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에 12kg 빼주는 살잡이 까망콩
정주영 지음, 채기원 감수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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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와 영어는 해답은 있어도 정답은 없다'고 한다.

세상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다이어트 방법이 있고, 다양한 다이어트 제품과 기구, 운동법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만큼 힘들고 어렵다는 반증이다.

다이어트라는 게 눈에 띌 정도로 금세 살이 빠지는 것도 아닌데다 음식을 조절하고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하니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다이어트의 관건은 끈기와 절제가 아닐까 한다.

맛있는 음식 냄새의 유혹은 정말 참기 힘들다.

그런데 이보다 더 참기 힘든 건 더 먹고 싶은데 숟가락을 놓는 일이다.(내 경우에는)

또 게으름도 한몫 한다. 조금 하다가 귀찮다고 안 하거나, 미루거나, 시간을 핑계대면서 포기하게 되는 게 바로 다이어트다.

그러다 누가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다시 시도해보지만, 다른 사람이 성공했다고 나도 성공하던가.

다이어트가 필요한 사람치고 이런 반복과 좌절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자신의 나약한 의지를 탓하며 번번히 자신과의 싸움에서 진 많은 사람들에게 조각 미남 정주영씨는 희소식을 전해준다.

그도 11년 동안 다이어트 삽질을 꽤나 했다고 한다.

11년간 다이어트에 적잖은 돈을 쏟아부었으며 셀 수 없이 많은 운동기구와 여러 다이어트 방법을 시도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105kg의 몸무게를 4개월 만에 54kg으로 무려 51kg이나 감량한 다이어트 비법을 전격 공개한다.

 

[살잡이 까만콩]이 전하는 다이어트는 일단 방법이 쉽다.

[살잡이 까만콩]이 알려주는 방법은 포만감이 오래 지속되어 먹고 싶은 욕구를 의식적으로 억제하지 않아도 된다.

몸에 좋은 곡물을 재료로 하기 때문에 몸에 무리가 오지 않는 것도 장점이지만,

무엇보다 단기간에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게  까만콩 다이어트의 매력이다.

51kg이나 감량한 주역은 다름 아닌 삶은 '까만콩'과 '몰 워킹'이다.

책은 귀찮고 시간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간편하게 먹는 방법도 소개한다.

콩 중에서 서리태를 유독 좋아하는 나에게 반가운 방법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서리태는 메주콩과 함께 작년에 처음으로 농사지은 작물이라 살 필요도 없다.

올해 콩을 안 심기로 했는데 이 책을 보고 서리태는 꼭 심어야 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성격이 급한 나는 중간쯤 읽다가 창고에 가서 서리태를 가져왔다.

깨끗이 씻어 불려놓고 다시 책을 들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다이어트는 나랑 상관없는 이야기였으나

지난 겨울부터 살이 계속 찌고 있어 다이어트는 이제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콩을 삶고 있다.

[살잡이 까만콩]이 알려주는 쉽고 효과 빠른 까만콩 다이어트로 올여름을 당당하게, 그리고 자신있게 맞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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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시에 산다 비온후 도시이야기 2
박훈하 글, 이인미 사진 / 비온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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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 가을 문턱에 막 들어설 무렵 초등학교 때 단짝 친구와 무박2일로 부산에 다녀온 적이 있다.

서울역인지 서부역인지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어느 역인가에서 우리는 부산행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다.

새벽 어스름에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역사(驛舍) 화장실에서 대충 씻고 광안리 해수욕장을 선두로 태종대, 해운대, 자갈치시장까지 빚쟁이에게 쫓기는 사람들처럼 급히 돌아다닌 뒤 녹초가 된 몸으로 우리가 찾아간 곳은 바로 미용실이다.

당시에도 꽤 큰 미용실이었다. 거기서 우린 컷이 아닌 파마를 했다.

여행지에서 파마를 하다니 지금 생각하면 우스울 뿐이다.

친구와 나는 의자에 앉자마자 "알아서 예쁘게 해주세요" 이 한마디를 내뱉고 약속이라도 한듯

머리를 전후좌우로 볼상 사납게 끄덕거리기 시작했다.

눈꺼풀은 부끄러움까지 덮고도 남을 만한 무게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난 그때 알아버렸다.

미용실에 있던 사람들이 요란스레 졸고 있는 친구와 나를 보고 얼마나 웃었을까.

구경 간 게 아니라 좋은 구경거리를 제공하고 온 셈이다.

