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신『이스크라』 — 조직 문제에서의 기회주의

 

신『이스크라』의 원칙적 입장을 검토하기 위해 기초로 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의심할 바 없이 약했으므로 동지의 두 개의 소논문이다. 그가 특히 좋아하는 문구의 구체적인 의미는 이미 자세히 보았으므로, 여기서는 그 구체적인 의미는 제처놓고, ‘소수파’를 (이러지러한 소소하고 사소한 문제와 관련하여) 어떤 다른 슬로건이 아니라 바로 이 슬로건에 다다르게 했던 사상의 궤적을 깊이 파고들어, 이 슬로건의 원칙상의 의의를 기원에 관계없이, 즉 ‘자주충원’ 문제와 관계없이 검토해야 한다. 양보가 요즈음의 유행이다. 따라서 악셀로드 동지에게 양보하여 그의 ‘이론’을 ‘진지하게’ 다루어 보자.*

 

악셀로드 동지의 기본 명제(『이스크라』 제57호)는 다음과 같다. “우리 운동은 애초부터 두 개의 상반된 경향을 감추고 있었으므로, 이 경향의 상호 적대는 운동 자체의 발전과 더불어 발전하지 않을 수 없었고, 또 운동에 반영되지 않을 수 없었다.” 즉, “원칙적으로는 운동(러시아에서의)의 프롤레타리아적 목표는 서구 사회민주당의 그것과 동일하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노동자 대중이 “그들과 연고가 없는 사회 분자”, 즉 급진적 인텔리젠차에게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악셀로드 동지는 우리 당 내의 프롤레타리아적 경향과 급진적 인텔리젠차 경향 사이에 적대가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악셀로드 동지는 무조건 옳다. 그러한 적대가 존재한다는 것(더 구나 러시아 사회민주당에서만이 아니라)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뿐만 아니라,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바로 이 적대가 금일의 사회민주당이 혁명적(또한 정통적) 사회민주주의파와 기획주의적(수정주의적, 입각주의적, 개량주의적) 사회민주주의파로 나누어지게 된 주요 원인이다. 그리고 이런 분열은 러시아에서도 우리 운동의 지난 10년 동안에 매우 명백하게 되었다. 또 널리 알려져 있듯, 운동의 프롤레타리아적 경향은 정통적 사회민주주의파를 대표하는 반면, 민주주의적 인텔리젠차적 경향은 수정주의적 사회민주주의파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악셀로드 동지는 이 주지의 사실에 가까이 다가가자마자 두려워서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 분열이 일반적으로 러시아 사회민주당의 역사 속에서, 특별하게는 우리 당 대회에서 어떻게 나타났는가 분석하려는 시도를 조금도 하지 않았다——그가 바로 이 대회에 대해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이스크라』의 다른 모든 편집자들처럼, 악셀로드 동지도 대회의 의사록에 대해서 죽음의 공포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앞에서 기술되었던 것으로부터 생 각해 보면 놀라울 게 없지만, 우리 운동 내의 다양한 경향들을 연구한다고 일 컬어지는 ‘이론가’가 보여주는 태도로서는 확실히 진리 공포증의 독특한 사례 인 것이다. 이러한 병적 성격 때문에, 악셀로드 동지는 우리 운동 내의 다양한 경향들에 관해 가장 정확한 최신의 자료들로부터 도망쳐, 유래한 백일용의 분 야에서 탈출구를 찾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합법적 마르크스주의나 반(非) 마르크스주의가 우리 나라의 자유주의자에게 문필상의 한 지도자를 제공해 주 지 않았던가? 것같은 역사가 그와 마찬가지로 혁명적인 부르주아 민주주의자 에게 정통적인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학파 출신의 지도자도 제공하지 않겠는 가?” 악셀로드 동지가 매우 유래해하는 이런 백일용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모 든 것은, 실혹 역사가 때때로 장난을 친다고 해도 이것이 역사의 분석에 착수 하는 자의 사상의 장난을 정당화시키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반(非)마르크스주 의의 지도자라는 가면 뒤에서 자유주의자가 얼핏 그 본성을 드러냈을 때, 그 의 ‘경향’을 추적하고자 했던(그리고 추적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역사의 장난 을 논거로 한 것이 아니라, 그 지도자의 심리와 이론의 수심 수백의 실례를, 또 부르주아 문헌에서의 마르크스주의의 반영(86)을 보여주는 그의 문헌상의 성격 전체의 특질을 논거로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 운동 내의 일반적인 혁명 적 경향과 포틀레타리아적 경향”의 분석에 착수했던 악셀로드 동지가 그가 몸 시 싫어하는 당 정통파 진영의 몇몇 대표자들이 어떤 경향을 보인다는 것을 무엇으로도, 절대 무엇으로도 입증하고 실증할 수 없었다면, 그는 이것으로써 자신의 공식적인 빈곤 증명서를 발급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할 수 있는 전부가, 있음직한 역사의 장난에 대한 언급일 뿐이라면, 악셀로드 동지의 주장 은 전혀 설득력이 없는 것이다!

 

악셀로드 동지의 다른 논거 — ‘자코뱅파’라는 논거 — 는 더욱 노골적이다. 악셀로드 동지가 아마 모르진 않겠지만, 현재의 사회민주당의 혁명파와 기회 주의파로의 분열은 훨씬 이전부터 — 더구나 러시아에서뿐만 아니라 — 있어 왔으며, “프랑스 대혁명 시대와 대비되는 역사적 유사물”을 만들어 냈다. 아마 악셀로드 동지도 알고 있겠지만, 현재의 사회민주당의 지름드파는 자기들의 반대자를 특징짓기 위해서 언제 어디서나 ‘자코뱅주의’, ‘블랑키주의’(86) 등등의 용어를 사용한다. 이제 우리는 악셀로드 동지의 진리 공포증을 흉내내지 말고, 대회의 의사록을 조사하여 우리가 고찰하고자 하는 경향과, 검토하고자 하는 유사물을 분석, 확인시켜 주는 자료가 그 안에 있는지 어떤지를 살펴보자.

 

첫 번째 예. 당 대회에서 강령에 관한 논쟁, 아키모프 동지는 (마르티노프 동지에 ‘완전히 동의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치권력의 획득(프롤레타리 아트의 독재)에 관한 조항은 — 다른 모든 사회민주주의 당의 강령과 비교하 여 볼 때 — 지도조직의 역할이 그 지도조직에 의해 지도되는 계급을 후방으 로 밑아내 버리고, 전자를 후자로부터 분리시켜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방식으로 정식화되어 있으며, 또 실제로 플레하노프는 그렇게 해석하고 있다. 결국 우리의 정치적 임무에 관한 정식은 나로드나야 불과의 그것과 완 전히 같다”(의사록, 124쪽). 플레하노프 동지와 그 밖의 『이스크라』파는 아키 모프 동지에게 반론을 제기하고, 그를 기회주의자라고 비난했다. 악별로드 동 지는 이 논쟁이 사회민주주의 내의 현저의 지금방파와 현저의 지름도파 사이 의 적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상상적인 역사의 장난이 아니라 실제로)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리고 악별로드 동지가 자코뱅파를 운운하기 시작했던 것 은 자기 자신이 사회민주주의의 지름도파에 끼어 있음(그가 범한 오류 탓에) 을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두 번째 예. 포사도프스키 동지는 ‘민주주의적 원칙들의 절대적 가치’라는 ‘기본적인 문제’에 대해 ‘심각한 의견 차이’가 있다고 했다(169쪽). 그는 플레하 노프와 함께 민주주의적 원칙들의 절대적 가치를 부정했다. ‘중간파’ 혹은 높 지파의 지도자(에고로프)와 반『이스크라』파의 지도자(골드블라드)는 적절하게 이 견해에 반대하고, 플레하노프가 “부르주아지의 전술을 모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170쪽). 이것은 바로 정통파를 부르주아직 경향에 결부시키고 있는 악별로드 동지의 생각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악별로드 동지의 경우에는 모 호하고 일반적이었음에 반해, 골드블라드는 구체적인 주제와 결부되어 있었다 는 것뿐이다. 다시 한 번 묻었다. 악별로드 동지는 이 논쟁 역사 현저의 사회 민주주의 내의 자코뱅파와 지름도파 사이의 적대를 우리 당 대회가 명료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악별로드 동지가 자코뱅파에 반대하여 절 규하는 것은 자신이 지름도파에 끼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세 번째 예. 규약 제1조에 관한 논쟁. ‘우리 운동의 프롤레타리아적 경향’을 옹호하는 이는 누구인가? 노동자는 조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 프롤레타 리아트는 무정부적 상태에 공감하지 않는다는 것, 프롤레타리아트는 조직화에 대한 권장을 존중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 기회주의가 골수에까지 배어 있는 부르주아 인텔리젠처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는 이는 누구 인가? 사회민주주의의 자코뱅파이다. 반면, 급진적 인텔리를 당 안으로 끌어들 이려 하는 이는 누구인가? 교수, 학생, 자유적 종사자[프리랜서 - 편집자], 급진 적 청년들을 배려하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 지름드파의 리베르와 결합한 지 통드파의 악설로드이다.

 

악벨로드 동지는, 우리 당 대회에서 노동해방단의 다수파에게 공공연하게 피부어졌던 ‘기회주의라는 부당한 비난’을 모면하려고 얼마나 졸랄하게 자신을 번호했던가! 그는 자코뱅주의, 블랑키주의 동등의 진부한 베른슈타인류의 상 투어를 되풀이하는 방법, 즉 기회주의라는 비난을 증명할 뿐인 방법으로써 자 신을 번호하고 있다! 급진적 인텔리들에 대한 배려로 가득 채린 대회에서의 자신의 연설을 감추기 위해서 그는 급진적 인텔리의 위험성을 소리 높여 외치 고 있다.

 

자코뱅주의 운운하는 이 ‘위험적인 문구’는 다름아닌 기회주의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프롤레티리아트의 조직과 불가분하게 결합되어 있는 자코뱅주의 자, 즉 자신의 계급적 이해를 자각하고 있는 프롤레티리아트는 혁명적 사회민 주주의자이다. 교수나 학생을 염려하고, 프롤레티리아트의 독재를 무서워하고, 민주주의적 요구의 절대적 가치를 사모하는 지통드주의자는 기회주의자이다. 정치투쟁을 음모 차원으로 제한하는 사상이 문헌에서도 수천 번이나 논파되고 실생활에 의해서도 논파되고 제거되어 버린 현재에도, 또 대중적 정치선동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이 명확해지고 귀가 따감도록 반복 설명되고 난 현 재에도, 여전히 음모조직은 위험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기회주의자들뿐 이다. 음모주의나 블랑키주의에 대한 이런 공포의 참 원인은 실제 운동에서 발견되는 특징이 아니라(베른슈타인과 그 동조자들이 오랫동안 헛되기 그것을 증명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부르주아 인텔리의 지통드주의적 비겁성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텔리의 심리는 오늘날의 사회민주주의자 속에서 폐 흔히 나 타나고 있다. 40년대와 60년대의 프랑스의 음모적 혁명가들의 전술에 대한 경 고(이전에 수백 번 행해진)의 새로운 문구를 표명하려는 신『이스크라』의 이런 고달론 노력만큼 웃기는 것은 없다(제62호 사설).[67)] 물론 『이스크라』 다음 호 에서 오늘날의 사회민주주의 지통드파는, 노동자 대중 속에서의 정치선동의 중요성과 계급에 대한 당 사업의 기초 수단으로서의 노동자 신문의 중요성을 초보적 진리로서 훨씬 오래 전부터 숙지하고 소화했던 그러한 40년대의 프랑스 음모가 그룹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라.

 

그런데 새로운 문구를 표명한다고는 하면서도 기초적인 것을 되풀이하고 가나다를 자꾸 되보는 신『이스크라』의 경향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다. 그것 은 악불로드와 마르토프가 우리 당의 기회주의적 진영에 발을 들여놓았기 때 문에 빠지게 된 입장으로부터 생긴 피할 수 없는 결과이다. 뿐 방도는 없다. 대회에서 행해진 투쟁이라는 관점으로부터 대회에서 형성된 당의 각종 색채 와 파벌 분립이라는 관점으로부터 번호될 수 없는 자신의 입장을 어느 정도라 도 정당화해 줄 것을 먼 피가에서 찾기 위해, 그들은 기회주의적 문구를 반복 해야만 하며 후퇴해야만 한다. 악불로드 동지는 자코뱅주의와 불량키주의에 대한 아키모프류의 심오함에 덧붙여, ‘일면적’이었고 지나치게 ‘심취’하였던 것으로는 경제주의자들뿐 아니라 ‘정치가’들도 마찬가지라는 등등의 아키모프류 의 푸념을 한다. 자기는 이러한 일면성과 심취를 모두 초월한 것처럼 잘난 체 하고 있는, 신『이스크라』 지면에 실린 이 주제에 관한 거만스런 논문들을 읽 노라면, 누구든지 당황해하면서 다음처럼 자문할 것이다. 그들은 누구의 초상 을 그리고 있는 것인가? 그들은 그런 말을 도대체 어디에서 듣는 것일까?68)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가 경제주의자와 정치가로 분열되었던 것은 이미 오래 전 이야기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당 대회 전 1~2년간의 『이스크 라』를 면밀히 검토해 보면, 경제주의자의 투쟁이 일찍이 1902년에 잠잠해지면 서 완전히 끝나 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1903년 7월(43 호)에는 ‘경제주의의 시대’가 ‘최종적으로 극복’되었다고 한 것을, 경제주의는 ‘사장되었다’고 한 것을, 정치가의 심취는 명확히 격세유전이 되었다고 한 것 을 볼 수 있다. 그러면 왜 신『이스크라』의 편집국은 이 사장된 분열로 되돌아 가는 것일까? 대회에서 우리는 아키모프류가 『라보체에 젤로』에서 2년 전에 범한 오류 때문에 그들과 싸웠는가? 만약 그랬다면, 우리는 완전히 바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가 대회에서 아키 모프류와 싸웠던 것은 그들이 『라보체에 젤로』에서 범한 남은, 사장되어 버린 오류 때문에 아니라, 그들이 대회에서 토론과 투표시에 범한 새로운 오류 때 문이었다. 우리가, 어떤 오류가 실제로 극복되었으며 어떤 오류가 여전히 남아 있어서 논쟁을 필요로 하는가를 판단하는 기초로 삼은 것은, 『라보체에 젤로』 에서의 그들의 입장이 아니라 대회에서의 그들의 입장이었다. 대회 무렵에는 경제주의자와 정치가라는 남은 분열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지만, 다양한 기회주의적 경향들은 의연히 존재하였다. 그러한 경향들은 여러 문제들에 대한 토론과 투표 중에 나타났고, 결국엔 ‘다수파’와 ‘소수파’라는 당의 새로운 분열을 초래하였다. 문제의 요점은 바로 신1이스크라, 편집국이 명백한 이유 때문에 이 새로운 분열과 우리 당 내의 현금의 기회주의 사이의 연관을 일바꾸리려 하고 있으며, 또 그 때문에 새로운 분열로부터 남은 분열로 되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새로운 분열의 정치적 기원을 설명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또는 양보 정신을 과시하기 위해 그 기원에 배열을 덮어 버리려는) 의 도 때문에) 그들은 오래 전에 사라져 버린 분열에 대해 같은 말을 되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주지하다시피 새로운 분열의 기초는 조직 원칙(규약 제1조)에 관한 논쟁에서 시작되어 무정부주의자에게나 어울리는 ‘실천’으로 종결된, 조직 문제에 대한 의견의 불일치이다. 반면에 오래 전에 있었던 경제주의자와 정치가로의 분열의 기초는 주로 전술 문제에 관한 의견의 불일치였다.

 

당 생활의 한층 더 복잡하며 참으로 시사적이며 긴박한 문제로부터 오래 전에 해결되어 지금은 억지로 파헤쳐야 하는 문제로의 후퇴를 정당화하는 데 서, 신『이스크라』는 우스꽝스럽게도 추수주의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심오함을 펼쳐 보이고 있다. 악셀로드 동지를 비롯하여 신『이스크라』의 모든 기사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내용이 형식보다 중요하다는가, 강령과 전술이 조직보다 중요하다는가, “조직의 생명력은 조직이 운동에 부여한 내용의 범위와 의의에 정비례한다”는가, 중앙집권주의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며 “만능의 부적”도 아니라든가 하는 동등의 심오한 ‘사상’이다. 위대하고도 심오한 진리이다! 실로 강령은 전술보다 중요하고, 전술은 조직보다 중요하다. 알파벳은 품사론보다 중요하고, 품사론은 문장론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문장론 시험에서 낙제해서 1년간 유급하게 된 주제에 이를 자랑하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무어라 말해 줄 수 있다 말인가? 악셀로드 동지는 조직 원칙에 대해서는 기회주의자처럼 논하고(규약 제1조), 조직 내에서는 무정부주의자처럼 행동하더니(연맹 대회), 이제는 사회민주주의를 더욱 심오하게 만들어내고 예쁘다. 다음과 같은 식으로 말하고 있다——시어 버린 포도이다! 본래, 조직이란 뭐냐? 단지 형식일 뿐이다. 중앙집권주의는 뭐냐? 그것 역시 부적은 아니다. 문장론은 뭐냐? 그것은 품사론보다 중요하지 않다. 단지 품사론의 요소들이 결합하는 형식일 뿐이다…… 신"이스크라" 편집국은 의기양양해하며 묻는다. “규약이 아무리 완전하게 보인다 하더라도 규약을 채택한 것보다는 당장명을 작성한 것이, 당 사업의 중앙집권화를 이룬다는 면에서 볼 때 대회가 이룩한 최대의 성과이다. 하고 말한다면, 일렉산드로프 동지도 동의하지 않겠는가?”(제56호, 부록). 이 고전적인 격언은, 사회민주당은 인류와 똑같이 항상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그런 임무만을 스스로에게 제기한다(69)는 크리체프스 키 동지의 유명한 문구만큼이나 널리, 오래도록 역사적인 명성을 받을 것이라 고 기대해도 좋다. 왜냐하면 신"이스크라" 의 이런 심오함은 그것과 완전히 똑같은 종류이기 때문이다. 크리체프스키 동지의 문구는 왜 조소를 받았던가? 그것은 그가 일부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전술 문제에서의 오류——올바른 정치적 임무를 설정할 수 있는 능력의 결여——를 철학적인 것처럼 보이려고 진부한 문구로 꾸며서 정당화하려 했기 때문이다. 신"이스크라" 도 완전히 똑같은 방식으로 조직 문제에서의 일부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오류——무정부주의적 설교에까지 도달한 몇몇 동지들의 인텔리적 동요성——를, 강령은 규약보다 중요하다는가, 강령의 문제는 조직의 문제보다 중요하다는가 하는 진부한 말로 정당화하려 한다! 이게 추수주의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1년간 유급하게 된 것을 스스로 빼기는 것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강령의 채택이 규약의 채택보다 활동의 중앙집권화를 더욱 촉진한다. 철학적인 듯이 꾸민 이 상투적인 말은 사회민주주의보다도 부르주아적 퇴폐성에 더 가까운 금전적 인텔리적 심성을 얼마나 잘 드러내고 있는가! 중앙집권화란 말이 이 유명한 어구에선 상징적으로만 쓰이고 있지 않은가? 이 어구의 필자들이 생각할 능력이 없거나 생각할 마음이 내기지 않는다면, 적어도 그들은 분트파와 공동으로 강령을 채택한 것이 우리의 공동 활동의 중앙집권화를 성사시키는거냐 우리가 분열되는 것조차 막지 못했다는 간단한 사실을 되새겨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강령과 전술 문제에 관한 통일은 당의 통일, 당 활동의 중앙집권화를 위한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결코 충분조건은 아니다.(맙소사! 이 모든 개념이 혼동되어 버린 지금, 어떤 가나다부터 설명해 나가야 한다 말 인가!) 충분조건이 되기 위해서는 거기에 덧붙여 조직의 통일이 필요하다. 이 조직의 통일이란 단순한 가족적 써클 이상의 어떤 것으로 성장해 가는 당에서 는, 확실한 형식을 가진 규약 없이는, 다수에 대한 소수의 복종, 전체에 대한 부분의 복종 없이는 있을 수 없다. 우리가 강령과 전술의 기본적인 문제에 대 해 통일되어 있지 못했을 때, 우리는 우리가 분산되고 고립된 써클주의 시대 에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시인했고, 통합하기 전에 반드시 분리의 선을 그어 야 한다고 솔직하게 단언했다. 그래서 우리는 공동의 조직 형식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고, 강령과 전술 분야에서의 기회주의와의 투쟁이라는 세 운(당시엔 진짜 새로운 것이었다) 문제에 대해서만 한결같이 논의했다. 우리 모두가 인정하고 있다시피, 이제는 이 투쟁으로 이미 충분한 정도로 통일이 달성되었으며, 이 통일은 당 강령 그리고 전술에 대한 당의 여러 결의로 정식 화되어 있다. 우리는 다음의 일보를 내린어야만 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동 의로 이 일보를 내린었다. 즉, 모든 써클을 하나로 융합시킨 단일한 조직의 형 식을 수립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들 형식은 절반이나 파괴되었고, 우리 는 무정부주의적 행동으로, 무정부주의적 어구로, 당 편집국을 대신한 써클의 부활로 되끌려갔다. 그리고 이 퇴보는 일파벳이 문장론의 지식보다 표준 화법 에 더 유용하다는 이유로 정당화되고 있다!

 

3년 전, 전술 문제에서 만연했던 추수주의라는 철학이 오늘날 조직 문제와 관련하여 부활하고 있다. 신편집국의 다음과 같은 논리를 살펴보자. 알렉산드 로프 동지가 “당 내의 전투적인 사회민주주의적 경향은 사상투쟁에 의해 써뿐 만 아니라 특정한 조직 형식에 의해서도 유지되어야 한다”고 하자, 편집국은 다음과 같이 훈계하였다. “사상투쟁과 조직 형식에 대한 이런 대비는 나쁘지 않다. 사상투쟁은 하나의 과정이지만, 조직 형식은 단지 …… 형식,”(믿어지진 않겠지만, 제56호 부록 4쪽 제1단 마지막에 이렇게 인쇄되어 있다) “즉 유동 적이며 발전해 가는 내용 — 당의 발전해 가는 실천 사업 — 을 포장하기 위 한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명백히, 포탄은 포탄이고 폭탄은 폭탄이라 는 농담과 똑같은 표현법이다! 사상투쟁은 하나의 과정인 반면, 조직 형식은 단지 내용을 포장하는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의 요점은 우리의 사상투 쟁이 더 고도한 형식, 즉 전원에게 구속력을 갖는 당 조직의 형식으로 포장될 것인가, 아니면 남은 분산 상태와 남은 써클이라는 형식으로 포장될 것인가하는 점에 있다. 우리는 더 고도한 형식으로부터 더 원시적인 형식으로 되끌려갔으며, 더구나 이것이 사상투쟁은 하나의 과정인 반면 형식은 단지 형식일 뿐이라는 이유로 정당화되고 있다. 이것은 지난날 크리체프스키 동지가 우리를 계획으로서의 전술로부터 과정으로서의 전술[70)]로 되끌어가며 했던 방식과 똑같은 방식이다.

 

형식을 중시하기 때문에 내용을 간과하는 위험에 빠져 있다고 간주되는 사람들을 향해 쓴 신[71]"이스크라"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자기 훈련’이라는 건방진했으니를 살펴보자(제58호 사실).71) 이것은 아키모프주의 제2호가 아닌가? 아키모프주의 제1호는, 전술적 임무를 제기하는 데 일부 사회민주주의적 인텔리전자의 후진성을, ‘프롤레타리아적 투쟁’의 좀더 ‘심오한’ 내용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자기 훈련에 대한 했으니로 정당화했다. 아키모프주의 제2호는 조직의 이론과 실천에서의 일부 사회민주주의적 인텔리전자의 후진성을, 조직은 단지 형식이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자기 훈련이 더 중요하다는 똑같이 심오한 했으니로 정당화하고 있다. 이런 동생을 염려해 주시는 신사 여러분, 프롤레타리아트는 조직과 훈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조직에 가입하려고 하지 않는 일방한 교수들과 학생들을 단지 그들이 조직의 통제 하에서 활동한다는 이유만으로 당원으로 인정하려는 그러한 것거리는 하지 않을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생활 전체에 의해서, 하다한 인텔리 선생님들보다 훨씬 철저하게 조직에 복종하도록 훈련된다. 우리들의 강령과 전술을 다소라도 이해한 프롤레타리아트는 조직에서의 후진성을 형식은 내용보다 덜 중요하다고 주장하여 정당화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조직과 규율이라는 정신 면에서, 또 무정부주의적 빈발에 대한 적의와 경멸이라는 정신 면에서 자기 훈련이 결여된 자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라, 우리 당 내의 일부 지식인들이다. 아키모프를 제1호가, 프롤레타리아트는 정치투쟁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말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트를 중상했던 것처럼, 아키모프를 제2호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조직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말함으로써 그들을 중상하고 있다. 의식적 사회민주주의자가 되어 스스로를 당원이라고 느끼는 프롤레타리아트는, 전술 문제에서 추수주의를 거부했던 것과 똑같은 경멸로 조직 문제에서 도 추수주의를 거부할 것이다.

 

끝으로, 신[71]"이스크라"의 ‘실천적 활동’의 심오한 지혜를 살펴보자.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혁명가들의 활동(강조는 더욱 심오하게 보이려고 한 것이다)을 통합하고 중앙집권화하는 ‘전투적인’ 중앙집권적 조직이라는 사상은, 올바르게 이해된다면, 당연히 그러한 활동이 존재하는 경우에만 실체화될 수 있다[참신하고 현명하군]. 조직 그 자체는 형식이므로[주의하라!] 오직 그것의 내용인 혁명적 활동의 성장과 동시적으로[비 인용문의 모든 강조는 피인용 자 자신의 것이다] 성장할 수 있다”(제57호). 이것은 장해 행렬을 보고 “아무 리 달라도 다 못 나를 정도로 많기를!”[72] 하고 소리친 민담의 주인공을 생각 나게 하지 않는가? 활동 내용에 비해 오랫동안 뒤떨어져 있었던, 그것도 치명 적으로 뒤떨어져 있었던 것이 바로 활동의 형식(곧, 조직)이라는 것, 또 뒤떨 어진 사람들에게 “보조를 맞춰라, 남들보다 빨리 달리지 마!” 하고 고함철 수 있는 사람은 당 내의 바로 이만 같은 자들뿐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실 천적 활동가(진정한 의미에서의)는 우리 당 내에 명백히 한 사람도 없다. 예를 들어 우리 당을 분포와 비교해 보자. 우리 당 활동의 내용이 분포의 그것보 다 훨씬 풍부하고, 다양하며, 광범하고, 깊다는 것은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 다. 우리의 이론적 견해의 시야는 넓으며 강령은 더 발전되어 있다. 노동자 대 중에 대한(단지 조직된 수공업자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영향력은 더 넓고 깊 으며, 우리의 선전과 선동은 훨씬 다양하다. 당 지도자와 평당원의 정치 활동 의 맥박은 더 생기 넘치며, 시위와 총파업 때의 대중운동도 더 장대하며, 비프 롤레타리아 계층 속에서의 활동도 훨씬 정력적이다. 그러나 ‘형식’은? 우리 활 동의 ‘형식’은 분포에 비해 말하기조차 부끄러울 정도로 뒤떨어져 있으며, 자 신의 당 사업을 ‘이탈이나 쑤시며’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눈에 거 슬리고 부끄러워 얼굴이 달아오를 수밖에 없을 정도로 뒤떨어져 있다. 우리 활동의 조직이 활동의 내용보다 뒤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우리의 약점이며, 이 것은 대회 훨씬 전부터, 조직위원회가 결성되기 훨씬 전부터 우리의 약점이었다. 형식의 불구성과 미숙성은 내용의 발전에서 더 이상의 어떠한 중대한 진전도 불가능하게 하며, 치욕스런 정체를 야기하며, 힘의 낭비와 언행불일치를 초래한다. 우리 모두는 이 불일치로 처참하게 고통받아 왔다. 이런 판국에 악 셀로드 부류와 신"이스크라"의 ‘실천적 활동가’는, 형식은 자연스럽게 내용과 동시적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심오한 설교를 하고 있다.

