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가게
너대니얼 호손 외 지음, 최주언 옮김 / 몽실북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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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환상적인 세계를 꿈꾸고 공상의 나래를 펴는 능력은 현실에서 하루하루 먹고 사는 일에 매달려 살아가야 하는 어른에 도달한 다음에는 쇠퇴하게 된다. 모험과 판타지, 그리고 공포를 포함한 이야기들은 대개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에서 성장한다. 스스로 상상할 수 없다고 해서,  남들이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 제대로 재미있는 공상하지 못하는 어른이 되었을 때, 내가 하는 상상이 현실의 벽이 부딪혀 별로 진도가 나가지 못할 때, 소설 속의 환상은 숨통을 틔워준다.

 

환상 동화 같은 6개의 환상 고전 단편들이 실려있다. 모두 19세기 작가들의 작품이다.  <보물섬>으로 잘 알려진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쓴 <목소리섬>이 첫번째다. 목소리섬은 목소리만 들리고 모습은 보이지 않는 신기한 섬을 의미한다. 장인이 별로 하는 일도 없어보이는데 부족한 것 없이 펑펑 돈을 쓰는 것이 수상쩍다. 알고 보니, 바닷가 어떤 섬으로 순간이동 하는데, 그 섬에 사는 사람들은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소리만 듣는다. 장인이 펑펑 쓰는 돈은 그 섬의 해변에서 주워온 것이다. 인간의 욕심이라는게 무한한 돈의 출처를 알게 되면 그대로 둘 수 없게 되어 있다. 케일라의 돈을 줍기 위한 목소리 섬으로의 모험 이야기


허버트 조지 웰스의 이야기는 아이가 아버지 손을 끌고 들어간 마술 용품을 파는 가게에서 일어나는 이상하고 기이한 마술들이 펼쳐지는 신기한 이야기인 <마술가게>, 유년시절 우연히 발견한 초록문 속의 매혹적인 정원에 대한 기억을 간직한 채 세상의 일들에 눌려, 번번히 기회를 놓치고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잔잔하고 아름다운 동화같은 이야기 <초록문>, 그리고 눈먼자들이 고립된 채 살아가고 있는 눈먼자들의 나라에 들어가게 된 눈뜬자가 눈먼자들 속에서 겪는 이야기인 <눈먼자들의 나라> 이렇게 세 편이 있다. 세 이야기 모두 좋았지만, 특히 눈 먼자들의 나라가 기억에 크게 남는다. 지진같은 재앙 때문에 절벽 안쪽에 갇혀 세상과 고립된 채로 살아가고 있는 작은 마을 사람들에게는 유행병이 돌아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이 장님이 되고, 그들은 그렇게 수대째를 반복해서 살면서 그들에게 시각이란 존재하지 않는 감각이 된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그들은 만지고 냄새맡고, 듣고, 하는 등의 다른 감각을 예민하게 발달시켜, 보지 않아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그러던 날 절벽에서 길을 잃고 떨어진 남자가 나타나서 그들에게는 이해할 수도 존재할 수도 없는 시각에 계속 이야기하자, 사람들은 그를 정신적으로 매우 불안정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는 마을의 한 여성을 사랑하게 되고, 그와 결혼하기 위해서는 눈을 제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 