언제 중화를 했는지, 어떻게 걸어가서 샴푸를 했는지,

미용사는 또 흔들어 제끼는 머리를 어떻게 드라이를 했는지 도통 기억이 없다.

다만 "다 했어요." 한 마디에 정신이 퍼득 들어 거울 한 번 쓱 보고 얼른 나왔다.

그때 뒤통수가 얼마나 따갑던지......

 

이후 수년 뒤에 결혼 1주년 기념으로 우리 부부는 부산으로 여행을 갔다.

여행 코스는 친구와 갔던 때와 엇비슷했다.

다른 점이라면 2박 3일 일정이었으므로 시간적인 여유와 안락한 잠자리가 보장되어 있다는 게 달랐다.

그런데 여행 둘째날 남편은 그동안의 과로로 몸져눕고,

나는 여행 첫날 잃어버린 예물 시계 때문에 기분이 엉망이었다.

성치 않은 몸을 앞장세워 쌀쌀한 초겨울의 바닷가로 시계를 찾으러 갔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태종대와 해운대를 이 잡듯이 뒤졌으나 끝내 시계를 찾지 못하고 맥없이 돌아왔다.

엎친 데 덮친 겪으로 나까지 감기몸살에 걸려 우리 부부는 둘째날 점심부터 마지막 날 저녁까지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숙소에서 끙끙 앓았다. 다음 날 출근 때문에 하루를 더 묵을 수도 없어서 아픈 몸을 이끌고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다.

신나는 여행지에서 쫄쫄 굶고, 아프고, 으슬으슬 춥고, 결혼 예물까지 잃어버렸으니 돌아오는 행색이 얼마나 볼만했을까!

우리 부부는 그날 이후로 다시는 부산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두 번의 부산여행은 당시에는 한기가 느껴지는 여행이었으나 지금은 오래된 흑백 사진처럼 아련한 향수와 입가에 미소를 번지게 한다. 그때처럼  무작정 떠날 수 있는 자유와 젊음이 그립다.

 

[나는 도시에 산다]는 오직 부산만을 피사체로 해서 사진과 글을 사이좋게 나누어 담았다

부산이 근대화에서 현대화로 가는 과정을 볼 수 있는 이 책에는

급격한 변화의 과정에서 과거는 지워지고 현재만 덩그러니 남은 도시에서 낡은 기억들을 불러내는 이야기가 있다.

그 작은 이야기는 오래된 추억과 기억의 편린들을 하나하나 불러모은다.

거기엔 좁은 골목길에서 고무줄 놀이를 하는 한무리의 여자 아이들이 있고,

뉘엿뉘엿 해가 지는 운동장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는 그리운 얼굴들이 있고,

자전거상회에서 자전거를 빌려타고 으스대며 동네를 누비던 친구들이 있다.

철길 다리에 앉아서 뽑기를 팔던 외팔이 아저씨와 초등학교 수위였던 친구 아버지의 얼굴도 스친다.

내가 살던 골목길엔 아파트가 들어서고, 철길 다리는 넓직한 신작로로 변했지만 초등학교는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없다.

 

그렇게 변화는 과정에서, 철거하고 개발하는 과정에서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과 추억 할 거리를 빼앗기는 사람들이 생긴다.
[나는 도시에 산다]는 거대도시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오는 모순과 곪은 속살을 숨기지 않으며,

부산이 거대도시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역사와 문화,  가치에 관심을 기울이게 한다.

 

철거 위기에 놓인 '영도다리'가 그 한 예이다.

영도다리는 왜곡된 근대사를 거울처럼 정직하게 비추고 있다.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 월남한 예술가들과 서울서 피난 온  

황순원, 김이석, 이호철, 김동리 등의 문인들이 자신의 실존을 반추하기 위해 저절로 이끌렸덧 곳이 영도다리라고 한다.

영도다리는 이들이 세계로부터 내던져진 자신의 끝과 실존을 바라보기 위해 섰던 곳이다.

그런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실현됨에 따라 부산이라는 지역은 국가가 요구하는 산업도시로 재편 된다.

이 과정에서 영도다리는 영도의 조선, 철강업을 중앙과 연결하는 힘겨운 무게를 떠받치게 되고,

그로부터 영도다리는 사람을 불러들이는 신묘한 힘을 서서히 잃어 간 것이다.

