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혁명

 

본문 제4장 3절은 1918년 12월 17일 이전에 쓰임.

페트로그라드에서 ‘삶과 앎’ 출판사가

단행본으로 1918년 출판.

모스크바-페트로그라드에서 ‘코뮌’ 출판사가

1919년 출판한 책을 참고하여 1917년에 쓰인 초고에 따라 번역.

 

초판 서문

 

국가문제는 현재 이론적인 면만이 아니라 실천적·정치적인 면에서도 특별한 중요성을 지닌다. 제국주의 전쟁은 독점자본주의에서 국가독점자본주의로의 이행 과정을 극도로 가속화하고 강화하였다. 국가는 막강한 자본가 동맹들과 갈수록 더 긴밀히 결합하여 근로대중에게 점점 더 엄청난 압제를 가하고 있다. 선진국들 — 그 전선(戰線)이 아니라 후방 — 은 노동자들을 가두어놓는 군사감옥으로 변해가고 있다.

 

장기간에 걸친 전쟁이 가져온 전대미문의 공포와 참혹함으로 인해 인민들의 처지는 더는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들의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다. 국제 사회주의 혁명의 분위기가 완연히 무르익고 있다. 이 점에서 국가와 혁명의 관계 문제가 실천적 중요성을 얻고 있는 것이다.

 

수십 년간 비교적 평화로운 발전기를 거치면서 축적되어 온 기회주의 요소들은 전 세계의 공식적 사회주의 정당들 내에 사회배외주의(Sozialchauvinismus)라는 지배적 조류를 탄생시켰다. 말로는 사회주의를 외치지만 실제로는 배외주의인 이러한 조류(러시아의 플레하노프 Plechanov, 포트레소프 Pottressow, 브레스콥스카아 Breschkowskaja, 루바노비치 Rubanowitsch, 그리고 다소 베일에 싸인 체레틸리 Zereteli와 체르노프 Tschernow 씨 및 그 일파, 독일의 사이데만 Scheidemann, 레긴 Legien, 다비트 David 및 여타 인물들, 프랑스와 벨기에의 르노텔 Renaudel, 게드 Guesde, 반데르벨드 Vandervelde, 영국의 헌드만 Hyndman과 페비안주의자[2] 등등)의 특징은 소위 ‘사회주의 지도자들’이 ‘자기네’ 나라 부르주아지의 이익뿐만 아니라 특히 ‘자기네’ 국가의 이익에 노예처럼 비열하게 순응하고 있는 데서 잘 드러난다. 이러한 순응의 배경은 이른바 열강들 대다수가 오랫동안 모든 약소민족을 착취하고 억압해왔다는 데 있다. 제국주의 전쟁은 이 같은 약탈품 분할이나 재분할을 둘러싸고 벌어진 전쟁이다. 부르주아지의 영향, 그 가운데 특히 제국주의적 부르주아지의 영향에서 벗어나려는 근로대중의 투쟁은 ‘국가’에 관한 기회주의적 편견에 맞선 투쟁 없이는 불가능하다.

 

여기에서는 먼저 국가에 관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이론을 살펴보고 그중 특히 망각되었거나 기회주의적으로 왜곡된 측면들을 상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그런 다음 이 왜곡의 주요한 대표자, 즉 제2인터내셔널(1889~1914)의 가장 잘 알려진 지도자이자 현 전쟁 기간 중에 비참한 파산을 맞이한 인물인 카를 카우츠키 Karl Kautsky를 특별히 다룰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1905년과 특히 1917년의 러시아 혁명 경험이 남긴 주요한 결과를 총괄해보겠다. 1917년의 혁명은 현재(1917년 8월 초) 그 첫 번째 발전 국면을 끝맺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 혁명 전체는 제국주의 전쟁이 야기한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혁명이라는 사슬의 한 고리로 파악될 때에만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혁명과 국가의 관계 문제는 실천적·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닐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족쇄에서 해방되기 위해 당장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대중에게 설명해주는 문제라는 점에서 매우 급박한 중요성을 갖는다.

 

1917년 8월

레닌

 

2판 서문

 

이 2판은 거의 아무런 수정 없이 출판되었다. 단지 제2장 3절이 덧붙여졌을 뿐이다.

 

1918년 12월 17일

모스크바에서 레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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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 선언』 이후의 불꽃


레닌, 『국가와 혁명』을 지금 시점에서 다시 읽고 있다. 1991년에 소비에트가 붕괴되었음에도, 그 대의와 의의가 여전히 남아 있다. 『이스크라』의 집필진들의 노력과 사회민주노동당, 그리고 공산당의 주역들이 현재까지 감행하고 있는 부르주아 국가 기구의 폐지는, 마르크스, 엥겔스, 그리고 레닌이 강조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가 주는 진정한 의미, 계엄 상태로 인한 파괴된 국가 기구를 지난 이후에, 프롤레타리아트 국가가 형성된 이후의 사멸되는 국가 체제에 대한 정당성에 힘을 실어준다. 


획기적이면서도, 이 유효함에 탄복할 수밖에 없다. 감추고 싶던 '혁명적 열망'이 가장 논증으로 전개된 저작이 바로 『국가와 혁명』이라는 점은 곧 제시할 본문을 참고한다면 이해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만큼 수준이 매우 높기도 하지만, 가장 명료하게 서술된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의 기초인 이유일 것이다. 결국, 이들은 부르주아 국가 기구의 한계를 앞서 파악하였고, 레닌과 볼셰비키는 이를 해내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게 된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게 된다. 대러시아, 아니 소비에트가 모든 나라에게 끼치고 있는 영향력은 아무리 부정해도 다다를 수 없는 고도의 경지와 같다.


노동 해방과 당에 대한 의견들도 종합해볼 수 있는 시간이다. 최종적인 지점에 서있지만, 각국의 진행 상황이 매우 엄청난 잠재력을 품고 있음을 알게 될 때조차, 이 국가와 혁명의 관계성은 우연적으로 시작하더라도, 결국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국가 권력의 탄생 이후로, 무산 계급 출신의 노동자가 전개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표현이자 현존하는 가장 큰 대항력, 그리고 그 유효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국가의 사멸이 비록 저절로 주어지지 않더라도, 혁명 조직은 더욱 기층부터 넓어지고 있으며, 그것은 단순히 민주적 요구에 머무르지도 않는다. 아니, 도약을 위한 실패까지 예상한 일이다. 


인간사의 기나긴 어두운 공백기를 지나 우리가 혁명을 움켜쥐려 했다면, 역사는 국가와 혁명이 우리에게 지금도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그 잠재적 부활에 첫 걸음을 알리게 되어 큰 영광이다. 아무리 생애가 노동으로 점칠되었다고 할지라도, 『이스크라』의 불꽃은 광야의 불씨가 되어 타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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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 Ⅸ

 

한 걸음 앞으로 두 걸음 뒤로1)

 

- 레닌이 로자 룩셈부르크에게 보내는 회답 -

 

『노이에 짜이트』 제42호, 43호에 게재된 로자 특설부르크 동지의 논문(「러시아 사회민주주의의 조직 문제」)은 우리 당 내의 위기에 관한 나의 러시아어 로 써어진 저서(「일보 전진 이보 후퇴」)를 비판한 것이다. 나는 독일 동지들이 우리 당의 문헌에 주의를 기울인 것과 그것을 독일 사회민주당에 소개하려고 시도한 것에 사의를 표하는 바이다. 그러나 나는 『노이에 짜이트』에 실린 로자 특설부르크의 논문이 내 저서와는 무관한 어떤 별개의 것을 독자에게 소개 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바, 이는 다음과 같은 예에서 명백히 보인다. 예를 들어, 특설부르크 동지는 내 저서에 ‘비타협적인 중앙집권주의’의 관점이 명백하고 상세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즉, 특설부르크 동지는 내가 어떤 조직 체계에 대항하여 뭔가 다른 조직 체계를 주장하고 있다고 간주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첫 페이지에서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이 저서 전체를 통하여 내가 옹호한 것은 어떠한 당 조직의 어떠한 체계에도 적합한 초보적인 원칙이다. 내 저서는 어떤 조직 체계와 다른 조직 체계 사이의 차이를 검토한 것이 아니고, 당의 사상을 견지하면서 임의의 체계가 유지되고 비판되고 교정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검토한 것이다. 또 특설부르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레닌의 개념에 따르면, 중앙위원회에 당의 모든 지방위원회를 조직할 전권이 부여된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 문제에 관한 나의 견해는 내가 제출된 당 조직 규약 초안으로 문헌상 증명할 수 있다. 이 초안에는 지방위원회를 조직할 권리에 관해서 한 마디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당 규약을 작성하기 위해 당 대회에서 선출된 소위원회가 이 권리를 당 규약 속에 삽입하였으며, 당 대회가 소위원회의 초안을 채택하였다. 이 소위원회에는 나와 당 대회 다수파의 지지자인 다른 한 명 외에, 당 대회 소수파의 대표 3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중앙위원회에 지방위원회를 조직할 권리를 부여한 이 소위원회는 나의 반대파에 의해 지배 되고 있었다. 록셉부르크 동지는 두 개의 상이한 사실을 혼동하고 있다. 첫째 로, 그녀는 나의 조직 초안을, 한편으로는 소위원회의 수정 초안과, 다른 한편 으로는 당 대회가 실제로 채택한 조직 규약과 혼동하였다. 둘째로, 그녀는 규 약의 특정한 조항의 특정한 요소에 대한 용호(이를 용호하는 데 내가 비타협 적이었다는 것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 왜냐하면 나는 소위원회가 가한 수정에 대해 전체 회의에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와, 당 대회가 채택한 규약은 차기 대회에서 변경될 때까지는 실행되어야 한다는 명제(정말로 ‘초중 압집권주의적인’ 명제 아닌가?)에 대한 용호를 혼동하였다. 실제로 나는 이 명 제(독자가 쉽게 알아챈 수 있듯이 ‘순불량주의적인’)를 내 저서에서 아주 ‘비 타협적으로’ 용호하였다. 록셉부르크 동지는 내가 “중앙위원회가 당의 유일한 실질적 중해이다”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이는 사실이 아니다. 나는 결코 이러한 의견을 용호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반대파(제2차 당 대회의 소수파)는 그들의 인쇄물을 통해, 내가 중앙위원회의 독립성, 자주 성을 충분히 주장하지 않았고 중앙위원회를 해외에 있는 중앙기관지 편집국과 당 평의회에 너무 종속시켰다고 나를 비난하였다. 나는 이 비난에 대해 나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즉, 당의 다수파가 당 평의회에서 우세했을 때에 당 평의회는 전혀 중앙위원회의 자주성을 제한하려는 시도를 행하지 않았지만, 당 평의회가 소수파에 의해 장악되어 그들의 무기가 되어 버리자 즉 시 이러한 일이 일어났다고 답하였다. 록셉부르크 동지는 러시아 사회민주당 내에서 통합된 당의 필요성에 대해 두 개의 서로 다른 의견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모든 논쟁은 중앙집권회의 크기라는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만약 록셉부르크 동지가 다수파를 형성한 당의 여러 지방위원회의 결의안을 조사하려고 노력했다면, 그녀는 우리 사이의 논쟁이 주로 중앙위원회와 중앙기관지가 당 대회의 다수파의 경향을 대표해야 하는가 아닌가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져 온 것임을 쉽게 이해했을 것이다 (이것도 나의 저서에 명백히 제시되어 있다). 이 ‘초중앙집권주의적인’, ‘순불량 키주의적인’ 요구에 관해서 경애하는 동지는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오히려 부분이 전체에 기계적으로 복종한다든가, 노예적인 순종이라는, 맹복적인 복 종이라는 동등과 같은 여타의 허가비들이 대해 비난하기를 더 좋아한다. 나는 노예적인 순종이 당에 아주 해롭다는 심오한 사상을 설명해 준 것에 대해 록셈부르크 동지에게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그러나 나는 다음의 사항을 알고 싶다. 즉, 당 중앙기관 내에서 당 대회의 소수파가 우세를 점하려고 한 것을 동지는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 그녀는 이 같은 일을 상상할 수 있는가? — 그러한 것을 어떠한 당에서도 본 적이 있는가? 록셈부르크 동지는, 내가 러시아에서는 극단적으로 중앙집권화된 커다란 노동자당을 조직하기 위한 모든 조건이 이미 갖추어져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양 말하였다. 역시 이것도 사실이 아니다. 나는 나의 저서 어디에서도 이러한 생각을 옹호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러한 생각을 서술한 적도 없다. 내가 내세운 명제는 다른 것을 표현했으며, 현재도 그러하다. 즉, 나는 당 대회의 결정들이 지켜지기 위한 모든 조건은 이미 존재하고 있으며, 당 기관이 사적인 써클의 음모에 의해 교체될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갔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나는 우리 당 내의 몇몇 학자가 자신들의 비철저성, 동요성을 적나러하게 드러냈다는 것,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무규율성에 대한 책임을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의 탓으로 들릴 권리가 전혀 없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러시아 노동자는 다양한 기회를 통해 당 대회의 결정들을 준수하려는 의지를 이미 여러 번 표명해 왔다. 록셈부르크 동지가 이러한 의견을 ‘납관적인 것’(오히려 ‘비관적인 것’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이라 선언하면서도, 나의 명제가 사실상 기초하고 있는 근거에 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참으로 우스봉스러운 일이다. 록셈부르크 동지는 내가 공장의 교육적 의의를 찬미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내가 당을 공장과 같은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주장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나의 반대파였다. 나는 그를 몹시 조소하였으며, 그 자신의 말로써 그가 공장 규율의 상이한 두 가지 측면을 혼동하고 있음을 증명했던 것인 바, 유감스럽게도 록셈부르크 동지 역시 이러한 혼동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록셈부르크 동지는, 내가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란 계급의식을 지닌 노동자 조직과 결합된 자코뱅주의자라고 규정함으로써 나의 반대파 중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을 만큼 기지에 찬 방법으로 나의 관점을 특징지었다고 말한다. 이것 역시 사실과 다르다. 자코뱅주의를 처음으로 운운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악별로드었다. 악별로드가 최초로 우리 당의 경향성을 프랑스 대형명 때의 경향성과 비교했다. 나는, 이러한 비교는 현금의 사회민주주의를 혁명파와 기획주의과로 구분하는 것이 산악파와 자동드파의 구분과 어느 정도 대응하고 있다는 의미에서만 인정될 수 있다고 했을 뿐이다. 이러한 비교는 당 대회에 의해 승인된 구"이스크라"가 자주 인용했다. 구"이스크라"는 바로 이러한 구분을 인정했기 때문에 우리 당의 기획주의적 진영, 즉 구"라보체에 젤로"의 경향과 투쟁할 수 있었다. 이 경우 특별부르크는, 18세기나 20세기의 두 가지 혁명적 유과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과 이를 유래를 동일시한다는 것을 혼동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움프라우에 대한 사이테그(스위스의 산 이름 — 옮긴이)의 관계는 마치 사증집에 대한 이충집의 관계와 같다고 말한다고 해서, 이것이 사증집과 움프라우를 동일시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특별부르크 동지의 사이에는 우리 당의 서로 다른 여러 경향에 대한 실제적 분석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명백히 우리 당 대회의 의사록에 기초하여 이러한 분석을 행하는 일에 나의 저서의 대반을 할애하였으며, 서문에서 이에 대해 각 별한 주의를 촉구하였다. 특별부르크는 우리 당의 현상에 대해 서술하려고 하면서도 우리 당 대회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당 대회야말로 우리 당의 진정한 토대를 마련한 것이었다. 특별부르크의 행동은 분별없는 것이라 고 간주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내가 나의 저서에서, 나의 반대파들은 우리 당 대회를 무시하고 있으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들의 모든 주장은 사실적 근거를 완전히 결여하고 있다고 수백 번이나 지적하고 있기에 특히 그러하다.

