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선거 대회의 종결

 

규약을 채택한 후, 대회는 지역 조직에 관한 결의와 개개 당조직에 관한 일련의 결의를 통과시켰으며, 내가 앞에서 분석한 유즈니 라보치그룹에 관한 극히 교훈적인 토론을 거친 후에 당 중앙기관들의 선거 문제에 대한 심의로 넘어갔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대회 전체는 이스크라조직이 권위 있는 추천을 해 줄 것을 기대하였지만, 이스크라조직은 이 문제를 둘러싸고 분열하였는데, 왜냐하면 이스크라조직의 소수파가 대회에서의 공개적이고 자유로운 투쟁으로 대회에서 다수파를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시험해 보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 중앙기관지와 중앙위원회에 각 1개씩, 2개의 3인조를 선출함으로써 편집국을 재구성하려 한 계획이 대회 훨씬 이전에 또 대회에서 모든 대표에게 알려져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대회에서의 토론을 명백히 규명하기 위해 이 계획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다음의 것은 이 계획이 발표된 대회의 의사일정* 초안에 대한 나의 주석의 정확한 본문이다. “대회는 중앙기관지 편집국에 3, 중앙위원회에 3명을 선출한다. 6명은 충원이 필요하다면 합동으로 2/3의 다수결로 중앙기관지 편집국 및 중앙위원회의 그 다음 성원을 충원하며[합동 자주충원 편집자] 이 결과를 대회에 보고한다. 대회가 이 결과를 승인한 후, 그 이후의 충원은 중앙기관지 편집국과 중앙위원회가 각기 시행하게 될 것이다[자주충원 편집자].”

 

이 원문을 보면 그 계획은 아주 명확하고 전혀 예매하지 않다. , 이 계획은 실천 활동의 가장 유력한 지도자들의 참여 하에 편집국을 재구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계획에서 내가 강조한 두 가지 특징은 위에 인용한 원문을 조금이라도 주의 깊게 읽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라도 즉시 분명 해진다. 그러나 현재에는 가장 초보적인 것조차 세상 깊이 보고 설명해야만 한다. 이 계획이 의미하는 바는 정확히 편집국의 재구성이었다——편집국원을 반드시 증가시킨다거나 감소시킨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재구성이었다. 왜냐하면 중가나 감소 가능성의 문제는 미결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 충원은 오직 필요한 경우에만 이루어진다. 이러한 재구성의 문제에 관하여 여러 사람이 발표한 제안들 중에는 가능하면 편집국원 수를 줄이자는 안과 7명으로 늘리자는 안(나 개인적으로는 6명보다 7명이 비교도 안 될 만큼 적절하다고 늘 생각해 왔다), 심지어 11명으로 늘리자는 안(이것은 일반적으로 모든 사회인주주의 조직과, 특수하게는 분트 및 플랜드 사회인주당과의 원만한 통합이 행해지는 경우에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다)까지 나왔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며, 3인조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사람들이 흔히 간과하기도 하는 문제는 중앙기관지의 충원 문제는 중앙위원회의 참여 하에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계획을 알고 있었고 승인했던(명백히 밝혔던 압록적인)이스크라조직의 소수 파 성원 또는 대회 대표 중 어떤 동지도 이 요점의 의미를 설명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첫째, 3인조를, 그리고 3인조만을 편집국 재구성의 출발점으로 삼았는가? 만약 유일한 목적이, 아니면 주된 목적이 편집국의 확대에 있었다면, 그리고 편집국이 실제로 손발이 맞는기관을 확대하는 것이라면, 기관 전체에서가 아니라 단지 기관의 한 부분에서 출발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분명히 남은 편집 셋클을 당 기관으로 전환시키고 그것을 재구성하는 문제를 결정하는 데서 구편집국원 전원이 참으로 자격 있다고 인정된 것은 아니었다. 분명히, 개인적으로는 확대에 의한 재구성을 바라고 있던 사람조차도 종래의 편집국의 구성은 손발이 맞지 않았으며 당 기관으로서의 이상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그렇지 않다면 편집국을 확대하기 위해 우선 6명을 3명으로 축소할 이유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되풀이하진대 이것은 자명하며, 다만 인신 공격운운의 일시적인 문제의 흔한만이 이를 막자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 앞에서 인용한 원문에서 알 수 있듯이 중앙기관지의 3명 모두의 동의조차도 그 자체로는 3인조를 확대하는 데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 또한 늘 망각되는 것이다. 충원을 위해서는 6표의 2/3, 4표가 필요하다. 중앙위 원으로 선출된 세 명이 그들의 거부권을 행사하는 경우도 불가피하게 생길 것 이며, 그러면 3인조의 어떤 획대도 불가능해질 것이다. 반대로, 중앙기관지의 편집국원 3명 중 2명이 그 이상의 충원을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3명의 중앙위 원 전부가 이에 찬성한다면 충원은 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그것이 의도하는 바가 남은 셰를 당 기관으로 변화시키는 데서 대회에서 선출된 실천 활동의 지도자들에게 결정권을 부여하는 것에 있었음을 명백하다. 우리가 대체로 어 떠한 동지를 예정하고 있었는가, 대회에서 편집국의 이름으로 발언해야 할 경우에 대비하여 편집국이 대회 전에 일곱 번째 편집국원으로 파블로비치 동 지를 만장일치로 선출했다는 점에서 알 수 있을 것이다. 일곱 번째 편집국원 의 지위에 파블로비치 동지 외에도 이후에 중앙위원으로 선출된, 이스크라조직의 고찰이며 조직위원회의 일원이었던 사람이 추천되었다.[47)]

 

따라서 두 개의 3인조를 선출하는 계획이 명백히 의도했던 것은 1) 편집국 을 재구성하는 것, 2) 당 기관에 부적당한 남은 셰를 근성의 몇몇 요소들을 편 집국으로부터 제거하는 것(제거할 것이 전혀 없었다면 최초의 3인조를 생각해 낼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3) 문필가 조직의 신권정치적특징을 제거하는 것(3인조의 확대 문제를 결정하는 데 탁월한 실천 활동기를 참여시 킴으로써 제거한다)이었다. 편집국원 모두가 알고 있었던 이 계획은 명백히 3 년간의 활동 경험에 기초한 것이었으며, 우리가 일관되게 제안해 왔던 혁명적 조직의 원칙들에 완전히 일치되었다. 이스크라가 등장했던 분열의 시대에는 여러 그룹들이 종종 우연하게,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었으며, 불가피하게 셰를 근성의 독소에 다소 시달렸다. 당의 창설은 이러한 독소들의 제거를 전제로 하였으며 또 요구하였다. 탁월한 실천 활동가들이 이러한 독소 제거에 참여하 는 것은 필수적이었는데, 왜냐하면 편집국원 중 몇 명은 항상 조직상의 작업 만 해 왔기 때문이며, 또한 당 기구의 체계에 들어가는 조직은 단순히 문필가 로 이루어진 조직체가 아니라 정치적 지도자로 이루어진 조직체여야 했기 때 문이다. 이스크라가 평소 추구해 온 정책의 관점에서 보면, 최초의 3인조 선 거를 대회에 맡기는 것도 마찬가지로 당연한 것이었다. , 우리는 강령, 전술, 조직에 관한 모든 논쟁 중인 원칙적 문제들이 완전히 규명될 때를 기다리면서 대회 준비에 최대의 신중을 기하였으며, 우리는 이러한 근본적 문제들에 대하여 대회의 압도적 다수가 단합할 것이라는 의미에서, 대회는 이스크라적인 것으로 될 것이라는 점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이것은 이스크라를 지도적 기관지로 승인한 결의에 의해서도 부분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스크라의 사상을 전파하고 이스크라를 당으로 전환시키는 모든 준비 활동을 그 어깨에 걸며진 동지들에게, 새로운 당 기관에 가장 적합한 후보자가 누구인지를 그들 스스로 결정하도록 밝게 두어야 했다. ‘두 개의 3인조라는 계획은 당연한 것이었다는 사실, 이 계획은 이스크라의 모든 정책과 완전히 합치하고 있었으며, 조금이라도 사정에 통달해 있는 사람들이 이스크라에 관하여 알고 있던 모든 것과 완전히 합치하고 있었다는 사실, 오직 이들 사실에 의해서만, 이 계획이 일반적으로 찬성을 받았으며 여기에 대항한 다른 안 이 없었다는 것이 설명될 수 있다.