로드 던세이니의 <얀 강가의 나날들>은 제목만큼이나 낭만적이고 안개속을 걷는 것처럼 뿌옇고 흐릿하며 조금은 생소한 소설인데, 무역을 하는 선원들이 배를 타고 지나가는 풍경을 묘사한 환상적인 글이다. 마지막으로 <페더탑>은 동화같은 느낌을 듬뿍 주는 내용으로 마녀가 만든 허수아비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멋진 귀족의 모습으로 변신시켜 겪게 되는 이야기이다. 동화책처럼 에쁜 표지에 각 단편마다 아름다운 일러스트를 싣고 있는데, 반할 만큼 그림이 매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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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커플
샤리 라피나 지음, 장선하 옮김 / 비앤엘(BNL)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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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된 아기가 사라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앤 부부는 잠든 아기를 혼자 두고 옆집 아저씨네 생일 파티에 갔다가 아이를 잃어버렸다. 돌아와보니 문은 반쯤 열려져있고, 누워 있어야 할 아기 침대에 아기가 없는 것이다. 아기의 부모는 30분마다 한 번씩 아기가 잘 있는지 교대로 확인을 했고 무선기도 가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편이 가서 확인했던 시간이 12시 반인데, 1시 살짝 넘어서 돌아와 보니 아기가 없어진 것이다. 경찰은 바로 부모들을 의심하는데, 이런 경우 부모가 아이를 살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소설은 3인칭이지만 아기를 잃어버린 엄마 앤의 시점에서 주로 서술되기 때문에 앤은 범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앤은 겉으로 보기에 그 중에서 가장 범행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산후 우울증을 겪고 있었고, 해리성 장애를 겪어 가끔 정신을 잃고 저지른 행동을 전혀 기억하지 못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 왕따를 당했는데 화장실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를 완전 피투성이가 되어 거의 죽음 직전까지 개박살내고나서 그 행위를 기억하지 못했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더욱 아이를 죽였다는 의심을 의식한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가 생긴 원인을 따지게 된다. 만일 파티가 없었다면 아기가 혼자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날은 잘 지내는 옆집 아저씨 생일이었고 두 사람만 초대했기 때문에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신시아가 아기를 데려오지 말라고 당부하지 않았다면, 앤은 아기를 데리고 갔을 것이고 파티도 일찍 끝나고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앤은 산후 우울증을 겪고 있었고, 아기는 칭얼댔으며 남편은 아기 없이 좋은 시간을 갖고자 했기 때문에 아기는 두고 가기로 했다. 아기를 대신 봐주기로 했던 베이비시터가 제 때 왔다면 또한 사정이 달라졌을 것이다. 베이비시터가 갑자기 약속을 취소하자 앤은 아기를 두고 가지 않겠다고 고집했으나 마르코가 괜찮다며 재워놓고 자주 찾아가면 괜찮을 것이라 우겼고, 앤은 할 수 없이 남편의 뜻에 따랐다.


그런 모든 자세한 상황을 아무 상관도 없는 언론이나 이웃에서 알 필요는 없지만, 문제는 그들이 한 가지 사실만 안다는 것이다. 디테일을 모르려면 피상적인 것조차 모르는 게 낫고, 관심이 재난을 돕는 게 아니라면 무관심이 낫다. 그들이 아는 것은 단지 아이를 혼자 두고 파티에서 술을 퍼마시다가 애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이다. 타인의 불행에 관심을 쏟고, 매스콤의 마구 쏟아내는 추측성 보도를 시청하며 범인 찾기 놀이와 누구든 비난하는 현상은 현대인들에게 하나의 놀이이자 오락거리가 된지 오래다.


앤의 남편 마르코도 범행동기의 가능성이 제기되는데 최근 사업이 몹시 어려워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으며, 사업상 재정문제로 매우 곤란한 위기에 놓여있는데, 그 사실을 앤에게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마르코는 아기의 몸값으로 큰 돈을 지불할 것을 약속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그 돈은 엄청나게 부자인 앤의 부모가 나서서 해결해주기로 약속받는다. 탐문 수사 결과 범인이 12시 35분에 앤의 집 차고에서 차를 대고 기다리고 있다가 아기를 납치해서 뒷길로 빠져나간 경황이 포착된다. 마르코가 아기를 옆집에서 파티를 하다가 마지막으로 아기를 본 직후의 시간과 일치한다.


싱겁게도 범인은 소설을 반쯤 읽었을 때 밝혀지고 마는데, 독자들이 충분히 상상했을 법한 사람이다. 즉 중간부터 독자들은 범인이 누구인지 알게 되고, 범행 동기와 범행 과정이 서서히 밝혀진다. 이 때부터 심리전이다. 수사 당국의 끝도 없이 반복되는 똑같은 탐문 과정에 대답해야 하고, 기자들이 진을 치고 집앞에서 기다리면서 가뜩이나 아기를 잃어 실성할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부부들에게 악의적인 보도를 쏟아내고, 보도를 접한 시민들은 부모를 비난하는 우편물을 보내 집안을 가득 메운다. 하지만 범인이 밝혀지고 나서도 아직 밝혀져야 할 진실은 많이 있고, 진짜 범인은 따로 있음을 알게 된다.


