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옷
사토 야스시 지음, 양억관 옮김 / 잔(도서출판)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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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반짝반짝 빛나는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 시절이 참 좋았다, 라고 생각하지만 다시 그 시간을 걷는 다면 나는 그 시절의 아름다움은 느끼지 못할 것 같다. 지나간 시간은 아무리 힘들어도 사람들의 추억이 되고, 기억 속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여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때때로 묵은 원한이 되기도 한다. 기억 속에서 즐거웠던 기억 보다는 슬프고, 속상했던, 아릿했던 시간 속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자신이 어렵게 살았음을 토로하며 지난 시간을 회한 하기도 한다. 케케묵은 시간 속의 이야기지만, 다시 들어도 늘 똑같은 레파토리의 이야기지만 그들의 기억 속 시계는 늘 그때 그 시간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돌이켜 보면 하지 말아야 되는 것, 시도를 해보았음직한 일들, 실패을 맞이한 청춘들의 시간에 머물러 있다.


사토 야스시의 <황금옷>은 여타 일본의 소설과 마찬가지로 잔잔하면서도 잘 읽힌다.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가장 육체적으로도 왕성한 그들은 꾸미지 않아도 황금옷을 입고 있지만, 그 시간을 사는 이들이에게는 자신이 가장 아름다운지 자각을 하지 못한다. 어쩌면 모든 것이 서툴러 늘 물 속에서 헤엄을 치면서도 몇 번이나 헛발질을 하며, 물을 먹고 나서야 정상적인 궤도에 오른다. 모험을 하기 보다는 안정적인 생활을 원했던 나는 어렸을 때도, 지금에도 변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다시 그 시간을 돌아간다면 안정을 추구하는 삶을 살지는 않을 것 같다.


반짝반짝 빛나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면서 이제서야 '청춘'의 의미를 몸과 마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예전에 어른들이 '너희 때 나이가 가장 좋을 나이다~'하며 부러운듯이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는데 그때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지금에서야 그 의미가 속속 되새겨진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말하지만 그 열병을 지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말이고, 감정이다. 파도의 한가운데서 미치도록 발장구를 치는 아이들에게는 먼 바다의 수평선을 내다 보는 것처럼 끝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사토 야스시는 그런 청춘의 아프고, 슬프고, 이리저리 치이며 공허하지만, 때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생활하는 이야기가 실려있다. 오다기리 죠와 아오이 유우가 주연한 '오버 더 펜스'를 시작으로 2편의 이야기가 더 담겨져 있다.


잔잔하면서도 섬세한 이야기들. 조용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그들의 목소리가 숨겨져 있어 읽는 내내 차분하게 앉아 작가의 이야기를 읽었던 것 같다. 그들의 몸짓이 결코 반짝반짝 빛나는 인생이라 볼 수 없을지 모르지만 청춘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색깔을 띄고 있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처음 만나는 작가지만 비운의 작가로 일컫는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청춘의 희노애락이 느껴졌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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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1 - 치명적인 남자
안나 토드 지음, 강효준 옮김 / 콤마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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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인 남자와 순수한 여자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늘 재미있다. 사람의 얼굴이 각각 다른 것처럼,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결혼에 골인하기까지의 과정은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하고, 때때로 그 시간이 영원한 것처럼 구름위에 올라 앉은 것처럼 몸과 마음이 온통 꽃밭이다. 삶의 음표가 두둥실 떠 있는 것처럼 마음이 날라갈 것 같은 가벼움과 상쾌함 행복이 절로 묻어 나온다. 그야말로 샤랄라하는 몸짓이 절로 나온달까. 영원불멸한 소재인 동시에 누가 하느냐에 따라 각기 색깔이 묻어나는 사랑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하고, 있을 때 잘하지 좀 하며 남자 주인공에게 버럭거리기도 하고, 때때로 결혼 후의 두 사람의 에필에 빙긋 웃으며 어른들의 동화를 마무리 짓곳 한다.

안나 토드의 <애프터 1>은 공부도 잘하고, 노아와 평범하다 못해 건전한 연애를 하고 있는 테사가 대학에 들어가 나쁜 남자의 전형이라고 말 할 수 있는 하딘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이성적으로 놓고 보자면 2년을 사귀고도 남자친구와 키스를 한 번도 하지 않는 두 쑥맥 테사와 노아 사이는 그저 건전한 연인 사이 혹은 친구라면 하딘은 만나는 여자마다 자신과의 염문을 뿌리며 밀고 당기지만 결국 연애는 절대하지 않는 밀당의 귀재이기도 하다. 사람의 마음을 오르락 내리락 하지 않고,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는 노아와는 달리 하딘은 그야말로 롤러코스터를 것 마냥 순탄치 않는 사랑이 될 것임을 알면서도 테사는 하딘의 매력에 빠져 불같은 사랑에 빠져 버렸다.

