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만든 위대한 속임수 식품첨가물 2 인간이 만든 위대한 속임수 식품첨가물 2
아베 쓰카사 지음, 정만철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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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무엇을 먹을 수 있고 무엇을 먹을 수 없는지는 누가 결정한걸까. 인류 문명이 농사를 시작하기 전 채집생활을 했을 때는 흰개미같은 것들도 주워먹었다고 하는데, 만일 아기가 마당에서 놀다가 개미를 주워 먹는다면 아기 엄마는 큰일이 난듯 아기의 입을 씻어내고 한바탕 전쟁을 치를 것이다. MSG가 미원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혁신적인 제품으로 어머니들의 모든 음식의 비법 재료중 하나였다. 태초 인류가 이것 저것 주워먹으면서 아주 오래 전에, 그러니까 아무것도 먹을 것을 구하지 못했을 때는 먹던 것들을 지금은 먹지 않는 것들은 대개 맛이 없거나, 구하기 힘들거나, 몸에 안좋은 것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오래전에는 안먹었는데 먹기 시작한 것들은 맛이 있고, 구하기 쉽고 몸에 좋은 것들일까? 가격이 저렴하다는 면에서 구하기 쉽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세계화가 된 지금, 지구 반대쪽에서 생산된 각종 과일들을 대형 마켓에서는 물론 동네 과일집에서도 살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것들은 안전할까. 


MSG를 마구마구 많이씩 넣어 닝닝한 맛을 즐겼던 70년대 80년대에는 그것이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신뢰하는 군부'가 있고, 그들이 통치하는 식품안전관리본부가 몸에 해로운 것들이 그렇게 널리 유통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라 여겼을 것이다. 지금 내가 MSG가 해롭다는 말을 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우리 세대에 집에 버젓이 미원이나 다시다를 부엌 찬장에 두고 쓰는 주부는 없다. 해롭다 해롭지 않다 의견이 분분한 그런 첨가물을 굳이 우리집 밥상에 올려놓을 필요를 못느낄 뿐이다. 그래도 여전히 잘 팔린다. 냉면 국물의 맛은 아무리 국내산 쇠고기를 잔뜩 넣고 정성을 들여 국물을 내고 식혀 기름을 걷어내어, 이산화탄소가 뽀글뽀글 올라오는 잘익은 동치미와 반반 섞어도 냉면전문집 국물에서 나는 그 냉면 특유의 감칠맛을 흉내낼 수 없다. 알고보니, 그게 모두 쇠고기 다시다 가루와 물을 섞어 푹푹 끓인 국물이었던 거였다. 


무얼 먹을 수 있고, 무얼 먹을 수 없는지를 가끔 생각해보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이런 책은 복습을 해줘야한다. 이런 류의 책들은 계속해서 나오고 있고, 계속해서 읽고 있지만, 그것을 알고 인지하고 조심하는 속도보다 일상에서 접하는 무수한 화학첨가물에 대해 우리는 더욱 빠른 속도로 무감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첨가물의 종류는 날이면 날마다 점점 더 늘어난다. 어떤 한 가지 첨가물이 오랜 임상 관찰 끝에 발암물질이라는 결과가 나와 드디어 식품 첨가 금지 조치가 취해지는 순간, 아직 그 부작용이 증명되지 않은 새로운 대체품들이 수도 없이 많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왜서일까. 먼저 이 질문을 해보자. 왜 먹는 곳에 인공적으로 결합시켜 만든, 안전이 증명되지 않은,  새로운 화학물질을 섞는걸까?  저자 이베 쓰카시는 다섯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1. 저가이고,  2.간단하고  3.편리하고, 4.정갈하고, 5. 맛있다


증량

무엇보다도 업체 입장에서 저렴하게 만들어 비싸게 파는 것은 가장 환상적인 전략이다. 가격을 저렴하게 만드는 전략은, 첨가물을 이용하여 증량하고, 값비싼 음식 대신 식품을 흉내낸 모조식품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값싼 첨가물 없이는 만들 수 없는 모조 식품에는 커피크리머, 휘핑크림, 마가린, 유사마요네즈(샐러드 드레싱)이 있다. 크리머는 식물성기름에 유화제를 섞고 증점다당류를 첨가해 걸쭉한 점성을 만들어낸 것이고, 휘핑크림은 우유에서 분리한 순수한 지방과는 달리, 식물성 유지와 유화제 우유향 등을 섞고, 마취에 사용되는 아진화질소가스를 사용한 스프레이 형태의 휘핑 크림이 수입 판매된다. 증량대체를 위해 첨가제를 대량으로 사용하는 식품은 초저가 잼, 가짜푸딩, 혼합간장 등이 있다. 전통적 방식의 딸기잼은 딸기와 설탕 레몬즙으로만 이루어지는데, 증량대체 유사딸기잼은 딸기의 함량을 줄인다. 따라서 원재료명을 보면, 딸기보다 액상 포도당을 비롯한 당류가 더 앞쪽에 쓰여져있다. 이렇게 딸기보다 당류가 늘어나면 딸기 향을 내기 위해 딸기향을 넣고, 신맛을 내기 위해 산미료를 넣고 양을 늘이기 위해 증점제를 사용한다. 


