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1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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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나약한 동시에 가장 악한 존재의 이야기


 ​공지영 작가의 소설은 언제나 마음의 음지를 그리고 있다. 소재를 불문하고 언제나 그녀의 소설을 읽을 때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그녀의 이름만으로 책 제목만 보고 책을 펼쳤다가 몇 번이나 마음을 두들겨 맞았는지 모른다. 달콤새콤한 맛을 기대하고 책을 읽었으나 이내 내가 모르는 맛의 이야기가 펼쳐지더니 이내 그 마저도 이야기의 떱떠름한 맛과 그늘진 마음이 가시지 않아 여러권의 다른 책을 읽고 나서야 그녀가 쓴 이야기를 잊어버릴 수 있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5, 푸른숲)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2010,오픈하우스)도 그랬고, 가장 크게 어퍼컷을 날린 것은 <도가니>(2009, 창비)였다. 아무리 다른 이야기를 읽고 또 읽어도 이야기의 무거움과 우울함이 없어지지 않았다.
 

 

도가니 이후 9년 만에 공지영 작가는 무진을 배경으로 한 <해리>를 신작으로 출간했다. 배경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혹은 뻔히 보이는 수작의 행태를 내 보이면서도 알게 모르게 음폐하는 족속을 공지영 작가는 이전의 필치와 마찬가지로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마치 늦은 밤 르포 형식의 고발 프로그램처럼 은밀하면서도 그들이 벌이는 날 것의 현장을 그대로 드러낸다. 여자라면 마치 늘씬해야 하고, 자신만의 무기로 남을 현혹하여 이끌어내어 그들을 궁지로 몰고간다. 인간이 나약하여 가장 불변함이 없을 '신'을 믿고자 발걸음을 향한 그들에게 그들은 더 큰 고통을 심어준다. 뚱뚱한 여자는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다며 유년시절 가난한 집안에서 아버지와 오빠의 폭력아래 방치된 해리는 독기를 머금고 약을 부자비하게 먹으며 날씬하게 살을 뺀다.


"인간이란 얼마나 약하니······. 자기 자신조차 속이기 쉬운 존재냐고." - P.48

 

 

마치 가면을 바꾸어 가듯 해리의 모습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각기 바꾸어 쓰며 동정을 호소한다. 거짓과 자신이 만들어낸 겉면을 SNS에 올리며 자신을 포장한다. 백진우 신부 또한 자신의 만행을 자신이 속한 종교에 귀속하여 그들을 부리고, 진실을 말하는 그들을 파멸시키고자 한다. 재산과 목숨을 빼앗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라는 듯 백진우와 해리는 천주교와 장애우를 섬기며 일하고 있는 단체의 이미지를 힘입어 선의로 낸 돈과 그들의 활동을 모두 제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들이 벌이는 부패와 부정의 몸짓은 인간의 윤리와 소명의식을 모두 벗어버리고, 그저 그들은 욕망의 도구로만 생각한다.

 


 

소설의 주인공인 이나는 그런 진실의 목소리를 모아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경청한다.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그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이 덮어버린 진실을 찾아 그들이 악의 모습들을 하나 둘 들춰낸다. 1권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세력이 뿌리내려 탄탄하게 기반을 다잡았지만 그 속에 선의가 아닌 악의 소굴로서의 모습을 과감없이 보여준다. 눈깜짝할 사이에 여자의 몸으로 홀리고, 자신이 갖고 있는 독으로 홀리는 해리의 모습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악하다.

다만, <도가니>를 읽었을 때처럼 엄청난 충격은 아니었다. 이미 뉴스를 통해 우리는 소설에서 보다 더 큰 사건과 인물들의 악의에 대해 지켜보았고, 그들의 높은 성곽은 뚫리지 않았다. 아무리 진실을 꺼내 놓아도 듣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그들을 탄압한다며 돈으로 유망한 변호사를 사서 그들을 제압했다. 시작은 호기로웠으나 끝은 명쾌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의 시작점이 밝혀져도 마지막은 흐지부지되는 것은 여러번 보았기에 소설 속 이나는 어떻게 그들의 사건을 내보이며 결론을 맺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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