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신『이스크라』 — 조직 문제에서의 기회주의
신『이스크라』의 원칙적 입장을 검토하기 위해 기초로 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의심할 바 없이 약했으므로 동지의 두 개의 소논문이다. 그가 특히 좋아하는 문구의 구체적인 의미는 이미 자세히 보았으므로, 여기서는 그 구체적인 의미는 제처놓고, ‘소수파’를 (이러지러한 소소하고 사소한 문제와 관련하여) 어떤 다른 슬로건이 아니라 바로 이 슬로건에 다다르게 했던 사상의 궤적을 깊이 파고들어, 이 슬로건의 원칙상의 의의를 기원에 관계없이, 즉 ‘자주충원’ 문제와 관계없이 검토해야 한다. 양보가 요즈음의 유행이다. 따라서 악셀로드 동지에게 양보하여 그의 ‘이론’을 ‘진지하게’ 다루어 보자.*
악셀로드 동지의 기본 명제(『이스크라』 제57호)는 다음과 같다. “우리 운동은 애초부터 두 개의 상반된 경향을 감추고 있었으므로, 이 경향의 상호 적대는 운동 자체의 발전과 더불어 발전하지 않을 수 없었고, 또 운동에 반영되지 않을 수 없었다.” 즉, “원칙적으로는 운동(러시아에서의)의 프롤레타리아적 목표는 서구 사회민주당의 그것과 동일하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노동자 대중이 “그들과 연고가 없는 사회 분자”, 즉 급진적 인텔리젠차에게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악셀로드 동지는 우리 당 내의 프롤레타리아적 경향과 급진적 인텔리젠차 경향 사이에 적대가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악셀로드 동지는 무조건 옳다. 그러한 적대가 존재한다는 것(더 구나 러시아 사회민주당에서만이 아니라)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뿐만 아니라,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바로 이 적대가 금일의 사회민주당이 혁명적(또한 정통적) 사회민주주의파와 기획주의적(수정주의적, 입각주의적, 개량주의적) 사회민주주의파로 나누어지게 된 주요 원인이다. 그리고 이런 분열은 러시아에서도 우리 운동의 지난 10년 동안에 매우 명백하게 되었다. 또 널리 알려져 있듯, 운동의 프롤레타리아적 경향은 정통적 사회민주주의파를 대표하는 반면, 민주주의적 인텔리젠차적 경향은 수정주의적 사회민주주의파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악셀로드 동지는 이 주지의 사실에 가까이 다가가자마자 두려워서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 분열이 일반적으로 러시아 사회민주당의 역사 속에서, 특별하게는 우리 당 대회에서 어떻게 나타났는가 분석하려는 시도를 조금도 하지 않았다——그가 바로 이 대회에 대해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이스크라』의 다른 모든 편집자들처럼, 악셀로드 동지도 대회의 의사록에 대해서 죽음의 공포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앞에서 기술되었던 것으로부터 생 각해 보면 놀라울 게 없지만, 우리 운동 내의 다양한 경향들을 연구한다고 일 컬어지는 ‘이론가’가 보여주는 태도로서는 확실히 진리 공포증의 독특한 사례 인 것이다. 이러한 병적 성격 때문에, 악셀로드 동지는 우리 운동 내의 다양한 경향들에 관해 가장 정확한 최신의 자료들로부터 도망쳐, 유래한 백일용의 분 야에서 탈출구를 찾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합법적 마르크스주의나 반(非) 마르크스주의가 우리 나라의 자유주의자에게 문필상의 한 지도자를 제공해 주 지 않았던가? 것같은 역사가 그와 마찬가지로 혁명적인 부르주아 민주주의자 에게 정통적인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학파 출신의 지도자도 제공하지 않겠는 가?” 악셀로드 동지가 매우 유래해하는 이런 백일용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모 든 것은, 실혹 역사가 때때로 장난을 친다고 해도 이것이 역사의 분석에 착수 하는 자의 사상의 장난을 정당화시키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반(非)마르크스주 의의 지도자라는 가면 뒤에서 자유주의자가 얼핏 그 본성을 드러냈을 때, 그 의 ‘경향’을 추적하고자 했던(그리고 추적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역사의 장난 을 논거로 한 것이 아니라, 그 지도자의 심리와 이론의 수심 수백의 실례를, 또 부르주아 문헌에서의 마르크스주의의 반영(86)을 보여주는 그의 문헌상의 성격 전체의 특질을 논거로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 운동 내의 일반적인 혁명 적 경향과 포틀레타리아적 경향”의 분석에 착수했던 악셀로드 동지가 그가 몸 시 싫어하는 당 정통파 진영의 몇몇 대표자들이 어떤 경향을 보인다는 것을 무엇으로도, 절대 무엇으로도 입증하고 실증할 수 없었다면, 그는 이것으로써 자신의 공식적인 빈곤 증명서를 발급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할 수 있는 전부가, 있음직한 역사의 장난에 대한 언급일 뿐이라면, 악셀로드 동지의 주장 은 전혀 설득력이 없는 것이다!
악셀로드 동지의 다른 논거 — ‘자코뱅파’라는 논거 — 는 더욱 노골적이다. 악셀로드 동지가 아마 모르진 않겠지만, 현재의 사회민주당의 혁명파와 기회 주의파로의 분열은 훨씬 이전부터 — 더구나 러시아에서뿐만 아니라 — 있어 왔으며, “프랑스 대혁명 시대와 대비되는 역사적 유사물”을 만들어 냈다. 아마 악셀로드 동지도 알고 있겠지만, 현재의 사회민주당의 지름드파는 자기들의 반대자를 특징짓기 위해서 언제 어디서나 ‘자코뱅주의’, ‘블랑키주의’(86) 등등의 용어를 사용한다. 이제 우리는 악셀로드 동지의 진리 공포증을 흉내내지 말고, 대회의 의사록을 조사하여 우리가 고찰하고자 하는 경향과, 검토하고자 하는 유사물을 분석, 확인시켜 주는 자료가 그 안에 있는지 어떤지를 살펴보자.
첫 번째 예. 당 대회에서 강령에 관한 논쟁, 아키모프 동지는 (마르티노프 동지에 ‘완전히 동의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치권력의 획득(프롤레타리 아트의 독재)에 관한 조항은 — 다른 모든 사회민주주의 당의 강령과 비교하 여 볼 때 — 지도조직의 역할이 그 지도조직에 의해 지도되는 계급을 후방으 로 밑아내 버리고, 전자를 후자로부터 분리시켜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방식으로 정식화되어 있으며, 또 실제로 플레하노프는 그렇게 해석하고 있다. 결국 우리의 정치적 임무에 관한 정식은 나로드나야 불과의 그것과 완 전히 같다”(의사록, 124쪽). 플레하노프 동지와 그 밖의 『이스크라』파는 아키 모프 동지에게 반론을 제기하고, 그를 기회주의자라고 비난했다. 악별로드 동 지는 이 논쟁이 사회민주주의 내의 현저의 지금방파와 현저의 지름도파 사이 의 적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상상적인 역사의 장난이 아니라 실제로)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리고 악별로드 동지가 자코뱅파를 운운하기 시작했던 것 은 자기 자신이 사회민주주의의 지름도파에 끼어 있음(그가 범한 오류 탓에) 을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두 번째 예. 포사도프스키 동지는 ‘민주주의적 원칙들의 절대적 가치’라는 ‘기본적인 문제’에 대해 ‘심각한 의견 차이’가 있다고 했다(169쪽). 그는 플레하 노프와 함께 민주주의적 원칙들의 절대적 가치를 부정했다. ‘중간파’ 혹은 높 지파의 지도자(에고로프)와 반『이스크라』파의 지도자(골드블라드)는 적절하게 이 견해에 반대하고, 플레하노프가 “부르주아지의 전술을 모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170쪽). 이것은 바로 정통파를 부르주아직 경향에 결부시키고 있는 악별로드 동지의 생각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악별로드 동지의 경우에는 모 호하고 일반적이었음에 반해, 골드블라드는 구체적인 주제와 결부되어 있었다 는 것뿐이다. 다시 한 번 묻었다. 악별로드 동지는 이 논쟁 역사 현저의 사회 민주주의 내의 자코뱅파와 지름도파 사이의 적대를 우리 당 대회가 명료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악별로드 동지가 자코뱅파에 반대하여 절 규하는 것은 자신이 지름도파에 끼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세 번째 예. 규약 제1조에 관한 논쟁. ‘우리 운동의 프롤레타리아적 경향’을 옹호하는 이는 누구인가? 노동자는 조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 프롤레타 리아트는 무정부적 상태에 공감하지 않는다는 것, 프롤레타리아트는 조직화에 대한 권장을 존중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 기회주의가 골수에까지 배어 있는 부르주아 인텔리젠처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는 이는 누구 인가? 사회민주주의의 자코뱅파이다. 반면, 급진적 인텔리를 당 안으로 끌어들 이려 하는 이는 누구인가? 교수, 학생, 자유적 종사자[프리랜서 - 편집자], 급진 적 청년들을 배려하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 지름드파의 리베르와 결합한 지 통드파의 악설로드이다.
