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나의 선택 1 - 3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3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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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라가 드디어 로마 최고의 자리에 서게되기까지의 숱한 전쟁과 로마 입성, 그리고 겨우 아이티를 벗어난 열여덟의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가 천천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까지의 격동하던 로마 공화정 말기가 배경이다. 이제까지 나온 로마의 일인자 세 개의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몰입도가 높고,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부분이라 아니할 수가 없다. 주인공은 술라다. 풀잎관의 2부와 3부를 아직 읽지 않은 탓으로 왜서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그토록 잘생기고 저돌적이고 매력적인 술라가 늙고 이빨은 다 빠지고 머리털도 빠져 가발은 삐딱하게 쓴 채로 변방의 군사들을 지휘하는 모습은 이만저만 실망스러 게 아니다. 게다가 얼굴에는 피부병과 햇빛에 의한 화상으로 말이 아니다.  게다가 그 가려움증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술라는 술에 쩔어있다. 술라의 편에 가담하기로 한 어린 폼페이우스는 그 모습에 실망하지만 곧 그 추한 겉모습과 지병으로도 희석되지 않는 엄청난 카리스마를 발견한다.

갑작스레 맞닥드힌 아우렐리아(카이사르의 엄마)에게 늙어 흉칙한 모습을 보여야 했을 심정은 안타깝다.  술라와 아우렐리아는 서로 의 모습에 매혹되어 호감을 가지고 숱한 의혹과 억측과 루머들을 재생산하며 아슬아슬하게 우정과 사랑의 경계선 사이의 어딘가에서 서서, 서로를 경계하며 동시에 서로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로마는 이제 가이우스 마리우스의 시대가 지고 카르보와 킨나의 시대였으며 어린 마리우스 2세가 집정관에 앉는다.  술라가 이 '무능한' 정권으로부터 로마를 차지하는 과정, 전쟁을 이끄는 모습,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하고 하나 둘씩 적을 제거해가면서 로마로 진군해가는 모습은 전설에 묻힌 전투에 손에 잡힐것 같은 현실감을 부여한다. 애초 카르보의 군대에 비해 비교 불가능한 적은 병력으로 숱한 전투들을 승리로 이끌고 로마로 입성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전투 수행 능력 뿐만 아니다. 상황을 읽는 기술, 지휘관들을 평가하고 적재 적소에 배치하면서 주고 받을 것들을 명확히하고 그 약속들을 지켜가는 신뢰와 동시에 누구라도 범접 못할 카리스마 등 리더로서의 타고난 기질 등이 뒷받침한다. 전략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작전으로 대규모 전투와 희생 없이 많은 지역들을 투항시켜 군단의 수를 늘이면서 전진하는 한편 실전에 돌입하면 사기 충전한 군인들이 상대를 씹어먹도록 나아가는 것은 술라의 타고난 능력이었다.


그러나 로마를 접수한 후 벌이는 서늘한 숙청과 살육의 현장은 빈틈없고 차가운 술라만의 매력적 캐릭터를 더욱 오싹하게 한다. 가이우스 마리우스의 아내 율리아와 아우렐리아와의 관계, 그리고 카이사르가 결혼한 어린 아내 킨날라가 킨나의 딸이라는 사실, 거가에 카이사르가 유피테르 대제관이자 동시에 원로원 의원이라는 사실들은 술라가 로마를 접수하여 최고 위치인 독재관이 되어 로마를 마치 장난감 주무르듯 마음대로 가지고 노는 사실과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는 스스로 만든 법의 애매모호함을 이용하여 자신의 손에는 피 한방울 묻히지 않고 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카이사르가 대제관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가 아끼는 킨날라와 이혼해야 하는 결정을 전달한다. 자신의 명에 이의를 제기하는 누구도 그 자리에서 살해하는 서슬퍼런 술라의 결정에 불복하고 도망의 길에 오르나 학질에 걸려 죽을 고비를 맞은 카이사르, 그리고 그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술라의 아내, 딸, 그리고 많은 신녀들이 아우렐리아와 함께 똘똘뭉쳐 술라에게 청하는 즉석 비극은 그야말로 숨을 멋게 하는 멋진 장면이다.


