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급해졌어, 아름다운 것을 모두 보고 싶어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우리의 여행은 영원히 진행 중

 

 

1. 마음이 급해졌어, 아름다운 것을 모두 보고 싶어/ 마스다 미리

 

  나는 패키지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침잠이 많기 때문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나의 패키지여행은 중국 상하이, 항주, 소주를 도는 45일 여행이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7시에 호텔 조식을 먹고, 8시에 다시 모여 출발하는 이른바 678 아침 스케줄이 내게는 강행군이었다. 그 뒤로는 패키지여행을 가지 않았다. 조금 번거롭기는 했지만 직접 여행준비를 하고 현지에서는 오전 시간을 느긋하게 즐긴다. 지금도 나의 국내외 여행은 자유롭게 선택하고 여유를 즐기지만, 이 책을 읽으며 생각을 달리 하게 되었다.

 

아름다운 것을 많이 봐두고 싶다.’

마흔 살이 됐을 때, 왠지 그런 다급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책이나 텔레비전에서 보아온, 세상의 많은 아름다운 것들. 이를테면 풍경이나 축제 같은 것.

봐두고 싶네. 하지만 갈 일은 없을 테지.’

그렇게 동경했던 곳으로 앞으로 10년에 걸쳐 다 다녀보는 건 어떨까?

등을 민 것은 가이드가 동행하는 패키지 투어의 존재였습니다.

- 여행을 시작하며 중에서

 

  아름다운 것을 많이 봐두고 싶다는 소망은 저자만의 것은 아니다. 인간은 아름다움을 탐할 권리와 본능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특히 처음에 나오는 북유럽 오로라 여행은 마음을 먹는다 해서 쉽게 떠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은 새벽 두 시가 지났고, 기온은 영하 18도인 세계.’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나의 마음도 두근거렸다. 코끝이 아릴 정도의 차디찬 밤공기 속에서 발을 동동 거리며 오로라가 나타나주길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들은 저자일 수도 있고, 나일 수도 있으며, 혹은 그 누구일 수 있는, 아름다운 것을 보고 감탄할 수 있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일 것이다. 패키지여행이 있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오로라의 신비함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여행객 대부분 60대 이상 부부도 있지만, 여성 그룹이 많아서 재잘재잘 무척 즐거워 보인다. 북극권 여행이다. 춥고 멀고, 상당히 힘들 텐데 지친 기색도 없어서 젊을 때밖에 갈 수 없어라고 생각했던 나를 반성했다. 젊지 않아도 어느 때라도 어디든 갈 수 있는 것 같다. 30.p

 

  애쓰고 수고한 자신을 위해, 육체를 이끌고 새로운 세계까지 걸어 나온 여행자는 장소를 옮길 때마다 다시 태어난다. 젊지 않아도 괜찮다. 나이 들어가는 것에 쫄지 않고, 다가올 미래를 두근거리며 기다리고 싶다면 여행을 떠나야 한다. 낯선 곳에서 새롭게 태어나고 새로워진 나나로 돌아오는 우리는 행복하다. 혼자 참가해서 청승맞아 보일 수 있어도, 시간에 쫓겨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 여행을 35일로 밖에는 다녀올 수 없어도 떠나고, 보고 싶은 것을 보며, 그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은 총알처럼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자신만의 여유로움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벽돌색 지붕의 귀여운 구시가지. 많은 관광객이 그 경치에 빨려들었다. 더 천천히 보고 싶었는데, 투어는 항상 시간에 쫓긴다. 특히 이번에는 독일 35일이라는 총알 투어다.

그런 여행으로는 아무것도 본 게 안 돼.”

하는 의견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무언가는 남을 터. 아무것도 본 게 되지 않는다고, 누가 단정할 것인가? 59.p

 

  자신의 취향에 맞게 자유여행을 할 수 있지만, 모두 그렇게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것은 아니다. 체력이 받쳐 주던 20~40대를 지나, 힘에 부치는 나이가 되었거나 긴 시간을 낼 수 없을 때, 혹은 동행자 없이 멀고 험한 여행지를 선택해야 할 때는 자유여행이 아닌 또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 그 대안의 중심에 패키지여행이 있다. 또 이 여행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패키지여행만 있다면 몇 살이 되었든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용기를 내어 떠날 수 있는 사람은 지루한 일상의 자리로도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다. 저자처럼 아름다운 것들을 두 눈과 마음속에 차곡차곡 간직하고 싶은 나도 나이 드는 것이 두렵지 않다.