 

무의미한 말을 심오하게 만들려 하고 기회주의적 공론을 철학적으로 정당 화하려고 한다면, 조직 문제에 관한 사소한 오류(규약 제1조)는 이런 결과가 되는 것이다. 조심조심 지그재그로 천천히 행진[73] — 예전에 우리는 전술 문 제와 관련하여 이 상투어를 들었고, 지금 또다시 조직 문제와 관련해 이 말을 들고 있다. 무정부주의적 개인주의자가 자신의 무정부주의적인 편향(처음에는 우연이었을)을 견해의 체계로, 특별한 원칙상의 의견 차이로까지 격상시키기 시작하는 경우, 조직 문제에서의 추수주의는 그의 심리로부터 생겨나는 당연 하고 필연적인 산물이다. 연맹 대회에서는 이런 무정부주의적 단초가 보였고, 신"이스크라"에서는 그것을 견해의 체계로까지 격상시키려는 다양한 시도가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시도들은, 사회민주주의적 운동에 동조하는 부르주아 지 식인의 관점과 자신의 계급적 이해를 자각하게 된 프롤레타리아트의 관점 사 이의 차이에 대해 우리가 당 대회에서 이미 언급했던 바를 흘름하게 확인시켜 주고 있다. 예를 들면 우리가 그 심오함에 이미 친숙해져 있는 신"이스크라"의 바로 그 ‘실천적 활동가’는 당을 중앙위원회라는 지배인이 이고는 ‘거대한 공장’인 양 생각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서 나를 책망하고 있다(제57호 부록). 이 ‘실천적 활동가’는, 이 위험적인 말이 프롤레타리아 조직의 실천이나 이론 모두에 익숙하지 못한 부르주아 인텔리의 심성을 단번에 드러낸다는 것을 전 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단지 도깨비처럼 보이는 공장 이야말로 프롤레타리아트를 통일시키고 훈련시키며 그들에게 조직을 가르쳐 다른 모든 과학적 인민층의 선두에 서게 한 자본주의적 협업의 최고 형태이 다. 그리고 자본주의에 의해 훈련된 프롤레타리아트의 이데올로기인 마르크스 주의는 동요하는 인텔리들에게, 착취의 수단으로서 공장(기아의 공포에 기초 한 규율)과 조직의 수단으로서 공장(기술적으로 최고도로 발전한 생산 형태의 제조건에 의해 결합된 공동 노동에 기초한 규율)을 구별해야 한다고 가르쳐 왔고 또 가르치고 있다. 부르주아 인텔리에게는 매우 어려운 규율과 조직을 프롤레타리아트는 바로 이 공장이라는 ‘학교’ 때문에 매우 쉽게 이해한다. 이 학교에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조직의 계기로서의 의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랜덤부르주아지의 생활양식을 반영하는 사고방식의 특성으로서, 이 사고방식은 독일 사회민주주의자가 Edelanarchismus, 즉 ‘고귀한’ 양반들의 무정부주의 — 나는 이것을 귀족적 무정부주의라고 부르겠다 — 라 부르는 무정 부주의의 일종을 낳고 있다. 이 귀족적 무정부주의는 특히 러시아 허무주의 자의 고유한 특성이다. 그들은 당 조직을 피물 같은 ‘공장’으로 생각하고, 전체 에 대한 부분의 복종, 다수에 대한 소수의 복종을 ‘농노제’로 생각하며(악불로 드의 논문을 보라!), 중앙기관 지도 하의 분업은, 사람들을 ‘톱니바퀴와 나사’ 로 전략시키는 것(편집자들을 기고가들로 전환시키는 것이 그러한 전략 중에 서도 특별히 전인한 것으로 간주되었다)에 반대한다는 회비극적 절규를 그들 로 하여금 외치게 만든다. 또한 그들은 당의 조직 규약에 대해서 말하면, 경멸 하듯 얼굴을 챙그리며 규약 따위는 전혀 없어도 괜찮다는 경멸적인 비평(‘형 식주의자’를 향해서)을 내뱉는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마르토프 동지가 한층 더 설득력 있게 하려고 『한 동지 에게 보내는 편지』 중의 내 자신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스크라』 제58호에서 내게 행한 설교가 바로 이러한 부류의 것이었다. 도대체, 당이 만들어진 시대 에 분산의 시대, 셰클의 시대로부터 예를 끌어와, 셰클 근성과 무정부 상태의 보존과 찬양을 정당화하려는 것이 ‘귀족적 무정부주의’와 추수주의가 아니면 뒤딴 말인가?

 

왜 이전에는 우리에게 규약이 필요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당이 어떠한 조 직적인 결속도 없는 고립된 셰클들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개인도 ‘마음 내키는’ 대로 한 셰클에서 다른 셰클로 옮길 수 있었는데, 왜냐하면 그 는 전체의 의지를 일정하게 정식화한 어떤 표현에도 직면해 있지 않았기 때문 이었다. 셰클 내의 논쟁은 규약에 의해서가 아니라 투쟁과 탈퇴하겠다는 위험 에 의해 해결되었다 — 나는 일반적으로 여러 셰클들의 경험을, 그리고 특수 하게는 6명으로 이루어진 우리 편집 셰클의 경험을 요약했던 『한 동지에게 보 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서술한 바 있다. 셰클의 시대에는 이런 것이 자연스러 운 현상이었고 불가피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것을 칭찬하고 이상적이라 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누구나 분산 상태를 한탄했고, 누구나 그것 때문에 고 민했으며, 고립된 셰클들이 일정한 형식을 갖춘 당 조직으로 융합되기를 열망 했다. 그런데, 이런 융합이 이루어진 지금, 우리는 뒤로 되끌려가고 있으며, 더 고대한 조직적 전해라는 미명 하에 무정부주의적 설교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다! 가족적 셰클의 오블로모포적 기질[74]이라는 헐거운 실내복과 슬리퍼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형식적 규약이 옹색하고, 귀찮고, 따분하고, 비열하고, 관료주의적·농노제적 예속이며, 사상투쟁의 자유로운 ‘파정’을 구속하는 촉촉로 보인다. 귀족적 무정부주의는, 협소한 셰를적 결속을 광대한 당적 결속으로 대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형식적 규약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할 수 없다. 셰를 내부의 결속이나 셰를 사이의 결속에 일정한 틀을 부여하는 것은 불필요할 뿐 아니라 불가능하였다. 왜냐하면 이러한 결속은 우정이나 무조건적인 본능적 ‘신뢰’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적 결속은 이것들 어느 것에도 의존할 수 없고 의존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형식적인, ‘관료주의적’으로 명문화된 규약(훈련이 되지 않은 인텔리의 견해로 볼 때 관료주의적인)에 기초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규약의 엄수만이 셰를적 특성인 외고집과 변덕으로부터, 또 사상투쟁의 자유로운 ‘파정’이란 이름 아래 벌어지는 셰를적 인정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줄 수 있다.

 

신이스크라, 편집국은 “신뢰란 미묘한 것이어서 사람들의 가슴과 머리에 억지로 두들거 박을 수 없다”는 설교로 알렉산드로프에게 대항하려 하고 있다 (제56호 부록). 편집국은 이처럼 신뢰를, 더구나 단순한 신뢰를 떼발인다는 것 이야말로 다시 한 번 그들의 귀족적 무정부주의와 조직상의 추수주의를 드러 내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6명의 편집자들의 셰를이었든 『이스크 라』 조직이었든 간에 어쨌든 내가 단지 한 셰를의 멱버에 지나지 않았을 때에 는, 나에게는 예를 들어 아무개와 일하고 싶지 않다는 나의 거부를 이유나 동기를 설명하지 않은 채 단지 신뢰할 수 없다는 근거로 정당화할 권리가 있었 다. 그러나 이제 당원이 된 이상, 나에게는 막연한 불신만을 근거로 변론할 권리가 없다. 왜냐하면 그런 것은 남은 셰를적 변덕과 외고집에 문을 열어 주는 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나의 ‘신뢰’와 ‘불신’에 대해 정식의 논거 를 제시해야 할 의무, 즉 우리의 강령이나 전술 및 규약이라는 정식으로 확립 되어 있는 원칙에 맞추어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나는 논거를 제시하지 않 은 채, ‘신뢰한다’거나 ‘신뢰하지 못한다’고 말해서는 안 되며, 내 결정——그리 고 일반적으로는 당의 어떤 일부분이 내리는 모든 결정——을 당 전체에 설명 해야만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내가 ‘신뢰하지 못한다’고 표현할 때, 혹은 이런 불신으로부터 생겨나는 견해와 희망을 승인받으려고 할 때, 나는 정식으 로 규정된 절차에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는 이미 ‘신뢰’에 대해서 설명 하지 않아도 되는 써클적 관점으로부터, 우리의 신뢰를 표명하고 설명하고 검토하기 위해서 정식으로 규정된 절차에 따를 것을 요구하는 당첨 관점으로 고 양되었다. 그런데 편집국은 우리를 끌어 내리려 하며, 자신들의 추수주의를 조 직상의 새로운 전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의 대표를 편집국에 넣으라고 요구하는 문필가 그룹이 있을 경우에, 우리의 소위 당 편집국이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언제 어디서나 규율 따위는 가볍게 무시해 온 이들 귀족적 무정부주의자는 이렇게 설교한다. “우리는 분노하지도 않을 것이며 규율에 대해서 외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 는 그 그룹이 유능하다면 그 그룹과 ‘교섭할 것’(원본대로!)이며, 그렇지 못하 면 그 요구를 비웃을 것이다.

 

오, 저속한 ‘공장적’ 형식주의에 대한 얼마나 고상하고 귀족적인 거절인가! 그러나 실제로 이것은, 자신이 당 기관이 아니라 남은 써클의 유물이라는 것 을 느끼고 있는 편집국이 남은 써클적 발루를 약간 손절해서 당 앞에 내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입장에 내재해 있는 고유한 허위성은, 그들이 과 거에 종결되었다고 위선적으로 주장하는 분산을 사회민주당의 조직 원칙으로 까지 격상시키는 무정부주의적 심오함을 불가피하게 초래할 수밖에 없다. 하 급부터 상급에 이르는 당 기관과 권위의 위계질서는 전혀 필요 없다 — 귀족 적 무정부주의는 그러한 위계질서를 성(審), 부(部), 국(局), 과(議) 등등과 같 은 판로주의적 장치라고 생각한다(악설로드의 논문을 보라). 그래서 그들에게 는, 부분이 전체에 복종할 필요는 조금도 없으며, ‘교섭’하거나 이전의 한계를 규정하기 위한 당적 방법을 ‘형식적·판로주의적으로’ 규정할 필요도 전혀 없으 며, 단지 남은 써클적 안정이 ‘참으로 사회민주주의적’ 조직 방법이라는 과장 된 빈발로 신성화하면 그만이다.

 

이 점에서야말로 ‘공장’이라는 학교를 거친 프롤레티리아트는 무정부주의적 개인주의에게 교훈을 줄 수 있고, 또 주지 않으면 안 된다. 계급의식화된 노동 자는 지식인을 지식인이라는 이유로 기피했던 유년시대를 벌써 오래 전에 벗 어났다. 계급의식화된 노동자는 사회민주주의적 지식인들이 갖고 있는 한층 풍부한 지식의 축적과 한층 광범한 정치적 시야를 존중한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한 당의 건설을 계속하여 감에 따라, 계급의식화된 노동자는 무정부주의 적 어구를 자랑스럽게 늘어놓는 부르주아 지식인의 심리로부터 프롤레티리아 군대의 병사의 심리를 구별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계급의식화된 노동자는 평 당원뿐 아니라 ‘상급간부’도 역시 당원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계급의식화된 노동자는, 지나간 시절에 전술 문제에서 의 추수주의를 향해 파본던 경멸과 똑같은 경멸로 조직 문제에서의 추수주의 에 대항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지롱드주의 및 귀족적 무정부주의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 조직 문제 에서 신"이스크라" 입장의 최근 특징인 바, 그것은 중앙집권주의에 대항하는 지치주의의 옹호이다. 바로 이것이, 관료주의라든가 전제주의 운용하는 그들의 아우성, (대화에서 자치주의를 옹호했던) ‘신"이스크라"과에 대한 부당한 경시’ 에 대한 후회, ‘절대 복종’을 요구하고 있다는 그들의 우스황스러운 비명, ‘관 리 근성적 규칙’에 대한 격렬한 불평 등등이 갖는 원칙상의 의미(만일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이다.* 어떤 당이라도 그 당의 기회주의적 진영은 항상 강령상, 전술상, 조직상에서의 모든 후진성을 옹호하고 정당화한다. 조직에서 의 후진성에 대한 신"이스크라"의 옹호(신"이스크라"의 추수주의)는 자치주의 의 옹호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사실 자치주의는 구 "이스크라"의 3년간의 선진 작업으로 이미 철저히 불신당했기 때문에, 신"이스 크라"도 이직은 그것을 공공연하게 옹호하기를 부끄럽게 여기고 있다. 그들은 우리에게, 여전히 중앙집권주의에 대해 공감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것 은 중앙집권주의라는 말을 강조체로 처리하는 데 불과하다. 실제로, 신"이스크 라"의 ‘진정한 사회민주주의적’(무정부주의적이 아닌?) 사이비 중앙집권주의 의 ‘원칙들’을 가볍게 비판해 보는 것만으로도 도처에서 자치주의적 관점이 폭로된다. 조직 문제에서, 악셀로드와 마르토프가 아키모프 쪽으로 들어섰다는 것이 이제는 모두에게 분명하지 않은가? 그들은 ‘비"이스크라"과에 대한 부당한 경시’라는 의미심장한 말로 스스로 이것을 엄숙히 승인하지 않았는가? 그리 고 우리의 당 대화에서 아키모프와 그의 동료들이 옹호한 것은 바로 자치주의 가 아니었던가?

 

마르토프와 악셀로드가 연맹 대화에서, 부분은 전체에 복종하지 않아도 되 며, 부분은 전체와의 관계를 결정하는 데 자치적이며, 이런 관계를 정식화하고 있는 연맹의 규약은 당 다수파의 의지나 당 중앙부의 의지에 상관없이 유효하 다고 우스황스러울 정도의 열의로 논증하려고 했을 때, 그들이 옹호한 것은 바로 이 자치주의(무정부주의가 아니라면)였다. 그리고 마르토프 동지가 지방위 원회 위원을 임명할 수 있는 중앙위원회의 권리라는 문제에 대해, 신"이스크라" (제60호) 지상에서 지금 공공연하게 웅호하고 있는 것[75)]도 바로 이 자치주의 이다. 나는, 마르토프 동지가 연맹 대회에서 자치주의를 웅호하기 위해서 사용했고 또 여전히 신"이스크라"에서 사용하고 있는 철없는 궤벌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중앙집권주의에 대항하여 자치주의를 웅호하는 뚜렷한 경향을 지목해 내는 것인 바 이는 조직 문제에서의 기회주의의 원칙적 특징이다.

 

판로주의라는 개념을 분석하려고 한 시도는 신"이스크라"(제53호)가 ‘형식적 민주주의적 원칙’(원자자 강조점)과 ‘형식적 관료주의적 원칙’을 구별해 놓은 것이 아마 유일할 것이다. 이 구별(유감스럽게도, 비"이스크라"과에 대한 지적과 마찬가지로 논리가 충분히 전개되어 있지도 않고 설명이 제대로 이루어져 있지도 않다)은 일탈의 진실을 포함하고 있다. 판로주의 대 민주주의는 사실상 중앙집권주의 대 자치주의이다. 이는 또,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의 조직 원칙 대 기회주의적 사회민주주의의 조직 원칙이다. 후자는 밑에서부터 위로 나아가려고 애쓰며, 그렇기 때문에 가능한 경우 어디서든지 최대한으로 자치주의와 민주주의를 지지하며, (지나치게 열심인 경우에는) 무정부주의에까지 이르게 된다. 전자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나아가려고 애쓰며, 부분에 대한 중앙의 권위와 권력의 확대를 지지한다. 불통일과 고립된 셰를 시대에 혁명적 사회민주주의가 그 조직상의 출발점으로 삼으려고 애쓰던 이러한 상부는 불가피하게 하나의 셰를, 즉 그 활동과 그 혁명적 철저성으로 가장 영향력이 큰 셰를(우리의 경우에는"이스크라"조직)이었다. 실제적인 당의 통일이 재건되고 시대에 뒤떨어진 셰를들이 이 통일 속에 해소된 시대에는 이 상부는 불가피하게 당 최고 기관으로서의 당 대회이다. 당 대회는 활동 중인 조직의 모든 대표를 가능한 한 다 포함시키며 중앙기관들(대개 당의 후진 분자보다는 선진 분자들을 만족시키고, 기회주의적 진영보다는 혁명적 진영의 마음에 들도록 구성된다)을 임명하고 이를 차기 대회까지 모든 조직의 상부로 삼는다. 이러한 관습은 적어도 유럽 사회민주주의자들의 경우에는 통상적인 것이다. 그리 고 무정부주의자가 원칙적으로 혐오하는 이러한 관습은 — 곤란과 충돌 및 알력을 동반하기는 하지만 — 점차 아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까지도 확산되기 시작하고 있다.

 

조직 문제에서의 기회주의의 이러한 원칙적 특성들(자치주의, 귀족적 또는 지식인적인 무정부주의, 추수주의, 지통드주의)이 혁명적 진영과 기획주의적 진영으로 분열되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그런데, 분열이 없는 곳이 있는 가?), 적절하게 변형되어 전세계의 모든 사회민주당 내에서 관찰된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이것은 아주 최근에 독일 사회민주당 내에서 매우 명확하게 나타났다. 그것은 작센 제20선거구 선거에서의 패배(소위 피레 사건76))로 당 조직의 원칙에 대한 문제가 전면에 제기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원칙의 문제가 제기된 데에는 독일 기회주의자들의 열정이 큰 역할을 했다. 피레(원래 목사로, 폐 유명한 책인 『공장 노동자로서의 3개 월』의 저자, 드레스텐 대회77))의 ‘영웅’ 중의 한 사람)는 그 자신 가장 열렬한 기획주의자인데, 독일의 일관된 기획주의자들의 기관지인 『사회주의 월간』78) 은 즉시 그를 ‘옹호’하였다.

 

강령에서의 기회주의는 당연히 전술에서의 기획주의 및 조직에서의 기획주 의와 결부되어 있다. ‘새로운’ 관점의 해설을 떠말고 나선 사람은 볼프강 하이네 동지였다. 자신의 기획주의적인 사고습관을 그대로 지닌 채 사회민주주의 운동에 참여한 이 전형적인 지식인의 정치적 면모를 얼마간 독자들에게 그려 보이기 위해서는, 볼프강 하이네 동지가 독일판 아키모프 동지보다는 다소 덜 하고 독일판 에고로프 동지보다는 다소 더하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불포화 하이네 동지는 『사회주의 월간』에서 신『이스크라』의 악셀로드 동지 못지않게 화려하게 출전했다. 『피레 사건에 대한 민주주의적 평가』(『사회주의 월간』 제4호, 4월)라는 논문의 제목부터 대단하다. 내용도 그에 못지않게 대단 하다. 하이네 동지는 ‘선거구 자치의 침해’에 대항해 단호히 일어서서 ‘민주주 의적 원칙’을 옹호하며, 국민에 의한 의원의 자유로운 선거에 ‘임명된 당국’(즉, 중앙당 집행부)이 간섭한 것에 항의하고 있다. 하이네 동지는 우리에게 다음 과 같이 설교한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관료주 의와 중앙집권주의를 지향하는 당 내의 일반적 ‘경향’으로서, 이 경향은 이전 에도 관찰되었지만 지금은 특히 위험해지고 있다. 당의 지방기관들은 당 생활의 담당자라는 것을 원칙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마르토프 동지의 『다시 소수파가 되어』라는 소책자에서 표절한 것이다). “모든 중요한 정치적 결정이 하나의 중앙에서 나오는 데 길들여져서는” 안 되며, “실생활과의 접촉을 상실한 공론가적 정책”(“실생활은 스스로 주장하는 법이다” 했던 마르토프 동지의 당대회 연설에서 차용한 것이다)에 대해서 당에 경고해야 한다. 자기 논증을 더욱 심화시켜 W. 하이네 동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개인적인 충돌은 제쳐 두고 문제의 근본을 파헤쳐 보면, 수정주의자들강조점은 원저자의 것. 이것은 수정주의에 대한 투쟁과 수정주의자에 대한 투쟁을 구별하고 있음을 명확히 암시하고 있다. 대에 대한 이러한 격노는 ‘국외자’(W. 하이네는 게임 상대와의 투쟁에 대한 마르토프의 소책자를 아직 읽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국외자라는 영어식 표현을 쓰고 있다)에 대한 당 간부의 불신, 비판습적인 것에 대한 전통의 불신, 모든 개인적인 것에 대한 비인격적인 조직의 불신[개인적 창의의 억압에 관한, 연맹 대회에서의 악벌로드의 결의안을 보라], 간단히 말해 판로주의와 중앙집권주의를 지향하는 당 내의 경향으로서 위에서 규정한 바로 그 경향의 표현임을 알 수 있다.”

 

‘규율’이라는 개념은 W. 하이네 동지에게는 악벌로드 동지에 못지않은 귀족적인 혐오를 불리일으킨다…….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 수정주의자들은 『사회주의 원간』——당의 통제 하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그 사회민주주의적 성격조차도 부정당한 기판지——에 기고한다는 이유로 규율이 결여되어 있다고 비난받는다. ‘사회민주주의’라는 개념을 협소하게 만들어는 바로 이러한 시도와, 절대적 자유가 지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상적 생산의 영역[사상투쟁은 하나의 과정인 반면 조직 형식은 단지 형식일 뿐이라고 한 말을 기억하지]에서의 규율에 대한 이러한 요구는 개성의 억압과 판로주의를 지향하는 경향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리고 W. 하이네는 계속해서, “기능한 한 중앙집권화된 하나의 대규모 조직, 하나의 전술, 하나의 이론”을 창설하려 하는 이 혐오스러운 경향을, ‘절대 복종’과 ‘맹목적인 복종’의 요구, ‘과단순화된 중앙집권주의’ 등등을, 문자 그대로 ‘악벌로드식’으로 격렬히 공격하고 있다.

 

W. 하이네에 의해 시작된 논쟁은 널리 확산되었다. 독일 당 내에는 문제를 흐리게 하는 충원에 관한 알렉도 없었고, 독일판 아키모프류들은 대회에서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기관지에서도 항상 자신들의 면모를 명백히 하고 있었기 때문에, 논쟁은 급속히 조직 문제에 관한 정통파와 기회주의파의 원칙에 대한 분석으로 귀착되었다. 칼 카우츠키가 혁명적 경향(물론, 우리 당 내에서와 마찬가지로, ‘독재’, ‘종교재판적’ 경향, 그 밖의 다른 위협적인 말로 비난받았다.) 의 대표자의 한 사람으로 등장했다(『노이에 싸이트』, 1904년, 제28호, 「선거구와 당」이라는 논문에서). 그는 이렇게 기술했다——W. 하이네의 논문은 “수정주의적 경향 전체의 사고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독일뿐만 아니라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도 기회주의자는 모두 전력을 기울여 자치주의를 지지하며, 당규율의 악화와 당 규율의 소멸을 지지한다. 어느 것에서도 이들의 경향은 조직의 해체를 초래하며, ‘민주주의적 원칙’을 무정부주의로 타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칼 카우츠키는 조직 문제에서의 기회주의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민주주의는 권력의 부재를 의미하지 않으며, 민주주의는 무정부주의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소위 인민의 공복이 실제로는 인민의 지배자가 되는 다른 지배 형태와는 달리, 대중이 자신들의 대표를 지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카우츠키는 각국의 기회주의적 자치주의가 행하는 분열적인 역할을 상세히 추적하여, 기회주의, 자치주의, 그리고 규율 위반의 경향을 강화시키고 있는 것이 바로 ‘대량의 부르주아 분자들’의 사회민주주의 운동으로의 유입일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조직이아탈로 프롤레타리아트를 해방시킬 무기이고”, 바로 “조직이아탈로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고유한 계급투쟁의 무기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기회주의가 프랑스나 이탈리아보다 약한 독일에서, “자치주의적 경향은 이 제까지 독재자와 종교재판란에 대한, 그리고 파문”과 이단 사냥에 대한 다소 격렬한 열변을 토해 왔을 뿐이며, 상대방이 응수할 경우 영구히 계속되는 투쟁을 낳을 뿐인 끝없는 트집잡기와 알력을 초래해 왔을 뿐이다.”

 

당 내 기회주의가 독일보다도 훨씬 약한 러시아에서, 자치주의적 경향이 낳은 사상은 훨씬 적으나 ‘격렬한 열변’과 알력은 더욱 많다는 것이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다.

 

카우츠키가 다음과 같은 결론에 다다른 것도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각 국의 모든 수정주의가 그들의 다양한과 다채로움에도 불구하고, 조직 문제만 큼 일치하고 있는 문제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카우츠키는 또, 이 분야에서의 정통과와 수정주의의 기본적 경향을 판로주의 대 민주주의라는 ‘위험적인 말’ 의 도움을 빌려 정식화하고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즉, 선거구의 (국회의원) 후보자 선택을 좌우할 권한을 당 집행부에 주는 것은 “민주주의적 원칙에 대한 부끄러운 침해인 바, 민주주의적 원칙은 모든 정치 활동이 판로주의적 방법으로 위에서 아래로 진 행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지주적 활동에 의해 아래에서 위로 진행될 것을 요구한다. …… 그러나 실로 민주주의적 원칙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다수가 소 수에 대해서 우위를 점해야 한다는 것이며, 그 반대가 아니다. …….” 어떤 선 거구에서의 국회의원 선거는 당 전체에 중요한 문제인 바, 당은 당의 수임자 (Vertrauens männer)를 통해서라도 후보자의 지명을 좌우해야 한다. “이것이 지나치게 판로주의적이거나 중앙집권주의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는 후보자를 당원 전체의 직접 투표로 지명하지고 제안해야 할 것이다. 이것 이 실행불가능하다고 생각된다면, 이러한 기능이 당 전체에 관련되어 있는 다른 많은 기능들처럼 하나 내지는 몇 개의 당 기관에 의해 수행된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결핍되어 있다고 불명확해서는 안 된다.” 독일 당에서는 개개의 선 거구가 후보자의 선택에 대해서 당 집행부와 ‘우호적으로 협의하는 것’이 오랜 동안의 ‘관습법’이었다. “그러나, 당은 너무 커져서 이러한 압력적인 관습법으 로는 더 이상 지탱해 나갈 수 없게 되었다. 관습법은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인정되지 않게 되면, 그리고 그 규정 내용, 나아가 관습법의 존재 그 자체가 의문시되면 더 이상 벌이 아니다. 그때에는 법을 명확하게 정식화하고 법전화 하는 것.” …… “좀더 엄밀한 성문법(statutarische festlegung)이 필요하며 따라 서 조직의 엄격성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상황은 우리와 다를지라도, 조직 문제에 관한 당의 기회주의적 진 정과 혁명적 진영 사이에 똑같은 투쟁이 있음을, 자치주의와 중앙집권주의, 민주주의와 ‘관료주의’, 조직과 규율을 완화하려는 경향과 이를 강화하려는 경향, 견실하지 못한 지식인의 심성과 확고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심성, 지식인적 개인주의와 프롤레타리아적 단결 사이에 똑같은 충돌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충돌에 대한 부르주아 민주주의파 — 첫곳은 역사가 악불로드에게 언제가 보여주기로 남들래 약속했을 뿐인 부르주아 민주주의파가 아니라, 우리 나라의 『오스보보즈제니에』파 신사를 못지않게 현명하고 사려 깊은 대표들 을 갖고 있는 독일의 실체적이고 현실적인 부르주아 민주주의파 — 의 태도가 어떠했을까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독일 부르주아 민주주의파는 즉시 새로운 논쟁에 반응을 보였고, 전력을 다해 — 러시아 부르주아 민주주의파 및 언제 어느 곳의 부르주아 민주주의파와 마찬가지로 — 사회민주당의 가회주의적 진 영을 편들었다. 독일 증권거래소의 지도적 기관지인 『프랑크푸르터 짜이퉁』79 은 격렬한 사실(『프랑크푸르터 짜이퉁』, 1904년 4월 7일, 제97호, 저녁판)을 실 재하는 바, 이 사실은 염치없게도 악불로드를 표절하는 것이 실제로 독일 신문 의 유행병이 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의 엄격한 민주주의자들은, 사회민주당 내의 ‘전제’, ‘당의 독재’, ‘당 기관의 전제적 지배’, ‘수정주의 전제를 동시에 징계할 목적으로’ 의도된 ‘파문’(‘가회주의라는 부당 한 비난’을 상기하라)에 대해, 또 ‘맹목적 복종’, ‘경직된 규율’, ‘노예적 복종’의 요구 및 당원을 ‘정치적 송장’(이것은 나사와 톱니바퀴보다 훨씬 강력하다!)으 로 변화시키려는 요구에 대해 격노하여 규탄하고 있다. 증권거래소의 가사님 들은 사회민주당 내의 비민주주의적인 질서를 보자 분기하여 큰 소리로 비난 한다 — “모든 개인적 특성, 모든 개성은,” 작은의 사회민주당 대회에서 “이 문제에 관해 보고를 행한 진데르만이 슬직히 언명했듯이, 이것들이 틀림없이 프랑스와 같은 사태, 즉 조례스주의와 밀레랑주의를 초래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박해받아야만 될 운명에 처해 있다.”

 

 

그러므로 조직 문제에 관한 신(1)스크라의 새로운 표어들 속에 조금이라 도 원칙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기회주의적 원칙임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결론은 혁명적 진영과 기회주의적 진영으로 분열된 우리 당 대회의 분 석 전체를 통해서도, 또 조직 문제에서의 기회주의가 똑같은 경향, 똑같은 비난, 또한 매우 자주 똑같은 구조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모든 유럽 사회민주주의 당들의 예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물론 각 당의 국민적 특수성과 각국의 정치적 조건의 차이가 그 흔적을 남기기 때문에, 독일의 기회주의는 프랑스의 기회주의와, 프랑스의 기회주의는 이탈리아의 기회주의와, 그리고 이탈리아의 기회주의는 러시아의 기회주의와 매우 다르다. 그러나 조건들의 이러한 모든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당들의 혁명적 진영과 기회주의적 진영으로의 기본적인 분열이 유사하다는 것이 명확하게 나타난다.4 우리 나라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사회민주주의자의 대열 내에는 금진적 지식인들이 대단히 많다. 따라서 이들의 심리에 의해 생겨나는 기회주의는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매우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고, 존재하며, 존재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세계관의 여러 기본 문제에서, 우리 강령의 여러 문제에서 기회주의와 투쟁했다. 그리고 목표에서의 완전한 불일치 때문에 사회민주주의자들과 합법적 마르크스주의를 부패시킨 자유주의자들 사이에 결정적인 분열이 불가피하게 초래되었다. 우리는 전술 문제에서 기회주의와 투쟁했다. 그러나 이들 한층 덜 중요한 여러 문제에 관한 크리처프스키 동지 및 아키모프 동지와의 불일치는 당연히 일시적 이었을 뿐이었고 서로 다른 당을 구성하게 되지는 않았다. 현재 우리는 조직 문제에서 마르토프 및 악셀로드의 기회주의를 척결해야 한다. 이 조직 문제는 강령은 물론이고 전술 문제만들도 근본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현재 우리 당 생활의 최선에 놓여 있는 것은 바로 이 조직 문제이다.

