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엮음.옮김 / 김영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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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을 안내하는 적확한 안내자 헤세의 비평.


 올해 그책에서 출간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배수아 작가의 번역으로 읽었다. 지금까지 만난 헤세의 판본 중에 가장 좋아서 헤세의 글을 더 읽어보고 싶어 고른 책이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이다. 헤세의 책은 <데미안>을 포함해서 그의 많은 대표작들이 출간되어 있지만 그의 글이 손에 잡힐듯 그려지지는 않는 작가다. 그럼에도 그의 글에는 풀어내지 않는 관념 같은 것이 묻어 있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풀어 내야만 비로소 그의 깊이를 음미 할 수 있다. 아직까지 그런 경지에 오르지 않았기에 천천히 그의 작품을 하나 둘 접하고 있고, 그의 작품이 아닌 글을 접하고 싶어 만난 책 역시 그의 색깔이 오롯하게 드러난다.


작가로서 직접 글을 쓰는 것 뿐만 아니라 그는 책을 읽는 것 또한 좋아하는 작가다. 엄청난 분량의 책을 읽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서평을 받기 위해 여러 출판사들이 그에게 책을 보냈다고 한다. 늘, 책더미에 싸여 있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책의 무덤 속에서도 그는 자신만의 불을 밝히며 책을 읽어 나갔다. 1900년부터 1962년까지 작품을 쓰는 틈틈이 신문과 잡지에 수 많은 서평과 에세이를 기고 했고, 그가 쓴 3천여 편의 서평 중에서 73편의 글만 뽑아 엮은 책이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이다. 프란츠 카프카, 귀스타브 플로베르,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레프 톨스토이, 로맹롤랑, 보카치오, 셀라 라겔뢰프, 슈테판 츠바이크, 크누트 함순, 프랑시스 잠,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조너선 스위프트, 로베르트 무질, 펄 벅, 카렐 차페크, 조지프 콘래드, 스탕달, D.H 로렌스, 공자, 노자, 열자, 포송령, 조설근등 그야말로 동서양을 넘나드는 작가와 책의 리스트들이 담겨져 있다.


몇몇 작가에 대한 작품은 읽어본 적은 있지만 대부분 이름은 들어봤지만 일면식도 없는 작가와 작품들이 많았다. 그의 서평은 그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군더기기가 없다. 깔끔하며, 적확하게 작품을 이야기하고 있고 혹은, 작가에 대한 이야기와 그의 글쓰기에 대해 거침없이 이야기 한다. 시공간은 달라도 거장과 거장과의 만남은 독특한 느낌을 주는 동시에 그가 읽어가는 프란츠 카프카,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레프 톨스토이를 어떻게 읽고 느끼는지를 알 수 있다. 동종업계를 종사하는 그는 책을 허투루 읽지 않고, 또 작가로서 냉철하게 그들의 글을 읽으면서 그들의 변한 문제나 혹은 날렵하게 베어내지 않는 무딘 칼날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를 건넨다. 때론 그가 애정하는 책이나 작가에 대해서는 얼마나 애정의 깊이가 담겨져 있는지 단어 하나하나만으로도 반짝반짝 빛이 난다.


많은 이들이 읽고, 또 읽어냄으로서 거장의 찬사를 받는 괴테도 헤세의 날렵한 눈빛에는 벗어나지 못하는지 유독 그의 글에 대해서는 서리가 내려 앉는다. 헤세가 읽은 혹은 글을 쓴 궤적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생소하면서도 접점이 없어 도무지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길을 잃을 때가 있다. 이 책은 그의 궤적을 따라 올라가기 전에 위에 언급된 수 많은 작가와 책의 리스트들을 반 이상 읽어본 독자라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장편 소설을 쓰든, 산문을 쓰든, 시와 서평을 쓰든 그는 각기 다른 칼로 그의 생각을 드러내고, 적확하게 작가를 이야기 하며 그의 작품 세계의 본질을 꿰뚫어본다. 작가를 깊이 알아야만 설명할 수 있는 궤적의 깊이를 그는 말하고 있고, 겉에서만 맴돌아서는 알 수 없는 작품의 의미를 그는 누구보다 더 깊이 이해한다.