유사 간장은 한국에서는 혼합간장이라고 표기된 제품으로, 콩은 콩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탈지가공대두)를 사용한다. 콩기름을 짜고 남은 콩 '단백질'을 염산을 이용해 아미노산액으로 분해하고, 가성소다로 중화시켜 완제품에 잔류하지 않도록 하여 표기의무를 없앤다. 물론 염산의 맹독 성분도 없어지긴 한다. 문제는 이러한 방법으로는 전통적 방법으로 누룩 효소와의 오랜 숙성 작용으로 만들어지는 풍미를 낼 수 없기에, 다량의 첨가물질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화학조미료, 캐러멜 색소, 사카린, 증점 다당류 등이 그것이다. '양조간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거르지 않은 간장 원액에 아미노산액을 첨가해서 양조한 것을 양조간장이라 하고, 단순하게 아미노산액을 희석한 것을 혼합간장이라 표시한다( p54)


햄에 달갈, 대두, 우유가 포함된 이유는 고기 양을 줄이고 을 타서 직접 증량하기 위해서다. 달걀의 흰자 알부민에는 열을받으면 단단해지는 성질이 있고, 대두단백질은 기름과 물을 유화시켜 응고하게 하는 성질이 있다. 우유에 포함된 카제인이라는 단백질을 화학적으로 처리한 것이 카제인나트륨이다. 이 세가지를 조미액으로 녹인 다음 발색제 색소, 고기의 결착성을 증가시키기 위한 폴리인산염, 등을 추가하여 성형 튜브에 주입하면 고기의 수분이 단단해진다. 



선별

농산물에 작은 벌레 하나라도 붙어 있으면 우리는 그 농산물을 사지 못한다. 농산물이 벌레 먹지 않고 깨끗한 것은 농약을 사용했기 때문이며 모양이 바르고 색깔이 예쁜 것은 선별했기 때문이다. 한 봉지씩 포장 해 파는 것은 하나하나 계량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선별 과정에서 너무나도 높은 비용이 들어간다. 이런 복합적 작용이 슈퍼마켓 매대의 채소 가격을 계속 높이는 것이다. 한편 선별에서 제외된 농산물들은 터무니없이 싼 가격으로 팔리거나 버려진다. 자연은 농산물의 외모를 편애하지 않는다. 오이를 둥글게도 키우고 길죽하게도 키운다. 딸기를 크게도 만들고 작게도 만든다. 그러나 인간은 맛과 영양에 관계없이 공장에서 찍어낸 것과 같은 규격화된 농산물을 원하는 데에서 가격 상승이라는 비극적 상황을 소비자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누적

일본에서, 값싼 편의점 도시락은 합성첨가물의 조합품인 듯하다.  돼지의 임신 114 일 기간동안 사료대신 편의점에서 유통기한 2시간 전에 폐기한 상하지 않은 도시락을 먹였는데, 그걸 먹은 돼지들이 출산한 돼지 새끼들 250 마리가 사산되거나 기형이거나 허약해서 금방죽었다. 여기서 우리는 식품의 안전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하나 하나 개별 포장되어 나오는 식품(도시락)에는 1일 허용 기준치의 화학첨가물이 들어있지만 그것을 매일 먹었을 때 몸에 축적되어 일으키는 효과 말이다. 더는 설명이 필요없다. 


조합

식품첨가물의 조합은 무궁무진하며 각기 다른 첨가물을 조합하는 것을 모두 조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 하다 실제로 청량음료에 들어 있는 비타민 c 와 보존료인 벤조산 나트륨( 안식향산나트륨 ) 이 반응해 독성이 있는 벤젠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영국과 미국 일본에서 엔진이 검출된 청량음료가 발견되었다.


원료

대부분 석유를 원료로 만들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첨가물의 원료는 다양하다. 천연원료로 생각 되는 이름을 가진 동클로로필이라는 녹색 착색 이유는 누에의 똥에서 추출한다. 이 걸 알고는 음식을 사 먹지 못한다.(아래 표 참조)



계속해서 늘어나는 첨가물

일본의 경우 12년간 인가된 첨가물 지정물은 100종류가 늘었다. 2013년에 지정 첨가물의 수는 436품목인데, 어 별로 많지 않네 라고 할 수 있는 수치로 보이는 것은 실제로 개별 품목이 아니라 품목군에 불과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4500종류가 넘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식품 첨가물이 증가하는 이유는 미국과 유럽에서 자국의 농산물을 수출하기 위해 사후(포스트 하비스트) 처리하는 약품의 종류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식품 수입국에서 어떤 식품 첨가물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면 수출국에서는 그걸 수출할 수 없기 때문에 정부에 압박을 가해, 신규 인가를 허용하게 만든다. 온갖 종류의 과일이 지구를 반바퀴 돌아와서 그 길고 긴 여정 끝에 우리 식탁 앞에서도 방금 딴 신선한 야채로 보이는 이유는 말을 안해도 다 안다. 각종 항균제품, 항생제, 곰팡이 퇴치제 등으로 깔끔하게 처리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때로 발암 가능성과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을지 의심할지 말지는 독자가 결정할 일이다. 


