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1

 

 

본 도표와 추가 도표는 본문에서 언급된 오스트로고즈스크 군(郡) 내 전형적인 농가 24곳의 농가 예산 및 경제적 구성 지표를 요약·정리한 자료이다.  

 

해당 자료는 농가의 수입과 지출 구조, 그리고 자본 축적 및 수탈의 양상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기초 토대를 제공한다.

 

첫째, 제1~21열, 제25~29열은 『통계 초록』의 원자료를 그대로 인용하였다. 제22열은 호밀, 밀, 귀리·보리, 기장·메밀, 기타 곡물, 감자, 채소, 건초 등 8개 항목에 관한 세로줄을 합산한 것이며, 제24열은 말, 소, 양, 돼지, 가금류, 가죽·양털, 지방·고기, 유제품, 버터 등 9개 항목에 관한 세로줄을 집계한 것이다. 제30~34열은 식료품 및 보드카·차 등 12개 가계 소비 지출 항목의 세로줄을, 제35열은 비누, 등유, 양초, 옷, 식기 등 4개 생활용품 지출 항목의 세로줄을 각각 합산하여 구성하였다. 왕겨와 짚을 제외한 곡물 수입 (제23열)의 산출 근거는 본문의 기술을 따른다.

 

둘째, 경지 규모 (제8열)는 임차 토지와 분여지 내 경지 면적을 데샤티나 단위로 합산하여 도출하였다.

 

셋째, ‘수입원’ 및 ‘지출 분포’ 항목의 하단 수치는 수입과 지출의 화폐화된 금액을 나타낸다. 특히 제25~28열과 37~42열의 수입 및 지출은 전액 화폐 가치로 환산된 수치이다. 이러한 금전적 수치는 총수입에서 각 가구의 자가 소비액을 차감하는 방식으로 산출되었다.

 

가구 분류별 인구 및 분여지 통계 (부록 1)

 

가구의 분류 및 그 수

구분

남녀를 더한 수

노동력 인구(성인 남자의 수)

농업 노동자가 있는 가구

농업 노동자 수(남녀)

분여지(데샤티나)

부유한 가구 6

계

47

11

6

8

132.6

 

가구당 평균

7.83

1.8

—

—

22.1

중간 가구 11

계

92

26

2

2

101.2

 

가구당 평균

8.36

2.4

—

—

9.2

가난한 가구 7

계

37

10

2

2

57.8

 

가구당 평균

5.28

1.4

—

—

8.5

총 24가구

계

176

47

10

12

291.6

 

가구당 평균

7.33

1.9

—

—

12.1

농업노동자 2 (가난한 가구에 포함)

계

9

2

—

—

14.4

 

가구당 평균

4.5

1

—

—

7.2

 

 

가구 분류별 토지 점유 및 자본 재산 통계

 

가구의 분류 및 그 수

구분

임차지 가구 수

임차지 면적(데샤티나)

총 경작지

건물의 수

공업 제조소 수

농업 기구의 수

집수레용 동물

가축의 총계

부유한 가구 6

계

6

52.8

123.4

52

4

224

35

81

 

가구당 평균

—

8.8

20.6

8.6

—

37.3

5.8

13.5

중간 가구 11

계

10

85.5

140.2

70

—

338

40

89.1

 

가구당 평균

—

7.7

12.7

6.4

—

30.7

3.6

8.1

가난한 가구 7

계

4

19.8

49.8

31

—

108

7

15.3

 

가구당 평균

—

2.8

7.1

4.4

—

15.4

1

2.2

총 24가구

계

20

158.1

313.4

153

4

670

82

185.4

 

가구당 평균

—

6.6

13

6.4

—

27.9

3.4

7.7

농업노동자 2 (가난한 가구에 포함)

계

—

—

6.8

6

—

11

—

1.1

 

가구당 평균

—

—

3.4

3

—

5.5

—

0.5

 

 

자산 가치 평가 및 미수 대부금 현황 (루블 환산)

 

가구의 분류 및 그 수

구분

건물

기타 부동산

도구

가정용품

의복

가축 및 꿀벌

총계

체불 대부금

부유한 가구 6

계

2,696

2,237

670.8

453

1,294.2

3,076.5

10,427.5

80

 

가구당 평균

449.33

372.83

111.8

75.5

215.7

512.75

1,737.91

13.3

중간 가구 11

계

2,362

318

532.9

435.9

2,094.2

2,907.7

8,650.7

357

 

가구당 평균

214.73

28.91

48.44

39.63

190.38

264.33

786.42

32.4

가난한 가구 7

계

835

90

112.3

254

647.1

605.3

2,543.7

233.6

 

가구당 평균

119.28

12.85

16.04

36.29

92.45

86.47

363.38

33.4

총 24가구

계

5,893

2,645

1,316

1,142.9

4,035.5

6,589.5

21,621.9

670.6

 

가구당 평균

245.55

110.21

54.83

47.62

168.14

274.56

900.91

27.9

농업노동자 2 (가난한 가구에 포함)

계

155

25

6.4

76.8

129.3

9.1

401.6

50

 

가구당 평균

77.5

12.5

3.2

38.4

64.65

4.55

200.8

25

 

 

농가 계급별 수입원 구조 (루블)

 

가구의 분류 및 그 수

구분

농업 수입: 총계

농업 수입: 곡물 수입

가축 사육

양봉 및 원예

공업

제조소

기타

수입 총계

부유한 가구 6

계

61.2% (3,861.7)

2,598.2

15.4% (972.6)

4.3% (271)

6.5% (412)

5% (320)

7.6% (482.2)

100% (6,319.5)

 

가구당 평균

643.6

—

162.1

45.2

68.6

53.3

80.4

1,053.2

중간 가구 11

계

60.7% (3,163.8)

2,203.8

16.1% (837.5)

0.7% (36.1)

18.8% (979.3)

—

3.7% (195.5)

100% (5,212.2)

 

가구당 평균

287.7

—

76.1

3.2

89

—

17.8

473.8

가난한 가구 7

계

48.7% (689.9)

502.08

22.9% (324.2)

1.9% (27)

23.8% (336.8)

—

2.7% (39)

100% (1,416.9)

 

가구당 평균

98.5

—

46.3

3.9

48.1

—

5.5

202.4

총 24가구

계

59.6% (7,715.4)

5,304.8

16.5% (2,134.3)

2.6% (334.1)

13.3% (1,728.1)

2.5% (320)

5.5% (716.7)

100% (12,948.6)

 

가구당 평균

321.5

—

88.9

13.9

72

13.3

29.9

539.5

농업노동자 2 (가난한 가구에 포함)

계

59.5% (118)

—

5.7% (11.4)

—

128.8

—

2.0% (4)

100% (198)

 

가구당 평균

29.75

—

2.85

—

64.4

—

2

99

 

 

농가 계급별 지출 구조 (루블)

 

가구의 분류 및 그 수

구분

식량: 총계

식량: 채소

식량: 기타

식량: 우유·육류

식량: 소금·보드카·차

옷감 및 가정 필수품

가축 사육

도구 및 가축

부유한 가구 6

계

29.2% (1,500.6)

823.8

676.8

561.3

115.5

8.2% (423.8)

24.9% (1,276.6)

9.4% (484.5)

 

가구당 평균

250.1

—

—

—

—

70.63

212.76

80.75

중간 가구 11

계

37.6% (1,951.9)

1,337.3

614.6

534.3

80.3

10.6% (548.1)

21.2% (1,098.2)

5% (256)

 

가구당 평균

177.45

—

—

—

—

49.83

99.84

23.27

가난한 가구 7

계

42.1% (660.8)

487.7

173.1

134.4

38.7

14.6% (229.6)

15.6% (243.7)

7.1% (110.6)

 

가구당 평균

94.4

—

—

—

—

32.8

34.81

15.8

총 24가구

계

34.6% (4,113.3)

2,648.8

1,464.5

1,230

234.5

10.1% (1,201.5)

22.2% (2,618.5)

7.1% (851.3)

 

가구당 평균

171.39

110.37

61.02

51.25

9.77

50.06

109.1

35.46

농업노동자 2 (가난한 가구에 포함)

계

81.7% (161.8)

72.1

9.6

6.1

3.5

14.91% (29.5)

8 (15.8)

53.2 (26.9)

 

가구당 평균

40.85

—

—

—

—

7.45

4

26.6

 

 

지출 분포 및 재정 수지 통계 (루블)

 

가구의 분류 및 그 수

구분

노동자 및 양치기

지대

세금 및 부담금

성직자 사례금

기타

총계(루블)

흑자(+) 또는 적자(-)

부유한 가구 6

계

13.5% (691.7)

6.5% (332)

4.9% (253.5)

1.1% (56)

2.3% (116.5)

100% (5,135.2)

+1,184.3

 

가구당 평균

115.29

55.33

42.25

9.33

19.42

855.86

+197.34

중간 가구 11

계

0.9% (47.6)

6.8% (351.7)

4.9% (254.9)

1.3% (69.9)

11.7% (609.4)

100% (5,187.7)

+24.5

 

가구당 평균

4.33

31.97

23.17

6.35

55.4

471.6

+2.19

가난한 가구 7

계

1.6% (24.3)

6% (94.5)

6.5% (101.8)

1.8% (28)

4.7% (73.2)

100% (1,566.5)

-149.6

 

가구당 평균

3.47

13.5

14.54

4

10.46

223.78

-21.38

총 24가구

계

6.4% (763.6)

6.5% (778.2)

5.1% (610.2)

1.3% (153.9)

4.7% (799.1)

100% (11,889.4)

+1,059.2

 

가구당 평균

31.82

32.43

25.43

6.41

33.29

495.39

+44.11

농업노동자 2 (가난한 가구에 포함)

계

0.4% (0.8)

—

22.6

2.8

3.3

100% (186.9)

+11.1

 

가구당 평균

0.2

—

11.3

1.4

1.65

93.45

+5.55

 

 

부록 2

 

 

스트루베가 니콜라이 온의 이론적 오류를 지적하며 ‘마르크스주의의 계급 투쟁 및 국가 이론이 러시아의 정치경제학자들에게 생소하다’는 논지를 비판의 기초로 삼은 것은 매우 타당한 분석이다. 필자는 특정 단편 논문만을 근거로 상대의 이론 체계 전체를 단정하는 정황을 경계하기에 스트루베의 모든 주장에 동의하지는 않으나, 해당 분석만큼은 정확하다고 판단한다. 니콜라이 온의 근본적 한계는 자본주의 사회에 내재한 계급 투쟁의 객관적 역동성을 파악하지 못한 점에 있다. 마르크스주의 이론 체계의 핵심 축인 계급 투쟁 원칙을 간과한 채 스스로를 엄격한 신봉자로 규정하는 것은 심각한 이론적 모순이자 비판받아 마땅한 오류이다. 따라서 이러한 계급 투쟁 관점의 부재를 재정립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이론적 명제와 연구로부터 사회민주주의적 결론을 도출하는 정당한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니콜라이 온이 러시아의 역사적 특수성과 현실적 조건만을 예외로 두고 마르크스 이론을 수용했을 개연성 또한 전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경우 마르크스의 이론이 러시아의 사회 체제를 설명한다고 규정할 수는 없게 된다. 나아가 이론을 변개하여 계급 관계와 계급 투쟁이 내재하지 않는 독자적 자본주의 개념을 도출해야 하므로, 마르크스 이론이나 자본주의라는 범주 자체를 적용하기 어렵다. 따라서 그가 마르크스주의의 일부 이론 체계만을 수용하고 나머지 핵심 요소를 거부하고자 했다면 명확한 논리적 근거와 이론적 당위성을 제시했어야 함에도, 이에 대한 어떠한 이론적 시도도 하지 않았다.

 

자본주의 체제 내 계급 투쟁을 간과하는 경향은 자본주의 사회의 실제적·정치적 역동성을 도외시한 채 공상적 열망의 한계에 머무르는 드러낸다. 이러한 시각에서 니콜라이 온을 공상주의자로 규정한 스트루베의 비판은 이론적으로 지극히 타당하다. 나아가 부르주아 관념론과 ‘사회’ 및 ‘국가’라는 추상적 범주에 의존하는 태도는 사회주의 진영 내에 이론적 혼선을 가중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적대를 약화시켜, 결과적으로 노동자 계급의 조직화와 투쟁 노선 확립을 저해하는 반동적 결과로 귀결된다.

 

스트루베의 논의에 대한 연장선에서, 《러시아의 부 (루스코예 보가츠트보)》 제6호에 수록된 니콜라이 온의 반론 역시 분석적 검토가 요구된다.

 

 

니콜라이 온은 공장 노동자 수의 증가율이 인구 증가율에 미치지 못한다는 통계 자료를 근거로, “러시아 자본주의가 자체적 발전을 스스로 제약하여 ‘역사적 과제 수행’과 거리가 먼 상태에 처해 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서유럽 및 북아메리카와는 구별되는 독자적 발전 경로의 당위성’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러시아가 자본주의적 발전 경로에 진입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자본주의에 내재한 마을 공동체 파괴의 역동성과 계급적 귀결을 도외시한 이론적 모순을 내포한다.

 

해당 기술은 V. V. 가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대해 고안해 낸 전형적인 반론의 구도를 체현한다. 이는 ‘인민의 삶에 자본주의를 정착시키는’ 과제를 순전히 국가적 내치 사안으로 취급하는 행정 관료적 시각에 불과하다. 즉 자본주의의 역사적 ‘임무’가 수행되면 수용하고, 그렇지 못하면 배척한다는 식의 논리다! 이러한 주장이 지닌 논리적 허구성을 차치하더라도, 그들은 자본주의의 역사적 ‘임무’ 자체를 지극히 편협하고 왜곡된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다. 나아가 이들은 자신들이 지닌 관점의 한계를 합법적 언로가 봉쇄되어 반론조차 제기하기 어려운 사회민주주의자들의 탓으로 돌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마르크스가 지적한 바와 같이, 자본주의의 변혁적·혁명적 역할은 노동의 사회화 과정 자체를 매개로 “노동자 계급을 단련하고 단결시키며 조직화한다”는 점에 존재한다. 즉, 자본주의적 생산의 작동 기제는 프롤레타리아트를 투쟁으로 훈련시키고 그들의 “반란”을 조직하며, 이들을 계급적으로 결집시켜 “수탈자에 대한 수탈”과 정치권력 쟁취를 담보하며 “소수 수탈자들”로부터 생산 수단을 몰수하여 사회적 소유로 전환하는 물질적 토대를 창출한다 (『자본』, 650쪽).

 

마르크스의 분석 체계에서 자본주의의 역사적 변혁성은 단순한 ‘공장 노동자 수의 수량적 증가’에 있지 않고, 생산 수단의 집중과 노동의 사회화 과정에 존재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교조적·편협한 해석자들은 자본주의에서의 노동의 사회화를 단순히 공장 노동자들이 한 공간에 집결하여 노동하는 물리적 현상으로 축소 기술하였다. 그 결과 자본주의의 변혁적 역할 수행 여부를 공장 노동자 수의 증감으로만 평가하는 이론적 오류를 범하게 된다. 공장 노동자 수의 감소를 자본주의의 역사적 임무 실패로 규정하고 이를 근거로 지식인 계급 주도의 독자적 발전 경로를 모색해야 한다는 니콜라이 온의 주장은 이러한 편합한 관점의 틀에 기반한 대표적 논거이다.  

 

러시아 지식인 계급은 사회 발전의 ‘독자적 경로’를 도출하기 위해 수십 년간 이론적 모색을 거듭하며, 자본주의가 실업과 경제 위기를 수반하는 ‘부적절한’ 발전 경로임을 입증하는 데 주력하였다. 이들은 1880년과 1893년의 경제 위기를 단서로 제시하며, 자본주의적 발전 체제 내에서 나타난 파국적 징후들을 근거로 기존 노선으로부터의 즉각적인 이탈과 독자적 경로 설정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부르주아 계급은 정세의 악화와 비판 속에서도 자본주의적 수탈과 이윤 추구를 단절하지 않는다. 산업 자본 단계로의 진입에 따른 이윤율 감소 직면하자, 이들은 여전히 높은 이윤율을 보장하는 ‘본원적 축적 조건’이 유지되고 농민 분화가 미진한 동부 및 북부 변방 지대로 자본을 확장하며 한계 상황을 돌파하려 시도한다. 지식인 계급은 이러한 구조적 파국과 사회적 추락을 끊임없이 경고하지만, 자본주의의 작동은 무수한 소자본가와 농민을 내쫓고 빈곤과 실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뿐이다. ‘지식인 계급’은 이를 해외 시장의 부재 및 자본주의의 불안정성을 보여주는 증거로 제시하며 구조적 오류를 타령하지만, 이는 자본주의 전개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역사적 역동을 직시하지 못한 한계를 드러낸다.

 

부르주아 계급은 ‘지식인 계급’의 논쟁에 개의치 않은 채 자본주의적 확장을 지속한다. 이들은 식민지로 이어지는 철도 건설 등 대규모 사업을 감행하며 자본주의 체제의 영역을 미개척 지대로 확대하고, 산업 및 농업 부르주아지를 신속히 형성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생산자 대중은 만성적 기아에 시달리는 실업자 대열로 전락하며, 자본주의의 내적 동학에 따른 계급적 분화는 한층 가속화된다.

 

니콜라이 온은 인구 구성 지표를 바탕으로 러시아 자본주의가 생산자 대중의 흡수에 실패하고 자체적인 발전을 제약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에 따라 그는 서구 자본주의적 발전 경로와는 차별화되는 러시아만의 독자적 경제 경로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러시아 사회가 이미 자본주의적 발전 단계에 진입했음을 인정하면서도, 자본주의 생산 양식에 내재된 계급적 대립과 공동체 해체의 객관적 과정을 직시하지 못한 이론적 모순을 드러낸다.

 

사회주의를 자처하는 이들이 자본주의의 구조적 불안전성이나 공장 노동자 수의 완만한 증가만을 근거로 잘못된 발전 경로를 타령하는 태도는 자본주의의 역사적 역동을 오인한 유치한 시각에 불과하다. 스트루베의 원문을 정확히 검토해 보면, 미국과 러시아의 농업 인구 비중 차이 (44% 대 80%의 격차)를 매개로 자본주의가 수행해야 할 역사적 과제, 즉 산업화에 수반되는 인구의 구조적 전환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니콜라이 온은 이와 같은 자본주의의 객관적 사회화 기능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이론적 왜곡을 저지르고 있다.

 

해당 지문에서 ‘임무’라는 용어는 이론상 불완전하나, 스트루베의 핵심 요지는 분명하다. 이는 니콜라이 온 스스로도 인정한 러시아 자본주의의 전개 과정이 농촌 인구의 감소를 동반하며, 이러한 현상이 자본주의 생산 양식의 일반적 법칙에 해당함을 간과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니콜라이 온이 이 비판을 반박하기 위해서는 (1) 자본주의 고유의 이러한 인구 이동 경향을 자신이 결코 도외시하지 않았음을 입증하거나, (2) 자본주의 제체 자체에 농촌 인구를 감소시키는 내적 경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론적으로 증명했어야 한다.

 

니콜라이 온은 인구의 1%에 불과한 공장 노동자 통계만을 제시하며 스트루베의 비판을 반박하려 시도한다. 그러나 스트루베가 언급한 수치는 공장 노동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비농업 종사 인구’ 전체를 가리키는 지표이다. 공장 노동자와 비농업 종사 인구를 동일시하는 것은 분석적 오류이며, 실제로 미국 인구의 56%와 러시아 인구의 20%를 단순히 공장 노동자로 규정할 수는 없다. 핵심은 공장 노동자 수의 수량적 비율이 아니라, 자본주의 전개에 따라 농업 종사 인구의 비중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구조적 법칙성에 있다. 니콜라이 온은 이러한 농업 인구의 감소 경향 자체를 부정하지 못한 채 범주를 왜곡하는 방식으로 본질적인 논점을 회피하고 있다.

 

크리벤코를 거치며 왜곡된 해당 대목의 본의를 올바르게 바로잡는 작업은 자본주의의 ‘역사적 임무’에 관한 니콜라이 온의 독단적 규정을 비판하기 위한 필수적 전제이다. 스트루베가 지적했듯, 인구의 산업적 구성에서 농업 종사 비율의 감소 (미국의 44% 대 러시아의 80%)는 자본주의 전개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반적·구조적 법칙이지 단순한 공장 노동자의 수량적 비중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자본주의가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있다’는 니콜라이 온의 주장은, 자본주의 생산 양식이 지닌 고유한 인구 구조 재편 법칙과 사회적 노동화 과정을 이해하지 못한 단선적인 시각에서 비롯된 이론적 오류에 불과하다.

 

첫째, 공장 노동자의 수치만을 자본주의 생산 종사자 전체와 동일시하는 것은 대규모 기계 공업만을 자본주의의 출발점으로 간주하는 소부르주아 경제학의 오류를 반복 및 심화하는 부적절한 설정이다. 상인 자본으로부터 통상 임금을 받으며 그들의 원자재로 노동을 수행하는 수백만 명의 수공업자 역시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에 포섭된 생산자이다. 마찬가지로 고정 농업 노동자, 일용직 농업 노동자, 건축 산업 노동자 등은 모두 고용주에게 임금을 받으며 잉여 가치를 수탈당하는 자본주의적 착취 대상에 해당한다.

 

둘째, 공장 노동자 수 (140만 명)를 전체 인구와 단순 비교하여 백분율로 산출하는 방식 역시 방법론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이는 생산 연령 인구와 비생산 연령 인구를 비교하거나, 물질적 가치 생산 종사자와 ‘비생산적 전문직’ 종사자를 동일한 선상에 놓는 왜곡된 대조에 불과하다. 공장 노동자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비노동 가족 구성원은 물론, 상층 계급과 군인, 공무원 등 비생산 부양 인구까지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생산자이다. 따라서 이러한 비생산 인구 집단을 공장 노동자와 대립시켜 단순 농촌 인구로 분류하는 것은 명백한 이론적·통계적 오류이다. 또한 어업과 같은 산업 부문을 공장 산업과 구분한다는 이유만으로 농업 범주에 임의적으로 결부시키는 것 역시 지극히 부당하다. 인구의 산업적 구성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물질적 가치 생산에 종사하는 인구를 비생산 인구 (비노동자, 군인, 공무원, 성직자 등)와 엄격히 분리한 뒤, 이를 국가 전체 노동의 산업별 분야로 세분화하여 분석했어야 한다. 이러한 정밀한 통계 산출이 불가하다면, 전체 인구의 1%만이 공장 산업에 관계되어 있다는 식의 왜곡된 통계를 제시하기보다 인구 구성 비중 산정 자체를 유보하는 것이 이론상 타당하다.

 

셋째, 자본주의의 변혁적·혁명적 역할이 오직 공장 노동자의 결속 및 집결에만 존재한다는 발상은 마르크스주의의 노동 사회화 개념을 극도로 단선적으로 왜곡한 결과이다. 마르크스가 규정한 노동의 사회화는 단순한 공장이라는 물리적 공간 내 노동자들의 수량적 집적이 아니라, 생산 수단의 집중, 분업의 발전, 그리고 사회 전체에 걸친 생산 관계의 상호 의존성 확대를 포섭한다. 그럼에도 니콜라이 온 등은 소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노동의 사회화를 공장 노동자의 물리적 결속으로 축소 해석하여, 자본주의가 농업 및 수공업 등 사회 전반의 영역에서 전개하는 실질적인 계급적·생산적 재편 과정을 직시하지 못하는 이론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자본주의 생산 양식에 내재된 노동의 사회화는 단순히 다수의 노동자가 한 공장이라는 공간에 모여 일하는 물리적 집합에 국한되지 않는다. 마르크스가 정립한 사회화의 본질적 의미는 첫째, 생산이 개별적·파편적 소비가 아닌 사회 전체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이루어진다는 점, 둘째, 분업과 협업의 확대를 매개로 개별 노동자들의 노동이 하나의 사회적 총노동으로 결합되어 작동한다는 점에 존재한다.

 

니콜라이 온 역시 이러한 사회화의 두 가지 특성, 즉 사회 전체를 위한 생산과 공동 생산물 획득을 위한 노동자들의 결합을 명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자본주의의 역사적 ‘임무’ 완수 여부를 공장 노동자 수의 증감으로만 판단하는 것은 스스로 제시한 이론적 전제와 충돌하는 모순을 보여준다. 공장 노동자 계급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선봉적 역할을 수행하고 혁명적 운동의 핵심 주체로 부상하는 것은 사실이나, 이것이 곧 자본주의적 사회화 전체를 공장 노동자의 수치와 동일시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사회화 과정은 농업 및 수공업을 포함한 사회 전반의 생산 관계를 재편하며 진행되는 객관적 역동성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구조적 의미’를 단지 공장 노동자 수로 축약하는 태도는 마르크스의 이론을 자의적으로 축소·왜곡하는 오류이다.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소책자 『주택 문제에 대하여 (Zur Wohnungsfrage)』에서 독일의 산업 구조와 토지 소유 임금 노동자를 분석한 논지는 자본주의 발전과 노동자 계급의 형성 과정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엥겔스에 따르면 “소농의 고통 심화로 확대된 농촌의 가내 공업은 독일 신흥 대규모 공업의 광범위한 기초를 형성하였으나, 농업과 공업의 결합은 생산자의 안녕이 아닌 거주지 고착에 따른 자본의 수탈 강화를 초래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가내 공업의 확산은 농촌 지역을 산업 지형으로 결부해 독일의 산업 혁명을 전면적인 영토로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는 혁명적 노동 계급 운동이 대도시 중심지에 국한되지 않고 수많은 소도시와 농촌 지역으로 확산되어 지속적이며 억누를 수 없는 전진을 이루게 한 구조적 배경으로 작용한다.”

 

자본주의의 사회화 및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형성은 단지 기계제 대공장의 수량적 통계나 공장 노동자의 비중만으로 국한되지 않으며, 가내 공업과 수공업 등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수탈 구조 속에서 다각도로 전개된다. 엥겔스가 제시한 독일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농촌 가내 공업의 확대는 생산자에 대한 자본의 수탈을 강화하는 한편, 농촌 지역을 자본주의적 산업 지형으로 결합하여 혁명적 노동 계급 운동을 농촌과 소도시로까지 확산시키는 물질적 토대가 되었다.  

 

러시아의 수공업 역시 이러한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에 깊이 포섭되어 있음에도, 인민주의자들은 이를 ‘인민 산업’으로 포장하며 공장 노동자 수치만을 자본주의의 범위로 축소하는 오류를 범한다. 공장과 제조업을 단순한 부동산이나 자선 사업 기관 수준의 미미한 일면에 치환하며 마르크스주의의 계급 분석을 비하하는 크레벤코의 시각은, 자본주의가 생산자 대중 전체를 착취하고 재편하는 객관적 역동성을 직시하지 못한 단선적이고 임의적인 단정에 불과하다.

 

이류 부르주아 철학자들의 논리적 왜곡은 새삼스럽지 않으나, 니콜라이 온이 동일한 오류에 빠져든 점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마르크스가 『자본』 393쪽에서 제시한 1861년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인구 통계에 따르면, 전체 2,000만 명 중 주요 공장 산업 종사자는 160만 5,440명에 불과한 반면 하인 계급은 120만 8,648명으로 급증하는 추세를 보였다. 마르크스는 2판 각주에서 이 계급의 급속한 성장을 지목하였는데, ‘자본주의의 구조적 의미’를 규정하기 위해 160만 명을 2,000만 명으로 나누어 비중이 8% 미만에 불과하다고 단정하는 방식이 적용된다면, 이는 인구의 12분의 1조차 포섭시키지 못한 영국 자본주의를 ‘실패한 발전 경로’로 규정하고 비자본주의적 독자적 경로를 모색하자는 무의미한 주장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니콜라이 온처럼 공장 노동자의 수량적 비중만을 근거로 자본주의의 사회화 및 역사적 임무를 평가하는 태도는, 통계적 수치에 매몰되어 자본주의 생산 양식이 지닌 구조적 역동성과 사회화의 본질을 직시하지 못한 이론적 한계를 극명히 드러낸다.

 

니콜라이 온은 러시아 자본주의가 서유럽이나 북아메리카에서 볼 수 있는 노동자 계급의 계급적 역할을 창출하지 못하며, 결과적으로 독립적인 노동 계급 운동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는 점을 들어 비자본주의적 발전 경로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미하일롭스키 역시 마르크스의 이론이 이미 프롤레타리아트가 형성된 조건에서 도출된 것이며,『철학의 빈곤』을 근거로 러시아의 빈곤은 전복적·혁명적 동력을 내포하지 않은 단순한 고난에 불과하다고 강변하다. 그러나 이는 마르크스주의 형성기에 대한 피상적 이해에 불과하다. 마르크스가 『철학의 빈곤』과 공산주의 강령을 작성하던 1848년 이전 마르크스가 독일 역시 전면적인 노동 운동이 미약하고 정치적 자유가 부재한 가운데 지하 소조 중심의 활동 등의 활동이 주를 이루어 현재 러시아가 직면한 조건과 다를 바 없었다. 오늘날 목도되는 폭넓은 사회민주주의 운동과 과학적 사회주의 이론의 확산은 20여 년에 걸친 사회주의자들의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조직·선전 활동이 축적된 결과물이다.

