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의 벗들의 정치 강령을 들여다보면

 

지금까지 '인민의 벗들'의 이론적 견해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한 듯하니, 이제부터는 그들의 정치 강령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그들은 무슨 수로 자기들이 '불을 끄겠다'고 나서는 걸까? 그들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제안 대신에 어떤 활로를 제시하고 있을까?

 

유자코프 선생은 농업부라는 제목의 글(루스코에 보가츠트보, 10)에서 "농민은행의 개편, 식민화 부서의 설립, 인민 농업을 위한 국유지 토지 임대차의 규제 …… 토지 임대의 연구와 규제 등이 인민 농업을 회복시키고 막 생겨나는 금권정치의 경제적 폭력으로부터 인민 농업을 보호하기 위한 계획"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경제 발전의 문제점들이란 글에서는 "인민 농업의 회복"을 위한 이러한 계획들이 뒤이은 "최초의, 그러나 필수적인 조치들"에 의해 보완된다고 밝혔는데, "마을공동체에 당장 지장을 주는 모든 규제의 제거, 보호감독의 면제, 공동 경작의 채택(농업의 사회화), 땅에서 얻는 원료의 공동체 가공 개발" 같은 조치들이 그것들이다. 그리고 크리벤코 선생과 카리세프(Karyshev) 선생은 여기에다 "저금리 신용, 집단 농장 형태의 농업, 보장된 시장, 고용주들의 이윤을 없앨 가능성"(이는 나중에 따로 다루게 될 것이다), "값싼 엔진을 비롯한 기술 혁신의 창안", 마지막으로 "박물관, 창고, 대리점"을 덧붙이고 있다.

 

이와 같은 강령을 검토해보면, 이 신사양반들이 현대 사회의 입장을(즉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채로 자본주의 체제의 입장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그것을 고치고 끼워맞춰서 문제들을 해결하고 싶어하지만, 그들이 내놓은 모든 진보적인 조치들——저금리 신용, 기계 개량, 은행 등——은 부르주아를 강화하고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뿐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물론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어떠한 개혁도 쓸모가 없고, 신용, 이민, 세금 개혁, 모든 토지의 농민에게로의 이전은 어느 것 하나 눈에 띄게 바꾸지 못할 것이며, 오히려 반대로 지금처럼 과도한 '보호감독'과 봉건적 부과금의 존속, 농민의 토지 예속 등에 의해 지체된 자본주의 경제를 강화하고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갈 거라던 니콜라이-온의 말은——이는 그의 가장 귀중한 이론들 중 하나로, '인민의 벗들'은 이에 저항하지 않을 수 없었다——지극히 옳았다. 그는 바실치코프 왕자(Prince Vasilchikov, 사상적으로 의심의 여지 없는 '인민의 벗')처럼 신용의 확대, 발전을 소망하는 경제학자들은 부르주아 같은 "자유주의적인 것"을 바라면서 "자본주의 관계의 발전과 강화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우리 ('농민층 내의') 생산 관계의 적대적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러한 적대를 공개적인 장으로 끌어내려 애쓰거나 적대의 결과로 예속화된 사람들 편에 합류해 그들이 투쟁에 나서는 것을 도우려 하기보다는 모든 이를 만족시킬 만한 조치들로 투쟁을 멈추게 함으로써 화해와 통합을 이루기를 꿈꾼다. 이런 모든 조치들의 결과물은 당연히 처음부터 결론이 정해져 있을 수밖에 없다. 모든 종류의 신용⁸⁷, 개량, 은행 그리고 유사한 '진보적' 조치들이 오로지 적절히 운영되고 틀이 잡힌 농장을 소유하고 있으며 확실한 '저축'을 보유한 사람들, 즉 극소수 소부르주아 계급을 대표하는 사람들에게만 활용 가능할 것이라는 사실을 납득하려면 앞서 제시된 분화의 사례들을 떠올리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농민은행과 유사 기관들을 아무리 개편한다 할지라도, 그 동안 빼앗겨왔고 또 계속 빼앗기고 있는 인민 대중 입장에서는 적절한 농업 수단은 물론이고 생계를 이을 수단조차 부족하다는 근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사실을 조금도 바꿔놓지 못할 것이다.

 

'집단 농장''공동 경작'도 마찬가지다. 유자코프 선생은 공동 경작을 가리켜 "농업의 사회화"라고 불렀다. 물론 이는 아주 웃기는 이야기로, 사회화는 단일 마을의 경계보다 더 넓은 범위에서 생산이 조직되는 걸 요구하고, 생산수단을 독점해 현재 러시아의 사회 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착취자들'의 재산 몰수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시시한 속물적인 훈계가 아닌 투쟁과 투쟁, 또 투쟁을 요구하는 일이다.

 

그들의 그런 조치들이 온건하고 리버럴한 반쪽짜리 조치들로 변모해 인정 많은 부르주아의 판대함에 근근이 연명해가는 동안, 피착취자들로 하여금 투쟁보다는 몇몇 개인들 차원에서 가능한 개량적 조치를 통해 이득을 얻으려는 쪽으로 방향을 틀게 함으로써 훨씬 더 많은 해악을 끼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이다. 그들 신사양반들이 러시아인의 삶에서의 적대를 숨기기 위해 얼마나 터무니없는 시도를 하는지는——물론 현재의 투쟁을 끝내려는 최선의 의도를 가지고 그리는 걸 텐데, 지옥으로 가는 길을 닦는 거나 다름 없다——크리벤코 선생의 다음 주장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인텔리겐처가 공장주들의 기업을 지휘하자, 그들은 대중 산업을 지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의 철학 전체는, 투쟁과 착취가 존재하지만 만약…… 만약 착취자들이 없다면 그것들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짖어대는 것과 마찬가지다. 과연 필자인 크리벤코 선생은 이런 쓸데없는 문구로 무슨 뜻을 전달하려던 것이었을까? 해를 거듭할수록 러시아의 대학과 기타 교육기관들은 오로지 자신들을 먹여 살려줄 누군가를 찾는 데만 관심을 기울이는 '인텔리겐처'라는 상표를 찍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을까? 오늘날 러시아에서 이러한 '인텔리겐처'를 지탱할 수단을 소유한 건 오직 소수 부르주아뿐이란 현실을 부인할 수 있을까? '인민의 벗들'이 부르주아 계급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봉사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까닭에 러시아의 부르주아 지식인계급이 사라지게 될 거라 기대할 수 있을까? 그래, 만약 그들이 부르주아 지식인계급이 아니라면 '그렇지도 모른다.' 그들은 부르주아 지식인계급이 아닐지도 모른다.' '만약' 러시아에 부르주아 계급도, 자본주의도 없다면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만약''그리고'라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일생을 보내는 데 만족하고 있다. 더욱이 이들 신사양반들은 자본주의에 결정적인 중요성을 보태는 걸 거부할 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겨 있는 잘못된 무언가를 들여다보기를 철저히 거부하고 있다. 만약 일정한 '결함들'이 제거된다면, 그들로서는 자본주의하에서 살아가는 게 어쩌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크리벤코 선생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또 어떤가.

 

"자본주의 생산과 산업의 자본주의화는 공장제 수공업이 인민들로부터 오로지 결별만 하는 출구가 결코 아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또한 인민들의 삶으로 들어와 농업과 원료 산업으로 더 가깝게 접근할 수도 있다. 이는 다양한 방식으로 성사될 수 있고, 그런 목적에 기여할 수 있다."(161)

 

크리벤코 선생은 미하일롭스키 선생과 비교해봤을 때, 예를 들어 솔직함과 단도직입적인 면 같은 수많은 장점들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미하일롭스키 선생이 주제를 제대로 건드리지도 않고 꼼지락대기만 하다가 부드럽고 미려한 문장들로 지면을 채운다면, 사업가 스타일의 실용적 인물인 크리벤코 선생은 직설적으로 비판을 하고, 양심의 가책도 없이 자신의 터무니없는 견해 일체를 거리낌 없이 독자 앞에 펼쳐놓는다. "자본주의는 인민의 삶으로 들어올 수 있다." 세상에나! 말인즉슨, 노동인민이 생산수단과 결별하지 않고서도 자본주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건 확실히 마음에 드는 상황이다. 적어도 지금 '인민의 벗들'이 무엇을 원하는지가 아주 명확해졌으니 말이다. 그들은 자본주의 없는 상품경제, 강탈도 착취도 없이 인간적인 지주와 자유주의적인 관료들의 팔 아래서 평화롭게 무위도식하는 소부르주아 계급만이 있는 자본주의를 원한다. 러시아에 혜택을 줄 의도를 지닌 부서 관료들의 진지한 태도에 힘입은 그들은 늑대가 욕심을 감추고 양이 가죽을 감추듯 자신들의 속셈을 어떻게 감출지 궁리를 시작한다. 그래서 그 속셈의 성격을 조금이나마 알기 위해서는 동일한 필자의 글('우리의 문화 용병들', 루스코에 보가츠트보, 12)로 눈을 돌려야 한다. 그 글에서 크리벤코 선생은 "집단농장과 국유 형태의 산업은 현 상황에서 그다지 품어볼 만한 상상이라고는 절대 볼 수 없다. 예를 들어, 다음의 구상은 가능하겠다"라고 주장하며——확실히 그에게 '실질적인 경제 문제들을 해결'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는 인상이 느껴진다——, 소액(100루블을 넘지 않는)의 지분으로 한 합자회사를 통해 돈 강 지역을 기술 개발할 계획을 가지고 루스코에 보가츠트보사무실을 방문한 어느 엔지니어의 이야기를 꺼낸다. 필자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권유를 받게 된다. "지분은 사적인 개인들이 아니라 마을공동체 소유가 될 겁니다. 회사에 고용된 마을 주민의 일부는 통상적인 임금을 받게 되고, 마을공동체는 토지와의 연결고리를 유지시켜준다는 보장을 해주는 거죠."

 

정말 경영의 귀재 아닌가? 인민의 삶에 자본주의가 존경스러우리만치 단순하고 쉽게 도입되고, 그 파멸적인 특성들이 모두 제거되는 셈이니 말이다! 단지 요구되는 거라곤 시골 부자들이 공동체를 통해 지분⁸⁸을 사들이고 기업으로부터 배당금을 받는 것이 전부며, 그 속에서 공동체 "주민의 일부"는 일자리를 얻고 토지와의 유대관계를 보장받는다. 그런 유대관계는 토지로부터 생계를 보장받기에는 불충분하지만(아니면 누가 '통상적인 임금'을 위해 일하러 가겠는가?), 주민들을 지역에 묶어둔 채 지역 자본주의 기업의 노예로 만들고 그들이 주인도 바꾸지 못하게 하기에는 충분하다. 여기서 주인이란 곧 자본가를 말하는 것으로,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사람을 달리 부를 방도가 없기 때문에 아주 타당한 표현이라 하겠다.

 

독자들은 일고의 관심도 기울일 가치가 없어 보이는 이런 헛소리에 이미 이토록 많은 지면을 할애한 나에게 짜증을 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헛소리일지라도 그것을 연구할 가치와 필요는 있다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러시아에 실제로 존재하는 사회적·경제적 관계들을 반영하고 있고, 그 결과 이 나라에 아주 널리 퍼져 있는 사회 통념들 가운데 하나이기에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앞으로 오랫동안 생각해봐야 할 문제기 때문이다. 핵심은 러시아에서 봉건적 생산양식으로부터 자본주의 생산양식으로의 전환이 토지를 통해 생계를 꾸려나가지 못하고 지주에게 소작료를 지불할 수 없게 된(바로 이 순간까지도 농민은 소작료를 지불하고 있다) 농민으로 하여금 예전의 좋았던 시절에는 독립적인 형태를 띠었거나(예를 들어 수레꾼 같은) 독립적이지는 않더라도 그런 유형의 고용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덕분에 상대적으로 좋은 대가를 받을 수 있는 노동이라 여겨졌던 '외부 고용'에 어쩔 수 없이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초래했고, 또 계속 초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 농민들은 오늘날과 비교해볼 때 일정 정도 안녕을 보장받았었다. 심만 땅에 달하는 귀족경찰들과 러시아의 토지를 끌어모으던 초창기 부르주아들의 보호 아래서 평온하고도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농노로서의 안녕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인민의 벗들'은 그러한 시스템의 그늘을 간단히 무시한 채 이상화하고, 환상을 품는다. 여기서 내가 '환상'이라고 표현한 건, 그 시스템이 오래전에 작동을 멈춰버렸을 뿐만 아니라 농민들의 대규모 재산 강탈을 불러온, 그리고 과거의 '고용'을 족쇄에서 풀려난 '일손들'에 대한 착취로 변화시킨 자본주의에 의해 이미 오래전에 파괴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소부르주아 기사들은 농민과 토지와의 '연결고리'를 유지하길 원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연결고리를 단독으로 보장해주는 농노제를 원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농노제는 그 연결고리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상품생산과 자본주의에 의해서 이미 붕괴되었다. 그들은 농민을 토지로부터 멀리 내쫓지 않는 외부 고용, ——노동이 시장을 위해 이루어지는 반면——경쟁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자본을 창출하지 않으며 인민 대중을 자본의 노예로 만들지 않는 외부 고용을 바란다. 사회학의 주관적 방법론에나 들어맞을 법한 이런 주장에 대해, 그들은 여기저기서 좋은 것을 '취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물론 실제로는 이러한 유치한 바람은 오직 현실을 무시하는 반동적인 환상, 새로운 시스템의 정말로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측면들을 이해하고 활용하지 못하는 무능력, 반은 농노, 반은 자유로운 노동이라는 과거의 훌륭한 시스템, 즉 착취와 억압의 공포로 가득 차고 벗어날 가능성이 없는 시스템을 영속화하는 조치들에 대한 공감으로 이어질 뿐이다.

 

반동들 사이에서 '인민의 벗들'을 구분해주는 이런 설명이 얼마나 정확한지를 증명하기 위해, 두 가지 사례들을 인용해보겠다.

 

모스크바 젬스트보 통계에서 우리는 (포돌스크 군에 사는) K 여사라는 사람의 농장에 대한 묘사를 읽을 수 있는데,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것은(묘사 자체가 아니라 농장이) 모스크바의 통계학자들과 V. V. 선생 모두에게 존경을 받았다(V. V. 선생이 어느 잡지 기고문에서 그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V. 오를로프(Orlov) 선생은 이 유명한 K 여사의 농장을 '농업이 건강한 상태에 있고, 개인 토지소유주들의 농장들도 더 잘 운영되고 있다'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논지의 '확실한 실제 확인 사례'로 여겼다. 그 여인의 농장에 대한 오를로프의 주장에 비춰볼 때, 그녀는 겨울에 밀가루를 꿔주는 대가로 자신의 땅을 경작하는 지역 농민들의 노동으로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듯했다. 여인은 농민들에게 특히나 친절하게 굴며 도움을 주었고, 그래서 농민들은 읍에서 가장 잘사는 축에 속할 뿐 아니라 "거의 새로운 추수철이 돌아올 때까지 버틸 수(예전에는 성 니콜라스 날까지도 버티지 못했다)" 있을 만큼 충분한 곡식을 얻을 수 있었다.

 

의문은 바로 이 대목에서 고개를 든다. N. 카블루코프(Kablukov)(5, 175)와 오를로프 선생(2, 55~9쪽 등)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런 방식''농민과 지주 간의 적대적 이해관계'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걸까? 당연히 아니다. 왜냐하면 K 여사는 농민들의 노동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착취는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K 여사는 착취받는 사람들을 향한 자신의 친절함 뒤에 감춰진 착취를 보지 못한 데 대해 용서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경제학자이자 통계학자인 오를로프는 그렇지 않다. 그는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보이는 친절함에 황홀해하며 공장 소유주가 자신의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여 그들에게 잡화점과 주거 등을 제공해주는 사례들을 열광적으로 들려주는 서구의 박애주의자들과 정확히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적대적 이해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런 '사실들'의 존재로부터 결론을 끌어오는 것은 나무를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이 첫 번째 핵심이다.

 

두 번째 핵심은 우리가 오를로프 선생의 설명을 통해 K 여사의 농민들이 '뛰어난 수확고 덕분에(그 여주인은 좋은 씨앗을 제공했다) 가축을 확보했고 '유복한' 농장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점이다. 이들 '유복한 농민들'"거의"가 아니라 완전히 번창하게 되었고, '다수'가 아닌 그들 모두가 새로운 추수가 "거의" 되돌아올 때까지가 아니라 정확히 그 시기까지 충분한 곡식을 보유하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이제 이들 농민들이 충분한 토지와 '목장 및 목초지'를 소유하고 있다고도 가정해보자. 물론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농민들은 K 여사에게 토지를 임차한 뒤 노동으로 그 대가를 지급한다(이것이 번창 아닌가!). 그럴 경우——즉 농민 농업이 정말로 번영을 구가하고 있을 경우——오를로프 선생은 정말로 이 농민들이 스스로 동의해서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K 여사의 사유지에서 하는 모든 일들을 철저히, 정확히, 그리고 신속히 수행'할 거라고 믿는 걸까? 또는 어쩌면 그런 어머니 같은 보살핌으로 이들 농민들에게 쿠폰을 뽑아내는 이 친절한 여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결국 목초지와 목장을 처분할 수밖에 없는 농민들의 절망적인 현재 상황보다 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고 믿는 걸까?

 

분명 '인민의 벗들'의 생각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진정한 소부르주아 관념론자들로서 그들은 착취를 없애기보다는 완화시키기를 바라고, 결속보다는 회유를 원한다. 편협한 사회민주주의자들을 맹렬히 비판하는 관점에서부터 시작된 그들의 드넓은 이상은 지주와 자본가들이 공정하게 대해주기만 한다면 '번영을 구가하는' 농민들이 그들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할 거라는 생각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않는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유자코프 선생은 러시아 인민의 토지소유 할당량(루스코에 보가츠트보, 1885, 9)이라는 자신의 유명한 글에서 "인민들의" 토지소유, 즉 우리 자유주의자들의 용어로는 자본주의와 착취를 배제하는 토지소유의 규모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상세히 설명했다. , 크리벤코 선생의 탁월한 설명이 있은 뒤, 우리는 그 역시도 "자본주의를 인민의 삶에 도입하는"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지주의 신분으로서 그는 분여지를 통해 "식량과 지불금"을 충당하는⁸⁹ 반면 나머지는 "일자리"를 통해 얻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달리 말해, 그는 농민이 토지와의 연관성을 유지함으로써 한편으로는 '분여지'에서 지주에 의해, 다른 한편으로는 '일자리'에서 자본가에 의해 이중의 착취에 놓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단지 운명이라고 체념해버린 것이다. 이중 착취에 시달리는 소생산자들의 이러한 상태와 그 생활조건은 더구나 필연적으로 주눅 들고 짓밟힌 심리를 낳아 피억압계급의 승리는 고사하고 투쟁에 대한 모든 희망을 앗아가버렸다. 이와 같은 반()중세적 상황은 '인민의 벗들'의 전망과 이상의 극치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러시아 개혁 이후 역사 전체를 통틀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발전한 자본주의가 옛 러시아를 떠받치던 기둥——가부장적인 반()농노 상태의 농민층——을 뿌리째 뽑아 그들을 중세와 반()봉건적 상황에서 끌어내고 현대의 순수한 자본주의적인 환경에 가져다놓고는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오랜 고향을 포기하고 일자리를 찾아 러시아 곳곳을 헤매다 노예의 사슬을 끊고 지역의 '일자리제공자'에게로 갈 수밖에 없게 만들으로써 전체적인 계급 착취의 토대가 독사 같은 특정 인물의 약탈과는 거리가 먼 계급 착취라는 사실을 드러내자, 자본주의가 가축의 수준으로 주눅 들고 굴복한 나머지 농민 인구를 한꺼번에 점점 더 복잡한 사회적·정치적 삶의 소용돌이로 끌어들이기 시작하자, 우리 기사님들은 옛 기둥들의 몰락과 파괴에 대해 올부짖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비록 지금은 눈이 멀어 이러한 새로운 삶의 양식의 혁명적 측면을 보지 못할 뿐 아니라, 예전의 착취 체제에 전혀 묶여 있지 않으면서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는 위치에 있는 새로운 사회 세력을 자본주의가 어떻게 창출해내는지를 전혀 보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예전의 좋았던 시절에 대해 울부짖는 모습을 오늘날까지 계속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인민의 벗들'은 현 시스템에서의 어떠한 급진적 변화도 바라는 기미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그들은 현존하는 토대에서의 자유주의적인 조치들에 전적으로 만족하고 있으며, 실제로 크리벤코 선생은 그런 조치들을 고안함에 있어 거드름 피우는 토착 하급관리 같은 행정 능력들을 과시하고 있다.