이야기의 초반 전투에서 이미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드러내고 술라에게 한 자리 얻어낸 어린 폼페이우스와 가이우스 마리우스의 계략으로 유피테르 대제관이라는 굴레에 갇혀 거대한 야망을 펼치지 못할 팔자를 원망하던 카이사르가 술라와의 아슬아슬한 기싸움과 현명하고 강인한 아우렐리아의 지지로 드디어 대제관의 덧에서 벗어난 일은 앞으로 전개될 흥미진진한 삼두정치의 서막이자 제정 로마로의 거대한 물결을 예고한다. 아 너무 재미있었다. 아직 전편의 일부를 못보았지만 이번 편을 먼저 봐야겠다.

이렇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라니, 정말 잘 만든 플롯이지만 사실 역사 그 자체에 기반한 것 아닌가. 전투의 디테일은 묘사되어 있지 않지만 그들이 맞닥뜨린 장벽과 선택했던 전략들은 기록과 일치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은 역사에 기록된 인물 그대로 그 시기에 있던 사람들,그들이 먹은 음식, 그들이 살아간 방식, 법과 사회 체계 모두 기록속에 편재해 있던 것들을 콜린 매컬로의 붓끝에서 생생하게 살아 걸어나올 것처럼 재탄생되었다.

독재관, 술라는 왕이될 생각은 없었지만 결국 훗날 카이사르에게 빌미를 주게 된 그 독재 지배 체계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출생과 능력에 의해 당연히 누려야 했던 정당한 자리를 연거푸 앗아간 상황과 사건들로 이루어진 비정한 음모와의 싸움이었다. 그에게는 아무런 선택권도, 관직의 사다리를 합법적으로 명예롭게 올라갈 아무런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모퉁이마다 항상 누군가가 또는 무언가가 그를 막았고 빠르고 합법적인 길로 갈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지금 여기에 술라가 있었다. 텅빈 대 경기장을 따라 잘못된 방향으로 말을 타고 있는 뱃속에 승리와 상실이 쌍둥이처럼 함께 불타고 있는 쉰여덟살의 황폐한 인간. 로마의 주인, 로마의 일인자. 그는 마치내 스스로를 증명했다. 그러나 그 나이와 초조함과 임박한 죽음에 대한 실망감은 그의 기쁨을 쓰디쓴 슬픔, 망가진 쾌락, 악화된 고통과 함께 응고시켰다. 얼마나 늦은, 얼마나 쓰라린, 얼마나 뒤틀린 승리인가"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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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8 16: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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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30 01: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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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30 09: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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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30 20: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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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30 22: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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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전에 쓴 내용을 다시 복습 차원에서 긁어왔다. 지금은 뭔가가 조금 바뀌어졌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퍼온다. 

언제부터인가 대형 포탈 사이트의 파워블로거들의 일부 컨텐츠가 남의 글을 베껴서 잘 포장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례들이 간간히 보고된다.

하루 방문객 수가 수만에서 수십만에 이르는 대형 파워블로거들은

자신의 파워를 상업적 목적에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요리나 수공예 등의 사이트처럼 약간의 창작적 성격이 가미된 경우 그렇다.

전에 누가 늙은 오이를 잔뜩 주어서 이걸 어케 먹을 수 있나 찾아보니

국내에서 책도 많이 내고 아주 유명한 파워블로거에 올려진 요리법과

어떤 조용한 개인 블로거에서 올린 요리법이 비슷했다.

문제는 요리법 뿐만 아니라, 어릴 때를 회상하며 밥을 비벼먹었더니 아이들이 모두 한그릇 뚝딱 해치웠다는 식의 스토리텔링과, 사진의 배치 같은 것 전체적 구조가 너무나도 유사했기 때문에(그렇지 않으면 내가 기억도 못했을 듯) 해당 블로거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즉시 탐정놀이에 돌입했다(그 때는 시간이 좀 남았다).  

이 유명한 파워블로거의 메뉴를 뒤지고 비슷한 요리들을 구글에서 찾아보았는데,

다른 곳에서 교묘하게 베껴온 듯한 사례가 많았다. 

물론 똑같이 베끼진 않았다.

