의 이유 같은 것과 그 속에 담긴 사랑을 발견한다. 처연하고 아름다운 슬픔만이 다는 아니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어두운 반지하 공간이 반으로 잘려 현관과 욕실을 또다른 가족과 공유하는 형태였을 때, 벽을 따라 돌면 문을 열지 않아도 남의 집이었던 그 공간에서 만난 소년이 혼자만의 아픔을 견디며 텅빈 시간과 텅빈 공간을 흘려보내던 날들에, 그 어린 아이들의 외로움과 그리움, 소외와 결핍 속에는 계속해볼 수 있는 아주 작은 살아가는 따스한 힘들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랑은 아플 때 아름다워 보이듯, 이들이 아름다운 건, 감추어도 드러나는 참혹한 슬픔을 공유했기 때문이 아닐까. 어느 구석에서 이렇게나 조용히 쥐죽은 듯이, 그러나 '제대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형제같은 세 사람과 엄마같은 한 사람, 그리고 태어날 아기는 조금은 전통적인 가족과는 다른 형태의 가족이 될 터이다.


나나의 선택은 기성인의 입장에서 볼 때 그리 현명하지 못한 것일 터이다.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이제껏 혼자서 커온 일만큼 힘들 것이다. 두 남녀의 순간적인 실수로 태어난 아기 또한 앞으로 수많은 어려움에 부딪힐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나나의 결정에 안도했다. 홀로 아기를 키우기로 결정한 것, 아무 말도 묻지 않고 이모가 있잖아 라고 말해주고 지원하는 소라에게 감사했다. 아기에겐 친부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생각할' 수 있는 환경도 중요할 것이다. 아마도 아기에게는 한 때는 나나가 사랑했던, 자기 아기를 낳을 일은 없을 삼촌이 아빠를 대신해줄 것이다. 그리고 아기를 바라고 원하는 나기의 엄마는 언제나 아기의 편이 되어 주는 자상한 할머니가 되어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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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 2015 제39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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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거대하게 품은 이상 뿐만 아니라 아주 소박한 현실적 소망마저도 거부한다면, 벼랑끝에 아슬아슬 지탱하고 있는 그루터기 마저 흔들린다면, 힘겹게 힘겹게 이어온 우리의 여정이 향할 곳은 어디일까? 신화의 시대를 지나서 과학과 물질 문명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현실적으로 불가능 한 것들, 기적과 마법 같은 것들로 기대할 수 있는 서사는 무엇일까. 도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의 페이지를 살짝 넘기면 그곳에 환상이 있다. 그것은 바람일까. 소망일까. 일장춘몽의 꿈일까. 도피일까. 혹 죽음일까.


그림 속으로 발을 딛고 들어가면 그 곳엔 온갖 기이하고 신기한 모험들이 흥미롭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작품 속 미연이 들어간 그림은 거리의 루초 폰타니의 공간개념 연작을 모방한 이름 모를 작가의 작품이다. 주워 입은 셔츠를 걷어올려 길바닥에서 젖가슴을 드러내놓고 아기의 젖을 물려야 하는 그녀는 역시 주운 유모차에 아기를 버려둔 채로 그림 속의 칼자국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어둠이 몰려오자, 그 뚜렷한 칼자국의 명암 사이로 어둠이 만들어 내는 알 수 없는 생명을 느끼고, 암부 깊은 곳의 소실점을 느낀다. 사라지는 지점이라니, 그곳이 자신이 가장 원하는 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는 그 그림의 칼자국 속으로 손을 넣어 보고, 몸을 넣어 보자, 그림 뒤편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할 곳은 그녀가 들어간 그 곳 세계이다. 마법이 존재하는 곳이 아닌 캔버스 뒤편일 뿐이다. 