 

바로 이와 동일한 근본적 오류를 특별부르크 동지도 저지르고 있다. 그녀는 그 구체적인 의미를 명백하게 파악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완전한 헛소리를 반복할 뿐이다. 그녀는 논쟁의 현실적인 논거를 연구하지 않은 채 여러 가지 허가비만을 제시할 뿐이다. 그녀는, 내가 진부한 말, 모두가 익히 이는 원칙 및 개념과 당연한 진리를 주장했다고 하면서, 완전히 구체적인 사실들에 기초한 상대적 진리 — 나는 이러한 상대적 진리만을 다루고 있었다 — 에 관해서는 완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녀는 내가 판에 박혔다는 불평을 하면서, 그 근거로 마르크스의 변증법을 끌어내고 있다. 그러나 존경하는 이 동지의 논문이야말로 머리로만 생각해 낸 판에 박한 것에 불과하며, 변증법의 가나다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이 가나다는, 추상적인 진리라는 것은 조금도 없으며 진리는 항상 구체적이라고 주장한다. 록셉부르크 동 지는 우리 당 내 투쟁의 구체적인 사실들은 거만하게 무시하면서, 진지하게 논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판대하게 열번을 토하고 있다. 록셉부르크 동 지의 두 번째 논문에서 마지막 일해 하나를 들어 보겠다. 그녀는 조직 규약의 이러지러한 정식은 기회주의에 대해 어느 정도 예리한 투쟁의 무기가 될 것이 라는 나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내가 나의 저서에서 주장했고, 또 우리 모두가 당 대회에서 토론했던 것은 어떠한 정식화에 대해서였던가에 관해 록셉부르크 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어떠한 논쟁이 당 대회에서 행해졌는가? 누구에게 반대하여 나의 명제를 밑고 나아갔는가? 이러한 것에 대해 이 동지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그녀는 의회제도가 존재하는 나라의 …… 기회주 의에 대한 하나의 완전한 강연을 나에게 들려 주었다!! 그러나 러시아에서의 모든 특수하고 독특한 변종에 대해서, 또 이곳에서 이 기회주의가 취하고 있 는 ─ 나의 저서에서 논하고 있는 ─ 다양한 색채에 대해서는 그녀의 논문 속 에서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이상의 모든 극히 기지에 찬 논의의 결론은 다 음과 같다. 즉, “당 규약은 그 자체로는”(??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사람이 있는가) 기회주의에 반격을 가하기 위한 하나의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 라, 다만 실제로 존재하는 혁명적이고 프롤레타리아적인 당 내 다수파의 지도 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외적 수단으로만 될 수 있다. 완전히 옳다. 그러나 우리 당의 실제로 존재하는 다수파는 어떻게 하여 형성되었는가에 대해 록셉 부르크는 일을 다룰고 있으며, 반대로 나는 바로 이 문제에 대해서 나의 저서 에서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다. 나와 플레하노르가 이 외적 수단의 도움을 빌 려 어떠한 영향력을 수호했는가에 대해서도 그녀는 일을 다룰고 있다. 나는 나 스스로 전혀 어디에서도, 그런 무의미한 말, 즉 당 규약은 ‘그 자체’로 무기 라는 난센스를 말한 적이 없다고 천연하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나의 견해의 이러한 해석법에 대한 가장 올바른 담은 우리 당 내 투쟁의 구체적인 사실들을 서술하는 것이라. 그렇게 하면 구체적인 사실들에 대한 록셉부르크 동지의 진부한 말과 란에 박한 추상론이 얼마나 해로운가가 누구에게라도 명백해질 것이다.

 

우리 당은 1898년 봄 러시아에서 개최된, 몇몇 국내 조직의 대표자 대회 에서 창립되었다. 당은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이라고 명명되었다. 『라브차야 가제 타』가 중앙기관지가 되었고, 러시아사회민주주의자해외동맹이 당의 해외 대표가 되었다. 대회 후 곧 당 중앙위원회가 체포되었다. 『라보차야 가제타』는 제2호 이후 발행을 정지해야만 했다. 이들 지방위원회 사이의 유일한 결함은 사상적인, 순전히 정신적인 결함이었다. 의견의 불일치, 동요, 분열의 시기가 또다시 도래했음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서유럽의 당들에 비해 우리 당내에 훨씬 커다란 비율을 점하고 있던 인텔리젠자는 최신 유행품으로서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해 있었다. 유행은 한편으로는 부르주야적 마르크스 비판에 대한 노예적인 숭배, 다른 한편으로는 순전히 조합주의적인 노동운동(파업주의 - 경제주의)에 매우 급속히 자리를 넘겨주었다. 인텔리젠자적 - 기회주의 적 경향과 프롤레타리아적 - 혁명적 경향 간의 의견 차이는 해외동맹의 분열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신문 『라보차야 미술』과 해외 잠지 『라보체에 젤로』(후자는 조금 덜했다)는 경제주의의 대표자가 되어 정치투쟁의 중요성을 격하시키고, 러시아에서의 부르주야 민주주의적 요소의 존재를 부정하였다. 스트루베 씨, 루칸 바라노프스키 씨, 불가코프 씨, 베르자에프 씨 기타 동등의 ‘합법적’ 마르크스 비판가는 모든 것을 우경화시켰다. 유럽의 어느 곳에서도 우리 러시아의 경우처럼 베른슈타인주의가 아주 급속하게 그 논리적 규격로서 자유주의적 분파의 형성에 도달한 경우를 우리는 발견할 수 없다. 우리 나라에서는 스트루베 씨가 베른슈타인주의의 이름으로 ‘비판’에서 시작하여, 유럽적 의미에서 자유주의적인 자유주의 잠지』(오스보보즈제니에)를 창간하기에 이르렀다. 해외동맹에서 탈퇴한 플레하노프와 그의 동지들은 『이스크라』와 『자리아』의 창간자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이 두 개의 정기 간행물(이에 대해서는 특별 부르크 동지도 얼마간 들은 바 있다)은 당의 기회주의적 진영에 대해 ‘3년간 에 걸친 영웅적인 전투’, 사회민주주의적 ‘지통드파’에 대한 사회민주주의적 ‘신약파’(이들 표현은 구』이스크라』가 사용한 것이다)의 투쟁, 『라보체에 젤로』(크리체프스키 동지, 아키모프 동지, 마르티노프 동지 등) 및 유대인 분트와 그리고 이 경향을 열렬히 신봉하는 국내 조직들에 대한(특히, 페테르스부르그 의 사이비 ‘노동자 조직’과 보로네즈 위원회에 대한) 투쟁을 수행하였다.

 

위원회들 사이의 순수한 사상적 결합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것이 점차 명료하게 되어 있다. 진실로 결속된 당을 형성할 필요, 즉 1898년에는 단지 정후 만을 보였을 뿐이었던 작업을 수행할 필요를 점점 더 통감하게 되었다. 마침 내 1902년말에 제2차 당 대회를 소집할 임무를 띤 조직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주로 『이스크라』의 국내 조직에 의해 결성된 이 조직위원회에는 유대인 분트의 대표 역시 참가하였다. 1903년 가을 드디어 제2차 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는 한편으로는 당의 형식상의 통합, 다른 한편으로는 ‘다수파’와 ‘소수파’로의 분열로 끝났다. 이러한 구분은 당 대회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당 대회에서 일어난 투쟁의 상세한 분석만이 분열의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소수파의 지지자(록셈부르크 동지를 포함한)는 이 분석을 조심스럽게 피하고 있다.

