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의 벗들의 정치 강령을 들여다보면

 

 

자본주의의 철폐가 아닌 부분적 개량만을 목표로 삼는 나로드니키의 개량주의적 조치는 소부르주아적 한계를 명확히 드러낸다. 따라서 그들의 정치 강령을 체계적으로 검토하여 그 계급적 실체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

 

유자코프는 『농업부』 (《러시아의 부 (루스코예 보가츠트보)》, 제10호에서 “농민 은행 개편, 식민화 부서 설립, 국유지 임대차 규제, 토지 임대 연구 및 규제 등을 매개로 인민 농업을 재건하고 금권 정치의 경제적 폭력으로부터 농민을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경제 발전의 문제점들」에서는 나아가 “마을 공동체에 대한 규제 및 보호 감독의 철회, 공동 경작과 가공의 도입”을 필수적 보완책으로 제시한다. 여기에 크리벤코와 카리셰프는 “저금리 신용, 집단 농장, 이윤 배제”, “기술 혁신”, “물류·유통 기반 시설 확충” 등을 추가적인 개량책으로 덧붙인다.

 

그러나 이들이 제시한 저금리 신용, 기술 개량, 금융 기구 등의 모든 개량주의적 조치는 기존 자본주의 생산 관계를 전제로 한 미봉책에 불과하다. 현존 사회 체제의 틀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자본주의 질서를 해체하기는커녕, 결과적으로 부르주아지의 생산 기반을 강화하고 계급 분화를 촉진하는 데 기여할 뿐이다.

 

현재의 생산관계 아래서 수행되는 어떠한 개량도 실효성을 거둘 수 없으며, 신용, 이민, 세제 개량, 농민으로의 토지 이전 등은 체제적 전환에 기여하지 못한다. 오히려 이는 과도한 ‘보호 감독’과 봉건적 부과금의 잔재, 농민의 토지 예속 등으로 지체되어 있던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을 가속화할 뿐이라고 본 니콜라이 온의 견해는 타당하다. 그는 바실치코프 왕자 (Prince Vasilchikov)와 같이 신용 확대를 주장하는 경제학자들이 “자유주의적 외양”을 띠면서도 실제로는 “자본주의적 관계의 심화와 강화를 도모하고 있다”고 간파하였다. 이들은 ‘농민층 내부’ 생산관계의 적대적 성격을 직시하지 못하고 이를 공론화하거나 수탈당하는 농민의 투쟁을 지원하기보다, 계급 간 화해와 통합을 유도하는 타협적인 조치로 투쟁을 무마하려 시도한다.

 

이러한 개량적 조치들의 결과는 필연적으로 귀결되어 있다. 모든 종류의 신용, 기술 개량, 금융 기구 설치 등 ‘개량주의적’ 조치들은 안정적인 농장을 소유하고 일정 수준의 ‘저축’을 확보한 극소수 소부르주아 계급에게만 선택적으로 활용될 따름이다. 따라서 농민 은행을 비롯한 개량책을 아무리 개편한다 할지라도, 수탈 과정에서 생산 수단과 생계 기반을 상실한 인민 대중의 객관적 처지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는 없으며, 적절한 농업 수단은 물론 생계 유지 수단조차 부족하다는 결정적인 사실을 조금도 바꾸지 못한다.

 

생산 수단의 독점과 사회적 수탈을 전제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집단 농장’이나 ‘공동 경작’에 기초한 농업의 사회화를 도모하려는 나로드니키의 개량주의적 구상은 실상에 부합하지 않는 관념적 구상이다. 생산의 참된 사회화는 개별 마을 단위의 제한된 범위를 탈피한 사회적 규모로 확장된 생산 체제를 요구하며, 현존하는 ‘착취자 계급’의 생산 수단을 몰수하는 계급 투쟁을 필수적으로 동반한다. 그러나 이들이 제시하는 개량적 조치들은 계급적 적대 관계의 본질을 완화·은폐하며, 피착취 대중으로 하여금 근본적인 계급 투쟁 대신 부르주아지의 시혜에 의존하는 속물적 적응 방식에 안주하게 만드는 해악을 초래한다.

 

자본주의적 적대 구조를 둔화시키려는 이러한 관념적 개량주의는 실제 생산 현장에서 부르주아적 지배 질서를 정당화하고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와 관련하여 지식인층이 공장 기업에 대한 통제를 매개로 대중 산업을 주도할 수 있다는 크리벤코의 주장은, 현실의 계급적 대립을 은폐하고 부르주아적 생산 관계를 포장하려는 나로드니키적 사고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공장제 대규모 산업을 수용하면서도 그 자본주의적 본질을 은폐하려는 나로드니키의 관념적 개량주의는 “지식인층 공장주들의 기업에 대한 통제를 매개로 대중 산업을 주도할 수 있게 되었다”라는 주장으로 구체화된다.

 

‘착취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없다면 착취와 투쟁 또한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크리벤코의 명제는 나로드니키 사상 전반에 깔린 관념적 회피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해마다 러시아의 교육 기관에서 배출되는 ‘지식인층’이 생계 기반을 찾아 소부르주아지에 흡수되는 객관적 현실 속에서, 부르주아적 생산 관계를 떠받치는 이들 지식인이 스스로 부르주아지의 범주에서 벗어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가리는 일이다.

 

이들은 현존하는 자본주의의 계급적 대립과 구조적 모순을 직시하기를 철저히 거부하며, 자본주의 체제의 일정한 ‘결함’만 제거된다면 부르주아 질서 내에서도 인민의 생존이 존속할 수 있다는 개량주의적 착각을 유포한다. 결과적으로 나로드니키는 ‘만약’이라는 가정적 명제 뒤에 숨어 자본주의의 적대적 생산 관계를 은폐하고, 부르주아적 지배 질서를 수용·정당화하는 실천적 우를 범한다.

 

“자본주의 생산과 산업의 자본주의화는 공장제 수공업이 인민들로부터 오로지 결별만 하는 출구가 결코 아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또한 인민들의 삶으로 들어와 농업과 원료 산업으로 더 가깝게 접근할 수도 있다. 이는 다각적인 방식으로 성사될 수 있고, 그런 목적에 기여할 수 있다.” (161쪽).

 

크리벤코는 미하일롭스키에 비해 직설적이고 명확하게 자신의 관점을 드러낸다. 미하일롭스키가 본질을 우회하며 미사여구로 논점을 가리는 반면, 실용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크리벤코는 자신의 소부르주아적 견해를 숨김없이 제시한다. “자본주의가 인민의 삶으로 들어올 수 있다”라는 그의 주장은 노동 인민이 생산 수단과 결별하지 않고서도 자본주의적 발전이 성립할 수 있다는 관념적 착각을 보여준다. 이는 ‘인민의 벗들’이 지향하는 바가 자본주의 없는 상품 경제, 강탈도 착취도 없이 인간적인 지주와 자유주의적인 관료의 보호 아래 유지되는 소부르주아적 상품 경제에 지나지 않음을 폭로한다.

 

이들은 자본주의의 본질적 모순을 은폐하고 관료 기구의 개입으로 체제를 정비하려 시도한다. 그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동일 필자의 논문 (「우리의 문화 용병들」, 《러시아의 부 (루스코예 보가츠트보)》, 제12호)을 살펴보면, 크리벤코는 “집단 농장이나 국유화 형태의 산업이 현실적 대체안이 될 수 없다고 단정하며 100루블을 넘지 않는 주식 기반의 합자 회사 형태를 구체적 구상으로 제시한다. 이는 마을 공동체가 지분을 소유하고 주민 일부가 임금 노동자로 종사하면서 토지 소유를 유지하는 형태”를 골자로 한다. 결국 이러한 구상은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와 임노동을 수용하면서 이를 공동체적 외양으로 포장하려는 소부르주아적 개량을 정당화하는 데 귀결된다.

 

자본주의적 모순과 파괴성을 은폐하고 이를 농촌에 조화롭게 결합할 수 있다는 나로드니키의 구상은 소부르주아적 착각의 전형을 보여준다. 마을 공동체가 기업으로부터 배당금을 수령하고 “주민 일부”가 임노동에 종사하도록 만든다는 이들의 방안은, 농민을 토지에 묶어둔 채 현지 자본가의 지배 아래 예속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이는 자본주의적 착취 관계와 임노동을 수용하면서도 이를 공동체적 질서의 외양으로 포장하여 노동 대중을 지속적인 수탈 상태에 머물게 하는 개량주의적 모순에 불과하다.

 

러시아에 실재하는 사회·경제적 관계를 왜곡하는 나로드니키적 관념론은 당대 사회에 지배적으로 유포된 대표적 통념이라는 점에서 이론적 규명의 대상이 된다. 러시아에서 봉건적 생산 양식으로부터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으로의 전환은, 농민으로 하여금 토지에 기반한 생계 유지와 지주에 대한 소작료 지불을 차단하여 과거의 독립적 노동 범주에 속하던 ‘외부 고용’에 예속되는 구조적 결과를 초래하였다. 과거 농민이 누리던 상대적 안녕이란 귀족 관료 기구와 초기 부르주아지의 보호 아래 유지되던 농노제적 무기력의 산물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이러한 역사적 조건을 직시하지 않은 채 자본주의의 적대적 본질을 은폐하고 관료 기구의 개입이나 소부르주아적 개량책으로 농촌 대중을 구제할 수 있다고 믿는 나로드니키의 구상은 현존하는 자본주의적 수탈 구조를 정당화하는 관념적 착각에 불과하다.

 

‘인민의 벗들’은 이러한 체제의 그늘진 실상을 의도적으로 외면한 채 이를 관념적으로 이상화하며 성립할 수 없는 착각을 품는다. 이러한 태도가 ‘착각’에 불과한 이유는, 해당 체제가 이미 동력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농민에 대한 대규모 재산 수탈을 수반하고 과거의 봉건적 ‘고용’ 관계를 자본주의적 ‘임노동’ 착취로 변모시킨 자본주의의 침투로 말미암아 이미 역사적으로 해체되었기 때문이다.

 

소부르주아 사상가들은 농민과 토지의 ‘생산 조건과의 결합’를 유지하길 갈망하나, 정작 이를 단독으로 보장해 주던 농노제로의 회귀는 거부한다. 그러나 그 결합을 성립할 수 없게 만든 주범은 상품 생산과 자본주의의 침투로 말미암은 농노제의 역사적 해체이다. 이들은 농민을 토지로부터 분리하지 않는 외부 고용, 즉 생산이 시장을 향해 이루어짐에도 경쟁을 유발하지 않고 자본을 창출하지 않으며 대중을 자본의 노예로 전락시키지 않는 형태의 외부 고용이라는 관념적 헛된 구상을 제시한다. 사회학의 주관적 방법론에 의존하는 이들은 현실의 개별적 요소 중 편의에 따라 이로운 점만을 ‘취하려’ 시도한다. 그러나 이러한 유치한 갈망은 현실을 무시하는 반동적 착각이자, 자본주의 체제가 지닌 발전적이고 변혁적인 측면을 파악하고 활용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드러낼 뿐이다. 결국 이는 착취와 억압의 공포로 가득 차 벗어날 수 없었던 ‘반(半)농노·반(半)자유 노동’이라는 과거의 지배 질서를 영속화하는 조치에 동조하는 결과로 귀결된다.

 

반동적 경향 내에서 ‘인민의 벗들’이 갖는 고유한 위치를 입증하기 위해 두 가지 사례를 제시할 수 있다.

 

모스크바 젬스트보 통계 자료에는 포돌스크 군 K 여사 농장에 대한 기록이 수록되어 있다. 해당 농장은 모스크바 통계학자들뿐만 아니라 V. V. 에게도 매우 높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V. 오를로프 (Orlov)는 이 K 여사의 농장을 ‘농업의 건전한 상태와 사유지 경영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대표적 사례’로 제시하였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K 여사는 겨울철 밀가루를 대여해 주는 대가로 지역 농민들의 노동력을 확보하여 농장을 운영하였다. 이러한 시혜적 조치 덕분에 해당 지역 농민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곡물 수급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 여인은 농민들에게 특유의 온정을 베풀고 구제를 제공하였으며, 그 결과 농민들은 해당 지역에서 가장 유복한 계급에 속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성 니콜라스 날조차 버티지 못하던) 예전과 달리 거의 새로운 추수철에 이르기까지 충분한 식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의문은 바로 이 지점에서 제기된다. N. 카블루코프 (Kablukov) (제5권, 175쪽)와 오를로프 (제2권, 55~9쪽 등)의 주장처럼 ‘이러한 방식’이 ‘농민과 지주 간의 적대적 이해관계’를 해소할 수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K 여사의 농장 경영은 본질적으로 농민의 노동력을 수탈하는 구조에 기반하므로, 착취 관계는 전혀 지워지지 않는다. 피착취자를 향한 온정주의적 태도 뒤에 숨은 착취의 본질을 보지 못한 K 여사의 시각적 한계는 차치하더라도, 경제학자이자 통계학자인 오를로프의 판단은 정당화될 수 없다. 그의 시각은 자본가의 자선적 형태에 매료되어 잡화점이나 주거 시설 등을 제공하는 공장주의 사례를 열광적으로 옹호하던 서구 박애주의자들의 논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적대적 이해관계가 부재한다는 착시를 유발하는 단편적 ‘사실’에 집착하여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구조적 본질을 외면한 편착에 불과하다. 즉, 나무를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본 비판의 첫 번째 핵심이다.

 

두 번째 핵심은 다음과 같다. 오를로프의 설명에 따르면 K 여사는 우수한 종자를 제공하여 높은 수확고를 거두게 하여 농민들로 하여금 가축을 확보하고 ‘유복한’ 농장을 유지하도록 도왔다고 한다. 설령 ‘이들 농민’이 완전한 경제적 자립을 이루고, 연중 충분한 곡식을 확보하며, 적정 규모의 ‘목장 및 목초지’를 소유하는 이상적인 조건이 갖추어졌다고 전제해 보자.

 

그렇다면 농민 경제가 완전히 번영을 구가하는 상태에서도 이들이 ‘K 여사의 사유지 노동을 철저하고 신속하게 수행할 것’이라고 볼 수 있는가? 또한, 농민들에게 온정주의적 보살핌을 제공하여 이윤을 수출하는 지주의 행태가, 목장 및 목초지의 결핍이라는 농민들의 궁핍한 현실보다 더 강력한 노동 유인으로 작용한다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인민의 벗들’의 인식의 구조 역시 동일한 논리적 궤적을 그린다. 진정한 소부르주아 관념론자로서 이들은 착취의 폐기 대신 완화를, 계급적 대립의 해결 대신 회유를 추구한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을 향한 비판에서 출발한 이들의 관념적 구상은, 지주와 자본가의 시혜적 태도가 전제된다면 농민이 ‘유복한 상태’에서 자신의 ‘의무’를 다할 것이라는 생각의 한계 내에 매몰되어 있다.

 

유자코프는 「러시아 인민의 토지 소유 할당량」 (《러시아의 부 (루스코예 보가츠트보)》, 1885년, 제9호)에서 자본주의적 착취를 배제하는 ‘인민적’ 토지 소유의 적정 규모를 제시하고자 했다. 크리벤코의 논의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인민의 삶에 자본주의를 침투시키는” 시각에서 문제에 접근하였다. 지주 신분인 그는 분여지에서 “식량과 지불금”을 충당하고 나머지는 “일자리”를 얻어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농민이 토지와의 연관성을 유지한 채 ‘분여지’에서는 지주에게, ‘일자리’에서는 자본가에게 이중으로 착취당하는 구조적 처지를 정당화하는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이중 착취와 소생산자의 예속적 생활 조건은 피억압 계급의 주체적 투쟁 역량을 마비시키며, 결국 이는 반(半)중세적 억압 질서를 영속화하는 결과로 귀결된다.

 

그러나 개혁 이후 급속히 발전한 자본주의는 반(半)봉건적·가부장적 농민층이라는 구체제의 지지대를 해체하고 이들을 중세적 예속에서 끌어내어 현대 자본주의적 관계로 분리해 냈다. 자본주의가 농민을 생존을 위해 이동하는 임금 노동자로 전환함에 따라, 착취의 본질은 특정 개별 주체의 약탈이 아닌 체제 자체의 계급적 착취라는 사실이 명확히 드러났다. 이처럼 자본주의의 침투가 농촌 대중을 복잡한 사회·정치적 역동 속으로 포섭해 들어가자, ‘인민의 벗들’은 구체제의 몰락과 파괴에 탄식하며 과거로의 회귀를 주창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새로운 생산 양식이 지닌 구조적 역동성과 옛 착취 체제에서 벗어난 새로운 사회 세력의 등장이라는 혁명적 측면을 포착하지 못한 채, 반동적 착각을 답습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인민의 벗들’은 현 체제의 어떠한 급진적 변화도 추구하지 않는다. 이들은 현존하는 사회적 토대 위에서 시행되는 자유주의적 조치들에 전적으로 만족하며, 크리벤코 역시 이러한 개량책을 고안하는 과정에서 관료적 행정 수완을 과시하는 데 머물러 있다.

 

그는 “구체적 조사를 거쳐 인민 산업을 종합적으로 연구하고 급진적으로 전환”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즉, “산업을 인민의 삶에 결합할 수 있는 요소와 그 과정에서 직면할 구조적 장애 요인을 구분하여 정밀하게 분석할 것을 요구한다.”

 

크리벤코는 산업을 자본주의화의 진행 여부 및 “대규모 산업과의 경합 양상”에 따라 분류하고 체계화된 분할의 사례를 제시한다.

 

그는 이러한 구분을 바탕으로, “첫 번째 유형인 소생산 영역에서는 자본의 지배로부터 독립성이 유지될 수 있다”고 결론 내린다. 그러나 상품 생산이 진행되는 조건에서 소생산자들이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로 분화되는 시장 관계, 지역 시장의 확대와 거대 시장으로의 흡수, 기술 발전에 수반되는 자본주의적 경향성을 회피하는 것은 성립할 수 없는 전제에 불과하다.

