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결론에서는 역사 및 사회민주주의자들을 상대로 공개적인 논쟁에 돌입한 또 다른 ‘인민의 벗’ 크리벤코의 주장을 검토하고자 한다.
다만 본고에서는 앞서 미하일롭스키나 유자코프의 저작을 다루었던 방식과는 결을 달리하여 그의 글 (「우리의 문화 용병들」, 1893년, 12호; 「여행 중에 보낸 편지」, 1894년, 1호)을 검토한다. 해당 문헌들을 면밀히 분석하는 작업은 첫째, 유물론과 마르크스주의 일반에 대한 그들의 반론을 규명하고, 둘째, 그들의 정치 경제 이론의 실체를 명확히 파악하기 위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나아가 ‘인민의 벗들’이 지닌 사상적 지향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려면 그들의 실질적 목표와 전술, 그리고 정치 강령을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
그들은 이론적 견해를 개진하면서 단 한 번도 자신들의 강령을 체계적이고 일관되게 제시한 적이 없었다. 이에 동일한 잡지 내에서 기고자 간의 모순이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의견이 일치된 여러 논설을 참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 가운데서도 크리벤코의 글을 우선적으로 다루는 이유는, 그의 저술에 풍부한 논거가 수록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미하일롭스키가 사회주의자, 유자코프가 경제학자의 역할을 대변하는 것과 달리 크리벤코는 해당 잡지의 성격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실용적 정치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강령으로 넘어가기 전에 반드시 살펴보아야 할 이론적 핵심이 한 가지 더 있다.
유자코프는 인민 경제의 기반인 농민의 토지 임차 문제를 두고 탁상공론을 늘어놓으며 자신들의 농민 경제 이해 부족을 은폐했다. 그는 수공업을 배제한 채 대규모 공장 산업의 성장 자료로 한정하여 논의를 국한했음에도 수공업에 대해서도 동일한 주장을 반복했다. 즉 ‘인민의 생산’인 수공업은 자본주의적 산업과 달리 “대부분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되는” 반면, 자본주의적 산업은 흔히 “인위적으로 창출된다”고 강변한다 (12호, 180~1쪽)
또한 그는 ‘소규모 인민 산업’을 ‘대규모 자본주의적 산업’과 대비시켰으나, 소규모 인민 산업의 본질적 특성으로 제시한 것은 단지 ‘작은 규모’와 ‘생산자와 노동 도구의 결합’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는 해당 경제 구조를 규정하는 정밀한 정의가 아닐 뿐만 아니라 실제 사실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크리벤코는 ‘소규모 인민 산업’이 ‘대규모 자본주의적 산업’보다 총생산량과 고용 노동력 면에서 우위를 점한다고 주장하며 수공업자 수를 400만 명 (타 자료 추산 700만 명)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수공업을 지배하는 실질적 형태가 대규모 가내 생산 체계이며, 대다수 수공업자가 생산의 독립성을 상실한 채 상인에게 원료를 공급받아 임금을 받는 종속적 노동자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이러한 수공업의 자본주의적 지배 구조는 당대 합법 출판물에서도 입증되었다. 통계학자 S. 카리조메노프 (Kharizomenov)는 《법률 통신》 (1883년, 11·12호)에서 중부 지방 주들의 수공업 자료를 분석하여 대규모 가내 생산 체계의 절대적인 우위, 즉 자본주의적 산업 형태의 명확한 존재를 검증했다. 그는 “소규모 독립 산업의 경제적 역할을 규정하면서, 모스크바주의 연간 수공업 매출액 중 86.5%가 대규모 가내 생산 체계에서 발생하고 소규모 독립 산업은 13.5%에 불과하며, 블라디미르주 알렉산드로프·포크로프 군에서는 그 비율이 각각 96%와 4%에 달한다”는 통계를 제시하여 소규모 독립 산업의 한계를 명확히 밝혀냈다.
러시아의 자유주의자들과 ‘인민의 벗들’은 이러한 객관적 사실 관계를 고의로 무시하거나 단지 단순한 ‘결함’으로 치부하여, 러시아 노동 인민을 향한 착취와 계급 적대라는 본질적 모순을 은폐하고 있다. 이처럼 명백한 사실을 외면으로 일관하는 채, 해당 산업을 자본주의와 구분되는 “인민” 산업이라 강변하며 그 발전 전망을 논하는 것은 성립할 수 없다.
그러나 또 다른 원인은 크리벤코가 “파블로보의 날붙이 사업”을 “반(半)장인 성격의 사업”이라 칭한 데서 드러나듯, 해당 사안에 대한 이들의 지식이 유독 깊은 데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 ‘인민의 벗들’이 도달한 왜곡의 깊이는 놀라울 따름이다! 파블로보의 칼 제조 업자들에게 어떻게 장인의 성격이 있다고 강변할 수 있단 말인가? 크리벤코는 상인이 수공업자에게 물품을 주문하여 니지니 노브고로드 장터로 유통하는 구조를 장인 산업으로 착각한 것인가.
실제로 칼 제조는 (외관상) 생산자가 독립성을 유지하는 소규모 수공업 형태와 가장 거리가 멀다. N. F. 안넨스키 (Annensky)는 “요리용과 공업용 칼 생산”이 이미 대부분 공장제 수공업 형태에 도달해 있다고 분석한다. 니지니 노브고로드주의 요리용 칼 제조 종사자 396명 중 시장을 위해 일하는 독립 수공업자는 16% (62명)에 불과하며, 69% (273명)는 주인에게 종속되어 있고 15% (61명)는 임금 노동자다. 즉 고용주에게 직접 예속되지 않은 비율은 6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같은 필자는 칼 산업의 다른 부문 역시 “대부분의 수공업자가 주인을 위해 일하지만, 여전히 시장과 관계를 맺는 독립 수공업자가 일부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니지니 노브고로드주에서 해당 종류의 칼을 생산하는 수공업자는 총 2,552명이다. 이 가운데 시장을 대상으로 생산하는 비율은 48% (1,236명), 주인에게 종속되어 생산하는 비율은 42% (1,058명), 임금 노동자는 10% (258명)을 차지한다. 그 결과 독립적 형태를 유지하는 수공업자는 소수에 불과하며, 시장을 위해 생산하는 이들 역시 표면적으로만 독립되어 보일 뿐 구매자 자본에 깊이 예속되어 있다. 전체 노동 인민 21,983명 중 84.5%가 공업에 종사하는 고르바토프군의 산업 통계를 살펴보아도 (금속·가죽·마구·펠트·삼 방적 등 종사자 10,808명 대상) 시장 생산자 35.6%, 주인 대상 생산자 46.7%, 임금 노동자 17.7%로 집계된다. 이는 해당 지역 산업 전반에서 대규모 가내 생산 체계가 우위를 점하고 있으며, 노동의 자본 예속 관계가 지배적 구조로 정착했음을 입증한다.
‘인민의 벗들’이 이러한 사실을 무시하는 또 다른 이유는 자본주의에 대한 그들의 개념이 부유하고 학식을 갖춘 자본가가 거대한 기계 공장을 운영한다는 통속적 관념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본주의라는 용어가 지닌 이론적 본질을 규명하길 거부한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유자코프는 자본주의의 출발점을 기계 공업으로만 단정하며 단순 협업과 공장제 수공업 (매뉴팩처) 단계 생략이라는 과오를 범했다. 이 같인 구조적 오류는 결과적으로 국내 수공업에 내재된 자본주의적 구성 요소를 간과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대규모 가내 생산 체계가 자본주의적 산업 형태라는 점은 명증하다. 여기에는 이미 높은 수준으로 발달한 상품 경제, 개인에게로의 생산 수단 집중, 그리고 생산 수단을 점유하지 못해 타인의 생산 수단에 결합되어 자본가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 대중의 착취라는 본질적 특성이 모두 내포되어 있다. 수공업은 구조상 순전히 자본주의적 성격을 띠지만, (주로 극도로 낮은 임금에 기초한) 기술적 낙후성과 노동자들이 여전히 소규모 농지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규모 기계 공업과 구별된다. 그러나 후자의 상황은 형이상학적 이분법에 익숙한 ‘인민의 벗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노동자에게 토지가 부재하면 자본주의가 존재하고, 토지가 점유되어 있으면 자본주의가 아니라고 단정하는 태도는 경제의 전반적인 사회적 구조를 간과한 채 편협한 논리에 매몰된 결과다. 이는 노동자들이 토지를 점유하고 있다 해서 다른 뻔뻔한 ‘농민’ 토지 소유주들로부터 수탈당하는 노동자 대중의 극심한 빈곤이 해소되지 않는다는 명백한 사실을 무시하는 주장에 불과하다.