악벨로드 동지는, 우리 당 대회에서 노동해방단의 다수파에게 공공연하게 피부어졌던 ‘기회주의라는 부당한 비난’을 모면하려고 얼마나 졸랄하게 자신을 번호했던가! 그는 자코뱅주의, 블랑키주의 동등의 진부한 베른슈타인류의 상 투어를 되풀이하는 방법, 즉 기회주의라는 비난을 증명할 뿐인 방법으로써 자 신을 번호하고 있다! 급진적 인텔리들에 대한 배려로 가득 채린 대회에서의 자신의 연설을 감추기 위해서 그는 급진적 인텔리의 위험성을 소리 높여 외치 고 있다.
자코뱅주의 운운하는 이 ‘위험적인 문구’는 다름아닌 기회주의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프롤레티리아트의 조직과 불가분하게 결합되어 있는 자코뱅주의 자, 즉 자신의 계급적 이해를 자각하고 있는 프롤레티리아트는 혁명적 사회민 주주의자이다. 교수나 학생을 염려하고, 프롤레티리아트의 독재를 무서워하고, 민주주의적 요구의 절대적 가치를 사모하는 지통드주의자는 기회주의자이다. 정치투쟁을 음모 차원으로 제한하는 사상이 문헌에서도 수천 번이나 논파되고 실생활에 의해서도 논파되고 제거되어 버린 현재에도, 또 대중적 정치선동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이 명확해지고 귀가 따감도록 반복 설명되고 난 현 재에도, 여전히 음모조직은 위험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기회주의자들뿐 이다. 음모주의나 블랑키주의에 대한 이런 공포의 참 원인은 실제 운동에서 발견되는 특징이 아니라(베른슈타인과 그 동조자들이 오랫동안 헛되기 그것을 증명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부르주아 인텔리의 지통드주의적 비겁성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텔리의 심리는 오늘날의 사회민주주의자 속에서 폐 흔히 나 타나고 있다. 40년대와 60년대의 프랑스의 음모적 혁명가들의 전술에 대한 경 고(이전에 수백 번 행해진)의 새로운 문구를 표명하려는 신『이스크라』의 이런 고달론 노력만큼 웃기는 것은 없다(제62호 사설).[67)] 물론 『이스크라』 다음 호 에서 오늘날의 사회민주주의 지통드파는, 노동자 대중 속에서의 정치선동의 중요성과 계급에 대한 당 사업의 기초 수단으로서의 노동자 신문의 중요성을 초보적 진리로서 훨씬 오래 전부터 숙지하고 소화했던 그러한 40년대의 프랑스 음모가 그룹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라.
그런데 새로운 문구를 표명한다고는 하면서도 기초적인 것을 되풀이하고 가나다를 자꾸 되보는 신『이스크라』의 경향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다. 그것 은 악불로드와 마르토프가 우리 당의 기회주의적 진영에 발을 들여놓았기 때 문에 빠지게 된 입장으로부터 생긴 피할 수 없는 결과이다. 뿐 방도는 없다. 대회에서 행해진 투쟁이라는 관점으로부터 대회에서 형성된 당의 각종 색채 와 파벌 분립이라는 관점으로부터 번호될 수 없는 자신의 입장을 어느 정도라 도 정당화해 줄 것을 먼 피가에서 찾기 위해, 그들은 기회주의적 문구를 반복 해야만 하며 후퇴해야만 한다. 악불로드 동지는 자코뱅주의와 불량키주의에 대한 아키모프류의 심오함에 덧붙여, ‘일면적’이었고 지나치게 ‘심취’하였던 것으로는 경제주의자들뿐 아니라 ‘정치가’들도 마찬가지라는 등등의 아키모프류 의 푸념을 한다. 자기는 이러한 일면성과 심취를 모두 초월한 것처럼 잘난 체 하고 있는, 신『이스크라』 지면에 실린 이 주제에 관한 거만스런 논문들을 읽 노라면, 누구든지 당황해하면서 다음처럼 자문할 것이다. 그들은 누구의 초상 을 그리고 있는 것인가? 그들은 그런 말을 도대체 어디에서 듣는 것일까?68)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가 경제주의자와 정치가로 분열되었던 것은 이미 오래 전 이야기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당 대회 전 1~2년간의 『이스크 라』를 면밀히 검토해 보면, 경제주의자의 투쟁이 일찍이 1902년에 잠잠해지면 서 완전히 끝나 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1903년 7월(43 호)에는 ‘경제주의의 시대’가 ‘최종적으로 극복’되었다고 한 것을, 경제주의는 ‘사장되었다’고 한 것을, 정치가의 심취는 명확히 격세유전이 되었다고 한 것 을 볼 수 있다. 그러면 왜 신『이스크라』의 편집국은 이 사장된 분열로 되돌아 가는 것일까? 대회에서 우리는 아키모프류가 『라보체에 젤로』에서 2년 전에 범한 오류 때문에 그들과 싸웠는가? 만약 그랬다면, 우리는 완전히 바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가 대회에서 아키 모프류와 싸웠던 것은 그들이 『라보체에 젤로』에서 범한 남은, 사장되어 버린 오류 때문에 아니라, 그들이 대회에서 토론과 투표시에 범한 새로운 오류 때 문이었다. 우리가, 어떤 오류가 실제로 극복되었으며 어떤 오류가 여전히 남아 있어서 논쟁을 필요로 하는가를 판단하는 기초로 삼은 것은, 『라보체에 젤로』 에서의 그들의 입장이 아니라 대회에서의 그들의 입장이었다. 대회 무렵에는 경제주의자와 정치가라는 남은 분열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지만, 다양한 기회주의적 경향들은 의연히 존재하였다. 그러한 경향들은 여러 문제들에 대한 토론과 투표 중에 나타났고, 결국엔 ‘다수파’와 ‘소수파’라는 당의 새로운 분열을 초래하였다. 문제의 요점은 바로 신1이스크라, 편집국이 명백한 이유 때문에 이 새로운 분열과 우리 당 내의 현금의 기회주의 사이의 연관을 일바꾸리려 하고 있으며, 또 그 때문에 새로운 분열로부터 남은 분열로 되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새로운 분열의 정치적 기원을 설명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또는 양보 정신을 과시하기 위해 그 기원에 배열을 덮어 버리려는) 의 도 때문에) 그들은 오래 전에 사라져 버린 분열에 대해 같은 말을 되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주지하다시피 새로운 분열의 기초는 조직 원칙(규약 제1조)에 관한 논쟁에서 시작되어 무정부주의자에게나 어울리는 ‘실천’으로 종결된, 조직 문제에 대한 의견의 불일치이다. 반면에 오래 전에 있었던 경제주의자와 정치가로의 분열의 기초는 주로 전술 문제에 관한 의견의 불일치였다.
당 생활의 한층 더 복잡하며 참으로 시사적이며 긴박한 문제로부터 오래 전에 해결되어 지금은 억지로 파헤쳐야 하는 문제로의 후퇴를 정당화하는 데 서, 신『이스크라』는 우스꽝스럽게도 추수주의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심오함을 펼쳐 보이고 있다. 악셀로드 동지를 비롯하여 신『이스크라』의 모든 기사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내용이 형식보다 중요하다는가, 강령과 전술이 조직보다 중요하다는가, “조직의 생명력은 조직이 운동에 부여한 내용의 범위와 의의에 정비례한다”는가, 중앙집권주의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며 “만능의 부적”도 아니라든가 하는 동등의 심오한 ‘사상’이다. 위대하고도 심오한 진리이다! 실로 강령은 전술보다 중요하고, 전술은 조직보다 중요하다. 알파벳은 품사론보다 중요하고, 품사론은 문장론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문장론 시험에서 낙제해서 1년간 유급하게 된 주제에 이를 자랑하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무어라 말해 줄 수 있다 말인가? 악셀로드 동지는 조직 원칙에 대해서는 기회주의자처럼 논하고(규약 제1조), 조직 내에서는 무정부주의자처럼 행동하더니(연맹 대회), 이제는 사회민주주의를 더욱 심오하게 만들어내고 예쁘다. 다음과 같은 식으로 말하고 있다——시어 버린 포도이다! 본래, 조직이란 뭐냐? 단지 형식일 뿐이다. 중앙집권주의는 뭐냐? 그것 역시 부적은 아니다. 문장론은 뭐냐? 그것은 품사론보다 중요하지 않다. 단지 품사론의 요소들이 결합하는 형식일 뿐이다…… 신"이스크라" 편집국은 의기양양해하며 묻는다. “규약이 아무리 완전하게 보인다 하더라도 규약을 채택한 것보다는 당장명을 작성한 것이, 당 사업의 중앙집권화를 이룬다는 면에서 볼 때 대회가 이룩한 최대의 성과이다. 하고 말한다면, 일렉산드로프 동지도 동의하지 않겠는가?”(제56호, 부록). 이 고전적인 격언은, 사회민주당은 인류와 똑같이 항상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그런 임무만을 스스로에게 제기한다(69)는 크리체프스 키 동지의 유명한 문구만큼이나 널리, 오래도록 역사적인 명성을 받을 것이라 고 기대해도 좋다. 왜냐하면 신"이스크라" 의 이런 심오함은 그것과 완전히 똑같은 종류이기 때문이다. 크리체프스키 동지의 문구는 왜 조소를 받았던가? 그것은 그가 일부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전술 문제에서의 오류——올바른 정치적 임무를 설정할 수 있는 능력의 결여——를 철학적인 것처럼 보이려고 진부한 문구로 꾸며서 정당화하려 했기 때문이다. 신"이스크라" 도 완전히 똑같은 방식으로 조직 문제에서의 일부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오류——무정부주의적 설교에까지 도달한 몇몇 동지들의 인텔리적 동요성——를, 강령은 규약보다 중요하다는가, 강령의 문제는 조직의 문제보다 중요하다는가 하는 진부한 말로 정당화하려 한다! 이게 추수주의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1년간 유급하게 된 것을 스스로 빼기는 것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강령의 채택이 규약의 채택보다 활동의 중앙집권화를 더욱 촉진한다. 