 

한편 ‘대규모 생산이 불가피한’ 영역에 대해 그는 자본주의적 집중과 경합할 수 있는 대체 조직 형태의 구상을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값싼 신용의 제공, 중간 상인 배제, 집단 농업의 도입, 고용주 이윤의 사회적 처분, 시장 확보, 기술 개선과 더불어 여타 혜택으로 보상받는 조건에서의 임금 삭감 등으로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 기계 설비 등에 대응하는 대규모 생산 조직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리적 구조는 수사적으로 원대한 이상을 제시하면서도 실제 행위에서는 전형적인 자유주의적 개량주의로 귀결되는 ‘인민의 벗들’의 본질을 명확히 드러낸다. 이들은 고용주 이윤의 사회적 처분과 대규모 생산 조직화를 논의의 출발점으로 설정한다. 이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최종 목표와 외견상 일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는 방법론에서 결정적인 균열이 발생한다. 고용주의 존재를 배제한 대규모 생산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생산을 시장 규율이 아닌 생산자 결사체의 지배하에 두고,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를 사회적 소유로 전환하는 상품 경제의 전면적 폐기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이행은 분산되고 고립된 소생산 과정을 단일한 사회적 생산 체계로 재편하는 생산 형태의 연쇄적 전환을 요구하며, 이는 오직 자본주의가 창출한 물질적 토대 위에서만 성립 가능하다.

 

그럼에도 ‘인민의 벗들’은 자본주의적 토대를 수용하기를 거부하며, 상품 경제의 철폐에 대해서는 외면으로 일관한다. 이들의 구상은 현존 사회적 생산 체제의 테두리를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생산 수단의 독점에 기반한 고용주의 이윤을 박탈하기 위해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중적 혁명 운동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들은 계급 투쟁의 필요성을 전면 부정하며 자본가 계급의 자기 관리 기구 외에 독자적 계급 주체가 존재할 수 있음을 포착하지 못한다.

 

결국 이들은 고용주 이윤을 실질적으로 제약할 어떠한 의사도 지니지 않는다. 크리벤코는 ‘이윤의 사회적 처분’이라는 표면적 구상이 초래할 파급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이를 신용 제공, 유통 구조 조직, 기술 개선 등의 수단으로 ‘상쇄’할 수 있다는 타협안으로 후퇴한다. 이는 이윤 추구라는 자본의 정당성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자본주의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소부르주아적 생산자층을 자본주의 체제 내에 고착시키는 지극히 온건한 자유주의적 조치로 귀결된다.

 

나아가 소부르주아적 계급 기반을 은폐하지 않는 이들의 입장은, 이윤율의 보전이 ‘임금 삭감’의 집행을 동원하여 달성될 수 있다는 주장으로까지 확장된다. 이는 거대 자본과 소자본 간의 경쟁에서 소자본가의 생존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노동 시간 연장과 임금 삭감을 동원해 온 소부르주아적 생존 전략을 지속적으로 대변한 결과이다! 이등른 소자본의 보전을 명목으로 ‘타당한 보상이 전제된 임금의 일부 삭감’을 대책으로 제시하며, 결과적으로 자본가의 ‘이윤’ 구조를 철저히 보장하고 노동자에 대한 수탈을 정당화하는 반동적 논리에 이르게 된다.

 

《러시아의 부 (루스코예 보가츠트보)》의 자유주의적 행정가들이 지닌 부르주아적 본질은 독점 문제를 다룬 《러시아의 부》 제12호에 실린 「국내 문제 연대기」에서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해당 기사의 필자는 “독점과 신디케이트의 형성을 발달한 산업이 지향하는 최상위 단계”로 설정하면서, “자본주의적 경쟁이 미숙한” 러시아에서 이러한 현상이 출현하는 것에 경악을 표한다. 그는 “설탕과 석유 등 주요 산업 분야의 1인당 소비량이 미미하다는 사실을 들어, 이들 산업이 아직 태동기에 머물러 있으며 향후 막대한 자본을 흡수하며 확장될 여지가 크다”고 진단한다. 즉, 자본주의적 독점의 형성을 비판적으로 아우리기보다 자본의 팽창과 시장 확대를 정당화하는 부르주아적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실질적인 문제에 접근하는 순간, 필자가 국내 시장의 위축에 대해 《러시아의 부 (루스코예 보가츠트보)》가 가장 선호하는 발상을 잊어버렸다는 사실은 특징적이다. 그는 국내 시장이 여전히 상당한 발전 전망을 갖고 있으며, 위축되지 않을 것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그러한 이러한 결론에 도달한 것은 소비 규모가 더 큰 서구와의 비교에 기반하여 서구의 문명 수준이 더 높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사람들을 상호 간의 더욱 빈번한 교류로 이끌고 각 지역이 중세식으로 고립되어 있던 상황을 무너뜨린 자본주의 기술의 발전, 상품 경제와 교환의 성장 외에 이러한 문명의 물질적 토대는 무엇인가? 예컨대 반(半)중세적 농민층이 아직 농촌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로 분화되지 않았던 대혁명 이전 프랑스의 문명 수준 역시 러시아와 비슷한 수준이 아니었던가? 따라서 필자가 러시아의 생활상을 좀 더 면밀히 검토했더라면, 자본주의가 발전한 지역 농민층의 생활 수준이 순수 농업 지역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을 포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는 주민들의 삶 전체에 산업으로서 영향력을 미칠 정도까지 발전한 수공업을 연구한 분석가들이 한결같이 지적하는 바다.

 

‘인민의 벗들’은 이러한 실질적인 변화나 발전 경향에 주목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해명이란 단지 ‘문명’의 확산이나 전반적인 삶의 복잡화 같은 피상적 현상에 머무르며, 정작 그 문명과 복잡다단한 사회적 구조를 성립하게 하는 물질적 토대에 대해서는 분석을 도외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농촌의 객관적 경제 실태를 세밀히 검토했더라면, 국내 시장을 창출하고 확장하는 근본적 동인이 다름 아닌 농민층의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로의 계급적 분화라는 사실을 파악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이들은 시장의 확장이 부르주아지의 성장으로 직결된다는 사실을 도외시했다. 「국내 문제 연대기」에서 제시된 “생산 발전 수준이 미비하고 자발성이 부재한 조건에서 독점은 국가 경쟁력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주장이나, 담배 독점이 “인민 유통의 영역에서 1억 5,400만 루블을 수탈할 것”이라는 추산은 이러한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경제 체제의 토대가 상품 경제이며 그 발전 경향을 주도하는 세력이 부르주아지라는 점을 망각한 논의다. 해당 필자는 부르주아지가 독점의 제약을 받는다는 본질 대신 ‘국가’를 상정하고, 부르주아적 유통 관계 대신 ‘인민’ 유통이라는 관념적 개념을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시각의 한계를 명확히 밝히기 위해, ‘인민의 벗들’ 사이에서 권위 있는 매체로 간주되던 《조국연보》 (1872년 제2호)에 실린 『금권정치와 그 토대』의 한 대목을 인용할 수 있다.

 

“마를로(Marlo)에 따르면 금권 정치의 핵심적 특징은 자유주의적 정치 체제 및 취득의 자유라는 원칙에 대한 옹호다. 이 기준을 적용해 지난 8~10년의 경과를 돌이켜보면 자유주의 측면에서 상당한 발걸음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하게 된다. …… 어떠한 언론 매체든 일정하게 민주주의적 원칙을 표방하며 인민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주의적 수식과 병행하여, 또는 이를 빌미로 삼아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금권 정치적 지배 구상이 지속적으로 관철되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 상인들이 재무장관에게 전달한 인사말은 이러한 구조적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은 “러시아의 금융 정책이 사기업의 광범위한 확장 여지에 기반하여 유의미한 결실을 거둔 점”에 대해 대표적 부르주아 조직으로서 감사를 표했다. 이는 “금권정치적 요소와 경향이 러시아 사회 내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자본가 계급 스스로가 해답을 제시한 사례다.

 

이처럼 개혁 초기, 유자코프의 주장과 달리 ‘인민의’ 생산이 아닌 금권 정치의 발전 경로가 확립되던 시기의 선대 지식인들은 러시아 사기업이 지닌 부르주아적 성격을 자각하고 있었다.

 

‘인민의 벗들’이 실질적인 경제 발전 과정에서 작동하는 ‘진취성과 자발성’을 논할 때 그 적대적·착취적 성격을 도외시하는 것은 이론적 한계를 드러낸다. 이들은 “인민” 유통과 “국가 경쟁력”의 확장을 언급하면서도, 그것이 관철되는 부르주아적 조건은 의도적으로 배제한다. 물론 노동 인민의 처지를 직접적으로 악화시키는 독점이나 중세적 전제 제도를 비판하고 이를 철폐해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하다. 그러나 노동 인민을 예속하는 핵심 기제는 중세적 속박 위에 포개진 현대 부르주아적 생산 관계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독점의 폐지, 즉 중세적 잔재의 청산은 자본주의적 비참함에 가중되던 전근대적 수탈을 제거한다는 점에서 전체 노동 “인민”의 이익에 부합한다. 따라서 이러한 봉건적 유산은 가급적 철저하게 해체되어야 한다. 이는 부르주아 사회가 물려받은 구조적 제약을 청산함에 따라 노동 계급의 계급적 주체성을 확보하고,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이들의 계급 투쟁의 조건을 선명하게 정립하기 위함이다.

 

부르주아 체제에 맞서는 노동 계급의 투쟁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독점과 제반 중세적 제약을 폐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제시해야 했다. 중세와 봉건 제도에 맞서 전체 ‘인민’의 이해관계가 상호 결합할 수 있다고 전제하거나, 그 내부에서 전개되는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간의 화해할 수 없는 적대를 도외시하는 것은 부르주아적 시각에 불과하다.

 

‘인민의 벗들’은 농촌의 실제적인 요구와 계급적 조건에 관심을 두지 않은 채 현상을 피상적으로 수용하는 한계를 보인다. 예컨대 크리벤코는 “농촌에 필요한 전문 직종과 지식인의 목록을 제시한 언론의 논의를 인용하며, 의사, 보조 의사, 법률가, 교사, 도서관 사서, 서점주인, 농경제학자, 삼림 전문가와 농업 전문가, 다양한 분야의 기술자, 신용 기관 관리자 등 다채로운 직업군이 망라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성은 농촌 사회 내부의 계급적 분화와 수탈 관계를 도외시한 채 지식인층의 관료적·개량주의적 구상을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

 

‘인민의 벗들’이 제시하는 삼림·농업 전문가, 기술자 등 지식인 인력에 대한 농촌의 수요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때 그들이 말하는 ‘농촌’의 실체가 무엇인지 규명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크레벤코가 ‘지식인’이라 칭하는 ‘전문가’들에게 대가를 지불할 자금력을 갖춘 주체는 지주와 기업형 부농층에 국한된다. 이들 상위 계급의 농촌은 실제로 전문가의 기술적 지원과 신용, 창고 시설을 지속적으로 필요로 해왔으며, 이는 기존의 경제 문헌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나 ‘인민의 벗들’이 간과하고 있는 또 다른 농촌, 즉 수탈과 몰락으로 피폐해지 광범위한 민중의 농촌이 존재한다. 이들은 전문가의 노동에 대가를 지불할 경제적 여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당장의 생계조차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인민의 벗들’이 구상하는 창고 건설 정책이 이러한 빈곤 농민층을 위한 것이라 주장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허상이다. 생산 수단을 상실하거나 영세한 농지만을 보유한 농민들에게는 보관할 생산물조차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미 과거 기근 당시 생계 유지를 위해 시골과 도시의 부농들에게 토지와 생산 수단을 담보로 잡힌 채 자신의 ‘노동력’만을 유일한 상품으로 보유한 프롤레타리아트로 전락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력을 보관할 ‘창고’란 관료적 개량주의 구상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자들’을 자처하는 집단이 제시하는 ‘농민층’ 내 기술적 발전론은 실상 농촌 내부에서 전개되는 대규모 착취 구조를 도외시한 피상적 주장에 불과하다. 예컨대 《러시아의 부 (루스코예 보가츠트보)》 제2호에서 카리세프는 아메리카귀리, 바라호밀, 말먹이 귀리 등 “개량종 씨앗의 보급 사례”를 들며 농민 농업이 “기술적 개선”을 이루었다고 강변한다. 그는 “농민들이 종자 육성용 필지를 별도로 설정하여 선별된 곡물을 재배하거나”, 경운기·탈곡기·종자 분류기 등 “개량 농기구”를 도입하는 양상을 성과의 증거로 제시한다. 나아가 인산비료, 아교 반죽, 비둘기 배설물 같은 “다양한 비료의 활용 및 이를 위한 젬스트보 상점 설치 구상”까지 언급한다. V. V.의 『농민 농업의 경향』에서 자료를 인용한 카리세프의 이러한 서술은 농촌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배제한 채 부르주아적 개량주의의 관점을 관념적으로 옹호하는 이론적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러시아의 부 (루스코예 보가츠트보)》 제2호에 게재된 카리세프의 서술은 관념적 위선과 소부르주아적 관념론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빈곤과 부채에 시달리는 농민들이 토지에 집착하며 개량을 시도하는 모습을 ‘희망’과 ‘시혜’라는 피상적 틀로 포장한다. 그러나 인산 비료, 종자 분류기, 탈곡기 등 선진 기술 수단을 도입할 자금력을 갖춘 주체는 영세 농민이 아닌 부농층에 국한된다. 사회적 생산 관계와 계급 분화를 도외시한 채 이를 전체 ‘농민’의 발전으로 치환하는 것은 정치경제학적 현실에 대한 무지이자 부르주아적 개량주의의 왜곡된 시각에 불과하다.

 

나아가 카리세프는 “농민의 사기를 북돋우고 젬스트보 상점이나 박물관, 모범 농장과 같은 외부적 지원을 확충해야 한다”는 관료주의적 계몽론을 펼친다. 그러나 이는 농촌 내부에서 전개되는 대규모 수탈과 농민층의 프롤레타리아트화 과정을 완전히 은폐하는 주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토지와 생산 수단을 상실하고 자신의 노동력만을 보유한 채 부농에게 예속되어 가는 민중의 현실을 외면한 채, “과학”과 “위원회에 기초한” 개량을 훈계하는 행태는 ‘인민의 벗들’이 지닌 소부르주아적 본질과 지식인 중심의 한계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인민의’ 소부르주아 계급 벗들은 소부르주아식 발전의 향연을 즐기고 있다!

 

농촌 경제에 대한 구조적 분석만으로도 우리는 핵심적 사실, 즉 ‘농민층’의 대규모 수탈과 농업 생산 내 기술적 발전과 동시 병행한다는 구조적 현실을 목격하게 된다. 나아가 ‘농민층’을 파편화된 분화 과정을 외면한 채 동질적인 단일체로 규정하는 주장의 허구성 및 이러한 기술적 발전이 띠는 부르주아적 성격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인민의 벗들’은 이러한 구조적 모순에 완전히 귀를 닫고 있다. 과거 러시아 인민주의의 혁명적 유산을 상실한 이들은 농민층 내부의 계급 적대를 이해하지 못했던 초기 인민주의의 결정적 한계마저 바로잡지 못한 채 한층 더 퇴행하고 있다.

 

70년대 인민주의자들은 농촌 사회 내부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계급 적대를 감지하지 못했기에, 이를 단순히 기생적 착취자인 ‘쿨락’과 공산주의적 본성을 지닌 ‘농민’ 사이의 대립으로만 단순화하여 파악했다. 그러나 글렙 우스펜스키 (Gleb Uspensky)는 이러한 보편적 착각을 거부하고 회의주의적 시각에서 현상의 본질을 파악했다. 농촌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춘 그는 고리대금업자와 채무자의 단순 대립 축을 벗어나 농민들 간의 내부적 경제 관계 전반에 개인주의적·자본주의적 원리가 이미 뿌리 깊게 작동하고 있음을 정확히 포착했다.

 

농촌 경제에 대한 정확한 실증 자료가 부족하고 농민층의 계급적 분화가 미미했던 1860~70년대에 발생한 이론적 한계는 시대적 구속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농민층의 몰락이 가속화되고 기술적 발전 경향이 동시에 확인되는 최근의 국면에서도 이러한 분화를 외면하는 것은 의도적인 현실 회피에 불과하다. V. V. 역시 해당 주제를 다룬 저술에서 기술·농경학적 측면의 개선을 명확한 사실로 제시하지만, 이는 농민층에 대한 대규모 수탈과 구조적으로 상응하는 현상이다. ‘인민의 벗들’은 ‘농민’의 기술적 수용 태도에만 주목할 뿐, 농민이 토지로부터 분리되는 구조적 과정은 도외시한다. 나아가 농민 분리와 함께 토지가 자본으로 전환되고 국내 시장이 형성되는 경제적 현실을 외면하는 태도를 보인다. 공동체 농민 내부에서 전개되는 이러한 대립적·분화적 과정을 부르주아적 사회 성격 이외의 논리로 설명할 길이 없으며, 이들이 내세우는 인도주의적 수사는 과학적 분석과 실천적 한계를 은폐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현질서에 대한 개량주의적 타협을 정당화하는 ‘인민의 벗들’의 서술은 소부르주아적 한계를 명확히 드러낸다. 크리벤코는 “거창한 담론보다 사소한 실천이 더 낫다”는 논리를 펼치며, 학교 설립, 법률 자문, 젬스트보와의 연계에 바탕을 둔 수공업자 창고 설치 등을 그 성과로 제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은 자본주의적 수탈과 계급 분화라는 구조적 근본 원인을 외면한 채, 체제의 틀 안에서 잔재적 모순을 미봉하려는 관료주의적·개량주의적 땜질에 불과하다.

 

이러한 개량적 조치들은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를 봉건적 잔재로부터 절연하여 부르주아 체제를 공고히 하는 자유주의적 범주에 속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노동 계급의 투쟁 대상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할 뿐이다. ‘인민의 벗들’은 “온건한 자유주의적 행동”을 도덕적 출구로 제시하며 사회민주주의자들의 혁명적 노선을 비판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부르주아적 질서에 봉사하는 개량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 인민주의자들의 이론이 비현실적인 유토피아주의에 머물렀다 할지라도, 그들은 이러한 소부르주아적 타협안에 단호히 반대했다. 반면 현대의 ‘인민의 벗들’은 과거 인민주의의 혁명적 지향을 상실한 채, 체제 수용적인 온건 자유주의 노선으로 퇴행했음을 스스로 자인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까마득한 과거의 일에 불과하며, ‘인민의 벗들’은 이러한 역사적 유산을 완전히 망각한 태도를 보인다. 정치 제도에 대한 유물론적 비판을 상실하고 현대 국가가 띠는 계급적 성격을 파악하지 못할 때, 정치적 급진주의는 지식인 중심의 관료주의적 기회주의로 전락할 수밖에 없음이 이들의 이들의 전술적 행태에서 단적으로 입증된다.

 

이러한 기회주의의 단적인 사례로 “국유재산부를 농업부로 개편하는 조치가 제시된다.”

