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왓킨스, 《코뮌(파리, 1871), 2000년 작》은 1871년 세계 최초의 프롤레타리아 자치 정부였던 ‘파리 코뮌’의 탄생과 몰락을 다룬 작품이다. 약 5시간 45분 (345분)에 달하는 긴 상영 시간 동안 영화는 단순한 역사극에 그치지 않고, 파리 코뮌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현대 매체 간의 관계를 파격적인 방식으로 다룬다.

 

영화는 보불전쟁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패배 직후, 피폐해진 프랑스 민중의 삶에서 출발한다. 1871년 3월 18일, 티에르가 이끄는 프랑스 임시정부(베르사유)는 파리 인민들로 구성된 국민방위대의 대포를 압수하려 한다. 그러나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여성들과 민중이 이를 저지하고, 군대가 발포를 거부하면서 봉기가 시작된다. 위협을 감지한 임시정부가 베르사유로 도피하자 파리 인민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선거를 거쳐 자치 정부인 ‘파리 코뮌’을 선포한다.

 

코뮌 정부는 집세 면제, 제빵 노동자의 야간 작업 금지, 무상 및 종교 분리 교육, 여성 권리 향상, 공장 노동자 공동 운영 등 사회 혁명 정책들을 쏟아낸다. 그러나 동시에 전시 상황에서의 행정적 미숙함, 지도부 내 이념적 분열, 여성 참여에 대한 일부 보수적 한계 등 내부적인 균열도 함께 드러낸다.

 

이후 프로이센과의 협력으로 전열을 정비한 베르사유 정부군이 파리로 진격해 들어온다. 5월 21일부터 28일까지 이어진 ‘피의 일주일’ 동안 코뮌 인민들은 바리케이드를 치고 격렬히 저항하지만, 압도적인 무력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무너진다. 결국 약 3만 명에 달하는 파리 인민과 노동자들이 무차별 학살당하면서, 파리 코뮌은 72일간의 역사를 뒤로한 채 비극적으로 막을 내린다.

 

이 영화의 특징은 1871년이라는 역사적 현장에 ‘현대 방송 매체’의 존재를 개입시킨 시대착오적 연출이다. 극 중에는 두 개의 방송 취재진이 등장한다.

 

코뮌 TV (민중 방송): 마이크를 들고 바리케이드 위를 직접 누비며 여성, 어린이, 가난한 노동자, 군인들의 목소리와 열망을 대담 형식으로 담아낸다.

 

베르사유 TV (기득권 방송): 정제된 방송실에서 고급 정장을 입은 보도 진행자와 취재원이 코뮌을 폭도와 무정부주의자로 몰아가며 선전 선동과 가짜 뉴스를 보도한다.

 

19세기 역사극에 현대의 촬영 장비와 뉴스 진행자가 등장하는 이 구조는 대중 매체가 역사를 다루고 편견의 틀을 씌우는 방식을 풍자했다.

 

또한 영화는 장시간 연속 촬영 방식을 활용해 카메라로 파리의 골목과 바리케이드 사이를 천천히 훑고 다닌다. 345분이라는 방대한 상영 시간 덕분에 주인공 몇 명에게만 조명이 집중되지 않고, 거리의 아이들, 방직 공장 여성, 정부군 병사 등 모든 출연진에게 고루 발언권이 주어진다. 관객은 6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72일간의 역사를 마치 ‘실시간 생중계’로 목격하는 듯한 깊은 생동감에 빠져든다.

 

무엇보다 서늘한 충격을 주는 대목은 화면 속 열기 외적으로 등장하는 검은 자막이다. 코뮌 인민들이 화면 속에서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을 때, 화면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떠오른다.

 

“이 증언에 나오는 21세 여성 노동자는 5월 24일 베르사유 정부군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게 된다.”

 

“이 병사는 진압 후 신원 미상 상태로 대량 매장지에 묻힌다.”

 

민중의 모습과 그들의 비극적 최후를 미리 알리는 자막의 대비는 관객에게 깊은 충격을 선사한다.

 

감독은 전문 배우 대신 약 300명의 비전문 일반인을 기용했다. 이들은 단순한 보조 출연자가 아닌 영화의 공동 창작자였다. 신문 광고, 전단지, 사회 단체 등을 거쳐 모집된 출연진은 실제 선반공, 교사, 우체부, 간호사, 노조 활동가, 알제리·아프리카계 이민자, 실업자, 학생 등 현실에서 약자나 노동자 계급으로 살아가는 프랑스 인민들이었다. 특이한 점은 베르사유 정부군이나 기득권층 역할을 맡은 사람들 역시 실제 보수적 정치 성향을 가진 일반인이나 언론인들을 모집했다는 것이다.

 

배우들은 촬영 전 수개월 동안 역사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파리 코뮌 학습 토론회에 참여했다. 각자 맡은 인물의 사회적·경제적 배경을 연구한 이들은 정해진 대본을 외우는 대신, 감독이 던져주는 특정한 상황 (“빵 값이 올랐다”, “정부군이 진격해 온다”) 속에서 자신이 연구한 인물로서 자발적인 즉흥 연기를 펼쳤다. 영화 촬영장은 제작진이 완벽히 통제하는 연기 공간에 머물지 않고, 출연진들이 실제로 화를 내고 상대의 말을 끊으며 논쟁하는 하나의 ‘정치적 공론장’으로 기능했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배우들은 ‘4차원의 벽’을 깨고 1871년의 역할에서 자연스럽게 빠져나온다. 그리고 촬영기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자신의 진짜 모습 (현대 프랑스의 노동자, 이민자, 학생 등)으로 돌아와 오늘날 사회 문제 (세계화, 대중 매체 독점 및 왜곡, 인종차별, 신자유주의 노동 조건, 교육 문제, 실업난 등)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인다.

 

“저는 사실 알제리 출신의 이민자 노동자입니다. 제가 맡은 1871년 노동자의 빈곤은, 2000년대 프랑스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저의 삶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과거의 역사적 사건과 현대 출연진의 실제 삶이 한 화면에서 교차하는 순간, 영화는 단순한 연극에 머물지 않고 시대를 가로지르는 기록극으로 전환된다.

 

이들의 동지애는 촬영장에서 끝나지 않았다. 완성도 높은 민중극을 만들어낸 출연자들은 영화 완성 후 대형 매체나 배급사가 영화를 외면하려 하자, 직접 영화 수입/배급 협동조합을 결성하여 자체 상영회를 열고 언론 매체 비판 운동을 이어갔다.

 

《코뮌》은 단순히 지나간 옛 역사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역사적 사건과 현대적 매체가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불꽃으로 대중 매체의 독점적 편견의 틀을 고발하며, “150년 전 민중들이 피 흘려 싸웠던 가치들이 과연 지금은 이루어졌는가?”라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345분 동안 관객을 투쟁의 장벽 한가운데로 불러앉히는 이 혁명적인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더 나은 사회를 향한 민중의 열망은 왜 역사 속에서 지워졌는가, 그리고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를 스스로 되묻게 만든다.



<《코뮌》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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