 

 

 

 

 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

 

 

  한때 나의 SNS 아이디는 걸어야 할 이유를 찾다였다. 걷기는 좋은 친구이자 삶의 돌파구였다. 땅을 디디며 두 발로 체중을 느낄 때 라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지금도 걷기에 대한 말을 듣거나 글을 읽으면 몸이 근질근질해지고 당장 동네라도 한 바퀴 돌고 싶어진다.

 

 대학을 졸업하고 집에서 한량처럼 빈둥거렸을 때, 나를 일으켜준 것은 걷기였다. 늦은 아침에 눈을 뜨면 가족들이 모두 나간 후였다. 오전의 햇살이 집안의 먼지까지 비춰줄 때 나는 느릿느릿 세수를 하고 밥을 먹었다. 그다음 잠시 멍하니 앉아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하고 싶었지만 그 무언가가 어떤 것인지 몰랐다. 무료한 시간을 달랠 수 있는 것이 필요했다. 벚꽃 피는 봄에 가고 싶었던 남산이 창밖으로 보였다. 나는 신발을 주섬주섬 주워 신고 가까운 남산을 향해 걸었다. 차비도 들지 않고 무엇보다 하염없이 시간 보내기에 좋았다. 국립극장 앞에서 케이블카가 있는 곳까지 산책하기 좋은 코스가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걷기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것만 같았던 과거의 어느 막막한 날에도, 이따금 잠까지 줄어가며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지금도 꾸준히 나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이 점이 마음에 든다.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떻든, 내 손에 쥔 것이 무엇이든 걷기는 내가 살아있는 한 계속 할 수 있다는 것.

 

  영화배우 하정우가 아니라 <걷는 사람 하정우>를 읽었을 때, 화려한 배우의 삶 뒤로 끊임없이 걷고 고민하고 조금씩 나아가는 인간 하정우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걷기 예찬을 읽으며 아무 것도 아닌 나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과거의 모습이 떠올랐다. 현재의 나는, 긴 인생을 두고 보았을 때 1년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해줄 수 있지만, 그때의 나는 세상 모든 고통과 우울을 껴안고 있는 사람처럼 굴었다.

 

- 기분은 무척 힘이 세서 누구나 기분에 좌지우지되기 쉽다. 29.p

 

- 나는 나의 기분에 지지 않는다. 나의 기분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믿음, 나의 기분으로 인해 누군가를 힘들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 걷기는 내가 나 자신과 타인에게 하는 약속이다. 34.p

 

  그런 우울한 기분은 사람을 병들게 만든다. 20대 초중반의 아름다운 청춘이 잉여 인간처럼 자신의 존재를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것은 참 쉽다. 기분의 힘이 세다는 것을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때 나는 열심히 걸었다. 걸으면서 산에 핀 꽃들도 많이 보았다. 아기였을 때, 우리는 걷기 위해 얼마나 혼신의 힘을 쏟았던가. 기억나지 않겠지만 온 힘을 다해 한발을 내딛었을 것이다.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앞을 향해 걸으면서 환희의 함성을 질렀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걸으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고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9년 전, 산티아고 순례길에 올랐다. 8키로가 조금 안 되는 배낭의 무게가 인생의 무게보다 더 무겁다는 걸 그때 느꼈다. 발의 중심을 잃고 넘어지는 바람에 오른쪽 팔에 깁스를 했을 때, “너는 다리를 다친 것이 아니고 팔을 다친 것이니 얼마든지 걸을 수 있어.” 라고 말해준 의사 덕분에 열심히 걸어서 목적지인 산티아고에 무사히 도착했다. 배낭과 한 몸이 되어 끝까지 걷겠다는 나의 결심은 운반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삶의 변수는 나의 생각을 조금씩 내려놓고 다른 방법과 타협하는 것을 가르쳐 준다. 나는 조금 불편하지만 훨씬 가벼워진 몸으로 계속 걸어 나갔다. 걸어보니 알 수 있었다. 오롯이 두 발로 걸어간다는 것, 그것이 자유라는 것을.