(풀리지 않은 의문이 말끔히 해소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오기로 약속되어 있던 베이비시터의 갑작스런 취소가 내겐 설명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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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설계도, 게놈 - 23장에 담긴 인간의 자서전
매트 리들리 지음, 하영미.전성수.이동희 옮김 / 반니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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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어떤 운명은 정해져 있다. 만일 점쟁이가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있다면, 또 만일 그 운명이 유전자가 결정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때로 우리의 어떤 운명은 유전자에 적혀 있고, 그것은 거의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내가 몇 살때 죽을 건지 알려주는 유전자가 있다면 어떨까. 실제로 특정 유전적 변이를 가진 경우 유전자 염기 서열을 통해 이 특별한 조합의 유전자가 몇 살에 죽을 것인지 이미 결정된 경우가 있다. 돌연변이의 이름은 월프-히르시온이다. 이 유전자의 특정 장소에서 CAG 단어가(염기가) 몇번 반복되느냐에 따라 정확히 몇살에 헌팅턴병에 걸리게 되는지가 운명지어진다. '칼뱅도 상상하지 못한 결정론이며 예정된 운명(p73)'이다. 그것은 이런 식이다. 예를 들어 그 단어가 39번 반복되면 평균 66세에 치매의 첫 증세가 나타나고 41번 반복하면 54세 42번이면 37세 50번 반복하면 27세에 지능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안젤리나 졸리가 가슴 제거 수술을 한 이유도 그가 가진 유전적 변이가 확률적으로 유방암 혹은 난소암의 가능성을 매우 높이기 때문이었다고 들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닭의 모습은 알 속에 내재해 있고 도토리는 상수리나무의 계획에 따라 문자 그대로 제시된 것이다라고 하였다 (p19)



11번 염색체의 짧은 팔 속에 있는 D4DR 유전자는 도파민 수용체라는 단백질을 만들며 뇌의 특정한 세포에서만 발현된다. 이 신경세포에서 도파민 수용체가 도파민과 반응하면 그 신경세포가 스스로 전기를 생성하는 것이 뇌가 작동하는 방법이다. 항상 전기적 신호에 의해 화학적 신호가 만들어지고 화학적 신호에 의해 전기적 신호가 발생한다. 뇌는 최소 50가지의 화학 신호들이 동시에 발행하여 서로 의사소통한다


만약 우리의 염색체 길이를 지구 한바퀴 길이로 친다면 정상과 정신착란의 차이는 2.5센티 이하에 불과하다고 한다. 10억개의 세 글자 단어 중 이 1개가 질병의 유무를 결정한다. 그러므로 인간과 침팬지를 가르는 그 2퍼센트의 차이란 그 작은 한 글자의 유전자의 차이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이해하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아테나는 자신의 목욕장면을 훔쳐본 테이레시아를 눈멀게 한 것을 후회하며 미래를 보는 능력을 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괴로운 일이다. 운명을 볼 수는 있지만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헌팅턴 돌연변이의 경우는 유전자 결정론의 극단적 예다. 천식과 같은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많은 질병들은 유전자만으로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총 23쌍의 염색체,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각각 하나씩 받아 쌍으로 존재하는 염색체들은 가장 긴 쌍이 1번이고 가장 작은 쌍이 22번이다. 23번은 성 염색체다.  생명의 설계도는 이 23쌍의 염색체로 이루어진 이 거대한 책 속의 배배꼬인 DNA 가닥 속에 몸을 숨기고 한 인간을 다른 인간과 구별하는 독특한 특성들을 만들어낸다. 23 장으로 구성된 수천개의 이야기들을 유전자라고 한다면 각 유전자들은 엑손이라고 하는 여러 단락이 연결되어 만들어져 있고, 단락 사이에는 인트론이라 부르는 광고가 끼어 있고, 각 단락은 코돈이라 부르는 단어들로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ACGT 같은 문자로 나타내는 염기 3개가 하나의 코돈을 만들어 특정 문자로 해독되는데, 이것이 20개의 아미노산이다. 이 문자들을 이루는 코드들은 종이 대신 DNA 분자 위에 쓰여진다.


저자 매트 리들리는 생명의 현상을 23개의 염색체와 연결하여 23개의 주제로 분류하였고 각 염색체가 특정 주제와 연결되도록 해당 염색체 내에서 발견되는 대표 유전자들을 환기한다. 예를 들어 1번 염색체는 생명, 2번 염색체는 종, 3번 염색체는 역사, 등의 식으로 각 염색체 별로 주제를 정했는데, 이것은 해당 염색체에서 발견되는 유전자가 인간의 무엇을 결정하는지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이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얼마나 많은 유전자가 각기 다른 염색체 속에서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생명을 유지하고 있으며, 또 얼마나 우리는 그것들에 대해서 조금밖에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라는 것이다.