가장 더러운 것은 똥이 아니라, 미생물과 엄청난 시간에도 분해되지 않는 강력 합성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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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A. 하인라인 지음, 최세진 옮김 / 아작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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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펭귄클래식 99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소연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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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성의 글쓰기라는 면에서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생각을 전달한 책이다. 강연체로 되어 있는데,  책이 나오던 해보다 한 해 전인 1928년 켐브리지에서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로 두 차례에 걸쳐 했던 강연을 이를 바탕으로 한다. 이 때의 청중들에 대해서는 펭귄 문고의 특성인 매우 길고 친절한 서문에 포함된 비평이나 자료에도 별 내용을 찾을 수 없으나, 그날 강연을 마치고 켐브리지에서 돌아오던 날 쓴 일기에는 청중이 글쓰기를 열망하는 여성들인 것임을 암시하는 문장이 있다.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장에 나타난 그 날 이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강연에 참석한 청중은 '굶주려 있으면서도 씩씩한 젊은 여성들'이었고, '지적이고, 열성적이며, 가난하고, 장차 다 같이 학교 선생이 될 운명을 앞둔' 여성들이었다. 그들에게 1929년 아직 만연된 여성 차별의 굴레를 벗지 못했던 많은 여성들이 투표권과 재산권에 대한 합법적인 권리를 획득한 지 채 얼마 되지 않던, 채 1세기가 지나지 않은 그리 멀지 않은 시대에  버지니아 울프는  그녀들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와인을 마시라고,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지라고, 자신의 계좌로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매년 500파운드씩 들어오는 수입을 가지라고.


난해하게 느꼈던 부분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여성 작가에 대한 비평이 포함되어 있는 부분인데, 울프가 글에서 언급하는 여성작가들은 대개는 지나간 시대의 작가들 혹은 글을 썼던 사람들이고, 동시대의 작가는 실제하는 인물과 가상의 인물이 적당히 섞였다. 글에 언급되는 당시가 이미 1928년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색에 빠져 캠브리지 대학의 잔디밭을 지나다가 '공포와 분노'의 얼굴을 하고 그녀를 저지하는 관리원을 만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여성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때 울프는 자신에게 허용된 길은 자갈길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미 이 때 여성을 문학사의 주인으로 주체적이고 당당한 존재로 끌어올리기 위해 한편의 글을 쓰고 그에 따른 숱한 비난을 들었던 걸 생각한다면 그녀는 자신에게 작가로서 주어진 깋이 포근한 풀밭이 아니라 자갈길이었음을 자각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생각의 날개가 부러진 그녀는 또다른 사유를 따라 걷다 문득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문학사의 한 인물의 저서가 바로 앞에 있는 도서관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도서관에 들어가려고 하나 이 역시 저지당한다. 이유는 마찬가지로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그녀는 자유로운 사유에 따라 남성이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갈 수 있는 장소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저지당하고 가로막히고 불쾌하게 내쫓기는 경험담을 이야기한다. 물론 그것은 당시 여성이라면 누구나 가능한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지 실제로 울프가 겪었던 일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자기만의 방>에서 울프가 주장하고 있는 첫번째는 문학적 재능을 펼치기에는 여성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고립되어 있으며 그것이 얼마나 불가능했는가를 먼저 자각할 수 있는 어떤 상상력을 펼친다. 그녀는 세익스피어에게 매우 재능을 갖춘 누이가 있다고 상상한다. 셰익스피어가 학교를 다니며 라틴어와 기본 문법을 배우고, 자유롭게 극장 주변을 어슬렁 거리다가 극장에서 일자리를 얻고 하는 동안 뛰어난 그의 누이, 오빠만큼 모험심이 강하고 상상력이 풍부하고 세상을 알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차 있을 세익스피어의 누이는 '후라티우스, 베르길리우스의 글을 읽기는 커녕 문법과 논리학을 배울 기회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며 때로 오빠의 책을 들고 읽지만, 그럴 때마다 부모에게 저지당하고 스타킹을 깁거나 스튜를 젓도록 강요받는다. 울프의 상상력 속에서  그 재능있는 세익스피어의 누이가 다락방에서 몰래 습작한 작품은 누가 보기 전에 불태워지고, 스무살이 되기도 전에 약혼자가 정해지고 결혼에 저항하다가 아버지에게 얻어터지고, 결국 모험을 걸고 가출하지만, 배우가 되고 싶어 찾아간 극장 문 앞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해  재능을 펼칠 기회는 여전히 주어지지 않은채, 감독의 아이를 임신해서 결국 비극적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것이 울프가 생각했던, 세익스피어 시대에 한 여성이 세익스피어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면 겪었을 비극이었던 것이다. 


이후 그녀는 시대가 낳은 위대한 여류 문학가들 에밀리 브론테, 로버트 번스, 제인 오스틴,  그리고 자신의 시에 이름을 서명하지 못한 수많은 익명 여성 시인들을 소환하고 그녀들이 여성이라는 굴레 속에서 속박된 삶을 반추하고 글을 쓰는 일에 대해 자유로왔던 남성과 비교하며 사유한다.  에밀리 브론테를 비롯한 대다수의 여성 작가들이 여성이라는 사회적 굴레와 편견 속에서 큰 제약을 가졌고, 그러한 것들은 작품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제인 에어 속에는 샬롯 브론테의 분노가 숨겨져 있고, 그러한 분노는 작품의 일부를 훼손시킨다는 것이다. 울프는 여러 여성 작가들을 비평하지만 그 중에서도 제인오스틴은 울프가 가장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그 위대한 작품들은 사람들이 불쑥불쑥 드나드는 공개된 거실의 한쪽 테이블 위에서 쓰여졌다. 채 30분이라는 덩어리 시간을 혼자만이 오롯이 문학을 위해 허용되지 않는 환경에서 그토록 놀라운 오만과 편견이라는 작품을 완성시켰던 것이다.


