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양피지 - 캅베드
헤르메스 김 지음 / 살림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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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성공의 사전적 의미는 '목적하는 바를 이루는 것'이다.

부와 명예에 목적을 둔 사람이 그것을 이루었다면 성공한 것이고,

나눔과 섬김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아 그렇게 살고 있다면 소유한 재물과 상관없이 그도 성공한 인생이고,

가정의 화목이나 학문적 성취에 목적을 둔 사람이 그러한 삶을 산다면 그 역시 성공한 삶이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성공의 척도는 획일적이다.

물질과 지위, 혹은 명예나 권력을 잣대로 삼아 성공여부를 가늠한다.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이 이러한 성공을 부추기며 성공 스킬을 전수한다.

돈은 성공으로 가는 기름길이며 인생을 기름지고 행복하게 하는 윤활유로 여긴지 이미 오래다.

맞는 말이다. 돈이 없으면 살기가 어렵고 힘을 못 쓰는 게 우리네 현실이다.

특히나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에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 모두는 돈이 많다고 다 행복한 게 아니라는 것쯤은, 돈이 많다고 성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모두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부와 명예를 끝없이 갈망한다.

 

[기적의 양피지 캅베드]는 터키를 여행하던 윌리엄이 우연히 어려움에 처한 노인을 돕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양피지를 받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노인은 주인공 윌리엄에게 자신을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오나시스(이하 아리)라고 소개하지만,

이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들은 윌리엄은 그냥 피식 웃고 만다. 

허름한 옷차림의 노인이 할리우드 톱스타였던 모나코 왕비 그레이스켈리와 마리아 칼라스와 염문을 뿌리고, 미국 대통령 영부인이었던 재클린 케네디와 재혼한 오나시스로 보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인은 윌리엄의 비웃음을 무시하고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되도록 만들어 준 양피지와 그것을 얻게 된 사연을 진지하게 들려준다. 노인의 이야기는 소설인지 자기계발서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어렸을 때 유대인 랍비를 도와준 대가로 양피지를 받은 아리는 그 양피지를 아들에게 전해주길 원했지만 아들이 비행기 사고로 죽는 바람에 자신을 구해준 윌리엄에게 양피지를 전해준다.

갑작스런 아들의 죽음은 모든 것을 다 가진 아리에게 회환과 허무를 안겨준다.

아리처럼 많은 부를 가진 사람들이나 흔히 성공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운명이 임박한 순간에 가족에게 소홀했던 것을 가장 후회한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돈을 버느라 가족과 함께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성공을 좇느라 행복할 겨를이 없었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숨을 거둔다고 한다.

아리는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행복하지 않은 삶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아리가 전해준 양피지와 그가 전해준 교훈을 기억하여 윌리엄은 커다란 성공을 거둔다.

‘공경하라’. '존귀하게 하라'는 뜻의 히브리어인 캅베드는 자기 자신을 공경하고, 다른 사람을 공경하고, 신을 공경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책의 키워드는 '공경'이다.

공경은 나를 낮추지 않고서 할 수 없는 것이고, 남을 사랑하지 않고서 할 수 없는 게 공경이다.

일관되게 흐르는 이 책의 주제는 공경 받는 자보다 공경하는 자가 이익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겸손과 사랑으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을 전하고 있어서 주제가 마음에 든다.

그러나 '원하는 것을 공경하면 이루어진다'는 논리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만약 원하는 것이 사람이나 신이 아닌 사물인 경우라면 공경하기가 곤란하지 않겠는가.

 

[기적의 양피지 캅베드]는 "뭐든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면에서는 다른 자기게발서와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원하는 내용물을 점검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원하는 내용물을 어떻게 담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른 책들과 구별된다.

세상이 획일적으로 규정한 성공과 차별된 성공을, 차별화된 방법으로 담는 기술을 알려주는 점이 다르다.

그것도 아주 재미있는 팩션 형식으로 알려주고 있어서 귀에 쏙쏙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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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의 기술 - 심리학자 가브리엘 뤼뱅의 미움과 용서의 올바른 사용법
가브리엘 뤼뱅 지음, 권지현 옮김 / 알마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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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용어로 '울화병'이라 불리는  화병(火病)은 다른 나라에 없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병이라고 한다.