현실에서 빠져나가 봤자, 완전한 소실점은 없다. 어디에서나 평범하고 남루한 세계, 보도 블록의 요철 위로 분주한 소음과 무기력이 피어오르는 세계, '언제고 일상에의 대항과 반란이란 이런 식으로 끝날 수밖에 없음을 확인시켜주는' 곳.  그렇다. 그녀가 들어간 곳은 지극히도 현실적인 세계인 것이다. 그곳에서 그녀에게 생긴 변화는 3분마다 한번씩 보인다는 3분백을 자신도 들고 있다는 점, 이제까지 한 번도 입어본 적이 없는 까만색 실크 블라우스를 입었으며, 또 어디를 가고 있던 중이었는지를 잊었다는 점. 아기도 시누이도, 돈이라고는 집에 굴러다니는 동전까지 모두 합쳐봤자 버스비도 나오지 않는 집구석도 모두 잊고, 자신의 화실로 가던 중이다. 미연이 들어간 세계가 누추하기는 마찬가지라고 해도, 그녀는 그 곳에서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또 연애를 하고 남편을 만나서 아기를 갖고, 지울 돈이 없어서 결혼을 하고, 세번의 사업 실패후 가뜩이나 어려운 친정집 재산까지 홀라당 말아먹는 남편의 미친 누이까지 책임지는 현실이 기다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아닐 거다. 삶의 우연은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위로해 본다. 유일한 희망이 우연이라니.


작품집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소멸점 속으로 사라지는 방식으로 현실을 외면한다. 혹은 극복이거나 타협일 수도 있겠다. 최선을 다해 살았대도, 더는 살아갈 방도가 없는 막다른 길이 나타나는 것이다. '꿈이 없다고 해서 현실이 있냐 하면 눈앞에 있기야 있지만, 없는셈 치고 싶은 현실뿐'인 사람들이 그 현실의 연장선에서 일어나는 환상을 다룬다.  그들의 공통점은 소외되고 핍박받는 최하층의 육체 노동자가 아니다. 쓸모 없는 박사학위에 긴 가방끈을 교수들의 잔심부름에 착취당하는 <여기말고 저기, 그래 어쩌면 거기>의 화자는 충격스런 엄마의 죽음에 대한 기억을 가진 친구 하이의 건물 기어오르기에 관한 기이한 행동과 그에 따른 사고와 외상을 기록한다.  <식우>는 G시에서 일어나는 부식성 비로 인해 도시의 모든 것이 무너져내리는 디스토피아적인 세계를 비정하게 그려내고, <이장>은 학대 의혹을 지울 수 없는 아이의 죽음을  바라본 어느 '폭력적 오지라퍼' 네티즌의 시각을 다루고, <덩굴손증후군의 내력>은 도시의 건물마다 억세고도 거세게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는 덩굴식물이 소외되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이 변해서 된 과정과 그 바로 산 사람의 얼굴을 가진 덩굴식물들을 제거해 나가는 비정한 사회의 모습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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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각의 여왕 - 제2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이유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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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이 있는데, 그 반대의 세계도 있다. 해미가 살아가는 공간, 고물상이 그렇다. 그 곳에서 책은 책이 아니라 파지가 된다. 표지 따로, 스프링 따로, 속지 따로 다 따로따로 해야 가치가 높아지는 곳이다. 어떤 물건이 가치를 가지려면 그 물질 고유의 내재된 특성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도록 합성되어, 기능하는 개체로서의 자신을 버리고 원래 물화되기 전의 상태로 분해되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범우주적이고 철학적인 물질의 재순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람이 죽어 분자와 원자로 분해되고 세상 속에 섞이고, 그것들이 다시 생명이 된다는 온 우주의 일에는 언제나 이렇게 순환의 기본 법칙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모든 것은 다른 형태로 끊임없이 변화를 되풀이한다. 버려지는 물건들은 수집되고 분류되어 재활용되거나 소각된다. 무엇이 남겨지고 무엇이 태워질까.