 

록셈부르크 동지가 이상과 같은 독특한 방식으로 독일의 독자에게 소개한 나의 저서는 100페이지 이상을 대회 의사록(약 400페이지로 이루어져 있다)의 자세한 고찰에 할애하고 있다. 이 분석의 결과 나는 대표, 엄밀하게 말하자면 표를(우리 중에는 1표를 가진 대표와 2표를 가진 대표가 있었다) 다음의 네 가지 기본적인 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즉, 1) 『이스크라』 다수파(구』이스크라』 경향의 지지자) - 24표, 2) 『이스크라』 소수파 - 9표, 3) 중앙파(조소하는 의미로 ‘놀지’파라고도 불린다) - 10표, 4) 반』이스크라』 파 - 8표, 합계 51표이다. 나는 당 대회에서 행해진 모든 표결에서 이들 그룹의 역할을 분석하여, (경향, 전술, 조직상의) 모든 문제에 대해서 당 대회는 『이스크라』 파와 반』이 스크라』 파의 투쟁의 무대였다는 것, 그 속에서 ‘놀지’파는 많은 동요를 일으켰다는 것을 입증했다. 조금이라도 우리 당의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럴 수밖에 없었음을 반드시 알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소수파의 지지자는 모두 (록셈부르크 동지도 포함하여) 이 투쟁에 대해 적당히 눈을 감아 버린다. 왜? 이 투쟁이야말로 소수파가 현재 갖고 있는 정치적 입장의 허위성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수십 가지의 문제에 관한, 수십 번의 표결이 행해질 때마다 당 대회에서 일어난 이 투쟁을 통하여, 『이스크라』 파는 끊임없이 반』이스크라』 파와 ‘놀지’파에 대하여 투쟁하였다. ‘놀지’파는 심의되는 문제가 구체적으로 되면 될수록, 이 문제가 사회민주주의적 활동의 기본적인 의미를 적극적으로 규정하면 할수록, 또 그것이 구』이스크라』 파의 확고부동한 계획을 현실적으로 실현하는 데 이로우면 이로울수록 점점 더 단호하게 반』이스크라』 파의 편에 있다. 반』이스크라』 파(특히 아키모프 동지와 항상 그에 동조하였던 페테르스부르그 ‘노동자 조직’의 대표인 브루케르 동지 및 거의 늘상 동조하였던 마르티 노르 동지와 유대인 분트의 5명의 대표)는 구』이스크라』 파의 경향을 승인하는 것에 반대하였다. 그들은 종래의 사적 조직을 옹호하였으며, 그것을 당에 종속시키는 것에 반대표를 던졌고, 당과 그것들을 융합시키는 것에 반대표를 던졌다(조직위원회 사건, ‘높지’파의 가장 중요한 그룹인 『유즈니 라보치』 그룹의 해산 등등). 그들은 중앙집권주의의 취지로 작성된 조직 규약에 대항하여 투 쟁했는데(대회의 제14회 회의), 그때 그들은 ‘조직원 불신’, ‘비상 입법’, 그리고 그 밖의 위협적인 조치를 실시하고 싶어한다고 『이스크라』파 전원을 비난하였 다. 『이스크라』파 전원은 당시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를 조소하였다. 록셉부르 크 동자가 현재, 이러한 날조된 비난을 진실로 수강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 한 일이다. 대회 초반에 『이스크라』파는 압도적인 다수로 승리를 거두었다. 그 들은 대회에서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그것은 상술한 숫자를 보면 명백히 판 명된다. 그러나 대회의 후반에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원칙적인 문제들을 결정 할 때 반『이스크라』파가 승리하였다——약간의 『이스크라』파가 그들에게 동조 하여 투표했다. 예를 들어 우리의 강령 중 모든 언어의 평등이라는 문제에 대 해서 이런 일이 발생하였다. 이 문제에서 반『이스크라』파는 강령위원회를 패 배시키고 자신의 정식을 통과시키는 것에 거의 성공하였다. 규약 제1조의 문 제에 대해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서, 반『이스크라』파는 ‘높지’파와 함께 마르 토프의 정식을 통과시켰다. 이 정식에 따르면 조직의 소속원만이 당원으로 간 주되는 것(나와 플레하노프는 이러한 정식을 옹호하였다)이 아니라, 당 조직의 통제 하에 활동하는 모든 사람이 당원으로 간주된다.*

 

중앙위원회와 중앙기관지 편집국의 선거 문제에 대해서도 동일한 현상이 일어났다. 24명의 『이스크라』파는 결속된 다수파를 형성하였다. 그들은 편집국 을 쇄신하려는 훨씬 전부터 준비해 왔던 계획을 통과시켰다. 그러하여 6명의 구편집국원 중에서 3명이 선출되었다. 소수파가 된 것은 9명의 『이스크라』파, ‘중간’파의 10명, 1명의 반『이스크라』파(그 밖의 반『이스크라』파——유태인 분 트와 『라보체에 젤로』의 대표인 7명의 반『이스크라』파——는 이미 그 이전에 대회에서 퇴장하였다)였다. 이 소수파는 그 밖의 선거에 참가하는 것을 거부 한다고 결의했을 정도로 이 선거에 불만스러워했다. 카우츠키 동지가 편집국 쇄신 (해산)을 이후 투쟁의 주요 원인으로 말한 것은 매우 올바르다. 그러나 내가(원문 그대로!) 3인의 동지를 편집국에서 ‘축출’하였다는 그의 견해는 그가 우리 대회에 대해 완전히 무지했다는 탓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첫째, 선출하지 않는 것은 축출한다는 것과 전혀 동일하지 않다. 그리고 물론 나는 누구도 축출할 권리를 대회에서 가지고 있지 못했다. 둘째, 카우츠키 동지는, 반『이스크라』과, ‘중간’과 및 약간의 『이스크라』 지지자가 연합했다는 사실 또한 정치적 암시를 지니며 선거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 대회에서 일어난 일을 고의적으로 외면하려고 하지 않는 한, 다수파와 소수파라는 우리의 새로운 구분이 프롤레타리아적 - 혁명적 진영과 인텔리겐차적 - 기회주의적 진영으로의 우리 당의 종래의 구분의 변형에 불과하다는 것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어떠한 해석으로도 어떠한 조소로도 회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유감스럽게도 대회 후에 이 분열에 관계된 원칙들은, 충원 문제에 관한 알렉 때문에 모호하게 되어 버렸다. 즉, 소수파는 세 명의 구편집국원이 다시 충원되지 않는다면 중앙기관의 통제 하에 활동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이 투쟁은 2개월간 계속되었다. 투쟁 수단이 된 것은 보이콧과 당의 교란이었다. 12개의 위원회(이것에 대하여 의견을 나타낸 14개의 위원회 중)는 이 투쟁 방법을 격렬하게 비난하였다. 소수파는, 자신들의 입장을 『이스크라』 지상에서 제기하라는 우리의(나와 플레하노프가 제기한) 제안까지도 거절하였다. 해외연맹 대회에서 사태는 중앙기관의 성원들이 개인적인 모욕과 매도(전제군주, 관료주의 자, 헌병, 거짓말쟁이 등등)를 뒤집어놓고 정도로까지 되었다. 그들은 개개의 발의를 억압했으며 노예적 순종과 맹목적 복종을 실시하려고 확대하였다는 등으로 비난받았다. 소수파의 이러한 투쟁 방법을 무정부주의적인 것으로 규정지 어려고 한 플레하노프의 시도는 목적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 대회 후, 플레하노프는 나에게 예봉을 돌려 획기적인 논문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가?』(『이스 크라』 제52호에 게재)를 발표하였다. 이 논문에서 그는 수정주의와의 투쟁이 반드시 수정주의자에 대한 투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였다. 그의 이 말이 우리의 소수파를 지칭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라도 명백하게 보였다. 게다가 그는, 러시아의 혁명가 속에 극히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는 무정부주의적 개인주의와는 경우에 따라서는 투쟁하지 않아야 하며, 어느 정도의 양보를 하는 것이 경우에 따라서는 이 개인주의를 가라앉혀 분열을 피하는 최상의 수단이라고까지 말하였다. 이러한 전해에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편집국에서 탈퇴하였다. 그리고 소수파의 편집국원이 충원되었다. 그 후 중앙위원회에 대한 충원을 들려낸 투쟁이 이어졌다. 중앙기관지를 소수파의 손에 남겨 두고, 중앙위원회는 다수파의 손에 남겨 두자는 조건으로 화해하려고 한 나의 제안은 거부되었다. 투쟁은 계속되어 그들은 판료주의, 초중앙집권주의, 형식주의, 자코뱅주의, 슈바이처주의(바로 내가 러시아의 슈바이처로 불렀다), 그 밖의 허케비들에 대해 ‘원칙적으로’ 투쟁했다. 나는 나의 저서에서 이러한 비난 모두를 조소하며, 이것은 단순한 충원상의 알렉이든가, 아니면(이것을 조건부로 ‘원칙적인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면) 기회주의적, 지통드주의적인 빈발에 불과하다고 지적하였다. 현재의 소수파는 우리 대회에서 아키모프 동지와 그 밖에 자라가 공인하는 기회주의자들이, 구』이스크라』의 지지자 전원이 옹호한 중앙집권주의에 반대하여 주장했던 것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국내의 위원회들은 중앙기관지가 사적 써클의 기관, 충원상의 알렉과 당에 대한 협당의 기관으로 변한 것에 분기하였다. 더할 나위 없이 혹독한 비난을 표현한 많은 결의가 채택되었다. 이미 상술한 페테르스부르그 ‘노동자 조직’과 보로네즈 위원회(이 두 조직 모두는 아키모프 동지 경향의 지지자이다)만이 신』이스크라』의 경향에 대해 원칙적으로 만족의 뜻을 표명하였다. 제3차 대회의 소집을 요구하는 소리는 점점 더 높아졌다.

 

우리의 당 내 투쟁의 기초 자료를 연구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독자라면, ‘초중앙집권주의’에 관한, 그리고 점진적인 중앙집권회의 필요성 등에 관한 록셉부르크 동지의 의견은 구체적, 실천적으로는 우리 대회에 대한 조소이며 또 주상적, 이론적으로는(만일 여기에서 이론 운율할 수 있다면) 마르크 스주의의 명백한 속류화이며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의 왜곡이라는 것 등을 쉽게 이해할 것이다.

 

우리 당 내 투쟁의 최근 국면은, 다수파의 성원들이 일부는 중앙위원회에서 배제되었고, 일부는 체포되어 유명무실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는 사실에 의해 특정지어진다(이러한 사태가 발생했던 것은 중앙위원회의 구성상의 변동4)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 평의회(구편집국원이 충원된 후에는 역시 소수파의 수중에 떨어졌다)와 현 중앙위원회는 제3차 대회 소집을 위한 모든 선동을 비난하며, 몇 명의 소수파 위원과의 개인적 협정과 교섭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대회 소집을 위한 선동이라는 범죄를 감히 저지른 — 예를 들어 중앙위원회의 수임자(위임대표)단과 같은 — 조직은 해산되었다.5) 당 평의회와 신중양위원회의 제3차 대회 소집 반대투쟁은 모든 전선에 걸쳐 선언되었다. 다수파는 이에 대해 ‘보나파르트주의를 타도하자!’(이것은 다수파를 대표하여 발언하고 있는 갈로르키6) 동지의 소책자 제목이다)라는 슬로건으로 대응하였다. 대회의 소집에 반대하는 투쟁을 행하고 있는 당 기관들을 반당적이고 보나파르트주의 적이라고 선언한 결의의 수는 점점 더 증가해 가고 있다. 초중앙집권주의 반대, 자치제 찬성이라는 소수파의 모든 논의가 얼마나 위선적인가는 나와 한 동지가 계획한 다수파의 새로운 출판소7(상술한 갈로르키 동지의 소책자와 그 밖의 약간의 소책자가 이 곳에서 인쇄되었다)가 당의 밖에 있는 것으로 선언된 것에서 명백히 판명된다. 새로운 출판소는 다수파에게 자신의 견해를 선전할 유일할 가능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이스크라』의 지면은 다수파에게는 거의 폐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림에도 불구하고, 더욱 정확히 말하면 바로 그 때문에, 당 평의회는 우리의 출판소가 어떤 당 조직에 의해서도 권한을 부여받지 못했다는 순전히 형식적인 이유로 위와 같은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제2차 대회의 모든 결정, 모든 선거가 휴지조각으로 되어 버렸기 때문에, 또 당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당 기관들이 행하고 있는, 제3차 대회 소집에 반대하는 투쟁의 결과로서 적극적 활동이 얼마나 많이 중도에서 내방개척했는 가, 사회민주당의 위신이 얼마나 땅에 떨어지게 되었는가, 전당의 사기가 얼마나 저하되고 있는가는 거의 말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이다.