 

그는 "대체로 우리 인민 산업에 관한 구체적인 연구와 급진적인 변화"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이 문제는 특별한 조사와, 산업을 인민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것들과 적용 과정에서 심각한 장애물에 부딪힐 수 있는 것들로 나눌 것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크리벤코 선생은 다양한 산업들을 자본주의화되지 않은 것과 이미 자본주의화가 발생한 것, 그리고 "대규모 산업과 생존을 놓고 경쟁할" 수 있는 것들로 나누면서 그런 분할의 사례를 우리에게 직접 제시한다.

 

또한 이 행정가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첫 번째 경우에 소생산은 자유롭게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변동으로 인해 소생산자들이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갈라지는 시장으로부터 그것이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것이 지역 시장의 팽창과 보다 더 큰 시장으로의 합병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기술 진보로부터도 그럴 수 있을까? 또는 그 기술 진보——상품 생산에서의——가 자본주의적인 필요는 없는 걸까? 마지막의 경우에 필자는 '대규모 생산 조직 역시' 요구한다. "명백히 여기서 필요한 것은 대규모 생산 조직이고, 고정자본과 유동자본, 기계 등이나 또는 이러한 조건과 균형을 맞출 다른 무언가, 즉 값싼 신용, 불필요한 중간상인들의 제거, 집단 농장 형태 농업과 고용주들의 이윤을 처분할 가능성, 시장의 확보, 값싼 엔진의 개발과 그 외 기술적 개선, 또는 다른 혜택들에 의해 보상받는다는 전제하에서의 임금의 일부 삭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논리는 말로는 드문 이상을 이야기하면서도 행동으로는 틀에 박힌 자유주의를 드러내는 '인민의 벗들'에게는 아주 특징적이다.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의 철학자는 고용주들의 이윤을 처분할 가능성과 대규모 농업의 조직화를 다름 아닌 그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아주 훌륭하다. 이것이야 말로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원하는 것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인민의 벗들'은 어떻게 그것을 달성하기를 원하는가? 고용주 없이 대규모 생산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회적 경제의 상품 구조를 철폐하고 그것을 공동체, 공산주의 구조로 대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아래서는 현재와 같이 생산이 시장에 의해 규율되는 게 아니라 생산자 자신, 노동자 조직 자체에 의해 규율되고, 생산수단은 사적 개인이 아닌 사회 전체에 의해 소유된다. 사적 전유로부터 공동체적 전유로의 변화는 명백히 우선 생산 형태의 변화를 필요로 하고, 소생산자들의 분리되어 있고 규모가 작으며 고립된 생산 과정이 단일한 사회적 생산 과정으로 합쳐지는 것을 필요로 한다. 한마디로 말해 그것은 자본주의가 창출해낸 바로 그 물질적 조건들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민의 벗들'은 스스로 자본주의를 토대로 삼을 의향이 전혀 없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행동을 제안하는가? 그들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상품경제의 철폐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분명히 그들의 드림은 이상은 이 사회적 생산 시스템의 경계를 절대 초월할 수 없다. 더구나 고용주의 이윤을 철폐하기 위해서는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윤'을 획득하는 고용주들에게서 그것을 빼앗아 오는 게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조국을 떠받치는 이러한 기둥들을 빼앗아오기 위해서는 부르주아 체제에 맞선 대중적 혁명 운동이 필요하다. 이 체제와는 전혀 유대관계가 없는 프롤레타리아 노동계급만이 가능한 운동 말이다. 그러나 '인민의 벗들'은 머릿속에 투쟁을 전혀 그리고 있지 않고, 고용주들 스스로의 관리 기관들 말고도 다른 유형의 공적인 인물들이 가능하고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예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분명 그들은 '고용주의 이윤'에 맞선 어떠한 진지한 조치들을 취할 의향을 조금도 지니고 있지 않다. 크리벤코 선생은 단지 자신의 허가 자신을 압도하는 걸 허락했을 뿐이다. 그리고서 그는 즉시 자신의 견해를 수정했다. '고용주의 이윤을 처분할 가능성'같은 그런 것이 '다른 무언가', 즉 신용과 조직된 마케팅, 기술적 개선에 의해 '균형이 맞춰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것은 아주 만족스럽게 정리된다. '이윤'을 얻을 신성한 권리를 철폐하는 대신에, 다시 말해 고용주 양반들을 아주 화나게 할 절차 대신에 자본주의에 싸움을 위한 더 나은 무기를 제공하고 우리 '인민의' 소부르주아들을 강화하고 굳건히 하며 발전시킬 뿐인 아주 온건하고 자유주의적인 조치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인민의 벗들'이 이러한 소부르주아만의 이익을 옹호한다는 의심을 전혀 남기지 않기 위해서, 크리벤코 선생은 다음과 같이 인상적인 설명을 덧붙인다. 고용주 이윤의 철폐는 '임금의 삭감을 통해 균형이 맞춰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얼핏 듣기에는 완전히 횟설수설처럼 들린다. 그러나 아니다. 그것은 소부르주아 사상을 일관되게 적용한 표현이었다. 필자는 거대자본과 소자본 사이의 투쟁 같은 사실을 관찰하며 진정한 '인민의 벗'으로서 당연히 소…… 자본가의 편에 선다. 더 나아가 그는 소자본가의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가 임금 삭감이라는 사실을 들은 바 있었다. 이는 노동일의 연장과 함께 러시아의 수많은 산업들에서 아주 정확하게 관찰되고 확인된 사실이었다. 따라서 어떠한 대가를 치르고라도 소자본가들을 구하기를 바랐던 그는 '다른 혜택들에 의해 보상받는다는 전제하에서의 임금의 일부 삭감'을 제안한다! 이제 고용주 양반들은 자신들의 '이윤'에 대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이상한 이야기가 들려오는 듯하다. 내 생각에 그들은 고용주들에 맞서 임금 삭감 투쟁을 계획하는 이런 훌륭한 행정가를 기꺼이 재무장관 자리에 앉히려 들 것이다.

 

순수한 혈통의 부르주아들이 실질적인 문제를 다뤄야 하는 바로 그 순간, 루스코에 보가츠트보의 자비롭고 자유주의적인 행정가들을 슬쩍 쳐다보는 사례는 이것 말고도 또 있다. 루스코에 보가츠트보12호에 실린 국내 문제 연대기라는, 독점 문제를 다룬 글이 그것이다.

 

그 글에서 필자는 "독점과 신디케이트 같은 것들은 발전된 산업의 이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러한 제도들이 "자본가들 사이의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러시아에서도 나타나는 것에 대해 놀라움을 표현하고 있다. "설탕이나 석유 산업은 아직까지 제대로 발전하지 못했다. 설탕과 등유의 소비는 여전히 사실상 태동기에 머무르고 있고,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볼 때 해당 상품들의 일인당 소비는 미미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산업 분야들은 발전할 여지가 여전히 아주 크고, 지금도 상당한 액수의 자본을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질적인 문제에 접근하는 순간, 필자가 국내 시장의 위축에 대해 루스코에 보가츠트보가 가장 선호하는 발상이 뭐였는지를 잊어버렸다는 사실은 특징적이다. 그는 국내 시장이 여전히 상당한 발전 전망을 갖고 있고, 위축되지 않을 거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그런 결론에 도달한 건, 소비 규모가 더 큰 서구와의 비교를 통해서였다. 이유는 뭘까? 서구의 문화수준이 더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을 서로 간의 더욱 빈번한 교류로 이끌고 각각의 지역들이 중세식으로 고립되어 있던 상황을 무너뜨린 자본주의 기술의 발전, 상품경제와 교환의 성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러한 문화의 물질적 토대는 무엇일까? 예를 들어 반()중세적 농민층이 아직 여전히 농촌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쪼개져 있지 않았던 대혁명 이전만 해도 프랑스의 문화는 우리와 비슷한 수준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만약 필자가 러시아의 생활상을 좀 더 면밀히 검토했더라면, 그는 예를 들어 자본주의가 발전한 지역에서 농민 인구가 필요로 하는 수준들이 순수한 농업 지역보다 훨씬 더 높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는 주민들의 삶 전체에 산업으로서 그 영향을 끼칠 정도까지 발전한 우리 수공업을 연구했던 이들 모두가 한결같이 거론하는 부분이다.⁹⁰

 

'인민의 벗들'은 그런 '하찮은 것들'에는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데, 왜냐하면 그들에게 있어 가능한 해명이란 '단지' 문화나 전반적으로 삶이 점점 복잡해진다든지 하는 것뿐이며, 이런 문화와 복잡성의 물질적 토대에 대해서는 연구조차 해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적어도 우리 농촌의 경제 상황을 검토라도 해봤더라면, 국내 시장을 창출하는 게 바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의 농민층의 분화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시장의 성장이 결코 부르주아 계급의 성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음이 틀림없다. 앞에서 언급한 국내 문제 연대기라는 글에서는 계속해서 "전반적으로 생산 발전 수준이 낮고 진취성과 자발성이 부족하다는 점에 비춰볼 때, 독점은 국가 경쟁력의 발전을 훨씬 더 지연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담배 독점을 거론하며, 그것이 "인민 유통 가운데 15,400만 루블을 앗아갈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다. 이는 우리 경제 시스템의 토대가 상품경제이며, 그결 선도하는 세력은 다른 모든 곳에서 그렇듯 부르주아 계급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망각한 것이다. 그리고 글의 필자는 부르주아 계급이 독점의 방해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 대신에 "국가"를 거론하고, 상품과 부르주아 유통을 이야기하는 대신에 "인민" 유통¹을 들먹인다. 부르주아라면 두 용어 사이의 커다란 차이를 결코 알아차릴 수 없다. 나는 그 차이가 정말 얼마나 극명한지를 보여주기 위해 '인민의 벗들'의 시각에서는 권위 있는 잡지인 조국연보2(1872)에 실린 금권정치와 그 토대라는 글의 일부를 인용해보고자 한다.

 

"마를로(Marlo)에 따르면, 금권정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자유주의적 정부 형태에 대한 사랑, 아니면 취득의 자유라는 원칙에 대한 사랑이다. 이런 특징을 받아들여 8년 또는 10년 전의 입장이 어땠는지를 돌이켜보면, 자유주의 측면에 있어서 우리가 엄청난 발걸음을 내디뎌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어떤 신문이나 잡지를 봐도, 그들 모두 일정 정도 민주주의 원칙을 대표하는 것으로 느껴지고, 인민의 이익을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민주주의적 견해들과 나란히, 그리고 심지어 그것들을 빙자하여(이것에 주목하라) 의도적이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누누이 금권정치적 야망들이 추구된다."

 

필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 상인들이 재무장관에게 했던 인사말을 예시로 인용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그들은 "금융에 관한 러시아의 입장을 사기업의 아주 폭넓은 확대 가능성에 바탕을 둠으로써 좋은 결실을 맺게 된 데 대해" 러시아 부르주아 계급의 가장 신망 있는 조직이 보내는 감사를 표현했다. 그리고 필자는 이렇게 결론 내린다. "금권주의 요소들과 성향들은 의심의 여지 없이 우리 사회에, 그것도 많이 존재한다.“

 

여기서 보다시피, 위대한 해방을 위한 개혁(유자코프 선생이 간파했듯이 "인민의" 생산을 위한 발전의 평화롭고 합당한 길을 열었어야 했지만, 실제로는 금권정치를 위한 발전의 길만을 열었을 뿐인)의 감동들이 여전히 생생하고 새롭던 머나먼 과거의 여러분 선조들은 스스로 금권정치, 즉 러시아 사기업의 부르주아적 성격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이러한 사실을 잊어버릴 수가 있단 말인가? 그들은 "진취성과 자발성"의 발달에 힘입은 "인민"의 유통과 "국가 경쟁력"의 발전을 이야기하면서도, 왜 그러한 발전의 적대적 성격, 진취성과 자발성의 착취적 성격은 언급하지 않는가? 물론 독점이나 그와 유사한 제도들에 대한 반대 의견을 피력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그것들은 의심할 나위 없이 노동인민의 상황을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인민은 그 모든 중세적 속박 위에 그보다 훨씬 더 강력한 현대 부르주아적인 속박에 의해 족쇄가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독점의 폐지가 전체 "인민"에게 이익이 될 거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부르주아 경제가 나라의 경제적 삶의 토대가 된 상황에서 중세적 시스템의 생존은 자본주의의 비참한 현실에다 훨씬 더 가혹한 중세적 고통을 더할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들이 완전히 폐지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에도——이는 더 빠르고 더 급진적일수록 좋다——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부르주아 사회가 물려받은 반()봉건적 속박들을 제거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의 손발을 풀어주고 부르주아 계급에 대항하는 그들의 투쟁을 촉진하기 위해서 말이다.

 

사실을 숨김 없이 말하려면 바로 이런 이야기를 꺼냈어야만 했다. 부르주아 체제에 맞서는 노동계급의 투쟁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독점과 그 밖의 모든 종류의 중세적 제약들(러시아에는 그 종류가 차고 넘친다)을 폐지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수적이라고 말이다. 딱 거기까지다. 부르주아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중세와 봉건제도에 맞서 전체 "인민들"의 이해관계가 서로 연대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품을 수 없었고, "인민들" 내의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깊고 화해할 수 없는 적대를 망각할 수 없었다.

 

그건 그렇고, 이것으로 '인민의 벗들'이 쿡 흥분할 거라 생각한다면 그건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그들은 농촌의 요구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있는데, 특히 크리벤코 선생은 "몇 년 전 몇몇 신문들이 시골에서 필요로 하는 직업들과 지식인들의 유형을 논하는 과정에서 그 목록이 아주 깊고 다양하며, 남녀 의사들과 보조의사들, 변호사, 교사, 도서관 사서, 서점주인, 농경제학자, 삼림 전문가와 농업 전문가, 아주 다양한 분야의 기술자들, 신용기관의 모집인과 관리자, 창고지기 등 거의 모든 직업군을 포괄한다는 게 증명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여기서 이야기를 멈추고, 활동이 경제 영역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지식인들"(??)과 삼림 및 농업 전문가, 기술자 등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자. 그리고 농촌에서 그들을 어떤 식으로 필요로 하는지도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농촌이란 과연 어떤 농촌을 말하는 걸까? '저축한 돈'이 있어서 크리벤코 선생이 기꺼이 '지식인'들이라 부르는 그 '전문가'들 모두에게 각자 기여한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지주들과 기업형 농민들의 농촌을 말한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때의 농촌은 실제로 오랫동안 전문가들과 신용, 창고에 목말라왔고, 이 나라 모든 경제 문헌에서도 그걸 증언해주고 있다. 그러나 훨씬 더 방대한 또 다른 농촌이 존재하고, 그런 사실을 좀 더 자주 떠올려보는 것도 '인민의 벗들'에게는 아무런 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또 다른 농촌이란, 몰락하고 갈취당하고 만신창이가 된 농민들의 농촌이다. 그들은 '저축한 돈'이라고는 전혀 없어 '지식인들'의 노동에 대가를 지불할 수 없을 뿐더러 굶어죽지 않을 만큼의 빵조차 살 수 없는 사람들이다. 당신들이 창고를 지어서 돕고자 하는 농촌은 바로 그런 곳이다!! ()도 없고 있어도 고작 한 마리뿐인 농민들이 거기에 뭘 보관한단 말인가? 웃기자? 그들은 과거 1891년에 당신들이 인간미 넘치고 자유주의적인 처방을 완수할 무렵 집이나 여권, 가게에다 일상적인 '창고'를 설치했던 시골과 도시의 부농들에게 말을 똑똑 저당 잡힌 사람들이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건 자신의 '노동력'뿐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상품을 보관할 '창고'는 아직까지 러시아의 관료들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들 '민주주의자들'의 주장이 얼마나 진부한지에 대해서는 '농민층' 내의 기술적 진보에 대한 이러한 감상적인 사고와 바로 그 '농민층'에 대한 대규모 착취에 눈을 감는 행위보다 더 두드러진 증거를 찾아보기 어렵다. 예를 들어 루스코에 보가츠트보2호에서 백치 자유주의자의 열정을 지닌 카리세프 선생은 아메리카귀리, 바라호밀, 말먹이 귀리 등의 "개량종 씨앗이 농장에서 확산되는" 것과 같은, 농민 농업에서 "완벽함과 개선"을 이룬 사례들을 이야기한다. "일부 지역에서 농민들은 종자를 키울 특수한 땅을 별도로 떼어놓고 조심스럽게 간 뒤, 거기에다 미리 선별한 곡물 샘플들을 손으로 심는다." 그리고 경운기, 가벼운 쟁기, 탈곡기, 키질 기계, 종자 분류기 같은 "개량 농기구와 기계 영역"²에서의 많은 다양한 혁신들이" 관찰된다. 카리세프는 인산비료, 아교 반죽, 비둘기 배설물 같은 "아주 다양한 종류의 비료들"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지방 주 재원들이 인산비료의 판매를 위해 마을에 젬스트보 상점들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V. V. 선생의 농민 농업의 진보적 경향(크리벤코 선생도 이 책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에서 자료를 인용한 카리세프 선생의 글은 이 모든 감동적인 진보에 감화된 나머지 거의 열정의 수준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우리가 간략하게만 제시할 수 있었던 이러한 보고서들은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 동시에 애처로움도 느끼게 한다. …… 여기서 용기를 준다는 건, 이 사람들이 비록 가난하고 빚에 시달리며 상당수는 말 한 마리 갖고 있지 못한 상황이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 일하고, 절망에 굴하지 않으며, 자신의 직업을 바꾸지 않은 채 여전히 땅에 대한 진정성을 잃지 않고 그것을 적절히 일구는 일에 자신들의 미래와 힘과 부가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물론이지! 인산비료와 종자 분류기, 탈곡기, 말먹이 귀리를 구입하는 이들이 가난하고 말 한 마리 없는 농민들이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 성스러우리만치 단순한 자들이여! 어느 여대생이 아니라 정치경제학 박사 학위 소지자인 교수가 쓴 글이 이 정도라니! 아니, 동의 못 할지 몰라도 이건 그저 그들의 단순함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은 적절한 관리를 가능케 할 방법을 열정적으로 탐구하고, 경작과 씨 뿌리기, 농기구, 비료 등에 있어 새로운 방식들을 연구하며, 자신들을 먹여 살릴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어 조만간 백 배의 보상을 안겨줄 모든 방안을 찾아나서고 있다.³ …… 그리고 애처롭다는 건"(어쩌면 여러분은 이 대목에서 최소한 '인민의 벗들'이 기업형 농민들의 손에 땅이 집중되는 현상을 낳는 농민층에 대한 대규모 강탈과 그것이 자본과 농업 개선의 토대로 전환되는 현실을 언급할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강탈을 통해 탈곡기와 종자 분류기, 키질 기계 따위들을 활용하는 토착 '기업의' 성공에 기여할 '자유롭고' '값싼' '일손들을' 시장에 던져놓는 행위에 대한 설명? 그런 내용은 전혀 없었다!) "각성해야 할 사람들이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과학 분야, 박물관, 창고, 위원회 같은 기구들을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는 우리들이 농업을 개선하기 위해 분투하는 농민에게 과연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가?"(맞는 말이오, 신사양반들, 이렇듯 당신들은 "과학""위원회 같은 기구들"과 나란히 놓는군요…… '인민의 벗들'을 연구해야 할 시기는 그들이 사회민주주의자들과 싸울 무렵이 아니다. 그때는 그들이 '선조들의 이상'이라는 누더기로 기운 제복을 걸쳐 입는 시기기 때문이다. 반면 그들은 평상복을 입고 있을 때는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구체적으로 논한다. 이 때가 바로 그들을 연구할 적기다. 이들 소부르주아 관념론자들의 제대로 된 특색과 취향을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 농민이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는 게 과연 있을까? 물론 아주 초보적인 형태의 것들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그 발달은 몹시 느리다. 농민은 모범을 필요로 하지만, 우리가 실험용으로 조성한 밭과 모범 농장들은 대체 어디에 있던 말인가? 농민은 활자로 된 정보를 갈구하지만, 대중을 상대로 한 우리의 농경 문헌들은 또 어디에 있는가? …… 농민은 비료와 농기구, 종자를 얻으려 애쓰지만, 그것들을 도매로 구입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해야 할 우리의 젬스트보 상점들은 어디에 있는가? …… 실무진들과 개인, 젬스트보, 당신들은 어디에 있는가? 나서서 일을 하라, 오랫동안 무르익어왔던 그 시기가 다가왔다. 러시아 인민들의 진심 어린 감사가 당신들에게 보상으로 주어질지니!⁹⁴"루스코에 보가츠트보, 2, 19)

 

이렇듯 '인민의' 소부르주아 계급 벗들은 소부르주아 식 진보의 잔치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우리 농촌 경제에 대한 분석과 완전히 동떨어진, 오늘날의 경제학 역사에서 이토록 놀라운 사실——'농민층'의 엄청난 강탈과 농민 농업에서의 전반적인 진보가 나란히 병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목격하는 동시에, '농민층'을 조화롭고 동질적인 하나의 전체로 묘사하는 행위가 얼마나 어리석은지와 이 모든 진보의 부르주아적 성격을 납득하게 된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인민의 벗들'은 여전히 이 모든 것에 귀를 닫고 있다. 옛 러시아의 사회혁명적 인민주의의 훌륭한 장점들을 잃어버린 그들은 인민주의의 커다란 실수 중 하나, 즉 농민층 내의 계급적대를 이해하지 못한 실수를 절대 바로잡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호르비치⁹⁵"70년대'의 농민주의자들(인민주의자들)은 농민층 내에 자연스레 존재하는 계급적대를 몰랐기에, 그것을 '착취자'——쿨락 또는 기생자——와 그 희생자인 공산주의 정신에 물든 농민의 적대로만 국한해 파악했다"고 적절히 말한다.⁹⁶ 글렙 우스펜스키(Gleb Uspensky)⁹⁷만이 회의주의적 입장에서 역설적 미소로 보편적 환상을 거부했다. 농민층에 대한 완벽한 지식과 현상의 본질 그 자체를 꿰뚫는 비범한 예술적 재능을 지닌 그는 개인주의가 고리대금업자와 채무자 사이뿐만 아니라 대체로 농민들 사이에서도 경제적 관계의 기초가 되었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글 판박이(루스카야 미슬, 1882, 1)를 참조하기 바란다.