그들은 자본주의가 여전히 비교적 낮은 발전 수준에 그쳐 있다 하더라도 어디에서나 노동자를 토지로부터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서유럽의 역사적 사례에서 마르크스가 도출한 법칙은 오직 대규모 기계 공업만이 노동자를 토지로부터 영속적으로 착취하고 분리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인민이 토지를 점유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국내에 자본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변하는 상투적 논법은 완전히 타당성을 잃는다. 단순 협업과 공장제 수공업 (매뉴팩처) 단계의 자본주의는 노동자가 토지로부터 완전히 분리될 것을 필연적 전제로 삼지 않으며, 그러한 결합이 유지된다 해서 자본주의적 본질이 상실되는 것 역시 아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대규모 기계 산업은 국내 산업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우리 사회의 구체적 특수성에도, 이 분야 역시 여타 서구 자본주의와 동일한 속성을 지닌다. 이는 곧 노동자가 토지와의 연관을 지속하도록 방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데멘티예프 (Dementyev)는 (마르크스의 이론과 별개로) 엄밀한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기계화된 생산 체계가 노동자의 완전한 토지 박탈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입증했다. 이 연구는 러시아가 이미 자본주의 국가이며 러시아 노동자와 토지의 결합은 극히 미약하거나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밝혀냈다. 나아가 화폐 소유자, 구매자, 부유한 농민, 공장제 수공업자 등 자산 소유자의 지배력이 공고히 확립되어 있어, 향후 기술적 진전이 이어지면 (오랜 기간 자신의 노동력을 매각해 온) ‘농민’이 그야말로 노동자로 전환되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그러나 이 나라 수공업의 경제적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인민의 벗들’의 오류는 여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노동이 ‘주인을 위해’ 이루어지지 않는 산업에 대해서도 이들의 시각은 경작자에 대한 관점만큼이나 피상적이다. 이들이 파악한 바는 단지 생산 수단이 노동하는 인민과 결합‘될 수 있다면’ 바람직하고, 분리‘될 수 있다면’ 해롭다는 사실에 그친다. 이처럼 조잡한 관점으로 정치경제학적 문제에 의견을 개진하는 이들의 한계는 필연적 결과라 할 수 있다.
크리벤코는 산업의 자본주의화 과정을 논하며, (소규모 생산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분야의 예로 특정 산업의 “기본 생산 비용”이 낮다는 점을 든다. 그는 연간 매출액 대비 생산 비용이 15분의 1에 불과한 벽돌 산업을 대표적 사례로 제시한다.
이는 필자가 사실 관계를 언급한 거의 유일한 지점이라는 점에서 (주관적 사회학은 현실에 대한 직접적이고 정확한 파악과 분석을 배제한 채 소부르주아적 ‘이상’의 영역으로 도피하는 것을 대표적 특징으로 삼는다), ‘인민의 벗들’이 지닌 현실 시각의 오류를 규명하는 대표적 사례로 다룰 필요가 있다.
모스크바 젬스트보의 경제 통계 (『보고서』, 7권, 2부)를 보면 (백토로 벽돌을 생산하는) 벽돌 산업에 관한 기록이 존재한다. 해당 산업은 주로 보고로즈코예 군의 3개 읍에 집중되어 있으며, 233개 시설에서 1,402명의 노동자를 고용하여 연간 35만 7천 루블 규모의 총생산량을 기록하고 있다. 고용 인력 중 41% (567명)는 임금 노동자가 아닌 사업주의 가족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가족 노동자’다. 이 산업은 오랜 역사를 지녔으나, 철도 개통으로 판로가 비약적으로 확대되면서 지난 15년간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다. 철도 건설 이전에는 가족 노동 형태가 지배적이었으나, 현재는 임금 노동 착취 구조가 이를 대체했다. 또한 소규모 생산자가 판매 과정에서 대규모 업자에 종속되는 구조적 현상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소규모 업자들은 대규모 업자에게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벽돌 (때로는 굽지 않는 ‘미가공품’ 포함)을 현장 매각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러한 종속성과는 별개로, 해당 연구에 첨부된 수공업자 가구별 통계 조사 (노동자 수 및 시설당 연간 총생산량 기록)를 토대로 해당 산업의 구조적 실태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상품 경제가 필연적으로 자본주의 경제로 이행한다는 법칙이 이 산업에도 적용되는지 검증하려면 생산 시설의 규모별 비교가 선행되어야 한다. 핵심은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임금 노동 착취 정도에 따른 소규모 시설과 대규모 시설 간의 관계다. 노동자 수를 기준으로 수공업자 시설을 (Ⅰ) 1~5인 고용 시설 (가족 노동자 및 고용 노동자 포함), (Ⅱ) 6~10인 고용 시설, (Ⅲ) 10인 초과 고용 시설의 세 집단으로 분류한다.
시설의 규모, 노동자 총수, 집단별 생산액을 검토한 결과 다음과 같은 지표를 확인할 수 있다.
노동자 수에 따른 수공업자 집단 통계표
수공업자 집단 | 평균 노동자 수 | 고용 시설 비율(%) | 임노동자 비율(%) | 연간 생산액(루블) | 시설 분배(%) | 노동자 분배(%) | 총생산 분배(%) | 시설 절대수 | 노동자 절대수 | 총생산 절대수(루블) |
I. 1~5명 고용 시설 | 2.8 | 25 | 19 | 251 | 72 | 34 | 34 | 167/43 | 476/92 | 119,500 |
II. 6~10명 고용 시설 | 7.3 | 90 | 58 | 249 | 18 | 23 | 22 | 43/39 | 317/186 | 79,000 |
III. 10명 초과 고용 시설 | 26.4 | 100 | 91 | 260 | 10 | 43 | 44 | 23/23 | 609/557 | 158,500 |
총계 | 6.0 | 45 | 59 | 254 | 100 | 100 | 100 | 233/105 | 1,402/835 | 387,000 |
이 수치는 산업의 자본주의적 구조와 부르주아적 성격을 명확히 보여준다. 시설 규모가 커질수록 노동 생산성이 향상되고 (중간 집단 제외), 임금 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심화되며, 생산의 집중도 역시 한층 증대된다.
거의 전적으로 임금 노동에 기초하는 세 번째 집단은 전체 시설 수의 10%에 불과하지만, 총생산량의 44%에 달한다.
이처럼 소수에게 생산 수단이 집중되는 현상은 다수 (임금 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으며, 이는 소생산자가 원청 (실질적 원청 역할을 하는 대규모 경영주)에 종속되는 구조 및 해당 산업 내 노동 억압의 원인을 명확히 설명해 준다. 결국 노동 계급이 직면한 수탈과 착취의 근본적 원인은 생산관계 자체에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러시아의 인민주의 경향 사회주의자들은 수공업 내 노동 억압의 원인을 생산관계 내부가 아닌 농업과 재정 정책 등 생산 외적 요인에서 찾았으며, 수공업의 생산관계가 본질적으로 착취를 배제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가 공고한 관념으로 고착된 바탕에는 수공업의 실제 경제 구조와 사실 관계를 정확히 규명하려는 분석적 시도가 부재했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이는 결국 사회과학의 유일한 과학적 방법론인 유물론적 관점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결과다.