고수의 서평은 이런 것이구나, 생각될 정도로 그는 할애된 지면 속에서 하고픈 말을 허락된 공간 안에서 그 작품을, 그 작가의 색채를 드러냈다. 읽는 내내 헤세의 눈으로 날렵하게 많은 작품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아쉬운 점 또한 많은 작품을 접했음에도 상대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운 책이기도 했다. 그와 같이 그에 관한 읽고 읽었더라면 더 풍성한 책의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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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놀랍고도 단순하고 순수한 인간이었던 것 같다. 서문은 약간 서투른 방식으로 그를 소개하고 있지만, 여기서 알게 된 몇 가지는 이 동화 작가와 아주 잘 어울린다. 그는 가난하게 자라 일찍부터 남의 후원을 받았고, 여행을 좋아하고 명예욕이 있었지만 언제나 동화속의 길 떠난 아들 모습이다. 마지막에는 명성을 얻고 돈도 벌었지만 다정함은 얻지 못해 늘 마음이 결핍되어 있었고, 사랑에서도 불운했다. 이 특이한 남자는 이렇게 살았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어린아이였기에 실망하고 외로울 때면 아이들 곁으로 돌아가 아이들을 위한 동화를 구상했다. 그는 다른 작품들 덕에 명성을 얻었지만 오직 그의 동화들만이 살아남았다. 이들이 스러지지 않는 종류의 것들이기 때문이다. - p.23 <안데르센 동화집> 중에서


이 소설을 절반 성숙한 힘든 소년의 개인 이야기로 읽든, 아니면 미국이라는 나라와 그 국민의 상징으로 읽든, 독자는 작가를 통해 낯섦에서 이해로, 역겨움에서 사랑으로 넘어가는 멋진 길을 안내받는다. 문제 많은 시대, 문제 많은 세계에서 문학이 이보다 더 높은 것을 성취할 수는 없다. - p.26


이 책에서 늙은 대가 함순을 보여주지 않는 문장은 단 하나도 없다. 그 옛날의 대담하고 변덕스런 관찰이자 작가인 함순을, 모든 것이 여기 다시 나타난다. 그의 비웃음, 일상적인 것에 대한 경멸, 날씨나 사랑 같은 일에서 신경질적인 섬세함, 탁월함을 기뻐함, 감추어진 우수 등 그 모든 것이 다시 나타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는 저 나이의 숨결이 덧붙는다. 더욱 부드러워진 지혜와 가볍게 비웃음이 섞인 미소, 모든 감상주의를 더욱 꺼리는 태도 등이. 개별 장면들에서 그는 완전히 늙은 사람이다. 늙은 폰타네의 모습, 늙은 라베의 모습, 하지만 월등한 몸짓으로 갑작스럽게 그 옛날의 함순, 결코 만족하지 않는 빛나는 함순이 순간적으로 나타난다. 아마도 그는 체념했고 자주 피곤하겠지만, 그리고 아마도 호주머니 속에서 주먹을 자주 움켜쥐는 일도 더욱 드물어졌겠지만, 삶은 크누트 함순을 그렇게 쉽게 끝장내지 않았다. - p.180~181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운명만이 아니라 그런 일이 벌어지는 무대 자체도 중요하다. 이 섬세하고 사랑스런 작품들의 배경은 언뜻 보기에는 성과 산, 골짜기와 정원, 가까운 해변이지만, 실제로는 시인의 영혼이다. 그는 영혼 안에서 이 세계의 온갖 현상들은 아름다운 하늘에 떠가는 한조각 구름처럼 부드럽고 맡갛기도 하다. - p.203


