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1. 07.

 

매독의 여파

 

최근 한국, 일본, 대만 등지에서는 매독의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통계가 있다. 「건강과 질병」 통계에 따르면, 2024년에 최고치인 남자 2,177명(78.0%), 여자 613명(22.0%)로 측정되었으며, 현재에도 꾸준하게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무불별한 집단적 성관계, 선천적인 경향, 문신으로 인한 비위생적인 오염 기구 사용 등이 거론된다. 중요한 점은 이전에 언급한 성산업과의 연관성 역시 무관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성별 비율로만 환산되는 방식이 아닌 보다 세부적인 통계 분석을 요청한다. 그 이유는, 어떤 경우로든, 이러한 피임 기구의 한계만으로는 소위 말하는 안전한 성생활 역시 기대할 수 없다는 일각의 주장이 거론되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과 중국 등지에서는 이러한 피임 기구에 대한 사용이나 교육이 그 위상에 비해 부족하기에 통계상 더욱 심각하게 나타날 수 있다.  

 

반면, 에이즈 감염률은 월등히 낮아졌다. 「국내 에이즈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본래 90% 이상이 남성 비율에 해당했으나, 여성 감염은 신체적 특성상 감염률이 적다고 확인되며, 전반적으로 에이즈의 비율은 감소했다. 의외로 에이즈는 40대-70대 감염률이 상당하며, 50대 이하에서도 감염된다고 보고된다. 대체로 50세 이상의 남성 비율이 월등히 높기에 성관계에 대한 질병 예방 및 대책은 주 발생 지역 아프리카 (남부 및 동부) 지역에서도 전반적으로 감소하기는 했으나 잠재적인 질병률은 여전히 높다.  

 

추가로, 레닌의 사망 원인이 이 매독으로 오인되기도 했다. 주로 반소련 국가에서 내세웠던 해당 주장은 신경 매독으로 진단하기도 했으나, 그것은 그에게 투여된 의약품의 성분 중 일부였고, 실제로는 고도의 스트레스와 선천적인 성향으로 인한 뇌졸중 (뇌혈관 질환)으로 밝혀졌다. 그는 1918년 갑작스러운 피격 사건을 겪은 적도 있었다. 이는 건강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었으며, 이외에도 여러 요인이 존재했다. 와중에, 스탈린이 독극물을 사용 전력이 있다는 주장도 부각되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의혹으로만 남아 있다. 오히려 그는 일정 소화로 인해 자신을 가누기조차 힘들었다는 점을 밝힌다.  


이처럼, 매독은 무분별한 성관계의 이유로 발생하기도 하지만 선천적인 원인도 있으므로, 그 분간은 신중해야 할 것이다. 특히 20-30대에 활발하게 옮기는 질병이므로, 이러한 대책 관리 역시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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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1. 05. 


자본의 이면과 오락 및 유흥 산업의 여파

 

게임 산업을 필두로 한 오락 산업은 최근 부상하는 비생산적 노동의 주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는 예능과 유흥을 전담하는 오락 전반을 구성하며, 그중 일부는 성산업과도 깊은 연관성을 맺고 있다. 특히 일본이나 유럽 등에서 유입된 성산업의 표본을 합법화하려는 시도는 자본의 논리 이면에 여성을 비생산적 노동에 종속시키고, 물질적 생산만이 아니라 육체적 생산의 일부로 가담시키려는 잔재를 여실히 보여준다. 모든 오락 산업이 이와 직결되지는 않으나, 역사적으로는 군대의 인간 소모품으로 이용된 위안부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처럼 여성을 소비의 대상으로 삼는 경향은 뚜렷해진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특정 계급을 옹호하는 수준만이 아니라, 성별에 기반한 고정 관념과 편견을 재생산하며 사회적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차별적인 비속어 실태와 오남용은 오락 산업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다.  

 

한국은 기본적으로 오락과 유흥 소비가 매우 활발한 국가인 만큼, 그에 따른 부작용 역시 선명하게 나타난다. 오락 산업의 양적 발달에 비해 미성숙한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특정 인물에 대한 혹독한 비난이나 근거 없는 악담이 무분별하게 유포되는 실정이다. 여기서 특정 인물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인물은 인간으로 동등한 책임을 지녀야 하며, 비판 역시 그 책임의 범위 내에서 정당하게 다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히 집단 간 경쟁 구도를 형성하는 오락 분야에서는 특정 인물은 규칙 위반이 아닌, 외적인 선입견이나 편견으로 인해 배제되곤 한다. 이러한 배제가 누적될수록 해당 인물은 고립되며, 이는 종국적으로 사회적 집단 간의 심각한 괴리를 일으킨다. 