 

1904년 9월 하순에 집필.

1930년『레닌 전집』15권에 처음 발표.

독일어에서 러시아어로 번역.

원고에 따라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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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 Ⅷ

 

전진인가 후퇴인가

 

레닌의 『일보 전진 이보 후퇴』에 대한 반론의 글 (『이스크라』 제69호, 1904년 7월 10일).

 

I. 마르토프

 

‘볼셰비키’에 의해서 특정한 의미로 해석되는 규약을 제2차 대회에서 스스로 제정한 조직은 서유럽의 기준에서 보면 단지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지도자의 조직에 불과한 것이며 투쟁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조직은 아니다. 우리 당은 아직 단지 관념적으로만 노동자의 당이며 당 조직(위원회)의 주요 구성원은 그렇지 못하고 조직 성원 중 노동자의 비율은 매우 적다. 이 조직은 그 창립 초기부터 프롤레타리아적 분자와 인텔리전처적 분자의 비율을 전자에 더욱 유리하도록 바꾸기 위해 여러 방책을 시도해 왔다. 그러나 현재까지 그것은 실패 했다. 그리고 그것이 성공하지 못한 것은 새로이 입당시킬 적격 분자를 발굴 해내는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발전 과정이 사회민주당의 신병(新兵) 을 창출하는 민주주의적 인텔리전처의 혁명화 과정으로 추구되었기 때문이다. ‘경제주의’의 시대 이후 우리 당 조직의 대중에 대한 영향은 증대했다고 하지 만 인적 구성 면에서 보면 우리 당 조직의 성격은 — 상대적으로는 — 한층 더 ‘인텔리전처적’으로 되었다. 그리고 이 인텔리전처 우월적인 성격은 ①이스크라 1 시대부터 분명히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그 당시 운동의 혁명적 프롤레타리 아적 원리와 그에 적합한 운동의 조직 형태를 둘러싼 투쟁에서 우리는 우리의 위원회에 대항하여 운동이 혁명적 계급투쟁의 방향으로 발전하는 데에 방해가 되었다. 자연발생적인 ‘순수한 노동자의’ 제조직과 충돌했다. 위원회에 비하여 그 조직 방법, 활동 내용 등에서 뒤쳐졌던 이들 ‘광범한 노동자 조직’은 위원회 에 자리를 양보해야 했고 무대에서 시라졌다. 이 ‘광범한 노동자 조직’의 배제 는 당시 ①이스크라 2과의 대다수 생각으로는 결코 당 조직의 인텔리전처 우월 적 성격의 강화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 반대로 ‘민주적’ 조직과의 투쟁 시기에 예정하고 있었던 것은 다음과 같은 같다. 즉 ‘민주적’ 제조자의 무규율성이 라든가 ‘인텔리전처적’ 위원회와 노동자 제세를의 책임이 없는 선동가, 선진가 사이의 인위적인 구별을 모두 없애고 전자로 하여금 견고하고 좀더 광범한 조 직을 ‘위에서 아래로’ 건설하도록 하는 것,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적, 혁명적 분지는 누구든지 이 조직 내에서 자기와의 장을 찾아야 하며, 프롤레타리 아적 강령을 결정한 당 내부에서 그러한 입장에 있는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 자동적으로 조직 내에서 ‘밑에서 위로’의 ‘획득’ 과정이 수행되도록 한다는 것 이다. 다시 말하면 개혁된 지방 조직이 자신 속에 끌어들인 프롤레타리아적 분 자를 정치적으로 육성하며 그들 중에서 점차 우리 위원회에서 자리를 차지할 미래의 베벨이나 아우에르를 탄생시킨다는 계획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 서나 『한 동지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도 래닌은 바로 이러한 견해를 나타낸 것 이다.

 

지금 존재하는 것은 자연발생적인 ‘광범한 노동자의 제조적’을 파괴하고 대 신 그들의 선구적 프롤레타리아 분자를 조직적으로 선발하려는 이 운동의 지 도자의 조직이다. …… 이 운동의 지도자의 조직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조직과 비슷한 것은 거의 없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는 이 조직의 중해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이 조직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다. 또 우리의 규약 에서 규약에 대한 대립을 초래했던 제1조를 제외하면 중앙기관지+중앙위원회 +위원회+연맹으로 성립되는 노동운동의 지도자의 조직 규약이 나타난다. 그 러나 이들 위원회와 연맹은 단순히 정해진 지도의 기능을 수행하는 프롤레타 리아 조직의 통상적인 구성 부분은 아니다. 위원회와 연맹은 단일한 사상을 가진 사람들의 자발적인 결합에 의해서 구성된 ‘직업적 혁명가’의 집단으로서 그들은 지방적 운동의 흔들 상태에 질서를 가져왔고 지방적 운동이 낳은 수많 은 그룹, 셔클, 연맹을 통일하는 주도권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 당 대회와 함께 당 대회에 의해 성립된 제기관에 기초하여 진행된 ‘위 로부터 아래로’의 당의 건설은 어떻게 진행되겠는가. ‘변세비키’는 당 대회 직 후에, 즉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조직의 과제는 우리 당의 발전에 의해서 초래 된 전술 문제가 해결되는 정도에 따라서만 해결될 수 있다고 하는 이 시기에, 이 문제에 해당할 제공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과거에서부터 최근 에 이르는 작업은 본질적으로는 광범한 프롤레타리아트 대중을 러시아의 ‘일 반적·국민적인 적’으로서의 전제와의 투쟁에 참여시키는 일이었다. 이 일의 수행에서는 단일의 사상을 가진 위원회 — 대중을 모든 종류의 정치적 ‘의지 표 시’에 동원하기에 충분한 혁명적 권위를 대중 사이에서 지나며 대중적인 투쟁 의 지도에서는 위원회의 기술적 보조자 역할을 하는 여러 그룹이나 셋클을 매 개로 대중과 결합하고 있는 단일한 사상을 가진 위원회 — 를 가지면 우리는 충분했다. 이들 셋클에서 위원회가 수행하는 선전과 신문, 소책자, 선언을 매개 로 대중에게 전달되는 사회민주주의 사상의 단면 등이 써리즘에 대한 ‘순수하 게 정치적인’ 혁명적 민주주의적 선동에 침투된 극히 미량의 사회민주주의적 내용인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정치적 지도가 진정으로 사회민주주의적 지도임은 프롤레타 리아트에 의해서 생각되는 것은 아니다. 참으로 사회민주주의적인 지도가 되 러면 대중운동의 확대와 혁명화에 프롤레타리아트의 자립적인 계급정당의 발 전과 성장이 따라야 하며 그 당에서 ‘위원회’는 당에 의해 당의 정치적 대표로 인정될 수 있는 방향으로 우리의 일을 본질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우리의 선 동이 우리의 계급적 강령의 구성 요소를 모두 포함하도록 더욱 다면적이고 깊 은 내용을 가진 것이 되어야 한다.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정책은 단순히 ‘이상적’인, ‘지도자’에 의한 순수하게 지도원리적인 것이어서는 안 되며 현실 적인, 실제로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의 자각적인 계층의 적극적인 정책이어야 한다. …… 따라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이 자각적인 계층은 당의 활동의 전국면 에, 즉 당에 의한 당의 강령, 전술 원리, 조직 방법의 작성에 적극적으로 참가 해야 한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때 바로 그때 우리는 스스로를 러시 아 프롤레타리아트의 권위와 할 수 있는 완전한 권리를 가질 수 있는 것이며 바로 그때가 돼야만이 우리는 불가피하게 다가오는 쿼리즘 근절의 시기가 동 시에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가 자각적인 계급으로서 공공연한 정치적 활동의 영역으로 진출하는 — 러시아 부르주아지가 자기의 독점적 영역으로서 장악하 려고 시도하는 공공연한 정치적 활동의 영역으로 진출하는 — 시기라고 기대 할 수 있는 것이다…….

 

…… 우리도 중앙집권화된 당 조직이 필요함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노동 자가 만든 ‘자발적’인 조직을 협조하지 않으며 물론 이 조직에 우리 자신의 전 투적인 위로부터 아래로 건설된 비밀 조직을 모두 종속시키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당을 ‘아래로부터 위로 건설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대화와 자각적 인 프롤레타리아트의 ‘세론(世論)’에 의해 승인된 우리의 비밀 조직이 이들 ‘자발적인’ 노동자 조직의 활동을 정치 활동의 통일 유지와 ‘비밀 선거’를 목적으로 자기의 혁명적 통제에 종속시킬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선동이 사회민주주의적인 의미에서 좀더 내용이 풍부해질수록 이들 노동자 조직의 모든 정치 활동은 더욱 발전하며, 그들 활동을 지도하는 ‘직업 혁명’의 조직’도 사상적·물질적으로 ‘대중으로부터 유리되는’ 위험은 더욱 감소하고 이 조직이 음모적 소써클로 변할 소지도 적어지는 것이다.

 

레닌에 따르면 바로 이 점에 ‘프롤레터리아직 규율’에 반항하는 ‘인텔리젠’과 적 개인주의’ 심리의 결과인 현재 ‘맨세비키파’의 ‘기회주의’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서운 말이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말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좀더 ‘사태의 심각성’을 잘 조사해 보면 이 두려운 말의 출현에는 충분히 그 이유가 있다.

 

실제로 우리가 ‘프롤레터리아적 규율’은 우리가 비판하고 있는 레닌의 조직론상의 유토피아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면 담은 단지 하나 밖에 없다. 즉 레너이 자기와 체계에서 프롤레터리아직 규율의 최고 표현으로 서 이상화하고 있는 것은 자각적 프롤레타리아트의 다수는 정치적으로 수동적 인 태도와 당에 대한 상대적 미숙성에 머무르고 있으며 이 수동적 태도와 미숙성 위에 우리 당 기관 ‘이주민(移住民)’의 허술한 건물이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방에서 아직 미발전된 노동운동을 지도하고 있는 것은 사회민주주의적 인텔리젠과 그룹이며 그중에는 몇몇 프롤레타리아트가 극소수 섞여 있을 뿐이 다. 이 운동의 기본적인 활동 요원 — 사회주의적 노동자 — 은 조직로 열악하고 정치적 성숙도도 떨어지며 운동의 전체적 방향이나 당의 진술 문제에 충분히 적극성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 …… 전체적으로 자각적 노동자는 너무 나도 정치적으로 경험이 부족하다. 그들은 우리(인텔리겐차)의 선행적 혁명가 세대의 체험도, 선진국의 노동운동에 대한 이론적 지식도 접촉도 가지지 못했고 사회주의적 인텔리겐차의 ‘최량의 부분’과 더불어 동등하게 당의 정체 문제 해결에 참가하기에는 너무도 멀고 뒤떨어져 있다. …… 그러한 조건에서 그러한 목소리에 기초하여 위원회는 제2차 대회 석상에서 자기의 ‘내적 구조’를 형성했다. 그리고 오늘날 레닌은 노동자의 광범한 션클은 아직 미숙하므로 지방 운동에서는 위원회의 절대주의를 부여된 것으로 인정하고 이 절대주의를 당전체의 조직 원리로서 받아들이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하여 자신의 원리를 프롤레타리아트의 수동적 태도라고 하는 역사적·파도적 요소에서 끌어내어 이 수동적 태도를 신성한 ‘프롤레타리아적 규율’로 높이려는 것이다…….

 

자각된 노동자는 이 문제에 특히 진지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당 문제에 대해 그들이 이후에도 계속 수동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이는 프롤레타리아 트의 모든 문제에서 중대한 위험이 될 것이다. 현재의 인텔리전스——이는 레 닌 일과에 의해 지도되고 있다——조직의 정치적 지도에 대해서 금후에도 계 속 무조건 신뢰를 한다면 당이 이미 스스로 심어 놓은 프롤레타리아 당이라는 특정은 당에서부터 근절될지 모른다. 의식적인 프롤레타리아트와 관련하여 ‘조 직 문제에서의 기회주의’라는 협박적 문구는 단지 ‘비자적인 인텔리겐차’의 최면술에 걸렸기 때문에 고안된 엉터리말에 불과함을 인식하라…….

