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펭귄클래식 99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소연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여성의 글쓰기라는 면에서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생각을 전달한 책이다. 강연체로 되어 있는데,  책이 나오던 해보다 한 해 전인 1928년 켐브리지에서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로 두 차례에 걸쳐 했던 강연을 이를 바탕으로 한다. 이 때의 청중들에 대해서는 펭귄 문고의 특성인 매우 길고 친절한 서문에 포함된 비평이나 자료에도 별 내용을 찾을 수 없으나, 그날 강연을 마치고 켐브리지에서 돌아오던 날 쓴 일기에는 청중이 글쓰기를 열망하는 여성들인 것임을 암시하는 문장이 있다.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장에 나타난 그 날 이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강연에 참석한 청중은 '굶주려 있으면서도 씩씩한 젊은 여성들'이었고, '지적이고, 열성적이며, 가난하고, 장차 다 같이 학교 선생이 될 운명을 앞둔' 여성들이었다. 그들에게 1929년 아직 만연된 여성 차별의 굴레를 벗지 못했던 많은 여성들이 투표권과 재산권에 대한 합법적인 권리를 획득한 지 채 얼마 되지 않던, 채 1세기가 지나지 않은 그리 멀지 않은 시대에  버지니아 울프는  그녀들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와인을 마시라고,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지라고, 자신의 계좌로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매년 500파운드씩 들어오는 수입을 가지라고.


난해하게 느꼈던 부분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여성 작가에 대한 비평이 포함되어 있는 부분인데, 울프가 글에서 언급하는 여성작가들은 대개는 지나간 시대의 작가들 혹은 글을 썼던 사람들이고, 동시대의 작가는 실제하는 인물과 가상의 인물이 적당히 섞였다. 글에 언급되는 당시가 이미 1928년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색에 빠져 캠브리지 대학의 잔디밭을 지나다가 '공포와 분노'의 얼굴을 하고 그녀를 저지하는 관리원을 만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여성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때 울프는 자신에게 허용된 길은 자갈길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미 이 때 여성을 문학사의 주인으로 주체적이고 당당한 존재로 끌어올리기 위해 한편의 글을 쓰고 그에 따른 숱한 비난을 들었던 걸 생각한다면 그녀는 자신에게 작가로서 주어진 깋이 포근한 풀밭이 아니라 자갈길이었음을 자각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생각의 날개가 부러진 그녀는 또다른 사유를 따라 걷다 문득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문학사의 한 인물의 저서가 바로 앞에 있는 도서관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도서관에 들어가려고 하나 이 역시 저지당한다. 이유는 마찬가지로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그녀는 자유로운 사유에 따라 남성이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갈 수 있는 장소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저지당하고 가로막히고 불쾌하게 내쫓기는 경험담을 이야기한다. 물론 그것은 당시 여성이라면 누구나 가능한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지 실제로 울프가 겪었던 일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자기만의 방>에서 울프가 주장하고 있는 첫번째는 문학적 재능을 펼치기에는 여성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고립되어 있으며 그것이 얼마나 불가능했는가를 먼저 자각할 수 있는 어떤 상상력을 펼친다. 그녀는 세익스피어에게 매우 재능을 갖춘 누이가 있다고 상상한다. 셰익스피어가 학교를 다니며 라틴어와 기본 문법을 배우고, 자유롭게 극장 주변을 어슬렁 거리다가 극장에서 일자리를 얻고 하는 동안 뛰어난 그의 누이, 오빠만큼 모험심이 강하고 상상력이 풍부하고 세상을 알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차 있을 세익스피어의 누이는 '후라티우스, 베르길리우스의 글을 읽기는 커녕 문법과 논리학을 배울 기회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며 때로 오빠의 책을 들고 읽지만, 그럴 때마다 부모에게 저지당하고 스타킹을 깁거나 스튜를 젓도록 강요받는다. 울프의 상상력 속에서  그 재능있는 세익스피어의 누이가 다락방에서 몰래 습작한 작품은 누가 보기 전에 불태워지고, 스무살이 되기도 전에 약혼자가 정해지고 결혼에 저항하다가 아버지에게 얻어터지고, 결국 모험을 걸고 가출하지만, 배우가 되고 싶어 찾아간 극장 문 앞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해  재능을 펼칠 기회는 여전히 주어지지 않은채, 감독의 아이를 임신해서 결국 비극적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것이 울프가 생각했던, 세익스피어 시대에 한 여성이 세익스피어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면 겪었을 비극이었던 것이다. 