영도다리는 컨테이너 차량이 육중한 소음으로 치달리고 영도지역 주민들의 유일한 출퇴근 통로로 메시간 정체되어 매연만

가득한 곳, 그저 도로의 연장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영도다리를 부산의 보석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근대 부산의 그 피곤한 세월을 가장 정직한 표정으로 드러내고 있는 영도다리가 철거 되어선 안 된다고 힘주어 말한다.

 

[나는 도시에 산다]의 글 안에 담긴 문제의식은 비단 부산에만 국한 된 문제가 아니다.
서울을 비롯한 모든 도시 속에 존재하는 모순이고 곪은 속살이다.

거대도시 진입에 부득불 피할 수 없었던 과정이라는 변명이 너무 궁색하다.

하지만 이 변명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데 문제가 있고, 여전히 과거의 전철을 밟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가볍게 읽을 줄 알았던 책인데 생각보다 무겁다.

자그마한(?) 이야기가 던지는 사유는 결코 자그마하지 않다.

부산 여행의 빛바랜 추억과 그날의 감흥을 떠올리려 했던 마음이 살그머니 꼬리를 감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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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인 룰스 - 의식의 등장에서 생각의 실현까지
존 메디나 지음, 정재승 감수 / 프런티어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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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88,628 곱하기 2를 몇 초 안에 암산할 수 있는가? 단 몇 초 만에 이런 암산을 24번이나 해내는 젊은이가 있다.

또 언제라도 몇 시 몇 분인지 정확히 맞추는 아이가 있다. 심지어 잠을 자면서도 누가 시간을 물어보면 대답을 한다.

6미터나 떨어져 있는 물체의 크기를 정확하게 알아맞히는 소녀도 있다.

실물과 똑같이 그림을 그려서 뉴욕 배디슨애버뉴에서 전시회를 연 여섯 살짜리 아이도 있다.

그러나 이들 중 운동화 끈을 맬 줄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사실, 이들 중 IQ가 50이 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두뇌란 실로 놀라운 존재다.

두뇌만큼 이 책도 나에게는 놀라운 책이다.

내가 이제껏 읽은 과학도서 중 이렇게 쉽고, 간결하고, 재미 있으며, 명쾌한 책은 처음이다.

[브레인 룰스:의식의 등장에서 생각의 실현까지]는 과학 이론을 나열하는 방식이 아닌 이야기 형식으로 친절하게 들려준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의 두뇌는 아직까지  정복하지 못한 상태이다.

[브레인 룰스]는 인류 앞에 놓인 마지막 미개척지이며 미스터리로 가득한 세계인 두뇌에 대해,

두뇌의 작동 원리에 대해, 기억 과정과 주의 집중에 대해 쉬운 말로 알려준다.

 

분자생물학자이자 신경공학자인 존 메디나가 말하는 '12가지 두뇌 법칙'중 내 관심을 끌었던 몇 가지는 이렇다.

 

1. 생각의 엔진 '운동' … 몸을 움직이면 생각도 움직인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소파에서 뒹구는 사람들보다 '장기기억, 추론, 주의력, 문제해결 능력'이 뛰어나다고 한다.

운동을 하면 몸에 좋다는 건 누구나 아는 얘기지만 그 효과는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다.

활발한 신체 운동은 두뇌의 힘을 즉각 증진시킨다고 한다.

학교에 종일 앉아 있는 학생들은 체육 시간에 운동을 하지만,

사무실에 종일 앉아서 근무 하시는 분들은 일의 능력을 위해서라도 짬짬이 기벼운 운동을 할 필요가 있다.

만약 짬을 낼 수 없다면 점심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도 지혜로운 선택일 것이다.

 

2.생각의 처리 '잠' … 잠은 생각과 학습의 필수 전제조건이다


오후 3시쯤 졸음이 쏟아진 적은 없는가?

이럴 땐 낮잠을 잠깐만 자도 생산성이 훨씬 올라간다고 한다.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진행한 연구 결과, 조종사가 26분간 낮잠을 자자 업무 수행 능력이 34% 향상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자는 동안 우리의 뇌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활발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학습을 하기 위해 잠을 자는지도 모른다.

오후 3시쯤 참을 수 없이 잠이 밀려오는 것은 두뇌의 원리에 따르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며,

따라서 날마다 오후에 잠깐씩 낮잠을 잔다면 생산성은 더 높아진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나는 날마다 2,30분씩 낮잠을 잔다. 자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천근만근 무겁게 내려오는 눈꺼풀의 무게를 견딜 수 없다는 뜻이다.