또한 울프가 제기하는 중요한 중 하나는 이제까지 남성들에 의해 주도되어 온 모든 종류의 문학에서 여성의 위치는 남성과의 관계 속네서만 그려진다는 점이다. 제인 오스틴의 시대까지도 모든 위대한 픽션 속의 여성이, 남성에 의해 비춰지지만, 실제 여성의 삶에서는 그런 남성과의 관계가 얼마나 작은 부분에 불과한지를 강력하게 제기한다. '자신의 성이 코에 걸어놓은 검거나 붉은 안경을 통해 남녀관계를 관찰하는 남성이 그런 남녀관계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울프는 글쓰기에 있어서 완전한 남성, 완전한 여성이 되는 것은 치명적인 것이라고 발한다.  이 말이 내게는 글쓰기에 있어 성적인 편견이 없어야 한다는 말로 해석된다. 여성성과 남성성을 강조하는 것이 글쓰기에 있어서 아무 도움이 못된다는 뜻이라고도 보여진다. '사람은 남성적인 여성 혹은 여성적인 남성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여성이든 조금이라도 불만을 강조했다간 치명적인 일이 됩니다.' 특히 브론테 자매의 책의 여러 부분을 예로 들어, 여성으로서 의식적으로 말하는 것은 치명적인 일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재능있는 작가가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시간과 돈이다. 울프가 이야기했던 자기만의 공간은 시간이면서 동시에 돈이다. 공간을 가질 수 있으려면 그리고, 그 공간에서 방해받지 않고 글을 쓰려면 그녀가 그 당시에 이야기했던 연 500파운드의 고정된 수입이 필요하다. 이것은 글을 쓰기 위해 돈이 먼저 주어져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여성이 주체적으로 자신이 스스로 돈을 벌 수 있을 만한 사회적 제도와 발판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여성이 글을 써서 그 글로 돈을 받고 그 돈으로 자기만의 방을 소유하거나 임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세익스피어의 시대에 똑같이 재능을 갖추어서 불행했던 세익스피어의 누이를 상상했던 울프는 그녀에게 자기만의 방과 매년 500파운드의 돈을 주라고 제안한다. 그리하여 그녀가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주고, 지금 쓰는 글의 절반을 다 삭제한다 해도 내버려 두자고 제안한다. 그러면 머지않아 그녀는 더 나은 책을 쓰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100년의 시간이 지나면, 그녀는 시인이 되어 있을 거라고.


 그녀에게 자기만의 방과 매년 500파운드의 돈을 주라고, 그녀가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주고, 지금 쓰는 글의 절반을 다 삭제한다 해도 내버려 두자고요. 그러면 머지않아 그녀는 더 나은 책을 쓰게 될 것이라고요. 메리 카마이클이 쓴 『인생의 모험』을 책장 끝에 꽂아놓으면서 나는 말했습니다. 100년의 시간이 지나면, 그녀는 시인이 되어 있을 거라고요



그녀에게 또 다른 100년의 시간을 주어야 해. 나는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100년이 얼추 지난 지금 비록 생전 불행한 삶을 살았지만, 그리고 이 책으로 인해 심한 우울증을 겪어야 했었지만, 그 울프는 이제 100년의 시간에 대한 보상과 그녀의 선구적인 노력으로 많은 것이 바뀌었고, 그녀 자신이 세익스피어만큼 많이 읽히는 작가가 되어 있다. 우아한 문체와 재치있는 입담, 이것이 100년이 가까이나 된 글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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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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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를 달리던 자동차는 가드레일을 박고 시커먼 언덕 밑으로 굴러떨어진다. 한 사람은 살았고 한 사람은 죽었다. 남겨진 사람의 육중한 몸둥이는 턱관절까지 모조리 마비되었지만 보고 듣는 감각은 남겨졌다.  무능한 육체에서 분리되지 못한 정신은 그대로 그 무력 속에 갇혀 버렸다. 만일 이원론적인 생각을 받아들여 육체 없는 영적 생명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마비된 채라도 육체라는 물질 속에 영을 의탁하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연기처럼 혹은 파동처럼 자유로이 떠도는 것이 나을까

오기는 살아남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으나 눈 깜빡임으로 최소한의 수동적 의사 표현이 가능하다. 그 깜박거림의 지독한 수동성이 끔찍하다고 느껴졌다. 생각을 전달할 수 없는 것과 생각할 수 없는 것의 차이는 타자에게 종이장 보다 앏다. 그러나 산 자에게 생각은 자신의 의지로 작동되는 거의 유일한 생명 현상이다. 그는 생각한다. 아내를 생각하고 어릴 때 자살한 엄마를 생각하고 애정 없던 아버지를 생각하고, 열심히 살아내온 인생 여정의 곳곳을 생각하고, 단아하나 속을 알 수 없는 일본계 장모를 생각하고, 고아 사위에게 치졸했던 장인을 생각한다.