이후 그녀는 시대가 낳은 위대한 여류 문학가들 에밀리 브론테, 로버트 번스, 제인 오스틴,  그리고 자신의 시에 이름을 서명하지 못한 수많은 익명 여성 시인들을 소환하고 그녀들이 여성이라는 굴레 속에서 속박된 삶을 반추하고 글을 쓰는 일에 대해 자유로왔던 남성과 비교하며 사유한다.  에밀리 브론테를 비롯한 대다수의 여성 작가들이 여성이라는 사회적 굴레와 편견 속에서 큰 제약을 가졌고, 그러한 것들은 작품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제인 에어 속에는 샬롯 브론테의 분노가 숨겨져 있고, 그러한 분노는 작품의 일부를 훼손시킨다는 것이다. 울프는 여러 여성 작가들을 비평하지만 그 중에서도 제인오스틴은 울프가 가장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그 위대한 작품들은 사람들이 불쑥불쑥 드나드는 공개된 거실의 한쪽 테이블 위에서 쓰여졌다. 채 30분이라는 덩어리 시간을 혼자만이 오롯이 문학을 위해 허용되지 않는 환경에서 그토록 놀라운 오만과 편견이라는 작품을 완성시켰던 것이다.


또한 울프가 제기하는 중요한 중 하나는 이제까지 남성들에 의해 주도되어 온 모든 종류의 문학에서 여성의 위치는 남성과의 관계 속네서만 그려진다는 점이다. 제인 오스틴의 시대까지도 모든 위대한 픽션 속의 여성이, 남성에 의해 비춰지지만, 실제 여성의 삶에서는 그런 남성과의 관계가 얼마나 작은 부분에 불과한지를 강력하게 제기한다. '자신의 성이 코에 걸어놓은 검거나 붉은 안경을 통해 남녀관계를 관찰하는 남성이 그런 남녀관계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울프는 글쓰기에 있어서 완전한 남성, 완전한 여성이 되는 것은 치명적인 것이라고 발한다.  이 말이 내게는 글쓰기에 있어 성적인 편견이 없어야 한다는 말로 해석된다. 여성성과 남성성을 강조하는 것이 글쓰기에 있어서 아무 도움이 못된다는 뜻이라고도 보여진다. '사람은 남성적인 여성 혹은 여성적인 남성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여성이든 조금이라도 불만을 강조했다간 치명적인 일이 됩니다.' 특히 브론테 자매의 책의 여러 부분을 예로 들어, 여성으로서 의식적으로 말하는 것은 치명적인 일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재능있는 작가가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시간과 돈이다. 울프가 이야기했던 자기만의 공간은 시간이면서 동시에 돈이다. 공간을 가질 수 있으려면 그리고, 그 공간에서 방해받지 않고 글을 쓰려면 그녀가 그 당시에 이야기했던 연 500파운드의 고정된 수입이 필요하다. 이것은 글을 쓰기 위해 돈이 먼저 주어져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여성이 주체적으로 자신이 스스로 돈을 벌 수 있을 만한 사회적 제도와 발판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여성이 글을 써서 그 글로 돈을 받고 그 돈으로 자기만의 방을 소유하거나 임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세익스피어의 시대에 똑같이 재능을 갖추어서 불행했던 세익스피어의 누이를 상상했던 울프는 그녀에게 자기만의 방과 매년 500파운드의 돈을 주라고 제안한다. 그리하여 그녀가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주고, 지금 쓰는 글의 절반을 다 삭제한다 해도 내버려 두자고 제안한다. 그러면 머지않아 그녀는 더 나은 책을 쓰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100년의 시간이 지나면, 그녀는 시인이 되어 있을 거라고.


 그녀에게 자기만의 방과 매년 500파운드의 돈을 주라고, 그녀가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주고, 지금 쓰는 글의 절반을 다 삭제한다 해도 내버려 두자고요. 그러면 머지않아 그녀는 더 나은 책을 쓰게 될 것이라고요. 메리 카마이클이 쓴 『인생의 모험』을 책장 끝에 꽂아놓으면서 나는 말했습니다. 100년의 시간이 지나면, 그녀는 시인이 되어 있을 거라고요



그녀에게 또 다른 100년의 시간을 주어야 해. 나는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100년이 얼추 지난 지금 비록 생전 불행한 삶을 살았지만, 그리고 이 책으로 인해 심한 우울증을 겪어야 했었지만, 그 울프는 이제 100년의 시간에 대한 보상과 그녀의 선구적인 노력으로 많은 것이 바뀌었고, 그녀 자신이 세익스피어만큼 많이 읽히는 작가가 되어 있다. 우아한 문체와 재치있는 입담, 이것이 100년이 가까이나 된 글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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