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마르크스가 행한 이런 연구들로부터 문건의 저자는 어떤 결론을 끌어오고 있을까? 애석하게도 그는 자신의 결론을 아주 정확하고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지는 않아, 서로 완전히 일치되지는 않은 특정 진술로부터 우리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부문, 즉 생산수단으로서의 생산수단의 생산에서 어떻게 축적이 이뤄지는지를 살펴보았다. ······ 이런 축적은 소비품 생산의 발달과 누가 소비하든 상관 없이 개인적 소비의 발달로부터 독립적으로 발생한다.”(15/3)

 

물론 생산의 확대가 새로운 가변자본을 요구하고 그 결과 소비품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축적이 소비품 생산으로부터 독립적으로이뤄진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분명 저자는 그런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c——Ⅰ부문에서의 불변자본——의 재생산이 부문과의 교환 없이 발생한다는, 예를 들어 석탄을 생산할 목적으로 매년 특정한 양의 석탄이 사회에서 생산된다는 공식의 구체적인 특징을 단지 강조하고 싶었던 듯하다. 이러한 생산(석탄을 생산할 목적으로 석탄을 생산하는 것)이 뒤이어 일어나는 일련의 교환을 통해 소비품의 생산과 연결된다는 사실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지 않다면 석탄 소유주는 노동자든 그 누구도 존재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다른 대목에서 저자의 목소리는 훨씬 더 힘없이 느껴진다. 그는 자본 축적의 주된 움직임은 어떠한 직접 생산자나 인구 계층의 개인적 소비와도 독립적으로 떨어져 발생하고 있고 또 발생해왔다(아주 초기를 제외하고)” (8)고 말한다. 여기서는 자본 주의의 역사적 발전 과정에서 생산수단의 생산이 소비품의 생산보다 우위를 점해왔다는 점만 언급되고 있다. 이런 언급은 다른 단락에서도 되풀이된다. “한편 자본주의 사회의 전형적인 특징은 축적을 위한 축적, 개인적 소비가 아닌 생산적 소비라는 점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정확히 생산수단으로서의 생산 수단의 생산이라는 점이 전형적인 부분이다.” (21/2) 만약 이런 언급을 통해 저자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부분이, 자본주의 사회는 기계의 발달과 그를 위해 요구되는 품목들(석탄, 철 등)에 의해 그 전의 다른 경제 체계와 정확히 구별된다는데 있다면 그의 주장은 아주 옳았다. 기술 수준에서 자본주의 사회는 다른 어떤 사회보다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해 있고, 기술적 진보는 기계의 역할이 인간 노동을 더욱더 뒷전으로 밀어내고 있다는 사실에서 확실히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저자의 불명확한 주장을 비판하기보다는 마르크스예게 곧바로 시선을 돌려 그의 이론으로부터 부문이 부문 보다 우위에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 가능한지, 그리 고 그 우위에 있음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살펴 보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앞서 인용한 마르크스의 공식으로부터 부문이 부문보다 우위에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는 없다. 두 부문 모두 평행선상에서 발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공식은 기술적 진 보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 마르크스가 자본1권에서 증명했 듯이 기술적 진보는 불변자본에 비해 가변자본의 비율이 점진적으로 줄어드는 것으로 표현되는 반면, 그 공식에서는 변하 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만약 공식에서 이런 변화를 반영했다면, 소비품보다 생산 수단에서 상대적으로 보다 더 급격한 증가가 이뤄질 것임은 말 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확성을 위해서나 그런 전제로부터 잘못된 결론을 도출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 도 그걸 계산해볼 가치가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다음의 공식에서 축적률은 불변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즉 잉여가치의 절반이 축적되고 절반이 개인적으로 소비된다는 가정이다.

 

독자 여러분은 다음의 공식을 건너뛰어 바로 다음 페이지 의 결론으로 넘어가도 무방하다. 글자 a는 생산의 확대를 위해 사용된 추가 자본, 즉 축적된 잉여가치의 일부를 의미한다.

 

1년차 14,000c+1,000v+1,000s=6,000 v: (c+v)=20.0%

 

II 1,500c+750v+750s=3,000 " 33.3%

 

I (1,000v+500s)=II 1,500c

 

a. 1500s=450c+50v " 1/10

 

a. II 60s=50c+10v " 1/6

 

14,450c+1,050v+(500s)=6,000

 

II 1,550c+760v+(690s)=3,000

 

2년차 14,450c+1,050v+1,050s=6,550 " 19.2%

 

II 1,550c+760v+760s=3,070 " 32.9%

 

I (1,050v+525s)=II 1,575c

 

II (1,550v+25s)

 

a. II 28s=25c+3v " ab. 1/9

 

a. 1525s=500c+25v " ab. 1/21

 

a. II 28s=25c+3v " ab. 1/9

 