 

유자코프 “이러한 행정 기구의 변경이 경제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도 있으나 단순한 관료 직무의 교체에 그칠 수 있다” (《러시아의 부》, 제10호)고 주장한다.

 

결국 이는 지배 기구에 ‘청원을 제시하는’ 주체가 누구인가에 따라 정책의 향방이 결정된다고 보는 시각으로, 기존 사회의 계급적 이해관계와 수탈 구조 자체는 전혀 문제 삼지 않는 소부르주아 개량주의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같은 글에서 유자코프는 “경제적 강자로부터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국가 개입의 첫 번째 본연의 임무”라는 주장을 이어간다. 《러시아의 부》 제12호에 실린 「국내 문제 연대기」의 필자 역시 동일한 논지로 유자코프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유자코프는 이러한 박애주의적 수사가 서유럽 소부르주아 관념론자들의 논리와 치밀하게 연동된다는 점을 숨기지 않으며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글래스스톤 (Gladstone)의 토지 법안들, 비스마르크 (Bismarck)의 노동자 보험, 공장 감독, 러시아의 농민 은행 구상, 이주의 조직화, 쿨락의 이익에 반하는 조치들 등은 모두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국가 개입이라는 동일한 원칙을 적용한 시도이다.”

 

이 대목은 그나마 솔직함이라는 미덕은 지닌다. 필자는 글래스스톤이나 비스마르크처럼 현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기를 고수하고자 하며, 그들과 마찬가지로 부르주아 사회를 수습하고 재편하길 바랄 뿐 이에 맞서 싸우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직설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현재의 사회에 기초해 지배 계급의 이익을 수호하는 기구인 국가를 개혁의 도구로 본다는 그들의 근본적 이론적 신념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들은 모든 계급 위에 존재하는 전지전능한 국가를 정당화하며, 국가가 노동 계급을 ‘지원할’ 뿐만 아니라 적합한 체제를 창출해 내리라 기대한다. 따라서 소부르주아 관념론자들인 이들에게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생산 조건 자체로 인해 해체·고립되어 있고 한정된 공간과 착취자에게 묶여 있는 소생산자들은, 간혹 프롤레타리아만큼이나 고통받으면서도 자신들이 겪는 착취와 억압의 계급적 성격을 파악하지 못한다. 바로 이 점이 이들을 반동적 계급으로 만드는 소부르주아지의 근본적 특징이며, 이들은 부르주아 사회에서 국가 역시 계급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위대한 ‘인민의 벗들’이여, 그렇다면 본 노선이 지금까지, 특히 토지 개혁 이후 더욱 본격적으로 부르주아 계급과 자본주의만을 ‘지원하고 보호하며 창출’해 온 까닭은 무엇인가?

 

국내 경제가 상품 생산과 상공업의 발전으로 규정되는 역사적 시기에, 절대적이자 계급 중립적이라 자처하는 국가 기구가 이러한 방향성을 띤 배경은 무엇인가? 생산 양식의 구조적 변화가 사회 깊숙이 정착됨에 따라 제도적 장애물이 수반되었을 뿐이며, ‘국가 기구’ 역시 실제로는 특정한 계급적 기반을 ‘창출하고 수호했을’ 따름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경제적 변화를 단순한 정부 정책의 산물로 재해석하여 축소하는 태도는 타당한가?

 

‘인민의 벗들’은 이러한 계급적·구조적 물음에 전혀 답을 내놓지 못한다! 이들에게 사회적 모순에 대한 과학적 분석은 ‘유물론’, ‘변증법’, ‘형이상학’이라는 명목으로 매도 대상이 될 뿐이다. 이들은 정부를 향해 온건하고 자비로운 정책을 건의하고 간청하는 것만으로 사회 문제 전체가 원만히 해결될 것이라는 유토피아적 관념론에 골몰해 있다. 이러한 소부르주아적 순응주의와 자유주의적 비굴함에 있어서 《러시아의 부》는 러시아 자유주의 언론 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퇴행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유자코프는 “염세 및 인두세의 폐지와 토지 상환금 감축을 언급하며, 이를 인민 농업에 대한 국가의 전향적 정책이자 성과”로 평가한다. 그러나 이러한 개량주의적 관점은 수탈의 형태적 전환을 외면한 피상적 시각에 불과하다. 염세 폐지의 이면에는 각종 간접세의 부과와 인상이 뒤따랐으며, 인두세 폐지 과정에서는 국유지 농민의 부담금이 대폭 인상되었다. 또한 상환금 감축 조치 이후에도 지불 대금과 토지 수익 간의 심각한 격차가 지속되어 봉건적 면역 지대의 수탈 구조가 사실상 재현되었다. 그럼에도 ‘인민의 벗들’은 이러한 구조적 모순을 외면한 채 국가의 시혜적 조치에 의미를 부여하고 제도적 개량에 의존하는 소부르주아적 한계를 지속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단지 꽃에 불과하며, 이제 과실의 실체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1880년대는 인민의 부담을 경감했고 인민이 완전히 몰락하지 않도록 구제했다.” (앞서 언급한 조치들에 힘입어!)

 

이 구절은 앞서 인용한 미하일롭스키의 주장, 곧 우리가 여전히 프롤레타리아를 창출해야 한다는 강변과 부합하는 부끄러운 노예근성의 고전적 표상이다. 이와 관련하여 러시아 자유주의의 진화에 대한 시체드린의 예리한 묘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자유주의자는 정부 당국을 향해 ‘가급적’ 개혁을 해달라고 간청하는 것으로 시작해, ‘적어도 일부라도’ 달라고 구걸하다가, 마침내 ‘아무렇게나 보잘것없는 것이라도’ 달라고 애원하는 지점까지 일관된 수동성을 고수한다. ‘인민의 벗들’ 역시 이러한 굴종적 입장을 받아들였을 뿐이라고 규정할 수밖에 없다. 당시는 기근이 수백만 인민을 덮친 시기로, 이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상인의 인색함에서 소심함으로 이행했을 뿐임을 알면서도, 이들은 정부가 인민을 철저한 몰락에서 구제했다는 주장을 지면에 버젓이 실었다! 몇 년이 지나 농민층에 대한 수탈이 더욱 가속화되고, 정부가 농무성을 신설하는 한두 가지 직접세를 폐지하는 대신 간접세 대여섯 가지를 새로 부과하여 기근이 4천만 인민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더라도, 이들 신사는 똑같은 방식을 되풀이할 것이다. 굶주린 인구가 5천만 명이 아니라 4천만 명에 불과한 것은 정부가 인민의 부담을 경감하고 몰락에서 구제한 덕분이며, 정부가 ‘인민의 벗들’의 제언을 수용하여 농무성을 창설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이 밖에도 또 다른 사례가 존재한다.

 

《러시아의 부》 제2호에서 러시아가 “다행히도” (원문의 표현 그대로다!) 후진국이며 “자신의 경제 체제를 연대의 원칙에 기초할 수 있게끔 해준 요소들을 유지해왔다”고 주장한 「국내 문제 연대기」의 필자는, 따라서 러시아가 “국제 문제에 있어서 경제적 결속의 주장자”로 행동할 수 있으며 러시아에 주어진 이러한 기회는 부인할 수 없는 “정치적 역량”에 힘입어 강화되고 있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모든 반동적 행위의 변치 않는 가장 확실한 보루는 바로 유럽의 경찰관인 러시아였다. 러시아 정부는 국내에서 억압받는 러시아 인민으로 하여금 서구의 인민을 억압하기 위한 도구로 종사하게 하는 치욕스러운 입장에 서게 했다. 그것이 바로 경제적 결속의 주장자로 포장된 경찰관 러시아의 실체다!

 

따라서 위의 주장은 실로 모든 한계를 넘어서는 궤변이다! ‘인민의 벗’들은 그 어떤 자유주의자조차 능가한다. 이들은 정부에 간청하고, 정부를 칭송하며, 지극한 존경과 열정을 다해 기도를 바친다. 그들이 이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바닥에 이마를 찧는 소리는 지나가던 이조차 섬뜩함을 자아낼 정도다.

 

여러분은 속물에 대한 괴테의 정의를 기억하는가?

 

속물이란 무엇인가?

 

텅 빈 속을

 

두려움과 신의 자비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득 채운 자다.

 

— 괴테

 

이러한 정의는 러시아의 실정과 온전히 맞닿아 있지는 않다. 신은 이들에게 부차적 존재에 불과하며, 핵심은 정부 당국이다. 위 정의에서 ‘신’이라는 단어를 ‘정부 당국’으로 대체한다면, 자유주의적 러시아 ‘인민의 벗들’이 지닌 이념적 상투성과 도덕적 수준, 그리고 시민적 용기의 실상을 정확히 포착하게 된다.

 

정부를 바라보는 시각이 이토록 터무니없는 ‘인민의 벗들’은 이른바 ‘인텔리겐처’에 대해서도 상응하는 태도를 보인다. 크리벤코는 “문학이 사회적 현상들을 그 의미에 따라 평가하고 능동적 노력을 장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교사와 의사 등 전문가가 부족하여 인민이 가난과 병마, 문맹에 시달리는 현실을 문학이 지속적으로 발언해 왔음을 강조한다. 나아가 카드놀이, 연극 감상, 귀족 주최 파티에서의 사치스러운 유흥에 환멸한 이들이 희귀한 자기희생 정신을 발휘하여 현장으로 나설 때 문학이 이들을 환영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이는 소부르주아 지식인이 향락적 생활 양식을 절제하는 정서적 결단 따위를 대단한 계급적 헌신으로 포장하고, 구조적 모순에 대한 과학적 규명 대신 지식인의 시혜적 계몽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관념론적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정치적 연륜으로 지혜를 얻게 된 왕년의 운동가는 사무적인 어법을 취하며 지방 감독관, 시장, 젬스트보 의장이나 위원 등 새로 제정된 규정에 따른 직위를 수용할 것인가를 두고 “망설이는” 이들을 비판한다. “그는 시민적 의식이 발달한 사회라면 필수적인 성격을 지닌 개혁을 주체적으로 수용하여 그 적극적 측면을 활용·발전시키고, 바람직하지 못한 요소는 사문화할 것이며, 개혁에 아무런 유의미한 내용이 없다면 해당 기구 자체를 완전한 소외 상태로 남겨둘 것이므로 이러한 망설임은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는 체제의 제도적 기구에 진입하여 개량적 미봉책을 수행하는 행위를 ‘개혁의 활용’으로 포장하고, 국가 권력 기구의 계급적 본질에 흡수·순응하는 개량주의적 실천을 합리화하는 소부르주아적 타협주의의 전형을 보여준다.

 

정부를 바라보는 시각에 이어 ‘인텔리겐처’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드러나는 ‘인민의 벗들’의 개량주의적 한계는 관념론적 타협으로 수렴한다. 이들은 카드놀이와 파티 등 향락적 생활을 절제하는 개인적 결단 따위를 대단한 계급적 헌신으로 포장하며 지식인의 시혜적 계몽을 칭송하는가 하면, 국가 권력 기구에 진입하여 미봉책을 수행하는 행위조차 ‘개혁의 활용’으로 합리화한다. 마르크스주의자에 대한 사교계의 가십을 수집하고 지배 기구의 시혜에 아첨하며 체제의 직위를 적극 수용하라고 계몽하는 이러한 주장은, 포장된 인민주의의 탈을 썼으나 실상은 국가 권력의 계급적 본질에 완전히 순응한 소부르주아적 기회주의이자 관념론적 비굴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인민의 벗들’은 “전통적 이상”을 수호한다는 구실로 혁명적 유산마저 심각하게 왜곡한다. 이들은 프랑스 혁명 사상이 전파되던 시기 헤르첸과 체르니셰프스키 (Chernyshevsky)가 정립한 혁명적 사상 전통을 오직 자신들만이 계승하고 있다고 자처한다. 그러나 체제의 제도적 기구에 진입하여 기회주의적 타협을 정당화하는 이들의 행태는 선조들의 혁명적 이상을 더럽히는 명백한 언어도단이자 모욕에 불과하다. 이러한 자유주의적 굴종과 속물적 타협주의를 인민주의의 전통으로 포장하는 것은 선대 선구자들의 유산에 대한 철저한 모독이다!

 

최초의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의 이상에 내포된 특성은 “그 시대 모든 사회주의자는 시인이었고, 모든 시인은 사회주의자였다.”라는 카우츠키의 지적에 명확히 집약되어 있다.

 

러시아의 공동체적 생활 체계라는 특수한 사회 질서와 이에 기반한 농민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신념은 청년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차르 체제에 맞서는 영웅적 투쟁으로 이끌었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그 시대 선구자들의 역사적 헌신과 유물론적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평가할 뿐, 결코 이를 폄하하지 않는다. 반면 과거의 혁명적 신념을 상실한 V. V. 가 마을 공동체를 이타주의의 중심지라 미화했을 때, 미하일롭스키조차 “어떠한 연구도 마을 공동체와 이타주의 간의 연관성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지적해야 했을 만큼 관념적 민중주의의 논리는 이미 파산해 있었다. 객관적 연구가 아닌 무조건적인 맹신에 의존하던 과거의 관념론적 이상주의는 이미 소멸하였으며, 이를 미화하여 체제 타협의 명목으로 삼는 ‘인민의 벗들’의 태도는 청년기의 투쟁적 유산을 속물적 기회주의로 변질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공동체적 질서에 대한 맹목적 신념에 기반했던 과거 농민 사회주의의 해체는 농촌 내부의 계급적 분화라는 객관적 조건과 결을 같이한다. 미하일롭스키조차 시인했듯, 농촌의 계급 분화는 통일체로서의 농민이라는 관념적 전제를 해체하여 한편으로는 농촌 프롤레타리아를, 다른 한편으로는 부르주아적 쿨락을 출현시켰다. 이에 따라 과거의 농민 사회주의 역시 사상적 유효성을 상실한 채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로 이행하거나 소부르주아 급진주의로 타락하였다. 상품 경제의 발전과 자본주의로의 이행을 수용하면서도 그 내부의 부르주아적 생산관계와 필연적 계급 투쟁을 부정하는 절충주의는 이러한 사상적 퇴보의 산물이다. 결국 현존하는 생산관계의 근본적 변혁을 목표로 하던 정치 강령은 근대 사회의 토대를 보존한 채 농민의 처지를 부분적으로 ‘개선하려는’ 개량주의적 모순으로 귀결된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분석을 “논박하고자” 시도한 《러시아의 부》 논객들의 태도는 객관적 비판의 비판적 언어를 완전히 상실한 상태다. 이들은 사회민주주의자가 입각한 경제적·현실적 분석의 본질에 반론을 제기하거나 구체적 결론의 타당성을 검증하려는 이론적 노력을 일절 기울이지 않는다. 대신 검열을 피한다는 핑계 뒤에 숨어 추상적 도식과 역사적 진화 과정에 대한 공허한 문구를 되풀이하는 관념론적 왜곡을 자행한다. 예컨대 크리벤코가 마르크스를 인용하며 “인간의 소망과 의식적 의도에 따라 자본주의의 부침을 피하고 더 우회적인 경로로 나아갈 수 있다.”는 식의 왜곡된 주장을 펼치는 것은, 유물론적 역사관의 기치 아래 사회적·경제적 진화의 객관적 법칙성을 규명해 낸 이론적 본질을 모독하는 무지와 궤변의 전형이다.


크리벤코는 익히 알려진 ‘마르크스의 편지’ (《법률 통신》, 1888년, 10호)를 인용하는 과정에서 의도적인 왜곡을 자행한다. 러시아가 “자본주의 체제의 고통을 겪지” 않고 발전할 수 있다고 본 체르니셰프스키의 주장을 마르크스가 평가한 대목을 들먹인 그는, “그 (체르니셰프스키)는 후자의 해결책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다”는 마르크스의 원문을 인용한 직후 따옴표를 닫으며 “그래서 마르크스는 자신의 이런 이러한 견해들에 동조한다고 말한다” (186쪽, 12호, 크리벤코의 강조)라는 구절을 덧붙이며 인용문의 본뜻을 자의적으로 왜곡한다. 이는 선대 사상가의 원전을 인용하는 과정에서 서술 구조를 왜곡하고 자신의 개량주의적 주장을 마르크스의 권위에 얹어 정당화하려는 수사적 공작에 불과하다. 관념론자들은 이러한 방식의 의도적 오독을 매개로 자본주의 발전의 객관적 법칙성과 변혁적 노동자 운동의 필연성을 부정하며, 자신들의 타협적 정치 강령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삼는다.

 

크리벤코는 체르니셰프스키를 다룬 마르크스의 언급을 인용하며 “그래서 마르크스는 자신이 이러한 견해들을 동조한다고 말한다”라는 주장을 자의적으로 덧붙여 인용문의 본뜻을 왜곡한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실제로 지적한 바는 체르니셰프스키에 대한 존경이 곧 그의 견해에 대한 동의를 의미하지는 않으며, 러시아 ‘문인’과 당대 범슬라브주의자들에 대한 자신의 비판으로부터도 반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법률 통신》, 1888년, 10호, 271쪽). 이러한 의도적 서술 구조의 왜곡은 유물론적 역사관과 자본주의 발전의 객관적 법칙성을 부정하고, 인민의 의식적 지향이나 주관적 열망에 따라 자본주의를 피할 수 있다는 식의 궤변을 마르크스의 권위에 얹어 정당화하려는 수사적 공작에 불과하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미하일롭스키가 자신을 러시아의 특수한 발전 노선에 반대하는 인물로 단정할 권리가 없으며, 자신 역시 그러한 사고를 지닌 사람들을 존중한다고 지적했을 뿐이다. 그러나 크리벤코는 이를 마르크스가 특수한 발전 노선을 ‘인정’했다는 의미로 자의적으로 오독하며 왜곡을 자행한다.

 

마르크스는 해당 편지에서 “미하일롭스키가 자신의 견해 중 서로 모순되는 두 주장 중 하나만을 끌어다 쓸 뿐, 러시아 정세에 관한 객관적 결론을 이끌어낼 바탕을 전혀 갖추지 못했다”고 분명히 지적한다. 나아가 이러한 오독을 방지하기 위해 자신의 이론이 러시아에 적용될 수 있는 조건에 대해 직접 언급한다. 마르크스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 자체와 그 질문의 답을 결정할 수도 있는 러시아의 자료 검토를 하지 않으려 했다는 사실을 명확히 밝히며, “러시아가 서구 유럽 국가들을 모범으로 한 자본주의 국가가 되려는 경향을 보인다면, 우선 농민 대부분이 프롤레타리아로 전환되지 않고서는 성립하기 힘들 것”이라고 답하여 관념론적 민중주의자들의 특수 발전 노선이라는 관념론적 도식을 일축한다.

