Ⅳ
이제 질문은 앞서 자세히 설명한 이론과 “악명 높은 시장 문제”가 무슨 관계가 있느냐 하는 데 있다. 그 이론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보편적이고 배타적인 지배”라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는 반면, “시장 문제”는 러시아에서 자본주의의 완전한 발전이 “가능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물론 그 이론이 자본주의 발전에 관한 통상적 개념을 수정하게 해준 건 사실이지만, 자본주의가 전체적으로 어떻게 발전하는지에 대한 해명은 러시아에서의 자본주의 발전의 “가능성”(과 필요성)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게 명백하다.
하지만 문건의 저자는 자본주의 노선을 따라 구조화된 사회적 총생산의 과정에 관한 마르크스의 이론을 자세히 설명하는 데 스스로를 국한시키지 않는다. 그는 “자본의 축적에서 나타나는 본질적으로 다른 두 가지 특징들, 즉 (1) 자연경제를 축출하고 그 희생을 바탕으로 팽창하면서 이미 존재하는 노동 분야를 꽉 들어줘고 있는 자본주의 생산 발전의 폭과, (2)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보편적이고 배타적인 지배하에서 자연경제와는 독립적으로 떨어져 확대되는 자본주의 생산 발전의 깊이를 구별할 필요성을 지적한다. 그러나 당분간은 그런 구별에 대한 비판을 접어두고, 저자가 말하는 자본주의 발전의 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보는 쪽으로 곧장 나아가보자. 자본주의 경제가 자연경제를 대체하는 그런 과정에 대한 해명은 러시아 자본주의가 "나라 전체를 어떻게 들어줘게" 될 것인지를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본주의 발전의 폭을 다음과 같은 도형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A-자본가들, W-직접 생산자들
a, a1, a11-자본주의 기업들.
화살표들은 교환되는 상품의 이동을 보여준다.
m은 잉여가치(a)를 나타내고, u m a는 '기타 등등'을 의미한다.
c, v, m-상품가치의 구성 요소들
Ⅰ, Ⅱ-자연적인 형태의 상품들:Ⅰ-생산수단; Ⅱ-소비수단
저자는 "A와 W 영역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는, A에서 생산 자들은 자신들의 잉여가치를 생산적으로 소비하는 자본가들 인 반면 W에서는 자신들의 잉여가치를(여기서 생산물의 가치는 생산수단과 필수적인 생계수단의 가치를 능가한다고 상정한다) 비생산 적으로 소비하는 직접 생산자들이라는 데 있다"고 말한다.
"도형에서 화살표를 따라가보면, A에서 자본주의적 생산 이 어떻게 W에서의 소비를 희생시켜 점차 그걸 흡수하면서 발전하는지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기업 a의 제 품은 소비품의 형태로 "직접 생산자들에게" 흘러들어가고, "직 접 생산자들"은 그 대가로 불변자본(c)을 생산수단의 형태로, 가변자본(v)을 소비수단의 형태로, 잉여가치(s)를 추가 생산자 본 요소(c, +v,)의 형태로 되돌려준다. 그 자본은 새로운 자본주 의 기업 a,의 토대로 기능하게 되며, 그 기업은 정확히 같은 방 식을 통해 자신의 제품을 소비품의 형태로 "직접 생산자들"에 게 보내는 식이다. "자본주의 발전의 폭에 관한 위의 도형으로 부터 전체 생산이 '해외' 시장에서의 소비와 대중들에 의한 소 비에(그리고 일반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 대중이 어디에 있느냐는, 자본가 결에 있는 바다 건너 어딘가에 있든, 전혀 중요치 않다) 아주 밀접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분명 A에서의 생산 확대, 즉 이러한 방향으로의 자본주의 발전은 W에서 모든 직접 생산자들이 상품 생산자로 변신하는 순간 멈추게 될 것이다. 앞서 봤듯이 모든 새로운(또는 예전 기업에서 확장된) 기업들은 W에 있는 새로운 소비자 집단에게 제품을 공급하는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론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현재의 자본주의 축적 개념, 즉 확장된 규모의 자본주의 재생산 개념은 이런 관점에만 국한되며, 깊이에 있어서 자본주의 발전은 다른 나라의 직접 생산자들과 독립된, 즉 이른바 해외 시장으로부터 독립된 상태로 이뤄질 거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런 전체적인 설명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동의할 수 있는 건 자본주의 발전의 폭이라는 개념과 그것을 실증해주는 도형이 그 주제에 관한 인민주의자의 현재 견해들과 완전히 일치한다는 점뿐이다.