 

우리가 기회주의와의 투쟁에 대하여 말할 때에는, 모든 분야에서의 오늘날의 기회주의의 전체 특징, 즉 모호성, 무정형성, 회피성 등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기회주의자는 그의 본성 그 자체 때문에 항상 분명하고 단호한 입장을 취하기를 꺼려하며 중도적인 길을 찾으려 한다. 그는 항상 서로 배타적인 두 관점 사이에서 마치 뱀처럼 꿈틀거리며, 양자에 다 ‘동의’하려 하며, 자신들 의 이견을 사소한 수정, 의심, 결백하고 경건한 제안 등등으로 돌려 버리려 한 다. 강령 문제에서의 기회주의자인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동지는 자신의 당 의 혁명적 강령에 ‘동의’한다. 그리고 그는 이 강령의 ‘근본적인 수정’을 원하 고 있음에 틀림없지만, 이러한 수정이 시의 적절하지 못하고 득책이 아니며 ‘비판’의 ‘일반적 원칙’(이 원칙은 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로부터 무비판적으로 발려온 원칙이고 표어임)을 혜명하는 일에 비하면 그러 대수들지 않다고 생각 한다. 전술 문제에서의 기회주의자인 폰 폴마르 동지도 혁명적 사회민주주의 의 오랜 전술에 동의하면서, 마찬가지로 주로 열변이나 사소한 수정, 조소 등 에 자신을 한정해 버리고, 명확한 ‘입각주의적’ 전술(80)을 공개적으로 옹호하지 않고 있다. 조직 문제에서의 기회주의자인 마르토프 동지와 악셀로드 동지도 자신들의 원칙을 밝힐 것을 정면으로 요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찬가지로 ‘성문에 의해 확정’될 수 있는 명확한 원칙적 명제를 지금까지 어느 하나 내놓 지 못했다. 그들도 역시 조직 규약의 ‘근본적 수정’을 바랄 것이고, 또 절대적 으로 바라겠지만(7)이스크라, 제58호, 2쪽, 세 번째 란), 오히려 먼저 조직의 ‘일반적인 문제’에 전념하는 것이 더 좋은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예나하면 제1조에도 불구하고 의연히 중앙집권주의적 규약인 우리의 규약을 신1)이스크라) 의 관점에 입각하여 실로 근본적으로 수정한다면 불가피하게 자치주의에 이 를 것이지만, 물론 마르토프 동지는 자치주의를 지향하는 자신의 원칙적 경향 을 자기 자신에 대해서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들의 조직 문제에 관한 ‘원칙’은 무지개의 모든 색깔을 다 드러내고 있다. 즉, 주된 항목들은, 전제와 관료주의에 반대하는, 또 맹목적인 복종과 나사와 톱니바퀴 같은 역할에 반대하는 순수하고 열정적인 열변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이 열변이 어찌나 순수한지, 그 열변 중 어느 것이 실제로 원칙에 관 한 것이고 어느 것이 충원에 관한 것인지 아직까지 분간하기가 매우 힘들다. 그리고 갈수록 태산이다. 즉, 이 가중스런 ‘판로주의’를 분석하여 정확하게 규 정하려는 시도는 불가피하게 자치주의에 이르고, 자신들의 입장을 ‘심오하게’ 하고 번호하려는 시도는 불가피하게 후진성의 정당화, 추수주의 및 지통드주 의적인 수다스런 설교가 되고 만다. 결국은 무정부주의라는 원칙이 유일하게 실제적이고 명확한 원칙으로 등장할 것이고, 이 원칙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실천에서 특히 눈에 띄게 두드려져 보일 것이다(실천은 항상 이론을 앞서가니까). 규율에 대한 조소——자치주의——무정부주의, 바로 이것이야말로 조직 문제에서의 기회주의가 이리지러 왔다있다고하면서, 조직의 원칙에 관한 어떤 명확한 정식화도 교묘하게 회피하면서 오르락내리락하는 사다리이다. 강령과 전술의 문제에 대해서도, 기회주의자들은 똑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즉, ‘정통성’, 편협성, 경직성에 대한 조소——수정주의적 ‘비판’과 입각주의——부르주아 민주주의.

 

일반적으로 오늘날의 모든 기회주의자, 특별하게는 소수파의 모든 저작을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감정이 상한 사람이 끊임없이 내뿐만 아니라 그들은 그들에 주의를 요구하고 있다. 자신들은 박해받고 있고, 물어뜯고 있고, 추방당하고 있고, 계엄상태 하에 있고, 들봐이고 있다. 이들 말 속에는, 들봐는 사람과 들봐이는 사람이 아니라는 재치 있는 농담의 작자 자신이 아마 알아차리고 있었을 것보다도 더 많은 심리적, 정치적 진실이 있다. 왜냐하면, 당 대회 의사록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소수파란 모두 감정이 상해 괴로위하던 사람들, 모두 어떤 때는 이런 이유로 또 다른 때는 저런 이유로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대해 감정이 상했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대회에서 퇴장할 정도로 우리에 대해 지독히 ‘감정이 상한’ 분트파와 『라보체에 젤로』파가 있었고, 일반적으로 조직의 탈살, 특히 그들 자신의 조직의 탈살 때문에 엄청나게 감정이 상한『유즈니 라보치』파도 있고, 발언대에 설 때마다 감정이 상하는 것을 견려 내야 했던(왜냐하면 발언할 때마다 항상 바로 같은 것을 했기 때문에) 마흐프 동지도 있고, 마지막으로 규약 제1조와 관련하여 ‘기회주의에 빠졌다는 부당한 비난’을 받음으로써, 또 선거에서 패배함으로써 감정이 상한 마르토프 동지와 악불로드 동지가 있다. 이 모든 엄청난 감정의 손상은, 지금까지 많은 속물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온당치 못한 조롱이나 난폭한 행동 및 평가에 찬 논쟁, 그리고 출입문을 꽉 닫아 버리는 것이나 주목에 의한 위험 때문에 빚어진 우연적인 산물이 아니라, 3년에 걸친 『이스크라』의 사상 활동 전체의 필연적인 정치적 산물이었다. 만약 지난 3년 동안 우리가 헛바타이나 놀린 것이 아니라 실행에 옮겨져야만 할 신념을 표명해 왔다면, 우리는 대회에서 반"이스크라"파와 ‘놀지파’에 대한 투쟁을 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투구 면감을 들어올린 체 전면에 나서 써왔던 마르토프 동지와 함께 우리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게 만들고 있었으므로, 조금이라도, 정말 참으로 조금이라도 악불로드 동지와 마르토프 동지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물그릇은 넘쳐 흐르게 되어 있었다. 양은 걸로 전화했다. 부정은 다시 부정되었다. 감정이 상한 자들 모두는 서로의 원한을 잊어버리고, 서로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면서, “레너주의에 반대하여 봉기하지”는 기치를 내걸었다.

 

봉기란, 선진 분자들이 반동 분자들에 반대하여 봉기할 때 대단히 훌륭한 것이다. 혁명적 진영이 기회주의적 진영에 대해 봉기할 때 봉기는 좋은 것이 다. 기회주의적 진영이 혁명적 진영에 대해 봉기할 때 봉기는 추악한 것이다.

 

플레하노프 동지는, 말하자면 전쟁 포로의 신분으로 이 추악한 일에 가담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다. 그는 ‘다수파’를 지지하는 여러 결의의 저자의 글에서 서로 문구를 앞뒤 연관 없이 남아서는 ‘분풀이를 하려’ 애쓰면서 다음 과 같이 부르겠다는. “불쌍한(poor) 레닌 동지! 그의 정통파적 지지자들은 또 얼마나 훌륭한가!”(『이스크라』 제63호, 부록).

 

좋습니다. 플레하노프 동지, 만약 내가 가난(poor)하다면, 신『이스크라』 편 집국은 완전히 거지운시다. 내가 아무리 가난하다 해도 아직은 당 대회를 외 면해야 할 정도로까지, 나의 기지를 시험하기 위한 자료를 [지방-편집자]위원 회 성원들의 결의안 속에서 구절할 정도로까지 비침해지지는 않았습니다. 내 가 아무리 가난하다 해도, 무심코 서로 문구를 쓰지는 않으나 모든 문제— 조직, 전술, 강령의 문제——에서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의 원칙에 대립되는 원 칙을 완전히 고집스럽게 집착하는 지지자들을 가진 사람보다는 수천 배 더 부 유합니다. 내가 아무리 가난하다 해도, 아직은 그러한 지지자들이 나에게 보내 는 아낌없는 찬사를 공중(公衆)에게 승거야 할 지정에까지는 와 있지 않습니 다. 그러한 행위는 바로 신『이스크라』 편집국이 해야만 하는 것거리입니다.

 

여러분, 러시아 사회민주당의 보로네즈 위원회가 어떠한 입장인지 알고 있 는가? 모든다면, 당 대회 의사록을 읽어 보라. 그것을 읽어 보면, 이 위원회의 노선이 아키모프 동지와 브루케르 동지에 의해서 완전히 대표되고 있음을 알 게 된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대회에서, 당의 혁명적 진영에 대항하여 모든 노선에 걸쳐 써줬고, 플레하노프 동지로부터 포포프 동지에 이르는 모든 사람 들로부터 셀 수도 없이 기획주의자로 낙인 찍혔던 사람들이다. 자, 그런데 이 보로네즈 위원회는 자신의 1월 리플렛(제12호, 1904년 1월)에서 다음의 성명을 보다.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우리 당 생활에서 중대한 사건이 지난해에 일어났다. 러 시아사회민주노동당——그 여러 조직들의 대표의——제2차 대회가 그것이다. 당 대 회의 소집은 복잡한 일이고, 또 현재와 같은 군주제 하에서는 극히 위험하고 곤란 한 일이다. 그러므로 당 대회의 소집이라는 사업이 대단히 불완전한 방식으로 수행 되었다는 것과, 비록 대회가 순조롭게 치러졌지만 당 대회에 제출한 모든 요구를 충족시키지는 못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1902년 협의회에서 대회의 소집 을 위임받은 동지들은 검지되었으며, 대회는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내의 오직 한 경향만을 대표하는 사람들, 즉 『이스크라』파에 의해 준비되었다. 어쩌다 『이스크라』 파가 되지 못했던 많은 조직들은 대회의 활동에 참가하도록 초청받지 못했다. 부분 적으로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당의 강령과, 규약을 작성한다는 대회의 임무는 극히 불안전한 방법으로 수행되었으며, 대표를 자신도 귀약에는 ‘위험한 오해를 불리일으 킬 수 있는’ 중대한 결정이 있음을 시인하고 있다. 『이스크라』과 자체가 대화에서 분열했고, 이전에는 『이스크라』의 활동 강령을 완전히 승인하고 있는 것같이 보였 던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의 많은 유력한 활동가들도, 주로 레난과 플레하노프가 웅 호한 『이스크라』의 많은 견해들이 비실천적임을 알게 되었다. 이 견해들이 결국 대 화에서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현실 생활의 힘과 모든 비『이스크라』과도 참여하 고 있는 실천 활동의 요구는 이론가들의 오류를 급속히 정정해 가고 있으며 대화 이해로 이미 중대한 수정을 초래하였다. 『이스크라』는 매우 변했으며, 전반적으로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모든 활동가들의 요구를 경청할 것을 약속하고 있다. 그러므 로 대화의 결과는 차기 대화에서 수정되어야만 할 것이고, 대표들 스스로 명확히 인정하는 바와 같이 이 결과들은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며, 따라서 당해게는 요지부 동의 결정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는 당 내의 사 태를 명확히 했고, 당의 앞으로의 이론적·조직적 활동에 필요한 많은 자료를 제공 했으며, 또 당 전제의 사업을 위해서는 커다란 교훈적 가치를 지닌 경험이었다. 대 화의 모든 결과와 대화에서 작성된 귀약은 모든 조직들에 의해 고려될 것이다. 그 러나 그것들은 명확히 불완전한 것이기 때문에, 많은 조직들은 그것들만을 지침으 로 삼지는 않을 것이다.

 

보로네즈 위원회는 전당적 사업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으므로, 대화의 조직에 관 한 모든 문제에서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이 위원회는 대화에서 일어난 일의 중요성 을 이해하고, 중앙기관지(주요한 기관지)가 된 『이스크라』가 행한 전환을 현명한다. 당과 중앙위원회 내의 상대가 아직 우리에게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우리들은 당을 조직한다는 어려운 활동이 공동의 노력에 의해 완전하게 되어 가리라는 것을 확신한다. 보로네즈 위원회는 거짓 소문이 나오는 것을 고려하여, 보로네즈 위원회 가 탈당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동지들에게 알린다. 보로네즈 위원 회와 같은 노동자 조직이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을 탈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선해인지를, 이것이 얼마나 당에 대한 모욕인가를, 이 모범을 따르려는 노동자 조직 에게 얼마나 불리한 일인지를 보로네즈 위원회는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분 열을 일으켜서는 안 되며, 모든 자각한 노동자와 사회주의자를 하나의 당으로 통합 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더구나 제2차 대회는 정해 대회였지 창립 대회는 아니었다. 당으로부터의 재명은 당 재판에 의해서만 결정될 수 있는 일이며, 어떠한 조직도 — 심지어 중앙위원회까지도 — 사회민주당의 어떤 조직을 당으로부터 재명 할 권리가 없다. 더욱이 제2차 대회에서 채택된 귀약 제8조에 따르면, 모든 조직은 그 지방 문제에서 자치적이다. 따라서 보로네즈 위원회는 그 자신의 조직상의 견해 를 실행하고, 당 내에서 그것을 옹호할 충분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신『이스크라』 편집국은 제61호에서 이 리플렛을 인용하면서, 이 장벌설의 후반부[2]당과 중앙위원회 내의 상태가……[3]부터 — 편집자는 게재하였으나, 전반 부는 생략하는 쪽을 택했다.

 

부끄러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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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사소한 불쾌감 때문에 커다란 기쁨이 손상받아서는 안 된다

 

연명이 연명 규약은 중앙위원회의 승인을 필요로 한다는 결의안을 부결시킨 것은(연명 의사록, 105쪽), 당 대회 다수파 전체가 즉시 지적한 바와 같이 ‘엄연한 당 규약의 위반’이었다. 이 위반을 원칙적인 사람의 행위로 간주할 때, 이는 순전히 부정부주의이며, 대회 이후의 투쟁 상황 속에서 당 소수파가 당 다수파에게 빛을 갖고자 한다는 인상을 지을래야 지울 수 없게 만드는 것이고 (연명 의사록, 112쪽), 당에 복종하거나 당에 남아 있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연명이, 규약 변경을 요구하는 중앙위원회의 성명에 의거한 결의 안의 채택을 거부한(124~125쪽) 결과 당 조직의 회의로 간주되기를 바라면서 도 동시에 당 중앙기관에 복종하려고 하지 않는 이 회합은 당연이 불법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당 다수파의 지지자들은 콜사나운 회귀에 가담하지 않기 위해서 즉시 이 사이버 당 회의에서 퇴장했다.

 

조직 관계를 판념적으로 이해하는 지식인적 개인주의 — 규약 제1조 문제에 대한 사상적 동요 속에 나타난 — 는 이렇게 해서, 내가 9월, 즉 한 달 반전에 미리 예언하였듯이 실천상에서는 당 조직의 파리라는 논리적 귀결에 이르고 말았다. 그때, 즉 연맹 대회가 끝난 그날 저녁에, 플레하노프는 당의 양중앙기관의 동료들에게 자기로서는 차마 “자기의 동료에게 총을 쏟” 용기가 없으며, “분열하는니 차라리 자기 머리에 총을 쓰는 게 낫고” (제1조에 관한 잘못된 입장에서 나타난 원칙들 때문이라기보다) 사실상으로는 개인적 양보 문제 때문에 지금 이토록 파리적인 투쟁이 벌어지고 있으므로 좀더 큰 해약을 피하기 위해서는 최대한의 개인적 양보를 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플레하노프 동지의 이 방향 전환은 일정한 전당적 의의를 갖는 것으로서 이를 좀 더 정확하게 특정짓기 위해서는, 개인적 대화나 사신(이 방법은 최후의 비상 수단이다)을 갖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플레하노프가 이 문제에 대해 당 전체 앞에서 행한 진술, 즉 연맹 대회 직후, 중앙기관지 편집국에서 내가 사임한 (1903년 11월 1일) 뒤 마르토프파로 충원되기(1903년 11월 25일) 전에 씌어져 『이스크라』 제32호에 발표된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가?』라는 그의 논문을 갖고 판단하는 것이 더욱 합당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가?』의 기본 사상은, 정치에서 완고하거나 지나치게 신탈하거나 양보를 몰라서는 안 된다는 것, 분열을 피하기 위해서 때때로 수정주의자들(그중에는 우리에게 가까워지고 있는 자들, 혹은 일관성이 없는 자들도 있다)이나 무정부주의적 개인주의자들에게 양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다. 이 추상적인 일반 명제가 『이스크라』 독자 전체를 당혹스럽게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의 사상이 고배하고 사람들이 변증법에 대해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뜻이 전달되지 않았다는 플레하노프 동지의 위임 있고 지만한 성명서(추후 여러 논문 중에서는 웃지 않고선 읽을 수가 없다. 사실상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가?』라는 논문이 게재되었을 당시, 이 논문을 이해할 수 있었던 사람은 제네바의 2개의 교외(60)에 — 두 곳 모두 같은 머리글자로 시작하는 — 살고 있던 10여 명령이었다. 플레하노프 동지의 블랭은 대회 이 후 소수파와의 투쟁의 모든 단계에 참가한 10명에게만 보냈어야 할 암시, 비 난, 대수적 부호, 수수께끼 등을 수만의 독자들에게 내놓은 데 있다. 플레하노프 동지가 이 불행에 빠진 것은 운 나쁘게도 그가 내세운 변증법의 근본 원칙, 즉 추상적 진리란 없고 진리란 항상 구체적이다라는 원칙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연맹 대회 이후 마르트프파에 대한 양보라는 지극히 구체적 사실을 추상적 형태로 표현한 것이 올바르지 못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양보 — 플레하노프가 내세운 새로운 기치 — 라는 것은 다음의 두 가지 경우에 정당하며 또 필요한 것이다. 즉, 양보하는 자가 양보를 요구하는 자의 타당성을 인정하는 경우(이 경우에 진실한 정치적 지도자들은 자신의 오류를 공공연하고 솔직하게 시인한다)와 더 큰 해악을 피하기 위해 불합리하고 헤로 운 요구인 하지만 이에 양보하는 경우이다. 현재 검토 중인 논문에서 저자가 후자의 경우를 염두에 두고 있었음은 명백하다. 즉, 저자는 명백히 수정주의자들과 무정부주의적 개인주의자들(이는 지금 모든 당원이 연맹 의사록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다시피 다름아닌 마르토프파이다)에 대한 양보, 분열을 피하기 위해 요구되는 양보에 대해 말하고 있다. 보다시피, 플레하노프 동지의 소위 새로운 사상은 별로 새롭지 않은 동속적 지혜의 편인에 지나지 않는다. 즉, 사소한 불쾌감 때문에 커다란 기쁨이 손상받아서는 안 되며, 사소한 기회주의적 행위와 무정부주의적 빈발이 당의 커다란 분열보다는 차라리 낫다는 것이다. 플레하노프 동지가 이 논문을 발표했을 당시 그는 소수파가 우리 당내의 기회주의적 진영이며 그들이 무정부주의적 수단으로 투쟁하고 있음을 명백히 알고 있었다. 플레하노프 동지는 독일 사회민주당이 베른슈타인과 싸웠던 것과 같이(다시 한 번 작은 것을 큰 것과 비교해도 된다면), 이 개인적 양보라는 수단으로 소수파와 싸울 계획을 제출하였던 것이다. 베델은 자신의 당대회에서 공공연히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베른슈타인 동지(플레하노프가 이전에 부르기 좋아한 것처럼 베른슈타인 각하가 아니라 베른슈타인 동지)만큼 환경에 좌우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우리는 그들을 우리 가운데에다 갖다 놓자. 그런 다음 제국의 회원으로 만들자. 그리고 수정주의자와 싸우자. 그러니 도를 지나친 신랄함(소바케비치 – 파르부스식)으로 수정주의자와 싸우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들을 ‘부드럽게 죽여야’ 할 것이다. 회상컨대, 엠 베르(M. Beer) 동지가 영국 사회민주주의자의 어떤 회합에서 영국의 소바케비치 - 하이드만의 공격에 대해, 독일의 양보 정신, 평화 정신, 온화함, 유연성, 용의 주도함을 옹호하면서 표현했던 것같이. 이와 마찬가지로 플레하노프 동지도 악설로드 동지와 마르노프 동지의 사소한 기회주의와 무정부주의를 ‘부드럽게 죽이기'를 원했다. 플레하노프 동지는 '무정부주의적 개인주의자들'을 이주 명확히 암시한 반면 수정주의자들에 대해서는 고의로 막연하게 말하였다. 이것은 그가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 기획주의로부터 정통주의로 전환하고 있었던 '라보체에 젤로'파이지, 정통주의로부터 수정주의로 전환하기 시작한 악셀 로드와 마르토프는 아니라는 인상을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소박한 군사적 책략'일 뿐이며, 당의 공개성이라는 포화를 견딜 수 없는 빈약한 보루였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고 있는 정치적 시점의 구체적 상황을 잘 알고 있고 플레하노프 동지의 심리를 통찰한 사람이라면, 당시의 나로서는 내가 취해진 행동 이외의 다른 방도가 없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편집국을 넘겨주었다고 나를 비난한 다수파의 지지자들을 향하여 이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연맹 대회 이후에 플레하노프 동지가 전환하여 다수파의 지지자로부터 어떤 회생을 치르더라도 조정한다는 입장의 지지자로 되었을 때, 나는 이 전환을 가장 좋은 의미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플레하노프 동지는 자신의 논문 속에서 우호적이고 진정한 화해를 위한 강령을 주장하려 하였던가? 그런데 이러한 강령은 대개 당사자 쌍방이 잘못을 진심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귀착된 다. 플레하노프 동지가 다수파에게 지적한 잘못은 무엇이었는가? 수정주의자들에 대한 소비자비치식의 지나친 신발함이었다. 플레하노프 동지가 이 때 무엇을 염두에 두었는지, 자신이 말한 당나귀 운운하는 조동인지, 아니면 (악별 로드가 있는 앞에서) 경찰하게도 무정부주의와 기회주의에 대하여 언급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플레하노프 동지는 ‘추상적으로’, 더욱이 타인에게 잘못을 온근히 전가하면서 진술하려고 했다. 물론 이것은 말하는 사람의 취향의 문제이다. 그러나 나는 공개적으로, 『이스크라』파에게 보내는 편지나 또 연맹 대회 에서 나의 개인적인 신발함을 시인하였다. 내가 다수파의 이러한 ‘잘못’을 어떻게 시인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소수파에 대해서는 플레하노프 동지는 그들의 오류를 수정주의(당 대회에서의 기회주의에 대한 그의 비평과 연맹 대 회에서의 조례스주의에 대한 그의 비평을 참조)와 분열애까지 이르게 하는 무 정부주의라고 명백히 지적했다. 개인적 양보와 일반적인 모든 ‘부드러움’으로 이 오류들을 시인하게 하고 그 오류로 인한 해악을 약화시키려는 시도를 어찌 내가 방해할 수 있었겠는가? 플레하노프 동지가 그의 논문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가?』를 통해, 수정주의자 중에서 “어느 정도의 일관성을 결여하고 있 다는 이유만”으로 수정주의자가 된 “적을 용서하라”고 직접 우리들에게 호소 하는 마당에 내가 그런 시도를 어찌 방해할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내가 설 령 이 시도를 믿지 않았다 하더라도, 내가 중앙기관지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양보하고 다수파의 입장을 방어하기 위해 중앙위원회로 이동하는 것 말고 다 른 방도가 있었겠는가? 만약 10월 6일자 편지에서처럼 내가 우리의 분쟁을 오로지 ‘개인적 분노’의 탓으로 여기고 있었을 뿐이라면, 나는 이 시도의 실현 가능성을 절대로 부정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기꺼이 이 임박한 분열의 모든 책임을 나 혼자 집어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다수파의 입장을 옹호하는 것이 내 정치적 임무라고 생각했으며 또한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 점에서 플레하노프 동지를 믿는다는 것은 곤란하고 위험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 든 점에서 보아 명백한 바와 같이, 플레하노프 동지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지 도자는 자신의 전투적 성향이 정치적 분별력과 상지될 때에는 그 성향에 따라 서는 안 된다”는 자신의 단언을 변증법적으로 해석하여, 총을 쏘아야 한다면 다수파를 쓰는 것이 사례 깊은 것이다(11월의 제네바의 상황을 보면)는 의미로 해석할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수파의 입장을 옹호하는 것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플레하노프 동지는 — 변증법은 구체적이고 다변적인 고 찰을 요구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한 채 — 혁명기의 자유(?)의지의 문제를 언급할 때, 혁명기에 대한 신뢰의 문제, 당의 어떤 진영을 지도하고 있는 ‘프 롤레타리아트의 지도자’에 대한 신뢰의 문제를 점검게 회피하였기 때문이다. 무정부주의적 개인주의에 대해 말하고, 규율의 위반에 대해 ‘매매로’ 못 본 체하라고 충고하고, “혁명적 사상에 대한 헌신성과는 전혀 무관한 감상에 근 거한” 지식인적 방중에 대해 ‘매매로’ 양보할 것을 훈계하면서도, 플레하노프 동지는 당 내 다수파의 자유(?)의지도 아울러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과 무정부주 의적 개인주의자들에 대한 양보의 헌도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실천적 활동가 라는 사실을 깨달게 되어버렸다. 유치한 무정부주의적 년세스와 문헌상에서 써우는 것은 쉽지만, 같은 조직 내에서 무정부주의적 개인주의자들과 실천적 인 활동을 함께 수행하기만 여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실천에서 무정부주의에 대한 양보에 한도를 결정하려고 하는 문필가는 자신의 터무니없고 공론가적인 문필가격 자만심을 스스로 폭로할 뿐이다. 플레하노프 동지는 새로운 분열이 생기면 노동자들은 우리를 이해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엄숙히(위임을 더해 주 느라 바자로프[62])의 말을 빌려 쓰기도 하면서)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 시에 그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이 그 참된 구체적 의의를 이해 하지 못할 여러 종의 논문이 신[63]이스크라, 지면에 계속해서 발표되는 사태의 단서를 열었다. 한 중앙위원이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가?』라는 논문의 교정 해를 읽고 플레하노프 동지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한 것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 몇몇 간행물(당 대회 및 연맹 대회 의사록)을 다만 약간이라도 줄 여 보려는 플레하노프 동지의 계획은 바로 이 논문 때문에 엉망이 되어 버릴 것이고, 이 논문은 호기심을 일으킬 것이며 자극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대단 히 불명확한 것을 못사람에게 판결받으려는 것이어서, “무슨 일이 생겼는가?” 하는 당혹감을 불리일으킬 것이 틀림없다고, 플레하노프 동지의 이 논문은 그 추상성과 예매한 일시 때문에 사회민주당의 적대 진영에게 축제의 분위기— 『레볼루치오나야 로시아』(혁명의 러시아)63)의 지면에서는 캉캉춤을 추게 하고, 『오스보보즈제니예』의 철저한 수정주의자들에게는 황홀한 기쁨을 준— 를 안겨 주었다는 사실 또한 놀랄 일이 아니다. 이 우습고도 슬픈 오해— 나 중에 플레하노프 동지가 그토록 우습고도 슬프게 벗어나려고 했던— 의 근원 은 바로 변증법의 기본 원칙, 즉 구체적인 문제는 그 일체의 구체성 속에서 규명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위반한 데 있다. 특히, 스트루베 씨의 기쁨은 지극 히 당연한 것이었다. 그에게는 플레하노프 동지가 추구했던(그러나 성공할 수 없었던) 그 ‘훌훌한’ 목적(부드럽게 죽이는 것)은 전혀 관심 밖이었다. 지금 모든 사람들이 분명히 목적하다시피 신『이스크라』지를 통해 시작된 우리 당의 기획주의적 진영이론의 전환을 스트루베 씨는 환영하였으며 또 환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떠한 사회민주당 내의 기획주의로의 어떠한 전환을— 비록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고 일시적이라 할지라도— 환영하는 것은 러시아 부르주 아 민주주의자들만이 아니다. 교활한 적이 내리는 판단에는 완전한 오해란 좀 처럼 없는 법이다. 어떤 사람의 오류는 누가 그를 칭찬하는가 보면 알 수 있 다. 플레하노프 동지가 독자의 부주의함을 기대하며, 그들로 하여금 다수파가 충원 문제에서 개인적인 양보를 고집스럽게 반대한 반면 당의 좌의으로부터 우의으로의 이탈에는 반대하지 않은 것처럼 보게 하려는 것은 쓸데없는 것이 다. 문제는 플레하노프 동지가 분열을 피하기 위해 개인적 양보(이것은 대단 히 칭찬할 만한 일이다)를 했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관성을 결여한 수정주의자들 및 무정부주의적 개인주의자들과의 싸움의 필요성을 충분히 깨 닫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정부주의에 대한 실천상의 가능한 양보의 한도에 대해 그와 의견을 달리한 다수파와의 싸움을 선택한 데 있다. 문제의 요점은 그가 편집국의 인적 구성을 변경시켰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수정주의 및 무정부주의자와의 싸움이라는 자기의 입장을 저버리고 당 중앙기관 지에서 이 입장의 옹호를 그만둔 것에 있다.

