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자 - 속수무책 딸의 마지막 러브레터
송화진 지음, 정기훈 각본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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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애자'라는 제목을 보고 청소년들이 즐겨 사용하는 '욕'에 해당하는 은어인 줄 알았다. 청소년들이 상대를 욕할 때 '애자'라는 말을 하는 것을 가끔 들은적이 있어서다. 그런데 '애자'는 내가 생각했던 은어가 아니라 소설의 주인공 이름이다. 이름이 이름인 만큼 애자는 고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촌스러운이름 때문에 "아빠 없는 장애자래요~"라고 놀림받지만 애자를 놀린 친구들은 놀린 값으로 코피를 흘려야 했다. 이런 애자 때문에 학교는 하루라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애자는 싸움만 잘 하는 게 아니다. 1등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공부도 잘 하고 글도 잘 쓴다. 비만 오면 학교를 땡땡이치고 바닷가를 찾아가서 시를 쓰는 감수성(?)을 지닌 일명 '부산의 톨스토이'로 날렸던 여고생이다. 아무튼 애자는 강단 좋고 싸움 잘 하고 사고 잘 치는 천방지축 여고생으로 껌좀 씹었던 날라리였다.

 

애자에겐  '최영희가축병원'을 운영하는 수의사 엄마와 다리가 불편한 오빠가 가족의 전부이다. 아버지가 안 계신 집에서 애자와 엄마는 늘 티격태격이다. 억척스럽고 거친 엄마가 창피한데다가 오빠만 감싸고 도는 게 애자의 불만이라면, 엄마는 엄마대로 사고뭉치 애자가 못마땅하다. 그러니 모녀는 만나기만하면 거친 말과 거친 행동을 하며 늘 옥신각신이다. 부산 특유의 사투리로 모녀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시종 웃음을 주지만, 참 징글징글하게도 싸운다. 싸움닭 애자와 억척스러운 엄마가 많이 닮아 있다. 정수리에 물을 부으면 어디로 흐르겠는가. 모전여전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모녀지간이다. 그러나 두 모녀가 밉지 않고 싫지 않다. 오히려 정겹고 친근하다. 모녀는 비록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며 싸우지만 그 싸움은 사랑과 관심의 표현이다. 서로가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서,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서툴러서 싸움으로 표출되는 것이므로 되려 정겹게 느껴진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해 소설가를 꿈꾸는 애자는 작가의 꿈을 안고 살아가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멀기만 한 작가의 꿈을 안고 살아가는 애자에게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암이 재발해 엄마가 1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것. 이후부터 그려지는 애자와 엄마의 관계는 기어이 눈물을 훔치게 만든다. 시종 웃음을 자아내는 유쾌함은 암 재발을 계기로 먹먹함으로 바뀐다. 죽음과 이별의 아픔 앞에서 애자는 엄마를 이해하게 되고, 두 사람은 서로의 소중함을 절감하고 사랑을 확인해가기 시작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마음과 달리 함부로 표현하거나 말 안해도 알겠지 하고 표현하지 않은 마음 속 말들이 우리에겐 참 많다. [애자]는 가족에게, 부모에게 더늦기 전에 마음을 보여주고 사랑을 표현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같다. 멀리 계신 부모님께 안부전화라도 넣어야겠다. 추석 때 엄마와 함께 영화 <애자>를 봤더라면 하는 뒤늦은 후회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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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에게 공부법을 배우다
설 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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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기업들을 관찰하고 분석, 조언하며 경영학에 대한 많은 교훈을 남긴 피터드러커는 평생 공부의 끈을 놓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피터드러커는 3년을(3개월 이라는 책도 있다.) 주기로 새로운 주제를 정해 집중적으로 공부했다고 한다. 한 분야를 3년간 집중적으로 파고든 뒤 다시 새로운 분야를 정해 도전하는 식으로 90이 넘은 나이까지 여러 분야에 걸쳐 평생을 공부한 학자다. 피터드러커는 지식을 쌓고 끊임없이 개선하고 계발하고 혁식해 자신의 부가가치를 올리는 지식을 소유한 '지식근로자'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학교를 졸업했다고 공부에서 해방되었다고 생각하다간 경쟁에서 밀려나기 쉽상이다. 현대는 학교와 상관없이 업무와 관련된 공부나 정보, 지식을 꾸준히 쌓아서 자신의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 자신의 경쟁력을 키우는 일에 등한하거나 지식습득에 게으른 사람은 언젠가는 도태될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지식사회인 미래사회로 갈수록 점점 더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고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공부는 선택이 아닌 필수인 것이다.

