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데이 로맨스
찰스 디킨스 지음, 홍수연 옮김 / B612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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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마음으로!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을 시작으로 <크리스마스 캐럴> <두 도시 이야기> <오래된 골동품 상점>등 많은 작품을 접했다. 대부분의 책이 제법 두께를 자랑하는 책이었는데 <홀리데이 로맨스>는 120페이지 정도 되는 얇은 책인 동시에 곳곳에 표지와 같은 삽화들이 그려져 있어 마치 동화책을 읽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빈티지북이라고 생각 할 정도로 6살에서 9살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어 그려진 작품이다. 어른의 언어가 아니라 아이들의 언어로 보여지는 사랑이야기는 누군가의 머리에서 짜낸 것이 아닌 진짜 이야기라고 말하며 윌리엄 틴클링 귀하, 앨리스 레인버드, 로빈 레드포스 중령, 네티 애시퍼드가 쓴 사랑이야기로 총 4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관습이나 사람을 만나는 것도 아이들에게는 또 다른 언어로, 의미로 느껴져 사람과 사람사이의 이야기를 만든다. 댄스 교습소에 있는 오른편 옷장 안에서 결혼을 하고, 장난감 가게에서 반지를 사며, 일괄적으로 오롯하게 규칙을 지키며 밥을 먹고, 부모들의 행동반경 아래 움직이는 것이 아닌 자유롭게 마음대로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어른들의 모든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느껴지기도 했다. 어렸을 때의 순수함, 호기심, 엉뚱한 상상력이 아이들의 세계로 꽉 차있다면, 어른들의 세계는 이보다 더 복합적인 동시에 서로를 비교하고, 견주하며 사랑 마저도 계산에 따라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영국의 대문호인 찰스 디킨스는 그런 어른들의 모순을 재치있게 아이들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다룸으로서 아이와 어른이 책을 함께 읽으면서 어른들을 뜨끔하게 만든다.


아직 나이가 어려서 모른다고 생각한 것들을 아이들은 아이들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으로 어른들의 일상을 꼬집는다. 무엇하다 그들의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어른은 지키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찰스 디킨스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과감없이 보여준다. 그럼에도 제목 그대로 사랑이야기가 들어있어 기존에 읽었던 사랑이야기와는 또 다른 느낌의 색채가 담겨져 있는 책이기도 하다. 한 편의 동화같이 느껴지는 그의 이야기를 멋진 삽화와 함께 읽어서 더 아이들에게 동화되어 읽었던 작품이었다. 찰스 디킨스의 작품 중에서 이렇게 소품집 같이 얇은 책이 있다니, 라는 생각에 집어 들었는데 거장의 글 답게 아이들의 시선 속에서도 그 특유의 입담은 줄어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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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늑대의 피
유즈키 유코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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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컷들의 진한 날 것들의 이야기.


경찰소설을 좋아한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 혹은 일어 난 후에 벌어지는 사건들을 추적해 나가거나 일촉즉발의 상황을 덮치며 누구보다 가장 극한의 상황으로 이야기를 몰고간다. 마치 구조대원처럼 불난 곳을 진압하는 그들의 모습은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벼운 이야기도 있지만 묵직하면서도 진중한 이야기에 매료되어 경찰소설을 읽게 되었는데 생각외로 우리나라 소설 중 경찰을 그린 작품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어렸 때 티비에서 종종 혹은 아빠가 보시는 영화를 곁눈질하며 봤던 영화가 '투캅스'였다. 그들의 모습은 진중하기 보다는 '비리 형사'에 가까운 모습이라 그들의 모습이 퍽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뒤를 이어 몇 편의 시리즈가 나왔을 만큼 흥행했던 작품이었다.


 


 

유즈키 유코의 작품 역시 <고독한 늑대의 피>의 주인공 오가미 쇼고의 모습은 내가 본 영화 보다 더 깊은 불법과 탈법, 위법을 행하는 형사이지만 이유가 있는 구레하라 동부서 수사2과의 독종형사다. 경찰이면서도 동시에 야쿠자와 가장 친밀한 이. 과연 그의 본모습은 무엇일까싶을 정도로 그는 그들의 생활을 잘 아는 오가미 쇼고는 처음 구레하라 동부서에 출근한 히오카를 시험해 보기도 한다. 처음에는 야쿠자마냥 껄렁한 그의 모습이 경찰인지 폭력단 조직의 우두머리인지 헷갈릴 정도로 그는 처음 온 그를 이리저리 신입인 그를 굴려댄다. 그의 모습이 자칫 선배로서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인지 아니면 그가 경찰로서 폭력단을 대하는 방식을 전수해주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였으나 히오카는 살기등등한 그들의 몸짓에 날렵하게 피한다.