철학적인 듯이 꾸민 이 상투적인 말은 사회민주주의보다도 부르주아적 퇴폐성에 더 가까운 금전적 인텔리적 심성을 얼마나 잘 드러내고 있는가! 중앙집권화란 말이 이 유명한 어구에선 상징적으로만 쓰이고 있지 않은가? 이 어구의 필자들이 생각할 능력이 없거나 생각할 마음이 내기지 않는다면, 적어도 그들은 분트파와 공동으로 강령을 채택한 것이 우리의 공동 활동의 중앙집권화를 성사시키는거냐 우리가 분열되는 것조차 막지 못했다는 간단한 사실을 되새겨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강령과 전술 문제에 관한 통일은 당의 통일, 당 활동의 중앙집권화를 위한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결코 충분조건은 아니다.(맙소사! 이 모든 개념이 혼동되어 버린 지금, 어떤 가나다부터 설명해 나가야 한다 말 인가!) 충분조건이 되기 위해서는 거기에 덧붙여 조직의 통일이 필요하다. 이 조직의 통일이란 단순한 가족적 써클 이상의 어떤 것으로 성장해 가는 당에서 는, 확실한 형식을 가진 규약 없이는, 다수에 대한 소수의 복종, 전체에 대한 부분의 복종 없이는 있을 수 없다. 우리가 강령과 전술의 기본적인 문제에 대 해 통일되어 있지 못했을 때, 우리는 우리가 분산되고 고립된 써클주의 시대 에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시인했고, 통합하기 전에 반드시 분리의 선을 그어 야 한다고 솔직하게 단언했다. 그래서 우리는 공동의 조직 형식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고, 강령과 전술 분야에서의 기회주의와의 투쟁이라는 세 운(당시엔 진짜 새로운 것이었다) 문제에 대해서만 한결같이 논의했다. 우리 모두가 인정하고 있다시피, 이제는 이 투쟁으로 이미 충분한 정도로 통일이 달성되었으며, 이 통일은 당 강령 그리고 전술에 대한 당의 여러 결의로 정식 화되어 있다. 우리는 다음의 일보를 내린어야만 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동 의로 이 일보를 내린었다. 즉, 모든 써클을 하나로 융합시킨 단일한 조직의 형 식을 수립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들 형식은 절반이나 파괴되었고, 우리 는 무정부주의적 행동으로, 무정부주의적 어구로, 당 편집국을 대신한 써클의 부활로 되끌려갔다. 그리고 이 퇴보는 일파벳이 문장론의 지식보다 표준 화법 에 더 유용하다는 이유로 정당화되고 있다!
3년 전, 전술 문제에서 만연했던 추수주의라는 철학이 오늘날 조직 문제와 관련하여 부활하고 있다. 신편집국의 다음과 같은 논리를 살펴보자. 알렉산드 로프 동지가 “당 내의 전투적인 사회민주주의적 경향은 사상투쟁에 의해 써뿐 만 아니라 특정한 조직 형식에 의해서도 유지되어야 한다”고 하자, 편집국은 다음과 같이 훈계하였다. “사상투쟁과 조직 형식에 대한 이런 대비는 나쁘지 않다. 사상투쟁은 하나의 과정이지만, 조직 형식은 단지 …… 형식,”(믿어지진 않겠지만, 제56호 부록 4쪽 제1단 마지막에 이렇게 인쇄되어 있다) “즉 유동 적이며 발전해 가는 내용 — 당의 발전해 가는 실천 사업 — 을 포장하기 위 한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명백히, 포탄은 포탄이고 폭탄은 폭탄이라 는 농담과 똑같은 표현법이다! 사상투쟁은 하나의 과정인 반면, 조직 형식은 단지 내용을 포장하는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의 요점은 우리의 사상투 쟁이 더 고도한 형식, 즉 전원에게 구속력을 갖는 당 조직의 형식으로 포장될 것인가, 아니면 남은 분산 상태와 남은 써클이라는 형식으로 포장될 것인가하는 점에 있다. 우리는 더 고도한 형식으로부터 더 원시적인 형식으로 되끌려갔으며, 더구나 이것이 사상투쟁은 하나의 과정인 반면 형식은 단지 형식일 뿐이라는 이유로 정당화되고 있다. 이것은 지난날 크리체프스키 동지가 우리를 계획으로서의 전술로부터 과정으로서의 전술[70)]로 되끌어가며 했던 방식과 똑같은 방식이다.
형식을 중시하기 때문에 내용을 간과하는 위험에 빠져 있다고 간주되는 사람들을 향해 쓴 신[71]"이스크라"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자기 훈련’이라는 건방진했으니를 살펴보자(제58호 사실).71) 이것은 아키모프주의 제2호가 아닌가? 아키모프주의 제1호는, 전술적 임무를 제기하는 데 일부 사회민주주의적 인텔리전자의 후진성을, ‘프롤레타리아적 투쟁’의 좀더 ‘심오한’ 내용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자기 훈련에 대한 했으니로 정당화했다. 아키모프주의 제2호는 조직의 이론과 실천에서의 일부 사회민주주의적 인텔리전자의 후진성을, 조직은 단지 형식이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자기 훈련이 더 중요하다는 똑같이 심오한 했으니로 정당화하고 있다. 이런 동생을 염려해 주시는 신사 여러분, 프롤레타리아트는 조직과 훈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조직에 가입하려고 하지 않는 일방한 교수들과 학생들을 단지 그들이 조직의 통제 하에서 활동한다는 이유만으로 당원으로 인정하려는 그러한 것거리는 하지 않을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생활 전체에 의해서, 하다한 인텔리 선생님들보다 훨씬 철저하게 조직에 복종하도록 훈련된다. 우리들의 강령과 전술을 다소라도 이해한 프롤레타리아트는 조직에서의 후진성을 형식은 내용보다 덜 중요하다고 주장하여 정당화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조직과 규율이라는 정신 면에서, 또 무정부주의적 빈발에 대한 적의와 경멸이라는 정신 면에서 자기 훈련이 결여된 자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라, 우리 당 내의 일부 지식인들이다. 아키모프를 제1호가, 프롤레타리아트는 정치투쟁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말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트를 중상했던 것처럼, 아키모프를 제2호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조직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말함으로써 그들을 중상하고 있다. 의식적 사회민주주의자가 되어 스스로를 당원이라고 느끼는 프롤레타리아트는, 전술 문제에서 추수주의를 거부했던 것과 똑같은 경멸로 조직 문제에서 도 추수주의를 거부할 것이다.
끝으로, 신[71]"이스크라"의 ‘실천적 활동’의 심오한 지혜를 살펴보자.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혁명가들의 활동(강조는 더욱 심오하게 보이려고 한 것이다)을 통합하고 중앙집권화하는 ‘전투적인’ 중앙집권적 조직이라는 사상은, 올바르게 이해된다면, 당연히 그러한 활동이 존재하는 경우에만 실체화될 수 있다[참신하고 현명하군]. 조직 그 자체는 형식이므로[주의하라!] 오직 그것의 내용인 혁명적 활동의 성장과 동시적으로[비 인용문의 모든 강조는 피인용 자 자신의 것이다] 성장할 수 있다”(제57호). 이것은 장해 행렬을 보고 “아무 리 달라도 다 못 나를 정도로 많기를!”[72] 하고 소리친 민담의 주인공을 생각 나게 하지 않는가? 활동 내용에 비해 오랫동안 뒤떨어져 있었던, 그것도 치명 적으로 뒤떨어져 있었던 것이 바로 활동의 형식(곧, 조직)이라는 것, 또 뒤떨 어진 사람들에게 “보조를 맞춰라, 남들보다 빨리 달리지 마!” 하고 고함철 수 있는 사람은 당 내의 바로 이만 같은 자들뿐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실 천적 활동가(진정한 의미에서의)는 우리 당 내에 명백히 한 사람도 없다. 예를 들어 우리 당을 분포와 비교해 보자. 우리 당 활동의 내용이 분포의 그것보 다 훨씬 풍부하고, 다양하며, 광범하고, 깊다는 것은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 다. 우리의 이론적 견해의 시야는 넓으며 강령은 더 발전되어 있다. 노동자 대 중에 대한(단지 조직된 수공업자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영향력은 더 넓고 깊 으며, 우리의 선전과 선동은 훨씬 다양하다. 당 지도자와 평당원의 정치 활동 의 맥박은 더 생기 넘치며, 시위와 총파업 때의 대중운동도 더 장대하며, 비프 롤레타리아 계층 속에서의 활동도 훨씬 정력적이다. 그러나 ‘형식’은? 우리 활 동의 ‘형식’은 분포에 비해 말하기조차 부끄러울 정도로 뒤떨어져 있으며, 자 신의 당 사업을 ‘이탈이나 쑤시며’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눈에 거 슬리고 부끄러워 얼굴이 달아오를 수밖에 없을 정도로 뒤떨어져 있다. 우리 활동의 조직이 활동의 내용보다 뒤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우리의 약점이며, 이 것은 대회 훨씬 전부터, 조직위원회가 결성되기 훨씬 전부터 우리의 약점이었다. 형식의 불구성과 미숙성은 내용의 발전에서 더 이상의 어떠한 중대한 진전도 불가능하게 하며, 치욕스런 정체를 야기하며, 힘의 낭비와 언행불일치를 초래한다. 우리 모두는 이 불일치로 처참하게 고통받아 왔다. 이런 판국에 악 셀로드 부류와 신"이스크라"의 ‘실천적 활동가’는, 형식은 자연스럽게 내용과 동시적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심오한 설교를 하고 있다.