그가 더 엄격한 시 형식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말로 옮겨갈 때마다 세계와 그 내면의 풍부함이 그에게 과도하게 쏟아져 들어왔던 듯하다. 그는 처음부터 순수하게 예술적으로 제한된 서술 형식이 가능하지 않음을 알았거나 아니면 느끼고, 이야기꾼으로서 온갖 형식을 동원하여 인간성을 추적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다. 즉 필요에 따라 상당히 멋대로 대화 형식, 현지 형식, 일기 형식, 그리고 자주 직접적인 가르침의 형식을 사용하기로 한 것 같다. - p.208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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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일 : 생물.도시.기업의 성장과 죽음에 관한 보편 법칙
제프리 웨스트 지음, 이한음 옮김 / 김영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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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보편 법칙


 연일 폭염이다보니 선풍기와 한몸같이 살고 있다. 거리를 걷다보면, 뜨거운 햇볕을 가리기 위해 양산을 드는 이가 있는가 하면, 손선풍기를 드는 이가 있다. 핸드폰도 들어야 하고, 손이 모자랄 정도다. 더불어 별다방에서 막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까지. 그야말로 손이 몇개가 필요하다. 불에 타는 듯한 더위 때문인지 요즘은 무엇을 해도 흥이 나지 않는다. 그저 더위만 가시면 좋으련만, 집이고, 회사고, 모든 건물에서 연신 찬바람을 내뿜고 있고, 도로에는 지글지글 끊는 아스팔트와 차가 연신 지나간다. 사람과 도로, 차는 있는데 열이 발산하며 식혀줄 공간이 없다보니 도심의 더위는 더 지글지글 타오른다.


휴가 때 버스를 타고 시골에 다녀왔다. 도시와 다른 풍요로움이 있고, 분명 도시와 같은 온도임에도 주변에 나무가 많아서 그런지 밤에는 선선했다. 날씨가 살짝 흐렸지만 멀리 별도 많이 떠 있었다. 예전에는 도시가 주는 편리함이 좋았다면, 요즘에는 사람들의 익명성을 제외한 모든 것들이 일률적으로 붙어있고,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상대적인 박탈감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요즘에는 더위에 시달리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탁한 공기 때문에 더워도 마스크를 끼고 다녀야 할 정도로 미세먼지 걱정을 모두가 할 정도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물질적인 풍요로워지지만 예전과 비교해 요즘이 더 나은 세상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성장하는 시기는 이미 지났고, 더딘 성장과 인구 팽창, 에너지와 환경문제, 출산 저하와 노령인구의 증가, 인간 수명, 삶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는데 그에 따른 지구환경은 점점 최저치를 찍고 있다. 제프리 웨스트의 <스케일>은 제목 그대로 엄청난 범위의 주제의 이야기를 담아 그에 다른 전망을 다룬 책이다. 과학에 관한 거시적인 관점을 다룬 책을 읽을 깜냥이 되지 않지만 이론물리학자인 제프리 웨스트의 새로운 개념과 평소 느꼈던 생각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그의 책을 읽게 되었다.


죽음, 세금, 다모클레스의 칼처럼, 열역학, 제2법칙은 우리 모두와 우리 주변의 모든 것에 적용된다. 마찰로 무질서한 열이 생성되는 것과 비슷하게, 흩어놓는 힘들은 끊임없이, 가차 없이 작용하면서 모든 계를 붕괴시킨다. - p.29


그의 책은 모토카와 타츠오의 <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2018, 김영사)를 떠올리게 한다. <스케일>은 생물, 도시, 기억의 성장과 죽음에 관한 보편 법칙이라고 쓰여진 부제처럼 하나의 상황이 그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한 줄기로 엮이며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저 하나의 분야만이 오롯하게 발달되고, 허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사람, 과학, 도시와 성장, 죽음이 하나로 묶여져 있다는 말이다. 그는 그것을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왜 혁신의 속도가 빨라지는지를 대담하게 설명한다.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스케일링은 단순히 말해서, 크기가 변할 때 계가 어떻게 반응하느냐를 가리킨다. 도시나 기업의 크기가 2배로 커지면 어떻게 될까? 건물, 항공기, 경제, 동물의 크기가 반으로 줄어든다면? 도시의 인구가 2배로 는다면, 그에 따라 도시의 도로, 범죄 건수, 특허 건수도 약 2배 늘어날까? 매출이 2배로 늘면 기업의 이익도 2배로 늘까? 동물의 몸무게가 반으로 줄면, 먹이를 먹는 양도 줄어들까? - p.31