전문 사진사까지 고용하고 상업적으로 활동하는 파워블로거인 만큼 사진도 훨씬 멋있고 맛깔스럽다. 

훨씬 전에 쓴 것으로 보이는 무명의 블로거가 올린 사진은 시커멓고 뿌옇고 그리 맛없어보이지만, 후자의 파워블로거가 올린 사진은 깔끔한 식탁에 조명을 사용하여 너무나도 맛깔스러워 없는 노각이라도 사러 가고 싶게 만든다. 

같은 재료로 만드는 음식인데 비슷할 수 있고, 유사할 수 있지, 또 매일 그렇게 새로운 요리를 창조해내는데, 여기 저기서 요리법을 참고할 수도 있는 거지 라는 의견과 함께, 해당 파워블로거를 음해하는 세력으로 몰아대는 사람까지 있었다. 여러가지 의견이야 있을 수 있는 거고, 음해세력이라는 모함도(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많으니까) 그러려니 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질문이 있다.

이 파워블로거는 저작권을 침해한 것일까? 

블로거들이 올린 글은 저작권이 보호될까? 

있다면 누구의 소속일까? 

사이트 제공자가 저작권을 가진다는 말도 얼핏 들은 것 같고. 더 알아봐야 할 것 같지만, 내가 쓰는 글이 일단 웹상에 표시되면 옳건 그르건 완전히 내 것이 아니게 되는 건 맞는 거 같다. 

일단 공개된 컨텐츠이니 아무나 가져다가 어떻게 이용하여도 괜찮은걸까?


다음은 위키피디아에서 가져온 내용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는 특정 조건에 따라 저작물 배포를 허용하는 저작권 라이선스 중 하나이다.

간단히 CCL이라고도 한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는 다음 종류의 저작물 권리를 선택적으로  표시할 수 있다. 


Attribution저작자 표시 (Attribution; by)저작물을 사용할 때에 원저작자를 꼭 표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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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re-alike동일조건 변경 허락 (Share-alike; sa)2차 저작물을 만들 때 그 저작물에도 원저작물과 같은 라이선스를 사용해야 한다


블로그이든, 카페이든, 공개된 게시판에 글이나, 그림이나 무엇이든 올릴때,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라는 문구와 함께 선택된 저작권리 아이콘을 표시하면 해당 저작물에 대한 라이센스를 함께 공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위의 내용은 위키피디어에서 일부 인용하였다.((http://ko.wikipedia.org/) 그리고 문서의 밑에는 다음과 같은 표시가 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


이것은 내가 자유로이 위키피디어의 저 내용을 일부 인용하거나 수정 변경할 수 있지만

저작자가 위키피디아임을 표시해야 하며, 

2차 저작물인 이 저작물 역시 동일하게 크리에이티브 커먼즈의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의 라이센스를 가진다는 뜻이다. 

상업적 이용을 막고 싶다면 처음부터 비영리 를 선택하고,

저작물의 변경을 원하지 않는다면 변경금지를 선택하면 된다.  


다음과 같은 조합이 가능하다. 


변경 금지 조항과 동일조건 변경 허락 조항은 동시에 사용할 수 없으므로 총 11가지의 라이선스를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많은 나라에서 저작자 표시를 기본 사항으로 채택하고 있어 일반적으로 다음의 6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

  • 저작자 표시(BY)
  • 저작자 표시-비영리(BY-NC)
  •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BY-NC-ND)
  •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 허락(BY-NC-SA)
  •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BY-ND)
  •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 허락(BY-SA)

그리고 몇몇 국가의 경우 특수한 상황에 맞게 개발된 샘플링(sampling), 셰어뮤직(sharemusic) 등의 라이선스 조건도 사용할 수 있다.


마침 알라딘 서재 관리에 가보니 다음과 같은 설정이 있었다. 