수공업의 생산관계에 관해 착취의 원인을 외부로 돌린 이전 세대 사회주의자들은 대규모 공장 자본주의에 이르러서야 생산관계 내부의 착취 구조를 자각하는 논리적 모순을 드러냈다. 연구가 부재했던 수공업 생산관계에서 자본주의적 요소를 포착하지 못함에 따라, 이들은 대규모 자본주의의 기원을 설명하지 못한 채 수공업을 ‘인민의 공업’으로, 자본주의를 ‘인위적 산업’으로 대립시키는 한계에 봉착했다. 이는 자본주의를 ‘인민의 체제’와 근본적으로 모순되는 이질적 존재로 규정하는 발상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사유 체계는 니콜라이 온(Nikolai-on) 등의 이론적 재구성을 거쳐 폭넓게 확산되었으며, 비논리적 구조에도, 관성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니콜라이 온에 따르면 공장 자본주의는 구체적 현실에 근거하여 판단되는 반면, 수공업은 가설과 추측에 의존하여 판단한다. 전자는 생산관계 분석을 바탕으로 파악하지만, 후자는 생산관계에 대한 검증을 생략한 채 곧바로 정치의 영역으로 사안을 전환한다. 그러나 생산관계 분석에 입각해 접근한다면 ‘인민의 체제’ 역시 미발달된 맹아적 상태일 뿐 동일한 자본주의 생산관계로 구성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수공업자가 동등하다는 관념을 배제하고 실태를 정밀히 파악할 경우, 공장 ‘자본가’와 ‘수공업자’ 간의 격차보다 ‘수공업자’ 내부의 계급 분화가 더 심화되어 있음이 입증된다. 결국 자본주의는 ‘인민의 체제’와 모순되는 이질적 요소가 아니라, 그 내부에서 직접 이행하여 도달한 발전 단계에 해당한다.
제시된 사례에서 임금 노동자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핵심은 절대적 수치가 아니라 그 속에 내재된 부르주아적 생산관계다. 이러한 관계는 그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든 약하게 드러나든 지속적으로 유지된다.
모스크바 주의 산업에 관한 이사예프 (Isayev)의 저술에 등장하는 도자기 공업 역시 조사된 가구별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그 경제 구조를 분석할 수 있다. 이사예프가 “순수한 가내 공업”이자 소규모 농민 공업의 대표적 사례로 든 도자기 공업은 지극히 단순한 기술, 미소한 장비, 생산물의 보편적·필수적 수요라는 특징을 지닌다. 수공업자를 (Ⅰ) 1~3인 고용 시설 (가족 노동자 및 고용 노동자 포함), (Ⅱ) 4~5인 고용 시설, (Ⅲ) 5인 초과 고용 시설의 세 집단으로 분류하여 동일한 통계 계산을 적용해 보면, 수량상 러시아 소규모 ‘인민’ 공업의 전형으로 꼽히는 이 산업 내부에서도 부르주아적 생산관계가 명확히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수공업자 집단별 생산 및 고용 통계
수공업자 집단 | 평균 노동자 수 | 고용 시설 비율(%) | 임노동자 비율(%) | 연간 생산액(루블) | 시설 분배(%) | 노동자 분배(%) | 총생산 분배(%) | 시설 절대수 | 노동자 절대수 | 총생산 절대수(루블) |
I. 1~3명 고용 | 2.4 | 39 | 19 | 468 | 60 | 38 | 36 | 72/28 | 174/33 | 81,500 |
II. 4~5명 고용 | 4.3 | 48 | 20 | 498 | 27 | 32 | 32 | 33/16 | 144/29 | 71,800 |
III. 5명 초과 고용 | 8.4 | 100 | 65 | 533 | 13 | 30 | 32 | 16/16 | 134/87 | 71,500 |
총계 | 3.7 | 49 | 33 | 497 | 100 | 100 | 100 | 121/60 | 452/149 | 224,800 |
명백히 이 공업 역시 부르주아적 생산관계에 속하며, 이와 같은 사례는 무수히 인용할 수 있다. 상품 경제에서 비롯된 분리, 특히 자본주의적 분리가 확인되며, 이는 상위 집단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는 임금 노동 착취로 이어진다. 최상위 집단은 전체 시설의 8분의 1에 불과하지만 전체 노동자의 30%를 고용하여 총생산량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며, 노동 생산성 또한 평균을 크게 상회한다. 이러한 생산관계 구조는 원청의 출현과 그 지배력을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규모가 더 크고 수익성이 높은 시설을 소유하며 타인의 노동으로부터 ‘순’이익을 얻는 소수가 어떻게 ‘잉여 자금’을 축적하는지, 그리고 왜 다수의 소장인이 몰락하고 생계조차 유지하기 어려운지 파악할 수 있다. 다수가 소수에게 예속되는 현상은 이 생산관계가 지닌 자본주의적 본질에서 비롯된 필연적 결과다. 이는 상품 경제로 조직된 사회적 노동의 산물이 개인의 수중으로 귀속되어 노동 인민을 억압하고 노예화하는 수단이자, 대중 착취를 매개로 사적 부를 축적하는 수단으로 작용하는 관계다.
생산관계의 미발달로 생산자들의 몰락에 부수적으로 따르는 자본 축적이 미미하다고 해서 착취와 억압이 덜 뚜렷하다고 볼 수는 없다. 실제로는 정반대로, 노예제에 가까운 조악한 착취 형태로 귀결된다. 즉, 노동력을 직접 매수하여 완전히 종속을 이루지 못한 자본은 고리대금 착취의 그물망으로 노동자를 얽어매고 귀속시킴에 따라 잉여 가치뿐만 아니라 임금의 상당 부분까지 수탈한다. 나아가 ‘고용주’를 바꾸지 못하게 만들어 고통을 가하고, 일거리를 ‘제공하는’ 행위 자체를 시혜로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며 모욕을 안긴다. ‘진정한 인민의 산업’이 존재한다면, 어떠한 노동자도 러시아의 ‘독립적인’ 수공업자라는 이름뿐인 지위와 이를 맞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의 급진주의자들이 선호하는 조치들 역시 노동 인민에 대한 착취와 자본으로의 노예화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이러한 대책은 고립된 실험에 그치거나 노동 인민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며, 기존의 자본주의적 관계를 세련되게 다듬고 발전시켜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뿐이다.
인민주의 성향의 이른바 ‘인민의 벗들’은 농촌 산업이 비참한 상태에 처해 있고, 생산 시설이 협소하며, 노동 생산성이 극도로 낮고 기술 또한 원시적이라는 점, 그리고 고용된 임금 노동자의 수가 적다는 사실을 근거로 제시하며 해당 산업의 자본주의적 성격을 부인한다. 그러나 이들은 자본주의가 발전 수준의 고저를 막론하고 특정 사회적 생산관계의 양식으로 정의된다는 점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소수의 임금 노동자 존재에도, 농민 산업이 자본주의적 성격을 띤다는 사실을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자본을 가리켜 사회적 관계라고 규정한 핵심 정의에 반발하는 현상은 비단 이들뿐만 아니라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에게서도 일률적으로 포착된다. 이와 관련하여 과거 부르주아 경제학자 중 한 명이 《러시아의 부 (루스코예 보가츠트보)》 기고문에서 마르크스 이론을 해설한 지버 (Sieber)의 저작을 언급할 당시, ‘자본은 관계다’라는 정의를 인용하며 격렬한 분개와 함께 느낌표를 덧붙였던 사례는 이러한 이념적 한계를 단적으로 입증한다.
부르주아 체제의 범주를 영구적이고 당위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태도는 부르주아 철학자들에게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그들이 자본을 ‘추가 생산에 유용한 축적된 노동’으로 정의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이러한 정의는 자본을 인간 사회의 영구적 범주로 규정하여, 상품 경제의 지배 아래 조직된 ‘축적 노동’이 비노동자의 수중에 들어가 타인의 노동을 착취하는 데 기여하는 역사적으로 특수한 경제 구성체의 본질을 은폐한다. 이에 따라 그들은 생산관계의 명확한 체계에 대한 분석 대신, 모든 체제에 통용되는 무의미한 명제를 제시하고 이를 소부르주아적 도덕의 주관주의적 관념과 동일시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인민의 벗들’이 이 산업을 “인민의” 공업이라 칭하며 자본주의 산업과 대비시키는 까닭은 그들이 소부르주아 이념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소생산자가 상품 경제 체제하에서 활동하는 한, 시장과의 관계 속에서 필연적으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계급 분화한다는 당연한 사실조차 간파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이러한 현실 구조를 분석하려 하지 않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현실을 제대로 규명했다면 “인민의” 산업이 초래할 귀결에 대해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대신, 자본주의적 형태를 띠지 않고 발전을 이룬 수공업 분야가 러시아에 실제 존재하는지부터 검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본질을 소수의 생산 수단 독점, 다수에 대한 소외, 그리고 임금 노동의 착취 (즉, 상품 경제로 조직된 사회적 노동의 산물을 개인이 점유하는 구조)로 규정하는 개념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에 대한 ‘독자적인’ 정의와 역사적 분석을 제시해야 한다.
