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대회에서의 투쟁의 개관당의 혁명적 진영과 기회주의적 진영

 

대회에서의 토론과 투표의 분석을 끝내면서 이제 우리는 총결산을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선거 중에 나타났으며 이후 얼마 동안 우리 당의 기본적 분열로 되어 버린 최종적인 다수파와 소수파가 각기 어떠한 분자, 그룹 또는 색체로 구성되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대회 전체의 자료에 근거하여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대회 의사록에 매우 풍부하게 나타나는 원칙상, 이론상, 전술상의 다양한 색체와 관련된 일체의 자료들에 대해 총결산이 필요하다. 총체적 개관없이는, 대회 전체를 조망하고 투표 중에 나타난 주요한 파별 분립을 개관하지 않는다면, 이 자료는 너무나 단편적이고 산만하기 때문에 얼핏 보기에는 이런저런 개개의 파별 분립이 우연적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특히 대회 의사록을 주체적이며 포괄적으로 연구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게 보일 것이다(그런데 이러한 노력을 한 독자가 얼마나 있을까?).

 

영국의 의회 보고 중에서 우리는 분열이라는 특징적인 말을 종종 접하게 된다. 어떤 문제가 표결에 부처겠을 때 보통 의회가 이러지지만 다수파와 소수파로 분열되었다고 말한다. 대회에서 심의된 각종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 민주주의 의회의 분열, 당 내 투쟁에 대한 그림을, 당 내의 다양한 색채의 전해와 그룹들에 대한 그림을, 그러한 종류로서는 유일무이하며 비활 비 없이 완전하고 정확한 그림을 보여준다. 이 그림을 명료히 하기 위해, 단편적이고 산만하며 고립적인 사실들과 사건들의 뭉퉁이가 아닌 진실한 그림을 얻기 위해, 그러하여 개개의 표결에 대한 끝없고 무의미한 논쟁(누가 누구에게 투표했으며 누가 누구를 지지했는가 따위의)에 중지부를 찍고자, 나는 우리 대회 분열의 모든 기본적인 유형을 도표로서 나타내기로 했다. 아마도 이러한 방식이 매우 많은 사람들에게는 몹시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대회의 결과들을 가 능한 한 가장 완전하고 정확하게 총괄하고 요약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이보다 더 나은 것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떤 특징 대표가 일정한 안건에 대해 찬성 투표를 했는가 반대 투표를 했는가 하는 것은 기명 투표의 경우에는 절 대적으로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으며, 또한 중대한 몇몇 무기명 투표의 경우에도 의사록에 근거하여 상당 정도의 개연성 있는, 충분히 진실에 가까운 판 정을 내릴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모든 기명 투표 및 조금이라도 중요한 안 건(예를 들어 토론의 상세함이나 격렬성으로 판단하여)에 대한 모든 무기명 투표를 고려해 냈는다면, 현존하는 자료가 허락하는 한 가장 객관적인 우리 당 내 투쟁의 진상을 보게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각각의 투표를 따로따로 사진을 찍듯이 묘사하는 대신에, 문제를 혼란시킬 뿐인 비교적 중요하지 않은 예외와 변종은 무시한 채 투표의 모든 주요한 유형을 나타내려고, 즉 하나의 그림을 제시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여하든 누구라도 의사록의 도움을 얻어 우리 그림의 구성과성을 점검할 수 있고, 임의의 개개 투표를 가지고 이 그림을 보충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이 그림에 대한 비판은 고립된 개개의 사건에 대한 독자의 주장이나 의문의 표명 또는 지적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동일한 자료에 근거하여 상이한 그림을 그려 보임으로써도 역시 이루어질 수 있을 것 이다.

