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질문은 앞서 자세히 설명한 이론과 악명 높은 시장 문제가 무슨 관계가 있느냐 하는 데 있다. 그 이론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보편적이고 배타적인 지배라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는 반면, “시장 문제는 러시아에서 자본주의의 완전한 발전이 가능할 것인가하는 것이다. 물론 그 이론이 자본주의 발전에 관한 통상적 개념을 수정하게 해준 건 사실이지만, 자본주의가 전체적으로 어떻게 발전하는지에 대한 해명은 러시아에서의 자본주의 발전의 가능성”(과 필요성)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게 명백하다.

 

하지만 문건의 저자는 자본주의 노선을 따라 구조화된 사회적 총생산의 과정에 관한 마르크스의 이론을 자세히 설명하는 데 스스로를 국한시키지 않는다. 그는 자본의 축적에서 나타나는 본질적으로 다른 두 가지 특징들, (1) 자연경제를 축출하고 그 희생을 바탕으로 팽창하면서 이미 존재하는 노동 분야를 꽉 들어줘고 있는 자본주의 생산 발전의 폭과, (2)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보편적이고 배타적인 지배하에서 자연경제와는 독립적으로 떨어져 확대되는 자본주의 생산 발전의 깊이를 구별할 필요성을 지적한다. 그러나 당분간은 그런 구별에 대한 비판을 접어두고, 저자가 말하는 자본주의 발전의 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보는 쪽으로 곧장 나아가보자. 자본주의 경제가 자연경제를 대체하는 그런 과정에 대한 해명은 러시아 자본주의가 "나라 전체를 어떻게 들어줘게" 될 것인지를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본주의 발전의 폭을 다음과 같은 도형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A-자본가들, W-직접 생산자들

 

a, a1, a11-자본주의 기업들.

 

화살표들은 교환되는 상품의 이동을 보여준다.

 

m은 잉여가치(a)를 나타내고, u m a'기타 등등'을 의미한다.

 

c, v, m-상품가치의 구성 요소들

 

, -자연적인 형태의 상품들:-생산수단; -소비수단

 

저자는 "AW 영역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는, A에서 생산 자들은 자신들의 잉여가치를 생산적으로 소비하는 자본가들 인 반면 W에서는 자신들의 잉여가치를(여기서 생산물의 가치는 생산수단과 필수적인 생계수단의 가치를 능가한다고 상정한다) 비생산 적으로 소비하는 직접 생산자들이라는 데 있다"고 말한다.

 

"도형에서 화살표를 따라가보면, A에서 자본주의적 생산 이 어떻게 W에서의 소비를 희생시켜 점차 그걸 흡수하면서 발전하는지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기업 a의 제 품은 소비품의 형태로 "직접 생산자들에게" 흘러들어가고, "직 접 생산자들"은 그 대가로 불변자본(c)을 생산수단의 형태로, 가변자본(v)을 소비수단의 형태로, 잉여가치(s)를 추가 생산자 본 요소(c, +v,)의 형태로 되돌려준다. 그 자본은 새로운 자본주 의 기업 a,의 토대로 기능하게 되며, 그 기업은 정확히 같은 방 식을 통해 자신의 제품을 소비품의 형태로 "직접 생산자들"에 게 보내는 식이다. "자본주의 발전의 폭에 관한 위의 도형으로 부터 전체 생산이 '해외' 시장에서의 소비와 대중들에 의한 소 비에(그리고 일반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 대중이 어디에 있느냐는, 자본가 결에 있는 바다 건너 어딘가에 있든, 전혀 중요치 않다) 아주 밀접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분명 A에서의 생산 확대, 즉 이러한 방향으로의 자본주의 발전은 W에서 모든 직접 생산자들이 상품 생산자로 변신하는 순간 멈추게 될 것이다. 앞서 봤듯이 모든 새로운(또는 예전 기업에서 확장된) 기업들은 W에 있는 새로운 소비자 집단에게 제품을 공급하는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론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현재의 자본주의 축적 개념, 즉 확장된 규모의 자본주의 재생산 개념은 이런 관점에만 국한되며, 깊이에 있어서 자본주의 발전은 다른 나라의 직접 생산자들과 독립된, 즉 이른바 해외 시장으로부터 독립된 상태로 이뤄질 거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런 전체적인 설명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동의할 수 있는 건 자본주의 발전의 폭이라는 개념과 그것을 실증해주는 도형이 그 주제에 관한 인민주의자의 현재 견해들과 완전히 일치한다는 점뿐이다.