 

프롤레타리아트의 당인가 아니면 비자적인 프롤레타리아트 대중을 지도 하는 인텔리전스 지도자의 조직인가——지금의 문제는 이러한 것이고 이 문제를 레닌은 (인텔리전스적 개인주의와 프롤레타리아적 규율이라고 하는) 추상적·형이상학적인 대비 속에 감추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술 면에서는 그러한 당의 구성 분자를 발전시키는 다면적인 사회민주주의적 전술인가 아니면 프롤레타리아트의 선구적 계층은 정치적으로 수동적인 태도를 지닌다는 변하 지 않는 원리를 기초로 전제와의 일반적 혁명투쟁에 대응을 참가시키는 단순 한 전술인가 하는 문제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자립성인가 아니면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비프롤레타리아적 조직의 영원한 후견인가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것이며 이 문제에 당원들은 누구나 스스로 명확하고 명백한 답 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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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 Ⅶ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의 조직 문제

 

로자 룩셈부르크

 

I

 

사회주의 역사상 유해 없는 독특한 임무가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에 부과되 었다. 그 임무란 전제 국가에서 프롤레터리아트의 계급투쟁에 적합한 전술을 고안해 내는 일이다. 오늘날 러시아의 조건과 사회주의자 탄압법[1)] 시대의 독 일의 조건을 기계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그것이 러시아의 상황을 정치적 관점 이 아니라 치안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한 지지될 수 없다. 민주주의적 자유의 결여가 대중운동에 야기하는 장애는 상대적으로 부차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러시아에서조차 대중운동은 전제적 ‘제도’의 장벽을 가까스로 무너뜨리고, 비 록 불완전하긴 하지만 스스로 ‘가두 소요’의 ‘제도’를 만들어 봤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제에 대한 최종 승리가 달성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러시아에서 사회민주주의적 투쟁이 직면하고 있는 주요한 장애는, 부르주이자의 계급 지 배가 전제적 압정의 지배에 가려져 있다는 점이다. 이 전제에 의한 지배는 필 연적으로 계급투쟁에 대한 사회주의적 교의에 추상적인 선전적 성격을 부여 하며 직접적인 정치선동에 현저한 혁명적 민주주의의 성격을 부여한다. 사회 주의자 탄압법은 오로지 노동자계급을 헌법의 테두리 밖으로 밑이내려 했는데, 그것을 의회정치에서, 그 계급 대립이 완전히 적나라하게 드러난 고도로 발전된 부르주아 사회에서 이루려 했다. 이 점에 비스마르크의 모험의 평가와 어 리석음이 드러난다. 리시아에서는 그 역의 시도가 행해져야 한다. 즉, 부르주 아지의 직접적인 정치적 지배가 성립되어 있지 않은 가운데 사회민주주의가 창출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점은 리시아적 토양에 사회주의 교의를 이석하는 문제라든가 선동의 문 제뿐만이 아니라 조직의 문제에서도 독특한 의미를 갖는다.

 

사회민주주의 운동에서는, 이전의 사회주의의 공상적 시도들과는 달리 조직 조차도 선진의 인위적 산물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역사적 산물로 간주되며 사 회민주주의는 다만 거기에 정치적 의식을 불어넣어 줄 뿐이다. 정상적인 상황, 즉 충분히 발전된 부르주아지의 계급 지배가 사회민주주의 운동에 선행하는 상황에서는 노동자의 초기의 정치적 결정을 상당한 정도로 담당하는 것이 바 로 부르주아지다. 『공산당 선언』은 “이 단계에서 노동자의 대중적 연대는 그 들 자신의 단결의 산물이 아니라 부르주아지의 단결의 산물이다”』라고 쓰고 있다. 리시아에서는, 주도 면밀한 개입을 통해 역사적 과정의 한 단계를 뛰어 넘어, 프롤레타리아트를 전제 정치의 기반이 되고 있는 정치적 원자화로부터 곧장 최고의 조직 형태 — 자신의 목표를 자각하고, 그것을 위해 투쟁하는 계 급 — 로 끌어올리는 것이 곧 사회민주주의자의 파업이다. 따라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형식적 정치가 부재한 가운데 조직을 창출해야 한다는 것뿐만 아 니라, 무엇보다도 그 조직을 마치 ‘전능한 신처림’ 무(無)로부터, 허공 속에서, 다른 나라에서라면 부르주아 사회를 통해 이미 마련되어 있을 정치적 원자제 가 없는 가운데 창출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리시아 사회민주주의의 조직 문 제에는 독특한 점들이 제기된다.

 

지난 몇 년 동안 리시아 사회민주주의가 직면해 온 문제는 써클이나 지역 차원의 분산적이고 전적으로 자율적인, 그리고 예비적이며 주로 선진적인 운 동 단계에 적합한 조직 형태로부터 전국적인 대중의 일치된 정치적 행동에 필 요한 조직 형태로 전환하는 문제였다. 그런데, 지역적 조직이 가진 분산성, 완 전한 자율성, 자치성이란 번거롭고 정치적으로 낙후된 구 조직 형태의 특징이 기 때문에, 새로운 단계의 표어, 즉 대규모로 정비된 조직 구조의 특징은 당연 히 중앙집권주의가 된다. 중앙집권주의 이념의 확립은, 사실상 창립 대회였던 지난번 당 대회를 준비하면서 『이스크라』가 추진했던 3년간의 눈부신 캠페인 의 중심 사상이었다. 또한 이 이념은 리시아 사회민주주의자 가운데 청년 세대들을 모조리 사로잡았다. 중앙집권주의가 어디에서도 사회민주주의적 조직 형태의 역사적 내용과 특질을 거의 포괄하지 못하는 슬로건이라는 점은 대회 에서 큰 명백해결도며 이후에는 더욱더 명백해결 것이다. 사회주의에 대한 마 르크스주의적 개념은 조직 문제의 분야뿐만이 아니라 그 어떤 분야에서도 엄 격한 공식에 짜랐을 수 없다는 것이 다시 한 번 드러났다.

 

러시아 당 대회를 준비하는 『이스크라』의 캠페인에서 탁월한 지도자이자 투사의 한 사람인 레너 동지가 쓴 『일보 전진 이보 후퇴』는 러시아 당 내의 초(趙)중앙집권주의적 경향의 입장에 대한 체계적인 서술이다. 이 책에서 강력 하고 철저하게 표명되고 있는 견해는 비타협적인 중앙집권주의다. 그 끝자는, 한편으로는 철저하고 적극적인 혁명가들의 기간 조직을 무조직적인 혁명적 활 동가들로부터 엄격하게 분리·격리시키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엄격한 규 율과, 지방 당 조직의 모든 활동에 중앙적 권위가 직접적·결정적으로 단호하 게 개입하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예를 들어 중앙위원회는 당의 모든 지방 당 위원회를 조직할 권리를 가지며 따라서 제네바와 리가에서부터 톱스 크와 이르쿠츠크에 이르기까지 모든 개별적 지방 조직들의 구성원을 결정할 수 있다. 또한 그 조직들에 미리 준비된 지방 강령을 제공하며, 명령을 통해 지방 조직들을 해산하거나 재구성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최고의 당 기관인 대 회의 구성에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따라서 중앙위원회는 당의 실제적 인 활동 핵심이 되며 다른 모든 조직들은 단지 중앙위원회의 집행 기구에 불 파하게 된다.

 

레닌은 바로 이 엄격한 조직적 중앙집권주의와 사회민주주의적 대중운동의 결합에서 독특한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원칙을 발견하였으며 또한 거기에서 자신의 입장을 지지해 줄 일련의 사실들을 정리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문 제를 좀더 면밀히 검토해 보자.

 

중앙집권주의에 대한 강력한 경향이 사회민주주의 전반에 고유한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자본주의의 경제적 토양 속에서 그 중앙집권주의 적 경향이 성장하고, 그 투쟁에서 중앙집권적인 대부분주아 국가의 정치적 골 격에 의존하는 사회민주주의는 그 본성상 모든 형태의 연방주의와 지방주의에 철저하게 반대한다. 특정한 국가체제 내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모든 특수 이 해나 집단 이해에 반대하여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일반 이해를 대변하도록 요 구받는 사회민주주의는 어디서나 노동자계급 내의 모든 민족적, 종교적, 직업적 그룹들을 단일한 정당으로 결정시키고자 하는 필연적인 욕구를 갖는다. 연 방주의적 원칙에 대한 양보 같은 예외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은, 예를 들어 오스트리아와 같은 특수하고 비정상적인 상황 속에서일 뿐이다.3)

 

이러한 점에서, 러시아 사회민주주의 또한 러시아 제국을 위한 동질적이고 치밀한 당보다는 수많은 개별적인 민족적·지역적 조직들의 연합적 집단을 형 성해야 한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으며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단결되 고 동질적인 러시아사회민주당 내에서 중앙집권주의가 강력한가 미약한가 하 는 문제와 그 정확한 본질의 문제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투쟁정당으로서 사회민주당의 공식적 임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 당의 전 투 준비와 힘은 그 조직에서의 중앙집권주의의 실현 여부에 직접 달려 있다는 점이 처음부터 명백하다. 그러나 이러한 맥락에서,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특징 한 역사적 조건은 어떤 투쟁조직의 형식 요건이라는 관점보다도 훨씬 더 중요 하다.

 

사회민주주의 운동은 게금사회의 역사상, 그 모든 측면과 전체 발전 과정에 서 조직과 대중의 독자적인 직접적 행동이 전제된 최초의 운동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민주주의는 이전의 사회주의 운동의 조직 형태(예컨대 자코벨 - 블랑키 형태)와는 완전히 다른 조직 형태를 창출한다.

 

레닌이 자신의 책에서,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는 “게금의식을 가진 프롤레 타리아트의 조직과 확고하게 결합된 자코벨”4)에 불과하다고 썼을 때, 그는 이 점을 경시했다고 생각된다. 레닌은 사회민주주의와 블랑키주의 간의 확실한 차이점을, 소수의 음모에 반대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조직과 게금의식으로 보았다. 그는, 이것이 우리의 조직 개념에 대한 완전한 재평가이고 완전히 새 로운 중앙집권주의 개념이며 또한 조직과 투쟁 간의 상호관계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개념임을 망각했다.

 

블랑키주의는 대중의 직접적인 게금 행동을 전제하지 않으며, 따라서 대중 조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광범위한 인민대중은 혁명의 실제적 순간 에만 전쟁에 뛰어든다고 가정되는 한편 예비적 행동은 소수에 의한 혁명적 공 격의 준비 과정 속에서 이루어지므로, 이러한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 과 인민대중 간의 엄격한 구분은 그들의 사명이 성공하는 데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블랑키주의 조직의 음모적 행동과 인민대중의 일상적인 삶 사이에는 아무런 내적 관계가 없었으므로 이러한 구분이 가능했으며 유지될 수 있었다.