무의미한 말을 심오하게 만들려 하고 기회주의적 공론을 철학적으로 정당 화하려고 한다면, 조직 문제에 관한 사소한 오류(규약 제1조)는 이런 결과가 되는 것이다. 조심조심 지그재그로 천천히 행진[73] — 예전에 우리는 전술 문 제와 관련하여 이 상투어를 들었고, 지금 또다시 조직 문제와 관련해 이 말을 들고 있다. 무정부주의적 개인주의자가 자신의 무정부주의적인 편향(처음에는 우연이었을)을 견해의 체계로, 특별한 원칙상의 의견 차이로까지 격상시키기 시작하는 경우, 조직 문제에서의 추수주의는 그의 심리로부터 생겨나는 당연 하고 필연적인 산물이다. 연맹 대회에서는 이런 무정부주의적 단초가 보였고, 신"이스크라"에서는 그것을 견해의 체계로까지 격상시키려는 다양한 시도가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시도들은, 사회민주주의적 운동에 동조하는 부르주아 지 식인의 관점과 자신의 계급적 이해를 자각하게 된 프롤레타리아트의 관점 사 이의 차이에 대해 우리가 당 대회에서 이미 언급했던 바를 흘름하게 확인시켜 주고 있다. 예를 들면 우리가 그 심오함에 이미 친숙해져 있는 신"이스크라"의 바로 그 ‘실천적 활동가’는 당을 중앙위원회라는 지배인이 이고는 ‘거대한 공장’인 양 생각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서 나를 책망하고 있다(제57호 부록). 이 ‘실천적 활동가’는, 이 위험적인 말이 프롤레타리아 조직의 실천이나 이론 모두에 익숙하지 못한 부르주아 인텔리의 심성을 단번에 드러낸다는 것을 전 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단지 도깨비처럼 보이는 공장 이야말로 프롤레타리아트를 통일시키고 훈련시키며 그들에게 조직을 가르쳐 다른 모든 과학적 인민층의 선두에 서게 한 자본주의적 협업의 최고 형태이 다. 그리고 자본주의에 의해 훈련된 프롤레타리아트의 이데올로기인 마르크스 주의는 동요하는 인텔리들에게, 착취의 수단으로서 공장(기아의 공포에 기초 한 규율)과 조직의 수단으로서 공장(기술적으로 최고도로 발전한 생산 형태의 제조건에 의해 결합된 공동 노동에 기초한 규율)을 구별해야 한다고 가르쳐 왔고 또 가르치고 있다. 부르주아 인텔리에게는 매우 어려운 규율과 조직을 프롤레타리아트는 바로 이 공장이라는 ‘학교’ 때문에 매우 쉽게 이해한다. 이 학교에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조직의 계기로서의 의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랜덤부르주아지의 생활양식을 반영하는 사고방식의 특성으로서, 이 사고방식은 독일 사회민주주의자가 Edelanarchismus, 즉 ‘고귀한’ 양반들의 무정부주의 — 나는 이것을 귀족적 무정부주의라고 부르겠다 — 라 부르는 무정 부주의의 일종을 낳고 있다. 이 귀족적 무정부주의는 특히 러시아 허무주의 자의 고유한 특성이다. 그들은 당 조직을 피물 같은 ‘공장’으로 생각하고, 전체 에 대한 부분의 복종, 다수에 대한 소수의 복종을 ‘농노제’로 생각하며(악불로 드의 논문을 보라!), 중앙기관 지도 하의 분업은, 사람들을 ‘톱니바퀴와 나사’ 로 전략시키는 것(편집자들을 기고가들로 전환시키는 것이 그러한 전략 중에 서도 특별히 전인한 것으로 간주되었다)에 반대한다는 회비극적 절규를 그들 로 하여금 외치게 만든다. 또한 그들은 당의 조직 규약에 대해서 말하면, 경멸 하듯 얼굴을 챙그리며 규약 따위는 전혀 없어도 괜찮다는 경멸적인 비평(‘형 식주의자’를 향해서)을 내뱉는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마르토프 동지가 한층 더 설득력 있게 하려고 『한 동지 에게 보내는 편지』 중의 내 자신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스크라』 제58호에서 내게 행한 설교가 바로 이러한 부류의 것이었다. 도대체, 당이 만들어진 시대 에 분산의 시대, 셰클의 시대로부터 예를 끌어와, 셰클 근성과 무정부 상태의 보존과 찬양을 정당화하려는 것이 ‘귀족적 무정부주의’와 추수주의가 아니면 뒤딴 말인가?
왜 이전에는 우리에게 규약이 필요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당이 어떠한 조 직적인 결속도 없는 고립된 셰클들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개인도 ‘마음 내키는’ 대로 한 셰클에서 다른 셰클로 옮길 수 있었는데, 왜냐하면 그 는 전체의 의지를 일정하게 정식화한 어떤 표현에도 직면해 있지 않았기 때문 이었다. 셰클 내의 논쟁은 규약에 의해서가 아니라 투쟁과 탈퇴하겠다는 위험 에 의해 해결되었다 — 나는 일반적으로 여러 셰클들의 경험을, 그리고 특수 하게는 6명으로 이루어진 우리 편집 셰클의 경험을 요약했던 『한 동지에게 보 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서술한 바 있다. 셰클의 시대에는 이런 것이 자연스러 운 현상이었고 불가피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것을 칭찬하고 이상적이라 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누구나 분산 상태를 한탄했고, 누구나 그것 때문에 고 민했으며, 고립된 셰클들이 일정한 형식을 갖춘 당 조직으로 융합되기를 열망 했다. 그런데, 이런 융합이 이루어진 지금, 우리는 뒤로 되끌려가고 있으며, 더 고대한 조직적 전해라는 미명 하에 무정부주의적 설교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다! 가족적 셰클의 오블로모포적 기질[74]이라는 헐거운 실내복과 슬리퍼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형식적 규약이 옹색하고, 귀찮고, 따분하고, 비열하고, 관료주의적·농노제적 예속이며, 사상투쟁의 자유로운 ‘파정’을 구속하는 촉촉로 보인다. 귀족적 무정부주의는, 협소한 셰를적 결속을 광대한 당적 결속으로 대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형식적 규약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할 수 없다. 셰를 내부의 결속이나 셰를 사이의 결속에 일정한 틀을 부여하는 것은 불필요할 뿐 아니라 불가능하였다. 왜냐하면 이러한 결속은 우정이나 무조건적인 본능적 ‘신뢰’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적 결속은 이것들 어느 것에도 의존할 수 없고 의존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형식적인, ‘관료주의적’으로 명문화된 규약(훈련이 되지 않은 인텔리의 견해로 볼 때 관료주의적인)에 기초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규약의 엄수만이 셰를적 특성인 외고집과 변덕으로부터, 또 사상투쟁의 자유로운 ‘파정’이란 이름 아래 벌어지는 셰를적 인정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줄 수 있다.
신이스크라, 편집국은 “신뢰란 미묘한 것이어서 사람들의 가슴과 머리에 억지로 두들거 박을 수 없다”는 설교로 알렉산드로프에게 대항하려 하고 있다 (제56호 부록). 편집국은 이처럼 신뢰를, 더구나 단순한 신뢰를 떼발인다는 것 이야말로 다시 한 번 그들의 귀족적 무정부주의와 조직상의 추수주의를 드러 내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6명의 편집자들의 셰를이었든 『이스크 라』 조직이었든 간에 어쨌든 내가 단지 한 셰를의 멱버에 지나지 않았을 때에 는, 나에게는 예를 들어 아무개와 일하고 싶지 않다는 나의 거부를 이유나 동기를 설명하지 않은 채 단지 신뢰할 수 없다는 근거로 정당화할 권리가 있었 다. 그러나 이제 당원이 된 이상, 나에게는 막연한 불신만을 근거로 변론할 권리가 없다. 왜냐하면 그런 것은 남은 셰를적 변덕과 외고집에 문을 열어 주는 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나의 ‘신뢰’와 ‘불신’에 대해 정식의 논거 를 제시해야 할 의무, 즉 우리의 강령이나 전술 및 규약이라는 정식으로 확립 되어 있는 원칙에 맞추어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나는 논거를 제시하지 않 은 채, ‘신뢰한다’거나 ‘신뢰하지 못한다’고 말해서는 안 되며, 내 결정——그리 고 일반적으로는 당의 어떤 일부분이 내리는 모든 결정——을 당 전체에 설명 해야만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내가 ‘신뢰하지 못한다’고 표현할 때, 혹은 이런 불신으로부터 생겨나는 견해와 희망을 승인받으려고 할 때, 나는 정식으 로 규정된 절차에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는 이미 ‘신뢰’에 대해서 설명 하지 않아도 되는 써클적 관점으로부터, 우리의 신뢰를 표명하고 설명하고 검토하기 위해서 정식으로 규정된 절차에 따를 것을 요구하는 당첨 관점으로 고 양되었다. 그런데 편집국은 우리를 끌어 내리려 하며, 자신들의 추수주의를 조 직상의 새로운 전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의 대표를 편집국에 넣으라고 요구하는 문필가 그룹이 있을 경우에, 우리의 소위 당 편집국이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언제 어디서나 규율 따위는 가볍게 무시해 온 이들 귀족적 무정부주의자는 이렇게 설교한다. “우리는 분노하지도 않을 것이며 규율에 대해서 외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 는 그 그룹이 유능하다면 그 그룹과 ‘교섭할 것’(원본대로!)이며, 그렇지 못하 면 그 요구를 비웃을 것이다.