화병은 오랜 기간 억울한 감정을 표출하지 못하고 내면에 쌓인 울분이 곪아 신체적 통증으로 나타나는 질병이다.

마음의 병이 결국 육체의 고통의 수반하는 것이다.

대게 우리 부모님 시대의 어머니들이 많이 화병을 앓았다.

참는 것이 미덕이고,

여자는 무조건 참아야 한다는 사상이 팽배했던 시절 많은 어머니들이 오랜 세월 억울함과 분노를 가슴에 담고 살았다.

피해자이면서도 가해자처럼, 죄인처럼 숨죽이며 살았던 한 많은 여인들이 삶이 책을 읽는 동안 여러번 겹쳐졌다.

 

마음 속에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우리의 가슴에 상처를 준 당사자는 대부분 멀리 있지 않다.

많은 경우 가족, 특히 부모나 배우자가 가해자일 것이다. 

그들이 준  상처는 그 어떤 타인에게 받은 상처보다 크고 깊은 흔적을 남기며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힌다.

어쩌면 평생을 따라다니며 괴롭히거나 사사건건 브레이크를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족이기 때문에 드러내놓고 미워할 수 없고,  미워해서도 안 된다.

이제껏 우리는 미워하면 안 된다고, 용서하라고, 감싸주라고 배워왔고 또 우리 자녀들에게 그렇게 가르친다.

세상의 많은 책들도 용서와 화해만 말한다.

나 자신을 위해 용서하고, 나를 위해 먼저 다가가라고.

그러나 이게 마음대로 되던가? 말처럼 쉽던가?

설령 그렇게 했다하더라도 그러한 용서는 감정의 찌끼까지, 마음의 앙금까지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증오의 기술]은 가까운 사람,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의 가슴 아픈 사연은 우리의 공감대를 자극한다.

책에 소개된 많은 사람들의 사연은 쓰리고 아픈 내용 일색이다.

이 책은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해 가지고 있는 미워하는 마음의 죄책감에 대한 반론이다.

미워해도 괜찮다고 당당히 미워하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가해자를 벌하자거나 복수를 하자는 게 아니다.

가해자에게 공격 충동을 느낀 자신을 용서해야 한다고 말한다.

진정한 용서는 증오를 인정한 다음에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이다.

당당하게 증오하라는 말은 결국 궁극적으로 용서에 이르기 위함이다.

 

증오는 건강한 반응이며, 정상적인 감정의 표출이다.

이것을 강제로 억누르고 잠재우려다 오히려 죄책감과 자기 파괴, 우울증, 신경증 등로 발현하는 것이다.

증오가 증오로 끝나지 않고 용서로 이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용서일 것이다.

또한 증오는 증오를 없애는 방법이며 때때로 미움도 쓸모가 있다.

 

이 책을 읽고 불필요한 죄책감, 즉 가해자가 느껴야 할 죄책감까지 대신 떠안고 괴로워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유했으면 한다.

오래 전 받은 상처, 기억 속에 가둔 상처의 무의식을 서서히 떨구어 내는 데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용서했다고 생각했다가도 불현듯 되살아나 자신을 괴롭히는 상처로부터 해방되기를 바란다.

그것을 해결해주는 책은 아니지만, 적어도 방법을 제시해주고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내 자신의 고통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우쳐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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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소원 - 작가가 아끼는 이야기 모음 마음산책 짧은 소설
박완서 지음 / 마음산책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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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친절한 복희씨]의 작가 박완서 님이 평소 아끼는 이야기를 한 권에 모았다.

책에서 소개하는 10편의 짧은 이야기는 70년대 초부터 최근까지 콩트나 동화를 청탁받았을 때 쓴 것이라고 한다.

어른이 읽는 동화 내지는 자녀에게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처럼 한 편 한 편이 아름답고 따뜻하다.

10편의 이야기들은 잔잔한 우리네 일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평범한 이야기들이지만 현대인들에게 주는 교훈이 자못 크다.