 

실제로 제시된 도형보다 더 확실하고 뚜렷하게 오늘날 그들이 지닌 견해들의 모순과 지루함을 묘사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현재의" "개념"은 언제나 이 나라 자본주의를 "인민의 시스템"과 별도로 떨어져 존재하는 그 무언가로 간주하고 그것과는 거리를 두었으며, 이는 자본가 영역과 인민의 영역이라는 두 "영역들" 사이에는 어떠한 연관성도 찾아볼 수 없는 위 도형의 묘사와 정확히 일치한다. A에서 보낸 상품들은 왜 W에서 시장을 발견하는가? W의 자연경제를 상품경제로 전환시키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현재의 견해는 교환을 우연적인 것으로 여길 뿐 경제의 특정한 시스템으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에 이런 물음들에 전혀 답을 내놓지 못해왔다.

 

더욱이 현재의 견해는 러시아의 자본주의가 어디에서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해 도형에서 설명한 것 이상의 해명을 전혀 내놓지 않았다. 마치 자본가들이 바로 이들 "직접 생산자들" 사이에서가 아니라 외부의 그 어딘가로부터 생겨난 것처럼 그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a, a1 등의 기업들을 위해 필요한 "자유로운 노동자들"을 자본가들이 어디서 구하는지 도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고 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 들 노동자들이 정확히 "직접 생산자들"로부터 확보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도형은 상품 생산이 W "영역"을 포괄할 때 다수의 자유로운 노동자들을 창출해낸다는 사실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 도형은——현재의 견해와 정확히 일치하는——이나 나라 자본주의 체제의 현상들에 대해 전혀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으며, 따라서 아무 쓸모가 없다. 자본주의가 어떻게 자연경제를 희생시켜 발전하고 나라 전체를 포괄하게 됐는지를 해명하려면 목적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는데, 저자 스스로가 알다시피 "만약 우리가 검토 중인 견해를 시중일관 고수한다면,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발전이 보편화되기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지켜본 이들은 저자 자신이 "태동기에 있는 자본주의가 실제로(?) 이렇게 아주 수월한(원문 그대로임!) 방식으로 (여기에 기존의 노동 분야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아주 수월하다) 발전했고, 세상에 자연경제의 잔류물들이 존재하고 인구가 증가하는 오늘날에조차도 같은 방향으로 일정 부분 발전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비록 부분적이긴 하나 그런 견해를 고수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본주의가 "아주 수월한" 방식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과정을 이해하는 방식이 "아주 수월"했던 것뿐이었다. 그게 얼마나 "수월"했던지, 차라리 이해가 거의 전무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정도다. 각양각색의 러시아 인민주의자들은 바로 이 순간까지도 이렇게 "아주 수월한" 속임수들로 상황을 모면하고 있다. 그들은 이 나라에서 자본주의가 어떻게 생겨났고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해명하는 건 꿈조차 꾸지 못한 채, 우리 체제의 "아픈 구석"인 자본주의를 "건강한 부분"인 직접 생산자들, "인민들"과 비교하는 것에 스스로를 국한시키고 있다. 자본주의를 원편에 놓고 인민들을 오른편에 놓은 다음, "인간 사회"에 무엇이 "해롭고" 무엇이 "유용한지"에 대한 감상적인 문구들로 이 모든 심오한 사고를 마무리 짓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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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마르크스가 행한 이런 연구들로부터 문건의 저자는 어떤 결론을 끌어오고 있을까? 애석하게도 그는 자신의 결론을 아주 정확하고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지는 않아, 서로 완전히 일치되지는 않은 특정 진술로부터 우리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부문, 즉 생산수단으로서의 생산수단의 생산에서 어떻게 축적이 이뤄지는지를 살펴보았다. ······ 이런 축적은 소비품 생산의 발달과 누가 소비하든 상관 없이 개인적 소비의 발달로부터 독립적으로 발생한다.”(15/3)