 

염색체의 어떤 중요한 유전자, 혹은 우리가 발견해낸 유명한 유전자들이 하는 역할들에서 이끌어 낸 통찰, 즉 각 염색체 별 주제는 앞서 말한 것 외에도, 운명, 환경, 지능, 본능, 충돌, 이기주의, 질병, 스트레스, 개성, 자가조립, 유사이전, 영생불멸, 성, 기억, 죽음, 치료, 예방, 정치학, 우생학 자유주의가 있다. 이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기 위해, 저자는 염색체의 어떤 유전자가 매우 구체적으로 어떻게 무엇과 작용해서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심도있게 파헤친다. 

 

기존에 나왔던 책인데 작년(2016년) 초에 개정판으로 재출간되었다. 생명 공학에 관련된 책들은 종류도 많고, 과학 도서 중 가장 많이 쏟아져 나오지만, 무얼 읽어도 좀처럼 진부하지가 않다. 23쌍의 염색체와 그 속에서 우리가 '유전자'라고 부르는 것의 꽤 구체적인 구조와 정보를 개념적으로 이해하는 데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몇달 전에 읽었는데 한번 더 읽을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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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이라고 하면 완전 믿고 보는 작가인데, 세익스피어 순례는 다소 얇다(종이책으로 224쪽). 작년에 셰익스피어 400주년이라고 해서 세익스피러 읽기 계획를 거창하게 세웠었는데 계획은 계획으로만 따로 있고 실행에는 언제나 핑계와 사정이 있는 법 . 무슨 400주년이라는 건지 몰라 위키에 찾아보니 돌아가신 지 400주년 되시었다 (1564년 4월 26일 탄생, 1616년 4월 23일 사망).









햄릿을 시작으로 셰익스피어 읽기를 일찌감치 시작했는데 리뷰 한 줄 남기지 못했다. 애초에 이것이 희곡이라는 생각을 하고 감정을 잘 살려서(?) 읽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일반 소설책의 대사처럼 읽어나갔더니, 뭔가 극적이어야 할 곳에서 극적인 감정을 읽어내지 못했다. 나중에 몇분 공개된 우리들의 컴버배치가 공연한 햄릿의 한 장면을 보니, 아 저런 식으로 상상을 해야 하는구나 뒤늦게 깨닫고 다시 읽기로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셰익스피어 권위자 스티브 그린블랫이 쓴 세계를 향한 의지 역시 읽겠다고 몇달째 리스트에 올려놓고 진도가 안나가 슬그머니 내려놓았는데 빌브라이슨의 세익스피어 순례는 다행히 이북으로 구매해서 언제 어디서나 펼쳐볼 수 있었던 관계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담없는 문체와 얇은 페이지로 인해 완독이 가능했다.스티븐 그린블랫의 <세계를 향한 의지>과 약간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뭐야 혹시 그린블렛의 책을 요약한 거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의심을 했지만, 그건 아닌것 같았고, 그 겹치는 부분이라는 것은, 셰익스피어라는 인물이 영국 뿐만 아니라 지구상 곳곳에서 400년이 지난 후에도 읽히고 공연되는 이렇게나 불멸의 존재가 사실은 그 삶에 대한 기록이 너무나도 없어서 우리가 셰익스피어에 대해 알고 있는 대부분은 추측에서 나온 것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어 그래? 셰익스피어에 대한 기록이 없다면 책은 셰익스피어의 무엇에 대한 이야기일까. 