오, 저속한 ‘공장적’ 형식주의에 대한 얼마나 고상하고 귀족적인 거절인가! 그러나 실제로 이것은, 자신이 당 기관이 아니라 남은 써클의 유물이라는 것 을 느끼고 있는 편집국이 남은 써클적 발루를 약간 손절해서 당 앞에 내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입장에 내재해 있는 고유한 허위성은, 그들이 과 거에 종결되었다고 위선적으로 주장하는 분산을 사회민주당의 조직 원칙으로 까지 격상시키는 무정부주의적 심오함을 불가피하게 초래할 수밖에 없다. 하 급부터 상급에 이르는 당 기관과 권위의 위계질서는 전혀 필요 없다 — 귀족 적 무정부주의는 그러한 위계질서를 성(審), 부(部), 국(局), 과(議) 등등과 같 은 판로주의적 장치라고 생각한다(악설로드의 논문을 보라). 그래서 그들에게 는, 부분이 전체에 복종할 필요는 조금도 없으며, ‘교섭’하거나 이전의 한계를 규정하기 위한 당적 방법을 ‘형식적·판로주의적으로’ 규정할 필요도 전혀 없으 며, 단지 남은 써클적 안정이 ‘참으로 사회민주주의적’ 조직 방법이라는 과장 된 빈발로 신성화하면 그만이다.
이 점에서야말로 ‘공장’이라는 학교를 거친 프롤레티리아트는 무정부주의적 개인주의에게 교훈을 줄 수 있고, 또 주지 않으면 안 된다. 계급의식화된 노동 자는 지식인을 지식인이라는 이유로 기피했던 유년시대를 벌써 오래 전에 벗 어났다. 계급의식화된 노동자는 사회민주주의적 지식인들이 갖고 있는 한층 풍부한 지식의 축적과 한층 광범한 정치적 시야를 존중한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한 당의 건설을 계속하여 감에 따라, 계급의식화된 노동자는 무정부주의 적 어구를 자랑스럽게 늘어놓는 부르주아 지식인의 심리로부터 프롤레티리아 군대의 병사의 심리를 구별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계급의식화된 노동자는 평 당원뿐 아니라 ‘상급간부’도 역시 당원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계급의식화된 노동자는, 지나간 시절에 전술 문제에서 의 추수주의를 향해 파본던 경멸과 똑같은 경멸로 조직 문제에서의 추수주의 에 대항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지롱드주의 및 귀족적 무정부주의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 조직 문제 에서 신"이스크라" 입장의 최근 특징인 바, 그것은 중앙집권주의에 대항하는 지치주의의 옹호이다. 바로 이것이, 관료주의라든가 전제주의 운용하는 그들의 아우성, (대화에서 자치주의를 옹호했던) ‘신"이스크라"과에 대한 부당한 경시’ 에 대한 후회, ‘절대 복종’을 요구하고 있다는 그들의 우스황스러운 비명, ‘관 리 근성적 규칙’에 대한 격렬한 불평 등등이 갖는 원칙상의 의미(만일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이다.* 어떤 당이라도 그 당의 기회주의적 진영은 항상 강령상, 전술상, 조직상에서의 모든 후진성을 옹호하고 정당화한다. 조직에서 의 후진성에 대한 신"이스크라"의 옹호(신"이스크라"의 추수주의)는 자치주의 의 옹호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사실 자치주의는 구 "이스크라"의 3년간의 선진 작업으로 이미 철저히 불신당했기 때문에, 신"이스 크라"도 이직은 그것을 공공연하게 옹호하기를 부끄럽게 여기고 있다. 그들은 우리에게, 여전히 중앙집권주의에 대해 공감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것 은 중앙집권주의라는 말을 강조체로 처리하는 데 불과하다. 실제로, 신"이스크 라"의 ‘진정한 사회민주주의적’(무정부주의적이 아닌?) 사이비 중앙집권주의 의 ‘원칙들’을 가볍게 비판해 보는 것만으로도 도처에서 자치주의적 관점이 폭로된다. 조직 문제에서, 악셀로드와 마르토프가 아키모프 쪽으로 들어섰다는 것이 이제는 모두에게 분명하지 않은가? 그들은 ‘비"이스크라"과에 대한 부당한 경시’라는 의미심장한 말로 스스로 이것을 엄숙히 승인하지 않았는가? 그리 고 우리의 당 대화에서 아키모프와 그의 동료들이 옹호한 것은 바로 자치주의 가 아니었던가?
마르토프와 악셀로드가 연맹 대화에서, 부분은 전체에 복종하지 않아도 되 며, 부분은 전체와의 관계를 결정하는 데 자치적이며, 이런 관계를 정식화하고 있는 연맹의 규약은 당 다수파의 의지나 당 중앙부의 의지에 상관없이 유효하 다고 우스황스러울 정도의 열의로 논증하려고 했을 때, 그들이 옹호한 것은 바로 이 자치주의(무정부주의가 아니라면)였다. 그리고 마르토프 동지가 지방위 원회 위원을 임명할 수 있는 중앙위원회의 권리라는 문제에 대해, 신"이스크라" (제60호) 지상에서 지금 공공연하게 웅호하고 있는 것[75)]도 바로 이 자치주의 이다. 나는, 마르토프 동지가 연맹 대회에서 자치주의를 웅호하기 위해서 사용했고 또 여전히 신"이스크라"에서 사용하고 있는 철없는 궤벌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중앙집권주의에 대항하여 자치주의를 웅호하는 뚜렷한 경향을 지목해 내는 것인 바 이는 조직 문제에서의 기회주의의 원칙적 특징이다.
판로주의라는 개념을 분석하려고 한 시도는 신"이스크라"(제53호)가 ‘형식적 민주주의적 원칙’(원자자 강조점)과 ‘형식적 관료주의적 원칙’을 구별해 놓은 것이 아마 유일할 것이다. 이 구별(유감스럽게도, 비"이스크라"과에 대한 지적과 마찬가지로 논리가 충분히 전개되어 있지도 않고 설명이 제대로 이루어져 있지도 않다)은 일탈의 진실을 포함하고 있다. 판로주의 대 민주주의는 사실상 중앙집권주의 대 자치주의이다. 이는 또,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의 조직 원칙 대 기회주의적 사회민주주의의 조직 원칙이다. 후자는 밑에서부터 위로 나아가려고 애쓰며, 그렇기 때문에 가능한 경우 어디서든지 최대한으로 자치주의와 민주주의를 지지하며, (지나치게 열심인 경우에는) 무정부주의에까지 이르게 된다. 전자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나아가려고 애쓰며, 부분에 대한 중앙의 권위와 권력의 확대를 지지한다. 불통일과 고립된 셰를 시대에 혁명적 사회민주주의가 그 조직상의 출발점으로 삼으려고 애쓰던 이러한 상부는 불가피하게 하나의 셰를, 즉 그 활동과 그 혁명적 철저성으로 가장 영향력이 큰 셰를(우리의 경우에는"이스크라"조직)이었다. 실제적인 당의 통일이 재건되고 시대에 뒤떨어진 셰를들이 이 통일 속에 해소된 시대에는 이 상부는 불가피하게 당 최고 기관으로서의 당 대회이다. 당 대회는 활동 중인 조직의 모든 대표를 가능한 한 다 포함시키며 중앙기관들(대개 당의 후진 분자보다는 선진 분자들을 만족시키고, 기회주의적 진영보다는 혁명적 진영의 마음에 들도록 구성된다)을 임명하고 이를 차기 대회까지 모든 조직의 상부로 삼는다. 이러한 관습은 적어도 유럽 사회민주주의자들의 경우에는 통상적인 것이다. 그리 고 무정부주의자가 원칙적으로 혐오하는 이러한 관습은 — 곤란과 충돌 및 알력을 동반하기는 하지만 — 점차 아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까지도 확산되기 시작하고 있다.
조직 문제에서의 기회주의의 이러한 원칙적 특성들(자치주의, 귀족적 또는 지식인적인 무정부주의, 추수주의, 지통드주의)이 혁명적 진영과 기획주의적 진영으로 분열되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그런데, 분열이 없는 곳이 있는 가?), 적절하게 변형되어 전세계의 모든 사회민주당 내에서 관찰된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이것은 아주 최근에 독일 사회민주당 내에서 매우 명확하게 나타났다. 그것은 작센 제20선거구 선거에서의 패배(소위 피레 사건76))로 당 조직의 원칙에 대한 문제가 전면에 제기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원칙의 문제가 제기된 데에는 독일 기회주의자들의 열정이 큰 역할을 했다. 피레(원래 목사로, 폐 유명한 책인 『공장 노동자로서의 3개 월』의 저자, 드레스텐 대회77))의 ‘영웅’ 중의 한 사람)는 그 자신 가장 열렬한 기획주의자인데, 독일의 일관된 기획주의자들의 기관지인 『사회주의 월간』78) 은 즉시 그를 ‘옹호’하였다.