실제로 우리의 “인민” 수공업 구조는 자본주의 발전의 전 역사적 과정을 명확히 보여주는 구체적 실례에 해당한다. 이는 단순 협업 형태 (도자기 공업의 최상위 집단)에서 출발하여 자본주의 발전의 기원과 시초를 드러낸다. 나아가 상품 경제를 매개로 개별 개인의 수중에 축적된 ‘저축’이 자본으로 전환되는 동역학을 입증한다.
이러한 저축 소유자들은 대규모 처분에 필요한 자금을 독점함에 힘입어 우선적으로 판매권을 획득하고, 원거리 시장에서 상품이 처분될 때까지 대기할 수 있는 여력을 확보한다. 이 과정에서 상인 자본 (Kaufmannskapital)은 생산자 대중을 예속시키며 자본주의적 가내 공업 체제, 즉 대규모 생산의 가내 노동 체제를 구축한다.
이어 시장의 확대와 경쟁 심화는 기술적 개선을 강제하며, 상인 자본은 산업 자본으로 이행하여 대규모 기계제 생산을 조직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증대된 자본력이 수백만 노동 인민과 지역 전체를 종속시키고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국가 기구를 자신의 관할 하에 두는 단계에 이르러서야, ‘인민의 벗들’은 ‘자본주의의 주입’과 ‘인위적 창출’을 운운하며 반발을 시도한다.
실로 관념적 사유의 한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크리벤코 (Krivenko)가 ‘인민의’, ‘현실적인’, ‘적합한’ 등의 명목으로 제시한 산업 형태는 수공업이 다양한 발전 단계에 놓인 자본주의에 불과하며, 그의 서술은 이러한 본질을 은폐하려는 시도다. 이는 앞서 유자코프 (Yuzhakov)가 보인 논리적 수법과 부합한다. 유자코프 역시 농민 개혁의 구조적 실태를 분석하는 대신 기념비적인 선언의 공허한 구호를 오용했고, 토지 지대의 본질을 규명하는 대신 이를 ‘인민의 지대’로 포장했으며, 자본주의적 국내 시장의 형성 과정을 연구하는 대신 시장의 부재로 인해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봉쇄된다는 관념적 주장을 되풀이했다.
‘인민의 벗’들이 행한 사실 왜곡의 수준을 밝히기 위해 한 가지 사례를 추가로 검토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서술 중 가장 명확한 대목, 즉 크리벤코가 보로네시 농민 예산을 언급한 부분 (1894년, 1호)을 무시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며 자뭇 겸손한 태도를 취한다. 그들이 직접 제시한 자료에 입각하여 분석한다면, 러시아 급진주의자 및 ‘인민의 벗들’의 관념과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분석 중 어느 쪽이 현실에 부합하는지 명백히 규명될 것이다.
보로네시 젬스트보 통계학자인 시체르비나 (Shcherbina)는 오스트로고즈스크 군의 농민 경제를 서술하며, 전형적인 농가 24곳의 예산 항목을 제시하고 이를 본문에서 분석했다.
크리벤코는 이러한 분석을 재현하면서도 해당 방법론이 소농 경제의 실상을 파악하는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자각하지 못하거나 외면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 24곳의 예산은 크리벤코 스스로 지적했듯 (159쪽) 부유층, 중간층, 빈곤층 등 전적으로 상이한 가구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그는 시체르비나와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유형의 가구들을 단일하게 포괄하여 평균 수치를 산출하여 가구 간의 구조적 격차를 은폐한다.
소규모 생산자 내부의 계급 분화는 지극히 보편적이고 핵심적인 사실이기에 크리벤코가 선택한 빈약한 자료 자체로도 명확히 드러난다. 그러나 그는 농민 경제를 분석할 때 농장 규모와 경영 유형에 따라 범주화하는 대신, 시체르비나가 그랬듯이 과거 국유지 농민과 지주제 농민이라는 법적 범주로 구분하는 데 그쳤다. 그는 후자 대비 전자의 상대적 번영에만 주목하여, 동일 법적 범주 내 농민들 간의 계급적 격차가 범주 간 격차보다 훨씬 심대하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24개 농가를 (a) 부유층 6가구, (b) 중간층 11가구, (c) 빈곤층 7가구의 세 집단으로 재분류한다. 크리벤코는 과거 국유지 농민의 가구당 지출을 541.3루블, 지주제 농민의 지출을 417.7루블로 제시한다. 그러나 이는 농가별 지출의 현격한 불균등성을 무시한 집계다. 과거 국유지 농민 내에서도 최소 지출은 84.7루블인 반면, (1,456.2루블을 지출하는 독일 이주민을 제외하더라도) 최대 지출은 887.4루블로 10배에 달하는 격차를 보인다. 이처럼 편차가 심대한 수치를 하나로 묶어 산출한 평균 수치는 실태를 포착하지 못한다.
그러나 본문에서 제시한 기준에 따라 분류할 경우, 가구당 평균 지출은 부유층 855.86루블, 중간층 471.61루블, 빈곤층 223.78루블로 산출된다. 이에 따른 계급 간 지출 격차는 대략 4:2:1의 비율로 귀결된다.
시체르비나의 분석 방식을 답습하여 크리벤코는 법적 범주에 따른 농민별 생활비를 제시한다. 예컨대 과거 국유지 농민의 1인당 연간 채소류 소비 지출은 13.4루블인 반면, 과거 지주제 농민은 12.2루블이었다. 그러나 이를 경제적 범주 (계급)에 따라 재분류하면 그 수치는 각각 (a) 17.7루블, (b) 14.5루블, (c) 13.1루블로 나타난다. 육류 및 유제품 지출 역시 법적 범주상으로는 과거 지주제 농민 5.2루블, 과거 국유지 농민 7.7루블이지만, 경제적 범주에 따를 경우 각각 11.7루블, 5.8루블, 3.6루블로 현격한 격차를 보인다. 이처럼 법적 범주에 기초한 통계 산출은 계급 간의 극심한 지출 격차를 은폐하는 수단에 불과하며, 실태 규명에 아무런 실증적 타당성을 갖지 못한다. 크리벤코는 과거 국유지 농민의 소득이 과거 지주제 농민보다 53.7% 높다고 주장하며, 24가구 전체 평균 소득 (539루블)을 두 법적 범주로 나누어 각각 600루블 이상과 약 400루블로 제시했다. 그러나 경제적 계급에 따라 재집계할 경우 소득은 (a) 1,053.2루블, (b) 473.8루블, (c) 202.4루블로 산출된다. 즉 실제 소득 격차는 크리벤코가 주장한 3:2가 아니라 최대 5:1에 달하는 계급적 분화 구조를 띤다.
또한 크리벤코는 “과거 국유지 농민의 가구당 자본 가치가 1,060루블인 반면, 과거 지주제 농민은 635루블”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를 경제적 범주에 따라 재분류할 경우 그 수치는 각각 (a) 1,737.91루블, (b) 786.42루블, (c) 363.38루블로 산출된다. 즉 실제 자본 가치의 격차는 크리벤코가 제시한 3:2가 아니라 최대 5:1에 달한다. 이처럼 ‘농민’이라는 대상에 법적 범주를 적용하여 구분하는 오류를 범함으로써, 저자는 ‘농민’ 경제의 실제 구조적 실상을 파악하는 객관적 분석틀로부터 스스로 이탈해 버린 것이다.