 

농촌 경제에 대한 비교적 정확한 정보가 아주 부족했고, 농민층의 분화가 아직 그렇게 뚜렷하지 않았던 1860년대와 70년대에 그러한 환상에 굴복한 것은 용서할 수 있고 어쩌면 당연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오늘날은 이러한 분화를 모르쇠 하려면 의도적으로 눈을 감아야만 한다. 농민층의 몰락이 정점에 달해 있고 사방에서 농민 농업에서의 진보적 경향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가 들려오는 최근에는 특히 더 그렇다. V. V. 선생(역시 의심의 여지 없는 '인민의 벗'이라 할)도 전적으로 그 주제만을 다루는 책 한 권을 썼는데, 사실관계의 부정확성에 관해서는 그다지 비난거리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기술적인 측면에서나 농경법적인 측면에서의 농민층의 진보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지만, 그건 농민층에 대한 대규모 강탈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인민의 벗들''농민'이 스스로를 먹여 살려줄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새로운 경작법을 간절하게 찾아 헤매고 있다는 사실에 자신들의 모든 관심을 집중시켰다. 동전의 이면, 즉 바로 그 농민이 땅으로부터 심하게 분리되고 있다는 사실은 보지 못한 채 말이다. 그들은 농민으로부터 분리된 토지가 자본으로 전환되고 국내 시장이 창출되는 과정 같은 눈앞의 사실들을 보지 않으려고 타조처럼 모래에 머리를 묻는다.⁹⁸ 이 나라 공동체 농민들 사이에 실재하는 이러한 양 갈래의 정반대 과정들을 부정하고, 우리 사회의 부르주아적 성격 말고 다른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들을 설명해보려고 애써보라. 분명 쉽지 않을 것이다! 할렐루야를 외치면서 인도주의적이고 자비로운 문구들을 연호하는 것은 그들의 과학, 그들의 정치 '활동' 전체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게다가 그들은 현질서의 가장 온건하고 자유주의적인 땜질식 처방을 정규 철학으로까지 끌어올린다. 크리벤코 선생은 심오한 어조를 띤 채 이렇게 말한다. "사소하지만 진심 어린 활동을 하는 것이 크게 일을 벌여놓고 행동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이 얼마나 참신하고 영리한가! 더 나아가 그는 "사소한 활동이란 게 결코 목적이 사소하다는 말과 동의어는 아니다"라고 말을 잇는다. 그리고 사소한 활동이 "적절하고 훌륭한" 결과로 이어진 "활동의 확장"의 사례로서, 어느 부인이 학교를 세운 일, 농민들 사이에서 협잡꾼들을 몰아내는가 하면 피고에게 자문을 해주기 위해 지방 순회법원에 동행하기로 한 변호사들의 일화, 앞서 살펴본 대로 "젬스트보의 노력과 결합돼 가장 변화한 중심지에" 수공업자들의 창고를 설립한 경우들을 든다.

 

물론 이 모두는 아주 숭고하고 인간적이며 자유주의적이다. 여기서 자유주의적이란 건, 부르주아 경제 시스템을 모든 중세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따라서 노동자가 그런 조치들에 의해 손상당하기보다는 오히려 강화될 시스템 자체와 맞서 싸우기 쉽게 만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오랫동안 러시아의 자유주의 출판물들을 통해 이 모든 주장들을 접해왔다. 만약 루스코에 보가츠트보의 신사양반들이 우리를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지 않았다면, 이는 반대할 가치조차 없는 주장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맞선 "자유주의의 온건한 출발"을 알리기 시작했고, 동시에 "우리 선조들의 이상"을 비난했다며 사회민주주의자들을 나무랐다. 만약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적어도 우리는 그런 온건하고 세심한 자유주의적(즉 부르주아에게 봉사하는) 활동을 먼저 제안하고,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반대하는 목소리에 기꺼이 호응했을 것이다. 선조들과 그들의 이상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으나 말인데, 그들의 이론은 그릇되며 유토피아적이었지만 어쨌든 옛 러시아 인민주의자들은 그러한 "자유주의의 온건한 출발"⁹⁹을 절대적으로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던 바 있다.

 

그러나 그런 아주 오래 전 일이었다. 하도 시간이 많이 지난 일인지라 '인민의 벗들'은 그런 과거를 모조리 잊어버릴 수 있었나 보다. 그리고 그들은 정치제도에 대한 유물론적 비판이 사라지고 현대 국가의 계급적 성격이 이해되지 않는 순간 유일하게 남은 수순은 정치적 급진주의에서 기획주의로 옮겨가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자신들의 전술을 통해 분명히 입증했다.

 

여기에 그런 기획주의의 몇 가지 사례들이 있다.

 

유자코프 선생은 "국유재산부를 농업부로 전환하는 조치는 우리 경제 발전 과정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도 있지만, 관리들의 자리를 바꾸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루스코에 보가츠트보, 10)고 단언한다.

 

결국 모든 건 '요청을 받는' 존재가 누구냐에 달려 있다. 인민의 벗들이나 아니면 지주와 자본가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자들이냐가 문제지, 이해관계 그 자체는 건드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같은 글에서 유자코프는 계속하여 "경제적 강자로부터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국가 개입의 첫 번째 본연의 임무"라고 말한다. 루스코에 보가츠트보12호에 실린 국내 문제 연대기의 필자 또한 같은 표현을 사용해 유자코프의 주장을 지원하고 있다. 유자코프는 이런 박애주의적인 헛소리¹⁰⁰에 대한 설명이 그의 훌륭한 동료들인 서구 유럽의 자유주의적이고 급진적인 소부르주아 관념론자들의 그것과 똑같다는 사실에 한 점 의혹도 남기지 않기 위해 동시에 이렇게 덧붙인다.

 

"글래스스톤(Gladstone)의 토지 법안들¹¹, 비스마르크(Bismarck)의 노동자보험, 공장 감독, 러시아의 농민은행 발상, 이주의 조직화, 쿨락의 이익에 반하는 조치들, 이 모두는 동일하게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국가 개입이라는 원칙을 적용한 시도들이다."

 

그래도 이 말은 솔직함이라는 미덕은 지니고 있다. 필자는 글래스스톤과 비스마르크처럼 자신도 현재의 사회적 관계를 고수하기를 원하며, 그들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사회(부르주아 사회. 그는 서구 유럽의 글래스톤과 비스마르크 추종자들만큼이나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를 수습하고 봉합하길 바랄 뿐 그것과 맞서 싸우기는 원치 않는다고 직설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들의 근본적인 이론적 신념은 그들이 현재의 사회에 기초해 지배계급의 이익을 보호해주는 기구, 즉 국가를 개혁의 도구로 여긴다는 사실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그들은 모든 계급에 우선하는 전지전능한 국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국가가 노동계급을 '지원해줄' 뿐만 아니라 (크리벤코 선생이 말했듯이) 현실적이고 적합한 시스템을 만들어낼 거라 기대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들 골수 소부르주아 관념론자들에게 기대할 건 아무것도 없다. 생산 조건 자체에 의해 해체되고 고립돼 있으며 한정된 공간과 착취자에게 묶여 있는 소생산자들은 간혹 프롤레타리아만큼이나 고통을 겪는 자신들의 착취와 억압의 계급적 성격을 이해할 수가 없다는 점이 바로 소부르주아 계급의 근본적이고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그들을 반동적인 계급으로 만드는 특징이기도 하다——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들은 부르주아 사회에서 국가 역시도 계급적 성격을 떨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²

 

위대한 '인민의 벗들'이여, 그렇다면 왜 우리 정부가 지금까지——그리고 해방적 개혁 이래로 특히 정력적으로——부르주아 계급과 자본주의만을 '지원하고 보호하며 창출'했겠는가?

 

나라 안 살림살이가 상품경제와 상업, 공업의 발전으로 특징지어지는 이 역사적 시기에, 절대적이고 이른바 초계급적인 정부가 그런 불성실한 행동을 하는 이유가 될까? 나라 안 살림살이에서의 그러한 변화들이 워낙 사회 깊숙이 정착돼 정부는 그걸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그 중간에 무수한 장애물을 가져다 놓았다는 사실, 바로 그 '절대적인' 정부가 내부적인 삶의 다른 조건에서는 또 다른 계급을 '지원하고 보호하며 창출'해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당신들은 그러한 변화들을 정부 정책이 불러온 효과라 여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 '인민의 벗들'은 그런 질문들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보다시피 이 모든 것이 유물론, 변증법, '헤겔주의', '신비주의와 형이상학'이다. '인민의 벗들'은 이 정부에게 친절해지라고, 겸손해지라고 간청하면 모든 게 정상적으로 바로잡힐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할 뿐이다. 겸손함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그 점에 관한 한 루스코에 보가츠트보를 인정해주어야 마땅하다. 실로 이 매체는 독립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러시아 자유주의 언론들 가운데서도 단연 돋보인다고 하겠다. 다음을 보고 여러분이 직접 판단해보기 바란다.

 

"염세³와 인두세의 폐지, 토지상환금의 감축은 인민 농업에 상당한 위안이다"라고 유자코프 선생은 설명한다. 그래, 물론이지! 그러나 염세를 폐지하는 대신 수많은 간접세들을 새로이 부과하고 기존 세금들을 인상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냐? 인두세의 폐지와 함께 예전의 국유지 농민들을 회복시켜준다는 명분으로 그들이 지급하는 대금을 인상시킨 건 어쩔 텐가? 그리고 익히 알려진 상환금(정부는 환수 활동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농민들에게 되돌려주지도 않았다) 감축이 이루어진 뒤 지불 대금과 토지로부터 얻는 수입 사이의 불균형, 즉 봉건적 면역지대¹⁰⁴가 직접적으로 부활한 건 지금도 유효하지 않은가? 그래도 괜찮아! 중요한 건 '첫걸음''원칙'이니까. 나머지는…… 나중에 우리가 간청하면 될 거야!

 

하지만 이것들은 꽃에 불과할 뿐, 이제 과실을 들여다보도록 하자.

 

"1880년대는 인민들의 부담을 덜어주었고"(앞에서 말한 조치들에 의해서!) "인민들이 철저히 몰락하지 않도록 구해주었다."

 

이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노예근성을 보여주는 또 다른 고전적인 문구로, 앞서 인용한 우리가 여전히 프롤레타리아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미하일롭스키의 주장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하다. 이와 관련해 러시아 자유주의의 진화에 대한 시체드린의 예리한 묘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자유주의자인 그는 정부 당국에 '가급적' 개혁을 해달라고 간청하는 것으로 시작해, 다음에는 '적어도 뭐라도' 달라고 구걸하다가, '아무리 보잘것없더라도 아무거나 달라고' 애원하는 지점까지 일관된 입장을 고수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그래서 '인민의 벗들'이 이러한 지점까지 흔들리지 않는 입장을 받아들였다는 것 말고 달리 뭐라 말할 수 있겠는가. 당시는 기근이 수백만 명의 인민들을 막 덮쳤던 시기로, 그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장사꾼의 인색함으로 시작해 소심함으로 옮겨간 걸 알고도 그들은 정부가 인민들을 철저한 몰락으로부터 구해주었다는 주장을 버젓이 칼럼에 옮겨 담을 수 있었던 것이다! 몇 년이 더 지나면 농민층에 대한 강탈이 훨씬 더 가속화될 것이고, 정부는 농업부를 창설한 데 이어 한두 가지 직접세를 폐지하는 대신 간접세 대여섯 가지를 새로이 부과할 것이며, 그러면 기근은 4천만 인민에게 영향을 끼칠 테고, 이들 신사양반들은 똑같은 방식의 글을 써낼 것이다. 굶주린 인구가 5천만 명이 아니라 4천만 명에 불과한데, 그건 정부가 인민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그들을 철저한 몰락으로부터 구해준 덕분이라고, 정부가 '인민의 벗들'의 말을 경청하고 농업부를 창설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이 밖에 다른 사례도 있다.

 

루스코에 보가츠트보2호에서 러시아가 "다행히도"(원문의 표현 그대로다!) 후진국이며 "자신의 경제 시스템을 연대의 원칙¹⁰⁵에 기초할 수 있게끔 해준 요소들을 유지해왔다"고 주장한 국내 문제 연대기의 필자는, 따라서 러시아가 "국제 문제에 있어서 경제적 결속의 주장자"로 행동할 수 있고, 러시아에게 주어진 이런 기회는 부인할 수 없는 "정치적 힘"에 의해 강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모든 반동적 행위의 변치 않는 가장 확실한 방식에서 바로 유럽의 경찰관인 러시아였다. 러시아 정부는 국내에서 억압받는 러시아 인민들로 하여금 서구의 인민들을 억압하기 위한 도구로서 종사하는 치욕스러운 입장에 서도록 했다. 그것이 경제적 결속의 주장자로 묘사된 경찰관 러시아의 본모습인 것이다!

 

따라서 앞의 주장은 실로 모든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다! '인민의 벗' 선생들은 그 어떤 자유주의자도 능가할 것이다. 그들은 정부에 간청하고, 정부를 칭송하며, 엄청난 존경과 열정을 다해 기도를 바친다. 그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판석 위에 이마를 찧는 소리는 지나가던 이조차 으스스한 기분을 느끼게 할 정도다.

 

여러분은 속물의 독일식 정의를 기억하는가?

 

속물이란 무엇인가?

 

텅 빈 속을

 

두려움과 신의 자비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득 채운 자여.

 

괴테

 

이런 식의 정의는 우리 실정과는 맞지 않는다. …… 신은 우리에게 부차적인 존재다. 그러나 정부 당국은…… 다른 문제다. 만약 위의 정의에서 ""이란 단어를 "정부 당국"으로 대체한다면, 인간적이고 자유주의적인 러시아 '인민의 벗들'의 이념적 상투성과 도덕 수준, 시민으로서의 용기를 정확히 표현한 셈이 될 것이다.

 

정부를 바라보는 시각이 이토록 터무니없는 '인민의 벗들'은 이른바 '인텔리겐처'에 대해서도 유사한 태도를 보인다. 크리벤코 선생은 이렇게 적고 있다. "문학은 …… 현상들을 사회적인 의미에 따라 평가하고, 모든 능동적 노력이 효과를 발휘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문학은 교사와 의사, 전문가가 부족하고 인민들은 가난과 병마와 문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발언해왔고, 그 발언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탁자에 앉아 카드놀이를 하거나 연극 공연을 보러 다니거나 귀족 대표가 주최한 파티에서 철갑상어를 뜯는 게 지겨워진 사람들이 보기 드문 자기희생 정신을 갖추고"(카드놀이와 연극과 철갑상어를 희생했다는 얘기다!) "수많은 장벽을 뚫고 앞으로 선뜻 나설 때, 문학은 그들을 환영해야 한다."

 

그리고 두 페이지를 넘어가, 경험으로 지혜를 얻게 된 왕년의 운동가는 집짓 사무적인 어조를 띠며 "지방감독관⁰⁶, 시장, 젬스트보 의장이나 위원 같은 직위를 새로운 규정에 따라 받아들일 것이나 말거나 하는 문제에 직면해 "망설이는" 사람들을 나무란다. "시민들의 요구와 의무에 관한 의식이 발전된 사회에서 그런 망설임과 태도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회에서는 어떠한 필수적인 측면을 가진 개혁이라면 어쨌든 완전히 소화해서 그에 맞는 개혁의 측면들을 활용하고 발전시킬 것이고, 만약 바람직하지 못한 측면들이 있다면 그것들을 사문화시킬 것이며, 개혁에 필수적인 게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기구는 완전히 소외된 상태로 남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대관절 저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얼마나 한심하고 하찮은 기회주의이자 자화자찬에 빠진 소리란 말인가! 말인즉슨, 사악한 마르크스주의자들에 대한 응접실용 가십거리들을 죄다 수집하고, 인민들을 철저한 몰락으로부터 구해준 데 대해 정부에게 아첨하며, 카드놀이에 지겨워진 사람들을 환영하고, 지방감독관 같은 자리를 꺼리지 말라고 '대중'을 가르치는 게 문학의 임무라는 거다…… 혹시 내가 지금 네델랴Nedelya¹⁰⁷노보에 브레먀를 읽고 있는 건가? 아니, 이건 선진적인 러시아 민주주의자들의 기관지 루스코에 보가츠트보가 확실한데……

 

그리고도 그 신사양반들은 "선조들의 이상"을 이야기하고, 프랑스가 유럽 전역에 사회주의 사상을 쏟아붓자¹⁰⁸ 러시아에서 그 사상을 흡수해 헤르첸¹⁰⁹과 체르니셉스키(Chernyshevsky)¹¹의 이론과 가르침을 생산해낼 당시의 전통을 오직 자신들만이 수호하는 것처럼 주장한다. 이는 철저한 망신이며, 명백한 언어도단이자 모욕이다. 비록 루스코에 보가츠트보가 별로 재미있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고, 이 같은 유형의 잡지 칼럼에서 그런 식의 발언들이 커다란 웃음이나 그 밖의 어떤 반응도 불러일으키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다, 실로 당신들은 그 이상들을 더럽히고 있는 것이다!

 

최초의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의 이상이 실제로 어떤 것들이 있는지는 카우츠키가 했던 다음 발언에 아주 적절히 묘사되어 있다.

 

"그 시대 모든 사회주의자는 시인이었고, 모든 시인은 사회주의자였다."

 

러시아의 공동체적 생활 체계라는 특수한 사회 질서에 대한 믿음, 그것으로 인해 이어지는 농민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믿음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정부에 맞서는 영웅적 투쟁의 대열에 서게 만들었다. 당신들, 당신들은 그 시대 가장 훌륭한 사람들의 엄청난 역사적 헌신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았다고, 그들의 기억을 충실으로 존경하지 않았다고 사회민주주의자들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우리는 묻는다. 그때의 믿음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모두 사라져버리지 않았는가. V. V. 선생이 작년에 마을공동체가 인민들에게 공동의 노력을 연마시키고 이타적 감정의 중심이 되고 있다는 등의 주장¹¹¹을 폈을 당시, 심지어 미하일롭스키 선생은 양심에 찔린 나머지 게연찮게 V.V. 선생을 훈계하며 이렇게 강조한 바 있다. "어떤 연구도 마을공동체와 이타주의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지는 못했다."¹¹² 실제로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굳이 연구를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신념을, 무조건적인 신념을 지녔던 시대가 있었다.

