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관청기행 - 조선은 어떻게 왕조 500년을 운영하고 통치했을까
박영규 지음 / 김영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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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국가 시스템의 모든 것!


​ 오랜만에 재미있는 책을 만났다. 지금껏 읽은 역사책 중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을 만큼 유익하면서도 재미가 있는 책이다. 저자는 책 제목을 '기행'이라 표기했지만 '기행'이라 쓰고 '사전'으로 읽는다, 라는 말을 쓸 정도로 조선이라는 나라의 골격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책이다. 500년동안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지속되었던 나라. 현대의 시점과 가까워서 가장 많이 책과 영화, 드라마에서 수도없이 그들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재생산 해내면서도 화수분같이 끝도 없는 그들의 이야기를 읽고, 보면서 자라왔다. 이야기를 끊임없이 만들어지는데도 끊임없이 그들이 기거하는 공간이 다르고, 이야기의 방향이 달라 어떻게 그런 이야기가 만들어지는지 늘 궁금했는데 비로소 <조선관청기행>을 읽으면서 그 궁금증을 알아냈다.


한 나라가 500년 동안 지속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인체와 같이 골격이 탄탄해야 하는데 조선은 놀랍게도 사람의 몸과 같은 국가 경영 시스템이 정교하게 짜여져 있다. 마치 로마가 모든 나라를 재패한 것처럼 그들이 그럴 수 밖에 없는 장점을 가진 것처럼 조선 또한 500년 역사의 힘이 하루 아침에 나온 것이 아님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책을 읽다보면 왕과 왕비가 살고 있는 궁궐에서부터 지방 관청의 시스템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드라마를 통해 익숙한 직책부터 그들이 일을 했던 공간들이 눈에 선연하게 보였다. 중앙 관청의 중심인 궁월과 궐내각사, 사극에서 늘 중전이 줄창 외쳤던 내명부의 일들과 조직 체계, 왕실을 가까이서 보필했던 그림자 관청 내시부, 왕의 공식 비서실인 승정원, 세종 대왕 때 가장 큰 꽃을 피웠던 문예부흥의 사실인 집현전, 국가공무원이라면 필시 가고 싶어했을 청요직의 상징 홍문관과 예문관, 실록을 편찬한 공간은 춘추관, 4대에 걸쳐 죄가 없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청정지역인 간쟁 전문 기관 사관원, 글자와 숫자가 하나도 틀리면 안되는 외교문서기관 승문원등 그야말로 나라의 주요 요직과 없어서는 안될 기간들과 주요 요직, 품계, 그들이 받는 녹봉에 관한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하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 책을 보면서도 너무나 많은 소재와 배경이 차용되다보니 조선 시대에 이런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그들의 이야기가 낯설게 느껴지곤 했는데 실은 내가 알고보고 하는 것 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었다. 1부에서는 궁궐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들어있다면 2부에서는 육조거리와 중앙 관청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고, 3부에서는 중앙관청을 뒷받침하는 의금부나 왕실 사람들을 위한 관청, 궁궐 유지, 예술, 통번역등 그야말로 없으면 안되는 관청들을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다. 4부에서는 지방 관청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그들의 관직과 아전, 향관, 문졸, 관노비등 후기 조선시대의 참상에 대해 알수 있는 이야기를 담았다.


태조 이성계를 시작으로 만들어진 조선은 초기 부터 탄탄하게 지어진 나라는 아니지만 태종 이방원이 왕권을 위협하는 세력들을 잠재적으로 모두 없애버림으로서 세종대에 이르러서 학문과 예술이 꽃피울 수 있었다. 각 관청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지만 그 관청의 가장 전성시대는 세종이 왕권을 잡고 있을 때 가장 빛이 났었고, 그 후부터는 각기 역할을 제대로 시행했지만 시간이 지나 사람의 수를 줄이거나 조직을 없애기도 했다고 하니 세종대왕의 전방위적으로 활동했을 때 가장 빛이 났다. 나라를 경영하기 위해서 잘 만들어 놓은 물길이 후기로 갈수록 모래가 쌓이고, 불필요한 노폐물이 가득 쌓여 병폐를 만들어 낸다. 처음에는 시스템이 잘 작동되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초심을 잃어가고 자신의 이기심만 늘어나 관직에 몸담고 있는 이들이 나라가 아닌 자신의 안위만 생각해 당파에 휩쓸리고, 간언을 해야 할 직책을 가진 이들이 눈과 귀를 닫아 버린다. 그렇게 여러번 실수들이 반복에 반복을 더하면 어느새 그들이 가진 시스템의 장점은 무너지고, 500년을 지탱해온 나라의 역사가 조금씩 균열이 간다.