 

그 당시 다수파의 유일한 조직적 대표자였던 중앙위원회에 대해서 말하면, 플레하노프 동지는 당시 오로지 무정부주의에 대한 실천상의 가능한 양보의 한도에 대해서만 중앙위원회의 의견을 달리했다. 내가 탈퇴함으로 해서 ‘부드럽게 죽인다’는 정책을 자유롭게 행할 수 있게 된 11월 1일부터 거의 한 달이 지나갔다. 플레하노프 동지는 온갖 접촉을 통해서 이 정책의 타당성을 점검할 말은 기회를 가졌다. 플레하노프 동지는 그 시기에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가?』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는데, 이 논문은 탈퇴자면 마르토프파가 편집부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유일한 입장권이었으며 지금도 그려진다. 수정주의(우리가 싸움이 하면서도 용서해야 하는)와 무정부주의적 개인주의(우리가 환심을 사면서 부드럽게 죽여야 한다)라는 표어가 이 입장권에 강조의 이탈력체로 씌여졌다. 제군들, 제발 들어와 주시고, 나는 당신들을 부드럽게 죽이겠소—이것이 바로, 플레하노프 동지가 그 초대장을 통해서, 편집국의 자신의 새로운 동료들에게 한 말이었다. 중앙위원회로서는, 자신의 견해에서 보아 무정부주의적 개인주의에 대한 실천상의 허용 가능한 양보의 한도에 관하여 자신의 최후의 탈(최후통집, 즉 평화의 가능성에 대한 최후의 탈)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당연하다. 당신들은 화해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의 유화와 평화에 오와 양보 정신 등등을 입증할 만한 여러 지위를 제공할 때나(당 내의 평화—는 정이 없다는 의미에서의 평화가 아니라, 무정부주의적 개인주의가 당을 파괴하지는 않는다는 의미에서의 평화—가 보장된다면 그 이상은 줄 수가 없다), 이 지위들을 받아들이고 아키모프로부터 플레하노프에게로 조금씩 다시 전환해 오시고 혹은 그것이 아니라 당신네들의 입장을 고집하고 발전시켜서 중국적으로(설명 조직 문제 분야만일지라도) 아키모프 쪽으로 전환하여 플레하노프가 아니라 당신들이 옳다고 당을 설득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당신들 자신의 문턱가 그룹을 만들고 차기 대회 대표 선출권을 확보하여 정정 당당한 투쟁과 공개적 논쟁을 통해 다수를 장악하는 일에 착수하시고, 1903년 11월 25일발 중앙위원회 최후통집 속에서 마르토프파에게 매우 분명하게 제시한 이 양자택일(『게임 상태』와 『연맹 의사록 주체』를 참조하라*)은 1903년 10월 6일에 플레하노프와 내가 구편집국원들에게 보낸 서신의 내용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다. 이 서신의 내용은 개인적 분노(그렇다면, 최악의 경우라도 ‘충원’할 수도 있다)인가 아니라 원칙적 의견 차이(그렇다면, 우선 당을 설득해야 하며, 그 다음에야 비로소 중앙기관들의 인적 구성의 변경에 대해 말해야 할 것이다)인가 하는 것이었다. 마르토프 동지가 바로 그때 그의 신앙고백 『다시 소수파가 되어』 속에서 다음과 같이 써 준 덕분에 중앙위원회는 마르토프파가 스스로 이 까다로운 선택을 하도록 기꺼이 맡길 수 있었다.

 

소수파는 하나의 명예를 우리의 것으로서 주장한다. 그것은 ‘폐배자’가 되어도 새로 온 당을 결성하지 않는다는 우리 당의 역사상 최초의 실례를 보인다는 명예이다. 소수파의 이러한 입장은 당의 조직상의 발전에 대한 그들의 전해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과거의 당 활동과 관계 맺어져 있음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수파는 ‘지면(紙面)의 혁명’의 신비적 힘을 믿지 않으며, 자신들의 노력이 생활 속에 내린 깊은 뿌리야말로 당 내부에서의 순수한 사상적 선언에 의한 자신들의 조직 원칙의 승리를 보장해 준다고 생각한다(나의 강조).

 

이 얼마나 자신만만하고 훌륭한 말인가! 그리고 이것이 말뿐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된다면 또 얼마나 쓰라릴까……. 마르토프 동지, 당신에게는 미만하지만, 나는 당신들이 받을 지각이 없는 이 ‘명예’를 다수피를 대신하여 우리들의 것이라고 주장하겠소. 이 명예는 참으로 귀중한 것이며, 정말전을 벌 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요. 왜냐하면 써를 근성의 전통이 분열에 대한 대단 히 경솔한 자세와, ‘싸울 것인가 화해할 것인가’라는 격언의 극단적인 적용을 우리에게 유산으로 남겼기 때문이었다.

 

커다란 기쁨(단일의 당을 갖는 것)은 사소한 불쾌감(충원 문제를 둘러싼 꼴 사나운 입씨름)보다 훨씬 중요시되어야 했으며 훨씬 중요했다. 나는 중앙기관 지를 사임했고, (나와 플레하노프가 중앙기관지 편집국의 대표로 당 평의회에 파견했던) Y[갈페린의 암호 — 편집자] 동지도 평의회를 사임했다. 마르토프와는 평화에 대한 중앙위원회의 최후의 권고에 선전포고와도 같은 편지(앞에 인용 한 출판물들을 보라)로 대답했다! 그때, 바로 그때에야 비로소 나는 편집국에 공개성의 문제를 제기하는 편지(7 이스크라, 제53호)를 썼다. 만약 수정주의에 대해 말하고, 일관성의 결여와 무정부주의적 개인주의 및 여러 지도자들의 폐 배에 대해 논쟁하게 되었다면, 여러분, 사실을 감추지 말고 일체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합니다 — 바로 이것이 공개성에 대한 서신의 내용이었다. 편집국은 분연히 화를 내며, “써클 생활의 사소함과 꼴사나움”(『이스크라』 제53호)을 구태여 일으키지 말라고 근엄한 훈계조로 이야기했다.64) 오, 그렇습니까! “써를 생활의 사소함과 꼴사나움”이라? …… 과연, es ist mir recht(훌륭합니다 — 편집자). 여러분, 나도 거기에 찬성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충원’ 문제를 둘러싼 집착이 바로 써클적 꼴사나운 입씨름임을 여러분 자신이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옳다. 그런데 써클적인(그와 같다고 할 수 있는) 편집국이 같은 제53호 사설에서 관료주의와 형식주의 등에 대해 지껄이고 있는 것은 도대체 웬 불협화음인가? 당신들은 또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중앙기관지의 충원을 둘러싼 싸움의 문제를 제기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것은 물사나운 입씨를 올 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중앙위원회의 충원 문제를 제기할 것인데, 이 때 이것을 물사나운 입시름이라 부를 것이 아니라 ‘형식주의’에 대한 원칙적인 의견 차이라 불리야 할 것이다 하고, 안 될 말이오, 존경하는 동지 여러분. 미안하지만 나는 당신들이 그렇게 하도록 할 수 없다. 당신들은 나의 요새를 포격하려고 하면서 나에게 대포를 넘겨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참 옷기는 사람들이군! 그래서 나는 『편집국에 보내는 편지 — 나는 왜 『이스크라』 편집국을 사퇴하였는가?』를 『이스크라』와는 별도로 인쇄하였는데, 그 속에서 나는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간략히 언급하면서, 당신들에게는 중앙기관 지름, 우리에게는 중앙위원회를 배정하는 것에 기초하여 평화가 가능한가 이 뿐만 아니라 다시 한 번 물었으며, 그렇게 되면 어느 쪽도 당 내에서 ‘따돌림당 했다’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고 그러고 나서 우리는 기회주의로의 전환에 대해 처음에는 문헌상에서 그 다음에는 아마도 제3차 당 대회에서 논쟁할 것이 다 하고 말했다.

 

평화에 관한 이 언급에 대한 대답으로서 적들은 평의회까지도 포함한 그들의 모든 대포의 포문을 열었다. 탄환이 내 머리 위에 폭우처럼 쏟아졌다. 독재자, 슈바이처, 판로주의자, 형식주의자, 초중앙, 일면적이다, 편협하다, 완고하다, 의심 많다, 호전적이다……. 좋다. 친구들! 말 다 했소? 더 이상 할 말은? 당신들 포문은 정말 형편없을……

 

이제 내가 말할 차례이다. 신『이스크라』의 조직상의 새로운 견해의 내용을 보자. 그리고 우리가 제2차 대회의 토론과 표결의 분석을 통해서 그 참된 성질을 이미 명확히 한 바 있는 우리 당의 ‘다수파’와 ‘소수파’로의 분열이 이 견해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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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대회 이후 — 투쟁의 두 가지 방법

 

지금까지 우리들이 해 온 대화에서의 토론과 표결의 분석은 대화 이후에 일어나는 모든 것을 맹아적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우리 당 내 위기의 이후 단계를 대략 가능할 수 있게 해 준다.

 

마르트프와 포포프가 선거를 거부한 것은 당 내 여러 섹체들 사이의 당적 투쟁에 즉시 꼴불견(squabbling)의 분위기를 물고 왔다. 피선되지 못한 편집인들이 아키모프와 마르티노프 편으로 전환할 결심을 한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모든 것을 일차적으로 격앙된 분위기 탓으로 돌린 글래브로 동지는 대회가 끝난 바로 그 다음날, 나와 플레하노프에게 다음과 같이 제의하였다. 즉, 화해할 것과, 편집국으로부터 평의회로의 대표 선출을 보장한다(즉, 2명의 대표 중 1명은 반드시 당 다수파로부터 나온다는) 조건으로 4명 모두를 ‘충원’하지는 것이었다. 이 조건은 플레하노프와 내가 보기에는 합리적인 듯 싶었다. 왜냐하면 [마르트프 측이 — 편집자] 이 제안을 승락하는 것은, 대회에서 법한 오류를 압력적으로 시인하는 것이며,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원한다는 것이며, 또한 아키모프와 마르티노프 및 에고로프와 마호프보다 나와 플레하노프를 더 가까이 하려는 희망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충원’에 대한 양보는 개인적인 성격을 따랐는데, 격앙된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평화를 회복할 이 개인적 양보를 거절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나와 플레하노프는 동의하였다. 그러나 구편집국 다수파는 이 조건을 거부하였다. 글래브프는 떠나갔다. 우리는 앞으로 무엇이 일어날 것인가, 즉 마르트프가 대회에서 취한(중간파 대표 포포프를 반대한) 충성스런 입장을 고수할 것인가,56) 아니면 마르트프가 그 뒤를 따랐던, 분열을 기대했던 동요 분자들이 우위를 점할 것인가를 판명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문제에 직면했다. 즉, 마르트프 동지가 대회에서의 자신의 ‘연합’을 그 경우에만 한정된 정치적 사실(1895년의 베벨과 폴마르의 연합이 그 경우에만 한정된 것이었던 것처럼, 작은 것을 큰 것과 비교해도 된다면)로 간주할 것인가, 아니면 이 연합을 견고히 하고, 대회에서 오류를 범했던 사람은 바로 플레하노프와 나눔을을 증명하려고 전력하며, 우리 당 내 기회주의적 진영의 실질적 지도자가 되려고 할 것인가? 다시 말하면 문제는 꼴불견인가 당적인 정치투쟁인가였다. 대회가 끝난 다음날에, 당시 이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중앙기관들의 성원의 전부였던57) 우리 세 사람 중에서 글래브프는 전자의 해결법에 누구보다도 기울어져, 서로 다른 어린애들을 화해시키는 데 전력했다. 후자의 해결법에 누구보다도 기울어져 있던 사람은 플레하노프였는데, 속담에도 있듯이 그는 이벨이 떠들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번에는 ‘중간파’ 혹은 ‘늪지파’의 역할을 맡아서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구두상의 설득을 현재의 시점에서 재현하려는 시도는 어쩔 수 없이 흔한스런 일일 것이니, 나는 마르토프와 플레하노르의 나쁜 선례를 따르진 않겠다. 그러나 내가 ‘이 스크라, ‘소수파’의 한 사람에게 보냈던 설득의 편지 가운데 일부를 전제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마르토프가 편집국에 들어가기를 거절한 것, 마르토프와 그 밖의 다른 당 문필가들이 기고를 거절한 것, 여러 사람이 중앙위원회에서 활동하기를 거절한 것, 그리고 보이콘 및 소극적 저항을 선전하는 것, 이 모든 것은 설령 마르토프와 그의 동료들의 진의는 그렇지 않은 것이라 해도, 반드시 당 내에 분열을 초래할 것입니다. 마르토프는 (그가 대체에서 그렇게도 단호하게 취했던) 충성스러운 입장을 고수한 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고수할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말한 결과는 불가피할 것입니다. ......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물이 보았습니다. 실제로 무엇이 우리를 갈라서게 했는가? ...... 나는 대화의 일체의 사건들과 인상을 음미하면서, 내가 종종 몹시 격앙된 분위기 속에서 ‘흥분하여’ 행동하고 처신했음을 인정합니다. 또 만약 분위기, 반발, 항변, 투쟁 등에 의해 자연스럽게 생긴 그것들을 허물이라고 할 수 있다면 나는 누구에게라도 나의 허물을 기꺼이 인정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격앙된 투쟁 속에서 실현된 것과 달리 성과들을 지금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나는 그 성과들 중에 당에 유해한 것이라든가 소수파에 대해 모욕 또는 떨시를 주는 것이라면 하나도, 정말로 하나도 찾아낼 수 없습니다.

 

물론 소수파로 남아 있게 된 바로 그 사실만은 기분 상하는 일이겠지만, 그러나 우리가 어느 누구를 ‘중앙파’거나 어느 누구를 모욕하고 창피를 주려 했다는 생각에 는 단호히 반대합니다. 그런 일은 절대로 없었습니다. 정치적 의견 차이가 있다고 해서 파워차다거나 기만적이며 음모적이다 하는 식의 지금과 같은 절박한 분열의 분위기 속에서 점점 더 자주 듣게 되는 저속한 말로 상대방을 비난함으로써 사건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용납할 수 없고, 용납되어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적어도 비이상적 태도의 극히이기 때문입니다.

 

나와 마르토프는 이전에 수십 번이나 그랬던 것처럼 정치상의(또는 조직상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규약 제1조 문제에서 폐배한 나는 나에게(그리고 대회) 남아 있던 문제에서 그 폐배를 실용하기 위해 모든 힘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한편으로는 엄격한 『이스크라』적 중앙위원회를 성취하기 위해, 다른 한편으로는 편집국 3인조를 성취하기 위해 매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이 3인조가 나대함과 느슨함에 젖은 기구가 아니라 공식적 기관으로 될 수 있는 유일한 것으로 생각하며, 그 모든 성원들은 항상 어떠한 개인적 사정이나 감정을 상하게 할지도 모른다거나 탈퇴할지도 모른다는 등의 어떠한 우려에도 상관없이 자신의 당격 견해를 피력하고 응호할 수 있는 진정한 중앙부가 되어야 할 유일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대회에서 여러 가지 사건이 일어난 후에는, 어떤 점에서 마르토프에 반대하는 정치, 조직 노선을 법제화한 것이 바로 이 3인조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확실히 그렇습니다. 이것 때문에 결렬되어야 합니까? 이것 때문에 당이 깨어져야 합니까? 시위 문제에서는 마르토프와 플레하노프가 나에 반대하지 않았는가요? 그리고 강령 문제에서는 나와 마르토프가 플레하노프에 반대하지 않았는가요? 항상 3인조의 한쪽이 다른 둘을 반대하지 않았는가요? 조직상, 정치상 마르토프 노선의 이 독특한 색채를 조직적, 정치적 측면에서 오류라고 『이스크라』 다수파가 『이스크라』 조직 내에서 또 대회에서 판단했다 하더라도, 이 판단을 ‘음모적’이고 ‘선동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정말로 어리석지 않은가요? 이 다수파를 ‘무퇴한’이라고 부르며 그들을 비난하면서 이 사실을 말로써 회피하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지 않은가요?

 

반복해서 말하지만 나는 대회의 『이스크라』 다수파와 마찬가지로, 마르토프가 취한 노선은 옳지 않았으며 그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이렇게 바로잡으려 하는 것에 대해 화를 내고 모욕당했더라면 생각하는 것은 비이상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중상하지’ 않았으며, 지금도 ‘중상하고’ 있지 않고, 또한 ‘활동으로부터 배제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중앙기관으로부터 배제되었다고 해서 분별이 일어난다는 것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어리석은 것입니다.

 

나는 나의 이 문서를 지금 재특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설명은, 한편으로는 신발하고 격양된 공격에 의해 야기될 수 있는(그리고 격렬한 투쟁에서는 불가피한) 개인적 비판 및 개인적 격분과, 다른 한편으로는 특정한 정치적 오류 및 특정한 정치 노선(우익과의 연합) 사이에 즉시 명확한 경계선을 그으려는 다수파의 노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문서가 입증하고 있듯이, 소수파의 소극적 반향은 대화 직후에 시작되었으며, 그것에 대해 우리는 즉각 다음과 같은 경고를 하였다. 즉, 이것은 당의 분열로의 일보이며, 대화에서 향한 그들의 충성 선언과 정면으로 모순되며, 활동으로부터 당원을 배제하려는 생각을 누구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 분열은 단지 중앙기관들로부터 배제되었다는 이유만으로(즉, 피선되지 못한 까닭에) 생긴 것이며, 그래서 우리 사이의 정치적 의견 차이(대화에서 잘못된 노선을 취한 것이 마르트르인가 아니면 우리인가 하는 문제가 아직 해명되지 않았고 또 해결되지 않은 한 불가피한)가 점점 더 비난과 의심을 수반한 불불건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고하였다.

 

그러나 경고는 횟수고었다. 소수파의 행동은 가장 동요하는, 당을 가장 하찮게 여기는 분자들이 그들 사이에서 우세를 점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것 때문에 나와 플레하노르는 글래보르의 제안에 대해 행했던 동의를 철회해야 했다. 왜냐하면 소수파가 원칙에서뿐만 아니라 당에 대한 기본적인 충성심에서조차 자신들의 정치적 동요를 행동으로 증명하고 있다면, 그 유명한 ‘연속성’에 대한 그들의 허용소리가 무슨 가치가 있을 수 있겠는가? 자신들의 견해 차이가 새롭고 점점 커져 간다고 솔직히 선언한 사람들이 자신들을 ‘충원’하라고 다수파의 당 편집국에 요구하는 것이 완전히 불합리하다는 것을 플레하노르만큼 재치 있게 비슷한 사람은 없었다! 새로운 의견 차이가 출판물 형태로 당에 공표되기도 전에, 중앙기관들 내의 당 다수파가 자발적으로 자신을 소수파로 전환시키는 경우가 도대체 세상 어디에 있었던가? 먼저 의견 차이를 서술해야 하고, 그 차이가 얼마나 심오하며 중요한가를 당이 심의해야 하며, 당이 제2차 대화에서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 증명되어야 한다! 아직 알려지지도 않은 의견 차이를 빙자하여 이와 같은 요구를 했다는 사실은 그러한 요구를 하는 사람들이 매우 불안정하다는 것, 정치적 차이가 뿐 아니라 임체름에 완전히 압도되고 있다는 것, 당 전체도 자기 자신의 신념도 완전히 경시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원칙상의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자신의 입장을 관찰시키고자 하는 기관 내에서 자신이 다수파가 되기(비공식으로)도 전에 상대를 설득하기를 거부했던 사람은 아직까지 없었으며 또 앞으로도 없을 것이 다.

 

마침내 10월 4일, 플레하노르 동지는 이 불합리한 사태를 종식시키기 위한 마지막 시도를 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새로운 한 명의 중앙위원의 참가 하에 5명의 구편집국원의 회의가 열렸다. 플레하노프는 ‘다수파’의 2명에 ‘소수파’ 4명을 ‘충원’하라는 요구가 얼마나 불합리한 것인가를 징장 3시간 동안 증명하려고 하였다. 그는 그들 중 2명을 충원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우리가 어느 누구를 ‘유린하고’ 억누르고, 포위하고, 처형하고, 매장하고자 한다는 모든 두려움을 없애고, 다른 한편으로는 당 ‘다수파’의 권리와 입장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2명의 충원인도 거부되었다.

 

10월 6일, 플레하노프와 나는 구『이스크라』 편집국원 전원과 그 기고자의 한 명이었던 트로츠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공식 편지를 썼다.

 

천예하는 동지들,

중앙기관지 편집국은 당신들이 『이스크라』와 『자리아』에 참가를 회피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유감의 뜻을 표명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2차 당 대회 직후에 또 그 뒤에 여러 번 반복해서 협력해 주기를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들로부터 단 하나의 기고도 받지 못했습니다. 중앙기관지 편집국은 편집국의 어떠한 행동도 당신들의 회피를 정당화해 주는 것이 아닐수. 당 중앙기관지에서 당신들이 활동하는 데 어떠한 개인적 노여움도 장애가 될 수 없음을 두밀할 나위가 없습니다. 반면, 만일 당신들의 활동 회피가 우리와의 어떤 의견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라면, 이 의견 차이를 상세히 개선하는 것이 당에 자극히 유리하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더욱이 그러한 차이의 본질과 깊이를 가능한 한 조속히, 우리가 편집하고 있는 출판물의 지면을 통해 당 전체에 설명하는 것이 지극히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독자가 보는 바와 같이, ‘소수파’의 행동이 개인적 노여움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기관지(그리고 당)에 새로운 방침을 부여하고자 하는 의도인지, 만일 그렇다면 도대체 어떠한 방침인지 아직 우리에게는 참으로 명확하지 않다. 지금 만일 이 문제를 해명하기 위하여 70명의 박사를 일에 착수시켜 그들로 하여금 임의의 기록과 임의의 증언을 연구하게 한다 하더라도, 그들 역시 이 뒤엄한 혼란을 해명해 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질전의 뒤엄함을 묻는다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한 것은 끊어 버리든지 아니면 한쪽에 제쳐 두어야 한다.

 

10월 6일자 편지에 대해 악셀로드, 자술리치, 스타로베르, 트로츠키 및 콜츠프는, "이스크라나 가 신뢰질진의 손에 넘어간 이후, 이 편지의 서명자들은 전혀 참여하지 않고 있다는 두어 줄의 답신을 보내 왔다. 마르토르는 이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전해 주었으며 아래와 같이 대답하여 우리에게 경의를 표하였다.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중앙기관지 편집국 귀하

친애하는 동지들에게,

당신들의 10월 6일자 서신에 답하여, 나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자 합니다. 한 중앙위원의 참석 하에 열렸던 10월 4일의 회의 이후, 같은 기관지에서 함께 활동한다는 문제에 관한 우리들의 토론은 모두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이 회의에서, 평의회로 보내는 우리의 "대표"로서 레난 동지를 선출한다는 약속을 조건으로 약설로드, 자술리치, 스타로베르 및 본인을 편집국에 합류시킨다는 당신들의 제안을 당신들이 스스로 거부한 이유에 대해 당신들은 대답을 거절하였습니다. 당신들이 당신들 스스로 증인을 앞에서 선언한 것을 이 회의에서 공식적으로 표명할 것을 반복해서 회피한 이후, 내가 현 상황에서 "이스크라나에서 활동하기를 거절하는 이유를 당신들에게 편지로서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필요하다면, 당 전체 앞에서 자세히 설명할 것입니다. 하지만 당은 편집국과 평의회에서 활동해야 한다는 당신들의 반복된 제안을 내가 왜 거부했는지는 제2차 대회 의사록으로부터 이미 알 수 있을 것 입니다.……

 

엘 마르토프

 

이 편지는 앞에서 서술했던 문서들과 함께, 충성스런 투쟁 방법과 충성스럽 지 못한 투쟁 방법의 문제, 즉 마르토프가 자신의 게임 상태 속에서 그렇게도 열심히(감탄부호나 점선으로) 희망하고 있는 문제, 보이론, 조직 해체, 무정부 상태, 분열의 준비에 대한 문제를 반박의 여지 없이 해명해 주고 있다.

 

우리는 마르토프와 그 밖의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의 의견 차이를 개진하라 고 제안했고, 무엇이 문제이고 그들의 의도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술직히 설 명해 달라고 요청했으며, 기분을 가라앉히고 제1조에 대한 오류(우의으로 전 향한 그들의 오류와 밀접히 관련된)를 냉정하게 분석하도록 권고했다. 그러나 마르토프와 그 동료들은 의논하기를 거절하고, “우리는 포위공격당하고 있다! 우리는 유린당하고 있다!”며 울부짖었다. 이 ‘무시무시한 말’에 대해 아무리 조 소를 해 주어도 이러한 희극적 질규의 열정을 석히지는 못했다.

 

함께 활동하기를 거절하는 사람을 도대체 어떻게 포위공격할 수 있는가?- -우리는 마르토프에게 물었다. 소수파이기를 거절한 소수파를 어떻게 확대하 고 ‘유린’하며 억압할 수 있는가? 소수파가 된다는 것은 반드시 혹은 불가피하 게 불이익을 수반하는 것이다. 이 불이익이라는 것은, 어떤 문제에서 투표에서 것을 때라도 그 조직에 참여하는가, 혹은 그 조직 밖에 남아서 그 조직을 공 격하고 결국엔 견고한 포대의 포화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게임 상태’에 대한 마르토프 동지의 울부짖음은, 소수파가 된 사람들에 대 해서 부당하고 충성스럽지 못한 방식으로 투쟁이 행해지거나 지배가 행해지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인가? 오직 이러한 주장만이 약간이라도 이치에 맞는 말이다(마르토프의 입장에서는). 왜냐하면, 반복하건대, 소수파가 된다는 것은 반드시 혹은 불가피하게 불이익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으로 우스운 것은 마르토프가 의논하기를 거절하는 한 그와 투쟁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했 으며 소수파가 소수파이기를 거절하는 한 소수파를 지배하는 것도 전혀 불가 능했다는 것이다!

 

마르토프 동지는 플레하노프와 내가 편집국에 있는 동안 중앙기관지 편집 국이 권리를 악용하였거나 월권 행위를 하였다는 것을 보이는 단 하나의 사실 도 들지 못했다. 현재 마르토프 동지가 자신의 『게임 상태』 속에서 아무리 발 버등친다 해도, 게임 상태에 대한 절규가 단지 무력한 비판일 뿐이라는 것은 반박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마르토프 동지와 그 동료들이 대회가 임명한 편집국에 대해 반대하는 합리적 논거를 얼마나 완전히 결여하고 있는가, “우리는 농도가 아니다!”(『계열 상대』, 34쪽)라는 그들의 표어가 가장 잘 보여준다. 자신은 대중조직과 대중 규율을 초월하여 있는 ‘선택된 인물’ 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부르주어적 지식인의 심리가 여기에서 대단히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우리는 농도가 아니다”는 말로써 당 내에서의 활동의 거절을 설명하는 것은 자신들의 정체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며, 논리의 완전한 결핍, 불만에 대한 어떤 동기나 어떤 적절한 이유를 제시할 만한 능력의 완전한 부재를 고백하는 것이다. 플레하노 프와 나는 우리들의 행위가 그들의 거절 이유가 될 수 없음을 선언했고 그들 에게 의견 차이를 개진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그들의 대답은 “우리는 농도가 아니다”(충원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어떠한 흥정에도 도달하지 않았음을 덧붙이면서)는 것이 전부였다.

 

제1조에 대한 논쟁에서 기회주의적 논리와 무정부주의적 설교의 경향을 나 타내면서 이미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었던 지식인적 개인주의의 눈에는 모든 프롤레타리아적 조직과 규율이 농노제처럼 보이는 것이다. 독자 여러분도 곧 알게 되겠지만, 이러한 ‘당원’과 당 ‘간부’의 눈에는 새로운 당 대회조차 ‘선택 된 인물’에게는 무섭고 참가 어려운 농노제적 기관으로 보인다……. 당원이라 는 칭호를 이용하고는 싶지만, 자신들에게 부여된 당원이라는 칭호가 당의 이 익, 당의 의지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이 ‘기관’이 참 으로 무서운 것이다.