실제로 제시된 도형보다 더 확실하고 뚜렷하게 오늘날 그들이 지닌 견해들의 모순과 지루함을 묘사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현재의" "개념"은 언제나 이 나라 자본주의를 "인민의 시스템"과 별도로 떨어져 존재하는 그 무언가로 간주하고 그것과는 거리를 두었으며, 이는 자본가 영역과 인민의 영역이라는 두 "영역들" 사이에는 어떠한 연관성도 찾아볼 수 없는 위 도형의 묘사와 정확히 일치한다. A에서 보낸 상품들은 왜 W에서 시장을 발견하는가? W의 자연경제를 상품경제로 전환시키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현재의 견해는 교환을 우연적인 것으로 여길 뿐 경제의 특정한 시스템으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에 이런 물음들에 전혀 답을 내놓지 못해왔다.
더욱이 현재의 견해는 러시아의 자본주의가 어디에서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해 도형에서 설명한 것 이상의 해명을 전혀 내놓지 않았다. 마치 자본가들이 바로 이들 "직접 생산자들" 사이에서가 아니라 외부의 그 어딘가로부터 생겨난 것처럼 그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a, a1 등의 기업들을 위해 필요한 "자유로운 노동자들"을 자본가들이 어디서 구하는지 도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고 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 들 노동자들이 정확히 "직접 생산자들"로부터 확보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도형은 상품 생산이 W "영역"을 포괄할 때 다수의 자유로운 노동자들을 창출해낸다는 사실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 도형은——현재의 견해와 정확히 일치하는——이나 나라 자본주의 체제의 현상들에 대해 전혀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으며, 따라서 아무 쓸모가 없다. 자본주의가 어떻게 자연경제를 희생시켜 발전하고 나라 전체를 포괄하게 됐는지를 해명하려면 목적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는데, 저자 스스로가 알다시피 "만약 우리가 검토 중인 견해를 시중일관 고수한다면,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발전이 보편화되기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지켜본 이들은 저자 자신이 "태동기에 있는 자본주의가 실제로(?) 이렇게 아주 수월한(원문 그대로임!) 방식으로 (여기에 기존의 노동 분야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아주 수월하다) 발전했고, 세상에 자연경제의 잔류물들이 존재하고 인구가 증가하는 오늘날에조차도 같은 방향으로 일정 부분 발전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비록 부분적이긴 하나 그런 견해를 고수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본주의가 "아주 수월한" 방식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과정을 이해하는 방식이 "아주 수월"했던 것뿐이었다. 그게 얼마나 "수월"했던지, 차라리 이해가 거의 전무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정도다. 각양각색의 러시아 인민주의자들은 바로 이 순간까지도 이렇게 "아주 수월한" 속임수들로 상황을 모면하고 있다. 그들은 이 나라에서 자본주의가 어떻게 생겨났고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해명하는 건 꿈조차 꾸지 못한 채, 우리 체제의 "아픈 구석"인 자본주의를 "건강한 부분"인 직접 생산자들, 즉 "인민들"과 비교하는 것에 스스로를 국한시키고 있다. 자본주의를 원편에 놓고 인민들을 오른편에 놓은 다음, "인간 사회"에 무엇이 "해롭고" 무엇이 "유용한지"에 대한 감상적인 문구들로 이 모든 심오한 사고를 마무리 짓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