경제적 계급에 따라 농가를 재분류해 검토하면, 상층 (부유층) 농가는 가구당 평균 1,053.2루블의 소득을 올리고 855.86루블을 지출하여 197.34루블의 순수익을 거둔다. 반면 중간층 농가는 473.8루블의 소득에 471.61루블을 지출하여 가구당 순수익이 2.19루블에 불과하다 (신용 부채 및 체납금 제외). 이는 실질적 생계 유지에 턱없이 부족한 수준으로, 중간층 11가구 중 5가구가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나아가 최하층 (빈곤층) 농가는 소득 202.4루블, 지출 223.78루블로 가구당 21.38루블의 적자를 내며 손실을 보는 파산적 영농을 지속한다.
이러한 편차가 심대한 농가들을 단일하게 묶어 전체 평균 (순수익 44.11루블)을 산출하는 방식은 현실의 계급적 실상을 완전히 왜곡한다. 이러한 평균 통계는 순수익을 확보한 6가구의 부유한 농민이 8명의 농업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는 핵심 사실을 은폐한다. 농업 노동자 고용은 상층 농업이 지닌 자본주의적 성격을 입증함과 동시에, 이들 가구가 순수익에 기반하여 외부 ‘부업 (산업)’에 의존할 필요성을 상쇄해 준다. 실제로 부유한 농민들은 전체 예산 (6,319.5루블) 중 6.5%에 해당하는 412루블만을 부업으로 충당한다. 더욱이 시체르비나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이들이 종사하는 부업은 ‘운반’이나 ‘양치기’ 등 외부 종속적 노동이 아닌 타인 착취를 전제로 하는 유형이며, (여기서 축적된 ‘저축’은 상인 자본으로 전환된다). 이들 부유층은 4개의 산업 시설을 소유하며 이를 매개로 전체 소득의 5%에 해당하는 320루블의 소득을 추가로 거두어들인다.
중간층 농민의 경제적 실태는 이와 상이한 양상을 보인다. 이들은 농업 소득만으로는 최소한의 생계조차 유지하기 어려워, 필요한 소득의 19%를 이른바 부업 (산업)에 의존한다. 시체르비나의 조사에 따르면, 중간층 7가구 중 독립적인 부업 (양복업 및 숯 제조)에 종사하는 농가는 2가구에 불과하며, 나머지 5가구는 타인에게 노동력을 판매하는 임금 노동에 내몰려 있다 (“저지대 예초”, “양조장 노동”, “추수철 날품”, “양치기”, “사유지 농업 노동” 등). 이들은 이미 ‘반(半)농민, 반(半)노동자’의 상태로 이행한 집단이다. 이러한 부업 종사는 자경 농업의 부실화를 초래하고, 결과적으로 농민 경제 자체를 지속적으로 약화시키는 악순환을 형성한다.
하층 (빈곤층) 농가의 경우 순전히 적자를 감수하며 영농을 유지한다. 이들 가계 예산에서는 “부업 (산업)”의 비중이 24%에 달해 훨씬 더 큰 중요성을 가지며, 이 때의 부업은 단 1가구를 제외하고는 전적으로 임금 노동력의 판매로 구성된다. 심지어 이들 중 2가구는 “농업 노동”에 기반한 부업 수입이 전체 소득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소생산자 내부에서 전개되는 완전한 계급 분화 과정은 이로써 명확히 입증된다. 소생산자층의 상위 집단은 자본가 (부르주아)로 이행한 반면, 하위 집단은 임금 노동자 (프롤레타리아)로 몰락했다. 이처럼 구조적 균열이 심대한 상태에서 통계적 ‘전체 평균’을 취하는 방식은 농촌 사회의 실제 경제적 실상과 계급 관계를 전면적으로 왜곡하고 은폐할 뿐이다.
따라서 저자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수사학적·방법론적 오류에 빠지게 만든 근본 원인은 그가 유효성을 상실한 허구의 평균 수치에 전적으로 의존했기 때문이다. 시체르비나는 해당 군 전체 농민 농업에서 전형적인 농가들이 차지하는 위상을 측정하고자 분여지 규모를 기준 삼아 집단을 분류했으며, 그 결과 추출된 24개 농가의 전반적 평균 변동 수준은 군 전체 평균보다 약 3분의 1가량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집계 방식은 결코 타당한 분석으로 수용될 수 없다. 해당 24개 농가 간에는 이미 극심한 계급적 편차가 존재하고 있었으며, 단지 토지 소유 규모 (분여지)만을 기준으로 한 분류 방식은 농민층 내부의 실질적 분화 상태를 왜곡하고 은폐하기 때문이다.
“분여지 소유 규모가 농가의 경제적 번영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라는 크리벤코의 주장은 완전한 오류다. 마을 공동체 내부에서 토지를 “평등하게” 분배한다 할지라도, 생산 수단 (농경지 및 농구)이 결여된 무마 (無馬) 농민이 영농을 포기한 채 임금 노동자로 전락하여 프롤레타리아화되는 현상을 막을 수 없으며, 반대로 다수의 작업마를 확보한 상층 농민이 타인의 토지를 대량 임차하여 이윤을 창출하는 자본주의적 농장을 확장하는 것 역시 저지하지 못한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실제로 24개 농가의 예산 수치를 재검토하면 이러한 모순이 명확히 드러난다. 6데샤티나의 분여지를 보유한 부유층 농가는 758.5루블의 총소득을 올린 반면, 더 넓은 7.1데샤티나의 분여지를 가진 중간층 농민의 소득은 391.5루블에 그쳤고, 6.9데샤티나를 보유한 빈곤층 농민의 소득은 109.5루블에 불과했다. 경제적 계급 간 소득 비율이 4:2:1의 현격한 격차를 보이는 동안 분여지 소유 비율은 2.6:1.08:1의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 이러한 결과가 초래된 원인은 명백하다. 가구당 22.1데샤티나의 분여지를 소유한 부유한 농가는 가구당 평균 8.8데샤티나의 토지를 추가로 임차하여 영농 규모를 확장한 반면, 9.2데샤티나를 보유한 중간층 농가는 7.7데샤티나, 8.5데샤티나를 보유한 빈곤층 농가는 불과 2.8데샤티나만을 추가 임차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따라서 크리벤코가 “시체르비나가 제시한 자료는 군 단위나 주 단위의 전체적 경제 실태를 정확히 측정하는 데 기여하지 못한다”고 지적한 것은 타당성을 잃는다. 그가 정작 비판했어야 할 대상은 왜곡된 전체 평균에 의존한 자기 자신의 방법론적 한계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시체르비나가 수집한 통계 자료는 농촌 사회의 계급적 구조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매우 포괄적이고 이론적 가치가 높다. 크리벤코가 이 자료를 바탕으로 객관적 실상을 도출해 내지 못했다면, 그 책임은 자료 자체의 한계가 아닌 통계 수치를 왜곡하여 해석한 크리벤코 본인의 분석적 무능에 있다.
시체르비나는 분석 과정 (197쪽)에서 법적 구분이 아닌 경제적 구분에 입각하여 농용 가축 소유 정도에 따른 농민 분류를 제시했다. 이처럼 경제적 기준을 적용한 분류는 추출된 전형적 24개 농가의 각 계급별 비중이 해당 군 전체 농촌 사회의 경제적 집단 구성 비율과 명확히 일치함을 입증하는 분석적 근거를 제공한다. 그 구체적 분류 체계는 다음과 같다.