 

그러하여 대회에서, 무소프 동지가 누구보다도 먼저 2개의 3인조의 선출을 제안하였다. 마르토프 그는 이 계획은 기획주의라는 부당한 비난과 관련되어 있다고 우리에게 판지로 통고했다 의 추종자들은 6인조의 편집국인가, 3인조의 편집국인가 하는 논쟁을, 이 비난이 옳은가 그른가 하는 문제로 환원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들 중 누구 하나 이에 대해 암시조차 하지 않았다! 그들 중 누구도 6인조인가 3인조인가 하는 논쟁과 관련된 원칙적 세쇄의 다양한 차이점에 대해서는 감히 한 마디도 못하였다. 그들은 오히려 더 천박하고 잃은 방식을 택했는데, 즉 동접심에 호소한다든가, 감정을 상하게 할 가능성 운운하면서 편집국의 문제는 이스크라를 중앙기관지로 지정함으로써 이미 해결되었다는 듯이 가장했다. 콜츠프 동지가 무소프 동지에 반대하여 제시한 이 마지막 논리는 새롭고 거짓말이었다. 대회의 의사일정에는(의사록, 10) 4당의 중앙기관지와 제18중앙위원회와 중앙기관지 편집국의 선거라는 두 가지 별개의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우연은 아니었다. 이것이 첫 번째 이유이다. 두 번째로, 중앙기관지로 지정할 때, 이것은 편집국이 아니라 단지 그 경향을 승인한 것뿐이라고 대표 모두가 명백히 선언하였으며 이 선언에 반대한 항의는 한 마디도 없었다.

 

따라서 대회는 특정한 기관지를 승인함으로써 실질적으로 편집국도 승인하 였다는 선언 소수파의 신봉자들(콜초프, 321; 포사토프스키, 321; 포포 프, 322쪽 및 기타 다수)에 의해 여러 번 되풀이된 이 선언 은 실제로는 완전한 거짓말이다. 이는 모든 사람이 아직 중앙기관들의 구성 문제를 실로 공명한 태도로 바라볼 수 있었던 때에 취하고 있었던 입장으로부터의 후퇴를 은폐하기 위한 완전히 명백한 계략이었다. 이 후퇴는 원칙적인 논리를 통해서 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왜냐하면 대회에서 기회주의라는 부당한 비난의 문제 를 제기하는 것은 소수파에게 너무나도 불리하였으므로, 그들은 이것을 입 뻐 에 내지도 않았다). 6인조와 3인조 중 어느 것이 실질적으로 더 능률적인가를 보이는 사실적인 자료를 드는 것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었다(왜냐하면 이 자료 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소수파에게 불리한 증거가 엄청나게 많이 나올 것이 기 때문이다). 그들은 균형 잡힌 전체라든가 손발이 맞는 힘이라든가 균형 잡히고 결정체와 같이 완벽한 통일체등등의 빈말로 이 문제를 목살해야 했 다. 이러한 말들이 즉각적으로 동정심에 호소하는 말’(328)이라는 정확한 명 칭으로 불리게 된 것은 놀랍지 않다. 3인조라는 계획 바로 그 자체가 손발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명백히 입증했으며 대표들은 한 달 이상의 공동 활동 속 에서 얻은 인상을 통하여 그 대표들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정도의 많은 자료 를 확보하고 있었다. 포사토프스키 동지가 이 자료에 대한 암시를 주었을 때 (그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신중하지 못하며 생각 없는 것이었다. 그가 불화라는 말을 사용했을 때 달랐던 조건부에 대해서는 321쪽 및 325쪽을 보라), 무라비오프 동지는 단호하게 이렇게 선언했다. “나의 생각으로는, 그러한불화가 틀림없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현재 대회의 다수에게는 아주 명백한 다”(321). 소수파는 무라비오프 동지의 도전에 응할 용기도 없었으며, 6 인조의 편집국을 용호하는 데서 실질적인 진가에 입각한 단 하나의 논거를 제시할 용기도 없이, ‘불화라는 말이 맡은 무라비오프가 아니라 포시도프스키에 의해 유포된 것이다)을 순전히 인신 공격적인 의미로 해석하려 하였다. 그 결과 내용의 빈곤함이라는 점에서 무척 우스황스러운 논쟁이 일어났다. , 다수파는 (무라비오프 동지의 발언을 통하여) 6인조인가 3인조인가 하는 문제의 참된 의미가 그들에게 참으로 명백하다고 단언하였지만, 소수파는 이에 귀 기울이기를 완강히 거부하며 우리는 그것을 검토할 수 있는 처지에 있지 않다고 단언하였다. 다수파는 이것을 검토할 수 있는 처지에 있다고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이미 검토해 왔으며,’ 검토 결과는 그들에게 참으로 명백하다고 말하였으나, 소수파는 확실히 검토를 두려워했으며, 단지 동정심에 호소하는말 뒤에 숨어 버렸다. 다수파는 우리의 중앙기관지는 문필가 집단 이상의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또한 대회에 알려져 있는 사람들, 내가 지적한 요건들(, 327쪽의 탕게 동지의 연설과 같이 한것 문필가 적 요건만은 아닌)을 충족시키는 참으로 명확한 사람들에 의해 지도되기를 원했다.” 이번에도 소수파는 이 도전에 응할 용기가 없었으며, 그들의 견해로 볼 때 문필가적인 조직체 이상의 것에 적합한 사람이 누구이며, ‘대회에 알려진’ ‘참으로 명확한중요 인물은 누구인가에 대해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소수파는 계속해서 그들의 유명한 손발뒤에 숨었다. 그뿐만이 아닌다. 소수파는, 원칙상 절대 옳지 못하며 따라서 당연히 날카롭게 저지당할 수밖에 없었던 논리를 논쟁 속에 끌어들이기조차 했다 대회는모름지기 편집국을 개편할 도의적인 또는 정치적인 권리가 없다”(트로츠키, 326), “이는 너무나도 미묘한(원문대로!) 문제이다”(역시 트로츠키), “재산되지 못한 편집국 원들은 대회가 그들을 더 이상 편집국에 두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 어떻게 느낄 것인가?”(씨로프, 324).