 

투표에 참가한 대표를 각각 도표에 기입하는 데서, 이제까지 대회 토론의 전과정을 통하여 자세히 살펴본 4개의 주요 그림, 1) 이스크라다수파, 2) 이스크라소수파, 3) ‘중간파’, 4) 이스크라파를 각기 특별한 명암으로 나타내었다. 이 그룹들 상호간에 원칙적 색채가 상이하다는 것은 수많은 실례를 통하여 우리가 보아 온 대로이다. 갈지자 걸음을 즐기는 사람으로 하여 금 이스크라, 조직파 이스크라, 방침을 너무 많이 연상케 하는 이러한 그룹 명칭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중요한 것은 명칭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대회에서의 모든 토론을 통하여 여러 색채들을 추적해 온 지금, 우리는 이미 확정되어 익숙해진(혹자는 귀에 거슬릴 수도 있다) 당 내 명칭 대신에 각 그룹이 지닌 색채의 본질적 특징으로 표현해 줄 수도 있다. 그러면 앞서의 네 그룹은 각기 1) 철저한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 2) 소기회주의자, 3) 중기회주의자, 4) 대기회주의자(우리 러시아 척도로서는 큰)로 표현된다. 이스크라파란 명칭이 단지 써클을 나타낼 때들이 지경향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고 얼마 전부터 자리를 설복하기 시작한 사람들에게는 이 쪽의 표현이 충격을 덜 주리라고 믿는 바이다.

 

도표에 개관되어 있는몇몇 투표 유형에 대해 이제 자세히 설명해 보자 (‘대회에서의 투쟁의 개관도, 란 도표를 보라’).

 

투표의 첫 번째 유형 A중간파가 반다이스크라파 혹은 그 일부에 반대하여 이스크라파에 동조했던 경우를 망라하고 있다. 여기에는 강령 전체에 대한 투표(아키모프 동지 한 사람만 기관하고 기타는 모두 찬성), 연방제에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결의에 대한 투표(분트파 5명을 제외하고 모두 찬성), 분트의 규약 제2조에 대한 투표(분트파 5명은 우리에게 반대했다. 마르티노프, 아키모프, 브루케르, 그리고 두 표를 가진 마호프 등 5표가 기관, 기타는 우리 편이었다)가 포함되는데, 도표 A에 나타난 것은 바로 이 투표이다. 그 외에도 이스크라를 당 중앙기관지로 승인하는 문제에 대한 세 번의 투표 역시 이 유형에 속한다. 편집진(5)은 기관하였고, 두 사람(아키모프, 브루케르)은 세 번 모두 반대 투표하였으며, 그리고 이 밖에 이스크라를 승인하는 이유문에 대하여 투표했을 때에는 분트파 5명과 마르티노프 동지가 기권하였다.

 

+41 5 -5

 

A

24 9 8 2 3 5

+32 -16

 

B

24 8 8 8

-25 +26

 

C

18 7 6 2 10 8

-23 +28

 

D

19 3 1 5 9 7 7

+24 -20

 

E

24 9 10 1

 

‘+’‘-’ 기호에 붙은 숫자는 각기 특정 문제에 대한 전설 투표와 반대 투표의 총수를 나타낸다. 막 대기물 아래의 숫자는 네 그룹 각각의 그룹별 투표수이다. A에서 E까지 각 유형으로 대표되는 투표의 성격에 대해서는 본문에서 설명된다.

 

그룹 이름

■ 『이스크라다수파

▲ 『이스크라소수파

중간파

이스크라

 

지금 검토하고 있는 유형의 투표는 대회의 중간파가 어떠한 경우에 이스크라파와 보조를 함께 했는가 하는 극히 흥미롭고 중요한 질문에 대한 헤달을 준다. 그 어떤 경우에, 몇 명의 예외를 제외하고 반이스크라파도 우리에게 동조했던 경우이거나(강령의 채택, 이유 표명 없이 이스크라를 승인하는 안건), 아니면 그 자체로는 일정한 정치적 입장에 대한 직접적 표명으로 되는 것은 아니 그러한 종류의 성령이 문제가 되었던 경우(, 이스크라의 조직 활동을 승인한다는 것이 그 자체로 개별 그룹에 이스크라의 조직 정책을 실행에 옮겨야 할 의무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마호프 동지의 경우에서 본 바와 같이, 연방제를 원칙적으로 거부했다고 해서 그 연방제를 구체화한 안에 대해 투표할 때 기관이 방지되는 것은 아니었다)이다. 앞에서 대회에서의 파벌 분립의 일반적 의의에 대해 서술하였을 때 우리는 공식 이스크라의 공식 설명 속에서 이 문제가 얼마나 그릇되게 표현되고 있는가를 보았던 바 있다. (마르토프 동지의 입을 빌어) 공식 이스크라, 이스크라과도 우리에게 동조했던 경우를 증거로 내세움으로써 이스크라과와 중간파사이의 차이, 즉 철저한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와 기회주의자 사이의 차이를 은폐하고 간과한

! 심지어 독일이나 프랑스 사회민주당 내 기회주의 진영의 극우분자들조차 강령을 전체로서 승인하는 그런 문제에 대해선 결코 반대표를 던지지 않는다.