 

그 당시에는 정치적 자유조차 부재하여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은 지하 소조로 국한되어 있었다. 자본주의의 혁명적·계급적 역할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사회민주주의 노동 운동이 본격화되고, 과학적 사회주의 이론이 체계화되었으며, 대규모 공업의 확산과 함께 노동자 계급 내부에서 이론을 전파할 역량 있는 주체들이 등판한 것은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뒤의 일이다. 미하일롭스키 등 예외론자들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노동자 계급의 의식화와 조직화를 이끈 사회주의자들의 방대한 실천 활동을 외면한 채, 마르크스에게 자동주의적이고 숙명론적인 관점을 강제로 덧씌우고 있다. 이들은 마르크스주의에서 노동자의 조직화와 사회화가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전제하며, 자본주의의 존재에도, 노동 운동이 가시화되지 않은 까닭을 주체적 조직·선전의 미비가 아닌 자본주의 자체의 임무 미완수에서 찾으려 한다. 이러한 소부르주아적 기만은 국제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역사적 실천과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공개적 투쟁으로 이미 반박된 논리다. 카우츠키의 지적대로 사회민주주의는 노동자 계급 운동과 사회주의 이론의 결합으로 성립한다. 따라서 러시아 자본주의의 역사적 과업을 ‘현실화’하기 위해 사회주의자들은 러시아의 역사적 조건과 계급 투쟁의 다각적인 양상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이론을 대중화하여 프롤레타리아트를 독자적 정치 세력으로 결집시키는 조직적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 역시 이러한 계급적 과업이 완수되었다고 선언한 적이 없으며, 집단적이고 지속적인 실천에 기반하여 비로소 혁명적 토대가 확립됨을 일관되게 천명해 왔다.

 

마르크스 이론에 대한 파편화된 이해 외에도 자본주의의 역사적 역할을 부인하는 통속적 토식은 ‘인민의 체제’라는 허구적 관념에 기초해 있다. 소농의 해체와 농민의 내부의 부르부아적 분화를 포착하지 못한 채 ‘마을 공동체’라는 허구적 인민 체제에 고착하는 시각은, 농촌의 정치경제적 구조를 외면한 피상적 관념에 불과하다. 토지 소유권의 형식적 변화에 매몰되어 이를 경제 조직의 본질과 동일시하는 태도는 공동체 내부에서 한창 진행 중인 자본주의적 계급 분화를 직시하지 못하는 이론적 정체를 드러낸다.

 

문제적 ‘마을 공동체’의 ‘농민들’이 프롤레타리아와 자본의 대립 구도로 분화할 때, 예외론자들은 이를 농촌의 초기 형태의 중세 자본주의 형성 과정으로 이해하려 하지 않고 농촌의 정치경제적 구조를 외면한다. 이들은 ‘조국을 위한 독자적 경로’를 모색하며 소위 ‘평등한 마을 공동체’ 내부에서 부르주아적 분화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무시한 채 농민 토지 소유권의 형식적 변화에만 매몰되어 이를 경제 조직의 본질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전개는 중세적 마을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봉건적 토지 지배를 해체한다. 이 과정에서 토지를 박탈당한 농민들은 러시아 전역을 유랑하며 지주, 철도 사업자, 도시 노동자, 부농의 농업 노동자로 전락한다. 이러한 유랑 속에서 ‘농민’은 자신이 자본에게 수탈당하고 있으며, 그 수탈 주체가 ‘지주’뿐만 아니라 노동력을 매수하는 같은 ‘농민 형제’라는 계급적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나아가 국가 권력이 노동자들의 생존권 주장과 봉기를 진압하여 자본가의 이익에 봉사한다는 사실, 그리고 부와 사치의 증대 속에서 노동 조건의 악화와 수탈, 실업이 상시적인 구조적 모순으로 고착됨을 목도한다. 이러한 현실에도 예외론적 비판자들은 공장 노동자의 완만한 증가만을 근거로 자본주의의 ‘역사적 과업 수행 여부’와 독자적 경로의 타당성만을 관념적으로 논의하는 한계를 보여준다.

 

마르크스주의자들에 대한 편협하고 교조적이며 악의적이라는 식의 비난은, 러시아 현실에서 전개되는 자본주의적 착취의 객관적 역동성을 외면하고 유토피아적 관념론으로 도피하려는 주관적 시각에서 비롯된다. 이들이 간과하는 본질적인 문제는 자본주의 발전의 불완전성이 아니라, 계급적 적대와 계급적 투쟁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관념적 유토피아주의 (마닐로프주의)에 매몰되어 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적 수탈이 사회 전반에 관철되는 조건에서 필요한 것은 비자본주의적 발전 경로라는 허구를 좇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계급의 투쟁에 조직성과 의식성을 부여하는 사회민주주의적 실천에 투신하는 것이다.

 

끝으로, 《러시아의 부》 같은 호 (6호)에서 전개된 스트루베의 비판적 논법에 대응하는 니콜라이온의 논조는, 비판의 핵심인 자본주의적 인구 이동 법칙을 정면으로 반박하기보다 선동적 용어 사용을 문제 삼는 수사적 회피에 머문다.

 

니콜라이 온은 “스트루베가 독일 학술지에 게재한 글에서 ‘유토피아’나 ‘반동적 구상’과 같은 개념을 남발하는 방식이 부적절하며, 이미 독자 대중이 성숙한 단계에 이르러 이러한 수사적 비난이 의도한 비판적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128쪽)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상대방의 논리적·통계적 허점을 규명하는 실질적 반론이 아니라, 본질적 논점을 우회하여 비판의 수사적 형식만을 문제 삼는 이론적 빈곤함을 드러낼 뿐이다.

 

스트루베가 비판 과정에서 ‘유토피아’나 ‘반동적 구상’과 같은 이론적 규정을 사용한 것을 두고 “부적절한 방식”을 동원했다고 비난하는 니콜라이 온의 주장은 논쟁의 본질을 회피하는 수사적 전가에 지나지 않는다.

 

본래 비판적 어휘나 경고성 표현이 ‘부적절한 방식’으로 규정되는 경우는, 객관적 근거와 명확한 이론적 논증 없이 단지 상대방을 비난하고 깎아내리기 위해 자의적인 어휘를 동원할 때이다.

 

그러나 스트루베의 지적은 자본주의 발전의 구조적 법칙성에 기초한 논리적 비판이었던 반면, 이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지 못하고 용어의 어감만을 문제 삼는 니콜라이 온이야말로 본질적인 이론적 논점을 우회하는 불필요한 수사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상대방의 견해를 “근심거리”나 “끔찍한 단어”로 치부하는 방식이 비판적 논증의 본질을 결여한 수사적 비난에 불과하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그러나 상대에 대한 거친 비판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실재하는 부르주아적 생산 관계에 대한 명확한 이론적 분석과 객관적 논거에 기반하고 있다면, 이를 단지 “부적절한 방식”으로 폄하할 수는 없다.

 

실제로 니콜라이 온 스스로도 슬로님스키 (Slonimsky)를 향해 소수공업과 소농 토지 소유권 방어의 반동성과 공상성을 지적하며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한 바 있다. 그럼에도 그의 비판이 “부적절한 방식”으로 규정되지 않는 이유는, 선명한 관점과 체계적인 논리에 바탕을 두고 상대의 유토피아적 한계를 입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논리적 근거를 갖춘 구조적 비판과 단순한 수사적 회피는 엄연히 구별되어야 한다.

 

스트루베가 니콜라이 온의 주장을 반동적 구상이자 순진한 이상주의로 규정한 근거는 명확하고 구체적이다. 첫째, 니콜라이 온은 ‘생산의 사회화’를 지향하면서도 국가와 사회에 호소하는 오류를 범하였는데, 이는 국가가 지배 계급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규정과 계급 투쟁의 역동성을 포착하지 못한 결과이다. 둘째, 현실의 자본주의적 전개 과정을 외면한 채 단지 주관적 당위에 기반하여 ‘자본주의 없는 생산의 사회화’를 추구하는 것은 역사의 객관적 발전 법칙을 무시한 관념론적 포착에 불과하다. 자연 경제의 해체와 농촌 인구의 감소를 동반하는 자본주의의 전개는 가부장적 질서를 파괴하고 현대 국가를 공개적인 계급 투쟁의 장으로 끌어낸다. 따라서 생산의 실질적 사회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관념적 호소가 아니라 자본주의 발전이 분출시키는 객관적 동력과 현실적 계급 세력에 주목해야 한다.

 

스트루베가 니콜라이 온의 방법론을 비판하며 제시한 논거들은 객관적·이론적 근거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 니콜라이 온은 자본주의 체제에 내제된 계급 투쟁의 객관적 역동성을 도외시한 채, 국가와 사회가 계급적 이해관계를 사상하여 노동 사회화를 주도할 수 있다는 관념론적 착오에 빠져 있다. 계급 국가의 본질을 외면하고 지배 계급의 도구인 국가에 사회주의적 개조를 호소하는 태도는 순진한 반동적 이상주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니콜라이 온은 스트루베의 구조적 비판에 담긴 명확한 이론적 요지를 반박하기는커녕, 검열로 인해 상대방의 제대로 된 실질적 반론이 봉쇄된 지면에 의존하여 ‘부적절한 수사’만을 문제 삼는 본말전도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상대의 정당한 비판을 우회하려는 이론적 빈곤함의 논쟁 방식이자 전형적인 수사적 회피에 지나지 않는다.

 

스트루베가 자본주의와 분리된 마을 공동체를 기반으로 노동의 사회화를 이루겠다는 구상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체제에 의존하는 관념적 구상이다. 니콜라이 온이 스스로 인정했듯, 1861년 이전의 생산 단위는 ‘가구’와 ‘마을 공동체’에 국한되어 낮은 생산성과 정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으나 (「개요」, 106~107쪽), 이후 진행된 노동의 사회적 분업 심화는 이러한 고립성을 해체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는 다름 아닌 자본주의적 발전 과정이 파편화된 생산 단위의 한계를 파쇄하고 사회 전반에 걸친 노동의 실질적 사회화를 이끌어냈음을 입증했다. 이처럼 자본주의로 촉발된 노동의 사회화의 객관적 역동성을 인정하면서도, 현실에 부재한 마을 공동체에 기대어 역행적 구상을 모색하는 것은 니콜라이 온 자신의 이론적 전제와 부합하지 않는 논리적 모순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미 노동을 사회화해온 자본주의가 아닌, 그 해체를 매개로 하지 않고서는 비로소 사회 전반적인 노동 사회화를 성립하게 했던 마을 공동체에 노동 사회화의 근거를 두려는 시도는 시대착오적인 반동적 공상에 불과하다. 이는 스트루베의 핵심적 논지이자 체계적인 논리 전개의 결론이다. 이에 대한 찬반을 차치하고, 그의 철저한 비판이 객관적 분석과 명확한 전제로부터 도출된 논리적 필연성임을 감안한다면, 이를 단지 ‘수사적 비난’이나 ‘주관적 비난’으로 치부하는 니콜라이 온의 태도는 타당한 반론이 될 수 없다.

 

스트루베가 자본주의적 전개로 촉발된 노동의 사회화와 “공개적 계급 투쟁의 국면을 전망한다”는 명확한 입장을 개진했음에도, 니콜라이 온은 상대를 농민 토지 수탈의 대변자로 왜곡하며 논쟁을 종결하는 비약적 태도를 취한다. 더욱이 검열로 인해 스트루베가 공개적 계급 투쟁에 기반한 세력의 실체를 합법적 출판물에서 상술할 수 없다는 구조적 제약을 포착하면서도 이러한 왜곡을 가한 것은, 니콜라이 온의 논쟁 방식이 객관적 이론 검증을 이탈한 전적으로 ‘부적절한’ 수사적 회피였음을 명증한다.

 

 

부록 3

 

 

자유주의자와 급진주의 논객들이 유포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이해는 검열이라는 제도적 제약 속에서 심각하게 왜곡되고 자의적으로 축소된 형태에 불과하다. 이들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맞추어 변증법적 소유 이행론이라는 표피적 측면만을 마르크스주의의 전부인 양 다루면서, 모든 형태의 착취와 적대를 폭로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자각을 촉진하려는 마르크스주의 사회학적 방법론의의 실질적 핵심과 계급 투쟁의 원리를 완전히 도외시하였다!

 

절대주의 체제의 검열로 왜곡·파편화된 극히 일부의 단편만을 근거로 마르크스주의 전체의 이론적 한계를 주장하는 자유주의자들의 비판은, 자신들의 무지와 이론적 태만을 자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론의 본질적 특성을 생략한 채 자의적으로 축소된 왜곡된 마르크스주의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태도는, 검열이라는 구조적 한계와 비판 대상의 실질적 본질을 직시하지 못한 소부르주아적 논객들의 분석적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하는 이들이 계급 투쟁과 자본주의 사회에 필연적으로 내재된 적대, 그리고 그 적대의 심화 과정을 포착하지 못하는 이례적인 현상은 러시아의 특수한 지적 지형 속에서만 파악될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혁명적 역할에 대한 자각조차 결여한 채, ‘화폐 경제’나 그 ‘필연성’과 같은 범주를 담아낸 순전한 부르주아적 기획을 내놓으면서도 스스로를 마르크스주의자로 규정하는 행태는, 미하일롭스키 식의 비논리적·관념적 사고 방식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성립할 수 없는 자의적 왜곡에 불과하다.

 

마르크스 이론의 총체적 가치는 그것이 지닌 “본질적인 비판성과 혁명성”에 존재한다. 이러한 특성은 이론 자체에 유기적으로 내재되어 있는데, 이는 현대 사회의 모든 적대와 착취 형태를 폭로하고 그 역사적 변증법을 규명하여 그 일시적인 성격과 다른 형태로의 변화의 불가피성을 제시하는 한편, 모든 착취의 신속한 종식을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임무를 직접적으로 설정하기 때문이다.

 

이 이론이 지닌 거부할 수 없는 타당성은 엄밀한 과학성과 혁명성이 우연이 아닌 본질적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즉 체계 정립자 개인의 과학자적 자질과 혁명가적 자질의 유기적 결합은, 사회과학의 본래 목적이 현실의 경제 투쟁 속에서 억압받는 계급을 실천적으로 지원하고 해방하는 데 있다는 부인할 수 없는 명제에 정확하게 부합한다.

 

과학의 직접적인 임무는 진정한 투쟁의 구호를 제시하는 것, 즉 당면한 투쟁을 명확한 생산관계 체제의 객관적 산물로 파악하고 그 불가피성과 내용, 발전 경로 및 조건들을 규명하는 데 있다.

 

그러나 세분화된 모든 투쟁 형태를 세밀히 분석하고, 매 단계의 이행 과정을 추적하며, 특정 국면의 일반적 속성과 모든 착취·억압의 완전하고 최종적인 철폐라는 총체적 목표를 유지하지 않고서는 ‘투쟁의 구호’를 도출 하는 것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적 과학은 현상에 대한 단순한 당위적 규범이나 관념적 비판에서 탈피하고, 현실의 경제적 적대와 계급 투쟁의 객관적 법칙성을 정밀하게 규명하여 프롤레타리아트의 실천적 해방 투쟁에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제시해야 한다.

 

자유주의 및 급진주의 논객들이 왜곡한 자의적으로 구성된 마르크스주의와 마르크스의 본래 ‘비판적·혁명적’ 이론을 대조하면,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면서도 그 핵심적 정수를 사장시킨 인민주의자들의 이론적 왜곡이 극명히 드러난다. 스스로를 ‘노동 인민의 대변자’로 자처하는 이들이 마르크스주의의 필연적 구성 요소인 계급 투쟁과 혁명적 실천을 도려내어, 실천적 지침으로서의 동력을 상실한 ‘퇴행적 관념론’으로 이론을 격하시켰음은 주목해야 할 사실이다.

 

마르크스주의의 진정한 요구와 인민주의 문헌을 비교하면, 인민주의가 보여주는 관념론적 한계와 비자본주의적 공상이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인민주의 문헌은 노동 인민의 궁핍을 연구·서술하고 도덕적 설교를 늘어놓는 데 머물 뿐, 농노제를 착취와 계급 적대, 특정한 법적·정치적 구조를 낳은 명확한 경제 구조로 파악하지 못하고 단순한 지주의 학대와 불의로 치부하였다. 마찬가지로 농민 개혁을 계급 간의 충돌이 아닌 정부 당국의 정책적 실수나 ‘잘못된 경로’의 선택으로 다루었으며, 개혁 이후의 러시아 역시 적대적 생산관계의 전개 과정이 아닌 규범적 발전에서의 탈선으로 서술하였다. 이처럼 현실의 객관적 경제 구조와 계급적 적대를 직시하지 못한 채 궁핍에 대한 관념적 탄식 (한탄)에 빠져드는 태도는, 현상에 대한 단순한 비판을 탈피하고 생산관계의 법칙성과 계급 투쟁의 불가피성을 규명하려는 마르크스주의의 요구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소부르주아적 유토피아주의의 한계를 보여준다.

 

공상적 인민주의의 이론적 유효성이 해체되는 조건에서, 마르크스주의는 현대 사회의 적대적 생산관계와 계급 투쟁을 규명하는 유일한 혁명 이론으로 정립된다. 따라서 사회주의 운동이 실천적·이론적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비자본주의적 발전 경로에 대한 공상을 극복하고, 마르크스주의의 과학적·혁명적 원리를 러시아의 구체적 현실에 철저히 적용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현실의 객관적 발전 법칙과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역동성에 기반한 신속하고 선명한 실천만이 혁명 과업의 완수를 담보하는 유일한 길이다.

 

‘인민의 벗들’ 지식인층을 향해 인민에게 계몽적 영향력을 행사하여 실질적 산업을 창출하라고 촉구하는 행태는, 당대 지적 지형의 빈곤함과 왜곡을 여실히 입증한다. 이러한 경향성을 선명히 파악하기 위해 나로도불치의 계승자를 자처하는 ‘나로도프랍치 (Narodopravtsi)’의 주장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인민의권리당 (Narodnoye Pravo party)이 1894년 간행한 소책자 『시급한 쟁점』에 나타난 관점은, 객관적 생산관계의 법칙성을 외면한 채 지식인의 주관적 열의와 시혜적 역할에 의존하려는 인민주의적 관념론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인민주의자들은 “정치적 자유의 확대 상황에서도 노동 인민의 독립적 경제 기반을 보장하는 기존 경제 구조를 유지해야 한다거나, 정치 개혁이 아닌 체계적인 계획 경제 개혁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나로도프랍치는 이러한 관념적 논리를 반박한 후 다음과 같이 구체적인 논지를 이어간다.

 

“우리는 부르주아 계급의 옹호자가 아니며, 그들의 이념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집단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지방 감독관 (Zemsky Nachalnik)의 통제 아래 부르주아지의 침범으로부터 ‘계획적인 경제 개혁’을 보호받는 길과, 인민의 조직적 권익 방어가 보장되는 부르주아 정치 정당 기반의 경제 개혁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주어진다면, 인민에게는 후자가 명백히 부합하다. 현재 인민에게서 독자적 경제 구조를 박탈하는 것은 ‘정치 개혁’이 아니라, 인민의 노동에 대한 철저한 착취로 관철되는 부르주아 정책 그 자체이다. 당대 체제에는 기본적인 정치적 자유는커녕 입헌국의 농경민과 자본가조차 상정하지 않는 신분적 특권 (social-estate)의 보호만이 존재하며, ‘부르주아 의회 제도’나 독자적 사회 영역은 전무하다. 대신 자신들의 산업적 이권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주의 장벽 구축을 요구하는 나이데노프 (Naidenov), 모로조프 (Morozov), 카지 (Kazi), 비엘로프 (Byelov) 등 대자본가 집단과, 토지 1데샤티나당 100루블에 달하는 무이자 대출을 요구하는 ‘특권 귀족’의 대표들이 국가 기구에 초대되어 경제 결정권을 행사하고 있을 뿐이다. 인민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지방 감독관이나 농업 근로대 기획 역시 관료주의적 절대주의 체제가 추구하는 수탈 정책을 공식화한 것에 불과하다. 나아가 인민에게 분여지를 부여한 유일한 이유가 세금 납부와 부역 강제에 있음을 공공연히 표명한 볼로그다 주지사의 회람문은, 전제 군주정 및 관료주의적 절대주의 체제가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수탈 정책의 실체를 보여준다.”

 

인민의권리당 (나로도프랍치)이 상정한 ‘인민’과 ‘사회’의 개념이 지닌 관념적 모순에도, 이들의 출범은 ‘조국을 위한 독자적 경로’라는 관념적 공상을 완전히 탈피하고 구체적인 혁명적 요소를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서는 민주주의 정당을 건설하려는 뚜렷한 모색이 확인된다. 그러나 이들의 ‘시도’가 모색 단계에 머무르는 까닭은 핵심 논지를 일관되게 관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여전히 사회주의 세력과의 무차별적 결합을 도모하는 한편, 노동자 대중의 정치적 급진화가 지식인층과의 단절을 초래한다는 오류에 빠져 노동 계급 운동의 무력함을 선언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노동 계급 운동은 계급적 이해관계에 기반한 자본과의 경제 투쟁, 그리고 이와 불가분하게 결합된 정치 투쟁에 기반할 때 비로소 강력한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나아가 이념적 기원이 다른 정당 간의 진정한 동맹은 상이한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각 조직의 독자성이 전제될 때 비로소 성립하다는 사실 또한 외면되었다. 나로도프랍치는 스스로를 ‘사회-혁명당’으로 규정하면서도 (1894년 2월 19일자 「인민의권리당 선언문」), 실제로는 ‘실질적’ 사회주의적 의제를 회피한 채 정치 개혁의 틀 내에 자족하였으며, 이들이 주창한 사회주의는 입헌주의의 재판에 불과했다. 다만 인민주의적 한계를 지닌 나로도불치에서 출발했음을 고려할 때, 정치 강령에 근거하여 사회주의와 구분되는 독자적 정치 투쟁의 영역을 설정하여 일보 전진을 이룬 점은 인정되어야 한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나로도프랍치가 현존 경제 체제에 대립하고 민주주의적 이해관계에 결합된 사회 세력과 실질적 유대를 강화하며 정치적 주체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관료 체제에 대한 무비판적인 신뢰로 인해 정치 투쟁의 당위성을 도출하지 못하는 ‘인민의 벗들’의 인민주의는 논리적·실천적 한계를 지닌다. 이들의 주장은 사회주의적 지향과 무관할 뿐만 아니라, 노동 인민이 직면한 억압의 근본 원인과 현존하는 계급 투쟁의 객관적 성격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유토피아적·주관주의적 타협주의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러한 한계점을 지닌 인민주의적 관념론은 정치적 급진주의자들과 과학적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이론적·실천적 비판에 직면하여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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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의미가 있을 결론

 

 

결론적으로, 다수의 독자가 이미 품었을 법한 질문에 답하는 것은 상당한 의의를 지닌다. 과연 이러한 부르주아적 인사들과 긴 지면을 할애해 논쟁하고, 검열을 통과한 자유주의적 주장의 나열에 진지하게 응답하는 것이 가치가 있는가하는 점이다.

 

이러한 논쟁은 충분한 가치를 갖는다. 이는 그들 자신이나 ‘식견을 갖춘’ 대중을 위해서가 아니라,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이 이러한 맹공격으로부터 반드시 유익한 교훈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인민주주의자들의 공격은 민주주의와 사회주의가 불가분의 단일체를 이루었던 과거 (체르니셰프스키 시대)의 발전 단계가 이미 종식되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민주주의자와 사회주의자 사이에 심오한 질적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견해는 오늘날 일부 사회주의자들의 이론과 실천에 치명적인 해악을 미치고 있으며, 이론적 근거 또한 전무하다.

 

오히려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이념 사이에는 돌이킬 수 없는 깊은 간극이 존재한다. 따라서 지금은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이 이러한 객관적 현실을 직시하고,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자들의 이념과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결별을 감행해야 할 시점이다.

 

민주주의 이념의 태동기와 그 이후의 변모 과정을 검증하는 작업은 필수적이다. ‘인민의 벗들’은 이러한 역사적 검증을 위한 충분한 사료적 근거를 제공한다.

 

이와 관련하여 1893년 10월 2일 독일 신문 《중앙 사회 정책 신문 Sozialpolitisches Centralblatt》 제1호 Ⅲ편에 게재된 스트루베의 논문 「러시아의 자본주의 발전에 관하여」와, 니콜라이 온의 공상주의를 비판한 스트루베를 크리벤코가 공격하고 나선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크리벤코는 “마을 공동체와 분여지를 옹호하는” 이들의 사고를 ‘전(全)국민적 사회주의 (national socialism)’라는 “전적으로 공상적 본질”로 규정한 스트루베의 분석에 격분하며 강력히 반발한다. 그는 “마을 공동체와 농민의 경제적 독립을 개혁의 기초로 삼았던 역사 연구자들과 언론 대부분의 입장을 인용하며, 이들 모두를 공상적 사회주의의 피해자로 몰아세우는 것이냐고” 반문하기에 이른다.

 

‘인민의 벗들’이 보인 이념적 왜곡과 격분은 자신들이 표방하는 노선의 관념적·비체계적 성격을 모순적으로 입증한다. 이들은 사회주의를 노동 인민의 착취에 맞선 저항이자 착취 체제의 완전한 철폐를 위한 변혁적 투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부르주아적 소유관계의 틀 내에 머무르는 개량적 조치들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한다.

 

‘분여지 옹호’는 봉건적 수탈의 파생물인 토지 상환금 지불 구조를 인정하는 것에 불과하며, 토지 대금 상환이 아니라 개혁 이전에 농민들이 보유했던 토지의 무상 보유를 주장한다 할지라도 이는 서구 부르주아 사회의 토대가 되었던 농민 토지 소유권의 법제화에 다름 아니다. 또한 관례적 토지 분배에 대한 국가 경찰력의 개입을 반대하는 ‘마을 공동체 옹호’ 역시 공동체 내부에서 자행되는 계급 분화와 착취 구조를 은폐하는 소부르주아적 공상에 불과하다. 계급적 수탈을 전제로 한 관료적·공동체적 질서를 사회주의와 귀속시키는 것은 어휘의 이념적 범주를 자의적으로 확대 해석한 결과에 불과하며, 이러한 논리라면 체제 수호적 반동 관료인 포베도노스체프 (Pobedonostsev)마저 사회주의자로 규정해야 하는 비논리적 귀결에 도달할 뿐이다.

 

스트루베는 민중주의자들의 부당한 비판에 대해 조금도 양보할 바가 없다. 그는 인민주의자들의 ‘전국민적 사회주의라는 공상주의’를 정면으로 반박하며, 그들이 인민주의 진영에 대한 비판으로 플레하노프의 「우리의 의견 차이」를 인용한 사실을 상기시킨다. 플레하노프는 의심할 나위 없이 ‘진지하고 존경받는’ 언론의 범주와는 접점이 없는 인민주의자들의 허위의식을 격렬히 비판했던 인물이다.

 

따라서 크리벤코가 이러한 비판을 자신을 향한 공격으로 여겨 격분할 근거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자신이 지향하는 사조에 대한 스트루베의 정확한 진단을 알고자 했다면, 해당 논문에 담긴 핵심 단락들을 발췌하여 《러시아의 부 (루스코예 보가츠트보)》 지면에 번역·소개하는 것이 마땅했을 터이나, 이를 고의로 외면한 것은 실로 비논리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인민주의 이념은 그 사회적·이론적 토대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조는 장기간 목격되어 온 체제 내적 타협을 도모하는 무색무취의 개혁적 사조로 퇴조하거나, 자본주의 발전의 객관적 필연성을 인정하고 그로부터 도출되는 이론적·실천적 결론을 수용하여 공상주의적 환각에서 벗어나는 방향으로 전환될 것이다.”

 

러시아에서 이러한 타협적 사조의 전형을 확인하고자 한다면 《러시아 부》의 이론적 주장을 검토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해당 잡지는 자본주의적 발전의 현실을 인민주의 이념의 파편들과 임의로 결합하려는 파탄된 시도를 보여주며, 그들의 정치적 구상 역시 기존 자본주의 체제를 용인하는 틀 안에서 소생산자의 경제 상태를 부분적으로 개선하는 개량주의적 목표에 국한되어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목격되는 가장 특징적이고 의미심장한 현상 가운데 하나는 인민주의가 소부르주아적 기회주의로 타락했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부》가 제안하는 구성의 실체, 즉 이민 규제, 토지 임차, 저리 신용 제공, 박물관 및 창고 설립, 기술 개선, 집단 농장과 공동 토지 경작 등은 봉건지주의 기관지나 금융 자본의 대변지를 제외한 ‘진지하고 존경받는’ 자유주의 언론 진영 전반에 널리 보급되어 있다. 나아가 이러한 조치들이 필요하고 시급하며 체제에 ‘무해하다’는 합의는 지식인 사회 전반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이러한 견해는 지방 정부의 각종 조사 보고서와 언론 매체 등에서 광범위하게 확인된다. 이러한 경향을 인민주의의 성과로 간주한다면, 그 확산과 관철은 실로 명백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의 확인은 결코 과거의 관념적 의미에 머무르는 인민주의를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은 자유주의와 날카롭게 대립했던 사회혁명적 인민주의가 한낱 기회주의로 타락하고 자유주의와 결합하여 오로지 소부르주아의 이해관계만을 대변하게 된 이념적 퇴행의 결과다.

 

농민과 수공업자들의 계급 분화 현상은 명백한 정치경제학적 분석 대상이며, 이는 농촌의 ‘착취자’와 ‘농장 노동자 집단’을 정치경제학적 범주로 정식화하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기존의 ‘인민주의적’ 개량 조치들은 소부르주아 계급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을 뿐이다. 집단 농장이나 공동 경작과 같은 시도 역시 농촌 내부의 계급 분화와 착취 구조라는 근본적 실태를 전혀 변화시키지 못하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이는 자유주의 부르주아 계급이 유럽 전역에서 감행했던 비참한 개량주의적 시도의 반복이자 파탄될 귀결에 불과하다. 이러한 한계 때문에 예르몰로프 (Yermolov)나 비테 (Witte) 같은 전제 관료들조차 ‘인텔리겐처’가 혁명적 투쟁에서 이탈하여 계급적 대립을 무마하는 화해주의적 방향으로 선회한다면, 이러한 소부르주아적 ‘시도’에 기꺼이 재정적 지지를 보낼 용의가 있었던 것이다.