보로네시 주 오스트로고즈스크 군 농가 계급별 통계
소유 축력수에 따른 세대주 분류 | 세대주 수 | 세대주 비율(%) | 세대당 가축수 | 세대당 토지: 분여지(데샤티나) | 세대당 토지: 임차지(데샤티나) | 평균 가족수 | 농장 노동자 보유 가구(%) | 상공업용 재산 보유 가구(%) | 집 없는 가구(%) | 일할 사람 없는 가구(%) | 토지 경작 않는 가구(%) | 농기구 없는 가구(%) |
I. 축력 무소유 | 8,728 | 26.0 | 0.7 | 6.2 | 0.2 | 4.6 | 0.6 | 4.0 | 9.5 | 16.6 | 41.6 | 98.5 |
II. 한 마리 축력 소유 | 10,510 | 31.3 | 3.0 | 9.4 | 1.3 | 5.7 | 1.4 | 5.4 | 1.4 | 4.9 | 2.9 | 2.5 |
III. 2, 3마리 축력 소유 | 11,191 | 33.3 | 6.8 | 13.8 | 3.6 | 7.7 | 8.3 | 12.3 | 0.4 | 1.3 | 0.4 | — |
IV. 4마리 이상의 축력 소유 | 3,152 | 9.4 | 14.3 | 21.8 | 12.3 | 11.2 | 25.3 | 34.2 | 0.1 | 0.4 | 0.3 | — |
총계 | 33,581 | 100.0 | 4.4 | 11.2 | 2.5 | 6.7 | 5.7 | 10.0 | 3.0 | 6.3 | 11.9 | 23.4 |
[전형적인 24개 가구] 노업노동자 | — | — | 0.5 | 7.2 | 0 | 4.5 | — | — | — | — | — | — |
[전형적인 24개 가구] 가난한 농민 | — | — | 2.8 | 8.7 | 3.9 | 5.6 | — | — | — | — | — | — |
[전형적인 24개 가구] 중간 농민 | — | — | 8.1 | 9.2 | 7.7 | 8.3 | — | — | — | — | — | — |
[전형적인 24개 가구] 부유한 농민 | — | — | 13.5 | 22.1 | 8.8 | 7.8 | — | — | — | — | — | — |
[전형적인 24개 가구] 총계 | — | — | 7.2 | 12.2 | 6.6 | 7.3 | — | — | — | — | — | — |
상층 (부유층) 농가가 보여주는 영농상의 우수성은 24개 농가의 단순 평균 수치로도 명확히 드러난다. 그러나 왜곡을 유발하는 이러한 허구의 평균 대신 경제적 범주 (계급)를 기준으로 재분류하여 분석할 때, 비로소 각 계급의 실질적 영농 조건과 농업 생산성에 대한 객관적 비교가 성립한다.
전형적 농가에서 일하는 농업 노동자는 농용 가축 미소유 농민보다 소폭 하위에 위치하나 그 상태에 매우 근접해 있다. 빈곤층 농민 역시 작업마 1두 소유 농민과 영농 실태상 실질적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소 소유 두수의 경우 빈곤층 2.8두, 1두 소유 농민 3.0두로 0.2두의 차이에 불과하다). 중간층 농민은 2~3두 소유 농민보다 약간 상위에 위치한다 (소 소유 수량은 약간 많고 토지는 약간 적다). 반면 부유층 농민은 4두 이상 소유 농민보다 약간 하위에 위치하면서 그에 근접한다.
이러한 수치는 해당 군 전체에서 외부 임금 노동에 종사할 필요 없이 독자적 영농을 바탕으로 규칙적으로 이윤을 창출하는 상층 농민이 전체의 10%를 상회한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이들의 소득이 화폐 형태로 집계된다는 점은 해당 농업이 상업적 성격을 띰을 입증한다). 이들 상층 농가 상당수는 고용 노동에 의존하여 농장을 운영하며, 전체 가구의 25% 이상이 상시 농업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일시적 일용직 노동자 고용 가구는 통계상 미상).
반면 군 내 농민의 과반 (무마 농민 26%와 1두 소유 농민 31.3%의 합산인 57.3%로 60%에 근접)은 빈곤층으로서 영농 행위 자체가 지속적 적자를 초래하는 상태에 놓여 있으며, 지속적인 수탈 끝에 점진적 몰락 과정을 겪는다. 이들은 생계 유지를 위해 노동력 판매를 강제당하며, 전체 농가의 약 25%는 자경 농업보다 임금 노동에 생계를 종속시키고 있다. 나머지 중간층 농민 역시 구조적 적자 영농 속에서 외부 부업 수입에 의존해 부족분을 충당하는 불안정한 경제적 지위에 머물러 있다.
크리벤코가 제시한 실상이 실제 구조를 얼마나 왜곡하고 있는지를 입증하기 위해 관련 통계 자료를 면밀히 재검토했다. 그는 세밀한 계급적 구분 없이 단순 전체 평균만을 활용하여 분석을 수행했으며, 그 결과 현실을 구체적으로 도출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했다. 24가구의 예산 자료를 보면, 부유층 1가구가 거둔 순수익 (+197.34루블)은 빈곤층 9가구가 낸 적자의 합 (-21.38루블 × 9 = -192.42루블)을 상쇄하는 구조를 띤다. 즉 전체의 10%에 불과한 상층 농가가 57%에 달하는 하층 농가의 적자를 메우고도 잉여를 남기는 격차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크레벤코는 24가구 평균 예산에서 산출된 44.14루블의 잉여 (신용 부채 및 체납금 15.97루블 차감 전)만을 근거로 삼아, 중간층과 하층 농민의 구조적 몰락을 단지 표면적인 ‘쇠퇴’로 축소하여 다루는 데 그쳤다.
실상 중간층 농민의 분석에서만 영농의 구조적 ‘쇠퇴’를 언급할 수 있을 뿐, 빈곤층 농민 대중의 경우에는 직접적인 수탈과 몰락의 과정이 포착된다. 이는 상대적으로 자본 체계가 견고히 자리 잡은 소수 상층 농가로 생산 수단이 집중되는 과정에서 초래된 구조적 결과다.
이러한 후자의 실태를 외면했기 때문에 크리벤코는 농가 예산이 지닌 또 다른 중요한 특징, 즉 농민층의 내부 분화가 국내 시장을 창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포착하는 데 실패한다. 한편으로 최상층에서 하층으로 내려갈수록 부업 (주로 임금 노동력의 판매)에서 발생하는 소득 비중이 점진적으로 확대된다 (부유층 6.5%, 중간층 18.8%, 23.6%). 다른 한편으로 최하층에서 상층으로 올라갈수록 농업의 상품적·부르주아적 성격이 강화되며 판매되는 농산물 비중 역시 증가한다. 각 계급별 농업 총소득 대 상품 소득의 수치는 부유층 (a) 3,861.7 / 1,774.4루블, 중간층 (b) 3,163.8 / 899.9루블, 빈곤층 (c) 689.9 / 175.25루블로 각각 집계된다.
분모에 해당하는 화폐 부문 소득은 최상층에서 최하층으로 내려갈수록 각각 45.9%, 28.3%, 25.4%를 차지한다.
이로써 수탈당한 농민에게서 누적·강탈된 생산 수단이 어떠한 기제로 자본으로 전환되는지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분석에서 드러나듯, 크리벤코가 활용된 통계 자료로부터 객관적이고 정확한 결론을 이끌어내지 못했음은 자명하다. 철도 여행 중 접한 한 농민의 증언에 기초하여 노브고로드주 농민 농업의 화폐적 성격을 기술한 이후에야, 그는 “가급적 저렴하게 풀을 베어” “최대한 유리한 가격에 판매하기 위한” “특정한 수단과 역량”을 “배양하고” (156쪽) 한 가지 목적에 물두하게 만드는 근본적 조건이 바로 상품 경제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즉 상품 경제 체제는 “상업적 수완을 일깨우고 세련화하는 학교”로 기능한다. 그 결과 “수완을 발휘한 개별 주체는 전면에 나서 콜파예프 (Kolpayev)나 데루노프 (Derunov)와 같은 착취적 자본가 유형으로 전화하는 반면, 이에 적응하지 못한 대중은 뒤처지고 퇴화하여 궁핍화된 끝에 농업 임금 노동자 대열로 전락한다.” (156쪽).
