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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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엔 어떻게 되었을까. 연일 신문과 방송을 타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끔찍하고 참혹한 사건들 말이다. 활자와 매체와 기억에서 사라지고 난 후, 아무일도 없었던 듯 우리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것처럼 끔찍한 사건들은 세상에서 사라진걸까. 피해자와 남겨진 가족들은 어떻게 되었얼까. 그들도 우리처럼 잊었을까. 사건이 불러온 죽음은 죽음을 맞이한 당사자에겐 끝이었겠지만.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은? 그가 보살펴야 했던 가족들은? 망각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오는걸까. 남겨진 사람들의 가장된 망각 뒤로 또다른 종류의 시작이 온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고통의 시작. 그렇게 삶은 어디에서건 무슨일이 생기건 계속된다. 죽기 전까지는. 


아버지가 죽은 후에 가족들이 살고 있다. 어떻게든 살고 있다. 계속된다. 남편이 죽은 후에 애자는 생을 포기했지만, 생은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어떻게든 숨이 쉬어진다. 계속된다. 소라, 나나, 애자. 공장 기계의 거대하게 맞물린 톱니 바퀴 사이로 빨려 들어간 사내의 가족이다.  위이이 하는 소음과 함께 꼼꼼하게 맞물린 톱니바퀴의 속도에 빨려 들어가고 덩어리조차 되지 못해 산산히 부서지고 질척하게 뭉그러진 남자의, 아니 남자였던 사람들을 사랑했던 가족이다. 영혼이 담겼던 신체는 흔적조차 모으기 어려운 조각이 되어 사라져 갔고, 그래도 사내의 가족은 계속해서 살아간다. 무지막지한 운명의 거친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끔찍한 기억들이 고스란히 상흔처럼 영혼을 할퀴고 있는 채로. 나름대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면서 세상의 한쪽 귀퉁이, 어떤 모서리, 패인 웅덩이처럼 고여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초점은 그 끔찍함이 불러온 공포와 상처에 있지 않다. 나나는 말한다. 계속해보겠습니다. 삶의 한 장이 넘겨질 때마다 침을 삼키듯 쉬었다가 다짐하듯 또박또박 나나는 말한다. 계속해보겠습니다. 나나의 이야기는 그렇게 계속된다. 끔찍한 흔적들만 남기고 사라진 아버지의 보상금을 할머니와 친척들이 차지해 갔어도. 남겨지고 망가져, 살아있어도 죽은 것 같은 엄마 애자가 더이상 두 자매를 돌보지 않았어도. 컴컴하고 곰팡내 나는 반지하 셋집의 가재도구도 없는 휑한 공간에 버려졌어도.... 그렇게 계속해서 '계속해보겠습니다'가 나누는 삶의 장들은 우리에게 아련하지만 따스한, 체념도 집념도 아닌 어떤 명제, 계속하고 계속하고 또 계속해보아서 터득하고 완성해간 삶의 이유 같은 것과 그 속에 담긴 사랑을 발견한다. 처연하고 아름다운 슬픔만이 다는 아니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어두운 반지하 공간이 반으로 잘려 현관과 욕실을 또다른 가족과 공유하는 형태였을 때, 벽을 따라 돌면 문을 열지 않아도 남의 집이었던 그 공간에서 만난 소년이 혼자만의 아픔을 견디며 텅빈 시간과 텅빈 공간을 흘려보내던 날들에, 그 어린 아이들의 외로움과 그리움, 소외와 결핍 속에는 계속해볼 수 있는 아주 작은 살아가는 따스한 힘들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랑은 아플 때 아름다워 보이듯, 이들이 아름다운 건, 감추어도 드러나는 참혹한 슬픔을 공유했기 때문이 아닐까. 어느 구석에서 이렇게나 조용히 쥐죽은 듯이, 그러나 '제대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형제같은 세 사람과 엄마같은 한 사람, 그리고 태어날 아기는 조금은 전통적인 가족과는 다른 형태의 가족이 될 터이다.


나나의 선택은 기성인의 입장에서 볼 때 그리 현명하지 못한 것일 터이다.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이제껏 혼자서 커온 일만큼 힘들 것이다. 두 남녀의 순간적인 실수로 태어난 아기 또한 앞으로 수많은 어려움에 부딪힐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나나의 결정에 안도했다. 홀로 아기를 키우기로 결정한 것, 아무 말도 묻지 않고 이모가 있잖아 라고 말해주고 지원하는 소라에게 감사했다. 아기에겐 친부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생각할' 수 있는 환경도 중요할 것이다. 아마도 아기에게는 한 때는 나나가 사랑했던, 자기 아기를 낳을 일은 없을 삼촌이 아빠를 대신해줄 것이다. 그리고 아기를 바라고 원하는 나기의 엄마는 언제나 아기의 편이 되어 주는 자상한 할머니가 되어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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