 

이러한 논거들은 문제 전체를 단순히 연민과 상처받은 감정의 수준으로 끌어 내렸으며, 참으로 원칙적이고 정치적인 논리에서는 파산했음을 직접 시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수파는 즉각 이러한 태도에 속을 근심이라는 정확한 명칭을 붙여 주었다(루소프 동지). 루소프 동지는 정확히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혁명가의 입에서, 당 활동과 당 윤리의 편념에 현격히 모순되는 이상한 발언들이 나오고 있다. 3인조 선출에 반대하는 자들의 주요한 논리는 당 사업에 대한 순전히 속물적인 견해로 귀착된다”(나의 강조, 이후 강조는 계속 나의 것). “……만일 우리가 속물적이며 비당적인 이러한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선거 때마다 다음과 같은 문제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 페트로프는 만일 자신이 아니라 이바노프가 선출되면 감정이 상하지 않을까? 조직위원 중 누군 가는, 만일 자신이 아니라 다른 위원이 중앙위원으로 선출된다면 감정이 상하 지 않을까? 둥둥, 동지들, 이것이 우리를 어디로 끌고 가겠는가? 우리가 여기 모인 것은 상호 천장과 속물적 동점심에 빠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당을 창설 하기 위한 것인 이상, 이러한 견해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우리는 임원을 선 출하려 하고 있으며, 따라서 선출되지 못한 사람이 혹시 불신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없다. 우리가 유일하게 고려해야 할 사 항은 사업의 이익에 관한 문제와 선출된 자가 선출되는 자리에 적합한가 하는 문제뿐이다”(325).

 

우리는, 당 분열의 원인을 주체적으로 검토하려는 모든 사람, 대회에서 분 열의 근원을 캐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루소프 동지의 이 연설을 반복해서 읽어 보라고 권하는 바이다. 소수파는 그의 논리에 반박은커녕 실로 언경조차 불이 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초보적이며 근본적인 진리는 실로 언경될 수 없는 것으로서, 루소프 동지가 정확히 표현했듯이 단지 신경질적인 흥분 상태때 문에 잊혀졌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소수파가 어떻게 하여 당적 견지를 팽 개치고 속물 근성과 써를 근성의 견지로 타락할 수 있었는가를 설명하는 데, 그들의 불명예를 참으로 최소화시킨 설명이다.

 

그런데 소수파는 선거에 반대하는 조리 있고 실무적인 논리를 전혀 찾아낼 수 없게 되자, 당 사업에 속을 근성을 끌어들인 것 외에도, 노골적으로 중상비 방하는 진피를 들고 나왔다. 정말로, 무라비오프 동지에게 카다로운 임무를 떠밀지 말라”(324)고 충고한 포포프 동지의 행동을 달리 무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소로킨 동지가 정확히 표현했듯이 이것이 인신 공격’(328)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는 정치적 논거가 없는 것이므로, 제명대로의 인신 공격외에 달리 무어라 부를 수 있는가? “우리는 이러한 잔꾀에 항상 이의를 제기해 왔다”, “자신에게 동의하지 않은 동지들을 웃음거리로 만들려고 노골적으로 시도한 도이치 동지의 행동은 허용될 수 있는가?"(328)* 하고 말한 소로킨 동지는 옳았는가 옳지 않았는가?

 

편집국 문제에 관한 논쟁을 총괄해 보자. 소수파는, 3인조에 대한 계획이 대회 백두와 대회 전부터 대표들에게 알려져 있었으며 따라서 이 계획은 대회에서 발생한 시간이나 논쟁과는 힘들 관계가 없는 신중한 고려와 시설에 근거 하고 있다는 다수파의 수많은 지적을 반박하지 않았다(아니, 반박하려고 하지 도 않았다). 6인조의 편집국을 옹호하는 데서, 소수파는 속물적인 사고에 기초한, 원칙적으로 잘못되었으며 허용될 수 없는 입장을 취하였다. 소수파는 임원의 선출에 대한 당직 자세를 완전히 망각했음을 드러내는 바, 한 지위에 대한 각 후보의 평가의 이 후보가 많은 바 직무에 적절할지 그렇지 않을지에 대한 평가조차 하려 하지 않았다. 소수파는 문제의 본질적인 심의를 회피하였으며, 그 대신 마치 누군가가 살해되기라도 한 듯이 눈물을 흘리며’ ‘비탄에 잠겨서그 유명한 손발을 말하였다(망계의 연설 327). ‘신경질적인 흥분 상태’(325)에서 소수파는 인신 공격’, 선거는 최악이라는 아무성, 그리고 이와 유사한 허용될 수 없는 책략조차 서술지 않았다.

 

속물 근성과 당 정신 사이의 투쟁, 가장 저질스런 인신 공격정치적 고려 사이의 투쟁, 동정에 호소하는 말과 혁명적 임무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 사이의 투쟁——이것이 우리 대회의 제30회 회의에서 있었던 6인조와 3인조를 둘러싼 투쟁의 본질이었다.

 

그리고 31회 회의에서 대회가 19표 대 17, 기권 3표로 구편집국 전원을 승인하자는 제안을 부결하자(330쪽과 정오표를 보라), 구편집국원들이 회의장에 돌아온 뒤 마르토프 동지는 구편집국 다수파를 대표한 성명’(330~331)에서 정치적 입장과 정치적 개념의 이와 같은 무정결과 동요를 한층 심하게 드러내었다. 이 집단 성명의 각 항과 그에 대한 나의 응답(332~333)을 자세히 검토해 보자.

 

구편집국이 승인되지 않자, 마르토프 동지는 이제부터 구"이스크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 명칭을 바꾸는 편이 한층 일관성이 있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대회의 새로운 결의를 대회 초반의 한 회의에서 채택된 바 있는 "이스크라"에 대한 신임 투표의 실질적인 제한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마르토프 동지와 그 동료들은, 참으로 흥미로우며 많은 점에서 교훈적인 정치적 일관성이라는 문제를 제기하였다. 나는 "이스크라"를 승인할 때 모든 사람이 말했던 것을 인용함으로써 이미 이 문제에 대한 바 있다(의사록, 349쪽과 본서 82[여기서는 109쪽 각주 - 편집자]을 참조하라). 우리가 여기에서 직접하고 있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정치적 비일관성의 놀라운 사례이지만, 어느 편이 그러한가 - 대회의 다수파 측인가 아니면 구편집국의 다수파 측인가 - 에 대한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기겠다. 또 마르토프 동지와 그 동료들이 매우 적절하게 제기한 다른 2개의 문제가 있는데, 이 역시 독자의 결정에 맡기겠다. , 1) 중앙기관지 편집국의 임원을 선거한다는 대회의 결정 속에서 "이스크라"에 대한 신임 투표의 제한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하는 의도가 속을 적인 태도를 드러내는가 아니면 당첨 태도인가? 2) "이스크라"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은 어느 때부터인가? - 플래하노르와 나, 두 사람이 운영하기 시작한 제46호부터인가, 아니면 구편집국의 다수파가 인계받아 운영한 제53호부터인가? 첫 번째 문제가 가장 흥미로운 원칙의 문제라면, 두 번째 문제는 가장 흥미로운 사실의 문제이다.

 