나의정보 > 정보공개/저작권설정 에 있다. 허접한 블로그 하나 운영하면서 누가 니 글을 베낀다고 그런 것까지 표시하냐 라고 한다면 별로 할 말은 없지만, 책은 지식이다. 라이센스에 대한 지식도 책의 일부분이 다루는 지식이다. 책을 파는 서점에서 운영하는 블로그라면 조금 더 이러한 것들에 대해 선구(?)적인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 예전에 친구가 블로그와 카페에 올렸던 글을 몽땅 엮어 책을 만들었는데, 그러기 위해 자기 자신의 게시물을 카페와 블로그에서 모두 지워야 했다. 뭐 그 게시물 자체의 저작권이 해당 카페와 블로그에 있다나 하면서 모두 지울것을 출판사에서 요구하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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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바 2016-09-26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잊고 있었는데 저도 알라딘 서재에 저거 설정했었어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로요. 다른 분들게도 도움이 될 정보 같아요.

CREBBP 2016-09-26 19:00   좋아요 0 | URL
전 알라딘 서재에 이 기능 있는거 글 쓰다가 알게 됐어요. 이제서야 표시하네요. 뭐 대단한 건 없지만, 그래도 변경불가, 상업적 이용불가 등등 다 설정했어요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열린책들 세계문학 54
볼테르 지음, 이봉지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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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위고는 이탈리아에 르네상스가 있고 독일의 종교개혁이 있다면 프랑스에는 볼테르가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볼테르가 르네상스라는 이탈리아의 문화혁명과 종교개혁이라는 독일을 종교혁명과 동일한 가치와 의미를 갖는 프랑스 사상 혁명과 문학 혁명을  불러일으킨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글쓰기 동서대전 - 한정주저 p261 내용). 이것은 글쓰기라는 무대에서 보았을 때의 이야기인데, 한 문학가를 조명하는 데, 문학적 측면 외적인 면을 보려면 역사가 어떻게 그를 기술하고 있는지를 읽으면 보다 정확할 것이다. <프랑스사>(앙드레 모루아)에서도 볼테르가 나오는데, 백과전서의 편집에 관여한 대표적 계몽주의 사상가인 것은 맞지만, 종교적 입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달랐던  듯싶다. 어쨌든 투옥과 망명을 밥먹듯 하고 다녔는데, 그 이유는 책을 읽어보면 짐작할 수 있다.


풍자에는 기존 사회질서의 불합리와 불공정을 상징적으로 폭로하고 고발함으로써 실체를 알리려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다. 볼테르의 작품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는 낙관주의 사상이 지배하고 있던 유럽의 가치 체제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한 청년이 유럽 전역과 남아메리카를 거쳐 다시 유럽으로 돌아오는 고난의 여정을 통해 신랄하게 고발한다. 이 작품의 미학은 되풀이되는 비극과 불운한 이야기의 폭풍 속에서 독자는 어쩔 수 없이 웃을 수밖에 없도록 쓰여진 풍자극이라는 데 있다.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이야기 세례 속에서 순진하기 짝이 없는 캉디드는 수도 없이 많은 죽을 고비를 맞이하는데, 그와 그가 만나는 주변 사람들의 이러한 수난은 영리하게 배치된 시대적 억압, 폭력, 학살, 그리고 부조리들과 맞부딪쳐 피흘려 스러지고 사라져가는 과정이다. 


