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 코드 - 인류 문명의 숨겨진 기원을 가리키는 단서 기자 대피라미드 탐사 보고서
맹성렬 지음 / 김영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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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눈으로 바라보는 피라미드 보고서


  아주 오래 전 크리스티앙 자크의 <람세스> 1권을 읽다가 몇 번이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접고 또 접었다. 도서관에서 몇 번을 빌리기를 반복하다가 대출기간을 하루 남겨두고 진도가 나가지 않는 1권을 계속해서 붙잡고 있었다. 5권이나 되는 책이다 보니 1권에 배경 설명과 많은 인물을 끄집어 내다보니 첫 발걸음을 떼는 입구에서 입장객들이 도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이 책의 재미는 1권 끝부분에서 시작해 2,3,4권은 정말 휘몰아칠정도로 '람세스'의 일대기가 휘몰아친다. 생생한 전투신은 물론이고, 고대 신전을 짓는 일들이 눈앞에 그려질 듯 선연하게 그려졌다. 책을 읽고 나서는 나중에 신혼여행을 간다면 꼭 이집트로 가고 싶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할 정도로 고대 이집트 문명에 푹 빠져 버렸다. 소설이다 보니 역사적으로 왜곡된 것이 있으나 고대 이집트에 대한 흥미를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꼭 읽어볼만한 소설이다.


크리스티앙 자크의 <람세스>가 고대 이집트의 어마어마한 스케일과 재미를 추구한다면 맹성렬 교수의 <피라미드 코드>은 단연 과학의 눈으로 인류 문명의 산실인 기자 대피라미드를 탐사한다. 과학의 문명이 발전했음에도 천문학, 기하학, 측지학, 건축공학 등 과학의 총체적인 것들이 들어있는 피라미드는 아직도 세계 7대 불가사의로 남겨져 있다. 문명의 발달에도 누군가 긴밀하게 수수께끼를 풀어내려 해도 도무지 답을 구해낼 수 없는 비밀의 공간이기도 하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점령할 때는 그 나라에서 제일 가치 있는 것을 차지하기 위해 각 분야별 전문가를 대동한다. 나폴레옹 시절에도 그랬고 알렉산드로스도 당연히 그런 시도를 했을 것이다. 특히 저명한 고대 그리스 학자들은 대개 알렉산드로스 시절 이전부터 그곳에서 다년간 유학 생활을 하며 놀라운 과학기술을 직간접으로 접하였기에 이를 얻으려는 욕망이 넘치고 있었다.


1장에서 알렉산드로스의 스승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이 사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 지시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많은 자료를 모으게 했다는 사실을 소개한 바 있다. 분명 그는 알렉산드로스가 이집트 땅을 정복했을 때 어디에서 무엇을 가져와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그런 자료를 요구 했을 것이다. 실제로 알렉산드로스 군대는  이집트 땅 곳곳에 있는 신전과 도서관에서 많은 서적을 복사 또는 얄탈해갔다. 이런 경로로 세계 지도들이 고대 그리스로 유입되었을 확률이 높다. 이처럼 경·위도가 정확한 지도들이 이집트 땅에서 유출되었을 것이란 의혹은 상당히 합리적이다. 지금은 잊힌 초고대 문명이 이집트 땅에 존재해 천문지리학과 기하학을 발전시켰을 것이라던 계몽 시대 프랑스 학자들의 주장이 옳은 것 같다. - p.135


책은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을 나서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한 나라를 점령하고, 그 나라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약탈해 가며 그들의 것을 집어온다. 한 나라를 파괴하는 동시에 그들의 보물을 인정사정없이 프랑스로 옮겨갔고, 그것이 훗날 과학의 발전을 일으킨 원동력 중 하나가 되었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시간이 지나 고대 문명을 밝힐 열쇠를 그들이 약탈해 간 발걸음에서 부터 시작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12궁도, 360일만을 나타내는 달력, 12방위, 베니스 지도, 칸티도 지도, 피리 레이스 지도등 처음에는 무엇을 말하려 하는 것일까 하는 정도로 낯선 문명의 기원과 체계들이 설명되어 있다.