이렇게 토막잠을 자고 일어나면 개운하고 가뿐하다.

몸과 정신이 가벼우니 하는 일의 능률도 오르고 시간도 단축되어 경제적이다.

단, 너무 오래 자면 늘어지고 쳐지고 가끔 가위에 눌리기도 하므로 오래 자지 않도록 주의 한다.

내 경우에 있어서도 낮잠은 입증되었다. 그러니  학교와 회사에서 오후 3시를 낮잠 시간으로 정하면 어떨까?

내가 오너라면, 교장이라면 사칙과 교칙에 이 조항을 반드시 넣을텐데, 그러히 못해  아쉽다.

 

3.  생각의 재발견 '탐구' … 우리는 평생 타고난 탐구자로 살아간다.

 

우리는 지식에 대한 목마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5,6년 전까지만 해도 학계에서는 인간이 평생 쓸 뇌세포를 가지고 태어나며, 나이가 들면서 뇌세포가 점점 줄어든다고 믿었다.

하지만 최신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나이에 상관없이 학습에 관련된 두뇌 부위에서는 새로운 뉴런(신경세포)과 시냅스가 생성된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이 새 뉴런들은 신생아들의 뉴런만큼 뛰어난 가소성을 지닌다고 한다.

이 말은 곧 어른의 두뇌는 평생에 걸쳐 경험을 통해 스스로 구조와 기능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다는 얘기,

즉 인간은 아기부터 성인을 거쳐 죽을 때까지 모두 타고난 탐험가로 살아간다는 말이다.

 

신나는 연구 결과이다.

나처럼 마흔을 넘긴 사람들은 나이를 핑계로 뒤쳐지는 학습력과 기억력을 탓했는데,

그것들이 생물학적 나이와 무관하다는 학계 보고가 고맙기까지 하다. 

내가 하는 것들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겠다.

 

[브레인 룰스]는 이 외에도 사람의 두뇌회로는 모두 서로 다르고, 따분한 것들은 관심을 끌지 못하며,
단기기억과 장기기억하는 방법, 스트레스가 뇌에 미치는 영향, 자극이 다양할수록 생각이 뚜렷해지고,
남자와 여자는 다르게 생각하고 느끼는 것에 대해 조목조목 다룬다.


미국 현대 뇌과학의 전문가 존 메디나가 집필하고, 대중적 과학 글쓰기를 선보인 카이스트의 정재승 교수가 감수한 이 책은

'과학적인 자기계발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고 대해왔던 자기계발서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 책을 읽어보면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알게 될 것이다.

[브레인 룰스]는 과학적 지식을 전달하는 것보다 두뇌과학을 이용해 보다 효율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효율적으로 일하는 것에 목적을 둔 책이다. 

책을 읽은 이들은 과학에 기초를 둔 효율적인 두뇌 활용법에 대해 고민할 것이고,

이를 각자 생활에 어떻게 연결할지를 고민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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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천의 개 - 삶과 죽음의 뫼비우스의 띠
후지와라 신야 지음, 김욱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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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황금기를 고도 성장하는 일본을 떠나 원시의 자연 속으로 들어간 후지와라 신야를 이틀에 걸쳐 만났다.

막연한 인도여행을 꿈꿨던 나에게 그는 보란듯이 다디던 대학을 중퇴하고 인도를 선택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결단과 용기를 흉내낼 수조차 없었던 나의 나약했던 20대가 주마등처럼 스친다.

돌이켜 보니 그때 나는 아무런 시도도 못하고 주저하고 망설인 겁쟁이였다.

 

20대 중반부터 30대 중반까지 인도를 여행한 저자에게 듣는 인도는 한마디로 낯섦이며 충격이다.

이제껏 내가 알고 있던 인도와 다른 낯선 인도를 저자는 가감없이 담담하게 들려준다.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을 읽고 가졌던 환상과 낭만이 절반쯤 무너졌다고나 할까.

 

그랬다.

갠지스 강의 화장터에서 시체를 불태우는 장면은 후자와라 신야처럼 내게도 충격이다.

그리고 화장터 주변을 배회하던 들개들이 불탄 시체를 뜯어 먹는 장면, 이 광경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인도 사람들,

화장터 주변에서 벌어지는 결혼식 행렬, 후지와라 신야를 먹잇감으로 알고 달려드는 개떼들, 점입가경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목숨이 지구보다 무겁다고 생각했는데 쓰레기 소각하듯 시체를 태우는 것을 보고,

화장터를 지나는 떠들썩한 결혼식 축하 행렬을 보고 그는 깨닫는다. 죽음과 삶을 경계 지을 수 없다고.