불멸의 존재가 그 삶의 흔적을 기록으로 많이 남기지 않는다면, 인간은 그 부재의 크기만큼 풍부한 상상력으로 채운다. 빌 브라이슨은 셰익스피어의 흔적을 찾기도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흔적을 찾고 이야기를 만들어낸 셰익스피어 매니아들, 셰익스
피어 연구가들을 쫓기도 한다. 셰익스피어라가 공식적으로 흔적을 남긴 건, 집을 사고 세금을 내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아 출생신고를 할 때, 주어진 양식의 문서에 달랑 이름 한 자 서명한 것이 거의 전부이다. 그리고, 어찌어찌 겨우 남아 있는 당시 연극의 브로셔 등에 인쇄된 그의 이름 등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이들 전기에 만일 셰익스피어의 성격이 어땠고 이런 말을 했고 저런 말을 했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은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 셰익스피어가 불멸인 이유는 그의 정신이 작품속에서 불멸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근본적 원인을 따지고 본다면 작품 때문인 것은 맞지만, 그를 연구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의 수만 해도 헤아릴 수 없게 많고 심지어는 그를 연구한 사람들을 연구하는 사람들까지 엄청난 규모일 정도고, 그가 쓴 희곡 대사 중의 아포리즘은 아직까지도 수많은 언어의 일상적 표현이 되었다. 저 윗줄 쓸 때 스티브 그린블랫의 책 이름이 기억이 안나서 인터넷 서점 셰익스피어를 키워드로 검색하니, 국내 도서만 1천7백여건이 나올 정도이다. 그런 그가 그렇게 위대한 작품들만을 남기고, 또 후세마저도 끊긴 채로(딸이 후세를 남기지 못했..) 사라졌으니, 음모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가 존재하지 않았다라는 주장까지 나오는 게 이상하지 않다.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희곡을 쓰지 않았다는 이런 이색주장을 지지했던 사람 중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래서 신뢰할지도 모를) 헨리 제임스나 마크 트웨인이 끼어 있었는데, 그들이 지지한 주장은 프랜시스 베이컨이 셰익스피어 희곡의 진짜 작가라는 거다. 빌 브라이슨은 이 주장의 기원을 따지고 들어가는데, 이게 진짜 웃긴다. 프랜시스 베이컨과 성이 같은 어떤 여자가 영국으로 가서 4년동안 머물며 이 사실을 연구했는데, 그녀의 연구 방법이라는 것이 기상천외하게도, 베이컨이 시간을 보내던 장소들을 찾아다니며 조용히 ˝분위기를 흡힙˝한 게 다였다는 것이다. 그후 그녀는 빽빽하게 인쇄된 엉터리같은 책 <밝혀진 셰익스피어 희곡의 철학>이라는 ‘모든 면에서 괴상한‘ 책을 한 권냈는데 호손이(맞다 그 호선, 나다니얼 호손) 서문을 썼다. 후에 호손은 자신이 책을 읽지 않고 서문을 썼음을 인정했고, 다시는 선의의 친절을 베풀지 않을 것임을 맹세하며 땅을 치고 후회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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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윈이 종이 진화한다는 엄청난 아이디어를 최초로 적었을 때, ‘내가 생각하기에는...‘으로 서문을 시작했다. 마이클 패러데이가 전기장이라는 혁명적 아이디어를 소개할 때에도 주저하는 말투를 썼다. 천재 아인슈타인이 광자를 증명했을 때도 ‘내가 보기에는‘ 으로 말문을 열었다.

˝내가 보기에는 빛 에너지가 공간 속에 비연속적으로 분포한다고 가정할 경우, 형광물질이나 음극선 생산, 상자에서 나오는 전자기 방사선을 비롯해 빛의 방출 및 변화가 관련된 유사 현상들을 함께 관찰해야 이해하기가 더 용이할 것 같다. 여기서 나는 빛 에너지가 공간 내에 연속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간 속의 특정한 지점들에 위치하고 이동은 하지만 서로 분리되지 않으며 각각 하나의 개체로서 생산되고 흡수되는 일정한 수의 ‘에너지 양자‘로 이루어진다는 가설을 염두에 두었다. (p31, 재인용)˝

‘이 간단명료한 몇 줄의 설명은 양자이론의 진정한 탄생의 서막을 알리는 것(p31)‘ 이다. 1900년 막스 플랑크가 처음 상상하고 측정했던 양자 역학의 핵심은 전기장의 에너지가 양자(quantum)과 같은 덩어리 형태로 분포되어 있다는 것이었고, 빛이 무리를 이루어 입자들이 모여 만들어진다는 것을 증명한 사람이 아인슈타인이었다. 1910년과 20년대를 지나면서 닐스 보어는 양자도약(quantum leap) 이론을 알아내어 발전시켰고, 하이젠베르크는 모든 물리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양자역학 기본 방정식을 쓰기 시작했다.