 

그저 신이 내게 맡긴 길을 굳건히 걸어갈 수 있도록 두 다리의 힘만 갖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삶은 그냥 살아나가는 것이다. 건강하게, 열심히 걸어 나가는 것이 우리가 삶에서 해볼 수 있는 전부일지도 모른다. 내가 아무리 고민하고 머리를 굴려봤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이렇게 기도한 이후로 이상하게 조금 더 마음이 편해졌다. 무슨 일에든지 더 담대해질 수 있었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어찌해볼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명백한 사실은, 내게 포기나 체념이 아니라 일종의 무모함을 선물해주었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길을 그저 부지런하게 갈 뿐이다. 291.p

 

  여행이란, 두 다리를 움직여 어딘가로 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걸을 수 있기에, 아니 혹여 걸을 수 없다 하더라도 몸을 움직여 앞으로 나아가기를 소망한다면 지금이라도 우리는 훌훌 떠났다가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걸으면서 방황하는 존재이니까. 걸으면서 시작되고 다시 걸어서 돌아올 수 있는 우리의 여행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3. 영원한 외출/ 마스다 미리

 

     

  내가 포르투갈 리스본에 있을 때, 아빠의 여행은 끝나가고 있었다. 201812, 폐렴으로 입원하신 아빠는 담낭암 4기 판정을 받았다. 아빠는 항암치료를 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그만두었다. 담당 의사도 80세가 넘은 어르신께 항암치료 보다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것을 추천했다. 자신의 할아버지도 그렇게 하셨다면서. 그때쯤 마스다 미리의 <영원한 외출>이 나왔다. 마음을 잡지 못해 힘겨워하는 나를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누구나 부모의 죽음을 맞이한다. 명백한 사실이지만 애써 외면하고 인정하지 않았던 가까운 미래. 누군가 모두 겪는 일이라고 말해주었을 때 그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깨달았다. 슬픔도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구나. 저자가 담담하게 써내려간 글 속에서 나는 힘을 얻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아버지의 죽음.

아버지의 죽음은 본인에게나 누구에게나 처음이다.

앞으로 하루하루 체력이 떨어질 거란 건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25.p

 

  우리 가족은 마지막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 어느 때보다 밀도 깊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가족티를 맞춰 입고 활기찬 모습으로 가족사진을 찍었다. 주말이 되면 교외로 나가 외식을 했다. 한편으로 나는 1년 전부터 계획해 두었던 스페인포르투갈 여행을 취소하기로 했다. 그러나 아빠는 내가 그렇게 하길 원하지 않으셨다.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라고 여비까지 보태주었다. 자신의 병과 나의 여행은 무관한 것이며, 삶의 계획은 각자 다른 것이라고. 다행히 아빠는 내가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주셨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감사하다.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나를 독려해 주신 것과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게 해주신 것. 그리고 나 혼자 걸어갈 수 있도록 80여 년 동안 내 인생의 여행길에 동행자가 되어 주었던 모든 것이 말이다.

 

사람은 먹으면 힘이 나는 것 같다.

그 핑계로 나는 아버지에게 다가온 죽음을 앞에 두고 일을 하고, 가을옷과 구두를 사고, 카페에서 케이크를 먹으면서 책을 읽었다.

퇴원 후 아버지의 취미는 오로지 식(). 다음 식사 때는 무엇을 먹을까. 하는 것이 관심사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저녁 식사 후, 내일 아침은 어묵을 먹고 싶어. 하고 아버지는 말했다. 우리는 어묵 재료로 어떤 게 좋을까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아버지는 두부, 엄마는 곤약, 나는 무, 평화로운 한때였다. 아버지는 내일 아침 세븐일레븐에 어묵을 사러 가겠다고 선언하고, 침실로 사라졌다. 39.p

 

  어느 날, TV를 보시던 아빠는 푸른바다를 보고 저기가 어디냐고 물으셨다. 화면 속에는 남해바다가 사파이어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아빠와의 여행을 준비했다. 아빠와 함께 하는 마지막 여행.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 어느 한 때의 봄맞이 여행처럼 하동의 매화를 구경하고, 섬진강 재첩국을 맛있게 먹으며 남해로 내려가 23일을 보냈다.