대부분의 생각은 아내에 대한 것이다.그의 회상에서 오기가 아내를 회상하는 방식은 타인에 대한 다가갈 수 없는 벽이면서 동시에 자신과 아내가 함께 이루어 가던 삶에 대한 회고인데, 그의 생각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틀로 바라본 아내를 독자에게 설명하는 화자로서 크게 기능한다. 그런데 오기가 설명하는 아내는 다시 또 오기라는 남자를 오기 스스로가 자신을 말하는 것과는 다른 시각으로 보게 한다. 사고 직후 혼자 살아남은 자신이 애틋했던 아내와의 시간들을 회상하는 듯 시작하지만, 그의 생각 속에서 회상하는  아내의 행위를 통해 그리고 그가 아주 약간의 단서만을 주었던 그 자신의 몇가지 행위를 통해 독자로서는 속단할 수 없는 조금은 추악한 남자의 내면 혹은 진실이 숨겨져있음을 알게 된다.

딸을 잃고 혼자 남겨진 장모가 사위의 법적 대리인 역할을 하면서 서서히 변해가는 모습은 공포스럽다. 특히나 구덩이를 파는 목적을 일 수 없다. 그러나 그동안 열심히 무언가를 쓰던 아내가 쓴 글이 자신을 고발하는 글이었으며 이혼을 요구하며 동시에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겠다는 선언이 사고 직전에 있었다는 진실을 마주하고 나니 장모의 행동에는 납득할만산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장편이라 보기엔 짧은 소설임에도 중간쯤에 조금 지루하게 느낀건 사고로 사지가 마비된 사위의 모든걸 가로채려는 장모의 음모가 하루하루 클리셰로 채워지고 약자로서의 오기가 언제까지 추락하는지 그조 무기력하게 지켜보는 익이 힘들기만 할 뿐이었기 때문이었는데, 곧 다시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기가 생각으로 설명하는 아내의 캐릭터가 됭장히 신비스러운 면이 있었고 특히 실제 아내의 모습과는 다르게 포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급작스런 사고가 가져온 육체의 마비 앞에서 자신의 권리와 존엄성을 지키는 일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고 타인끼리 한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는 일에서 어떻게 서로가 서로를 자신의 편의에 의해 정의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갬곰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 알라딘 신간 평가단 도서로 출판사에서 알라딘 신간평가단을 통해 투표로 선정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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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바 2016-05-16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모에 대한 묘사도 신경써서 볼 만한 것 같아요. 장모가 오기에게 처음 건넸던 말이 그렇게 꼬아들을만한 이야기였던지 궁금하기도 한데... 처음엔 장모가 딸의 반지를 가지는 것도 허락받고, 무슨 기도회 목사도 불러오고 할 정도로 사위에 신경을 쓰다가 딸이 남긴 기록을 보고 달라진다고 추정할 수 있는데- 그 기록 이야기를 빼고(오기가 기억을 빨리 못한 건지 아니면 일부러 언급을 늦게 한건지는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보면 장모가 완전 이상한 인물이죠. 고상한 척 하더니 집은 균형이 맞지 않고(작은 집, 큰 가구) 홈드레스를 질질 끌고다니며, 일본혼혈이라 유골함을 거실장에 넣어두고 유년시절과 행복하지 않은 결혼생활로 인해 딸에 집착하는 인물로 그려지잖아요. 오기가 보는 장모가요...

CREBBP 2016-05-16 15:34   좋아요 0 | URL
장모가 천천히 미스테리적 인물로 변해가는게 말씀하신 것처럼 문제의 그 고발문 때문일 것 같은데, 그 일본말이 살려달라는 거라고 하잖아요? 거기에 뭔가 키가 있을 것 같기도 해요. 어찌보면 그냥 헌신적인 인물인 거 같기도 해요. 그렇게 된 사람을 맡아서 보호한다는 거 자체가, 나이 많은 사람이 자식도 없는데 그 뭐 욕심낼 일이라고 그집에 들어가서 수발을 하겠어요. 딸이 쓴 글을 쓰고 이 사람이 얼마나 나쁜지를 알아냈기에 복수 차원에서 덜 신경쓰는 것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줄리안 반스 <예감은 끝나지 않는다>와 비슷한 거 같은데 화자를 얼마나 믿어야 할지 정도 차이인 것 같기도 하구요.

에이바 2016-05-16 17:23   좋아요 0 | URL
오기의 기억이 되살리는 과정에서 화자를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가 생각도 해봤는데 저는 반스 작품보다는 오히려 리틀 스트레인저를 생각했더랬어요. 근데 또 거기까진 너무 나간 것 같고... 저도 자기기만이라는 점에서 여러 작품들을 떠올려 봤는데 딱히 맞아떨어지는 게 없더라고요. 기만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absent in the spring이랑도 다르고요. 암튼 장모라는 인물이 좀 기묘하게 그려지는 것은 오기가 (끝을 예상하면서도) 장모의 속을 알듯 모를듯한 느낌으로 서술하는데 있는 것 같아요. 왜 동료들을 한꺼번에 불러다 오기에게 수치를 주잖아요. 게다가 제이와의 관계도 눈으로 확인하고요... 다스케테쿠다사이 그것도 딸을 잃고 살아가는 자기를 살려달란 말인지, 오기를 살려달란 말인지, 오기를 미워하지 않게 해달라는 말인지 아니면 딸을 살려달란 말인지... 약간 미저리 느낌 나면서도 완전 다른 소설이었어요. ㅎㅎ