 

어떻게? ? 무슨 근거로?

 

"모든 사회주의자는 시인이었고, 모든 시인은 사회주의자였다."

 

게다가 미하일롭스키 선생은 농촌이 분화되면서 한편으로는 프롤레타리아 대중이 나타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머지 인민을 자기네 발치 아래 두는 한 줌의 '쿨락'이 형성되고 있다는 데에 모든 양심적 연구자들이 동의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그는 이번에도 옳았다. 농촌은 실제로 분화되고 있었다. 아니, 농촌이 완전히 쪼개진 건 아주 오래 전 일이었다. 그리고 그 옛날의 러시아 농민사회주의도 그와 함께 쪼개지면서 한편으로는 노동자 사회주의에 자리를 내주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속물 소부르주아 급진주의로 타락했다. 이러한 변화는 타락이란 말 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농민의 삶은 특수한 사회 질서이며 우리나라는 예외적인 발전 경로를 밟아왔다는 이론으로부터 일종의 희석된 절충주의가 등장했다. 이 절충주의는 상품경제가 경제 발전의 토대가 되고, 자본주의로 성장해갔다는 점은 더 이상 부인하지 못한다. 그러나 모든 생산관계에 부르주아적 성격이 있고 그 체제에서는 필연적으로 계급투쟁이 일어난다는 것은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그와 더불어 근대 사회의 토대에 맞서는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농민들을 각성시킬 목적으로 고안된 정치 강령으로부터¹¹³ 근대 사회의 토대를 보존하면서 농민들의 처지를 '개선하고' 수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강령이 등장했다.

 

엄밀히 말해, 이 모두는 이미 루스코에 보가츠트보의 신사양반들이 사회민주주의자들을 "무너뜨리는" 데 착수하는 순간 예상됐던 종류의 "비판"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들은 러시아의 현실에 대한 사회민주주의자들의 구상을 솔직하고 양심적으로 설명하거나(그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처지였다. 만약 그들이 그 경제적 측면을 특별히 강조하는 동시에 "논박"을 할 때 사용했던 일반적이고 때로는 비유적이기까지 한 표현들을 그대로 유지했더라면, 검열을 우회할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 본질에 반대되는 주장을 편다든지, 거기에서 끌어온 실질적 결론들의 정확성에 반론을 제기하려는 노력을 조금도 기울이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추상적인 도식과 그 도식에 대한 믿음, 모든 나라가 그와 같은 국면을 거쳐야 한다는 확신을 담은 가장 공허한 문구들과 이미 우리가 미하일롭스키 선생의 사례를 통해 충분히 접한 바 있는 허튼소리에 스스로를 가두는 쪽을 택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철저하게 왜곡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예를 들어 크리벤코 선생은 마르크스가 "만약 우리가 소망하고"(?!) 그래서, 마르크스에 따르면 사회적·경제적 관계의 진화는 인간의 의지와 의식에 달려 있다는 건가? 한없이 무지하거나 비할 데 없이 뻔뻔스러운 소리가 따로 없군!) "또 그에 따라 행동한다면, 자본주의의 부침을 피해 더 편리한 다른 경로"(원문 그대로의 표현이다!!!)"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고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우리의 기사님이 그런 허튼소리를 내뱉을 수 있었던 것은 의도적인 왜곡에 탐닉했기 때문이다. 익히 알려진 '마르크스의 편지'(법률 통신, 1888, 10)에서 러시아가 "자본주의 체제의 고통을 겪지" 않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체르니셉스키를 마르크스가 높이 평가한 대목을 인용한 크리벤코 선생은 마르크스의 실제 발언(마지막 문장은 "(체르니셉스키)는 후자의 해결책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다"였다)을 그대로 옮겨놓은 부분에 따옴표를 닫으며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자신이 이런 견해들을 공유한다고 말한다."(186, 12, 크리벤코의 강조)

 

그러나 마르크스가 실제로 말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그래서 이 존경할 만한 비평가는 적어도 내가 그 '위대한 러시아 학자이자 비평가'를 존경한다는 이유로 내가 이 문제에 대해 자신과 같은 견해를 갖고 있다고 추론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그 러시아 '문인'과 범슬라브주의자¹¹에 대한 나의 비판으로부터도 내가 그의 견해들을 거부한다는 결론을 도출해낼 만한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법률 통신, 1888, 10, 271)

 

따라서 마르크스는 미하일롭스키 선생이 자신을 러시아의 특수한 발전 노선이라는 사고에 반대하는 사람으로 여길 권리가 없고, 자기 또한 그런 사고를 지닌 사람들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크리벤코 선생은 마르크스가 그런 특수한 발전 노선을 "인정했다"는 뜻으로 그걸 잘못 해석한 것이다. 이는 그야말로 새빨간 왜곡이었다. 방금 인용한 마르크스의 발언은 그가 그 문제를 다음과 같이 피해 넘겼다는 사실을 아주 분명히 보여준다. "미하일롭스키 선생은 두 가지 모순되는 주장들 가운데 하나를 근거로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즉 그는 러시아의 전반적인 정세에 관한 나의 견해들 중 하나를 근거로 하여 스스로의 결론을 이끌어낼 만한 바탕이 전혀 안 돼 있었던 것이다." 이런 발언들이 잘못 해석될 여지를 없애기 위해 마르크스는 같은 '편지'에서 자신의 이론이 러시아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답변을 제시했다. 이 답변은 마르크스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 자체와 그 질문의 답을 결정할 수도 있는 러시아의 데이터 검토를 하지 않으려 했다는 사실을 아주 명확히 보여준다. 그는 "만약 러시아가 서구 유럽 국가들을 모범으로 한 자본주의 국가가 되려는 경향을——그리고 이 점에 있어 수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던 최근에——보인다면, 우선 농민 대부분이 프롤레타리아로 전환되지 않고서는 성공하기 힘들 것"¹¹이라고 답했다.

 

내 생각에 이 대목은 더할 나위 없이 명확하다. 질문은 러시아가 자본주의 국가가 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가, 농민들의 몰락이 자본주의 체제, 즉 자본주의적 프롤레타리아트의 탄생 과정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만약' 러시아가 그런 경향을 보인다면, 농민 대부분이 프롤레타리아로 전환될 수밖에 없을 거라고 말한다. 달리 말해 마르크스의 이론은 특정 국가들의 경제 시스템의 진화를 연구하고 설명하는 것이었으며, 러시아에 그 이론을 '적용'하는 것은 오로지 유물론적 방법론과 정치경제학 이론의 확립된 관행들을 활용해 러시아의 생산관계와 그 진화를 연구하는 것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¹¹

 

새로운 방법론과 정치경제학 이론의 정교한 완성은 사회과학에서의 거대한 진보이자 사회주의를 향한 엄청난 진전이었기에, 자본이 등장한 직후 '러시아 자본주의의 운명'은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에게 주요한 이론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그 문제를 둘러싸고 엄청나게 열린 논쟁들이 펼쳐졌으며, 강령상의 핵심 지점들도 그에 따라 결정되었다. 그리고 (10년 전) 러시아가 자본주의로 진화하였는지를 놓고 어느 개별적 사회주의자 그룹이 러시아의 경제 현실에 관한 데이터를 토대로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았을 때는, 거기에 대한 직접적이고 명확한 비판은 전혀 없었을 뿐 아니라 똑같은 방법론적·이론적 일반 원칙들을 받아들인 이들 가운데서도 데이터에 대해 다르게 설명하는 비판의 목소리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한편 마르크스주의자들에 맞서 진정한 성전에 돌입한 '인민의 벗들'은 역사나 사실관계의 검토를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내놓는 법이 없다. 첫 번째 글에서 본 바와 같이, 그들은 이러한 러시아연구들로 문제를 처리한다. 게다가 미하일롭스키 선생은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서의 합의나 의견일치 부족에 대해서도 자신의 재치를 드러낸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았다. 그런 뒤 '우리의 저명한' 미하일롭스키 선생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진짜''가짜'로 나누는 말장난을 하고는 마음껏 웃음을 터뜨린다. 물론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 완전한 일치가 지배적이지 않다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첫째로 미하일롭스키 선생은 이 사실을 잘못 전달하고 있으며, 둘째로 현실은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의 약점이 아닌 강점과 생명력을 증명해주고 있다. 최근 시기의 특징이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사회주의자들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사회민주주의적 관점들에 도달하고 있으며, 그러한 까닭에 러시아가 봉토제도로부터 성장한 부르주아 사회이고 그 정치 형태는 계급국가이며 노동인민의 착취를 끌장낼 유일한 방안은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이라는 근본적이고 주요한 논지에 무조건적으로 동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논쟁의 방법과 러시아인의 삶의 이러저러한 현상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에 있어 특정한 수많은 문제들을 놓고 의견을 달리한다. 따라서 나는 앞서 언급한 모든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근본적이고 공통적인 논지의 한계 내에서, 예를 들어 농민 개혁이나 농업과 수공업의 경제적 상황, 토지 임차 등 피상적인 어조로만 다뤄져왔던 문제들에 관해서도 의견 차이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미리 미하일롭스키 선생을 기쁘게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농민 개혁이 러시아의 올바른 발전을 위해 순탄한 길을 열어줄지도 모른다는, 자본가의 이익을 대표하는 이들이 아닌 '인민의 벗들'에게 국가의 부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을공동체가 농업과 제조업을 사회화해 그것들이 수공업자에 의한 대량생산으로 발전할지도 모른다는, 인민의 토지 임차가 인민의 농업을 떠받치고 있다는 등의 '승고한 진리'를 만장일치로 받아들이는 데 스스로 만족하는 사람들의 감동적이고 마음을 움직이는 함의는, 러시아의 실제적인 현재의 경제구조를 명확한 생산관계 시스템으로 해명하고 실제적인 경제적 진화나 정치를 비롯한 여타 모든 유형의 상부구조에 대한 해명을 추구하는 사람들 내의 의견 차이로 대체되어왔다.

 

그리고 만약 그런 노력이——서로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공통된 입장을 받아들여 공동의 정치적 행동으로 확실히 연결시키고, 따라서 그러한 공통된 입장을 받아들이는 모두가 스스로를 '사회민주주의자'라 부를 권리와 의무를 부여받게 되는 한편으로——다양한 해결책들이 열려 있는 수많은 특별한 문제들에 대해 광범위한 의견 차이의 여지를 여전히 남겨놓는다면, 당연히 그것은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의 힘과 생명력을 입증해주는 것에 불과하다.¹¹

 

더군다나 그런 노력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힘든 상황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 다양한 측면들을 통합해줄 기관도 없거니와 있을 수도 없고, 오늘날 만연해 있는 경찰의 감시 상황에 비춰볼 때 개인적인 교류도 극도로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적절한 토론을 할 수도, 구체적인 합의에 도달할 수도 없고 따라서 서로 의견이 상충되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정말로 재미있지 않은가?

 

사회민주주의자들, '신마르크스주의자들'을 상대로 한 '반론'에서 크리벤코 선생이 언급한 내용은 일정 정도 당혹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다. 일부 독자들은 사회민주주의자들 사이에서 분열 비슷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고, '신마르크스주의자들'이 과거의 사회민주주의자들로부터 떨어져 나갔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코 그런 게 아니다. 마르크스주의를 공개적으로 방어해온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이론과 정책을 비판하거나 다른 어떤 종류의 마르크스주의를 옹호한 적이 없었다. 진실은 크리벤코와 미하일롭스키 선생이 마르크스주의자들에 대한 응접실에서나 나눌법한 가십거리들에 귀 기울여왔고, 자신들의 지각 없는 자유주의적 언행을 감추기 위해 마르크스주의를 들먹이는 여러 다양한 자유주의자들을 주시해왔으며, 전매특허인 영리함과 전술을 동원해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비판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해왔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비판"이 일련의 일상적인 부조리와 추잡한 공격들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다.

 

크리벤코 선생은 "우리는 일관되게 여기에('우리는 자본주의 산업 발전에 힘써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긍정적인 해답을 제시해야 할 것이며, 농민들의 땅을 사들이거나 상점과 선술집을 여는 것을 꺼려서는 안 된다. 수많은 여관주인들이 러시아 의회에서 성공적인 활동을 벌이는 것을 기뻐해야 할 것이며,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업자들이 농민들의 곡식을 사들이는 것을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말 재미있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인민의 벗'에게 러시아 곳곳에서 벌어지는 노동인민에 대한 착취는 본질상 자본주의적이며, 기업형 농민들과 유통업자들은 이러한 정치·경제적 특징들 때문에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사람들로 분류되어야 하고, 그런 현실이 농민 분화의 부르주아적 성격을 증명한다는 것을 일러주자. 그러면 그는 비명을 지르며 그건 서구 유럽의 공식과 추상적인 방안들을 무차별적으로 빌려오는 행위이자 터무니없는 이단이라고(하지만 그러면서도 '이단적' 주장의 실제 의미에 대해서는 조심스레 회피하면서)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그러나 사악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불러일으킨 '공포'에 색이 입혀져 그림이 완성되는 순간, 고귀한 과학과 순수한 이상은 옆으로 밀려나고 농민의 곡식과 땅을 사들이는 자들이 단순히 타인의 물건을 '동경하는 이들'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대표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러시아 부르주아 계급이 자신들의 손아귀에 생산수단을 집중시킴으로써 이미 모든 영역에서 인민의 노동을 지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부에게 압력을 가해 부르주아적 성격의 정책을 입안하고 강요하며 결정짓고 있다는 사실을 저 '인민의 벗'에게 입증해 보이자. 그러면 그는 버럭 화를 내며 우리 정부의 전지전능함을 외치기 시작하고는, '인민의 벗들'이 아닌 자본주의의 이익을 대표하는 자들을 '끌어들이는 행위'가 치명적인 착오이자 불행이라고, 인공적으로 자본주의를 이식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그러나 속으로 그들은 러시아 의회 내의 여관 주인들이 자본주의를 대표한다는 사실, 즉 이른바 계급의 꼭대기에 올라선 바로 이 정부의 구성요소 중 하나라는 사실을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신사양반들, 러시아 자본주의의 이익이 오직 '의회'에서만, 그리고 '여관 주인들'에 의해서만 대표된다고 생각하시오?

 

추잡한 공격들과 관련해서는 이미 미하일롭스키 선생을 통해 그 사례들을 충분히 지켜봐왔고, 눈꼴 시린 사회민주주의를 전멸시키기 위한 열망 속에 "일부는 자본주의 과정을 가속화시키는 게 유일한 목적이라 주장하며 (물론 전문가나 사무직 노동자 같은 한직을 얻을 수 있는 경우에) 공장으로 들어간다"고 주장한 크리벤코 선생을 통해서도 다시 그걸 확인할 수 있겠다. 이런 명백히 품위를 상실한 발언들에 대해 일일이 답변할 필요는 없다는 건 두말 하면 잔소리일 테고, 그만 여기서 마침표를 찍도록 하자.

 

아무튼 신사양반들, 그런 정신 상태를 용감하게 계속 유지하길 바라오! 당신들이 말한 대로 이미 여러 조치들을 통해 (설사 흠이 있었다 하더라도) 인민들을 철저한 몰락으로부터 구원해주었던 황실 정부는 앞으로도 아무런 결함 없이 그렇게 해나가게 될 것이며, 그래서 당신들의 진부함과 무지가 드러나는 걸 막아줄 테니 말이오. 이제껏 그래왔듯이 '교양 넘치는 상류 사회'는 막간을 이용해 철갑상어와 카드놀이를 즐기며 기꺼이 '형제'를 들먹이고 그의 상태를 '개선시키기 위한' 자비로운 사업들을 고안해낼 것이오. 그리고 그 형제를 대표하는 자들은 지방감독관 같은 농민들의 주머니를 감독하는 자리들을 차지하고 앉아 시민적 요구와 의무들에 관한 발달된 의식을 자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당신네로부터 알게 되어 기쁘기 그지없을 것이오. 그러나 그 정신을 계속 이어가시게나들! 절대 방해받지 않을 뿐 아니라 지지와 칭찬까지 받게 될지도 모르니……. 물론 부레닌과 그 지지자들의 입으로부터 말이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3

 

결론에서는, 역사나 사회민주주의자들을 상대로 하여 공개적인 전쟁에 돌입한 또 다른 '인민의 벗' 크리베코 선생을 만나보도록 하자.

 

하지만 우리는 미하일롭스키나 유자코프의 글들에 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의 글들(우리의 문화 용병들, 1893, 12, 그리고 여행 중에 보낸 편지, 1894, 1)을 검토할 것이다. 그 글들을 완전히 분석하는 것은 첫째 유물론과 마르크스주의 일반에 대한 그들의 반론과, 둘째 그들의 정치경제 이론의 실체를 분명히 이해하는 데 있어 필수적이다. 이제 우리는 '인민의 벗들'의 사고를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 그들의 전술, 실질적 목표, 그리고 정치 강령을 알아야만 할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론적 견해를 밝힐 때, 어디에서도 직접적으로 그 강령을 일관성 있고 완전하게 제시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여러 명의 기고자들이 서로 모순되지 않을 정도로 의견일치를 보인 한 잡지의 다양한 글들을 참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 중에서도 나는 앞에서 언급한 크리베코의 글들을 우선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그 이유는 그의 글들에 많은 자료가 담겨 있는데다가, 미하일롭스키가 사회주의자고 유자코프가 경제학자인 것처럼 크리벤코는 해당 잡지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실용적인 인물이자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강령으로 넘어가기 전에 우리가 정말 필수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여겨지는 이론적 핵심이 한 가지 더 있다. 우리는 유자코프 선생이 인민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인민들의 토지 임차에 대해 의미 없는 문구들을 늘어놓는 것을, 자신이 우리 농민들의 경제적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그의 의미 없는 문구들로 문제들을 농치는 것을 지켜봐야겠다. 그는 수공업에 대해서는 아예 거론하지도 않았고, 대규모 공장 산업의 성장에 관한 자료를 다루는 것으로만 국한했다. 그래 놓고는 수공업에 대해 정확히 똑같은 문구들을 반복해서 늘어놓는다. 그는 "우리 인민들의 산업", 즉 수공업을 자본주의적 산업에 똑같이 대비시키면서(12, 180~1) "인민들의 생산은"(원래의 표현 그대로다!) "대부분의 경우에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반면, 자본주의적 산업은 "흔히 인위적으로 창출된다"고 말한다. 또 다른 단락에서도 그는 "소규모 인민 산업""대규모 자본주의적 산업"과 대비시키고 있는데, 만약 여러분이 눈에 띄는 전자의 특징이 무엇이라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그저 전자는 "규모가 작고"⁵⁴ 노동 도구들이 생산자와 결합되어 있다는(이 두 번째 정의는 앞에서 언급한 미하일롭스키의 글에서 내가 빌려왔다) 대답만 듣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 경제구조를 정의내리는 것과는 확실히 거리가 먼데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예를 들면 크리벤코 선생은 오늘날까지 "소규모 인민 산업""대규모 자본주의적 산업"보다 총생산량도 훨씬 많고 더 많은 노동력을 고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수공업자들의 숫자가 400만 명에 달한다는 데이터를 거론하고 있는데, 또 다른 자료에서는 700만 명에 달한다고 추산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수공업을 지배하는 경제 형태가 대규모 가내생산 체계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대부분의 수공업자들이 생산에서 전혀 독립적이지 않고 완전히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 그들이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원료를 가공하는 것이 아니라 상인들이 대준 원료를 가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지급받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이러한 형태가 지배적이라는 데이터는 합법적인 출판물에서도 인용되어왔다. 예를 들어 유명한 통계학자인 S. 카리조메노프(Kharizomenov)의 글 가운데 법률 통신》⁵⁵(1883, 11호와 12)에 실린 뛰어난 글을 인용해보자. 수공업이 가장 고도로 발달된 중부 지방 주들에게서의 수공업에 관한 기존에 발표된 데이터를 요약하면서 카리조메노프는 대규모 가내생산 체계의 절대적인 우위, 즉 의문의 여지 없이 자본주의 형태의 산업이 존재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소규모 독립적인 산업의 경제적 역할을 규정할 때, 우리는 다음의 결론에 이르게 된다. 모스크바 주에서는 연간 수공업 매출액의 86.5퍼센트가 대규모 가내생산 체계에 의해 발생하고, 소규모 독립적인 산업에 의한 것은 13.5퍼센트에 불과하다. 블라디미르 주의 알렉산드로프와 포크로프 군에서는 연간 수공업 매출액의 96퍼센트가 대규모 가내생산과 제조업 체계에 해당하고, 4퍼센트만이 소규모 독립적인 산업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우리가 아는 한 그 누구도 이러한 사실을 반박하려 하지 않았고, 반박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사실들을 무시한 채 여기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안 하면서 그런 산업을 자본주의와 구별되는 "인민" 산업이라 부를 수 있으며, 진정한 산업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논할 수 있다 말인가?