분명 안전한 궤도의 행성을 나두고, 로켓과도 같은 열정적인 사랑을 하는 하딘과의 불같은 사랑에 빠져든 테사는 점점 그를 만나 일탈을 넘어선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늘 평행선만을 보고 달리는 연애는 권태기가 오는가 보다. 모든 것에 있어 노아에게 큰 점수를 줄 만한데도 친구 이상으로 감정을 넘어서지 않는 두 사람의 사랑은 너무나 심심했고, 하딘과의 사랑은 자극적인 사랑이다.

나쁜 남자의 매력에 빠져 더 깊이 빠져든 순수한 여자 테사의 이야기는 수수한 사랑이야기 보다는 조금 더 끈적한 내밀한 19금의 이야기가 첨가되어 있다. 때때로 직설적인 남녀의 몸짓들. 자연스러운 동시에 너무나 쉽게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그들의 모습들. 남자가 살았던 시간들은 누가 보더라도 정말 싫을 것 같은 행동을 하는 하딘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매력에 풍덩 빠져 서서히 최악의 여자로 변모하는 테사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느껴졌던 책이다. 사랑하면 닮는다고 테사는 하딘의 그런 모습을 닮고, 하딘은 테사의 범생이 같은 모습을 닮고자 한다. 한 편의 하이틴 로맨스를 읽는 것처럼 두 사람의 이야기를 내년에 만나 볼 수 있다고 하니 스크린에서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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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 새움 세계문학전집
다자이 오사무 지음, 장현주 옮김 / 새움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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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어가는 빛


 떠오르는 태양이 아니라 저물가는 빛의 '사양' 뜨거움이 남지 않아 소멸해 가는 빛이므로 힘을 잃고 어딘가로 점점 사라진다. 모든 것이 그렇듯 저물어가는 해는 나라도 개인의 삶도 좋은 끝맺음으로 살아갈 수 없다. 쓰러지기 일보직전이라 아무리 무슨 수를 써도 비틀거리고, 모든 것이 날아가버리는 시간이라 인력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리뷰를 쓰기 전에 요즘 한창 챙겨서 보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보고 리뷰를 쓰니 만감이 교차한다. 시작이 있다면 끝도 있는 법이지만 드라마 속 조선인 대한제국은 '사양'길이고, 조선을 야금야금 먹으려는 일본은 무자비한 발걸음으로 우리나라를 시작으로 다른나라와의 전쟁을 일삼으며 점점 영토를 넓혀 나간다. 그러다 2차세계대전 이후 패전을 겪으면서 몰락해간다.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귀족으로 살았던 어머니와 사회의 하나의 힘으로 되고 싶었으나 그 속에 들어갈 수 없어 마약과 술로 지내는 남동생과 새로운 삶을 살고자 도모하는 나가 있다. <인간실격>과 더불어 <사양>은 우울하다. 슬픔을 넘어 우울을 동반한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은 당시의 상황을 빚대어 그려냈고 몰락해가는 상류계급을 칭해 '사양족'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했을 정도로 당시의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의 책에서 빠질 수 없는 우울과 도저히 회생할 수 없어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그 시기의 이야기들. <인간실격>과 마찬가지로 그의 이야기는 한없이 마음을 가라앉게 만든다. 그럼에도 시대의 전후를 겪으면서 맞아들이는 인물들의 삶은 전통은 지키거나, 시도했다 좌절하거나 다시 용기를 내어 혁명적으로 사랑을 쟁취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인물들이 그려져 있다. 시대를 타파하는 이야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기적으로 불운한 삶을 살았던 그들의 이야기는 시공간을 떠나 인간의 나약함과 강함이 동시에 공존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책이다.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스스로 삶을 멈춘 이들과 그럼에도 다시 살아가겠다는 그들의 이야기는 하나의 떨어지는 낙엽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것을 아름답다고 말하지는 못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이 각기 다르고, 어떻게 시대를 살아가야 되는지를 다자이 오사무의 문학을 통해 삶의 면면을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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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새움 세계문학전집
다자이 오사무 지음, 장현주 옮김 / 새움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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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도자기같이 깨질듯한 마음 속의 작은 마음.