 

극적인 반전 없이도, 큰 사건 없이도 이렇게 울림이 있는 글을 쓰는 박완서 님은 역시 노련한 작가이다.

이제껏 읽었던 작가의 소설과 다른 느낌을 주는 새로운 이 책은 평범한 소재에 인생의 가치를 부여하며 읽는 재미를 톡톡히 준다.

이 시대의 이야기꾼인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우리 언어의 풍요로움을 새삼 발견하게 되고,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호칭이 붙게 된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

 

갈치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아이가 갈치를 네모로 그린,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동심의 '큰 네모와 작은 네모'를 시작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열 편의 이야기 중,

자연을 요란하게 사랑하는 도시 사람들 때문에 봄뫼네 마을에 있는 산이 몸살을 앓는 이야기가 가장 와 닿는다.

내가 숲에서 살기 때문에 봄뫼네 마을 사람들의 걱정이 남의 일 처럼 여겨지지 않았고,

앓는 소리를 하며 아파하는 산의 고통을 공감되었다.

작가는, 산이나 물이 사람을 보호해 주면 주었지, 사람이 감히 산이나 물을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은 시골 사람들과

'산을 사랑하자' '나무를 사랑하자'라는 요란한 팻말과 구호와 리본을 가지고 요란을 떠는 도시인들의 자연사랑을 대비시킨다.

팻말을 세우기 위해 숲을 짓밟고 나무를 베어버리고 쓰레기를 태우다 산불을 내는 도시인들의 극성스러운 자연사랑과

자연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 자연을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시골 사람들의 자연사랑은 우리의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화가 남편을 위해 자신의 마지박 피 한 방울까지 모두 바친 아내의 사랑을 그린 '쟁이들만 사는 동네'와
어렸을 적 신부님이 사주신 물감으로 그린 그림이 아름다운 성화로 뽑힌 '보시니 참 좋았다'도 뭉클한 감동을 준다.
책에 소개된 이야기들은 모두 각박하고 메마른 현대인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데워준다.

작가가 아끼는 이야기 모음이라는 책의 부제가 이해된다.

 

[세 가지 소원]은 쉼표 같은 책이고, 지하수 같은 책이며, 시골 밥상 같은 책이다.

이 책은 전에 출판되었다가 절판 된 책이었는데 이번에 다시 새롭게 단장하고 출간된 것이라고 한다.

묻히지 않고 다시 세상에 나와줘서 고맙고 이 책을 나오게 해준 출판사가 고맙다.

책을 다 읽은 느낌은,

오랫만에 시골에 계시는 어머니를 찾아가 짜지도 맵지도 않은 구수하며 담백한 밥상을,

요란한 상차림은 아니지만 깊은 맛이 우러나오는 시골 밥상을 받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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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와 위대한 스승들 - 역경을 이겨낸 대통령들의 이야기
주인성 지음 / 북스토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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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변화(change)'와 '우리는 할 수 있다(Yes, We can)'는 희망을 외친 버락 후세인 오바마 2세가 흑인뿐 아니라 백인들에게도

폭넓은 지지를 받으며 미국의 44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으로 세계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은 오바마는 취임 전 경선 때부터 지구촌을 들썩거리게 한 인물이다.

여론조사에서 앞섰던 흑인 후보가 실제 개표에서는 득표율이 낮게 나오는 브래들리효과 현상도 나타나지 않았던 대선 승리는

오바마에게 거는 미국 국민의 기대치를 짐작하게 한다.

오바마는 변화와 희망에 목말라 있던 미국과 미국인의 필요를 적확히 감지할 줄 아는 탁월한 정치력과 모두를 끌어안는

균형 잡힌 정치 감각, 대중의 가슴에 파장을 일게하는 명연설로 국민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에 위기에 처한 미국 경제를 회복시켜 줄 인물이라는 기대치가 맞물리면서 미국은 그를 대통령으로 선택하였다.

 

오바마의 인생은 그리 순탄한 편은 아니다.

케냐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흑인도 백인도 아닌 흑백 혼혈아로 태어난 오바마는

어머니의 잇따른 이혼과 재혼, 다인종 가족, 학교에서의 따돌림과 놀림,

외조부모 밑에서 자란 청소년기에는 정체성에 대한 혼란으로 마약을 하는 등 그늘진 성장기를 보냈다.