마르토프 동지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 3명으로 구성된 편집국을 선출하기로 결정되었으므로, 나는 나와 그 밖의 3명의 동지를 대표하여 우리 중 누구도 이 신편집국에 참가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하는 바이다. 나 자신에 대해 부인해 둘 것은, 어떤 동지들이 3인조의 후보자 명부에 나의 이름을 기입하고자 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이것을 부당한 모욕[원문 그대로]으로 간주할 것이다. 나는 편집국의 개편이 결정된 상황을 고려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이 결정은, 모종의 알렉과 구편집국의 활동 능력의 결여라는 이유로 취해졌다. 더구나 대회는 이 알렉에 대해 편집국에 문의하지도 않고, 또 심지어 활동 능력의 결여라는 문제를 명백히 하기 위한 소위원회를 임명하지도 않은 채, 이 문제를 어떤 특정한 방향에 따라 결정하였다(이상하게도 소수와 중 어느 누구도 편집국에 문의할 것이나 소위원회를 임명할 것을 대회에 결코 제안하지 않았다!이스크라조직이 분열되고 마르토프 동지와 스타로베르 동지가 글로 써 보냈던 교섭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에는 그렇게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이런 상황에서, 내가 이러한 방식으로 개편된 편집국의 일원이 되는 것에 동의할 것이라는 몇몇 동지들의 예상은 나의 정치적 명성에 대한 훼손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내가 일부러 주장을 전부 인용한 것은, 대회 이후에 찬란히 피어났으며 물품선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언동의 사례와 발달을 독지들이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일찍이이스크라편집국에 보내는 편지에서 꼴불견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으며, 편집진들의 곤혹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반복하여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표현의 정확성은 논쟁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물질론은 비열한 동기를 전제로 하고 있다(신기이스크라,의 편집진들이 결론짓듯이)는 생각은 잘못이다. 우리 나라의 유배자나 정치적 명령자를 조금이라도 아는 혁명가라면, ‘신경질적인 흥분과 비정상적이며 침체된 생활조건 때문에 가장 어리석은 비난, 의심, 자체, ‘인신 공격등을 피부으며 되풀이된 수십 가지의 눈물사나운 입씨를 목격해 왔을 것이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입씨를의 앙상이 아무리 비열하다더라도 이들 인정 속에서 비열한 동기를 찾아내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마르토프 동지의 연설에서 인용한 위 구절에 들어 있는 어리석음, 인신 공격, 근거 없는 공포, 모욕과 증상에 대한 상상 등으로 뒤흔진 실태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신경질적인 흥분뿐이다. 침체된 생활 조건은 우리 사이에 이런 일을 수도 없이 만들어 낸다. 그리고 한 정당이 자신의 질병의 이름을 정확하게 부르고 단호한 진단을 내리며 치료법을 찾으려는 용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이 정당은 존경받을 가치가 없을 것이다.

 

이 엉긴 실태를 중에서 원칙과 관련된 것을 조금이라도 추출해 낼 수 있는 한, 다음과 같은 결론에 필연적으로 도달한다. “선거는 정치적 명성의 어떤 체스라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 “새로운 선거를 실시하며 새로운 임명을 행하고 대회 자체가 공인한 조직체의 구성을 개편하는 대회의 권한을 부정하는 것은 문제에 혼란을 가져온다는 것, 그리고 구편집국의 일부분의 선출이 한 허용될 수 있는 문제인가에 대한 마르토프 동지의 견해는 정치적 개념의 극단적인 흥동을 나타내고 있다”(대회에서 내가 이렇게 표현했듯이, 332)는 것 등이다.

 

3인조 안을 누가 최초로 발의하였는가에 대한 마르토프 동지의 개인적인의견은 생략하고, 구편집국을 승인하지 않은 것이 갖는 의미에 대하여 그가 내린 정치적인판정으로 넘어가겠다. ,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은 대회의 후반기 동안 사냥게 물어졌던 투쟁의 최후의 일막이다”(정말로 옳다! 그리고 대회의 후반기는 마르토프 동지가 규약 제1조의 문제에서 아키모프 동지의 단단한 손아귀에 불참한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이 개편에서 문제는 활동능력이 아니라, 중앙위원회에 대해 영향력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이라는 점은 공공연한 비밀이다”(첫째, 이것이 중앙위원회의 구성을 둘러싼 불일치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활동 능력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왜 나하면 개편은 불일치가 아닌 곳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때, 그리고 마르토프 동지가 일곱 번째의 편집국원으로 파블로비치를 선출하는 데 우리와 의견을 같이했던 때에 제출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이것은 중앙위원회의 인적 구성의 문제이며 결국 글레보프 - 트라빈스키 - 포포프인가 글레보프 - 트로츠키 - 포포프인가 하는 두 가지 명부의 차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문헌상의 증거에서 보았다. “편집국의 다수는 중앙위원회를 편집국의 도구로 전략시킬 마음이 없다는 것을 보였다”(이것은 아카모프의 상투이다. , 모든 다수파가 다수의 힘으로 중앙기관들에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어떤 당 대회에서나 투쟁하게 마련인 영향력의 문제는, 마르토프 동지가 조금 뒤에 말하는 바와 같이 편집국의 도구라는가 편집국의 단순한 부속물이라는 기획주의적 비방의 수준으로 옮겨진다. 334). “그렇기 때문에 편집국원의 수를 감소시킬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또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러한 편집국에 들어갈 수 없다”(그렇기 때문에라는 말을 좀더 주의 깊게 살펴보라. 편집국이 중앙위원회를 부속물 혹은 도구로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그것은 오직 편집국이 평의회 내에 3표를 가졌고, 이 우위를 악용한 경우에만 가능하다. 이는 명백하지 않는 가? 그리고 세 번째 위원으로 선출된 마르토프 동지는 언제라도 이러한 악용을 막을 수 있었으며, 자신의 표 하나로만도 평의회 내에서의 편집국의 모든 우위를 타파할 수 있었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명확하지 않은가? 결국 모든 문제는 중앙위원회의 인적 구성으로 귀착되고, 도구라는가 부속물이라든가 하는 말은 중앙모락임이 즉시 분명해진다). “편집국의 다수와 함께 나는, 대회가 당 내의 게임 상태에 종지부를 찍고 정상적인 질서를 수립할 것이라고 생각하였 다. 그러나 실제로는 특정 그룹에 대한 비상 입법과 함께 게임 상태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심지어 더욱 강화되고 있다. 오직 구편집국이 그대로 남는 경우에만, 우리는 규약에 따라 편집국에 주어진 권한들이 당에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보증할 수 있다……

 

이상이 마르토프 동지의 연설 중 그가 게임 상태라는 악명 높은 합성물 처음으로 내밀렸던 부분의 전문이다. 그러면 이제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을 보도록 하자.

 

…… 그러나, 나는 두 개의 3인조 안의 감춘진(private) 성격에 대한 마르토프의 선언을 정정하는 데서, 구편집국을 승인하지 않기로 하면서 우리가 취한 조치가 정치적 의의를 가졌다는 마르토프 동자의 주장을 부정할 의도는 없다. 오히려 이 조치가 커다란 정치적 의의를 가졌다는 점에서 마르토프 동자에게 완전히, 무조건적으로 동의한다, 마르토프가 그것에 부여한 그 의의는 아니다. 그는 이것이 러시아 내에서 중앙위원회에 대한 영향력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의 일막이었다고 하였다. 나는 마르토프보다 좀더 발전시키겠다. 지금까지 개별 그룹으로서 이스크라의 모든 활동은 영향력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한층 더 중요한 문제가 있는 바, 즉 영향력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뿐 아니라 영향력을 조직적으로 강화하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하여 마르토프 동자와 나 사이에 정치적으로 얼마나 깊은 의견 차이가 있는지는 다음의 사실이 잘 보여준다. , 마르토프는 중앙위원회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는 이유로 나를 비난하는 반면, 나는 이 영향력을 조직적 방법으로 강화하려 하였고 지금도 강화하려 하고 있으며 이 일이 나의 명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각기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음이 확실하다. 우리의 모든 활동과 모든 노력이 영향력의 완전한 획득과 강화가 아니라, 영향력 획득을 위한 구매의연한 투쟁으로 끝나 버린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렇다. 마르토프 동자는 전적으로 옳다. , 우리가 취한 조치는, 현재 일러진 여러 경향들 중의 하나가 우리 당의 장래 활동을 위해 선택되었음을 보여주는 확실히 중요한 정치적 조치이다. 그리고 나는 당 내의 계열 상태라는 특정 개인들과 그룹들에 대한 비상 일일등의 무시무시한 말을 조금도 무시하지 않는다. 우리는 불안정한 동요 분자에 대하여 계열 상태를 만들어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당 귀약전체와 이제 대회에서 승인받은 중앙집권계의 모든 체계는, 정치적 모호함의 수많은 원천에 대한 계열 상태와 다를 바 없다. 모호함에 대한 방해으로, 비록 비상 일일일망장 특별법이 요구된다. 그리고 대회가 취한 조치는, 이러한 일일일과 이러한 방해를 위해 필요한 확고한 토대를 만들어 놓음으로써, 앞으로 나아갈 정치적 방향을 올바르게 가리켜 왔다.”