 

오락의 본래 취지가 동등한 인간들이 즐기는 순진무구한 놀이였다는 점을 상기할 때, 현재의 산업이 단순한 유흥과 폭력의 수단으로 전락하도록 방치할 수만은 없다. 특히 성산업은 신체적 가해나 특정 부위에 대한 집착을 다루며 놀이가 가진 폭력성을 극대화한다. 이는 범죄로 이어질 잠재성도 문제지만, 그보다 성산업 내에 밀착되어 고착된 자본의 연결 고리가 여성의 비생산적 노동 비중을 지속적으로 확대한다는 점이 더 본질적인 위협이다. 이러한 범죄 토양은 조직 내 구성원들의 태도와 직결되며, 여성의 신체를 자본의 소모품으로 간주하는 경향을 고착화시키고, 자본에 따른 비생산 분야의 여지를 더욱 확장시킨다. 

 

실제로 「2023-2024년 여성 실태 조사」에 따르면, 대다수의 여성 중에는 특정 상사로부터 직장 내 성폭력을 당했음에도, 여성의 75.2%가 적절한 대응 대신 인내를 선택하고 있다. 고용 형태별 성희롱 여부 또한 비정규직 (38.4%)과 정규직 (22.7%)보다 높게 측정된다. 주된 이유는 외모 평가, 성적 농담, 은근한 신체 접촉, 원치 않는 술자리 강요, 성적 요구, 상사의 고백 등과 같은 경우가 해당된다. 특정 여성에게 가해지는 이러한 신체적 · 정신적 모욕은 본질적으로, 여성들만의 연대로는 근본적으로 해소될 수 없다. 그것은 특정 이념이 내세우는 또 다른 한계에 해당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성별과 무관하게 군대 내 동성 간 성희롱이나 고인에 대한 모독 또는 특정 정치 집단에 대한 원색적인 조롱이 만연한 현실은, 이러한 왜곡된 시각을 가진 사회 구성원들이 현재의 오락과 유흥 산업을 주도하고 있을 여지를 시사한다. 

 

현재의 미미한 처벌 규정과 단속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소하기가 역부족이며, 오히려 문제를 학술적 개념 내에 가두는 원론적 담론 역시 실질적인 해결 노력을 방해한다. 또한 고도화된 오락 및 유흥 산업의 운영 및 관리 체계의 한계 역시 실태로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조기부터 실효성 있는 예방 교육을 수용하고, 이 산업에서 자본과의 유착 관계를 깊이 다룰 필요성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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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2. 25.


국가 정보원의 '공식적인' 별 하나가 질 때마다, 정부 기밀을 관장하는 관련 직업군 역시 존재한다. 그렇다고 애도할 생각은 없다. 그중에는 간첩 및 첩보 활동을 하거나, 이를 색출하는 긴밀한 군 당국과의 협약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처럼, 아직은 유산 계급이 승리한 세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외의 계급은 쉽게 통제된다. 

 

너무 단순한 논리라면, 지금도 국가 기관에 소속된 관련 학자나 인물들 역시 무관하지 않다. 어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자신들만의 이익에 기반이 되는 특정 사상을 주입하라는 지령 또한 받는다. 물론 이는 기밀로 전해질 것이다. 심지어 특정 규칙을 위반 시에는 지금도 의문의 죽음을 당할 소지가 있다. 단순히 사람들이 공작이나 음모라 부르는 일들이다. 그러나 사실로 밝혀지는 경우 또한 극히 드물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대체로는 특정 부문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기관에서 실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과연 어떤 정보를 얻고 싶어할까. 지금도 평양으로 올라가거나, 서울로 내려오는 이들이 서로 교환되어 포로로 잡히거나, 그곳에서 처형되고 있다면 늘 수집하는 정보보다 더 방대한 양의 국가의 기밀이란, 사실 지금도 국가가 없다고 선언할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밀고란 그런 것이다. 

 

지금은 사설 탐정의 직업이 어느 정도 세상에 알려졌지만, 어느 국가이든 투명한 사실보다 은폐된 비밀이 참 많은 것 같다. 그것이 단지 유산 계급을 위해 존재한다면, 지금은 기밀 유지란 사실 사생활 정도에 묻히는 수준이지만, 이보다 더한 대참사는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기만의 끝을 곧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곧 일어날 수 있는 계급 간의 전쟁 발단에도 큰 이유가 존재하는 법이다. 그렇다면 국가적 수준에서 지금껏 노동의 문제는 마찬가지로 일부분에 불과했을 수도 있겠다. 반대로, 그들은 과연 무엇을 놓치고 있을까. 

 

적어도, 부정직한 행위를 저지르고 단순히 고해로 끝나거나, 폐기(삭제) 하여 모든 일이 일소될 수 있다면 모두에게 평등한 사람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그것이 바로 여전히 유산 계급이 자신의 소일거리를 만들고, 그 외의 계급을 똑같이 배제하는 방식이므로,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수상할 수 있는 법이다.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독트린은 아니지만, 어쩌면, 영원한 비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철저한 기밀에도 해당되기 마련이다.       

 

※ 익명성에 기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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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2. 13.