 

질문의 본질은 명확하다. 즉, 당시 러시아 사회가 자본주의 국가로 진입하려는 객관적 경향을 보이고 있는가, 그리고 농민의 해체와 몰락이 자본주의 체제, 즉 자본주의적 프롤레타리아트의 형성을 의미하는가에 관한 문제였다. 마르크스는 러시아가 이러한 경로를 밟는다면 대다수 농민의 프롤레타리아화는 피할 수 없는 수순임을 지적한다. 결국 마르크스의 이론은 특정 사회의 경제 체제의 생산관계를 규명하는 방법론이며, 이를 러시아에 ‘적용’하는 길은 오직 유물론적 방법론과 정치경제학의 과학적 방법론에 기초하여 러시아의 생산관계의 실체와 그 역사적 역동성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것뿐이다.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방법론과 정치경제학 이론의 체계화는 사회과학의 이론적 도약이자 사회주의 운동의 비약적 발전을 의미했기에, 『자본』 출간 직후 ‘러시아 자본주의의 운명’은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에게 이념적·이론적 핵심 과제로 대두되었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치열한 이론적 논쟁이 전개되었으며, 운동의 정치적 강령 역시 이에 따라 결정되었다. 약 10년 전 특정 사회주의자 집단이 러시아 경제의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자본주의로의 이행이라는 필연적 결론을 제시했을 때, 관념론적 민중주의 진영에서는 이에 대한 명확한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동일한 방법론과 이론적 원칙을 수용하는 이론가들 사이에서도 해당 자료의 분석적 귀결을 두고 실질적인 비판을 제기하는 목소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러시아의 자본주의화라는 역사적 경향이 이미 관념적 수사에 머무르지 않고 과학적 분석으로 입증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인민의 벗들’이 가하는 비판의 실상은 역사적 사실이나 현실 실증 자료에 대한 입증을 고의로 회피한다는 점에 있다. 이들은 사회민주주주의자들의 구체적 경제 분석을 진지하게 논박하기는커녕, 추상적 도식과 관념적 수사에 스스로를 가두며 상대의 진의를 일절 왜곡한다. 미하일롭스키가 사회민주주의 진영 내부의 각양각색의 토론을 두고 ‘진짜’와 ‘가짜’를 운운하며 말장난을 벌이는 태도 역시 이러한 본질을 은폐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사회민주주의자들 사이의 논쟁은 약점이 아닌 운동의 역동성을 증명한다. 러시아가 봉건제에서 이행한 부르주아 사회이며, 그 국가 형태는 계급 국가이고, 착취를 끝낼 유일한 길은 프롤레타리아 계급 투쟁이라는 근본적 논지에는 전적으로 동의하되, 구체적 분석과 방도를 놓고 치열한 검증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지배 질서의 시혜나 공동체의 온정주의라는 ‘관념론적 도식’에 만장일치로 만족하는 소부르주아적 타협주의와 달리, 마르크스주의는 객관적 생산관계와 역사적 발전 법칙성을 과학적으로 해명하는 실천적 투쟁의 길을 걷는다.

 

동일한 이론적 입장을 수용하여 이를 집단적 정치 실천으로 전환하는 공통의 기반을 마련하고, 그 기반을 공고히 하는 이들이 ‘사회민주주의자’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확보하는 과정은 구체적 사안에 대한 각양각색의 광범위한 견해차를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이러한 논쟁과 견해의 다양함은 사회민주주의 운동이 내부적 분열에 빠져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물론적 역사관의 과학적 방법론을 바탕으로 러시아 사회의 현실의 제반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나가는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의 이론적 역동성과 실천적 생동성을 명증하게 입증하는 지표에 불과하다.

 

열악한 조건 속에서 전개되는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내부 토론과 진영 내 의견 차이는 운동의 분열이 아닌 이론적 역동성을 보여준다. 경찰의 집요한 감시와 통제 기구의 부재로 인해 개별적 연계와 토론이 극도로 제한된 상황에서 발생하는 구체적 견해차는 당연한 현상이다. 이러한 난관에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계급 투쟁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는 근본적 원칙에 합의하면서 구체적 현상에 대한 열띤 비판적 검증을 이어가는 것은, 관념론적 민중주의자들의 맹목적 만장일치와 대비되는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강인한 역동성과 이론적 우위를 증명한다.

 

‘인민의 벗들’이 가하는 비판의 실상은 역사적 사실이나 현실의 실증적 자료에 대한 입증을 고의로 회피한다는 점에 있다. 이들은 마르크스주의를 공개적으로 옹호하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의 구체적 경제 분석을 진지하게 논박하기는커녕, 추상적 도식과 관념적 수사에 스스로를 가두며 상대의 진의를 왜곡한다.

 

크리벤코와 미하일롭스키가 마르크스주의자들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났다거나 ‘신마르크스주의자’들이 등장했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왜곡의 연장선이다. 사교계의 풍문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자유주의적 언행을 감추려고 마르크스주의를 들먹이는 함량 미달의 인사들을 주시하며 벌이는 이러한 말장난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비판하기 위한 헛된 시도에 불과하다. 마르크스주의를 공개적으로 옹호해온 이들 중 그 누구도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의 이론과 정책을 부정하거나 다른 형태의 마르크스주의를 옹호한 적이 없으며, 인민의 벗들이 제시하는 ‘비판’이란 결국 상투적인 궤변과 추잡한 인신공격의 나열에 지나지 않는다.

 

‘인민의 벗들’의 이념적 타락은 자본주의적 발전에 대한 시혜적 용인과 기회주의적 개량주의 선언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크리벤코는 “자본주의 산업 발전에 적극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농민의 토지 매매나 상점 및 선술집 개업 등” 부르주아적 영리 행위에 적극 동참할 것을 촉구한다. 나아가 “농촌 착취의 주동자인 여관 주인들이 의회에 진출하는 것을 환영하고 곡물 투기 업자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자본주의의 침탈로부터 농민을 보호하기는커녕 자본가와 쿨락의 이익을 공공연히 대변하는 소부르주아적 타협주의로의 전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크리벤코가 제기한 주장은 ‘인민의 벗’을 자처하는 부류가 빠진 기회주의적 개량주의의 실상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타인의 노동을 수탈하여 형성된 농촌의 기업형 농민과 유통업자, 여관 주인 등은 객관적인 정치·경제적 특성에 입각하여 명백한 부르주아 계급의 체현자이자 농촌 분화의 주역들이다. 그러나 민중주의자들은 이러한 분석을 접할 때마다 서구적 도식의 무차별적 수입이라는 비난을 퍼부으며 계급적 현실을 회피하다가도,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왜곡과 공격을 감행할 때는 고귀한 이상과 과학적 분석을 내던진 채 자본주의적 수탈자들을 옹호하는 본색을 드러낸다. 이처럼 착취의 주범들은 농민의 보호자로 포장하고 부르주아적 발전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는 그들의 논리는, 소부르주아 급진주의가 결국 자본가와 쿨락의 이익을 대변하는 개량주의적 타협으로 전락했음을 증명한다.

 

이처럼 국가 권력의 전지전능함을 둘러싼 ‘인민의 벗들’의 비판은 자승자박의 모순에 불과하다. 그들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부르주아 계급의 국가 권력 지배를 지적할 때마다 정부의 중립성과 절대적 권한을 강변하며 자본주의의 인공적 수입을 경계하는 척한다. 그러나 동시에 의회 내 여관 주인과 곡물 상인들의 존재가 자본주의적 이해관계를 대변한다는 사실을 은영중에 인정하는 동시에, 자신들이 수호하고자 하는 국가 기구 자체가 이미 부르주아적 생산관계 위에 입각해 있음을 스스로 폭로한다. 결국 자본주의적 이윤 추구가 의회나 일부 소상인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전체의 생산과 유통을 지배하고 있음에도 이를 국지적 현상으로 축소하려는 민중주의자들의 시도는, 계급 국가의 본질을 은폐하고 부르주아 지배 질서에 봉사하는 개량주의적 기만일 뿐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에 대한 인신공격과 모독을 감행하는 크리벤코의 품위 상실한 발언들은 논박할 가치조차 없는 자승자박에 불과하다. 이들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자본주의 과정을 가속화하려는 목적”만으로 공장에 침투한다거나 사적 이권을 노린다는 식의 추잡한 비방을 퍼부으며 이념적 실체에 대한 객관적 검증을 회피한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왜곡과 희화화로 침윤된 소부르주아 관념론자들의 이러한 궤변은, 과학적 유물론과 계급 투쟁의 정당성을 우회하려는 개량주의적 타협의 한계를 드러낼 뿐이다.

 

‘인민의 벗들’이 보여주는 태도는 인민주의적 개량주의가 마침내 기득권 질서와 치밀하게 타협하며 체제 내화되는 이념적 반동의 과정을 선명히 드러낸다. 이들은 전제 정부의 시혜적 조치가 인민의 몰락을 막아주리라는 한가한 기망을 퍼뜨리며, 기득권층의 무지와 기만을 정당화하는 이념적 방패막이 역할을 자처한다. 계급적 실체와 수탈 구조를 은폐한 채 ‘식견 넘치는 상류 사회’의 자선 사업이나 지방 감독관들의 피상적인 시혜 선전을 인민을 위한 길로 포장하는 것은 소부르주아 관념론의 한계이자 기만이다. 결국 계급 투쟁과 생산관계의 유물론적 분석을 회피한 채 지배 질서의 온정에 의존하려는 이들의 시도는 반동적 언론인 부레닌 일파의 찬사를 받는 수준의 부르주아적 아첨으로 귀결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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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결론에서는 역사 및 사회민주주의자들을 상대로 공개적인 논쟁에 돌입한 또 다른 ‘인민의 벗’ 크리벤코의 주장을 검토하고자 한다.

 

다만 본고에서는 앞서 미하일롭스키나 유자코프의 저작을 다루었던 방식과는 결을 달리하여 그의 글 (「우리의 문화 용병들」, 1893년, 12호; 「여행 중에 보낸 편지」, 1894년, 1호)을 검토한다. 해당 문헌들을 면밀히 분석하는 작업은 첫째, 유물론과 마르크스주의 일반에 대한 그들의 반론을 규명하고, 둘째, 그들의 정치 경제 이론의 실체를 명확히 파악하기 위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나아가 ‘인민의 벗들’이 지닌 사상적 지향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려면 그들의 실질적 목표와 전술, 그리고 정치 강령을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

 

그들은 이론적 견해를 개진하면서 단 한 번도 자신들의 강령을 체계적이고 일관되게 제시한 적이 없었다. 이에 동일한 잡지 내에서 기고자 간의 모순이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의견이 일치된 여러 논설을 참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 가운데서도 크리벤코의 글을 우선적으로 다루는 이유는, 그의 저술에 풍부한 논거가 수록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미하일롭스키가 사회주의자, 유자코프가 경제학자의 역할을 대변하는 것과 달리 크리벤코는 해당 잡지의 성격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실용적 정치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강령으로 넘어가기 전에 반드시 살펴보아야 할 이론적 핵심이 한 가지 더 있다.

 

유자코프는 인민 경제의 기반인 농민의 토지 임차 문제를 두고 탁상공론을 늘어놓으며 자신들의 농민 경제 이해 부족을 은폐했다. 그는 수공업을 배제한 채 대규모 공장 산업의 성장 자료로 한정하여 논의를 국한했음에도 수공업에 대해서도 동일한 주장을 반복했다. 즉 ‘인민의 생산’인 수공업은 자본주의적 산업과 달리 “대부분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되는” 반면, 자본주의적 산업은 흔히 “인위적으로 창출된다”고 강변한다 (12호, 180~1쪽)

 

또한 그는 ‘소규모 인민 산업’을 ‘대규모 자본주의적 산업’과 대비시켰으나, 소규모 인민 산업의 본질적 특성으로 제시한 것은 단지 ‘작은 규모’와 ‘생산자와 노동 도구의 결합’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는 해당 경제 구조를 규정하는 정밀한 정의가 아닐 뿐만 아니라 실제 사실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크리벤코는 ‘소규모 인민 산업’이 ‘대규모 자본주의적 산업’보다 총생산량과 고용 노동력 면에서 우위를 점한다고 주장하며 수공업자 수를 400만 명 (타 자료 추산 700만 명)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수공업을 지배하는 실질적 형태가 대규모 가내 생산 체계이며, 대다수 수공업자가 생산의 독립성을 상실한 채 상인에게 원료를 공급받아 임금을 받는 종속적 노동자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이러한 수공업의 자본주의적 지배 구조는 당대 합법 출판물에서도 입증되었다. 통계학자 S. 카리조메노프 (Kharizomenov)는 《법률 통신》 (1883년, 11·12호)에서 중부 지방 주들의 수공업 자료를 분석하여 대규모 가내 생산 체계의 절대적인 우위, 즉 자본주의적 산업 형태의 명확한 존재를 검증했다. 그는 “소규모 독립 산업의 경제적 역할을 규정하면서, 모스크바주의 연간 수공업 매출액 중 86.5%가 대규모 가내 생산 체계에서 발생하고 소규모 독립 산업은 13.5%에 불과하며, 블라디미르주 알렉산드로프·포크로프 군에서는 그 비율이 각각 96%와 4%에 달한다”는 통계를 제시하여 소규모 독립 산업의 한계를 명확히 밝혀냈다.

 

러시아의 자유주의자들과 ‘인민의 벗들’은 이러한 객관적 사실 관계를 고의로 무시하거나 단지 단순한 ‘결함’으로 치부하여, 러시아 노동 인민을 향한 착취와 계급 적대라는 본질적 모순을 은폐하고 있다. 이처럼 명백한 사실을 외면으로 일관하는 채, 해당 산업을 자본주의와 구분되는 “인민” 산업이라 강변하며 그 발전 전망을 논하는 것은 성립할 수 없다.

 

그러나 또 다른 원인은 크리벤코가 “파블로보의 날붙이 사업”을 “반(半)장인 성격의 사업”이라 칭한 데서 드러나듯, 해당 사안에 대한 이들의 지식이 유독 깊은 데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 ‘인민의 벗들’이 도달한 왜곡의 깊이는 놀라울 따름이다! 파블로보의 칼 제조 업자들에게 어떻게 장인의 성격이 있다고 강변할 수 있단 말인가? 크리벤코는 상인이 수공업자에게 물품을 주문하여 니지니 노브고로드 장터로 유통하는 구조를 장인 산업으로 착각한 것인가.

 

실제로 칼 제조는 (외관상) 생산자가 독립성을 유지하는 소규모 수공업 형태와 가장 거리가 멀다. N. F. 안넨스키 (Annensky)는 “요리용과 공업용 칼 생산”이 이미 대부분 공장제 수공업 형태에 도달해 있다고 분석한다. 니지니 노브고로드주의 요리용 칼 제조 종사자 396명 중 시장을 위해 일하는 독립 수공업자는 16% (62명)에 불과하며, 69% (273명)는 주인에게 종속되어 있고 15% (61명)는 임금 노동자다. 즉 고용주에게 직접 예속되지 않은 비율은 6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같은 필자는 칼 산업의 다른 부문 역시 “대부분의 수공업자가 주인을 위해 일하지만, 여전히 시장과 관계를 맺는 독립 수공업자가 일부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니지니 노브고로드주에서 해당 종류의 칼을 생산하는 수공업자는 총 2,552명이다. 이 가운데 시장을 대상으로 생산하는 비율은 48% (1,236명), 주인에게 종속되어 생산하는 비율은 42% (1,058명), 임금 노동자는 10% (258명)을 차지한다. 그 결과 독립적 형태를 유지하는 수공업자는 소수에 불과하며, 시장을 위해 생산하는 이들 역시 표면적으로만 독립되어 보일 뿐 구매자 자본에 깊이 예속되어 있다. 전체 노동 인민 21,983명 중 84.5%가 공업에 종사하는 고르바토프군의 산업 통계를 살펴보아도 (금속·가죽·마구·펠트·삼 방적 등 종사자 10,808명 대상) 시장 생산자 35.6%, 주인 대상 생산자 46.7%, 임금 노동자 17.7%로 집계된다. 이는 해당 지역 산업 전반에서 대규모 가내 생산 체계가 우위를 점하고 있으며, 노동의 자본 예속 관계가 지배적 구조로 정착했음을 입증한다.

 

‘인민의 벗들’이 이러한 사실을 무시하는 또 다른 이유는 자본주의에 대한 그들의 개념이 부유하고 학식을 갖춘 자본가가 거대한 기계 공장을 운영한다는 통속적 관념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본주의라는 용어가 지닌 이론적 본질을 규명하길 거부한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유자코프는 자본주의의 출발점을 기계 공업으로만 단정하며 단순 협업과 공장제 수공업 (매뉴팩처) 단계 생략이라는 과오를 범했다. 이 같인 구조적 오류는 결과적으로 국내 수공업에 내재된 자본주의적 구성 요소를 간과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대규모 가내 생산 체계가 자본주의적 산업 형태라는 점은 명증하다. 여기에는 이미 높은 수준으로 발달한 상품 경제, 개인에게로의 생산 수단 집중, 그리고 생산 수단을 점유하지 못해 타인의 생산 수단에 결합되어 자본가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 대중의 착취라는 본질적 특성이 모두 내포되어 있다. 수공업은 구조상 순전히 자본주의적 성격을 띠지만, (주로 극도로 낮은 임금에 기초한) 기술적 낙후성과 노동자들이 여전히 소규모 농지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규모 기계 공업과 구별된다. 그러나 후자의 상황은 형이상학적 이분법에 익숙한 ‘인민의 벗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노동자에게 토지가 부재하면 자본주의가 존재하고, 토지가 점유되어 있으면 자본주의가 아니라고 단정하는 태도는 경제의 전반적인 사회적 구조를 간과한 채 편협한 논리에 매몰된 결과다. 이는 노동자들이 토지를 점유하고 있다 해서 다른 뻔뻔한 ‘농민’ 토지 소유주들로부터 수탈당하는 노동자 대중의 극심한 빈곤이 해소되지 않는다는 명백한 사실을 무시하는 주장에 불과하다.