허파에 바람이 들어가는 병이 있다. 해미 할아버지가 지창에게 고물상이라도 남겨주고 떠난 건 허파에 들어간 바람 덕이었을지도 모른다. 넉마를 줍던 해미 할아버지는 해미 할머니가 지창을 낳던 날 대기실 TV에서 반짝이는 조명아래 빙글 빙글 돌아가는 회전목마를 보는 순간 허파에 바람이 들어갔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허파에 또아리를 틀고 앉은 바람은 철조망에 갇힌 고물상보다 더 반짝이는 것이었다. 지창의 팔랑귀를 자극해서 허파에 훅 하고 바람을 불어놓는 것은 시리즈로 찾아온 불운이고, 현대인이 마주한 불안이다. 불행이 먼저 찾아 오고, 그 다음에 불안이 찾아온다. 개인의 헛된 발버둥이 삶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허파의 바람이 삶의 의지를  불어넣을 수 있다. 해미는 지창의 허파에 들어있는 그 바람에 냉소적이지만, 바람든 허파가 빨아들이는 지출이 살림을 대신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해미가 하는 일은 시체에서 나오는 분비물과 냄새만 없애는 게 아니었다. 무너진 사람들의 잔해를 치우는 일이기도 했다. 지창씨는 무너질 것 같으면서 무너지지 않았다. "


죽음을 처리하는 것도 현대에는 하나의 산업이 되었다. 한 사람의 죽음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병원과 장례식장, 화장터, 묘지, 종교적인 비용은 사회에서 또다른 경제를 차지한다. 이 작품은 죽음의 흔적을 지워주는 해미의 직업과 일의 강도에 대해 과잉된 감정적 묘사 혹은 유별난 시선을 품지 않아 마음에 들었다. 대신 상세하게 묘사된 그 일의 구체적인 노동 방법과 물리적 상황이 힘겨운 직종의 하나인 유품정리 일과 의미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아버지의 허파에는 바람이 들어 이트륨이라는 희귀금속을 수집한다는 기계와 실험에 감당해야 할 비용이 점점 늘어가는 중, 더 이상 비전이 보이지 않는 고물상의 수입을 대신해 적어도 일한 만큼의 수입을 가져다줄 유품정리 일을 우연히 맡은 것은 아슬아슬하게 발견한 마지막 기회다. 아버지를 지창씨라 부르는 부녀 사이의 친밀하고 거리낌없는 대화는 팍팍한 현실 속 괴물같은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불운 속에서도 깨어지지지 않기를 바라는 평화로운 가정을 보여준다. 


허파에 들어가는 바람은 우리를 그토록 달뜨게 만드는 마지막 꿈일지도 모른다. 한 마리 갈매기가 더 멀리 더 높이 날려고 비상하는 동안에도, 수많은 다른 갈매기들은 갈매기 조나단의 비행이 초래할 배고픔에 대해서만 걱정한다. 우리는 때로 현실에 적응하며 먹고 살 걱정을 해야 하는 반면, 그것들을 잊고 지금과는 다른 무언가를 향해 열중할 필요도 느낀다. 숱하게 실패하고 스러졌던 누군가 꿈꾸지 않았다면, 누군가의 바람에 허파가 들어가지 않았다면 인류 역사는 더 평화로왔을 지 모르지만, 아직 사바나 사막에서 동물의 사체를 헤매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해미가 사랑하는 아비의 비행을 지켜보며 할 수 있었던 최선은,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은 것 뿐이다. 조금만 더 이해했더라면, 그 비극적 결과가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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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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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일부일처제의 관습이 인간에게서 보편적인 특성이 된 계기가 그 무엇이었더라도, 그것은 서서히 부식되고 부서져가고 있으며,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완전히 허물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미 높은 이혼율과, 주거 등 필요에 의해 때 서로 함께 살다가 불필요하면 쉽게 헤어지는 동거족, 그리고 아예 혼자 사는 싱글족들의 급부상은 앞으로의 사회가 전통적 결혼을 기반으로 가족단위의 모습과는 달라질 것을 예고한다. 평소 다양한 형태의 계약결혼을 대안으로 여러 상상력을 펼치던 중, 김려령이 창조해낸 NM결혼은 새로운 시도로 다가왔다.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결혼이 아닌 서비스 개념이다. 아마도 결혼정보회사에서 법적 정서적 구속력을 가진 결혼이 아닌 소꿉놀이에 불과한 결혼 코스프레의 상대를 찾는 돈 많은 회원들이 있다는 낌새를 포착하고 발빠르게 1년 단위의 결혼상품을 론칭했으리라는 짐작이다. 난립하는 결혼정보회사에서 틈새 시장의 수요를 찾아 시장을 만들어낸 훌륭한 기획이다. 상품적으로는 말이다. 