무엇보다 이 책의 매력은 과학에 대해 관심이 없는 일반인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쉬이 쓰여져 있다. 물론 위에서도 말했지만 그의 이야기를 다 이해할 수 있는 깜냥을 아니지만 유기적으로 그가 만들어낸 거시적인 주제와 관념들이 어떻게 이어져있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관계를 갖고 있는지 조곤조곤 설명해주고 있어 하나의 주제가 아닌 보편 법칙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인간을 가지고 실험을 할 수 없음으로 스케일링 법칙은 동물의 크기를 통해 그들이 먹는 먹이, 심장 박동의 수, 수명등을 계산 할 수 있다. 종종 우리는 신약을 계발하기 위해 쥐를 이용하는데 쥐를 대입할 것이 아니라 몸집이 작는 동물과 큰 동물의 차이를 계산하고, 그들이 에너지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관리하는지를 관찰한다. 그것으로 도출된 결론에 따라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규모에도 적용이 된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다 보니 동물의 크기 추적은 인간과 몸피와 비교하여 대사율과 체중에 따라 수명을 알 아낼 수 있다니 그에 따른 인구 증가와 도시의 성장과도 연관이 깊다. 유기적인 접근인 동시에 원리와 패턴이 있는 그의 이야기가 꽤 설득력 있게 들린다.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는 느낌이라 읽는 내내 현미경을 바라보듯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다르게 느껴질 정도로 매력적으로 다가온 책이다. 새롭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통찰의 힘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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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관청기행 - 조선은 어떻게 왕조 500년을 운영하고 통치했을까
박영규 지음 / 김영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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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국가 시스템의 모든 것!


​ 오랜만에 재미있는 책을 만났다. 지금껏 읽은 역사책 중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을 만큼 유익하면서도 재미가 있는 책이다. 저자는 책 제목을 '기행'이라 표기했지만 '기행'이라 쓰고 '사전'으로 읽는다, 라는 말을 쓸 정도로 조선이라는 나라의 골격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책이다. 500년동안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지속되었던 나라. 현대의 시점과 가까워서 가장 많이 책과 영화, 드라마에서 수도없이 그들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재생산 해내면서도 화수분같이 끝도 없는 그들의 이야기를 읽고, 보면서 자라왔다. 이야기를 끊임없이 만들어지는데도 끊임없이 그들이 기거하는 공간이 다르고, 이야기의 방향이 달라 어떻게 그런 이야기가 만들어지는지 늘 궁금했는데 비로소 <조선관청기행>을 읽으면서 그 궁금증을 알아냈다.


한 나라가 500년 동안 지속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인체와 같이 골격이 탄탄해야 하는데 조선은 놀랍게도 사람의 몸과 같은 국가 경영 시스템이 정교하게 짜여져 있다. 마치 로마가 모든 나라를 재패한 것처럼 그들이 그럴 수 밖에 없는 장점을 가진 것처럼 조선 또한 500년 역사의 힘이 하루 아침에 나온 것이 아님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책을 읽다보면 왕과 왕비가 살고 있는 궁궐에서부터 지방 관청의 시스템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드라마를 통해 익숙한 직책부터 그들이 일을 했던 공간들이 눈에 선연하게 보였다. 중앙 관청의 중심인 궁월과 궐내각사, 사극에서 늘 중전이 줄창 외쳤던 내명부의 일들과 조직 체계, 왕실을 가까이서 보필했던 그림자 관청 내시부, 왕의 공식 비서실인 승정원, 세종 대왕 때 가장 큰 꽃을 피웠던 문예부흥의 사실인 집현전, 국가공무원이라면 필시 가고 싶어했을 청요직의 상징 홍문관과 예문관, 실록을 편찬한 공간은 춘추관, 4대에 걸쳐 죄가 없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청정지역인 간쟁 전문 기관 사관원, 글자와 숫자가 하나도 틀리면 안되는 외교문서기관 승문원등 그야말로 나라의 주요 요직과 없어서는 안될 기간들과 주요 요직, 품계, 그들이 받는 녹봉에 관한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하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 책을 보면서도 너무나 많은 소재와 배경이 차용되다보니 조선 시대에 이런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그들의 이야기가 낯설게 느껴지곤 했는데 실은 내가 알고보고 하는 것 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었다. 1부에서는 궁궐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들어있다면 2부에서는 육조거리와 중앙 관청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고, 3부에서는 중앙관청을 뒷받침하는 의금부나 왕실 사람들을 위한 관청, 궁궐 유지, 예술, 통번역등 그야말로 없으면 안되는 관청들을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다. 4부에서는 지방 관청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그들의 관직과 아전, 향관, 문졸, 관노비등 후기 조선시대의 참상에 대해 알수 있는 이야기를 담았다.