오가미 쇼고는 경찰 내에서 가장 표창을 많이 받은 우수한 경찰인 동시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비리형사이지만 그가 물불을 안가린 이유는 16년전 그의 아내와 갓 돌이 된 아들의 사고 때문이었다. 밤낯 할 것 없이 일에 매달렸던 그가 5일만에 집에 들어왔고, 지쳐서 자던 그는 우는 아들의 소리를 뒤로하고 아이를 아내에게 맞겨 버리고 잠을 잤다. 오가미의 아내는 아들을 업고 사람이 드문 길을 걸어 가다가 갑작스레 차가 그들을 덮쳐버렸다. 오랫동안 수색했으나 범인이 몬 차에서는 지문 조차도 남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고독한 늑대가 되어 홀로 자신만의 길을 걸어간다. 그에게 중요한 무엇이 날아가는 순간 그는 오직 하나만을 생각하며 길을 걸어오지 않았을까. 완결이 되지 않은 사건을 파헤치는 자는 범인을 알기 위해 호랑이 굴로 들어갈 수 밖에 없음으로.


이야기는 또 하나의 사건이 실마리가 되어 완결을 보지 못한 살인 사건과 결부되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이야기가 잘 읽히는 동시에 그들의 다툼들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그대로 그려내고 있어 읽는 내내 손에 땀을 쥘 정도로 그들의 이야기는 흥미로우면서도 수컷들의 소리없는 전쟁이 시작됐다. 처음 출근해 어마어마한 수식어가 붙은 선배를 알현하기 위해 간 그의 신고식은 그야말로 날벼락 같은 만남이었다. 경찰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겠구나 싶을 정도로 고된 직종의 이야기로 느껴지기도 했다. 초반 그들의 이름이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지던지 누가 누구인지 마구 헷갈렸다. 왜 초반에 등장인물 관계도가 있나 싶었으나 읽는 내내 도움이 될 정도로 헷갈리는 요소가 많았으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가 좋았던 작품이다. 좋아하는 경찰소설들 중 몇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고독한 늑대의 피> 후속작인 <불길한 개의 눈>도 어서 읽어보고 싶다. 닮은 듯 다른 두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사건을 풀어가는 그들의 이야기가 느른하면서도 줄을 잡아당기는 그들의 스킬은 냉혹하면서도 자신이 갖고 있는 영역을 지키고자 하는 한 사람의 잔혹사이자 꼭 알아내고 싶은 '진실'의 이야기가 숨어있는 작품이다. 책을 읽고 나니 2018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상영작인 영화 또한 보고 싶은 소설이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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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만난 전쟁사 - 승자와 패자의 운명을 가른 역사의 한 장면
이현우 지음 / 어바웃어북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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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의 장면, 장면을 만나다.


요즘 티비를 보면 자주 마주치는 시간들이 현재가 아닌 '과거의 시간'들이다. '꽃보다 할배 리턴즈'에서 할배들이 서지니와 함께 동독과 서독을 나뉘었던 '베를린 장벽'을 구경하며 냉전시대의 이야기를 나누는가 하면, '미스터 션샤인'에서는 대한제국의 불운한 앞날을 그리고 있다. 러시아, 미국, 일본이 조선을 야금야금 삼키기 위해 물불 안가리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 앉는다. 현재의 시간이 잔잔한 수면 위라면 지나왔던 시간들의 역사는 풍랑이다. 조선의 왕은 힘이 없고, 민초들의 힘만이 살아있는 시대를 보여주는 드라마라 빼놓지 않고 보고있다.