 

인민주의 이념의 발생 및 이론적 구조, 그리고 그 내적 한계와 역사적 변모 과정은 다음과 같이 정식화할 수 있다.

 

인민주의 이념이 초기에 보여준 이론적 체계성은 농민의 삶에 내재된 특수한 양식에 대한 확신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인민주의는 ‘마을 공동체’ 농민이 보유한 공산주의적 본능과 주체성을 포착하였으며, 이에 따라 농민을 본질적인 사회주의 전사이자 변혁의 주체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이 이론은 러시아 사회의 구체적·객관적 경제 현실에 대한 실증적·이론적 검증이 미흡했을 뿐만 아니라, 농민의 공동체적 속성에 기초한 정치적 구상을 실제 사회 운동 및 제도적 실천에 구현할 실천적 기반 역시 극히 취약하다는 근본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이론의 발전은 크게 두 가지 경로, 즉 이론적 파악과 실천적 모색을 거쳐 전개되었다. 이론적 작업은 주로 토지 소유 형태에 관한 연구에 집중되었으며, 인민주의자들은 그 내부에서 공산주의의 초석을 확인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방대한 양의 실증 자료가 축적되었으나, 토지 소유권이라는 법적·형식적 형태에 치중한 분석은 오히려 농촌 사회의 실질적 경제 관계를 은폐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는 생산 관계를 고찰할 체계적인 사회과학적 방법론이 부재했던 데다, 수집된 자료 역시 농민이 직면한 당면 과제와 실생활의 궁핍을 보여주는 데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다수 연구자의 관심은 토지 부족, 고율의 소작료, 법적 권리 부재, 농민에 대한 억압 등 현상적 고통을 규명하는 데 국한되었다. 이러한 제반 문제는 풍부한 자료에 기반하여 상세히 조사·분석되었으며, 국가가 지배 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계급 국가가 아니라 ‘인민의 요구’를 합리적으로 수용하는 중립적 기구라는 전제하에서는 그 개선의 필요성이 충분히 입증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를 계급적 관점이 아닌 ‘설득의 대상’으로 바라본 순진무구한 연구자들은 구체적 사실에 몰두한 나머지, 경제 전반을 규정하는 농촌의 기본 정치경제 구조를 간과하였다. 그 결과, 사회주의적 변혁이 아닌 기존 경제 체제를 주도하는 계급, 즉 주어진 공동체적 관계 속에서 자본을 축적하고 세력을 확장할 수 있는 계급의 이익을 결과적으로 옹호하는 모순에 도달하였다. 착취의 철폐를 위한 제도를 규명하고자 시작된 이론적 시도가, 모순되게도 착취 체제에 기반을 둔 소부르주아 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개량주의적 구상으로 귀결된 것이다!

 

실천적 혁명 운동 역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농민의 공산주의적 본능에 대한 맹신은 사회주의자들에게 정치를 외면하고 ‘인민 속으로 들어갈 것’을 요구했다. 수많은 인재들이 이 과정에 착수했으나, 현실은 농민의 본성이 공산주의적일 것이라는 발상의 단순함만을 각인시켰다.

 

결국 이들은 계몽 대상인 농민이 아닌 전제 정부 자체를 변혁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에 따라 모든 역량은 정부에 대항하는 투쟁에 집중되었으며, 이 투쟁은 주도적인 지식인 계급에 간혹 노동자가 가담하는 형태로 전개되었다. 

 

초기 투쟁은 인민이 사회주의를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고, 권력 쟁취를 거쳐야만 정치적·사회적 혁명을 완수할 수 있다는 이론적 토대 위에서 전개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러한 이론은 타당성을 상실했고, 정부에 맞선 나로드니키의 투쟁은 결과적으로 정치적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급진주의적 투쟁으로 전환되었다.

 

따라서 그 활동 역시 출발점과는 정반대의 결과로 귀결되었다. 이 경우 역시 급진적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이해관계만을 대변하는 강령이 도출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비록 이 과정이 아직 완결되지는 않았으나, 이미 그 한계는 명확히 확정되어 있다. 인민주의의 이러한 전개 과정은 그 이념이 농민 경제를 특수한 공동체적 체제로 규정하는 허구에 기초하고 있었던 만큼 지극히 자연스럽고도 필연적인 결과였다. 현실에 직면하자 그 허구는 해체되었으며, 농민 사회주의는 소부르주아 농민층의 급진적·민주적 요구를 대변하는 창구로 전환되었다.

 

크리벤코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며, “막연한 선의만 가득할 뿐 지속적인 실천력을 갖추지 못한 인물들의 한계”를 지적한다. 그는 남부 러시아에서 농민에 대한 정서적 애정과 인도주의적 호의를 베풀며 유럽의 제도와 노동자 연대를 전파하던 젊은이들의 사례를 제시한다. 반면, 동일한 지역에는 아무런 인도주의적 수사 없이 냉철하게 일했던 독일인 정원사 슈미트가 존재했다.

 

20년의 시간이 흐른 뒤, 농민에게 실질적인 포도 재배 기술을 전수하여 연간 75~100루블에 이르는 소득을 올리게 해준 슈미트는 농민들에게 유용한 존재로 남은 반면, 막연한 선의 외에 어떠한 실질적 결과도 제공하지 못했던 사회주의 청년들은 농민들의 뇌리 속에서 완전히 잊혀졌다.

 

이러한 사례는 농민의 공산주의적 본능에 기대어 시혜적 호의만을 베풀던 초기 인민주의의 공상적 실천이 현실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계급적 조건 앞에서 얼마나 무력했는지를 단적으로 입증한다.

 

제시된 구절은 1869~70년경, 인민주의 성향의 사회주의자들이 선진적 조직인 제1인터내셔널을 러시아에 도입하고자 도모하던 시기에 해당한다.

 

당시 크리벤코의 설명은 다소 지나친 편파성을 띠고 있었으며, 이에 그 스스로도 “슈미트의 행위가 정당했다거나 결정적이었다기보다 우연적이고 하찮은 시도였음에도 지역 사회에 지속적인 영향을 남긴 원인을 짚어보고자 했을 뿐”이라는 유보적 단서를 덧붙였다.

 

그러나 이러한 정당화는 시혜적 호의에만 치우친 초기의 공상적 실천이 현실의 경제적 효과성 앞에서 무력했음을 반증하는 또 다른 비논리적 변명에 불과하다.

 

제시된 구절은 극히 모호한 유보적 설명에 불과하나, 핵심은 그 모호함 자체가 아니라 필자가 두 활동 유형 간의 근본적인 성향 차이를 간과한 채 일방의 실패와 타방의 성취를 개별적으로 대비시킨다는 점에 있다. 이는 동시대 민주주의자의 과념적 외관과 그 한계를 명확히 규명해 주는 핵심 지점이다.

 

농민에게 ‘유럽의 제도와 노동자 연대체’를 선전한 청년들은 기존 사회 구조를 근원적으로 변혁하려는 의도를 지녔으며, 착취와 억압을 낳는 동시대 체제에 맞서 농민들을 사회혁명의 주체로 결집하고자 했다. 반면 ‘슈미트 씨’는 전문가로서 개별적이고 실무적인 업무 처리를 도왔을 뿐이다. 따라서 이러한 본질적 목적이 정반대인 두 활동 유형을 평면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건물을 해체하려는 시도의 실패를 건물의 유지·보강 작업과 단순 비교하는 것만큼이나 왜곡된 접근이다.

 

올바른 논리적 분석이라면 인민 속으로 들어가 혁명을 도모했던 청년들의 실천이 왜 성과를 거두지 못했는지를 파악해야 했다. 즉 ‘농민층’을 피착취 노동 인민의 단일한 대표자로 간주했던 전제 자체가 오류였는지, 혹은 봉건적 잔재로서의 농민 전체가 이미 내부적으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 분화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를 규명했어야 한다. 한마디로 종래의 사회주의 이론과 이에 대한 사회민주주의적 비판 체계를 정밀하게 검토했어야 함에도, 크리벤코는 “슈미트 씨”의 개량주의적 노력이 ‘확실히 필수적’이었다는 비논리적 정당화에 골몰한다. 그러나 포도밭 투입으로 연간 75~100루블의 소득을 올리게 해준 것을 인민주의적 사회혁명과 동일 선상에 놓는 판단은 체제 수용적 개량주의에 불과하다.

 

크리벤코는 농민 개인이 포도밭에 투입하는 행위는 고립된 활동에 불과하지만, 이를 다수가 수행할 경우에는 확산된 집단적 활동이자 소규모 노동을 실질적이고 적절한 노력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된다고 주장한다. 이는 A. N. 엥겔하르트 (Engelhardt)가 자신의 사유지에서 인산 비료를 도입한 데 그치지 않고 타인들에게도 이를 보급했던 사례와 동일한 연장선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이러한 논지는 관념적 민주주의자가 지닌 한계를 명확히 드러낸다. 소생산자의 기술적 개선이나 부분적 조직화를 사회적 변혁과 동일시하는 시각은, 농촌 내부의 계급 분화와 생산관계의 근본적 모순을 외면한 채 체제 내적 개량에 안주하려는 소부르주아적 착각을 재확인할 뿐이다.

 

농민 개혁에 대한 체르니셰프스키의 사례는 민주주의적·사회주의적 지향이 자본주의적 개량주의적 조치와 타협할 수 없었던 이념적 진통을 명증하게 보여준다.

 

체르니셰프스키는 전제정의 검열 아래 개혁의 가식적 본질을 직접 고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회적 표현으로 자신의 비판적 입장을 피력했다.

 

그는 피착취 상태에 놓인 농민에게 제공되는 개량적 시혜적 조치란, 근본적인 소유권과 생존권이 담보되지 않은 채 감당할 수 없는 대가를 요구하는 가혹한 식사와 같다고 지적한다. 조건이 배제된 상태에서의 소유권 논의나 명목상의 보호 조치는 피지배층의 몰락을 가속할 뿐이며, 이러한 지배 질서 내적 개량에 몰두하는 것은 사회적 해방의 본질을 왜곡하는 기만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핵심 논지다.

 

결국 이 우회는 민주주의적 가치가 자본주의적·관료적 질서와 타협하여 개량주의로 퇴행하는 것에 대한 강력한 경고이자, 근본적인 체제 변혁 없이는 어떠한 소부르주아적 조치도 인민의 실질적 해방을 가져올 수 없음을 입증한다.

 

체르니셰프스키가 농민 개혁의 실상과 계급적 적대 관계를 파악하여 이를 혁명적 이론으로 정식화한 주요 대목은 다음과 같다.

 

전제정의 가혹한 검열 아래에서도 체르니셰프스키는 우회적 수사를 활용하여 혁명적 이론을 정교하게 전개했다. 나아가 검열의 제약이 없는 불법 저술 영역에서는 에두르지 않는 직설적 언어로 지배 계급의 개량주의적 기만을 고발했다. 그는 대표작 「서문을 위한 서문」에서 자신의 이념을 대변하는 인물인 불긴 (Volgin)의 입을 빌려, 지주 계급이 주도하는 개혁의 기만성을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일갈한다.

 

“지주들의 정당의 손에 농민의 해방을 맡기시오. 그다지 별 차이도 없을 테니까.”

 

지주 정당이 농민에 대한 토지 할당 자체를 반대하므로 개혁의 결과에는 막대한 격차가 존재할 것이라는 논쟁 상대의 반론에 대해, 그는 불긴 (체르니셰프스키)는 흔들림 없이 단호하게 반박한다.

 

인민주의자들의 관념적 개량주의와 그 소부르주아적 본질을 비판하는 체르니셰프스키의 논지와 당대 정세 분석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아니, 차이는 별로 크지 않고 무의미할 정도일 거요. 농민들이 상환금을 치르지 않고도 토지를 확보할 수 있다면, 그 격차는 엄청나겠지요. 여러분이 어떤 사람에게서 물건을 가져가는 것과 그의 수중에 그대로 두는 것은 분명 격차가 있겠지만, 물건을 가져가면서 그에게 대금을 치른다면 완전히 똑같은 셈입니다. 지주 정당과 혁명주의자들의 구상 간의 유일한 격차는 전자가 더 단순하고 시간이 짧게 걸린다는 것뿐입니다. 차라리 그 편이 훨씬 더 나은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불필요한 요식 행위가 줄어든다면, 십중팔구 농민들의 부담도 덜할 겁니다. 돈을 가진 농민들은 땅을 살 것이고, 돈이 없는 농민들에게는 땅을 사라고 강요할 필요가 없어지니까요. 땅을 사라고 강요하는 건 그들을 몰락시킬 뿐입니다. 토지 상환금을 내리는 건 사라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농민 개혁이 막 도입되던 당시에 (당시 서유럽에서조차 그 적절한 규명이 이루어지지 못했던) 그 부르주아적인 본질을 이토록 명확히 간파한 점은 체르니셰프스키의 비범한 정세 혜안을 입증한다. 당시 러시아 ‘사회’와 ‘국가’가 노동 인민과 화해할 수 없는 적대적 계급 세력에 지배되고 있었으며, 농민층의 몰락과 수탈이 이들의 주도로 구조적으로 결정되어 있었음을 파악한 점 역시 마찬가지다. 나아가 그는 계급적 적대 관계를 은폐하는 전제정 정부의 존재야말로 노동 인민의 생존 조건을 극도로 악화시키는 근본 요인임을 명확히 규명하고 있었다.

 

제시된 구절은 전제정 정부의 위선적인 타협책과 지주 계급의 이해관계를 규탄하고, 개혁의 기만적 본질을 폭로하는 체르니셰프스키의 비판적 입장을 명확히 드러낸다.

 

불긴은 “농민들이 토지 없이 해방되는 편이 오히려 나을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는 봉건 지주들이 절대주의 정부의 타협책 뒤에 숨어 이해관계를 가리는 위선을 버리고, 차라리 그 본색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편이 계급적 대립의 실상을 선명히 드러내는 데 부합한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따라서 그는 “자유주의자들이나 지주들이 주도하는 농민 해방의 허상에 동요할 이유가 전혀 없음을 지적하며, 지배 계급의 기만적인 개량주의 조치보다 그들의 실질적 이해관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더 유효하다”고 결론 내린다.

 

다음은 『수신인 없는 편지들』에서 인용한 대목이다.

 

“이들은 농민 해방을 주장하나, 이를 완수할 주체적 역량은 어디에 있는가? 그러한 역량은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역량이 미흡한 상태에서 무모하게 과업에 착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러나 사태의 귀결은 자명하다. 이들은 역량을 초과하는 농민 해방 작업에 착수할 것이며, 그 결과가 어떠할지는 명확히 예측할 수 있다.

 

이는 과업의 파탄과 동시에 참혹한 귀결로 이어질 따름이다.”

 

체르니셰프스키의 이 같은 진단은 역량과 조건이 미비한 상태에서 단행되는 개량주의적 조치가 초래할 파국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체르니셰프스키는 러시아의 봉건 관료제 국가가 농민을 해방시킬 수 없다는 본질, 즉 봉건적 농노 소유주의 특권을 타도하는 대신 자유주의자와 지주의 이해관계를 타협시키는 기만적 조치 (상환금 납부 방식의 토지 매입)에 그칠 것임을 명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이러한 타협책은 안위와 자유라는 허상을 유포해 농민을 기만하는 과정이 수반되며, 궁극적으로는 농민을 몰락시켜 지주 계급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임을 파악했다. 이에 따라 그는 개혁안에 강력히 저항하며 그 실패를 촉구했다. 나아가 전제정 정부가 자유주의자와 지주 사이의 줄타기 속에서 파국을 맞이하여, 러시아가 은폐된 적대 관계를 탈피하고 공개적인 계급 투쟁의 국면으로 진입하기를 지향했다.

 

그러나 체르니셰프스키의 비범한 혜안이 현실화되고 지난 30년간의 역사가 그 모든 경제적·정치적 착각을 가차 없이 폭로한 현재, 이른바 ‘민주주의자들’은 개혁을 미화하며 그것을 ‘인민적’ 생산의 허용으로 규정한다. 나아가 이들은 개혁에서 노동 인민에 적대적인 사회 계급들을 설득할 개연성의 근거를 도출하고자 시도한다. 농민 개혁을 바라보는 이러한 태도는 이들 민주주의자가 얼마나 철저히 부르주아적으로 변질되었는가를 명증하게 보여준다. 이들은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으며, 오히려 핵심적 본질조차 망각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는 비교를 위해 1872년 《조국 연보》의 사례를 검토하고자 한다. 앞서 본고는 ‘위대한 해방’을 표방한 개혁 이후 첫 10년간 러시아 사회가 이룩한 자유주의적 과실, 즉 금권 정치의 이해관계를 은폐한 성과를 다룬 「금권 정치와 그 토대」의 구절들을 인용한 바 있다.

 

해당 논고의 필자는 과거 개혁을 비판하며 태평했던 옛 시절을 회상하던 이들이 사라지고, “모두가 새로운 질서에 만족하며 환호한다”고 서술했다. 나아가 “문학 자체가 금권 정치의 나팔수로 전락하여 ‘민주주의’를 빙자한 채” 금권의 이해관계와 열망을 옹호하는 양상을 고발한다. 필자는 개혁이 가져다준 새로운 질서의 명백한 부르주아적 적대성에도, 노동 인민을 제외한 ‘사회’와 ‘지식인 계급’의 대표자들이 이에 안주하는 현실을 문제 삼았다. 인민 대중은 자유주의가 노동 인민의 희생을 대가로 한 ‘취득의 자유’를 은폐하는 도구에 불과함을 자각하지 못했다.

 

이 지점에서 가치 있는 대목은 사회주의적 비판의 본질인 ‘반대’ 그 자체에 있다. 다만 금권 정치가 민주주의의 탈을 쓴 데 대한 이러한 비판은, 농민 개혁 내부의 부르주아적 성격과 지식인 계급 및 국가의 계급적 본질을 부정하는 해당 잡지의 전반적 논리와는 모순된다. 이들은 러시아 내 자본주의적 토대의 존재를 부정하면서도, 현실로 존재하는 자본주의와 부르주아 집단의 적대적 징후를 직관적으로 포착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조국 연보》가 계급적 적대성을 포착하고 부르주아 자유주의 및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맞서 투쟁한 점은, 적대적 본질을 완전히 규명하지는 못했을지라도 체제 자체와 맞서고자 했던 선구적 사회주의자들의 대의명분과 부합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시각에서 이는 역사적 성격을 띤다. 반면 오늘날의 ‘인민의 벗들’은 이러한 적대 관계를 망각한 채, ‘민주주의의 외피’ 아래 숨어 있는 부르주아지의 본질을 포착하는 비판 의식마저 상실했다. 이들이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해 반동적 위치에 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은 계급적 적대 관계를 은폐할 뿐만 아니라, 투쟁이 아닌 유화적인 ‘개량’ 활동만을 기만적으로 주창하고 있다.

 

1860년대에 민주주의자를 자처하며 금권 정치를 대변했던 러시아 자유주의자가, 1890년대에 이르러 단지 우려와 근심을 표명한다는 이유만으로 부르주아 계급의 이념가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는 없다.

 

기존의 사회적·경제적 구조가 그대로 유지되는 한, 대규모 ‘획득의 자유’, 즉 거대한 신용, 대자본, 기술 개혁을 독점할 자유가 소규모 신용과 자본, 소규모 기술 개량을 취득할 자유로 대체되었다고 해서 그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적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견해를 바꾼 것은 사회 질서의 근본적 변화나 시각의 급진적 전환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단지 과거의 교훈을 망각한 것에 불과하다.

 

과거 선배들이 지녔던 혁명적 특성, 비록 현실에 대한 이론적 한계와 공상적 한계가 존재했음에도 지니고 있던 계급적 적대성에 대한 비판 의식을 상실한 ‘인민의 벗들’은 지난 역사로부터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했다. 지난 30년간의 러시아 정치·경제사는 이들에게 적절한 비판적 자각을 제공했어야 함에도, 이들은 역사적 본질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1860년대’ 당시 봉건 지주들의 지배력은 결정적인 패배를 맞이하며 점차 몰락하고 있었다. 지주 계급의 후퇴 속에서 자유주의자들이 전면에 등장했으며, 발전과 과학, 우수성, 불의에 맞선 투쟁, 인민의 권익과 양심, 인민의 힘 등을 다룬 자유주의적 미사여구가 유포되었다. 이는 오늘날 불황의 시기에 급진적 불만 세력들과 자유주의 입담꾼들이 사교계와 기념일 만찬, 잡지와 신문에서 늘어놓는 언사들과 부합한다. 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질서’를 확립할 만큼의 영향력을 확보했다.

 

당시 러시아에 ‘공개적인 계급 투쟁의 선명성’이 완전히 확보된 것은 아니었으나, 그 수준은 후대보다 명확했다. 따라서 계급 투쟁 개념을 확립하지 못한 채 엄혹한 현실 직시보다 공상적 유토피아를 지향하던 노동 인민 관념론자조차 자유주의가 금권 정치의 외피에 불과하며, 새로운 체제가 부르주아적 질서라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었다. 봉건 지주들의 무대 퇴장이 새로운 질서의 (비교적) 전형적인 형태를 가리지 않고 드러나게 한 결과다.

 

그러나 당시 민주주의자들은 금권주의적 자유주의를 비난하는 데 그쳤을 뿐, 이를 이론적·과학적으로 규명하지는 못했다. 자본주의적 사회·경제 구조 내에서 이러한 현상의 필연성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과거 봉토 제도 대비 새로운 체제가 지닌 역사적 진전 및 체제 내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역할 역시 파악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자유’와 ‘인간성’을 내세운 체제에 ‘조소’를 보내는 수준에 머물렀고, 그 부르주아적 성격을 일시적 현상으로 치부하며 ‘인민의 체제’라는 자발적 이행에 대한 기대를 유지하는 한계를 보였다.

 

이후의 역사는 이들에게 또 다른 사회적 관계의 실상을 제시했다. 개혁으로 인해 중대한 타격을 입었으나 완전히 와해되지 않은 봉건 지주층은 (한동안) 세력을 재집결하며 부르주아적 관계와 대비되는 봉건적 수탈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나아가 약탈적 반동의 형태로 나타난 현실은 민주주의자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민주주의적 시각을 사회민주주의로 발전시키는 대신 자유주의 진영으로 퇴보했고, ‘제도권 언론’이 자신들의 논리를 수용함을 자긍심으로 여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은 기존 관념적 유토피아의 비현실성을 명증하게 폭로했다. 인민의 특수한 삶의 양식이나 사회주의적 본능, 그리고 자본주의와 부르주아 계급의 일시적 현상에 의존하던 과거의 관념론적 틀은 설 자리를 잃었다. 따라서 현실을 직시한다면 러시아에는 부르주아적 관계와 소멸해 가는 봉건적 관계 외에 다른 사회·경제적 경로는 존재하지 않으며, 노동 계급 운동을 거치지 않는 사회주의 이행은 성립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해야 했다.

 

그러나 민주주의자들은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 전적으로 망각했다. 결과적으로 소부르주아 사회주의라는 순진한 공상은 소부르주아적 개량주의라는 온건주의에 자리를 내주며 완전한 이념적 퇴행으로 귀결되었다.

 

오늘날 노동 인민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고 자처하는 소부르주아 관념론자들의 이론은 명백히 반동성을 띤다. 해당 이론들은 현재 러시아 사회의 구조적·경제적 적대 관계를 은폐하고, ‘향상’이나 ‘개량’ 등과 같은 표피적 조치만으로 사태를 개선하거나 계급적 타협과 야합을 이룰 수 있다는 기만을 유포한다. 나아가 국가를 중립적 기구로 미화하며, 피착취 인민에게 실질적 수혜를 제공할 수 있는 시혜적 주체로 포장한다는 점에서 그 반동적 본질이 드러난다.

 

마지막으로 해당 이론들은 해방을 위한 노동 인민 스스로의 주체적 투쟁과 그 필연성을 자각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반동성을 띤다. 예컨대 ‘인민의 벗들’은 자신들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다. 이와 관련하여 《러시아의 부》 편집실을 방문한 한 기술자가 ‘자본주의의 인민 삶 도입’을 위한 ‘구상’을 성립했다는 사례는 이들의 관념적 한계를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는 소부르주아적 이념 및 이론 체계와 단호하고 완전하게 결별해야 하며, 이것이 바로 해당 투쟁 과정에서 도출해야 할 핵심적이고 실천적인 교훈이다.

 

본고에서 소부르주아 이념과의 단절을 주장했을 뿐, ‘인민의 벗들’이나 그들 개별 이념 자체와의 단절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상호 연관성이 부재한 대상과는 단절이라는 행위 자체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민의 벗들’은 소부르주아 사회주의 이념에 존재하는 여려 경향 중 하나를 대표할 뿐이다.

 

소부르주아 사회주의 이념 및 잔존하는 러시아 농민 사회주의 이념 전반과 단절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면, 이는 해당 이념의 대리인들이 마르크스주의의 성장에 기여하기는커녕 반(反)마르크스주의 운동에 휩쓸려 소부르주아적 이념을 유달리 풍부하고 선명하게 표명하는 방향으로 선회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상들을 동시대 사회주의 및 러시아의 객관적 실상과 비교해보면, 그 이론들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 그리고 정당한 이론적 토대의 흔적을 완전히 상실한 채 한심한 절충주의와 명백한 기회주의적 개량 강령의 단계로 전락했는지가 명확히 드러난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전락이 잔존하는 사회주의 이념 전반의 결함이 아니라, 사회주의자로 자격을 부여받지 못하는 특정 인사들의 개인적 과실에 불과하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본고는 잔존하는 소부르주아 이론들의 퇴화가 구조적으로 불가피했음을 증명하는 데 주력해 왔다. 특히 개별 인사에 대한 비판은 극력 배제하고, 잔존 러시아 사회주의의 전반적이고 근본적인 신조를 비판하는 데 대부분의 논지를 할애했다. 본고가 해당 신조들을 부정확하게 규정했거나 중요한 대목을 누락했다고 판단하는 사회주의자가 있다면, 다음과 같이 정중히 요청하고자 한다. “신사 여러분, 부디 귀하들이 직접 이를 명확히 밝히고 충분히 설명해 주기를 바란다!”

 

실상 사회민주주의자들만큼 사회주의자들과 논쟁의 계기를 반기는 이들도 없다.

 

그러나 신사 여러분이 직접적이고 단호한 도전을 감행하지도 않는데, 그 ‘논박’에 일일이 응답할 이유 또한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 진부한 자유주의적 미사여구와 속물적 훈계의 의도를 굳이 파악하려 드는 노력이 과연 무익한 것인가?

 

해당 이념들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소상히 밝힐 임무가 오롯이 그 신사 여러분에게 있다는 점이 우리의 과오는 아닐 것이다. 나아가 본고가 논하는 바는 사회주의와 결합된 소부르주아 이념과의 단절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검토한 소부르주아 이론들은 스스로를 사회주의라 자임하는 한 무조건 반동적이다.

 

그러나 제시된 이론의 내부에 사회주의적 요소가 전혀 부재하다는 점, 즉 착취의 구조적 원인을 해명하는 데 실패하여 노동 계급 해방의 도구가 될 수 없으며 본질적으로 소부르주아 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뿐이라는 사실을 파악한다면 이에 대한 대응 방식 역시 전환되어야 한다. 따라서 “소부르주아 계급 및 그 구성에 대해 노동 계급은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해야만 한다. 이 문제는 소부르주아 계급의 이중성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규명할 수 없다. 특히 거대 부르주아지와 미발달된 소부르주아지 간의 적대로 인해 이러한 양면성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소부르주아 계급은 봉건적 잔재와 중세적 농노제 존속에 맞서 일반적 민주주의 요구를 내세우는 한에서는 혁명적 성격을 띤다. 반면 자신들의 특수한 계급적 이해관계를 보존하고자 자본주의적 발전의 대세를 지연시키거나 역행시키려 시도한다는 점에서 명백히 반동적이다. 일례로 분여지의 양도 불가 방침을 비롯해 농민 감독을 목적으로 수립된 수많은 반동적 기획들은 노동 인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포장되어 있으나, 실상은 인민의 처지를 악화시키고 해방을 향한 계급 투쟁을 저해하는 역할에 그친다.

 

따라서 소부르주아 구상이 지닌 두 가지 측면은 엄격히 구별되어야 한다. 해당 이론들이 지닌 기만적인 사회주의적 성격을 배격하고 그 반동성에 맞서 투쟁하는 한편, 그 안에 내포된 민주주의적 요소의 의의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마르크스주의자가 소부르주아 이론 체계를 절대적으로 거부한다 해서 소부르주아 구상에 포함된 민주주의적 요구까지 배척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민주주의적 요구를 한층 철저하게 주장할 것을 요구한다는 점은 다음의 사례에서도 명확히 확인된다. 앞서 검토한 바와 같이 소부르주아 사회주의 이론의 상투적 근간을 형성해 온 세 가지 주요 논지는 바로 토지 부족, 과도한 세금과 부담금, 그리고 관료적 폭정이었다.