 

투표의 두 번째 유형 B는 철저한 이스크라과와 불철저한 이스크라파가 모두 반이스크라파 전체 및 중간파전체에 반대하여 함께 투표했던 경우를 망라한다. 이는 주로 이스크라정책의 구체적인 특정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경우, 이스크라를 말로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승인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경우들이다. 여기에는 조직위원회 시간, 당 내에서의 분트의 지위를 의사 일정의 맨 처음에 놓는 문제, 유즈니 라보치, 그룹의 해체, 농업 강령에 대한 두 번의 투표, 그리고 마지막 여섯 번째로 러시아사회민주주의해외동맹(라보체에 절로)을 반대하는 투표, 즉 연맹을 당의 유일한 해외

조직으로 승인하는 결정 등이 포함된다. 여기에서는 당 성립 이전의 남은 셔클 근성 및 기회주의적 조직이나 그룹의 이해관계,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협소한 파악이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의 극히 철저하고 원칙에 근거한 정책에 대항하여 투쟁하였던 것이다. 이스크라소수파는 그들 자신의 셔클 근성과 그들 자신의 불철저성이 문제가 되기 전까지는…… 많은 경우에, 극히 중요한 (조직위원회와 유즈니 라보치라보체에 젤로의 관점에서 보아 중요한) 여러 투표에서 우리와 보조를 같이했다. 이러한 유형의 분열, 우리의 원칙을 실천에 적용하는 몇 가지 문제에서는 중간파가 반이스크라파에 협력했고 우리 쪽보다 반이스크라파 쪽에 훨씬 더 가까웠으며 실제적으로 사회민주주의의 혁명적 진영보다는 기회주의적 진영으로 훨씬 더 기울여져 있었다는 사실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명목상으로는 이스크라파이지만 이스크라라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자들은 본색을 드러내었고, 따라서 불가피하게 일어난 투쟁은 적절이 적당된 감정을 낳았으며, 생각이 알고 감정에 치우치는 사람들은 그 흥분 때문에 투쟁 속에서 드러났던 원칙상의 색채가 지닌 의의를 보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투쟁의 열기가 어느 정도 기타였고 의사록이 적합했던 일련의 전투를 냉정하게 기록한 것으로서 남아 있는 현재, 단지 일부러 눈을 감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마호프 및 에코로프 일파가 아키모프 및 리베르 일파와 손잡았던 것이 우연이 아니며 우연일 수도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마르토프나 악셀로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의사록에 대한 포괄적이고도 정확한 분석을 회피하는가, 아니면 여러 가지로 유감의 뜻을 표명함으로써 뒤 듯게 대회에서의 자신들의 행위를 없었던 일로 하려 애쓰는 것뿐이다. 마치 유감의 뜻을 표명함으로써 입장의 차이와 정책의 차이를 제거할 수 있다는 듯 이! 마치 마르토프 및 악셀로드가 현재 아키모프, 브루케르, 마르티노프와 맺고 있는 동맹이, 2차 대회에서 재건된 우리 당으로 하여금 이 대회의 거의 전기간을 통하여 이스크라파가 반이스크라파에 대항하여 벌였던 투쟁을 잊도록 할 수 있다는 듯이!

 