 

나는 대회에서의 나의 연설의 개요 중에서, 마르토프 동자가 그의 계열 상태(16)에서 생략하고자 했던 문장을 강조하였다. 그가 이 문장을 꺼려했으며, 이 문장의 명확한 의미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마르토프 동자, ‘무시무시한 말이라는 표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조소보잘것없는 사실에 위대한 이름을 부여하는 자, 파장된 설교로 단순한 문제를 혼동시키려는 자에 대한 조소를 의미한다. 마르토프 동자의 신경질적인 흥분의 유일한 원인으로 될 수 있었고 또 실제로 되었던 보잘것없으며 단순한 사실은, 중앙기관들의 인적 구성 문제에서 대회에서 그가 패배했다는 사실 바로 그것이다. 이 단순한 사실의 정치적 의미는, 승리한 당 대회의 다수파가 당 지도부 내에서 다수를 점함으로써, 또 이 다수파가 불안정성, 동요성 및 모호성이라고* 간주되는 것에 대항하여 투쟁하기 위한 조직적 기반을 규약에 따라 창출함으로써 그들의 영향력을 강화하였다는 점이다. 이것에 대하여 집막은 눈으로 영향력 획득을 위한 투쟁운용하며 게임 상태라는 불평을 한 것은 파장된 설교이며 무시무시한 말일 뿐이다.

 

마르토프 동지는 이상의 것들에 동의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아마도 그는, 당 대회에서 다수파가 1) 중앙기관들 내에 다수를 확보하고, 2) 불안정성, 동요성, 모호성을 마비시키기 위한 권력을 다수파에 부여함으로써, 그들이 이미 획득한 영향력을 강화해 나가지 않으려 했던 경우가 있었다는 것, 또 일반적으로 그런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증명해 보여야 할 것이다.

 

선거에 앞서 우리 대회는, 중앙기관지와 중앙위원회에서 표결권의 1/3을 당의 다수파에 줄 것인가 아니면 당의 소수파에 줄 것인가 하는 문제를 결정해야 했다. 6인조 안과 마르토프 동지의 명부는 우리에게 1/3을 주고 그의 추종자들에게 2/3를 주는 것을 의미했다. 마르토프 동지는 우리와 협상하거나 우리에게 양보할 것을 거부하였으며, 대회에서 투쟁하지는 편지로 우리에게 도전하였다. 대회에서 패배하지, 그는 울음을 터트리며 게임 상태라는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 이것이 불분명이 아니라 말인가? 이것이 지식인적 나약함의 새로운 발현이 아니라 말인가?

 

이와 관련하여, 최근의 칼 카우츠키의 지식인의 자질에 대한 탁월한 사회학적·심리학적 특징 묘사를 회상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여러 나라의 사회인주당은 대부분 이와 유사한 병에 걸려 있으며, 한층 경험 있는 동자들에게서 울바른 진단과 울바른 치료법을 배우는 것이 우리에게 매우 유익하다. 그러므로 몇몇 지식인들에 대한 칼 카우츠키의 특징 묘사는 우리의 논제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다만 외견상 그럴 뿐이다.

 

...... 오늘날 또다시 우리의 관심을 강하게 끌고 있는 문제는 인텔리전터와 프롤레티아트 사이의 대립 문제이다. 나의 동료들(카우츠키 자신도 인텔리어 몰랐기 어려워)인다. 나가 이 대립을 인정하는 것에 대해 매우 분명할 것이다. 그러 나 대립은 실제로 존재하고 있으며,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경우에도 사실을 부정함으로써 그것을 극복하려 하는 시도는 가장 부적절한 방해일 것이다. 이 대립은 사회적인 것이며 계급에 관한 것이지, 개인에 관한 것이 아니라. 개개의 자본가 와 마찬가지로 지식인도 개인적으로는 프롤레티아트의 계급투쟁에서 프롤레티아트와 일체가 될 수 있다. 이렇게 했을 경우, 지식인은 자신의 성격도 변화한다. 따라서 앞으로 주로 언급하게 되는 것은, 자신의 계급에서는 여전히 예외인 이러한 형의 지식인이 아니다. 달리 쓰이지 않는 한, 앞으로 내가 사용하는 지식인이라는 말은 부르주아 사회의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계급으로서의 인텔리전터와의 특정을 전형적으로 가지고 있는 평범한 지식인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계급은 프롤레티아트와 일정한 대립적 관계에 있다.

 

그러나 이 대립은 노동과 자본 사이의 대립과는 다른 것이다. 지식인은 자본가가 아니다. 물론 그의 생활 수준은 부르주아적이며, 극반자로 되지 않는 한 이 수준을 유지하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자신의 노동 생산물, 그리고 종종 자신의 노동력을 필수다. 하며, 종종 자본가에게 상당히 착취되며 모욕을 당한다. 따라서 지식인은 프롤레티아트와 아무런 경제적 대립 위에 서 있지 않다. 그러나 그의 생활 상 대화 노동 조건은 프롤레티아적이지 않으며, 이 때문에 정서와 사고에서 일정한 대립이 발생한다.

 

프롤레티아트는 고립된 개인으로서는 보장되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합과, 자신의 모든 발전, 자신의 기대와 희망 전체를 조직으로부터, 동료와의 체계적인 공동 활동으로부터 얻어 낸다. 그는 자신이 거대하고 강력한 조직체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을 때, 거대한 강력함을 느낀다. 이 조직체는 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며, 이것에 비해 개인은 매우 보장되었는 것으로 생각된다. 프롤레티아트는 익명의 대중의 일 부로서 최고의 헌신성으로, 개인적 이익과 개인적 명성을 돕도록 돕고 투쟁하는 바, 자신의 모든 감정과 사고에 스며들어 있는 자발적 규율에 따르면서, 자신에게 맡겨 진 어떠한 직무에서나 자신의 책임을 완수한다.

 

지식인의 경우는 완전히 다르다. 그는 힘으로써가 아니라 논리로써 투쟁한다. 그의 무기는 자신의 개인적인 지식, 자신의 개인적인 능력, 자신의 개인적 신념이다. 그 는 오직 개인적 자질을 통해서만 어떠한 지위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그에게는 자 신의 개성을 발휘할 완전한 자유가 성공적인 활동을 위한 첫째 조건으로 보인다. 그가 전체에 종속하는 일부분이 되는 것이 복종하는 것은 부득이한 경우뿐이며, 그 것도 좋아서가 아니라 오직 필요에 따른 것이다. 그는 대중에 대해서만 규율의 필 요성을 인정하며 선택된 인물에 대해서는 그 필요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물론 그 자신은 후자에 속하는 것으로 여긴다.……

 

초인 승배를 설파한 니체의 철학, 즉 초인에게는 자신의 개성을 완성하는 것이 가 장 가치 있는 일이며, 자신의 개성을 거대한 사회적 목적에 종속시키는 것은 어떤 것이나 저속한 것이고 경멸해야 할 것이라는 이 철학은 진정한 지식인의 철학이다. 그리고 이것은 지식인이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에 참여하는 것을 전적으로 부 적합하게 만든다.