 

신『이스크라』 편집진에게 보낸 내 편지 속에 일일이 열거되어 있고 또 마 르로프가 『계열 상대』 속에서 발표한 위원회의 결의문들은, 소수파의 행위가 대회의 결정들에 대한 불복증의 연속이었고, 적극적 실천 활동의 교란이었을 을 사실로써 증명하였다. 기회주의자와 『이스크라』에 대한 중요자로 구성된 소수파는 대회에서의 패배의 복수를 갈망하면서, 제2차 대회에서 그들에게 퍼 부어진 기회주의와 지식인적 동요성이라는 비난에 대해서 정정당당하고 충직 한 수단(출판물을 통하거나 대회에서 문제를 설명한다는 수단)으로써는 반박 할 수 없음을 깨닫고서, 당을 분열시키려 했으며, 당 활동을 훼손하고 교란하 였다. 그들은 당을 설득시킬 수 없음을 깨닫고서, 당을 해체시키고 모든 당 활 동을 방해함으로써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려 했다. 그들은 우리들의 항아리 를(대회에서의 그들의 오류에 의해) 금가게 했다고 비난받았다. 이 비난에 대 한 그들의 담은 금이 간 그 항아리를 완전히 박살내려고 전력을 다해 시도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개념이 얼마나 혼란되었던지, 보이론과 활동 거부를 투쟁의 ‘정당한 수단’이라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마르토프 동지는 지금 이 미묘한 문제점의 주위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다. 마르토프 동지는 매우 ‘원칙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소수파가…… 보이론할 때는 그것을 옹호하고, 그의 편이 우연히 다수파가 되어 보이론이 자신을 위협할 때는 그것을 비난한다!

 

이것이 사회민주노동당 내에서의 정당한 투쟁 방법에 관한 ‘원칙적 차이’인 가 아닌 사람을 결정적인 가하는 문제는 검토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충원’ 소동을 일으킨 동지들로부터 설명을 듣고자 했던 시도(10월 4일, 6일)가 실패한 후, 중앙기관들은 그들이 말로 약속한 충성스러운 투쟁 방법이 실제로는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중앙위원회는 10월 10일에 연맹에 회합을 보내어(연맹 의사록, 3~5쪽을 보라), 중앙위원회가 연맹 규약의 작성에 착수했음을 알리고 연맹원들의 협조를 요청했다. 그 당시 연맹 집행부는 연맹 대회의 소집을 부결시켰다(2표 대 1표, 연맹 의사록 20쪽).(5) 이 회합에 대한 소수파 지지자들의 대답은, 대회의 결의에 대한 준수와 충성의 그 유명한 약속이 단지 말뿐이고, 사실상 소수파가 당의 중앙기관들이 절대 복종치 않을 것을 결정했으며, 함께 활동하지는 중앙기관들의 호소에 대해 쾌적한 무정부주의적인 수다스런 설교로 기록한 참혜적 변명으로 응답하였음을 즉시 명확히 보여주었다. 연맹 집행부 일원인 도이치의 유명한 공개 서신(10쪽)에 대하여 플레하노프와 나 그리고 다수파의 다른 지지자들은 다음과 같은 단호한 ‘항의’를 보냈다. 즉, “연맹의 한 간부가 당 규율을 위반함으로써 당 기관의 조직적 활동을 감히 방해하고, 다른 동지들에게도 규율과 규약을 어기도록 호소한 것을 규탄한다. 나는 중앙위원회의 요청으로 그러한 활동에 내 마음대로 참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혹은 ‘동지들, 우리는 결코 그것(중앙위원회)이 연맹의 세 규약을 작성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등의 발언은, 당, 조직, 당 규약이란 개념을 조금이라도 이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도 협조감만 불리일으킬 뿐인 선동적인 방법이다. 그러한 방법들은 그것들이 이 제 막 결성된 당 기관에 대항하여 사용된 것이기 때문에 당 동지들 가운데서

 

당 기관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고자 하는 확실한 시도이다. 더욱이 연맹 집행부원의 이름 하에 그리고 중앙위원회의 등 뒤에서 사용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17쪽).

 

이러한 조건에서, 연맹 대회는 소동이 예상될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마르트로 동지는 ‘인신 공격’이라는 그의 대회 전술을 계속해 갔고, 이번에는 사적인 대회를 왜곡함으로써 플레하노르를 ‘인신 공격’하려 했다. 플레하노르 동기가 항의했으며 마르트로 동지는 무책임성 혹은 원한의 신물이었던 그의 비난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연맹 의사록 39, 134쪽).

 

보고할 차례가 되었다. 나는 당 대회에서 연맹의 대표였다. 내 보고의 요약(43쪽)이하)을 조금만 참조해 보아도, 대회 표절의 분석 — 이것을 더욱 상세하게 한 것이 이 소책자의 내용이다 — 의 대강의 윤곽을 독자들은 볼 수 있을 것이다. 보고의 주요한 특징은 마르트로와 그 동료들이 자신들의 오류 때문에 우리 당의 기회주의적 진영으로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점이다. 이 보고가, 격렬한 반대자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는 칭찬을 앞에서 행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 보고서 속에서 당 내 투쟁과 논쟁의 충성스런 방법으로부터 이탈한 그 어떤 점도 결코 발견해 내지 못하였다.

 

이것에 반해, 마르트로의 보고는 나의 진술에 대한 부분적인 ‘수정’(이 수정이 잘못되었음은 앞에서 보았다)을 제외하면 단지 정신착란의 신물에 지나지 않았다.

 

다수파가 이러한 분위기에서 투쟁하기를 거부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플레하노르 동지는 이 ‘소동’(68쪽) — 그것은 참으로 말 그대로 ‘소동’이었다! — 에 대해 항의를 표명하고, 보고의 본질에 대해 미리 준비했던 반론을 표명하지 않고 대회에서 퇴장했다. 다수파의 지지자 거의 모두도 마르트로 동지의 ‘비열한 행동’에 대해 항의문을 제출한 후 대회에서 퇴장했다(연맹 의사록, 75쪽).

 

소수파의 투쟁 방법은 모두에게 완전히 명확해졌다. 우리는 소수파가 대회에서 정치적 오류를 범한 것, 기회주의로 전환한 것, 또 그들이 분노하고, 아키모르 일파, 브루케르 일파, 에고로르 일파 그리고 마호르 일파와 연합한 것을 비난하였다. 소수파는 대회에서 패배했고, 지금 투쟁의 두 가지 방법 — 한없이 다중다양한 돌격, 습격, 공격 등을 포함하는 — 을 ‘수립하였다’.

 

첫 번째 방법 — 모든 당 활동을 교란하고, 사업을 손상시키고,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완전히 방해하는 것.

 

두 번째 방법 — ‘소동’을 일으키는 것, 기타 등등.

 

‘이 투쟁의 두 번째 방법’은 연맹의 악명 높은 ‘원칙적 결의들’ — 물론 ‘다수’라는 심의에 참여하지 않았다 — 에도 나타나 있다. 마르토프 동지가 그의 『계임 상태』에서 재목했던 이들 결의들을 검토해 보자.

 

트로츠키, 포민, 도이치, 그리고 그 밖의 다른 동지들이 서명한 첫 번째 결의에는 당 대회의 ‘다수’를 거댜한 2개의 명제가 포함되어 있다.

 

1) “『이스크라』”의 이전 정책과 본질적으로 모순되는 경향이 대회에서 나타난 결과, 당 규약을 기초하는 데 중앙위원회의 독립성과 권위를 충분히 보장하기 위해 당연히 기울여졌다. 한 주의가 기울여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연맹은 깊은 유감의 뜻을 표한다”(연맹 의사록, 83쪽).

 

이미 보았다시피, 이 ‘원칙적’ 명제는 결국 아키모프스의 수다스런 설교에 불과하며, 그 기회주의적 성격은 당 대회에서 포프프 동지조차 폭로한 바 있다. ‘다수’가 중앙위원회의 독립성과 권위를 수호하려 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실제로 힘들며 불과한 것이었다. 플래하노프와 내가 편집국에 있을 때에는 평의회에서 중앙기관지가 중앙위원회에 대해 결코 우위를 점하지 않았지만, 마르토프와가 편집국에 참가했을 때 중앙기관지는 평의회 내에서 중앙위원회에 대해 우위를 확보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가 편집국에 있을 때는 평의회 내에서 러시아 국내의 실천 활동가가 해외의 문필가에 대해 우위를 점했지만, 마르토프와가 인계받은 후에는 정반대가 되었다. 우리들이 편집국에 있을 때에는 평의회가 어떤 실천적 문제에 대해서 개입하려고 시도했던 적은 결코 한 번도 없었다. 독자 여러분들도 큰 상세히 알게 되겠지만, 전원일치제에 의한 충원 방식이 행해진 후에야 비로소 그러한 개입이 시작되었다.

 

지금 검토 중인 결의의 다음 명제는 “……당의 공식적 중앙기관들을 구성할 때, 대회는 실제로 형성되어 있던 중앙기관들과의 연속성을 유지해야 할 필요성을 무시했다. ......"이다.

 

이 명제는 오로지 중앙기관들의 인적 구성의 문제로 귀착된다. 소수파는, 대회에서 구중앙기관들이 자신들의 부적격성을 입증했고 또 많은 오류를 범해 다는 사실을 회피하려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스운 것은 조직위원회와 관련 하여 ‘연속성’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대회에서는 그 누구도 조직위원회의 성원 모두가 그대로 승인받아야 한다고는 암시조차 하지 않았다. 실제로 대회에서 마르토프는 3명의 조직위원이 기입되어 있는 명부는 자신에 대한 증상모략이라고 흥분하여 외쳤다. 대회에서 ‘소수파’는 1명의 조직위원이 포함된 자기들의 최종 명부(포포프, 글래보프 또는 포민, 그리고 트 로츠키)를 제안했지만, ‘다수파’는 3명 중 2명을 조직위원으로 기입한 명부(트 리브스키, 비실리메프, 글래보프)를 통과시켰다. 몰드니, 이런 방식으로 “연속 성”을 언급하는 것이 진정 ‘원칙적 의견 차이’로 생각될 수 있는가?

 

악절로드를 필두로 하는 4명의 구편집국원이 서명한 두 번째 결의로 넘어 가자. 여기에서 우리는 그 뒤로 인쇄물을 통해 몇 번이나 반복되었던 ‘다수파’ 에 대한 주요한 비난 전부를 발견한다. 편집 써클의 멤버들이 정식화한 대로 이것들을 검토하는 것이 가장 편리할 것이다. 비난은 주로 ‘전체적이고 판로주 의적인 당 지배 방식’, ‘판로주의적 중앙집권주의’에 대해 피부이었는데, 이 ‘판 로주의적 중앙집권주의’는 ‘참된 사회민주주의적 중앙집권주의’와 구별되어 다 음과 같이 규정되었다. 그것은 “내적인 통합이 아니라 외적·형식적 통일에 중 점을 두고 있으며, 순전히 기계적 수단에 의해 또 조직적으로 개인적 창의와 독립적 사회 활동을 억압함으로써 실현되고 유지된다.” 따라서 “바로 그 본질 때문에 사회의 구성 요소들을 유기적으로 통합할 수 없다.”

 

악절로드 동지와 그 동료들이 여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사회’가 무엇을 말 하는 것인가는 하느님만이 안다. 악절로드 동지는 자신이 바람직한 행정 개혁 에 관한 점스트로 연설문을 쓰고 있는지, 아니면 ‘소수파’의 불만을 밝히고 있 는지 자기 자신에게도 참으로 명확하지 않았다. 불만에 찬 ‘편집국원’들이 떠 들어내는 당 내의 ‘전체’란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전제란 어떤 통제도 받지 않고 누구에게도 책임을 지지 않으며 선거에 의존하지 않는 한 개인의 최고 권력을 의미한다. 소수파의 문헌에서 매우 잘 알 수 있듯이 그들이 의미하는 전제군주란 다름아닌 바로 나다. 지금 검토하고 있는 결의가 기초되고 체력되고 있을 때, 나는 플레하노프와 함께 중앙기관에 있었다. 결국, 악셀로드 동지와 그 동료들은 플레하노프와 모든 중앙위원들이 사업의 이 익에 대한 그들 자신의 견해에 따라서가 아니라 전제군주 혜년의 의지에 따라 ‘당을 지배하고 있다’라는 확신을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전제적 지배라는 비 난은, 필연적으로 또 불가피하게 전제군주를 제외한 다른 모든 지배기구의 성 원을 다른 사람의 손에 놓아나는 단순한 도구, 단순한 앞장이, 타인의 의지의 집행자로 단인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다시 한 번 묻는데, 실제 이것이 그토록 존경받는 악셀로드 동지의 ‘원칙적 의견 차이’인가?

 

더욱이, 우리의 ‘당원들이 대회의 결정들을 적법한 것으로 엄숙히 선언한 당 대회에서 이제 막 들어왔는데, 그들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외적·형식적 통 일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들은 어느 정도 확고한 기초 위에 조직된 당의 통일을 이루는 데 당 대회 이외의 다른 방법을 알고 있다는 말인가? 알고 있 다면, 그들은 왜 자신들은 제2차 대회를 적법한 것으로 더 이상 간주할 수 없 다고 용기 있게 솔직히 말하지 못하는가? 그들은 왜 소위 조직화된 당의 통 일을 이루기 위한 자신들의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방법을 우리에게 말하려고 하지 않는가?

 

더구나 당 중앙기관지가 자신의 의견 차이를 밝히라고 계속 권고해 왔지만, 의견 차이를 밝히는 대신에 ‘충원’에 대한 홍정에만 몰두해 왔던 그들 개인주 의적 지식인들이 말하고 있는 ‘개인적 창의의 억압’이란 또 무슨 말인가? 그리 고 일반적으로, 플레하노프와 나 혹은 중앙위원회가 우리와 함께 어떤 ‘활동’ 도 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창의성과 독립적인 활동을 어떻게 억압할 수 있 다 말인가? 한 기관이나 조직에 어떤 참여도 거부하는 사람을 어떻게 ‘억압’할 수 있는가? 선거에 의하지 않은 편집진들은 자신들이 ‘지배발기’를 거부했으면 서 ‘지배의 방식’에 대해 어떻게 불평할 수 있던 말인가? 우리는 우리의 동지 들을 지도하는 데 어떤 실수도 저지를 수 없었다. 그것은 그들이 우리의 지도 하에서 활동한 적이 전혀 없었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판로주의에 대한 이 유명한 아우성은 중앙기관들의 인적 구성에 대한 불만 을 기리는 헝겊에 불과하며, 대회에서 행한 엄숙한 서약의 위반을 가리는 무 화과 나뭇잎에 불과하다는 것이 명확하다고 생각된다. 당신은 판로주의자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대회에서 나의 의지에 따라서가 아니라, 나의 의지에 반하여 임명되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형식주의자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나의 동의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당의 형식적 결정들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대단히 기계적 방식으로 행동하고 있다. 왜냐하면 당신은 당 대회에서 ‘기계적’ 다 수를 인용하고, 충원되고자 하는 나의 욕구를 완전히 무시하기 때문이다. 당신 은 전제군주이다. 왜냐하면 대회가 써를 근성을 명확히 거부했기에 그럴수록 더욱더 집요하게 자신들의 써를 근성의 ‘연속성’을 주장하는 오래되고 아기자 기한 악대(old smug little band)에다 권력을 넘겨주기를 당신은 거부하기 때문이다.

 

판료주의에 대한 이러한 아우성들은 위에서 지적한 것 이외에는 어떠한 현 실적 의미도 며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뚜렷 방법은 다시 한 번 소 수파의 지식인적 동요성을 입증할 뿐이다. 그들은 중앙기관들의 선거가 억울 하다고 당을 설득하기를 원했다. 그런데, 어떻게 설득했던가? 플래하노프와 내 가 운영하고 있던 『이스크라』를 비판함으로써? 아니다. 그들은 그런 비판을 할 만한 능력도 없었다. 그들은 당의 일부가 가중스러운 중앙기관들의 지도 하에 활동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으로 당을 설득하려 했다. 그러나 세계의 어떤 당의 어떤 중앙기관도 자신의 지도에 따르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지도할 능력 을 발휘할 수 없다. 중앙기관들의 지도에 따르기를 거부한다는 것은 당에 남 아 있기를 거부하는 것과 같은 것이며, 당을 파괴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것 은 설득의 방법이 아니라 파괴의 방법이다. 설득하는 대신에 파괴하려고 하는 이 모든 노력은 그들의 일관된 원칙의 결여, 자신들의 사상에 대한 신념의 결 여를 보여줄 뿐이다.

 

그들은 판료주의에 대해 활가할부한다. 판료주의란 말은, 러시아어로 관직 과 지위에만 온통 관심을 두는 일이라고 번역될 수 있다. 판료주의란, 활동의 이익을 자신의 출세의 이익에 종속시키는 것, 활동 자체를 경시하고 좋은 지 위에 급급하는 것, 사상투쟁 대신 충원을 둘러싼 시비에 몰두하는 것을 의미 한다. 이런 종류의 관료주의가 바람직스럽지 못하며 당에 유해하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나는 현재 당 내에서 싸우고 있는 양 진영 중 어느 쪽이 이런 관료주의를 범하고 있는가에 대한 판단을 독자들에게 안심하고 말 길 수 있다……. 그들은 통일을 성취하는 방식이 매우 기계적이라고 왈가왈부 한다. 물론 대단히 기계적인 방식은 유해한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경향이 기존의 경향과 싸우는 데, 새로운 견해의 정당성을 당에 납득시키기 전에, 심지어는 새로운 견해를 당에 개진하기도 전에, 사람부터 당 기관들에 앉히려고 하는 것보다 더 거칠고 더 기계적인 투쟁 방법을 생각할 수 있는가에 대한 판단도 다시 한 번 독자들에게 말간다.

 

그러나 어쩌면 소수파의 표어들이 원칙적인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르지 않는가, 현재의 경우에서 ‘전환’의 틀림없는 출발점이었던 협소하고 부분적인 동기와 관계없이 어떤 특정한 사상 체계를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않는가? 만약 ‘충원’을 둘러싼 시비를 잡지 제치든다면, 이 표어들이 어떤 다른 견해 체계의 표현이라는 것이 판명될지도 모르지 않는가?

 

이러한 각도에서 그 문제를 검토해 보자. 검토하기 전에 우선, 그러한 검토를 최초로 시도한 사람은 연맹 대회에서 소수파의 무정부주의와 기회주의로의 전환을 지적했던 플레하노프 동지였다는 사실은 지적해야 하며, 그리고 마르토프 동지(모든 사람들이 그의 입장을 원칙적인 것으로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현재 감정이 대단히 상해 있는)는 그의 게임 상태에서 이 사건을 완전히 무시하고 싶어했다는 것을 지적해야 한다.

 

연맹 대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일반적 문제가 제기되었다. 즉, 연맹 혹은 위원회가 스스로 작성한 규약이 중앙위원회의 승인 없이도, 심지어 중앙위원회가 승인하기를 거부하더라도 유효한가 하는 문제였다. 이 문제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규약은 조직의 형식적 표현이고, 우리 당 규약 제6조에 따르면 위원회를 조직할 수 있는 권리는 명백히 중앙위원회에 부여되어 있다. 규약은 위원회의 자치 범위를 규정하고 있고, 그 범위를 규정하는 데서 결정권은 당 지방기관이 아니라 당 중앙기관에 속한다. 이것은 기본적인 것이다. 그리고, ‘조직한다는 것’이 항상 ‘규약을 승인하는 것’을 포함하지는 않는다(마치 연령 스스로가 공식적 규약에 근거해서 조직되기를 바란다는 것을 자발적으로 표현하지 않은 것처럼)고 심오한 체허며 주장하는 것은 정말 유지한 것이다. 그러나 마르트로 동지는 사회민주주의의 가나다조차 잊어버렸다(일시적이길 바란다). 그의 의견으로 볼 때, 규약 승인이라는 요구는 “이전의 혁명적인 『이스크라』적 중앙집권주의가 판로주의적 중앙집권주의로 대체되었다는 것을 나타낼 뿐이다”(연맹 의사록, 95쪽). 더구나 마르트로 동지는 같은 연설 속에서 자신은 이것이야말로 문제의 ‘원칙적 측면’ — 그의 계엄 상태 속에서는 무시하고 싶어했던 원칙적 측면 — 이라고 생각한다고 단언하였다!

 

플레하노프 동지는 마르트로에게 즉시 대답하였는데, 판로주의, 관리 근성 같은 표현들은 “대화의 위신을 손상시키는 것”(96쪽)으로서 삼가되어야 한다고 요청하였다. 이어서 마르트로 동지와의 의견 교환이 행해졌는데, 그는 이 표현들이 “일정한 경향을 원칙의 입장에서 특징지은 것”이라고 간주하였다. 그 당시에, 플레하노프 동지는 다른 모든 다수파의 지지자와 마찬가지로 이 표현들을 그 실제적 의미에서 고찰하였으며, 그것들이 말하자면 오로지 ‘충원’이란 영역에 관련되었을 뿐이지 원칙의 영역에 관련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명백히 이해하였다. 그럼에도 그는 마르트로와 도이치의 주장(96, 97쪽)에 양보하여, 그들이 원칙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원칙적 입장에서 검토하여 갔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그렇다면(즉, 위원회가 자신의 조직을 만들고 자신의 규약을 작성하는 데 자치적이라면), 지방위원회는 전체, 즉 당에 대해 자치적인 것이다. 이것은 분노적 견해도 아니고 철저한 무정부주의적 견해이다. 무정부주의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개인의 권리는 무제한이다. 개인의 권리가 서로 충돌할 수도 있다. 각 개인은 스스로 자기 권리의 범위를 정한다고 자치의 범위는 그를 자체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그것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는 전체에 의해서 결정되어야 한다. 분노는 이 원칙을 깨뜨린 좋은 예다. 자치의 범위는 대회 또는 대회가 만든 최고 기관에 의해서 결정된다. 중앙기관의 권력은 도덕적·사상적 권위에 근거해야 한다. 나는 물론 이것에 동의한다. 조직의 모든 대표자들은 자기 기관의 도덕적 권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 말이 권위는 필요하지만 권력은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니다. 권력의 힘과 사상의 힘을 대립시키는 것은 무정부주의적 빈발이며, 여기에서 이러한 말이 쓰일 여지는 없다”(98쪽). 이 명제들은 가장 기초적인 것이며, 사실상 의 공리 — 투표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102쪽), 그러나 단지 지금은 “개념들 이 혼동되고 있기 때문에”(102쪽) 문제가 되고 있는 공리 — 이다. 그러나 소 수파는 그들의 지식인적 개인주의로 말미암아 불가피하게 대화를 파괴하려고 하고 다수파에 복종하기를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소망은 무정부주 의적 빈발에 의해서만 번호될 수 있었다. 소수파가 플레하노프에게 기회주의, 무정부주의 동등과 같은 지나치게 강한 어휘를 구사한다는 불평 이외에는, 그에게 아무런 대답도 못했다는 것은 대단히 재미있는 사실이다. 플레하노프는 왜 “조레스주의와 무정부주의라는 말은 용납될 수 없고, 불경희(liese-majesté) 니 관리 근성이니 하는 말은 용납될 수 있는가” 하고 반문함으로써 그 불평을 을 적절하게 조소했다.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이러한 기이한 혼동들 (quidproquo)이 마르트로 동지, 악셀로드 동지, 그리고 그 동료들에게 항상 일 어나고 있다. 그들의 새로운 표어들은 고민의 흔적을 확실히 띠고 있다. 이 사 실을 말하면 그들은 또다시 기분이 상한다 — 아다시피 그들은 원칙적인 사람 들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만일 당신이 전체에 대한 부분의 복종을 원칙적으로 거부한다면 당신은 무정부주의자이다 하고 말하면 그들은 다시 감정이 상한 다! — 표현이 너무 강하다! 바꾸어 말하면 그들은 플레하노프와 열전을 벌이려 했다. 그러나 단, 플레하노프가 그들을 힘찬 공격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서!

 

마르트로 동지와 여러 다른 ‘면세비크’들은 나에게 다음과 같은 모습이 있 다고 어린애들보다 못한 방식으로 수없이 비난했다. 그들은 『무엇을 할 것인 가?』, 혹은 『한 동지에게 보내는 편지』로부터 사상적 영향력, 영향력을 위한 투쟁 동등을 언급한 구절을 인용한다. 그리고 그것을 규약에 의한 ‘판료주의 적’ 영향력 행사 방식 및 권력에 의존하는 ‘전제주의적’ 경향과 대치시킨다. 얼 마나 순진한가! 이전에는 우리 당은 정식으로 조직된 전체가 아니라 고립된 써클들의 단순한 총합에 불과했으며 따라서 이들 셋를 사이에 사상적 영향력 이외에는 어떤 관계도 있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그들은 이미 망각해 버렸다. 지금은 우리는 하나의 조직된 당이 되었고, 이는 권력의 수립을 의미하며 사 상적 힘의 권력적 권위로의 전환, 당의 상급 기관에 대한 하급 기관의 복종을 의미한다. 어쨌든 옛 동료들을 위해서 이런 가나다를 잘 알아듣도록 몇 번이 고 반복해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짜증스런 일이겠는가. 게다가 그 원인이 단지 선거 문제에 관해서 소수파가 다수파에게 복종하기를 거절한 데 있다는 것을 떠올릴 경우에는 특히 그러하다! 그러나 원칙적 관점에서 볼 때 나에게 모순이 있다는 이 끝없는 폭로들은 단지 무정부주의적인 수다스런 설교로 귀착된다. 신『이스크라』는 기꺼이 당 기관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당 기관의 권리를 행사하고 있지만 당의 다수파에게 복종하지 않으려 한다.

 

만약 판료주의에 대해 할가할부하는 것에 원칙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리 고 이것이 부분이 전체에 복종해야 할 의무를 무정부주의적으로 부정하는 것 이 아니라면, 바로 이 말에 담겨 있는 것이란 프롤레타리아트의 당에 대한 개개의 지식인의 책임을 약화시키고자 하고, 중앙기관들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고자 하고, 당 내에서 가장 일관성이 없는 분자들의 자치를 확대하고자 하고, 조직적 관계를 단지 관념적으로 그리고 말로만 받아들이는 것으로 축소시키고자 하는 기회주의적 원칙이다. 우리는 이것을 당 대회에서 보았던 바, 당 대회에서 아키모르 일파와 리베르 일파는 ‘피를 같은’ 중앙집권주의에 대해 연명 대회에서 마르토르 일파가 내뱉었던 것과 똑같은 종류의 발언들을 했다. 기회주의 결국 마르토르와 악셀로드식의 조작‘관’으로 귀착되었던 바,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며 그 본성에 기초한 것이고, 또한 러시아만의 일도 아니며 전세계에 걸쳐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음에 신『이스크라』에 실린 악셀로드 동지의 논문을 검토하면서 좀더 자세히 이 문제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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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대회에서의 투쟁의 개관—당의 혁명적 진영과 기회주의적 진영

 

대회에서의 토론과 투표의 분석을 끝내면서 이제 우리는 총결산을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선거 중에 나타났으며 이후 얼마 동안 우리 당의 기본적 분열로 되어 버린 최종적인 다수파와 소수파가 각기 어떠한 분자, 그룹 또는 색체로 구성되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대회 전체의 자료에 근거하여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대회 의사록에 매우 풍부하게 나타나는 원칙상, 이론상, 전술상의 다양한 색체와 관련된 일체의 자료들에 대해 총결산이 필요하다. 총체적 ‘개관’ 없이는, 대회 전체를 조망하고 투표 중에 나타난 주요한 파별 분립을 개관하지 않는다면, 이 자료는 너무나 단편적이고 산만하기 때문에 얼핏 보기에는 이런저런 개개의 파별 분립이 우연적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특히 대회 의사록을 주체적이며 포괄적으로 연구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게 보일 것이다(그런데 이러한 노력을 한 독자가 얼마나 있을까?).

 

영국의 의회 보고 중에서 우리는 ‘분열’이라는 특징적인 말을 종종 접하게 된다. 어떤 문제가 표결에 부처겠을 때 보통 의회가 이러지지만 다수파와 소수파로 ‘분열되었다’고 말한다. 대회에서 심의된 각종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 민주주의 의회의 ‘분열’은, 당 내 투쟁에 대한 그림을, 당 내의 다양한 색채의 전해와 그룹들에 대한 그림을, 그러한 종류로서는 유일무이하며 비활 비 없이 완전하고 정확한 그림을 보여준다. 이 그림을 명료히 하기 위해, 단편적이고 산만하며 고립적인 사실들과 사건들의 뭉퉁이가 아닌 진실한 그림을 얻기 위해, 그러하여 개개의 표결에 대한 끝없고 무의미한 논쟁(누가 누구에게 투표했으며 누가 누구를 지지했는가 따위의)에 중지부를 찍고자, 나는 우리 대회 ‘분열’의 모든 기본적인 유형을 도표로서 나타내기로 했다. 아마도 이러한 방식이 매우 많은 사람들에게는 몹시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대회의 결과들을 가 능한 한 가장 완전하고 정확하게 총괄하고 요약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이보다 더 나은 것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떤 특징 대표가 일정한 안건에 대해 찬성 투표를 했는가 반대 투표를 했는가 하는 것은 기명 투표의 경우에는 절 대적으로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으며, 또한 중대한 몇몇 무기명 투표의 경우에도 의사록에 근거하여 상당 정도의 개연성 있는, 충분히 진실에 가까운 판 정을 내릴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모든 기명 투표 및 조금이라도 중요한 안 건(예를 들어 토론의 상세함이나 격렬성으로 판단하여)에 대한 모든 무기명 투표를 고려해 냈는다면, 현존하는 자료가 허락하는 한 가장 객관적인 우리 당 내 투쟁의 진상을 보게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각각의 투표를 따로따로 사진을 찍듯이 묘사하는 대신에, 문제를 혼란시킬 뿐인 비교적 중요하지 않은 예외와 변종은 무시한 채 투표의 모든 주요한 유형을 나타내려고, 즉 하나의 그림을 제시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여하든 누구라도 의사록의 도움을 얻어 우리 그림의 구성과성을 점검할 수 있고, 임의의 개개 투표를 가지고 이 그림을 보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이 그림에 대한 비판은 고립된 개개의 사건에 대한 독자의 주장이나 의문의 표명 또는 지적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동일한 자료에 근거하여 상이한 그림을 그려 보임으로써도 역시 이루어질 수 있을 것 이다.