 

물론 생산의 확대가 새로운 가변자본을 요구하고 그 결과 소비품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축적이 소비품 생산으로부터 독립적으로이뤄진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분명 저자는 그런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c——Ⅰ부문에서의 불변자본——의 재생산이 부문과의 교환 없이 발생한다는, 예를 들어 석탄을 생산할 목적으로 매년 특정한 양의 석탄이 사회에서 생산된다는 공식의 구체적인 특징을 단지 강조하고 싶었던 듯하다. 이러한 생산(석탄을 생산할 목적으로 석탄을 생산하는 것)이 뒤이어 일어나는 일련의 교환을 통해 소비품의 생산과 연결된다는 사실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지 않다면 석탄 소유주는 노동자든 그 누구도 존재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다른 대목에서 저자의 목소리는 훨씬 더 힘없이 느껴진다. 그는 자본 축적의 주된 움직임은 어떠한 직접 생산자나 인구 계층의 개인적 소비와도 독립적으로 떨어져 발생하고 있고 또 발생해왔다(아주 초기를 제외하고)” (8)고 말한다. 여기서는 자본 주의의 역사적 발전 과정에서 생산수단의 생산이 소비품의 생산보다 우위를 점해왔다는 점만 언급되고 있다. 이런 언급은 다른 단락에서도 되풀이된다. “한편 자본주의 사회의 전형적인 특징은 축적을 위한 축적, 개인적 소비가 아닌 생산적 소비라는 점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정확히 생산수단으로서의 생산 수단의 생산이라는 점이 전형적인 부분이다.” (21/2) 만약 이런 언급을 통해 저자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부분이, 자본주의 사회는 기계의 발달과 그를 위해 요구되는 품목들(석탄, 철 등)에 의해 그 전의 다른 경제 체계와 정확히 구별된다는데 있다면 그의 주장은 아주 옳았다. 기술 수준에서 자본주의 사회는 다른 어떤 사회보다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해 있고, 기술적 진보는 기계의 역할이 인간 노동을 더욱더 뒷전으로 밀어내고 있다는 사실에서 확실히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저자의 불명확한 주장을 비판하기보다는 마르크스예게 곧바로 시선을 돌려 그의 이론으로부터 부문이 부문 보다 우위에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 가능한지, 그리 고 그 우위에 있음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살펴 보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앞서 인용한 마르크스의 공식으로부터 부문이 부문보다 우위에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는 없다. 두 부문 모두 평행선상에서 발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공식은 기술적 진 보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 마르크스가 자본1권에서 증명했 듯이 기술적 진보는 불변자본에 비해 가변자본의 비율이 점진적으로 줄어드는 것으로 표현되는 반면, 그 공식에서는 변하 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만약 공식에서 이런 변화를 반영했다면, 소비품보다 생산 수단에서 상대적으로 보다 더 급격한 증가가 이뤄질 것임은 말 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확성을 위해서나 그런 전제로부터 잘못된 결론을 도출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 도 그걸 계산해볼 가치가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다음의 공식에서 축적률은 불변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즉 잉여가치의 절반이 축적되고 절반이 개인적으로 소비된다는 가정이다.

 

독자 여러분은 다음의 공식을 건너뛰어 바로 다음 페이지 의 결론으로 넘어가도 무방하다. 글자 a는 생산의 확대를 위해 사용된 추가 자본, 즉 축적된 잉여가치의 일부를 의미한다.