 

이러한 폐단에 대한 폐지 요구에는 사회주의적 성격이 전혀 내포되어 있지 않다. 이는 강탈과 착취의 본질적 구조를 해명하지 못하며, 해당 폐단의 제거 역시 자본의 노동 억압 구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세적 잔재의 철페는 노동 인민의 가중된 억압을 덜어주고 자본에 맞선 노동자의 직접적 투쟁을 촉진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적 요구로서 노동자 계급의 강력한 지지를 획득하게 된다. 일반적인 지불금과 세금 문제는 본래 소부르주아적 관점에서 특수한 중요성이 부여되는 사안이나, 현재 러시아 농민이 부담하는 지불금은 농노제의 잔재라는 성격이 짙다. 예컨대 토지 상환금 및 농민과 소도시 주민에게만 부과되고 ‘상류층’에는 면제되는 차별적 세금은 즉각적·무조건적으로 폐지되어야 한다. 사회민주주의자는 경제적·정치적 정체를 야기하는 이러한 중세적 관계의 유물을 철폐하는 요구에 언제나 적극 동참할 것이다.

 

토지 부족 문제 역시 동일한 논리가 적용된다. 농민 개혁 당시 단행된 토지 수탈은 지주 계급의 이익을 도모하고자 농민을 수탈한 조치였으며, 직·간접적 방식으로 반동적 지주 세력의 기반을 강화해 왔음이 명백하다. 이에 사회민주주의자는 농민에게서 수탈된 토지의 즉각적인 반환과 봉건적 토지 소유권의 완전한 폐지를 강력히 주장한다. 토지 국유화와 병행되는 토지 소유권의 폐지는 형성 단계에 있는 자본주의적 농업 관계의 발전을 촉진할 뿐 그 자체로 사회주의적 성격을 띠지는 않으나, 민주주의적 관점에서는 토지 귀족의 지배력을 해체할 수 있는 유일한 결정적 조치로서 지대한 의의를 가진다.

 

마지막으로 농민의 권리 박탈을 수탈과 착취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유자코프나 V. V. 일파와 같은 관념론자들에 불과하다. 관료 기구가 가하는 농민 억압은 단순한 권력 남용에 국한되지 않고, 농민을 귀족 세력에 복종해야 할 ‘신분적 하위 집단’으로 규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농민의 공민적 권리는 예외적인 시혜로만 허용되며 (예컨대 이주), 하급 관리조차 이들을 통제 대상으로 취급하는 실정이다. 따라서 사회민주주의자는 농민의 완전한 공민적 권리 쟁취, 귀족적 특권 및 관료적 감독의 철폐, 그리고 농민의 자치적 결정권 보장을 지체 없이 지지하고 옹호한다.

 

일반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견지하는 러시아의 공산주의자는 여타 세력보다 스스로를 사회민주주의자로 규정해야 하며, 실천 활동에 있어 민주주의가 지니는 중대한 의의를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현재 러시아에서는 서유럽과 비교할 때 중세적·반(半)봉건적 잔재가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러한 잔재는 프롤레타리아트와 인민을 억압하는 명백한 기제로 작용하며, 모든 계급의 정치적 의식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다. 따라서 절대 왕정, 신분제, 관료 체제 등 봉건적 제도 전반에 맞선 투쟁이 노동자 계급에게 극도로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들에게 이러한 제도들이 지닌 반동적 본질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즉, 봉건적 제도들이 자본의 노동 탄압을 어떻게 강화하는지, 노동 인민에게 어떠한 체계적 압박을 가하는지, 자본을 전산업적 중세 형태로 파편화하여 머물게 함하여 해방 투쟁에 어떠한 엄중한 난관을 초래하는지를 명확히 자각시켜야 한다. 노동자 계급은 이러한 반동의 보루를 해체하지 않고서는 부르주아지와의 투쟁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음을 자각해야 한다. 봉건적 잔재가 존속하는 한, 농촌 프롤레타리아트는 억압받는 수동적 존재에 머물러 지속적 투쟁 대신 자포자기식 불만에 그치게 될 것이며, 노동 계급 승리의 필수 조건인 이들의 결집과 지지는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절대 왕정과 반동적 신분제 및 제도에 맞서 혁명적 민주주의자들과 연합하여 싸우는 것은 노동자 계급의 직접적인 과제다. 사회민주주의자는 노동자들에게 이러한 과제를 지속적으로 상기시켜야 하며, 봉건적 제도를 폐지하는 투쟁이 부르주아지에 맞선 계급 투쟁을 촉진하는 필수 수단임을 끊임없이 밝혀야 한다. 나아가 노동 인민의 주적인 자본에 맞서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전면적인 민주주의적 요구의 실현이 선행되어야 함을 분명히 해야 한다. 자본은 본래 민주주의적 형태를 띠나, 특히 러시아에서는 민주주의를 희생시키고 노동자를 억압하기 위해 반동 세력과 결탁하여 노동자 운동의 진전을 저해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치적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제반 혁명 정파들의 ‘연합’ 및 ‘동맹’ 경향에 대해 사회민주주의가 취해야 할 입장은 충분히 정립된 것으로 파악된다.

 

해당 경향은 다소 특수한 성격을 지닌다.

 

특정 단체들이 구체적으로 합의된 강령을 바탕으로 ‘동맹’을 제의해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구체적 제안이 존재했다면 이는 당사자 간의 교섭으로 해결될 구체적 과제였을 것이며, 범파벌적 ‘연합’이라는 경향성 자체가 형성될 여지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이 실제하는 이유는 기존의 이론적 토대를 상실한 채 표류하는 세력들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절대주의 체제에 맞서던 전사들이 입각해 온 기존 이론의 해체는 투쟁에 필수적인 결속과 조직의 조건을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에 따라 ‘연합 세력’과 ‘동맹 지지자들’을 주도하는 세력들은 이론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절대주의 체제에 대한 반대와 정치적 자유 요구만으로 강령을 축소하고, 사회주의적 과제와 비사회주의적 과제를 포괄하는 제반 핵심 사안들을 은폐하려 시도한다. 그러나 결합을 향한 이러한 순진한 오류는 실천적 검증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파산할 수밖에 없다.

 

특징적인 것은 이러한 ‘연합’ 경향이 전투적·혁명적 인민주의가 정치적 급진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의 최종 단계를 체현한다는 점이다. 상기 기치 아래 집결한 비(非)사회민주주의 혁명 정파들의 연합은 러시아 예외주의라는 이념적 편견을 탈피하기 위한 민주주의적 강령이 확립될 때 비로소 지속성을 가질 수 있다. 사회민주주의자는 이러한 민주주의 정당의 출현을 운동의 진전으로 평가한다. 따라서 반(反)인민주의 투쟁을 더욱 심화하여 비과학적 전제를 철저히 분쇄하고, 사회주의자들을 마르크스주의의 기치 아래 결집하여 여타 정파들의 민주주의 정당 창설을 견인해야 한다.

 

독자적인 노동자 정당의 조직화를 필수 과제로 확립한 사회민주주의자가 이들 정당과 조직적으로 ‘연합’할 수는 없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는 반동적 제도에 맞서는 민주주의자들의 제반 투쟁을 지속적으로 지지하고 공조할 것이다.

 

인민주의가 가장 통속적인 소부르주아 급진 이론으로 타락했다는 사실 (‘인민의 벗들’은 이에 대한 매우 명확한 실증이다)은 그간 노동자들에게 우리 사회적 관계의 적대적 본질과 전체 노동 인구 해방을 이끌 전사로서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가 지닌 역사적 사명을 명확히 규명하지 않은 채, 단지 절대주의 체제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관념만을 유포한 자들이 얼마나 치명적인 오류를 범했는지를 여실히 증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한계 덕분에 부르주아 관념론자들조차 정치적 자유 요구에 동조하는 태도를 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회민주주의자는 마르크스의 경제 이론을 독점하려 한다는 비난을 종종 받는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노동 인민에 대한 착취가 사회적 경제의 부르주아적 구조가 아닌 토지 부족, 상환금, 또는 관료적 폭정으로 설명되는 한, 가치 형태와 부르주아 체제의 본질 및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역할을 노동자들에게 해명하는 작업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계급 투쟁 이론 역시 자본주의의 주입 과정이나 정착된 공장 노동자 계급의 상태는 물론, 인민 대중과 고용주 간의 적대적 관계조차 규명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실천적 의의를 갖지 못한다.

 

인민 대중이 자본주의와 프롤레타리아트라는 매개체를 거치지 않고 공산주의로 직행할 수 있다고 본다면, 마르크스 경제학의 핵심 귀결인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사명과 혁명적 역할을 수용하는 것은 성립할 수 없다.

 

이러한 조건하에서 노동자에게 정치적 자유를 위한 투쟁을 요구하는 것은, 실상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의 이익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대리 투쟁을 수행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다름없다. 정치적 자유의 획득이 주되게는 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이익에 기여할 뿐, 노동자의 처지를 직접적으로 개선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치적 자유는 부르주아지에 맞선 노동자 계급의 투쟁 조건을 한층 유리하게 형성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이는 사회민주주의자의 이론 체계를 거부하면서도 소박한 확신에 따라 노동자 대중에게서만 혁명적 요소를 포착하고 소요를 자극하는 사회주의자들의 한계를 지적하기 위한 대목이다. 이들 사회주의자의 이론은 실천과 심각하게 단절되어 있으며, 프롤레타리아트를 독자적인 사회주의 노동자 정당으로 조직해야 할 결정적 과업으로부터 방해하는 중대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부르주아 사회의 계급 적대가 농노제로 인해 억압되어 있던 시기, 농노제가 지식인 계급 전반의 일치된 일치된 반발을 자극하여 그들 내부에 특수한 민주적 측면이 존재하며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간 이념적 간극이 크지 않다는 착각을 형성했던 것은 명백한 오류였다. 경제 발전이 가속화되어 과거 자본주의의 토대를 부정하던 이들조차 자본주의적 발전 경로로 진입했음을 인정하는 현 상황에서 그러한 착각은 더 이상 성립할 수 없다. 오늘날 ‘인텔리겐처’의 성격은 물질적 가치 생산을 둘러싼 사회 구조만큼이나 명확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자본가가 사회를 지배하는 가운데, 지식인 사회는 급속히 세를 불리는 출세주의자들과 부르주아지의 시종들이 주도하고 있으며, 체제의 구조적 원리를 숙지한 ‘지식인’들은 이를 그저 자족하며 수용할 뿐이다.

 

이러한 현실을 부인할 수 없게 되자 급진주의자와 자유주의자들은 현실의 부도덕성을 입증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며 비난과 도덕적 훈계를 시도한다. 그러나 부르주아 인텔리겐처로 하여금 자신의 부르주아적 본성을 부끄럽게 만들려는 이러한 순진한 시도는, 소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이 인민의 몰락과 빈곤, 실업, 대중적 기아를 들어 부르주아지에게 경각심을 심어주려는 어리석은 행동과 다름없다. 자유주의·급진주의 ‘지식인’들은 발전, 과학, 진실, 인민이라는 미사여구를 남발하며, 이념적 균열이나 회의, 낙담, 무관심 없이 민주주의에 대한 열의로 가득했던 1860년대의 종언을 한탄할 뿐이다.

 

특유의 단순함으로, 이들 신사들은 1860년대에 존재했던 의견 일치가 당시의 되돌릴 수 없는 물질적 조건에 기초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를 거부한다. 당시는 농노제가 사회 전체를 무차별적으로 억압하던 시절이었다. 소액의 자본을 축적해 안락한 삶을 도모하던 농노 관리인이 존재했는가 하면, 지대를 수탈하고 간섭을 일삼는 지주에 맞서 자기 영농 활동에 전념하고자 했던 기업형 농민도 존재했다.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한 장원 농노와 빈곤 농민은 상인에게 노예처럼 매각되었고, 이는 상인 제조업자와 노동자, 수공업자와 하청인 모두에게 중대한 고통을 안겨주었다. 이들 모두를 결속시킨 유일한 유대 요소는 농노제를 향한 그들의 공통의 적대감이었다.

 

그러나 일러한 외견상의 일치 이면에서는 이미 극심한 경제적 적대 관계가 형성되고 있었다. 그 적대적 구조가 거대하게 발전한 오늘날에조차 이를 직시하지 못하는 것은 달콤한 관념적 착각에 매몰되어 있음을 의미할 뿐이다. 현실의 조건이 과감한 투쟁을 요구하는 시점에서, 과거의 단합에 연연하기보다 부르주아지의 예속물이 되기를 거부하는 자라면 누구나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전 진영에 결집해야 한다.

 

‘인민의 이익’이라는 가공된 명분을 배격하고 사태의 본질을 직시하면, 제반 개량주의적 조치로 소생산자 경제 (“인민 경제”) 를 보존·육성하려는 철저한 소부르주아 관념론자들을 확인하게 된다. 이들은 현존하는 지배적 생산관계하에서 이러한 개량적 조치가 도출한 유일한 귀결은 프롤레타리아화의 가속화뿐이라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인민의 벗들’은 지식인 계급의 계급적 본성을 폭로하고 러시아 소생산자 역시 소부르주아지에 불과하다는 마르크스주의적 규명을 공고히 하는 데 기여했다. 오랫동안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을 사로잡았던 이념적 착오의 청산을 자초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기존 이론을 왜곡하고 전락시킨 결과,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은 해당 구상을 재정립·수정하거나 비과학적 교조로 배격하는 엄중한 선택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인민의 벗들’은 부유 농민의 개선된 농기구 도입을 ‘소생산자 체제’의 결실로 포장하고, ‘지식인’의 도덕적 책무와 개량책을 들먹이며 위선적인 미사여구를 남발하고 있다!

 

사회주의적 지식인 계급은 자신들의 이념적 착각을 포기하고, 관념적 공상이 아닌 현실의 실질적 발전과 사회경제적 관계를 지지 기반으로 삼을 때 비로소 유의미한 실천 활동을 전개할 수 있다. 나아가 이들의 이론적 과업은 러시아에 존재하는 모든 형태의 경제적 적대와 그 상호 연관성, 그리고 역사적 발전 과정을 구체적으로 규명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정치사나 법률 체계의 특성, 혹은 기존의 이론적 편견으로 은폐되어 온 계급적 적대 구조를 드러내고, 이를 명확한 생산관계 체계로서 일관되게 제시해야 한다. 즉, 현 체제하에서 노동 인민에 대한 수탈과 착취가 구조적으로 불가피함을 입증하는 동시에, 경제 발전 자체의 동학 내에서 현 체제를 변혁할 실천적 동력을 도출해야 한다.

 

러시아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구체적 연구에 기초한 이러한 이론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요구에 부합하는 명확한 해답을 제시해야 하며, 과학적 조건을 충족하는 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저항 의식이 자각될 때마다 이들을 사회민주주의적 투쟁의 장으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 이 이론이 더욱 엄밀하게 정립될수록 사회민주주의의 영향력은 한층 신속히 확대될 것이다. 현 체제의 가장 교활한 옹호자라 할지라도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의식적 각성을 막을 수는 없다. 현 체제 자체가 생산자에 대한 극심한 수탈과 프롤레타리아 및 예비군의 지속적 증대를 필연적으로 동반하며, 이는 사회적 부의 축적, 생산력의 거대한 발전, 자본주의적 노동의 사회화와 병행하여 전개되기 때문이다. 이론적 체계화 과정에 수반되는 제반 과제가 아무리 방대할지라도 사회주의자들은 이를 완수해 낼 것이다. 실천적 과정 전반에 대한 엄밀한 정식화를 요구하는 유일한 과학적 방법론인 유물론이 사회주의자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으며, 이를 구현한 사회민주주의가 거두고 있는 성과가 이를 보장한다. 이러한 사회민주주의의 성과는 자유주의자와 민주주의자 진영을 크게 흔들어 놓고 있다.

 

사회민주주의자의 이론적 활동이 지니는 필요성과 중요성, 그리고 그 방대함을 강조한다 해서 이를 실천적 활동보다 우선시해야 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이론적 완성을 이유로 실천을 유예할 까닭은 없다. 이러한 결론은 ‘사회학의 주관적 방법론’을 봉대하는 자들이나 공상적 사회주의 추종자들에게나 해당할 뿐이다. 사회주의자의 임무를 (기존의) ‘발전 경로’(와) 구별되는 ‘새로운 경로’를 창안하는 것으로 규정한다면, 실천 활동은 천재적 철학자가 그러한 경로를 제시할 때까지 연기될 수밖에 없으며 경로가 제시된 이후에는 단지 그 이행을 안내하는 역할로 축소될 것이다. 반면 사회주의자의 본래 임무가 현실의 사회적·경제적 발전 과정을 가로막는 실질적 적들에 맞서 싸우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이념적 지도부로 복무하는 데 있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그러한 조건하에서 이론 활동과 실천 활동은 독일 사회민주주의자 리프크네히트 (Liebknecht)의 저명한 명제로 수렴된다.

 

학습하라, 선전하라, 조직하라.

 

이론적 활동 없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사상적 지도자가 될 수 없듯, 이론을 실천적 대의의 요구에 부합하도록 연결하고 그 결과를 노동자 대중에게 보급하여 이들의 조직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이 역시 무의미하다.

 

이러한 과업의 제시는 사회주의자 정파들이 자주 함몰되는 교조주의와 종파주의로부터 사회민주주의를 지켜주는 방파제 역할을 한다.

 

이론의 최고이자 유일한 검증 기준이 실제 사회적·경제적 발전 과정과의 부합 여부에 귀속되는 조건하에서는 교조주의가 성립할 여지가 없다. 아울러 프롤레타리아트의 조직화 촉진이 본연의 과제로 정립되어 ‘지식인 계급’ 내부에서 특정한 지도자 집단을 인위적으로 추대할 필요성이 사라질 때 종파주의 역시 발붙일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제반 이론적 사안을 둘러싼 마르크스주의자 내부의 견해차에도, 이들이 견지해 온 실천적 정치 활동의 기본 양식은 당파의 성립 이래 흔들림 없이 유지되어 왔다.

 

사회민주주의자의 정치적 활동은 러시아에서 노동 계급 운동의 조직화와 발전을 촉진하는 데 있다. 그 핵심은 현재 이론적 지도 없이 시위와 ‘폭동’, 파업을 간헐적으로 반복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운동을 부르주아 체제를 겨냥한 러시아 노동 계급 전체의 조직화된 투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나아가 착취자들에게 수탈당한 권리를 쟁취하고, 노동 인민에 대한 억압에 기초한 사회 체제 자체를 폐지하는 운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이러한 실천적 활동의 근간에는 러시아의 피착취 노동 인민을 대변하는 유일하고도 객관적인 주체는 오직 프롤레타리아트뿐이라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이론적 전제가 자리 잡고 있다.

 

러시아 노동 인민에 대한 착취가 농노제 잔재를 제외하면 사실상 사실상 자본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은 공장 프롤레타리아트의 선봉성을 입증하는 주요 근거가 된다. 대규모 기계 공업에 집적된 착취는 중세적·법적 장치로 은폐된 소규모 착취와 달리 자본 대 노동의 적대적 관계를 명백한 형태로 드러낸다. 따라서 노동자는 자신이 자본에 억압받고 있음을 직시하게 되며, 이에 맞선 투쟁은 필연적으로 개별 자본가가 아닌 전체 부르주아 계급에 대응하는 조직적·계급적 투쟁으로 발전한다.

 

이러한 선봉적 위상은 공장 노동자를 노동 계급 해방을 위한 유일한 주체로 정립시킨다. 대규모 산업만이 투쟁에 필요한 물질적 조건과 사회적 세력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반면 생산 수단이 산재하고 소유와 착취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저발전 부문에서는 생산자의 파편화와 소부르주아적 의존성으로 인해 계급적 결속과 단일한 조직화가 저해된다. 반면 대규모 자본주의는 혁명적 단결과 정치적 각성의 토대를 제공한다.

 

결과적으로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실천적 역량은 프롤레타리아트에 집중되어야 한다. 노동 계급의 선진적 대표자들이 과학적 사회주의를 수용하고, 파편화된 경제적 투쟁을 의식적인 계급 투쟁으로 전환할 공고한 조직을 건설할 때, 프롤레타리아트는 전 민주주의적 세력의 최선두에서 전제정을 타도하고 정치 투쟁의 넓은 길을 따라 만국의 프롤레타리아트와 나란히 공산주의 혁명의 승리로 이끌게 된다.

 

1894년 봄과 여름에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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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의 벗들의 정치 강령을 들여다보면

 

 

자본주의의 철폐가 아닌 부분적 개량만을 목표로 삼는 나로드니키의 개량주의적 조치는 소부르주아적 한계를 명확히 드러낸다. 따라서 그들의 정치 강령을 체계적으로 검토하여 그 계급적 실체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

 

유자코프는 『농업부』 (《러시아의 부 (루스코예 보가츠트보)》, 제10호에서 “농민 은행 개편, 식민화 부서 설립, 국유지 임대차 규제, 토지 임대 연구 및 규제 등을 매개로 인민 농업을 재건하고 금권 정치의 경제적 폭력으로부터 농민을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경제 발전의 문제점들」에서는 나아가 “마을 공동체에 대한 규제 및 보호 감독의 철회, 공동 경작과 가공의 도입”을 필수적 보완책으로 제시한다. 여기에 크리벤코와 카리셰프는 “저금리 신용, 집단 농장, 이윤 배제”, “기술 혁신”, “물류·유통 기반 시설 확충” 등을 추가적인 개량책으로 덧붙인다.

 

그러나 이들이 제시한 저금리 신용, 기술 개량, 금융 기구 등의 모든 개량주의적 조치는 기존 자본주의 생산 관계를 전제로 한 미봉책에 불과하다. 현존 사회 체제의 틀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자본주의 질서를 해체하기는커녕, 결과적으로 부르주아지의 생산 기반을 강화하고 계급 분화를 촉진하는 데 기여할 뿐이다.

 

현재의 생산관계 아래서 수행되는 어떠한 개량도 실효성을 거둘 수 없으며, 신용, 이민, 세제 개량, 농민으로의 토지 이전 등은 체제적 전환에 기여하지 못한다. 오히려 이는 과도한 ‘보호 감독’과 봉건적 부과금의 잔재, 농민의 토지 예속 등으로 지체되어 있던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을 가속화할 뿐이라고 본 니콜라이 온의 견해는 타당하다. 그는 바실치코프 왕자 (Prince Vasilchikov)와 같이 신용 확대를 주장하는 경제학자들이 “자유주의적 외양”을 띠면서도 실제로는 “자본주의적 관계의 심화와 강화를 도모하고 있다”고 간파하였다. 이들은 ‘농민층 내부’ 생산관계의 적대적 성격을 직시하지 못하고 이를 공론화하거나 수탈당하는 농민의 투쟁을 지원하기보다, 계급 간 화해와 통합을 유도하는 타협적인 조치로 투쟁을 무마하려 시도한다.

 

이러한 개량적 조치들의 결과는 필연적으로 귀결되어 있다. 모든 종류의 신용, 기술 개량, 금융 기구 설치 등 ‘개량주의적’ 조치들은 안정적인 농장을 소유하고 일정 수준의 ‘저축’을 확보한 극소수 소부르주아 계급에게만 선택적으로 활용될 따름이다. 따라서 농민 은행을 비롯한 개량책을 아무리 개편한다 할지라도, 수탈 과정에서 생산 수단과 생계 기반을 상실한 인민 대중의 객관적 처지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는 없으며, 적절한 농업 수단은 물론 생계 유지 수단조차 부족하다는 결정적인 사실을 조금도 바꾸지 못한다.

 

생산 수단의 독점과 사회적 수탈을 전제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집단 농장’이나 ‘공동 경작’에 기초한 농업의 사회화를 도모하려는 나로드니키의 개량주의적 구상은 실상에 부합하지 않는 관념적 구상이다. 생산의 참된 사회화는 개별 마을 단위의 제한된 범위를 탈피한 사회적 규모로 확장된 생산 체제를 요구하며, 현존하는 ‘착취자 계급’의 생산 수단을 몰수하는 계급 투쟁을 필수적으로 동반한다. 그러나 이들이 제시하는 개량적 조치들은 계급적 적대 관계의 본질을 완화·은폐하며, 피착취 대중으로 하여금 근본적인 계급 투쟁 대신 부르주아지의 시혜에 의존하는 속물적 적응 방식에 안주하게 만드는 해악을 초래한다.

 

자본주의적 적대 구조를 둔화시키려는 이러한 관념적 개량주의는 실제 생산 현장에서 부르주아적 지배 질서를 정당화하고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와 관련하여 지식인층이 공장 기업에 대한 통제를 매개로 대중 산업을 주도할 수 있다는 크리벤코의 주장은, 현실의 계급적 대립을 은폐하고 부르주아적 생산 관계를 포장하려는 나로드니키적 사고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공장제 대규모 산업을 수용하면서도 그 자본주의적 본질을 은폐하려는 나로드니키의 관념적 개량주의는 “지식인층 공장주들의 기업에 대한 통제를 매개로 대중 산업을 주도할 수 있게 되었다”라는 주장으로 구체화된다.

 

‘착취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없다면 착취와 투쟁 또한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크리벤코의 명제는 나로드니키 사상 전반에 깔린 관념적 회피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해마다 러시아의 교육 기관에서 배출되는 ‘지식인층’이 생계 기반을 찾아 소부르주아지에 흡수되는 객관적 현실 속에서, 부르주아적 생산 관계를 떠받치는 이들 지식인이 스스로 부르주아지의 범주에서 벗어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가리는 일이다.

 

이들은 현존하는 자본주의의 계급적 대립과 구조적 모순을 직시하기를 철저히 거부하며, 자본주의 체제의 일정한 ‘결함’만 제거된다면 부르주아 질서 내에서도 인민의 생존이 존속할 수 있다는 개량주의적 착각을 유포한다. 결과적으로 나로드니키는 ‘만약’이라는 가정적 명제 뒤에 숨어 자본주의의 적대적 생산 관계를 은폐하고, 부르주아적 지배 질서를 수용·정당화하는 실천적 우를 범한다.

 

“자본주의 생산과 산업의 자본주의화는 공장제 수공업이 인민들로부터 오로지 결별만 하는 출구가 결코 아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또한 인민들의 삶으로 들어와 농업과 원료 산업으로 더 가깝게 접근할 수도 있다. 이는 다각적인 방식으로 성사될 수 있고, 그런 목적에 기여할 수 있다.” (161쪽).

 

크리벤코는 미하일롭스키에 비해 직설적이고 명확하게 자신의 관점을 드러낸다. 미하일롭스키가 본질을 우회하며 미사여구로 논점을 가리는 반면, 실용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크리벤코는 자신의 소부르주아적 견해를 숨김없이 제시한다. “자본주의가 인민의 삶으로 들어올 수 있다”라는 그의 주장은 노동 인민이 생산 수단과 결별하지 않고서도 자본주의적 발전이 성립할 수 있다는 관념적 착각을 보여준다. 이는 ‘인민의 벗들’이 지향하는 바가 자본주의 없는 상품 경제, 강탈도 착취도 없이 인간적인 지주와 자유주의적인 관료의 보호 아래 유지되는 소부르주아적 상품 경제에 지나지 않음을 폭로한다.

 

이들은 자본주의의 본질적 모순을 은폐하고 관료 기구의 개입으로 체제를 정비하려 시도한다. 그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동일 필자의 논문 (「우리의 문화 용병들」, 《러시아의 부 (루스코예 보가츠트보)》, 제12호)을 살펴보면, 크리벤코는 “집단 농장이나 국유화 형태의 산업이 현실적 대체안이 될 수 없다고 단정하며 100루블을 넘지 않는 주식 기반의 합자 회사 형태를 구체적 구상으로 제시한다. 이는 마을 공동체가 지분을 소유하고 주민 일부가 임금 노동자로 종사하면서 토지 소유를 유지하는 형태”를 골자로 한다. 결국 이러한 구상은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와 임노동을 수용하면서 이를 공동체적 외양으로 포장하려는 소부르주아적 개량을 정당화하는 데 귀결된다.

 

자본주의적 모순과 파괴성을 은폐하고 이를 농촌에 조화롭게 결합할 수 있다는 나로드니키의 구상은 소부르주아적 착각의 전형을 보여준다. 마을 공동체가 기업으로부터 배당금을 수령하고 “주민 일부”가 임노동에 종사하도록 만든다는 이들의 방안은, 농민을 토지에 묶어둔 채 현지 자본가의 지배 아래 예속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이는 자본주의적 착취 관계와 임노동을 수용하면서도 이를 공동체적 질서의 외양으로 포장하여 노동 대중을 지속적인 수탈 상태에 머물게 하는 개량주의적 모순에 불과하다.

 

러시아에 실재하는 사회·경제적 관계를 왜곡하는 나로드니키적 관념론은 당대 사회에 지배적으로 유포된 대표적 통념이라는 점에서 이론적 규명의 대상이 된다. 러시아에서 봉건적 생산 양식으로부터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으로의 전환은, 농민으로 하여금 토지에 기반한 생계 유지와 지주에 대한 소작료 지불을 차단하여 과거의 독립적 노동 범주에 속하던 ‘외부 고용’에 예속되는 구조적 결과를 초래하였다. 과거 농민이 누리던 상대적 안녕이란 귀족 관료 기구와 초기 부르주아지의 보호 아래 유지되던 농노제적 무기력의 산물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이러한 역사적 조건을 직시하지 않은 채 자본주의의 적대적 본질을 은폐하고 관료 기구의 개입이나 소부르주아적 개량책으로 농촌 대중을 구제할 수 있다고 믿는 나로드니키의 구상은 현존하는 자본주의적 수탈 구조를 정당화하는 관념적 착각에 불과하다.