 

<미술관에서 만난 전쟁사>는 승자와 패자의 운명을 가르는 순간의 페이지를 잊지 않고 기록하고 있다. 잊혀졌던 순간이나 승자가 되었던 이들의 초상화와 상흔이 깊이 패인 유물들이 전쟁의 모습을 대변해 주고 있다. 책은 총 4개의 챕터로 나뉘는데 전쟁의 승패가 치밀한 작전이 아니라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함에서 갈렸다고 한다. 돌팔매나 여성의 속옷의 유래, 구구단, 화려한 군복에 대한 역사등 다양한 사연이 들어있다. 두번째 챔터의 탐욕의 참극에서는 밀로의 비너스가 두 팔을 잃게 된 사연과 손목시계, 전쟁으로 인해 생긴 질병에 관한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으며, 세번째 챕터에서는 피에 묻은 진실이라는 주제로 3월을 뜻하는 March의 뜻과 경례, 사무라이, 로마군의 필승전략에 대한 이야기가 그려진다. 마지막 챕터에서는 아무리 잘 싸운 전쟁이라도 승자와 패자없이 누구나 상흔을 입기에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 되물어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나 총이나 무기에 대해 관심이 있는 이라면 저자의 글이 자연스럽게 읽히지만, 전반적으로 전술이나 무기에 대해 무지한 이라면 글을 읽는데 있어 조금 꺼끌거리는 면이 있다. 용어 사용에 대해 각주가 달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르는 단어들이 많았다. 네이버 사전을 찾아 읽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어느정도 지식이 있는 이가 읽는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챕터 가운데 챕터 1과 챕터 3을 재밌게 읽었다. 지금 군복은 간소하지만, 예전 군복은 화려했는데 그 이유가 무기가 발달이 되지 않아 적과 아군을 구별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우리가 만들어낸 환상의 사무라이의 민낯을 바라보기도 하고 38선에 대한 얽힌 이유도 허무하기도 하다.

때때로 전쟁은 거창한 이유가 아니라 사소한 것 이유 때문에 발발하기도 하고, 무기를 발명한 이는 그렇게 의도하지 않았으나 수많은 이의 목숨을 한순간에 앗아가기도 한다. 평범하게 살았더라면 좋았을 이의 이야기도, 지나간 시간들 속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이의 모습들도 하나의 화폭 속에 담겨 있다. 많은 거장들의 그림 속에서, 사진을 통해 과거의 시간을 돌아가 가장 극적이고, 비참한 혹은 찰나의 순간을 기록한다. 그림 속에서 보여지는 뒷 이야기는 더 그림같고, 드라마 같다. 한 순간의 실수가, 거침없는 그들의 욕망이 맞는 말로를 거장의 붓으로 생생하게 기록해 놓아 읽는 내내 우리가 참으로 많은 전쟁의 시간을 지나 여기까지 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품을 통해 세계 많은 나라에 관통했던 전쟁사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림으로, 사진으로, 때때로 티비의 브라운관을 통해 바라보는 전쟁의 이면을 참으로 참혹한 세상이다. 과거의 시간을 기록하되,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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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 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전병근 옮김 / 김영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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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3부작 시리즈 완결판


 유발 하라리의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을 읽다보니 문득 '제언' 이라는 뜻이 궁금해 사전을 찾아보았다.  제시할제, 말씀 언. 의견이나 생각을 내놓음. 또는 그 의견이나 생각이라고 한다. 21세기를 위한 21가지에 대한 의견을 그는 인류 3부작의 완결편으로 가져왔다.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에 잇는 그의 방점은 과연 무엇일지 궁금했다. 사실, 그의 이름 만큼이나 그가 쓴 저작에 대해 무수히 들어왔다. <총,균,쇠> 이후 늘 거론되는 것이 <사피엔스> 때문이었기에 읽지 않는 이까지 책의 내용을 알 정도였다. 그럼에도 어려울 것 같아 시도 조차 안했는데 그의 책을 읽어보니 우려와 달리 쉬운 언어로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런 점이 호감으로 다가왔다. 조곤조곤 이야기를 풀어가는 동시에 중점적으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이야기를 강조하며 그동안 인류가 걸었던 시간을 통계 삼아 우리의 가는 길에 대한 설명을 명료하게 들려준다.