태조 이성계를 시작으로 만들어진 조선은 초기 부터 탄탄하게 지어진 나라는 아니지만 태종 이방원이 왕권을 위협하는 세력들을 잠재적으로 모두 없애버림으로서 세종대에 이르러서 학문과 예술이 꽃피울 수 있었다. 각 관청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지만 그 관청의 가장 전성시대는 세종이 왕권을 잡고 있을 때 가장 빛이 났었고, 그 후부터는 각기 역할을 제대로 시행했지만 시간이 지나 사람의 수를 줄이거나 조직을 없애기도 했다고 하니 세종대왕의 전방위적으로 활동했을 때 가장 빛이 났다. 나라를 경영하기 위해서 잘 만들어 놓은 물길이 후기로 갈수록 모래가 쌓이고, 불필요한 노폐물이 가득 쌓여 병폐를 만들어 낸다. 처음에는 시스템이 잘 작동되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초심을 잃어가고 자신의 이기심만 늘어나 관직에 몸담고 있는 이들이 나라가 아닌 자신의 안위만 생각해 당파에 휩쓸리고, 간언을 해야 할 직책을 가진 이들이 눈과 귀를 닫아 버린다. 그렇게 여러번 실수들이 반복에 반복을 더하면 어느새 그들이 가진 시스템의 장점은 무너지고, 500년을 지탱해온 나라의 역사가 조금씩 균열이 간다.

조선 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나라가 이런 흐름을 가졌지만 그럼에도 오랫동안 나라를 지탱해온 힘을 <조선관청기행>을 통해 그들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관청에 대한 각각의 설명과 도표, 사진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 읽는 내내 눈을 반짝이며 읽었던 책이다. 한 번에 읽어서는 도저히 그들의 관직과 관청들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익힐 수 없었지만 많이 노출되고 봐왔던 이야기와 직책에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는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책장 가까이에 꽂아두고 여러번 반복해서 읽을 책이다. 이 한 권의 책이라면 조선의 모든 것을 알았다고 할 정도로 조선의 내밀한 부분을 가까이 들여다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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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아직에서 '체가'의 뜻은 '아나'로 전체 풀이는 '아나 이것 받아라'입니다. 쉽게 말해 일을 시킨 뒤 일만 만큼만 '이것 받아라'하듯 녹봉을 주던 관직이라는 얘기지요. 체아직은 일종의 기간제 계약직입니다. 정해진 녹봉 없이 1년에 네 차례 근무평정에 따라 녹봉을 주되 직책을 보장하지 않았습니다. 조선 시대의 무반직武班織중 하급직은 대부분 체아직이었고 기술 관료와 훈도訓導도 마찬가지입니다. - p.21


이렇듯 승정원 주서는 임금의 특명을 받아 시행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임금의 눈과 귀 노릇을 했습니다. 그래서 승정원 주서 임무를 마치면 그들의 벼슬을 반드시 올려 중요한 직책이로 이동하게 했습니다. - p.82