 잔잔한 호수에 돌을 하나 던지면 수면 위에 퐁당하고 떨어지는 물의 파문들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수많은 물결 속에서도 돌이 미치지 않는 구역까지도 파르르르 진동이 오는 것처럼.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2년 전에도 한 번 읽어봤지만 도저히 주인공인 오바 요조의 마음 속 깊이 빠져 들지 못했다. 결이 다른 사람이라는 표현 밖에 할 수 없을 정도의 이중성 혹은 양파처럼 계속 까도 까도 더 깊이 절망하고, 움츠러드는 식물 같다. 속과 안이 다른 사람으로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섬세함의 끝판왕이지만 나쁜 쪽으로 보자면 이보다 더 예민할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모든 바람에 흔들리는 사람이다.


그런 이중적인, 삼중적인, 사중적인 불안이 당시의 젊은이들에게 마음의 위안을 주었다지만, 나에게는 그런 그의 모습이 난해하기까지 하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겉과 속이 다를까 싶기도 하고, 실제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의 부유한 환경처럼 주인공 요조도 돈과, 술, 담배, 여자등 그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었다.겉으로 승승장구 했던 일본이 태평양 전쟁 후 패전을 맞으면서 일본의 사회는 급격하게 나빠진다. 그런 일본의 내면을 그린 소설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기질과 다른 일본인들의 인식과 마음들이 요조의 생각들 속에 묻어 나있다.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인 <인간실격>을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에 대한 이력을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의 삶이 어쩜 요조와 닮아 있는지 그의 내면 세계를 복사하듯 주인공에게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역자 후기에서 말한 것처럼 <인간실격>을 좋아하는 이들과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다는 이가 있다고 했는데 나는 이 책을 두번째 읽음에도 도저히 그의 이야기에 깊이 동조를 할 수 없었다. 갖고 있는 기질이 달라도, 이해를 할 수 면은 있을텐데 유독 다자이 오사무의 책은 무던한 사람보다는 마음이 섬세하고 섬세한 이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나와는 달리 아쿠다가와상 수상 작가이자 개그맨인 마타요시 나오키는 <인간실격>의 매력에 빠져 다자이 오사무의 이 작품을 100번을 읽었다고 한다. 책을 읽을 때마다 줄을 그었더니 줄이 그어지지 않는 페이지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굉장히 인상 깊었다. 세상에는 수 많은 책이 있고, 그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 있는데 <인간실격>을 읽고 도무지 이해가 안되 책을 덮는 이가 있다면 누군가는 수백번을 읽고, 또 읽어도 마음에 남는 이가 있나보다. 그가 책을 읽고 평한 이야기가 있어 그의 글을 함께 옮겨 놓는다.


인간이 각자 가지고 있는 아픔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엄청 순수하고 성실한 소녀의 치통, 그리고 악인의 치통. 같은 아픔이지만 사람들은 소녀의 경우는 동정하지만 악인의 경우는 자업자득이라며 동정하지 않는다. 감정적으로는 그렇다 해도 아픔은 남아 있다. 우리가 고민 이야기를 하면 세상에 너보다 더 힘든 사람이 훨씬 많다며 고민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사실 그렇다. 그런데 나보다 힘든 사람이 더 많다고 해서 나의 고민이나 아픔이 없었던 일로 해야만 하는가? 『인간실격』은 이렇게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 p.163


모든 것이 황폐한 일본인들의 아픔을 여리여리한 요조의 마음이 일본사회 내에서 다독이는 손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일전에 번역문이 어색하다 하여 다시 다른 판본으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번역문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다자이 오사무의 글 자체가 그런 문장으로 되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파문이 번지는 물길같이 만질수도, 바꿀 수도 없는 마음이 오롯하게 느껴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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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산사 순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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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의 나라.


 유럽에 가면 가장 부러운 것이 높은 첨탑을 가진 건축물들이다. 종교를 믿지 않지만 오랜시간 세월이 지나도 굳건하게 세워져 있다. 수백년 혹은 수천년 전에 만들어 졌음에도 오래된 세월의 때만 묻었을 뿐, 증축되지도 허물어버리지 않는 그들의 역사가 담긴 건축물을 볼 때마다 경외스런 마음과 감탄이 절로 나왔다. 신을 믿지 않아도 답답하거나 마음이 흔들릴 때면 이곳에 들어와 조용히 마음 한자락 얻어 놓아도 좋겠다 싶을 정도로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가 생활했던 공간들을 지우개로 지우는 것마냥 흔적도 없이 부셔 버리고, 그곳에 높은 아파트와 아스팔트 길만이 존재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우리나라만의 색채를 갖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고만고만한 네모칸의 집들이 다르게 느껴지지 않아 늘,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산사순례>편을 읽으니 이것이야 말로 진짜 우리나라의 색채가 완연하게 묻어있다.