 

1년차 14,000c+1,000v+1,000s=6,000 v: (c+v)=20.0%

 

II 1,500c+750v+750s=3,000 " 33.3%

 

I (1,000v+500s)=II 1,500c

 

a. 1500s=450c+50v " 1/10

 

a. II 60s=50c+10v " 1/6

 

14,450c+1,050v+(500s)=6,000

 

II 1,550c+760v+(690s)=3,000

 

2년차 14,450c+1,050v+1,050s=6,550 " 19.2%

 

II 1,550c+760v+760s=3,070 " 32.9%

 

I (1,050v+525s)=II 1,575c

 

II (1,550v+25s)

 

a. II 28s=25c+3v " ab. 1/9

 

a. 1525s=500c+25v " ab. 1/21

 

a. II 28s=25c+3v " ab. 1/9

 

14,950c+1,075v+(525s)=6,550

 

II 1,602c+766v+(702s)=3,070

 

3년차 14,950c+1,075v+1,075s=7,100 " 17.8%

 

II 1,602c+766v+766s=3,134 " 32.3%

 

I (1,075v+537 1/2s)=II 1,612 1/2c

 

II (1,602c+10 1/2s)

 

a. II 11 1/2s=10 1/2c+1v " ab. 1/12

 

a. 1537 1/2s=517 1/2c+20v " ab. 1/26

 

a. 22s=20c+2v " 1/11

 

15,467 1/2c+1,095v+(527 1/2s)=7,100

 

1,634 1/2c+769v+(730 1/2s)=3,134

 

4년차 15,467 1/2c+1,095v+1,095s=7,657 1/2 " 16.7%

 

1,634 1/2c+769v+769s=3,172 1/2 " 32.0%

 

기타 등등!

 

이제 사회적 생산물의 다양한 부분들의 성장에 관하여 이 공식으로부터 도출해낸 결론들을 비교해보자.

 

| | 생산수단으로서의 생산수단 | 소비수단으로서의 생산수단 | 소비수단 | 사회적 총생산물 |

|---|---|---|---|---|---|

| | % | % | % | % | % |

| 1년차 | 4,000 | 100 | 2,000 | 100 | 3,000 | 100 | 9,000 | 100 |

| 2년차 | 4,450 | 111.25 | 2,100 | 105 | 3,070 | 102 | 9,620 | 107 |

| 3년차 | 4,950 | 123.75 | 2,150 | 107.5 | 3,134 | 104 | 10,234 | 114 |

| 4년차 | 5,467 | 136.7 | 2,190 | 109.5 | 3,172 | 106 | 10,828 | 120 |

 

따라서 생산수단으로서의 생산수단의 생산이 가장 급격하게 증가하고, 그 다음에 소비수단으로서의 생산수단의 생산이 그 뒤를 따르며, 소비수단의 생산이 가장 느린 증가율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자본2권에서 마르크스가 행한 연구를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불변자본은 가변자본보다 더 빨리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법칙에 근거해서도 그런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생산수단이 더 빨리 증가한다는 명제는 이 법칙을 사회적 생산 전반에 적용할 때 그렇게 바꾸어 말한 것일 따름이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야 될지도 모르겠다. c+v 대비 v의 비율이 부단히 감소한다는 걸 받아들인 다면, v가 영(0)으로까지 감소하지 않을 이유, 즉 같은 수의 노동자들로도 더 많은 양의 생산수단을 감당하기에 충분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 경우 축적된 잉여가치의 일부는 I부문의 불변자본에 곧장 추가될 것이고, 사회적 생산은

생산수단으로서의 생산수단 때문에 전적으로 증가할 것이며,

II부문은 완전한 불황이 지배하게 될 것이다. 3/4

 

물론 그런 결론은 일어날 성실지 않은 가정에 기초하고 있고 따라서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공식들을 오용하는 게 될 것이다. c 대비 v의 비율을 감소시키는 기술적 진보가 I부문에서만 표출되고 II부문을 완전한 불황 상태로 남겨놓을 거라고 상상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그것이 모든 자본가에게 파산을 각오하고 사업을 확대할 것을 요구하면서도 정작 II부문에서는 어떠한 축적도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요구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적인 법칙들과 일치할까?

