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로 넘어가기에 앞서……
이번에는 마르크스 이론 전반이 아닌, 특별히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을 거냥한 미하일롭스키의 ‘비판’ 2부로 넘어가기에 앞서 약간의 서두를 덧붙이고자 한다. 마르크스를 비판하면서도 그의 이론을 정확히 설명하려는 시도 없이 심각하게 왜곡하기만 했던 미하일롭스키는, 이제 동일한 방식으로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지향을 왜곡하고 있다. 따라서 사태의 진실은 규명되어야 하며, 이는 초기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의 입장을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지향과 대조하는 작업으로 명확히 달성될 수 있다.
1892년 《러시아의 사상 (루스카야 미슬 Russkaya Mysl)》 제6호에 실린 미하일롭스키의 글에서 초기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의 주장을 참조하고자 한다. 해당 글에서 (그 검열을 거친 출판물에서 부레닌 식으로만 다루어질 수 있는 문제들을 배제하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여타 부류와 혼동하지 않는 격식 있는 어조로 마르크스주의를 언급하였으며), 마르크스주의에 반대하거나 그것과 평행선을 긋는 자신의 견해를 개진한 바 있다. 미하일롭스키를 러시아 사회주의자 범주에 포함하거나 이들을 동격으로 놓는 것으로 그를 자극할 의도는 없다. 다만 논점의 지향점이라는 본질적 측면에서는 양측이 동일한 논리를 형성하며, 단지 단호함과 직설성, 그리고 확신의 일관성 정도에서만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조국 연보》의 관점을 서술하면서 미하일롭스키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우리는 경작자가 토지를 소유하고 생산자가 노동 수단을 소유하는 상태를 도덕적·정치적 이상으로 여겼다.” 이처럼 시작은 정당한 의도와 바람직한 열망에서 출발한다. “우리나라에 여전히 존재하는 중세적 노동 형태는 심각하게 동요했으나, 우리는 자유주의든 비자유주의든 특정 사상적 기치를 이유로 이를 완전히 종식해야 할 근거를 전혀 찾지 못했다.”
“노동 형태”가 다른 형태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동요하는 현상은 지극히 필연적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새로운 형태를 분석하고 해명하거나, 기존 형태가 왜 대체되는지 규명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는다. “사회주의자”가 현존하는 생산관계를 사상적 기치에 따라 이를 재구성하거나 “종식할” 수단이 있다는 발상 자체가 터무니없다.
이어지는 그의 주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임무는 독자적 문명을 민족적 심연에서 우뚝 세우는 것도, 모순으로 가득 찬 서구 문명을 완전히 수용하는 것도 아니다. 어디서 온 것이든 유용한 요소를 취해야 하며, 이는 원칙이 아닌 실용적 편의의 문제다. 이는 대단히 명료하여 논의할 가치조차 없다.”
어디서든 유용한 것을 ‘취하라’는 주장은 기만에 불과하다! 중세적 형태에서 노동자의 생산 수단 소유를 ‘취하고’, 자본주의 형태에서 자유, 평등, 계몽, 문화를 ‘취하자’는 식이다. 이러한 논리 구조에서 사회학의 주관적 방법론은 명백히 드러난다. 주관적 사회학은 노동자의 토지 소유라는 유토피아에서 출발하여, 여기저기서 유용한 요소를 ‘취하려는’ 열망을 실현할 조건만을 탐색한다.
이러한 견해는 사회적 관계를 제도의 단순한 기계적 총합이자 현상들의 기계적 연속으로 파악하는 형이상학적 관점에 기초한다. 그는 중세적 형태인 경작자의 토지 소유를 불쑥 꺼내어, 다른 건물로 벽돌을 옮기듯 타 형태에 수용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이는 사회적 관계에 대한 연구가 아니며, 대상 소재를 훼손하는 행위다.
독립적으로 분리 존재하는 경작자의 토지 소유 따위는 없다. 그것은 당시 생산관계의 한 고리에 불과하다. 대토지 소유주인 지주가 농민을 착취하기 위해 토지를 할당하는 방식으로 토지가 일종의 임금 역할을 수행하는 구조였을 뿐이다. 이는 농민에게 필요한 생산품을 제공하여 지주를 위한 잉여 생산물을 생산하게 하고, 봉건적 부역을 제공할 수단을 안겨준다.