 

투표에 참가한 대표를 각각 도표에 기입하는 데서, 이제까지 대회 토론의 전과정을 통하여 자세히 살펴본 4개의 주요 그림, 즉 1) 『이스크라』 다수파, 2) 『이스크라』 소수파, 3) ‘중간파’, 4) 반『이스크라』파를 각기 특별한 명암으로 나타내었다. 이 그룹들 상호간에 원칙적 색채가 상이하다는 것은 수많은 실례를 통하여 우리가 보아 온 대로이다. 갈지자 걸음을 즐기는 사람으로 하여 금 이스크라, 조직파 이스크라, 방침을 너무 많이 연상케 하는 이러한 그룹 명칭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중요한 것은 명칭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대회에서의 모든 토론을 통하여 여러 색채들을 추적해 온 지금, 우리는 이미 확정되어 익숙해진(혹자는 귀에 거슬릴 수도 있다) 당 내 명칭 대신에 각 그룹이 지닌 색채의 본질적 특징으로 표현해 줄 수도 있다. 그러면 앞서의 네 그룹은 각기 1) 철저한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 2) 소기회주의자, 3) 중기회주의자, 4) 대기회주의자(우리 러시아 척도로서는 큰)로 표현된다. 이스크라파란 명칭이 단지 ‘써클’을 나타낼 때들이 지경향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고 얼마 전부터 자리를 설복하기 시작한 사람들에게는 이 쪽의 표현이 충격을 덜 주리라고 믿는 바이다.

 

도표에 ‘개관되어 있는’ 몇몇 투표 유형에 대해 이제 자세히 설명해 보자 (‘대회에서의 투쟁의 개관도, 란 도표를 보라’).

 

투표의 첫 번째 유형 A는 ‘중간파’가 반다이스크라파 혹은 그 일부에 반대하여 이스크라파에 동조했던 경우를 망라하고 있다. 여기에는 강령 전체에 대한 투표(아키모프 동지 한 사람만 기관하고 기타는 모두 찬성), 연방제에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결의에 대한 투표(분트파 5명을 제외하고 모두 찬성), 분트의 규약 제2조에 대한 투표(분트파 5명은 우리에게 반대했다. 마르티노프, 아키모프, 브루케르, 그리고 두 표를 가진 마호프 등 5표가 기관, 기타는 우리 편이었다)가 포함되는데, 도표 A에 나타난 것은 바로 이 투표이다. 그 외에도 이스크라를 당 중앙기관지로 승인하는 문제에 대한 세 번의 투표 역시 이 유형에 속한다. 편집진(5표)은 기관하였고, 두 사람(아키모프, 브루케르)은 세 번 모두 반대 투표하였으며, 그리고 이 밖에 이스크라를 승인하는 이유문에 대하여 투표했을 때에는 분트파 5명과 마르티노프 동지가 기권하였다.

 

+41 5 -5

 

A

24 9 8 2 3 5

+32 -16

 

B

24 8 8 8

-25 +26

 

C

18 7 6 2 10 8

-23 +28

 

D

19 3 1 5 9 7 7

+24 -20

 

E

24 9 10 1

 

‘+’와 ‘-’ 기호에 붙은 숫자는 각기 특정 문제에 대한 전설 투표와 반대 투표의 총수를 나타낸다. 막 대기물 아래의 숫자는 네 그룹 각각의 그룹별 투표수이다. A에서 E까지 각 유형으로 대표되는 투표의 성격에 대해서는 본문에서 설명된다.

 

그룹 이름

■ 『이스크라』 다수파

▲ 『이스크라』 소수파

■ 중간파

■ 반『이스크라』파

 

지금 검토하고 있는 유형의 투표는 대회의 ‘중간파’가 어떠한 경우에 『이스크라』파와 보조를 함께 했는가 하는 극히 흥미롭고 중요한 질문에 대한 헤달을 준다. 그 어떤 경우에, 몇 명의 예외를 제외하고 반『이스크라』파도 우리에게 동조했던 경우이거나(강령의 채택, 이유 표명 없이 『이스크라』를 승인하는 안건), 아니면 그 자체로는 일정한 정치적 입장에 대한 직접적 표명으로 되는 것은 아니 그러한 종류의 성령이 문제가 되었던 경우(즉, 『이스크라』의 조직 활동을 승인한다는 것이 그 자체로 개별 그룹에 『이스크라』의 조직 정책을 실행에 옮겨야 할 의무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마호프 동지의 경우에서 본 바와 같이, 연방제를 원칙적으로 거부했다고 해서 그 연방제를 구체화한 안에 대해 투표할 때 기관이 방지되는 것은 아니었다)이다. 앞에서 대회에서의 파벌 분립의 일반적 의의에 대해 서술하였을 때 우리는 공식 『이스크라』의 공식 설명 속에서 이 문제가 얼마나 그릇되게 표현되고 있는가를 보았던 바 있다. (마르토프 동지의 입을 빌어) 공식 『이스크라』는, 반『이스크라』과도 우리에게 동조했던 경우를 증거로 내세움으로써 『이스크라』과와 ‘중간파’ 사이의 차이, 즉 철저한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와 기회주의자 사이의 차이를 은폐하고 간과한

다! 심지어 독일이나 프랑스 사회민주당 내 기회주의 진영의 ‘극우’ 분자들조차 강령을 전체로서 승인하는 그런 문제에 대해선 결코 반대표를 던지지 않는다.

 

투표의 두 번째 유형 B는 철저한 『이스크라』과와 불철저한 『이스크라』파가 모두 반『이스크라』파 전체 및 ‘중간파’ 전체에 반대하여 함께 투표했던 경우를 망라한다. 이는 주로 『이스크라』 정책의 구체적인 특정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경우, 즉 『이스크라』를 말로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승인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경우들이다. 여기에는 조직위원회 시간, 당 내에서의 분트의 지위를 의사 일정의 맨 처음에 놓는 문제, 유즈니 라보치, 그룹의 해체, 농업 강령에 대한 두 번의 투표, 그리고 마지막 여섯 번째로 러시아사회민주주의해외동맹(『라보체에 절로』)을 반대하는 투표, 즉 연맹을 당의 유일한 해외

조직으로 승인하는 결정 등이 포함된다. 여기에서는 당 성립 이전의 남은 셔클 근성 및 기회주의적 조직이나 그룹의 이해관계,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협소한 파악이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의 극히 철저하고 원칙에 근거한 정책에 대항하여 투쟁하였던 것이다. 『이스크라』 소수파는 그들 자신의 셔클 근성과 그들 자신의 불철저성이 문제가 되기 전까지는…… 많은 경우에, 극히 중요한 (조직위원회와 『유즈니 라보치』 및 『라보체에 젤로』의 관점에서 보아 중요한) 여러 투표에서 우리와 보조를 같이했다. 이러한 유형의 ‘분열’은, 우리의 원칙을 실천에 적용하는 몇 가지 문제에서는 중간파가 반『이스크라』파에 협력했고 우리 쪽보다 반『이스크라』파 쪽에 훨씬 더 가까웠으며 실제적으로 사회민주주의의 혁명적 진영보다는 기회주의적 진영으로 훨씬 더 기울여져 있었다는 사실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명목상으로는 『이스크라』파이지만 『이스크라』라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자들은 본색을 드러내었고, 따라서 불가피하게 일어난 투쟁은 적절이 적당된 감정을 낳았으며, 생각이 알고 감정에 치우치는 사람들은 그 흥분 때문에 투쟁 속에서 드러났던 원칙상의 색채가 지닌 의의를 보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투쟁의 열기가 어느 정도 기타였고 의사록이 적합했던 일련의 전투를 냉정하게 기록한 것으로서 남아 있는 현재, 단지 일부러 눈을 감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마호프 및 에코로프 일파가 아키모프 및 리베르 일파와 손잡았던 것이 우연이 아니며 우연일 수도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마르토프나 악셀로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의사록에 대한 포괄적이고도 정확한 분석을 회피하는가, 아니면 여러 가지로 유감의 뜻을 표명함으로써 뒤 듯게 대회에서의 자신들의 행위를 없었던 일로 하려 애쓰는 것뿐이다. 마치 유감의 뜻을 표명함으로써 입장의 차이와 정책의 차이를 제거할 수 있다는 듯 이! 마치 마르토프 및 악셀로드가 현재 아키모프, 브루케르, 마르티노프와 맺고 있는 동맹이, 제2차 대회에서 재건된 우리 당으로 하여금 이 대회의 거의 전기간을 통하여 『이스크라』파가 반『이스크라』파에 대항하여 벌였던 투쟁을 잊도록 할 수 있다는 듯이!

 

대회에서의 세 번째 유형의 투표는 앞의 도표 중에서 나머지 셋으로 대표되는 바, 이 투표 유형의 특징은 『이스크라』파 중에서 약간의 부분이 이탈히 여 반『이스크라』파 진영으로 넘어갔고 그런 까닭에 반『이스크라』파가 승리하 였다는(그들이 대회에 머물러 있던 동안에는) 점이다. 『이스크라』소수파와 반『이스크라』파 사이의 이 유명한 연합——이 연합에 대한 단순한 언급이 마르 토프로 하여금 대회에서 히스테리적인 편지를 쓰도록 만들었다——이 어떻게 발전했던가를 아주 정확하게 추적해 보기 위하여 이 유형에 속하는 세 가지 주요한 기법 투표를 모두 설명하였다. C는 언어의 평등 문제에 대한 투표이다 (이 문제에 대한 세 번의 기법 투표 중 가장 완전한 것으로서 마지막 투표를 보기로 들었다). 이 경우 반『이스크라』파 전원과 일체의 중간파가 우리에게 반대하여 완장하게 맞섰으며, 한편 『이스크라』파로부터는 다수파의 일부와 소수파의 일부가 이탈하였다. 『이스크라』파 중의 어떤 분자가 대회의 기획주의 적 ‘우의’과 확정적이고 영속적인 연합을 형성할 것인가는 아직까지 분명하지 않다. 다음으로 D 유형의 투표가 있다——이는 규약 제1조에 대한 것이다(두 번의 투표 중에서 좀더 명확한 것, 즉 기권이 없는 것을 택하였다). 여기서 연 합은 좀더 명료하게 나타나며 좀더 곤건한 모습을 갖겠다. 즉, 이제 『이스크 라』 소수파는 전원 이기모프와 리베르 펜에 섞다. 『이스크라』 다수파 중에서 는 단지 국소수만이 이탈했으며 이를 발송하여 ‘중간파’ 가운데 3명과 반『이스 크라』파 1명이 우리 편으로 넘어섰다. 어떤 분자들이 우연히 또한 일시적으로 한편에서 다른 한편으로 옮겨 다녔으며, 또한 어떤 분자들이 막을 수 없는 힘으로 이기모프 일파와의 영속적인 연합으로 나아갔는가는 도표를 잠깐만 보아 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투표(E——중앙기관지, 중앙위원회 및 당 평의회 선거)는 사실상 다수파와 소수파로의 최종적 분열을 나타내는 바, 이는 『이스크라』 소수파가 ‘중간파’ 전원 및 반『이스크라』파의 진류자와 완전히 합류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이 때는 8명의 반『이스크라』파 중에서 단지 브루케르 동지(아기모프 동지로부터 이미 자신이 범한 잘못을 지적받았던 브 루케르는 마르토프파의 대열 내에 자신의 적절한 자리를 잡고 앉았다)만이 대 회에 남아 있었다. 극우 기회주의자 7명의 퇴장은 마르토프에게 불리한 선거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이제 투표의 모든 유형에 관한 객관적 자료에 근거하여 대회의 결과를 요약해 보자.

 

당 대회의 다수파가 ‘우연적’ 결과라는 이야기가 많이 있어 왔다. 실제로, 마르토프는 자신의 『다시 소수파가 되어』 속에서 오로지 이 논리로써 자신을 위안하고 있다. 도표에서 명백히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하나의 의미에서, 오직 하나의 의미에서만, 즉 ‘우의’의 가장 기회주의적인 분자 7명의 퇴장이 아마도 우연한 일이었다는 의미에서 다수파는 우연적이라 할 수 있다. 이 퇴장이 우연인 한에서는(더 이상이 아닌 꼭 그만큼) 우리 다수파도 또한 우연이다. 이들 7명이 남아 있었다라면 어느 편에 있을 것인가 또한 왜 그럴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서는 장황한 토론보다 도표를 한 번 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7명의 퇴장이 사실상 얼마만큼 우연적인가에 있다. 바로 이것이 다수파의 ‘우연성’을 즐겨 말하는 사람들에게 떠올리기 싫은 문제이자 그들로서는 불쾌한 질문이다. 퇴장한 사람들이 우리 당의 가장 열렬한 우의의 대표자들이지 적의의 대표자들은 아니었다는 것이 우연일까? 퇴장한 사람들은 철저한 혁명적 사회인주주의자들이 아니라 기회주의자들이었다는 것이 정말 우연일까? 대회 전기간을 통해 수행되었고 또한 도표 속에 명백히 표현되어 있는 기회주의자들에 대한 투쟁이 이 ‘우연적’ 퇴장과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일까?

 

소수파에게는 무척 불쾌할 이들 질문을 먼저 보기만 해도, 다수파의 우연성에 대한 이 모든 말들이 어떤 사실을 감추려는 의도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 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소수파가 기회주의에 가장 많이 기울고 있던 당 내 분자들로 구성되었다는 분명하고도 재분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소수파를 구성했던 것은 이론에서 가장 불안정하고 원칙에서 가장 철저하지 못한 당 내 분자들이었다. 소수파는 바로 당의 우의에서 유래하였다. 다수파와 소수파로의 분열은, 사회인주주의자의 혁명적 진영과 기회주의적 진영, 산악파와 지통드파53)로의 분열과 직접적이고 불가피한 연속선상에 있으며 이 분열은 어제 오늘 생긴 것이 아니고, 러시아 노동자당에만 나타난 것도 아니며, 또한 확실히 내일 모래면 사라질 것도 아니다.

 

이 사실은 불일치의 원인과 추이를 설명하는 데 근본적 중요성을 갖는다. 대회에서의 투쟁 및 그 투쟁 속에서 드러난 원칙상의 여러 색채를 부인하거나 얼버무림으로써 이 사실을 회피하려 하는 자는 단지 그 자신의 지적 정치적 빈곤을 입증할 뿐이다. 나의 말을 빈곤하고 싶은 사람은 다음 두 가지를 증명해야만 한다. 첫째, 우리 당 대회에서의 투표 및 ‘분열’에 대한 개관도가 내가 그려 낸 것과는 다르다는 것, 둘째, 러시아에서 『이스크라』파라는 이름을 채택했던* 가장 철저한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대회에서 ‘분열’을 야기한 여러 문제에서 본질적으로 옳지 않았다는 것. 자, 신사 여러분, 이걸 한번 증명해 보시라!

 

넷불여서, 당 내에서 가장 기회주의적이고 가장 불안정하며 가장 불철저한 분자들로 소수파가 구성되었다는 사실은 요컨대 사정을 잘 모르거나 그다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들이 다수파에게 보이는 수많은 이의와 의혹에 하나의 해답을 주고 있다. 마르토프 동지와 악셀로드 동지의 사소한 잘못 때문에 분열이 생겼다고 설명하는 것은 치출하지 않은가 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 정말로 마르토프 동지의 잘못은 사소한 것이었다(나는 대회에서 투쟁이 타오르던 바로 그 당시에도 이미 이 점을 지적했던 바 있다). 그러나 허다한 오류를 범하였으며 많은 문제에서 기회주의로의 편향과 원칙상의 동요를 보였던 대표들 편으로 마르토프 동지가 끌려감으로써, 이 사소한 잘못으로부터 수많은 해약이 생겨날 염려가 있었다(또한 실제로 생각된다). 마르토프 동지와 악셀로드 동지가 동요를 보였던 것은 개인적이며 그리 중요하지 않은 사실이다. 그러나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소수파가 가장 불안정한 분자 전원으로 구성되었다는 것, 즉 『이스크라』경향을 전적으로 부인하고 그것과 공공연히 투쟁하였거나 혹은 『이스크라』를 입으려는 위하는 척하면서도 실제로는 몇 번이나 반『이스크라』파의 편을 들었던 모든 분자들로 구성되었다는 것은 개인적 인 사실이 아니라 당적 사실이며 결코 시소하지 않은 사실이다.

 

『이스크라』의 구편집국을 이루고 있던 소셋를 내에 완고한 써클 근성과 혁 명적 속물주의가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에 분열이 생겼다고 설명하는 것이 불 합리한가? 아니다. 불합리하지 않다. 왜냐하면 대회 전기간을 통하여 각종 써 클을 위해 투쟁했던 우리 당 내의 모든 분자들, 일반적으로 혁명적 속물주의를 극복할 수 없었던 모든 분자들, 속물 근성과 써클 근성의 ‘역사적’ 성격에 대해 떠들어대면서 그 해악을 정당화하고 유지하려 했던 모든 분자들 — 이를 모든 분자들이 바로 이 특정 써클을 지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스크라』 편집 국 내의 한 작은 써클 내에서 협소한 써클적 이해관계가 당의 이익보다 우세하였 다는 사실은 아마도 우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써클을 굳게 지지 하고 나선 자들이 다름아닌 아키모프와 브루케르 일파 — 이 자들은 저 유명 한 보로네즈 위원회 및 악명 높은 페테르스부르크 ‘노동자 조직’(5)의 ‘역사적 연속성’을 다른 것에 못지않게(그 이상은 아니라 해도) 중시하고 있다 — 였다 는 것, 또한 『라보체에 젤로』의 ‘말살’에 대해 이를 구편집국의 ‘말살’만큼이나 (그 이상은 아니라 해도) 통한해 마지 않았던 에코로프 일파 및 그 밖에도 마 흐프 일파 등등의 무리들이 이에 가세하고 나섰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 다. 친구들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겪인이 있다. 마찬가지로 그의 정치 적 동맹자나 그에게 찬성표를 던지는 사람들을 보고 그 사람의 정치적 면모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마르토프 동자와 악셀로드 동자의 시소한 오류가 그들과 당 내 기획주의 진영 전체와의 지속적 동맹의 출발점으로 되기 전까지는, 그 동맹 때문에 기 회주의가 재발하기 전까지는, 또한 『이스크라』와 투쟁해 왔으며 이제야말로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의 철저한 지지자들에게 분을 풀 기회라고 기뻐 날뛰는 모든 분자들이 복수하겠다고 덤버들기 전까지는, 그들의 오류는 정말로 시소한 것이었고 또 시소한 것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대회 이후에 발생한 여러 사건들의 결과로서 오늘날 우리는 신『이스크라』 속에서 다음을 목격하고 있 다. 그것은 기획주의의 재발이고, 아키모프와 브루케르 일파의 복수이며(보로 네즈 위원회의 리플렛(5)을 보라), 또한 과거에 있었던 모든 각종 불만에 대한 복수로서 마침내(마침내!) 가중스런 『이스크라』 지면에서 가중스런 ‘적’을 발 로 찰 수 있게 된 마르티노프 무리의 환희이다. 이러한 사실은, 『이스크라』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스크라, 구멍집국의 재건”(1903년 11월 3일자 스타로베르 동지의 최후통점 중에서 인용)이 얼마나 필요했던가를 특히 명백하게 보여준다……

 

대회가(또한 당도) 좌의과 우의, 혁명적 진영과 기회주의적 진영으로 분열된 사실은 그 자체로는 두려운 것도 위기적인 것도 아닐 뿐 아니라 비정상적인 것도 아니다. 이와 반대로 러시아(비단 러시아만은 아니지만)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최근 10년간의 전역사가 필연적이고도 불가피하게 이러한 분열에 이르게 한 것이었다. 우의 진영의 아주 시스한 몇몇 오류나 상대적으로 조금도 중요하지 않은 의견 차이를 둘러싸고 분열이 일어났다는 사실(이는 피상적 관찰자나 속물적 인간에게는 충격적으로 보일 것이다)은 전체로서 우리 당에 위대한 일보 전진을 나타낸다. 이전에 우리는 커다란 문제들, 어떤 경우는 분열을 정당한 것으로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커다란 문제들을 둘러싸고 갈라서곤 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일체의 주요하고도 중대한 문제에 대해 일치에 도달해 있으며 오직 석체에 의해서만 구분된다. 이들 석체에 대해 우리는 논쟁할 수 있고 논쟁해야만 하지만, 그 석체 때문에 갈라선다는 것은 어리석고 어린 예 같은 것이라(이는 플래하노르 동지가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가?),라는 흥미 있는 논문 중에서 매우 올바르게 지적한 바 있다. 이 논문에 대해서는 다시 언급하겠다. 대회 이래로 소수파의 무정부주의적 행위 때문에 당이 거의 분열에까지 이른 지금,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잘난 체하는 사람을 종종 만 나게 된다. 즉, 조직위원회 사건, “유즈니 라보치, 혹은 ‘라보체에 젤로, 그룹의 해체, 제1조, 구멍집국의 해산 등과 같은 시스한 문제들을 가지고 대회에서 투쟁할 필요가 있었는가?” 이런 식의 주장을 하는 자”는 사실상 써클적 입장을 당 사업에 끌어들이고 있다. 당 내 색채들 사이의 투쟁은, 그것이 무정부주의 와의 분열에 이르지 않는 한, 또 그것이 동지들과 당원들 모두가 합의하고 승 인한 틀 내에서 진행되는 한, 불가피하며 필수적이기도 하다. 대회에서의 당 내 우위에 대한, 즉 아키모프, 악셀로드, 마르티노프 및 마르토프에 대한 우리 의 투쟁은 결코 이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이 점을 확실히 입증하는 데는 다 음 두 가지 사실을 회상해 보는 것으로 촉한다. 즉, 1) 마르티노프와 아키모프 동기가 대회에서 퇴장하려고 했을 때에, 우리 모두는 그들로 하여금 ‘모욕’발 았다는 생각을 지워 버리도록 무엇이라고 할 용의가 있었으며, 이 동지들에게 우리의 혜명을 만족스러운 것으로 간주하고 (퇴장)성명을 철회하도록 권고하 는 트로츠키 동지의 동의안을 전원이(32포로) 채택하였다. 2) 중앙기관들의 선 거가 행해졌을 때에, 우리는 대회의 소수파(다시 말하면 기획주의 진영)에게 양 중앙기관 내에 소수파의 자리를 허용할 용의가 있었다. 즉, 마르토프는 중 앙기관지에, 포포프는 중앙위원회에 각각 자리를 주려 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 미 대회 전부터 두 개의 3인조를 선출하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에 당적 관점에 서 볼 때 달리 행동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대회에서 노정된 색채들 사이의 차이가 크지 않은 것이었다면, 이들 색채들 사이의 투쟁으로부터 끌어낸 실천 적 결론도 역시 크지 않은 것이었다. 즉, 그 결론은 오로지, 두 개의 3인조의 2/3가 당 대회의 다수파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것으로 귀착되었다.

 

당 대회의 소수파가 중앙기관들에서 소수파가 되기를 거부했던 것은 결국 패배한 지식인들의 ‘무력한 비탄’으로 시작되어 다음에는 무정부주의적 발언과 무정부주의적 행동으로 귀결되었다.

 

마지막으로, 중앙기관들의 구성 문제라는 관점에서 도표를 한 번 더 훑어보 자. 대표들은 선거에서, 색채 문제 외에 이런저런 인물들의 적합성, 활동 능력 등의 문제에도 직면해 있었음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소수파는 지금 이들 두 문제를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것들이 서로 다른 문제임은 자명한 것이며, 이는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단순한 사실에서도 볼 수 있다. 즉, 중앙 기관지 최초의 3인조의 선거는, 마르토프 및 악셀로드와 마르티노프 및 아키 모프의 동맹을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때, 심지어 대회 이전에 계획되었다 는 사실이다. 서로 다른 문제에 대한 답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구해져야 한다. 즉, 색채 문제에 대한 답은 대회의 의사록 속에서, 그리고 모든 의제에 대한 공개 토의 및 투표 속에서 구해져야 한다. 인물의 적합성 문제는 비밀 투표로 해결하고 대화의 전원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왜 대화 전체가 민정일치로 이 런 결정을 내렸는가? 이것은 초보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 논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그러나 소수파는 (선거에서 그들이 패배한 이후 에) 심지어 이 초보적인 것들조차 잊어버렸다. 우리는 구편집국을 옹호하는 열렬하고 정밀적이며 무책임할 정도로 흉분하여 마구 쏟아 내는 발언은 많이 들었으나, 6인조와 3인조를 둘러싼 투쟁과 관련된 대화에서의 여러 석재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것도 들어 보지 못했다. 우리들은, 중앙위원회에 피선된 사람들이 무능력하다는니, 적합하지 않다는니, 음흥하다는니 하는 등등의 말장난과 쏙덕공론은 사방발방에서 들었으나, 중앙위원회 내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투쟁한 대화에서의 여러 석재들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것도 들어 보지 못했다. 대화 밖에서 개개인들의 자질과 활동에 대하여 말장난과 쏙덕공론을 늘어놓는 것은 물사냥고 수치스런 것이다(왜냐하면 이런 활동의 거의 대부분은 당 최고 기관 내에만 알려져야 하는 조직상의 비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쏙덕공론을 통해 대화 밖에서 투쟁하는 것은 내가 보기에 힘들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말들에 대해 내가 공적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은 대화에서의 투쟁을 지적하는 것에 있을 뿐이다. 즉, 당신들은 중앙위원회가 근소한 차의 다수에 의하여 피선되었다고 말한다. 그 말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근소한 차의 다수는 『이스크라』 계획의 실현을 위해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가장 철저하게 투쟁한 모든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이스크라』 경향의 연속성을 『이스크라』라는 특정 셰를의 연속성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 의 눈에는 이 다수의 도덕적 권위가 그 형식적 권위보다 — 비교할 수 없을 만큼 — 한층 높아야 하는 것이다.

 

『이스크라』 정책을 실행하는 데 어떤 인물이 적합한가에 대해 좀더 큰 자 격을 갖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였던가? 대화에서 그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써찌던 사람들이었던가, 아니면 많은 경우에서 그 정책에 반대하여 써찌 으며 온갖 퇴보, 잡동사니, 써클 근성을 옹호했던 사람들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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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선거 — 대회의 종결

 

규약을 채택한 후, 대회는 지역 조직에 관한 결의와 개개 당조직에 관한 일련의 결의를 통과시켰으며, 내가 앞에서 분석한 『유즈니 라보치』 그룹에 관한 극히 교훈적인 토론을 거친 후에 당 중앙기관들의 선거 문제에 대한 심의로 넘어갔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대회 전체는 『이스크라』 조직이 권위 있는 추천을 해 줄 것을 기대하였지만, 『이스크라』 조직은 이 문제를 둘러싸고 분열하였는데, 왜냐하면 『이스크라』 조직의 소수파가 대회에서의 공개적이고 자유로운 투쟁으로 대회에서 다수파를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시험해 보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 중앙기관지와 중앙위원회에 각 1개씩, 2개의 3인조를 선출함으로써 편집국을 재구성하려 한 계획이 대회 훨씬 이전에 — 또 대회에서 모든 대표에게 — 알려져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대회에서의 토론을 명백히 규명하기 위해 이 계획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다음의 것은 이 계획이 발표된 대회의 의사일정* 초안에 대한 나의 주석의 정확한 본문이다. “대회는 중앙기관지 편집국에 3명, 중앙위원회에 3명을 선출한다. 이 6명은 충원이 필요하다면 합동으로 2/3의 다수결로 중앙기관지 편집국 및 중앙위원회의 그 다음 성원을 충원하며[합동 자주충원 — 편집자] 이 결과를 대회에 보고한다. 대회가 이 결과를 승인한 후, 그 이후의 충원은 중앙기관지 편집국과 중앙위원회가 각기 시행하게 될 것이다[자주충원 — 편집자].”