 

따라서 앞에서 개요를 서술한 마르크스의 연구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유일하게 올바른 결론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수단의 생산은 소비수단의 생산보다 더 빠르게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이런 결론은 자본주의 생산이 이전 시대의 생산보다 이루 해야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기술적 수준에 도달한다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명제로부터 직접적으로 도출된다.이 점에 대해 특히 마르크스는 오직 자신의 글 한 단락에서만 아주 분명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는데, 그 단락은 주어진 공식이 옳았음을 전적으로 확인해주고 있다.

 

이 경우 자본주의 사회를 미개사회와 구분해주는 것은 시니어(Senior)가 생각하는 것처럼 간혹 자신의 노동력을 쏟아낸 고도 수익, 즉 소비품으로 용해될 수 있는(교환할 수 있는) 어떠한 생산물도 손에 쥐지 못하는 식과 같은 미개사회의 특권과 특징 때문이 아니다. 아니, 그 구별되는 지점은 다음과 같은 측면에 존재한다.”

 

알파) 자본주의 사회는 연간 가용 노동력 중에서 생산수단의(그러므로 불변자본의) 생산에 더 많은(주의) 노동력을 고용하는데, 그런 노동력은 임금이나 잉여가치의 형태를 통해 수익으로 용해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본으로서만 기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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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시장 문제를 쓴 저자의 주된 전제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보편적이고 배타적인 지배라는 가정이다. 그 전제로부터 출발해 그는 자본_Capital_221(3편 사회적 총자본의 재생산과 유통)의 내용들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마르크스는 사회적 생산이 어떻게 노동자와 자본가의 개인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생산의 일부를 대체하고, 그 생산의 일부가 생산자본의 요소들을 형성하는지에 대한 검토에 착수한다. 그러므로 1권에서 개별 자본의 생산과 재생산에 관한 검토는 자본의 구성 요소들과 그 가치에 따른 생산물의 분석으로――『자본1권에서 생산물의 가치가 c(불변자본, constant capital)+v(가변자본, variable capital)+s(잉여가치, surplus-value)로 구성되어 있음을 드러내주었듯이――제한될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생산물은 그 물질적 구성 요소들로 분할되어야만 하는데, 자본의 성분들로 구성되는 생산물의 일부는 개인적 소비를 위해 사용될 수 없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마르크스는 사회적 총생산을――따라서 사회적 총생산물을――(I)오로지 생산적 소비를 위해서만 기능할 수 있는 상품인 생산수단의 생산, 즉 생산적 자본의 요소와 (II)노동계급과 자본가계급의 개인적 소비를 위해 기능하는 상품인 소비수단의 생산, 이렇게 두 부문으로 나눈다.

이 연구가 기초로 삼고 있는 공식은 다음과 같다(아라비아 숫자들은 예를 들어 수백만 루블과 같이 가치의 단위들을 가리킨다. 로마 숫자들은 위에서 언급한 사회적 생산의 부문들을 가리킨다. 잉여가치율은 100퍼센트라고 상정한다).

 

I 4,000c + 1,000v + 1,000s = 6,000

 

II 2,000c + 500v + 500s = 3,000

 

(자본 = 7,250 생산물 = 9,000)

 