 

학교 다닐 때도 하기 싫었던 공부를 나이 먹은 뒤에도 계속해야 하는 건 부담이다. 그것도 아주 무거운 부담이다. 그러나 공부를 왜 하는지를 분명히 인식하고, 어떻게 공부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알고, 진정한 공부가 무엇인지를 바르게 알면 그 부담은 줄어든다. [퇴계에게 공부법을 배우다]는  조선의 대학자 퇴계의 가르침을 통해 먼저 공부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하게된다. 이러한 이해가 바탕이 된 공부는 부담과 고민의 무게를 가볍게 해준다.

 

[퇴계에게 공부법을 배우다]는 인문실용소설로, 인문적인 시각에서 위대한 학자에게 가르침을 받는 소설 형식으로 쓰여져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나흘 간 청량산에 머물면서 공부에 대한 가르침을 전할 생각인 퇴계 선생은 제자들의 만류에도 시중을 드는 돌석과 이함형만 데리고 청량산으로 간다. 이황은 평소 가르침을 받기 원하는 사람 가운데 몇 몇만 청량산으로 부른다. 이황의 선택을 받은 이는 마을의 대장장이 배순. 최 의원댁 딸 난희, 시중드는 종 돌석이다. 이황은 세 사람에게 옛 성현의 일화와 자신의 경험담 등을 들려주며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와 어떻게 공부를 시작하는지, 공부하다 고비를 만났을 때 이겨내는 법, 공부하는 사람의 마음가짐과 자세 등을 이야기해준다. 이황이 무엇을 강조하고 무엇을 가르쳤는지에 대해서는 책을 통해 직접 만나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생략한다.

 

이황이 3명의 제자들에게 준 가르침은 단순히 공부 잘하는 요령이 아니다. 배운 것을 삶에 그대로 옮겨 실천하는 것, 즉 지행합일이다. 머리만 커지는 지식인보다 커진 머리에 걸맞는 삶이 뒤따라줘야 진정한 지식인이라 할 수 있다. 공부의 핵심을 정확히 짚어 줄뿐만 아니라 인생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이해, 퇴계 선생의 정신과 삶의 자세를 함께 배울 수 있어 유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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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담 빠담, 파리
양나연 지음 / 시아출판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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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몸담아 왔던 일터를 떠나 새로운 직장으로 옮기거나, 정든 사람들 곁을 떠나 먼 곳으로 이주하기까지 큰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더구나 몸에 밴 일을 버리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은 더 큰 용기와 결심을 필요로 한다. 과연 경험이 없는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을지, 적성에는 맞을지, 하다가 중도에 포기하지 않을지 두렵고 걱정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를 꺼리고 익숙하고 안전한 현실에 안주하려 한다. 나부터도 낯설고 모험을 필요로 하는 일보다는 편하고 익숙한 것을 더 좋아한다. 이처럼 도전정신이 형편없이 낮으니 살면서 성취감이나 희열을 맛보기가 어렵다.

 

[빠담 빠담 파리]의 저자 양나연은 잘 나가던 8년 차 개그작가를 그만두고 전혀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 연고도 없는 파리로 날아가 여행 가이드를 시작한 것이다. '웃찾사' 개그 프로그램의 작가에서 파리 여행가이드로 변신한 것이다. 그렇다고 프랑스어를 잘 하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프랑스 역사와 문화에 정통하냐면 이 역시 아니다. 단지 프랑스 여행을 해본 경험이 있을 뿐이고, 그 여행에서 지나가는 농담처럼 여행 가이드를 권유받은 게 전부다. 다소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결심한 데에는 무시무시한 사건이 계기가 되어서다. 서른 번째 생일 날 새벽 귀가 길에 집 앞에서 괴한에게 폭행을 당하고 " 나도 죽을 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늘 죽을 수도 있으니 하고 싶은 일을 내일로 미루는 건 바보 같은 일이라 여기고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한다.