CREBBP 2016-05-16 17:49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리틀 스트레인저에 더 가까운 것 같네요. <예감은>에서는 자기기만인 기억의 부재에서 나온 거지만, 여기서는 자기기만이라고 보기도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자기가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는 거잖아요. 자기 잘못을 자기가 모른다는 거, 제이랑 아무일 없었다고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었는데, 그 때는 안그랬고 나중에 일이 생겼다는 것도 아내가 자기들을 의심해서 그런 일이 생겼다고 말하는 그 어린애같은 심리가 그게 그 사람인 것 같아요. 어릴 때 자기 때리는 친구를 물어뜯어 살점이 뜯겨 나가게 했었다는 것도 나중에 생각해보면 어린애로서는 섬찟한 이야기지요.

장모는 처음에는 가족애와 호의로 그랬고, 나중에는 노트 때문에 복수하는 거 같아요. 사람들 앞에서 수치 주는 것도 일부러 딸을 대신해서 제이한테 보란 듯이 그걸 보여주는 거 아닐까 해요. 이렇게 읽으니 재밌네요
 

한 달 읽은 책들을 뒤돌아보는 의미에서 한 달치씩 끊어서 정리하곤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안쓰기 시작했더랬다. 읽는 책에 비해 리뷰를 쓰는 건수도 줄었다. 책읽고 후기 쓰면서 책방살이 블로그를 시작한지 2~3년 지났다.  삶의 대부분의 생애 동안 읽지 못했던 책들에 취미를 붙여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읽으면 죽기 전에는 살면서 궁금했던 것들이 풀리겠지 라는 희망으로 말이다.  결국 아무것도 모른채 죽는다는 걸 확인하는 작업이란 걸 점점 더 깨닫고 있는 거라고나 할까. 그래도 아무것도 모른채 죽는다는 걸 알게 된다는 것만으로도 책읽기의 수확이라면 수확이겠다. 


최근 글의 양이 줄었는데, 다 이유가 있다. 어떤 책방에서는 자기들이 준 책 혹은 지원금을 자기 책방에만 올릴 것을 강조한다. 어떤 곳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A라는 책방에서 한 달에 서너권 살 수 있는 지원금을 받아 책을 사서 읽고 독후감을 올리면, 그것을 다른 책방에는 퍼올리지 말기를 원한다고 치자. 그렇게 되면 마찬가지로 B라는 서점에서 평가단 도서로 받은 책은 설령 B 서점에서 다른 서점에 올리지 말라고 명시하지 않더라도 A 서점에 올리지 말아야 형평성이 맞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두 개의 다른 서점에 올리는 글들이 싱크가 맞지 않는다. 


사실 처음 A 라는 서점의 블로그 살이를 하다가, B 라는 서점으로 이사온 것은 대부분의 서점 블로그들이 서버 관리가 매우 취약해서 언제 글들이 날아갈 지 모르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모든 사회가 그렇듯 둥지를 틀고 나면, 오다 가다 서로 낯을 익히고 인사를 하며 지내듯 자연스럽게 그곳 생태계에 적응하게 된다. 아 무슨 말을 하려다가 이렇게 엉뚱한 말들을 하고 있는 건가..


싱크가 맞지 않는 문제로 돌아와서, 그러하다보니 특정 서점에 책값으로 리뷰를 써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개인적으로 사서 읽은 책들은 리뷰를 미루게 된다. 그나마 신간에 속하는 책들은, 책방 블로그를 하는 분들 대부분이 공통적인 생각이겠지만, 제일 먼저 읽고 먼저 리뷰를 쓰고 싶은 충동 때문에 열심히 리뷰를 쓰지만 고전이나 뒤늦게 읽은 스테디셀러의 경우 그 많고 많은 리뷰 중에 내 글 하나 더 보태는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 싶기도 하고, 또 시대가 검증된 고전에 대해 좋으니 싫으니 내 생각을 밝히는 것 자체가 가당찮게 느껴지기도 해서다. 


그래도 뭘 읽었는지, 얼마나 (개인적으로) 좋았는지 정도는 기록을 해두는 게 좋겠다.


셰익스피어 400주년이라 축제 분위기에 합류를 했다. 