시간에 비례하여 우리가 걸어왔던 길이 어느 순간 부터는 공동체가 아닌 개인주의로 흐르게 되었고, 과학과 생명공학의 발달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첨단 세계로 점점 비대화 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니, 비트코인, 인공지능등 점점 개인의 손을 벗어나 사람의 손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이 다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뉴스를 통해 그것에 대한 비약적인 발전이 가져오는 장점과 달리 그것이 더 비대해지고 사람의 손을 대신해 모든 것이 모두 뒤바뀌어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우려가 생기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자유경제체제에 대한 눈부신 활약이 이제는 점점 빗금이 쳐지듯 하락세이고, 공동체가 아닌 자국의 이익에 손을 드는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부상을 눈여겨 보고 있다. 


지금껏 우리는 자유주의에 대한 가치와 힘을 믿어왔고, 미국과 유럽을 비롯해 그들은 그런 이념을 뿌리 내리기 위해 많은 이념전쟁을 했으나 어느새 다시 자국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것으로 선회하게 되었다. 유발 하라리는 그런 모습들을 보며 파시즘, 공산주의 자유주의 시대에서 제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파시즘이 떨어져 나가고, 1940년대부터 80년대는 공산주의와 자유주의의 격전지가 되었다가 이내 공산주의가 무너지면서 자유주의 이념이 승자가 되었다. 그러나 자유주의의 가치를 내세운 나라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가치는 무너지고 계속된 난관들이 펼쳐졌다. 오랜시간 훈풍이 불 것 같은이념의 가치가 점점 틈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두 이념, 혹은 세가지의 가치에 대해 고를 수 있었지만 지금은 무너져 버린 이념들 사이로 오롯하게 남아있는 하나의 가치에 의존하여 살고 있다. 유발 하라리의 말에 의하면 그에 맞는 대안이 없기에 계속해서 그 가치를 이어오고 있다고.


유발 하라리는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을 통해 기술적인 면과 정치적인 면, 인류의 역사에 있어 테러리즘과 전쟁, 겸손, 신, 세속주의를 통해 절망과 희망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대한 눈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그 모든 것들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교육과 모든 것에 대한 의미, 명상만이 인류가 오랫동안 보존하고 살 수 있음을 그는 의견으로 피력하고 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것들이 예전에는 돌파할 수 있는 피난처였지만 이제는 그것이 걸림돌이 되어 많은 민족을 파괴시킨다. 서로 닮은 이들만이 똘똘 뭉치고 아닌 자들에 대해서는 무자비하게 공격하며 그들은 지구에 발을 붙이고 살 수 없게 만드는 것도 인류의 끝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차근차근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들과 생각들을 잠시 멈추고 기술적으로, 정치적으로 행하는 것들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현재의 시점에서 이득이 되는 행위라 할지라도, 언젠가 인류에게 해가 되는 행위라면 교육이나 명상, 의미를 짚어보는 것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봐야 한다. 읽는 내내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가 몸소 겪는 많은 것들이 갖는 불균형에 대한 원인과 해법을 알 수 있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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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도둑 가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6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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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좀도둑 가족>을 읽고 문득 가족의 의미는 무엇일까 생각하며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역,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가 쓴 이 가족드라마는 '가족'이라 불릴 수 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이다. 멀리서 지켜본다면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어머니의 이복 동생과 작은 아들 막내 딸까지 평범하게 보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그들이 사는 집과 같이 빛이 들어오지 않는, 허물어져 있다. 그 폐허 속에 할머니 하쓰에와 아버지 오사무, 어머니 노부요, 노부요의 이복동생 아키, 아들 쇼타, 막내 유리(린)가 살고 있다. 


아이들은 참 빨라. 노부요는 생각했다.

"집에 돌아가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하쓰에가 노부요를 팔꿈치로 쿡 찔렀다.

"선택받은 건가······우리가." - p.126


마치 퀼트로 꿰매어 놓은 것처럼 그 자리에 필요한 이의 부재를 그들이 채워 나가고, 혈연이 아닌 스스로의 선택으로 하나의 인연이 되어 살아간다. 함께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수퍼마켓에서 자잘하게 생필품을 훔쳐 내기도 하고, 때로는 파친코에서 구슬을 천연덕스럽게 꿰어 내기도 하며, 함께 살아가는 하쓰에의 연금에 손을 내밀며 기웃거리는 오사무의 모습도 엿보인다. 오사무와 쇼타가 한패가 되어 물건을 훔치는 장면을 시작으로 그들의 관계는 공생관계인지 가족인지 불불명한 노선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손발을 맞춰 훔쳐낸 물건을 가방 가득 집어 넣고, 고로케를 사가지고 가던 중 부모의 방치 속에 앉아있는 여자 아이와 마주치게 된다. 물건을 집듯 오사무는 멍이든 아이를 그렇게 손을 잡고 데려왔다.