먼저 단순재생산, 즉 생산이 확대되지 않고 예전의 규모를 영구히 유지하고 있다는 가정에서부터 출발해보자. 이는 자본가들이 잉여가치 전부를 비생산적으로 소비하고, 축적이 아닌 개인적 욕구를 위해 사용한다는 걸 뜻한다. 그런 상황에서는 우선 $\text{II } 500v$$\text{II } 500s$가 동일한 II부문 내에서 자본가와 노동자에 의해 소비되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 생산물이 개인적 욕구의 충족을 위한 소비수단의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동일한 I부문 내에서 자연적 형태의 $4,000c$는 자본가들에 의해 소비되어야 한다. 생산 규모가 불변하는 상황에서는 향후 생산수단의 생산을 위해 똑같은 자본을 유지할 것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의 이 부문을 대체하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석탄, , 기계 등과 같이 자연적 형태로 존재하는 생산물의 해당 부문은 생산수단을 생산하는 자본가들 사이에서 교환될 테고, 종전과 같이 불변자본으로 기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text{I}(v+s)$$\text{II}c$가 여전히 남게 되는데, $\text{I } 1,000v + 1,000s$는 생산수단의 형태로 존재하는 생산물이고, $\text{II } 2,000c$는 소비수단의 형태로 존재하는 생산물이다. I부문(단순재생산, 즉 전체 잉여가치의 소비)에서 노동자들과 자본가들은 2,000의 가치[$1,000(v) + 1,000(s)$]를 소비수단으로 소비해야 한다. 예전의 규모대로 생산을 계속할 수 있으려면, II부문의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불변자본($2,000\text{II}c$)을 대체하기 위해 2,000 정도까지 생산수단을 획득해야만 한다. 여기서 볼 때 $\text{I}v+\text{I}s$$\text{II}c$와 교환되어야 한다는 게 명확해진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예전 규모대로 생산하는 게 불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단순재생산의 조건은 I부문에서의 가변자본과 잉여가치의 총합이 II부문에서의 불변자본과 똑같아야 한다: $\text{I}(v+s)=\text{II}c$. 달리 말해, 1년 동안 (두 부문에서) 생산된 모든 새로운 가치의 총합은 소비수단의 형태로 존재하는 생산물의 총가치와 동일해야 한다는 법칙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text{I}(v+s)+\text{II}(v+s)=\text{II}(c+v+s)$.

 

물론 실제로는 단순재생산이란 존재할 수가 없다. 사회 전체의 생산은 매년 예전의 규모에 머무를 수가 없고, 축적은 자본주의 체제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적 생산이 어떻게 규모가 확대되거나 축적이 이뤄지는지를 검토해보도록 하자. 축적이 이뤄지는 상황에서는 잉여가치의 일부만 자본가들의 개인적 욕구를 위해 소비되고, 나머지 부분은 생산적으로 소비된다. 즉 생산의 확대를 위한 생산적 자본의 일부로 전환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축적이 이뤄지는 한 $\text{I}(v+s)$$\text{II}c$가 동일할 수가 없다. I부문의 잉여가치 일부가 소비수단으로 교환되지 않고 생산의 확대를 위해 사용될 수 있으려면 $\text{I}(v+s)$$\text{II}c$보다 더 커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공식을 얻게 된다.

 

A. 단순재생산 공식

$\text{I } 4,000c+1,000v+1,000s=6,000$

$\text{II } 2,000c+500v+500s=3,000$

$\text{I}(v+s)=\text{II}c$.

 

B. 초기 축적 공식

$\text{I } 4,000c+1,000v+1,000s=6,000$

$\text{II } 1,500c+750v+750s=3,000$

 

이제 축적이 이뤄진다면 사회적 생산이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첫해에는.

 

$\text{I } 4,000c+1,000v+1,000s=6,000$

$\text{II } 1,500c+750v+750s=3,000$

(자본=7,250 생산물=9,000)

 

$\text{I}(1,000v+500s)$(단순재생산에서처럼) $\text{II } 1,500c$와 교환된다.

$\text{I } 500s$는 축적, 즉 생산을 확대하기 위해 투입돼 자본으로 전환된다. 만약 우리가 방금 분할된 부분을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으로 나눈다면

 

$$\text{I } 500s=400c+100v$$

가 된다.

 

추가 불변자본($400c$)은 생산물 I(그것의 자연적 형태는 생산수단이다)에 포함되지만, 추가 가변자본($100v$)2부문의 자본가들로부터 확보되어야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들은 축적을 해야만 한다. 그들은 잉여가치의 일부($\text{II } 100s$)를 생산수단($100v$)과 교환해 이 생산수단을 추가 불변자본으로 전환한다. 따라서 그들의 불변자본은 $1,500c$에서 $1,600c$로 증가한다. 그것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추가 노동력――$50v$――이 필요한데, 그것 역시 2부문 자본가들의 잉여가치로부터 가져온 것이다.