《조선왕조실록》은 1대 태조부터 25대 철종까지 472년간의 역사를 연월일 순서에 따라 기록한 책으로 총 1,893권 888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고종과 순종이 빠진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원래 실록은 왕이 사망한 이후에 썼는데 고종과 순종은 일제의 압받을 받던 시기와 일제강점기에 돌아가시는 바람에 따로 실록청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일본총독부에서 《고종실록》,《순종실록》을 만들었지만 일본인의 압력을 받고 쓴 것이라 일본에 유리한 내용과 허위 사실까지 들어가 있기에 정통 실록에 넣지 않고 따로 떼어서 다룹니다. - p.102


3단계에 걸쳐 완성한 실록은 전국의 사로에 보관하고 편찬에 이용한 시정기와 사초, 초초, 중초는 기밀 누설을 방지하고 종이를 재생하기 위해 자하문 밖 시냇물에서 세초洗草했습니다. 종이를 빨아서 재활용한 것입니다. 과거 우리나라 한지는 굉장히 질기고 튼튼했기 때문에 물에 담그면 먹물한 쏙 빠져나가고 하얀 종이로 되살아나 다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물에 담그면 흐물흐물해지거나 쭈글쭈글해지는 종이와는 차원이 달랐지요. - p.103


승정원이라는 비서실이 있었지만 사간원은 언론 기관으로서 왕을 모시는 역할도 수행한 것입니다. 왕이 행차하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다녔지요. 그 외에 관리들의 인사나 상벌을 주는 일에 관여해 비리나 부정이 없도록 하는 일도 담당했습니다. 이처럼 사간원 기능이 광범위하고 힘이 막강했던 터라 관원의 자격 조건이 매우 까다로웠습니다. 예를 들면 자기 자신을 비롯해 4대에 걸쳐 죄가 없는 집안의 인물이어야 하고 성품이 강직하면서도 올곧은 선비여야 했습니다. - p.106


인사권을 담당한 이조전랑은 홍문관 출신의 실력있는 청년 문신 중에서 발탁했습니다. 특히 문관 임명에서 정승과 판서도 함부로 할 수 없을 만큼 권한이 막강한 그 자리를 청년에게 준 것입니다. 이처럼 젊은 전랑에서 강력한 권한을 준 것은 대신들의 권한을 견제하고 젊은 관리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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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1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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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나약한 동시에 가장 악한 존재의 이야기


 ​공지영 작가의 소설은 언제나 마음의 음지를 그리고 있다. 소재를 불문하고 언제나 그녀의 소설을 읽을 때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그녀의 이름만으로 책 제목만 보고 책을 펼쳤다가 몇 번이나 마음을 두들겨 맞았는지 모른다. 달콤새콤한 맛을 기대하고 책을 읽었으나 이내 내가 모르는 맛의 이야기가 펼쳐지더니 이내 그 마저도 이야기의 떱떠름한 맛과 그늘진 마음이 가시지 않아 여러권의 다른 책을 읽고 나서야 그녀가 쓴 이야기를 잊어버릴 수 있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5, 푸른숲)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2010,오픈하우스)도 그랬고, 가장 크게 어퍼컷을 날린 것은 <도가니>(2009, 창비)였다. 아무리 다른 이야기를 읽고 또 읽어도 이야기의 무거움과 우울함이 없어지지 않았다.
 

 

도가니 이후 9년 만에 공지영 작가는 무진을 배경으로 한 <해리>를 신작으로 출간했다. 배경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혹은 뻔히 보이는 수작의 행태를 내 보이면서도 알게 모르게 음폐하는 족속을 공지영 작가는 이전의 필치와 마찬가지로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마치 늦은 밤 르포 형식의 고발 프로그램처럼 은밀하면서도 그들이 벌이는 날 것의 현장을 그대로 드러낸다. 여자라면 마치 늘씬해야 하고, 자신만의 무기로 남을 현혹하여 이끌어내어 그들을 궁지로 몰고간다. 인간이 나약하여 가장 불변함이 없을 '신'을 믿고자 발걸음을 향한 그들에게 그들은 더 큰 고통을 심어준다. 뚱뚱한 여자는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다며 유년시절 가난한 집안에서 아버지와 오빠의 폭력아래 방치된 해리는 독기를 머금고 약을 부자비하게 먹으며 날씬하게 살을 뺀다.


