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 -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 우수상 수상작
이은소 지음 / 새움 / 201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한 의사 이야기


시대를 불문하고 마음이 아픈 이들의 사연을 침이 아닌 마음으로 경청하며 들어주는 사내가 있다. 침을 못 놓는 침의지만 누구보다 그들의 헤진 마음을 꼬매주고 여며주며 마음을 다스리는 병의 혜안을 넓히는자. 제 아무리 병을 적확하게 알고 환자들의 병을 말끔하게 고쳐주지만, 의사라는 이유만으로 목에 힘을 주고, 진료실에 들어온 환자들은 보지 않은체 오직 검사한 결과를 모니터로만 보며 병을 진단하는 의사들을 많이 마주쳤다. 병원 복도에 앉아 차례가 다 되도록 몇 시간을 기다려도 순번은 돌아오지 않고,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서야 의사 얼굴을 마주 할 수 있다. 기다린 시간과 달리 오랜시간을 기다려 만난 의사의 진단은 짧고 명료하다. 때론 두루뭉실하게 이야기 하기도 하고, 어느 때는 큰소리로 호통을 치기도 한다. 병을 고쳐주기도 하지만 병원에서 허비해 버린 시간은 그 누구도 보상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을 담아 환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그들의 사연을 들어주고, 그들이 하는 행동을 세심히 관찰하여 그들의 마음 속에 묶어있던 마음의 실타래를 천천히 풀어내린다. 요즘에서야 정신의학과에 진료를 받는 것이 조금은 일상화 되었다고 하지만 예전에는 '정신의학과' 치료를 받는 것이 '정신이상자'라도 된 것마냥 눈길이 쏠리는 일이었다. 제 아무리 조용히 진찰을 원하더라도 병원을 방문한 것이 기록에 남다보니, 필요에 의해 꼭 가야 할 이도 갈 수 없었다.


은우가 앞서고 세풍이 뒤따랐다. 하얀 저고리, 하얀 깃, 하얀 동곳, 하얀 목덜미 위에 얌전히 앉은 검은 머리와 검은 댕기, 검은 목 비녀가 세풍의 눈에 들어왔다. 흰색과 검은색, 은우에게만 허락된 색이었다. 세풍도 아내와 사별했지만 제게 허락되지 않은 색은 없었다. 사정이 같은데도 세상이 저와 은우를 다르게 다루고 있다는 사실에 세풍은 마음이 무거웠다. - p.12~13

세상은 많이 변했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갖고 있는 사회의 환경의 반경은 사람들의 의식에 미처 못 따라갈 때가 있다. 모두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과 달리 타인에 의해, 사회에 의해 옭아매어 그들은 주홍글씨 마냥 낙인이 찍혀 버렸고, 서자라는 이유로, 전란에 의해 다른 나라로 붙잡혀 갔다가 다시 되돌아온 이들을 '화냥년'이라 이름붙이며 그들을 손가락질 했으며, 우울증에 걸린 과부의 이야기며, 알코올중독의 광대등 조선시대에 주목받지 못한 이들의 소리없는 아우성을 심의인 세풍이 따스한 눈빛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이 품었던 한스런 마음을 어루고 달래준다.

가장 많이 평지풍파를 겪었을 이들의 사연은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불안, 오롯하게 자신이 안전하게 있지 못한다는 불안감이 우울증으로 변하기도 하고, 때론 그것들이 원인이 되어 하나의 루틴이 되어 불감증이나 히스테리로 변하게 된다. 우리가 역사 시간에 배웠던 수많은 전란이 휘몰아쳐 시대를 할퀴어 갔지만, 그 시대 사람들의 이야기는 하나도 알 수 없으니 그 사건이 그들에게 어떤 감정과 트라우마로 남았을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은소 작가는 그런 그들의 이야기를 어떤 사건으로 자신의 아비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고, 누군가의 목숨을 잃게 함으로서 그는 의사로서 길을 잃어버리고 정처없이 돌아다녔다. 그 순간 마저도 그는 의사로서 한 사람의 사연을 목도하게 되고, 그의 사연을 듣고 천천히 그들의 마음 속에 꽁꽁 싸매었던 마음을 따스하게 안아 풀어냈다.


그와 같은 심의라면 조선시대 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아니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의사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하나도 허투루 듣지 않았고, 경청하는 자세로 이야기를 듣고, 그에 맞는 처방전을 내린다. 몸이 아파 병원을 찾아가지만, 약으로 될 수 없는 무엇이 늘 환자들에게는 존재한다. 약이나 시술, 수술로 몸을 치료하듯 세상 한복판에 자신만 오롯하게 서 있는 그들에게 따스한 손길을 내어주는 심의라면 이세상 그 누구도 다친 마음을 완연하게 회복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조선시대에 살고 있는 이들의 아픔과 기구한 사연을 옆에서 듣는 것 마냥 괴롭고 아팠던 심경을 조심스레 들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처음 접하는 작가였지만 구성진 이야기에 읽는 내내 깊이 몰입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사람들은 기억 때문에 괴로워한단다. 하여 세월이 요술을 부려서 기억을 희미하게 만들었지. 한데 세월이 그만 실수를 해버렸단다. 좋은 추억까지 희미하게 만들어버린 게지. 사람들은 추억과 사랑하는 사람들마저 잊을까 걱정했어. 그때 세월이 말했단다. 기억이 희미해지는 대신에 사랑은 짙어질 거야. 네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

"연희는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이 변할 것 같니?"

"아니요."

"그럼 기억이 희미해져도 어머니를 향한 사랑은 짙어질 거야. 어머니의 물건이 없어도, 어머니를 입에 담지 않아도, 어머니는 연희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단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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