 

‘인민의 벗들’은 이러한 체제의 그늘진 실상을 의도적으로 외면한 채 이를 관념적으로 이상화하며 성립할 수 없는 착각을 품는다. 이러한 태도가 ‘착각’에 불과한 이유는, 해당 체제가 이미 동력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농민에 대한 대규모 재산 수탈을 수반하고 과거의 봉건적 ‘고용’ 관계를 자본주의적 ‘임노동’ 착취로 변모시킨 자본주의의 침투로 말미암아 이미 역사적으로 해체되었기 때문이다.

 

소부르주아 사상가들은 농민과 토지의 ‘생산 조건과의 결합’를 유지하길 갈망하나, 정작 이를 단독으로 보장해 주던 농노제로의 회귀는 거부한다. 그러나 그 결합을 성립할 수 없게 만든 주범은 상품 생산과 자본주의의 침투로 말미암은 농노제의 역사적 해체이다. 이들은 농민을 토지로부터 분리하지 않는 외부 고용, 즉 생산이 시장을 향해 이루어짐에도 경쟁을 유발하지 않고 자본을 창출하지 않으며 대중을 자본의 노예로 전락시키지 않는 형태의 외부 고용이라는 관념적 헛된 구상을 제시한다. 사회학의 주관적 방법론에 의존하는 이들은 현실의 개별적 요소 중 편의에 따라 이로운 점만을 ‘취하려’ 시도한다. 그러나 이러한 유치한 갈망은 현실을 무시하는 반동적 착각이자, 자본주의 체제가 지닌 발전적이고 변혁적인 측면을 파악하고 활용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드러낼 뿐이다. 결국 이는 착취와 억압의 공포로 가득 차 벗어날 수 없었던 ‘반(半)농노·반(半)자유 노동’이라는 과거의 지배 질서를 영속화하는 조치에 동조하는 결과로 귀결된다.

 

반동적 경향 내에서 ‘인민의 벗들’이 갖는 고유한 위치를 입증하기 위해 두 가지 사례를 제시할 수 있다.

 

모스크바 젬스트보 통계 자료에는 포돌스크 군 K 여사 농장에 대한 기록이 수록되어 있다. 해당 농장은 모스크바 통계학자들뿐만 아니라 V. V. 에게도 매우 높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V. 오를로프 (Orlov)는 이 K 여사의 농장을 ‘농업의 건전한 상태와 사유지 경영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대표적 사례’로 제시하였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K 여사는 겨울철 밀가루를 대여해 주는 대가로 지역 농민들의 노동력을 확보하여 농장을 운영하였다. 이러한 시혜적 조치 덕분에 해당 지역 농민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곡물 수급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 여인은 농민들에게 특유의 온정을 베풀고 구제를 제공하였으며, 그 결과 농민들은 해당 지역에서 가장 유복한 계급에 속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성 니콜라스 날조차 버티지 못하던) 예전과 달리 거의 새로운 추수철에 이르기까지 충분한 식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의문은 바로 이 지점에서 제기된다. N. 카블루코프 (Kablukov) (제5권, 175쪽)와 오를로프 (제2권, 55~9쪽 등)의 주장처럼 ‘이러한 방식’이 ‘농민과 지주 간의 적대적 이해관계’를 해소할 수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K 여사의 농장 경영은 본질적으로 농민의 노동력을 수탈하는 구조에 기반하므로, 착취 관계는 전혀 지워지지 않는다. 피착취자를 향한 온정주의적 태도 뒤에 숨은 착취의 본질을 보지 못한 K 여사의 시각적 한계는 차치하더라도, 경제학자이자 통계학자인 오를로프의 판단은 정당화될 수 없다. 그의 시각은 자본가의 자선적 형태에 매료되어 잡화점이나 주거 시설 등을 제공하는 공장주의 사례를 열광적으로 옹호하던 서구 박애주의자들의 논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적대적 이해관계가 부재한다는 착시를 유발하는 단편적 ‘사실’에 집착하여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구조적 본질을 외면한 편착에 불과하다. 즉, 나무를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본 비판의 첫 번째 핵심이다.

 

두 번째 핵심은 다음과 같다. 오를로프의 설명에 따르면 K 여사는 우수한 종자를 제공하여 높은 수확고를 거두게 하여 농민들로 하여금 가축을 확보하고 ‘유복한’ 농장을 유지하도록 도왔다고 한다. 설령 ‘이들 농민’이 완전한 경제적 자립을 이루고, 연중 충분한 곡식을 확보하며, 적정 규모의 ‘목장 및 목초지’를 소유하는 이상적인 조건이 갖추어졌다고 전제해 보자.

 

그렇다면 농민 경제가 완전히 번영을 구가하는 상태에서도 이들이 ‘K 여사의 사유지 노동을 철저하고 신속하게 수행할 것’이라고 볼 수 있는가? 또한, 농민들에게 온정주의적 보살핌을 제공하여 이윤을 수출하는 지주의 행태가, 목장 및 목초지의 결핍이라는 농민들의 궁핍한 현실보다 더 강력한 노동 유인으로 작용한다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인민의 벗들’의 인식의 구조 역시 동일한 논리적 궤적을 그린다. 진정한 소부르주아 관념론자로서 이들은 착취의 폐기 대신 완화를, 계급적 대립의 해결 대신 회유를 추구한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을 향한 비판에서 출발한 이들의 관념적 구상은, 지주와 자본가의 시혜적 태도가 전제된다면 농민이 ‘유복한 상태’에서 자신의 ‘의무’를 다할 것이라는 생각의 한계 내에 매몰되어 있다.

 

유자코프는 「러시아 인민의 토지 소유 할당량」 (《러시아의 부 (루스코예 보가츠트보)》, 1885년, 제9호)에서 자본주의적 착취를 배제하는 ‘인민적’ 토지 소유의 적정 규모를 제시하고자 했다. 크리벤코의 논의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인민의 삶에 자본주의를 침투시키는” 시각에서 문제에 접근하였다. 지주 신분인 그는 분여지에서 “식량과 지불금”을 충당하고 나머지는 “일자리”를 얻어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농민이 토지와의 연관성을 유지한 채 ‘분여지’에서는 지주에게, ‘일자리’에서는 자본가에게 이중으로 착취당하는 구조적 처지를 정당화하는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이중 착취와 소생산자의 예속적 생활 조건은 피억압 계급의 주체적 투쟁 역량을 마비시키며, 결국 이는 반(半)중세적 억압 질서를 영속화하는 결과로 귀결된다.

 

그러나 개혁 이후 급속히 발전한 자본주의는 반(半)봉건적·가부장적 농민층이라는 구체제의 지지대를 해체하고 이들을 중세적 예속에서 끌어내어 현대 자본주의적 관계로 분리해 냈다. 자본주의가 농민을 생존을 위해 이동하는 임금 노동자로 전환함에 따라, 착취의 본질은 특정 개별 주체의 약탈이 아닌 체제 자체의 계급적 착취라는 사실이 명확히 드러났다. 이처럼 자본주의의 침투가 농촌 대중을 복잡한 사회·정치적 역동 속으로 포섭해 들어가자, ‘인민의 벗들’은 구체제의 몰락과 파괴에 탄식하며 과거로의 회귀를 주창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새로운 생산 양식이 지닌 구조적 역동성과 옛 착취 체제에서 벗어난 새로운 사회 세력의 등장이라는 혁명적 측면을 포착하지 못한 채, 반동적 착각을 답습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인민의 벗들’은 현 체제의 어떠한 급진적 변화도 추구하지 않는다. 이들은 현존하는 사회적 토대 위에서 시행되는 자유주의적 조치들에 전적으로 만족하며, 크리벤코 역시 이러한 개량책을 고안하는 과정에서 관료적 행정 수완을 과시하는 데 머물러 있다.

 

그는 “구체적 조사를 거쳐 인민 산업을 종합적으로 연구하고 급진적으로 전환”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즉, “산업을 인민의 삶에 결합할 수 있는 요소와 그 과정에서 직면할 구조적 장애 요인을 구분하여 정밀하게 분석할 것을 요구한다.”

 

크리벤코는 산업을 자본주의화의 진행 여부 및 “대규모 산업과의 경합 양상”에 따라 분류하고 체계화된 분할의 사례를 제시한다.

 

그는 이러한 구분을 바탕으로, “첫 번째 유형인 소생산 영역에서는 자본의 지배로부터 독립성이 유지될 수 있다”고 결론 내린다. 그러나 상품 생산이 진행되는 조건에서 소생산자들이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로 분화되는 시장 관계, 지역 시장의 확대와 거대 시장으로의 흡수, 기술 발전에 수반되는 자본주의적 경향성을 회피하는 것은 성립할 수 없는 전제에 불과하다.

 

한편 ‘대규모 생산이 불가피한’ 영역에 대해 그는 자본주의적 집중과 경합할 수 있는 대체 조직 형태의 구상을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값싼 신용의 제공, 중간 상인 배제, 집단 농업의 도입, 고용주 이윤의 사회적 처분, 시장 확보, 기술 개선과 더불어 여타 혜택으로 보상받는 조건에서의 임금 삭감 등으로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 기계 설비 등에 대응하는 대규모 생산 조직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리적 구조는 수사적으로 원대한 이상을 제시하면서도 실제 행위에서는 전형적인 자유주의적 개량주의로 귀결되는 ‘인민의 벗들’의 본질을 명확히 드러낸다. 이들은 고용주 이윤의 사회적 처분과 대규모 생산 조직화를 논의의 출발점으로 설정한다. 이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최종 목표와 외견상 일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는 방법론에서 결정적인 균열이 발생한다. 고용주의 존재를 배제한 대규모 생산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생산을 시장 규율이 아닌 생산자 결사체의 지배하에 두고,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를 사회적 소유로 전환하는 상품 경제의 전면적 폐기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이행은 분산되고 고립된 소생산 과정을 단일한 사회적 생산 체계로 재편하는 생산 형태의 연쇄적 전환을 요구하며, 이는 오직 자본주의가 창출한 물질적 토대 위에서만 성립 가능하다.

 

그럼에도 ‘인민의 벗들’은 자본주의적 토대를 수용하기를 거부하며, 상품 경제의 철폐에 대해서는 외면으로 일관한다. 이들의 구상은 현존 사회적 생산 체제의 테두리를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생산 수단의 독점에 기반한 고용주의 이윤을 박탈하기 위해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중적 혁명 운동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들은 계급 투쟁의 필요성을 전면 부정하며 자본가 계급의 자기 관리 기구 외에 독자적 계급 주체가 존재할 수 있음을 포착하지 못한다.

 

결국 이들은 고용주 이윤을 실질적으로 제약할 어떠한 의사도 지니지 않는다. 크리벤코는 ‘이윤의 사회적 처분’이라는 표면적 구상이 초래할 파급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이를 신용 제공, 유통 구조 조직, 기술 개선 등의 수단으로 ‘상쇄’할 수 있다는 타협안으로 후퇴한다. 이는 이윤 추구라는 자본의 정당성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자본주의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소부르주아적 생산자층을 자본주의 체제 내에 고착시키는 지극히 온건한 자유주의적 조치로 귀결된다.

 

나아가 소부르주아적 계급 기반을 은폐하지 않는 이들의 입장은, 이윤율의 보전이 ‘임금 삭감’의 집행을 동원하여 달성될 수 있다는 주장으로까지 확장된다. 이는 거대 자본과 소자본 간의 경쟁에서 소자본가의 생존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노동 시간 연장과 임금 삭감을 동원해 온 소부르주아적 생존 전략을 지속적으로 대변한 결과이다! 이등른 소자본의 보전을 명목으로 ‘타당한 보상이 전제된 임금의 일부 삭감’을 대책으로 제시하며, 결과적으로 자본가의 ‘이윤’ 구조를 철저히 보장하고 노동자에 대한 수탈을 정당화하는 반동적 논리에 이르게 된다.

 

《러시아의 부 (루스코예 보가츠트보)》의 자유주의적 행정가들이 지닌 부르주아적 본질은 독점 문제를 다룬 《러시아의 부》 제12호에 실린 「국내 문제 연대기」에서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해당 기사의 필자는 “독점과 신디케이트의 형성을 발달한 산업이 지향하는 최상위 단계”로 설정하면서, “자본주의적 경쟁이 미숙한” 러시아에서 이러한 현상이 출현하는 것에 경악을 표한다. 그는 “설탕과 석유 등 주요 산업 분야의 1인당 소비량이 미미하다는 사실을 들어, 이들 산업이 아직 태동기에 머물러 있으며 향후 막대한 자본을 흡수하며 확장될 여지가 크다”고 진단한다. 즉, 자본주의적 독점의 형성을 비판적으로 아우리기보다 자본의 팽창과 시장 확대를 정당화하는 부르주아적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실질적인 문제에 접근하는 순간, 필자가 국내 시장의 위축에 대해 《러시아의 부 (루스코예 보가츠트보)》가 가장 선호하는 발상을 잊어버렸다는 사실은 특징적이다. 그는 국내 시장이 여전히 상당한 발전 전망을 갖고 있으며, 위축되지 않을 것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그러한 이러한 결론에 도달한 것은 소비 규모가 더 큰 서구와의 비교에 기반하여 서구의 문명 수준이 더 높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사람들을 상호 간의 더욱 빈번한 교류로 이끌고 각 지역이 중세식으로 고립되어 있던 상황을 무너뜨린 자본주의 기술의 발전, 상품 경제와 교환의 성장 외에 이러한 문명의 물질적 토대는 무엇인가? 예컨대 반(半)중세적 농민층이 아직 농촌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로 분화되지 않았던 대혁명 이전 프랑스의 문명 수준 역시 러시아와 비슷한 수준이 아니었던가? 따라서 필자가 러시아의 생활상을 좀 더 면밀히 검토했더라면, 자본주의가 발전한 지역 농민층의 생활 수준이 순수 농업 지역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을 포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는 주민들의 삶 전체에 산업으로서 영향력을 미칠 정도까지 발전한 수공업을 연구한 분석가들이 한결같이 지적하는 바다.

 

‘인민의 벗들’은 이러한 실질적인 변화나 발전 경향에 주목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해명이란 단지 ‘문명’의 확산이나 전반적인 삶의 복잡화 같은 피상적 현상에 머무르며, 정작 그 문명과 복잡다단한 사회적 구조를 성립하게 하는 물질적 토대에 대해서는 분석을 도외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농촌의 객관적 경제 실태를 세밀히 검토했더라면, 국내 시장을 창출하고 확장하는 근본적 동인이 다름 아닌 농민층의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로의 계급적 분화라는 사실을 파악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이들은 시장의 확장이 부르주아지의 성장으로 직결된다는 사실을 도외시했다. 「국내 문제 연대기」에서 제시된 “생산 발전 수준이 미비하고 자발성이 부재한 조건에서 독점은 국가 경쟁력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주장이나, 담배 독점이 “인민 유통의 영역에서 1억 5,400만 루블을 수탈할 것”이라는 추산은 이러한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경제 체제의 토대가 상품 경제이며 그 발전 경향을 주도하는 세력이 부르주아지라는 점을 망각한 논의다. 해당 필자는 부르주아지가 독점의 제약을 받는다는 본질 대신 ‘국가’를 상정하고, 부르주아적 유통 관계 대신 ‘인민’ 유통이라는 관념적 개념을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시각의 한계를 명확히 밝히기 위해, ‘인민의 벗들’ 사이에서 권위 있는 매체로 간주되던 《조국연보》 (1872년 제2호)에 실린 『금권정치와 그 토대』의 한 대목을 인용할 수 있다.

 

“마를로(Marlo)에 따르면 금권 정치의 핵심적 특징은 자유주의적 정치 체제 및 취득의 자유라는 원칙에 대한 옹호다. 이 기준을 적용해 지난 8~10년의 경과를 돌이켜보면 자유주의 측면에서 상당한 발걸음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하게 된다. …… 어떠한 언론 매체든 일정하게 민주주의적 원칙을 표방하며 인민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주의적 수식과 병행하여, 또는 이를 빌미로 삼아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금권 정치적 지배 구상이 지속적으로 관철되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 상인들이 재무장관에게 전달한 인사말은 이러한 구조적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은 “러시아의 금융 정책이 사기업의 광범위한 확장 여지에 기반하여 유의미한 결실을 거둔 점”에 대해 대표적 부르주아 조직으로서 감사를 표했다. 이는 “금권정치적 요소와 경향이 러시아 사회 내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자본가 계급 스스로가 해답을 제시한 사례다.

 

이처럼 개혁 초기, 유자코프의 주장과 달리 ‘인민의’ 생산이 아닌 금권 정치의 발전 경로가 확립되던 시기의 선대 지식인들은 러시아 사기업이 지닌 부르주아적 성격을 자각하고 있었다.

 

‘인민의 벗들’이 실질적인 경제 발전 과정에서 작동하는 ‘진취성과 자발성’을 논할 때 그 적대적·착취적 성격을 도외시하는 것은 이론적 한계를 드러낸다. 이들은 “인민” 유통과 “국가 경쟁력”의 확장을 언급하면서도, 그것이 관철되는 부르주아적 조건은 의도적으로 배제한다. 물론 노동 인민의 처지를 직접적으로 악화시키는 독점이나 중세적 전제 제도를 비판하고 이를 철폐해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하다. 그러나 노동 인민을 예속하는 핵심 기제는 중세적 속박 위에 포개진 현대 부르주아적 생산 관계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독점의 폐지, 즉 중세적 잔재의 청산은 자본주의적 비참함에 가중되던 전근대적 수탈을 제거한다는 점에서 전체 노동 “인민”의 이익에 부합한다. 따라서 이러한 봉건적 유산은 가급적 철저하게 해체되어야 한다. 이는 부르주아 사회가 물려받은 구조적 제약을 청산함에 따라 노동 계급의 계급적 주체성을 확보하고,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이들의 계급 투쟁의 조건을 선명하게 정립하기 위함이다.

 

부르주아 체제에 맞서는 노동 계급의 투쟁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독점과 제반 중세적 제약을 폐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제시해야 했다. 중세와 봉건 제도에 맞서 전체 ‘인민’의 이해관계가 상호 결합할 수 있다고 전제하거나, 그 내부에서 전개되는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간의 화해할 수 없는 적대를 도외시하는 것은 부르주아적 시각에 불과하다.

 

‘인민의 벗들’은 농촌의 실제적인 요구와 계급적 조건에 관심을 두지 않은 채 현상을 피상적으로 수용하는 한계를 보인다. 예컨대 크리벤코는 “농촌에 필요한 전문 직종과 지식인의 목록을 제시한 언론의 논의를 인용하며, 의사, 보조 의사, 법률가, 교사, 도서관 사서, 서점주인, 농경제학자, 삼림 전문가와 농업 전문가, 다양한 분야의 기술자, 신용 기관 관리자 등 다채로운 직업군이 망라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성은 농촌 사회 내부의 계급적 분화와 수탈 관계를 도외시한 채 지식인층의 관료적·개량주의적 구상을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

 

‘인민의 벗들’이 제시하는 삼림·농업 전문가, 기술자 등 지식인 인력에 대한 농촌의 수요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때 그들이 말하는 ‘농촌’의 실체가 무엇인지 규명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크레벤코가 ‘지식인’이라 칭하는 ‘전문가’들에게 대가를 지불할 자금력을 갖춘 주체는 지주와 기업형 부농층에 국한된다. 이들 상위 계급의 농촌은 실제로 전문가의 기술적 지원과 신용, 창고 시설을 지속적으로 필요로 해왔으며, 이는 기존의 경제 문헌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나 ‘인민의 벗들’이 간과하고 있는 또 다른 농촌, 즉 수탈과 몰락으로 피폐해지 광범위한 민중의 농촌이 존재한다. 이들은 전문가의 노동에 대가를 지불할 경제적 여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당장의 생계조차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인민의 벗들’이 구상하는 창고 건설 정책이 이러한 빈곤 농민층을 위한 것이라 주장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허상이다. 생산 수단을 상실하거나 영세한 농지만을 보유한 농민들에게는 보관할 생산물조차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미 과거 기근 당시 생계 유지를 위해 시골과 도시의 부농들에게 토지와 생산 수단을 담보로 잡힌 채 자신의 ‘노동력’만을 유일한 상품으로 보유한 프롤레타리아트로 전락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력을 보관할 ‘창고’란 관료적 개량주의 구상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자들’을 자처하는 집단이 제시하는 ‘농민층’ 내 기술적 발전론은 실상 농촌 내부에서 전개되는 대규모 착취 구조를 도외시한 피상적 주장에 불과하다. 예컨대 《러시아의 부 (루스코예 보가츠트보)》 제2호에서 카리세프는 아메리카귀리, 바라호밀, 말먹이 귀리 등 “개량종 씨앗의 보급 사례”를 들며 농민 농업이 “기술적 개선”을 이루었다고 강변한다. 그는 “농민들이 종자 육성용 필지를 별도로 설정하여 선별된 곡물을 재배하거나”, 경운기·탈곡기·종자 분류기 등 “개량 농기구”를 도입하는 양상을 성과의 증거로 제시한다. 나아가 인산비료, 아교 반죽, 비둘기 배설물 같은 “다양한 비료의 활용 및 이를 위한 젬스트보 상점 설치 구상”까지 언급한다. V. V.의 『농민 농업의 경향』에서 자료를 인용한 카리세프의 이러한 서술은 농촌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배제한 채 부르주아적 개량주의의 관점을 관념적으로 옹호하는 이론적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러시아의 부 (루스코예 보가츠트보)》 제2호에 게재된 카리세프의 서술은 관념적 위선과 소부르주아적 관념론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빈곤과 부채에 시달리는 농민들이 토지에 집착하며 개량을 시도하는 모습을 ‘희망’과 ‘시혜’라는 피상적 틀로 포장한다. 그러나 인산 비료, 종자 분류기, 탈곡기 등 선진 기술 수단을 도입할 자금력을 갖춘 주체는 영세 농민이 아닌 부농층에 국한된다. 사회적 생산 관계와 계급 분화를 도외시한 채 이를 전체 ‘농민’의 발전으로 치환하는 것은 정치경제학적 현실에 대한 무지이자 부르주아적 개량주의의 왜곡된 시각에 불과하다.

 

나아가 카리세프는 “농민의 사기를 북돋우고 젬스트보 상점이나 박물관, 모범 농장과 같은 외부적 지원을 확충해야 한다”는 관료주의적 계몽론을 펼친다. 그러나 이는 농촌 내부에서 전개되는 대규모 수탈과 농민층의 프롤레타리아트화 과정을 완전히 은폐하는 주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토지와 생산 수단을 상실하고 자신의 노동력만을 보유한 채 부농에게 예속되어 가는 민중의 현실을 외면한 채, “과학”과 “위원회에 기초한” 개량을 훈계하는 행태는 ‘인민의 벗들’이 지닌 소부르주아적 본질과 지식인 중심의 한계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인민의’ 소부르주아 계급 벗들은 소부르주아식 발전의 향연을 즐기고 있다!

 

농촌 경제에 대한 구조적 분석만으로도 우리는 핵심적 사실, 즉 ‘농민층’의 대규모 수탈과 농업 생산 내 기술적 발전과 동시 병행한다는 구조적 현실을 목격하게 된다. 나아가 ‘농민층’을 파편화된 분화 과정을 외면한 채 동질적인 단일체로 규정하는 주장의 허구성 및 이러한 기술적 발전이 띠는 부르주아적 성격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인민의 벗들’은 이러한 구조적 모순에 완전히 귀를 닫고 있다. 과거 러시아 인민주의의 혁명적 유산을 상실한 이들은 농민층 내부의 계급 적대를 이해하지 못했던 초기 인민주의의 결정적 한계마저 바로잡지 못한 채 한층 더 퇴행하고 있다.

 

70년대 인민주의자들은 농촌 사회 내부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계급 적대를 감지하지 못했기에, 이를 단순히 기생적 착취자인 ‘쿨락’과 공산주의적 본성을 지닌 ‘농민’ 사이의 대립으로만 단순화하여 파악했다. 그러나 글렙 우스펜스키 (Gleb Uspensky)는 이러한 보편적 착각을 거부하고 회의주의적 시각에서 현상의 본질을 파악했다. 농촌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춘 그는 고리대금업자와 채무자의 단순 대립 축을 벗어나 농민들 간의 내부적 경제 관계 전반에 개인주의적·자본주의적 원리가 이미 뿌리 깊게 작동하고 있음을 정확히 포착했다.

 

농촌 경제에 대한 정확한 실증 자료가 부족하고 농민층의 계급적 분화가 미미했던 1860~70년대에 발생한 이론적 한계는 시대적 구속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농민층의 몰락이 가속화되고 기술적 발전 경향이 동시에 확인되는 최근의 국면에서도 이러한 분화를 외면하는 것은 의도적인 현실 회피에 불과하다. V. V. 역시 해당 주제를 다룬 저술에서 기술·농경학적 측면의 개선을 명확한 사실로 제시하지만, 이는 농민층에 대한 대규모 수탈과 구조적으로 상응하는 현상이다. ‘인민의 벗들’은 ‘농민’의 기술적 수용 태도에만 주목할 뿐, 농민이 토지로부터 분리되는 구조적 과정은 도외시한다. 나아가 농민 분리와 함께 토지가 자본으로 전환되고 국내 시장이 형성되는 경제적 현실을 외면하는 태도를 보인다. 공동체 농민 내부에서 전개되는 이러한 대립적·분화적 과정을 부르주아적 사회 성격 이외의 논리로 설명할 길이 없으며, 이들이 내세우는 인도주의적 수사는 과학적 분석과 실천적 한계를 은폐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현질서에 대한 개량주의적 타협을 정당화하는 ‘인민의 벗들’의 서술은 소부르주아적 한계를 명확히 드러낸다. 크리벤코는 “거창한 담론보다 사소한 실천이 더 낫다”는 논리를 펼치며, 학교 설립, 법률 자문, 젬스트보와의 연계에 바탕을 둔 수공업자 창고 설치 등을 그 성과로 제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은 자본주의적 수탈과 계급 분화라는 구조적 근본 원인을 외면한 채, 체제의 틀 안에서 잔재적 모순을 미봉하려는 관료주의적·개량주의적 땜질에 불과하다.

 

이러한 개량적 조치들은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를 봉건적 잔재로부터 절연하여 부르주아 체제를 공고히 하는 자유주의적 범주에 속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노동 계급의 투쟁 대상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할 뿐이다. ‘인민의 벗들’은 “온건한 자유주의적 행동”을 도덕적 출구로 제시하며 사회민주주의자들의 혁명적 노선을 비판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부르주아적 질서에 봉사하는 개량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 인민주의자들의 이론이 비현실적인 유토피아주의에 머물렀다 할지라도, 그들은 이러한 소부르주아적 타협안에 단호히 반대했다. 반면 현대의 ‘인민의 벗들’은 과거 인민주의의 혁명적 지향을 상실한 채, 체제 수용적인 온건 자유주의 노선으로 퇴행했음을 스스로 자인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까마득한 과거의 일에 불과하며, ‘인민의 벗들’은 이러한 역사적 유산을 완전히 망각한 태도를 보인다. 정치 제도에 대한 유물론적 비판을 상실하고 현대 국가가 띠는 계급적 성격을 파악하지 못할 때, 정치적 급진주의는 지식인 중심의 관료주의적 기회주의로 전락할 수밖에 없음이 이들의 이들의 전술적 행태에서 단적으로 입증된다.

 

이러한 기회주의의 단적인 사례로 “국유재산부를 농업부로 개편하는 조치가 제시된다.”

 

유자코프 “이러한 행정 기구의 변경이 경제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도 있으나 단순한 관료 직무의 교체에 그칠 수 있다” (《러시아의 부》, 제10호)고 주장한다.

 

결국 이는 지배 기구에 ‘청원을 제시하는’ 주체가 누구인가에 따라 정책의 향방이 결정된다고 보는 시각으로, 기존 사회의 계급적 이해관계와 수탈 구조 자체는 전혀 문제 삼지 않는 소부르주아 개량주의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같은 글에서 유자코프는 “경제적 강자로부터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국가 개입의 첫 번째 본연의 임무”라는 주장을 이어간다. 《러시아의 부》 제12호에 실린 「국내 문제 연대기」의 필자 역시 동일한 논지로 유자코프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유자코프는 이러한 박애주의적 수사가 서유럽 소부르주아 관념론자들의 논리와 치밀하게 연동된다는 점을 숨기지 않으며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글래스스톤 (Gladstone)의 토지 법안들, 비스마르크 (Bismarck)의 노동자 보험, 공장 감독, 러시아의 농민 은행 구상, 이주의 조직화, 쿨락의 이익에 반하는 조치들 등은 모두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국가 개입이라는 동일한 원칙을 적용한 시도이다.”

 

이 대목은 그나마 솔직함이라는 미덕은 지닌다. 필자는 글래스스톤이나 비스마르크처럼 현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기를 고수하고자 하며, 그들과 마찬가지로 부르주아 사회를 수습하고 재편하길 바랄 뿐 이에 맞서 싸우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직설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현재의 사회에 기초해 지배 계급의 이익을 수호하는 기구인 국가를 개혁의 도구로 본다는 그들의 근본적 이론적 신념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들은 모든 계급 위에 존재하는 전지전능한 국가를 정당화하며, 국가가 노동 계급을 ‘지원할’ 뿐만 아니라 적합한 체제를 창출해 내리라 기대한다. 따라서 소부르주아 관념론자들인 이들에게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생산 조건 자체로 인해 해체·고립되어 있고 한정된 공간과 착취자에게 묶여 있는 소생산자들은, 간혹 프롤레타리아만큼이나 고통받으면서도 자신들이 겪는 착취와 억압의 계급적 성격을 파악하지 못한다. 바로 이 점이 이들을 반동적 계급으로 만드는 소부르주아지의 근본적 특징이며, 이들은 부르주아 사회에서 국가 역시 계급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위대한 ‘인민의 벗들’이여, 그렇다면 본 노선이 지금까지, 특히 토지 개혁 이후 더욱 본격적으로 부르주아 계급과 자본주의만을 ‘지원하고 보호하며 창출’해 온 까닭은 무엇인가?

