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시에 산다 비온후 도시이야기 2
박훈하 글, 이인미 사진 / 비온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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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 가을 문턱에 막 들어설 무렵 초등학교 때 단짝 친구와 무박2일로 부산에 다녀온 적이 있다.

서울역인지 서부역인지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어느 역인가에서 우리는 부산행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다.

새벽 어스름에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역사(驛舍) 화장실에서 대충 씻고 광안리 해수욕장을 선두로 태종대, 해운대, 자갈치시장까지 빚쟁이에게 쫓기는 사람들처럼 급히 돌아다닌 뒤 녹초가 된 몸으로 우리가 찾아간 곳은 바로 미용실이다.

당시에도 꽤 큰 미용실이었다. 거기서 우린 컷이 아닌 파마를 했다.

여행지에서 파마를 하다니 지금 생각하면 우스울 뿐이다.

친구와 나는 의자에 앉자마자 "알아서 예쁘게 해주세요" 이 한마디를 내뱉고 약속이라도 한듯

머리를 전후좌우로 볼상 사납게 끄덕거리기 시작했다.

눈꺼풀은 부끄러움까지 덮고도 남을 만한 무게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난 그때 알아버렸다.

미용실에 있던 사람들이 요란스레 졸고 있는 친구와 나를 보고 얼마나 웃었을까.

구경 간 게 아니라 좋은 구경거리를 제공하고 온 셈이다.

언제 중화를 했는지, 어떻게 걸어가서 샴푸를 했는지,

미용사는 또 흔들어 제끼는 머리를 어떻게 드라이를 했는지 도통 기억이 없다.

다만 "다 했어요." 한 마디에 정신이 퍼득 들어 거울 한 번 쓱 보고 얼른 나왔다.

그때 뒤통수가 얼마나 따갑던지......

 

이후 수년 뒤에 결혼 1주년 기념으로 우리 부부는 부산으로 여행을 갔다.

여행 코스는 친구와 갔던 때와 엇비슷했다.

다른 점이라면 2박 3일 일정이었으므로 시간적인 여유와 안락한 잠자리가 보장되어 있다는 게 달랐다.

그런데 여행 둘째날 남편은 그동안의 과로로 몸져눕고,

나는 여행 첫날 잃어버린 예물 시계 때문에 기분이 엉망이었다.

성치 않은 몸을 앞장세워 쌀쌀한 초겨울의 바닷가로 시계를 찾으러 갔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태종대와 해운대를 이 잡듯이 뒤졌으나 끝내 시계를 찾지 못하고 맥없이 돌아왔다.

엎친 데 덮친 겪으로 나까지 감기몸살에 걸려 우리 부부는 둘째날 점심부터 마지막 날 저녁까지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숙소에서 끙끙 앓았다. 다음 날 출근 때문에 하루를 더 묵을 수도 없어서 아픈 몸을 이끌고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다.

신나는 여행지에서 쫄쫄 굶고, 아프고, 으슬으슬 춥고, 결혼 예물까지 잃어버렸으니 돌아오는 행색이 얼마나 볼만했을까!

우리 부부는 그날 이후로 다시는 부산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두 번의 부산여행은 당시에는 한기가 느껴지는 여행이었으나 지금은 오래된 흑백 사진처럼 아련한 향수와 입가에 미소를 번지게 한다. 그때처럼  무작정 떠날 수 있는 자유와 젊음이 그립다.

 

[나는 도시에 산다]는 오직 부산만을 피사체로 해서 사진과 글을 사이좋게 나누어 담았다

부산이 근대화에서 현대화로 가는 과정을 볼 수 있는 이 책에는

급격한 변화의 과정에서 과거는 지워지고 현재만 덩그러니 남은 도시에서 낡은 기억들을 불러내는 이야기가 있다.

그 작은 이야기는 오래된 추억과 기억의 편린들을 하나하나 불러모은다.

거기엔 좁은 골목길에서 고무줄 놀이를 하는 한무리의 여자 아이들이 있고,

뉘엿뉘엿 해가 지는 운동장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는 그리운 얼굴들이 있고,

자전거상회에서 자전거를 빌려타고 으스대며 동네를 누비던 친구들이 있다.

철길 다리에 앉아서 뽑기를 팔던 외팔이 아저씨와 초등학교 수위였던 친구 아버지의 얼굴도 스친다.

내가 살던 골목길엔 아파트가 들어서고, 철길 다리는 넓직한 신작로로 변했지만 초등학교는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없다.

 

그렇게 변화는 과정에서, 철거하고 개발하는 과정에서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과 추억 할 거리를 빼앗기는 사람들이 생긴다.
[나는 도시에 산다]는 거대도시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오는 모순과 곪은 속살을 숨기지 않으며,

부산이 거대도시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역사와 문화,  가치에 관심을 기울이게 한다.

 

철거 위기에 놓인 '영도다리'가 그 한 예이다.

영도다리는 왜곡된 근대사를 거울처럼 정직하게 비추고 있다.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 월남한 예술가들과 서울서 피난 온  

황순원, 김이석, 이호철, 김동리 등의 문인들이 자신의 실존을 반추하기 위해 저절로 이끌렸덧 곳이 영도다리라고 한다.

영도다리는 이들이 세계로부터 내던져진 자신의 끝과 실존을 바라보기 위해 섰던 곳이다.

그런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실현됨에 따라 부산이라는 지역은 국가가 요구하는 산업도시로 재편 된다.

이 과정에서 영도다리는 영도의 조선, 철강업을 중앙과 연결하는 힘겨운 무게를 떠받치게 되고,

그로부터 영도다리는 사람을 불러들이는 신묘한 힘을 서서히 잃어 간 것이다.

영도다리는 컨테이너 차량이 육중한 소음으로 치달리고 영도지역 주민들의 유일한 출퇴근 통로로 메시간 정체되어 매연만

가득한 곳, 그저 도로의 연장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영도다리를 부산의 보석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근대 부산의 그 피곤한 세월을 가장 정직한 표정으로 드러내고 있는 영도다리가 철거 되어선 안 된다고 힘주어 말한다.

 

[나는 도시에 산다]의 글 안에 담긴 문제의식은 비단 부산에만 국한 된 문제가 아니다.
서울을 비롯한 모든 도시 속에 존재하는 모순이고 곪은 속살이다.

거대도시 진입에 부득불 피할 수 없었던 과정이라는 변명이 너무 궁색하다.

하지만 이 변명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데 문제가 있고, 여전히 과거의 전철을 밟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가볍게 읽을 줄 알았던 책인데 생각보다 무겁다.

자그마한(?) 이야기가 던지는 사유는 결코 자그마하지 않다.

부산 여행의 빛바랜 추억과 그날의 감흥을 떠올리려 했던 마음이 살그머니 꼬리를 감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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