 

니체 다음으로 인텔리전자의 정서에 합치되는 철학의 가장 탁월한 대표자는 아마도 입센일 것이다. 그의 저작인민의 적이 나오는 의사 스토크만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사회주의자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운동, 일반적으로 어떤 민중운동 속에서 활동하려 하자마자 이 운동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지식인의 전형이다. 왜냐하 면 모든 민주주의* 운동과 마찬가지로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기초는 대다수 동료에 대한 존경심이기 때문이다. 스토크만과 같은 전형적인 지식인은 결속된 다수를 타도해야 할 괴물로 생각한다.……

 

지식인의 이상적인 모범, 즉 프롤레타리아트의 감성에 완전히 동화된 사람, 또 특출 한 문필가이면서도 지식인 특유의 의식을 완전히 버렸고, 진지하게 사명과 하나만 의 대열에 참가하여 헹군하였고, 그에게 말거진 것이라면 어떠한 직무라도 모두 이 행하였으며, 우리의 운동에 헌신적으로 그 자신을 복종시켰고, 입센과 니체로 물론 지식인이 스스로가 소수파일 때 자주 입 밖에 내는, 개성이 억압받고 있다는 무력 한 비탄(weichliches Gewinsel)을 경멸하는 사람——사회주의 운동이 필요로 하는 지식인의 이상적인 모범은 리프크네이트였다. 또한 마르크스도 이 범주에 들 수 있 는데, 그는 결코 선두를 탐하지 않았으며 그 자신이 종종 소수파였던 인터내셔널에 서 당 규율에 복종한 것은 가히 모범적이었다.

 

마르토프와 그의 동료들이 단지 구체들이 승인받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취임을 거부한 것이나, 게임 상태라는 등 특정 그룹에 대한비상 입법 이에 대해 마르토프는 유즈니 라보치라보체에 젤로가 해산될 때는 아무 관심도 없다가 자신의 그룹이 해산되지 주의를 집중하게 되었다 이라는 등 하는 불평을 터트린 것이아닐로, 소수파가 된 지식인의 바로 그 무력한 비판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르토프에 의해 시작되어 우리 당 대회에서(그리고 당 대회 후에는 그 이상으로) 홍수처럼 피부어진 결속된 다수에 대한 불평, 절책, 암시, 비난, 증상, 모략 등의 끝없는 파란은 바로 소수파로 된 지식인의 바로 그 무력한 비판에 불과한 것이었다.

 

소수파는 결속된 다수파가 내부 회합을 가졌다고 매우 투명지었다. 그러나 소수파는 다음과 같은 불쾌한 사실을 무엇으로든 은폐해야 했던 것이다. , 소수파가 자기들의 내부 회합에 초대한 대표들은 참가를 거절하였으며, 그 반면에 즐거이 초대에 응할 대표들(에고로프, 마호프, 브루케르 같은 자들)은 대회에서 그들과 서로 투쟁한 후이기 때문에 소수파로서도 초대할 수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소수파는 기회주의자라는 부당한 비난에 대하여 심하게 불평하였다. 그러나, 소수파는 다음과 같은 불쾌한 사실을 무엇으로든 은폐해야 했던 것이다. , 당 기관 내에서의 셋플 근성, 논증에서의 기회주의, 당 사업에서의 속물 근성, 지식인적 나약함과 불안정성 등을 상수들 들고 옹호하면서 결속된 소수파를 형성하였던 자들은 대개의 경우, 이스크라파를 추종한 기회주의자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반이스크라파 자신들 이었다는 사실이다.

 

대회의 마지막에 결속된 다수파가 형성되었다는 매우 흥미로운 정치적 사실을 무엇으로 설명할 것이며, 왜 소수파는 모든 도전에도 불구하고 다수파의 성립 원인과 유래의 문제를 그렇게 매우, 매우 조심스럽게 회피하는가 하는 것은 다음 절에서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선 대회의 토론에 대한 분석을 끝내기로 하자.

 

중앙위원의 선거 중에, 마르토프 동지는 매우 특징적인 결의안을 제출하였으며(336), 나는 때대로 그것의 주요한 세 가지 특징을 세 수 결리는 외통 수라고 불렀다. 그 제안은 다음과 같다. 1) 개개의 후보자가 아니라 중앙위원의 후보자 명부에 일괄 투표한다. 2) 명부를 발표한 후, 두 번의 회의를 거치도록 한다(그 목적은 토론을 위함이 분명하다). 3) 절대 다수를 얻지 못한 경우에는 두 번째의 표절을 최종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이 절의안은 매우 신중하게 고안해 낸 전략으로서(우리는 상대방에 대해서도 공평해야 한다), 에고로 프 동지는 이 안에 동의하지 않았지만(337), 만약 분트피와 리보체에 절로파의 7명이 대회에서 퇴장하지 않았다(라면, 이 안은 마르토프의 완전한 승리를 가장 확실히 보장해 주었을 것이다. 이 전략이 나오게 된 이유는 이스크라소수파가 분트 및 브루케르는 그만두고라도 에고로프 일파 및 미총프 일파와도 직접 협정’(이스크라다수파 내에서 맺어졌던 것과 같은)을 맺지 않았고 또 맺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연맹 대회에서 마르토프 동지가, ‘기회주의자라는 부당한 비난은 그와 분트 사이의 직접 협정을 전제한 것이었다고 불평한 것을 생각해 보라. 반복하여 말하겠다, 이것은 공포에 빠진 마르토프 동지에게 그렇게 보인 것뿐이며, 에고로프 동지가 명부에 대한 일할 투표안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바로 그 사실은 (에고로프 동지는 아직 그의 원칙을 잃지 않았다민주주의적인 보장의 절대적 중요성을 평가하는 데서, 그로 하여금 골드블라트와 협력하게 만든 그 원칙) 심지어 에고로프와도 직접 협정은 문제가 될 수 없었다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에고로프 및 브루케르와의 연합은 있을 수 있었으며, 또 실제로 있었다. 이것은, 마르토프와 우리가 심각하게 충돌하여 아키모프와 그의 동료들이 덜 해로운 것을 선택해야 할 때면 언제나, 마르토프는 그들의 지지를 확신했다는 의미로서의 연합이다. 아키모프와 리베르 동지가 덜 해로운 것으로서, 이스크라의 목적 달성을 최대한 방해하는 것으로서(규약 제1조에 관한 아키모프의 연설과 마르토프에 대한 그의 기대를 보라), 중앙기관지의 6인조와 중앙위원회에 관한 마르토프의 명부에 확실히 투표하였으리라는 것은 조금도 의심할 바가 없었으며, 현재도 그러하다. 명부에 대한 일할 투표, 두 번의 회의를 거치는 것, 재투표 등은 직접 협정 없이 거의 기계적인 정확함으로 이러한 결과를 달성하려고 계획된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결속된 다수파가 여전히 결속된 다수파로 남아 있는 한, 마르토프 동지의 우회 수법은 지연체에 불과한 것이었으며, 우리는 그것을 거부해야 했다. 소수파는 이런 상황에 대한 그들의 불평을 성명서(341)에다 늘어놓았으며, 마르티노프와 아키모프의 모범을 본받아 선거가 시행될 때의 상황을 고려하여중앙위원회의 선거에서 투표를 거부하였다. 선거 때의 상황이 비정상적이었다는 이러한 불평(제임 상태, 31쪽을 보라), 대회 이후로 수백 명의 당 내 수다쟁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그 비정상이 도대체 어디에 있었는가? 비밀 투표에? 그러나 이것은 대회의 의사 규정(6, 의사록 11)에 미리 규정되어 있었으며, 따라서 그 안에서 위선이나 불공정을 찾으려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연약한 지식인의 눈에 피울로 보이는 결속된 다수파의 형성에 있었는가? 아니면 대회 전에 한 서약 대회의 모든 선거를 승인하겠다는 서약(38, 대회 규정 제18) 을 스스로 저버린 이들 존경할 만한 지식인들의 비정상적인 희망에 있었는가?