 

국내 경제가 상품 생산과 상공업의 발전으로 규정되는 역사적 시기에, 절대적이자 계급 중립적이라 자처하는 국가 기구가 이러한 방향성을 띤 배경은 무엇인가? 생산 양식의 구조적 변화가 사회 깊숙이 정착됨에 따라 제도적 장애물이 수반되었을 뿐이며, ‘국가 기구’ 역시 실제로는 특정한 계급적 기반을 ‘창출하고 수호했을’ 따름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경제적 변화를 단순한 정부 정책의 산물로 재해석하여 축소하는 태도는 타당한가?

 

‘인민의 벗들’은 이러한 계급적·구조적 물음에 전혀 답을 내놓지 못한다! 이들에게 사회적 모순에 대한 과학적 분석은 ‘유물론’, ‘변증법’, ‘형이상학’이라는 명목으로 매도 대상이 될 뿐이다. 이들은 정부를 향해 온건하고 자비로운 정책을 건의하고 간청하는 것만으로 사회 문제 전체가 원만히 해결될 것이라는 유토피아적 관념론에 골몰해 있다. 이러한 소부르주아적 순응주의와 자유주의적 비굴함에 있어서 《러시아의 부》는 러시아 자유주의 언론 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퇴행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유자코프는 “염세 및 인두세의 폐지와 토지 상환금 감축을 언급하며, 이를 인민 농업에 대한 국가의 전향적 정책이자 성과”로 평가한다. 그러나 이러한 개량주의적 관점은 수탈의 형태적 전환을 외면한 피상적 시각에 불과하다. 염세 폐지의 이면에는 각종 간접세의 부과와 인상이 뒤따랐으며, 인두세 폐지 과정에서는 국유지 농민의 부담금이 대폭 인상되었다. 또한 상환금 감축 조치 이후에도 지불 대금과 토지 수익 간의 심각한 격차가 지속되어 봉건적 면역 지대의 수탈 구조가 사실상 재현되었다. 그럼에도 ‘인민의 벗들’은 이러한 구조적 모순을 외면한 채 국가의 시혜적 조치에 의미를 부여하고 제도적 개량에 의존하는 소부르주아적 한계를 지속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단지 꽃에 불과하며, 이제 과실의 실체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1880년대는 인민의 부담을 경감했고 인민이 완전히 몰락하지 않도록 구제했다.” (앞서 언급한 조치들에 힘입어!)

 

이 구절은 앞서 인용한 미하일롭스키의 주장, 곧 우리가 여전히 프롤레타리아를 창출해야 한다는 강변과 부합하는 부끄러운 노예근성의 고전적 표상이다. 이와 관련하여 러시아 자유주의의 진화에 대한 시체드린의 예리한 묘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자유주의자는 정부 당국을 향해 ‘가급적’ 개혁을 해달라고 간청하는 것으로 시작해, ‘적어도 일부라도’ 달라고 구걸하다가, 마침내 ‘아무렇게나 보잘것없는 것이라도’ 달라고 애원하는 지점까지 일관된 수동성을 고수한다. ‘인민의 벗들’ 역시 이러한 굴종적 입장을 받아들였을 뿐이라고 규정할 수밖에 없다. 당시는 기근이 수백만 인민을 덮친 시기로, 이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상인의 인색함에서 소심함으로 이행했을 뿐임을 알면서도, 이들은 정부가 인민을 철저한 몰락에서 구제했다는 주장을 지면에 버젓이 실었다! 몇 년이 지나 농민층에 대한 수탈이 더욱 가속화되고, 정부가 농무성을 신설하는 한두 가지 직접세를 폐지하는 대신 간접세 대여섯 가지를 새로 부과하여 기근이 4천만 인민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더라도, 이들 신사는 똑같은 방식을 되풀이할 것이다. 굶주린 인구가 5천만 명이 아니라 4천만 명에 불과한 것은 정부가 인민의 부담을 경감하고 몰락에서 구제한 덕분이며, 정부가 ‘인민의 벗들’의 제언을 수용하여 농무성을 창설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이 밖에도 또 다른 사례가 존재한다.

 

《러시아의 부》 제2호에서 러시아가 “다행히도” (원문의 표현 그대로다!) 후진국이며 “자신의 경제 체제를 연대의 원칙에 기초할 수 있게끔 해준 요소들을 유지해왔다”고 주장한 「국내 문제 연대기」의 필자는, 따라서 러시아가 “국제 문제에 있어서 경제적 결속의 주장자”로 행동할 수 있으며 러시아에 주어진 이러한 기회는 부인할 수 없는 “정치적 역량”에 힘입어 강화되고 있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모든 반동적 행위의 변치 않는 가장 확실한 보루는 바로 유럽의 경찰관인 러시아였다. 러시아 정부는 국내에서 억압받는 러시아 인민으로 하여금 서구의 인민을 억압하기 위한 도구로 종사하게 하는 치욕스러운 입장에 서게 했다. 그것이 바로 경제적 결속의 주장자로 포장된 경찰관 러시아의 실체다!

 

따라서 위의 주장은 실로 모든 한계를 넘어서는 궤변이다! ‘인민의 벗’들은 그 어떤 자유주의자조차 능가한다. 이들은 정부에 간청하고, 정부를 칭송하며, 지극한 존경과 열정을 다해 기도를 바친다. 그들이 이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바닥에 이마를 찧는 소리는 지나가던 이조차 섬뜩함을 자아낼 정도다.

 

여러분은 속물에 대한 괴테의 정의를 기억하는가?

 

속물이란 무엇인가?

 

텅 빈 속을

 

두려움과 신의 자비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득 채운 자다.

 

— 괴테

 

이러한 정의는 러시아의 실정과 온전히 맞닿아 있지는 않다. 신은 이들에게 부차적 존재에 불과하며, 핵심은 정부 당국이다. 위 정의에서 ‘신’이라는 단어를 ‘정부 당국’으로 대체한다면, 자유주의적 러시아 ‘인민의 벗들’이 지닌 이념적 상투성과 도덕적 수준, 그리고 시민적 용기의 실상을 정확히 포착하게 된다.

 

정부를 바라보는 시각이 이토록 터무니없는 ‘인민의 벗들’은 이른바 ‘인텔리겐처’에 대해서도 상응하는 태도를 보인다. 크리벤코는 “문학이 사회적 현상들을 그 의미에 따라 평가하고 능동적 노력을 장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교사와 의사 등 전문가가 부족하여 인민이 가난과 병마, 문맹에 시달리는 현실을 문학이 지속적으로 발언해 왔음을 강조한다. 나아가 카드놀이, 연극 감상, 귀족 주최 파티에서의 사치스러운 유흥에 환멸한 이들이 희귀한 자기희생 정신을 발휘하여 현장으로 나설 때 문학이 이들을 환영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이는 소부르주아 지식인이 향락적 생활 양식을 절제하는 정서적 결단 따위를 대단한 계급적 헌신으로 포장하고, 구조적 모순에 대한 과학적 규명 대신 지식인의 시혜적 계몽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관념론적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정치적 연륜으로 지혜를 얻게 된 왕년의 운동가는 사무적인 어법을 취하며 지방 감독관, 시장, 젬스트보 의장이나 위원 등 새로 제정된 규정에 따른 직위를 수용할 것인가를 두고 “망설이는” 이들을 비판한다. “그는 시민적 의식이 발달한 사회라면 필수적인 성격을 지닌 개혁을 주체적으로 수용하여 그 적극적 측면을 활용·발전시키고, 바람직하지 못한 요소는 사문화할 것이며, 개혁에 아무런 유의미한 내용이 없다면 해당 기구 자체를 완전한 소외 상태로 남겨둘 것이므로 이러한 망설임은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는 체제의 제도적 기구에 진입하여 개량적 미봉책을 수행하는 행위를 ‘개혁의 활용’으로 포장하고, 국가 권력 기구의 계급적 본질에 흡수·순응하는 개량주의적 실천을 합리화하는 소부르주아적 타협주의의 전형을 보여준다.

 

정부를 바라보는 시각에 이어 ‘인텔리겐처’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드러나는 ‘인민의 벗들’의 개량주의적 한계는 관념론적 타협으로 수렴한다. 이들은 카드놀이와 파티 등 향락적 생활을 절제하는 개인적 결단 따위를 대단한 계급적 헌신으로 포장하며 지식인의 시혜적 계몽을 칭송하는가 하면, 국가 권력 기구에 진입하여 미봉책을 수행하는 행위조차 ‘개혁의 활용’으로 합리화한다. 마르크스주의자에 대한 사교계의 가십을 수집하고 지배 기구의 시혜에 아첨하며 체제의 직위를 적극 수용하라고 계몽하는 이러한 주장은, 포장된 인민주의의 탈을 썼으나 실상은 국가 권력의 계급적 본질에 완전히 순응한 소부르주아적 기회주의이자 관념론적 비굴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인민의 벗들’은 “전통적 이상”을 수호한다는 구실로 혁명적 유산마저 심각하게 왜곡한다. 이들은 프랑스 혁명 사상이 전파되던 시기 헤르첸과 체르니셰프스키 (Chernyshevsky)가 정립한 혁명적 사상 전통을 오직 자신들만이 계승하고 있다고 자처한다. 그러나 체제의 제도적 기구에 진입하여 기회주의적 타협을 정당화하는 이들의 행태는 선조들의 혁명적 이상을 더럽히는 명백한 언어도단이자 모욕에 불과하다. 이러한 자유주의적 굴종과 속물적 타협주의를 인민주의의 전통으로 포장하는 것은 선대 선구자들의 유산에 대한 철저한 모독이다!

 

최초의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의 이상에 내포된 특성은 “그 시대 모든 사회주의자는 시인이었고, 모든 시인은 사회주의자였다.”라는 카우츠키의 지적에 명확히 집약되어 있다.

 

러시아의 공동체적 생활 체계라는 특수한 사회 질서와 이에 기반한 농민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신념은 청년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차르 체제에 맞서는 영웅적 투쟁으로 이끌었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그 시대 선구자들의 역사적 헌신과 유물론적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평가할 뿐, 결코 이를 폄하하지 않는다. 반면 과거의 혁명적 신념을 상실한 V. V. 가 마을 공동체를 이타주의의 중심지라 미화했을 때, 미하일롭스키조차 “어떠한 연구도 마을 공동체와 이타주의 간의 연관성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지적해야 했을 만큼 관념적 민중주의의 논리는 이미 파산해 있었다. 객관적 연구가 아닌 무조건적인 맹신에 의존하던 과거의 관념론적 이상주의는 이미 소멸하였으며, 이를 미화하여 체제 타협의 명목으로 삼는 ‘인민의 벗들’의 태도는 청년기의 투쟁적 유산을 속물적 기회주의로 변질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공동체적 질서에 대한 맹목적 신념에 기반했던 과거 농민 사회주의의 해체는 농촌 내부의 계급적 분화라는 객관적 조건과 결을 같이한다. 미하일롭스키조차 시인했듯, 농촌의 계급 분화는 통일체로서의 농민이라는 관념적 전제를 해체하여 한편으로는 농촌 프롤레타리아를, 다른 한편으로는 부르주아적 쿨락을 출현시켰다. 이에 따라 과거의 농민 사회주의 역시 사상적 유효성을 상실한 채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로 이행하거나 소부르주아 급진주의로 타락하였다. 상품 경제의 발전과 자본주의로의 이행을 수용하면서도 그 내부의 부르주아적 생산관계와 필연적 계급 투쟁을 부정하는 절충주의는 이러한 사상적 퇴보의 산물이다. 결국 현존하는 생산관계의 근본적 변혁을 목표로 하던 정치 강령은 근대 사회의 토대를 보존한 채 농민의 처지를 부분적으로 ‘개선하려는’ 개량주의적 모순으로 귀결된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분석을 “논박하고자” 시도한 《러시아의 부》 논객들의 태도는 객관적 비판의 비판적 언어를 완전히 상실한 상태다. 이들은 사회민주주의자가 입각한 경제적·현실적 분석의 본질에 반론을 제기하거나 구체적 결론의 타당성을 검증하려는 이론적 노력을 일절 기울이지 않는다. 대신 검열을 피한다는 핑계 뒤에 숨어 추상적 도식과 역사적 진화 과정에 대한 공허한 문구를 되풀이하는 관념론적 왜곡을 자행한다. 예컨대 크리벤코가 마르크스를 인용하며 “인간의 소망과 의식적 의도에 따라 자본주의의 부침을 피하고 더 우회적인 경로로 나아갈 수 있다.”는 식의 왜곡된 주장을 펼치는 것은, 유물론적 역사관의 기치 아래 사회적·경제적 진화의 객관적 법칙성을 규명해 낸 이론적 본질을 모독하는 무지와 궤변의 전형이다.


크리벤코는 익히 알려진 ‘마르크스의 편지’ (《법률 통신》, 1888년, 10호)를 인용하는 과정에서 의도적인 왜곡을 자행한다. 러시아가 “자본주의 체제의 고통을 겪지” 않고 발전할 수 있다고 본 체르니셰프스키의 주장을 마르크스가 평가한 대목을 들먹인 그는, “그 (체르니셰프스키)는 후자의 해결책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다”는 마르크스의 원문을 인용한 직후 따옴표를 닫으며 “그래서 마르크스는 자신의 이런 이러한 견해들에 동조한다고 말한다” (186쪽, 12호, 크리벤코의 강조)라는 구절을 덧붙이며 인용문의 본뜻을 자의적으로 왜곡한다. 이는 선대 사상가의 원전을 인용하는 과정에서 서술 구조를 왜곡하고 자신의 개량주의적 주장을 마르크스의 권위에 얹어 정당화하려는 수사적 공작에 불과하다. 관념론자들은 이러한 방식의 의도적 오독을 매개로 자본주의 발전의 객관적 법칙성과 변혁적 노동자 운동의 필연성을 부정하며, 자신들의 타협적 정치 강령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삼는다.

 

크리벤코는 체르니셰프스키를 다룬 마르크스의 언급을 인용하며 “그래서 마르크스는 자신이 이러한 견해들을 동조한다고 말한다”라는 주장을 자의적으로 덧붙여 인용문의 본뜻을 왜곡한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실제로 지적한 바는 체르니셰프스키에 대한 존경이 곧 그의 견해에 대한 동의를 의미하지는 않으며, 러시아 ‘문인’과 당대 범슬라브주의자들에 대한 자신의 비판으로부터도 반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법률 통신》, 1888년, 10호, 271쪽). 이러한 의도적 서술 구조의 왜곡은 유물론적 역사관과 자본주의 발전의 객관적 법칙성을 부정하고, 인민의 의식적 지향이나 주관적 열망에 따라 자본주의를 피할 수 있다는 식의 궤변을 마르크스의 권위에 얹어 정당화하려는 수사적 공작에 불과하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미하일롭스키가 자신을 러시아의 특수한 발전 노선에 반대하는 인물로 단정할 권리가 없으며, 자신 역시 그러한 사고를 지닌 사람들을 존중한다고 지적했을 뿐이다. 그러나 크리벤코는 이를 마르크스가 특수한 발전 노선을 ‘인정’했다는 의미로 자의적으로 오독하며 왜곡을 자행한다.

 

마르크스는 해당 편지에서 “미하일롭스키가 자신의 견해 중 서로 모순되는 두 주장 중 하나만을 끌어다 쓸 뿐, 러시아 정세에 관한 객관적 결론을 이끌어낼 바탕을 전혀 갖추지 못했다”고 분명히 지적한다. 나아가 이러한 오독을 방지하기 위해 자신의 이론이 러시아에 적용될 수 있는 조건에 대해 직접 언급한다. 마르크스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 자체와 그 질문의 답을 결정할 수도 있는 러시아의 자료 검토를 하지 않으려 했다는 사실을 명확히 밝히며, “러시아가 서구 유럽 국가들을 모범으로 한 자본주의 국가가 되려는 경향을 보인다면, 우선 농민 대부분이 프롤레타리아로 전환되지 않고서는 성립하기 힘들 것”이라고 답하여 관념론적 민중주의자들의 특수 발전 노선이라는 관념론적 도식을 일축한다.

 

질문의 본질은 명확하다. 즉, 당시 러시아 사회가 자본주의 국가로 진입하려는 객관적 경향을 보이고 있는가, 그리고 농민의 해체와 몰락이 자본주의 체제, 즉 자본주의적 프롤레타리아트의 형성을 의미하는가에 관한 문제였다. 마르크스는 러시아가 이러한 경로를 밟는다면 대다수 농민의 프롤레타리아화는 피할 수 없는 수순임을 지적한다. 결국 마르크스의 이론은 특정 사회의 경제 체제의 생산관계를 규명하는 방법론이며, 이를 러시아에 ‘적용’하는 길은 오직 유물론적 방법론과 정치경제학의 과학적 방법론에 기초하여 러시아의 생산관계의 실체와 그 역사적 역동성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것뿐이다.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방법론과 정치경제학 이론의 체계화는 사회과학의 이론적 도약이자 사회주의 운동의 비약적 발전을 의미했기에, 『자본』 출간 직후 ‘러시아 자본주의의 운명’은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에게 이념적·이론적 핵심 과제로 대두되었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치열한 이론적 논쟁이 전개되었으며, 운동의 정치적 강령 역시 이에 따라 결정되었다. 약 10년 전 특정 사회주의자 집단이 러시아 경제의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자본주의로의 이행이라는 필연적 결론을 제시했을 때, 관념론적 민중주의 진영에서는 이에 대한 명확한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동일한 방법론과 이론적 원칙을 수용하는 이론가들 사이에서도 해당 자료의 분석적 귀결을 두고 실질적인 비판을 제기하는 목소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러시아의 자본주의화라는 역사적 경향이 이미 관념적 수사에 머무르지 않고 과학적 분석으로 입증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인민의 벗들’이 가하는 비판의 실상은 역사적 사실이나 현실 실증 자료에 대한 입증을 고의로 회피한다는 점에 있다. 이들은 사회민주주주의자들의 구체적 경제 분석을 진지하게 논박하기는커녕, 추상적 도식과 관념적 수사에 스스로를 가두며 상대의 진의를 일절 왜곡한다. 미하일롭스키가 사회민주주의 진영 내부의 각양각색의 토론을 두고 ‘진짜’와 ‘가짜’를 운운하며 말장난을 벌이는 태도 역시 이러한 본질을 은폐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사회민주주의자들 사이의 논쟁은 약점이 아닌 운동의 역동성을 증명한다. 러시아가 봉건제에서 이행한 부르주아 사회이며, 그 국가 형태는 계급 국가이고, 착취를 끝낼 유일한 길은 프롤레타리아 계급 투쟁이라는 근본적 논지에는 전적으로 동의하되, 구체적 분석과 방도를 놓고 치열한 검증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지배 질서의 시혜나 공동체의 온정주의라는 ‘관념론적 도식’에 만장일치로 만족하는 소부르주아적 타협주의와 달리, 마르크스주의는 객관적 생산관계와 역사적 발전 법칙성을 과학적으로 해명하는 실천적 투쟁의 길을 걷는다.

 

동일한 이론적 입장을 수용하여 이를 집단적 정치 실천으로 전환하는 공통의 기반을 마련하고, 그 기반을 공고히 하는 이들이 ‘사회민주주의자’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확보하는 과정은 구체적 사안에 대한 각양각색의 광범위한 견해차를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이러한 논쟁과 견해의 다양함은 사회민주주의 운동이 내부적 분열에 빠져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물론적 역사관의 과학적 방법론을 바탕으로 러시아 사회의 현실의 제반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나가는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의 이론적 역동성과 실천적 생동성을 명증하게 입증하는 지표에 불과하다.

 

열악한 조건 속에서 전개되는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내부 토론과 진영 내 의견 차이는 운동의 분열이 아닌 이론적 역동성을 보여준다. 경찰의 집요한 감시와 통제 기구의 부재로 인해 개별적 연계와 토론이 극도로 제한된 상황에서 발생하는 구체적 견해차는 당연한 현상이다. 이러한 난관에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계급 투쟁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는 근본적 원칙에 합의하면서 구체적 현상에 대한 열띤 비판적 검증을 이어가는 것은, 관념론적 민중주의자들의 맹목적 만장일치와 대비되는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강인한 역동성과 이론적 우위를 증명한다.

 

‘인민의 벗들’이 가하는 비판의 실상은 역사적 사실이나 현실의 실증적 자료에 대한 입증을 고의로 회피한다는 점에 있다. 이들은 마르크스주의를 공개적으로 옹호하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의 구체적 경제 분석을 진지하게 논박하기는커녕, 추상적 도식과 관념적 수사에 스스로를 가두며 상대의 진의를 왜곡한다.

 

크리벤코와 미하일롭스키가 마르크스주의자들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났다거나 ‘신마르크스주의자’들이 등장했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왜곡의 연장선이다. 사교계의 풍문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자유주의적 언행을 감추려고 마르크스주의를 들먹이는 함량 미달의 인사들을 주시하며 벌이는 이러한 말장난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비판하기 위한 헛된 시도에 불과하다. 마르크스주의를 공개적으로 옹호해온 이들 중 그 누구도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의 이론과 정책을 부정하거나 다른 형태의 마르크스주의를 옹호한 적이 없으며, 인민의 벗들이 제시하는 ‘비판’이란 결국 상투적인 궤변과 추잡한 인신공격의 나열에 지나지 않는다.

 

‘인민의 벗들’의 이념적 타락은 자본주의적 발전에 대한 시혜적 용인과 기회주의적 개량주의 선언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크리벤코는 “자본주의 산업 발전에 적극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농민의 토지 매매나 상점 및 선술집 개업 등” 부르주아적 영리 행위에 적극 동참할 것을 촉구한다. 나아가 “농촌 착취의 주동자인 여관 주인들이 의회에 진출하는 것을 환영하고 곡물 투기 업자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자본주의의 침탈로부터 농민을 보호하기는커녕 자본가와 쿨락의 이익을 공공연히 대변하는 소부르주아적 타협주의로의 전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크리벤코가 제기한 주장은 ‘인민의 벗’을 자처하는 부류가 빠진 기회주의적 개량주의의 실상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타인의 노동을 수탈하여 형성된 농촌의 기업형 농민과 유통업자, 여관 주인 등은 객관적인 정치·경제적 특성에 입각하여 명백한 부르주아 계급의 체현자이자 농촌 분화의 주역들이다. 그러나 민중주의자들은 이러한 분석을 접할 때마다 서구적 도식의 무차별적 수입이라는 비난을 퍼부으며 계급적 현실을 회피하다가도,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왜곡과 공격을 감행할 때는 고귀한 이상과 과학적 분석을 내던진 채 자본주의적 수탈자들을 옹호하는 본색을 드러낸다. 이처럼 착취의 주범들은 농민의 보호자로 포장하고 부르주아적 발전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는 그들의 논리는, 소부르주아 급진주의가 결국 자본가와 쿨락의 이익을 대변하는 개량주의적 타협으로 전락했음을 증명한다.

 

이처럼 국가 권력의 전지전능함을 둘러싼 ‘인민의 벗들’의 비판은 자승자박의 모순에 불과하다. 그들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부르주아 계급의 국가 권력 지배를 지적할 때마다 정부의 중립성과 절대적 권한을 강변하며 자본주의의 인공적 수입을 경계하는 척한다. 그러나 동시에 의회 내 여관 주인과 곡물 상인들의 존재가 자본주의적 이해관계를 대변한다는 사실을 은영중에 인정하는 동시에, 자신들이 수호하고자 하는 국가 기구 자체가 이미 부르주아적 생산관계 위에 입각해 있음을 스스로 폭로한다. 결국 자본주의적 이윤 추구가 의회나 일부 소상인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전체의 생산과 유통을 지배하고 있음에도 이를 국지적 현상으로 축소하려는 민중주의자들의 시도는, 계급 국가의 본질을 은폐하고 부르주아 지배 질서에 봉사하는 개량주의적 기만일 뿐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에 대한 인신공격과 모독을 감행하는 크리벤코의 품위 상실한 발언들은 논박할 가치조차 없는 자승자박에 불과하다. 이들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자본주의 과정을 가속화하려는 목적”만으로 공장에 침투한다거나 사적 이권을 노린다는 식의 추잡한 비방을 퍼부으며 이념적 실체에 대한 객관적 검증을 회피한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왜곡과 희화화로 침윤된 소부르주아 관념론자들의 이러한 궤변은, 과학적 유물론과 계급 투쟁의 정당성을 우회하려는 개량주의적 타협의 한계를 드러낼 뿐이다.

 

‘인민의 벗들’이 보여주는 태도는 인민주의적 개량주의가 마침내 기득권 질서와 치밀하게 타협하며 체제 내화되는 이념적 반동의 과정을 선명히 드러낸다. 이들은 전제 정부의 시혜적 조치가 인민의 몰락을 막아주리라는 한가한 기망을 퍼뜨리며, 기득권층의 무지와 기만을 정당화하는 이념적 방패막이 역할을 자처한다. 계급적 실체와 수탈 구조를 은폐한 채 ‘식견 넘치는 상류 사회’의 자선 사업이나 지방 감독관들의 피상적인 시혜 선전을 인민을 위한 길로 포장하는 것은 소부르주아 관념론의 한계이자 기만이다. 결국 계급 투쟁과 생산관계의 유물론적 분석을 회피한 채 지배 질서의 온정에 의존하려는 이들의 시도는 반동적 언론인 부레닌 일파의 찬사를 받는 수준의 부르주아적 아첨으로 귀결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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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결론에서는 역사 및 사회민주주의자들을 상대로 공개적인 논쟁에 돌입한 또 다른 ‘인민의 벗’ 크리벤코의 주장을 검토하고자 한다.

 

다만 본고에서는 앞서 미하일롭스키나 유자코프의 저작을 다루었던 방식과는 결을 달리하여 그의 글 (「우리의 문화 용병들」, 1893년, 12호; 「여행 중에 보낸 편지」, 1894년, 1호)을 검토한다. 해당 문헌들을 면밀히 분석하는 작업은 첫째, 유물론과 마르크스주의 일반에 대한 그들의 반론을 규명하고, 둘째, 그들의 정치 경제 이론의 실체를 명확히 파악하기 위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나아가 ‘인민의 벗들’이 지닌 사상적 지향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려면 그들의 실질적 목표와 전술, 그리고 정치 강령을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

 

그들은 이론적 견해를 개진하면서 단 한 번도 자신들의 강령을 체계적이고 일관되게 제시한 적이 없었다. 이에 동일한 잡지 내에서 기고자 간의 모순이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의견이 일치된 여러 논설을 참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 가운데서도 크리벤코의 글을 우선적으로 다루는 이유는, 그의 저술에 풍부한 논거가 수록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미하일롭스키가 사회주의자, 유자코프가 경제학자의 역할을 대변하는 것과 달리 크리벤코는 해당 잡지의 성격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실용적 정치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강령으로 넘어가기 전에 반드시 살펴보아야 할 이론적 핵심이 한 가지 더 있다.

 

유자코프는 인민 경제의 기반인 농민의 토지 임차 문제를 두고 탁상공론을 늘어놓으며 자신들의 농민 경제 이해 부족을 은폐했다. 그는 수공업을 배제한 채 대규모 공장 산업의 성장 자료로 한정하여 논의를 국한했음에도 수공업에 대해서도 동일한 주장을 반복했다. 즉 ‘인민의 생산’인 수공업은 자본주의적 산업과 달리 “대부분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되는” 반면, 자본주의적 산업은 흔히 “인위적으로 창출된다”고 강변한다 (12호, 180~1쪽)

 

또한 그는 ‘소규모 인민 산업’을 ‘대규모 자본주의적 산업’과 대비시켰으나, 소규모 인민 산업의 본질적 특성으로 제시한 것은 단지 ‘작은 규모’와 ‘생산자와 노동 도구의 결합’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는 해당 경제 구조를 규정하는 정밀한 정의가 아닐 뿐만 아니라 실제 사실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크리벤코는 ‘소규모 인민 산업’이 ‘대규모 자본주의적 산업’보다 총생산량과 고용 노동력 면에서 우위를 점한다고 주장하며 수공업자 수를 400만 명 (타 자료 추산 700만 명)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수공업을 지배하는 실질적 형태가 대규모 가내 생산 체계이며, 대다수 수공업자가 생산의 독립성을 상실한 채 상인에게 원료를 공급받아 임금을 받는 종속적 노동자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이러한 수공업의 자본주의적 지배 구조는 당대 합법 출판물에서도 입증되었다. 통계학자 S. 카리조메노프 (Kharizomenov)는 《법률 통신》 (1883년, 11·12호)에서 중부 지방 주들의 수공업 자료를 분석하여 대규모 가내 생산 체계의 절대적인 우위, 즉 자본주의적 산업 형태의 명확한 존재를 검증했다. 그는 “소규모 독립 산업의 경제적 역할을 규정하면서, 모스크바주의 연간 수공업 매출액 중 86.5%가 대규모 가내 생산 체계에서 발생하고 소규모 독립 산업은 13.5%에 불과하며, 블라디미르주 알렉산드로프·포크로프 군에서는 그 비율이 각각 96%와 4%에 달한다”는 통계를 제시하여 소규모 독립 산업의 한계를 명확히 밝혀냈다.