어떤 문명의 흥망성쇠를 발전기, 극성기, 정체기, 쇠퇴기의 4단계 도식으로 보는 것은 자연스럽고 이해하기도 쉽다. 그런데 고대 이집트 문명에 이 도식을 무리하게 대입하는 것은 상당히 부자연스럽다. 문명 초창기로 체제 정비 단계에 있어야 할 1,2 왕조기 이전 시대 유적에서 너무 완벽하고 심지어 성숙한 유물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문자 사용, 수 체계 성집, 직조 기술 발달과 의복제작, 외과술을 중심으로 한 의학 발달, 해양용 선박 제작, 고도로 정밀한 광학 렌즈 사용, 강철보다 단단한 화성암 가공술 발달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 p.154


운명의 수레바퀴는 그 어떤 문명도 시작점을 넘어 끝이 맺어지는 시점까지 막지 못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물려 있었던 고대 이집트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던 로마도, 해가지지 않는 나라였던 영국도 아스라히 저물어갔다. 그럼에도 고대 이집트는 지금까지 많은 문명을 갖고 있는 체제에서 완벽을 기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요즘에 와서 그 비밀을 풀려는 많은 이들이 아직까지 풀 수 없다. 그들이 세운 왕국은 완벽했지만 문명의 최고점을 넘던 그들은 쇠퇴를 반복하다가 역사의 시간 속으로 사라졌다.


자신이 발견한 조각상 외에 쿠푸 왕의 흔적을 더는 찾지 못한 페트리는 헤로도토스의 기록을 바탕으로 쿠푸가 폭군이라 후대에 그의 자취를 지운 것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만일 그가 진정 기자 대피라미드 건축을 지휘한 파라오였다면 그는 절대 폭군일 수 없다. 그처럼 인류 역사상 최고 기념비적인 건축물은 결코 폭군의 절대 권력으로 건설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덴마크의 토목공학자 가드 헨슨은 엔지니어의 입장에서 대피라미드 건축 공정을 면밀히 분석해보았다. 결국 그는 다음과 같은 구절로 보고서를 끝맺어야 했다. "일반적으로 그런 공사를 제대로 진행하려면 키루스, 알렉산드로스, 카이사르, 나폴레옹, 웰링턴을 합쳐놓은 천재가 조직한 군대를 투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p.223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이토록 완벽하게 이집트 문명을 만들었는가, 기자 피라미드 코드에 대해 깨보려는 시도를 다층적으로 했으나 정답은 없다. 일부분 조각을 맞추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많은 근거를 가진 주장들이 맞을 것이라는 '추측'의 이야기들이 많았다. 비어져 버린 부분을 지금의 과학을 통해 초정밀도로 미스터리를 풀려고 했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에 있어서는 미진하다. 과학적으로 풀어내는 부분을 다 이해 할 수 없었으나 다층적으로 풀어내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어디까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지 맹성렬 교수는 수학적인 관점으로 건축학적으로, 법칙을 비교하며 풀어내곤 하는데 그부분에 있어서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고대 이집트가 갖고 있는 돌항아리에 대한 이야기나 초기 상형문자를 쓰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는 재밌게 읽었던 부분이다.  과학적으로 더 정밀하게 이해 할 수 있었더라면 더 깊이 피라미드 코드를 설명하는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지만 자세한 설명과 도판은 보는 재미에 푹 빠졌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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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을 법정에 세우다 - 영원한 내부고발자의 고백
신평 지음 / 새움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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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몸으로 써내려간 간절한 목소리


