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기고 싶은 그들만의 세계사 - 망각의 20세기 잔혹사
정우량 지음 / 리빙북스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역사에 관한 책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역사를 좋아하고 관심이 많다.

나의 역사사랑은 채 10년도 안 된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그 어는 것보다  깊고 뜨겁다고 자부한다.

이 사랑의 시초는 학창시절 세계사를 담당했던 총각 선생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선생님의 관심을 끌기 위해 선행학습을 하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수업을 듣고,

시험에선 항상 만점을 고수하며 귀여움을 한몸에 받았다.

그러다 선생님의 갑작스런 전근과 동시에 세계사에 공 들일 이유를 잃고 세계사에 대한 짧고 굵은 사랑도 막을 내렸다.

 

 

6년 전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통해 역사서를 소개받으면서 잠자던 역사사랑에 불이 붙었고,

첫사랑을 회복한 후 오늘까지  꺼질 줄 모르고 활활 타오르고 있다.

역사의 가장 큰 매력은 '이면'을 들여다보는 맛이 아닐까 한다.

정의가 승리하든지, 승리한 것이 정의인지를 판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불의는 일단 승리하고 나면 얼마든지 정의로 둔갑할 수 있다.

물론 이를 위해 공을 들이고 치장을 하기 마련이며 이런 변신이 먹히기도 한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와 함께 불의는 제모습을 드러내게 되며,

정의라 규정지었던 것들도 그 의미가 변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1973년 칠레 쿠데타를 다룬 '또 하나의 9.11테러' 에서 세계 역사의 이면을 보여준다.

1973년 9월 11일 칠레의 테러 사건이다.

1970년 대통령 선거에 당선된 아옌데의 승리는 미국을 긴장시켰고, 닉슨 정부는 아옌데 정권을 무너뜨리기로 한다.

닉슨과 키신저가 아옌더 정권의 출현을 막기로 한 대외적인 이유는  칠레의 공산화 저지와

중남미 전체의 공산화 도미노 현상의 우려였으나,

그 이면에는 중남미를 앞마당처럼 여기며 칠레에 막대한 자본을 투자한 미국 정부와 미국 기업의 손실을 막기 위함이다.

결국 아옌더는 자신의 총으로 자살을 하고 구데타는 수많은 인명피해를 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칠레를 가리켜 '살해당한 국가'라고 표현 했다는데 가슴에 와닿았다.

 

 

역사 속에는 숨기고 싶은 어두운 과거가 많이 있다. 

우리나라의 역사이든, 세계의 역사이든, 개인의 역사이든지 간에 묻어두고 싶은 어두운 과거가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역사는 어둡고 밝음을 떠나, 정확히 밝혀질 필요가 있다.

그 속에서 가치를 추출해 내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다.

칠레에서 구데타가 발생한 지 35년이 지난 지금

칠레 쿠데타의 당사자인 미국은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는 입장이다.

클린턴과 부시 행정부는 '미국 역사에서 자랑할 수 없는 부분의' 이라며 미국의 잘못을 인정했다.

칠레 쿠데타의 주역 중 한 사람인 키신저는 외국에서 수모를 당할까 염려해

해외 여행을 할 때는 사전에 반드시 법률 전문가로부터 자문을 받은 후 떠난다고 한다. 

현재의 모습은 과거의 산물이며, 오늘을 잘 가꾸는 것은 당당한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라는 교훈을 주는 대목이다.

 

 

책에는 세계를 둘로 갈라놓은 스페인 내전과

타이완 2·28 학살 사건,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민간인 학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윈저공과 심프슨 부인의 사랑,
냉전 마녀사냥의 희생자 로젠버그 부부 간첩 사건 등이 기록되어  있다.

스페인 내전과 2.28 학살의 참상은 어설프게 알고 있던 사건을 명확하게 알게해 주었고,

윈저공과 심프슨 부인의 사랑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아름답지 않았다.

두 사람의 추잡하고 방탕하며 무분별한  비하인드  스토리는 읽는 재미를 주었다.


 

역사 지식을 더하는 기쁨과 읽는 재미도 독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나 마음을 울리진 못한다.

책에서 내 마음을 울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인간성과 문명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가를 묻는 역사의 블랙홀 - 홀로코스트 '였다.

나치 독일이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한 홀로코스트(대학살)는 이를 저지른 독일과

협력 또는 방조한 유럽, 한 걸음 더 나아가 인류 전체가 저지른 극악이었다.

인류 역사에 두 번 다시 그와 같은 잘못을 저질러선 안 된다는 교훈을 뼈 속 깊이 새겨준 대학살이지만,

역설적이게도  홀로코스트의 희생자인 유대인들이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스라엘이 불법으로 점령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땅에서 이스라엘군 병사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상대로 저지르고 있는 살상 행위를 ‘작은 홀로코스트’라고 부른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

 

 

이스라엘은 과거의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려하지 않고 당한 만큼 갚겠다는 식의 행동을 하는 것만 같아 씁쓸하다.

역사가 필요한 것은 과거를 들추어 잘잘못을 가리는 데 있지 않다.

과거를 통해 '반성'을 이끌고 반성을 통해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스라엘처럼 과거를 답습하는 것은 오늘을 낭비하는 것이며 미래를 어둡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과거에서' 오늘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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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며 2010-03-16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히로세 다카시의 <제1권력: 자본, 그들은 어떻게 역사를 소유해왔는가>를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저자 특유의 치밀한 조사를 통해 밝히고 있는 미국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