 

이 원문을 보면 그 계획은 아주 명확하고 전혀 예매하지 않다. 즉, 이 계획은 실천 활동의 가장 유력한 지도자들의 참여 하에 편집국을 재구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계획에서 내가 강조한 두 가지 특징은 위에 인용한 원문을 조금이라도 주의 깊게 읽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라도 즉시 분명 해진다. 그러나 현재에는 가장 초보적인 것조차 세상 깊이 보고 설명해야만 한다. 이 계획이 의미하는 바는 정확히 편집국의 재구성이었다——편집국원을 반드시 증가시킨다거나 감소시킨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재구성이었다. 왜냐하면 중가나 감소 가능성의 문제는 미결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즉, 충원은 오직 필요한 경우에만 이루어진다. 이러한 재구성의 문제에 관하여 여러 사람이 발표한 제안들 중에는 가능하면 편집국원 수를 줄이자는 안과 7명으로 늘리자는 안(나 개인적으로는 6명보다 7명이 비교도 안 될 만큼 적절하다고 늘 생각해 왔다), 심지어 11명으로 늘리자는 안(이것은 일반적으로 모든 사회인주주의 조직과, 특수하게는 분트 및 플랜드 사회인주당과의 원만한 통합이 행해지는 경우에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다)까지 나왔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며, 또 3인조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사람들이 흔히 간과하기도 하는 문제는 중앙기관지의 충원 문제는 중앙위원회의 참여 하에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계획을 알고 있었고 승인했던(명백히 밝혔던 압록적인)『이스크라』조직의 소수 파 성원 또는 대회 대표 중 어떤 동지도 이 요점의 의미를 설명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첫째, 왜 3인조를, 그리고 3인조만을 편집국 재구성의 출발점으로 삼았는가? 만약 유일한 목적이, 아니면 주된 목적이 편집국의 확대에 있었다면, 그리고 편집국이 실제로 ‘손발이 맞는’ 기관을 확대하는 것이라면, 기관 전체에서가 아니라 단지 기관의 한 부분에서 출발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분명히 남은 편집 셋클을 당 기관으로 전환시키고 그것을 재구성하는 문제를 결정하는 데서 구편집국원 전원이 참으로 자격 있다고 인정된 것은 아니었다. 분명히, 개인적으로는 확대에 의한 재구성을 바라고 있던 사람조차도 종래의 편집국의 구성은 손발이 맞지 않았으며 당 기관으로서의 이상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그렇지 않다면 편집국을 확대하기 위해 우선 6명을 3명으로 축소할 이유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되풀이하진대 이것은 자명하며, 다만 ‘인신 공격’ 운운의 일시적인 문제의 흔한만이 이를 막자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 앞에서 인용한 원문에서 알 수 있듯이 중앙기관지의 3명 모두의 동의조차도 그 자체로는 3인조를 확대하는 데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 또한 늘 망각되는 것이다. 충원을 위해서는 6표의 2/3, 즉 4표가 필요하다. 중앙위 원으로 선출된 세 명이 그들의 거부권을 행사하는 경우도 불가피하게 생길 것 이며, 그러면 3인조의 어떤 획대도 불가능해질 것이다. 반대로, 중앙기관지의 편집국원 3명 중 2명이 그 이상의 충원을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3명의 중앙위 원 전부가 이에 찬성한다면 충원은 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그것이 의도하는 바가 남은 셰를 당 기관으로 변화시키는 데서 대회에서 선출된 실천 활동의 지도자들에게 결정권을 부여하는 것에 있었음을 명백하다. 우리가 대체로 어 떠한 동지를 예정하고 있었는가, 대회에서 편집국의 이름으로 발언해야 할 경우에 대비하여 편집국이 대회 전에 일곱 번째 편집국원으로 파블로비치 동 지를 만장일치로 선출했다는 점에서 알 수 있을 것이다. 일곱 번째 편집국원 의 지위에 파블로비치 동지 외에도 이후에 중앙위원으로 선출된, 『이스크라』 조직의 고찰이며 조직위원회의 일원이었던 사람이 추천되었다.』[47)]

 

따라서 두 개의 3인조를 선출하는 계획이 명백히 의도했던 것은 1) 편집국 을 재구성하는 것, 2) 당 기관에 부적당한 남은 셰를 근성의 몇몇 요소들을 편 집국으로부터 제거하는 것(제거할 것이 전혀 없었다면 최초의 3인조를 생각해 낼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3) 문필가 조직의 ‘신권정치적’ 특징을 제거하는 것(3인조의 확대 문제를 결정하는 데 탁월한 실천 활동기를 참여시 킴으로써 제거한다)이었다. 편집국원 모두가 알고 있었던 이 계획은 명백히 3 년간의 활동 경험에 기초한 것이었으며, 우리가 일관되게 제안해 왔던 혁명적 조직의 원칙들에 완전히 일치되었다. 『이스크라』가 등장했던 분열의 시대에는 여러 그룹들이 종종 우연하게,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었으며, 불가피하게 셰를 근성의 독소에 다소 시달렸다. 당의 창설은 이러한 독소들의 제거를 전제로 하였으며 또 요구하였다. 탁월한 실천 활동가들이 이러한 독소 제거에 참여하 는 것은 필수적이었는데, 왜냐하면 편집국원 중 몇 명은 항상 조직상의 작업 만 해 왔기 때문이며, 또한 당 기구의 체계에 들어가는 조직은 단순히 문필가 로 이루어진 조직체가 아니라 정치적 지도자로 이루어진 조직체여야 했기 때 문이다. 『이스크라』가 평소 추구해 온 정책의 관점에서 보면, 최초의 3인조 선 거를 대회에 맡기는 것도 마찬가지로 당연한 것이었다. 즉, 우리는 강령, 전술, 조직에 관한 모든 논쟁 중인 원칙적 문제들이 완전히 규명될 때를 기다리면서 대회 준비에 최대의 신중을 기하였으며, 우리는 이러한 근본적 문제들에 대하여 대회의 압도적 다수가 단합할 것이라는 의미에서, 대회는 『이스크라』적인 것으로 될 것이라는 점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이것은 『이스크라』를 지도적 기관지로 승인한 결의에 의해서도 부분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스크라』의 사상을 전파하고 『이스크라』를 당으로 전환시키는 모든 준비 활동을 그 어깨에 걸며진 동지들에게, 새로운 당 기관에 가장 적합한 후보자가 누구인지를 그들 스스로 결정하도록 밝게 두어야 했다. ‘두 개의 3인조’라는 계획은 당연한 것이었다는 사실, 이 계획은 『이스크라』의 모든 정책과 완전히 합치하고 있었으며, 조금이라도 사정에 통달해 있는 사람들이 『이스크라』에 관하여 알고 있던 모든 것과 완전히 합치하고 있었다는 사실, 오직 이들 사실에 의해서만, 이 계획이 일반적으로 찬성을 받았으며 여기에 대항한 다른 안 이 없었다는 것이 설명될 수 있다.

 

그러하여 대회에서, 무소프 동지가 누구보다도 먼저 2개의 3인조의 선출을 제안하였다. 마르토프 — 그는 이 계획은 기획주의라는 부당한 비난과 관련되어 있다고 우리에게 판지로 통고했다 — 의 추종자들은 6인조의 편집국인가, 3인조의 편집국인가 하는 논쟁을, 이 비난이 옳은가 그른가 하는 문제로 환원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들 중 누구 하나 이에 대해 암시조차 하지 않았다! 그들 중 누구도 6인조인가 3인조인가 하는 논쟁과 관련된 원칙적 세쇄의 다양한 차이점에 대해서는 감히 한 마디도 못하였다. 그들은 오히려 더 천박하고 잃은 방식을 택했는데, 즉 동접심에 호소한다든가, 감정을 상하게 할 가능성 운운하면서 편집국의 문제는 『이스크라』를 중앙기관지로 지정함으로써 이미 해결되었다는 듯이 가장했다. 콜츠프 동지가 무소프 동지에 반대하여 제시한 이 마지막 논리는 새롭고 거짓말이었다. 대회의 의사일정에는(의사록, 10쪽) 제4항 ‘당의 중앙기관지’와 제18항 ‘중앙위원회와 중앙기관지 편집국의 선거’라는 두 가지 별개의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 물론, 우연은 아니었다. 이것이 첫 번째 이유이다. 두 번째로, 중앙기관지로 지정할 때, 이것은 편집국이 아니라 단지 그 경향을 승인한 것뿐이라고 대표 모두가 명백히 선언하였으며 이 선언에 반대한 항의는 한 마디도 없었다.

 

따라서 대회는 특정한 기관지를 승인함으로써 실질적으로 편집국도 승인하 였다는 선언 — 소수파의 신봉자들(콜초프, 321쪽; 포사토프스키, 321쪽; 포포 프, 322쪽 및 기타 다수)에 의해 여러 번 되풀이된 이 선언 — 은 실제로는 완전한 거짓말이다. 이는 모든 사람이 아직 중앙기관들의 구성 문제를 실로 공명한 태도로 바라볼 수 있었던 때에 취하고 있었던 입장으로부터의 후퇴를 은폐하기 위한 완전히 명백한 계략이었다. 이 후퇴는 원칙적인 논리를 통해서 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왜냐하면 대회에서 ‘기회주의라는 부당한 비난’의 문제 를 제기하는 것은 소수파에게 너무나도 불리하였으므로, 그들은 이것을 입 뻐 에 내지도 않았다). 6인조와 3인조 중 어느 것이 실질적으로 더 능률적인가를 보이는 사실적인 자료를 드는 것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었다(왜냐하면 이 자료 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소수파에게 불리한 증거가 엄청나게 많이 나올 것이 기 때문이다). 그들은 ‘균형 잡힌 전체’라든가 ‘손발이 맞는 힘’이라든가 ‘균형 잡히고 결정체와 같이 완벽한 통일체’ 등등의 빈말로 이 문제를 목살해야 했 다. 이러한 말들이 즉각적으로 ‘동정심에 호소하는 말’(328쪽)이라는 정확한 명 칭으로 불리게 된 것은 놀랍지 않다. 3인조라는 계획 바로 그 자체가 손발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명백히 입증했으며 대표들은 한 달 이상의 공동 활동 속 에서 얻은 인상을 통하여 그 대표들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정도의 많은 자료 를 확보하고 있었다. 포사토프스키 동지가 이 자료에 대한 암시를 주었을 때 (그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신중하지 못하며 생각 없는 것이었다. 그가 ‘불화’ 라는 말을 사용했을 때 달랐던 ‘조건부’에 대해서는 321쪽 및 325쪽을 보라), 무라비오프 동지는 단호하게 이렇게 선언했다. “나의 생각으로는, 그러한” 불화가 틀림없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현재 대회의 다수에게는 아주 명백한 다”(321쪽). 소수파는 무라비오프 동지의 도전에 응할 용기도 없었으며, 또 6 인조의 편집국을 용호하는 데서 실질적인 진가에 입각한 단 하나의 논거를 제시할 용기도 없이, ‘불화’라는 말이 맡은 무라비오프가 아니라 포시도프스키에 의해 유포된 것이다)을 순전히 인신 공격적인 의미로 해석하려 하였다. 그 결과 내용의 빈곤함이라는 점에서 무척 우스황스러운 논쟁이 일어났다. 즉, 다수파는 (무라비오프 동지의 발언을 통하여) 6인조인가 3인조인가 하는 문제의 참된 의미가 그들에게 참으로 명백하다고 단언하였지만, 소수파는 이에 귀 기울이기를 완강히 거부하며 “우리는 그것을 검토할 수 있는 처지에 있지 않다”고 단언하였다. 다수파는 이것을 검토할 수 있는 처지에 있다고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이미 ‘검토해 왔으며,’ 검토 결과는 그들에게 참으로 명백하다고 말하였으나, 소수파는 확실히 검토를 두려워했으며, 단지 ‘동정심에 호소하는’ 말 뒤에 숨어 버렸다. 다수파는 “우리의 중앙기관지는 문필가 집단 이상의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또한 “대회에 알려져 있는 사람들, 내가 지적한 요건들(즉, 327쪽의 탕게 동지의 연설과 같이 한것 문필가 적 요건만은 아닌)을 충족시키는 참으로 명확한 사람들에 의해 지도되기를 원했다.” 이번에도 소수파는 이 도전에 응할 용기가 없었으며, 그들의 견해로 볼 때 문필가적인 조직체 이상의 것에 적합한 사람이 누구이며, ‘대회에 알려진’ ‘참으로 명확한’ 중요 인물은 누구인가에 대해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소수파는 계속해서 그들의 유명한 ‘손발’ 뒤에 숨었다. 그뿐만이 아닌다. 소수파는, 원칙상 절대 옳지 못하며 따라서 당연히 날카롭게 저지당할 수밖에 없었던 논리를 논쟁 속에 끌어들이기조차 했다 “대회는” — 모름지기 — “편집국을 개편할 도의적인 또는 정치적인 권리가 없다”(트로츠키, 326쪽), “이는 너무나도 미묘한(원문대로!) 문제이다”(역시 트로츠키), “재산되지 못한 편집국 원들은 대회가 그들을 더 이상 편집국에 두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 어떻게 느낄 것인가?”(씨로프, 324쪽).

 

이러한 논거들은 문제 전체를 단순히 연민과 상처받은 감정의 수준으로 끌어 내렸으며, 참으로 원칙적이고 정치적인 논리에서는 파산했음을 직접 시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수파는 즉각 이러한 태도에 속을 근심이라는 정확한 명칭을 붙여 주었다(루소프 동지). 루소프 동지는 정확히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혁명가의 입에서, 당 활동과 당 윤리의 편념에 현격히 모순되는 이상한 발언들이 나오고 있다. 3인조 선출에 반대하는 자들의 주요한 논리는 당 사업에 대한 순전히 속물적인 견해로 귀착된다”(나의 강조, 이후 강조는 계속 나의 것). “……만일 우리가 속물적이며 비당적인 이러한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선거 때마다 다음과 같은 문제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즉, 페트로프는 만일 자신이 아니라 이바노프가 선출되면 감정이 상하지 않을까? 조직위원 중 누군 가는, 만일 자신이 아니라 다른 위원이 중앙위원으로 선출된다면 감정이 상하 지 않을까? 둥둥, 동지들, 이것이 우리를 어디로 끌고 가겠는가? 우리가 여기 모인 것은 상호 천장과 속물적 동점심에 빠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당을 창설 하기 위한 것인 이상, 이러한 견해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우리는 임원을 선 출하려 하고 있으며, 따라서 선출되지 못한 사람이 혹시 불신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없다. 우리가 유일하게 고려해야 할 사 항은 사업의 이익에 관한 문제와 선출된 자가 선출되는 자리에 적합한가 하는 문제뿐이다”(325쪽).

 

우리는, 당 분열의 원인을 주체적으로 검토하려는 모든 사람, 대회에서 분 열의 근원을 캐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루소프 동지의 이 연설을 반복해서 읽어 보라고 권하는 바이다. 소수파는 그의 논리에 반박은커녕 실로 언경조차 불이 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초보적이며 근본적인 진리는 실로 언경될 수 없는 것으로서, 루소프 동지가 정확히 표현했듯이 단지 ‘신경질적인 흥분 상태’ 때 문에 잊혀졌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소수파가 어떻게 하여 당적 견지를 팽 개치고 속물 근성과 써를 근성의 견지로 타락할 수 있었는가를 설명하는 데, 그들의 불명예를 참으로 최소화시킨 설명이다.

 

그런데 소수파는 선거에 반대하는 조리 있고 실무적인 논리를 전혀 찾아낼 수 없게 되자, 당 사업에 속을 근성을 끌어들인 것 외에도, 노골적으로 중상비 방하는 진피를 들고 나왔다. 정말로, 무라비오프 동지에게 “카다로운 임무를 떠밀지 말라”(324쪽)고 충고한 포포프 동지의 행동을 달리 무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소로킨 동지가 정확히 표현했듯이 이것이 ‘인신 공격’(328쪽)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는 정치적 논거가 없는 것이므로, 제명대로의 ‘인신 공격’ 외에 달리 무어라 부를 수 있는가? “우리는 이러한 잔꾀에 항상 이의를 제기해 왔다”, “자신에게 동의하지 않은 동지들을 웃음거리로 만들려고 노골적으로 시도한 도이치 동지의 행동은 허용될 수 있는가?"(328쪽)* 하고 말한 소로킨 동지는 옳았는가 옳지 않았는가?

 

편집국 문제에 관한 논쟁을 총괄해 보자. 소수파는, 3인조에 대한 계획이 대회 백두와 대회 전부터 대표들에게 알려져 있었으며 따라서 이 계획은 대회에서 발생한 시간이나 논쟁과는 힘들 관계가 없는 신중한 고려와 시설에 근거 하고 있다는 다수파의 수많은 지적을 반박하지 않았다(아니, 반박하려고 하지 도 않았다). 6인조의 편집국을 옹호하는 데서, 소수파는 속물적인 사고에 기초한, 원칙적으로 잘못되었으며 허용될 수 없는 입장을 취하였다. 소수파는 임원의 선출에 대한 당직 자세를 완전히 망각했음을 드러내는 바, 한 지위에 대한 각 후보의 평가의 이 후보가 많은 바 직무에 적절할지 그렇지 않을지에 대한 평가조차 하려 하지 않았다. 소수파는 문제의 본질적인 심의를 회피하였으며, 그 대신 마치 누군가가 살해되기라도 한 듯이 ‘눈물을 흘리며’ ‘비탄에 잠겨서’ 그 유명한 ‘손발’을 말하였다(망계의 연설 327쪽). ‘신경질적인 흥분 상태’(325쪽)에서 소수파는 ‘인신 공격’, 선거는 ‘최악’이라는 아무성, 그리고 이와 유사한 허용될 수 없는 책략조차 서술지 않았다.

 

속물 근성과 당 정신 사이의 투쟁, 가장 저질스런 ‘인신 공격’과 ‘정치적 고려 사이의 투쟁, 동정에 호소하는 말과 혁명적 임무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 사이의 투쟁’——이것이 우리 대회의 제30회 회의에서 있었던 6인조와 3인조를 둘러싼 투쟁의 본질이었다.

 

그리고 31회 회의에서 대회가 19표 대 17표, 기권 3표로 구편집국 전원을 승인하자는 제안을 부결하자(330쪽과 정오표를 보라), 구편집국원들이 회의장에 돌아온 뒤 마르토프 동지는 ‘구편집국 다수파를 대표한 성명’(330~331쪽)에서 정치적 입장과 정치적 개념의 이와 같은 무정결과 동요를 한층 심하게 드러내었다. 이 집단 성명의 각 항과 그에 대한 나의 응답(332~333쪽)을 자세히 검토해 보자.

 

구편집국이 승인되지 않자, 마르토프 동지는 “이제부터 구"이스크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 명칭을 바꾸는 편이 한층 일관성이 있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대회의 새로운 결의를 대회 초반의 한 회의에서 채택된 바 있는 "이스크라"에 대한 신임 투표의 실질적인 제한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마르토프 동지와 그 동료들은, 참으로 흥미로우며 많은 점에서 교훈적인 정치적 일관성이라는 문제를 제기하였다. 나는 "이스크라"를 승인할 때 모든 사람이 말했던 것을 인용함으로써 이미 이 문제에 대한 바 있다(의사록, 349쪽과 본서 82쪽[여기서는 109쪽 각주 - 편집자]을 참조하라). 우리가 여기에서 직접하고 있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정치적 비일관성의 놀라운 사례이지만, 어느 편이 그러한가 - 대회의 다수파 측인가 아니면 구편집국의 다수파 측인가 - 에 대한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기겠다. 또 마르토프 동지와 그 동료들이 매우 적절하게 제기한 다른 2개의 문제가 있는데, 이 역시 독자의 결정에 맡기겠다. 즉, 1) 중앙기관지 편집국의 임원을 선거한다는 대회의 결정 속에서 "이스크라"에 대한 신임 투표의 제한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하는 의도가 속을 적인 태도를 드러내는가 아니면 당첨 태도인가? 2) 구"이스크라"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은 어느 때부터인가? - 플래하노르와 나, 두 사람이 운영하기 시작한 제46호부터인가, 아니면 구편집국의 다수파가 인계받아 운영한 제53호부터인가? 첫 번째 문제가 가장 흥미로운 원칙의 문제라면, 두 번째 문제는 가장 흥미로운 사실의 문제이다.

 

마르토프 동지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 3명으로 구성된 편집국을 선출하기로 결정되었으므로, 나는 나와 그 밖의 3명의 동지를 대표하여 우리 중 누구도 이 신편집국에 참가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하는 바이다. 나 자신에 대해 부인해 둘 것은, 어떤 동지들이 3인조의 후보자 명부에 나의 이름을 기입하고자 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이것을 부당한 모욕[원문 그대로]으로 간주할 것이다. 나는 편집국의 개편이 결정된 상황을 고려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이 결정은, 모종의 ‘알렉’과 구편집국의 활동 능력의 결여라는 이유로 취해졌다. 더구나 대회는 이 알렉에 대해 편집국에 문의하지도 않고, 또 심지어 활동 능력의 결여라는 문제를 명백히 하기 위한 소위원회를 임명하지도 않은 채, 이 문제를 어떤 특정한 방향에 따라 결정하였다(이상하게도 소수와 중 어느 누구도 ‘편집국에 문의할 것’이나 소위원회를 임명할 것을 대회에 결코 제안하지 않았다!『이스크라』조직이 분열되고 마르토프 동지와 스타로베르 동지가 글로 써 보냈던 교섭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에는 그렇게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이런 상황에서, 내가 이러한 방식으로 개편된 편집국의 일원이 되는 것에 동의할 것이라는 몇몇 동지들의 예상은 나의 정치적 명성에 대한 훼손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내가 일부러 주장을 전부 인용한 것은, 대회 이후에 찬란히 피어났으며 물품선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언동의 사례와 발달을 독지들이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일찍이『이스크라』편집국에 보내는 편지에서 꼴불견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으며, 편집진들의 곤혹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반복하여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표현의 정확성은 논쟁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물질론은 ‘비열한 동기’를 전제로 하고 있다(신기이스크라,의 편집진들이 결론짓듯이)는 생각은 잘못이다. 우리 나라의 유배자나 정치적 명령자를 조금이라도 아는 혁명가라면, ‘신경질적인 흥분’과 비정상적이며 침체된 생활조건 때문에 가장 어리석은 비난, 의심, 자체, ‘인신 공격’ 등을 피부으며 되풀이된 수십 가지의 눈물사나운 입씨를 목격해 왔을 것이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입씨를의 앙상이 아무리 비열하다더라도 이들 인정 속에서 비열한 동기를 찾아내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마르토프 동지의 연설에서 인용한 위 구절에 들어 있는 어리석음, 인신 공격, 근거 없는 공포, 모욕과 증상에 대한 상상 등으로 뒤흔진 실태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신경질적인 흥분’뿐이다. 침체된 생활 조건은 우리 사이에 이런 일을 수도 없이 만들어 낸다. 그리고 한 정당이 자신의 질병의 이름을 정확하게 부르고 단호한 진단을 내리며 치료법을 찾으려는 용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이 정당은 존경받을 가치가 없을 것이다.

 

이 엉긴 실태를 중에서 원칙과 관련된 것을 조금이라도 추출해 낼 수 있는 한, 다음과 같은 결론에 필연적으로 도달한다. “선거는 정치적 명성의 어떤 체스라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 “새로운 선거를 실시하며 새로운 임명을 행하고 대회 자체가 공인한 조직체의 구성을 개편하는 대회의 권한을 부정하는 것”은 문제에 혼란을 가져온다는 것, 그리고 “구편집국의 일부분의 선출이 한 허용될 수 있는 문제인가에 대한 마르토프 동지의 견해는 정치적 개념의 극단적인 흥동을 나타내고 있다”(대회에서 내가 이렇게 표현했듯이, 332쪽)는 것 등이다.

 

3인조 안을 누가 최초로 발의하였는가에 대한 마르토프 동지의 ‘개인적인’의견은 생략하고, 구편집국을 승인하지 않은 것이 갖는 의미에 대하여 그가 내린 ‘정치적인’ 판정으로 넘어가겠다. 즉,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은 대회의 후반기 동안 사냥게 물어졌던 투쟁의 최후의 일막이다”(정말로 옳다! 그리고 대회의 후반기는 마르토프 동지가 규약 제1조의 문제에서 아키모프 동지의 단단한 손아귀에 불참한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이 개편에서 문제는 ‘활동능력’이 아니라, 중앙위원회에 대해 영향력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이라는 점은 공공연한 비밀이다”(첫째, 이것이 중앙위원회의 구성을 둘러싼 불일치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활동 능력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왜 나하면 ‘개편’은 불일치가 아닌 곳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때, 그리고 마르토프 동지가 일곱 번째의 편집국원으로 파블로비치를 선출하는 데 우리와 의견을 같이했던 때에 제출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이것은 중앙위원회의 인적 구성의 문제이며 결국 글레보프 - 트라빈스키 - 포포프인가 글레보프 - 트로츠키 - 포포프인가 하는 두 가지 명부의 차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문헌상의 증거에서 보았다. “편집국의 다수는 중앙위원회를 편집국의 도구로 전략시킬 마음이 없다는 것을 보였다”(이것은 아카모프의 상투이다. 즉, 모든 다수파가 다수의 힘으로 중앙기관들에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어떤 당 대회에서나 투쟁하게 마련인 영향력의 문제는, 마르토프 동지가 조금 뒤에 말하는 바와 같이 편집국의 ‘도구’라는가 편집국의 ‘단순한 부속물’이라는 기획주의적 비방의 수준으로 옮겨진다. 334쪽). “그렇기 때문에 편집국원의 수를 감소시킬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또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러한 편집국에 들어갈 수 없다”(이 ‘그렇기 때문에’라는 말을 좀더 주의 깊게 살펴보라. 편집국이 중앙위원회를 부속물 혹은 도구로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그것은 오직 편집국이 평의회 내에 3표를 가졌고, 이 우위를 악용한 경우에만 가능하다. 이는 명백하지 않는 가? 그리고 세 번째 위원으로 선출된 마르토프 동지는 언제라도 이러한 악용을 막을 수 있었으며, 자신의 표 하나로만도 평의회 내에서의 편집국의 모든 우위를 타파할 수 있었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명확하지 않은가? 결국 모든 문제는 중앙위원회의 인적 구성으로 귀착되고, 도구라는가 부속물이라든가 하는 말은 중앙모락임이 즉시 분명해진다). “편집국의 다수와 함께 나는, 대회가 당 내의 ‘게임 상태’에 종지부를 찍고 정상적인 질서를 수립할 것이라고 생각하였 다. 그러나 실제로는 특정 그룹에 대한 비상 입법과 함께 게임 상태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심지어 더욱 강화되고 있다. 오직 구편집국이 그대로 남는 경우에만, 우리는 규약에 따라 편집국에 주어진 권한들이 당에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보증할 수 있다……”

 

이상이 마르토프 동지의 연설 중 그가 ‘게임 상태’라는 악명 높은 합성물 처음으로 내밀렸던 부분의 전문이다. 그러면 이제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을 보도록 하자.

 

“…… 그러나, 나는 두 개의 3인조 안의 감춘진(private) 성격에 대한 마르토프의 선언을 정정하는 데서, 구편집국을 승인하지 않기로 하면서 우리가 취한 조치가 ‘정치적 의의’를 가졌다는 마르토프 동자의 주장을 부정할 의도는 없다. 오히려 이 조치가 커다란 정치적 의의를 가졌다는 점에서 마르토프 동자에게 완전히, 무조건적으로 동의한다—단, 마르토프가 그것에 부여한 그 의의는 아니다. 그는 이것이 러시아 내에서 중앙위원회에 대한 영향력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의 일막이었다고 하였다. 나는 마르토프보다 좀더 발전시키겠다. 지금까지 개별 그룹으로서 『이스크라』의 모든 활동은 영향력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한층 더 중요한 문제가 있는 바, 즉 영향력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뿐 아니라 영향력을 조직적으로 강화하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하여 마르토프 동자와 나 사이에 정치적으로 얼마나 깊은 의견 차이가 있는지는 다음의 사실이 잘 보여준다. 즉, 마르토프는 중앙위원회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는 이유로 나를 비난하는 반면, 나는 이 영향력을 조직적 방법으로 강화하려 하였고 지금도 강화하려 하고 있으며 이 일이 나의 명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각기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음이 확실하다. 우리의 모든 활동과 모든 노력이 영향력의 완전한 획득과 강화가 아니라, 영향력 획득을 위한 구매의연한 투쟁으로 끝나 버린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렇다. 마르토프 동자는 전적으로 옳다. 즉, 우리가 취한 조치는, 현재 일러진 여러 경향들 중의 하나가 우리 당의 장래 활동을 위해 선택되었음을 보여주는 확실히 중요한 정치적 조치이다. 그리고 나는 ‘당 내의 계열 상태’라는 ‘특정 개인들과 그룹들에 대한 비상 일일’ 등의 무시무시한 말을 조금도 무시하지 않는다. 우리는 불안정한 동요 분자에 대하여 ‘계열 상태’를 만들어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당 귀약전체와 이제 대회에서 승인받은 중앙집권계의 모든 체계는, 정치적 모호함의 수많은 원천에 대한 ‘계열 상태’와 다를 바 없다. 모호함에 대한 방해으로, 비록 비상 일일일망장 특별법이 요구된다. 그리고 대회가 취한 조치는, 이러한 일일일과 이러한 방해를 위해 필요한 확고한 토대를 만들어 놓음으로써, 앞으로 나아갈 정치적 방향을 올바르게 가리켜 왔다.”

 

나는 대회에서의 나의 연설의 개요 중에서, 마르토프 동자가 그의 계열 상태(16쪽)에서 생략하고자 했던 문장을 강조하였다. 그가 이 문장을 꺼려했으며, 이 문장의 명확한 의미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마르토프 동자, ‘무시무시한 말’이라는 표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조소—보잘것없는 사실에 위대한 이름을 부여하는 자, 파장된 설교로 단순한 문제를 혼동시키려는 자에 대한 조소—를 의미한다. 마르토프 동자의 ‘신경질적인 흥분’의 유일한 원인으로 될 수 있었고 또 실제로 되었던 보잘것없으며 단순한 사실은, 중앙기관들의 인적 구성 문제에서 대회에서 그가 패배했다는 사실 바로 그것이다. 이 단순한 사실의 정치적 의미는, 승리한 당 대회의 다수파가 당 지도부 내에서 다수를 점함으로써, 또 이 다수파가 불안정성, 동요성 및 모호성이라고* 간주되는 것에 대항하여 투쟁하기 위한 조직적 기반을 규약에 따라 창출함으로써 그들의 영향력을 강화하였다는 점이다. 이것에 대하여 집막은 눈으로 ‘영향력 획득을 위한 투쟁’ 운용하며 ‘게임 상태’라는 불평을 한 것은 파장된 설교이며 무시무시한 말일 뿐이다.