  이제 막 꽃봉오리가 맺히기 시작한 매화나무 아래서 엄마와 나란히 서서 웃고 계시는 아빠사진을 보면, 인간을 향해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닫게 된다. 처음 사랑했을 때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웃음을 잃지 않을 것, 자연의 변화를 함께 느끼며 떠나간 이를 그리워할 수 있도록 주위 사람들에게 곁을 내어줄 것. 어쩌면 우리는 그것을 연습하기 위해 이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온 존재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제작해도 아무도 볼 수 없는 작품.

그 작품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존재를 아는 데 의미가 있다.

 

가지 못해도 좋다. 보이지 않아도 좋다. 아는 것이 아름다움이다. 97.p

 

소중한 사람을 이 세상에서 잃었다고 해도 있었던것을 나는 알고 있다. 알고 있으니 괜찮다. 그것이 흰나비를 대신하는 나의 이야기였다. 이야기의 힌트는 바깥에, 사람 수만큼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98.p

 

  비록 핸드폰 영상 통화와 메시지로 보낸 동영상뿐이었지만, 아빠는 내가 바로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있을 때 함께 계셨고, 포르투의 동루이스 다리에서 맞았던 바람 소리도 함께 들었다. 지금은 곁에서 함께 할 수 없지만, 나는 아빠가 내가 가보지 못한 세상을 여행 중이라고 믿는다. 병들고 나약한 노인이 아니라 걱정 없이 상쾌하고 가뿐한 여행자가 되어서 말이다. 먼 훗날 나도 그 여행에 동참하게 되겠지. 우리는 모두 여행자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참 괜찮은 눈이 온다 - 나의 살던 골목에는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리운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한지혜의 <<참 괜찮은 눈이 온다 나의 살던 골목에는>>

 

내가 뛰어 놀았던 골목

 

  <<참 괜찮은 눈이 온다 나의 살던 골목에는>>을 읽었을 때 내 마음속에는 참 따뜻한 단어들이 떠올랐다. 골목, , 엄마, 아빠, 떡볶이, 놀이터, 나무, 소풍, 촛불, 광장 뭐 그런 단어들이었다. 작가의 산문이 나의 어린 시절을 소환하고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중 제일 마음에 남는 것은 골목에서 놀던 날과 아빠였다. 어렸을 때 우리 동네 골목은 모든 소식이 모이는 곳이자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차가 다닐 수 있는 큰길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크고 작은 골목들이 많았다. 그 골목 곳곳에는 집이 있었고, 적어도 두 가구 이상 모여 살았으며, 그런 집에는 어김없이 5~10명 정도의 아이들이 있었다. 주인집이나 세를 사는 사람들이나 각 가정의 대소사에 기뻐하고 안타까워 해주는 이웃이었다. 어느 집이나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부모님께 혼나는 소리가 담을 넘었다. 같은 골목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들었으며, 상대방에게 곤란한 내용들은 모른 척 티를 내지 않았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어렸을 때부터 암묵적인 배려를 배웠다.

 