 

이렇게 사실관계를 대놓고 무시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딱 한 가지 설명만이 가능하다. 즉 러시아의 자유주의자들이 다 그렇듯 '인민의 벗들' 역시도 이 모두를 단지 평범한 '결함들'이라 치부함으로써 러시아 노동인민의 착취와 계급적대를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또 다른 원인은, 예를 들어 크리벤코 선생이 "파블로보의 날붙이 사업""()장인 성격의 사업"이라 부른 데서 드러난 바와 같이, 이런 주제에 대한 그들의 지식이 너무나 깊은 데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듯 '인민의 벗들'이 도달한 왜곡의 깊이는 가히 놀랍다는 말밖에는 덧붙일 말이 없겠다! 이 대목에서 어떻게 파블로보의 칼 장수들이 장인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혹시 어쩌면 크리벤코는 상인이 수공업자로부터 물건을 주문해 그것들을 니지니 노브고로드 장터로 보내는 시스템을 장인 산업이라 여기는 건 아닐까? 너무나 우습게도, 그런 것 같다. 실제로 칼 제조는 (외관상) 생산자들이 독립성을 지닌 소규모 수공업 형태로부터 (파블로보의 다른 산업들과 비교해볼 때) 가장 동떨어져 있다. N. F. 안넨스키(Annensky)"요리용과 공업용 칼 생산"⁵⁶은 이미 대부분 공장에 접근하고 있거나, 더 정확히는 공장제 수공업 형태에 도달하고 있다"고 말한다. 니지니 노브고로드 주에서 요리용 칼 제조에 종사하는 396명의 수공업자들 가운데 단 62(16퍼센트)만이 시장을 위해 일하고, 273(69퍼센트)은 주인⁵⁷을 위해 일하며, 61(15퍼센트)은 임금노동자들이다. 따라서 그들 중 고용주에게 직접적으로 예속돼 있지 않은 비율은 6분의 1에 불과하다. 칼 산업의 다른 부문에 대해 같은 필자는 그것이 "테이블 나이프와 자물쇠의 중간 위치를 차지한다. 이 부문의 수공업자들 대부분은 주인을 위해 일하지만, 그들과 더불어 시장과 관계를 맺고 있는 수많은 독립적인 수공업자들이 여전히 아주 많다"고 말한다.

 

니지니 노브고로드 주에는 이런 종류의 칼을 생산하는 수공업자들이 총 2,552명 있는데, 그 중 48퍼센트(1,236)는 시장을 위해 일하고, 42퍼센트(1,058)는 주인을 위해 일하며, 10퍼센트(258)는 임금노동자들이다. 결과적으로 여기에서도 독립적인(?) 수공업자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리고 시장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 또한 단지 겉으로만 독립적으로 보일 뿐이다. 실제로 그들은 구매자의 자본에 덜 예속돼 있는 게 아니다. 21,983명의 근로인민, 즉 일하는 사람 전체의⁵⁸ 84.5퍼센트가 공업에 종사하고 있는 니지니 노브고로드 주의 고르바토프 군 전체의 산업 통계를 불러온다면, 다음과 같은 결과(금속, 가죽제품, 마구류, 펠트 천, 삼 방적 등의 산업에 종사하는 10,808명의 노동자들에게만 해당하는 산업 경제에 관한 정확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즉 수공업자들의 35.6퍼센트는 시장을 위해 일하고, 46.7퍼센트는 주인을 위해 일하며, 17.7퍼센트는 임금노동자들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도 우리는 대규모 가내생산 체계가 우위에 있고, 노동이 자본에 예속돼 있는 관계가 지배적임을 알게 된다.

 

'인민의 벗들'이 그토록 자유롭게 이런 종류의 사실들을 무시하는 또 다른 이유는, 자본주의에 대한 그들의 개념이 자본가는 거대한 기계 회사를 운영하는 부유하고 교육받은 고용주라는 일반적이고 통속적인 생각을 뛰어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 용어의 과학적인 내용에 주의를 기울이기를 거부한다. 앞의 장에서 우리는 유자코프 선생이 자본주의의 출발을 정확히 기계 공업에서 시작하면서 단순 협업과 매뉴팩처를 생략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는 널리 만연돼 있는 실수로, 부수적으로는 이 나라 수공업의 자본주의적 구성이 무시되는 결과를 낳았다.

 

대규모 가내생산 체계가 자본주의적 산업 형태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여기에는 이미 높은 발전 수준에 도달한 상품경제, 생산수단이 개인들의 손에 집중되는 현상, 수중에 생산수단을 지니고 있지 못해 자신의 노동을 타인 소유의 생산수단에 적용시키며 스스로를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자본가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 대중의 착취라는 그 모든 특징들이 담겨 있다. 분명 그 구성에 있어 수공업은 순전히 자본주의적이며, (주로 터무니없이 낮은 임금 때문에) 기술적으로 뒤떨어져 있고 노동자들이 여전히 소규모 농지를 계속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대규모 기계 공업과는 다르다. 후자의 상황은 특히 '인민의 벗들'을 헷갈리게 만들었는데, 그들은 진정한 형이상학자들이라는 성격에 걸맞게 노골적이고 정반대로 사고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그래, 그래, 아니, 아니, 여기에서는 그게 뭐든 간에 이보다 더한 게 생겨나는 법이야"라는 것이다.

 

만약 노동자들에게 땅이 없다면, 그건 자본주의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만약 그들에게 땅이 있다면, 그건 자본주의가 아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그들은 경제의 전반적인 사회적 구조를 보지 않은 채 그런 철학을 위안 삼아 자기 자신을 그 속에 가둔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다른 뻔뻔한 '농민' 토지소유주들로부터 강탈당한 그들의 끔찍한 빈곤이 전혀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을 망각해버린다.

 

그들은 자본주의가——여전히 비교적 낮은 발전 수준이긴 하지만——어디에서도 노동자를 토지로부터 완전히 분리시킬 수 있다는 걸 모르는 듯하다. 서구 유럽의 경우 마르크스는 오직 대규모 기계 공업만이 노동자를 영원히 착취한다는 법칙을 확립했다. 따라서 '인민들이 토지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자본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투적인 논법은 완전히 쓸모없다는 게 명백하다. 왜냐하면 단순 협업과 공장제 수공업의 자본주의는 노동자의 토지로부터의 완전한 분리와 어디에도 연결된 적이 없고; 그렇다 하더라도 그 때문에 자본주의이길 멈춘 적이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대규모 기계 산업——이 형태는 우리 산업의 가장 크고 중요한 부분을 떠맡고 있다——에 대해서는, 우리 삶의 모든 구체적 특징들에도 불구하고 이 역시 서구 자본주의 어디에서나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다시 말해 노동자들이 토지와의 연결고리를 계속 유지하는 결코 그냥 냅두지 않을 거라는 뜻이 된다. 말이 난 김에, 이러한 사실은 데멘티에프(Dementyev)에 의해 엄밀한 통계자료를 통해 입증된 바 있는데, 거기서 그는 (마르크스와는 아주 별개로) 기계를 이용한 생산이 노동자의 완전한 토지로부터의 분리와 불가분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결론을 도출해냈다. 이러한 연구는 러시아가 자본주의 국가이며, 러시아 노동자들의 토지와의 연결고리는 아주 미약하고 실제하지 않는데다, 자산 소유자(화폐 소유자, 구매자, 부유한 농민, 공장제 수공업자 등)의 권력은 아주 굳건히 확립돼 있으며, 기술적 진전이 한 차례 더 일어나게 되면 (오랫동안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서 생활해왔던) '농민'이 그야말로 노동자로 변신하기에 충분할 거라는 걸 다시 한 번 입증했다.

 

그러나 이 나라 수공업의 경제적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인민의 벗들'의 잘못은 여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노동이 '주인을 위해서' 행해지지 않는 산업들에 대해서조차 그들의 생각은 경작자에 대한 생각(이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다)만큼이나 피상적이다. 어쨌든 그들이 아는 거라고는 세상에는 노동하는 인민과 결합'될 수도 있는' 생산수단 같은 것이 존재하고 그것은 아주 좋은 것인 반면, 그들과 분리'될 수도 있는' 생산수단은 아주 나쁜 거라는 점 말고는 없다. 그런 상황에서 주제넘게도 정치 경제에 관한 질문들에 의견을 늘어놓는 신사양반들의 생각이 피상적인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자본주의화되어가는 산업과 그렇지 않은(소규모 생산이 자유로이 존재하는) 산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크리벤코 선생은 한 편으로 특정 분야들에서 "기본적인 생산 비용"이 얼마 안 되고 따라서 소규모 생산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한 예로 벽돌 산업을 거론하는데, 거기서는 비용이 벽돌공장 연간 매출액의 15분의 1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는 필자가 사실관계를 언급한 거의 유일한 부분이기 때문에(되풀이하건대, 현실에 대한 직접적이고 정확한 묘사와 분석을 씻어 버린 채 소부르주아적 '이상'의 영역으로 날아오르는 걸 선호하는 게 주관적 사회학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이다), '인민의 벗들'이 현실에 대해 어떤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이걸 예로 들어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우리는 모스크바 제스트보의 경제 통계(보고서, 7, 2)에서 벽돌 산업(백토로부터 벽돌을 만들어내는)에 대한 서술을 볼 수 있다. 해당 산업은 주로 보고로즈코에 군의 세 개 읍에 집중되어 있는데, 233개 시설에서 1,402명의 노동자들을 고용하면서 (이중 41퍼센트를 차지하는 567명은 가족 노동자들이다. '가족' 노동자는 고용된 노동자가 아니라, 주인의 가족 가운데 노동에 참여하는 구성원을 뜻한다) 357천 루블의 가치에 해당하는 연간 총생산량을 보유하고 있다. 이 산업은 오래된 산업이지만, 철도 건설로 인해 판매가 대폭 촉진된 덕분에 지난 15년 사이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철도가 건설되기 전에는 가족 생산 형태가 지배적이었으나, 현재는 임금노동자의 착취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또한 이 산업은 판매를 위해 소규모 업자들이 대규모 업자들에 의존하는 현상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자금 부족' 때문에 소규모 업자는 대규모 업자에게 아주 형편없는 가격에 그 자리에서 벽돌을(때로는 굽지 않은 '미가공품') 내다 파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의존성과는 별개로 그 논문에 첨부된, 노동자들의 수와 각 시설 당 연간 총생산량이 표시된 수공업자 가구별 통계 조사 덕분에 해당 산업의 구조 역시도 익히 알 수 있었다.

 

상품경제가 곧 자본주의 경제라는, 즉 일정한 발전 단계에 이르면 상품경제가 필연적으로 자본주의 경제로 전환된다는 법칙이 이 산업에 적용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시설들의 규모를 비교해봐야 한다. 문제는 정확히 생산량에서의 역할과 임금노동의 착취에 따른 소규모와 대규모 시설들 사이의 관계다. 노동자들의 숫자를 기초로 하여, 우리는 수공업자 시설들을 ()(가족 노동자와 고용 노동자를 모두 포함해) 1~5명의 노동자를 고용한 시설, ()6~10명의 노동자를 고용한 시설, ()10명이 넘는 노동자를 고용한 시설, 이렇게 세 집단으로 나눈다.

 

시설들의 규모, 노동자들의 전체 수, 각 집단별 생산량의 가치를 검토한 결과, 우리는 다음의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다.

 

<도표 참조>

 

이 수치들을 살펴보면 부르주아 또는 그와 동일한 것, 산업의 자본주의적 구조를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시설이 크면 클수록 노동생산성은 더 높아지고¹(중간 집단은 예외다), 임금노동자에 대한 착취는 더 심해지며², 생산의 집중도 역시 더 커지는 것이다.³

 

거의 전적으로 임금노동에 기초하고 있는 세 번째 집단은 전체 시설 수의 10퍼센트를 차지하지만, 총생산량은 44퍼센트에 달한다.

 

소수의 손에 생산수단이 이렇게 집중되는 현상, 다수(임금노동자들)의 착취와 연결되어 있는 이런 현상은 소생산자들의 원청(대규모 경영주들은 사실상 원청이다)에 대한 의존과 해당 산업에서의 노동의 억압을 설명해준다. 따라서 우리는 노동계급에 대한 강탈과 착취의 원인이 생산관계 자체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알다시피 러시아의 인민주의 경향 사회주의자들은 그와 반대되는 견해를 지녔고, 수공업에서의 노동의 억압의 원인이 생산관계에(그들은 생산관계가 착취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원칙에 기초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있지 않고 다른 그 무언가, 즉 농업과 재정정책 등에 있다고 여겼다. 그렇다면 그런 견해를 굽히지 않고 이제 거의 편견의 철용성을 구축하게 된 근본 토대는 무엇이었고 또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혹시 수공업에서의 생산관계에 대한 개념이 달라서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단지 사실관계, 즉 경제구조의 실제 형태들을 정확하고 명확하게 묘사하려는 시도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지속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그것은 사회과학의 유일한 과학적 방법론, 즉 유물론적 방법론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이제 우리는 나이든 사회주의자들의 사고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수공업에 관한 한 그들은 착취의 원인을 생산관계 외부로 그 책임을 돌린다. 반면 대규모 공장 자본주의에 관한 한, 그들은 거기에서 착취의 원인이 정확히 생산관계에 있다는 걸 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결과는 화해할 수 없는 모순, 부조화였다. 수공업적 생산관계(이제껏 연구된 적이 없었다!)에서는 자본주의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대규모 자본주의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알 수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수공업과 자본주의적 산업 사이의 연관관계를 이해하지 못한 채 전자를 "인민의" 공업으로, 후자를 "인위적인" 산업으로 대비시켰다는 결론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된다. 이는 자본주의가 우리의 "인민의 시스템"과 모순된다는 발상인 듯하다. 이러한 사고는 오늘날 아주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최근에는 니콜라이-(Nikolai-on) 선생의 수정과 개선을 거쳐 러시아 대중들에게 제시된 바 있으며, 가히 경탄스러울 정도로 비논리적임에도 불구하고 관성적으로 지속되고 있다. 니콜라이-온에 따르면 공장 자본주의는 실제 현실에 기초해 판단되는 반면, 수공업은 '그렇지도 모른다'는 가정에 기초해 판단이 이루어진다. 전자는 생산관계의 분석에 기초해 판단되지만, 후자는 생산관계를 따로 검토하려는 시도조차 없이 판단되며, 그 문제는 곧장 정치의 영역으로 옮겨간다. 우리가 생산관계의 분석에 시선을 돌리기만 한다면, "인민의 시스템"들이 아직 개발되어 있지 않고 맹아적인 상태이긴 하나 지극히 동일한 자본주의 생산관계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 ——만약 우리가 모든 수공업자들이 동등하다는 안일한 편견을 거부하고 그들 사이의 차이들을 정확히 제시한다면——공장의 '자본가''수공업자' 사이의 차이가 '수공업자' 서로 간의 차이보다 작다는 게 때때로 증명될 거라는 사실, 그리고 자본주의는 "인민의 시스템"과 모순되는 게 아니라 그것의 뒤를 잇는 직접적이고 당면한 연속이자 발전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앞에서 인용한 사례가 적당하지 않다는 주장이 있을 수도 있겠다. 주어진 사례에서 임금노동자들의 비율이 대체로 너무 높다는 이야기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⁶⁴ 그러나 실제로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절대적인 수치가 아니라 그들이 드러내는 관계, 즉 그 관계는 본질적으로 부르주아적이고 그 부르주아적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든 약하게 드러나든 간에 그런 상태가 중단되지는 않으리라는 점이다.

 

여러분이 원한다면 다른 사례를 하나 더 들어보겠다. 이번엔 의도적으로 부르주아적 성격이 약한 걸로 골라볼 텐데, (모스크바 주의 산업에 관한 이사예프(Isayev) 선생의 책에 등장하는) 도자기 공업이 그것이다. 이사예프의 표현을 빌리자면 "순수한 가내공업"인 도자기 공업은 당연히 소규모 농민 공업의 대표주자로 여겨질 수도 있다. 기술이 지극히 단순하고, 장비는 아주 작으며, 생산된 물건들이 보편적이고 필수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 앞선 사례에서처럼 동일한 세부사항들을 제시하는 도자기 장인들에 대한 가구별 통계조사 덕분에 우리는 그것의 경제구조도 연구할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다. 도자기 공업은 수량은 러시아 소규모 "인민" 공업의 아주 전형적인 사례다. 우리는 수공업자들을 () (가족 노동자와 고용 노동자를 모두 포함해) 1~3명의 노동자를 고용한 수공업자, () 4~5명의 노동자를 고용한 수공업자, () 5명이 넘는 노동자를 고용한 수공업자, 이렇게 세 집단으로 나눈 다음 동일한 계산을 실시한다.

 

<도표 참조>

 

명백히 이 공업 역시도——그리고 유사한 사례들이 무수히 인용될 수 있겠다——부르주아적 관계라 할 수 있다. 상품경제로부터 발생하는 동일한 분리, 특히 자본주의적 분리가 발견되고, 이는 맨 위의 집단에서 이미 주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임금노동의 착취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맨 위의 집단은 전체 시설들의 8분의 1을 차지하고 전체 노동자의 30퍼센트가 총생산량의 약 3분의 1을 생산하며, 노동생산성은 평균보다 상당히 위에 있다. 이러한 생산관계만으로도 원청의 등장과 권력을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규모가 더 크고 이웃이 더 많이 나는 시설들을 소유하고 타인의 노동으로부터 ''이익을 얻는(맨 위의 도공 집단에서는 시설당 평균 5.5명의 임금노동자들이 일한다) 소수가 어떻게 '절약된 돈'을 축적하는지, 왜 다수는 몰락하고 심지어 소()장인들은 생계조차 이을 수 없는지를 알 수 있다. 다수가 소수에게 예속되는 건 확실한 사실이며 필연적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주어진 생산관계의 자본주의적 성격 때문에 그렇다. 이러한 관계들은 상품경제에 의해 조직된 사회적 노동의 산물이 개인의 수중으로 넘어가 그들의 손에서 노동인민을 억압하고 노예화하는 수단, 대중의 착취를 통해 개인적인 부를 쌓는 수단으로 작용하는 관계다. 그리고 이러한 종류의 관계가 여전히 덜 발달되었기 때문에, 생산자들의 몰락에 부수적으로 따르는 자본의 축적이 무시해도 될 정도이기 때문에 착취와 억압이 보다 덜 뚜렷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는 그와 정반대다. 그것은 오로지 노예의 형태를 띤 보다 더 조악한 착취로 이끌 뿐이다. 즉 아직은 노동자의 노동력을 가지고 그대로 구입하기에 그를 직접적으로 종속시킬 수 없었던 자본이 노동자를 고리대금에 의한 착취의 진정한 그물에 얽어넣고 악랄한 방법으로 묶어놓음으로써 잉여가치뿐만 아니라 임금의 상당 부분을 강탈해가고, 더 나아가 그로 하여금 '주인'을 바꾸지 못하게 함으로써 고통을 가하며, 자본이 그에게 일거리를 '준다는' 사실을 혜택으로 여기도록 강요함으로써 그를 모욕하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진정한" "인민의" 산업이 존재한다면, 단 한 명의 노동자도 러시아의 '독립적인' 수공업자로서의 지위를 그런 지위와 맞바꾸는 데 동의하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급진주의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조치들은 노동인민의 착취와 자본에 대한 노예화에 조금도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며, 여전히 고립된 실험에 머무르거나 노동인민의 상황을 더욱더 악화시키고, 주어진 자본주의적 관계를 세련되게 다듬고 발전시키며 강화시킬 뿐이라는 사실도 명백하다 하겠다.

 

하지만 '인민의 벗들'은 전체적인 비참한 상황과 상대적으로 작은 시설, 극도로 낮은 노동생산성, 원시적인 기술과 소수의 임금노동자들에도 불구하고 농민 산업이 자본주의적이라는 사실을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자본주의가 인민들 사이의 특정한 관계이며, 그 관계는 비교 대상 범주가 더 높은 발전 수준에 있건 더 낮은 발전 수준에 있건 간에 똑같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부르주아 경제학자들도 그걸 절대 이해하지 못해왔다. 그들은 언제나 자본의 그런 정의에 반대해왔다. 나는 그들 가운데 한 명이 (마르크스 이론에 관한) 지버(Sieber)의 책에 대한 글을 루스코에 보가츠트보에 기고하면서 그러한 정의(자본은 관계다)를 인용하며 분개한 마음에 그 뒤에다 느낌표를 달아놓았던 사실을 기억한다.