필자는 이러한 생산관계 체계를 추적하지 않고 단편적 현상에만 집착하여 오독하는 이유는 사회 문제를 다루는 방법론적 부재에 있다. 그는 당시 존재하는 ‘노동의 형태’를 명확한 사회 구성체이자 생산관계 구조로 제시하지 못한다. 사회를 그 기능과 발전에 있어 살아있는 유기체로 규정하는 변증법적 방법론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는 새로운 형태를 논함에 있어 왜 잔존하는 노동 형태가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는지 규명하지 않은 채 동일한 오류를 되풀이한다. 그의 관점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형태가 토지의 경작자 소유를 ‘뒤흔든다고’ 지적하며, 그것이 자신이 설정한 이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그의 논지는 전적으로 비논리적인 방향으로 전개된다. 그는 토지 강탈이라는 단편적 현상만을 분리하여, 이를 상품 경제에 기반한 완전히 다른 생산관계 체계의 구성 요소로 제시하려는 어떠한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상품 경제는 상품 생산자 간의 경쟁과 불평등, 그리고 일부의 몰락과 타방의 부 축적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그는 대중의 몰락이라는 한 가지 사실에는 주목했으나 소수에게 집중되는 부의 축적이라는 다른 측면을 외면하였으며, 이는 그가 사태의 양면을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길을 스스로 차단하는 결과를 낳았다.
“구체적인 삶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추구한다” (《러시아의 부 (루스코예 보가츠트보)》, 1894년, 제1호)는 그의 방법론은 실제 현실과 완전히 단절되어 있다. 현실을 객관적으로 해명하고 마주할 용기가 없던 그는, 유산 계급에 맞선 무산 계급의 투쟁이라는 실제적 삶의 문제로부터 도피하여 순전한 유토피아의 영역으로 숨어들었다. “실제 현실을 이상화하여 삶의 문제에 답한다”는 그의 공리공론은, 모순적으로 그가 현실을 분석하고 해명하려는 기초적인 시도조차 포기했음을 입증할 뿐이다.
그는 다양한 사회 구성체에서 개별 요소를 분별없이 추출하여, 중세적 형태에서 일부를, ‘새로운’ 형태에서 다른 일부를 자의적으로 조합한 유토피아를 제시했다. 이러한 구상에 기반한 이론은 실제 사회적 발전과 철저히 단절될 수밖에 없다. 당대의 공상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임의로 구상한 관념적 사회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농민과 쿨락 (kulak), 수공업자와 거상, 노동자와 공장주 간의 구체적 생산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활동해야 함을 자각하지 못했다. 이처럼 현실의 객관적 생산관계를 규명하지 못한 채, 이를 관념적 이상에 부합도록 인위적으로 재편하려는 모든 시도와 실천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무대에 등장했을 당시’, 러시아 내 사회주의 논의의 정립 양상 역시 이와 동일한 위상에 놓여 있었다.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초기 사회주의자들의 주관적 방법론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했다. 이들은 착취의 현실을 단순히 지적하고 비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객관적으로 해명하고자 했다. 러시아 개혁 이후 전반의 역사가 대중의 몰락과 소수의 부 축적, 기술 발전과 더불어 나타난 막대한 부의 독점 현상으로 파악되고, 그러한 양극화 경향이 구조화·공고화된다는 점에 주목한 이들은, 상품 경제의 발전에 따라 자본주의 사회·경제 구조와 직면해 있으며 이것이 대중의 착취와 억압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러한 규명은 이들의 실천적 구상을 직접적으로 규정했으며, 이에 따라 변방의 마을에서부터 최신식 공장에 이르기까지 부르주아 및 자산 계급에 맞선 프롤레타리아와 무산 계급의 투쟁에 결합할 계획을 수립했다.
현실은 그 실행 방안 역시 제시하고 있었다. 자본주의가 주요 산업을 대규모 기계 공업 단계로 이끌어 생산을 사회화함에 따라, 새로운 체제를 위한 물질적 조건과 함께 새로운 사회적 동력인 도시 프롤레타리아, 즉 공장 노동자 계급을 창출해낸 것이다. 경제적 본질 측면에서 러시아 노동 인구 전체가 부르주아적 착취에 종속되어 있던 상황에서, 이 계급은 그러한 해방의 국면에서 유일무이한 우호적 위상을 점하게 되었다. 이들은 기존의 착취적 사회 체제와 어떠한 이해관계의 연결고리가 없었으며, 자신들의 노동 조건과 삶의 조건으로 인해 정치 투쟁의 영역으로 진입할 수밖에 없는 조건과 필연성을 동시에 구비하게 되었다. 따라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이 계급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모든 기대를 걸며, 자신들의 구상을 이들의 계급 의식 발전으로 집약하고, 현 체제에 맞선 이들의 직접적인 정치 투쟁을 지원하여 전체 러시아 프롤레타리아를 투쟁으로 견인하고자 한 것은 지극히 필연적인 귀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