'오사무'는 아들의 본명이었다. 며느리 이름이 '노부요'이다. 하쓰에의 집에 두 사람이 들어와 살기로 한 날, 그때부터 이 이름을 쓰기로 결정했다. 린이 린이 아닌 것처럼 노부요는 노부요가 아니며, 오사무도 오사무가 아니다. 아키를 포함해 이 집에 사는 가족은 하나같이 두 이름을 갖고 있었다. - p.129


저마다의 사연으로 멍이든 사람들은 그렇게 모여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며 어울려지낸다. 때때로 그들의 선택으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어울려 살며 그들로 하여금지난 시간을 위로 받는다. 그럼에도 그들이 번 돈을 차곡차곡 모으기 보다는 파친코에 나가 천역덕스럽게 도박을 하거나 술을 마시며 탕진하곤 한다. 그런 모습이 때때로 그들이 가족인가, 가족이 아닌가를 떠올리며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 보다는 함께 있는 것이 혼자 있는 것 보다 더 낫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좋아하면 이렇게 하는 거야." 노부요는 린을 꼬옥 안아주었다. 뺨과 뺨이 찌부러질 만큼 힘껏 끌어안았다. 노부요는 뺨에 한 줄기 눈물이 흐르는 걸 느꼈다. 옷을 태우는 불 때문인지 눈물이 따뜻했다. 린은 뒤돌아 노부요의 얼굴을 보며 작은 손으로 눈물을 닦아주었다. 이 아이가 무척 귀엽다든지 안쓰럽다든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이 아이를 안고 안기는 것만으로, 자신을 구성하는 세포 하나하나가 변해가는 것이 느껴졌다. 더는 이 아이를 내버려두지 않아. 노부요는 맹세했다. - p.136


피로 이어진 혈연관계가 아니라도 너 라는 존재 만으로 위로를 받았던 관계는 유리와 하쓰에의 행보를 통해 또다시 이야기가 뒤틀리기 시작한다. 조심스레 꿰어 맞춘 이불보가 턱하고 터지듯 그들의 관계는 서서히 빗금이 가기 시작한다.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가 아닌 조마조마한 '도둑질'은 모두 탄로가 나고 그렇게 그들은 서로 헤어진다. 그럼에도 다시 그들이 함께 지냈던 순간들을 돌아보고 싶게 만드는 것은 그 시간동안만이라도 상처받지 않고 누구나 다 있을 가족이라는 테두리 속에서 함께 살아간 시간이다. 피로 나눈 부모나 연인, 남편, 아이들에게 받지 못했던 마음을 서로 주고 받은 것처럼.


'노부요의 말처럼 서로 선택한 관계가 더 끈끈한 것일까. 나와 아키도 이렇게 서로 닮아 있다.' - p.152


잔인한 모습들이 비춰지면서도 다시 누그러지게 만든 것도 그들이 지닌 한쪽 마음이다. 모든 것을 내어주지 않았지만 한쪽 마음은 서로 선택해서 산 사람들의 이야기.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그의 여러 작품이 출간되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감독이자 작가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을 처음 접했지만 왜 그의 이름이 그토록 많이 불렸는지 이 작품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가족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 보았다. 피로 맺어진 인연은 아니지만 가슴으로 맺어진 인연 역시 가족이라는 것을.


가족의 의미는 때때로 가슴이 따듯하고, 보듬어주는 관계이기도 하지만 누구보다 더 가깝게 나를 찌를 수 있는 관계이기도 하다. 남보다 더 못한 경우도 많이 보았고, 남이지만 더 가족과 같은 관계를 보았기에 그 누구도 그들을 '남'이라고 부를 수 없음을 느끼게 된 작품이다. 영화로는 '어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개봉이 되었는데 책과 함께 영화도 함께 보고 싶을 만큼 잔잔하면서도 가슴따뜻한 이야기가 마음 속 깊이 들어오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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