열책 버전의 햄릿부터 조금 읽다가 잘 안읽혀 펭귄 버전으로 마저 읽었다. 멕베드도 열책 버전으로 3막 까지 읽었는데, libribox에서 오디오북을 다운받아 반쯤 알아먹는 극을 청취하며 다시 펭귄 버전으로 읽는 중이다. 문동의 템페스트도 머리맡에 있다. 희곡은 책으로 읽을 때 너무 빠른 진행 때문에 감정 이입이 잘 안된다. 한 마디 말에 담긴 엄청난 양의 감정을 눈으로 휘리릭 읽어버리면 애초 셰익스피어가 의도했던 바를 전혀 캐치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햄릿은 양면적인 감정을 글자로만 파악하기에는 더 어려웠고 맥베스의 경우 독백이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나타나고 있기에 햄릿에 비해 접근하기가 조금 쉬웠다., 오디오북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라디오 방송처럼 여러 사람이 각 역을 맡아서 대본읽기처럼 약간의 연극적인 플레이를 하고 있기에 감정적인 선을 조금 더 파악할 수 있었다. 민음사의 <세계를 향한 의지>도 조금씩 함께 읽고 있는 중인데, 이런 류의 비평과과 전기가 함께 있는 책을 읽으려면 해당 작품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 있어야 더 흥미로울 듯해서 일단 비극 네 개와 템페스트, 그리고 희극도 몇 개 골라 함께 읽으면서 1년 프로젝트로 읽을 작정이다. 문동에서 셰익스피어 전집이 나온 것 같은데. 펭귄북스의 해설과 극적인 번역 다 만족스러워서 일단 있는 거로 읽고, 가끔 오디오북도 함께 듣는 거로.































어떤 계기였는지 모르지만, 맥베스를 읽다가 초서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새치기를 했다. 문예출판사의 <크리세이드와 트로일러스>가 있어서 집어 들었다. 영어의 역사라는 책에서 초서 이야기를 계속 할 때도 읽을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아마도 멕베드와 관련해서 자료를 찾다가 귀가 팔랑거리는 대목을 발견했었던 듯 싶다. 


 워낙 고전이니 재미있을 거라고는 기대도 안하고, 당대의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 의의를 갖기로 했는데, 의외로 스토리 전개가 흥미로왔다. 원작에서대로 행을 그대로 떼어놓다보니 번역된 문장이 시적 효과를 간직한 것도 아니면서 문장의 흐름만 자꾸 끊겨서 가독성이 좋지 않았다. 상사병에 걸린 트로일러스가 친구의 중개로 크리세이드를 꼬여내는 로맨스가 트로이전쟁을 배경으로 진행되는데, 사랑의 열병에 걸린 트로일러스도 그렇고, 후에 트로일러스에게 넘어간 크리세이드에게도 사랑은 죽음이다. 한 번 본 여자가 아른 거려 죽을 것 같고, 보고 싶어 죽을 것 같고, 좋아 죽을 것 같고, 우리가 사랑이라는 것이 문학의 주제가 될 때 다채로운 비유와 다양한 언어를 조합하는 것과 달리 당대의 사랑은 죽음이라는 단어로 주로 표현된다. 죽음 아니면 사랑, 혹은 죽음을 건 사랑인 것이다. 이러다 리뷰 쓰겠네. 






제임스 조이스는 정말 난해하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뭐가 난해하냐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밖에 없는데, 저자가 단편을 통해 뭘 말하고자 하는지 모르겠다는 거다. 읽게 된 동기는 <작가란 무엇인가> 류의 책에서 많은 작가들이 제임스 조이스 를 좋아하고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글을 읽고서였다. 단편집 <더블린 사람들>을 시작했는데, 첫 단편을 읽고 나서는 내가 어디 페이지를 빠뜨리고 읽었나, 아니면 제본(아니 이북이므로 편집 상태가)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라고 의심했더랬다. 19세기 더블린이라는 도시가 처한 암울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너무나도 평범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을 포착했다고 보여진다. 거의 모든 출판사가 이 책을 가지고 있는데 열책 전집과 펭귄 시리즈를 가지고 있어 이것 역시 열책으로 읽었다.가독성은 펭귄보다 열책이 조금 나아보였는데, 영문 버전도 gutenburg 에서 다운받을 수 있으므로 비교 가능하다. 















러시아 문학. 카프카와 불가코프도 읽었다. 불가코프는 읽은지 꽤됐고, 카프카는 변신만 읽었는데 역시 거장이다.. 당시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 너무나도 많은 방법으로 해석되고 있으므로 콕 찝어서 어떻다라고 말하기 어려운 작품이고. 많은 현대 문학은 카프카에 빚지고 있는만큼 작가의 혁신성과 천재성에 감탄.





























쿤데라와 아고타 크리스토프. 구동구권의 문학을 읽을 때 늘 느끼는 거지만, 헛되이 지나간 공산주의 혁명은 문학을 위해서 있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은 세 번정도 되풀이 해서 읽었다. 술술 잘읽히면서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뜨거운 소설. 쿤데라는 역시 쿤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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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딸 2016-05-13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기 전에 한 권이라도 더 읽고 싶은 욕심을 품고 오늘도 지냅니다. 어느 블로그에 이렇게 적혀있더군요. `책 살 시간에 책 읽자` ㅋㅋ 얼마나 찔리던지..
열심히 읽더라도 결국 아무것도 모른채 죽게 될 것이란 말씀에 심하게 공감되어 몇글자 적었습니다.

