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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 멸종 진화 - 생명 탄생의 24가지 결정적 장면
이정모 지음 / 나무나무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과학서적을 꾸준히 읽다보면 대략 다섯권 중 하나 정도는 그 어떤 문학작품보다 더 깊은 울림을 주고, 그 어떤 철학서보다도 더 많은 꺠달음 같은 걸 준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정식하게 제목 그대로 생명의 탄생과, 멸종, 그리고 진화에 대한 이야기를 차근차근 처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간 순으로 알기 쉽게 설명하면서, 광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 우리의 위치를 인류와 함께인 우주 생명의 근본과 그 끝을 생각하게 한다.
생명의 기원에서 핵산이 먼저인가 단백질이 먼저인가에 대한 오랜 논쟁은 1989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토머스 체크가 효소처럼 작용하는 RNA 분자인 리보자임을 발견함으로써 RNA 기원설로 정리되었다. 리보자임은 유전정보가 들어있는 RNA 조각으로 생체 내에서 자기 자신에게 촉매로 작용한다. 초기 생명체는 단백질과 핵산이라는 효소작용과 설계도 역할을 하는 두 요소 대신 이 리보자임 RNA 조각을 가졌을 것이다. 학자들은 생명의 근원인 RNA를 구성하는 네 가지 염기인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우라실(U) 이 지구 탄생 초기 풍부했던 화합물(포름아미드)과 운석대충돌에 의한 고온,방사선 등의 극한의 환경 속에서 발생했다고 생각해왔고 이 가설은 2014년 체코의 한 연구팀이 초기 지구와 같은 극한의 환경 속에서 네 가지 염기를 모두 합성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생명 기원의 강력한 증거가 되었다.
지구 자연사에는 뗴죽음이 적어도 열 다섯차례 있었으며, 첫번째 생명시대인 고생대 캄브리아기에 삼엽충을 비롯한 폭발적인 생물의 증가는 다윈을 공격하는 증거로 사용되었지만, 종의기원이 출간된 지 20년 이후 선캄브리아기 지층에서 30억년 전의 세포질이 보존된 유기체의 화석이 발견되고, 이후 5개의 눈이 달린 오파비니아를 비롯한 여러 고생대 이전의 생물체들의 화석의 발견으로 진화는 자연선택에 따라 오랜시간 천천히 일어난다는 다윈의 이론을 뒷받침하였다.
저자는 멸종이 생명 탄생과 진화의 열쇠라는 사실을 매 생명 시대의 구분기마다 강조한다. 생명은 틈새를 노린다. 자신보다 작은 생명들이 사라지면 몸을 줄여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자신보다 큰 생명들이 사라지면 몸을 불려서 그 자리를 차지한다. 또 생명의 비어있는 자리로도 진출한다. 멸종의 시기에는 그 틈새가 넓어지고 빈자리가 많아진다. 빈자리는 크지만 극한의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 빈자리에 적응해 가는 과정에서 많은 변이가 일어난다. 생명의 역사에는 다섯 차례의 대멸종이 있었고, 특히 2억4천5백년 전의 페름기-쥐라기 대멸종 때는 당시 살고 있던 생명체 종의 95퍼센트가 멸종했지만, 살아남은 생명체들에게는 또다른 번창의 기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자신을 위협하던 포식자들이 사라지고 그들 앞에 새로운 빈자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것이 적응방산인데, 한 종류의 생물이 짧은 시간 내에 여러가지 환경 조건에 적응하여 다양하게 분화하여 여러가지 다른 계통으로 갈라져 진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백악기 말기 다섯번째의 대멸종시기에 공룡들이 사라진 덕분에 공룡이 사라진 틈새로 포유류로의 진화가 이루어졌으므로, 공룡의 멸종은 인류로의 진화에 밑불이 된 것이다.