 

부르주아 체제의 범주를 영원하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부르주아 철학자들에게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자본에 대해서도 그들이 추가 생산을 위해 쓸모가 있는 축적된 노동이라는 그런 정의를 받아들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들은 자본을 인간 사회의 영원한 범주로 묘사하고, 그런 행위를 통해 상품경제에 의해 조직된 '축적된 노동'이 일하지 않는 사람들의 수중으로 들어가 타인의 노동의 착취를 위해 기여하는 역사적으로 명확하고 특정한 경제 구성체의 본질을 흐린다. 그리고 그것이 생산관계의 명확한 시스템에 대한 분석과 연구 대신에 그들이 우리에게 어떤 체제에도 적용할 수 있는 일련의 시시한 말 따위를 제시하고 소부르주아 도덕의 감상적인 어린애 장난 같은 것과 뒤섞을 수 있었던 이유다.

 

그리고 이제 보라. '인민의 벗들'이 이 산업을 "인민의" 공업이라 부르고 그것을 자본주의 산업과 비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단지 이 신사양반들이 소부르주아 이념가들이며, 소생산자들이 상품경제 체제하에 살고 활동하면서(내가 그들을 소부르주아라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들과 시장과의 관계가 반드시 그리고 필연적으로 그들을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갈라놓는다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왜 이러한 현실 구조를 연구하려 하지 않는가? 그랬더라면 우리 "인민의" 산업들이 초래할지도 모르는 결과에 대해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대신에, 자본주의 노선에 따라 조직되지 않고도 어쨌든 발전을 이룬 수공업 분야가 러시아에 존재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소수에 의한 생산수단의 독점, 다수로부터의 소외, 임금노동의 착취가(보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자본주의의 본질은 상품경제에 의해 조직된 사회적 노동의 산물이 개인에 의해 점유되는 것이다) 이런 개념에 필연적이고 적당한 특징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면, 아무쪼록 그들이 자본주의에 대한 '스스로의' 정의와 '스스로의' 역사를 제시해주기 바란다.

 

실제로 우리의 "인민" 수공업의 구조는 자본주의 발전의 전체적인 역사에 있어 훌륭한 실례를 제공해준다. 분명히 그것은 한 예로 단순 협업의 형태(도자기 공업에서 맨 위의 집단)에서 자본주의 발전의 기원과 시작을 나타내준다. 더 나아가——상품경제 덕분에——개별 개인들의 수중에 축적된 '저축'이 어떻게 자본이 되는지, 그래서 이들 저축 소유자들만이 대규모 처분에 필요한 자금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일차적으로 판매를 독점하고 그들로 하여금 멀리 떨어진 시장에서 상품들이 팔려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지, 이들 상인자본(Kaufmannskapital)이 생산자 대중을 어떻게 노예화하고 자본주의 기계제 수공업, 즉 대규모 생산의 자본주의 가내 시스템을 조직하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장의 확대와 늘어나는 경쟁이 어떻게 개선된 기술로 이어지고 이러한 상인자본이 산업자본이 되며 대규모 기계제 생산을 조직하는지 또한 보여준다. 그래서 강해진 힘을 바탕으로 수백만 노동인민과 지역 전체를 노예화한 자본이 공공연하고 뻔뻔하게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정부를 자신의 하인으로 변모시키는 순간, 우리의 천재적인 '인민의 벗들''자본주의 이식'과 그 '인위적인 생성'에 대해 비명을 질러낸다.

 

실로 적절한 발견 아닌가!

 

그러므로 크리벤코 선생이 인민의, 현실적인, 적합한 따위의 산업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는 단지 우리 수공업이 다양한 발전 단계에 있는 자본주의일 뿐이라는 사실을 감추려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미 유자코프 선생의 경우를 통해 이런 식의 수법들을 익히 보아왔다. 그는 농민 개혁을 연구하는 대신에 기념비적인 선언⁶⁵의 근본적인 목적에 대한 공허한 문구들을 활용했고, 토지 지대를 연구하는 대신에 그것을 인민의 지대라 이름 불렀으며, 국내 시장이 어떻게 자본주의를 위해 형성되고 있는지를 연구하는 대신에 시장의 부족으로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봉쇄된다는 등의 철학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은 바 있다.

 

이 대목에서, '인민의 벗' 선생들이 사실을 얼마나 왜곡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나는 한 가지 예를 더 검토해볼까 한다.⁶⁶ 우리의 주관적인 철학자들은 자신들의 가장 정확한 언급 중 하나, 즉 크리벤코 선생이 보로네시 농민들의 예산에 대해 언급했던(1894, 1) 부분을 무시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며 드물게 자세를 낮춰 말한다. 그렇다면 그들 자신이 선택한 데이터를 기초로 삼아보면, 러시아 급진주의자들과 '인민의 벗들'의 사고와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사고 가운데 현실에서 어떤 생각이 더 정확한지를 확실히 할 수 있을 것이다.

 

보로네시 제스트보 통계학자인 시체르비나(Shcherbina)는 오스트로고즈스크 군에서 농사를 짓는 농민들에 대해 서술하면서 전형적인 농가 24곳의 예산 항목들을 덧붙이며 본문에서 그것들을 분석했다.⁶⁷

 

크리벤코 선생은 이러한 분석을 재현하면서도, 그 방법론이 우리 소농들의 경제를 알기 위한 목적에 완전히 들어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거나 보기를 거부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 24곳의 예산은 크리벤코 선생 자신이 지적하듯이(159) 완전히 서로 다른——잘살거나 중간이거나 가난한——가구들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시체르비나와 마찬가지로 그도 전혀 다른 유형의 가구들을 한 덩이로 묶어 그 평균 수치들을 활용하고 있고, 그렇게 해서 그들 간의 차이를 완전히 숨기고 있다. 그러나 우리 소규모 생산자들 내부의 분화는 아주 일반적이고 주요한 사실이라서(오랫동안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여기에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의 관심을 환기시켜왔다. 플레하노프의 저작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크리벤코 선생이 선택한 빈약한 데이터에 의해서조차 아주 뚜렷이 감지된다. 그러나 그는 농민들의 농업을 다룰 때 그들을 농장 규모와 농업 유형에 따른 범주로 나누는 대신, 시체르비나 선생이 그랬듯이 그들을 법적인 범주, 즉 과거의 국유지 농민과 과거 지주들 밑에 있던 농민으로 구분하고 자신의 모든 관심을 후자와 비교했을 때 전자의 번영에 돌리면서 같은 범주 내 농민들 간의 차이가 범주 간의 차이보다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다.⁶⁸ 이를 증명하기 위해 나는 24명 농민들을 세 개의 집단으로 나눠 (a)6명의 잘사는 농민들, (b)11명의 평균적인 농민들, (c)7명의 가난한 농민들을 골라 보기로 한다. 예를 들어 크리벤코 선생은 과거 국유지 농민의 농가당 지출이 541.3루블이고, 예전 지주들 밑에 있던 농민들의 지출은 417.7루블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서로 다른 농민들의 지출이 동등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한 예로 과거 국유지 농민들 중에는 지출이 84.7루블인 사람이 있는 반면 (설사 1,456.2루블을 지출하는 독일 이주민을 제외한다 하더라도) 또 다른 사람은 그 10배에 해당하는 887.4루블이었다. 만약 이를 한데 묶어놓는다면 과연 평균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나 내가 제시하는 범주들로 분류를 할 경우, 잘사는 농민의 농가당 평균 지출은 855.86루블이고, 중간층 농민은 471.61루블, 가난한 농민은 223.78루블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⁶⁹ 그리고 그 비율은 대략 4:2:1이다.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보자. 시체르비나의 발자취를 따라 크리벤코 선생은 다양한 법적 범주의 농민들 사이의 개인적인 필요에 따른 경비를 제시한다. 예를 들어 과거의 국유지 농민들이 연간 채소 음식에 지출하는 일인당 경비는 13.4루블이고, 과거 지주들 밑에 있던 농민들은 12.2루블이었다. 그러나 경제적 범주에 따라 구분할 경우, 그 수치는 (a)17.7루블, (b)14.5루블, (c)13.1루블이었다. 과거 지주들 밑에 있던 농민들이 일인당 고기와 유제품에 지출하는 경비는 5.2루블이고, 과거의 국유지 농민들은 7.7루블이었다. 반면 경제적 범주에 따라 구분할 경우, 그 수치는 각각 11.7루블, 5.8루블, 3.6루블이었다. 이렇듯 범적인 범주에 따른 계산은 이러한 커다란 차이를 덮어버리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명백하다. 따라서 정녕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크리벤코 선생은 과거의 국유지 농민들의 소득이 예전 지주 밑에 있던 농민들의 소득보다 53.7퍼센트 더 크다고 말한다. (24명 농민의) 전체적인 평균은 539루블이고, 두 범주로 나누면 각각 600루블 이상과 약 400루블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인 능력에 따라 등급을 나눈다면, 소득은 (a)1,053.2루블, (b)473.8루블, (c)202.4루블로, 최대 5:1의 비율일 뿐 3:2가 아니었다.

 

또한 크리벤코 선생은 "과거 국유지 농민들의 농가당 자본 가치는 1,060루블이고, 과거 지주 밑에 있던 농민들은 635루블"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경제적 범주에 따라 구분할 경우⁷⁰, 그 수치는 (a)1,737.91루블, (b)786.42루블, (c)363.38루블이었다. 다시 최대 비율은 5:1이지, 3:2가 아니다. 이렇게 '농민'을 법적인 범주로 구분함으로써 필자는 이와 같은 '농민'의 경제에 대한 정확한 판단으로부터 스스로 떨어져버린 것이다.

 

만약 우리가 경제적 능력에 따른 다양한 유형의 농가들을 검토한다면, 잘사는 농가는 평균 1,053.2루블의 소득을 올리고 855.86루블의 경비를 지출해, 197.34루블의 순수익을 얻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에 비해 중간층 가구는 473.8루블의 소득을 올리고 471.61루블의 경비를 지출해, 농가당 2.19루블의 순수익을 거둔다(신용 부채와 체납금은 계산에 넣지 않았다). 분명 이는 생계를 잇기에는 부족한 금액으로, 농가 11곳 가운데 5곳이 적자였다. 반면 최하층 가난한 집단은 직접적인 손실을 보면서 농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소득이 202.4루블, 경비가 223.78루블로, 21.38루블의 적자를 기록한 것이다.¹ 만약 우리가 농가들을 한 덩어리로 묶어서 전체적인 평균(순수익 44.11루블)을 낸다면, 실제 그림이 완전히 왜곡될 수밖에 없다는 건 명백하다. 그럴 경우 순수익을 확보한 6명의 잘사는 농민들이 농업 노동자들(8)을 고용한 사실을 간과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그들의 농업의 성격을 드러내주는 동시에, 그들로 하여금 순수익을 거두들여 '산업'에 의존할 필요성을 사실상 덜어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들 부유한 농민들은 모두 합쳐 자신들 예산의 6.5퍼센트만 산업으로 충당한다(6,319.5루블 가운데 412루블). 게다가 이들 산업들은——시체르비나 선생이 언젠가 언급한 것처럼——'운반'이나 심지어 '양치기'와 같은 유형으로, 의존과는 거리가 멀고 타인의 착취를 미리 전제로 한다(바로 이 경우, 축적된 '저축'은 상인자본으로 전환된다). 이들 농민들은 4개의 산업 시설들을 소유하고, 거기서 320루블의 소득(전체의 5퍼센트)²을 거두들이고 있었다.

 

중간층 농민들의 경제는 유형이 달랐다. 우리가 지켜봤듯이 그들은 거의 생계를 충족시킬 수가 없었다. 농사만으로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채울 수가 없어 소득의 19퍼센트를 이른바 산업으로부터 충당하고 있었다. 그것이 과연 어떤 종류의 산업인지는 시체르비나 선생의 글을 통해 알 수 있는데, 7명의 농민 가운데 오직 두 사람만이 독립적인 산업(양복업과 숯 제조)에 종사하고, 나머지 5명은 자신들의 노동력을 팔고 있었다("저지대에서 풀을 베거나"³, "양조장에서 일한다든지", "주수철에 납품을 팔고", "양을 보살피며", "현지 주민의 사유지에서 일을 한다"). 그들은 이미 반만 농민이고 반은 노동자다. 부업을 함으로써 그들은 농사를 등한시하게 될 수밖에 없고 결국 그들 자신의 농사가 약화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가난한 농민들의 경우, 그들은 순전히 손해를 보면서 농사를 짓는다. 그들의 가계예산에서는 "산업"의 중요성이 훨씬 더 컸고(소득의 24퍼센트), 이때의 산업이란 거의 전적으로(농민 한 명만 제외하고) 노동력의 판매였다. 그들 중 2명의 경우 "산업"(농장 노동)을 통해 얻는 소득이 전체 소득의 3분의 2를 차지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소생산자들의 완전한 분화 과정이라는 사실은 아주 명백하다. 소생산자들 중 상위 집단은 부르주아로 변신했고, 하위 집단은 프롤레타리아가 되었다. 우리가 전체적인 평균을 택한다면 당연히 거기에서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고, 시골 지역의 경제 상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따라서 필자로 하여금 다음의 방법론을 채택하는 게 가능하게 만든 것은 그가 오로지 그러한 허구의 평균을 갖고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해당 군 전체의 농민 농업에서 전형적인 농가들의 지위를 측정하기 위해 시체르비나 선생은 농민들을 분여지 크기에 따른 집단으로 나눴더니, 선택된 농가 24곳의 (전반적인 평균) 변형 수준이 군 내 평균보다 약 3분의 1 가량 더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런 계산법은 만족스럽다고 여겨질 수가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들 24명 농민들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하고 분여지 크기에 따른 분류는 농민층의 분화를 감춰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분여지가 번영의 주요한 원인"이라는 크리벤코 선생의 이론은 완전히 틀렸다. 마을공동체 내 토지를 "동등하게" 분배한다고 해서 말을 소유하지 않은 구성원들이 토지를 포기한 채 일자리를 찾아 떠나 프롤레타리아가 되는 것을 막아주지 못한다는 사실, 또는 다수의 말을 소유한 구성원들이 거대한 땅을 임차해 이윤이 발생하는 큰 농장을 운영하는 것 또한 막아주지 못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농가 24곳의 예산을 가지고 따져보면, 6데샤티나의 분여지를 보유한 한 명의 부유한 농민이 758.5루블의 총소득을 거둬들이고 있었고, 7.1데샤티나의 분여지를 보유한 중간층 농민은 391.5루블, 6.9데샤티나의 분여지를 보유한 가난한 농민은 109.5루블을 거둬들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보면 다양한 집단 간의 소득 비율이 4:2:1인 반면 분여지 비율은 2.6:1.08:1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아주 당연한 것인데, 예를 들어 가구당 22.1데샤티나의 분여지를 보유한 부유한 농민들은 각각 8.8데샤티나를 추가로 더 빌리는 반면 분여지를 더 적게 보유한(9.2데샤티나) 중간층 농민들은 더 적은 규모의 분여지——7.7데샤티나——를 빌렸고, 훨씬 더 적은 분여지(8.5데샤티나)를 보유한 가난한 농민들은 불과 2.8데샤티나만 추가로 임차한다는 사실이 발견됐기 때문이다.⁷⁴ 그래서 크리벤코 선생이 "불행히도 시체르비나 선생이 제시한 데이터는 주 단위는 말할 것도 없고 군 단위에서조차 전체적인 상황을 정확히 측정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말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전체적인 평균을 계산하는 잘못된 방법론(크리벤코 선생이 절대 의지하지 말았어야 하는 방법론)에 의지하는 당신의 행동도 측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말해 시체르비나 선생의 데이터는 아주 포괄적이고 귀중해서 우리로 하여금 정확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었고, 크리벤코 선생이 그리지 못했다면 비난받을 대상은 시체르비나 선생이 아니다.

 

예를 들어 시체르비나 선생은 197쪽에서 농사용 가축에 따른 농민들의 분류를 제시했을 뿐 분여지에 따른 분류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즉 법적인 구분이 아니라 경제적 구분에 따른 분류를 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선택된 전형적인 24곳 농가의 다양한 범주들 사이의 비율이 해당 군을 통틀어 다양한 경제 집단들 사이의 비율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그 분류는 다음과 같았다.

 

<도표 참조>

 

앞에서 볼 때, 전형적인 24곳 농가의 전체적인 평균이 해당 군 내 농가보다 전반적으로 운영 면에서 뛰어나다는 점은 의심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허구의 평균 대신에 경제적 범주를 택해보면, 제대로 된 비교가 가능해진다.

 

우리는 전형적인 농가들에서 일하는 농장 노동자들이 농사용 가축을 갖고 있지 못한 농민들보다 다소 아래에 위치해 있지만, 그들에 매우 근접해간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가난한 농민들은 농사용 가축을 한 마리 보유한 농민들에 아주 가깝게 다가서고 있다(소의 숫자는 가난한 농민들이 2.8마리, 말을 한 마리 보유한 농민들이 3.0마리로, 0.2마리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중간층 농민은 농사용 가축을 두세 마리 보유한 농민들보다 약간 위에 위치해 있다(그들은 소는 약간 더 많고 땅은 약간 더 적다). 반면 부유한 농민들은 농사용 가축을 네 마리 이상 보유한 농민들보다 약간 아래에 위치한 상태에서 그들에 근접해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군 전체에서 이윤이 나는 농사에 규칙적으로 종사하면서 외부 일자리를 찾을 필요가 없는 농민들이 10분의 1을 넘어선다는 결론을 도출해낼 수가 있다(그들의 소득은——중요하게 언급할 가치가 있다——화폐로 표현되며, 따라서 상업적 성격의 농업을 전제로 한다). 대체로 그들은 고용된 노동자들의 일손을 빌려 농사를 짓는다. 전체 가구의 4분의 1 이상이 정규 농업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일시적으로 일용직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가구의 수는 알려져 있지 않다. 반면 군 내 농민의 절반 이상은 가난하고(말이 없는 농민 26퍼센트+한 마리가 있는 농민 31.3퍼센트=57.3퍼센트로, 60퍼센트에 가깝다) 순전히 적자 상태에서 농사를 짓고 있으며, 가차 없는 강탈에 꾸준히 시달린 끝에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의 노동력을 팔 수밖에 없고, 농민들의 약 4분의 1은 이미 농업보다는 임금노동에 더 많이 생계를 의지한다. 나머지 중간층 농민들은 어쨌든 정기적인 손실을 보면서 농사를 짓는데, 외부 수입으로 그걸 보충하고, 따라서 어쨌든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지 않다.

 

나는 크리벤코 선생이 제시한 그림이 실제 상황을 얼마나 왜곡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이들 데이터를 아주 구체적으로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그는 전체적인 평균을 가지고 작업을 수행하고 있었고, 당연히 그 결과는 허구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거짓이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전형적인 24가구의 예산 중에서) 한 명의 잘사는 농민의 총소득(+197.34루블)이 가난한 아홉 농가의 적자를 메워주고(-21.38×9=-192.42), 그래서 해당 군 내 10퍼센트의 부유한 농민들이 57퍼센트의 가난한 농민들의 적자를 상쇄해줄 뿐만 아니라 일정 정도 잉여를 산출해낸다는 사실을 보았다. 그리고 24곳 농가의 평균예산으로부터 44.14루블의 잉여를 이끌어낸——또는 신용 부채와 체납금 15.97루블을 차감한——크리벤코 선생은 그저 중간층과 중하층 농민들의 '쇠퇴'를 이야기할 뿐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마도 중간층 농민들을 언급할 때만 쇠퇴를 이야기할 수 있는 반면⁷⁸, 가난한 농민 대중의 경우에는 직접적인 수탈, 즉 상대적으로 크고 튼튼하게 자리 잡은 농장을 소유한 소수의 손에 생산수단이 집중된 결과로 인한 강탈을 목격한다.