베스트팔렌 지방의 그림같이 멋있는 성에 사는 부유한 남작의 조카로서, 팡글로스의 낙관주의 철학을 배우고 믿으며 평화롭게 살던 캉디드는 남작의 딸 퀴네공드와 눈이 맞아, 변변한 사랑조차 해보지 못하고 쫓겨난다. 그는 지상 낙원이었던 성 밖으로 쫓겨나자 이 순진한 캉디드는 그래도 '모든 것의 최상인 세상이 잘 굴러간다'고 믿지만, 그 믿음과 동시에 불가리아 군대에 팔려가고 잔인한 학살극이 계속되는 전쟁터에서 겨우 빠져나왔지만, 우연히 거지가 된 팡글로스 선생을 만나, 퀴네공드가 불가리아 군사들에 의해 배를 갈리우고 죽임을 당했으며, 남작의 가족들도 모두 죽었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는다. 리스본으로 향하는 배에서 폭풍을 만난 그들은 어렵게 살아남아 리스본에 도착했으나, 이 때 이 도시는 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모든 사람들이 무더진 잔해 속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가까스레 살아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리스본의 3/4을 파괴한 지진에 대한 재발방지 대책으로 행해진 종교재판이다. 팡글로스의 죄는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고 캉디드는 그것을 들었다는 것으로, 팡글로스는 교수형에 처해지고, 캉디드는 피투성이가 되도록 볼기를 맞는다. 다 죽게된 캉디드는 노파의 도움으로 기력을 차리게 되고, 꿈에 그리던 퀴네공드가 살아있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녀를 산 유대인 상인과 종교 재판소장 두 사람의 공동 소유가 되어 농락당하고,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칼을 휘두르던 유대인과 종교재판소장을 살해하고 쫓기는 신세가 된다. 도망가던 중 수도사에게 돈과 다이아몬드를 모두 도둑맞아 땡전한 푼 안남은 일행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팡글로스의 세상에 대한 낙관주의를 믿으며, 캉디드가 불가리스 군대에 복무한 경험을 이용하여 파라과이의 예수회 신부들의 반란을 응징하러 떠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행 배에 오른다. 그러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도착하자 재판소장 살해혐의로 그를 쫓던 법관을 맞닥뜨리고, 음흉한 총독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된 퀴네공드를 뒤로하고 도망을 친다. 


갑자기 등장한 카캄보와 함께 도망친 곳은 파라과이의 주둔군 사령관의 집인데, 우연히도 학살의 와중에 살아남은 퀴네공드의 오빠가 주둔군 사령관이자, 신부로 와 있는 것이다. 재회의 기쁨도 잠시, 부에노스 아이레스 총독의 관저에 있는 퀴네공드를 구해 결혼하겠다고 하자, 신부는 어찌 캉디드가 감히 72대 조상에 빛나는 자신의 누이와 결혼할 수 있느냐며, 화를 내며 칼을 뽑자, 캉디드도 할 수 없이 칼을 들어 그를 찔러 죽인다. 이렇게 끝날것 같이 않은 고난은 계속되지만, 그들은 천신만고 끝에 엘도라도에 도착하고, 돌처럼 쌓여있는 금은보화와 다이아몬드를 잔뜩 싸가지고 되돌아오지만, 길 위에는 수많은 도둑들, 사기꾼들이 널려져 있고 퀴네공드를 구해 그녀에게 궁궐같은 집을 지어주기 위해 보석들은 차차 줄어든다. 



「최선의 세계에서는 모든 사건들이 연계되어 있네. 만일 자네가 퀴네공드 양을 사랑한 죄로 엉덩이를 발길로 차이면서 성에서 쫓겨나지 않았더라면, 또 종교 재판을 받지 않았더라면, 또 걸어서 아메리카 대륙을 누비지 않았더라면, 또 남작을 칼로 찌르지 않았더라면, 또 엘도라도에서 가지고 온 양들을 모두 잃지 않았더라면 자네는 여기서 설탕에 절인 레몬과 피스타치오를 먹지 못했을 것 아닌가..


훗날 그 아름답던 퀴네공드를 구해 길에서 만난 철학자들과 죽은 줄 알았던 퀴네공드의 오빠와 팡갈로스 모두 만나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지만, 그 숱한 세상 부조리를 겪고 나서도 여전히 팡갈로스는 낙관주의를 버리지 못하고, 이제 팡갈로스의 낙관주의는 캉디드에게 의심으로 바뀐다. 낙관주의가 무엇이냐고 묻는 하인 카캄보에게 캉디드는 대답한다. 아 그건 나쁜데도 불구하고 좋다고 마구잡이로 우기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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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이랑 이야기를 하다가, 번역 불가한 한국 말들에 대한 외국인의 시각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한이다. 번역이 굉장히 어려운 말인데, 아일랜드인들이 가진 민족적 정서와 비슷하다는 말이었다. 한때 아일랜드 기근도 생각나고, 오랜 영국의 식민상태와 부패한 모습에서 우리나라 서민들이 느끼는 '한'을 찾을 수 있다니 이거 참. 내가 살면서 아일랜드 사람을 알았던 적이 있는데, 영국에서 다니던 직장에서였다. 나이 많은 그 분은 회사에서 우편물을 담당하고 이런 저런 자잘한 손이 가는 보이지 않는 일들을 맡아 하고 있었는데, 직장 내 모든 사람들이 가장 푸근하고 따뜻한 분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퇴직이 다가오고 있는 나이였는데 퇴직하면 고향으로 돌아가 B&B(아침주는 민박?)를 운영하는 게 꿈이라고 했었다. 