"인간이란 얼마나 약하니······. 자기 자신조차 속이기 쉬운 존재냐고." - P.48

 

 

마치 가면을 바꾸어 가듯 해리의 모습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각기 바꾸어 쓰며 동정을 호소한다. 거짓과 자신이 만들어낸 겉면을 SNS에 올리며 자신을 포장한다. 백진우 신부 또한 자신의 만행을 자신이 속한 종교에 귀속하여 그들을 부리고, 진실을 말하는 그들을 파멸시키고자 한다. 재산과 목숨을 빼앗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라는 듯 백진우와 해리는 천주교와 장애우를 섬기며 일하고 있는 단체의 이미지를 힘입어 선의로 낸 돈과 그들의 활동을 모두 제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들이 벌이는 부패와 부정의 몸짓은 인간의 윤리와 소명의식을 모두 벗어버리고, 그저 그들은 욕망의 도구로만 생각한다.

 


 

소설의 주인공인 이나는 그런 진실의 목소리를 모아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경청한다.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그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이 덮어버린 진실을 찾아 그들이 악의 모습들을 하나 둘 들춰낸다. 1권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세력이 뿌리내려 탄탄하게 기반을 다잡았지만 그 속에 선의가 아닌 악의 소굴로서의 모습을 과감없이 보여준다. 눈깜짝할 사이에 여자의 몸으로 홀리고, 자신이 갖고 있는 독으로 홀리는 해리의 모습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악하다.

다만, <도가니>를 읽었을 때처럼 엄청난 충격은 아니었다. 이미 뉴스를 통해 우리는 소설에서 보다 더 큰 사건과 인물들의 악의에 대해 지켜보았고, 그들의 높은 성곽은 뚫리지 않았다. 아무리 진실을 꺼내 놓아도 듣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그들을 탄압한다며 돈으로 유망한 변호사를 사서 그들을 제압했다. 시작은 호기로웠으나 끝은 명쾌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의 시작점이 밝혀져도 마지막은 흐지부지되는 것은 여러번 보았기에 소설 속 이나는 어떻게 그들의 사건을 내보이며 결론을 맺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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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 -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 우수상 수상작
이은소 지음 / 새움 / 201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한 의사 이야기


시대를 불문하고 마음이 아픈 이들의 사연을 침이 아닌 마음으로 경청하며 들어주는 사내가 있다. 침을 못 놓는 침의지만 누구보다 그들의 헤진 마음을 꼬매주고 여며주며 마음을 다스리는 병의 혜안을 넓히는자. 제 아무리 병을 적확하게 알고 환자들의 병을 말끔하게 고쳐주지만, 의사라는 이유만으로 목에 힘을 주고, 진료실에 들어온 환자들은 보지 않은체 오직 검사한 결과를 모니터로만 보며 병을 진단하는 의사들을 많이 마주쳤다. 병원 복도에 앉아 차례가 다 되도록 몇 시간을 기다려도 순번은 돌아오지 않고,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서야 의사 얼굴을 마주 할 수 있다. 기다린 시간과 달리 오랜시간을 기다려 만난 의사의 진단은 짧고 명료하다. 때론 두루뭉실하게 이야기 하기도 하고, 어느 때는 큰소리로 호통을 치기도 한다. 병을 고쳐주기도 하지만 병원에서 허비해 버린 시간은 그 누구도 보상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을 담아 환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그들의 사연을 들어주고, 그들이 하는 행동을 세심히 관찰하여 그들의 마음 속에 묶어있던 마음의 실타래를 천천히 풀어내린다. 요즘에서야 정신의학과에 진료를 받는 것이 조금은 일상화 되었다고 하지만 예전에는 '정신의학과' 치료를 받는 것이 '정신이상자'라도 된 것마냥 눈길이 쏠리는 일이었다. 제 아무리 조용히 진찰을 원하더라도 병원을 방문한 것이 기록에 남다보니, 필요에 의해 꼭 가야 할 이도 갈 수 없었다.