전혀 다른 조건이 지배적인 지역, 즉 농업이 주된 산업인 보로네시주의 통계 자료에서도 도달한 결론은 정확히 동일하다. 이를 시사받은 분석자라면 상품 경제 체제가 국가 전반의 경제 생활은 물론 특히 ‘공동체’와 ‘농민층’을 규정하는 핵심적 바탕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파악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러한 상품 경제의 작용만으로도 ‘인민’과 ‘농민층’이 프롤레타리아 (몰락하여 농업 노동자로 전락한 대열)와 부르주아지 (착취적 자본가 계급)로 분화하고 있음, 즉 자본주의 경제 구조로 이행하고 있다는 점 역시 명백히 드러난다. 그럼에도 ‘인민의 벗들’은 이러한 객관적 실상을 직시하지 못한 채 현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하여 크리벤코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상태를 지극히 당연한 현상으로 수용하며” (생산관계가 지닌 자본주의적 본질의 본래적 결과라는 점을 명시했어야 한다. 그랬다면 “상대 진영”의 관점을 객관적으로 규정함과 동시에 공허한 미사여구로 상대의 견해를 폄훼하는 오류를 피하고 실질적인 구조 분석으로 진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크리벤코는 이들과의 논쟁을 회피함에 따라 상품 경제가 ‘수완 있는’ 착취자와 ‘우직한’ 임금 노동자를 배출하는 ‘학교’라는 사실을 결과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이를 자본주의가 수행하는 불가피한 과업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학교’와 그 내부의 “착취자들”에 맞선 투쟁을 관료 및 지식인 집단과 결탁하여 수행해야 한다고 믿는 태도는 자본주의의 극복할 수 없음을 전제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반면 자본주의적 ‘학교’와 착취 구조에 면죄부를 부여한 채 실효성 없는 자유주의적 조치로 자본주의의 부작용만을 완화하려는 시도는 ‘인민의 벗들’이 지닌 본질적 한계를 정면으로 드러낸다!) “반면 우리의 시각은 이와 상이하다. 앞서 지적한 대로 자본주의가 핵심적 역할을 담당함은 자명하지만” (착취자와 임금 노동자를 배출하는 ‘학교’에 관한 대목을 의미한다), “그 역할이 국민 경제 변화를 전적으로 규정한다거나, 향후 여타 해결책의 출현을 전면 차단할 만큼 절대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160쪽).
사회적 체제에 대한 명확하고 직설적인 구조 분석이나 ‘농민층’이 착취자와 임금 노동자로 분화되는 근본 원인에 답하는 대신, 크리벤코는 “자본주의의 역할이 결정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실질적 내용이 결여된 명제로 문제를 일축한다. 따라서 관건은 과연 논리적·실증적 근거에 기반하여 그러한 주장을 제기하는 것이 성립할 수 있는지 여부다.
자신의 견해가 지닌 정당성을 입증하려면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제시한 역사적 이행 방향, 즉 착취자에 맞선 프롤레타리아의 계급 투쟁 외에 어떠한 역사적 요인이 ‘결정적’으로 작용하며, 또 다른 어떠한 ‘해결책’이 존재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했다. 그러나 크레벤코는 이에 대해 아무런 실증적 근거도 내놓지 못했다. 혹은 이하에 전개되는 명제를 제시한 것만으로 자신의 주장을 입증했다고 착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비록 황당무계한 논리일지라도 ‘인민의 벗들’이 보여주는 분석적 한계를 고려하면 이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쇠락의 주된 대상은 5데샤티나 미만의 분여지를 보유한 토지 결핍 농가다.” “반면 15.7데샤티나의 분여지를 확보한 전형적인 국유지 농가는 경제적 안전성 측면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이들이 80루블의 순수익을 확보하기 위해 5데샤티나의 토지를 추가로 임차한다는 사실은 모순적으로 영농 유지에 필요한 실질적 요구 조건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토지 빈곤’이라는 현상을 자본주의적 이행과 결부시키는 이러한 관점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 이는 토지를 적게 소유한 대중은 보유한 생산 수단마저 상실하는 반면, 토지를 이미 대량 소유한 상층 농가 (각 15.7데샤티나 보유)는 생산 수단을 더욱 집적·확대한다는 법칙성을 입증할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은 한쪽의 몰락과 다른 쪽의 부유화라는 계급 분화 과정을 단지 수사적으로 재서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현상의 본질을 전혀 규명하지 못하는 (농민은 토지를 무상으로 분배받는 것이 아니라 매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토지 빈곤이라는 관념적 설명 방식과는 결별해야 한다. ‘토지 부족’이라는 용어는 진행되는 현상을 불완전하게 포착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부정확하다. 분석의 중심은 단순한 토지 소유 여부가 아니라 생산 수단 전반으로 확장되어야 하며, 농민이 토지를 ‘충분히 공급받지 못한다’는 식의 관념적 서술이 아니라, 확장되는 자본주의적 수탈로 말미암아 토지 및 생산 수단으로부터 체계적으로 배제·분리되고 있다고 규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크리벤코는 자신의 논지를 마무리하며 “어떤한 조건에서도 농업이 제조업으로부터 분리된 채 ‘자연발생성’을 유지해야 한다거나 또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언급한다. (이미 교환 체계를 전제로 한 화폐 경제라는 ‘학교’가 존재하며, 그 결과 농업이 제조업으로부터 분리되는 현상을 인정한 것은 크리벤코 본인이었다. 그럼에도 역사적 당위의 문제를 다시 제기하는 것은 논리적 일관성을 결여한 태도다). 나아가 그는 “우리가 지적하려는 바는 인위적으로 분리된 산업을 창출하는 행위의 비이성성 및 (킴리와 파블로보의 수공업이 과연 “분리”되어 있는지, 대체 누가 그것을 “인위적으로” “창출”했으며, 언제 어떤 방식으로 단행했는지를 검증하는 것 역시 흥미로운 과제가 될 것이다.), 노동자를 토지와 생산 수단으로부터 분리시키는 동인이 자본주의에만 국한되지 않고 이에 선행하여 이를 촉진하는 여타 요인들에도 존재한다는 사실뿐이다”라고 강변한다.
이 대목에서 크리벤코는 노동자가 토지로부터 분리되어 착취자에게 종속되는 현상을 단지 노동자의 ‘빈곤’과 착취자의 ‘과다한 토지 소유’라는 표면적 원인으로 귀착시키는 관념적 시각을 재차 드러낸다.
나아가 이러한 부류의 관념론적 철학은 자본주의를 사회 변동의 결정적 동인으로 규정하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분석틀을 ‘편협함’이라 비난한다! 본고에서 농민과 수공업자의 계급적 분화 과정을 정밀히 재검토한 이유는 사회민주주의적 문제 의식과 이론적 설명 체계를 명확히 정립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주관적 사회학의 관점에서는 단지 농민의 ‘궁핍화’와 ‘착취자’의 ‘사적 이윤 추구’로만 해석되는 사실들이, 유물론적 관점에서는 상품 생산 자체의 내적 법칙에 따라 관철되는 상품 생산자들의 부르주아적 계급 분화 과정임을 입증해야 했다. 또한 자산 계급과 무산 계급 사이의 투쟁이 대규모 공장 지대뿐만 아니라 외딴 농촌 마을에서도 관철되고 있으며, 이러한 대립의 본질이 상품 경제의 발전이 초래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간의 계급 투쟁이라는 점 (앞서 1부에서 인용한 바와 같이)을 구체적 통계 자료로 증명할 필요가 있었다. 젬스트보 통계가 제공하는 실증적 자료에 기반하여 입증된 농민층과 수공업자의 해체 및 탈농민화 현상은, 농민과 수공업자를 소생산자 즉 ‘소부르주아’로 규정하는 사회민주주의적 관점의 정확성을 뒷받침하는 결정적 근거다. 이러한 논지는 소생산자를 둘러싼 상품 경제적 조건과 그로 인한 자본주의적 분화 기제를 외면했던 과거 농민 사회주의 (나로드니키)의 한계를 극복하고, 노동 계급 사회주의 이론을 구성하는 핵심적 축을 이룬다. 따라서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을 시도하고자 한다면, 비판의 초점을 이 계급 분화 법칙에 집중시켰어야 했다. 나아가 정치경제학의 관점에서 러시아 사회가 상품 경제 체제가 아니며, 농민층의 해체 역시 상품 경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인민 대중의 수탈과 노동자의 착취 구조가 자본주의적 사회 구성체 외의 다른 요인으로 설명될 수 있음을 논리적·검증적으로 입증했어야 한다.
자, 어디 한번 시도해 보라, 신사 양반들!
