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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소원 - 작가가 아끼는 이야기 모음 ㅣ 마음산책 짧은 소설
박완서 지음 / 마음산책 / 2009년 2월
평점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친절한 복희씨]의 작가 박완서 님이 평소 아끼는 이야기를 한 권에 모았다.
책에서 소개하는 10편의 짧은 이야기는 70년대 초부터 최근까지 콩트나 동화를 청탁받았을 때 쓴 것이라고 한다.
어른이 읽는 동화 내지는 자녀에게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처럼 한 편 한 편이 아름답고 따뜻하다.
10편의 이야기들은 잔잔한 우리네 일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평범한 이야기들이지만 현대인들에게 주는 교훈이 자못 크다.
극적인 반전 없이도, 큰 사건 없이도 이렇게 울림이 있는 글을 쓰는 박완서 님은 역시 노련한 작가이다.
이제껏 읽었던 작가의 소설과 다른 느낌을 주는 새로운 이 책은 평범한 소재에 인생의 가치를 부여하며 읽는 재미를 톡톡히 준다.
이 시대의 이야기꾼인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우리 언어의 풍요로움을 새삼 발견하게 되고,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호칭이 붙게 된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
갈치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아이가 갈치를 네모로 그린,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동심의 '큰 네모와 작은 네모'를 시작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열 편의 이야기 중,
자연을 요란하게 사랑하는 도시 사람들 때문에 봄뫼네 마을에 있는 산이 몸살을 앓는 이야기가 가장 와 닿는다.
내가 숲에서 살기 때문에 봄뫼네 마을 사람들의 걱정이 남의 일 처럼 여겨지지 않았고,
앓는 소리를 하며 아파하는 산의 고통을 공감되었다.
작가는, 산이나 물이 사람을 보호해 주면 주었지, 사람이 감히 산이나 물을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은 시골 사람들과
'산을 사랑하자' '나무를 사랑하자'라는 요란한 팻말과 구호와 리본을 가지고 요란을 떠는 도시인들의 자연사랑을 대비시킨다.
팻말을 세우기 위해 숲을 짓밟고 나무를 베어버리고 쓰레기를 태우다 산불을 내는 도시인들의 극성스러운 자연사랑과
자연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 자연을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시골 사람들의 자연사랑은 우리의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화가 남편을 위해 자신의 마지박 피 한 방울까지 모두 바친 아내의 사랑을 그린 '쟁이들만 사는 동네'와
어렸을 적 신부님이 사주신 물감으로 그린 그림이 아름다운 성화로 뽑힌 '보시니 참 좋았다'도 뭉클한 감동을 준다.
책에 소개된 이야기들은 모두 각박하고 메마른 현대인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데워준다.
작가가 아끼는 이야기 모음이라는 책의 부제가 이해된다.
[세 가지 소원]은 쉼표 같은 책이고, 지하수 같은 책이며, 시골 밥상 같은 책이다.
이 책은 전에 출판되었다가 절판 된 책이었는데 이번에 다시 새롭게 단장하고 출간된 것이라고 한다.
묻히지 않고 다시 세상에 나와줘서 고맙고 이 책을 나오게 해준 출판사가 고맙다.
책을 다 읽은 느낌은,
오랫만에 시골에 계시는 어머니를 찾아가 짜지도 맵지도 않은 구수하며 담백한 밥상을,
요란한 상차림은 아니지만 깊은 맛이 우러나오는 시골 밥상을 받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