제임스 조이스는 아일랜드에서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다. 동상을 비롯해서 박물관, 제임스조이스 거리, 술집까지 더블린 시내 곳곳에는 제임스 조이스와 관련된 상징물과 문화 컨텐츠들이 가득하다. 영미 작가로는 세익스피어에 비견될만큼 위대한 작가로 평가되고 있으며 20세기 영어권 문학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갖는다. 그나마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쉬운 편이라고 말하는 더블린 사람들을 몇 달에 걸쳐 읽었다. 잘 이해하지 못해서, 다시 읽거나 번역본을 바꿔가며 읽었고, 심지어 영문판까지 들쳐보았는데, 오래전에 정규 라디오 방송에서 다루고, 팟캐스트로도 파일이 남아있는 영미문학관에서 30여회에 걸쳐서 방송한 팟캐스트 방송과 펭귄 클래식의 해설이 도움이 되었다. 


더블린사람들을 이해하려면 일단 제임스 조이스가 애증어린 마음으로 그려나간 더블린을 수도로 가진 아일랜드라는 나라가 당시 처해있던 역사적 상황을 이해하여야 한다. 정치지도자 파넬의 죽음으로 카톨릭 민족주의자들이 품고 있던 독립에 대한 희망이 산산조각난 현실 앞에 식민통치의 그늘과 만성적 부조리의 상징이 된 카톨릭 종교, 그리고 열뜬 민족주의자들에 대한 환멸을 제임스 조이스는 건조하고 간결한 문체로 담았다. 


조이스는 이 작품집을 개별 작품의 연속으로 읽지 말고, 복잡한 구조를 지닌 하나의 작품으로 읽어줄 것을 바랐다. 얼핏 보면 단편집 같아 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제임스 조이스 스스로가 '마비'라고 명칭한 커다란 주제로 모아져, 일관된 지향점을 갖는다. 18세기 초만 해도 베네치아와 견줄 수 있을만큼 명물 도시로 자리매김했던 더블린은 연방법의 적용을 받아 그 위치가 축소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유무역과 식민적 약탈적 통치로 인해 쇠퇴의 길로 들어선다. 이것은 제임스 조이스 가족의 쇠퇴와 맞물리면서, 작품과 시대와 개인을 연결시킨다. 그가 말하고 있는 더블린의 마비란 무엇인가. 궁핍과 불공정한 사회 속에서 타락하고 무능한 사람들의 마비된 양심, 마비된 진실, 마비된 존엄성, 결국은 마비된 아일랜드 정신이기도 하다. 