아인슈타인의 손을 떠난 양자 역학은 최초의 이론에서 너무 많이 벗어나 있었다. 이 과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을 설득하지 못했다. 간담회와 서신, 언론 기사 등을 통한 수년간의 대화 끝에 아인슈타인은 이 이론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 엄청난 기여를 했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몇 가지는 더 합리적인 설명이 필요하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고, 그 상태로 한 세기가 지나도록 같은 지점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그렇게 이론이 확신이 되지 못하고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도 양자역학 방정식은 일상에서 매우 유용하게 널리 사용되어 왔다. 이 이론의 핵심은 현실은 상호작용으로서만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오히려 이론에 대한 의문은 계속해서 증폭되고 있다. 현실의 본질에 깊이 침투한 이론인지, 혹은 우연히 맞아 떨어진 이론인지, 아직 완성하지 못한 퍼즐의 한조각인지, 혹은 우리가 아직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심오한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신호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것이 물리학계 지식의 중심에 놓여있는 역설적 상황이다. 20세기에 남겨진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은 서로 모순된다. 그럼에도 두 학문은 각 영역에서 동시에 수많은 학문의 바탕이 되어 왔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우주학과 천체물리학, 중력파와 블랙홀 연구를, 양자역학은 원자물리학과 핵물리학, 기초입자물리학, 응집물질물리학을 비롯한 수많은 학문의 바탕이 되었다. 한쪽에서는 모든 것이 연속적인 곡선 공간에서 설명되고, 다른쪽에서는 에너지 양자들이 불연속적으로 점프하는 평평한 공간에서 설명된다. 문제는 모순되는 이 두 이론이 모두 현실에서 놀라울 정도로 잘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이 두 이론의 모순을 해결해 보려는 연구 분야를 양자중력이라고 하는데, 이 학문의 목적은 세상에 대한 일관된 관점의 이론을 찾는 것이다. 이렇게, 모순된 두 개의 이론을 통합한 경우는 이 전에도 많았다. 뉴턴은 갈릴레오의 포물선과 케플러의 타원을 조합해 만유인력을 찾아냈고, 맥스웰은 전기이론과 자기 이론을 조합해 전자기 방정식을 찾았고, 아인슈타인은 전자기와 역학 사이의 심각한 모순을 해결하려다가 상대성 이론을 발견했다. 이탈리아의 과학자이며 이 책의 저자인 카를로 로벨라가 양자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을 결합하여 블랙홀의 본질을 새롭게 규명한 이론이 루프양자중력이다.

루프양자중력이론의 핵심은 공간은 연속적이지 않으며 무한하게 나누어지지도 않지만 아주 미세한 크기의 공간원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공간 양자들은 그 자체가 공간이기 때문에 공간 속에 있지 않으며 공간은 각각의 양자들을 통합하여 만들어진다. 루프 방정식은 빅뱅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주가 극도로 압축된 상황에 양자 이론을 적용하면 대폭발이 일어나며, 때문에 이 세상은 현재 이전의 우주에서 만들어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과거의 우주가 그 자체의 무게 때문에 압축돼 아주 작은 공간 속에 짓눌리다가 결국 재도약을 한 후 다시 확장하기 시작해, 현재 우리 주위에서 관찰되는 계숙 확장하는 우주가 된 것이라는 것인데, 이 재도약의 순간 우주가 호두껍질만한 공간 속에 압축되어 있을 때 공간과 시간이 모두 사라지고 세상이 수많은 가능성의 구름 속에 녹아 있는 양자중력의 왕국이 펼쳐지며, 양자 중력 방정식들이 설득력을 얻는다. 즉 현재의 우주는 그보다 한 단계 전의 도약에서, 공간도 없고 시간도 없는 중간단계를 통과하면서 탄생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설명한다.

열은 언제나 뜨거운 것에서 차가운 것으로 이동한다. 그러므로 과거와 미래의 차이는 열에서 발생한다. 볼츠만은 그 이유를 확률적으로 설명하는데, 뜨거운 물질의 원자가 빠른 속도로 움직이다가 차가운 원자에 부딪히면서 약간의 에너지를 전달할 가능성이 많고, 반대로 차가운 원자가 뜨거운 원자에게 에너지를 남겨줄 가능성은 적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볼츠만은 이 가능성을 열역학의 배경을 설명하려 했으나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1906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시간적 현상은 세상의 미세한 상호작용들이 하나의 체계 속에서 무수한 변수들의 평균을 통해서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공간이 하나 하나 떨어져있고, 시간이 존재하지 않으며 사물이 어떤 공간에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것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과학자들도 어려워하는 것들을 독자 입장에서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 복잡한 물리학 법칙 속에 있는 핵심 아이디어를 일반 독자들에게 해석하고 설명하는 방식은 일반 독자들의 평범한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므로, 대략 무슨 말인지에 알 것도 같다. 인간의 지식이 성장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존재와 우주의 극히 일부분을 알게 되었지만, 이러한 우주는 우리 사고의 공간 속에서만 존재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아마도 새로운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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