강령에서의 기회주의는 당연히 전술에서의 기획주의 및 조직에서의 기획주 의와 결부되어 있다. ‘새로운’ 관점의 해설을 떠말고 나선 사람은 볼프강 하이네 동지였다. 자신의 기획주의적인 사고습관을 그대로 지닌 채 사회민주주의 운동에 참여한 이 전형적인 지식인의 정치적 면모를 얼마간 독자들에게 그려 보이기 위해서는, 볼프강 하이네 동지가 독일판 아키모프 동지보다는 다소 덜 하고 독일판 에고로프 동지보다는 다소 더하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불포화 하이네 동지는 『사회주의 월간』에서 신『이스크라』의 악셀로드 동지 못지않게 화려하게 출전했다. 『피레 사건에 대한 민주주의적 평가』(『사회주의 월간』 제4호, 4월)라는 논문의 제목부터 대단하다. 내용도 그에 못지않게 대단 하다. 하이네 동지는 ‘선거구 자치의 침해’에 대항해 단호히 일어서서 ‘민주주 의적 원칙’을 옹호하며, 국민에 의한 의원의 자유로운 선거에 ‘임명된 당국’(즉, 중앙당 집행부)이 간섭한 것에 항의하고 있다. 하이네 동지는 우리에게 다음 과 같이 설교한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관료주 의와 중앙집권주의를 지향하는 당 내의 일반적 ‘경향’으로서, 이 경향은 이전 에도 관찰되었지만 지금은 특히 위험해지고 있다. 당의 지방기관들은 당 생활의 담당자라는 것을 원칙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마르토프 동지의 『다시 소수파가 되어』라는 소책자에서 표절한 것이다). “모든 중요한 정치적 결정이 하나의 중앙에서 나오는 데 길들여져서는” 안 되며, “실생활과의 접촉을 상실한 공론가적 정책”(“실생활은 스스로 주장하는 법이다” 했던 마르토프 동지의 당대회 연설에서 차용한 것이다)에 대해서 당에 경고해야 한다. 자기 논증을 더욱 심화시켜 W. 하이네 동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개인적인 충돌은 제쳐 두고 문제의 근본을 파헤쳐 보면, 수정주의자들강조점은 원저자의 것. 이것은 수정주의에 대한 투쟁과 수정주의자에 대한 투쟁을 구별하고 있음을 명확히 암시하고 있다. 대에 대한 이러한 격노는 ‘국외자’(W. 하이네는 게임 상대와의 투쟁에 대한 마르토프의 소책자를 아직 읽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국외자라는 영어식 표현을 쓰고 있다)에 대한 당 간부의 불신, 비판습적인 것에 대한 전통의 불신, 모든 개인적인 것에 대한 비인격적인 조직의 불신[개인적 창의의 억압에 관한, 연맹 대회에서의 악벌로드의 결의안을 보라], 간단히 말해 판로주의와 중앙집권주의를 지향하는 당 내의 경향으로서 위에서 규정한 바로 그 경향의 표현임을 알 수 있다.”
‘규율’이라는 개념은 W. 하이네 동지에게는 악벌로드 동지에 못지않은 귀족적인 혐오를 불리일으킨다…….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 수정주의자들은 『사회주의 원간』——당의 통제 하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그 사회민주주의적 성격조차도 부정당한 기판지——에 기고한다는 이유로 규율이 결여되어 있다고 비난받는다. ‘사회민주주의’라는 개념을 협소하게 만들어는 바로 이러한 시도와, 절대적 자유가 지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상적 생산의 영역[사상투쟁은 하나의 과정인 반면 조직 형식은 단지 형식일 뿐이라고 한 말을 기억하지]에서의 규율에 대한 이러한 요구는 개성의 억압과 판로주의를 지향하는 경향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리고 W. 하이네는 계속해서, “기능한 한 중앙집권화된 하나의 대규모 조직, 하나의 전술, 하나의 이론”을 창설하려 하는 이 혐오스러운 경향을, ‘절대 복종’과 ‘맹목적인 복종’의 요구, ‘과단순화된 중앙집권주의’ 등등을, 문자 그대로 ‘악벌로드식’으로 격렬히 공격하고 있다.
W. 하이네에 의해 시작된 논쟁은 널리 확산되었다. 독일 당 내에는 문제를 흐리게 하는 충원에 관한 알렉도 없었고, 독일판 아키모프류들은 대회에서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기관지에서도 항상 자신들의 면모를 명백히 하고 있었기 때문에, 논쟁은 급속히 조직 문제에 관한 정통파와 기회주의파의 원칙에 대한 분석으로 귀착되었다. 칼 카우츠키가 혁명적 경향(물론, 우리 당 내에서와 마찬가지로, ‘독재’, ‘종교재판적’ 경향, 그 밖의 다른 위협적인 말로 비난받았다.) 의 대표자의 한 사람으로 등장했다(『노이에 싸이트』, 1904년, 제28호, 「선거구와 당」이라는 논문에서). 그는 이렇게 기술했다——W. 하이네의 논문은 “수정주의적 경향 전체의 사고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독일뿐만 아니라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도 기회주의자는 모두 전력을 기울여 자치주의를 지지하며, 당규율의 악화와 당 규율의 소멸을 지지한다. 어느 것에서도 이들의 경향은 조직의 해체를 초래하며, ‘민주주의적 원칙’을 무정부주의로 타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칼 카우츠키는 조직 문제에서의 기회주의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민주주의는 권력의 부재를 의미하지 않으며, 민주주의는 무정부주의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소위 인민의 공복이 실제로는 인민의 지배자가 되는 다른 지배 형태와는 달리, 대중이 자신들의 대표를 지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카우츠키는 각국의 기회주의적 자치주의가 행하는 분열적인 역할을 상세히 추적하여, 기회주의, 자치주의, 그리고 규율 위반의 경향을 강화시키고 있는 것이 바로 ‘대량의 부르주아 분자들’의 사회민주주의 운동으로의 유입일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조직이아탈로 프롤레타리아트를 해방시킬 무기이고”, 바로 “조직이아탈로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고유한 계급투쟁의 무기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기회주의가 프랑스나 이탈리아보다 약한 독일에서, “자치주의적 경향은 이 제까지 독재자와 종교재판란에 대한, 그리고 파문”과 이단 사냥에 대한 다소 격렬한 열변을 토해 왔을 뿐이며, 상대방이 응수할 경우 영구히 계속되는 투쟁을 낳을 뿐인 끝없는 트집잡기와 알력을 초래해 왔을 뿐이다.”
당 내 기회주의가 독일보다도 훨씬 약한 러시아에서, 자치주의적 경향이 낳은 사상은 훨씬 적으나 ‘격렬한 열변’과 알력은 더욱 많다는 것이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다.
