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키 생애
고리키는 11세 때부터 남의 집 더부살이, 제빵소 인부, 배의 하급 선원 등 갖가지 밑바닥 일을 전전했다. 고리키는 독학으로 읽은 책과 노동 현장에서의 비참함을 토대로 그를 작가의 길로 이끌었다. 필명인 ‘고리키’는 러시아어로 ‘쓴맛(쓰라림)’을 뜻하며, 자신이 체감한 가난하고 참혹한 민중의 삶을 담아낸 이름이다. 단편 소설 『첼카시』(1895) 등으로 데뷔하여 밑바닥 민중의 인간성과 자존심을 묘사했으며, 이후 볼셰비키 정당과 인연을 맺고 혁명 자금을 지원하거나 직접 운동에 참여했다. 1905년 혁명 좌절 이후 집필한 대표작 『어머니』(1907)는 그를 혁명적 민중 운동을 대변하는 작가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게 했다.
고리키, 『어머니』
고리키 소설 『어머니』는 노동자 계급의 의식 성장과 러시아 혁명 운동의 발전 과정을 다루며, 1905년 러시아 제1차 혁명 시기의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다. 이 소설의 어머니인 펠라게야 닐로브나는 가난과 남편의 폭력 속에서 두려움에 떨며 살아가던 수동적인 여성이었으나, 아들로 인해 세상을 눈뜨며 혁명의 든든한 조력자로 거듭난다. 아들인 파벨 블라소프는 거칠고 무기력한 아버지의 삶을 따르는 듯했으나, 금서(금지된 책)를 접하며 젊은 노동자에서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민중 지도자로 성장한다.
닐로브나는 알코올 중독이자 폭력적인 남편 밑에서 비참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남편이 사망한 후, 아들 파벨 역시 아버지처럼 술에 의존하며 타락하는 듯 보였으나 어느 날부터 금지된 정치 서적을 읽고 공장 친구들과 비밀 모임을 가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아들이 정부나 경찰에 잡혀갈까 두려워했던 어머니였지만, 아들의 집에 모이는 열정적인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며 차츰 그들을 이해하게 된다.
파벨은 공장 노동자들의 계급 의식을 고취하는 노동 운동의 중심인물로 성장한다. 아들이 삐라(혁명 유인물)를 배포하다가 경찰의 주목을 받자, 어머니 닐로브나는 아들을 돕기 위해 직접 나선다. 그녀는 음식 장수로 위장해 공장 안으로 들어간 뒤 아들의 비밀 유인물을 몰래 배포하는 위험한 일을 완벽히 해낸다. 이 과정에서 닐로브나는 단순한 자식 사랑(모성애)에서 나아가 노동자 민중 전체에 대한 사회적 의식을 갖게 된다.
5월 1일(메이데이) 시위에서 파벨은 붉은 깃발을 들고 노동자 행렬의 맨 앞에 서서 진압군에 맞서다가 체포되어 감옥에 갇힌다. 아들이 투옥된 후에도 어머니는 좌절하지 않고 아들의 동지들과 함께 농촌과 도시를 오가며 혁명 서적과 유인물을 전달하는 등 본격적인 혁명가로서 활동한다.
재판 과정에서 파벨은 기개 있게 재판부의 불의를 규탄하고 시베리아 유형 선고를 받는다. 닐로브나는 아들의 재판정 연설문을 인쇄하여 민중에 널리 알리기 위해 대량의 유인물을 들고 기차역으로 향한다. 기차역에서 비밀경찰의 감시와 추적을 받게 된 닐로브나는 잡히기 직전, 가지고 있던 유인물을 공중에 흩뿌리며 사람들을 향해 진실을 외친다.
경찰들의 폭력과 탄압 속에서 닐로브나는 “진실은 피의 바다로도 끌 수 없다!”고 외치며 장렬하게 맞선다.
막심 고리키, 『어머니』에서 파벨의 재판정 연설은 소설 전체의 정점이자 민중을 향한 강력한 선언이다. 또한 닐로브나의 모습은 수동적인 삶에서 깨어난 한 인간의 장엄한 계급적 각성을 보여준다. 투옥된 파벨은 재판정에서 자신의 행위를 변호하는 대신, 지배 계급의 불의와 체제의 모순을 당당히 규탄한다.
