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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역사가 움직였다 - 알렉산드로스 대왕부터 빌 클린턴까지, 세계사를 수놓은 운명적 만남 100 ㅣ 역사를 바꾼 운명적 만남
에드윈 무어 지음, 차미례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유럽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하고도 가장 짧은 만남은 단테가 평생의 연인 베아트리체를 만난 것이다.
단테는 아홉 살이 거의 끝나가는 무렵에 베아트리체를 처음 보았다.
베아트리체는 이때 여덟 살이었다. 두 사람은 9년 뒤에 다시 만난다.
이 후 두 사람은 각자 다른 사람과 결혼하고, 베아트리체는 24세 나이로 사망하지만 [신곡]에서 단테의 안내역으로
등장하면서 되살아난다.
[신곡]은 너무 어려워서 중도에 여러번 포기한 끝에 겨우 읽은 책이나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처음 본 느낌을 묘사한 부분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 순간 역사가 움직였다]는 단테와 베아트리체 같은 운명적인 만남과, 재미있는 만남, 조금 엉뚱한 만남, 희한한 만남 등
우리가 살면서 가질 수 있는 다양한 만남 100편을 담고 있다.
세계사에 한 획을 긋는 극적인 만남이거나 세계사의 판도를 바꾼 역사적인 만남일 거라는 읽기 전의 기대를 져버렸지만
가볍게 읽으며 세계사의 식견을 넓히기엔 그만이다.
다만 낯선 인물들이 많다는 것,
낯선 인물들의 만남을 당시의 배경 설명 없이 만남 자체만 다루고 있어서 전후좌우 상황 파악이 어렵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이를 간파한 친절한 역자는 한국판을 새로 만드는 심정으로 보충 자료와 인물 설명을 본문에 녹였다고 한다.
읽다보면 독자를 생각하고 배려해준 역자의 직업정신과 사명감, 그리고 노고를 느낄 수 있다.
[그 순간 역사가 움직였다]의 저자 에드윈 무어는 세계사를 수놓은 운명적 만남 100선을 선택하면서 기준으로 정한 항목이
첫째는 만난 당사자들이 유명인사일 것,
둘째는 서로의 존재를 모르다가 우연히 마주칠 것,
셋째는 그 만남이 실질적 의미를 가질 것으로 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꼭 그렇지만은 않다.
유명인사인지는 모르겠으나 우연히 마주치지 않은 사례와 실질적인 의미를 부여하기엔 미흡한 만남도 많았으며,
심지어 시시하기까지한 만남도 있었다.
만남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이런 만남도 있었구나 하면서 100편의 만남을 즐기며 읽었다.
그 중 인상 깊었던 만남은,
베토벤과 괴테가 산책을 나가서 서로 팔을 낀 채 거닐고 있다가 자신들 쪽으로 걸어오는 오스트리아 왕비와 공작 일행들과
마추쳤다. 이때 베토벤은 괴테에게 자기 팔을 꽉 잡고 풀지 말라고 하지만 괴테는 모자를 벗고 왕비에게 공손히 절을 했다.
그러나 베토벤은 팔짱을 끼고 머리를 곳꼿이 세운 채 계속 똑바로 걸어가서, 모세 앞에서 홍해가 갈라지듯 공작들이 쫙 갈라지게 했다. 베토벤은 머리가 빈 귀족들에게 절을 한 괴테를 질책했다.
훗날 괴테는 베토벤이 너무 '불온하다'는 편지를 고향에 보냈고,
베토벤은 자기 출판인에게 괴테가 왕족들에게 너무 사족을 못 쓴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책은 베토벤과 슈베르트와의 만남도 다루는데, 두 글은 '역시' 베토벤이라는 생각을 굳히게 한다.
동명이인의 만남도 흥미롭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이 미국 순회강연을 갔다가 역시 순회강연을 하고 있는 미국 소설가 윈스턴 처칠을 만나
"윈스턴 처칠씨, 윈스턴 처칠입니다."라고 인사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영국의 처칠과 미국의 처칠은 친구가 되지만, 이 후 두 사람의 인생은 크게 대조된다.
세계 제일의 심리학자인 70세의 프로이트와 세계 제일의 물리학자인 47세의 아인슈타인이 만났다.
이들은 서로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전문분야를 가졌는데도 아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눈길을 끄는 것은
아인슈타인에게 정신병을 앓는 아들이 있었는데도, 프로이트에게 조언을 구할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프로이트에게도 '강박성 노이로제' 환자라고 진단을 내린 아들이 있었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의 프로이트에게 도움을 청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하다.
책은 이렇듯 우리에게 익숙하고, 알려진 인물들과 생소한 인물들의 짧은 만남을 보여준다.
세계사에 대한 단편적 지식을 넓히거나 세계사 인물에 대한 입문서 정도로 알고 읽는다면 흥미로운 책이다.
저자의 위트 있는 문체가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