 

그들은 자본주의가 여전히 비교적 낮은 발전 수준에 그쳐 있다 하더라도 어디에서나 노동자를 토지로부터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서유럽의 역사적 사례에서 마르크스가 도출한 법칙은 오직 대규모 기계 공업만이 노동자를 토지로부터 영속적으로 착취하고 분리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인민이 토지를 점유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국내에 자본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변하는 상투적 논법은 완전히 타당성을 잃는다. 단순 협업과 공장제 수공업 (매뉴팩처) 단계의 자본주의는 노동자가 토지로부터 완전히 분리될 것을 필연적 전제로 삼지 않으며, 그러한 결합이 유지된다 해서 자본주의적 본질이 상실되는 것 역시 아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대규모 기계 산업은 국내 산업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우리 사회의 구체적 특수성에도, 이 분야 역시 여타 서구 자본주의와 동일한 속성을 지닌다. 이는 곧 노동자가 토지와의 연관을 지속하도록 방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데멘티예프 (Dementyev)는 (마르크스의 이론과 별개로) 엄밀한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기계화된 생산 체계가 노동자의 완전한 토지 박탈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입증했다. 이 연구는 러시아가 이미 자본주의 국가이며 러시아 노동자와 토지의 결합은 극히 미약하거나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밝혀냈다. 나아가 화폐 소유자, 구매자, 부유한 농민, 공장제 수공업자 등 자산 소유자의 지배력이 공고히 확립되어 있어, 향후 기술적 진전이 이어지면 (오랜 기간 자신의 노동력을 매각해 온) ‘농민’이 그야말로 노동자로 전환되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그러나 이 나라 수공업의 경제적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인민의 벗들’의 오류는 여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노동이 ‘주인을 위해’ 이루어지지 않는 산업에 대해서도 이들의 시각은 경작자에 대한 관점만큼이나 피상적이다. 이들이 파악한 바는 단지 생산 수단이 노동하는 인민과 결합‘될 수 있다면’ 바람직하고, 분리‘될 수 있다면’ 해롭다는 사실에 그친다. 이처럼 조잡한 관점으로 정치경제학적 문제에 의견을 개진하는 이들의 한계는 필연적 결과라 할 수 있다.

 

크리벤코는 산업의 자본주의화 과정을 논하며, (소규모 생산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분야의 예로 특정 산업의 “기본 생산 비용”이 낮다는 점을 든다. 그는 연간 매출액 대비 생산 비용이 15분의 1에 불과한 벽돌 산업을 대표적 사례로 제시한다. 

 

이는 필자가 사실 관계를 언급한 거의 유일한 지점이라는 점에서 (주관적 사회학은 현실에 대한 직접적이고 정확한 파악과 분석을 배제한 채 소부르주아적 ‘이상’의 영역으로 도피하는 것을 대표적 특징으로 삼는다), ‘인민의 벗들’이 지닌 현실 시각의 오류를 규명하는 대표적 사례로 다룰 필요가 있다.

 

모스크바 젬스트보의 경제 통계 (『보고서』, 7권, 2부)를 보면 (백토로 벽돌을 생산하는) 벽돌 산업에 관한 기록이 존재한다. 해당 산업은 주로 보고로즈코예 군의 3개 읍에 집중되어 있으며, 233개 시설에서 1,402명의 노동자를 고용하여 연간 35만 7천 루블 규모의 총생산량을 기록하고 있다. 고용 인력 중 41% (567명)는 임금 노동자가 아닌 사업주의 가족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가족 노동자’다. 이 산업은 오랜 역사를 지녔으나, 철도 개통으로 판로가 비약적으로 확대되면서 지난 15년간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다. 철도 건설 이전에는 가족 노동 형태가 지배적이었으나, 현재는 임금 노동 착취 구조가 이를 대체했다. 또한 소규모 생산자가 판매 과정에서 대규모 업자에 종속되는 구조적 현상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소규모 업자들은 대규모 업자에게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벽돌 (때로는 굽지 않는 ‘미가공품’ 포함)을 현장 매각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러한 종속성과는 별개로, 해당 연구에 첨부된 수공업자 가구별 통계 조사 (노동자 수 및 시설당 연간 총생산량 기록)를 토대로 해당 산업의 구조적 실태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상품 경제가 필연적으로 자본주의 경제로 이행한다는 법칙이 이 산업에도 적용되는지 검증하려면 생산 시설의 규모별 비교가 선행되어야 한다. 핵심은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임금 노동 착취 정도에 따른 소규모 시설과 대규모 시설 간의 관계다. 노동자 수를 기준으로 수공업자 시설을 (Ⅰ) 1~5인 고용 시설 (가족 노동자 및 고용 노동자 포함), (Ⅱ) 6~10인 고용 시설, (Ⅲ) 10인 초과 고용 시설의 세 집단으로 분류한다.

 

시설의 규모, 노동자 총수, 집단별 생산액을 검토한 결과 다음과 같은 지표를 확인할 수 있다.

 

노동자 수에 따른 수공업자 집단 통계표

 

수공업자 집단

평균 노동자 수

고용 시설 비율(%)

임노동자 비율(%)

연간 생산액(루블)

시설 분배(%)

노동자 분배(%)

총생산 분배(%)

시설 절대수

노동자 절대수

총생산 절대수(루블)

I. 1~5명 고용 시설

2.8

25

19

251

72

34

34

167/43

476/92

119,500

II. 6~10명 고용 시설

7.3

90

58

249

18

23

22

43/39

317/186

79,000

III. 10명 초과 고용 시설

26.4

100

91

260

10

43

44

23/23

609/557

158,500

총계

6.0

45

59

254

100

100

100

233/105

1,402/835

387,000

 

이 수치는 산업의 자본주의적 구조와 부르주아적 성격을 명확히 보여준다. 시설 규모가 커질수록 노동 생산성이 향상되고 (중간 집단 제외), 임금 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심화되며, 생산의 집중도 역시 한층 증대된다.

 

거의 전적으로 임금 노동에 기초하는 세 번째 집단은 전체 시설 수의 10%에 불과하지만, 총생산량의 44%에 달한다.

 

이처럼 소수에게 생산 수단이 집중되는 현상은 다수 (임금 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으며, 이는 소생산자가 원청 (실질적 원청 역할을 하는 대규모 경영주)에 종속되는 구조 및 해당 산업 내 노동 억압의 원인을 명확히 설명해 준다. 결국 노동 계급이 직면한 수탈과 착취의 근본적 원인은 생산관계 자체에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러시아의 인민주의 경향 사회주의자들은 수공업 내 노동 억압의 원인을 생산관계 내부가 아닌 농업과 재정 정책 등 생산 외적 요인에서 찾았으며, 수공업의 생산관계가 본질적으로 착취를 배제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가 공고한 관념으로 고착된 바탕에는 수공업의 실제 경제 구조와 사실 관계를 정확히 규명하려는 분석적 시도가 부재했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이는 결국 사회과학의 유일한 과학적 방법론인 유물론적 관점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결과다.

 

수공업의 생산관계에 관해 착취의 원인을 외부로 돌린 이전 세대 사회주의자들은 대규모 공장 자본주의에 이르러서야 생산관계 내부의 착취 구조를 자각하는 논리적 모순을 드러냈다. 연구가 부재했던 수공업 생산관계에서 자본주의적 요소를 포착하지 못함에 따라, 이들은 대규모 자본주의의 기원을 설명하지 못한 채 수공업을 ‘인민의 공업’으로, 자본주의를 ‘인위적 산업’으로 대립시키는 한계에 봉착했다. 이는 자본주의를 ‘인민의 체제’와 근본적으로 모순되는 이질적 존재로 규정하는 발상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사유 체계는 니콜라이 온(Nikolai-on) 등의 이론적 재구성을 거쳐 폭넓게 확산되었으며, 비논리적 구조에도, 관성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니콜라이 온에 따르면 공장 자본주의는 구체적 현실에 근거하여 판단되는 반면, 수공업은 가설과 추측에 의존하여 판단한다. 전자는 생산관계 분석을 바탕으로 파악하지만, 후자는 생산관계에 대한 검증을 생략한 채 곧바로 정치의 영역으로 사안을 전환한다. 그러나 생산관계 분석에 입각해 접근한다면 ‘인민의 체제’ 역시 미발달된 맹아적 상태일 뿐 동일한 자본주의 생산관계로 구성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수공업자가 동등하다는 관념을 배제하고 실태를 정밀히 파악할 경우, 공장 ‘자본가’와 ‘수공업자’ 간의 격차보다 ‘수공업자’ 내부의 계급 분화가 더 심화되어 있음이 입증된다. 결국 자본주의는 ‘인민의 체제’와 모순되는 이질적 요소가 아니라, 그 내부에서 직접 이행하여 도달한 발전 단계에 해당한다.

 

제시된 사례에서 임금 노동자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핵심은 절대적 수치가 아니라 그 속에 내재된 부르주아적 생산관계다. 이러한 관계는 그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든 약하게 드러나든 지속적으로 유지된다.

 

모스크바 주의 산업에 관한 이사예프 (Isayev)의 저술에 등장하는 도자기 공업 역시 조사된 가구별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그 경제 구조를 분석할 수 있다. 이사예프가 “순수한 가내 공업”이자 소규모 농민 공업의 대표적 사례로 든 도자기 공업은 지극히 단순한 기술, 미소한 장비, 생산물의 보편적·필수적 수요라는 특징을 지닌다. 수공업자를 (Ⅰ) 1~3인 고용 시설 (가족 노동자 및 고용 노동자 포함), (Ⅱ) 4~5인 고용 시설, (Ⅲ) 5인 초과 고용 시설의 세 집단으로 분류하여 동일한 통계 계산을 적용해 보면, 수량상 러시아 소규모 ‘인민’ 공업의 전형으로 꼽히는 이 산업 내부에서도 부르주아적 생산관계가 명확히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수공업자 집단별 생산 및 고용 통계

 

수공업자 집단

평균 노동자 수

고용 시설 비율(%)

임노동자 비율(%)

연간 생산액(루블)

시설 분배(%)

노동자 분배(%)

총생산 분배(%)

시설 절대수

노동자 절대수

총생산 절대수(루블)

I. 1~3명 고용

2.4

39

19

468

60

38

36

72/28

174/33

81,500

II. 4~5명 고용

4.3

48

20

498

27

32

32

33/16

144/29

71,800

III. 5명 초과 고용

8.4

100

65

533

13

30

32

16/16

134/87

71,500

총계

3.7

49

33

497

100

100

100

121/60

452/149

224,800

 

명백히 이 공업 역시 부르주아적 생산관계에 속하며, 이와 같은 사례는 무수히 인용할 수 있다. 상품 경제에서 비롯된 분리, 특히 자본주의적 분리가 확인되며, 이는 상위 집단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는 임금 노동 착취로 이어진다. 최상위 집단은 전체 시설의 8분의 1에 불과하지만 전체 노동자의 30%를 고용하여 총생산량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며, 노동 생산성 또한 평균을 크게 상회한다. 이러한 생산관계 구조는 원청의 출현과 그 지배력을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규모가 더 크고 수익성이 높은 시설을 소유하며 타인의 노동으로부터 ‘순’이익을 얻는 소수가 어떻게 ‘잉여 자금’을 축적하는지, 그리고 왜 다수의 소장인이 몰락하고 생계조차 유지하기 어려운지 파악할 수 있다. 다수가 소수에게 예속되는 현상은 이 생산관계가 지닌 자본주의적 본질에서 비롯된 필연적 결과다. 이는 상품 경제로 조직된 사회적 노동의 산물이 개인의 수중으로 귀속되어 노동 인민을 억압하고 노예화하는 수단이자, 대중 착취를 매개로 사적 부를 축적하는 수단으로 작용하는 관계다. 

 

생산관계의 미발달로 생산자들의 몰락에 부수적으로 따르는 자본 축적이 미미하다고 해서 착취와 억압이 덜 뚜렷하다고 볼 수는 없다. 실제로는 정반대로, 노예제에 가까운 조악한 착취 형태로 귀결된다. 즉, 노동력을 직접 매수하여 완전히 종속을 이루지 못한 자본은 고리대금 착취의 그물망으로 노동자를 얽어매고 귀속시킴에 따라 잉여 가치뿐만 아니라 임금의 상당 부분까지 수탈한다. 나아가 ‘고용주’를 바꾸지 못하게 만들어 고통을 가하고, 일거리를 ‘제공하는’ 행위 자체를 시혜로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며 모욕을 안긴다. ‘진정한 인민의 산업’이 존재한다면, 어떠한 노동자도 러시아의 ‘독립적인’ 수공업자라는 이름뿐인 지위와 이를 맞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의 급진주의자들이 선호하는 조치들 역시 노동 인민에 대한 착취와 자본으로의 노예화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이러한 대책은 고립된 실험에 그치거나 노동 인민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며, 기존의 자본주의적 관계를 세련되게 다듬고 발전시켜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뿐이다.

 

인민주의 성향의 이른바 ‘인민의 벗들’은 농촌 산업이 비참한 상태에 처해 있고, 생산 시설이 협소하며, 노동 생산성이 극도로 낮고 기술 또한 원시적이라는 점, 그리고 고용된 임금 노동자의 수가 적다는 사실을 근거로 제시하며 해당 산업의 자본주의적 성격을 부인한다. 그러나 이들은 자본주의가 발전 수준의 고저를 막론하고 특정 사회적 생산관계의 양식으로 정의된다는 점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소수의 임금 노동자 존재에도, 농민 산업이 자본주의적 성격을 띤다는 사실을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자본을 가리켜 사회적 관계라고 규정한 핵심 정의에 반발하는 현상은 비단 이들뿐만 아니라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에게서도 일률적으로 포착된다. 이와 관련하여 과거 부르주아 경제학자 중 한 명이 《러시아의 부 (루스코예 보가츠트보)》 기고문에서 마르크스 이론을 해설한 지버 (Sieber)의 저작을 언급할 당시, ‘자본은 관계다’라는 정의를 인용하며 격렬한 분개와 함께 느낌표를 덧붙였던 사례는 이러한 이념적 한계를 단적으로 입증한다.

 

부르주아 체제의 범주를 영구적이고 당위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태도는 부르주아 철학자들에게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그들이 자본을 ‘추가 생산에 유용한 축적된 노동’으로 정의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이러한 정의는 자본을 인간 사회의 영구적 범주로 규정하여, 상품 경제의 지배 아래 조직된 ‘축적 노동’이 비노동자의 수중에 들어가 타인의 노동을 착취하는 데 기여하는 역사적으로 특수한 경제 구성체의 본질을 은폐한다. 이에 따라 그들은 생산관계의 명확한 체계에 대한 분석 대신, 모든 체제에 통용되는 무의미한 명제를 제시하고 이를 소부르주아적 도덕의 주관주의적 관념과 동일시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인민의 벗들’이 이 산업을 “인민의” 공업이라 칭하며 자본주의 산업과 대비시키는 까닭은 그들이 소부르주아 이념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소생산자가 상품 경제 체제하에서 활동하는 한, 시장과의 관계 속에서 필연적으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계급 분화한다는 당연한 사실조차 간파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이러한 현실 구조를 분석하려 하지 않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현실을 제대로 규명했다면 “인민의” 산업이 초래할 귀결에 대해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대신, 자본주의적 형태를 띠지 않고 발전을 이룬 수공업 분야가 러시아에 실제 존재하는지부터 검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본질을 소수의 생산 수단 독점, 다수에 대한 소외, 그리고 임금 노동의 착취 (즉, 상품 경제로 조직된 사회적 노동의 산물을 개인이 점유하는 구조)로 규정하는 개념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에 대한 ‘독자적인’ 정의와 역사적 분석을 제시해야 한다.

 

실제로 우리의 “인민” 수공업 구조는 자본주의 발전의 전 역사적 과정을 명확히 보여주는 구체적 실례에 해당한다. 이는 단순 협업 형태 (도자기 공업의 최상위 집단)에서 출발하여 자본주의 발전의 기원과 시초를 드러낸다. 나아가 상품 경제를 매개로 개별 개인의 수중에 축적된 ‘저축’이 자본으로 전환되는 동역학을 입증한다.

 

이러한 저축 소유자들은 대규모 처분에 필요한 자금을 독점함에 힘입어 우선적으로 판매권을 획득하고, 원거리 시장에서 상품이 처분될 때까지 대기할 수 있는 여력을 확보한다. 이 과정에서 상인 자본 (Kaufmannskapital)은 생산자 대중을 예속시키며 자본주의적 가내 공업 체제, 즉 대규모 생산의 가내 노동 체제를 구축한다.

 

이어 시장의 확대와 경쟁 심화는 기술적 개선을 강제하며, 상인 자본은 산업 자본으로 이행하여 대규모 기계제 생산을 조직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증대된 자본력이 수백만 노동 인민과 지역 전체를 종속시키고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국가 기구를 자신의 관할 하에 두는 단계에 이르러서야, ‘인민의 벗들’은 ‘자본주의의 주입’과 ‘인위적 창출’을 운운하며 반발을 시도한다.

 

실로 관념적 사유의 한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크리벤코 (Krivenko)가 ‘인민의’, ‘현실적인’, ‘적합한’ 등의 명목으로 제시한 산업 형태는 수공업이 다양한 발전 단계에 놓인 자본주의에 불과하며, 그의 서술은 이러한 본질을 은폐하려는 시도다. 이는 앞서 유자코프 (Yuzhakov)가 보인 논리적 수법과 부합한다. 유자코프 역시 농민 개혁의 구조적 실태를 분석하는 대신 기념비적인 선언의 공허한 구호를 오용했고, 토지 지대의 본질을 규명하는 대신 이를 ‘인민의 지대’로 포장했으며, 자본주의적 국내 시장의 형성 과정을 연구하는 대신 시장의 부재로 인해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봉쇄된다는 관념적 주장을 되풀이했다.

 

‘인민의 벗’들이 행한 사실 왜곡의 수준을 밝히기 위해 한 가지 사례를 추가로 검토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서술 중 가장 명확한 대목, 즉 크리벤코가 보로네시 농민 예산을 언급한 부분 (1894년, 1호)을 무시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며 자뭇 겸손한 태도를 취한다. 그들이 직접 제시한 자료에 입각하여 분석한다면, 러시아 급진주의자 및 ‘인민의 벗들’의 관념과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분석 중 어느 쪽이 현실에 부합하는지 명백히 규명될 것이다.

 

보로네시 젬스트보 통계학자인 시체르비나 (Shcherbina)는 오스트로고즈스크 군의 농민 경제를 서술하며, 전형적인 농가 24곳의 예산 항목을 제시하고 이를 본문에서 분석했다.