대회에서의 세 번째 유형의 투표는 앞의 도표 중에서 나머지 셋으로 대표되는 바, 이 투표 유형의 특징은 이스크라파 중에서 약간의 부분이 이탈히 여 반이스크라파 진영으로 넘어갔고 그런 까닭에 반이스크라파가 승리하 였다는(그들이 대회에 머물러 있던 동안에는) 점이다. 이스크라소수파와 반이스크라파 사이의 이 유명한 연합——이 연합에 대한 단순한 언급이 마르 토프로 하여금 대회에서 히스테리적인 편지를 쓰도록 만들었다——이 어떻게 발전했던가를 아주 정확하게 추적해 보기 위하여 이 유형에 속하는 세 가지 주요한 기법 투표를 모두 설명하였다. C는 언어의 평등 문제에 대한 투표이다 (이 문제에 대한 세 번의 기법 투표 중 가장 완전한 것으로서 마지막 투표를 보기로 들었다). 이 경우 반이스크라파 전원과 일체의 중간파가 우리에게 반대하여 완장하게 맞섰으며, 한편 이스크라파로부터는 다수파의 일부와 소수파의 일부가 이탈하였다. 이스크라파 중의 어떤 분자가 대회의 기획주의 적 우의과 확정적이고 영속적인 연합을 형성할 것인가는 아직까지 분명하지 않다. 다음으로 D 유형의 투표가 있다——이는 규약 제1조에 대한 것이다(두 번의 투표 중에서 좀더 명확한 것, 즉 기권이 없는 것을 택하였다). 여기서 연 합은 좀더 명료하게 나타나며 좀더 곤건한 모습을 갖겠다. , 이제 이스크 라소수파는 전원 이기모프와 리베르 펜에 섞다. 이스크라다수파 중에서 는 단지 국소수만이 이탈했으며 이를 발송하여 중간파가운데 3명과 반이스 크라1명이 우리 편으로 넘어섰다. 어떤 분자들이 우연히 또한 일시적으로 한편에서 다른 한편으로 옮겨 다녔으며, 또한 어떤 분자들이 막을 수 없는 힘으로 이기모프 일파와의 영속적인 연합으로 나아갔는가는 도표를 잠깐만 보아 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투표(E——중앙기관지, 중앙위원회 및 당 평의회 선거)는 사실상 다수파와 소수파로의 최종적 분열을 나타내는 바, 이는 이스크라소수파가 중간파전원 및 반이스크라파의 진류자와 완전히 합류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이 때는 8명의 반이스크라파 중에서 단지 브루케르 동지(아기모프 동지로부터 이미 자신이 범한 잘못을 지적받았던 브 루케르는 마르토프파의 대열 내에 자신의 적절한 자리를 잡고 앉았다)만이 대 회에 남아 있었다. 극우 기회주의자 7명의 퇴장은 마르토프에게 불리한 선거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이제 투표의 모든 유형에 관한 객관적 자료에 근거하여 대회의 결과를 요약해 보자.

 

당 대회의 다수파가 우연적결과라는 이야기가 많이 있어 왔다. 실제로, 마르토프는 자신의 다시 소수파가 되어속에서 오로지 이 논리로써 자신을 위안하고 있다. 도표에서 명백히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하나의 의미에서, 오직 하나의 의미에서만, 우의의 가장 기회주의적인 분자 7명의 퇴장이 아마도 우연한 일이었다는 의미에서 다수파는 우연적이라 할 수 있다. 이 퇴장이 우연인 한에서는(더 이상이 아닌 꼭 그만큼) 우리 다수파도 또한 우연이다. 이들 7명이 남아 있었다라면 어느 편에 있을 것인가 또한 왜 그럴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서는 장황한 토론보다 도표를 한 번 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7명의 퇴장이 사실상 얼마만큼 우연적인가에 있다. 바로 이것이 다수파의 우연성을 즐겨 말하는 사람들에게 떠올리기 싫은 문제이자 그들로서는 불쾌한 질문이다. 퇴장한 사람들이 우리 당의 가장 열렬한 우의의 대표자들이지 적의의 대표자들은 아니었다는 것이 우연일까? 퇴장한 사람들은 철저한 혁명적 사회인주주의자들이 아니라 기회주의자들이었다는 것이 정말 우연일까? 대회 전기간을 통해 수행되었고 또한 도표 속에 명백히 표현되어 있는 기회주의자들에 대한 투쟁이 이 우연적퇴장과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일까?

 

소수파에게는 무척 불쾌할 이들 질문을 먼저 보기만 해도, 다수파의 우연성에 대한 이 모든 말들이 어떤 사실을 감추려는 의도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 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소수파가 기회주의에 가장 많이 기울고 있던 당 내 분자들로 구성되었다는 분명하고도 재분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소수파를 구성했던 것은 이론에서 가장 불안정하고 원칙에서 가장 철저하지 못한 당 내 분자들이었다. 소수파는 바로 당의 우의에서 유래하였다. 다수파와 소수파로의 분열은, 사회인주주의자의 혁명적 진영과 기회주의적 진영, 산악파와 지통드파53)로의 분열과 직접적이고 불가피한 연속선상에 있으며 이 분열은 어제 오늘 생긴 것이 아니고, 러시아 노동자당에만 나타난 것도 아니며, 또한 확실히 내일 모래면 사라질 것도 아니다.