 

이러한 후자의 상황을 무시했기 때문에 크리벤코 선생은 농가 예산들의 또 다른 아주 흥미로운 특징, 다시 말해 농민층의 분화가 국내 시장을 창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것들이 마찬가지로 증명해준다는 것을 관찰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한편으로 우리가 최상위에서 밑바닥까지 훑어보면, 산업, 곧 주로 노동력의 판매로부터 얻는 소득의 중요성이 점점 커진다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부유한 농민과 중간층 농민, 그리고 가난한 농민 각각의 총예산의 6.5퍼센트, 18.8퍼센트, 23.6퍼센트). 다른 한편으로 맨 밑바닥에서 최상위의 순서로 훑어보면, 농업의 상품적(이라기보다는 부르주아적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성격이 증가하고 처분되는 농산품의 비율이 늘어난다는 것을 목격한다. 각 범주별로 농업에서 거둬들이는 총소득은 a3,861.7/1,774.4, b3,163.8/899.9, c689.9/175.25.

 

분모는 소득의 화폐 부문을 가리키는데,⁷⁹ 최상위 범주에서 맨 밑바닥으로 가면서 각각 45.9퍼센트, 28.3퍼센트, 25.4퍼센트를 차지한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강탈당한 농민들로부터 가져간 생산수단이 어떻게 자본으로 변화하는지를 똑똑히 보게 된다.

 

그러한 방식으로는 크리벤코 선생이 활용된 자료로부터 정확한 결론을 이끌어낼 수 없었음은 아주 분명하다. 철도로 같은 여행한 그 지역 한 농민으로부터 들은 것에 기초해 노브고로드 주 농민 농업의 화폐적 성격을 묘사한 뒤에야 그는 "가능한 저렴하게 풀을 베" "그것을 가능한 좋은 가격에 팔기 위한" "특별한 능력들""배양하고"(156)⁸⁰ 한 가지에 물두하게끔 만드는 것이 바로 이러한 환경, 즉 상품경제라는 정확한 결론을 내지 않을 수 없었다. 상품경제는 "상업적인 재능을 일깨우고 세련되게 만드는 학교"로서 기능한다. "재능 있는 사람들이 전면에 나서 콜파예프(Kolpayev)와 데루노프(Derunov)¹, 그 외 다른 유형의 피를 빨아먹는 착취자들이 되는² 반면, 우직하고 둔한 사람들은 뒤처지고 퇴화해 궁핍해진 끝에 농장 노동자 대열로 들어섰다."(156)

 

전혀 다른 조건들이 지배적인 주——농업이 주산업인 주(보로네시)——의 데이터에서도 도달한 결론은 정확히 같았다. 이를 본 사람들은 상품경제 체제가 나라 전반의 경제 생활의 주된 배경이자 특히 "공동체" "농민층"의 가장 큰 바탕으로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상황이 아주 명확해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품경제만으로도 "인민들""농민층"이 프롤레타리아(몰락해서 농장 노동자 대열에 들어선)와 부르주아지(피를 빨아먹는 착취자들)로 분화되고 있다는, 즉 자본주의 경제로 전환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두드러진다. 그러나 '인민의 벗들'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감히 말하지 못한다(그건 너무 "가혹한" 요구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크리벤코 선생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상태를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그는 생산관계의 자본주의적 성격의 아주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덧붙였어야만 했다. 그랬다면 "일부 사람들"의 관점에 대한 정확한 묘사가 이루어졌을 테고, 그가 공허한 미사여구로 그들의 견해를 폐기처분하는 게 불가능했을 것이며, 그 역시 실질적인 문제의 분석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그 "일부 사람들"과의 싸움에 의도적으로 나서지 않는 바람에 그는 스스로 화폐경제가 "재능 있는" 착취자들과 "우직한" 농장 노동자들을 만들어내는 "학교"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것을 자본주의의 저항할 수 없는 임무라 여긴다."(, 물론이지! 이러한 "학교"와 그것을 지배하는 "착취자들"에 맞선 투쟁을 그들의 관료와 지식인 끄나풀들과 함께 벌여나가야만 한다고 믿는 것은 자본주의가 극복될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학교"와 그 착취자들에게 완전한 면죄부를 부여하고 반쪽짜리 자유주의적인 조치들의 힘을 빌려 자본주의의 산물들을 제거하고자 하는 것은 '인민의 벗들'의 진정한 속성이다!) "우리는 문제를 다소 다르게 바라본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자본주의는 의심할 나위 없이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만"(이는 착취자들과 농장 노동자들의 학교에 대한 언급을 가리키는 대목이다) "그 역할이 모두를 아우르기에 너무나 결정적이어서 그 외 다른 어떤 요인도 국민 경제에서 발생하는 변화에는 책임이 없고, 미래에 다른 어떤 해결책도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는 말할 수 없다."(160)

 

과연 그렇군! 현재의 시스템에 대한 정확하고 직설적인 묘사 대신에, '농민층'이 왜 착취자들과 농장 노동자들로 갈라지는가라는 질문에 명확한 대답을 내놓는 대신에, 크리벤코 선생은 "자본주의의 역할이 결정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알맹이 없는 문장으로 그 문제를 일축해버린다. 글쎄, 그렇다면 이제 남은 질문은 과연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 없느냐일 것이다.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려면 그는 다른 어떤 요인들이 '결정적'이며,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지적한 것 외에, 즉 착취자들에 맞선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³ 외에 다른 어떤 '해결책'이 있을 수 있는지를 보여줬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게 아니면 혹시 다음의 문장을 두고 자신이 보여주었다고 여기는 걸까? 우스울지 몰라도, '인민의 벗들'로부터 뭘 더 기대하겠는가.

 

"우리가 알다시피 맨 먼저 쇠락한 이들은 토지가 빈약한 취약 농가들이다." 5데샤티나 미만의 분여지를 보유한 농가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15.7데샤티나의 분여지를 확보한 전형적인 국유지 농민 농장들은 안정성 면에서 차이가 난다. …… 실제로 그 정도 소득(80루블의 순수익)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들은 추가로 5데샤티나를 임차하지만, 그건 그저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인지를 보여줄 뿐이다."

 

아니, 높은 '토지 빈곤'을 자본주의와 연결시키는 이런 '수정주의적 사고'는 과연 무엇에 해당하는가? 조금밖에 못 가진 사람들은 그마저도 잃어버리는 반면, 많이 가진(각각 15.7데샤티나씩) 사람들은 훨씬 더 많은 걸 얻게 된다는 의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⁸⁴ 그러나 이는 일부 사람들은 몰락하고 다른 이들은 부유해진다는 말을 아무 의미 없이 바꿔 말한 것에 불과하다!! 이제 어떤 것도 해명해주지 못하는(농민들이 분여지를 공짜로 받는 게 아니라 그걸 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토지 빈곤에 대한 의미 없는 이야기와 결별할 가장 좋은 시점이 다가왔다. 그것은 단지 과정만을 묘사해줄 뿐이며, 더군다나 부정확하기까지 하다. 그 이유는, 우리가 토지만을 가지고 이야기할 게 아니라 생산수단 전반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며, 농민들이 토지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한다"고 이야기할 게 아니라 토지로부터 분리되고 있으며, 날로 성장하는 자본주의에 의해 수탈당하고 있다고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리벤코 선생은 자신의 철학적인 담론을 마무리 지으며 "농업이 어떠한 상황 아래서도 '자연발생성'을 유지하며 제조업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어야 하고 또 그럴 수 있다고 말할 의도는 없다"고 말한다(말이 또 바뀌는군! 화폐 경제라는 학교가 이미 존재하고, 그것은 교환을 전제로 하며, 그 결과 농업이 제조업으로부터 분리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 건 당신이 아니었던가? 왜 또 뭐가 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꺼냈을까 하겠다).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건 인위적으로 분리된 산업을 창출하는 것이 비이성적이며"(컴퓨터 파블로보의 수공업이 "분리"되어 있는지, 누가 그것을 "인위적으로" "창출"했으며, 언제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를 알아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노동자를 땅과 생산도구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은 자본주의에 의해서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에 선행하고 그것을 증진시키는 다른 요인들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전부다."

 

여기서 그는 다시, 만약 노동자가 토지로부터 분리돼 착취자의 손아귀로 넘어간다면 이는 노동자가 '가난하기' 때문이며 착취자가 땅이 '많기' 때문이라는 심오한 사상을 염두에 두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러한 부류의 철학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자본주의를 결정적 요인으로 간주하는 '편협함'을 드러내고 있다고 비난을 해준다! 나는 농민과 수공업자의 분화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한 번 더 고찰해보았다. 왜냐하면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문제를 어떻게 묘사하고 설명하는지를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관적 사회학자가 보기엔 농민들은 '가난해지는' 반면 '돈을 쫓는 이들''착취자들''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이윤을 이끌어낸다'는 걸 의미하는 사실관계들이, 유물론자에게 있어서는 상품 생산 자체의 필요에 따른 상품 생산자들의 부르주아적 분화를 의미한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자산계급과 무산계급 사이의 투쟁이 공장에서 뿐만 아니라 머나면 오지 마을에서도 진행되고 있다는 논지, 모든 곳에서 이러한 투쟁은 상품경제의 결과로 등장하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투쟁이라는 (앞서 1부에서 인용⁸⁵) 논지의 근거로 작용하는 사실관계들이 어떠한 것들인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젬스트보 통계가 제공한 존경스러운 자료 덕분에 정확히 서술될 수 있었던 농민들과 수공업자들의 해체와 탈농민화는 러시아의 현실을 바라보는 사회민주주의적 인식, 다시 말해 농민과 수공업자가 그 단어의 '단정적인' 의미에서 소생산자, 곧 소부르주아라는 인식의 정확성의 실질적 증거를 제공해준다. 이러한 논지는 소생산자들이 살아가는 상품경제의 환경이나 그러한 환경 때문에 그들이 자본주의적으로 분화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옛 농민사회주의에 맞서는 것으로서의 노동계급 사회주의 이론의 핵심이라 불릴 수 있다. 따라서 사회민주주의를 진지하게 비판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간에 자신의 주장을 여기에 집중시켜야 했을 뿐더러, 정치경제학의 시각에서 봤을 때 러시아가 상품경제 체제가 아니며, 그래서 농민층의 해체가 상품경제 체제 때문에 비롯된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인민 대중의 강탈과 노동인민의 착취는 이 나라 사회(농민을 포함한) 경제의 자본주의적 구조인 부르주아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 그럼 어디 한번 해보시게나, 신사양반들!

 

내가 사회민주주의 이론의 실증적 증거로 택하기를 선호하는 것이 농민과 수공업 경제에 관한 데이터인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만약 '인민의 벗들'의 관점을 비판하면서 내가 그들의 사고를 마르크스주의 사상과 대조하는 데 그쳤더라면, 그건 유물론적 방법론으로부터 멀어지는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우리는 거기에 덧붙여 '인민주의적' 사고에 대해 설명하고, 이 나라의 현재 사회적·경제적 현실에서 그들의 물질적 토대를 증명해야만 한다. 이 나라 농민과 수공업자의 경제에 관한 예증과 사례들은 '농민'의 신망을 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인민의 벗들'이 농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준다. 그것들은 이 나라 농촌 경제의 부르주아적 성격을 증명해주고, 따라서 '인민의 벗들'을 소부르주아의 이념가들로 분류하는 게 적합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그러나 이게 전부는 아니다. 그것들은 이 나라 급진주의자들의 사상과 계획들이 소부르주아들의 이해관계와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내준다. 그들의 계획들을 구체적으로 검토해보면 훨씬 더 분명해질 이런 연관관계는 도대체 급진적인 사상들이 왜 그토록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지를 설명해준다. 또한 그것은 '인민의 벗들'의 정치적 노예근성과, 기꺼이 타협할 준비가 되어 있는 그들의 태도 역시도 훌륭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자본주의가 아직 채 발달하지 않은 우리 사회의 그와 같은 경제학적 측면들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고찰해야 할 또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인민주의자들이 보통 자신들의 이론을 위한 자료를 끌어오리는 그런 경제학에 대한 연구와 서술은 사회민주주의 경향에 대해 이곳 인민들 사이에 아주 만연해 있는 반발의식에 실질적으로 대답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자본주의가 "인민의 시스템"과 모순된다는 일반적인 생각으로부터 더 나아가, 그리고 대규모 자본주의를 진보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강도 같은 현 체제에 맞서 싸우는 토대로 삼고 싶어하는 것이 다름 아닌 대규모 자본주의라고 주장하는 이 나라 급진주의자들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농민 대중의 이익을 무시한 채 "모든 농민을 공장의 용광로로 밀어넣기를" 바란다는 등의 비난을 한다.

 

이 모든 주장들은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실제 있는 그대로 판단하면서도 시골 지역의 경우에는 '그렇지도 모른다'고 판단하는, 놀라우리만치 비논리적이고 이상한 과정에 근거를 두고 있다. 당연히, 그들에게 실제 농촌과 그곳의 실제 경제 상태를 보여주는 것보다 더 좋은 답변은 있을 수 없다.

 

농촌의 경제 환경을 감정에 좌우되지 않고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러시아 농촌이 따로 떨어진 작은 지역들의 사회적·경제적 생활을 규정하는 작고 흩어진 시장들의(또는 중앙 시장의 작은 부문들의) 체계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지역에서 우리는 시장이 규제하는 사회적·경제적 구조에 대체로 특징적인 모든 현상을 발견한다. 한때 동등하고 가부장적이었던 직접생산자들이 부자와 가난한 이들로 분화되는 것을 발견할 것이며, 노동인민 주위에 그룹을 치고 그들에게서 생명소를 빨아가는 자본, 특히 상인자본의 부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급진주의자들이 제시한 농민 경제에 관한 묘사를 농촌의 경제 생활에 관한 정확한 1차 데이터와 비교해보면, 그들의 비판적 사고 체계에서는 각 지역의 시장에 때 지어 모여 있는 영세한 장사치들과 행상, 중개인들, 시장을 장악한 채 노동인민들을 가차 없이 억압하는 소착취자 무리들을 위한 자리는 없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그들은 대개 "더 이상 농민들은 없고 장사치들만 있다"는 언급 정도만으로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는 것이다. 그래, 그 말은 아주 옳다. '더 이상 농민은 없었다.' 그러나 그런 '상인들' 모두를 뚜렷이 구별되는 집단, 즉 정확한 정치경제학 용어로 말하자면 영리 기업에 종사하고 그 정도가 어떻게든 간에 타인의 노동을 점유하는 사람들로 취급하려고 시도해보기 바란다. 그리고 이 집단의 경제적 힘과 그들이 지역 전체의 경제 생활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정확히 수치로 표현하려 노력해보라. 그런 다음 자신의 노동력을 시장에 내다 팔고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서 일하기 때문에 '더 이상 농민이 아니게 된' 사람들을 정반대 집단으로 설정해보라.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진지한 조사를 위한 기초적인 요구조건들을 충족시켜나가려 애쓰다 보면, 부르주아적 분화라는 아주 생생한 그림을 얻게 될 것이고 더 이상 "인민의 시스템"이라는 신화는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될 테니 말이다. 이런 소규모 시골 착취자들 무리는 끔찍한 세력을 대표한다. 특히 고립된 채 혼자 일하는 임금노동자를 억압하고, 그를 자신들에게 얽어매 일말의 구제받을 희망조차 앗아가기 때문에 끔찍하다. 그리고 앞서 묘사된 그 시스템의 특징인 낮은 노동생산성과 의사소통 수단의 부재에서 기인한 시골의 야만적인 환경에 비춰볼 때 그들에 의한 착취는 노동의 강탈일 뿐만 아니라 농촌에서 끊임없이 맞닥뜨리는 인간 존엄의 아시아적 침해에 해당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이제 이 실제의 시골을 우리의 자본주의와 비교해본다면,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이 나라 자본주의의 역할을 진보적이라 여기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는 작고 흩어진 시장들을 전국적인 차원의 단일 시장으로 한데 끌어모으고, 선의를 가진 소규모 착취자 무리들을 대신해서 한 줌의 커다란 '조국의 대들보들'을 창조해내며, 노동을 사회화하고 그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한편, 지역 착취자들에 의한 노동인민의 예속을 박살내고 그들을 대규모 자본에 종속시킨다. 그리고 이때의 종속은 노동의 억압과 점진적인 소멸, 야만성, 신체를 손상당한 여성과 아이들 등 그 모든 공포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예속과 비교해볼 때 진보적이다. 그 이유는 그것이 노동자계급의 의식을 각성시키고, 침묵하거나 일관성 없던 불만을 의식적인 투쟁으로 전환시키며, 흩뿌리진 채 벌어지던 사소하고 무분별한 반란을 모든 노동인민의 해방을 위한 조직화된 계급투쟁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투쟁은 대규모 자본주의의 존재라는 바로 그 조건 자체로부터 동력이 생겨나며, 따라서 의심할 나위 없이 일정한 성공을 확신할 수 있다.

 

아무튼 농민 대중을 무시한다는 비난에 대한 응답으로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카를 마르크스의 다음과 같은 말들을 인용함으로써 전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비판은 사슬을 장식하고 있던 가공의 꽃들을 뽑아버렸는데, 그것은 인간이 상상 속의 장식물이 벗겨진 족쇄를 그대로 차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 사슬을 벗어던져버리고 살아있는 꽃을 향해 손을 뻗어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날 러시아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농촌을 장식한 가공의 꽃들을 뽑아버리고, 이상화와 환상에 맞서 싸우며 그것을 파괴하기 위한 작업을 수행해나가고 있다. 농민 대중을 현재의 억압과 점진적인 소멸, 노예화 상태에 머무르지 않게 하고, 어디서나 노동인민을 속박하는 사슬의 정체가 무엇이며 그 사슬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프롤레타리아가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그래서 그들이 그에 맞서 떨쳐일어나 사슬을 벗어던지고 현실의 꽃을 향해 손을 뻗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인민의 벗들'이 사회민주주의자들을 그토록 극도로 혐오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자신들이 처한 위치 덕분에 스스로 계급의식을 획득하고 계급투쟁을 시작할 수 있게 된 노동인민의 대표들에게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그와 같은 사상을 펼쳐놓는 순간, 그들은 농민들을 공장의 용광로로 밀어넣기를 원한다는 비난에 처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사회민주주의자들을 비난하는 그들은 과연 어떤 이들인가?

 

'정부''사회', 즉 도처에서 노동인민을 속박해온 부르주아 기관들에, 노동인민의 해방을 향한 희망을 거는 사람들이다!

 

그리고도 이런 무대 없는 인종들이 건방지게도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이상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등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별 소득 없는 나날들이 가장 버티기 힘든 법이다. 


이 시기를 잘 보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발행자의 주석

 

앞서 독자들은 일부 질문들에 대해 추가로 검토했다는 언급들을 보았을 텐데, 실제로는 그런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현재의 글이 루스코에 보가츠트보에 실린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기사들에 대한 답변의 1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극심한 시간 부족으로 인해 이 글을 매맞춰 발표하지 못했던 우리는 이미 두 달이나 늦어버린 상황에서 더 이상 미루는 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고, 그래서 글 전체가 인쇄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미하일롭스키 선생의 '비판'에 대한 고찰을 먼저 발행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준비 중인 2, 3부에서 독자들은 1부에서 제시된 검토에 덧붙여, 러시아의 경제 상황에 대한 글과 뒤이어 나온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사상과 전술과 관련해 루스코에 보가츠트보의 다른 핵심 인물들인 유자코프와 크리베코의 사회적·경제적 관점에 대해 검토한 글을 보게 될 것이다.

 

현행 판에 대한 주석

 

현행 판은 초판을 정확히 복제한 것이다. 본문을 편집할 때 전혀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수정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오로지 출판에 관계된 일만 했다. 우리가 이 작업을 맡은 것은 이 소책자가 우리의 사회민주주의 정치선전을 부흥시키는 데 일정 정도 기여할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사회민주주의적 신념의 피할 수 없는 귀결 중 하나가 그런 정치선전을 촉진시킬 준비를 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믿음 속에서, 우리는 이 소책자의 저자와 견해를 같이하는 모든 이에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물론 특히 재발행을 통해서도) 이 책자와 마르크스주의를 선전하는 모든 기관지들이 가능한 널리 배포될 수 있도록 지원해줄 것을 호소한다. 지금이 그 일을 하기에 특히나 적당한 때다. 루스코에 보가츠트보는 우리를 향해 점점 더 도발적인 논조를 취하고 있다. 사회민주주의 사상이 사회에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그 잡지는, 우리가 프롤레타리아트의 이익에는 관심이 없으며 대중의 파멸만 초래하고 있다고 노골적인 비난을 퍼붓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감히 생각건대 그런 방법은 오직 스스로에게만 상처를 입히고 우리의 승리를 향한 길을 닦아줄 뿐이다. 하지만 이런 중상모략관들이 자신들의 정치선전 모략을 아주 널리 퍼뜨릴 모든 물질적 수단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발행부수가 수천 부에 달하는 잡지를 소유하고 있고, 열람실과 도서관을 마음껏 활용하고 있다. 따라서 설사 특권적 위치의 이점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언제나 성공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적들에게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야 할 것이며, 그런 노력이 현실화되리라는 것을 전적으로 확신하는 바다.