 

'파리 가이드'는 작가 말고 그녀의 가슴을 떨리게 한 유일한 일이다. 안정적인 삶보다는 가슴 떨리는 일을 선택한 그녀의 모습에서 나는 한비야씨의 모습을 보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과감하게 사표를 내고 세계 오지여행길에 오른 뒤 가슴 떨리는 일을 발견한 한비야 말이다. 수년간 가슴 떨리는 일을 하며 얼마 전에는 그 일을 더 잘하기 위해 늦은 나이에 유학을 떠난 한비야씨 모습이, 8년 간 쉬지 않고 달려온 양나연 방송 작가 모습 위로 겹쳐졌다. 가슴 떨리는 일을 하기 위해 안정적인 길에서 생소한 길로 궤도를 수정한 용기와 도전정신이 부럽고 샘이 난다. 내가 조금만 젊었어도, 하나마나 한 넋두리를 뱉으며 그녀의 고된 여행 가이드를 훈련을 뒤쫓았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쯤은, 생판 모르는 낯선 일쯤은 그녀에게 아무 문제도 안 된다. 열정적으로 발로 뛰고 익히며, 배우고, 공부하며 파리와 친해지고 파리를 알아가는 초보 가이드의 여정이 신선한 자극을 준다. 파리를 사랑한 그녀는 파리에서 자유와 희열, 그리고 소중한 인연을 만난다. 하고 싶은 일, 가슴 떨리는 일을 찾아나서고 싶지만 환경과 상황에 발목잡혀 있는 사람들은 양나연 작가의 용기내기를 만나보라. 곧 태어날 아기를 업고도 여행길에 나설 거라는 그녀의 도전정신은 머뭇거리는 이들이 배워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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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력혁명 - 평범한 사람도 비범한 성취를 가능케 하는
문용린 지음 / 비즈니스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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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나라의 교육 패러다임에 불만이 없는 사람이 드물겠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불만이 아주 많은 사람 중 하나다.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 등의 교과목 내용을 학생들 머릿속에 집어넣어 주기 바쁜 게 우리나라 학교 교육의 현주소다. 학교 교육에서 전인교육 운운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주문이며 무리한 요구가 되어버린지 이미 오래다. 우리 아이들은 한 문제라도 더 풀고 한 문제라도 더 맞도록 주입식 교육에 철저하게 길들어져 왔다. 주입식 교육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굳을대로 굳어서 이미 체질화된 주입식 교육을 바꾸기란 대단히 어렵다. 교육 개혁은 어느 개혁보다 시급한  개혁이지만 안타깝게도 교육개혁은 매번 실패한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교육의 체질 개선을 시도해도 결과는 늘 실패였다. 왜 번번이 실패하는 것일까?

 

[지력혁명]의 문용린 교수는 "국민들은 교육 개혁을 갈망하면서도 사실 현재의 교육적 관행을 허무는 시도를 두려워하고 또 저항한다."고 말한다. 교육 개혁으로 인해 당장 내 아이가 손해를 볼 것 같기에 반대한다는 이야기다. 집어넣는 교육에서 끄집어내는 교육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하지만, 국민적 지지와 이해없이는 불가능하다. (전 국민이 동의하는 개혁임에도 말이다) 이렇듯 교육개혁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이 책은 끄집어내는 교육의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 우리 안에 있는 숨겨진 소질과 적성, 잠재 가능성, 즉 '다중지능이론'에 관해 심도있게 다룬다. IQ와 EQ를 뛰어넘는 다중지능이론은 사람에게 여러 가지 다양한 지적 능력이 있다고 전제한다.  다중지능이론은 인간의 지능은 언어, 논리수학, 음악, 공간, 신체운동, 인간친화, 자기성찰, 자연친화 등 8가지로 나뉜다고 말한다. 하버드 대학의 교육심리학과 교수인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이 발표되기 전까지 인간의 능력을 평가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IQ였다. 그러나 IQ 검사는 모두 지적인 부분에만 해당될 뿐, 사회적 능력이나 정서적 능력까지 측정하지 못했다. 인내심, 지구력, 주의 집중력, 좋은 성격, 대인관계 등 사회적 능력과 자신의 감성과 정서를 조절하고 관리, 통제하는 능력을 IQ로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머리가 좋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능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사회적인 능력이나 감성지수가 높은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

 

또한 수학 공식은 잘 외우지 못하지만 야구선수의 타율을 줄줄이 꿰고 있거나, 영어 단어는 외우지 못하나 좋아하는 가수의 춤은 동작하나 틀리지 않고 잘 외우는 사람, 악보나 글은 읽을 줄 모르나 소리만 듣고 연주를 기막히게 따라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하는 능력과 기억하는 내용은 분리해야 하는 것이며 사람의 다양한 능력을 모두 지능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책은 수학 능력이 뛰어난 아인슈타인이 다른 사람과의 의사소통에 장애가 있는 말더듬이였고, 언어의 마술사라 불리는 소설가 이광수가 대인 관계나 운동 능력이 형편없었던 것을 그 예로 들고 있다. 이외에도신경숙, 김연아, 김구, 박지성, 박태환 등의 사례를 소개하며 다중지능을 설명한다. 신체운동지능이 발현된 박지성 선수가 오늘날 세계가 감탄하는 스타플레이어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피나는 훈련과 자신감으로 극복하여 강점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각 사람의 지능은 다 다르지만 모든 사람은 각자의 지능을 공평하게 부여받고 태어나며, 아무리 특별한 지능을 가지고 태어나도 이를 계발하고 훈련, 심화하지 않으면 그 지능은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다시말해 자신의 다중지능 계발 여하에 따라 인생의 성공 여부가 판가름난다는 말이다. 책의 부제처럼 평범한 사람들도 비범한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매우 희망적인 메시지다.