 

이 사실은 불일치의 원인과 추이를 설명하는 데 근본적 중요성을 갖는다. 대회에서의 투쟁 및 그 투쟁 속에서 드러난 원칙상의 여러 색채를 부인하거나 얼버무림으로써 이 사실을 회피하려 하는 자는 단지 그 자신의 지적 정치적 빈곤을 입증할 뿐이다. 나의 말을 빈곤하고 싶은 사람은 다음 두 가지를 증명해야만 한다. 첫째, 우리 당 대회에서의 투표 및 분열에 대한 개관도가 내가 그려 낸 것과는 다르다는 것, 둘째, 러시아에서 이스크라파라는 이름을 채택했던* 가장 철저한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대회에서 분열을 야기한 여러 문제에서 본질적으로 옳지 않았다는 것. , 신사 여러분, 이걸 한번 증명해 보시라!

 

넷불여서, 당 내에서 가장 기회주의적이고 가장 불안정하며 가장 불철저한 분자들로 소수파가 구성되었다는 사실은 요컨대 사정을 잘 모르거나 그다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들이 다수파에게 보이는 수많은 이의와 의혹에 하나의 해답을 주고 있다. 마르토프 동지와 악셀로드 동지의 사소한 잘못 때문에 분열이 생겼다고 설명하는 것은 치출하지 않은가 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 정말로 마르토프 동지의 잘못은 사소한 것이었다(나는 대회에서 투쟁이 타오르던 바로 그 당시에도 이미 이 점을 지적했던 바 있다). 그러나 허다한 오류를 범하였으며 많은 문제에서 기회주의로의 편향과 원칙상의 동요를 보였던 대표들 편으로 마르토프 동지가 끌려감으로써, 이 사소한 잘못으로부터 수많은 해약이 생겨날 염려가 있었다(또한 실제로 생각된다). 마르토프 동지와 악셀로드 동지가 동요를 보였던 것은 개인적이며 그리 중요하지 않은 사실이다. 그러나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소수파가 가장 불안정한 분자 전원으로 구성되었다는 것, 이스크라경향을 전적으로 부인하고 그것과 공공연히 투쟁하였거나 혹은 이스크라를 입으려는 위하는 척하면서도 실제로는 몇 번이나 반이스크라파의 편을 들었던 모든 분자들로 구성되었다는 것은 개인적 인 사실이 아니라 당적 사실이며 결코 시소하지 않은 사실이다.

 

이스크라의 구편집국을 이루고 있던 소셋를 내에 완고한 써클 근성과 혁 명적 속물주의가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에 분열이 생겼다고 설명하는 것이 불 합리한가? 아니다. 불합리하지 않다. 왜냐하면 대회 전기간을 통하여 각종 써 클을 위해 투쟁했던 우리 당 내의 모든 분자들, 일반적으로 혁명적 속물주의를 극복할 수 없었던 모든 분자들, 속물 근성과 써클 근성의 역사적성격에 대해 떠들어대면서 그 해악을 정당화하고 유지하려 했던 모든 분자들 이를 모든 분자들이 바로 이 특정 써클을 지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스크라편집 국 내의 한 작은 써클 내에서 협소한 써클적 이해관계가 당의 이익보다 우세하였 다는 사실은 아마도 우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써클을 굳게 지지 하고 나선 자들이 다름아닌 아키모프와 브루케르 일파 이 자들은 저 유명 한 보로네즈 위원회 및 악명 높은 페테르스부르크 노동자 조직’(5)역사적 연속성을 다른 것에 못지않게(그 이상은 아니라 해도) 중시하고 있다 였다 는 것, 또한 라보체에 젤로말살에 대해 이를 구편집국의 말살만큼이나 (그 이상은 아니라 해도) 통한해 마지 않았던 에코로프 일파 및 그 밖에도 마 흐프 일파 등등의 무리들이 이에 가세하고 나섰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 다. 친구들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겪인이 있다. 마찬가지로 그의 정치 적 동맹자나 그에게 찬성표를 던지는 사람들을 보고 그 사람의 정치적 면모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마르토프 동자와 악셀로드 동자의 시소한 오류가 그들과 당 내 기획주의 진영 전체와의 지속적 동맹의 출발점으로 되기 전까지는, 그 동맹 때문에 기 회주의가 재발하기 전까지는, 또한 이스크라와 투쟁해 왔으며 이제야말로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의 철저한 지지자들에게 분을 풀 기회라고 기뻐 날뛰는 모든 분자들이 복수하겠다고 덤버들기 전까지는, 그들의 오류는 정말로 시소한 것이었고 또 시소한 것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대회 이후에 발생한 여러 사건들의 결과로서 오늘날 우리는 신이스크라속에서 다음을 목격하고 있 다. 그것은 기획주의의 재발이고, 아키모프와 브루케르 일파의 복수이며(보로 네즈 위원회의 리플렛(5)을 보라), 또한 과거에 있었던 모든 각종 불만에 대한 복수로서 마침내(마침내!) 가중스런 이스크라지면에서 가중스런 을 발 로 찰 수 있게 된 마르티노프 무리의 환희이다. 이러한 사실은, 이스크라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스크라, 구멍집국의 재건”(1903113일자 스타로베르 동지의 최후통점 중에서 인용)이 얼마나 필요했던가를 특히 명백하게 보여준다……