“우리는 사회주의자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사유 재산을 부정하며, 재산을 근거로 사람을 갈라놓고 민중을 압제하는 사회 질서에 반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이 가진 것은 다만 물질적 무력뿐입니다. 경찰, 군대, 감옥, 그리고 형틀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것은 도덕적 힘이자 민중의 깨어난 의식입니다. 여러분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멈출 수 없습니다. 우리를 체포할 수는 있어도, 우리가 전파하는 진실과 생각은 결코 감옥에 가둘 수 없습니다!”
닐로브나는 기차역에서 유인물을 날리며 장렬하게 이렇게 외친다.
“피의 바다로도 진실을 끌 수는 없다! 그들이 아무리 억압하더라도 진실의 소리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아들 하나만을 위해 두려워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깨달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젊은이들이 내 아들입니다. 진실을 위해 싸우는 이들 모두가 내 자식들입니다.”
“인간이 두려움을 버릴 때, 그제야 비로소 참된 인간이 됩니다. 나는 오랫동안 매 맞고 숨죽이며 살아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고리키와 어머니
레닌은 1908년부터 1910년, 그리고 1913년 전후로 고리키에게 방대한 양의 서한을 보냈다. 이 서한들에는 단순한 안부에서 더 나아가 당시 러시아 혁명 운동의 노선과 철학적 논쟁이 담겨 있다. 특히 레닌은 고리키가 카프리섬에 체류할 당시 마흐주의나 신조형주의 같은 유심론적 철학 경향에 빠지는 것을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작가로서의 고리키가 당의 출판물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교류를 나눴다. 특히 레닌의 저작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은 표면적으로는 보그다노프 등의 철학을 비판하고 있지만, 이 책이 집필되던 시기의 배경에는 고리키와의 서신 교환이 깊이 연관되어 있다. 레닌은 생전에 고리키와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면서도 혁명적 시각차를 보이기도 했으나, 그럼에도 고리키가 남긴 문학적 유산은 혁명사에서 매우 위대한 저작이라 손꼽힌다. 고리키는 『어머니』에서 혁명가의 초상을 다루기 이전에 한 어머니의 존재를 그려낸다.
고리키와 교류했던 레닌의 생애에서도 그의 어머니 마리야 울리야노바의 존재는 레닌이라는 혁명가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정신적 지주였다. 소설 속 ‘닐로브나’가 노동자 아들을 지키고 도우며 성장했듯, 현실 속 레닌의 어머니 역시 자식들의 혁명 투쟁을 온몸으로 감당해 냈다.
레닌의 어머니 마리야는 큰아들 알렉산드르가 황제 암살 미수 사건으로 처형당하고, 둘째 아들 레닌을 비롯한 다른 자식들마저 끊임없는 감옥 투옥, 유형, 망명길에 오르는 고초를 겪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평생 자식들을 원망하지 않고 법원에 탄원서를 내고 감옥을 수소문하며 끝까지 자식들의 보호막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마리야는 혁명 1년 전인 1916년 7월 25일, 81세를 일기로 페트로그라드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는 레닌이 준비했던 1917년 두 차례의 러시아 혁명(2월 혁명과 10월 혁명)이 일어나기 불과 1년 전이었다. 당시 해외 망명 중이던 레닌은 어머니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했고, 그해 어머니의 묘소를 찾았을 때 깊은 죄책감에 휩싸였다. 자식들의 투쟁을 위해 평생을 바쳤던 어머니는 아들이 마침내 역사를 바꾸는 모습을 끝내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이처럼 고리키가 1907년 소설 『어머니』에서 민중과 어머니의 각성을 예견했듯, 레닌의 어머니를 비롯한 수많은 러시아 어머니들의 희생과 고통은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터져 나왔다. 1917년 2월 혁명은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빵과 평화를 요구한 여성과 어머니들의 시위로 시작되었다. 결국 레닌은 1917년 10월 혁명을 성공시키며 인류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했다. 그러나 그 역사의 순간에 어머니는 그의 곁에 없었다.
소설 『어머니』 속 닐로브나가 아들 파벨의 투쟁을 돕다 진실을 외쳤듯, 레닌의 어머니 마리야 역시 수많은 탄압 속에서 혁명가 자식들을 품어낸 현실 속의 어머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