 

개인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모든 인간은 8가지 지능을 가지고 태어나며, 8가지 지능은 따로따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협력하며, 교육과 훈련을 통해 일정 수준까지 계발할 수 있으며, 지능은 어떤 틀에 박힌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다중지능이론의 핵심'이다. 다시 박지성 선수의 이야기로 가보자. 박지성 선수는 신체운동지능을 타고났지만 적극적인 인사성과 철저한 약속정신으로 인간친화지능을 계발하고, 꿈과 목표, 끊임없는 노력과 집념, 자신을 믿는 믿음으로 자기성찰지능을  강화했다. 타고난 지능과 계발한 지능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협력해서 세계가 인정하는 스타플레이어가 된 것이다.

 

신은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지능을 부여했고 우리 각자에겐 특화된 지능이 있다. 자신의 지능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환경이나 상황, 개인의 특성이나 소질이 외면된 채 주입식 교육이 난무하는 공교육과 사교육 현장에 의해 가려졌을 수도 있다. 이제 우리 안에 숨겨진 잠재력과 강점을 찾아내야 한다. 너무 뻔한 이야기지만, 그래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이 책은 적성에 맞는 일을 찾고 숨겨진 능력을 발휘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오아이스 같은 책이다.  아이의 재능을 발견하고 싶은 분들에게도 길잡이가 되어주는 책이므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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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철학자
프레데릭 르누아르 지음, 김모세.김용석 옮김 / 연암서가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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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그리스도의 실존에 대한 논쟁이 세기가 지나도록 이어지고 있는 이유는 예수의 존재를 완벽하게 입증하는 과학적 증거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성서를 비롯해 비기독교적 텍스트들은 예수의 실존을 곳곳에서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그 누구도 예수의 실존을 부인하지 못한다.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를 신화 속에 나오는 인물이 아닌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인물로 받아들인다. 예수는 비록 짧은 생애를 살다갔지만 세상 그 누구보다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그 영향력은 아직도 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2.000년 전 예수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어떤 가르침을 주었길래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날까지 그 영향 아래 살고 있는 것일까? 또한 2.000년 전 가르침은 오늘날과 어떻게 다른가?

 

철학자이자 종교사학자인  프레데릭 르누아르는 철학적, 학문적 관점에서 성서를 읽고 같은 시각으로 예수의 생애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스도 철학자]는 철학적이고 종교사회학적인 관점에서 복음서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있는 그대로' 분석해 놓았다. 복음서에 기록된 내용을 모두 사실로 받아들이고 철저하게 철학자의 시각으로 예수의 가르침을 분석하고, 예수의 모습을 바라보고, 예수의 가르침이 어떤 경로로 왜곡, 변질되어왔는지를 설명해준다. 계몽주의의 '이성'과 르네상스 시기의 '종교개혁 운동'을 거치면서 '휴머니즘'의 태동을 추적한 기독교 교회사, 오늘날의 21세기와 앞으로 다가올 기독교 모습의 예측을 심도있게  설명해 개인적으로 많은 공부가 되었다. 특히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심하게 왜곡되고 변형된 원인과 시대와 상황, 휴머니즘의 역사 등을 분석해놓은 부분이 그랬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휴머니즘으로 설명하며 휴머니즘 속에 스며있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등은 무척 신선한 개달음이었다.

 

탈 기독교와 반 기독교적 문화의 흐름을 오늘날 교회가 과연 잠재울 수 있을까? 세상 속에 기독교 문화를 깊이 뿌리내리기 보다는 현대적 문화에 교회가 끌려가고 지배당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게 오늘날 교회의 모습이라 솔직히 회의적이다. 2.000년 전 제자들에게 준 가르침을 회복한다면, 성서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른다면 달라질까? 문화와 종교에 그리스도가 밀려난 기분이다. 교회의 본질과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본질을 회복해야 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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