진화상, 결혼이라는 제도에까지 이르게된 계기가 유전자 전달, 즉 섹스의 목적에서 시작된만큼 해당 상품이 섹스리스이건 아니건 성적 결합(혹은 거부)에서 오는 정서적 부분은 아마도 결혼 생활 전체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다. 한지붕 밑에서, NM 배우자와 섹스를 포함한 모든 결혼생활을 1년간이나 계속하면서, 사랑만큼은 금지된 것. 이런 형식의 결혼이 잔인한 것은, 그 결혼이 물질적인 보상을 기반으로 서비스 제공과 금전의 맞교환적인 형식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FW(Field Wife) 인지는 하는듯 마는듯 산만하고 열의만 가득한 남편의 섹스 스킬이 못마땅하고 시큰둥하지만, 연륜에서 나온 그의 대화와 예술가적인 프로페셔널함에 끌리는 듯하다. 그러나 NM 6년차 베테랑인 그녀는 산전수전 겪어, 상대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감정적으로 자신을 잘 통제하고 다룰 줄 안다.  그 와중에 자신의 오랜 동성 친구의 고백, 스토커 문제들이 간간히 이야기를 진전시킨다. 


김려령이 제시한 결혼형태는 흥미롭다. 그것이 자의가 아닌 이십대 청춘이 구직의 끝에서 선택의 여지 없이 주어진 유일한 기회였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읽기에는 이질적인 다른 묵직한 주제들이 서사의 큰 틀에서 불쑥 불쑥 끼여드는 느낌이었다. 사실 결혼정보회사에서 계약결혼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그 발상에서 나온 여러가지 부산물 만으로도 충분히 소설 전체를 커버할 수 있는 훌륭한 서사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는데, 거기에 스토커와 동성애의 문제, 부모와의 갈등 등이 함께 다루어진다. 책은 200페이지 남짓. 너무 많은 것을 다루려 했다는 생각보다는, 상상력을 치열하게 문제 의식으로 다루는 데 실패하여 그냥 여러 이야기를 끼워넣은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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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팔로 하는 포옹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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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시간은 함께 호흡한다. 기억이 날숨이라면 시간은 들숨이다. 기억은 시간 속을 미끄러진다. 맑은 빙판 위로 아이스 스케이트 날처럼 시간 위로 기억이 미끄러져간다. 때로 엄청난 스피드를 내며 쏜살같이 사라지고, 때로 우아하게 제자리를 스핀하고, 때론 중력을 거스르며 드높이 뛰어올라 허공 속에서 뱅그르르 돈다. <요요>는 긴 인생 중 맞닥뜨린 몇 달간의 아주 짧게 경험한 사랑과 그것을 평생 간직한 시계공의 이야기다. 초침과 분침의 영원한 회전 속에 갇힌 시간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 채 잊지도 흘려보내지도 못한 사랑의 어긋남을 닮았다. 달콤함은 순간이다. 나머지 시간들은 감내해야 하는 그리움과 슬픔 뿐. 그 어쩔 수 없는 사랑의 본질인 아픔은 시계 속에 갇혀 버린 시간처럼 뻗어나가지 못하고 제자리를 순환한다. 사랑은 그렇게 정지된 시간처럼, 멈추어버린 초침처럼, 만들다 말아버린 시계처럼, '독립시계제작자'의 같은 자리를 머문다.  사랑이라는 따스함이 흐르는 그 세상은 창공을 날아오른 트리플 러츠처럼 강렬하게 기억되는 오로지 하나의, 변하지 않는 풍경이 된다, 중력을 거스른 채 영원히 멈추어 선 삶의 이유가 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후 땅을 치고 후회해도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그 시간 속에서는 다른 선택을 할 것이라 장담할 수 없다. 아마도, 우리가 후회하는 이유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심정의 기억을 시간 속에 흘려보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그렇게 늙어가고 있다. 그렇게 남겨진 섬광처럼 떠오르곤 하는 순간들을 멈춘 시간 속에 담아 둔다. 