또한 인간의 목숨이 다른 생물의 먹이삼이 될 수도 있다는 발견은 그의 삶에 커다란 전환점이 된다.

 

후지와라 신야는 여행을 선택한 이유 같은 없다고 말하지만 여행의 목적만은 분명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내부를 비우고 세계의 정보를 새롭게 담아내기 위해서,자신이 살아 있다는,

존재하고 있다는 가장 기본적인 감각을 되찾고 싶어서, 리얼리티를 회복하기 위해 인도로 눈을 돌렸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인도 여행은 '신체'와 깊은 연관이 있더고 덧붙인다.

20대 초반에 신체의 존재감이 사라지고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인 저자가 인도를 방문한 것처럼

힌두교에서 파생된 사이비 종교 집단인 옴진리교 교주 아사하라 쇼코도 같은 이유로 인도를 방문한다.

두 사람에겐 인도 방문 외에 신체적인 불안감 이라는 공통 항목이 존재하는 것이다.

 

아사하라는 어렸을 때 왼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상살했고, 오른쪽 눈은 약시이다.

아사하라의 신체적 결함의 원인은 마나마타의 수은에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로 인정받지 못한 채 방치되었다.

사회와 체제를 향한 원한은 타인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와 증오를 분출하게 했고 급기야 1995년 옴진리교 가스 테러 사건을 몰로왔다. 한 사람의 신체적 결함이 몰고 온 파장을 생각하면 너무 끔찍하지만, 아사하라를 그렇게 만든 사회와 정부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는 1960년대 이후 아시아 최고의 경제성장을 이룩한 일본이 현대 사회에 남긴 병폐 중 하나이다.

 

옴진리교 신도들은 창문이 가려진 건물에서 눈가리개를 착용하고 어두 컴컴한 지하실의 밀폐된 방에서 외부와 차단된 생활을 했다. 저자는 스스로 어두운 세계에 갇히려고 했던 원인을 아사하라의 신체적 병리를 타인에게 강요하는,

일종의 굴절된 자기보복 현상에서 기인한 것으로 추측한다.

옴진리교 특징인 현실에 대한 자폐성은 아사하라 개인의 신체적 결함에서 비롯된 것이나

이와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도시의 평범한 청소년들이 너무나 쉽게 옴진리교에 빠져들고 그 어둠의 도가니에서 열광적인 정열을 발산한다.

이는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성장한 청소년들의 내면에도 현실 사회에 대한 자폐성이 껄려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컴퓨터와 텔레비전이 친구인 세대들이 겪는 고독감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다를 게 없다.

자연이나 외부의 풍경보다는 가상공간에 익숙하고 그것들과 친한 청년과의 인텨뷰에서 저자는 인도의 경험담을 이야기해준다.

현대 문명에 괴리감과 소외감을 느끼는 청년에게 그는 재생과 갱생을 위한 파괴와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한다.

'재생과 갱생을 위한 파괴'는 일본인들의 지혜를 엿보는 대목이다.

 

같은 이유로 동일한 나라를 방문한 두 사람의 판이하게 다른 인생은 결국 '선택'에 있다고 나는 결론 짓고 싶다. 

몰매를 맞으면서도 종교 의식을 거부하기로 선택한 저자의 선택과 힌두교를 선택한 아사하라의 선택은

같은 인도를 방문하고, 같은 장소를 가고, 같은 경험을 하지만 결국 동상이몽을 한 것이다.

저자의 선택은 삶이고, 아사하라의 선택은 죽음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황천의 개]는 이야기 거리와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제공해준다.

여행서라기 보다는 가벼운 철학서 분위기를 짙게 풍기고 있어서 그렇다.

살아 있는 존재감이 사라지는 날이나, 등 떠밀려 사는 기분이 드는 날 이 책을 다시 펼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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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역사가 움직였다 - 알렉산드로스 대왕부터 빌 클린턴까지, 세계사를 수놓은 운명적 만남 100 역사를 바꾼 운명적 만남
에드윈 무어 지음, 차미례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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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하고도 가장 짧은 만남은 단테가 평생의 연인 베아트리체를 만난 것이다.

단테는 아홉 살이 거의 끝나가는 무렵에 베아트리체를 처음 보았다.