 

포포포 동지는 선거 당일, 대회에서 대회 사무국은 대표의 절반이 투표를 거부한 경우라도 대회의 결정은 유효하며 적법하다고 확신하는가?”* 하는 노골적인 질문으로 이 희망을 교묘히 비쳤다. 물론 사무국은 그렇게 확신하고 있다고 대답하였으며, 아키모프 동지와 마르티노프 동지의 사건을 상기시켰다. 마르토프 동지는 사무국에 동의하면서, 포포포 동지는 잘못되었고 대회의 결정들은 유효하다’(343)고 확실히 선언하였다. 당 앞에서 행한 이 선언과 대회 후의 행동 및 그의 제임 상태속에 있는 대회에서 이미 시작된 당의 반수의 빈틈”(20)이라는 문구를 비교함으로써 드러난 정치적 일관성 아마도 매우 정상적인 것이다 에 관해서는 이제 독자 스스로 판단하시라. 아키모프 동지가 마르토프 동지에게 건 기대가 마르토프 동지 자신의 허망하고 순진한 의도를 이겼다.

 

아키모프 동지! “당신이 승리했소

 

 

대회 말엽, 즉 대회의 선거 이후 시기의 몇 가지 특징들 사소해 보이나 실제로는 매우 중요한 , 현재 영원히 회비극적 의미를 가지게 된 제임 상태라는 문구가 얼마나 단순한 협박조의 말인가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마르토프 동지는 지금 이 회비극적 제임 상태라는 말로 큰 효과를 거두고 있으며, 그 자신이 고안한 이 허깨비는 소수파에 대한 다수파의 어떤 종류의 비정상적인 박해, 학대, 괴롭힘을 의미한다고 자기 자신과 자신의 독자들에게 진지하게 확신시키고 있다. 이제 곧 대회 후의 사태가 어떠했는가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대회의 마지막 부분까지 확인해 보면, 선거 이후 결속된 다수 파, 괴롭힘과 학대를 받아 학살당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소문난 불행한 마르 토프파를 박해하기는 커녕의 사목위원회의 세 자리 중 두 개를 친히(라이도프를 통하여) 그들에게 제공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354). 또 전술 및 그 밖의 문제에 관한 결의들(355쪽 및 그 이하)을 확인해 보라. 그러면 순수히 실무적인 방식으로 그 진가에 입각하여 이들 문제에 관한 심의가 진행되었다는 사실, 많은 결의서에 서명한 사람들 속에는 괴롭 같은 결속된 다수파의 대표들과 천대반고 모욕당한’ ‘소수파의 추종자들이 함께 포함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의사록, 355, 357, 363, 365, 367). 이것이 어떻게 활동으로부터의 배제괴롭힘과 비슷한 것이 되는가?

 

문제의 본질에 대해 유일하게 흥미를 끄는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너무 나 간단한 논쟁이, 자유주의자에 대한 스타트베르크의 결의안을 둘러싸고 일어났다. 이 결의안에 대한 서명(357, 358)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다수파의 지지자 세 명(브라운[스테파노의 가명 편집자], 오를로프[대회 후 소수파로 전환 편집자], 오시포프[젬라츠키의 가명 편집자])가 그 결의안과 플래하노프의 결의안 사이에 화해할 수 없는 모순이 있음을 인식하지 못한 채 양쪽 모두에 찬성 투표했기 때문에, 이것이 대회에서 채택되었다. 얼핏 보면 그 둘 사이에 화해할 수 없는 모순이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왜냐하면 플래하노프의 결의안(48)이 러시아의 부르주아 지유주의에 대한 원칙과 전술에 관하여 일반적인 원칙을 설정하고 명확한 태도를 개관한 것인 반면, 스타트베르크의 결의안은 자유주의적 혹은 자유민주주의적 경향들과의 일시적인 협정이 허용될 수 있는 구체적인 조건들을 규정하려고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두 결의안의 주제는 서로 다르다. 그러나 스타트베르크의 결의안은 정치적 모호성이라는 결함을 가지고 있으며, 이 때문에 사소하며 천박하다. 이것은 러시아 자유주의의 계급적 내용을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이 계급적 내용이 표현되는 일정한 정치적 경향들을 지적하고 있지 않으며, 이들 일정한 경향들에 대한 선진과 선동에서의 주요한 임무들을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설명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학생 운동과 오스보보즈제니에(49) 같은 서로 편이한 것을 혼동하여 (자체의 모호함 때문에), ‘일시적인 협정이 허용될 수 있는 세 개의 구체적 조건을 너무나도 자질구레하게, 결의론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여러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경우에도 역시 정치적 모호함은 결의론으로 귀착된다. 어떤 일반적 원칙도 없이 조건들을 열거하려는 시도는, 이러한 조건들을 자질구 레하게, 엄밀히 말하여 그릇되게 지적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스타로베르의 세 가지 조건을 살펴보자. 첫 번째 조건: ‘자유주의적 혹은 자유민주주의적 경향들은 반드시 그들이 전제 정부와의 투쟁에서 단호히 러시아사회민주당의 편 이 되겠다는 것을 명백히 그리고 확고하게 선언할 것.” 자유주의적 경향들과 자유민주주의적 경향들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결의안은 이 문제에 답할 아무 런 자료도 주지 않는다. 자유주의적 경향들은 부르주아의 정치적으로 가장 딜 진보적인 층의 입장을 대변하며, 자유민주주의적 경향들은 부르주아지 및 소부르주아지의 좀더 진보적인 층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닌가? 만일 그렇다면, 과연 스타로베르 동지는 부르주아지의 가장 딜 진보적인(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적인, 왜냐하면 그렇지 않고서는 자유주의에 관하여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층이 단호히 사회민주당의 편이 될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이것은 어리석은 것이며, 설령 이러한 경향의 대표자들이 이것 을 명백히 그리고 확고하게 선언한다고 하더라도(전혀 불가능한 가정이지만), 프롤레타리아트의 당인 우리는 그들의 선언을 신입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자유주의자가 되는 것과, 단호하게 사회민주당의 편이 되는 것 이 들은 양립할 수 없다.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은 경우를 가정해 보자. , ‘자유주의적 혹은 자유민주 주의적 경향들이 전제와의 투쟁에서 단호하게 사회혁명당의 편이 될 것이라 고 명백히, 확고하게 선언했다고 하자. 이러한 가정은 스타로베르 동지의 가정 보다 더 가능성이 있다(사회혁명당의 경향이 지닌 부르주아 민주주의적인 성 격 때문에). 그의 결의안에 따르면 그것의 모호성과 결의론 때문에, 이와 같은 경우에는 이러한 자유주의자들과의 일시적인 협정은 허용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스타로베르 동지의 결의안으로부터 불가피하게 도출되는 이 결론은 완 전히 잘못된 것이다. 일시적 협정은 사회혁명당과도 허용될 수 있으며(사회혁 명당에 대한 대회의 결의를 보라50)), 따라서 사회혁명당의 편에 서는 자유주 의자와도 허용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조건: 이들 경향은 자신들의 강령에 일반적인 민주주의의 이익 또는 노동자계급의 이익에 위배되거나 그들의 정치적 의식을 마비시키는 어떠한 요구 사항도 포함시키지 않을 것.” 여기에서도 똑같은 오류가 되풀이된다. , 노동자계급의 이익에 반대되거나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의식을 마비시키는 요구 사항을 자신들의 강령에 포함시키지 않았던 자유민주주의적 경향은 지금 까지 결코 없었으며 또 있을 수도 없다. 우리 나라의 자유민주주의적 경향들 중 가장 민주주의적인 분파의 하나인 사회혁명당조차도 자신들의 강령 모든 자유주의적 강령이 그렇듯이 혼란된 에 노동자계급의 이익에 반대되고 그들의 정치적 의식을 마비시키는 요구 사항을 제시하였다. 이 사실로부터 끌어내야 할 결론은 부르주아적 해방운동의 한계와 무력함에 대한 폭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지, 일시적 협정은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스타로베르 동지의 세 번째 조건’(자유민주주의자들은 자신들의 투쟁 슬로건으로 보통, 평등, 비밀, 직접 선거제를 내세울 것), 여기서 제기된 일반적인 형태로는 마찬가지로 옳지 못하다. , 제한 선거제 혹은 일반적으로 반쪽헌법을 슬로건으로 내거는 자유민주주의적 경향들과의 일시적이며 부분적인 협정은 어떤 경우에도 허용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면 이는 현명하지 못할 것이다. 사실 오스보보즈제니에적 경향은 이 범주에 적합할 것이다. 그러나 심지어 가장 소실한 자유주의자와도 일시적 협정을 맺는 것을 미리 금지함으로써 자신의 손을 읽매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원칙들과 상반된 정치적 근시일 것이다.