  길 건너 내 친구(아들만 넷이던 집의 셋째였다.) 집 앞에는 골목이라고 말하기엔 쑥스럽지만 10여명 정도의 아이들이 모여서 고무줄 하기에 적당한 공간이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엄청나게 뛰어 놀았다. 우리가 주로 즐겼던 놀이는 당연 고무줄 놀이였다. 세 명만 모여도 개인전으로 고무줄놀이를 했다. 인원이 많을 때는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이 편을 나누어 검은 고무줄을 사이에 두고 목청껏 노래를 부르며 뛰고 또 뛰었다. 그 노래 속 가사에는 이순신도 있고, 통일도 있고, 개나리와 엄마도 있었다. 내 친구는 고무줄을 끊지 않았으나 다른 곳에 가서 놀라고 참견을 했고, 우리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따로 운동을 하지 않았지만 매일 뛰어 놀았던 덕분에 우리들은 건강했고, 무럭무럭 자랐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학원에 다닌다 해도 고작 피아노나 주산 학원 정도였다. 공부하는 시간보다 노는 시간이 더 많이 차지했다. 만약 지금 우리 집 앞에서 동네 아이들이 모여 시끄럽게 뛰어논다면 나는 참아낼 수 있을까. 솔직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나는 눈 한 번 휘두르면 끝이 보이는 넓은 길에서 오히려 막막하다. 꿈마다 내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너무 좁아 담벼락이 어깨를 스치는 바로 그 길이다. 걸을 때마다 길 위에서 길이 그리워 나는 더러 눈물이 나기도 한다. (42.p)

 

 

  그러고 보니 경제적으로 부족하고 불편한 생활을 하였지만 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시간이 내 마음속에 숨어 있다가 가끔 오후 3~4시쯤 태양이 반짝 빛을 발하며 눈앞의 모든 것들을 황금빛으로 비출 때, 진한 그리움을 동반하며 떠오른다. 특별한 대상이나 시절에 대한 것은 아니다. 어떤 날은 서울 사는 사촌오빠들과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외갓집에 갔던 일을 생각나게 했고, 방과 후 집에 먼저 가지 않고 친구네 놀러 갔다가 엄마한테 혼날까봐 걱정하며 돌아오는 날이기도 했다. 가끔 책상에 앉아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고 창밖을 보며 멀리 어디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날 같기도 하다. 그 햇살의 기운과 빛은 여전하다. 내가 뛰어 놀았던 골목은 사라졌다. 작가와 마찬가지로 내가 놀던 곳도 재개발이 되었고, 함께 놀던 친구들도 다른 곳으로 떠나갔다.

 

 

아빠, 사랑하는 우리 아빠

 

 5월에 우리 아빠가 돌아가셨다. 폐렴 때문에 병원에 입원했다가 담낭에 이상 소견이 있어 정밀검사를 받았을 때, 담낭암 말기라는 말을 들었다. 우리 가족은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친할머니가 100세를 앞두고 살아 계셨으며,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도 모두 90대 후반의 나이에 돌아가셨다. 젊은 의사는 만약 우리 아빠가 자기 할아버지라면 항암치료를 하지 말고 드시고 싶은 것 마음껏 드시며, 가족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시라고 말할 것이라고 했다.

 

  아빠는 두 번의 항암 치료를 받으시고 그만 두셨다. 그리고 엄마와 우리 네 자매, 때때로 조카들까지 데리고 맛집을 찾아 다녔다. TV에서 60세를 맞이한 여자 연예인들이 자전거를 타고 남해 여행을 하는 것을 보고 처음으로 우리들에게 저곳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동안 배낭여행이며, 산티아고 순례길까지 모두 걸었던 나는 아빠와 제대로 여행 한 번 가지 못한 것이 죄송했다. 시간은 흘러갔고, 음식을 못 드시게 된 아빠는 한 달 동안 호스피스 병실에 입원해 계시다가 엄마와 봉사하시는 분들이 깨끗하게 목욕을 시킨 다음날 돌아가셨다.

 

…… 내일 당장 어떤 상황이 생긴다 하더라도 오늘 하루의 자존과 존엄과 일상을 잃지 말아야 했다. 환자도 그렇지만, 그 옆을 지키는 가족은 더더욱 그러해야 했다. 웃고 울고, 휴가를 즐기고, 일상을 살아야 했다. 슬픔과 고통은 어떠해야 한다고 당사자도 아닌 타인이 만들어놓은 매뉴얼 따위는 신경쓰지 말아야 했다. (129.p)

 

 