 올해들어 누군가의 비망록을 자주 접하게 된다. 최근에 읽었던 이국종 교수의 <골든아워> 역시 책의 제목이 지워지기 이전에는 그 글을 '이국종 비망록'이라고 불렀다. 누군가가 온 몸을 다해 써내려간 글은 짙은 호소력의 목소리로 전달된다. 각계 각층에서 울분이 터진 목소리가 비져 나오는 터라 요즘 뉴스를 볼 때면 공감하는 만큼 서럽고, 뉴스를 보기가 무섭게 터져나오는 사건에 리모컨을 돌리기가 두려울 때가 있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서 왜 그렇게 이곳의 상황을 몰라줄까 싶어 국회로 찾아간 이국종 교수에게 한 의원이 그에게 조언했다는 이야기처럼 이런 일이 그곳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분야가 다 그렇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회에 만연된 조직의 불순한 구조. <법원을 법정에 세우다>는 돈봉투가 오가던 93년을 시작으로 부패한 사법부를 비판하며 조직을 바로 잡고자 했으나 그의 목소리는 오히려 자신에게 불어와 자신의 앞길을 막아 버렸다. 그는 현재 헌법이 시행된 후 최초로 법관 재임명에서 탈락되는 수모를 안게 되었다.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았던 것처럼 '바른 말'을 하는 이의 목소리를 경청하기 보다는 내부고발자로 여기며 내부의 사람들이 오히려 자신의 동료를 앞세우고, 함께 가기를 막으며 그가 가고자 하는 길을 막아버린다. 너무나 많은 걸음들이 그렇게 돌아서고, 또 돌아서는 모습을 보았기에 그가 자신의 일기로 써내려간 기록들이 아프게 다가온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조직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상부에서 하라고 하면 해야 하고,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말아야 조직의 일원으로서 승승장구 할 수 있다. 아니, 중간쯤 가는 정도일까. 법에 대해 관심이 없는 독자라도 매번 티비를 틀면 어김없이 터져 나오는 사건 속에서 판결을 내리는 법원은 '공정'해야 하지만 어쩐 일인지 죄의 방향성을 온데간데 없이 저울의 무게는 일정하지 않고 기울어진 추같이 한 곳에 기울어져 있다. 때때로 판결이 내려진 사건을 보면 우리 사회에서 과연 '정의'는 있는 것인가 하는 물음이 슬며시 떠오른다. 사회적인 병폐와 부조리한 현상에 대해 말하는 법관들도 많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저 밑바닥에 가라앉는 것 같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저자의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고, 그가 왜 법관 재임명에서 탈락된지도 몰랐다. 그저 책을 보고 하나의 픽션이 섞인 이야기인줄 알았다. 그의 목소리를 책에서 말고는 들어본 적이 없어 낯설었지만 온 몸으로 써내려간 간절한 목소리에 모든 것을 말해준다. 그의 목소리를 그의 책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더해 조직의 문화를 바꿨으면 하는 희망은 있으나 빠른 시간 그것이 해소될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이렇게 여러 사람이 사건의 진실을 알고 그의 목소리를 간곡하게 들어주고, 관심을 갖는 것부터가 사회를 공정하게 만드는 시작점이 아닌가 싶다. 어느 곳 한데 병든 곳이 아닌 곳이 없다지만 모든 것을 심판하는 사법부만은 그렇지 않기를 바랬는데...책을 읽고 나니 그의 간절한 이야기와 부패가 심한 그곳의 이야기가 더 잔악하게 들려온다. 무엇이 그토록 그 조직을 사악하게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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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가 되기
존 가드너 지음, 임선근 옮김, 레이먼드 카버 서문 / 걷는책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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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길


이야기를 좋아해서 늘 이야기를 찾고 다녔던 것 같다. 쓰는 재주는 없으니 읽는 것에 더 매달렸다. 단편과 장편 가릴 것 없이 소설이라면 다 좋아하는 편이라 경계없이 읽고 다녔다. 처음에는 좋아하는 것에만 치우치기도 했는데 읽다보니 호흡이 짧은 글도, 호흡이 긴 문장도 다 좋았다. 책을 읽고 나면 책의 제목, 소설가의 이름, 주인공의 이름들, 줄거리를 하나하나 꿰어가며 이야기를 할 수 있던 시기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 부터는 한 번 읽었던 책도 몇 년 후에 다시 볼 때면 안 읽은 것 같은 착각이 들만큼 기억이 휘발되기도 했다. 좋아하는 책에 한 해에서는 여러번 반복해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해 여러번 읽기도 하지만 매년마다 세우는 장기적인 목표는 좋은 문장들이 담긴 작품을 찾아 읽는 것이다. 이왕이면 많은 이들의 손을 거친 작품들이라 보니 '세계문학'을 읽는 것이 목표지만 계속해서 읽기한 쉽지 않다.