카우츠키가 다음과 같은 결론에 다다른 것도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각 국의 모든 수정주의가 그들의 다양한과 다채로움에도 불구하고, 조직 문제만 큼 일치하고 있는 문제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카우츠키는 또, 이 분야에서의 정통과와 수정주의의 기본적 경향을 판로주의 대 민주주의라는 ‘위험적인 말’ 의 도움을 빌려 정식화하고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즉, 선거구의 (국회의원) 후보자 선택을 좌우할 권한을 당 집행부에 주는 것은 “민주주의적 원칙에 대한 부끄러운 침해인 바, 민주주의적 원칙은 모든 정치 활동이 판로주의적 방법으로 위에서 아래로 진 행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지주적 활동에 의해 아래에서 위로 진행될 것을 요구한다. …… 그러나 실로 민주주의적 원칙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다수가 소 수에 대해서 우위를 점해야 한다는 것이며, 그 반대가 아니다. …….” 어떤 선 거구에서의 국회의원 선거는 당 전체에 중요한 문제인 바, 당은 당의 수임자 (Vertrauens männer)를 통해서라도 후보자의 지명을 좌우해야 한다. “이것이 지나치게 판로주의적이거나 중앙집권주의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는 후보자를 당원 전체의 직접 투표로 지명하지고 제안해야 할 것이다. 이것 이 실행불가능하다고 생각된다면, 이러한 기능이 당 전체에 관련되어 있는 다른 많은 기능들처럼 하나 내지는 몇 개의 당 기관에 의해 수행된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결핍되어 있다고 불명확해서는 안 된다.” 독일 당에서는 개개의 선 거구가 후보자의 선택에 대해서 당 집행부와 ‘우호적으로 협의하는 것’이 오랜 동안의 ‘관습법’이었다. “그러나, 당은 너무 커져서 이러한 압력적인 관습법으 로는 더 이상 지탱해 나갈 수 없게 되었다. 관습법은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인정되지 않게 되면, 그리고 그 규정 내용, 나아가 관습법의 존재 그 자체가 의문시되면 더 이상 벌이 아니다. 그때에는 법을 명확하게 정식화하고 법전화 하는 것.” …… “좀더 엄밀한 성문법(statutarische festlegung)이 필요하며 따라 서 조직의 엄격성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상황은 우리와 다를지라도, 조직 문제에 관한 당의 기회주의적 진 정과 혁명적 진영 사이에 똑같은 투쟁이 있음을, 자치주의와 중앙집권주의, 민주주의와 ‘관료주의’, 조직과 규율을 완화하려는 경향과 이를 강화하려는 경향, 견실하지 못한 지식인의 심성과 확고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심성, 지식인적 개인주의와 프롤레타리아적 단결 사이에 똑같은 충돌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충돌에 대한 부르주아 민주주의파 — 첫곳은 역사가 악불로드에게 언제가 보여주기로 남들래 약속했을 뿐인 부르주아 민주주의파가 아니라, 우리 나라의 『오스보보즈제니에』파 신사를 못지않게 현명하고 사려 깊은 대표들 을 갖고 있는 독일의 실체적이고 현실적인 부르주아 민주주의파 — 의 태도가 어떠했을까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독일 부르주아 민주주의파는 즉시 새로운 논쟁에 반응을 보였고, 전력을 다해 — 러시아 부르주아 민주주의파 및 언제 어느 곳의 부르주아 민주주의파와 마찬가지로 — 사회민주당의 가회주의적 진 영을 편들었다. 독일 증권거래소의 지도적 기관지인 『프랑크푸르터 짜이퉁』79 은 격렬한 사실(『프랑크푸르터 짜이퉁』, 1904년 4월 7일, 제97호, 저녁판)을 실 재하는 바, 이 사실은 염치없게도 악불로드를 표절하는 것이 실제로 독일 신문 의 유행병이 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의 엄격한 민주주의자들은, 사회민주당 내의 ‘전제’, ‘당의 독재’, ‘당 기관의 전제적 지배’, ‘수정주의 전제를 동시에 징계할 목적으로’ 의도된 ‘파문’(‘가회주의라는 부당 한 비난’을 상기하라)에 대해, 또 ‘맹목적 복종’, ‘경직된 규율’, ‘노예적 복종’의 요구 및 당원을 ‘정치적 송장’(이것은 나사와 톱니바퀴보다 훨씬 강력하다!)으 로 변화시키려는 요구에 대해 격노하여 규탄하고 있다. 증권거래소의 가사님 들은 사회민주당 내의 비민주주의적인 질서를 보자 분기하여 큰 소리로 비난 한다 — “모든 개인적 특성, 모든 개성은,” 작은의 사회민주당 대회에서 “이 문제에 관해 보고를 행한 진데르만이 슬직히 언명했듯이, 이것들이 틀림없이 프랑스와 같은 사태, 즉 조례스주의와 밀레랑주의를 초래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박해받아야만 될 운명에 처해 있다.”
그러므로 조직 문제에 관한 신(1)스크라의 새로운 표어들 속에 조금이라 도 원칙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기회주의적 원칙임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결론은 혁명적 진영과 기회주의적 진영으로 분열된 우리 당 대회의 분 석 전체를 통해서도, 또 조직 문제에서의 기회주의가 똑같은 경향, 똑같은 비난, 또한 매우 자주 똑같은 구조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모든 유럽 사회민주주의 당들의 예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물론 각 당의 국민적 특수성과 각국의 정치적 조건의 차이가 그 흔적을 남기기 때문에, 독일의 기회주의는 프랑스의 기회주의와, 프랑스의 기회주의는 이탈리아의 기회주의와, 그리고 이탈리아의 기회주의는 러시아의 기회주의와 매우 다르다. 그러나 조건들의 이러한 모든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당들의 혁명적 진영과 기회주의적 진영으로의 기본적인 분열이 유사하다는 것이 명확하게 나타난다.4 우리 나라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사회민주주의자의 대열 내에는 금진적 지식인들이 대단히 많다. 따라서 이들의 심리에 의해 생겨나는 기회주의는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매우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고, 존재하며, 존재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세계관의 여러 기본 문제에서, 우리 강령의 여러 문제에서 기회주의와 투쟁했다. 그리고 목표에서의 완전한 불일치 때문에 사회민주주의자들과 합법적 마르크스주의를 부패시킨 자유주의자들 사이에 결정적인 분열이 불가피하게 초래되었다. 우리는 전술 문제에서 기회주의와 투쟁했다. 그러나 이들 한층 덜 중요한 여러 문제에 관한 크리처프스키 동지 및 아키모프 동지와의 불일치는 당연히 일시적 이었을 뿐이었고 서로 다른 당을 구성하게 되지는 않았다. 현재 우리는 조직 문제에서 마르토프 및 악셀로드의 기회주의를 척결해야 한다. 이 조직 문제는 강령은 물론이고 전술 문제만들도 근본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현재 우리 당 생활의 최선에 놓여 있는 것은 바로 이 조직 문제이다.
우리가 기회주의와의 투쟁에 대하여 말할 때에는, 모든 분야에서의 오늘날의 기회주의의 전체 특징, 즉 모호성, 무정형성, 회피성 등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기회주의자는 그의 본성 그 자체 때문에 항상 분명하고 단호한 입장을 취하기를 꺼려하며 중도적인 길을 찾으려 한다. 그는 항상 서로 배타적인 두 관점 사이에서 마치 뱀처럼 꿈틀거리며, 양자에 다 ‘동의’하려 하며, 자신들 의 이견을 사소한 수정, 의심, 결백하고 경건한 제안 등등으로 돌려 버리려 한 다. 강령 문제에서의 기회주의자인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동지는 자신의 당 의 혁명적 강령에 ‘동의’한다. 그리고 그는 이 강령의 ‘근본적인 수정’을 원하 고 있음에 틀림없지만, 이러한 수정이 시의 적절하지 못하고 득책이 아니며 ‘비판’의 ‘일반적 원칙’(이 원칙은 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로부터 무비판적으로 발려온 원칙이고 표어임)을 혜명하는 일에 비하면 그러 대수들지 않다고 생각 한다. 전술 문제에서의 기회주의자인 폰 폴마르 동지도 혁명적 사회민주주의 의 오랜 전술에 동의하면서, 마찬가지로 주로 열변이나 사소한 수정, 조소 등 에 자신을 한정해 버리고, 명확한 ‘입각주의적’ 전술(80)을 공개적으로 옹호하지 않고 있다. 조직 문제에서의 기회주의자인 마르토프 동지와 악셀로드 동지도 자신들의 원칙을 밝힐 것을 정면으로 요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찬가지로 ‘성문에 의해 확정’될 수 있는 명확한 원칙적 명제를 지금까지 어느 하나 내놓 지 못했다. 그들도 역시 조직 규약의 ‘근본적 수정’을 바랄 것이고, 또 절대적 으로 바라겠지만(7)이스크라, 제58호, 2쪽, 세 번째 란), 오히려 먼저 조직의 ‘일반적인 문제’에 전념하는 것이 더 좋은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예나하면 제1조에도 불구하고 의연히 중앙집권주의적 규약인 우리의 규약을 신1)이스크라) 의 관점에 입각하여 실로 근본적으로 수정한다면 불가피하게 자치주의에 이 를 것이지만, 물론 마르토프 동지는 자치주의를 지향하는 자신의 원칙적 경향 을 자기 자신에 대해서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들의 조직 문제에 관한 ‘원칙’은 무지개의 모든 색깔을 다 드러내고 있다. 즉, 주된 항목들은, 전제와 관료주의에 반대하는, 또 맹목적인 복종과 나사와 톱니바퀴 같은 역할에 반대하는 순수하고 열정적인 열변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이 열변이 어찌나 순수한지, 그 열변 중 어느 것이 실제로 원칙에 관 한 것이고 어느 것이 충원에 관한 것인지 아직까지 분간하기가 매우 힘들다. 그리고 갈수록 태산이다. 즉, 이 가중스런 ‘판로주의’를 분석하여 정확하게 규 정하려는 시도는 불가피하게 자치주의에 이르고, 자신들의 입장을 ‘심오하게’ 하고 번호하려는 시도는 불가피하게 후진성의 정당화, 추수주의 및 지통드주 의적인 수다스런 설교가 되고 만다. 결국은 무정부주의라는 원칙이 유일하게 실제적이고 명확한 원칙으로 등장할 것이고, 이 원칙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실천에서 특히 눈에 띄게 두드려져 보일 것이다(실천은 항상 이론을 앞서가니까). 규율에 대한 조소——자치주의——무정부주의, 바로 이것이야말로 조직 문제에서의 기회주의가 이리지러 왔다있다고하면서, 조직의 원칙에 관한 어떤 명확한 정식화도 교묘하게 회피하면서 오르락내리락하는 사다리이다. 강령과 전술의 문제에 대해서도, 기회주의자들은 똑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즉, ‘정통성’, 편협성, 경직성에 대한 조소——수정주의적 ‘비판’과 입각주의——부르주아 민주주의.