 

1894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미하일롭스키 선생이 싸우는 법

 

그럼 이제 미하일롭스키 선생이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맞서 어떻게 싸우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그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이론적 견해, 그들의 정치적·사회주의적 활동에 대해 어떤 주장들을 내놓고 있을까?

 

그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이론적 견해를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진실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선언한 바에 따르면) 역사적 필연성의 내재적 법칙에 따라 러시아가 자체의 모든 고유한 모순을 안고 더불어 소수 자본가들이 막대한 몫을 빨아들이면서 스스로의 자본주의 생산을 발전시킬 것이라는 것, 그러는 사이 토지로부터 유리된 농민(muzhik)들은 프롤레타리아로 변신해 통합되고 사회화될 것이라는 것, 그리고 모자가 다시 나타나 사람들의 머리에 씌워지는 마술이 일어나고 인류 모두가 행복해질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가 아닌 오직 "전망"만을 취급하는 것처럼 보이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미래에 대한 생각에서만 다를 뿐, 어쨌든 간에 현실 인식에 있어서는 놀랍게도 '인민의 벗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이 미하일롭스키 선생의 생각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미래에 대한 자신들의 예측에서 유토피아적인 부분은 전혀 없고, 모든 것은 엄밀한 과학의 요구에 따라 저울질되고 측정된다는 걸 전적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말한다. 최종적으로, 그리고 훨씬 더 명백히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추상적인 역사 도식의 불변성을 믿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우리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견해에 맞서 아무것도 구체적으로 내놓을 게 없는 사람들 모두가 오랫동안 동원해온 마르크스주의자들에 대한 가장 시시하고 저속한 비난을 눈앞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추상적인 역사 도식의 불변성을…… 주장한다'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새빨간 거짓말, 꾸며낸 이야기일 뿐이다!

 

서구에 자본주의가 존재하기 '때문에' 러시아에 자본주의가 '존재해야 한다'고는 그 어떤 마르크스주의자도 어디에서도 주장한 적이 없다. 그 어떤 마르크스주의자도 마르크스의 이론을 역사에 관한 보편적이고 필수적인 철학적 도식이라고, 특정한 경제적 사회구성체에 대한 설명 그 이상이라고 간주한 적이 없다. 오직 주관적 철학자인 미하일롭스키 선생만이 마르크스에 대한 이해 부족을 이런 식으로 드러내며, 보편적인 철학 이론이라 주장했다며 마르크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그에 대한 답변으로 미하일롭스키가 엉뚱한 문을 두들기고 있음을 아주 명쾌하게 해명해주었다. 그 어떤 마르크스주의자도 현실과 주어진 역사, 즉 러시아의 사회적·경제적 관계 외의 다른 것을 근거로 하여 사회민주주의적 견해를 품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하려야 할 수가 없었는데, 왜냐하면 마르크스주의의 창시자인 마르크스가 직접 이론에 있어서의 그런 요구사항을 아주 분명하고 확실하게 선포하며 그것을 전체적인 교리의 주축들로 삼았기 때문이다.

 

물론 미하일롭스키 선생은 자신이 '자신의 귀로 직접' 추상적인 역사 도식에 관한 고백을 들었다고 주장함으로써 마음껏 이런 주장을 반박할지 모른다. 그러나 미하일롭스키 선생이 직접 대화를 나눈 사람들로부터 그 모든 종류의 터무니없는 첫 소리를 들을 기회를 얻었다는 사실이 우리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나 다른 그 누군가에게 있어 뭐가 그리 중요할까? 그건 그저 그가 자신이 대화할 사람들을 선택할 행운을 누렸다는 걸 보여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을까? 물론 그 재치 넘치는 철학자의 재치 넘치는 대화 상대자가 스스로를 마르크스주의자나 사회민주주의자 등으로 불렀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요즘은 (오래전에 밝혀졌듯이) 악당들이 저마다 '빌려온' 옷으로 차려 입고 싶어한다는 걸 누가 모르냐?⁴⁷ 그리고 만약 미하일롭스키 선생이 너무나 명민한 나머지 그런 '광대들'과 마르크스주의자들을 구별하지 못했다면, 또는 마르크스를 너무나 심오하게 이해한 나머지——마르크스가 아주 강력히 전개했던——교리 전체(우리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의 공식화)의 이런 기준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그것은 단지 미하일롭스키 선생이 영리하지 않다는 걸 다시 한 번 증명해줄 뿐이다.

 

어쨌든 미하일롭스키는 해당 매체에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을 격렬하게 비판했던 사람으로서, 오랫동안 사회주의자로서의 명성을 흘로——그래서 다른 이들과 혼동되지 않는——유지하고 글자 그대로 대표해온 플레하노프와 그의 서클⁴⁸이라 할 수 있는 사회주의자 그룹에 신경을 써야 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했더라면——품위 있는 사람이라면 응당 했어야 하는 행동이다——만약 그가 최초의 사회민주주의 저작인 플레하노프의 '우리의 차이점들'을 참고 삼아 펴보기라도 했다면, 맨 처음 시작 부분에서 서클의 모든 구성원들을 대신해 플레하노프가 단호하게 천명했던 다음의 대목을 발견했을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는 위대한 이름의 권위로(즉 마르크스의 권위로) 우리의 강령을 잡식하는 걸 원치 않는다."

 

미하일롭스키 선생, 당신 러시아어 알아들을 수 있을 거 아니오? 러시아의 정세를 판단할 때 추상적인 도식들을 주장하는 것과 마르크스의 권위를 완전히 부인하는 것의 차이를 이제 이해하겠소?

 

당신이 당신의 대화 상대에게 우연히 들은 첫 번째 견해를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대표하는 의견인 것처럼 말하고, 전체 사회민주주의 그룹을 대표해서 그 핵심 구성원 한 사람이 천명한 내용을 무시한 것이 얼마나 정직하지 못한 행동이었는지 깨달았소?

 

그런 다음 플레하노프의 선언은 훨씬 더 명확해진다.

 

그는 "되풀이하건대, 가장 일관성 있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러시아의 현 상황에 대한 평가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정책은 "이런 특정한 과학 이론을 아주 복잡하고 서로 얽혀있는 사회적 관계에 적용하려는 최초의 시도"라고 말한다.

 

과연 이보다 어떻게 더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마르크스주의자인 그들은 마르크스의 이론 가운데 매우 귀중한 방법론만을 주저 없이 빌려왔다.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사회적 관계를 해명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사회적 관계에 대한 자신들의 판단 기준을 추상적인 도식 같은 헛소리가 아니라 현실에 대한 마르크스 이론의 정확도와 일치에서 찾았다.

 

아마도 여러분들은 이러한 주장을 할 때 필자가 실제로 다른 무언가를 머릿속에 그리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가 상대했던 질문은 '러시아가 자본주의적 발전 단계를 거쳐야만 하는가?'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런 식의 질문은 마르크스주의 공식에서는 전혀 제시된 적이 없었고, 당국의 정책이나 '사회'의 활동, 또는 '인간 본성에 조응하는' 사회의 이상 같은 헛소리에서 그러한 '~해야만 한다'의 기준을 발견하는 우리의 여러 다양한 토박이 철학자들의 주관적 방법론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추상적인 도식을 믿는 인물이라면 그런 질문에 어떻게 대답했어야 하는가를 묻는 편이 공정할 것이다. 그리고 분명 그는 변증법적 과정의 명백함, 마르크스 이론의 전반적인 철학적 중요성, 모든 나라가 그 단계를 거쳐야 할 필연성 등에 대해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플레하노프는 거기에 어떤 대답을 내놓았는가?

 

마르크스주의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대답했다.

 

플레하노프는 '~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은 완전히 제쳐두었다. 오직 주관론자들만 흥미를 느낄 법한 쓸데없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오로지 현실 사회와 경제 관계와 그것들의 실제적 진화만을 다루었다. 그가 그런 잘못된 질문에 대해 직접적인 대답을 내놓기보다는 "러시아는 이미 자본주의의 길로 들어섰다"고 대답한 것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미하일롭스키 선생은 추상적 역사 도식들에 대한 믿음에 대해, 내재적인 필연 법칙에 대해, 그리고 그와 유사한 믿기 힘든 허튼소리에 대해 전문가인 척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는 이것을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대한 격렬한 비판"이라 부른다!!

 

만약 이것이 격렬한 비판이라면, 나는 대체 대체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또한 앞에서 인용된 미하일롭스키 선생의 주장과 관련해 그가 사회민주주의자들의 관점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러시아는 스스로의 자본주의적 생산을 발전시키게 될 것이다." 이 철학자의 견해로는 러시아는 분명 "스스로의" 자본주의적 생산에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 그는 확실히 러시아 자본주의가 150만 노동자들에게 국한된다는 의견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는 나중에 뒷부분에서 우리 '인민의 벗들'의 이런 유치한 발상과 다시 마주치게 될 것이다. 맹세코 그들은 자유노동의 모든 다른 형태들을 다음의 주제 아래 분류하고 있다. "러시아는 스스로의 자본주의적 생산을 그 고유한 모순들 속에서 발전시킬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토지로부터 분리된 농민들은 프롤레타리아로 전환될 것이다." 술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수록 나무는 더 많은 법! 그래서 오늘날 러시아에는 아직 "고유한 모순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또는 단순히 말해, 소수 자본가들에 의한 다수 민중의 착취가 존재하지 않고, 인구의 절대 다수는 몰락하는 가운데 소수만 배를 불리는 현상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고? 농민들이 토지로부터 분리되는 과정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농민에 대한 대규모 강탈이 없었다면 러시아의 개혁 이후 전체 역사가 어떻게 그렇게 비할 데 없는 강도로 전개될 수 있었을까? 실로 엄청난 용기를 지니고 있지 않고서야 저런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미하일롭스키 선생은 그렇게 용기 있는 사람이다. "마르크스는 이미 생성돼 있는 프롤레타리아와 자본주의를 다뤘지만, 우리는 아직 그것들을 창출해야만 한다." 러시아는 아직 프롤레타리아를 창출해야만 한다고? 러시아에서, 대중의 벗어날 길 없는 빈곤과 노동인민에 대한 후안무치한 착취가 목격되는 유일한 나라인 러시아에서? 러시아 빈곤층의 조건은 (아주 타당하게) 잉글랜드의 그것과 비교되어 왔다. 그리고 수백만 명이 영구적인 기아에 시달리는 나라에서 곡물 수출의 꾸준한 증가가 나란히 목격되고 있다. 이런 러시아가 아직 프롤레타리아가 존재하지 않는다니!

 

나는 미하일롭스키 선생의 살아생전에 그런 빼어난 주장들을 기리는 기념비를 세울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⁴⁹

 

말이 난 김에, 우리는 나중에 이것이 러시아 노동인민의 참을 수 없는 환경에 위선적으로 눈을 감고 그런 환경을 단지 '흔들린다'는 표현으로만 묘사함으로써 모든 게 정상 궤도에 놓이려면 '문명화된 사회'와 정부의 노력들이 필요할 뿐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인민의 벗들'이 일관되게 끊임없이 사용해온 전술의 일환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들 기사 양반들은 노동인민들의 환경이 악화되는 것이 단지 '흔들려서'가 아니라 대중들이 후안무치한 소수 착취자들에 의해 수탈당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에 자신들이 눈을 감는다면, 그러한 착취자들을 보지 않으려고 타조처럼 모래에 머리를 묻는다면, 착취자들은 사라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그런 그들을 향해 당면한 현실을 보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부끄러운 겁쟁이 짓이라고 말할 때, 착취라는 현실을 출발점으로 삼아 그에 대한 유일한 설명은 인민 대중을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로 분리시키는 러시아 사회의 부르주아 구조와 부르주아 지배기구인 러시아 국가의 계급적 성격에 있다고 할 때, 따라서 유일한 탈출구는 부르주아에 맞선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에 있다고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말할 때, 이들 '인민의 벗들'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인민들을 그들의 땅에서 내쫓기를 원한다고,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우리 인민들의 경제구조를 파괴하기를 원한다고 으르렁대기 시작한다!!

 

이제 우리는 이 모든 점잖지 못한 행동 가운데서도 조금도 과장하지 않고 말해서 가장 패씸한 부분, 즉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정치적 활동에 대한 미하일롭스키 선생의 '격렬한 비판'으로 이야기를 옮겨가보도록 하자. 사회주의자들과 선동가들이 노동자들 사이에서 수행한 활동들은 우리의 합법적 언론에서 정직하게 논의될 수 없고, 지독하게 검열을 거친 정기간행물이 이와 관련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란 '요령껏 침묵을 유지하는' 것뿐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미하일롭스키 선생은 이러한 아주 초보적인 규칙을 망각했고, 독자 대중과의 접촉면을 독점한 자신의 상황을 사회주의자들의 얼굴을 더럽히는 데 활용하는 것에 전혀 양심의 거리낌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비양심적인 비평가와 싸우는 수단들은 설사 합법적인 출판 영역의 바깥이라 할지라도 곧 발견될 것이다.

 

미하일롭스키 선생은 순진한 척 가장하며 이렇게 말한다. "내가 알고 있기로 러시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세 부류로 나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적 방관자들(변화 과정에 무관심한 관찰자들), 소극적 마르크스주의자들(그들은 오직 '산고를 누그러뜨릴 뿐'이다. 그들은 '땅 위의 사람들에는 관심이 없고 이미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된 사람들에게만 관심과 희망을 기울인다), 그리고 적극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들은 농촌이 더욱더 몰락해야 한다고 통명스럽게 주장한다)."

 

이게 뭐지? 이 비평가 선생은 우리가 처한 환경의 현실이 자본주의 사회이며, 그것에서 탈출할 유일한 방법은 부르주아에 맞선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이라는 관점을 출발점으로 삼은 사회주의자들이 바로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들이라는 사실을 틀림없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근거로, 어떻게 그는 그들과 일종의 분별없는 속물들을 뒤섞을 수 있을까? 그는 무슨 권리로 마르크스주의자라는 단어를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초보적이고 기초적인 신조들조차 받아들이지 않은 게 분명한 사람들, 결코 눈에 띄는 집단으로 행동한 적이 없고 어디에서도 자신들의 구상을 발표한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확장하는가?

 

미하일롭스키 선생은 그런 터무니없는 것을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허점을 남겼다.

 

그는 상류사회의 멋쟁이 분위기를 풍기면서 "자신이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생각하고 주장하는 사람들만 있을 뿐, 아마도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이란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고 놀려대는 것이다. 내가 언제 어디에서 그렇게 주장했다는 건가? 자유주의자들과 금진주의자들이 모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살롱에서? 사적인 편지에서? 좋다. 당신도 살롱이나 편지를 통해 그들과 실컷 이야기를 나눠보기 바란다. 하지만 당신은 언론에다 대고 어디에서도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는 (마르크스주의 간판을 내건) 사람들에게 맞서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면서 뻔뻔스럽게도 당신은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맞서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당신 역시 사회민주주의자라는 이름이 혁명적 사회주의자들 중 오직 한 그룹에 의해서만 사용된다는 사실과 그들을 다른 그 누구와도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⁵⁰

 

이렇듯 미하일롭스키 선생은 나쁜 것을 하다 현장에서 볼잡힌 학생처럼 사실을 비틀고 왜곡한다. "내가 여기서 비난을 하려는 생각은 조금도 없다——그는 독자들이 자신의 말을 믿게 하려 애쓰고 있다——. 나는 내 귀로 그것을 들었고 내 눈으로 그것을 보았다." 멋지군요! 당신의 눈에는 속물들과 비열한 악당들 말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는 걸 기꺼이 믿어드리지요. 그러나 우리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그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사회주의 활동뿐만 아니라 독립적이고 정직한 사회적 활동이라면 나로드나야 볼랴¹이든 마르크스주의는 심지어 입헌주의든 간에 일정한 간판 아래 실질적인 활동을 벌이는 모든 이들이 언제든 정치적 탄압을 받을 수 있는 '현 시점', 그 이름 아래 자신들의 자유주의적 비겁함을 감추고 미사여구나 늘어놓는 일부 사람들과 그에 빌붙어 자신의 동지를 깃털로 감싸는 몇몇 철저한 악한들이 있다는 사실을 누가 모를까? 온갖 종류의 쓰레기에 의해 그 이름이 (개인적으로 비밀리에) 더럽혀진 사실에 대한 책임을 앞에서 언급한 사상적 경향들에 묻는 건 오직 천박한 속물들만이 가능한 행동이라는 게 분명하지 않은가? 미하일롭스키 선생의 전체적인 주장은 일련의 왜곡, 곡필, 조작이다. 앞에서 우리는 그가 사회민주주의자의 출발점인 '진실'들을 왜곡했고, 언제 어디에서든 그 어떤 마르크스주의자도 하지 않았고 또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왜곡된 진실을 제시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만약 그가 러시아의 현실에 대한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실제적 인식을 설명했더라면, 그는 오직 한 가지 방식, 즉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의식 발전을 돕고 현 체제에 맞선 정치투쟁을 위해 그들을 조직하고 단결시킴으로써 그런 견해들을 '따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또 다른 속임수 하나를 소매 속에 더 감추고 있었다. 상처 입은 무고한 피해자인 척 그는 위선적으로 눈을 치켜뜨며 능글맞게 이렇게 선언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매우 기쁘지만, 나는 당신이 반대하는 게 뭔지를 이해할 수가 없군요."(그는 루스코에 보가츠트보2권에서 정확히 이렇게 이야기했다.) "소극적 마르크스주의자들에 대한 내 논평을 좀 더 주의 깊게 읽어보시오. 그러면 내가 말한 바를 알게될 테고, 윤리적인 관점에서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을 거요."

 

물론 이는 그가 예전에 썼던 형편없는 속임수의 재탕에 불과하다.

 

부탁하건대 (다른 형태의 인민주의는 아직 등장하지도 않은 시점에) 자신이 사회혁명적인 인민주의를 비판하고 있다고 선언하고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넘어갔던 인물의 행동을 어떻게 특정지을 수 있을지 누가 좀 알려주기 바란다.

 

"내가 알고 있기로 인민주의자들은 세 부류로 나뉜다. 농민들의 생각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그에 부응하여, 이를 최초리로 구타하는 행위나 인민 대처 방침이라 불려온 정부의 혐오스러운 대형 정책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일치시킴으로써 그것들을 촉진시켜나가는 일관성 있는 인민주의자, 일관성 있고 용감한 인민주의자로 변신시켜주는 언덕길이 있어 어쩌다 운 좋게 거기로 미끄러지지 않는 한 농민의 의견 따위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고 오직 결사와 같은 방식을 통해 외국의 혁명운동을 러시아에 이식하려 애쓸 뿐 그에 반하는 목소리는 전혀 낼 줄 모르는 겁쟁이 인민주의자, 부농으로서 정직하게 살아가기 위해 진취적인 농민이라는 민중적 이상향을 철저히 실행에 옮겨 땅에 정착한 용감한 인민주의자 말이다." 물론 지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말이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저속한 조롱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그리고 설령 인민주의자들이 저런 주장에 대해 같은 지면에서 반박을 하지 않는다해도, 여태까지 인민주의 사상이 불법화돼 있던 탓에 설령 많은 이들이 그들의 사상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 단지 전해들은 이야기만 쉽게 믿어버린다 할지라도, 저런 사람이 어떤 인물일지에 대해서는 누구나 같은 의견일 것이다.

 

아마도 미하일롭스키 선생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똑똑히 잘 알고 있으리라.

 

어쨌든 이만하면 이제 됐겠지! 미하일롭스키 선생이 앞의 이야기와 비슷한 내용을 암시한 대목들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지만, 그런 쓰레기 같은 글을 읽고 여기저기에 흩어진 내용들을 끌어모은 다음 그것들을 비교해 진지한 반박거리를 찾아내는 작업보다 더 피곤하고 생색 안 나고 구역질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여기까지!

 

1894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