독자가 좋은 문장, 좋은 표현, 좋은 소설을 찾아 나서는 만큼 글을 쓰는 소설가에 대한 일이 궁금해진다. 소설은 어떻게 쓰는 것이며, 어떤 부분에 공을 들일까 하는 중요한 문제들이 궁금해질 때마다 젊은 소설가들이 읽을 법한 작법서를 마주 한다. 몇 권의 책을 읽다보니 정답이 쓰여 있기 보다는 자기계발서처럼 교과서 같은 답이 쓰여 있다. 많이 읽고, 꾸준히 앉아 매일 얼마만큼의 글을 써야 한다는 것. <장편소설가 되기>는 이보다 더 구체적인 동시에 현실적인 이야기가 많이 들어있는 편이다. 소설가 지망생이 아니므로 나에게 이 책이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은 '레이먼드 카버'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단편을 아주 찰지게 쓰는 소설가라 그가 말하는 작법이 궁금했으나 결론적으로는 레이먼드 카버의 수업이 아니라 그의 스승 존 가드너가 가리키는 작법 수업이다.


영문의 작법수업임으로 배울 것은 많지만 한글로 쓰는 작법 수업이 아니기에 아쉬운 점이 많다. 그럼에도 그는 구체적으로 글을 쓰는 이야기 만큼이나 소설가의 삶에 대해 경계 할 것에 대한 이야기를 명확히 그려내고 있다. 더불어 소설가 지망생이 막 소설을 시작했다면 좌절 보다는 응원의 메세지도 더한다.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문학을 전공한 적이 없음으로 한 수 배워보고 싶은 마음에 책을 펼쳐들게 되었지만, 무엇이든 깊이 들어가면 한층 더 깊은 철학을 요한다. 레이먼드 카버는 그의 수업을 들으면서 그와 격렬하게 논쟁을 하고, 그가 조언하며 언급한 이야기들이 많이 도움이 되었다라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좋은 스승과 좋은 제자의 시너지가 작품 곳곳에 베어져 나오듯 소설가의 길은 좋은 낱말, 좋은 문장을 넘어 삶의 철학까지도 배울 수 있는 책이었다. 글을 쓰는 과정 뿐만 아니라 출판의 과정까지 꿰고 있다면 소설가로서 더 탄탄하게 입지를 다지며 갈 수 있는 팁도 제공한다. 글을 쓰는 삶에 대해 노하우에 대해 깊이 통찰 할 수 있는 글이었다. 존 가드너의 책은 한 번도 접해보지 않았는데 이번 기회에 펭귄클래식에서 출간된 <그렌텔>도 한 번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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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너가 쓴 것이면 뭐든 닥치는 대로 읽어라. 그다음엔 헤밍웨이의 모든 작품을 읽어라. 네 머리에서 포크너를 깨끗이 씻어내기 위해." - p.21

토론 전에 그는 내 원고에서 불필요한 문장이나 어구나 낱말, 심지어 구두점까지 날려버렸다. 이에 대해서는 어떤 절충도 불가능하다는 점을 나는 받아들여야 했다. 어떤 문장이나 어구, 낱말은 괄호로 묶여 있었다. 우리는 그런 부분을 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절충이 가능한 부분이었다. 그는 또 내 원고에 뭔가 첨가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건 하나의 낱말일 수도, 몇 개의 낱말들일 수도, 문장일 수도 있었는데, 내가 말하려는 바가 그것들 덕분에 명료해졌다. 우리는 쉼표 몇 개를 놓고 그 순간만은 이 세상에서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다는 것이 격론을 벌이기도 했다. - p.22​