 

동시에, 활동의 전술과 명확한 임무는 미리 상세하게 산출되었고, 확고한 계획으로 결정되고 규정되었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기본적인 계급투쟁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이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작성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조직의 활동기들은 당연히, 그들의 활동의 장 밖에서 미리 결정된 것을 수행하는 단순한 집행 기구에 불과하게 되었으며 중앙위원회의 도구가 되었다. 또한 이것은 음모적 중앙집권주의의 두 번째 특징, 즉 중앙의 권위에 대한 모든 당 기관들의 절대적·명목적인 복종과 당 조직의 말단에 이르기까지 중앙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사회민주주의의 활동 조건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기본적인 계급투쟁에서 유래한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 군(軍)은 오직 투쟁을 통해서만 충원되며, 또한 오직 투쟁을 통해서만 투쟁의 목적을 의식하게 된다는 변증법적 모순 속에서 작용한다. 여기서는 조직과 교육과 투쟁이, 불량기주의 운동에서처럼 시기에 따라 기계적으로 분할되는 별개의 계기들이 아니라, 동일한 과정의 각각 다른 측면들이 뿐이다. 거기서는, 한편으로는 투쟁의 일반적·기본적인 원칙과는 별도로 중앙위원회가 사회민주당의 당원들에게 부과할 수 있는 미리 만들어진 세세한 투쟁 전술이 없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조직을 창출하는 투쟁의 과정이 사회민주주의의 영향권 내에 지속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따라서, 사회민주주의적 중앙집권주의는 중앙 권위에 대한 당의 투시들의 명목적인 복종이나 기계적인 순종을 기초로 할 수 없으며, 나아가 이미 긴밀하게 결합된 당 기간 요원으로 조직된 계급의식을 가진 프롤레타리아트의 핵과, 이미 계급투쟁에 뛰어들었으며 계급의식을 발전시키는 과정을 겪고 있는 주변부 사람들 간의 폐쇄를 수 없는 벽이란 결코 형성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이러한 두 가지 원칙 — 레닌이 말한 바와 같이, 첫째로는 모두를 위해 혼자 생각하고 행동하여 결정하는 중앙 권위에 모든 당 조직들과 그들의 활동이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명목적으로 복종하는 것과, 둘째로 조직된 당 핵심의 주변적인 인자로부터의 엄격한 분리 — 에 입각한 사회민주주의에서의 중앙집권주의의 확립은 음모적 셋틀들의 불량기주의적 운동의 조직 원칙을 노동자계급의 사회민주주의 운동에 기계적으로 이식한 것으로 보인다. 래닌은 자신의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를 ‘계급의식을 가진 노동자의 조직과 결합된 자코뱅’이라 규정함으로써, 그에 대한 반대자 가운데 누구보다 더 정확하게 이러한 입장을 특징지었다. 그러나, 사실상 사회민주주의는 노동자계급의 조직과 결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 자신의 운동이다. 그러므로 사 회민주주의의 중앙집권주의는 불량기주의의 중앙집권주의와 근본적으로 달라 야 한다. 그것은 다름아닌 노동자 가운데 분리된 그룹들이나 개인들에 대한 노동자의 의식적이고 전투적인 전위의 의지의 권위주의적 표현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층의 ‘자기중심주의’이며 그 당 조직의 범위 내 에서의 다수의 지배다.

 

사회민주주의적 중앙집권주의의 진정한 내용에 대한 앞서의 검토를 통해, 현재 러시아에는 그것이 존재하기 위한 필수 조건들이 아직 성숙되지 않았다 는 것이 이미 밝혀졌다. 그 조건들이란 이미 정치투쟁에 단련된 상당수의 프 롤레타리아 층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과, (당 대회나 당 출판물 등을 통해) 직 접적인 영향을 미침으로써 그들의 전투 준비를 표현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후자의 조건은 정치적 자유라는 조건이 주어질 때 분명히 러시아에서도 실 현될 수 있다. 그러나 전자 — 현명하고 계급의식으로 무장된 프롤레타리아 전위의 창출 — 는 지금 막 진행되고 있을 뿐이며, 당면한 선동·조직 작업의 기본적 주제로 생각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일은, 대규모의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노동자 정당의 실 현을 위한 모든 전제 조건들이 이미 러시아에 마련되어 있다고 뻐닌이 굳게 믿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이제 ‘조직과 규율이라는 면에서 자기 교육이 부족 한 사람들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라 러시아 사회민주주의당 내의 특정 지식 인들이’ 하고 낙관적으로 주장한 것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조직과 규율’을 완 벽하게 만드는 데 공장이 갖는 교육적 중요성을 찬양한 것은 사회민주주의적 조직에 대한 지나친 기계적 개념을 다시 한 번 드러낸 것이다. 레닌이 상정하 고 있는 ‘규율’이란 단지 공장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병영과 근대 판료제도에 의해서도, 한 마디로 말해 중앙집권화된 부르주아 국가의 전체계에 의해서 프 롤레타리아트에게로 주입되는 것이다. 의지나 사상이 없이 기계적으로 지휘봉 에 따라 움직이는 신체와 사회 계층의 의식적인 정치적 행동의 자발적인 협 력, 또한 피어업계급의 맹목적인 복증과 자신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계급의 조직적인 반란과 같이 정반대되는 두 개념을 ‘규율’이라는 말로써 동시에 규정 하는 것은 단지 말을 오용한 것일 뿐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새로운 규율, 사회민주주의의 자발적인 자기 규율을 익힐 수 있는 것은 자본주의 국가에 의해 주입된 규율에 의해서나 단지 지휘봉이 부르주어지면서 사회민주당 중앙위원 회로 이전됨으로써가 아니라 오로지 이 노예적인 규율에 도전하고 그것을 근 절함으로써만 가능하다.

 

나아가, 같은 맥락에서 사회민주주의적 의미의 중앙집권주의는 결코 노동운 동의 모든 단계에서 똑같은 비중을 갖는 절대적 개념이 아니라는 점도 명백 하다. 오히려 그것은, 노동자 대중의 투쟁 과정에서 그들의 의식과 정치적 교 육이 발전됨에 따라 점차 실현되는 하나의 경향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물론, 러시아의 운동에서 중앙집권주의가 완전히 실현되기 위해 필요한 가 장 중요한 전제 조건들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은 막대한 장애가 된다. 그러나 아직 실현될 수 없는, 당 조직 내에서의 의식적 노동자의 다수의 지배를 ‘일시적으로’ 중앙 당의 ‘위임권’ 단일 권력으로 대체할 수 있다거나, 마찬가지로 당 조직의 활동에 대한 노동자 대중의 공공연한 통제의 부재를 혁명적 노동자의 활동에 대한 중앙위원회의 역(逆)통제로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볼 때 잘못된 생각으로 보인다.

 

러시아 운동사 자체가 이 후자의 의미에서의 중앙집권주의의 가치가 의심 스럽다는 것을 여러 가지로 증명해 주고 있다. 레닌이 제시한 것과 같이 거의 무제한적인 개입권과 통제권을 갖는 전능한 중앙기구는, 그 권력이 순전히 사 회민주주의의 기술적 측면, 즉 당 출판물의 공급과 같은 일상적인 선동 방식 과 선동적·재정적 지원의 적절한 배분에 대한 규제에만 국한되어야 한다면 틀림없이 전적으로 무의미한 것이 될 것이다. 그 권력이 투쟁 전술을 산출한다 거나 러시아에서 위대한 정치적 행동을 시작하는 데 사용될 때에만 그러한 중 앙기구는 다소 정치적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운동이 지금까지 겪어 온 변화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는가? 지난 10년간에 일어났던 가장 중요하고 유익한 변화들은 모두, 지도 조직은 말할 것도 없고 결코 어떤 운동 지도자에 의해 ‘정신된’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운동의 자발 적인 산물이었다. 이 점은, 1896년 성 페테르스부르그의 거대한 파업의 자발 적인 적발로 시작되어 러시아 프롤레티아트의 대규모 경제투쟁의 기원을 열었 던 진정한 러시아 노동운동의 첫 단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또한 이 점은 1901년 3월에 성 페테르스부르그의 학생 소요로 인해 완전히 자발적으로 시작 된 정치적 기두시위의 시기인 두 번째 단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전술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준 그 다음의 중요한 전환점은 돈의 로스트프에서 일어난 ‘자 발적인’ 대중파업으로, 거기서는 즉석 가두 선동과 옥외 공공 집회와 대중 연 설이 행해졌는데, 이 모든 것들은 몇 년 전만 해도 가장 열성적인 사회민주주 의자에게조차 마치 상상이나 생각도 할 수 없는 어떤 것인 양 여겨졌다. 이 모든 경우에서, ‘태초에 행위가 있었다.’[5)] 사회민주주의 조직의 창의적이고 의 식적인 지도력은 극히 미미한 역할만을 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 특별 한 조직들이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적절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도 아니며(비록 그 점이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는 했지만) 또 당시에는 러시아 사회민주주의 내에 래너 식의 전능한 중앙 권위가 없었기 때문도 아 니다. 오히려, 그러한 권위는 개개의 당 위원회들의 우유부단을 조장하여, 격 렬한 대중과 결단성 없는 사회민주주의자 간에 분열을 야기하게 된다. 이와 똑같은 현상——전술 작성에서 당 지도부의 의식적 주도가 미미한 역할밖에 하지 못한 현상——을 관찰할 수 있는 독일이나 기타 다른 곳에서도 이 점은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사회민주주의적 투쟁 전술의 주목점은 대체로 그것이 ‘창안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험적이고 때대로 자발적인 계급투쟁의 위대한 창조적 활동들이 지속된 결과라는 점이다. 여기서도 또한 무의식은 의식에 선행하며, 객관적인 역사적 과정의 논리는 그 주체들의 주관적 논리에 선행한다. 이 모든 것에서 사회민주주의적 지도의 역할은 필연적으로 보수적인 성격을 갖는데, 그것은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그들이 일단 새로운 투쟁 영역을 확보하기만 하면 그들은 그것을 철저하게 활용하여 곧 그것을 더 큰 규모의 새로운 혁신에 대항하는 성체로 만들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재 독일 사회민주주의자의 전술은 그 탁월한 다양성과 유연성, 또한 그 확고함으로 모든 곳에서 찬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우리 당이 일상투쟁에서,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현재의 의회주의적 조건에 놓임도록 잘 적응해 왔음을 의미할 뿐이며, 또한 우리 당이 의회주의가 제공하는 모든 전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으며 그것을 그 자체의 방식에 따라 지배할 수 있음을 의미할 뿐이다. 그러나 이 특별한 전술적 정식화는 너무나 효과적으로 더 넓은 지평을 가리기 때문에, 의회주의 전술을 영속화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게 되며, 그것을 마치 사회민주주의 투쟁의 경향 그 자체인 듯이 생각하는 풍조가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풍조의 특징은 예를 들어, 보통선거권이 폐지되었을 경우에 적합한 전술 변화에 대한 논쟁을 당 출판물에 제기하려는 파르부스의 끈질긴 노력이 당 지도부가 그러한 개연성을 매우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음 에도 불구하고 계속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것에서 볼 수 있다. 이러한 지지 부진함은 대부분, 아직 존재하지 않는, 따라서 추상적인 사유의 허공 속에서만 상상적으로 존재하는 정치적인 상황의 윤파와 확실한 형태를 제시한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나타난다. 사회민주주의에 중요한 점은, 결코 미래 의 전술에 대해서 미리 완성된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는 것뿐만 아니라, 특정 시기를 지배한 투쟁 방식에 대한 올바른 역사적 평가, 투쟁의 각 단계간의 상 호관계에 대한 생생한 감각, 그리고 프롤레티리아 계급투쟁의 궁극적 목표라 는 관점에서 본 혁명적 계기의 필연적인 증거에 대한 생생한 감각을 당 내에 유지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당 지도부에 띠년이 의도한 바와 같은 부정적인 성격을 가진 일종 의 절대권력을 부여하는 것은 그 본성상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보수주의를 인 위적으로, 그리고 상당히 위험할 정도로 강화시키는 것이다. 만약에 사회민주 주의 전술이 중앙위원회의 창조물이 아니라 당 전체의 —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운동 전체의 — 창조물이라면, 개별 당 위원회들에게는 특정한 상황에 의해 주어지는 투쟁 수단들을 충분히 활용하고 혁명적 지도력을 발전시킬 기회를 줄 수 있는 활동 공간이 필요하게 된다. 띠년이 주창한 초중앙집권주의는 전 체적으로 보아, 긍정적인 창조 정신이 아니라 야경국가의 메마론 정신에 몰들 어 있는 것 같다. 그의 사고방식은 주로, 당 활동의 풍부화가 아니라 그 통제 에, 그것의 확대가 아니라 협대화에, 함께 운동을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그 것을 없애는 쪽에 관심을 두고 있다.