사회민주주의 이론의 실증적 증거로 농업 및 수공업 경제 실증 자료를 집적하는 데는 명확한 방법론적 이유가 존재한다. ‘인민의 벗들’이 보여주는 주관적 관점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그들의 사상을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관념적으로 대조하는 데 그친다면, 이는 유물론적 방법론에서 벗어나는 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인민주의적 (나로드니키적)’ 사고의 발생 기제를 규명하고, 현대 러시아 사회의 경제적 현실 내에 존재하는 그들의 물질적 토대를 입증하는 과제가 병행되어야 한다.
농민과 수공업 경제에 관한 통계 및 구체적 사례들은 스스로를 ‘농민의 대변자’라 자처하는 ‘인민의 벗들’이 실제 농민층을 어떠한 관념적 틀로 왜곡하여 파악하는지를 명백히 보여준다. 이러한 실증 자료들은 농촌 경제 내부에서 작동하는 부르주아적 본질을 증명하여, ‘인민의 벗들’을 계급적으로 소부르주아지의 이념가로 규정하는 관점의 타당성을 입증한다. 나아가 이는 러시아 급진주의자들의 이론과 개량책이 소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이해관계와 정밀하게 밀착되어 있음을 폭로한다. 그들의 개량책에 대한 정교한 검토는 이러한 급진주의 사상이 ‘지식인 사회’에 널리 유포될 수 있었던 구조적 원인을 해명할 뿐만 아니라, ‘인민의 벗들’이 보여주는 정치적 타협주의와 기회주의적 태도의 근본적 이유를 체계적으로 설명해 준다.
마지막으로 자본주의의 발전 수준이 미진한 러시아 사회의 특정 경제적 양상을 구체적으로 정밀 검토해야 하는 방법론적 이유가 존재한다. 인민주의자들이 이론적 논거의 주요 출처로 삼는 영역에 대한 경제학적 연구와 실증적 서술은, 현지 사회에 광범히 유포되어 있는 사회민주주의적 경향에 대한 반발과 오해에 가장 명쾌하고 직접적으로 답하는 기제가 된다. 자본주의가 ‘인민적 생산 체제’와 본질적으로 모순된다는 관념적 전제에 머물러 있는 러시아 급진주의자들은, 대규모 자본주의가 지닌 역사적 발전성을 인정하고 이를 수탈적 현 체제에 맞서 싸우는 물질적 토대로 삼고자 하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을 향해 비난을 퍼붓는다. 그들은 사회민주주의가 농민 대중의 계급적 이익을 외면한 채 “모든 농민을 공장의 용광로 속으로 강제 편입시키려 한다”는 식의 왜곡된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자본주의적 발전 법칙을 타당하게 인정하면서도 농촌 지역의 실태 분석에 이르러서는 이를 예외화하거나 부정하는, 지극히 비논리적이고 관념론적인 오류에 기반한다. 따라서 나로드니키적 왜곡에 대응하는 가장 결정적인 반론은 현 단계 농촌 사회의 객관적 경제 구조와 계급 분화의 실상을 실증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실증적 조사와 구체적 명확성을 갖춘 체계적 관점에서 농촌의 경제적 현실을 과학적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다. 농촌의 경제 조건을 정념에 지배받지 않고 객관적으로 분석할 때, 러시아 농촌은 개별적으로 파편화된 지역적·국지적 시장들의 체계로 구성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각 국지 시장 내부에서는 시장 법칙이 규제하는 사회적·경제적 현상들이 관철된다. 본래 가부장적 동질성을 띠던 직접 생산자는 계급적 분화를 거쳐 상층과 하층으로 분화되며, 이들 주변에서 생계의 기반을 수탈하는 자본, 특히 상인 자본이 발흥한다.
반면 급진주의자들의 농민 경제에 관한 관념적 서술을 농촌의 실제 1차 자료와 대조해 보면, 그들의 비판적 사고 체계가 지역 시장에 군집한 영세 상인, 행상, 중개인, 소착취자 집단의 존재를 완전히 배제하고 있음을 포착하게 된다. 그들은 “더 이상 농민은 없고 상인만 존재한다”는 단순한 수사로 해당 집단을 분석 대상에서 제외한다. ‘농민층의 해체’라는 사실 자체는 부합하나, 이들 ‘상인 집단’을 타인의 노동을 점유하는 영리 주체로 정확히 규정하고, 그들이 지역 경제에서 차지하는 실질적 비중을 통계적으로 산출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나아가 반대편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시장에 판매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임금 노동자 집단을 규정하고 엄밀한 실증 자료에 기반하여 접근할 때, 농민층의 부르주아적 분화라는 구체적 실체가 드러나며 ‘인민적 생산 체제’라는 관념적 허상은 해체된다.
이러한 소규모 시골 착취자 집단은 고립된 상태에 놓인 임금 노동자를 각개격파하여 예속시키는 가혹한 억압 기제로 작동한다. 미발달된 생산력과 연계망의 부재라는 야만적 조건 속에서 관철되는 그들의 착취는, 단지 노동 생산물의 수탈에 그치지 않고 인간 존엄성을 침해하는 아시아적 전제주의의 양상을 띤다.
이러한 농촌의 현실을 자본주의적 발전 단계와 비교할 때, 사회민주주의자가 대규모 자본주의를 역사적 동인으로 규정하는 근거가 명확해진다. 자본주의는 분절된 국지 시장들을 전국적 단일 시장으로 일원화하고, 소규모 착취자 무리를 해체하여 대자본으로 재편하며, 노동을 사회화하고 생산성을 도약시킨다. 이는 영세 착취자가 주도하는 가부장적·전근대적 예속 구조를 파괴하고 노동을 대자본에 직접 종속시키는 과정이다. 비록 이 과정이 노동의 강제와 억압, 야만적 노동 조건을 동반한다 할지라도, 과거의 전근대적 예속과 비교할 때 역사적 발전성을 지닌다. 자본주의적 대공장 체제는 노동자 계급의 계급 의식을 각성시키고, 파편화된 불만을 조직적인 계급 투쟁으로 전환시키며, 모든 노동 인민의 해방을 목표로 하는 체계적 운동의 물질적 토대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투쟁의 동력은 대규모 자본주의라는 객관적 조건 자체에서 산출되므로, 역사적 필연성을 확보한다.
농민 대중을 무시한다는 비난에 대해,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카를 마르크스의 다음과 같은 명제를 인용하여 자신의 입장을 완전히 입증할 수 있다.
비판은 사슬을 장식하던 가공의 화한을 걷어내었다. 이는 인간으로 하여금 환각적 장식이 제거된 족쇄를 그대로 차고 있게 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그 사슬 자체를 깨뜨려 벗어던지고 살아 있는 꽃을 향해 손을 뻗도록 하기 위함이다.
오늘날 러시아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관념적 이상화와 기만적 관념에 맞서 싸우고 이를 해체하여 농촌을 장식한 가공의 화환을 제거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이는 농민 대중을 현재의 수탈과 점진적 몰락, 예속 상태에 방치하지 않고, 노동 인민을 속박하는 사슬의 실체와 형성 기제를 프롤레타리아가 명확히 자각하도록 이끌기 위함이다. 이로써 이들이 주체적으로 떨쳐 일어나 사슬을 깨뜨리고 실재하는 해방의 결실을 취하도록 이끌어낸다. ‘인민의 벗들’이 사회민주주의자들을 향해 강한 적의를 드러내는 근본적 이유가 바로 이 지점에 존재한다.
그럼에도 자신의 객관적 사회적 지위에 기반하여 스스로 계급 의식을 형성하고 계급 투쟁에 착수할 수 있게 된 노동 인민의 대표자들에게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이와 같은 유물론적 이론을 개진하는 순간, 이들은 농민을 공장의 용광로 속으로 밀어 넣으려 한다는 중상에 직면하게 된다.
오늘날 사회민주주의자들을 향해 비난을 퍼붓는 주체들의 실체는 과연 누구인가?
이들은 ‘정부’와 ‘사회’, 즉 도처에서 노동 인민을 억압해 온 부르주아 국가 기구 및 제도적 영역에, 노동 인민의 해방을 의존하는 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역사적 선행 조건이 결여된 소부르주아 집단이 사회민주주의자들을 향해 계급적 사명이 결여되어 있다는 식의 주장을 자행하는 것은 이론적·실천적 모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