진짜 잘 쓴 소설을 손에 쥐었을 때 우리는 첫 페이지 다섯단어만 읽고도 자신이 지면에 인쇄된 글자들을 읽어 내려 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기 시작한다. 장면을 떠올리기 시작하는 것이다-쓰레기통을 뒤지고 다니는 개들, 알레스카 산악 지대 위를 선회하는 비행기를, 파티에서 슬그머니 자기 냅킨을 핥는 노파를. 내가 지금 어디에 앉아 있는지, 점심때가 되었는지 일할 시간이 되었는지 따위는 잊고 몽상의 세계로 미끄러져 간다. - p.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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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좀 느긋하게 지내볼까 합니다 - 몸의 감각을 되찾고 천천히 움직이고 필요 없는 것은 내려놓고
히로세 유코 지음, 박정임 옮김 / 인디고(글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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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의 여유 


​ 날이 덥다는 이유로, 때로는 날이 춥다는 이유로 차를 타고 가다보니 걸어다니는 횟수가 훅 줄어 버렸다. 빨리 가는 대신 잔잔하게 머릿속에서 피어오르는 생각을 하는 시간이 줄어 버렸다. 조용히 앉아 차 한잔을 음미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아하지만 조용한 공원에 발걸음을 조붓이 내딛으며 자연의 풍광을 느끼며 산책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지나간 일, 앞으로 해야 할 일, 읽었던 책들의 장면들이 하나 둘 생각의 편린 속에 자리 잡을 때 마다 생각을 하게 되고, 다시 장면의 장면을 해석하게 된다. 때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자리 만을 고수하는 일이 있다면,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니 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든다.


히로세 유코의 <이제 좀 느긋하게 지내볼까 합니다>는 전작 <어쩌다 보니 50살이네요>의 작가의 신작이다. 붉고 뜨거웠던 기온이 어느새 떨어지고, 찬바람이 불어오는 날씨를 맞다보니 훈김이 나는 책이 그리워진다. 뾰족뾰족했던 마음이 다시 편편하게 다스릴 수 있게 하는 책인 동시에 빠르게 지내온 우리들에게 삶의 '여유'를 느끼게 하는 책이다. 빠르게 속도를 내면 목적지에 빨리 갈 수는 있지만 지나간 풍경은 눈에 담을 수 없다. 히로세 유코는 빠른 걸은 대신 몸을 스치는 바람과, 소리를 내며 우는 새, 소슬치는 바람에 움직이는 나뭇잎의 풍경, 긴장을 해소 시킬 수 있는 훈김이 도는 차 한잔의 여유를 느끼며 나는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으라고 그녀는 잔잔한 목소리로 조곤조곤하게 이야기를 풀어 넣는다.


일본인 특유의 섬세함과 그녀의 경험이 녹아든 이야기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교훈'처럼 이야기 한다. 살아보니 쉬엄쉬엄 살아도 괜찮고, 자신이 걸어온 시간만이 오롯하게 나를 드러낼 수 있는 나이테였다고. 자신이 가진 것들을 움켜 쥘 것이 아니라 욕심을 내려 놓고, 나이에 불문하고 끊임없이 배우는 삶이야 말로 나를 더 풍요롭게 한다는 이야기를 건넨다. 나이가 들어 이제는 다 살았다고 하며 먹는 것, 입는 것을 풍족히 하기 보다는 몸과 마음을 다스리며 배움의 길을 걸어가는 노년의 모습이 내가 살고 싶은 훗날의 모습이다.


