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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도둑 가족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6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8년 8월
평점 :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좀도둑 가족>을 읽고 문득 가족의 의미는 무엇일까 생각하며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역,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가 쓴 이 가족드라마는 '가족'이라 불릴 수 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이다. 멀리서 지켜본다면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어머니의 이복 동생과 작은 아들 막내 딸까지 평범하게 보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그들이 사는 집과 같이 빛이 들어오지 않는, 허물어져 있다. 그 폐허 속에 할머니 하쓰에와 아버지 오사무, 어머니 노부요, 노부요의 이복동생 아키, 아들 쇼타, 막내 유리(린)가 살고 있다.
아이들은 참 빨라. 노부요는 생각했다.
"집에 돌아가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하쓰에가 노부요를 팔꿈치로 쿡 찔렀다.
"선택받은 건가······우리가." - p.126
마치 퀼트로 꿰매어 놓은 것처럼 그 자리에 필요한 이의 부재를 그들이 채워 나가고, 혈연이 아닌 스스로의 선택으로 하나의 인연이 되어 살아간다. 함께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수퍼마켓에서 자잘하게 생필품을 훔쳐 내기도 하고, 때로는 파친코에서 구슬을 천연덕스럽게 꿰어 내기도 하며, 함께 살아가는 하쓰에의 연금에 손을 내밀며 기웃거리는 오사무의 모습도 엿보인다. 오사무와 쇼타가 한패가 되어 물건을 훔치는 장면을 시작으로 그들의 관계는 공생관계인지 가족인지 불불명한 노선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손발을 맞춰 훔쳐낸 물건을 가방 가득 집어 넣고, 고로케를 사가지고 가던 중 부모의 방치 속에 앉아있는 여자 아이와 마주치게 된다. 물건을 집듯 오사무는 멍이든 아이를 그렇게 손을 잡고 데려왔다.
'오사무'는 아들의 본명이었다. 며느리 이름이 '노부요'이다. 하쓰에의 집에 두 사람이 들어와 살기로 한 날, 그때부터 이 이름을 쓰기로 결정했다. 린이 린이 아닌 것처럼 노부요는 노부요가 아니며, 오사무도 오사무가 아니다. 아키를 포함해 이 집에 사는 가족은 하나같이 두 이름을 갖고 있었다. - p.129
저마다의 사연으로 멍이든 사람들은 그렇게 모여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며 어울려지낸다. 때때로 그들의 선택으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어울려 살며 그들로 하여금지난 시간을 위로 받는다. 그럼에도 그들이 번 돈을 차곡차곡 모으기 보다는 파친코에 나가 천역덕스럽게 도박을 하거나 술을 마시며 탕진하곤 한다. 그런 모습이 때때로 그들이 가족인가, 가족이 아닌가를 떠올리며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 보다는 함께 있는 것이 혼자 있는 것 보다 더 낫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좋아하면 이렇게 하는 거야." 노부요는 린을 꼬옥 안아주었다. 뺨과 뺨이 찌부러질 만큼 힘껏 끌어안았다. 노부요는 뺨에 한 줄기 눈물이 흐르는 걸 느꼈다. 옷을 태우는 불 때문인지 눈물이 따뜻했다. 린은 뒤돌아 노부요의 얼굴을 보며 작은 손으로 눈물을 닦아주었다. 이 아이가 무척 귀엽다든지 안쓰럽다든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이 아이를 안고 안기는 것만으로, 자신을 구성하는 세포 하나하나가 변해가는 것이 느껴졌다. 더는 이 아이를 내버려두지 않아. 노부요는 맹세했다. - p.136
피로 이어진 혈연관계가 아니라도 너 라는 존재 만으로 위로를 받았던 관계는 유리와 하쓰에의 행보를 통해 또다시 이야기가 뒤틀리기 시작한다. 조심스레 꿰어 맞춘 이불보가 턱하고 터지듯 그들의 관계는 서서히 빗금이 가기 시작한다.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가 아닌 조마조마한 '도둑질'은 모두 탄로가 나고 그렇게 그들은 서로 헤어진다. 그럼에도 다시 그들이 함께 지냈던 순간들을 돌아보고 싶게 만드는 것은 그 시간동안만이라도 상처받지 않고 누구나 다 있을 가족이라는 테두리 속에서 함께 살아간 시간이다. 피로 나눈 부모나 연인, 남편, 아이들에게 받지 못했던 마음을 서로 주고 받은 것처럼.
'노부요의 말처럼 서로 선택한 관계가 더 끈끈한 것일까. 나와 아키도 이렇게 서로 닮아 있다.' - p.152
잔인한 모습들이 비춰지면서도 다시 누그러지게 만든 것도 그들이 지닌 한쪽 마음이다. 모든 것을 내어주지 않았지만 한쪽 마음은 서로 선택해서 산 사람들의 이야기.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그의 여러 작품이 출간되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감독이자 작가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을 처음 접했지만 왜 그의 이름이 그토록 많이 불렸는지 이 작품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가족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 보았다. 피로 맺어진 인연은 아니지만 가슴으로 맺어진 인연 역시 가족이라는 것을.
가족의 의미는 때때로 가슴이 따듯하고, 보듬어주는 관계이기도 하지만 누구보다 더 가깝게 나를 찌를 수 있는 관계이기도 하다. 남보다 더 못한 경우도 많이 보았고, 남이지만 더 가족과 같은 관계를 보았기에 그 누구도 그들을 '남'이라고 부를 수 없음을 느끼게 된 작품이다. 영화로는 '어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개봉이 되었는데 책과 함께 영화도 함께 보고 싶을 만큼 잔잔하면서도 가슴따뜻한 이야기가 마음 속 깊이 들어오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