 

크리벤코는 이러한 분석을 재현하면서도 해당 방법론이 소농 경제의 실상을 파악하는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자각하지 못하거나 외면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 24곳의 예산은 크리벤코 스스로 지적했듯 (159쪽) 부유층, 중간층, 빈곤층 등 전적으로 상이한 가구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그는 시체르비나와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유형의 가구들을 단일하게 포괄하여 평균 수치를 산출하여 가구 간의 구조적 격차를 은폐한다.

 

소규모 생산자 내부의 계급 분화는 지극히 보편적이고 핵심적인 사실이기에 크리벤코가 선택한 빈약한 자료 자체로도 명확히 드러난다. 그러나 그는 농민 경제를 분석할 때 농장 규모와 경영 유형에 따라 범주화하는 대신, 시체르비나가 그랬듯이 과거 국유지 농민과 지주제 농민이라는 법적 범주로 구분하는 데 그쳤다. 그는 후자 대비 전자의 상대적 번영에만 주목하여, 동일 법적 범주 내 농민들 간의 계급적 격차가 범주 간 격차보다 훨씬 심대하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24개 농가를 (a) 부유층 6가구, (b) 중간층 11가구, (c) 빈곤층 7가구의 세 집단으로 재분류한다. 크리벤코는 과거 국유지 농민의 가구당 지출을 541.3루블, 지주제 농민의 지출을 417.7루블로 제시한다. 그러나 이는 농가별 지출의 현격한 불균등성을 무시한 집계다. 과거 국유지 농민 내에서도 최소 지출은 84.7루블인 반면, (1,456.2루블을 지출하는 독일 이주민을 제외하더라도) 최대 지출은 887.4루블로 10배에 달하는 격차를 보인다. 이처럼 편차가 심대한 수치를 하나로 묶어 산출한 평균 수치는 실태를 포착하지 못한다.

 

그러나 본문에서 제시한 기준에 따라 분류할 경우, 가구당 평균 지출은 부유층 855.86루블, 중간층 471.61루블, 빈곤층 223.78루블로 산출된다. 이에 따른 계급 간 지출 격차는 대략 4:2:1의 비율로 귀결된다.

 

시체르비나의 분석 방식을 답습하여 크리벤코는 법적 범주에 따른 농민별 생활비를 제시한다. 예컨대 과거 국유지 농민의 1인당 연간 채소류 소비 지출은 13.4루블인 반면, 과거 지주제 농민은 12.2루블이었다. 그러나 이를 경제적 범주 (계급)에 따라 재분류하면 그 수치는 각각 (a) 17.7루블, (b) 14.5루블, (c) 13.1루블로 나타난다. 육류 및 유제품 지출 역시 법적 범주상으로는 과거 지주제 농민 5.2루블, 과거 국유지 농민 7.7루블이지만, 경제적 범주에 따를 경우 각각 11.7루블, 5.8루블, 3.6루블로 현격한 격차를 보인다. 이처럼 법적 범주에 기초한 통계 산출은 계급 간의 극심한 지출 격차를 은폐하는 수단에 불과하며, 실태 규명에 아무런 실증적 타당성을 갖지 못한다. 크리벤코는 과거 국유지 농민의 소득이 과거 지주제 농민보다 53.7% 높다고 주장하며, 24가구 전체 평균 소득 (539루블)을 두 법적 범주로 나누어 각각 600루블 이상과 약 400루블로 제시했다. 그러나 경제적 계급에 따라 재집계할 경우 소득은 (a) 1,053.2루블, (b) 473.8루블, (c) 202.4루블로 산출된다. 즉 실제 소득 격차는 크리벤코가 주장한 3:2가 아니라 최대 5:1에 달하는 계급적 분화 구조를 띤다.

 

또한 크리벤코는 “과거 국유지 농민의 가구당 자본 가치가 1,060루블인 반면, 과거 지주제 농민은 635루블”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를 경제적 범주에 따라 재분류할 경우 그 수치는 각각 (a) 1,737.91루블, (b) 786.42루블, (c) 363.38루블로 산출된다. 즉 실제 자본 가치의 격차는 크리벤코가 제시한 3:2가 아니라 최대 5:1에 달한다. 이처럼 ‘농민’이라는 대상에 법적 범주를 적용하여 구분하는 오류를 범함으로써, 저자는 ‘농민’ 경제의 실제 구조적 실상을 파악하는 객관적 분석틀로부터 스스로 이탈해 버린 것이다.

 

경제적 계급에 따라 농가를 재분류해 검토하면, 상층 (부유층) 농가는 가구당 평균 1,053.2루블의 소득을 올리고 855.86루블을 지출하여 197.34루블의 순수익을 거둔다. 반면 중간층 농가는 473.8루블의 소득에 471.61루블을 지출하여 가구당 순수익이 2.19루블에 불과하다 (신용 부채 및 체납금 제외). 이는 실질적 생계 유지에 턱없이 부족한 수준으로, 중간층 11가구 중 5가구가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나아가 최하층 (빈곤층) 농가는 소득 202.4루블, 지출 223.78루블로 가구당 21.38루블의 적자를 내며 손실을 보는 파산적 영농을 지속한다.

 

이러한 편차가 심대한 농가들을 단일하게 묶어 전체 평균 (순수익 44.11루블)을 산출하는 방식은 현실의 계급적 실상을 완전히 왜곡한다. 이러한 평균 통계는 순수익을 확보한 6가구의 부유한 농민이 8명의 농업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는 핵심 사실을 은폐한다. 농업 노동자 고용은 상층 농업이 지닌 자본주의적 성격을 입증함과 동시에, 이들 가구가 순수익에 기반하여 외부 ‘부업 (산업)’에 의존할 필요성을 상쇄해 준다. 실제로 부유한 농민들은 전체 예산 (6,319.5루블) 중 6.5%에 해당하는 412루블만을 부업으로 충당한다. 더욱이 시체르비나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이들이 종사하는 부업은 ‘운반’이나 ‘양치기’ 등 외부 종속적 노동이 아닌 타인 착취를 전제로 하는 유형이며, (여기서 축적된 ‘저축’은 상인 자본으로 전환된다). 이들 부유층은 4개의 산업 시설을 소유하며 이를 매개로 전체 소득의 5%에 해당하는 320루블의 소득을 추가로 거두어들인다.

 

중간층 농민의 경제적 실태는 이와 상이한 양상을 보인다. 이들은 농업 소득만으로는 최소한의 생계조차 유지하기 어려워, 필요한 소득의 19%를 이른바 부업 (산업)에 의존한다. 시체르비나의 조사에 따르면, 중간층 7가구 중 독립적인 부업 (양복업 및 숯 제조)에 종사하는 농가는 2가구에 불과하며, 나머지 5가구는 타인에게 노동력을 판매하는 임금 노동에 내몰려 있다 (“저지대 예초”, “양조장 노동”, “추수철 날품”, “양치기”, “사유지 농업 노동” 등). 이들은 이미 ‘반(半)농민, 반(半)노동자’의 상태로 이행한 집단이다. 이러한 부업 종사는 자경 농업의 부실화를 초래하고, 결과적으로 농민 경제 자체를 지속적으로 약화시키는 악순환을 형성한다.

 

하층 (빈곤층) 농가의 경우 순전히 적자를 감수하며 영농을 유지한다. 이들 가계 예산에서는 “부업 (산업)”의 비중이 24%에 달해 훨씬 더 큰 중요성을 가지며, 이 때의 부업은 단 1가구를 제외하고는 전적으로 임금 노동력의 판매로 구성된다. 심지어 이들 중 2가구는 “농업 노동”에 기반한 부업 수입이 전체 소득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소생산자 내부에서 전개되는 완전한 계급 분화 과정은 이로써 명확히 입증된다. 소생산자층의 상위 집단은 자본가 (부르주아)로 이행한 반면, 하위 집단은 임금 노동자 (프롤레타리아)로 몰락했다. 이처럼 구조적 균열이 심대한 상태에서 통계적 ‘전체 평균’을 취하는 방식은 농촌 사회의 실제 경제적 실상과 계급 관계를 전면적으로 왜곡하고 은폐할 뿐이다.

 

따라서 저자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수사학적·방법론적 오류에 빠지게 만든 근본 원인은 그가 유효성을 상실한 허구의 평균 수치에 전적으로 의존했기 때문이다. 시체르비나는 해당 군 전체 농민 농업에서 전형적인 농가들이 차지하는 위상을 측정하고자 분여지 규모를 기준 삼아 집단을 분류했으며, 그 결과 추출된 24개 농가의 전반적 평균 변동 수준은 군 전체 평균보다 약 3분의 1가량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집계 방식은 결코 타당한 분석으로 수용될 수 없다. 해당 24개 농가 간에는 이미 극심한 계급적 편차가 존재하고 있었으며, 단지 토지 소유 규모 (분여지)만을 기준으로 한 분류 방식은 농민층 내부의 실질적 분화 상태를 왜곡하고 은폐하기 때문이다.

 

“분여지 소유 규모가 농가의 경제적 번영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라는 크리벤코의 주장은 완전한 오류다. 마을 공동체 내부에서 토지를 “평등하게” 분배한다 할지라도, 생산 수단 (농경지 및 농구)이 결여된 무마 (無馬) 농민이 영농을 포기한 채 임금 노동자로 전락하여 프롤레타리아화되는 현상을 막을 수 없으며, 반대로 다수의 작업마를 확보한 상층 농민이 타인의 토지를 대량 임차하여 이윤을 창출하는 자본주의적 농장을 확장하는 것 역시 저지하지 못한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실제로 24개 농가의 예산 수치를 재검토하면 이러한 모순이 명확히 드러난다. 6데샤티나의 분여지를 보유한 부유층 농가는 758.5루블의 총소득을 올린 반면, 더 넓은 7.1데샤티나의 분여지를 가진 중간층 농민의 소득은 391.5루블에 그쳤고, 6.9데샤티나를 보유한 빈곤층 농민의 소득은 109.5루블에 불과했다. 경제적 계급 간 소득 비율이 4:2:1의 현격한 격차를 보이는 동안 분여지 소유 비율은 2.6:1.08:1의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 이러한 결과가 초래된 원인은 명백하다. 가구당 22.1데샤티나의 분여지를 소유한 부유한 농가는 가구당 평균 8.8데샤티나의 토지를 추가로 임차하여 영농 규모를 확장한 반면, 9.2데샤티나를 보유한 중간층 농가는 7.7데샤티나, 8.5데샤티나를 보유한 빈곤층 농가는 불과 2.8데샤티나만을 추가 임차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따라서 크리벤코가 “시체르비나가 제시한 자료는 군 단위나 주 단위의 전체적 경제 실태를 정확히 측정하는 데 기여하지 못한다”고 지적한 것은 타당성을 잃는다. 그가 정작 비판했어야 할 대상은 왜곡된 전체 평균에 의존한 자기 자신의 방법론적 한계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시체르비나가 수집한 통계 자료는 농촌 사회의 계급적 구조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매우 포괄적이고 이론적 가치가 높다. 크리벤코가 이 자료를 바탕으로 객관적 실상을 도출해 내지 못했다면, 그 책임은 자료 자체의 한계가 아닌 통계 수치를 왜곡하여 해석한 크리벤코 본인의 분석적 무능에 있다.

 

시체르비나는 분석 과정 (197쪽)에서 법적 구분이 아닌 경제적 구분에 입각하여 농용 가축 소유 정도에 따른 농민 분류를 제시했다. 이처럼 경제적 기준을 적용한 분류는 추출된 전형적 24개 농가의 각 계급별 비중이 해당 군 전체 농촌 사회의 경제적 집단 구성 비율과 명확히 일치함을 입증하는 분석적 근거를 제공한다. 그 구체적 분류 체계는 다음과 같다.

 

보로네시 주 오스트로고즈스크 군 농가 계급별 통계

 

소유 축력수에 따른 세대주 분류

세대주 수

세대주 비율(%)

세대당 가축수

세대당 토지: 분여지(데샤티나)

세대당 토지: 임차지(데샤티나)

평균 가족수

농장 노동자 보유 가구(%)

상공업용 재산 보유 가구(%)

집 없는 가구(%)

일할 사람 없는 가구(%)

토지 경작 않는 가구(%)

농기구 없는 가구(%)

I. 축력 무소유

8,728

26.0

0.7

6.2

0.2

4.6

0.6

4.0

9.5

16.6

41.6

98.5

II. 한 마리 축력 소유

10,510

31.3

3.0

9.4

1.3

5.7

1.4

5.4

1.4

4.9

2.9

2.5

III. 2, 3마리 축력 소유

11,191

33.3

6.8

13.8

3.6

7.7

8.3

12.3

0.4

1.3

0.4

—

IV. 4마리 이상의 축력 소유

3,152

9.4

14.3

21.8

12.3

11.2

25.3

34.2

0.1

0.4

0.3

—

총계

33,581

100.0

4.4

11.2

2.5

6.7

5.7

10.0

3.0

6.3

11.9

23.4

[전형적인 24개 가구] 노업노동자

—

—

0.5

7.2

0

4.5

—

—

—

—

—

—

[전형적인 24개 가구] 가난한 농민

—

—

2.8

8.7

3.9

5.6

—

—

—

—

—

—

[전형적인 24개 가구] 중간 농민

—

—

8.1

9.2

7.7

8.3

—

—

—

—

—

—

[전형적인 24개 가구] 부유한 농민

—

—

13.5

22.1

8.8

7.8

—

—

—

—

—

—

[전형적인 24개 가구] 총계

—

—

7.2

12.2

6.6

7.3

—

—

—

—

—

—

 

상층 (부유층) 농가가 보여주는 영농상의 우수성은 24개 농가의 단순 평균 수치로도 명확히 드러난다. 그러나 왜곡을 유발하는 이러한 허구의 평균 대신 경제적 범주 (계급)를 기준으로 재분류하여 분석할 때, 비로소 각 계급의 실질적 영농 조건과 농업 생산성에 대한 객관적 비교가 성립한다.

 

전형적 농가에서 일하는 농업 노동자는 농용 가축 미소유 농민보다 소폭 하위에 위치하나 그 상태에 매우 근접해 있다. 빈곤층 농민 역시 작업마 1두 소유 농민과 영농 실태상 실질적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소 소유 두수의 경우 빈곤층 2.8두, 1두 소유 농민 3.0두로 0.2두의 차이에 불과하다). 중간층 농민은 2~3두 소유 농민보다 약간 상위에 위치한다 (소 소유 수량은 약간 많고 토지는 약간 적다). 반면 부유층 농민은 4두 이상 소유 농민보다 약간 하위에 위치하면서 그에 근접한다.

 

이러한 수치는 해당 군 전체에서 외부 임금 노동에 종사할 필요 없이 독자적 영농을 바탕으로 규칙적으로 이윤을 창출하는 상층 농민이 전체의 10%를 상회한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이들의 소득이 화폐 형태로 집계된다는 점은 해당 농업이 상업적 성격을 띰을 입증한다). 이들 상층 농가 상당수는 고용 노동에 의존하여 농장을 운영하며, 전체 가구의 25% 이상이 상시 농업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일시적 일용직 노동자 고용 가구는 통계상 미상).  

 

반면 군 내 농민의 과반 (무마 농민 26%와 1두 소유 농민 31.3%의 합산인 57.3%로 60%에 근접)은 빈곤층으로서 영농 행위 자체가 지속적 적자를 초래하는 상태에 놓여 있으며, 지속적인 수탈 끝에 점진적 몰락 과정을 겪는다. 이들은 생계 유지를 위해 노동력 판매를 강제당하며, 전체 농가의 약 25%는 자경 농업보다 임금 노동에 생계를 종속시키고 있다. 나머지 중간층 농민 역시 구조적 적자 영농 속에서 외부 부업 수입에 의존해 부족분을 충당하는 불안정한 경제적 지위에 머물러 있다.

 

크리벤코가 제시한 실상이 실제 구조를 얼마나 왜곡하고 있는지를 입증하기 위해 관련 통계 자료를 면밀히 재검토했다. 그는 세밀한 계급적 구분 없이 단순 전체 평균만을 활용하여 분석을 수행했으며, 그 결과 현실을 구체적으로 도출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했다. 24가구의 예산 자료를 보면, 부유층 1가구가 거둔 순수익 (+197.34루블)은 빈곤층 9가구가 낸 적자의 합 (-21.38루블 × 9 = -192.42루블)을 상쇄하는 구조를 띤다. 즉 전체의 10%에 불과한 상층 농가가 57%에 달하는 하층 농가의 적자를 메우고도 잉여를 남기는 격차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크레벤코는 24가구 평균 예산에서 산출된 44.14루블의 잉여 (신용 부채 및 체납금 15.97루블 차감 전)만을 근거로 삼아, 중간층과 하층 농민의 구조적 몰락을 단지 표면적인 ‘쇠퇴’로 축소하여 다루는 데 그쳤다.

 

실상 중간층 농민의 분석에서만 영농의 구조적 ‘쇠퇴’를 언급할 수 있을 뿐, 빈곤층 농민 대중의 경우에는 직접적인 수탈과 몰락의 과정이 포착된다. 이는 상대적으로 자본 체계가 견고히 자리 잡은 소수 상층 농가로 생산 수단이 집중되는 과정에서 초래된 구조적 결과다.

 

이러한 후자의 실태를 외면했기 때문에 크리벤코는 농가 예산이 지닌 또 다른 중요한 특징, 즉 농민층의 내부 분화가 국내 시장을 창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포착하는 데 실패한다. 한편으로 최상층에서 하층으로 내려갈수록 부업 (주로 임금 노동력의 판매)에서 발생하는 소득 비중이 점진적으로 확대된다 (부유층 6.5%, 중간층 18.8%, 23.6%). 다른 한편으로 최하층에서 상층으로 올라갈수록 농업의 상품적·부르주아적 성격이 강화되며 판매되는 농산물 비중 역시 증가한다. 각 계급별 농업 총소득 대 상품 소득의 수치는 부유층 (a) 3,861.7 / 1,774.4루블, 중간층 (b) 3,163.8 / 899.9루블, 빈곤층 (c) 689.9 / 175.25루블로 각각 집계된다.

 

분모에 해당하는 화폐 부문 소득은 최상층에서 최하층으로 내려갈수록 각각 45.9%, 28.3%, 25.4%를 차지한다.

