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브라이슨이라고 하면 완전 믿고 보는 작가인데, 세익스피어 순례는 다소 얇다(종이책으로 224쪽). 작년에 셰익스피어 400주년이라고 해서 세익스피러 읽기 계획를 거창하게 세웠었는데 계획은 계획으로만 따로 있고 실행에는 언제나 핑계와 사정이 있는 법 . 무슨 400주년이라는 건지 몰라 위키에 찾아보니 돌아가신 지 400주년 되시었다 (1564년 4월 26일 탄생, 1616년 4월 23일 사망).









햄릿을 시작으로 셰익스피어 읽기를 일찌감치 시작했는데 리뷰 한 줄 남기지 못했다. 애초에 이것이 희곡이라는 생각을 하고 감정을 잘 살려서(?) 읽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일반 소설책의 대사처럼 읽어나갔더니, 뭔가 극적이어야 할 곳에서 극적인 감정을 읽어내지 못했다. 나중에 몇분 공개된 우리들의 컴버배치가 공연한 햄릿의 한 장면을 보니, 아 저런 식으로 상상을 해야 하는구나 뒤늦게 깨닫고 다시 읽기로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셰익스피어 권위자 스티브 그린블랫이 쓴 세계를 향한 의지 역시 읽겠다고 몇달째 리스트에 올려놓고 진도가 안나가 슬그머니 내려놓았는데 빌브라이슨의 세익스피어 순례는 다행히 이북으로 구매해서 언제 어디서나 펼쳐볼 수 있었던 관계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담없는 문체와 얇은 페이지로 인해 완독이 가능했다.스티븐 그린블랫의 <세계를 향한 의지>과 약간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뭐야 혹시 그린블렛의 책을 요약한 거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의심을 했지만, 그건 아닌것 같았고, 그 겹치는 부분이라는 것은, 셰익스피어라는 인물이 영국 뿐만 아니라 지구상 곳곳에서 400년이 지난 후에도 읽히고 공연되는 이렇게나 불멸의 존재가 사실은 그 삶에 대한 기록이 너무나도 없어서 우리가 셰익스피어에 대해 알고 있는 대부분은 추측에서 나온 것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어 그래? 셰익스피어에 대한 기록이 없다면 책은 셰익스피어의 무엇에 대한 이야기일까. 


불멸의 존재가 그 삶의 흔적을 기록으로 많이 남기지 않는다면, 인간은 그 부재의 크기만큼 풍부한 상상력으로 채운다. 빌 브라이슨은 셰익스피어의 흔적을 찾기도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흔적을 찾고 이야기를 만들어낸 셰익스피어 매니아들, 셰익스
피어 연구가들을 쫓기도 한다. 셰익스피어라가 공식적으로 흔적을 남긴 건, 집을 사고 세금을 내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아 출생신고를 할 때, 주어진 양식의 문서에 달랑 이름 한 자 서명한 것이 거의 전부이다. 그리고, 어찌어찌 겨우 남아 있는 당시 연극의 브로셔 등에 인쇄된 그의 이름 등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이들 전기에 만일 셰익스피어의 성격이 어땠고 이런 말을 했고 저런 말을 했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은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 셰익스피어가 불멸인 이유는 그의 정신이 작품속에서 불멸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근본적 원인을 따지고 본다면 작품 때문인 것은 맞지만, 그를 연구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의 수만 해도 헤아릴 수 없게 많고 심지어는 그를 연구한 사람들을 연구하는 사람들까지 엄청난 규모일 정도고, 그가 쓴 희곡 대사 중의 아포리즘은 아직까지도 수많은 언어의 일상적 표현이 되었다. 저 윗줄 쓸 때 스티브 그린블랫의 책 이름이 기억이 안나서 인터넷 서점 셰익스피어를 키워드로 검색하니, 국내 도서만 1천7백여건이 나올 정도이다. 그런 그가 그렇게 위대한 작품들만을 남기고, 또 후세마저도 끊긴 채로(딸이 후세를 남기지 못했..) 사라졌으니, 음모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가 존재하지 않았다라는 주장까지 나오는 게 이상하지 않다.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희곡을 쓰지 않았다는 이런 이색주장을 지지했던 사람 중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래서 신뢰할지도 모를) 헨리 제임스나 마크 트웨인이 끼어 있었는데, 그들이 지지한 주장은 프랜시스 베이컨이 셰익스피어 희곡의 진짜 작가라는 거다. 빌 브라이슨은 이 주장의 기원을 따지고 들어가는데, 이게 진짜 웃긴다. 프랜시스 베이컨과 성이 같은 어떤 여자가 영국으로 가서 4년동안 머물며 이 사실을 연구했는데, 그녀의 연구 방법이라는 것이 기상천외하게도, 베이컨이 시간을 보내던 장소들을 찾아다니며 조용히 ˝분위기를 흡힙˝한 게 다였다는 것이다. 그후 그녀는 빽빽하게 인쇄된 엉터리같은 책 <밝혀진 셰익스피어 희곡의 철학>이라는 ‘모든 면에서 괴상한‘ 책을 한 권냈는데 호손이(맞다 그 호선, 나다니얼 호손) 서문을 썼다. 후에 호손은 자신이 책을 읽지 않고 서문을 썼음을 인정했고, 다시는 선의의 친절을 베풀지 않을 것임을 맹세하며 땅을 치고 후회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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