 

대회가(또한 당도) 좌의과 우의, 혁명적 진영과 기회주의적 진영으로 분열된 사실은 그 자체로는 두려운 것도 위기적인 것도 아닐 뿐 아니라 비정상적인 것도 아니다. 이와 반대로 러시아(비단 러시아만은 아니지만)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최근 10년간의 전역사가 필연적이고도 불가피하게 이러한 분열에 이르게 한 것이었다. 우의 진영의 아주 시스한 몇몇 오류나 상대적으로 조금도 중요하지 않은 의견 차이를 둘러싸고 분열이 일어났다는 사실(이는 피상적 관찰자나 속물적 인간에게는 충격적으로 보일 것이다)은 전체로서 우리 당에 위대한 일보 전진을 나타낸다. 이전에 우리는 커다란 문제들, 어떤 경우는 분열을 정당한 것으로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커다란 문제들을 둘러싸고 갈라서곤 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일체의 주요하고도 중대한 문제에 대해 일치에 도달해 있으며 오직 석체에 의해서만 구분된다. 이들 석체에 대해 우리는 논쟁할 수 있고 논쟁해야만 하지만, 그 석체 때문에 갈라선다는 것은 어리석고 어린 예 같은 것이라(이는 플래하노르 동지가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가?),라는 흥미 있는 논문 중에서 매우 올바르게 지적한 바 있다. 이 논문에 대해서는 다시 언급하겠다. 대회 이래로 소수파의 무정부주의적 행위 때문에 당이 거의 분열에까지 이른 지금,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잘난 체하는 사람을 종종 만 나게 된다. , 조직위원회 사건, “유즈니 라보치, 혹은 라보체에 젤로, 그룹의 해체, 1, 구멍집국의 해산 등과 같은 시스한 문제들을 가지고 대회에서 투쟁할 필요가 있었는가?” 이런 식의 주장을 하는 자는 사실상 써클적 입장을 당 사업에 끌어들이고 있다. 당 내 색채들 사이의 투쟁은, 그것이 무정부주의 와의 분열에 이르지 않는 한, 또 그것이 동지들과 당원들 모두가 합의하고 승 인한 틀 내에서 진행되는 한, 불가피하며 필수적이기도 하다. 대회에서의 당 내 우위에 대한, 즉 아키모프, 악셀로드, 마르티노프 및 마르토프에 대한 우리 의 투쟁은 결코 이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이 점을 확실히 입증하는 데는 다 음 두 가지 사실을 회상해 보는 것으로 촉한다. , 1) 마르티노프와 아키모프 동기가 대회에서 퇴장하려고 했을 때에, 우리 모두는 그들로 하여금 모욕발 았다는 생각을 지워 버리도록 무엇이라고 할 용의가 있었으며, 이 동지들에게 우리의 혜명을 만족스러운 것으로 간주하고 (퇴장)성명을 철회하도록 권고하 는 트로츠키 동지의 동의안을 전원이(32포로) 채택하였다. 2) 중앙기관들의 선 거가 행해졌을 때에, 우리는 대회의 소수파(다시 말하면 기획주의 진영)에게 양 중앙기관 내에 소수파의 자리를 허용할 용의가 있었다. , 마르토프는 중 앙기관지에, 포포프는 중앙위원회에 각각 자리를 주려 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 미 대회 전부터 두 개의 3인조를 선출하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에 당적 관점에 서 볼 때 달리 행동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대회에서 노정된 색채들 사이의 차이가 크지 않은 것이었다면, 이들 색채들 사이의 투쟁으로부터 끌어낸 실천 적 결론도 역시 크지 않은 것이었다. , 그 결론은 오로지, 두 개의 3인조의 2/3가 당 대회의 다수파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것으로 귀착되었다.