일반적으로 오늘날의 모든 기회주의자, 특별하게는 소수파의 모든 저작을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감정이 상한 사람이 끊임없이 내뿐만 아니라 그들은 그들에 주의를 요구하고 있다. 자신들은 박해받고 있고, 물어뜯고 있고, 추방당하고 있고, 계엄상태 하에 있고, 들봐이고 있다. 이들 말 속에는, 들봐는 사람과 들봐이는 사람이 아니라는 재치 있는 농담의 작자 자신이 아마 알아차리고 있었을 것보다도 더 많은 심리적, 정치적 진실이 있다. 왜냐하면, 당 대회 의사록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소수파란 모두 감정이 상해 괴로위하던 사람들, 모두 어떤 때는 이런 이유로 또 다른 때는 저런 이유로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대해 감정이 상했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대회에서 퇴장할 정도로 우리에 대해 지독히 ‘감정이 상한’ 분트파와 『라보체에 젤로』파가 있었고, 일반적으로 조직의 탈살, 특히 그들 자신의 조직의 탈살 때문에 엄청나게 감정이 상한『유즈니 라보치』파도 있고, 발언대에 설 때마다 감정이 상하는 것을 견려 내야 했던(왜냐하면 발언할 때마다 항상 바로 같은 것을 했기 때문에) 마흐프 동지도 있고, 마지막으로 규약 제1조와 관련하여 ‘기회주의에 빠졌다는 부당한 비난’을 받음으로써, 또 선거에서 패배함으로써 감정이 상한 마르토프 동지와 악불로드 동지가 있다. 이 모든 엄청난 감정의 손상은, 지금까지 많은 속물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온당치 못한 조롱이나 난폭한 행동 및 평가에 찬 논쟁, 그리고 출입문을 꽉 닫아 버리는 것이나 주목에 의한 위험 때문에 빚어진 우연적인 산물이 아니라, 3년에 걸친 『이스크라』의 사상 활동 전체의 필연적인 정치적 산물이었다. 만약 지난 3년 동안 우리가 헛바타이나 놀린 것이 아니라 실행에 옮겨져야만 할 신념을 표명해 왔다면, 우리는 대회에서 반"이스크라"파와 ‘놀지파’에 대한 투쟁을 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투구 면감을 들어올린 체 전면에 나서 써왔던 마르토프 동지와 함께 우리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게 만들고 있었으므로, 조금이라도, 정말 참으로 조금이라도 악불로드 동지와 마르토프 동지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물그릇은 넘쳐 흐르게 되어 있었다. 양은 걸로 전화했다. 부정은 다시 부정되었다. 감정이 상한 자들 모두는 서로의 원한을 잊어버리고, 서로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면서, “레너주의에 반대하여 봉기하지”는 기치를 내걸었다.
봉기란, 선진 분자들이 반동 분자들에 반대하여 봉기할 때 대단히 훌륭한 것이다. 혁명적 진영이 기회주의적 진영에 대해 봉기할 때 봉기는 좋은 것이 다. 기회주의적 진영이 혁명적 진영에 대해 봉기할 때 봉기는 추악한 것이다.
플레하노프 동지는, 말하자면 전쟁 포로의 신분으로 이 추악한 일에 가담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다. 그는 ‘다수파’를 지지하는 여러 결의의 저자의 글에서 서로 문구를 앞뒤 연관 없이 남아서는 ‘분풀이를 하려’ 애쓰면서 다음 과 같이 부르겠다는. “불쌍한(poor) 레닌 동지! 그의 정통파적 지지자들은 또 얼마나 훌륭한가!”(『이스크라』 제63호, 부록).
좋습니다. 플레하노프 동지, 만약 내가 가난(poor)하다면, 신『이스크라』 편 집국은 완전히 거지운시다. 내가 아무리 가난하다 해도 아직은 당 대회를 외 면해야 할 정도로까지, 나의 기지를 시험하기 위한 자료를 [지방-편집자]위원 회 성원들의 결의안 속에서 구절할 정도로까지 비침해지지는 않았습니다. 내 가 아무리 가난하다 해도, 무심코 서로 문구를 쓰지는 않으나 모든 문제— 조직, 전술, 강령의 문제——에서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의 원칙에 대립되는 원 칙을 완전히 고집스럽게 집착하는 지지자들을 가진 사람보다는 수천 배 더 부 유합니다. 내가 아무리 가난하다 해도, 아직은 그러한 지지자들이 나에게 보내 는 아낌없는 찬사를 공중(公衆)에게 승거야 할 지정에까지는 와 있지 않습니 다. 그러한 행위는 바로 신『이스크라』 편집국이 해야만 하는 것거리입니다.
여러분, 러시아 사회민주당의 보로네즈 위원회가 어떠한 입장인지 알고 있 는가? 모든다면, 당 대회 의사록을 읽어 보라. 그것을 읽어 보면, 이 위원회의 노선이 아키모프 동지와 브루케르 동지에 의해서 완전히 대표되고 있음을 알 게 된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대회에서, 당의 혁명적 진영에 대항하여 모든 노선에 걸쳐 써줬고, 플레하노프 동지로부터 포포프 동지에 이르는 모든 사람 들로부터 셀 수도 없이 기획주의자로 낙인 찍혔던 사람들이다. 자, 그런데 이 보로네즈 위원회는 자신의 1월 리플렛(제12호, 1904년 1월)에서 다음의 성명을 보다.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우리 당 생활에서 중대한 사건이 지난해에 일어났다. 러 시아사회민주노동당——그 여러 조직들의 대표의——제2차 대회가 그것이다. 당 대 회의 소집은 복잡한 일이고, 또 현재와 같은 군주제 하에서는 극히 위험하고 곤란 한 일이다. 그러므로 당 대회의 소집이라는 사업이 대단히 불완전한 방식으로 수행 되었다는 것과, 비록 대회가 순조롭게 치러졌지만 당 대회에 제출한 모든 요구를 충족시키지는 못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1902년 협의회에서 대회의 소집 을 위임받은 동지들은 검지되었으며, 대회는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내의 오직 한 경향만을 대표하는 사람들, 즉 『이스크라』파에 의해 준비되었다. 어쩌다 『이스크라』 파가 되지 못했던 많은 조직들은 대회의 활동에 참가하도록 초청받지 못했다. 부분 적으로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당의 강령과, 규약을 작성한다는 대회의 임무는 극히 불안전한 방법으로 수행되었으며, 대표를 자신도 귀약에는 ‘위험한 오해를 불리일으 킬 수 있는’ 중대한 결정이 있음을 시인하고 있다. 『이스크라』과 자체가 대화에서 분열했고, 이전에는 『이스크라』의 활동 강령을 완전히 승인하고 있는 것같이 보였 던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의 많은 유력한 활동가들도, 주로 레난과 플레하노프가 웅 호한 『이스크라』의 많은 견해들이 비실천적임을 알게 되었다. 이 견해들이 결국 대 화에서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현실 생활의 힘과 모든 비『이스크라』과도 참여하 고 있는 실천 활동의 요구는 이론가들의 오류를 급속히 정정해 가고 있으며 대화 이해로 이미 중대한 수정을 초래하였다. 『이스크라』는 매우 변했으며, 전반적으로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모든 활동가들의 요구를 경청할 것을 약속하고 있다. 그러므 로 대화의 결과는 차기 대화에서 수정되어야만 할 것이고, 대표들 스스로 명확히 인정하는 바와 같이 이 결과들은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며, 따라서 당해게는 요지부 동의 결정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는 당 내의 사 태를 명확히 했고, 당의 앞으로의 이론적·조직적 활동에 필요한 많은 자료를 제공 했으며, 또 당 전제의 사업을 위해서는 커다란 교훈적 가치를 지닌 경험이었다. 대 화의 모든 결과와 대화에서 작성된 귀약은 모든 조직들에 의해 고려될 것이다. 그 러나 그것들은 명확히 불완전한 것이기 때문에, 많은 조직들은 그것들만을 지침으 로 삼지는 않을 것이다.
보로네즈 위원회는 전당적 사업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으므로, 대화의 조직에 관 한 모든 문제에서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이 위원회는 대화에서 일어난 일의 중요성 을 이해하고, 중앙기관지(주요한 기관지)가 된 『이스크라』가 행한 전환을 현명한다. 당과 중앙위원회 내의 상대가 아직 우리에게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우리들은 당을 조직한다는 어려운 활동이 공동의 노력에 의해 완전하게 되어 가리라는 것을 확신한다. 보로네즈 위원회는 거짓 소문이 나오는 것을 고려하여, 보로네즈 위원회 가 탈당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동지들에게 알린다. 보로네즈 위원 회와 같은 노동자 조직이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을 탈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선해인지를, 이것이 얼마나 당에 대한 모욕인가를, 이 모범을 따르려는 노동자 조직 에게 얼마나 불리한 일인지를 보로네즈 위원회는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분 열을 일으켜서는 안 되며, 모든 자각한 노동자와 사회주의자를 하나의 당으로 통합 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더구나 제2차 대회는 정해 대회였지 창립 대회는 아니었다. 당으로부터의 재명은 당 재판에 의해서만 결정될 수 있는 일이며, 어떠한 조직도 — 심지어 중앙위원회까지도 — 사회민주당의 어떤 조직을 당으로부터 재명 할 권리가 없다. 더욱이 제2차 대회에서 채택된 귀약 제8조에 따르면, 모든 조직은 그 지방 문제에서 자치적이다. 따라서 보로네즈 위원회는 그 자신의 조직상의 견해 를 실행하고, 당 내에서 그것을 옹호할 충분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신『이스크라』 편집국은 제61호에서 이 리플렛을 인용하면서, 이 장벌설의 후반부[2]당과 중앙위원회 내의 상태가……[3]부터 — 편집자는 게재하였으나, 전반 부는 생략하는 쪽을 택했다.
부끄러웠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