14,950c+1,075v+(525s)=6,550

 

II 1,602c+766v+(702s)=3,070

 

3년차 14,950c+1,075v+1,075s=7,100 " 17.8%

 

II 1,602c+766v+766s=3,134 " 32.3%

 

I (1,075v+537 1/2s)=II 1,612 1/2c

 

II (1,602c+10 1/2s)

 

a. II 11 1/2s=10 1/2c+1v " ab. 1/12

 

a. 1537 1/2s=517 1/2c+20v " ab. 1/26

 

a. 22s=20c+2v " 1/11

 

15,467 1/2c+1,095v+(527 1/2s)=7,100

 

1,634 1/2c+769v+(730 1/2s)=3,134

 

4년차 15,467 1/2c+1,095v+1,095s=7,657 1/2 " 16.7%

 

1,634 1/2c+769v+769s=3,172 1/2 " 32.0%

 

기타 등등!

 

이제 사회적 생산물의 다양한 부분들의 성장에 관하여 이 공식으로부터 도출해낸 결론들을 비교해보자.

 

| | 생산수단으로서의 생산수단 | 소비수단으로서의 생산수단 | 소비수단 | 사회적 총생산물 |

|---|---|---|---|---|---|

| | % | % | % | % | % |

| 1년차 | 4,000 | 100 | 2,000 | 100 | 3,000 | 100 | 9,000 | 100 |

| 2년차 | 4,450 | 111.25 | 2,100 | 105 | 3,070 | 102 | 9,620 | 107 |

| 3년차 | 4,950 | 123.75 | 2,150 | 107.5 | 3,134 | 104 | 10,234 | 114 |

| 4년차 | 5,467 | 136.7 | 2,190 | 109.5 | 3,172 | 106 | 10,828 | 120 |

 

따라서 생산수단으로서의 생산수단의 생산이 가장 급격하게 증가하고, 그 다음에 소비수단으로서의 생산수단의 생산이 그 뒤를 따르며, 소비수단의 생산이 가장 느린 증가율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자본2권에서 마르크스가 행한 연구를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불변자본은 가변자본보다 더 빨리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법칙에 근거해서도 그런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생산수단이 더 빨리 증가한다는 명제는 이 법칙을 사회적 생산 전반에 적용할 때 그렇게 바꾸어 말한 것일 따름이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야 될지도 모르겠다. c+v 대비 v의 비율이 부단히 감소한다는 걸 받아들인 다면, v가 영(0)으로까지 감소하지 않을 이유, 즉 같은 수의 노동자들로도 더 많은 양의 생산수단을 감당하기에 충분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 경우 축적된 잉여가치의 일부는 I부문의 불변자본에 곧장 추가될 것이고, 사회적 생산은

생산수단으로서의 생산수단 때문에 전적으로 증가할 것이며,

II부문은 완전한 불황이 지배하게 될 것이다. 3/4

 

물론 그런 결론은 일어날 성실지 않은 가정에 기초하고 있고 따라서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공식들을 오용하는 게 될 것이다. c 대비 v의 비율을 감소시키는 기술적 진보가 I부문에서만 표출되고 II부문을 완전한 불황 상태로 남겨놓을 거라고 상상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그것이 모든 자본가에게 파산을 각오하고 사업을 확대할 것을 요구하면서도 정작 II부문에서는 어떠한 축적도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요구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적인 법칙들과 일치할까?

 

따라서 앞에서 개요를 서술한 마르크스의 연구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유일하게 올바른 결론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수단의 생산은 소비수단의 생산보다 더 빠르게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이런 결론은 자본주의 생산이 이전 시대의 생산보다 이루 해야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기술적 수준에 도달한다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명제로부터 직접적으로 도출된다.이 점에 대해 특히 마르크스는 오직 자신의 글 한 단락에서만 아주 분명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는데, 그 단락은 주어진 공식이 옳았음을 전적으로 확인해주고 있다.

 

이 경우 자본주의 사회를 미개사회와 구분해주는 것은 시니어(Senior)가 생각하는 것처럼 간혹 자신의 노동력을 쏟아낸 고도 수익, 즉 소비품으로 용해될 수 있는(교환할 수 있는) 어떠한 생산물도 손에 쥐지 못하는 식과 같은 미개사회의 특권과 특징 때문이 아니다. 아니, 그 구별되는 지점은 다음과 같은 측면에 존재한다.”

 

알파) 자본주의 사회는 연간 가용 노동력 중에서 생산수단의(그러므로 불변자본의) 생산에 더 많은(주의) 노동력을 고용하는데, 그런 노동력은 임금이나 잉여가치의 형태를 통해 수익으로 용해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본으로서만 기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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