요즘은 세계의 많은 곳들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기에 진짜 보물같은 곳은 오히려 유네스코에 등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곳들이 사람들의 발길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이야기를 뉴스로 전해 들은 적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산사를 인도, 일본과 다른 차별성을 가진 우리만의 문화인 산사인 법주사, 마곡사, 통도사, 대흥사, 부석사, 선암사, 봉정사등이 한국의 승지승원이라는 이름으로 회원국 21개국 중 20개국의 찬성으로 올해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여행을 갈 때마다 일부러 오래된 절을 찾아 가보기도 하고, 가다보니 마주하는 절이 있다면 들러보기도 하는 곳이 산사다. 갈때마다 오래된 산사를 둘러보면 많은 여행객들의 발걸음에 치이기도 하지만, 호젓한 느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작은 돈이지만 불전함에 돈을 넣고, 조용히 합장하며 부처님께 예를 올린다. 스님이 목탁을 두들기는 소리도 좋고, 불당에 피워놓은 향 내음도 머리를 맑게 한다.


오래된 산사는 깊은 산중에 있어서 차를 타고 가는 제한이 있어 제법 많은 길을 걸어야 하는데 자의반 타의반으로 걷는 길이 때때로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영주 부석사를 시작으로 안동 봉정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와 미황사, 고창 선운사, 부안 내소사와 개암사, 예산 수덕사와 서산 개심사, 부여 무량사와 보령 성주사터, 문경 봉암사, 청도 운문사, 창녕 관룡사, 구례 연곡사, 영암 도갑사와 강진 무위사, 백련사, 정선 정암사, 묘향산 보현사, 금강산의 표훈사까지를 담고 있다. 이렇게 많은 절이 있나 싶게 책에서는 각 산사의 매력과 위치, 건물의 구조와 배치, 자리앉음새등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이름을 들어본 절도 많지만 상대적으로 이름조자 들어보지 못한 절이 많았다.


험한 산새에 들어가 오랜시간 자리를 잡은 절터는 이야기가 많이 숨어 있는데 유홍준 교수가 겪은 일화들이 산사의 자세한 설명과 들으니 더 애틋해진다. 시간이 지나 절을 들어가기 위한 길의 변형이 아쉬운 것은 비단 나뿐만 아니라 유홍준 교수의 마음도 같았는지 그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들어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전했으면 하는 아쉬움과 그럼에도 각기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절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느껴졌다. 특히 영주 부석사를 말하면서 5대 명찰을 논하는 <논제명찰(論諸名刹)>을 읊는 글이 인상적이었다. 한 편의 시 같으면서도 문장 속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들이 사진을 보지 않아도 한 눈에 느껴질 정도였다.


유홍준 교수의 글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미를 알고 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우리나라의 색채가 오롯하게 묻어나오는 산사순례는 그 어떤 여행 주제 보다 더 탐이 난다. 모든 이야기를 흡수하지 않아도, 천천히 그에 대한 건축물에 대한 의미와 역사, 절과 함께 어우러져 있는 산새의 풍경이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올 가을에는 책에 나오는 산사 중 한 곳을 꼭 가보고 싶다.  


춘삼월 양지바른 댓돌 위에서 서당개가 턱을 앞발로 묻고 한가로이 낮잠 자는 듯한 절은 서산 개심사(開心寺)이다. 한여름 온 식수가 김매러 간 사이 대청에서 낮잠 자던 어린애가 잠이 깨어 엄마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는 듯한 절은 강진 무위사(無爲寺)이다.늦가을 해 질 녘 할머니가 툇마루에 앉아 반가운 손님이 올 리도 없건만 산마루 넘어오는 장꾼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듯한 절은 부안 내소사(來蘇寺)이다. 한겨울 폭설이 내린 산골 한 아낙네가 솔밭에서 바람이 부는 대로 굴러가는 솔방울을 줍고 있는 듯한 절은 청도 운문사(雲門寺)이다.몇 날 며칠을 두고 비만 내리는 지루한 장마 끝에 홀연히 먹구름이 가시면서 밝은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듯한 절은 영주 부석사(浮石寺)이다. - p.23~24


좋은 길은 좁을수록 좋고, 나쁜 길은 넓을수록 좋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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