그러나 외조부모의 다투는 소리를 우연히 듣고 정체성에 대한 방황의 종지부를 찍는다.

자신은 백인이며 동시에 흑인이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흑백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거나,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는 당시의 깨달음은 훗날 그의 정치에 영향을 준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모두의 장점을 취해서 통합으로 이끌도록 도움을 준 것이다.

 

[오바마와 위대한 스승들]은 오늘의 오마바가 있게 한 정신적 지주를 한자리에 모아놓았다.

이들은 오바마가 닮고자 했던 스승들이고, 오바마에게 삶과 정치로 모범을 보인 멘토들이다.

그래서인지 책 속 스승들은 오바마와 닮아 있다.

정치색이 닮았고, 경제가 닮았고, 피부색이 닮았고, 언변이 닮았고, 위기가 닮아 있다.

 

반대편 사람들 뿐 아니라 치열한 경쟁자, 심지어 적까지 끌어안는 링컨의 포용력과 오바마의 그것이 닮아 있다.

실제로 오바마는 어릴 적부터 링컨에 매료되어 그를 본받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왔다고 한다.

소아마비와 경제 대공황의 위기를 극복한 루스벨트처럼

오바마도 흑인 이라는 정치적 약점과 경제 위기를 떠안고 대통령직에 앉았다.

루스벨트의 당당한 자신감과 불굴의 의지, 그리고 비전을 오바마에게서 찾을 수 있으리라 본다.

또한 소외받는 이들에게 다가가고, 철저하게 준비하고, 뛰어난 연설로 유명한 케네디와

오바마의 명연설, 넘치는 패기가 닮아 있어 '검은 케네디'로 불릴 정도이다.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일 줄 알며, 자신의 명예보다 남의 명예를 더 생각했던 겸손한 아이젠하워의의  통합과 타협,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 속에서 오바마를 찾을 수 있다.

영국으로 부터의 독립과 미국의 기초를 세운 미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워싱턴과

인종차별을 극복하고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만델라에게 오바마의 모습이 비쳐진다.

 

이들은 모두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이고, 꿈과 희망을 붙잡은 사람들이고, 진정한 변화를 모색했으며,

평화와 포용과 통합을 이룬 인물들이다.

그리고 열정과 패기, 확고한 신념으로 무장한 대통령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오바마의 역할모델이 되어준 스승들의 교훈이 오바마 임기 중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기대된다.

 

이 시대를 '선생은 있으나 스승이 없는 시대'라고 말한다.

내가 따르고 닮을만한 스승이 없다면 오바마처럼 역사속 인물에서 사표가 되는 인물을 닮고 배워야 할 것이다.

시대를 탓하는 것은 성장이 멈춘자의 비겁한 자기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스승이 없다고 불평하는 것은 현실에 안주하려는 게으른 자기합리화일 뿐이다.

멘토를 찾고자 하는 청소년들에게 [오바마와 위대한 스승들]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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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온 첫 편지 신우인의 하늘 이야기 1
신우인 지음 / 포이에마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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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온 첫 편지 :창세기 상 -신우인의 하늘 이야기1


 

 

 

지방 소도시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렵게 서울로 올라와 중고증학교를 마쳤다.

화가가 되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미술대학에 지원했지만 낙방하고 원치 않는 2류대에 입학했다가 그만 두었다.

이듬해 연세대학교 독문과에 들어갔으나 독일어는 하나도 재미있지 않았다.

졸업 후 취직을 했지만 이 역시 재미가 없었다.

뭘 하지?

부친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되기로 하고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조직신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신학공부도 재미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뭘하지?

친하게 지내던 교수님이 사회학을 공부하고 돌아오면 교수 시켜준다는 말에 사회학을 공부하러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는데,

아뿔싸! 숫자로 가득한 통계에 기겁하고 석사학위만 받고 나왔다.

돈도 떨어진데다 학생 신분을 유지하려면 다른 학교를 알아봐야 했다.

뭘하지?