그러면 왜 언제 멸종이 일어날까, 그것은 급격한 환경의 변화로, 헤성의 충돌, 온도 변화, 산소 농도 변화 등과 같이 생존을 위협하는 환경으로의 변화다. 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생명체들 사라지고 나면 그 변화에 적응 가능한 생물체들에게 틈새가 찾아온다. 그러나 틈새를 차지하는 것은 새로운 변화에 적응해야 함을 뜻한다. '생명의 변화란 곧 유전자변이 편화다(p123)'. 예를 들어 긴 시간 주기를 따라 반복되는 산소 농도의 변화는 멸종과 진화의 주요 요인이었다. 지구의 공룡들이 등장 하기 전 트라이아스기에는 산소 농도가 오늘날의 21% 보다 훨씬 낮은 5천m 이상의 고지대 수준의 산소농도에 해당하는 10 ~15% 수준이었다. 낮은 대기중 산소 농도는 진화의 가장 강력한 선택 압력이 되어왔음을 보인다. 네 발 자세를 버리고 두발로 달리면 상체에서 일어나는 호흡과 하체에서 일어나는 이동이 분리되기 때문에, 네 발 동물에 비해 두 발 동물은 빠른 속도로 달리면서도 숨을 쉴 수 있는데, 초창기 공룡들이 바로 뒷다리로만 걸어다닌 두 발 보행자였다. 즉, 저산소 상태라는 조건에서 초기의 두 발 공룡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다.
'생명의 역사에서 멸종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사에 불과하다(p153).' 현재 지구에서는 2천만~ 1억종의 생물이 살고 있고, 매년 5천~ 2만5천 종의 생물의 멸종하고 있다. 이 속도라면 짧으면 800년 길어야 2만년 후에는 지구의 모든 생명이 멸종된다고 한다. 앞서 지구 역사상 생명체들에게 가장 큰, 전무후무한 대멸종이었던 페름기-트라이아스기의 대멸종이 1백만년에 걸쳐 일어났던 것을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비교해서 생각해보면 그저 껌인 것이다. 그런데, 기존의 대멸종이 급격한 온도 변화와 공기 중 산소 농도 변화 같은 외부적 변화에서 기인하였다면, 현재 우리에게 닥친 대멸종은 인류의 출연 그 자체가 원인이다. 인류 출연 전에는 포유류 한 종이 멸종하는 데 평균 50만년이 걸렸고, 인류 출연후는 한 달에 한 종 꼴로 포유류가 멸종한다. 대멸종 시기의 규칙에 의하면 최상위 포식자는 반드시 멸망했으며, 현재 최상위 포식자인 인류는 이번 대멸종에 살아남을 수 없다. 멸종이 자연의 법칙이라면 그리 억울할 이유야 없겠지만, 진화사에서 대부분의 종은 500~600만년 정도 존재한 것에 비해 우리 호모 사피언스는 겨우 20만년되지 않았음을 생각한다면, 우주를 다루는 시간의 범위에서 본다면 인간이라는 존재 그 자체가 얼마나 찰라동안 한 때 번성했다 사라져갈 어쩌면 그 역사에 점조차도 찍지 못할 존재인지가 실감난다.
밑줄.
(니모를 찾아서에서) 말린과 니모는 결코 부자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암컷이 죽으면 수컷은 엄마로 변신하고 새끼 가운데 가장 큰 놈이 아빠가 된다. 따라서 말린과 니모는 아빠와 아들이 아니라 아내와 남편으로서 행복하게 살았다고 영화는 끝나야 한다. 89
비슷한 재료로 비슷한 용도의 물건을 만들다 보면 비슷한 디자인이 나오기 마련이다. 이것을 수렴 진화라 한다. 59
현생 상어나 가오리의 기각이 한 쌍의 배지느러미의 일부분인 것과는 달리 판피어류의 기각은 지느러미와 전혀 연결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상어의 기각과 틱토돈티드의 기각이 같은 곳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각기 따로 진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107
먹이 사슬의 포식자는 자신의 먹이의 씨를 말리지 않기 때문이다.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