<상황과 비율>은 김중혁스러운 문체와 능청스러움이 돋보이면서도 다른 소설들보다 조금은 더 희망적인 사랑의 가능성을 담고 있어서 좋았다. 작품이 거의 완성된 단계에서 실종된 포르노 여배우 송미를 찾아 설득하는 '상황감독' 차양준의 이야기다. 포르노 여배우라는, 어찌보면 극한 직업인 일을 업으로 삼고 살아야 했을 때에는 아마도 온갖 세상사의 파란만장한 질곡을 충분히 견뎌냈으며, 따라서 어떤 종류의 치욕에도 둔감해졌으리라 짐작한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든, 만족스런 선택이었든 그 모든 것이 부서지는 것은 짧은 순간이다. 삶에서 진실을 가르쳐주는 순간은 때로 무참하다. 얼굴 가득 정액 묻은 모습으로 화면을 향해 환하게 웃어야 하는 순간은, 그 순간에 흐르던 눈물과 섞여 뒤범벅이된 정액은, 포르노 여배우의 삶을 조용히 찢었을 것이다.  차양준에게서 받은 PD로부터 지켜주겠다는 짧지만 견고한 약속은 송이에게 찢겨진 삶의 일부를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다른 형태로 비약시켜주는 신뢰였을 것이다. 절정의 비밀을 공유한 두 사람은 이제 특별하다. 얼굴에 정액이 흐르는 엔딩 대신 새로 찍는 섹스 씬의 절정의 순간에 차양준은 송이와 두 눈이 마주친다. 여배우의 절정을 이끄는 탁구공, 그 은밀한 비밀을 공유한 차양준 이 두 남녀의 짧은 교감은 그 어떤 순수한 사랑 못지 않은 담백한 여운을 남긴다. 


때로 사랑은 서로 안아주는 것,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것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된다. <가짜 팔로 하는 포옹>에서 이규호는 알콜중독자다. 오래 전에 아마도 자신의 알콜중독으로 인한 어떤 지긋지긋한 문제로 인해 떠나게 했을 옛 여자 친구 정윤을 만나 술을 마신다. 버려지고 상처받은 자신의 영혼을 드러낸다. 술을 마시면 거절당했을 때의 장면만 무한반복된다. 피존의 이야기를 빌어 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정윤은 이규호가 점점 더 취해가고 있고, 취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더 자극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언제 자리를 떠야 코꿰이지 않고 난처한 상황을 피할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감지하고 있을만큼 그의 술버릇에 대해 익숙하다. 살살 구스르고 대화를 들어주며 이규호의 비위를 맞춰가며 언제 일어날까 기회를 노리고 있다. 한 번만 안아주고 가라. 이 부탁을 정윤은 들어줄 수 없다. 들어줄 수 없다는 사실을 이규호도 안다. 그녀가 앉았던 자리의 움푹 들어간 자리가 서서히 복구되는 것을 보면서 규호는 정윤이 마시던 커피잔을 치우고 그곳에 소주잔을 놓는다. 사랑이 떠나간 자리엔 바람이 불고, 먹다 남긴 땅콩 껍질이 바람에 흩어진다. 그렇게 초라하게 남겨져 홀로된 알콜중독자는, 살겠다고 붙잡은 가짜 팔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서 추락해가는 나약한 중독자의 영혼이다. 중독자가 아닌 사람은 중독자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함께 했던 시간이 인생의 일부였던 정윤은 그 아비규환 속을 통과했던 아픔 만큼이나 규환을 향한 측은지심이 남아있던 것으로 보인다. 붙잡으면 떨어져 나올 그 마네킹의 가짜 팔이나마 잠시 내어준 정윤이 참 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중혁 스타일이라는 견고한 실타래를 풀어가며 엮여진 스토리들은 남녀의 짧고 긴 만남을 시간과 기억이라는 묵직한 주제와 함께 지독한 사랑의 본질을 유쾌하고 익살스러우면서도 가슴 찡한 진실을 담아 섬세하게 엮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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