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와의 약속
『공산당 선언』은 단순히 유산 계급의 조예를 위한 문예 작품이 아니다. 이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국제노동자협회의 위임을 받아 작성한 당 강령 초안이었다. 엥겔스는 이 초안에 주석을 달며 프랑스 사회주의·민주주의와 독일 사회민주당 사이에는 거대한 노선적 차이가 존재함을 명시하였다. 이 강령 초안은 유럽 전역에서 전개되어 전 세계로 확장될 수 있는 혁명적 비결이 담겨 있다. 곧, 공산당을 선언한다는 일은 단순히 사회민주당의 연장이 아니라, 무산 계급의 독자적인 정당이 변혁적 주체로 부상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일이다.
한국의 사회주의·공산주의 문헌 수입 과정에서는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은 수많은 저작이 산재해 있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유산 계급 중심의 대의제로 기존의 유산 계급적 지배 체제를 공고히 유지해왔다. 『공산당 선언』은 각 국가의 특수성에 강령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현안에 대한 계급적 분석에서 시작해야 함을 천명하였다. 따라서 오늘날의 계급 격차가 단지 집권 정부의 정치적 기조에 따라서만 유지되는 왔는가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유산 계급은 때로는 종교 세력과, 때로는 보수 및 개혁 세력과 연대하고 이동하면서, 자신들의 계급적 본질을 은폐하는 안전 장치를 설계해왔다. 기술의 발전 역시 그러한 생산 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하고 자본 축적을 가속화하기 위한 새로운 착취의 통제 방식으로 고안되었다. 결국 노동 계급의 혁명적 역량을 무력화하려는 유산 계급의 시도로 인해, 오늘날의 사회는 노노동의 해방이 실현되는 곳이 아니라 오직 유산 계급의 생존과 자본 경쟁만이 지속되는 전근대적 장으로 전락하였다.
계급적 각성은 단순한 선전·선동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국가 체제의 비호 속에서 지배 계급으로 군림하는 유산 계급이 생산 수단과 재산을 사적으로 전유하고 자본 축적을 증대시키는 한, 그들은 각종 구조적 수단을 동원하여 노동 계급을 억압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온갖 직업군의 공상가들과 지식인들이 유산 계급의 아군으로 합류하여,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이념적 장치를 공고히 마련해주고 있다.
이러한 계급 모순을 방관할 수만은 없으며, 이것이 바로 『공산당 선언』이 오늘날 지니는 실천적 의의이다. 선언이 작성될 당시에는 봉건주의 해체와 유산 계급 혁명이 동시에 분출했으나, 무산 계급 혁명은 자발적인 요구를 조직적 강령으로 담아낼 만큼 성숙하지 못하였다. 영국의 차티스트 운동이나 독일의 초기 농민 봉기들이 실패를 거듭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무산 계급이 역사적 변혁의 주체라는 점은, 이 실패를 딛고 일어선 이들이 소외된 소수가 아니라 그 사회의 대다수라는 자각에도 있다. 지배 계급 한 사람이 군림하기 위해 소모되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과 자본 축적 과정을 상기한다면 그 의미는 명백해진다. 국가 내 자본의 순환 과정을 명확히 파악할 때, 비로소 자본 계급이자 지배 계급인 그들의 실체가 드러난다.
노동 계급이 겪는 억압은 개별적인 피해에 그치지 않는다. 유산 계급이 권력을 잡은 순간부터, 과거 노예제가 유지되던 시절이나 화폐가 자본으로 전환되던 역사적 전환기에도 그들은 사적 소유를 법적·정치적으로 정당해왔다. 그러나 인간 역사에서 사적 소유의 등장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가 무산 계급의 정치적 요구를 정당의 형태로 결집해낼 때, 그 혁명적 요구는 결코 특정 계급의 집권 체제를 단순히 교체하는 것에 머무를 수 없다. 그것은 무산 계급이 지닌 대다수의 힘을 자각하고 유산 계급 지배 구조 자체를 폭력적으로 전복하는 실천이어야 한다.
오늘날 과학 기술의 발전은 계급적 논의와 연대를 확산시킬 수 있는 새로운 토대를 제공하였다. 노동 계급이 이 조건과 무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유산 계급의 핵심 기반인 ‘사적 소유의 폐지’를 전면적으로 요구할 수 있다면, 단순히 소수 원외 정당의 수준이 아니라 착취 노동전반으로부터의 온전한 해방을 쟁취할 수 있다. 전근대적인 착취의 역사라는 과거가 반복되고 있다. 이 역사를 현재로 전환할 수 있는 혁명적 주체는 오직 무산 계급 자신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