베아트리체는 이때 여덟 살이었다. 두 사람은 9년 뒤에 다시 만난다.

이 후 두 사람은 각자 다른 사람과 결혼하고, 베아트리체는 24세 나이로 사망하지만 [신곡]에서 단테의 안내역으로

등장하면서 되살아난다.

[신곡]은 너무 어려워서 중도에 여러번 포기한 끝에 겨우 읽은 책이나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처음 본 느낌을 묘사한 부분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 순간 역사가 움직였다]는 단테와 베아트리체 같은 운명적인 만남과, 재미있는 만남, 조금 엉뚱한 만남, 희한한 만남 등

우리가 살면서 가질 수 있는 다양한 만남 100편을 담고 있다.

세계사에 한 획을 긋는 극적인 만남이거나 세계사의 판도를 바꾼 역사적인 만남일 거라는 읽기 전의 기대를 져버렸지만

가볍게 읽으며 세계사의 식견을 넓히기엔 그만이다.

다만 낯선 인물들이 많다는 것,

낯선 인물들의 만남을 당시의 배경 설명 없이 만남 자체만 다루고 있어서 전후좌우 상황 파악이 어렵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이를 간파한 친절한 역자는 한국판을 새로 만드는 심정으로 보충 자료와 인물 설명을 본문에 녹였다고 한다.

읽다보면 독자를 생각하고 배려해준 역자의 직업정신과 사명감, 그리고 노고를 느낄 수 있다.

 

[그 순간 역사가 움직였다]의 저자 에드윈 무어는 세계사를 수놓은 운명적 만남 100선을 선택하면서 기준으로 정한 항목이

첫째는 만난 당사자들이 유명인사일 것,

둘째는 서로의 존재를 모르다가 우연히 마주칠 것,

셋째는 그 만남이 실질적 의미를 가질 것으로 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꼭 그렇지만은 않다.

유명인사인지는 모르겠으나 우연히 마주치지 않은 사례와 실질적인 의미를 부여하기엔 미흡한 만남도 많았으며,

심지어 시시하기까지한 만남도 있었다.

만남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이런 만남도 있었구나 하면서 100편의 만남을 즐기며 읽었다.

 

그 중 인상 깊었던 만남은,

베토벤과 괴테가 산책을 나가서 서로 팔을 낀 채 거닐고 있다가 자신들 쪽으로 걸어오는 오스트리아 왕비와 공작 일행들과

마추쳤다. 이때 베토벤은 괴테에게 자기 팔을 꽉 잡고 풀지 말라고 하지만 괴테는 모자를 벗고 왕비에게 공손히 절을 했다.

그러나 베토벤은 팔짱을 끼고 머리를 곳꼿이 세운 채  계속 똑바로 걸어가서, 모세 앞에서 홍해가 갈라지듯 공작들이 쫙 갈라지게 했다. 베토벤은 머리가 빈 귀족들에게 절을 한 괴테를 질책했다.

훗날 괴테는 베토벤이 너무 '불온하다'는 편지를 고향에 보냈고,

베토벤은 자기 출판인에게 괴테가 왕족들에게 너무 사족을 못 쓴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책은 베토벤과 슈베르트와의 만남도 다루는데, 두 글은 '역시'  베토벤이라는 생각을 굳히게 한다.

 

동명이인의 만남도 흥미롭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이 미국 순회강연을 갔다가 역시 순회강연을 하고 있는 미국 소설가 윈스턴 처칠을 만나

"윈스턴 처칠씨, 윈스턴 처칠입니다."라고 인사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영국의 처칠과 미국의 처칠은 친구가 되지만, 이 후 두 사람의 인생은 크게 대조된다.

 

세계 제일의 심리학자인 70세의 프로이트와 세계 제일의 물리학자인 47세의 아인슈타인이 만났다.

이들은 서로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전문분야를 가졌는데도 아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눈길을 끄는 것은

아인슈타인에게 정신병을 앓는 아들이 있었는데도, 프로이트에게 조언을 구할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프로이트에게도 '강박성 노이로제' 환자라고 진단을 내린 아들이 있었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의 프로이트에게 도움을 청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하다.

 

책은 이렇듯 우리에게 익숙하고, 알려진 인물들과 생소한 인물들의 짧은 만남을 보여준다.

세계사에 대한 단편적 지식을 넓히거나 세계사 인물에 대한 입문서 정도로 알고 읽는다면 흥미로운 책이다.

저자의 위트 있는 문체가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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