 

특히 지금 러시아 사회민주주의가 이러한 종류의 실험에 파고드는 것은 배 나 더 위험해 보인다. 러시아 사회민주주의는 지금 전체를 타도하기 위한 위 대한 혁명적 전쟁의 전략에, 아니, 전술 분야에서 가장 격렬한 창조적 활동의 시기에 — 혁명적 시기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 그 영향권이 열병과 같 이 발작적으로 팽창하고 수축하는 시기에 서 있다. 이 때 당의 창조성을 제한 하고, 그러한 급작스러운 팽창을 위한 당의 능력에 철조망을 둘러치는 것은 곧 사회민주주의가 운동의 위대한 과업을 수행하는 데에 애초부터 커다란 장 애를 설정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아직 사회민주주의적 중앙집권주의의 특징에 대한 우리의 일 반적 고찰로부터 러시아 당의 조직 규약의 구체적인 초안을 끌어낼 수는 없다. 이러한 초안은 결국 어떤 특정 시기에 수행되는 활동들의 구체적 조건에 달려 있고 러시아에서 그것은 대규모 프롤레티리아 당 조직을 건설하려는 최초의 시도라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러한 종류의 규약이) 그 자체의 무오류성을 주장할 수는 없으며, 오히려 그것은 우선 실천이라는 불 속에서 검증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민주주의적 조직 형태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 개념으로부터 그 원칙적 특성, 즉 그 조직의 정신을 추론해 낼 수 있는데 그것은, 특히 대중운동의 초기 단계에서는 사회민주주의적 중앙집권주의의 규제적이고 배타적인 성격이 아니라, 주로 그 협조와 연대적 성격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정치적 유연성의 정신이 운동의 원칙과 그 통일에 대한 확고한 충성과 결합되어 있다면, 또 그것이 당 대일 속에 뿌리 박고 있다면 조직 규약 내의 어떠한 문제점이라 할지라도(가장 잘못 작성된 것에서 일지라도) 큰 실천 속에서 해소될 것이다. 조직 형태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규약의 문구가 아니라, 적극적인 투시들에 의해 그것에 불어넣어진 의미와 정신이다.

 

Ⅱ

 

지금까지 우리는 사회민주주의의 일반 원칙,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현재 러시아가 처한 조건이라는 관점에서 중앙집권주의라는 문제를 검토했다. 그러나 레난과 그의 동료들에 의해 주장된 초중앙집권주의를 낳은 야경관 정신은 결코 우연한 실수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조직 문제의 가장 세세한 부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기회주의에 대한 적대감과 관련되어 있다.

 

레난은, “그것은 조직 규약의 구절들을 통해 다소 날카로운 무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기회주의의 근원이 깊을수록 그것은 더욱 예리해진다”고 말했다.⁷

 

마찬가지로, 레난은 중앙위원회의 절대권력과 당에 대한 엄격한 법규적 통제를 기회주의적 조류에 대한 효과적인 방법으로 여겼는데 그는 기회주의의 특징을, 자치주의와 무질서에 대한 지식인들의 본래적인 선호와 또 엄격한 당규율과 당 생활에서의 모든 형태의 ‘판로우’에 대한 지식인들의 공포로 규정했다. 레난의 전해에 따르면, 그 자신의 본래적 혼란과 개인주의로 인해 중앙위원회의 그러한 무제한적인 권력에 반대하는 사람은 단지 사회주의적 ‘저작자’일 뿐이고, 진정한 프롤레티리아트란 자신의 혁명적 계급 본능으로 인해 최고 당 기관의 엄격한과 혹독한과 결단성에 대해 특별한 즐거움을 느끼며 즐겁게 눈을 감은 채 모든 ‘당 규율’의 거친 집행에 복종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관료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는 곧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의 조직 원리와 기회주의적인 조직 원리 간의 관계와 같다”고 레닌은 말했다. 그는 중앙집권주의 개념과 자치주의 개념 사이의 갈등과 유사한 갈등이, 혁명적 조류와 개량적 또는 기회주의적 조류가 서로 대립되어 있는 모든 나라의 사회민주주의 내에서 나타난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는 특히 독일 사회민주당에서 최근에 일어났던 사건들과, 선거구의 자치라는 문제에 대해 시작된 논의들을 지적하고 있다. 이 점만을 보더라도, 레닌이 이끌어 낸 등식을 재검토해 보는 것은 흥미롭고 유익한 일이 될 것이다.

 

먼저 우리는, 사회민주주의 조직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의 타고난 능력에 대한 강조와 사회민주주의 운동에서의 ‘지식인’ 분자들에 대한 의구에는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라는 점이 하나도 없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오히려 거기에서 우리는 쉽게 기회주의적 견해와의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순수한 프롤레타리아 인자와 비프롤레타리아 출신 지식인 사회주의자 간의 대립은, ‘정치가를 경계하라’라는 오랜 주장을 가진 프랑스의 준무정부주의적 순수 노동조합주의자들의 상투적인 이데올로기적 기치로서 그들은 그 기치 하에서 사회주의적 ‘환상’에 대한 영국 노동조합주의의 불신과 제휴하고, 끝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이) 노동조합주의적 편협성을 전제적 러시아에 도입한 ‘라보차야 미즐’의 순수한 ‘경제주의’와도 손을 잡았다. 물론 우리는,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서구 사회민주주의의 실천 속에서, 조직 문제에서의 기회주의와 분권주의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기회주의와 지식인 분자 사이에도 부정할 수 없는 관련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역사적 기초 위에서 발생한 이러

한 현상을 그 맥락으로부터 분리시켜 보편적이고 절대적 가치를 지닌 추상적 모델로서 제시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신성한 정신’, 다시 말해 그 사적·변증법적 사고에 대해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추상에 매몰된 사람은, 본래부터 프롤레타리아트와는 다른, 부르주아지로부터 갈라져 나온 사회 성분으로서의 ‘지식인’은 그 자신의 계급성에 대한 인식과 일치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념적인 길을 택함으로써 그것을 극복해야만 사회주의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지식인은, (자신의 본래의 사회적 바탕과 프롤레타리아 대중에 대한 생생한 연계를 잃지 않는 한) 그 자신의 직접적인 계급 본능이 곧 확고한 혁명적 증거가 되는 계급의식적인 프롤레타리아트보다 기회주의적 일탈에 빠지기가 더 쉽다. 그러나, 지식인의 기회주의에 대한 이러한 경향이 취하는 구체적 형태, 특히 조직적인 경향에서 그것이 취하는 확실한 형태는 항상 해당 사회의 구체적인 사회적 환경에 달려 있다.

 

레딘이 언급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사회민주주의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은 매우 명확한 사회적 기반, 즉 부르주아 의회주의라는 기반 위에서 생겨난 것이다. 이것은 현재 서구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기회주의적 경향을 길러 낸 매장토인 동시에 기회주의의 독특한 분열성을 길러 낸 토양이기도 하다.

 

의회주의는, 우리가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은 현재의 기회주의적 환상들, 다시 말해 개량과 계급 간의, 개량과 정당 간의 협조, 그리고 평화적인 발전 등에 대한 과대 평가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의회주의는 사회민주주의 내에서조차 프롤레타리아 대중으로부터 지식인의 원을 분리시키고 프롤레타리아 대중 위에 지식인의 원을 세운으로써 이러한 환상이 실현될 수 있게 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끝으로, 노동운동이 성장함에 따라 의회주의는 노동운동을 정치적 출시를 위한 발판으로 만드는데, 이것이 바로 의회주의가 노동운동을 부르주아지로부터 버림받은 야심가들의 손쉬운 도피처로 만드는 이유다.

 

이 모든 요소들은 또한 서구 사회민주주의의 기회주의적 지식인들을 혼란과 규율 부재로 이끌었다. 현재의 기회주의적 경향에 대한 두 번째 특징적 조건은 이미 고도로 발전된 사회주의 운동이 존재한다는 것, 따라서 영향력 있는 사회민주주의 당 조직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특히 후자는 지금 부르주아 의회주의 경향에 대한 혁명적 계급운동의 요세가 되고 있는데, 그것은 탄탄하고 활동적인 프롤레타리아트의 혁이 무정형한 유권자 대중 속으로 용해되어야 한다면 해체되고 파괴되고 말 것이다. 이렇게 하여 현재 기회주의의 ‘자치주의 적’이고 분권적인 경향이 대두되었다. 그것들은 명확한 역사적 기반을 갖고 있으며 특정한 정치적 목적에 매우 적합한 것으로, 레딘이 말한 것처럼 ‘지식인’의 분해적인 혼란과 무기력 때문이 아니라 부르주아 의회주의의 필요에 의한 것임이, 또한 지식인에 대한 심리학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회주의자에 대한 정치학에 의해 설명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조건들은 노동운동 내의 기회주의가 결코 서구에서처럼 사회민주주의의 강력한 성장의 산물이거나 부르주아 사회의 분열의 산물이 아니라 오히려 그 정치적 후진성의 산물인 전제 러시아에서는 상당히 다르다.

 

사회주의 지식인의 보충원인 러시아 인텔리젠체가 서유럽의 인텔리젠체보다 훨씬 덜 명확한 계급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 더 엄밀히 말하자면 훨씬 뒤처져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이 점은 러시아 프롤레티아의 운동이 초보 단계에 있다는 것과 함께, 때로는 노동운동의 정치적 측면에 대한 완전한 부정으로, 때로는 유일한 구원으로서의 테러에 대한 믿음으로, 결국은 정치적 영역에서는 자유주의의 수렁에, ‘철학적’ 영역에서는 칸트적 관념론에 빠져 버리는 이론적 불안정성과 기회주의적 동요의 진폭을 한층 더 넓게 만든다.

 

우리의 견해로는, 러시아의 사회민주주의자 지식인에게는 특히 혼란으로의 적극적 경향을 조장하는 부르주아 의회주의에 대한 경험이 결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사회 심리학적 환경도 결여되어 있다. 자신의 유명한 ‘자아’에 대한 예언에 몸을 바치고 이 ‘지배민족 도덕’을 사회주의 사상과 투쟁에까지 끌어들이는 현대 서구의 저술가는 부르주아 인텔리젠체가 일반의 전형이 아니라 단지 그 존재의 특정한 단계의 전형일 뿐이다. 다시 말해 그는 그 자신의 계급 헤게모니라는 사악한 테두리 속에 이미 말려들어 간 퇴폐적이고 부패한 부르주아지의 산물이다. 러시아 사회민주주의 지식인의 공상적이고 기회주의적인 환상들은 오히려, 그리고 당연히 자기 부정과 자기 비하의 이론적 형태를 받아들이게 하는 경향이 있다. 확실히, 한때의 ‘인민에게로’ 운동, 즉 지식인이 반드시 농민으로 가정해야 한다는 것은 구나로드니키에게는 요즈음의 ‘못박한 손’에 대한 성경한 예언이 순수한 ‘경제주의’의 사도들에게 그러한 것과 꼭 마찬가지로 지식인의 절망적인 고안이었다.

 

우리가, 서구의 엄격한 패턴을 기계적으로 러시아에 적용함으로써가 아니라 러시아 자체의 특정한 구체적 조건들을 검토함으로써 조직 형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결과를 얻게 된다. 대신이 한 것처럼 분권주의와 같은 어떤 특정한 조직 형태를 향한 일반적 열망을 기회주의 탓이라고 보는 것은 기회주의의 내적 본질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기회주의자와 마찬가지로 기회주의는 조직 문제에서도 단 하나의 원칙만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큰 원칙의 부재라는 원칙이다. 그것은 그 목적에 부합된다면 언제나 상황에 따라 방법을 선택한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기회주의를, 레닌이 그랬던 것처럼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운동을 지배를 갈망하는 부르주아 인텔리전자의 도구로 만들기 위해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자적인 혁명적 계급운동을 손상시키려는 의도라고 규정한다면, 우리는 또한 노동운동의 초기 단계에서는 분권주의가 아니라 (아직 불명확한 프롤레타리아 운동을 소수의 지식인 지도자들의 손에 맡기는) 엄격한 중앙집권주의를 통해 이 목적이 가장 잘 달성되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독일에서도 또한 노동운동의 초기 단계, 즉 의식적인 프롤레타리아트의 강력한 핵과 입증된 사회민주주의적 전술이 존재하지 않았을 때는 라셀레의 ‘전독일노동자동맹’의 물론 극단적인 중앙집권주의와 아이제나와 그룹10)의 ‘자치주의’라는 두 가지 조직적인 조류가 있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그것이 가진 명백한 원칙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당 생활의 지적인 부분에 대한 프롤레타리아 인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노동자들 자신 속에서의 창조성인 — 무엇보다도 이들 그룹에 의해 발행된 많은 지방신문들이 이 점을 증명해 준다 — 을 더 많이 이끌어 내고, 그들 자신의 ‘독재’ 때문에 당연히 점차 막한 결과를 거두었던 라셀레주의자들보다도 더 강력하고 탄탄하게 자신들의 운동을 ‘확장’시켰던 것은 아이제나와 그룹의 전술이었다.