 

러시아의 자유주의자들과 ‘인민의 벗들’은 이러한 객관적 사실 관계를 고의로 무시하거나 단지 단순한 ‘결함’으로 치부하여, 러시아 노동 인민을 향한 착취와 계급 적대라는 본질적 모순을 은폐하고 있다. 이처럼 명백한 사실을 외면으로 일관하는 채, 해당 산업을 자본주의와 구분되는 “인민” 산업이라 강변하며 그 발전 전망을 논하는 것은 성립할 수 없다.

 

그러나 또 다른 원인은 크리벤코가 “파블로보의 날붙이 사업”을 “반(半)장인 성격의 사업”이라 칭한 데서 드러나듯, 해당 사안에 대한 이들의 지식이 유독 깊은 데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 ‘인민의 벗들’이 도달한 왜곡의 깊이는 놀라울 따름이다! 파블로보의 칼 제조 업자들에게 어떻게 장인의 성격이 있다고 강변할 수 있단 말인가? 크리벤코는 상인이 수공업자에게 물품을 주문하여 니지니 노브고로드 장터로 유통하는 구조를 장인 산업으로 착각한 것인가.

 

실제로 칼 제조는 (외관상) 생산자가 독립성을 유지하는 소규모 수공업 형태와 가장 거리가 멀다. N. F. 안넨스키 (Annensky)는 “요리용과 공업용 칼 생산”이 이미 대부분 공장제 수공업 형태에 도달해 있다고 분석한다. 니지니 노브고로드주의 요리용 칼 제조 종사자 396명 중 시장을 위해 일하는 독립 수공업자는 16% (62명)에 불과하며, 69% (273명)는 주인에게 종속되어 있고 15% (61명)는 임금 노동자다. 즉 고용주에게 직접 예속되지 않은 비율은 6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같은 필자는 칼 산업의 다른 부문 역시 “대부분의 수공업자가 주인을 위해 일하지만, 여전히 시장과 관계를 맺는 독립 수공업자가 일부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니지니 노브고로드주에서 해당 종류의 칼을 생산하는 수공업자는 총 2,552명이다. 이 가운데 시장을 대상으로 생산하는 비율은 48% (1,236명), 주인에게 종속되어 생산하는 비율은 42% (1,058명), 임금 노동자는 10% (258명)을 차지한다. 그 결과 독립적 형태를 유지하는 수공업자는 소수에 불과하며, 시장을 위해 생산하는 이들 역시 표면적으로만 독립되어 보일 뿐 구매자 자본에 깊이 예속되어 있다. 전체 노동 인민 21,983명 중 84.5%가 공업에 종사하는 고르바토프군의 산업 통계를 살펴보아도 (금속·가죽·마구·펠트·삼 방적 등 종사자 10,808명 대상) 시장 생산자 35.6%, 주인 대상 생산자 46.7%, 임금 노동자 17.7%로 집계된다. 이는 해당 지역 산업 전반에서 대규모 가내 생산 체계가 우위를 점하고 있으며, 노동의 자본 예속 관계가 지배적 구조로 정착했음을 입증한다.

 

‘인민의 벗들’이 이러한 사실을 무시하는 또 다른 이유는 자본주의에 대한 그들의 개념이 부유하고 학식을 갖춘 자본가가 거대한 기계 공장을 운영한다는 통속적 관념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본주의라는 용어가 지닌 이론적 본질을 규명하길 거부한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유자코프는 자본주의의 출발점을 기계 공업으로만 단정하며 단순 협업과 공장제 수공업 (매뉴팩처) 단계 생략이라는 과오를 범했다. 이 같인 구조적 오류는 결과적으로 국내 수공업에 내재된 자본주의적 구성 요소를 간과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대규모 가내 생산 체계가 자본주의적 산업 형태라는 점은 명증하다. 여기에는 이미 높은 수준으로 발달한 상품 경제, 개인에게로의 생산 수단 집중, 그리고 생산 수단을 점유하지 못해 타인의 생산 수단에 결합되어 자본가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 대중의 착취라는 본질적 특성이 모두 내포되어 있다. 수공업은 구조상 순전히 자본주의적 성격을 띠지만, (주로 극도로 낮은 임금에 기초한) 기술적 낙후성과 노동자들이 여전히 소규모 농지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규모 기계 공업과 구별된다. 그러나 후자의 상황은 형이상학적 이분법에 익숙한 ‘인민의 벗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노동자에게 토지가 부재하면 자본주의가 존재하고, 토지가 점유되어 있으면 자본주의가 아니라고 단정하는 태도는 경제의 전반적인 사회적 구조를 간과한 채 편협한 논리에 매몰된 결과다. 이는 노동자들이 토지를 점유하고 있다 해서 다른 뻔뻔한 ‘농민’ 토지 소유주들로부터 수탈당하는 노동자 대중의 극심한 빈곤이 해소되지 않는다는 명백한 사실을 무시하는 주장에 불과하다.

 

그들은 자본주의가 여전히 비교적 낮은 발전 수준에 그쳐 있다 하더라도 어디에서나 노동자를 토지로부터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서유럽의 역사적 사례에서 마르크스가 도출한 법칙은 오직 대규모 기계 공업만이 노동자를 토지로부터 영속적으로 착취하고 분리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인민이 토지를 점유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국내에 자본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변하는 상투적 논법은 완전히 타당성을 잃는다. 단순 협업과 공장제 수공업 (매뉴팩처) 단계의 자본주의는 노동자가 토지로부터 완전히 분리될 것을 필연적 전제로 삼지 않으며, 그러한 결합이 유지된다 해서 자본주의적 본질이 상실되는 것 역시 아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대규모 기계 산업은 국내 산업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우리 사회의 구체적 특수성에도, 이 분야 역시 여타 서구 자본주의와 동일한 속성을 지닌다. 이는 곧 노동자가 토지와의 연관을 지속하도록 방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데멘티예프 (Dementyev)는 (마르크스의 이론과 별개로) 엄밀한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기계화된 생산 체계가 노동자의 완전한 토지 박탈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입증했다. 이 연구는 러시아가 이미 자본주의 국가이며 러시아 노동자와 토지의 결합은 극히 미약하거나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밝혀냈다. 나아가 화폐 소유자, 구매자, 부유한 농민, 공장제 수공업자 등 자산 소유자의 지배력이 공고히 확립되어 있어, 향후 기술적 진전이 이어지면 (오랜 기간 자신의 노동력을 매각해 온) ‘농민’이 그야말로 노동자로 전환되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그러나 이 나라 수공업의 경제적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인민의 벗들’의 오류는 여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노동이 ‘주인을 위해’ 이루어지지 않는 산업에 대해서도 이들의 시각은 경작자에 대한 관점만큼이나 피상적이다. 이들이 파악한 바는 단지 생산 수단이 노동하는 인민과 결합‘될 수 있다면’ 바람직하고, 분리‘될 수 있다면’ 해롭다는 사실에 그친다. 이처럼 조잡한 관점으로 정치경제학적 문제에 의견을 개진하는 이들의 한계는 필연적 결과라 할 수 있다.

 

크리벤코는 산업의 자본주의화 과정을 논하며, (소규모 생산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분야의 예로 특정 산업의 “기본 생산 비용”이 낮다는 점을 든다. 그는 연간 매출액 대비 생산 비용이 15분의 1에 불과한 벽돌 산업을 대표적 사례로 제시한다. 

 

이는 필자가 사실 관계를 언급한 거의 유일한 지점이라는 점에서 (주관적 사회학은 현실에 대한 직접적이고 정확한 파악과 분석을 배제한 채 소부르주아적 ‘이상’의 영역으로 도피하는 것을 대표적 특징으로 삼는다), ‘인민의 벗들’이 지닌 현실 시각의 오류를 규명하는 대표적 사례로 다룰 필요가 있다.

 

모스크바 젬스트보의 경제 통계 (『보고서』, 7권, 2부)를 보면 (백토로 벽돌을 생산하는) 벽돌 산업에 관한 기록이 존재한다. 해당 산업은 주로 보고로즈코예 군의 3개 읍에 집중되어 있으며, 233개 시설에서 1,402명의 노동자를 고용하여 연간 35만 7천 루블 규모의 총생산량을 기록하고 있다. 고용 인력 중 41% (567명)는 임금 노동자가 아닌 사업주의 가족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가족 노동자’다. 이 산업은 오랜 역사를 지녔으나, 철도 개통으로 판로가 비약적으로 확대되면서 지난 15년간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다. 철도 건설 이전에는 가족 노동 형태가 지배적이었으나, 현재는 임금 노동 착취 구조가 이를 대체했다. 또한 소규모 생산자가 판매 과정에서 대규모 업자에 종속되는 구조적 현상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소규모 업자들은 대규모 업자에게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벽돌 (때로는 굽지 않는 ‘미가공품’ 포함)을 현장 매각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러한 종속성과는 별개로, 해당 연구에 첨부된 수공업자 가구별 통계 조사 (노동자 수 및 시설당 연간 총생산량 기록)를 토대로 해당 산업의 구조적 실태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상품 경제가 필연적으로 자본주의 경제로 이행한다는 법칙이 이 산업에도 적용되는지 검증하려면 생산 시설의 규모별 비교가 선행되어야 한다. 핵심은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임금 노동 착취 정도에 따른 소규모 시설과 대규모 시설 간의 관계다. 노동자 수를 기준으로 수공업자 시설을 (Ⅰ) 1~5인 고용 시설 (가족 노동자 및 고용 노동자 포함), (Ⅱ) 6~10인 고용 시설, (Ⅲ) 10인 초과 고용 시설의 세 집단으로 분류한다.

 

시설의 규모, 노동자 총수, 집단별 생산액을 검토한 결과 다음과 같은 지표를 확인할 수 있다.

 

노동자 수에 따른 수공업자 집단 통계표

 

수공업자 집단

평균 노동자 수

고용 시설 비율(%)

임노동자 비율(%)

연간 생산액(루블)

시설 분배(%)

노동자 분배(%)

총생산 분배(%)

시설 절대수

노동자 절대수

총생산 절대수(루블)

I. 1~5명 고용 시설

2.8

25

19

251

72

34

34

167/43

476/92

119,500

II. 6~10명 고용 시설

7.3

90

58

249

18

23

22

43/39

317/186

79,000

III. 10명 초과 고용 시설

26.4

100

91

260

10

43

44

23/23

609/557

158,500

총계

6.0

45

59

254

100

100

100

233/105

1,402/835

387,000

 

이 수치는 산업의 자본주의적 구조와 부르주아적 성격을 명확히 보여준다. 시설 규모가 커질수록 노동 생산성이 향상되고 (중간 집단 제외), 임금 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심화되며, 생산의 집중도 역시 한층 증대된다.

 

거의 전적으로 임금 노동에 기초하는 세 번째 집단은 전체 시설 수의 10%에 불과하지만, 총생산량의 44%에 달한다.

 

이처럼 소수에게 생산 수단이 집중되는 현상은 다수 (임금 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으며, 이는 소생산자가 원청 (실질적 원청 역할을 하는 대규모 경영주)에 종속되는 구조 및 해당 산업 내 노동 억압의 원인을 명확히 설명해 준다. 결국 노동 계급이 직면한 수탈과 착취의 근본적 원인은 생산관계 자체에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러시아의 인민주의 경향 사회주의자들은 수공업 내 노동 억압의 원인을 생산관계 내부가 아닌 농업과 재정 정책 등 생산 외적 요인에서 찾았으며, 수공업의 생산관계가 본질적으로 착취를 배제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가 공고한 관념으로 고착된 바탕에는 수공업의 실제 경제 구조와 사실 관계를 정확히 규명하려는 분석적 시도가 부재했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이는 결국 사회과학의 유일한 과학적 방법론인 유물론적 관점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결과다.

 

수공업의 생산관계에 관해 착취의 원인을 외부로 돌린 이전 세대 사회주의자들은 대규모 공장 자본주의에 이르러서야 생산관계 내부의 착취 구조를 자각하는 논리적 모순을 드러냈다. 연구가 부재했던 수공업 생산관계에서 자본주의적 요소를 포착하지 못함에 따라, 이들은 대규모 자본주의의 기원을 설명하지 못한 채 수공업을 ‘인민의 공업’으로, 자본주의를 ‘인위적 산업’으로 대립시키는 한계에 봉착했다. 이는 자본주의를 ‘인민의 체제’와 근본적으로 모순되는 이질적 존재로 규정하는 발상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사유 체계는 니콜라이 온(Nikolai-on) 등의 이론적 재구성을 거쳐 폭넓게 확산되었으며, 비논리적 구조에도, 관성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니콜라이 온에 따르면 공장 자본주의는 구체적 현실에 근거하여 판단되는 반면, 수공업은 가설과 추측에 의존하여 판단한다. 전자는 생산관계 분석을 바탕으로 파악하지만, 후자는 생산관계에 대한 검증을 생략한 채 곧바로 정치의 영역으로 사안을 전환한다. 그러나 생산관계 분석에 입각해 접근한다면 ‘인민의 체제’ 역시 미발달된 맹아적 상태일 뿐 동일한 자본주의 생산관계로 구성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수공업자가 동등하다는 관념을 배제하고 실태를 정밀히 파악할 경우, 공장 ‘자본가’와 ‘수공업자’ 간의 격차보다 ‘수공업자’ 내부의 계급 분화가 더 심화되어 있음이 입증된다. 결국 자본주의는 ‘인민의 체제’와 모순되는 이질적 요소가 아니라, 그 내부에서 직접 이행하여 도달한 발전 단계에 해당한다.

 

제시된 사례에서 임금 노동자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핵심은 절대적 수치가 아니라 그 속에 내재된 부르주아적 생산관계다. 이러한 관계는 그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든 약하게 드러나든 지속적으로 유지된다.

 

모스크바 주의 산업에 관한 이사예프 (Isayev)의 저술에 등장하는 도자기 공업 역시 조사된 가구별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그 경제 구조를 분석할 수 있다. 이사예프가 “순수한 가내 공업”이자 소규모 농민 공업의 대표적 사례로 든 도자기 공업은 지극히 단순한 기술, 미소한 장비, 생산물의 보편적·필수적 수요라는 특징을 지닌다. 수공업자를 (Ⅰ) 1~3인 고용 시설 (가족 노동자 및 고용 노동자 포함), (Ⅱ) 4~5인 고용 시설, (Ⅲ) 5인 초과 고용 시설의 세 집단으로 분류하여 동일한 통계 계산을 적용해 보면, 수량상 러시아 소규모 ‘인민’ 공업의 전형으로 꼽히는 이 산업 내부에서도 부르주아적 생산관계가 명확히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수공업자 집단별 생산 및 고용 통계

 

수공업자 집단

평균 노동자 수

고용 시설 비율(%)

임노동자 비율(%)

연간 생산액(루블)

시설 분배(%)

노동자 분배(%)

총생산 분배(%)

시설 절대수

노동자 절대수

총생산 절대수(루블)

I. 1~3명 고용

2.4

39

19

468

60

38

36

72/28

174/33

81,500

II. 4~5명 고용

4.3

48

20

498

27

32

32

33/16

144/29

71,800

III. 5명 초과 고용

8.4

100

65

533

13

30

32

16/16

134/87

71,500

총계

3.7

49

33

497

100

100

100

121/60

452/149

224,800

 

명백히 이 공업 역시 부르주아적 생산관계에 속하며, 이와 같은 사례는 무수히 인용할 수 있다. 상품 경제에서 비롯된 분리, 특히 자본주의적 분리가 확인되며, 이는 상위 집단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는 임금 노동 착취로 이어진다. 최상위 집단은 전체 시설의 8분의 1에 불과하지만 전체 노동자의 30%를 고용하여 총생산량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며, 노동 생산성 또한 평균을 크게 상회한다. 이러한 생산관계 구조는 원청의 출현과 그 지배력을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규모가 더 크고 수익성이 높은 시설을 소유하며 타인의 노동으로부터 ‘순’이익을 얻는 소수가 어떻게 ‘잉여 자금’을 축적하는지, 그리고 왜 다수의 소장인이 몰락하고 생계조차 유지하기 어려운지 파악할 수 있다. 다수가 소수에게 예속되는 현상은 이 생산관계가 지닌 자본주의적 본질에서 비롯된 필연적 결과다. 이는 상품 경제로 조직된 사회적 노동의 산물이 개인의 수중으로 귀속되어 노동 인민을 억압하고 노예화하는 수단이자, 대중 착취를 매개로 사적 부를 축적하는 수단으로 작용하는 관계다. 

 

생산관계의 미발달로 생산자들의 몰락에 부수적으로 따르는 자본 축적이 미미하다고 해서 착취와 억압이 덜 뚜렷하다고 볼 수는 없다. 실제로는 정반대로, 노예제에 가까운 조악한 착취 형태로 귀결된다. 즉, 노동력을 직접 매수하여 완전히 종속을 이루지 못한 자본은 고리대금 착취의 그물망으로 노동자를 얽어매고 귀속시킴에 따라 잉여 가치뿐만 아니라 임금의 상당 부분까지 수탈한다. 나아가 ‘고용주’를 바꾸지 못하게 만들어 고통을 가하고, 일거리를 ‘제공하는’ 행위 자체를 시혜로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며 모욕을 안긴다. ‘진정한 인민의 산업’이 존재한다면, 어떠한 노동자도 러시아의 ‘독립적인’ 수공업자라는 이름뿐인 지위와 이를 맞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의 급진주의자들이 선호하는 조치들 역시 노동 인민에 대한 착취와 자본으로의 노예화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이러한 대책은 고립된 실험에 그치거나 노동 인민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며, 기존의 자본주의적 관계를 세련되게 다듬고 발전시켜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뿐이다.

 

인민주의 성향의 이른바 ‘인민의 벗들’은 농촌 산업이 비참한 상태에 처해 있고, 생산 시설이 협소하며, 노동 생산성이 극도로 낮고 기술 또한 원시적이라는 점, 그리고 고용된 임금 노동자의 수가 적다는 사실을 근거로 제시하며 해당 산업의 자본주의적 성격을 부인한다. 그러나 이들은 자본주의가 발전 수준의 고저를 막론하고 특정 사회적 생산관계의 양식으로 정의된다는 점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소수의 임금 노동자 존재에도, 농민 산업이 자본주의적 성격을 띤다는 사실을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자본을 가리켜 사회적 관계라고 규정한 핵심 정의에 반발하는 현상은 비단 이들뿐만 아니라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에게서도 일률적으로 포착된다. 이와 관련하여 과거 부르주아 경제학자 중 한 명이 《러시아의 부 (루스코예 보가츠트보)》 기고문에서 마르크스 이론을 해설한 지버 (Sieber)의 저작을 언급할 당시, ‘자본은 관계다’라는 정의를 인용하며 격렬한 분개와 함께 느낌표를 덧붙였던 사례는 이러한 이념적 한계를 단적으로 입증한다.

 

부르주아 체제의 범주를 영구적이고 당위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태도는 부르주아 철학자들에게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그들이 자본을 ‘추가 생산에 유용한 축적된 노동’으로 정의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이러한 정의는 자본을 인간 사회의 영구적 범주로 규정하여, 상품 경제의 지배 아래 조직된 ‘축적 노동’이 비노동자의 수중에 들어가 타인의 노동을 착취하는 데 기여하는 역사적으로 특수한 경제 구성체의 본질을 은폐한다. 이에 따라 그들은 생산관계의 명확한 체계에 대한 분석 대신, 모든 체제에 통용되는 무의미한 명제를 제시하고 이를 소부르주아적 도덕의 주관주의적 관념과 동일시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인민의 벗들’이 이 산업을 “인민의” 공업이라 칭하며 자본주의 산업과 대비시키는 까닭은 그들이 소부르주아 이념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소생산자가 상품 경제 체제하에서 활동하는 한, 시장과의 관계 속에서 필연적으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계급 분화한다는 당연한 사실조차 간파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이러한 현실 구조를 분석하려 하지 않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현실을 제대로 규명했다면 “인민의” 산업이 초래할 귀결에 대해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대신, 자본주의적 형태를 띠지 않고 발전을 이룬 수공업 분야가 러시아에 실제 존재하는지부터 검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본질을 소수의 생산 수단 독점, 다수에 대한 소외, 그리고 임금 노동의 착취 (즉, 상품 경제로 조직된 사회적 노동의 산물을 개인이 점유하는 구조)로 규정하는 개념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에 대한 ‘독자적인’ 정의와 역사적 분석을 제시해야 한다.

 

실제로 우리의 “인민” 수공업 구조는 자본주의 발전의 전 역사적 과정을 명확히 보여주는 구체적 실례에 해당한다. 이는 단순 협업 형태 (도자기 공업의 최상위 집단)에서 출발하여 자본주의 발전의 기원과 시초를 드러낸다. 나아가 상품 경제를 매개로 개별 개인의 수중에 축적된 ‘저축’이 자본으로 전환되는 동역학을 입증한다.

 

이러한 저축 소유자들은 대규모 처분에 필요한 자금을 독점함에 힘입어 우선적으로 판매권을 획득하고, 원거리 시장에서 상품이 처분될 때까지 대기할 수 있는 여력을 확보한다. 이 과정에서 상인 자본 (Kaufmannskapital)은 생산자 대중을 예속시키며 자본주의적 가내 공업 체제, 즉 대규모 생산의 가내 노동 체제를 구축한다.

 

이어 시장의 확대와 경쟁 심화는 기술적 개선을 강제하며, 상인 자본은 산업 자본으로 이행하여 대규모 기계제 생산을 조직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증대된 자본력이 수백만 노동 인민과 지역 전체를 종속시키고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국가 기구를 자신의 관할 하에 두는 단계에 이르러서야, ‘인민의 벗들’은 ‘자본주의의 주입’과 ‘인위적 창출’을 운운하며 반발을 시도한다.

 

실로 관념적 사유의 한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크리벤코 (Krivenko)가 ‘인민의’, ‘현실적인’, ‘적합한’ 등의 명목으로 제시한 산업 형태는 수공업이 다양한 발전 단계에 놓인 자본주의에 불과하며, 그의 서술은 이러한 본질을 은폐하려는 시도다. 이는 앞서 유자코프 (Yuzhakov)가 보인 논리적 수법과 부합한다. 유자코프 역시 농민 개혁의 구조적 실태를 분석하는 대신 기념비적인 선언의 공허한 구호를 오용했고, 토지 지대의 본질을 규명하는 대신 이를 ‘인민의 지대’로 포장했으며, 자본주의적 국내 시장의 형성 과정을 연구하는 대신 시장의 부재로 인해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봉쇄된다는 관념적 주장을 되풀이했다.

 

‘인민의 벗’들이 행한 사실 왜곡의 수준을 밝히기 위해 한 가지 사례를 추가로 검토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서술 중 가장 명확한 대목, 즉 크리벤코가 보로네시 농민 예산을 언급한 부분 (1894년, 1호)을 무시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며 자뭇 겸손한 태도를 취한다. 그들이 직접 제시한 자료에 입각하여 분석한다면, 러시아 급진주의자 및 ‘인민의 벗들’의 관념과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분석 중 어느 쪽이 현실에 부합하는지 명백히 규명될 것이다.

 

보로네시 젬스트보 통계학자인 시체르비나 (Shcherbina)는 오스트로고즈스크 군의 농민 경제를 서술하며, 전형적인 농가 24곳의 예산 항목을 제시하고 이를 본문에서 분석했다.

 

크리벤코는 이러한 분석을 재현하면서도 해당 방법론이 소농 경제의 실상을 파악하는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자각하지 못하거나 외면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 24곳의 예산은 크리벤코 스스로 지적했듯 (159쪽) 부유층, 중간층, 빈곤층 등 전적으로 상이한 가구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그는 시체르비나와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유형의 가구들을 단일하게 포괄하여 평균 수치를 산출하여 가구 간의 구조적 격차를 은폐한다.

 

소규모 생산자 내부의 계급 분화는 지극히 보편적이고 핵심적인 사실이기에 크리벤코가 선택한 빈약한 자료 자체로도 명확히 드러난다. 그러나 그는 농민 경제를 분석할 때 농장 규모와 경영 유형에 따라 범주화하는 대신, 시체르비나가 그랬듯이 과거 국유지 농민과 지주제 농민이라는 법적 범주로 구분하는 데 그쳤다. 그는 후자 대비 전자의 상대적 번영에만 주목하여, 동일 법적 범주 내 농민들 간의 계급적 격차가 범주 간 격차보다 훨씬 심대하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24개 농가를 (a) 부유층 6가구, (b) 중간층 11가구, (c) 빈곤층 7가구의 세 집단으로 재분류한다. 크리벤코는 과거 국유지 농민의 가구당 지출을 541.3루블, 지주제 농민의 지출을 417.7루블로 제시한다. 그러나 이는 농가별 지출의 현격한 불균등성을 무시한 집계다. 과거 국유지 농민 내에서도 최소 지출은 84.7루블인 반면, (1,456.2루블을 지출하는 독일 이주민을 제외하더라도) 최대 지출은 887.4루블로 10배에 달하는 격차를 보인다. 이처럼 편차가 심대한 수치를 하나로 묶어 산출한 평균 수치는 실태를 포착하지 못한다.

 

그러나 본문에서 제시한 기준에 따라 분류할 경우, 가구당 평균 지출은 부유층 855.86루블, 중간층 471.61루블, 빈곤층 223.78루블로 산출된다. 이에 따른 계급 간 지출 격차는 대략 4:2:1의 비율로 귀결된다.

 

시체르비나의 분석 방식을 답습하여 크리벤코는 법적 범주에 따른 농민별 생활비를 제시한다. 예컨대 과거 국유지 농민의 1인당 연간 채소류 소비 지출은 13.4루블인 반면, 과거 지주제 농민은 12.2루블이었다. 그러나 이를 경제적 범주 (계급)에 따라 재분류하면 그 수치는 각각 (a) 17.7루블, (b) 14.5루블, (c) 13.1루블로 나타난다. 육류 및 유제품 지출 역시 법적 범주상으로는 과거 지주제 농민 5.2루블, 과거 국유지 농민 7.7루블이지만, 경제적 범주에 따를 경우 각각 11.7루블, 5.8루블, 3.6루블로 현격한 격차를 보인다. 이처럼 법적 범주에 기초한 통계 산출은 계급 간의 극심한 지출 격차를 은폐하는 수단에 불과하며, 실태 규명에 아무런 실증적 타당성을 갖지 못한다. 크리벤코는 과거 국유지 농민의 소득이 과거 지주제 농민보다 53.7% 높다고 주장하며, 24가구 전체 평균 소득 (539루블)을 두 법적 범주로 나누어 각각 600루블 이상과 약 400루블로 제시했다. 그러나 경제적 계급에 따라 재집계할 경우 소득은 (a) 1,053.2루블, (b) 473.8루블, (c) 202.4루블로 산출된다. 즉 실제 소득 격차는 크리벤코가 주장한 3:2가 아니라 최대 5:1에 달하는 계급적 분화 구조를 띤다.

 

또한 크리벤코는 “과거 국유지 농민의 가구당 자본 가치가 1,060루블인 반면, 과거 지주제 농민은 635루블”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를 경제적 범주에 따라 재분류할 경우 그 수치는 각각 (a) 1,737.91루블, (b) 786.42루블, (c) 363.38루블로 산출된다. 즉 실제 자본 가치의 격차는 크리벤코가 제시한 3:2가 아니라 최대 5:1에 달한다. 이처럼 ‘농민’이라는 대상에 법적 범주를 적용하여 구분하는 오류를 범함으로써, 저자는 ‘농민’ 경제의 실제 구조적 실상을 파악하는 객관적 분석틀로부터 스스로 이탈해 버린 것이다.

 

경제적 계급에 따라 농가를 재분류해 검토하면, 상층 (부유층) 농가는 가구당 평균 1,053.2루블의 소득을 올리고 855.86루블을 지출하여 197.34루블의 순수익을 거둔다. 반면 중간층 농가는 473.8루블의 소득에 471.61루블을 지출하여 가구당 순수익이 2.19루블에 불과하다 (신용 부채 및 체납금 제외). 이는 실질적 생계 유지에 턱없이 부족한 수준으로, 중간층 11가구 중 5가구가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나아가 최하층 (빈곤층) 농가는 소득 202.4루블, 지출 223.78루블로 가구당 21.38루블의 적자를 내며 손실을 보는 파산적 영농을 지속한다.

 

이러한 편차가 심대한 농가들을 단일하게 묶어 전체 평균 (순수익 44.11루블)을 산출하는 방식은 현실의 계급적 실상을 완전히 왜곡한다. 이러한 평균 통계는 순수익을 확보한 6가구의 부유한 농민이 8명의 농업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는 핵심 사실을 은폐한다. 농업 노동자 고용은 상층 농업이 지닌 자본주의적 성격을 입증함과 동시에, 이들 가구가 순수익에 기반하여 외부 ‘부업 (산업)’에 의존할 필요성을 상쇄해 준다. 실제로 부유한 농민들은 전체 예산 (6,319.5루블) 중 6.5%에 해당하는 412루블만을 부업으로 충당한다. 더욱이 시체르비나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이들이 종사하는 부업은 ‘운반’이나 ‘양치기’ 등 외부 종속적 노동이 아닌 타인 착취를 전제로 하는 유형이며, (여기서 축적된 ‘저축’은 상인 자본으로 전환된다). 이들 부유층은 4개의 산업 시설을 소유하며 이를 매개로 전체 소득의 5%에 해당하는 320루블의 소득을 추가로 거두어들인다.