 

최초 자본에다 I부문과 II부문으로부터 가져온 추가 자본을 보탬으로써 우리는 다음의 생산물 분배 공식을 얻게 된다.

 

$\text{I } 4,400c+1,100v+(500s)=6,000$

$\text{II } 1,600c+800v+(600s)=3,000$

 

괄호 안에 묶인 잉여가치는 자본가들의 소비 자금, 즉 축적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자본가들의 개인적 욕구를 위해 들어가는 잉여가치의 일부를 나타낸다.

만약 생산이 예전 규모대로 진행된다면 연말에 이르러서는

 

$\text{I } 4,400c+1,100v+1,100s=6,600$

$\text{II } 1,600c+800v+800s=3,200$

(자본=7,900 생산물=9,800)

 

이 될 것이다.

$\text{I }(1,100v+550s)$$\text{II } 1,650c$와 교환된다. 추가된 $50c$II $800s$로부터 얻어지고, $c$50만큼 증가함으로써 $v$25만큼 증가하게 된다.

더 나아가 $\text{I } 550s$는 예전처럼 축적된다.

 

$$\begin{aligned}\text{I } 550s &= 440c+110v

\\&\blacktriangledown \\\text{II } 165s &= 110c+55v\end{aligned}$$

 

만약 초기 자본에다 추가 자본을 더한다면($14,400c$에다 $440c$, $\text{I } 1,100v$에다 $110v$, $\text{II } 1,600c$에다 $50c$$110c$, $\text{II } 800v$에다 $25v$$55v$), 우리는

 

$\text{I } 4,840c+1,210v+(550s)=6,600$

$\text{II } 1,760c+880v+(560s)=3,200$

 

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생산을 더 진전시키면 우리는

 

$\text{I } 4,840c+1,210v+1,210s=7,260$

$\text{II } 1,760c+880v+880s=3,520$

(자본=8,690 생산물=10,780)

 

을 얻는다.

본질적으로 사회적 총자본의 재생산에 대한 마르크스의 연구 결과는 이상과 같다. 이런 연구들은(반드시 의구심을 품어봐야 한다) 저자의 글에서 아주 간결한 형태로 제시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검토 대상인 질문과는 아무런 직접적 관계가 없기 때문에, 예를 들어 화폐의 유통이나 서서히 닳아 없어지는 고정 자본의 대체 같은 마르크스의 구체적인 분석도 생략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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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시장 문제에 관하여


I

 

날이 갈수록 인민 대중들이 더더욱 가난해지고 있는 러시아에서, 자본주의가 싹을 틔우고 완전한 발전에 도달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가 발전하려면 광범위한 국내 시장이 있어야 하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농민층의 붕괴는 이러한 시장을 약화시키고 모조리 문을 닫게끔 위협하는 동시에 자본주의 질서의 구성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자본주의가 직접 생산자의 자연경제를 상품경제로 전환시킴으로써 스스로 시장을 창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궁핍한 러시아 농민들의 자연경제 가운데 남아 있는 보잘것없는 자투리가 이 나라에서 서구처럼 강력한 자본주의 생산 발전의 토대를 이룰 거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대중들이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이 나라 자본주의는 무력하고, 토대가 형성되어 있지 못하며, 나라 전체의 생산을 아우르고 사회적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데 있어 무능력하다는 게 확실해 보이지 않는가?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들에 반대하는 국내의 여러 문헌에서도 끊임없이 이런 질문들이 제기되고 있다. 시장의 부재는,

 

러시아에는 마르크스 이론을 접목시킬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주로 제기하는 논점 가운데 하나다. 이제 곧 논의하게 될 시장 문제라는 문건의 목적도 바로 마르크스 이론의 접목 가능성을 반박하기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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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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