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신혼여행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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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많은 부분에서 나하고 비슷한 사람이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던 에세이. 우연찮게 보라카이로 신혼여해을 간 것도 그렇고, 좋았던 것들도 그렇고.  결혼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도 비슷하고.  나만 그렇게 생각하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적어도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하나 정도 찾은 것 같다. 


이렇게 내면의 감적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은 마치 연예인들이 공개연예를 하는 것과 같아서 시간이 지나고 모든 것이 변해버려도, 그때의 일들은 그대로 남아서 지금의 나와 다른 나를 끊임없이 재생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나. SNS에 사진을 올리는 행위나 끊임없이 나를 증명하려는 모든 행위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을까?  오히려 그때의 모습이 변색되고 왜곡되기 전에 남겨놓는 것이 더 좋을 수 있을 수도 있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나중에라도 써먹어 보고 싶은 문장들이 많이 있었다.  책은 재미 있었고, 여행은 부러웠고,  대다수의 사람들 처럼 '평범함'에 수렴하는 내 삶에 예방주사 같은 느낌으로 남는 책이다.  




우리 부모님이 특별히 나쁜 분들은 아니다. 사실 이건 대부분의 한국 부모들이 공통으로 갖는 문제다. 자식들의 인생에 과도하게 간섭하는 것. 자식이 타인임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 자식들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정신적인 폭력을 서슴지 않는 것. 그리고 나는 그 부모들을 이해한다. -37.


아이러니 하게도 그들은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식이 위험에 빠지는 광경을 두고 볼 수가 없다. 그들은 안락한 감옥을 만들어 자식을 그안에 가두고 싶어 한다. 과보호.  

  그리고 그 감옥 안에 갇혀 있는 한 자식은 영원히 성인이 될 수 없다. 인간은 자기 인생을 걸고 도박을 하는 순간부터 어른이 된다. 그러지 못하는 인간은 영원히 애완동물이다. 


인생은 위험하다. '안전한 삶'에 대한 기대는 망상이다. 안전띠는 매야 한다. 그러나 운전이 무섭다고 어디든 걸어 다니겠다는 것은 바보짓이다. 걸어 다니다가도 차에 치여 죽을 수 있다. 


그러나 인생에는, 부잣집에서 태어났건 아니건 간에, 그리고 부모가 뭐라 하건 간에,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벌여야 할 때가 반드시찾아온다.그렇지 않다면 그건 인생이 아니다. 그건 사는 게 아니다. 


선글라스를 쓴 채로 점점 붉게 물들어가는 해를 바라보고 있으니 정신이 다시 멍해졌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왜 사람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다니는지, 왜 자전거를 타고, 왜 수십킬로미터를 달리며 러닝하이를 느끼려 하는지.  사람들은 멍해지려고 그런일들을 하는 것이다. 무슨 생각을 하건,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마음을 피로하게 만든다 생각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대신 괘로움에 빠뜨린다. 이것이 선안과의 정체다. - 123


그러니 우리가 맺어진 데에는 우연이 크게 작용했다. 우리는 우연의 허락을 받고 사귀게 되었다. 그런 결론에 나는 낙담하지 않았다. 이 결론에 따르면 우리가 5년 만에 신혼여행을 떠나, 보라카이 해변에서 부부 싸움을 벌인 것도 우면이 아니다. 우연일 뿐이다. 그리고 우연이 허락하는 한도 안에서 우리는 뭐든 할 수 있다. 우연은 아무리 연이어 일어나봤자 우연의 연속일 따름이다. 거기에 의지가 섞여 들어가야 운명이 된다. - 142


에스키모들에게는 눈을 뵤사하는 단어가 수십 가지라고 한다. 그런 단어들을 알기 떄문에 그들은 땅에 눈이 쌓인 정도와 습도를 세밀히 분간하고 어제 내린 눈과 오늘 내린 눈의 다른 점에 대해 의견을 나눌 수 있다. 바닷속 풍경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려면 그런 단어들을 알아야 했다. 그날 그 배에 있던 한국인 관광객들이 해저에 대해 하는 단어라고는 열대어, 불가사리, 니모, 산호 정도가 고작이었다. -153


더 나아가서는 신세계를 발견하는 일에 우리 사회가 과도한 찬탄을 보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인생의 특정 시기에 신세계를 탐색하는 것은 권장할 만한 일이다. 마흔이나 쉰에 라도 종교나 마약의 대용품이 될 만한 분야를 찾는다면 좋은 일이다. 그리스 요리나 사도마조히즘이라도 좋다. 그러나 신세계를 찾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될 수 있을까? 끊임없이 직업을 바꾸고, 분기마다 새 취미에 열정적으로 도전하며, 어딘지 모를 이상향을 찾아 쉴 새 없이 떠돌아다니는 삶이 바람직한 걸까? 그걸 낭만이라고 포장하는 것은 시시한 사기 아닐까. 그것느 기실 그 사람의 시계가 그만큼 황량하고 별 볼 일 없음을 폭로할 따름이지 않은가. 어느 정도 날씨가 괜찮고 마실 무과 식량이 있는 평평한 땅을 찾으면 방랑을 멈추는 게 정상이다. 거기에 건물을 짓고 사람을 불러모아야 한다. -156


성실한 게 사랑일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부모의 사랑보다는 부모의 성실함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나는 좋은 아버지의 자질을 가졌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닐지도 모르겠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성실함의 양은 초인적인 수준이고, 그런 초인적인 성실함은 사랑이 없으면 발휘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170


나는 생각했다. 이곳에 뭐가 낯선 게 있을까. 왜 도시에서는 이렇게 감동을 하지 못했을까. '도시에서는 이렇게 석양을 기다려서 천천히 본 적이 없었으니까. 저녁 무렵에는 늘 할 일이 있었으니까. 해는 매일 지는 거라고, 구태여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석양 따위는 한가할 때 보면 된다고 여겼으니까.'-174


그러자 나는 이 여행이 인생에 대한 비유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정의 중반을 넘기고서야 어떻게 하면 시간을 의미있고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지 알게 된다. 다시 한번 처음부터 시작하면 진짜 잘할 수 있는데, 행까하면서. 유년기에는 '둘째 날'부터 잘 놀 수 있게 몸을 다져놔야 한다. 오전이나 젊은 시기에 맥주를 너무 많이 마시면 안 된다. 만약 그러면 남은 시간을 짜증이나 내다가 흘려보내게 된다. 스스로 즐거워지는 법을 찾아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여행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수도 없이 계획을 변경하다 겨우 즐기는 법을 깨달았을 때, 그때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 딱 이틀만 더 놀다 가면 좋겠는데'라고 아쉬워하면서.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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