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다루는 마르크스와 엥겔스 저작은 자본, 공산당 선언단 두 권뿐이다. 글을 읽을 줄 알고 이 두 권을 깊이 읽을 수 있다면, 나머지 저작들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몇 개월 동안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리고 레닌 일부 저작을 다시 검수하였다. 여러 독자가 기존의 번역본에 많은 오류를 지적해 왔기에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곧바로 사업을 정리한 상태에서 생계를 위한 구인·구직 활동을 미루고 오직 해당 작업에만 집중하였다. 그 결과, 마르크스와 엥겔스 자본공산당 선언검수를 완료할 수 있었다. 다만 세부적인 주석이나 서문 등은 생략하였다. 그것은 본문 내용을 읽을 때 직접 참고할 수 있다면 충분하며, 그 이상의 요소들은 학술적 용도에 가깝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저작들이 단순한 이론적 학술용이 아니라 정치적 실천용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세심한 노고를 기울였다는 사실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가장 바란 것도 저작을 둘러싼 학문적 논쟁이 아니라, 이것이 계급 투쟁을 위한 밑거름으로 활용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자발적으로 이 작업을 해낼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도서관 방문을 일 삼을 수밖에 없던 피치 못할 사정 역시, 지금의 사회가 과거보다 더 폐쇄적이고 정체되어 있음을 실감한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여러 사정이 모여 지금의 결과로 나오게 되었다.

 

이제 필자는 다시 구인·구직 전선에 나서는 청년 노동자로 돌아간다. 현장에서 구직에 성공한다면 노동 과정에서 경력도 부족한 필자를 동료로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서로 얼굴을 알지 못하고, 필자 역시 현장에서 자신을 공산주의자라고 공개하지는 않는다. 아직을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회가 여전히 아니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에서 가끔 웃으며 나누는 수다 뒤에는 가식적인 면이 들리기도 하지만 결국, 생계를 위해 노동할 수밖에 없는 현실 앞에서는 모두가 굴복하게 된다는 점이다.

 

소수의 이익을 위해 경쟁하고 희생하는 이들은 언제나 대다수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 비하하고 차별하며, 도리어 유산 계급의 이익이 되는 일에 더 몰두해 왔던 것은 아닐까. 필자가 언젠가 현장에서 일하게 된다면 아마도 마지막 세대로 노동 현장에 진입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자본의 경쟁은 더치열해지기보다, 그 서막에서 일찍이 충돌하거나 상쇄되며 가라앉고 있다. 무산 계급의 처지에서 앞날을 함부로 단언할 수는 없으므로, 주어진 조건과 한계 속에서 투쟁할 뿐이다.

 

계급 투쟁의 전장은 임금 노동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로 인해 발생했던 수많은 폐단과 폐해가 현재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그날이라 말했곤 했던 그러한 노동에서 완전히 해방될 때까지, 필자 역시 아직은 노동자로 살 수밖에 없는 몸이다. 불로 소득을 위한 주식 투자나 저축 등은 사적 소유의 범주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임금 노동이 지금도 만들어내는 연쇄 구조가 우리를 사슬처럼 족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머지않은 근시일 이내에 볼 수 있다면, 현장에서 여러분과 함께할 것이다. 매일 이곳을 방문하는 꾸준한 무산 계급 동지들에게 깊은 단결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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