 

이로써 수탈당한 농민에게서 누적·강탈된 생산 수단이 어떠한 기제로 자본으로 전환되는지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분석에서 드러나듯, 크리벤코가 활용된 통계 자료로부터 객관적이고 정확한 결론을 이끌어내지 못했음은 자명하다. 철도 여행 중 접한 한 농민의 증언에 기초하여 노브고로드주 농민 농업의 화폐적 성격을 기술한 이후에야, 그는 “가급적 저렴하게 풀을 베어” “최대한 유리한 가격에 판매하기 위한” “특정한 수단과 역량”을 “배양하고” (156쪽) 한 가지 목적에 물두하게 만드는 근본적 조건이 바로 상품 경제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즉 상품 경제 체제는 “상업적 수완을 일깨우고 세련화하는 학교”로 기능한다. 그 결과 “수완을 발휘한 개별 주체는 전면에 나서 콜파예프 (Kolpayev)나 데루노프 (Derunov)와 같은 착취적 자본가 유형으로 전화하는 반면, 이에 적응하지 못한 대중은 뒤처지고 퇴화하여 궁핍화된 끝에 농업 임금 노동자 대열로 전락한다.” (156쪽).

 

전혀 다른 조건이 지배적인 지역, 즉 농업이 주된 산업인 보로네시주의 통계 자료에서도 도달한 결론은 정확히 동일하다. 이를 시사받은 분석자라면 상품 경제 체제가 국가 전반의 경제 생활은 물론 특히 ‘공동체’와 ‘농민층’을 규정하는 핵심적 바탕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파악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러한 상품 경제의 작용만으로도 ‘인민’과 ‘농민층’이 프롤레타리아 (몰락하여 농업 노동자로 전락한 대열)와 부르주아지 (착취적 자본가 계급)로 분화하고 있음, 즉 자본주의 경제 구조로 이행하고 있다는 점 역시 명백히 드러난다. 그럼에도 ‘인민의 벗들’은 이러한 객관적 실상을 직시하지 못한 채 현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하여 크리벤코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상태를 지극히 당연한 현상으로 수용하며” (생산관계가 지닌 자본주의적 본질의 본래적 결과라는 점을 명시했어야 한다. 그랬다면 “상대 진영”의 관점을 객관적으로 규정함과 동시에 공허한 미사여구로 상대의 견해를 폄훼하는 오류를 피하고 실질적인 구조 분석으로 진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크리벤코는 이들과의 논쟁을 회피함에 따라 상품 경제가 ‘수완 있는’ 착취자와 ‘우직한’ 임금 노동자를 배출하는 ‘학교’라는 사실을 결과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이를 자본주의가 수행하는 불가피한 과업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학교’와 그 내부의 “착취자들”에 맞선 투쟁을 관료 및 지식인 집단과 결탁하여 수행해야 한다고 믿는 태도는 자본주의의 극복할 수 없음을 전제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반면 자본주의적 ‘학교’와 착취 구조에 면죄부를 부여한 채 실효성 없는 자유주의적 조치로 자본주의의 부작용만을 완화하려는 시도는 ‘인민의 벗들’이 지닌 본질적 한계를 정면으로 드러낸다!) “반면 우리의 시각은 이와 상이하다. 앞서 지적한 대로 자본주의가 핵심적 역할을 담당함은 자명하지만” (착취자와 임금 노동자를 배출하는 ‘학교’에 관한 대목을 의미한다), “그 역할이 국민 경제 변화를 전적으로 규정한다거나, 향후 여타 해결책의 출현을 전면 차단할 만큼 절대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160쪽).


사회적 체제에 대한 명확하고 직설적인 구조 분석이나 ‘농민층’이 착취자와 임금 노동자로 분화되는 근본 원인에 답하는 대신, 크리벤코는 “자본주의의 역할이 결정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실질적 내용이 결여된 명제로 문제를 일축한다. 따라서 관건은 과연 논리적·실증적 근거에 기반하여 그러한 주장을 제기하는 것이 성립할 수 있는지 여부다.

 

자신의 견해가 지닌 정당성을 입증하려면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제시한 역사적 이행 방향, 즉 착취자에 맞선 프롤레타리아의 계급 투쟁 외에 어떠한 역사적 요인이 ‘결정적’으로 작용하며, 또 다른 어떠한 ‘해결책’이 존재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했다. 그러나 크레벤코는 이에 대해 아무런 실증적 근거도 내놓지 못했다. 혹은 이하에 전개되는 명제를 제시한 것만으로 자신의 주장을 입증했다고 착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비록 황당무계한 논리일지라도 ‘인민의 벗들’이 보여주는 분석적 한계를 고려하면 이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쇠락의 주된 대상은 5데샤티나 미만의 분여지를 보유한 토지 결핍 농가다.” “반면 15.7데샤티나의 분여지를 확보한 전형적인 국유지 농가는 경제적 안전성 측면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이들이 80루블의 순수익을 확보하기 위해 5데샤티나의 토지를 추가로 임차한다는 사실은 모순적으로 영농 유지에 필요한 실질적 요구 조건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토지 빈곤’이라는 현상을 자본주의적 이행과 결부시키는 이러한 관점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 이는 토지를 적게 소유한 대중은 보유한 생산 수단마저 상실하는 반면, 토지를 이미 대량 소유한 상층 농가 (각 15.7데샤티나 보유)는 생산 수단을 더욱 집적·확대한다는 법칙성을 입증할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은 한쪽의 몰락과 다른 쪽의 부유화라는 계급 분화 과정을 단지 수사적으로 재서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현상의 본질을 전혀 규명하지 못하는 (농민은 토지를 무상으로 분배받는 것이 아니라 매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토지 빈곤이라는 관념적 설명 방식과는 결별해야 한다. ‘토지 부족’이라는 용어는 진행되는 현상을 불완전하게 포착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부정확하다. 분석의 중심은 단순한 토지 소유 여부가 아니라 생산 수단 전반으로 확장되어야 하며, 농민이 토지를 ‘충분히 공급받지 못한다’는 식의 관념적 서술이 아니라, 확장되는 자본주의적 수탈로 말미암아 토지 및 생산 수단으로부터 체계적으로 배제·분리되고 있다고 규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크리벤코는 자신의 논지를 마무리하며 “어떤한 조건에서도 농업이 제조업으로부터 분리된 채 ‘자연발생성’을 유지해야 한다거나 또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언급한다. (이미 교환 체계를 전제로 한 화폐 경제라는 ‘학교’가 존재하며, 그 결과 농업이 제조업으로부터 분리되는 현상을 인정한 것은 크리벤코 본인이었다. 그럼에도 역사적 당위의 문제를 다시 제기하는 것은 논리적 일관성을 결여한 태도다). 나아가 그는 “우리가 지적하려는 바는 인위적으로 분리된 산업을 창출하는 행위의 비이성성 및 (킴리와 파블로보의 수공업이 과연 “분리”되어 있는지, 대체 누가 그것을 “인위적으로” “창출”했으며, 언제 어떤 방식으로 단행했는지를 검증하는 것 역시 흥미로운 과제가 될 것이다.), 노동자를 토지와 생산 수단으로부터 분리시키는 동인이 자본주의에만 국한되지 않고 이에 선행하여 이를 촉진하는 여타 요인들에도 존재한다는 사실뿐이다”라고 강변한다.

 

이 대목에서 크리벤코는 노동자가 토지로부터 분리되어 착취자에게 종속되는 현상을 단지 노동자의 ‘빈곤’과 착취자의 ‘과다한 토지 소유’라는 표면적 원인으로 귀착시키는 관념적 시각을 재차 드러낸다.

 

나아가 이러한 부류의 관념론적 철학은 자본주의를 사회 변동의 결정적 동인으로 규정하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분석틀을 ‘편협함’이라 비난한다! 본고에서 농민과 수공업자의 계급적 분화 과정을 정밀히 재검토한 이유는 사회민주주의적 문제 의식과 이론적 설명 체계를 명확히 정립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주관적 사회학의 관점에서는 단지 농민의 ‘궁핍화’와 ‘착취자’의 ‘사적 이윤 추구’로만 해석되는 사실들이, 유물론적 관점에서는 상품 생산 자체의 내적 법칙에 따라 관철되는 상품 생산자들의 부르주아적 계급 분화 과정임을 입증해야 했다. 또한 자산 계급과 무산 계급 사이의 투쟁이 대규모 공장 지대뿐만 아니라 외딴 농촌 마을에서도 관철되고 있으며, 이러한 대립의 본질이 상품 경제의 발전이 초래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간의 계급 투쟁이라는 점 (앞서 1부에서 인용한 바와 같이)을 구체적 통계 자료로 증명할 필요가 있었다. 젬스트보 통계가 제공하는 실증적 자료에 기반하여 입증된 농민층과 수공업자의 해체 및 탈농민화 현상은, 농민과 수공업자를 소생산자 즉 ‘소부르주아’로 규정하는 사회민주주의적 관점의 정확성을 뒷받침하는 결정적 근거다. 이러한 논지는 소생산자를 둘러싼 상품 경제적 조건과 그로 인한 자본주의적 분화 기제를 외면했던 과거 농민 사회주의 (나로드니키)의 한계를 극복하고, 노동 계급 사회주의 이론을 구성하는 핵심적 축을 이룬다. 따라서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을 시도하고자 한다면, 비판의 초점을 이 계급 분화 법칙에 집중시켰어야 했다. 나아가 정치경제학의 관점에서 러시아 사회가 상품 경제 체제가 아니며, 농민층의 해체 역시 상품 경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인민 대중의 수탈과 노동자의 착취 구조가 자본주의적 사회 구성체 외의 다른 요인으로 설명될 수 있음을 논리적·검증적으로 입증했어야 한다.

 

자, 어디 한번 시도해 보라, 신사 양반들!

 

사회민주주의 이론의 실증적 증거로 농업 및 수공업 경제 실증 자료를 집적하는 데는 명확한 방법론적 이유가 존재한다. ‘인민의 벗들’이 보여주는 주관적 관점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그들의 사상을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관념적으로 대조하는 데 그친다면, 이는 유물론적 방법론에서 벗어나는 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인민주의적 (나로드니키적)’ 사고의 발생 기제를 규명하고, 현대 러시아 사회의 경제적 현실 내에 존재하는 그들의 물질적 토대를 입증하는 과제가 병행되어야 한다.

 

농민과 수공업 경제에 관한 통계 및 구체적 사례들은 스스로를 ‘농민의 대변자’라 자처하는 ‘인민의 벗들’이 실제 농민층을 어떠한 관념적 틀로 왜곡하여 파악하는지를 명백히 보여준다. 이러한 실증 자료들은 농촌 경제 내부에서 작동하는 부르주아적 본질을 증명하여, ‘인민의 벗들’을 계급적으로 소부르주아지의 이념가로 규정하는 관점의 타당성을 입증한다. 나아가 이는 러시아 급진주의자들의 이론과 개량책이 소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이해관계와 정밀하게 밀착되어 있음을 폭로한다. 그들의 개량책에 대한 정교한 검토는 이러한 급진주의 사상이 ‘지식인 사회’에 널리 유포될 수 있었던 구조적 원인을 해명할 뿐만 아니라, ‘인민의 벗들’이 보여주는 정치적 타협주의와 기회주의적 태도의 근본적 이유를 체계적으로 설명해 준다.

 

마지막으로 자본주의의 발전 수준이 미진한 러시아 사회의 특정 경제적 양상을 구체적으로 정밀 검토해야 하는 방법론적 이유가 존재한다. 인민주의자들이 이론적 논거의 주요 출처로 삼는 영역에 대한 경제학적 연구와 실증적 서술은, 현지 사회에 광범히 유포되어 있는 사회민주주의적 경향에 대한 반발과 오해에 가장 명쾌하고 직접적으로 답하는 기제가 된다. 자본주의가 ‘인민적 생산 체제’와 본질적으로 모순된다는 관념적 전제에 머물러 있는 러시아 급진주의자들은, 대규모 자본주의가 지닌 역사적 발전성을 인정하고 이를 수탈적 현 체제에 맞서 싸우는 물질적 토대로 삼고자 하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을 향해 비난을 퍼붓는다. 그들은 사회민주주의가 농민 대중의 계급적 이익을 외면한 채 “모든 농민을 공장의 용광로 속으로 강제 편입시키려 한다”는 식의 왜곡된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자본주의적 발전 법칙을 타당하게 인정하면서도 농촌 지역의 실태 분석에 이르러서는 이를 예외화하거나 부정하는, 지극히 비논리적이고 관념론적인 오류에 기반한다. 따라서 나로드니키적 왜곡에 대응하는 가장 결정적인 반론은 현 단계 농촌 사회의 객관적 경제 구조와 계급 분화의 실상을 실증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실증적 조사와 구체적 명확성을 갖춘 체계적 관점에서 농촌의 경제적 현실을 과학적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다. 농촌의 경제 조건을 정념에 지배받지 않고 객관적으로 분석할 때, 러시아 농촌은 개별적으로 파편화된 지역적·국지적 시장들의 체계로 구성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각 국지 시장 내부에서는 시장 법칙이 규제하는 사회적·경제적 현상들이 관철된다. 본래 가부장적 동질성을 띠던 직접 생산자는 계급적 분화를 거쳐 상층과 하층으로 분화되며, 이들 주변에서 생계의 기반을 수탈하는 자본, 특히 상인 자본이 발흥한다.

 

반면 급진주의자들의 농민 경제에 관한 관념적 서술을 농촌의 실제 1차 자료와 대조해 보면, 그들의 비판적 사고 체계가 지역 시장에 군집한 영세 상인, 행상, 중개인, 소착취자 집단의 존재를 완전히 배제하고 있음을 포착하게 된다. 그들은 “더 이상 농민은 없고 상인만 존재한다”는 단순한 수사로 해당 집단을 분석 대상에서 제외한다. ‘농민층의 해체’라는 사실 자체는 부합하나, 이들 ‘상인 집단’을 타인의 노동을 점유하는 영리 주체로 정확히 규정하고, 그들이 지역 경제에서 차지하는 실질적 비중을 통계적으로 산출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나아가 반대편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시장에 판매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임금 노동자 집단을 규정하고 엄밀한 실증 자료에 기반하여 접근할 때, 농민층의 부르주아적 분화라는 구체적 실체가 드러나며 ‘인민적 생산 체제’라는 관념적 허상은 해체된다.

 

이러한 소규모 시골 착취자 집단은 고립된 상태에 놓인 임금 노동자를 각개격파하여 예속시키는 가혹한 억압 기제로 작동한다. 미발달된 생산력과 연계망의 부재라는 야만적 조건 속에서 관철되는 그들의 착취는, 단지 노동 생산물의 수탈에 그치지 않고 인간 존엄성을 침해하는 아시아적 전제주의의 양상을 띤다.

 

이러한 농촌의 현실을 자본주의적 발전 단계와 비교할 때, 사회민주주의자가 대규모 자본주의를 역사적 동인으로 규정하는 근거가 명확해진다. 자본주의는 분절된 국지 시장들을 전국적 단일 시장으로 일원화하고, 소규모 착취자 무리를 해체하여 대자본으로 재편하며, 노동을 사회화하고 생산성을 도약시킨다. 이는 영세 착취자가 주도하는 가부장적·전근대적 예속 구조를 파괴하고 노동을 대자본에 직접 종속시키는 과정이다. 비록 이 과정이 노동의 강제와 억압, 야만적 노동 조건을 동반한다 할지라도, 과거의 전근대적 예속과 비교할 때 역사적 발전성을 지닌다. 자본주의적 대공장 체제는 노동자 계급의 계급 의식을 각성시키고, 파편화된 불만을 조직적인 계급 투쟁으로 전환시키며, 모든 노동 인민의 해방을 목표로 하는 체계적 운동의 물질적 토대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투쟁의 동력은 대규모 자본주의라는 객관적 조건 자체에서 산출되므로, 역사적 필연성을 확보한다.

 

농민 대중을 무시한다는 비난에 대해,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카를 마르크스의 다음과 같은 명제를 인용하여 자신의 입장을 완전히 입증할 수 있다.

 

비판은 사슬을 장식하던 가공의 화한을 걷어내었다. 이는 인간으로 하여금 환각적 장식이 제거된 족쇄를 그대로 차고 있게 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그 사슬 자체를 깨뜨려 벗어던지고 살아 있는 꽃을 향해 손을 뻗도록 하기 위함이다.

 

오늘날 러시아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관념적 이상화와 기만적 관념에 맞서 싸우고 이를 해체하여 농촌을 장식한 가공의 화환을 제거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이는 농민 대중을 현재의 수탈과 점진적 몰락, 예속 상태에 방치하지 않고, 노동 인민을 속박하는 사슬의 실체와 형성 기제를 프롤레타리아가 명확히 자각하도록 이끌기 위함이다. 이로써 이들이 주체적으로 떨쳐 일어나 사슬을 깨뜨리고 실재하는 해방의 결실을 취하도록 이끌어낸다. ‘인민의 벗들’이 사회민주주의자들을 향해 강한 적의를 드러내는 근본적 이유가 바로 이 지점에 존재한다.

 

그럼에도 자신의 객관적 사회적 지위에 기반하여 스스로 계급 의식을 형성하고 계급 투쟁에 착수할 수 있게 된 노동 인민의 대표자들에게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이와 같은 유물론적 이론을 개진하는 순간, 이들은 농민을 공장의 용광로 속으로 밀어 넣으려 한다는 중상에 직면하게 된다.

 

오늘날 사회민주주의자들을 향해 비난을 퍼붓는 주체들의 실체는 과연 누구인가?

 

이들은 ‘정부’와 ‘사회’, 즉 도처에서 노동 인민을 억압해 온 부르주아 국가 기구 및 제도적 영역에, 노동 인민의 해방을 의존하는 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역사적 선행 조건이 결여된 소부르주아 집단이 사회민주주의자들을 향해 계급적 사명이 결여되어 있다는 식의 주장을 자행하는 것은 이론적·실천적 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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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소득 없는 나날들이 가장 버티기 힘든 법이다. 


이 시기를 잘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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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자의 주석

 

 

독자들은 앞서 일부 사안에 관한 추가 검토를 언급했던 정황을 파악했을 것이나, 실제 본문에서 해당 검토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본고가 《러시아의 부 (루스코예 보가츠트보)》에 게재된 마르크스주의 관련 기사들을 반박하기 위해 집필한 1부 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극심한 시간적 제약으로 발표를 마냥 미룰 수 없었던 만큼, 이미 출간이 두 달이나 지체되어 더 이상 연기할 수 없다고 판단했으며, 글 전체가 인쇄될 때까지 대기하기보다 미하일롭스키의 ‘비판’을 고찰한 부분을 우선 발행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이어질 2부와 3부에서는 1부의 논의에 더해 러시아의 경제적 실상을 규명하고,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사상과 전술」을 중심으로 《러시아의 부》의 핵심 필진인 유자코프와 크리베코의 사회적·경제적 관점을 다룬 글을 제시할 예정이다.