 

마르토프 동지는 이상의 것들에 동의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아마도 그는, 당 대회에서 다수파가 1) 중앙기관들 내에 다수를 확보하고, 또 2) 불안정성, 동요성, 모호성을 마비시키기 위한 권력을 다수파에 부여함으로써, 그들이 이미 획득한 영향력을 강화해 나가지 않으려 했던 경우가 있었다는 것, 또 일반적으로 그런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증명해 보여야 할 것이다.

 

선거에 앞서 우리 대회는, 중앙기관지와 중앙위원회에서 표결권의 1/3을 당의 다수파에 줄 것인가 아니면 당의 소수파에 줄 것인가 하는 문제를 결정해야 했다. 6인조 안과 마르토프 동지의 명부는 우리에게 1/3을 주고 그의 추종자들에게 2/3를 주는 것을 의미했다. 마르토프 동지는 우리와 협상하거나 우리에게 양보할 것을 거부하였으며, 대회에서 투쟁하지는 편지로 우리에게 도전하였다. 대회에서 패배하지, 그는 울음을 터트리며 ‘게임 상태’라는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자, 이것이 불분명이 아니라 말인가? 이것이 지식인적 나약함의 새로운 발현이 아니라 말인가?

 

이와 관련하여, 최근의 칼 카우츠키의 지식인의 자질에 대한 탁월한 사회학적·심리학적 특징 묘사를 회상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여러 나라의 사회인주당은 대부분 이와 유사한 병에 걸려 있으며, 한층 경험 있는 동자들에게서 울바른 진단과 울바른 치료법을 배우는 것이 우리에게 매우 유익하다. 그러므로 몇몇 지식인들에 대한 칼 카우츠키의 특징 묘사는 우리의 논제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다만 외견상 그럴 뿐이다.

 

...... 오늘날 또다시 우리의 관심을 강하게 끌고 있는 문제는 인텔리전터와 프롤레티아트 사이의 대립 문제이다. 나의 동료들(카우츠키 자신도 인텔리어 몰랐기 어려워)인다. 나가 이 대립을 인정하는 것에 대해 매우 분명할 것이다. 그러 나 대립은 실제로 존재하고 있으며,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경우에도 사실을 부정함으로써 그것을 극복하려 하는 시도는 가장 부적절한 방해일 것이다. 이 대립은 사회적인 것이며 계급에 관한 것이지, 개인에 관한 것이 아니라. 개개의 자본가 와 마찬가지로 지식인도 개인적으로는 프롤레티아트의 계급투쟁에서 프롤레티아트와 일체가 될 수 있다. 이렇게 했을 경우, 지식인은 자신의 성격도 변화한다. 따라서 앞으로 주로 언급하게 되는 것은, 자신의 계급에서는 여전히 예외인 이러한 형의 지식인이 아니다. 달리 쓰이지 않는 한, 앞으로 내가 사용하는 지식인이라는 말은 부르주아 사회의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계급으로서의 인텔리전터와의 특정을 전형적으로 가지고 있는 평범한 지식인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계급은 프롤레티아트와 일정한 대립적 관계에 있다.

 

그러나 이 대립은 노동과 자본 사이의 대립과는 다른 것이다. 지식인은 자본가가 아니다. 물론 그의 생활 수준은 부르주아적이며, 극반자로 되지 않는 한 이 수준을 유지하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자신의 노동 생산물, 그리고 종종 자신의 노동력을 필수다. 하며, 종종 자본가에게 상당히 착취되며 모욕을 당한다. 따라서 지식인은 프롤레티아트와 아무런 경제적 대립 위에 서 있지 않다. 그러나 그의 생활 상 대화 노동 조건은 프롤레티아적이지 않으며, 이 때문에 정서와 사고에서 일정한 대립이 발생한다.

 

프롤레티아트는 고립된 개인으로서는 보장되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합과, 자신의 모든 발전, 자신의 기대와 희망 전체를 조직으로부터, 동료와의 체계적인 공동 활동으로부터 얻어 낸다. 그는 자신이 거대하고 강력한 조직체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을 때, 거대한 강력함을 느낀다. 이 조직체는 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며, 이것에 비해 개인은 매우 보장되었는 것으로 생각된다. 프롤레티아트는 익명의 대중의 일 부로서 최고의 헌신성으로, 개인적 이익과 개인적 명성을 돕도록 돕고 투쟁하는 바, 자신의 모든 감정과 사고에 스며들어 있는 자발적 규율에 따르면서, 자신에게 맡겨 진 어떠한 직무에서나 자신의 책임을 완수한다.

 

지식인의 경우는 완전히 다르다. 그는 힘으로써가 아니라 논리로써 투쟁한다. 그의 무기는 자신의 개인적인 지식, 자신의 개인적인 능력, 자신의 개인적 신념이다. 그 는 오직 개인적 자질을 통해서만 어떠한 지위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그에게는 자 신의 개성을 발휘할 완전한 자유가 성공적인 활동을 위한 첫째 조건으로 보인다. 그가 전체에 종속하는 일부분이 되는 것이 복종하는 것은 부득이한 경우뿐이며, 그 것도 좋아서가 아니라 오직 필요에 따른 것이다. 그는 대중에 대해서만 규율의 필 요성을 인정하며 선택된 인물에 대해서는 그 필요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물론 그 자신은 후자에 속하는 것으로 여긴다.……

 

초인 승배를 설파한 니체의 철학, 즉 초인에게는 자신의 개성을 완성하는 것이 가 장 가치 있는 일이며, 자신의 개성을 거대한 사회적 목적에 종속시키는 것은 어떤 것이나 저속한 것이고 경멸해야 할 것이라는 이 철학은 진정한 지식인의 철학이다. 그리고 이것은 지식인이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에 참여하는 것을 전적으로 부 적합하게 만든다.

 

니체 다음으로 인텔리전자의 정서에 합치되는 철학의 가장 탁월한 대표자는 아마도 입센일 것이다. 그의 저작인민의 적이 나오는 의사 스토크만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사회주의자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운동, 일반적으로 어떤 민중운동 속에서 활동하려 하자마자 이 운동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지식인의 전형이다. 왜냐하 면 모든 민주주의* 운동과 마찬가지로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기초는 대다수 동료에 대한 존경심이기 때문이다. 스토크만과 같은 전형적인 지식인은 ‘결속된 다수’를 타도해야 할 괴물로 생각한다.……

 

지식인의 이상적인 모범, 즉 프롤레타리아트의 감성에 완전히 동화된 사람, 또 특출 한 문필가이면서도 지식인 특유의 의식을 완전히 버렸고, 진지하게 사명과 하나만 의 대열에 참가하여 헹군하였고, 그에게 말거진 것이라면 어떠한 직무라도 모두 이 행하였으며, 우리의 운동에 헌신적으로 그 자신을 복종시켰고, 입센과 니체로 물론 지식인이 스스로가 소수파일 때 자주 입 밖에 내는, 개성이 억압받고 있다는 무력 한 비탄(weichliches Gewinsel)을 경멸하는 사람——사회주의 운동이 필요로 하는 지식인의 이상적인 모범은 리프크네이트였다. 또한 마르크스도 이 범주에 들 수 있 는데, 그는 결코 선두를 탐하지 않았으며 그 자신이 종종 소수파였던 인터내셔널에 서 당 규율에 복종한 것은 가히 모범적이었다.

 

마르토프와 그의 동료들이 단지 구체들이 승인받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취임을 거부한 것이나, 게임 상태라는 등 ‘특정 그룹에 대한’ 비상 입법 — 이에 대해 마르토프는 『유즈니 라보치』와 『라보체에 젤로』가 해산될 때는 아무 관심도 없다가 자신의 그룹이 해산되지 주의를 집중하게 되었다 — 이라는 등 하는 불평을 터트린 것이아닐로, 소수파가 된 지식인의 바로 그 무력한 비판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르토프에 의해 시작되어 우리 당 대회에서(그리고 당 대회 후에는 그 이상으로) 홍수처럼 피부어진 ‘결속된 다수’에 대한 불평, 절책, 암시, 비난, 증상, 모략 등의 끝없는 파란은 바로 소수파로 된 지식인의 바로 그 무력한 비판에 불과한 것이었다.

 

소수파는 결속된 다수파가 내부 회합을 가졌다고 매우 투명지었다. 그러나 소수파는 다음과 같은 불쾌한 사실을 무엇으로든 은폐해야 했던 것이다. 즉, 소수파가 자기들의 내부 회합에 초대한 대표들은 참가를 거절하였으며, 그 반면에 즐거이 초대에 응할 대표들(에고로프, 마호프, 브루케르 같은 자들)은 대회에서 그들과 서로 투쟁한 후이기 때문에 소수파로서도 초대할 수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소수파는 ‘기회주의자라는 부당한 비난’에 대하여 심하게 불평하였다. 그러나, 소수파는 다음과 같은 불쾌한 사실을 무엇으로든 은폐해야 했던 것이다. 즉, 당 기관 내에서의 셋플 근성, 논증에서의 기회주의, 당 사업에서의 속물 근성, 지식인적 나약함과 불안정성 등을 상수들 들고 옹호하면서 결속된 소수파를 형성하였던 자들은 대개의 경우, 반『이스크라』파를 추종한 기회주의자 —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반『이스크라』파 자신들 — 이었다는 사실이다.

 

대회의 마지막에 ‘결속된 다수파’가 형성되었다는 매우 흥미로운 정치적 사실을 무엇으로 설명할 것이며, 왜 소수파는 모든 도전에도 불구하고 다수파의 성립 원인과 유래의 문제를 그렇게 매우, 매우 조심스럽게 회피하는가 하는 것은 다음 절에서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선 대회의 토론에 대한 분석을 끝내기로 하자.

 

중앙위원의 선거 중에, 마르토프 동지는 매우 특징적인 결의안을 제출하였으며(336쪽), 나는 때대로 그것의 주요한 세 가지 특징을 ‘세 수 결리는 외통 수’라고 불렀다. 그 제안은 다음과 같다. 1) 개개의 후보자가 아니라 중앙위원의 후보자 명부에 일괄 투표한다. 2) 명부를 발표한 후, 두 번의 회의를 거치도록 한다(그 목적은 토론을 위함이 분명하다). 3) 절대 다수를 얻지 못한 경우에는 두 번째의 표절을 최종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이 절의안은 매우 신중하게 고안해 낸 전략으로서(우리는 상대방에 대해서도 공평해야 한다), 에고로 프 동지는 이 안에 동의하지 않았지만(337쪽), 만약 분트피와 『리보체에 절로』파의 7명이 대회에서 퇴장하지 않았다(라면, 이 안은 마르토프의 완전한 승리를 가장 확실히 보장해 주었을 것이다. 이 전략이 나오게 된 이유는 『이스크라』소수파가 분트 및 브루케르는 그만두고라도 에고로프 일파 및 미총프 일파와도 ‘직접 협정’(『이스크라』다수파 내에서 맺어졌던 것과 같은)을 맺지 않았고 또 맺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연맹 대회에서 마르토프 동지가, ‘기회주의자라는 부당한 비난’은 그와 분트 사이의 직접 협정을 전제한 것이었다고 불평한 것을 생각해 보라. 반복하여 말하겠다, 이것은 공포에 빠진 마르토프 동지에게 그렇게 보인 것뿐이며, 에고로프 동지가 명부에 대한 일할 투표안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바로 그 사실은 (에고로프 동지는 “아직 그의 원칙을 잃지 않았다” — 민주주의적인 보장의 절대적 중요성을 평가하는 데서, 그로 하여금 골드블라트와 협력하게 만든 그 원칙) 심지어 에고로프와도 ‘직접 협정’은 문제가 될 수 없었다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에고로프 및 브루케르와의 연합은 있을 수 있었으며, 또 실제로 있었다. 이것은, 마르토프와 우리가 심각하게 충돌하여 아키모프와 그의 동료들이 덜 해로운 것을 선택해야 할 때면 언제나, 마르토프는 그들의 지지를 확신했다는 의미로서의 연합이다. 아키모프와 리베르 동지가 덜 해로운 것으로서, 즉 『이스크라』의 목적 달성을 최대한 방해하는 것으로서(규약 제1조에 관한 아키모프의 연설과 마르토프에 대한 그의 ‘기대’를 보라), 중앙기관지의 6인조와 중앙위원회에 관한 마르토프의 명부에 확실히 투표하였으리라는 것은 조금도 의심할 바가 없었으며, 현재도 그러하다. 명부에 대한 일할 투표, 두 번의 회의를 거치는 것, 재투표 등은 직접 협정 없이 거의 기계적인 정확함으로 이러한 결과를 달성하려고 계획된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결속된 다수파가 여전히 결속된 다수파로 남아 있는 한, 마르토프 동지의 우회 수법은 지연체에 불과한 것이었으며, 우리는 그것을 거부해야 했다. 소수파는 이런 상황에 대한 그들의 불평을 성명서(341쪽)에다 늘어놓았으며, 마르티노프와 아키모프의 모범을 본받아 “선거가 시행될 때의 상황을 고려하여” 중앙위원회의 선거에서 투표를 거부하였다. 선거 때의 상황이 비정상적이었다는 이러한 불평(「제임 상태」, 31쪽을 보라)은, 대회 이후로 수백 명의 당 내 수다쟁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그 비정상이 도대체 어디에 있었는가? 비밀 투표에? — 그러나 이것은 대회의 의사 규정(제6조, 의사록 11쪽)에 미리 규정되어 있었으며, 따라서 그 안에서 ‘위선’이나 ‘불공정’을 찾으려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연약한 지식인의 눈에 ‘피울’로 보이는 결속된 다수파의 형성에 있었는가? 아니면 대회 전에 한 서약 — 대회의 모든 선거를 승인하겠다는 서약(38쪽, 대회 규정 제18조) — 을 스스로 저버린 이들 존경할 만한 지식인들의 비정상적인 희망에 있었는가?

 

포포포 동지는 선거 당일, 대회에서 “대회 사무국은 대표의 절반이 투표를 거부한 경우라도 대회의 결정은 유효하며 적법하다고 확신하는가?”* 하는 노골적인 질문으로 이 희망을 교묘히 비쳤다. 물론 사무국은 그렇게 확신하고 있다고 대답하였으며, 아키모프 동지와 마르티노프 동지의 사건을 상기시켰다. 마르토프 동지는 사무국에 동의하면서, 포포포 동지는 잘못되었고 ‘대회의 결정들은 유효하다’(343쪽)고 확실히 선언하였다. 당 앞에서 행한 이 선언과 대회 후의 행동 및 그의 『제임 상태』 속에 있는 “대회에서 이미 시작된 당의 반수의 빈틈”(20쪽)이라는 문구를 비교함으로써 드러난 정치적 일관성 — 아마도 매우 정상적인 것이다 — 에 관해서는 이제 독자 스스로 판단하시라. 아키모프 동지가 마르토프 동지에게 건 기대가 마르토프 동지 자신의 허망하고 순진한 의도를 이겼다.

 

아키모프 동지! “당신이 승리했소”

 

 

대회 말엽, 즉 대회의 선거 이후 시기의 몇 가지 특징들 — 사소해 보이나 실제로는 매우 중요한 — 은, 현재 영원히 회비극적 의미를 가지게 된 ‘제임 상태’라는 문구가 얼마나 단순한 ‘협박조의 말’인가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마르토프 동지는 지금 이 회비극적 ‘제임 상태’라는 말로 큰 효과를 거두고 있으며, 그 자신이 고안한 이 허깨비는 ‘소수파’에 대한 ‘다수파’의 어떤 종류의 비정상적인 박해, 학대, 괴롭힘을 의미한다고 자기 자신과 자신의 독자들에게 진지하게 확신시키고 있다. 이제 곧 대회 후의 사태가 어떠했는가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대회의 마지막 부분까지 확인해 보면, 선거 이후 ‘결속된 다수 파’는, 괴롭힘과 학대를 받아 학살당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소문난 불행한 마르 토프파를 박해하기는 커녕의 사목위원회의 세 자리 중 두 개를 친히(라이도프를 통하여) 그들에게 제공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354쪽). 또 전술 및 그 밖의 문제에 관한 결의들(355쪽 및 그 이하)을 확인해 보라. 그러면 순수히 실무적인 방식으로 그 진가에 입각하여 이들 문제에 관한 심의가 진행되었다는 사실, 많은 결의서에 서명한 사람들 속에는 괴롭 같은 결속된 ‘다수파’의 대표들과 ‘천대반고 모욕당한’ ‘소수파’의 추종자들이 함께 포함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의사록, 355, 357, 363, 365, 367쪽). 이것이 어떻게 ‘활동으로부터의 배제’나 ‘괴롭힘’과 비슷한 것이 되는가?

 

문제의 본질에 대해 유일하게 흥미를 끄는 —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너무 나 간단한 — 논쟁이, 자유주의자에 대한 스타트베르크의 결의안을 둘러싸고 일어났다. 이 결의안에 대한 서명(357, 358쪽)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다수파’의 지지자 세 명(브라운[스테파노의 가명 — 편집자], 오를로프[대회 후 소수파로 전환 — 편집자], 오시포프[젬라츠키의 가명 — 편집자])가 그 결의안과 플래하노프의 결의안 사이에 화해할 수 없는 모순이 있음을 인식하지 못한 채 양쪽 모두에 찬성 투표했기 때문에, 이것이 대회에서 채택되었다. 얼핏 보면 그 둘 사이에 화해할 수 없는 모순이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왜냐하면 플래하노프의 결의안(48)이 러시아의 부르주아 지유주의에 대한 원칙과 전술에 관하여 일반적인 원칙을 설정하고 명확한 태도를 개관한 것인 반면, 스타트베르크의 결의안은 ‘자유주의적 혹은 자유민주주의적 경향들’과의 ‘일시적인 협정’이 허용될 수 있는 구체적인 조건들을 규정하려고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두 결의안의 주제는 서로 다르다. 그러나 스타트베르크의 결의안은 정치적 모호성이라는 결함을 가지고 있으며, 이 때문에 사소하며 천박하다. 이것은 러시아 자유주의의 계급적 내용을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이 계급적 내용이 표현되는 일정한 정치적 경향들을 지적하고 있지 않으며, 이들 일정한 경향들에 대한 선진과 선동에서의 주요한 임무들을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설명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학생 운동과 오스보보즈제니에(49) 같은 서로 편이한 것을 혼동하여 (자체의 모호함 때문에), ‘일시적인 협정’이 허용될 수 있는 세 개의 구체적 조건을 너무나도 자질구레하게, 결의론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여러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경우에도 역시 정치적 모호함은 결의론으로 귀착된다. 어떤 일반적 원칙도 없이 ‘조건들’을 열거하려는 시도는, 이러한 조건들을 자질구 레하게, 엄밀히 말하여 그릇되게 지적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스타로베르의 세 가지 조건을 살펴보자. 첫 번째 조건: ‘자유주의적 혹은 자유민주주의적 경향들’은 반드시 “그들이 전제 정부와의 투쟁에서 단호히 러시아사회민주당의 편 이 되겠다는 것을 명백히 그리고 확고하게 선언할 것.” 자유주의적 경향들과 자유민주주의적 경향들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결의안은 이 문제에 답할 아무 런 자료도 주지 않는다. 자유주의적 경향들은 부르주아의 정치적으로 가장 딜 진보적인 층의 입장을 대변하며, 자유민주주의적 경향들은 부르주아지 및 소부르주아지의 좀더 진보적인 층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닌가? 만일 그렇다면, 과연 스타로베르 동지는 부르주아지의 가장 딜 진보적인(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적인, 왜냐하면 그렇지 않고서는 자유주의에 관하여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층이 “단호히 사회민주당의 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이것은 어리석은 것이며, 설령 이러한 경향의 대표자들이 “이것 을 명백히 그리고 확고하게 선언한다”고 하더라도(전혀 불가능한 가정이지만), 프롤레타리아트의 당인 우리는 그들의 선언을 신입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자유주의자가 되는 것과, 단호하게 사회민주당의 편이 되는 것 — 이 들은 양립할 수 없다.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은 경우를 가정해 보자. 즉, ‘자유주의적 혹은 자유민주 주의적 경향들’이 전제와의 투쟁에서 단호하게 사회혁명당의 편이 될 것이라 고 명백히, 확고하게 선언했다고 하자. 이러한 가정은 스타로베르 동지의 가정 보다 더 가능성이 있다(사회혁명당의 경향이 지닌 부르주아 민주주의적인 성 격 때문에). 그의 결의안에 따르면 그것의 모호성과 결의론 때문에, 이와 같은 경우에는 이러한 자유주의자들과의 일시적인 협정은 허용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스타로베르 동지의 결의안으로부터 불가피하게 도출되는 이 결론은 완 전히 잘못된 것이다. 일시적 협정은 사회혁명당과도 허용될 수 있으며(사회혁 명당에 대한 대회의 결의를 보라50)), 따라서 사회혁명당의 편에 서는 자유주 의자와도 허용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조건: 이들 경향은 “자신들의 강령에 일반적인 민주주의의 이익 또는 노동자계급의 이익에 위배되거나 그들의 정치적 의식을 마비시키는 어떠한 요구 사항도 포함시키지 않을 것.” 여기에서도 똑같은 오류가 되풀이된다. 즉, 노동자계급의 이익에 반대되거나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의식을 마비시키는 요구 사항을 자신들의 강령에 포함시키지 않았던 자유민주주의적 경향은 지금 까지 결코 없었으며 또 있을 수도 없다. 우리 나라의 자유민주주의적 경향들 중 가장 민주주의적인 분파의 하나인 사회혁명당조차도 자신들의 강령 — 모든 자유주의적 강령이 그렇듯이 혼란된 — 에 노동자계급의 이익에 반대되고 그들의 정치적 의식을 마비시키는 요구 사항을 제시하였다. 이 사실로부터 끌어내야 할 결론은 “부르주아적 해방운동의 한계와 무력함에 대한 폭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지, 일시적 협정은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스타로베르 동지의 세 번째 ‘조건’(자유민주주의자들은 자신들의 투쟁 슬로건으로 보통, 평등, 비밀, 직접 선거제를 내세울 것)도, 여기서 제기된 일반적인 형태로는 마찬가지로 옳지 못하다. 즉, 제한 선거제 혹은 일반적으로 ‘반쪽’ 헌법을 슬로건으로 내거는 자유민주주의적 경향들과의 일시적이며 부분적인 협정은 어떤 경우에도 허용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면 이는 현명하지 못할 것이다. 사실 오스보보즈제니에적 ‘경향’은 이 범주에 적합할 것이다. 그러나 심지어 가장 소실한 자유주의자와도 ‘일시적 협정’을 맺는 것을 미리 금지함으로써 자신의 손을 읽매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원칙들과 상반된 정치적 근시일 것이다.

 

총괄: 마르토프 동지와 악셀로드 동지가 서명했던 스타로베르의 결의안은 오류이며, 따라서 제3차 대회는 그것을 폐기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그것은 이론적·진술적 입장에서 정치적 모호성이라는 결함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규정한 실제적인 ‘조건들’에서는 결의론에 빠져 있다. 그 결의안은 두 문제를 혼동하고 있다. 즉, 1) 모든 자유민주주의적 경향의 ‘반혁명적, 반르롤레타리아 트적’ 특징을 폭로하고 이러한 특징과 투쟁할 필요. 2) 이들 경향 중 어떤 것과 일시적이며 부분적인 협정을 맺기 위한 조건들. 그 결의안은 제시해야 할 것(자유주의의 계급적 내용의 분석)을 제시하지 않고, 제시해서는 안 될 것 (‘조건들’의 규정)을 제시하였다. 그러한 가능한 협정의 뚜렷한 상대로서 고려 할 대상조차 없을 때, 일시적 협정을 위한 상세한 ‘조건들’을 당 대회에서 작성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또 고려 중인 뚜렷한 상대가 있다 할지라도, 일시적 협정을 위한 ‘조건들’을 규정하는 일은, 대회가 사회혁명 당의 경향에 대하여 했던 것처럼(악셀로드 동지의 결의안의 끝부분을 플레하노프가 수정한 것을 보라.51) 의사록 363쪽과 15쪽) 당 중앙기관들에 위임하는 것이 백 배나 더 합리적일 것이다.

 

플레하노프의 결의안에 대한 ‘소수파’의 반대로서, 마르토르 동지가 든 유일한 논거는 다음과 같다. 즉, 플레하노르의 결의는 “한 특정 문필가를 폭로해야 한다는 빈약한 결론으로 끝나고 있다.” 이것이아닐로 “파리를 잡기 위해 도끼를 사용하는 격”이 아닐까?(358쪽) 이 논거는 ‘빈약한 결론’이라는 그림들한 문구로 자기 논거의 빈약함을 은폐하고 있는 바, 거창한 설교의 새로운 표본을 제공하고 있다. 첫째로, 플레하노르의 결의안은 “부르주아적 해방운동이 그들의 한계성과 무력함을 나타내는 곳이라면 어디서든지, 이것을 프롤레타리아 트의 면전에서 생생하게 폭로하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주의력을 오직 스트루베에게, 오직 한 명의 자유주의자들에게 둘리고 있다”는 마르토르 동지의 주장(연맹 대회에서, 의사록 88쪽)은 완전히 잡고대 같은 말이다. 둘째로, 러시아 자유주의자들과의 일시적 협정의 가능성이 문제가 될 때 스트루베 씨를 ‘파리’에 비교한 것은, 기본적이며 자명한 정치적인 사실을 그렇듯한 문구의 희생양으로 만드는 것이다. 아니다, 스트루베 씨는 파리가 아니고 중요한 정치적 인물이며, 그것은 그가 개인적으로 위대한 인물이기 때문에 아니다, 비합법의 세계에서 러시아 자유주의 — 어느 정도 활동 능력이 있고 조직된 자유주의 — 의 유일한 대표자라는 그의 위치 때문이다. 따라서 러시아 자유주의자에 대하여, 또 그들에 대한 우리 당의 태도에 대하여 말하면서 바로 이 스트루베 씨와 오스보브즈제니예를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은, 말하기는 하지만 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아니면 혹시, 마르토르 동지는 비록 미약하나마 현재 ‘오스보브즈제니예’의 경향에 견줄 만한 ‘자유주의적 혹은 자유민 주주의적 경향’이 러시아에 있다는 것을 단 하나라도 우리에게 보여줄 것인가? 그의 이러한 시도를 지켜보는 것은 재미있을 것이다!

 

코스트로프 동지는 “스트루베의 이름은 노동자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하면서 마르토프 동지를 지지했다. 나는 코스트로프 동지와 마르토프 동지가 노여워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이 논거는 완전히 아키모르 스타일이다. 이것은 프롤레타리아트라는 말이 소유적으로 쓰인 것에 대한 논리와 같다.[52]

 

스트루베의 이름(그리고 플레하노프 동지의 결의안에서 스트루베 씨와 함께 지적된 오스보브즈제너레라는 이름)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노동자는 어떠한 노동자들이일까? 그들은 러시아 내의 ‘자유주의적 및 자유민주주의적 경향들’을 극히 조금밖에 알지 못하거나 전혀 알지 못하는 노동자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노동자들에 대한 우리 당 대회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러시아 내의 이 유일하게 명확한 자유주의적 경향을 노동자들에게 알려 주도록 당원들에게 지시할 것인가? 아니면 노동자들이 정치를 잘 알지 못한다고 해서 그들에게 익숙치 못한 이름을 언급하는 것은 피해야 하는 것일까? 만약 코스트로프 동지가 아키모르 동지의 발자국을 따라 한걸음을 내딛기는 했으나 다음 걸음을 내딛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는 전자의 의미로 이 문제에 답할 것이다. 그리고 전자의 의미로 이 문제에 답하자마자, 그는 자신의 논리가 얼마나 큰 거 없는 것이었던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어쨌든 플레하노프의 결의안에 있는 ‘스트루베’와 ‘오스보브즈제너레’라는 말은 스타로베르의 결의안에 있는 ‘자유주의적 및 자유민주주의적 경향’이라는 말보다 노동자들에게 이마 훨씬 더 가치 있을 것이다.

 

오늘날 러시아 노동자는 우리 나라 자유주의와의 정치적 경향들의 출현만 표현을 오스보브즈제너레를 통하지 않고도 도저히 알아낼 수 없다. 합법적인 자유주의적 문헌은 너무도 애매하기 때문에 이 목적에 부적합하다. 우리는 가능한 한 끈기 있게(또 가능한 한 가장 광범한 노동자 대중 속에서) 오스보브즈제너레의 신시들을 향해 우리의 비판이라는 무기를 겨우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장래 일어날 혁명의 순간에,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는 혁명의 민주주의적 성격을 축소하려는 오스보브즈제니에 신사들의 불가피한 시도를 무기라는 실질적 비판으로 마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반정부 운동과 혁명 운동을 우리가 ‘지지하는’ 문제에 관한 애고로프 동지의 ‘당혹’을 제외하면, 결의에 관한 토론은 거의 흥미롭지 못했다. 사실 토론도 거의 없었다.

 

 

대회의 결정들은 모든 당원에게 구속력을 가진다는 의장의 간단한 주의와 함께 대회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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