첫 작품인 <자매>에 이어, <어떤만남>과 <에러비>로 이어지면서 주인공이었던 유년기 소년은 <이블린> <경주가 끝난 후> <두 건달> 등을 거치며 차차 청년기의 소년 소녀로 바뀌고,  마지막 <죽은 사람들>까지 이어진다. 이렇게 나이와 성별과 직업과 성격이 바뀌면서 주인공들은 더블린 사회의 여러 층에 포진된 사람들을 대표하고 있지만, 그들은 그 어떤 위치의 다른 삶을 통해서도  한결같이 더블린의 만성적인 무능과 타락을 보여준다. 만나고, 허세를 부리고, 술마시고, 그 아무 일도 일어난 것 같지 무료하고 단순한 일상의 지속은 조이스가 보여주고자했던,  닦아내고 윤내지 않은 진실 그대로의 <더블린 사람들>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열린 결말이 익숙하지 않은 세대였다. 독자로서 우리는 <자매>의 죽은 신부가 왜 마비되었는지, 무엇을 괴로워했는지, 그것이 혹시 매독이라든가, 혹은 어떤 성적 타락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없다. 오로지 추측만 있을 뿐이다. 타락한 노인은 음흉하고 저질적인 모습으로 다시 소년들의 일탈을 그린 <어떤 만남>에서 나타나, 아이들에게 섬뜩하게 성적 희롱을 하고 위협한다. <에러비>를 짝사랑한 소년은 무관심한 어른들에 의해 소녀와 가까와질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긴다(아마도).  그렇게 도시의 모퉁이를 돌면 재회하게 되는 인물들의 더블린 내에서의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타락한 인간 본성의 내밀한 속내를 들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작은 일상들, 동전 한 잎, 술 한잔 때문에 육체와 정신을 빼앗긴 사람들, 이것은 200년전 더블린의 모습이지만은 않다. 선거를 앞둔 한 지역 사무소에 들락거리는 사람들을 다룬 <위원실의 담쟁이 날>, 무능하기 짝이 없는 회사원이 윗사람에게 당한 수모를 시계까지 팔아 술집에서 허세를 부리며 팔다가 망신을 당한 후 집에 와서 자는 아이를 깨워 화풀이를 하는 아버지를 다룬 <짝패들>, 보잘것 없던 친구가 도시(런던)에서 성공해서 돌아오자 자괴감을 느끼는 <작은 구름>, 직업도 없이, 돈도 없이 술을 얻어 빌어먹는 다니는 건달 둘과 하녀와의 약탈적 관계를 다룬 <두 건달들>, 찬 딸을 결혼시킬 목적으로 은밀한 계략을 읽을 수 <하숙집>은 지금 우리 시대에서 배경만 바꾸어 그대로 플레이해도 다를 바가 없을, 쌍둥이 같은 자화상이다. 


그렇다, <위원실의 담쟁이달>에서처럼 선거철이 되면 얼마 안되는 푼돈을 벌기 위해 표를 모으러 다니고, 무용하고 무의미한 정치적 대화를 하는 사람들, 자기보다는 더 나은 배우자를 만나 팔자를 조금 고쳐보려고 악을 쓰고 다니는 부모들, 출세한 친구와 출세하지 못한 친구와의 재회 속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갭,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처럼 서로 등처먹고 사기치는 세상, 바로 어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 아니던가. 제임스 조이스는 더블린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왜곡된 거울에 비쳐 미화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는 더블린 사람들이 그들 스스로의 음산하고 모습을 있는 그대로 비쳐보는 거울을 재현하기를 원했다. 궁핍하고 초라한 행색을 한 사람들이 한푼의 동전과 한 잔의 술에 팔아버리고 마비시켜버리는 모든 것들을 얘기하고 싶어했다. 


조너선 스위프트・오스카 와일드・브람 스토커 등도 아일랜드에서 창작생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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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 속 인문학 - 키케로부터 코코 샤넬까지 세상에서 가장 스타일리시한 인문 강의
김홍기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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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은 자기를 표현하는 수단 중 하나다. 우리는 어떤 사람응 기억할 때 그가 블겨 입던 옷 악세사리 신발 가방 머리스타일 등을 함께 기억한다. 때때로 옷을 통해 그 날의 기분 상태가 그대로 드러나기도 한다. 긴 겨울의 끝에서 아른아른 아지랭이가 피어날 때 싱숭생숭 우리는 꽃샘추위는 아랑곳 않고 두터운 외투를 집어 던져 하늘거리는 화사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지친 여름이 조금 물러갈 디세가 보이면 벌써 깊은 가을의 색깔들이 거리에 물결을 이룬다. 지치고 바쁜 일상 속 가벼운 티셔츠와 청바지는 모든 걸 수용하는 씩씩한 동반자다.

언젠가 지인이 이른 나이에 사위를 보게 되어 집에 인사를 오게 되었는데 평소 젊고 발랄하게 옷을 입던 장모 예정자가 장모용 홈드레스를 서둘러 장만했다는 말을 듯고 크게 웃은 적이 있는데, 하긴 집안에서 격식을 차려 외출복을 입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늘 입는 나시티에 핫팬츠로 사위감 앞에서 깨방정을 떨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장모용 홈 드레스가 어떻게 생겼을까를 상상해보지만, 모양이야 어떻든 장모용 홈드레스가 하나의 기호와 언어로 작용했을 때 사위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명료하다. 이 아이는 가정적인 어머니의 섬세한 보호 아래에서 화목하게 자라났으니 그것을 알아라는 거다.