 

일반적으로, 노동자 대중의 혁명적 부분이 아직 조직되어 있지 않고 운동 자체가 동요하고 있는 상황, 간단히 말해 현재 러시아의 상황과 같은 상황에서는 바로 엄격한 전제적 중앙집권주의가 기회주의적 학자들이 선호하는 조직 경향으로 등장한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후기 단계에서는 — 의회주의적 배경에 반하여, 그리고 강고하게 결합된 노동자당에도 불구하고 — 분권화가 기회주의적 지식인에게 상응하는 경향이 된다.

 

레닌의 조직 개념은, 인텔리전자가 프롤레타리아 운동에 미치는 위험한 영향에 대한 바로 레닌 자신의 우려에 비추어 볼 때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에 최대의 위험이 된다.

 

사실상, 전투적인 노동자를 ‘위원회’의 온순한 도구로 만들어 버리는 판료제적 중앙집권주의라는 명예를 운동에 씌우는 것보다 쉽고 확실하게 아직 초보적인 프롤레타리아 운동을 권력에 굽힌 지식인들에게 갖다 바치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한편, 노동자의 자발적인 혁명적 활동과 정치적 책임감의 제고보다 확실하게 야심적인 인텔리전자가 위원회를 기회주의적으로 남용하는 것으로부터 노동자를 방어해 주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오늘 레닌이 유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내일은 금방 명확한 실체가 될 것이다.

 

러시아가 당면하고 있는 혁명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아니라, 사회민주주의 투쟁의 전기반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부르주아 혁명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러시아 인텔리젠차 또한 곧 그 부르주아 계급성분의 명확한 각인을 얻게 될 것이다. 오늘은 사회민주주의가 러시아 노동자 대중의 유일한 지도자이지만 혁명의 내일에는 부르주아지가, 물론 그중에서도 특히 인텔리젠 차가 대중을 자신의 의회주의적 해게모니를 위한 발판으로 만들려고 할 것이다. 노동자 가운데 가장 자각한 계층의 자발적인 활동과 자유로운 창의성, 그리고 정치적 감각이 덜 발달할수록 그들은 더욱더 사회민주주의 중앙위원회에 의해 정치적인 억압을 받을 것이며 새로운 러시아에서 부르주아 선동정치가들의 활동은 더욱 쉬워질 것이고 오늘날 사회민주주의 노동자들의 수확물은 더욱더 부르주아지의 곳간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조직 규약을 통해 노동운동을 기회주의로부터 방어한다 는 생각 속에서 그 정점에 도달하는 초중앙집권주의적 입장의 모든 기본적 방 침은 잘못된 것이다. 최근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의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서 일어난 일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 가운데도 기회주 의 일반을 프롤레타리아 운동과 무관한,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요소와 함께 노 동운동의 외부로부터 노동운동에 도입된 어떤 요소로 보는 경향이 명백히 대 두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이 옳다면, 조직에 대한 규약적 규제란 기회주의적 요소들이 주는 압력에 대항하기엔 전혀 쏠모가 없는 것이라는 점이 자명해진 다. 만약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비프롤레타리아적 요소의 대량 유입이 뿐만 부 르주아지의 급속한 경제적 붕괴와 부르주아 자유주의의 더욱 급속한 정치적 붕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폐지와 같은 심오한 원인에서 야기된 것이라면, 당 규약의 몇몇 조항에 대한 특정한 해석을 통해 이러한 조류를 저지할 수 있다 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환상일 뿐이다. 규약의 조항은 단지 조그만 분파나 사적 결사의 존재를 규제할 뿐이다. 역사의 흐름은 언제나 가장 교묘한 범규 조항보다도 위에 있다. 나아가, 부르주아 사회의 정치적인 붕괴로부터 발생하 는 요소들의 대량 유입을 회피하는 것만이 노동운동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 는 것은 매우 그릇된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대변자인 사회민주주 의가 또한 사회의 모든 진보적 이해와, 부르주아 사회 질서 내에서 억압받는 모든 사람들의 대변자라는 생각은 단지 사회민주주의의 강령 속에 이 모든 이해들이 이상적으로 집약되어 있다는 의미로만은 이해될 수 없다. 이러한 생각은, 정당으로서의 사회민주주의가 점점 더 모든 다양한 불만 세력들의 배출구가 됨으로써 실제로 소수의 지배 부르주어지에 대한 전인민의 당이 되는 역사적 발전 과정 속에서 실현된다. 비프를테타리이트 출신 반대자들을 혁명적 프롤레타리이트의 행동 속으로 융합시키는 것, 한 마디로, 프롤레타리이에게로 흘러 들어오는 그들을 동화시키고 흉수하는 것은 어떻게 이 잘다한 동반자들의 현재의 고통을 지속적으로 노동자계급의 궁극적 목표에 복속시키느냐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독일에서와 같이, 분위기를 주도하며 후진적이고 뻐뚜부르주어적인 동반자들을 혁명적으로 이끌 수 있기에 충분한 의식을 가진, 이미 강고하게 훈련된 선진적 프롤레타리이트의 부대가 사회민주주의 내에 형성되어 있어야만 한다. 그럴 경우에는 조직 규약에 대해 중앙집권주의적 개념의 엄격한 적용과 당 규율에 대한 엄격한 규정이 기회주의적 조류에 대한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그러한 조건이 예비되어 있다면 조직 규약은 분명히, 그것이 조례스주의적인 혼란의 습격에 대항하는 프랑스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에게 투쟁의 무기가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또 지금 독일 당 규약의 이러한 방향으로의 수정이 필연적이 된 것과 마찬가지로 기회주의에 대한 투쟁의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당 규약 그 자체가 기회주의를 방어하는 무기로 생각되어서는 안 되며 그것은 단지 당 내에 실제로 존재하는 혁명적 프롤레타리이트 다수의 권위 있는 영향력이 실행되기 위한 외적인 강제수단으로만 생각되어야 한다. 그러한 다수가 없는 곳에서는 가장 준법한 문서적 규정도 그것을 대신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언급했듯이 부르주어적 요소들의 유입만이 사회민주주의 내의 기회주의적 경향의 근원인 것은 아니다. 또 다른 근원이 오히려 사회민주주의 투쟁 자체의 본질 속에, 그 내적 모순 속에 있다. 승리를 향한 프롤레타리이트의 세계사적 전진은, 거기에서 사상 처음으로 인민대중이 모든 지배계급에 반해 자신의 의지를 실현한다는 점에서 독특한 것이지만 이 의지는 현 사회의 한계를 넘어설 때에만 실현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대중은 현 체제와의, 다시 말해 현 체제의 테두리 내에서의 일상적인 투쟁을 통해 서만 이 의지를 발전시킬 수 있다. 거대한 인민대중과 현존 질서를 초월하는 목표를 동일시하고 일상적인 투쟁과 혁명적 격변을 동일시하는 것은, 그 전체 발전 과정을 통해 두 개의 함정, 즉 그 대중적 성격의 상실과 목표의 포기 사이의, 그리고 분파로의 퇴행과 부르주어적 개혁 운동으로의 경사 사이의 좁은 길을 걸어가야 할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변증법적 모순이다.

 

그러므로, 혁명적 의미의 사회민주주의 전술이 사전에 단호하게 결정될 수 있다거나 노동운동이 단번에 완벽하게 기회주의적 오류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극히 비역사적인 환상이다. 확실히 마르크스의 가르침은 기회주의적 사고의 모든 기본적 형태에 대해 강력한 대항 수단이 된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 운동은 대중운동이며 그것을 위협하는 두 개의 함정은 인간의 마음에서가 아니라 사회적 조건으로부터 형성되는 것이므로, 기회주의적 오류에 대항하는 어떤 행동이 미리 취해질 수는 없다. 기회주의는 실제로 명확한 형태를 띠었을 때만 운동 그 자체에 의해(물론, 마르크스주의가 제공한 무기의 도움을 받아) 극복될 수 있다. 이러한 각도에서 보았을 때 기회주의 또한 운동 자체의 산물로, 운동의 역사적 발전에서의 필연적인 한 측면으로 나타나게 된다. 사회민주주의가 아직 초창기 단계에 있고 노동운동의 정치적 조건이 매우 비정상적인 러시아에서야말로 기회주의는 그 상당 부분이 이 근원으로부터, 다시 말해 피할 수 없는 전술적 모색과 실험으로부터, 그리고 극히 예외적이고 유해가 없는 상황 속에서의 현재의 투쟁을 사회주의의 기본 원칙을 갖춘 노선으로 이끌어야 할 필요성으로부터 나오게 된다.

 

만약 이것이 옳다면, 기회주의의 등장은 조직 규약에 대한 특정한 해석을 통해 노동운동의 초기 단계에서 저지될 수 있다는 생각은 더더욱 이상하게 보인다. 그러한 문서적 수단에 의해 기회주의를 파헤치는 시도는 사실상 기회주의가 아니라 사회민주주의 자체를 손상시키며 또한 이러한 시도는 건강하고 생생한 조직의 맥락을 정지시킴으로써 기회주의적 경향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현 사회 질서에 대한 — 이 점이 특히 중요한 점이다 — 투쟁성을 약화시킨다. 즉 수단이 목적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착실하고 활발하게 발전하고 있는 노동운동을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한 중앙위원회의 감독을 통해 잘못된 경향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사회민주주의가 가운데 일과의 열망은 일반적으로, 이미 여러 차례 러시아 사회주의 사상을 회복했던 저 주관주의의 냄새를 풍신다. 존경스러운 역사의 주체인 인간이 그 자신의 역사적 과정에서 연출하는 이 속임수는 흥미롭다. 러시아 전제주의에 의해 것들라고 갈갈이 찢긴 자아가 자신의 사상 체계 속에서, 자신을 권취에 올려 놓고 존재하지도 않는 ‘인민의 의지당’의 이름을 건 음모가의 위원회로서의 자신의 전능을 선포함으로써 원한을 푸는 것이다. 그러나 ‘객관’은 한층 더 강하다는 것이 입증될 것이며, 러시아의 매질은 역사적 과정의 특정 단계의 ‘정당한’ 표현이라는 것이 입증되기 때문에 곧 승리한다. 마침내 역사적 과정의 한층 더 ‘정당한’ 산물, 즉 러시아 노동운동이 등장한다. 그것은 러시아 역사 상처음으로 진정한 인민의 의지를 창출하는 데 무엇보다도 장래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러시아 혁명가들의 ‘자아’는 재배르게 노동운동의 선두에서 서서, 다시 한 번 — 이번에는 사회민주주의 노동운동의 중앙위원회라는 존재로서 — 자신이 역사의 전능한 지배자임을 선포한다. 이 악상뻑론 곡예시는 이제 어디서나 자기 자신의 실수를 주장하고 스스로 역사의 변증법을 배워 가는 노동자계급의 대중 자아만이 이 지배자 역할을 하는 유일한 주체임을 알지 못한다.

 

끝으로, 우리 서로 솔직하게 말하자 — 진정한 혁명적 노동운동에 의해 저절러지는 실수는, 역사적으로 보아, 가장 흘름한 ‘중앙위원회’의 확고부동함보다 잘 수 없을 만큼 더 가치 있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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