조선 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나라가 이런 흐름을 가졌지만 그럼에도 오랫동안 나라를 지탱해온 힘을 <조선관청기행>을 통해 그들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관청에 대한 각각의 설명과 도표, 사진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 읽는 내내 눈을 반짝이며 읽었던 책이다. 한 번에 읽어서는 도저히 그들의 관직과 관청들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익힐 수 없었지만 많이 노출되고 봐왔던 이야기와 직책에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는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책장 가까이에 꽂아두고 여러번 반복해서 읽을 책이다. 이 한 권의 책이라면 조선의 모든 것을 알았다고 할 정도로 조선의 내밀한 부분을 가까이 들여다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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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아직에서 '체가'의 뜻은 '아나'로 전체 풀이는 '아나 이것 받아라'입니다. 쉽게 말해 일을 시킨 뒤 일만 만큼만 '이것 받아라'하듯 녹봉을 주던 관직이라는 얘기지요. 체아직은 일종의 기간제 계약직입니다. 정해진 녹봉 없이 1년에 네 차례 근무평정에 따라 녹봉을 주되 직책을 보장하지 않았습니다. 조선 시대의 무반직武班織중 하급직은 대부분 체아직이었고 기술 관료와 훈도訓導도 마찬가지입니다. - p.21


이렇듯 승정원 주서는 임금의 특명을 받아 시행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임금의 눈과 귀 노릇을 했습니다. 그래서 승정원 주서 임무를 마치면 그들의 벼슬을 반드시 올려 중요한 직책이로 이동하게 했습니다. - p.82


《조선왕조실록》은 1대 태조부터 25대 철종까지 472년간의 역사를 연월일 순서에 따라 기록한 책으로 총 1,893권 888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고종과 순종이 빠진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원래 실록은 왕이 사망한 이후에 썼는데 고종과 순종은 일제의 압받을 받던 시기와 일제강점기에 돌아가시는 바람에 따로 실록청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일본총독부에서 《고종실록》,《순종실록》을 만들었지만 일본인의 압력을 받고 쓴 것이라 일본에 유리한 내용과 허위 사실까지 들어가 있기에 정통 실록에 넣지 않고 따로 떼어서 다룹니다. - p.102


3단계에 걸쳐 완성한 실록은 전국의 사로에 보관하고 편찬에 이용한 시정기와 사초, 초초, 중초는 기밀 누설을 방지하고 종이를 재생하기 위해 자하문 밖 시냇물에서 세초洗草했습니다. 종이를 빨아서 재활용한 것입니다. 과거 우리나라 한지는 굉장히 질기고 튼튼했기 때문에 물에 담그면 먹물한 쏙 빠져나가고 하얀 종이로 되살아나 다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물에 담그면 흐물흐물해지거나 쭈글쭈글해지는 종이와는 차원이 달랐지요. - p.103


승정원이라는 비서실이 있었지만 사간원은 언론 기관으로서 왕을 모시는 역할도 수행한 것입니다. 왕이 행차하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다녔지요. 그 외에 관리들의 인사나 상벌을 주는 일에 관여해 비리나 부정이 없도록 하는 일도 담당했습니다. 이처럼 사간원 기능이 광범위하고 힘이 막강했던 터라 관원의 자격 조건이 매우 까다로웠습니다. 예를 들면 자기 자신을 비롯해 4대에 걸쳐 죄가 없는 집안의 인물이어야 하고 성품이 강직하면서도 올곧은 선비여야 했습니다. - p.106


인사권을 담당한 이조전랑은 홍문관 출신의 실력있는 청년 문신 중에서 발탁했습니다. 특히 문관 임명에서 정승과 판서도 함부로 할 수 없을 만큼 권한이 막강한 그 자리를 청년에게 준 것입니다. 이처럼 젊은 전랑에서 강력한 권한을 준 것은 대신들의 권한을 견제하고 젊은 관리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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