 

중간층 농민의 경제적 실태는 이와 상이한 양상을 보인다. 이들은 농업 소득만으로는 최소한의 생계조차 유지하기 어려워, 필요한 소득의 19%를 이른바 부업 (산업)에 의존한다. 시체르비나의 조사에 따르면, 중간층 7가구 중 독립적인 부업 (양복업 및 숯 제조)에 종사하는 농가는 2가구에 불과하며, 나머지 5가구는 타인에게 노동력을 판매하는 임금 노동에 내몰려 있다 (“저지대 예초”, “양조장 노동”, “추수철 날품”, “양치기”, “사유지 농업 노동” 등). 이들은 이미 ‘반(半)농민, 반(半)노동자’의 상태로 이행한 집단이다. 이러한 부업 종사는 자경 농업의 부실화를 초래하고, 결과적으로 농민 경제 자체를 지속적으로 약화시키는 악순환을 형성한다.

 

하층 (빈곤층) 농가의 경우 순전히 적자를 감수하며 영농을 유지한다. 이들 가계 예산에서는 “부업 (산업)”의 비중이 24%에 달해 훨씬 더 큰 중요성을 가지며, 이 때의 부업은 단 1가구를 제외하고는 전적으로 임금 노동력의 판매로 구성된다. 심지어 이들 중 2가구는 “농업 노동”에 기반한 부업 수입이 전체 소득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소생산자 내부에서 전개되는 완전한 계급 분화 과정은 이로써 명확히 입증된다. 소생산자층의 상위 집단은 자본가 (부르주아)로 이행한 반면, 하위 집단은 임금 노동자 (프롤레타리아)로 몰락했다. 이처럼 구조적 균열이 심대한 상태에서 통계적 ‘전체 평균’을 취하는 방식은 농촌 사회의 실제 경제적 실상과 계급 관계를 전면적으로 왜곡하고 은폐할 뿐이다.

 

따라서 저자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수사학적·방법론적 오류에 빠지게 만든 근본 원인은 그가 유효성을 상실한 허구의 평균 수치에 전적으로 의존했기 때문이다. 시체르비나는 해당 군 전체 농민 농업에서 전형적인 농가들이 차지하는 위상을 측정하고자 분여지 규모를 기준 삼아 집단을 분류했으며, 그 결과 추출된 24개 농가의 전반적 평균 변동 수준은 군 전체 평균보다 약 3분의 1가량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집계 방식은 결코 타당한 분석으로 수용될 수 없다. 해당 24개 농가 간에는 이미 극심한 계급적 편차가 존재하고 있었으며, 단지 토지 소유 규모 (분여지)만을 기준으로 한 분류 방식은 농민층 내부의 실질적 분화 상태를 왜곡하고 은폐하기 때문이다.

 

“분여지 소유 규모가 농가의 경제적 번영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라는 크리벤코의 주장은 완전한 오류다. 마을 공동체 내부에서 토지를 “평등하게” 분배한다 할지라도, 생산 수단 (농경지 및 농구)이 결여된 무마 (無馬) 농민이 영농을 포기한 채 임금 노동자로 전락하여 프롤레타리아화되는 현상을 막을 수 없으며, 반대로 다수의 작업마를 확보한 상층 농민이 타인의 토지를 대량 임차하여 이윤을 창출하는 자본주의적 농장을 확장하는 것 역시 저지하지 못한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실제로 24개 농가의 예산 수치를 재검토하면 이러한 모순이 명확히 드러난다. 6데샤티나의 분여지를 보유한 부유층 농가는 758.5루블의 총소득을 올린 반면, 더 넓은 7.1데샤티나의 분여지를 가진 중간층 농민의 소득은 391.5루블에 그쳤고, 6.9데샤티나를 보유한 빈곤층 농민의 소득은 109.5루블에 불과했다. 경제적 계급 간 소득 비율이 4:2:1의 현격한 격차를 보이는 동안 분여지 소유 비율은 2.6:1.08:1의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 이러한 결과가 초래된 원인은 명백하다. 가구당 22.1데샤티나의 분여지를 소유한 부유한 농가는 가구당 평균 8.8데샤티나의 토지를 추가로 임차하여 영농 규모를 확장한 반면, 9.2데샤티나를 보유한 중간층 농가는 7.7데샤티나, 8.5데샤티나를 보유한 빈곤층 농가는 불과 2.8데샤티나만을 추가 임차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따라서 크리벤코가 “시체르비나가 제시한 자료는 군 단위나 주 단위의 전체적 경제 실태를 정확히 측정하는 데 기여하지 못한다”고 지적한 것은 타당성을 잃는다. 그가 정작 비판했어야 할 대상은 왜곡된 전체 평균에 의존한 자기 자신의 방법론적 한계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시체르비나가 수집한 통계 자료는 농촌 사회의 계급적 구조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매우 포괄적이고 이론적 가치가 높다. 크리벤코가 이 자료를 바탕으로 객관적 실상을 도출해 내지 못했다면, 그 책임은 자료 자체의 한계가 아닌 통계 수치를 왜곡하여 해석한 크리벤코 본인의 분석적 무능에 있다.

 

시체르비나는 분석 과정 (197쪽)에서 법적 구분이 아닌 경제적 구분에 입각하여 농용 가축 소유 정도에 따른 농민 분류를 제시했다. 이처럼 경제적 기준을 적용한 분류는 추출된 전형적 24개 농가의 각 계급별 비중이 해당 군 전체 농촌 사회의 경제적 집단 구성 비율과 명확히 일치함을 입증하는 분석적 근거를 제공한다. 그 구체적 분류 체계는 다음과 같다.

 

보로네시 주 오스트로고즈스크 군 농가 계급별 통계

 

소유 축력수에 따른 세대주 분류

세대주 수

세대주 비율(%)

세대당 가축수

세대당 토지: 분여지(데샤티나)

세대당 토지: 임차지(데샤티나)

평균 가족수

농장 노동자 보유 가구(%)

상공업용 재산 보유 가구(%)

집 없는 가구(%)

일할 사람 없는 가구(%)

토지 경작 않는 가구(%)

농기구 없는 가구(%)

I. 축력 무소유

8,728

26.0

0.7

6.2

0.2

4.6

0.6

4.0

9.5

16.6

41.6

98.5

II. 한 마리 축력 소유

10,510

31.3

3.0

9.4

1.3

5.7

1.4

5.4

1.4

4.9

2.9

2.5

III. 2, 3마리 축력 소유

11,191

33.3

6.8

13.8

3.6

7.7

8.3

12.3

0.4

1.3

0.4

—

IV. 4마리 이상의 축력 소유

3,152

9.4

14.3

21.8

12.3

11.2

25.3

34.2

0.1

0.4

0.3

—

총계

33,581

100.0

4.4

11.2

2.5

6.7

5.7

10.0

3.0

6.3

11.9

23.4

[전형적인 24개 가구] 노업노동자

—

—

0.5

7.2

0

4.5

—

—

—

—

—

—

[전형적인 24개 가구] 가난한 농민

—

—

2.8

8.7

3.9

5.6

—

—

—

—

—

—

[전형적인 24개 가구] 중간 농민

—

—

8.1

9.2

7.7

8.3

—

—

—

—

—

—

[전형적인 24개 가구] 부유한 농민

—

—

13.5

22.1

8.8

7.8

—

—

—

—

—

—

[전형적인 24개 가구] 총계

—

—

7.2

12.2

6.6

7.3

—

—

—

—

—

—

 

상층 (부유층) 농가가 보여주는 영농상의 우수성은 24개 농가의 단순 평균 수치로도 명확히 드러난다. 그러나 왜곡을 유발하는 이러한 허구의 평균 대신 경제적 범주 (계급)를 기준으로 재분류하여 분석할 때, 비로소 각 계급의 실질적 영농 조건과 농업 생산성에 대한 객관적 비교가 성립한다.

 

전형적 농가에서 일하는 농업 노동자는 농용 가축 미소유 농민보다 소폭 하위에 위치하나 그 상태에 매우 근접해 있다. 빈곤층 농민 역시 작업마 1두 소유 농민과 영농 실태상 실질적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소 소유 두수의 경우 빈곤층 2.8두, 1두 소유 농민 3.0두로 0.2두의 차이에 불과하다). 중간층 농민은 2~3두 소유 농민보다 약간 상위에 위치한다 (소 소유 수량은 약간 많고 토지는 약간 적다). 반면 부유층 농민은 4두 이상 소유 농민보다 약간 하위에 위치하면서 그에 근접한다.

 

이러한 수치는 해당 군 전체에서 외부 임금 노동에 종사할 필요 없이 독자적 영농을 바탕으로 규칙적으로 이윤을 창출하는 상층 농민이 전체의 10%를 상회한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이들의 소득이 화폐 형태로 집계된다는 점은 해당 농업이 상업적 성격을 띰을 입증한다). 이들 상층 농가 상당수는 고용 노동에 의존하여 농장을 운영하며, 전체 가구의 25% 이상이 상시 농업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일시적 일용직 노동자 고용 가구는 통계상 미상).  

 

반면 군 내 농민의 과반 (무마 농민 26%와 1두 소유 농민 31.3%의 합산인 57.3%로 60%에 근접)은 빈곤층으로서 영농 행위 자체가 지속적 적자를 초래하는 상태에 놓여 있으며, 지속적인 수탈 끝에 점진적 몰락 과정을 겪는다. 이들은 생계 유지를 위해 노동력 판매를 강제당하며, 전체 농가의 약 25%는 자경 농업보다 임금 노동에 생계를 종속시키고 있다. 나머지 중간층 농민 역시 구조적 적자 영농 속에서 외부 부업 수입에 의존해 부족분을 충당하는 불안정한 경제적 지위에 머물러 있다.

 

크리벤코가 제시한 실상이 실제 구조를 얼마나 왜곡하고 있는지를 입증하기 위해 관련 통계 자료를 면밀히 재검토했다. 그는 세밀한 계급적 구분 없이 단순 전체 평균만을 활용하여 분석을 수행했으며, 그 결과 현실을 구체적으로 도출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했다. 24가구의 예산 자료를 보면, 부유층 1가구가 거둔 순수익 (+197.34루블)은 빈곤층 9가구가 낸 적자의 합 (-21.38루블 × 9 = -192.42루블)을 상쇄하는 구조를 띤다. 즉 전체의 10%에 불과한 상층 농가가 57%에 달하는 하층 농가의 적자를 메우고도 잉여를 남기는 격차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크레벤코는 24가구 평균 예산에서 산출된 44.14루블의 잉여 (신용 부채 및 체납금 15.97루블 차감 전)만을 근거로 삼아, 중간층과 하층 농민의 구조적 몰락을 단지 표면적인 ‘쇠퇴’로 축소하여 다루는 데 그쳤다.

 

실상 중간층 농민의 분석에서만 영농의 구조적 ‘쇠퇴’를 언급할 수 있을 뿐, 빈곤층 농민 대중의 경우에는 직접적인 수탈과 몰락의 과정이 포착된다. 이는 상대적으로 자본 체계가 견고히 자리 잡은 소수 상층 농가로 생산 수단이 집중되는 과정에서 초래된 구조적 결과다.

 

이러한 후자의 실태를 외면했기 때문에 크리벤코는 농가 예산이 지닌 또 다른 중요한 특징, 즉 농민층의 내부 분화가 국내 시장을 창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포착하는 데 실패한다. 한편으로 최상층에서 하층으로 내려갈수록 부업 (주로 임금 노동력의 판매)에서 발생하는 소득 비중이 점진적으로 확대된다 (부유층 6.5%, 중간층 18.8%, 23.6%). 다른 한편으로 최하층에서 상층으로 올라갈수록 농업의 상품적·부르주아적 성격이 강화되며 판매되는 농산물 비중 역시 증가한다. 각 계급별 농업 총소득 대 상품 소득의 수치는 부유층 (a) 3,861.7 / 1,774.4루블, 중간층 (b) 3,163.8 / 899.9루블, 빈곤층 (c) 689.9 / 175.25루블로 각각 집계된다.

 

분모에 해당하는 화폐 부문 소득은 최상층에서 최하층으로 내려갈수록 각각 45.9%, 28.3%, 25.4%를 차지한다.

 

이로써 수탈당한 농민에게서 누적·강탈된 생산 수단이 어떠한 기제로 자본으로 전환되는지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분석에서 드러나듯, 크리벤코가 활용된 통계 자료로부터 객관적이고 정확한 결론을 이끌어내지 못했음은 자명하다. 철도 여행 중 접한 한 농민의 증언에 기초하여 노브고로드주 농민 농업의 화폐적 성격을 기술한 이후에야, 그는 “가급적 저렴하게 풀을 베어” “최대한 유리한 가격에 판매하기 위한” “특정한 수단과 역량”을 “배양하고” (156쪽) 한 가지 목적에 물두하게 만드는 근본적 조건이 바로 상품 경제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즉 상품 경제 체제는 “상업적 수완을 일깨우고 세련화하는 학교”로 기능한다. 그 결과 “수완을 발휘한 개별 주체는 전면에 나서 콜파예프 (Kolpayev)나 데루노프 (Derunov)와 같은 착취적 자본가 유형으로 전화하는 반면, 이에 적응하지 못한 대중은 뒤처지고 퇴화하여 궁핍화된 끝에 농업 임금 노동자 대열로 전락한다.” (156쪽).

 

전혀 다른 조건이 지배적인 지역, 즉 농업이 주된 산업인 보로네시주의 통계 자료에서도 도달한 결론은 정확히 동일하다. 이를 시사받은 분석자라면 상품 경제 체제가 국가 전반의 경제 생활은 물론 특히 ‘공동체’와 ‘농민층’을 규정하는 핵심적 바탕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파악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러한 상품 경제의 작용만으로도 ‘인민’과 ‘농민층’이 프롤레타리아 (몰락하여 농업 노동자로 전락한 대열)와 부르주아지 (착취적 자본가 계급)로 분화하고 있음, 즉 자본주의 경제 구조로 이행하고 있다는 점 역시 명백히 드러난다. 그럼에도 ‘인민의 벗들’은 이러한 객관적 실상을 직시하지 못한 채 현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하여 크리벤코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상태를 지극히 당연한 현상으로 수용하며” (생산관계가 지닌 자본주의적 본질의 본래적 결과라는 점을 명시했어야 한다. 그랬다면 “상대 진영”의 관점을 객관적으로 규정함과 동시에 공허한 미사여구로 상대의 견해를 폄훼하는 오류를 피하고 실질적인 구조 분석으로 진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크리벤코는 이들과의 논쟁을 회피함에 따라 상품 경제가 ‘수완 있는’ 착취자와 ‘우직한’ 임금 노동자를 배출하는 ‘학교’라는 사실을 결과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이를 자본주의가 수행하는 불가피한 과업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학교’와 그 내부의 “착취자들”에 맞선 투쟁을 관료 및 지식인 집단과 결탁하여 수행해야 한다고 믿는 태도는 자본주의의 극복할 수 없음을 전제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반면 자본주의적 ‘학교’와 착취 구조에 면죄부를 부여한 채 실효성 없는 자유주의적 조치로 자본주의의 부작용만을 완화하려는 시도는 ‘인민의 벗들’이 지닌 본질적 한계를 정면으로 드러낸다!) “반면 우리의 시각은 이와 상이하다. 앞서 지적한 대로 자본주의가 핵심적 역할을 담당함은 자명하지만” (착취자와 임금 노동자를 배출하는 ‘학교’에 관한 대목을 의미한다), “그 역할이 국민 경제 변화를 전적으로 규정한다거나, 향후 여타 해결책의 출현을 전면 차단할 만큼 절대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160쪽).


사회적 체제에 대한 명확하고 직설적인 구조 분석이나 ‘농민층’이 착취자와 임금 노동자로 분화되는 근본 원인에 답하는 대신, 크리벤코는 “자본주의의 역할이 결정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실질적 내용이 결여된 명제로 문제를 일축한다. 따라서 관건은 과연 논리적·실증적 근거에 기반하여 그러한 주장을 제기하는 것이 성립할 수 있는지 여부다.

 

자신의 견해가 지닌 정당성을 입증하려면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제시한 역사적 이행 방향, 즉 착취자에 맞선 프롤레타리아의 계급 투쟁 외에 어떠한 역사적 요인이 ‘결정적’으로 작용하며, 또 다른 어떠한 ‘해결책’이 존재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했다. 그러나 크레벤코는 이에 대해 아무런 실증적 근거도 내놓지 못했다. 혹은 이하에 전개되는 명제를 제시한 것만으로 자신의 주장을 입증했다고 착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비록 황당무계한 논리일지라도 ‘인민의 벗들’이 보여주는 분석적 한계를 고려하면 이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쇠락의 주된 대상은 5데샤티나 미만의 분여지를 보유한 토지 결핍 농가다.” “반면 15.7데샤티나의 분여지를 확보한 전형적인 국유지 농가는 경제적 안전성 측면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이들이 80루블의 순수익을 확보하기 위해 5데샤티나의 토지를 추가로 임차한다는 사실은 모순적으로 영농 유지에 필요한 실질적 요구 조건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토지 빈곤’이라는 현상을 자본주의적 이행과 결부시키는 이러한 관점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 이는 토지를 적게 소유한 대중은 보유한 생산 수단마저 상실하는 반면, 토지를 이미 대량 소유한 상층 농가 (각 15.7데샤티나 보유)는 생산 수단을 더욱 집적·확대한다는 법칙성을 입증할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은 한쪽의 몰락과 다른 쪽의 부유화라는 계급 분화 과정을 단지 수사적으로 재서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현상의 본질을 전혀 규명하지 못하는 (농민은 토지를 무상으로 분배받는 것이 아니라 매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토지 빈곤이라는 관념적 설명 방식과는 결별해야 한다. ‘토지 부족’이라는 용어는 진행되는 현상을 불완전하게 포착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부정확하다. 분석의 중심은 단순한 토지 소유 여부가 아니라 생산 수단 전반으로 확장되어야 하며, 농민이 토지를 ‘충분히 공급받지 못한다’는 식의 관념적 서술이 아니라, 확장되는 자본주의적 수탈로 말미암아 토지 및 생산 수단으로부터 체계적으로 배제·분리되고 있다고 규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크리벤코는 자신의 논지를 마무리하며 “어떤한 조건에서도 농업이 제조업으로부터 분리된 채 ‘자연발생성’을 유지해야 한다거나 또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언급한다. (이미 교환 체계를 전제로 한 화폐 경제라는 ‘학교’가 존재하며, 그 결과 농업이 제조업으로부터 분리되는 현상을 인정한 것은 크리벤코 본인이었다. 그럼에도 역사적 당위의 문제를 다시 제기하는 것은 논리적 일관성을 결여한 태도다). 나아가 그는 “우리가 지적하려는 바는 인위적으로 분리된 산업을 창출하는 행위의 비이성성 및 (킴리와 파블로보의 수공업이 과연 “분리”되어 있는지, 대체 누가 그것을 “인위적으로” “창출”했으며, 언제 어떤 방식으로 단행했는지를 검증하는 것 역시 흥미로운 과제가 될 것이다.), 노동자를 토지와 생산 수단으로부터 분리시키는 동인이 자본주의에만 국한되지 않고 이에 선행하여 이를 촉진하는 여타 요인들에도 존재한다는 사실뿐이다”라고 강변한다.

 

이 대목에서 크리벤코는 노동자가 토지로부터 분리되어 착취자에게 종속되는 현상을 단지 노동자의 ‘빈곤’과 착취자의 ‘과다한 토지 소유’라는 표면적 원인으로 귀착시키는 관념적 시각을 재차 드러낸다.

 

나아가 이러한 부류의 관념론적 철학은 자본주의를 사회 변동의 결정적 동인으로 규정하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분석틀을 ‘편협함’이라 비난한다! 본고에서 농민과 수공업자의 계급적 분화 과정을 정밀히 재검토한 이유는 사회민주주의적 문제 의식과 이론적 설명 체계를 명확히 정립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주관적 사회학의 관점에서는 단지 농민의 ‘궁핍화’와 ‘착취자’의 ‘사적 이윤 추구’로만 해석되는 사실들이, 유물론적 관점에서는 상품 생산 자체의 내적 법칙에 따라 관철되는 상품 생산자들의 부르주아적 계급 분화 과정임을 입증해야 했다. 또한 자산 계급과 무산 계급 사이의 투쟁이 대규모 공장 지대뿐만 아니라 외딴 농촌 마을에서도 관철되고 있으며, 이러한 대립의 본질이 상품 경제의 발전이 초래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간의 계급 투쟁이라는 점 (앞서 1부에서 인용한 바와 같이)을 구체적 통계 자료로 증명할 필요가 있었다. 젬스트보 통계가 제공하는 실증적 자료에 기반하여 입증된 농민층과 수공업자의 해체 및 탈농민화 현상은, 농민과 수공업자를 소생산자 즉 ‘소부르주아’로 규정하는 사회민주주의적 관점의 정확성을 뒷받침하는 결정적 근거다. 이러한 논지는 소생산자를 둘러싼 상품 경제적 조건과 그로 인한 자본주의적 분화 기제를 외면했던 과거 농민 사회주의 (나로드니키)의 한계를 극복하고, 노동 계급 사회주의 이론을 구성하는 핵심적 축을 이룬다. 따라서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을 시도하고자 한다면, 비판의 초점을 이 계급 분화 법칙에 집중시켰어야 했다. 나아가 정치경제학의 관점에서 러시아 사회가 상품 경제 체제가 아니며, 농민층의 해체 역시 상품 경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인민 대중의 수탈과 노동자의 착취 구조가 자본주의적 사회 구성체 외의 다른 요인으로 설명될 수 있음을 논리적·검증적으로 입증했어야 한다.

 

자, 어디 한번 시도해 보라, 신사 양반들!

 

사회민주주의 이론의 실증적 증거로 농업 및 수공업 경제 실증 자료를 집적하는 데는 명확한 방법론적 이유가 존재한다. ‘인민의 벗들’이 보여주는 주관적 관점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그들의 사상을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관념적으로 대조하는 데 그친다면, 이는 유물론적 방법론에서 벗어나는 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인민주의적 (나로드니키적)’ 사고의 발생 기제를 규명하고, 현대 러시아 사회의 경제적 현실 내에 존재하는 그들의 물질적 토대를 입증하는 과제가 병행되어야 한다.

 

농민과 수공업 경제에 관한 통계 및 구체적 사례들은 스스로를 ‘농민의 대변자’라 자처하는 ‘인민의 벗들’이 실제 농민층을 어떠한 관념적 틀로 왜곡하여 파악하는지를 명백히 보여준다. 이러한 실증 자료들은 농촌 경제 내부에서 작동하는 부르주아적 본질을 증명하여, ‘인민의 벗들’을 계급적으로 소부르주아지의 이념가로 규정하는 관점의 타당성을 입증한다. 나아가 이는 러시아 급진주의자들의 이론과 개량책이 소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이해관계와 정밀하게 밀착되어 있음을 폭로한다. 그들의 개량책에 대한 정교한 검토는 이러한 급진주의 사상이 ‘지식인 사회’에 널리 유포될 수 있었던 구조적 원인을 해명할 뿐만 아니라, ‘인민의 벗들’이 보여주는 정치적 타협주의와 기회주의적 태도의 근본적 이유를 체계적으로 설명해 준다.

 

마지막으로 자본주의의 발전 수준이 미진한 러시아 사회의 특정 경제적 양상을 구체적으로 정밀 검토해야 하는 방법론적 이유가 존재한다. 인민주의자들이 이론적 논거의 주요 출처로 삼는 영역에 대한 경제학적 연구와 실증적 서술은, 현지 사회에 광범히 유포되어 있는 사회민주주의적 경향에 대한 반발과 오해에 가장 명쾌하고 직접적으로 답하는 기제가 된다. 자본주의가 ‘인민적 생산 체제’와 본질적으로 모순된다는 관념적 전제에 머물러 있는 러시아 급진주의자들은, 대규모 자본주의가 지닌 역사적 발전성을 인정하고 이를 수탈적 현 체제에 맞서 싸우는 물질적 토대로 삼고자 하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을 향해 비난을 퍼붓는다. 그들은 사회민주주의가 농민 대중의 계급적 이익을 외면한 채 “모든 농민을 공장의 용광로 속으로 강제 편입시키려 한다”는 식의 왜곡된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자본주의적 발전 법칙을 타당하게 인정하면서도 농촌 지역의 실태 분석에 이르러서는 이를 예외화하거나 부정하는, 지극히 비논리적이고 관념론적인 오류에 기반한다. 따라서 나로드니키적 왜곡에 대응하는 가장 결정적인 반론은 현 단계 농촌 사회의 객관적 경제 구조와 계급 분화의 실상을 실증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실증적 조사와 구체적 명확성을 갖춘 체계적 관점에서 농촌의 경제적 현실을 과학적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다. 농촌의 경제 조건을 정념에 지배받지 않고 객관적으로 분석할 때, 러시아 농촌은 개별적으로 파편화된 지역적·국지적 시장들의 체계로 구성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각 국지 시장 내부에서는 시장 법칙이 규제하는 사회적·경제적 현상들이 관철된다. 본래 가부장적 동질성을 띠던 직접 생산자는 계급적 분화를 거쳐 상층과 하층으로 분화되며, 이들 주변에서 생계의 기반을 수탈하는 자본, 특히 상인 자본이 발흥한다.

 

반면 급진주의자들의 농민 경제에 관한 관념적 서술을 농촌의 실제 1차 자료와 대조해 보면, 그들의 비판적 사고 체계가 지역 시장에 군집한 영세 상인, 행상, 중개인, 소착취자 집단의 존재를 완전히 배제하고 있음을 포착하게 된다. 그들은 “더 이상 농민은 없고 상인만 존재한다”는 단순한 수사로 해당 집단을 분석 대상에서 제외한다. ‘농민층의 해체’라는 사실 자체는 부합하나, 이들 ‘상인 집단’을 타인의 노동을 점유하는 영리 주체로 정확히 규정하고, 그들이 지역 경제에서 차지하는 실질적 비중을 통계적으로 산출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나아가 반대편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시장에 판매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임금 노동자 집단을 규정하고 엄밀한 실증 자료에 기반하여 접근할 때, 농민층의 부르주아적 분화라는 구체적 실체가 드러나며 ‘인민적 생산 체제’라는 관념적 허상은 해체된다.

 

이러한 소규모 시골 착취자 집단은 고립된 상태에 놓인 임금 노동자를 각개격파하여 예속시키는 가혹한 억압 기제로 작동한다. 미발달된 생산력과 연계망의 부재라는 야만적 조건 속에서 관철되는 그들의 착취는, 단지 노동 생산물의 수탈에 그치지 않고 인간 존엄성을 침해하는 아시아적 전제주의의 양상을 띤다.

 

이러한 농촌의 현실을 자본주의적 발전 단계와 비교할 때, 사회민주주의자가 대규모 자본주의를 역사적 동인으로 규정하는 근거가 명확해진다. 자본주의는 분절된 국지 시장들을 전국적 단일 시장으로 일원화하고, 소규모 착취자 무리를 해체하여 대자본으로 재편하며, 노동을 사회화하고 생산성을 도약시킨다. 이는 영세 착취자가 주도하는 가부장적·전근대적 예속 구조를 파괴하고 노동을 대자본에 직접 종속시키는 과정이다. 비록 이 과정이 노동의 강제와 억압, 야만적 노동 조건을 동반한다 할지라도, 과거의 전근대적 예속과 비교할 때 역사적 발전성을 지닌다. 자본주의적 대공장 체제는 노동자 계급의 계급 의식을 각성시키고, 파편화된 불만을 조직적인 계급 투쟁으로 전환시키며, 모든 노동 인민의 해방을 목표로 하는 체계적 운동의 물질적 토대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투쟁의 동력은 대규모 자본주의라는 객관적 조건 자체에서 산출되므로, 역사적 필연성을 확보한다.

 

농민 대중을 무시한다는 비난에 대해,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카를 마르크스의 다음과 같은 명제를 인용하여 자신의 입장을 완전히 입증할 수 있다.

 

비판은 사슬을 장식하던 가공의 화한을 걷어내었다. 이는 인간으로 하여금 환각적 장식이 제거된 족쇄를 그대로 차고 있게 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그 사슬 자체를 깨뜨려 벗어던지고 살아 있는 꽃을 향해 손을 뻗도록 하기 위함이다.

 

오늘날 러시아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관념적 이상화와 기만적 관념에 맞서 싸우고 이를 해체하여 농촌을 장식한 가공의 화환을 제거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이는 농민 대중을 현재의 수탈과 점진적 몰락, 예속 상태에 방치하지 않고, 노동 인민을 속박하는 사슬의 실체와 형성 기제를 프롤레타리아가 명확히 자각하도록 이끌기 위함이다. 이로써 이들이 주체적으로 떨쳐 일어나 사슬을 깨뜨리고 실재하는 해방의 결실을 취하도록 이끌어낸다. ‘인민의 벗들’이 사회민주주의자들을 향해 강한 적의를 드러내는 근본적 이유가 바로 이 지점에 존재한다.

 

그럼에도 자신의 객관적 사회적 지위에 기반하여 스스로 계급 의식을 형성하고 계급 투쟁에 착수할 수 있게 된 노동 인민의 대표자들에게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이와 같은 유물론적 이론을 개진하는 순간, 이들은 농민을 공장의 용광로 속으로 밀어 넣으려 한다는 중상에 직면하게 된다.

 

오늘날 사회민주주의자들을 향해 비난을 퍼붓는 주체들의 실체는 과연 누구인가?

 

이들은 ‘정부’와 ‘사회’, 즉 도처에서 노동 인민을 억압해 온 부르주아 국가 기구 및 제도적 영역에, 노동 인민의 해방을 의존하는 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역사적 선행 조건이 결여된 소부르주아 집단이 사회민주주의자들을 향해 계급적 사명이 결여되어 있다는 식의 주장을 자행하는 것은 이론적·실천적 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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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소득 없는 나날들이 가장 버티기 힘든 법이다. 


이 시기를 잘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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