그렇게 간 곳이 대서양 끝자락에 있던 그 신학교(남침례교 신학교) 였다.

학비가 무진장 싸다는 이유 하나만 보고 간 학교여서 학교에 대한 기대는 눈꼽만큼도 없었다.

그런데 거기서 더이상 멍해질 수 없을 정도로 멍해진 '뇌'를 로마서 1장 1절이 깨웠다.

그렇게 찾아다니던 '본질'을 찾은 것이다.

 

재미있는 이 사연의 주인공은 내가 지금부터 말하려는 책의 저자인 신우인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이다.

계속해서 공부로 이끄는 인생 행로를 무척 부러워하며 읽었다.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공부하고 인연이 질긴 목사님이라는 인상과 공부로 피신하는 목사님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하늘에서 온 첫 편지]는 어렵고 닥딱한 '강해'라는 인상을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알기 쉬운 문체와 풍성한 예화, 유머러스한 감각을 곁들인 창세기 강해는 눈으로 듣는 창세기 강의라고 말할 수 있다.

책에서도 <CBS 성서학당>의 인기 강사라는 것을 유감없이 보여주며 구수하고 재미있고 깊은 감동으로 독자를 몰고간다.

 

그렇다고 깊이가 없다는 속단은 금물이다.

본질을 찾을 때까지 끈질기게 헤맨 저자답게 '본질'의 문제를 깊게 다룬다.

풍성한 예화와 말씀을 풀어 놓는 능력, 일련의 사건이 가지는 서사성은 그의 방대한 독서량과 신학적 통찰,

탄탄한 학문에 기초한 것이다.

또한 독자의 가슴을 울리려는 작가의 고민과 노력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것 중 하나는 예화나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책'을 소개하고 있어서 많은 책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이 중 관심있는 책은 따로 메모하기도 했다.

 

[하늘에서 온 첫 편지]는 태초에 온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 역사와 과정, 그리고 질서와 원칙을 꼼꼼히 짚어준다.

그 어느것 하나 아무렇게나 창조하지 않고 완벽한 순서와 계획에 의해 하나하나 창조하셨다는 것을 알았다.

'왜 이렇게 하셨을까?' '나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무엇일까'에 초점을 맞춰 성경을 연구한 저자는

창세기는 하나님의 원칙과 질서가 숨어 있기에 그 안에 인생의 처음과 끝이 보인다고 말한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캄캄한 동굴을 지나는 인생사,

특별히 혼돈과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만이 처음과 마지막을 아시기 때문이라고, 삶의 시작과 끝에 대해 가르쳐 주시기 때문이라고,

하나님이 밝은 등불이 되어 주시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현대과학이 우주의 나이를 측정한 결과 천지를 창조한 6일과 맞아떨어진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내용에서

짜릿한 전율이 일었다.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하나님이 증명되고 성경의 내용이 사실임이 증명된다는 게 무엇보다 반갑고 뿌듯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고스란히, 명확하게, 밝히 드러낸 하늘의 책이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람들이 계속 왜곡시켜 자신의 방식대로 해석, 적용하며 살아간다며 탄식하는 대목이 못내 안타깝다.

신우인 목사님은 성경을 그저 복 받는 비결 모음집이나 부흥의 원리 책자로 잘못 사용한 결과

성경이 오늘의 운세보다도 못한 책으로 전락했다고 개탄한다.

무병장수, 부귀영화, 만사형통이 기독교의 목적이라면 예수님이 굳이 이 땅에 오지 않으셨어도 된다고 하신다.

다른 종교가 이미 잘 하고 있기 때문에.

땅의 존재인 우리가 하늘의 존재인 하나님을 내 뜻에 맞게 움직이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거듭 강조한다.

저자는 목사들과 지도자들에게 가장 큰 책임을 묻고 있지만 평신도들이라고 책임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늘에서 온 첫 편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낸 첫 번째 연서, 즉 사랑편지이다.

이 편지(창세기)를 잘 이해하려면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며 편지를 쓴 목적과 마음을 알아야 하고,

편지를 쓰신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편지를 논리가 아닌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면 보일 것이다.

하나님의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과 내가 태어난 목적이.

그리고 하나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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