 

당 대회의 소수파가 중앙기관들에서 소수파가 되기를 거부했던 것은 결국 패배한 지식인들의 무력한 비탄으로 시작되어 다음에는 무정부주의적 발언과 무정부주의적 행동으로 귀결되었다.

 

마지막으로, 중앙기관들의 구성 문제라는 관점에서 도표를 한 번 더 훑어보 자. 대표들은 선거에서, 색채 문제 외에 이런저런 인물들의 적합성, 활동 능력 등의 문제에도 직면해 있었음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소수파는 지금 이들 두 문제를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것들이 서로 다른 문제임은 자명한 것이며, 이는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단순한 사실에서도 볼 수 있다. , 중앙 기관지 최초의 3인조의 선거는, 마르토프 및 악셀로드와 마르티노프 및 아키 모프의 동맹을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때, 심지어 대회 이전에 계획되었다 는 사실이다. 서로 다른 문제에 대한 답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구해져야 한다. , 색채 문제에 대한 답은 대회의 의사록 속에서, 그리고 모든 의제에 대한 공개 토의 및 투표 속에서 구해져야 한다. 인물의 적합성 문제는 비밀 투표로 해결하고 대화의 전원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왜 대화 전체가 민정일치로 이 런 결정을 내렸는가? 이것은 초보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 논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그러나 소수파는 (선거에서 그들이 패배한 이후 에) 심지어 이 초보적인 것들조차 잊어버렸다. 우리는 구편집국을 옹호하는 열렬하고 정밀적이며 무책임할 정도로 흉분하여 마구 쏟아 내는 발언은 많이 들었으나, 6인조와 3인조를 둘러싼 투쟁과 관련된 대화에서의 여러 석재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것도 들어 보지 못했다. 우리들은, 중앙위원회에 피선된 사람들이 무능력하다는니, 적합하지 않다는니, 음흥하다는니 하는 등등의 말장난과 쏙덕공론은 사방발방에서 들었으나, 중앙위원회 내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투쟁한 대화에서의 여러 석재들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것도 들어 보지 못했다. 대화 밖에서 개개인들의 자질과 활동에 대하여 말장난과 쏙덕공론을 늘어놓는 것은 물사냥고 수치스런 것이다(왜냐하면 이런 활동의 거의 대부분은 당 최고 기관 내에만 알려져야 하는 조직상의 비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쏙덕공론을 통해 대화 밖에서 투쟁하는 것은 내가 보기에 힘들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말들에 대해 내가 공적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은 대화에서의 투쟁을 지적하는 것에 있을 뿐이다. , 당신들은 중앙위원회가 근소한 차의 다수에 의하여 피선되었다고 말한다. 그 말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근소한 차의 다수는 이스크라계획의 실현을 위해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가장 철저하게 투쟁한 모든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이스크라경향의 연속성을 이스크라라는 특정 셰를의 연속성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 의 눈에는 이 다수의 도덕적 권위가 그 형식적 권위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한층 높아야 하는 것이다.

 

이스크라정책을 실행하는 데 어떤 인물이 적합한가에 대해 좀더 큰 자 격을 갖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였던가? 대화에서 그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써찌던 사람들이었던가, 아니면 많은 경우에서 그 정책에 반대하여 써찌 으며 온갖 퇴보, 잡동사니, 써클 근성을 옹호했던 사람들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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