CREBBP 2016-05-13 17:12   좋아요 0 | URL
돈은 열심히 벌면 죽을 때 남 주고 가야하지만,
책은 열심히 읽으면 남김없이 가지고(?) 없어질 것 같아요.
그래서 죽음만큼 헛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책 살 시간에 책 읽자~~~˝ ㅋㅋ 아 이거 완전 공감이에요.
하루에 책 사려고 책방 페이지에서 뒤적거리는 시간에 이미 산 책이나 읽지.. 하는 생각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에이바 2016-05-13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로일러스가 그런 내용이군요? 흥미로운데 읽기 쉽지 않겠어요. 템페스트 재밌을 듯 해요. 벤 위쇼랑 틸다 스윈튼 나오는 영화를 좀 보다 말았는데 저도 보려고 계획세우는 중이에요. 후기 작품이라 완성도가 높다더라고요. 첨엔 순서대로 읽으려고 했는데 마음 가는대로 읽는게 낫겠다 싶어요. 숙제같이 느껴지면 잘 못 읽을 것 같아서요. 펭귄 해설이 좋다고 하시니 그쪽도 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ㅎㅎ 윌 인 더 월드는 어느 정도 극들을 다 읽고나서 보려고요. 셰익스피어 북 이걸로 작품을 파악중이에요. 스탠리 웰스가 권위자더라고요? 펭귄 해설 아마 이분이 썼을 거예요. 셰 깊이 읽기에 윌 인 더 월드 작가 비평가 나오는데 신역사주의 비평으로 소개되더라고요. 그게 뭐람 ㅠㅠ 대충 이런 것도 있다 글케 보고 있고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건 이런 다양한 비평들이 나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란 생각을 거듭하게 돼요. 올해 bbc에서 특별 공연 방송한 것도 다 보고 싶은데 도저히 시간이 안 나네요. ㅠㅠ

CREBBP 2016-05-14 10:21   좋아요 0 | URL
트로일러스도 그렇고 열책버전의 셰익스피어도 아마 그랬었던 것 같은데 시적 효과가 전혀 없는 문장도 행바꾸기를 원본대로 유지하니까 문장 흐름이 끊겨요. 그게 제일 짜증나는 일이었던 것 같아요. 펭귄버전은 어째 읽기 편하다 했더니만 번역이 문제가 아니라 행바꾸기를 않고 일반 문장으로 이어쓰기해서 읽기가 수월해졌다는거죠. 만일 행바꾸기를 하려면 번역이 아니라 창작수준으로 말의 순서를 다 바꾸었어야죠. 근데 그렇게 할 수 없으니까 차라리 그냥 이어쓰기하는게 나을거라는 생각이에요.

문동에서 셰익스피어를 다른 거 다 놔두고 템페스트를 먼저 펴냈을 때는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후기 작품이라 더 완성도가 높은 거였군요. 저는 솔직히 햄릿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알고 있던 것과 달라서 좀 당황했어요. 우유부단의 대명사가 된 이유를 잘 못찾겠더라구요. 그래서 리뷰도 못쓰고 다시 읽어야지 생각하고 오디오북도 받아놓고 이런 저런 관련된거만 수집하고 있나봐요. 셜록 나오는 공연 진짜 보고 싶어요. 유튜브에 몇분짜리 영상 떴던데 눈물 뚝뚝 떨기며 연기하는 모습 보고 아 내가 책을 잘못 읽었구나 저런 장면을 무심히 휙 지나갔으니 당연히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지 라는 생각을.. 국립극장에서 가끔씩 녹화한 영상으로 상영을 하는 것 같던데 차라리 녹화한 극을 비디오로 보는 건 어떨까 싶기도 하고
bbc에서 한 게 그건가요?


에이바 2016-05-14 21:30   좋아요 1 | URL
나남출판에서 셰익스피어 번역하시는 교수님이 번역에 대한 고민을 서문에 쓰셨던데 아직 제가 다른 극들은 읽지 않아 행바꾸기가 독서흐름에 방해가 되는 줄 몰랐어요. 로미오와 줄리엣 읽으면서는 그런 생각을 못했는데요... 셜록이면 컴버배치 말씀이시죠? 저는 데이빗 테넌트의 햄릿을 영상버전으로 본 적이 있어요. 그때 상당히 호평받았던 걸로 기억해요.ㅋㅋㅋ 같은 건지는 모르겠어요. 전 햄릿 명대사 가지고 주디 덴치 등 배우들이 나와서 티격태격하는 영상이 번역돼있길래 그것만 봤어요. 400주년 기념으로 방영한 거라... 아마 유투브에 올라오지 않았을까 해요... 컴버배치가 잘 나가긴 하나봐요. 햄릿 대사치는데 갑자기 등장해서 좀 놀랐다는ㅋㅋ

CREBBP 2016-05-14 21:41   좋아요 0 | URL
저도 그 글 (아마도 에이바님이 옮겨주셔서 읽었던 것 같은데) 읽고 끄덕끄덕 했었는데 열책버전은 그랬던 것 같고.. (이게 또 확실치 않다는 ㅋㅋ) 크리세이드는 확실히 그래서 짜증났구요. 문장 구조가 다르다보니 행바꾸기를 해봤자 엉뚱한 곳에서 쉬지 않아야 할 곳에서 숨을 한참 쉬어 지나가버리니까 저한테는 몰입이 방해되더라구요. 셰익스피어도 열책으로 시작했다가 이상하게 몰입이 잘 안돼서 펭귄으로 갔던 것 같은데 번역차이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어요

컴버배치 정말... 보안 철저해서 유튭에는 3분 남짓 밖에 안뜨더라구요. 근데 그 장면이 정말 극 적이어서 꼭 그 버전을 보고 싶지 뭐에요. ㅠ.ㅠ 딴거 찾아봐야갰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