 

총괄: 마르토프 동지와 악셀로드 동지가 서명했던 스타로베르의 결의안은 오류이며, 따라서 제3차 대회는 그것을 폐기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그것은 이론적·진술적 입장에서 정치적 모호성이라는 결함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규정한 실제적인 조건들에서는 결의론에 빠져 있다. 그 결의안은 두 문제를 혼동하고 있다. , 1) 모든 자유민주주의적 경향의 반혁명적, 반르롤레타리아 트적특징을 폭로하고 이러한 특징과 투쟁할 필요. 2) 이들 경향 중 어떤 것과 일시적이며 부분적인 협정을 맺기 위한 조건들. 그 결의안은 제시해야 할 것(자유주의의 계급적 내용의 분석)을 제시하지 않고, 제시해서는 안 될 것 (‘조건들의 규정)을 제시하였다. 그러한 가능한 협정의 뚜렷한 상대로서 고려 할 대상조차 없을 때, 일시적 협정을 위한 상세한 조건들을 당 대회에서 작성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또 고려 중인 뚜렷한 상대가 있다 할지라도, 일시적 협정을 위한 조건들을 규정하는 일은, 대회가 사회혁명 당의 경향에 대하여 했던 것처럼(악셀로드 동지의 결의안의 끝부분을 플레하노프가 수정한 것을 보라.51) 의사록 363쪽과 15) 당 중앙기관들에 위임하는 것이 백 배나 더 합리적일 것이다.

 

플레하노프의 결의안에 대한 소수파의 반대로서, 마르토르 동지가 든 유일한 논거는 다음과 같다. , 플레하노르의 결의는 한 특정 문필가를 폭로해야 한다는 빈약한 결론으로 끝나고 있다.” 이것이아닐로 파리를 잡기 위해 도끼를 사용하는 격이 아닐까?(358) 이 논거는 빈약한 결론이라는 그림들한 문구로 자기 논거의 빈약함을 은폐하고 있는 바, 거창한 설교의 새로운 표본을 제공하고 있다. 첫째로, 플레하노르의 결의안은 부르주아적 해방운동이 그들의 한계성과 무력함을 나타내는 곳이라면 어디서든지, 이것을 프롤레타리아 트의 면전에서 생생하게 폭로하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주의력을 오직 스트루베에게, 오직 한 명의 자유주의자들에게 둘리고 있다는 마르토르 동지의 주장(연맹 대회에서, 의사록 88)은 완전히 잡고대 같은 말이다. 둘째로, 러시아 자유주의자들과의 일시적 협정의 가능성이 문제가 될 때 스트루베 씨를 파리에 비교한 것은, 기본적이며 자명한 정치적인 사실을 그렇듯한 문구의 희생양으로 만드는 것이다. 아니다, 스트루베 씨는 파리가 아니고 중요한 정치적 인물이며, 그것은 그가 개인적으로 위대한 인물이기 때문에 아니다, 비합법의 세계에서 러시아 자유주의 어느 정도 활동 능력이 있고 조직된 자유주의 의 유일한 대표자라는 그의 위치 때문이다. 따라서 러시아 자유주의자에 대하여, 또 그들에 대한 우리 당의 태도에 대하여 말하면서 바로 이 스트루베 씨와 오스보브즈제니예를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은, 말하기는 하지만 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아니면 혹시, 마르토르 동지는 비록 미약하나마 현재 오스보브즈제니예의 경향에 견줄 만한 자유주의적 혹은 자유민 주주의적 경향이 러시아에 있다는 것을 단 하나라도 우리에게 보여줄 것인가? 그의 이러한 시도를 지켜보는 것은 재미있을 것이다!

 

코스트로프 동지는 스트루베의 이름은 노동자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하면서 마르토프 동지를 지지했다. 나는 코스트로프 동지와 마르토프 동지가 노여워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이 논거는 완전히 아키모르 스타일이다. 이것은 프롤레타리아트라는 말이 소유적으로 쓰인 것에 대한 논리와 같다.[52]

 

스트루베의 이름(그리고 플레하노프 동지의 결의안에서 스트루베 씨와 함께 지적된 오스보브즈제너레라는 이름)아무런 의미도 없는노동자는 어떠한 노동자들이일까? 그들은 러시아 내의 자유주의적 및 자유민주주의적 경향들을 극히 조금밖에 알지 못하거나 전혀 알지 못하는 노동자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노동자들에 대한 우리 당 대회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러시아 내의 이 유일하게 명확한 자유주의적 경향을 노동자들에게 알려 주도록 당원들에게 지시할 것인가? 아니면 노동자들이 정치를 잘 알지 못한다고 해서 그들에게 익숙치 못한 이름을 언급하는 것은 피해야 하는 것일까? 만약 코스트로프 동지가 아키모르 동지의 발자국을 따라 한걸음을 내딛기는 했으나 다음 걸음을 내딛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는 전자의 의미로 이 문제에 답할 것이다. 그리고 전자의 의미로 이 문제에 답하자마자, 그는 자신의 논리가 얼마나 큰 거 없는 것이었던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어쨌든 플레하노프의 결의안에 있는 스트루베오스보브즈제너레라는 말은 스타로베르의 결의안에 있는 자유주의적 및 자유민주주의적 경향이라는 말보다 노동자들에게 이마 훨씬 더 가치 있을 것이다.

 

오늘날 러시아 노동자는 우리 나라 자유주의와의 정치적 경향들의 출현만 표현을 오스보브즈제너레를 통하지 않고도 도저히 알아낼 수 없다. 합법적인 자유주의적 문헌은 너무도 애매하기 때문에 이 목적에 부적합하다. 우리는 가능한 한 끈기 있게(또 가능한 한 가장 광범한 노동자 대중 속에서) 오스보브즈제너레의 신시들을 향해 우리의 비판이라는 무기를 겨우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장래 일어날 혁명의 순간에,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는 혁명의 민주주의적 성격을 축소하려는 오스보브즈제니에 신사들의 불가피한 시도를 무기라는 실질적 비판으로 마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반정부 운동과 혁명 운동을 우리가 지지하는문제에 관한 애고로프 동지의 당혹을 제외하면, 결의에 관한 토론은 거의 흥미롭지 못했다. 사실 토론도 거의 없었다.

 

 

대회의 결정들은 모든 당원에게 구속력을 가진다는 의장의 간단한 주의와 함께 대회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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