은우가 앞서고 세풍이 뒤따랐다. 하얀 저고리, 하얀 깃, 하얀 동곳, 하얀 목덜미 위에 얌전히 앉은 검은 머리와 검은 댕기, 검은 목 비녀가 세풍의 눈에 들어왔다. 흰색과 검은색, 은우에게만 허락된 색이었다. 세풍도 아내와 사별했지만 제게 허락되지 않은 색은 없었다. 사정이 같은데도 세상이 저와 은우를 다르게 다루고 있다는 사실에 세풍은 마음이 무거웠다. - p.12~13

세상은 많이 변했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갖고 있는 사회의 환경의 반경은 사람들의 의식에 미처 못 따라갈 때가 있다. 모두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과 달리 타인에 의해, 사회에 의해 옭아매어 그들은 주홍글씨 마냥 낙인이 찍혀 버렸고, 서자라는 이유로, 전란에 의해 다른 나라로 붙잡혀 갔다가 다시 되돌아온 이들을 '화냥년'이라 이름붙이며 그들을 손가락질 했으며, 우울증에 걸린 과부의 이야기며, 알코올중독의 광대등 조선시대에 주목받지 못한 이들의 소리없는 아우성을 심의인 세풍이 따스한 눈빛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이 품었던 한스런 마음을 어루고 달래준다.

가장 많이 평지풍파를 겪었을 이들의 사연은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불안, 오롯하게 자신이 안전하게 있지 못한다는 불안감이 우울증으로 변하기도 하고, 때론 그것들이 원인이 되어 하나의 루틴이 되어 불감증이나 히스테리로 변하게 된다. 우리가 역사 시간에 배웠던 수많은 전란이 휘몰아쳐 시대를 할퀴어 갔지만, 그 시대 사람들의 이야기는 하나도 알 수 없으니 그 사건이 그들에게 어떤 감정과 트라우마로 남았을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은소 작가는 그런 그들의 이야기를 어떤 사건으로 자신의 아비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고, 누군가의 목숨을 잃게 함으로서 그는 의사로서 길을 잃어버리고 정처없이 돌아다녔다. 그 순간 마저도 그는 의사로서 한 사람의 사연을 목도하게 되고, 그의 사연을 듣고 천천히 그들의 마음 속에 꽁꽁 싸매었던 마음을 따스하게 안아 풀어냈다.


그와 같은 심의라면 조선시대 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아니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의사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하나도 허투루 듣지 않았고, 경청하는 자세로 이야기를 듣고, 그에 맞는 처방전을 내린다. 몸이 아파 병원을 찾아가지만, 약으로 될 수 없는 무엇이 늘 환자들에게는 존재한다. 약이나 시술, 수술로 몸을 치료하듯 세상 한복판에 자신만 오롯하게 서 있는 그들에게 따스한 손길을 내어주는 심의라면 이세상 그 누구도 다친 마음을 완연하게 회복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조선시대에 살고 있는 이들의 아픔과 기구한 사연을 옆에서 듣는 것 마냥 괴롭고 아팠던 심경을 조심스레 들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처음 접하는 작가였지만 구성진 이야기에 읽는 내내 깊이 몰입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사람들은 기억 때문에 괴로워한단다. 하여 세월이 요술을 부려서 기억을 희미하게 만들었지. 한데 세월이 그만 실수를 해버렸단다. 좋은 추억까지 희미하게 만들어버린 게지. 사람들은 추억과 사랑하는 사람들마저 잊을까 걱정했어. 그때 세월이 말했단다. 기억이 희미해지는 대신에 사랑은 짙어질 거야. 네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

"연희는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이 변할 것 같니?"

"아니요."

"그럼 기억이 희미해져도 어머니를 향한 사랑은 짙어질 거야. 어머니의 물건이 없어도, 어머니를 입에 담지 않아도, 어머니는 연희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단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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