십자군 원정과 현대 전쟁: 종교, 자본, 그리고 제국주의 대의명분

 

유럽 중세, 십자군 원정으로 촉발된 전쟁은 종교를 명분으로 만천하에 내세운 치열한 전투였다. 특정 명분을 의도적으로 내걸어 적국을 침략한 사례는 유럽 역사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인도를 중심으로 소국 간 분쟁이 발생하였으나, 유럽의 방대한 전쟁 역사만큼 거대한 침략의 서사를 보여주는 사례는 드물다. 이는 현대 전쟁의 발전이 유럽과 아메리카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일과 궤를 같이하며, 다음으로는 중동 문제가 거론될 수 있다.

 

종교는 전쟁과 평화 모두에 깊숙이 관여하였다. 평화적 타협과 동시에 전쟁 유발에 대한 화해 요청 및 협상 주도에 종교인의 역할이 컸다는 점이다. 그러나 함부로 종교적 대의에 가담하는 행위는 위험을 내포한다. 현대 전쟁의 책임이 지도자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점에 아연실색할 수 있지만, 지도자들은 ‘전용’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직업군을 모아 자신의 권력 도구 또는 자본의 기능으로 활용한다. 때로는 자본가와 협상하며, 강대국과의 상대적 의존 관계 속에서 절대적 지위를 군림하고자 한다. 정치인이 초기 실행을 옮기고, 투표권이 존재하는 한, 의도적 영토 침략의 명분을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제국주의는 완성된다. 식민지와 군국주의 문제는 그 일부에 불과하다.

 

누구나 태어난 곳이 있지만, 내전 등으로 인해 자국이 분단되거나 해체되어 소멸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전쟁의 반복 속에서 국민은 일부분에 불과하며 어떠한 요구도 표출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다. 이는 국가 기능의 막강한 역할이며, 집권 시 평화를 장담하기 쉬운 이유다. 평화적 진보 역시 압도적인 전력 차이로 인한 무너진 질서 속에 방치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실감하지 못한다면, 제국주의의 위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지금도 한반도를 둘러싼 공포를 초래하는 정치적 위력은 적에 대한 침략이나 의무적인 제도에 있을 수 있으나, 더 나아가, 그 단계에 개입하지 못하고 휘말리는 역할만 수행한 모든 국가 정부의 무력함에도 존재한다. 결국, 막강한 권력이 의도적으로 갈등을 유발하여 전쟁을 초래한다는 결말은, 실제로는 자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순환의 일부로 반복될 뿐이다. 그러한 점에서, 전 세계 국방부의 역사는 부패와 비리의 역사와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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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2. 04. 

 

계엄 이후 정치적 지형 변화

 

새 정부 출범 후 언론이 보도하는 지지율 70% 초과 현상은 그 산정 방식의 정치적 중립성에 의문을 남긴다. 혼재된 사안들을 다루는 현행 여론 조사 방식은 1980년대 시민 혁명 이후의 민주화 논의에서 크게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청산하는 일은 단순히 인식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주권자가 투표로 행사하는 정치적 한 표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최근에 계엄 사태 발생에 대해, 일부 인사들은 비민주적 절차나 독재에 대한 우려를 단순하게 주장한다. 그러나 현 민주주의 체제는 국민의 주권 행사인 투표 결과조차 온전히 신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정치적 지형에서는 정확한 경제 통계 산정 방식에 대한 지적마저 둔감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렇다면, 국민들이 과연 계엄 및 내란 사태의 전범 처벌보다 단순히 정권 교체만을 위해 선거를 치렀을까. 이번 사태는 예상되었던 반복에 불과하다. 그러나 평균적인 전수 조사 과정이나 지연 전략에서 드러나지만, 구조적 정치 지형 때문에 시민 의식만 높아지는 수준에 머무른다. 사태 발생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모두가 '민주주의'를 자축하는 결론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깊은 의문이 든다.  

 

매체의 발달로 정치 · 도덕적 문제를 지적하는 일은 이제 하나의 유희와 비슷해졌다. 이러한 지적은 계급이 다른 사람의 발언에 갇힐 위험이 생긴다. 현재의 높은 지지율 현상은 일부에게 축하할 일일 수 있지만, 계엄과 내란 사태, 그리고 그동안의 정치적 원수들에 대한 철저한 단죄를 요구하는 선택이기도 했다. 이처럼, 여론의 흔들림 속에서 그들이 말하는 '안정화'가 단순히 '정상화'를 의미한다면, 이는 이미 주권자를 저버린 행위와 다름없다. 경제적 분리가 심화되고 정치적 지형이 흔들리는 가운데 소비되는 '민주주의'에 대한 안심은 결국 국가 재정을 보호주의로 귀결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하지만 계급 문제와 계획 경제의 중요성 역시 대두됨에 따라 지금의 혼재된 방식으로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를 풀어낼 수 없다는 점은 나날이 경제 발달이 보여주는 지점에서 그 한계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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