 

 

현행 판에 대한 주석

 

 

현행 판은 초판을 정확하게 복원한 결과물이다. 본문 교열 과정에 전혀 참여하지 못했으므로, 어떠한 변개를 가할 권리도 없다고 판단하여 오직 출판 관련 실무만 담당했다. 이 소책자가 사회민주주의 정치 선전을 부흥시키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할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사회민주주의적 지향을 지닌 이라면 그러한 정치 선전을 촉진할 주체적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이러한 확신 아래, 이 소책자의 저자와 견해를 같이하는 모든 이에게 수단을 가리지 않고 (특히 재발행에 힘입어) 본 책자와 마르크스주의를 선전하는 모든 기관지가 전면적으로 배포되도록 지원해 줄 것을 호소한다. 특히 지금이 이 작업을 수행하기에 적절한 시기다. 《러시아의 부》는 점차 도발적인 논조를 취하고 있으며, 사회민주주의 사상의 확산을 막고자 우리가 프롤레타리아트의 권익에는 관심이 없고 대중의 파멸만을 초래하고 있다는 노골적인 중상모략을 퍼붓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러한 비방은 결국 스스로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우리의 승리를 앞당기는 결과로 이어질 뿐이다. 그러나 이들 모략가가 발행 부수 수천 부에 달하는 잡지를 소유하고 열람실과 도서관을 제약 없이 활용하는 등 정치 선전을 널리 퍼뜨릴 모든 물질적 수단을 독점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설령 특권적 지위가 이점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언제나 관철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저들에게 입증하기 위해 우리는 모든 역량을 기울여야 하며, 이러한 노력은 반드시 결실을 보리라 전적으로 확신한다.

 

 

189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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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롭스키 선생이 싸우는 법

 

 

미하일롭스키가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맞서 어떻게 싸우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그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이론적 견해와 정치적·사회주의적 활동에 대해 어떤 주장을 제안하는가?

 

그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이론적 견해를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규정한다.

 

“역사적 필연성의 내재적 법칙에 따라 러시아가 고유한 모순을 안은 채 소수 자본가에게 막대한 몫을 집중시키며 자본주의 생산을 발전시킬 것이라는 점, 그 과정에서 토지로부터 배제된 농민 (muzhik)들이 프롤레타리아로 전환되어 사회화될 것이라는 점, 그리고 모자가 다시 나타나 사람들의 머리에 씌워지는 마술처럼 인류 전체가 행복해질 것이라는 점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선언한 진실이다.”

 

따라서 현재가 아닌 오직 “전망”만을 다루는 듯 보이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미래에 대한 추정에서만 견해차를 보일 뿐, 현실 진단에 있어서는 ‘인민의 벗들’과 다름없다는 것이 미하일롭스키의 시각이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미래 예측에 유토피아적 요소가 전혀 없으며, 모든 것이 엄밀한 과학적 기준에 따라 측정된다고 확신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추상적인 역사 도식의 불변성을 교조화하고 관철하려 한다’고 단정한다.

 

결국 이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견해에 맞서 독자적인 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이들이 오랫동안 전개해 온 비난 방식을 제현한 것에 불과하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추상적인 역사 도식의 불변성을 주장한다’는 강변이 바로 그것이다!!

 

역사적 현실을 왜곡하는 허구에 불과하다!

 

서구에 자본주의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러시아 역시 자본주의를 ‘거처야 한다’고 주장한 마르크스주의자는 어디에도 없다. 마르크스의 이론을 특정 경제적 사회 구성체에 대한 분석을 넘어선 보편적·필수적 역사 철학 도식으로 간주한 마르크스주의자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주관적 철학자인 미하일롭스키만이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며, 이를 보편 철학 이론으로 곡해한 과오를 마르크스에게 전가하고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해 마르크스는 미하일롭스키의 비판이 비껴갔음을 명확히 규명한 바 있다.

 

마르크스주의자 가운데 러시아의 구체적 사회·경제적 관계라는 역사적 현실을 이탈하여 사회민주주의적 견해를 형성한 연유는 없으며, 구조적으로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마르크스주의의 창시자인 마르크스 본인이 현실에 기초한 연구 방식을 이론의 핵심 전제로 엄격히 정립하고 전체 이론 체계의 주축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미하일롭스키가 추상적 역사 도식에 관한 언사를 ‘직접 들었다’고 주장하여 이를 반박하려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개인적으로 사소하고 불합리한 발언을 들었다는 사실이 사회민주주의자나 제3자에게 어떠한 유의미한 비중을 가지기는 어렵다. 이는 단지 그가 논쟁 상대를 선정함에 있어 왜곡된 기회를 얻었음을 나타낼 뿐이다. 

 

그의 논쟁 상대가 스스로를 마르크스주의자나 사회민주주의자로 칭했을 개연성은 존재한다. 그러나 ‘위장된’ 명칭을 악용하는 사례는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이다. 미하일롭스키가 이러한 함량 미달의 ‘인사’와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자를 분별하지 못했거나, 마르크스가 엄격히 정립한 이론적 기준을 체화하지 못했다면, 이는 도리어 그의 이론적 식견이 미흡함을 증명하는 결과로 귀결된다.

 

미하일롭스키는 해당 지면에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을 격렬하게 비판한 인물로서, 오랫동안 사회주의자로서의 위상을 유지하며 대표적 위치에 있던 플레하노프와 그의 사회주의 저술에 주목해야 했다. 그가 정당한 절차에 따라 최초의 사회민주주의 저작인 플레하노프의 『우리의 차이점들』을 확인했다면, 단체의 전체 구성원을 대표해 명시한 다음의 선언을 확인했을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마르크스라는 위대한 이름의 권위에 기반하여 강령을 수용하지 않는다.”

 

러시아의 정세를 진단할 때 추상적 도식을 절대화하는 것과 마르크스의 권위적 작용을 거부하는 것 사이의 엄밀한 간극을 포착해야 한다.

 

사담에서 접한 단편적 견해를 마르크스주의 전체의 공식 입장으로 일반화하고, 사회민주주의 진영의 핵심 주체가 천명한 공식적 강령을 배제한 것은 이론적·논리적 정당성을 결여한 비난 방식에 불과하다.

 

플레한노프의 선언을 토대로 살펴볼 때 미하일롭스키 비판의 왜곡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플레하노프는 “마르크스주의 내부에서도 러시아의 현 상황을 평가하는 시각이 다를 수 있음”을 명시하며, “자신들의 노력을 복잡다단하게 얽힌 사회적 관계에 과학 이론을 최초로 적용하려는 시도”로 규정한 바 있다.

 

이러한 명확한 명제에서 확인되듯,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복잡다단한 사회적 관계를 과학적으로 해명하기 위한 필수적 분석 도구로서 마르크스 이론의 방법론을 채택했다. 이에 따라 사회적 관계를 판단하는 기준을 추상적인 도식에 두지 않고, 현실 구조와 마르크스 이론의 정합성 및 엄밀한 일치에서 찾았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을 펼칠 때 그가 실제로는 다른 구상을 품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가 직면했던 문제는 ‘러시아가 자본주의적 발전 단계를 거쳐야만 하는가’라는 물음이었다. 이러한 방식의 질문은 마르크스주의 공식적 틀 내에서는 단 한 번도 제시된 적이 없으며, 당국의 정책이나 ‘사회’의 활동, 또는 ‘인간 본성에 부합하는’ 사회적 이상 따위에서 ‘~해야만 한다’는 기준을 도출하려 했던 여러 토박이 철학자들의 주관적 방법론과 부합하는 것에 불과했다. 따라서 추상적인 도식을 절대화하는 인물이라면 정작 이러한 질문에 어떻게 답변했어야 하는가를 따져 묻는 편이 타당하다. 또한 그러한 인물이라면 변증법적 과정의 명백함, 마르크스 이론의 전반적인 철학적 의의, 그리고 모든 국가가 해당 단계를 거쳐야 할 필연성 등을 강변했을 것이 자명하다.

 

플레하노프의 대답은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접근 방식이었다.

 

플레하노프는 주관론자들의 관념적 관심사에 불과한 ‘~해야만 하는가’라는 당위적 질문은 배제했다. 대신 현실의 사회·경제적 관계와 그 실질적 전개 과정에만 논의를 집중했다. 당위적 물음에 관한 직접적 답을 피하고 “러시아는 이미 자본주의의 길로 들어섰다”고 진단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미하일롭스키는 추상적 역사 도식에 대한 절대화나 내재적 필연 법칙 등 근거 없는 주장을 전문가인 양 설파하고 있다. 나아가 이를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대한 격렬한 비판”이라고 규정한다!!

 

이러한 왜곡과 오류로 점철된 주장을 격렬한 비판이라 칭한다면, 그것이 과연 누구를 향한 어떠한 비판인지 성립조차 하기 어렵다!

 

미하일롭스키의 주장과 관련하여, 그가 사회민주주의자들의 관점을 “러시아는 스스로의 자본주의적 생산을 발전시키게 될 것이다”라는 식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러시아는 아직 “스스로의” 자본주의적 생산 단계에 도달하지 않은 상태이다. 이는 러시아 자본주의가 150만 명의 노동자 집단에 국한된다는 시각을 전제한 결과이다. ‘인민의 벗들’의 이러한 유치한 발상은 향후 논의에서 재차 확인된다. 이들은 자유노동의 상이한 형태들을 모두 “러시아는 고유한 모순 속에서 스스로의 자본주의적 생산을 발전시킬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 토지에서 분리된 농민들은 프롤레타리아로 전환될 것이다.”라는 명제 하에 분류하고 있다. 

 

논의가 진전될수록 왜곡은 더욱 심화된다. 현시점의 러시아에 “고유한 모순”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변할 수 있는가? 소수 자본가에 바탕을 둔 다수 민중의 착취가 부재하며, 인구 절대다수의 몰락과 소수의 부 축적 현상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는 말인가? 농민이 토지로부터 분리되는 과정이 여전히 후차적인 과제로 남아 있다는 주장인가? 농민에 대한 대대적인 수탈이 전제되지 않았다면 러시아 개혁 이후의 전체 역사가 이토록 격렬하게 전개될 수는 없었다. 이러한 주장을 공식적으로 피력하는 것은 극단적인 강변에 가깝다.

 

미하일롭스키는 “마르크스는 이미 형성된 프롤레타리아와 자본주의를 다루었으나, 우리는 그것을 비로소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중의 극심한 빈곤과 노동 인구에 대한 노골적 착취가 자행되는 러시아에서 프롤레타리아를 새로이 창출해야 한다는 말인가? 러시아 민중의 빈곤 조건은 (아주 타당하게) 잉글랜드의 상황과 비교되어 왔으며, 수백만 명이 기아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곡물 수출은 지속해서 증가해 왔다. 이러한 현실을 두고 프롤레타리아의 부재를 강변하는 주장은 성립할 수 없다!

 

생전에 그러한 주장의 허구성을 명시하는 기록을 남기는 것은 충분히 이론적 의의를 지닌다.

 

우리는 향후 ‘인민의 벗들’이 제시해 온 전술의 실체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는 러시아 노동 인민이 처한 참단한 실태에 위선적으로 눈을 감고, 이를 단순한 ‘동요’로 치부하여 ‘문명 사회’와 정부의 노력만으로 상황이 수습될 수 있는 것처럼 기만하는 행태이다. 이들은 노동 인민의 처지 악화가 단순히 체제의 ‘동요’가 아니라 소수 착취자의 후안무치한 수탈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현실을 보지 않으려 모래에 머리를 묻는 타조처럼 착취자를 은폐하면 그 존재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 착각한다.

 

반면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당면한 현실을 외면하는 자세를 부끄러운 겁쟁이의 행태라 지적할 때, 그리고 착취라는 현실을 출발점으로 삼아 인민 대중을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로 분리하는 러시아 사회의 부르주아적 구조 및 부르주아 지배 기구인 러시아 국가의 계급적 성격을 규명하려 할 때, 나아가 유일한 해법은 부르주아에 맞선 프롤레타리아의 계급 투쟁에 있다고 명시할 때, 이들 ‘인민의 벗들’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인민을 토지에서 쫓아내고 전통적 경제 구조를 파괴하려 한다며 맹렬히 비난하기 시작한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정치적 활동에 대한 미하일롭스키의 ‘격렬한 비판’으로 논의를 이동한다. 사회주의자와 선동가가 노동자 현장에서 수행한 활동은 합법적 언론에서 정직하게 다루어질 수 없으며, 검열을 거치는 정기 간행물은 이에 대해 ‘요령껏 침묵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하일롭스키는 이러한 기본적 한계를 망각한 채, 독자 대중과의 접촉을 독점한 위상을 활용하여 사회주의자들의 신망을 훼손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비판 대상의 실제 입장을 왜곡하는 비양심적 비평에 대한 반론 수단은 합법적 출판 영역의 바깥에서도 도출될 수 있다.

 

미하일롭스키는 순진함을 가장하며 “러시아의 마르크스주의자를 세 부류로 구분한다. 즉, 사회적 변화 과정에 무관심한 ‘마르크스주의적 방관자’, ‘생산 수단과 분리된 대상에만 관심과 기대를 기울이며 사태를 수수방관하는’ ‘소극적 마르크스주의자’, 그리고 농촌의 몰락이 가속화되어야 한다고 고집하는 ‘적극적 마르크스주의자’가 그것이다.”

 

이것이 정당한 비판에 해당하는지는 성립조차 하기 어렵다.

 

이 비평가는 현실의 구조가 자본주의 사회이며, 그 구제책은 부르주아에 맞선 프롤레타리아의 계급 투쟁이라는 점을 출발점으로 삼은 사회주의자들이 곧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라는 사실을 숙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어떠한 근거와 논리로 이들을 일종의 분별없는 속물 집단과 동일시할 수 있는가? 또한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명제조차 받아들이지 않고, 결코 독자적 집단으로 행동하거나 구상을 명시적으로 발표한 적도 없는 인물들에게까지 ‘마르크스주의자’라는 명칭을 확장 적용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미하일롭스키는 이러한 주장을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논리적 허점을 드러낸다.

 

그는 사교계의 분위기를 풍기며 “스스로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이들만 존재할 뿐,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자는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라며 대상을 비꼬고 있다. 이러한 주장이 어떠한 상황에서 제시된 것인지 의문이다. 자유주의자와 급진주의자가 모인 살롱에서의 발언인지, 혹은 사적인 편지 내용에 불과한지 명확하지 않다. 설령 사담이라 할지라도, 출판물에서는 어디에서도 공개적으로 등장한 적 없는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하는) 인물에 맞서 논의를 전개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 사회민주주의자라는 명칭이 혁명적 사회주의자 내부의 특정 파벌에 한정되어 사용되며, 이들을 다른 집단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파악하고 있음에도 ‘사회민주주의자들’을 향해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고 명분을 내세운다.

 

미하일롭스키는 불리한 정황에서 사실을 왜곡하며 비난을 회피하려 한다. “비난하려는 의도는 없다. 직접 듣고 보았다”라며 독자를 설득하려 하지만, 그의 시야에 들어온 대상이 속물과 비열한 악당에 불과하다 해서 그것이 사회민주주의자와 무슨 관련이 있겠는가. ‘현 시점’은 독립적이고 정당한 사회주의 활동은 물론 나로드나야 볼랴, 마르크스주의, 심지어 입헌주의를 막론하고 실질적 활동을 벌이는 모든 이들이 언제든 정치적 탄압에 직면한 상황이다. 이러한 명칭을 감개무량한 자유주의적 미사여구로 악용하는 비겁한 자유주의적 부류나 동지의 명성에 얹혀가는 악한이 존재한다는 점은 명백하다. 특정 명칭이 (사적으로 은밀하게) 불순한 부류가 더럽혀졌다는 이유로 해당 사상적 경향 전체에 그 허물을 묻는 것은 천박한 속물적 태도에 불과하다.

 

미하일롭스키의 전반적인 주장은 일련의 왜곡, 곡필, 날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사회민주주의자의 출발점이 되는 ‘진실’을 왜곡했을 뿐만 아니라, 그 어떤 마르크스주의자도 제시한 적 없는 방식으로 왜곡된 진실을 제시했다. 그가 러시아 현실에 대한 사회민주주의자의 실제 진단을 정직하게 다루고자 했다면, 프롤레타리아의 계급 의식 발전을 돕고 현 체제에 맞선 정치 투쟁으로 이들을 조직·단결시키는 길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오류를 덮기 위해 또 다른 기만을 시도한다. 무고한 피해자를 자처하며 위선적으로 “반론의 요지를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하거나, (그는 《러시아의 부 (루스코예 보가츠트보)》 제2권에서 정확히 이와 같이 기술했다.) “소극적 마르크스주의자에 대한 자신의 논평을 다시 읽으라며 도덕적 정당성”을 강변하는 식이다.

 

이 주장은 과거에 사용된 형편없는 속임수의 재탕에 불과하다.

 

(다른 형태의 인민주의가 아직 등장하지 않은 시점에) 자신을 사회 혁명적 인민주의의 비판자로 규정하고, 이처럼 자가당착적인 논리를 전개한 인물의 행태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인민주의자는 세 부류로 구분된다. 농민의 관점을 수용하여 태형이나 대처 방안으로 불리는 정부의 강권 정책에 부응하는 지조 있는 인민주의자, 운 좋게 편승하지 않는 한 농민의 의견에는 무관심한 채 결사 방식으로 외국의 혁명 운동을 러시아에 주입하려 애쓰는 겁쟁이 인민주의자, 부농의 삶을 진취적 농민이라는 민중적 이상향으로 실행에 옮겨 땅에 정착한 대담한 인민주의자가 그것이다.”

 

이러한 분류가 정당성을 결여한 저속한 조롱에 불과하다는 점은 명백하다. 설령 인민주의자들이 동일한 지면에서 반박하지 못하고 사상의 불법화로 인해 대중이 전언에 의존하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비판을 제기한 인물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비판적 평가가 지배적일 수밖에 없다. 

 

미하일롭스키 본인 역시 자신의 실체를 명확히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상의 논의로 정황은 충분히 명증하게 드러난다! 미하일롭스키가 이와 동류의 주장을 암시한 대목은 여전히 다수 존재하나, 그러한 함량 미달의 글을 검토하고 산재된 구절들을 수집·비교하여 진지한 반론을 도출하는 작업은 무익하고 소모적인 과정에 불과하다.

 

이상으로 논의를 맺는다!

 

 

189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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