어떤 것이 '힐링'인지는 모르겠으나 마음 속에 작은 평화를 느끼는 일 또한 소소한 움직이나 인사말을 통해 충족될 수 있다. 저자는 마음이 심란 할 때 천천히 움직여주고, 심호흡이 필요하다고 했다. 삶에 있어서 슬픈 일이 있는 것도 나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훗날 그 일이 단단한 지렛대 역할을 해준다고 한다. 인정하는 삶이 느껴지는 책이기도 했다. 요즘은 수요하는 삶 보다는 나의 기본 권리가 침해되면 너나 할 것없이 마음들을 뾰족이며 사람들을 상처내곤 하는데, 이 책은 모든 일에 있어 긍적적이며 수용적인 삶을 살라고 권하는 것 같다. 나의 나이테가 세월이 지나 서서히 그어지는 것처럼 섬세하고 느긋하고, 가벼운 몸짓의 삶을 살고자 하는 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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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의 생활이 쌓여서 그 사람이 만들어진다. - p.14


"꿀벌이 한 스푼의 벌꿀을 모으는 데에는 평생이 걸립니다. 벌은 우리를 위해 꿀을 모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벌에게서 꿀을 나눠 받고 있는 것이지요.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p.25


바라는 것이 모두 이루어진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의 인생에서 필요한 일이고, 간절하게 원하면 그 바람은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생각하는 일은 즐거운 일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알고 있으면 삶의 방향이 자연스럽게 그쪽을 향해 갑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희망사항을 써야겠지요. - p.37


사실은 하고 싶은 일을 적는 것이 긍정적인 태도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갈등하거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 섰을 때, 자신이 원하는 것 조차도 알 수 없을 만큼 길을 잃었을 때, 하고 싶지 않은 일의 목록을 만드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됩니다. - p.41


기공수업은 두 시간 정도로, 처음 30분은 선생님이 교실에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 이야기가 무척 좋습니다. 마음속에 바람이 스쳐가는 느낌입니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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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남자와 금성여자를 넘어서 - 차이를 넘어 마음으로
존 그레이 지음, 문희경 옮김 / 김영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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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넘어 새롭게 만나는 남녀의 관계의 기술

 책을 읽지 않았는데도 유명한 책을 만나다 보면 읽은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한다. 기시감이 들 정도로 작가의 이름과 제목, 표지까지 무수히 많이 접했으나, 속은 깊이 알 수 없었던 이 책이 내 눈앞에 있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비유해 존 그레이는 남자를 화성에서 왔다했고, 여자를 금성에서 왔다 했다. 2006년에 출간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는 12년만에 시간을 넘어 21세기 <화성남자와 금성 여자를 넘어서> 라는 이름으로 업그레이드 되어 출간되었다. 기존의 책을 읽어보지 못했으나 시간은 사람들의 환경을 바꾼 동시에 남녀의 역할과 생각, 인식등이 개선되었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아직도 인식이 많이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하는 일을 구분하고 있다.

남자 사람과 여자사람의 차이는 얼마나 큰지를 존 그레이의 책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같은 사람이지만 서로 다른 신체 조건을 갖춘 남자와 여자의 성향은 서로 상충된다. 같으면서도 다른 성향의 사람이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다가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되고, 결혼을 하다보니 서로 맞부딪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르겠다. 존 그레이는 시간을 넘어 새롭게 만나는 남녀의 관계의 기술을 다각도로 정리했으나 요점만 말하자면 서로 다른 객체이기에 서로의 다른 점을 이해하고 보듬으며 살아가라는 이야기다.

그는 남자와 여자의 성향이 얼마나 다른지 도표를 통해 서로 다른 성향을 나누어 설명했고,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 설명되는 호르몬들을 예로 들어 남성성과 여성성의 두드러진 면을 세밀하게 나누어 이야기한다.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 옥시토신으로 인해 남자와 여자는 각기 몸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의 상관관계를 통해 서로의 특징을 뚜렷하게 나타낸다. 남자는 테스토스테론을 여자에게는 에스트로겐이 적정 이상 분비 되어야만 원활하게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남녀의 차이를 호르몬에 비례하여 그들이 갖는 문제와 스트레스를 남가 흐르는 호르몬을 통해 비교하고, 분석하는 이야기가 마치 의학 드라마처럼 여겨진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낭만적 사랑의 상징이 된 이유는, 사실 그들이 결혼하자마자 죽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계속 살았다면 그 시대의 여느 부부들처럼 서로에 대한 열정이 식은 채 결혼생활을 이어갔을지도 모른다. 부부 사이에 역할을 나누는 관계가 굳어져 처음 만난 순간의 설렘을 잊었을 것이다. - p.55