˝스타일링이 어려운 것은 우리가 유행이라는 사회현상에 지속적으로 흔들리기 때문이다˝169


옷에 대해 말하자면 개성과 유행 사이에 화해가 중요하다. 개성이랍시고 걸친 보헤미아 패션이 누더기로 보이는 건 그 것들이 세월을 따라 계속해서 조금씩 변하기 때문이다. 청바지를 즐겨입는다고 해서 10년전 청바지를 줄구장창 입을 수는 없다. 예전엔 통이라고 했는데 단순히 통이 넓고 좁고의 문제가 아니라 힙을 지지하는 형태 뒷주머니 위치 앞 지퍼 길이 밑위 길이 통이 넓어지거나 좁아지는 부위. 찢어진 청바지와 빛바랜 것을 좋아헌다고 하더라도 유행을 찢어지는 형태와 부위를 타는 듯하고 물날림 역시 새로운 스타일의 물날림들이 매년 쏟아져나온다. 어느덧 나는 이런 것들을 더이상 잘 쫓아가지 못하게 된 것 같은데 나이가 들면 그렇게 되는 것인지, 자기 표현의 방법에 시들해진 것인지 잘 모르겠다.


˝스타일링은 한 인간이 온 세계를 다해 지켜내야 할 원칙이자 세계관 이라면 트렌드는 한 인간의 온 세계가 지루해지지 않도록 새로움을 주입하는 장치다. 살아가며 새로움을 수용하기 보다 옛 것 만 고집하는 이들을 가리켜 고루하다 고풍스럽다고 말 하지 않던가 트렌드는 변화로 가득한 세상에 잘 적응 해 보라며 내 어깨에 살짝 놓아주는 백신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170


다행히 친구 중 몇몇은 옷 사는 걸 너무 좋아해서 어쩌다 만나면 우리들은 도시의 쇼윈도우 불빛 사이를 걷는다. 걷다가 보다가 들어가고 입어보고 서로 예쁘다고 주거니 받거니하는 시간은 즐겁다. 카드청구서 따위야 안뜯어보면 되지 머. 그 친구는 직장 다니는 게, 말도 안들어먹는 애쉐이들한테 하루 죙일 시달리다 보면 녹초가 되지만, 방학이 끝나 복귀할 때쯤이면 그방학동안 집중적으로 사서 쟁겨놓은 새옷들을 차려입고 나갈 생각을 하면 설레고 좋다고 한다.


중세때에는 입는 것이 자기 표현이라기보다는 보호 수단에 불과했었다고 한다. 재단 기술의 탄생 시점은 1297년이라고 보는데, 그렇다면 그 이전까지는 어떤 옷을 입었냐, 재단 없이 대충 쑬떡쑬덕 꿰맨 자루같이 헐렁한 옷들을 입었던 듯 싶다. 책에 그림도 없고 자세한 설명도 없어 대충 생각해낸 거다. 재단 기술은 당시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벌어졌던 백년전쟁으로 인해 군복이 평상복 스타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흠 디테일이 누락되면 얼만큼 신뢰해야 할지 


인문학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옷장 속 인문학이라는 제목은 그래도 신선하다. 옷이라는 주제로 뭔가를 깊이 탐구해낸다면 정말 흥미로울 거라고 생각했다. 내용은 산문에 가깝다. 무슨무슨학 이라는 제목을 붙일 땐 학문적 정보를 기대하는데, 그보다는 조금 패션 전문 잡지의 컬럼 모음 같은 짧은(2~3쪽) 글들의 모음이다. 잡지 같은 걸 볼 때도 자주 느끼는 건데 거의 일치하는 우리말을 두고도(트랜드:유행) 영어를 쓰는 건 사실 이 계통만의 일도 아니지만 그런 표현이 개념적 버블을 양산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기도. 중간에 컬러로된 페이지가 많은데 삽화나 그림은 하나도 없고, 명언 혹은 아포리즘 같은 걸로 페이지를 채우는데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낭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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