  결혼보다 너 하고 싶은 일 실컷 하며 살라고 말하던, 요즘 젊은이들보다 더 세련되고 앞서갔던 아빠였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 우리는 물론이고 손자들과 카톡으로 대화하려고 밤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연습하고, 스타벅스가 뭐하는 곳인지 궁금해 들어갔다가 주문하다말고 내게 전화를 걸었던 아빠였다. 딸만 넷을 키우면서 보수적인 생각을 버리고 보다 진보적이고 여자들 편이었던 멋진 아빠. 당신에게 시간이 6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두려웠을까. 그러면서도 내게 1년 전부터 약속해 두었던 해외여행을 다녀오라고 말하고, 할머니의 백수 잔치가 끝날 때 까지 견디고 웃음을 잃지 않았던 아빠가 책을 읽는 동안 내내 그리웠다. 오늘 하루의 자존과 존엄과 일상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아빠는 우리 가족을 끝까지 지켜주었고, 그리움만 남기고 떠나셨다.

 

  내가 뛰어놀았던 골목도, 산 같던 아빠도 이젠 없다. 그러나 앞으로 나는 예전보다 조금은 더 열심히 살아갈 것을 안다. 조금은 착한 일도 하고, 불의한 일에 목소리도 내며,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그래도 더 살만하다고 말하며 살아갈 것이다. 물론 문득 보고 싶은 얼굴 때문에 눈물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럴 수 있는 힘은 내가 믿는 신에 대한 믿음과 그리운 시간들, 또 그 시간을 만들어준 사람들, 그것을 간직하고 있는 내 마음 때문이리라. 내 삶에도 참 괜찮은 눈이 왔다가 사라졌다. 그렇지만 또 내릴 것을 안다

 

 

아프고 괴롭고 불안하고 막막한가. 그렇다면 그것은 당신의 삶이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다. 도망치지 마라. 원래 희망은 아프다. 그래서 꽃이 피는 것이다. (280.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 개정판 한창훈 자산어보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최근에 본 바다는 포르투갈의 성난 바다였다. 누런 흙탕물같은 파도가 세상을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달려드는 바다였다. 이런 바다를 뚫고 세상을 향해 나아갔던 선원들은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그럴수록 대한민국의 파랗고 풍성한 바다가 보고 싶었다.

 

  성난 바다속에서 살다 나온 문어인지 부드럽고 쫄깃하면서도 고소했다. 그 문어요리가 맛있어서 그런지 포르투갈의 바다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창훈 선생님의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를 읽으며 척박한 섬사람들에게 바다가 얼마나 소중한 보물창고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최근 낚시 프로가 인기를 얻고 바다로 여행을 떠난 사람들은 낚시를 즐기는 맛에 들뜨기도 했다. 한창훈 선생님 처럼 생계형 낚시꾼들은 바다가 아니면 어디에서 양식을 구할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며 한창훈 선생님뿐 아니라 <<자산어보>>를 지은 정약전 선생님까지 바다가 안겨주는 풍요로움 뒤에 무한한 시간을 견뎌야 하는 쓸쓸함과 고독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외로움이 바다생물에 대한 외양묘사부터 맛, 영양, 학문적인 지식까지 글로 적어냈다. 시간을 견디기 위한 방법 중 글쓰기만한 것이 있을까.

 

  귀양간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바닷속을 자유롭게 헤엄치는 물고기들이 얼마나 부러웠을까. 나도 가끔은 바다에서 갓 잡아올린 물고기들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는 바다를 그냥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래도 이 책을 읽으며 30종의 바다생물에 대해 알게 되고, 더불어 가슴 뭉클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는 소박하면서도 생명과 삶의 치열함을 느끼게 해주는 겸손한 글들이 모인 책이다. 바다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매일의 빵 - 오월의 종 베이커 정웅의 빵으로 가는 여정
정웅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가 만드는 빵과 기록한 글, 그것과 참 많이 닮은 저자.
그래서 더 아름다웠던 책!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는 저자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매일 성실하게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때문에 삶이 유지되고 성숙해진다.
고소한 빵냄새가 생각나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Q84 1 - 4月-6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권 읽기가 끝났다.

인간의 이성과 감성을 사로잡고 마비시키는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개인의 의지와 자유와는 상관없이 힘이 없거나 약하다는 이유로 타인이 강요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자들이 너무 많다.
인간은 약한 존재이다.
그러나 할 수 있다면 작은 힘이라도 발버둥치며 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