어렸을 때 동화를 읽다보면 마지막 장면은 늘 왕자와 공주가 결혼해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로 끝이 난다. 그때는 그것이 진정한 해피엔딩인줄 알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것이 진짜 행복한 끝맺음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결혼은 남녀의 행복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책을 읽다가 셰익스피어가 쓴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를 읽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르겠다. 서로의 열정에 불타올라 시작점까지도 못한 로미와 줄리엣은 진짜 로미와 줄리엣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그저 만나지 못하는 애타는 마음으로 끝을 맺었기에 사랑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설명이 콕하고 마음에 박힌다.


요즘은 남자든 여자든 가족의 생존과 안전을 어느 한 사람이 떠안지 않으므로 자유롭게 더 높은 수준의 욕구를 느낄 수 있다. 이를테면 정서적 지지를 받으며 진짜 자기를 마음껏 표현하고 싶어 한다. 얄궂게도 남자와 여자가 물질적으로 서로에게 덜 의지하면서, 정서적 지지와 개인적 충만감을 위해 남녀는 서로에게 더 많이 의지하게 되었다. - p.59


남자와 여자가 생물학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서로의 차이와 각자의 호르몬 욕구를 이해하면 배우자에게 계속 매력을 느낄 수 있다. - p.129~130


시간이 지나면서 가장 많이 바뀐 부분이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만나 선택하는 기준이 이제는 누구의 경제권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을 표현하고, 자신을 보듬을 수 있는 이를 찾는다. 할머니, 엄마, 이모가 남자를 고르던 시대와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인 시대가 다가왔고, 우리는 이전보다 더 정서적인 배우자를 찾아 함께 일을 하고, 가정을 꾸며 나가기를 원한다.


마음을 나누는 관계의 황금률은, 남자든 여자든 관심과 사랑과 지지를 충분히 받지 못하는 느낌이 들면 동굴 시간이나 '내 시간'으로 주의를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부부들은 서로 지나치게 얽혀 있어서 열정이 빨리 식는다. 2단계에서 사랑의 창이 열리는 5일 동안에도 여자에게 필요한 짝 유대가 생기지 않으면 배우자 이외에 다른 데서 짝 유대를 형성할 방법도 많다. 이렇듯 친밀감이 춤추든 유연하게 변하려면 독립심뿐 아니라 상호 의존성도 필요하다. - p.327


가까운 사이 일수록 자기만의 방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고 존 그레이는 주장하고 있다. 그는 둘 사이의 관계는 친밀한 것이 좋지만 너무 지나친 집착은 서로가 멀어지는 길이라고 충고한다. 서로가 서로의 호르몬이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가벼운 스킨십을 해주는 것 (키스나 포옹같은)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는 자신을 예로 들면서 일어날 때, 출근 할 때, 퇴근 후에, 자기 직전에 아내 보니에게 늘 안아준다고 한다. 서로의 성향이 달라도 가벼운 스킨십은 정서적인 지지와 개인적인 충만감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읽으면 읽을수록 서로 다른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려 나간다는 것이 쉽지 않는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서로 다른 행성에 온 사람들이기에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 보다는 '너'를 생각하고 서로 양보하고, 노력해야만 튼튼하고 탄탄한 관계를 오래 지속시킬 수 있다. 너무 과해서도 너무 접촉이 없어서도 안되는 중도의 길이 얼마나 어려운 길인가를 다시금 그의 책을 통해 깨달았다. 


함께하는 자리에 공간을 두라. 두 사람 사이에 천상의 바람이 춤추게 하라.(···) 함께 서 있으되, 너무 가까이 붙어 있지는 말라. 신전 기둥은 서로 떨어져 있고, 떡갈나무와 사이프러스는 서로의 그늘에서 자라지 않으니. - p.328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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